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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현충원 전두환 친필 현판 안중근체로 교체

    대전현충원 전두환 친필 현판 안중근체로 교체

    국립 대전현충원에 걸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29일 안중근체 현판으로 교체됐다. 현판 글씨 ‘현충문’은 1985년 대전현충원 준공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쓴 것을 받아 제작됐다. 전 전 대통령은 이곳 현충탑 헌시비에도 자신의 글씨를 남겼다. 안중근체는 지난해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다. 안 의사가 자필로 쓴 ‘장부가‘의 한글 원본을 토대로 자음과 모음을 발췌해 만들어졌다 전 전 대통령의 친필 헌시비는 재료 준비 등에 시간이 걸려 6∼7월쯤 교체될 예정이다. 새 헌시비도 ‘안중근체’로 제작된다. 앞서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4월 대전현충원의 전 전 대통령 친필 현판 철거를 요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같은 요구가 빗발쳤다. 국가보훈처는 각계 전문가 의견과 자문을 받아 보훈시설에 있는 전 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 작업을 추진해왔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포토] 전두환 친필 ‘현충문’ 현판 철거

    [포토] 전두환 친필 ‘현충문’ 현판 철거

    29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현판이 교체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국립대전현충원 현충문에 걸린 전두환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을 안중근체로 교체한다. 2020.5.29 연합뉴스
  • 화살머리고지서 돌아온 정영진 하사… 66년 만에 훈장 받다

    화살머리고지서 돌아온 정영진 하사… 66년 만에 훈장 받다

    6·25전쟁 당시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전사해 유해로 발굴된 정영진 하사에게 66년 만에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다.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은 27일 “화살머리고지 전투 전사자로 유해가 발견된 정 하사를 대신해 유족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DMZ에서 유해가 발굴된 전사자에게 군이 무공훈장을 찾아 수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26년 경기 양평에서 태어난 정 하사는 1952년 9월 육군 2사단 31연대에 입대해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정 하사는 휴전을 불과 2주일 앞둔 1953년 7월 14일 전투 중 전사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 하사의 유해는 지난해 5월 15일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유품과 함께 완전 유해 형태로 발견됐다. 지난 3월 유가족의 유전자(DNA) 시료를 채취해 대조한 끝에 최종 신원이 확인됐다. 정부는 1954년 10월 정 하사에게 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가 전사하면서 실제 수여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정 하사의 훈장 수여가 결정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내왔다. 조사단은 지난 4월 정 하사의 상훈 자료를 확인하던 중 정 하사에게 전하지 못한 훈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유가족에게 관련 사실을 알렸다. 정 하사의 아들 정해수(72)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고 훈장까지 받게 된 지금 너무나 기쁘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많은 유가족들에게도 나와 동일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훈장 수여식을 치른 정 하사의 유해는 다음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김종인 “세상 변했다…‘진보·보수·중도’라는 말 쓰지 마라”

    김종인 “세상 변했다…‘진보·보수·중도’라는 말 쓰지 마라”

    총선 42일 만에 ‘김종인 비대위’ 출범여성 2명, 청년 3명 포함시켜 혁신 의지“변화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게 핵심”4·15 총선 참패 후 지도부 공백 사태를 겪어온 미래통합당이 총선 42일만인 27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통합당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잇달아 열고 지난달 말 추인된 ‘김종인 비대위’의 임기를 연장하는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당헌 개정으로 임기를 오는 8월 30일까지로 규정한 부칙에 ‘비대위를 둘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추가되면서 논란이 됐던 임기 문제가 해결됐다. 이에 따라 김종인 비대위는 내년 4월 7일 재보선까지 통합당을 이끌면서 지난 총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패 하면서 깊은 수렁에 빠진 당을 정상화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통합당은 이날 김 위원장과 함께 비대위를 구성할 비대위원으로 성일종·김현아 의원, 김미애 당선인, 김병민 서울 광진갑 조직위원장, 김재섭 서울 도봉갑 조직위원장, 정원석 청사진 공동대표를 선임했다. 이외에 주호영 원내대표, 이종배 정책위의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전체 9명 중 여성이 2명, 1980년대생 청년이 3명으로, 위원회 구성부터 혁신의 의지를 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상임전국위에 앞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회의 비공개 특강에서 “진보, 보수라는 말 쓰지 말라. 중도라고도 하지 말라”며 “정당은 국민이 가장 민감해하는 ‘불평등’ ‘비민주’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사회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어느 쪽이 변화한 세상에 더 잘 적응하느냐의 문제가 남았고 그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내가 이번 일 해놓고 고맙다는 소리는 못 들을 게 뻔하다”고 말해 참석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다음 달 1일 오전 8시 현충원 참배로 당무를 시작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통합 사령탑 김종인 “자유우파 강조 말라…시대정신 맞게 바꿔야”

    통합 사령탑 김종인 “자유우파 강조 말라…시대정신 맞게 바꿔야”

    김종인, 당 ‘창조적 파괴’ 추진 예고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27일 “보수냐 진보냐 이념으로 나누지 말자”면서 “당의 정강·정책부터 시대정신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통합당의 전통적 지지층에 호소해 온 ‘보수’, ‘자유 우파’를 더는 강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 내정자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회의 비공개 특별강연에서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세대가 바뀌었다”면서 “국민은 더는 이념에 반응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밝혔다. 참석자 등에 따르면 김 내정자는 “미래를 위해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색채를 버리자,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할지 넓게 봐야 한다”면서 “이념적 틀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내정자는 “일반적 변화가 아닌, 엄청난 변화만이 대선 승리의 길”이라면서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세상 변화에 빨리빨리 적응할 수 있는 정당이 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내정자는 “과거 경제민주화처럼 새로운 것을 내놓더라도 놀라지 말라”면서 “정책 개발만이 살길이다. 깜짝 놀랄 만하게 정책 개발 기능을 되살릴 것”이라고 밝혔다.‘김종인 비대위’ 9명 확정…청년 3명 金, 보수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해체 검토 중 앞서 통합당은 전국조직위원장회의 이후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김 내정자의 임기를 내년 재보궐선거까지로 정했다. 김 내정자는 전국위에서 수락 연설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 내정자는 다음달 1일 임시 당대표인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비대위원과 사무총장 등 당직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이념·노선을 재정비하기 위한 정강 정책 개정과 차세대 주자 발굴에 들어갈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이날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할 비대위원 9명을 선임했다. 비대위에는 김 위원장과 함께 주호영 원내대표, 이종배 정책위의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여성 비대위원은 김미애 당선인과 김현아 의원이다. 김병민 서울 광진갑 조직위원장, 김재섭 서울 도봉갑 조직위원장, 정원석 청사진 공동대표 등 3명은 1980년대생으로, ‘청년 비대위원’에 해당한다. 또한 재선(21대 국회 기준)의 성일종 의원도 비대위에서 활동한다. 김 내정자는 당 ‘창조적 파괴’의 시작으로 보수진영의 대표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해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내정자는 기존의 진보·보수 진영을 넘나드는 이념과 노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김 내정자는 그동안 “진보와 보수 개념을 구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金, 기본소득 등 복지 방향 제시 관측코로나 재정 선제 투입, 당명 개정도 추진 당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속에 경제 화두로 떠오른 기본소득 개념과 복지 정책 전반에 걸쳐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내정자는 총선 과정에서도 코로나19의 특수성을 감안한 선제적인 재정투입을 강조해왔었다. 당명 개정도 함께 추진될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총선 직후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국민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당명으로 바꾸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밝혔었다. 이날 오후 전국위원회에서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안이 통과되면 본격적인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사설] 민주당, ‘과거사 올인’ 말고 노동현장 살펴라

    더불어민주당 중진의원인 설훈 최고위원이 그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상조사가 미진한 게 너무 많다”며 KAL858기 폭파사건 재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1987년 11월 발생한 KAL858기 폭파사건은 이미 여러 차례의 수사 및 조사, 진상조사 등을 통해 북한 공작원인 김현희씨 소행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국가정보원 진실조사위원회도 강도 높은 조사 끝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설 최고위원은 ‘전두환 정권의 파워가 작용했을 것’이라며 2007년 진상조사 결과까지 부정하고 있다. 여권은 최근 ‘한만호 비망록’의 언론 보도를 계기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 재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민주당 이수진 당선자는 친일파들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파묘(破墓)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에서 177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슈퍼여당이 힘의 논리로 그동안 못마땅했던 과거 수사와 재판을 모두 뒤집겠다는 것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눈에는 여당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 대신 정치적으로 지지세력의 응집력을 키우는 과거사에 올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총선에서 국민이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것은 코로나19 극복과 경제위기 타개에 매진하라는 일종의 ‘주마가편’ 성격이 짙다. 과거의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정치적 한풀이’에 나서라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일에는 경중이 있으니 우선순위를 가려야 한다. 한 전 총리의 명예회복이나 KAL858기 희생자 유족들의 해원, 친일파 청산 등은 중요한 일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의 타개 등과 같은 국난극복보다 앞선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현재 재난은 모두가 ‘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인식할 때만이 극복할 수 있는 ‘잔인한 바이러스’가 목표이다. 여론이 갈라진다면 효과적인 방역은 불가하다. ‘위험의 외주화’ 종식을 위해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20대 젊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산재사망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같은 엄혹한 노동현장의 개선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지난 22일에도 경기 용인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사했고, 같은 날 경기 광주 하남산업단지 한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26세 노동자가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숨졌다. 매년 산재로 1500명 넘게 사망한다. 정부여당이 코로나 방역을 하듯 산재예방에 나선다면 제2, 제3의 김용균과 ‘구의역 김군’의 사망을 막을 수 있다. 민주당은 슈퍼여당의 막강한 힘을 좀더 효과적으로 쓰길 바란다. 내일은 ‘구의역 김군’이 산재사망한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 [서울포토]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세우기’

    [서울포토]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세우기’

    24일 서울 국립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서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최,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주제로 열린 현충원 탐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5.24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현충원서 ‘추모’ 핑계 대고 ‘5·18 망언 행사’ 원천봉쇄

    현충원서 ‘추모’ 핑계 대고 ‘5·18 망언 행사’ 원천봉쇄

    국방부, 현충원 운영예규 개정 추진‘정치 집회’ 우려만으로도 불승인앞으로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5·18 망언’을 앞세우는 정치 집회 등이 원천 봉쇄될 전망이다. 22일 국방부에 따르면 정부는 현충원 운영예규를 개정, 정치 집회가 우려되는 경우 행사를 승인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묘지설치법 20조 1항에 따르면 ‘국립묘지 경내에서는 가무·유흥, 그 밖에 국립묘지의 존엄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국방부는 이를 근거로 기존에도 현충원에서의 정치 집회를 금지하고 있지만, 주최 측이 추모 행사를 연다고 하면 승인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극우 논객 지만원 씨가 활동 중인 5·18군경전사자추모회 등이 수년째 ‘군·경 사망자 추모식’ 명목으로 행사 개최를 승인받은 뒤 행사에선 정작 5·18 운동을 폄훼·왜곡하는 발언을 되풀이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씨는 올해도 지난 18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모식에서 “5·18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추모식이 아닌 사실상 정치 집회로 행사 성격이 변질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정치적 집회 등이 우려될 경우 불승인한다’는 조항을 운영예규에 명문화한다는 계획이다. 정치 집회를 승인하지 않을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다. 또 ‘정치 집회를 하지 않겠다’면서 추모 행사를 승인받은 뒤 관련 규정을 위반할 경우, 현장에서 제지하고 불응 시 퇴거 조치 후 고소·고발하는 등 강력 대응할 방침이다. 이듬해 비슷한 행사를 또 추진하면 불승인 조치된다. 한편, 국방부는 지난 18일 문제의 행사를 개최한 5·18군경명예회복위원회를 전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서울 동작경찰서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민에 희망 줬던 ‘박치기왕’ 故김일, 현충원 묻힌다

    서민에 희망 줬던 ‘박치기왕’ 故김일, 현충원 묻힌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2006년 별세 프로 스포츠인 출신으로는 첫 사례 손기정·민관식 등 이어 체육인 5번째 1960~1970년대 동네에 한두 대밖에 없던 흑백 TV 앞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국민 영웅, 화려한 잔재주 대신 맨머리로 우직하게 거구들을 쓰러뜨리며 넉넉하지 못한 삶을 버텨 내던 서민들에게 희망을 준 프로레슬러 ‘박치기왕’ 김일(1929~2006)이 세상을 뜬 지 14년 만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프로 스포츠인 출신으로는 첫 사례다.대한체육회는 22일 김일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다고 21일 밝혔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대상심의위원회는 지난달 한국 체육 발전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해 김일의 현충원 안장을 최종 승인했다. 스포츠인의 국립묘역 안장은 2002년 손기정(마라톤), 2006년 민관식(전 대한체육회장), 지난해 서윤복(마라톤), 김성집(역도)에 이어 다섯 번째다. 전남 고흥군 거금도 출신으로 지역 씨름 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던 김일은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던 195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 출신으로 당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던 역도산 문하에서 사각의 링에 서기 시작했다. 상대 머리를 붙잡은 뒤 한쪽 다리를 들고 몸을 뒤로 젖혔다가 다리에 체중을 실으며 들이받는 이른바 외다리 박치기(원폭 박치기)를 주무기로 같은 역도산 문하였던 일본 프로레슬링 영웅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와 트로이카 체제를 이루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노키의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잡아챈 뒤 박치기를 꽂아 쓰러뜨릴 때 온 국민이 열광했고, 상대의 반칙으로 김일의 하얀 이마에 붉은 피가 흘렀을 때는 온 국민이 분노했다. 1963년 WWA 세계 태그 챔피언, 1967년 WWA 세계 헤비급 챔피언 등 다수의 타이틀을 땄던 김일은 국내 프로레슬링 1세대인 고 장영철, 천규덕 등과 함께 국내 무대에서도 활동했으며 1970년대 중반 체육관을 열고 후배 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89년 일본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1994년 1월 귀국해 투병 생활을 이어 가다가 2006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생전 국민훈장 석류장(1994), 체육훈장 맹호장(2000)을 받았으며, 사후 체육훈장 청룡장(2006)이 추서됐다. 2018년에는 대한체육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뽑혔다. 한국 스포츠 명예의 전당 격인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주로 선정돼 왔기 때문에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포토]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포토]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3·1만세운동·일제 만행, 사진·글로 전 세계에 알린 ‘34번째 민족대표’

    3·1만세운동·일제 만행, 사진·글로 전 세계에 알린 ‘34번째 민족대표’

    1920년 초 대구감옥. 스코필드는 누워 있는 김마리아를 보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김마리아는 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악랄한 고문을 받아 반신불수가 된 채 수감 중이었다. 스코필드는 혹한의 날씨에도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 마리아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스코필드는 서울로 올라온 즉시 사이토 총독을 방문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지난달 12일은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박사의 서거 50주기였다. 국립서울현충원에 묘소가 있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라 작은 추모식도 열리지 않았다. 스코필드는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에 앞서 잊어서는 안 될 독립운동가다. 그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협력을 요청받은 유일한 외국인이다. 또한 그 참상을 세계에 널리 알려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린다.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 5500여명 중 순수 외국인은 스코필드를 포함해 70명이다. 장제스, 쑨원, 베델도 들어 있고 식민지 정책에 반기를 든 후세 다쓰지 변호사, 박열과 옥중 결혼한 가네코 등 일본인도 훈장을 받았다.스코필드는 1889년 3월 15일 럭비의 발상지인 영국 워릭셔주 럭비시에서 태어났다. 1907년 캐나다로 홀로 이민을 가서 토론토에 있는 온타리오수의대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아 모교에서 세균학 강사로 일했다. 스코필드가 한국에 온 것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에비슨으로부터 “한국과 같은 외딴 나라에서 굳은 의지와 정열로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편지 한 통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스코필드는 대학생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와 팔이 불편한 몸이어서 주변에서 말렸지만 뿌리치고 1916년 11월 아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스코필드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부터 지었다. 철석같은 의지(돌 석), 호랑이같이 무서운 사람(호랑이 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울 필)을 뜻한다고 말하곤 했다. 3·1운동 전날 저녁 세브란스의학교 제약주임이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갑성은 세브란스의학교 교수로 있던 스코필드를 찾아가 거사 계획을 설명하고는 현장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또 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 백악관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일제의 강압적인 지배 정책에 반대하고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지지하던 스코필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드디어 3월 1일. 스코필드는 자전거를 타고 파고다공원으로 나가 만세 부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스코필드는 외발로 자전거를 몰아야 했다. 대한문, 왜성대, 숭례문, 서울역까지 군중을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 역사적인 현장을 촬영했다. 사진을 잘 찍으려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과자점에 들어갔다가 도둑으로 몰리는 봉변도 당했다. 남아 있는 3·1운동 현장 사진 대부분은 스코필드가 찍은 것이다. 스코필드는 보고 들은 것들을 사진과 함께 외국 신문에 기고했다. 스코필드가 찍은 태형 피해자 사진 등 만행 사진은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첨부됐다.스코필드의 두 번째 활약은 일제의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일이다. 경기도 수원(현재 화성) 지역 만세운동의 보복으로 일본군은 수촌리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항의하는 주민을 총칼로 제압하고 죽였다. 또 발안 시위의 보복으로 제암리 주민 30여명을 교회 안에 가둔 뒤 불을 질러 23명을 학살했고 이웃 고주리에서도 천도교인 6명을 총살했다.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는 기차와 자전거를 이용해 현장으로 달려가 진상을 눈으로 보고 보고서를 썼다. 수촌리 사건은 ‘수촌리 만행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미국 장로회 기관지 ‘프레스비테리안 위트니스’ 1919년 7월 26일자에 보도됐다. 제암리 사건은 ‘제암리 대학살’이란 제목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상하이 가제트’ 1919년 5월 27일자에 게재됐다. 스코필드가 아니었다면 일제의 만행은 한동안 파묻혔을지도 모른다. 스코필드는 김마리아와 같은 수감자 인권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 ‘서울프레스’라는 영자신문이 서대문형무소를 ‘서대문요양소’, ‘서대문직업학교’라고 보도하자 직접 형무소를 찾아가 진실을 확인했다. 유관순, 어윤희, 이애주 등을 만나 끔찍한 고문이 있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총독부로 찾아가 하세가와 총독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는 총독부 간부들을 만날 때 반드시 명함을 받고 사진을 찍어 둬 방해하는 일경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스코필드는 1919년 8월 일본에 건너가 극동 선교사 800여명 앞에서 일제의 만행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하라 총리를 만나 비인간적인 만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각국 언론과 접촉해 일본을 비난하는 글도 계속해서 실었다. 일본 영자신문 ‘재팬 애드버타이저’와 캐나다 ‘글로브’ 등에는 기고문을 보내 한국인에 대한 만행을 중단하고 독립과 자치를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세브란스의학교 제자들은 스승 스코필드의 뒤를 따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용설, 김문진, 김명수, 배동완 등은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세브란스병원 부속 간호부 양성소를 다니던 정종명, 박덕혜, 노순경, 이정숙, 이성완 등은 만세운동에 참가하거나 애국부인회 활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특히 세브란스의학교 1917년 졸업생 안사영은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 군의과장으로 독립운동을 도왔다.일제에 스코필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터라 영국계 캐나다인인 스코필드를 추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귀국을 종용하도록 세브란스에 직간접적인 압력을 넣었으며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스코필드는 결국 세브란스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1920년 4월 캐나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스코필드의 한국 사랑은 식지 않았다. 공개편지를 국내로 보내 한국을 자신의 고향이라고도 하고 자신은 캐나다인이라기보다 조선인이라고 말했다. 1954년 스코필드는 온타리오수의대에서 은퇴했고 1957년에는 부인 엘리스가 사망했다. 한국 친구들은 스코필드가 한국에 오기를 바랐다. 마침내 1958년 8월 스코필드는 국빈 자격으로 38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스코필드는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아원과 직업학교를 돕는 봉사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정부가 작은 아파트를 내줬지만 그는 우편료가 비싸진다며 편지의 여백을 가위로 자를 만큼 검소하게 살았다. 그가 만년에 한국에서 생활한 12년은 독재의 시대였다. 스코필드는 독재와 부정을 비판했고 당국은 그의 강의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조금은 광명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스코필드는 굴하지 않았고 강연과 언론 기고를 통해 끊임없이 바른 소리를 했다. 1968년 정부는 스코필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스코필드는 1969년 초부터 천식이 심해졌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병상에서도 한국의 장래를 걱정하다가 1970년 4월 12일 81세로 영면했다. 캐나다에는 스코필드의 손자와 손녀가 살고 있고 몇 차례 할아버지가 묻힌 한국을 방문했다. “캐나다인으로 우리 겨레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생애를 바치신 거룩한 스코필드 박사 여기에 고요히 잠드시다.”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스코필드는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인도 하지 못한 일을 했고 한국을 자신의 조국보다 더 사랑했다. 우리가 그를 잊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목숨 걸고 광복군에 무기 공급… 항일투쟁 중 사료 모아 독립사 집필

    목숨 걸고 광복군에 무기 공급… 항일투쟁 중 사료 모아 독립사 집필

    “위협과 모욕을 수없이 퍼붓다가 필경에는 온갖 악독한 형벌을 행한다. 나를 꿇어 앉힌 후에 직경 삼촌(三寸)쯤 되는 통나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양단에 두 놈이 올라서서 통나무를 디디면 형문(刑問) 다리가 부러질 듯 기절하게 되는데,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않고 당하였다.” 1929년 2월 만주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힌 김승학 선생이 고문을 받던 상황을 기록한 ‘망명객행적록’ 부분이다. 희산(希山) 김승학 선생은 만주 대한독립단에서 활약하고 독립신문 사장과 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881년 7월 12일 평북 의주군 비현면 마산동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이웃집 방아를 찧어 주고 삯으로 등겨를 받아와 먹었다고 한다. “등겨에 백태(白太·흰콩)를 약간 섞은 것은 상미(上味)라 하여 우리 형제를 먹이고 부모님은 순전한 등겨만을 자시었다. 아침은 겨밥, 저녁은 송피 범벅, 이런 생활을 매일 계속하였다.”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했던 선생은 가난한 살림에도 7년 동안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익혔다. 1899년 선생은 명망 있던 유학자 조병준(건국훈장 독립장)의 문하생이 됐다. 조병준은 “우리는 섬 오랑캐 왜노(倭奴)와 400년 동안 원수인데 을미년에 우리 국모 명성황후를 참시(慘弑)하였으니, 우리 선비로서는 거의하여 왜노를 토벌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스승의 우국충절에 크게 감동해 서간도 지역을 다섯 달 동안 답사하며 독립운동을 꿈꾸었다. 선생은 1904년 한문박사과 시험에 응시했는데 시험 부정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에 학무국장을 찾아가 항의했다가 타협책으로 한성사범학교 입학을 제의받아 1년 남짓 신학문을 공부했다.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선생은 서울 종로에서 배일(排日) 강연을 하다 체포돼 석 달 동안 구금당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극명학교 등에서 근무했는데 매일같이 일경이 찾아와 “김승학과 같은 불온분자에게 교육을 받으면 순량한 자제들까지 불량자가 된다”며 이간질을 했다. 더는 고국에서 있을 수 없었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선생은 만주로 건너가 봉천성 관립 강무당에 입학, 군사교육을 받고 의병단에 가담해 6년 동안 활동했다.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하자 만주에서 대한독립단이 결성됐는데 선생은 재무부장이 됐다. 선생의 첫 임무는 국내에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지단(支團)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선생은 평남북 일대를 다니며 친지, 동창들을 설득해 지단과 연통제 기관을 만들었다. 첩보를 접한 일경은 집요하게 추적했고 선생은 배추씨 장수와 좁쌀 장수로 가장해 그때마다 따돌리며 활동을 계속했다. 목숨을 건 활동 덕분에 1920년 1월까지 평안남북도 일대 52곳에 하부 조직을 만들고 독립운동 자금도 수만원을 모았다.선생은 이어 상하이임시정부에 대표로 가서 만주 독립운동 통합단체 명칭을 받고 무기를 구입해 오는 임무를 맡게 됐다. 마우저 총과 루저 권총 240정, 탄환을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구입하기는 했는데 운반이 문제였다. 철궤 4짝을 사서 포장한 뒤 누에고치 거래로 위장해 우여곡절 끝에 압록강변 안동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경이 정보를 듣고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독립군을 도와주던 이륭양행 주인 아일랜드인 조지 쇼의 도움으로 무기는 내렸지만 선생은 야음을 틈타 상륙하다 경찰견까지 동원한 일제의 추적을 받게 됐다. 옥수수밭에 사흘이나 숨고 맨발로 산골짜기를 헤매며 천신만고 끝에 귀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 무기는 국내 동포들이 주는 것이니 제군들은 무기를 생명과 같이 사랑하여 한 발의 탄환이라도 헛되게 쓰지 말고 1탄에 왜적 1명씩 잡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1920년 광복군사령부 무기수여식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무기로 광복군사령부는 서너 달 동안 일본군과 78회 교전하면서 주재소 등을 습격해 일경 95명을 사살하는 막대한 전과를 거두었다. 일제가 한인들을 학살한 경신참변 후 선생은 임정에 상황도 알릴 겸 두 번째로 상하이로 갔다. 뜻밖에도 선생은 독립신문 사장을 맡게 됐다. 당시 독립신문 책임자였던 소설가 이광수는 변절해 국내로 돌아갔고 프랑스 조계에 있던 신문사는 일제의 방해로 인쇄 도구가 압수되고 신문 발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선생은 프랑스 영사관과 교섭한 끝에 신문을 복간, 1927년까지 6년 동안 발행을 책임졌다. 그동안 일제의 추적을 피하고자 28번이나 인쇄소를 옮겼는데 한번 옮길 때마다 마차 2량과 인력거 20여대가 필요했고 한밤중에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선생은 1924년 무렵 임정 학무부 총장 대리 등의 직도 맡았다. 그런데 당시 서간도 독립운동 단체인 통의부와 참의부의 알력이 깊어져 유혈극이 벌어졌다. 독립신문의 글 때문에 불똥이 선생에게까지 튀자 사장직을 사임했다. 그것도 잠시 선생은 임정의 임명으로 비어 있던 참의부 제4대 참의장이 됐다. 갈등을 겪으면서도 참의·정의·신민 3부는 통합을 추진했는데 통일 단체 이름은 ‘혁신의회’였다. 1929년 2월 5일 선생은 혁신의회 회의를 마치고 나오다 환인현 와니전자에서 일경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상하이에서 무기를 구입한 일, 독립신문을 발간한 일 등을 캐물으며 일경은 혹독한 고문을 했다. 특히 선생이 틈틈이 수집해서 보관하던 독립운동사 사료를 내놓으라고 추궁했다. “왜경에게 피포(被捕) 후 손발이 요절되는 수십 차 악형이 주로 이 사료 수색 때문이었다”고 선생은 밝힌 바 있다. 선생은 굴복하지 않았고 5년의 옥살이도 버텨냈다.출옥 후 선생은 다시 만주로 망명, 임정 베이징 조직을 맡고 만주 천금채에 맡겨 둔 독립운동 자료를 찾았다. 독립운동 자료는 선생에게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베이징 조직이 탄로 나는 바람에 선생은 베이징을 탈출, 70여일 동안 무려 1000㎞를 뚫고 한구에 도착했고 만주로 돌아와 은둔하다 그리던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선생은 정치 참여는 자제하고 독립신문 복간과 독립운동사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복간은 중단됐고 ‘한국독립사’는 1964년 탈고했지만 출간 직전인 1964년 12월 17일 선생은 별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경기 고양에 있던 묘소는 2012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광복회 학술연구원장으로 있는 장증손자 김병기 박사를 만났다. 선생은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도 여러 번 감옥에 갇혔고 자손들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선생과 가족들은 피란지 부산에서 10여년을 살았는데 부두 노동자 취업도 못하게 이승만 정권의 탄압과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오리를 키우고 행상을 해서 생계를 잇는 형편이라 자손들이 포상 신청을 하자고 하자 선생은 “독립운동을 한 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느냐”고 화를 내며 만류했다고 한다.김 박사에 따르면 정부가 독립운동가 포상을 시작한 때가 1962년인데 처음에는 친일 역사학자들이 심사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반발해서 이듬해 독립운동사 편찬자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선생은 심사를 하면서 이병도 등 학자들에게 “자네들이 독립운동에 대해서 뭘 아는가”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40대에 독립운동사 연구를 시작해 만주 참의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선생의 유업을 이어받아 ‘한국독립사’를 7권으로 나눠 현대화하고 보완해 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부고] 이이표씨 부친상, 조영준씨 장모상, 고대영씨 부친상, 선환규씨 부인상

    ●이권식씨 별세, 이이표(G1강원민방 뉴미디어사업본부장) 씨 부친상, 강현자(춘천초등학교 교사) 씨 시부상,19일 오전, 춘천 호반장례식장 특5호실, 발인 21일 오전 6시 30분, 장지 대전 국립현충원. 010-5368-5492 ●박금순씨 별세, 최경준(KT 차장)·최병태(부귀농협 전무)씨 모친상, 조영준(대한상공회의소 홍보실장)씨 장모상, 19일 오전 2시,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VIP실, 발인 21일 오전 8시, 장지 임실호국원. 063-285-4447 ●고성준 씨 별세, 고대영(당진시청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학예연구사) 씨 부친상, 19일 오전 7시, 대전 충남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1일 오전 9시 30분. 042-280-8181 ●김영자씨 별세, 선환규(예금보험공사 감사)씨 부인상, 선창우(우리에프아이에스)·선주형씨 모친상, 황기석 (성남시청)씨 장모상, 19일,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21일 오전 8시. 02-758-0707
  •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도’ 양기탁 선생 서거 82주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도’ 양기탁 선생 서거 82주년

    19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로비에 있는 양기탁 선생 흉상 앞에 서거 82주년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양기탁 선생은 1904년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선생과 항일 언론 ‘대한매일신보’ 창간을 주도했다. 친일 현실을 고발하고, 교육과 민족산업 진흥 등을 통한 독립운동을 벌인 선생은 중국 장쑤성에서 1938년 4월 19일 서거했다. 1998년 60년 만에 국내로 봉환돼 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안장됐다. 대한매일신보를 모태로 하는 서울신문은 오는 7월 18일 창간 116년을 맞는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도’ 양기탁 선생 서거 82주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도’ 양기탁 선생 서거 82주년

    19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로비에 있는 양기탁 선생 흉상 앞에 서거 82주년을 기념하는 꽃이 놓여있다. 양기탁 선생은 1904년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선생과 항일언론 ‘대한매일신보’ 창간을 주도했다. 친일 현실을 고발하고, 교육과 민족산업 진흥 등을 통한 독립운동을 벌인 선생은, 중국 장쑤성에서 1938년 4월 19일 서거했다. 1998년 60년 만에 국내로 봉환돼 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안장됐다. 대한매일신보를 모태로 하는 서울신문은 오는 7월 18일 창간 116년을 맞는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극과 극’ 성적 5당, 선대위 해단…포스트 총선 체제 돌입

    ‘극과 극’ 성적 5당, 선대위 해단…포스트 총선 체제 돌입

    與 ‘열린우리당 트라우마’ 소환통합당 “겸허히 반성, 당 안정 최우선”국민의당 “200만 유권자에 감사”다시 노회찬 앞에 선 정의당0석 존폐위기 민생당4·15 총선에서 극과 극의 성적표를 받아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주요 정당이 17일 일제히 선거대책위원회를 해단하고 ‘포스트 총선’ 체제로 전환했다. 180석의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은 겸손과 협치를 내세웠고, 궤멸 수준의 참담한 성적을 낸 통합당은 참회와 반성으로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與, 열린우리당 트라우마 소환 지역구 압승으로 180석의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은 이날 서울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으로 아침을 열었다. 이해찬 대표,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등 지도부가 총출동했고, 참배 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대위 해단식을 열었다. 민주당은 지난 15일 압승 직후와 마찬가지로 승리의 기쁨을 누르는 데 집중했다. 이해찬 대표는 “국민이 주신 의석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며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항상 겸허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살피고 소기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고 했다. 이날 해단식에서는 열린우리당의 트라우마가 여러 번 등장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과반으로 압승했으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입법을 밀어붙이다 당 안팎의 풍파를 겪은 바 있다. 이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며 “그것을 반성해 우리에게 맡겨진 소임을 깊이 생각하며 국회와 정당을 잘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우희종 공동대표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촛불 시민은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고, 또 “보안법을 철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힌 데 대해서도 경고의 메시지가 나왔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연합정당에 참여한 소수정당에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면서도 “다만 등원 전까지는 연합정당의 소속이므로 민주당과 다른 당선자의 입장을 고려해 말씀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했다.●또 고개 숙인 통합당 “재창당 버금가는 쇄신” 무거운 분위기 속에 국회에서 진행된 통합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심재철(원내대표) 당대표 권한대행은 “국민께서 주신 회초리를 달게 받겠다”며 “표로 보여주신 국민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또 “선거를 앞두고 보수통합을 급히 이루면서 마무리하지 못한 체질 개선도 확실히 매듭짓겠다”며 “재창당에 버금가는 쇄신 작업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통합당은 선대위 해단식에 앞서 심 권한대행, 조경태 최고위원 등이 비공개 회의를 열어 무너진 지도부를 대신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방안 등을 논의했다. 애초 통합당은 이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는 방안을 논의하려 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지, 조기 전당대회를 치를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심 권한대행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최고위원을 비롯해서 여러 의원, 당선자들 얘기를 들어서 수렴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시 노회찬 앞에 선 정의당 전날 선대위 해단식을 끝낸 정의당은 이날 비례대표 당선자 5인이 경기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 잠든 노회찬 전 원내대표 묘소를 찾았다. 총선 전인 지난 13일 노 전 원내대표의 묘소를 찾았던 심상정 대표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 방문 일정에만 참석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으로 20대 국회 의석수를 현상 유지하는 데 그쳤다. 심 대표는 전날 해단식에서 “무엇보다 모든 것을 바쳐 고단한 정의당의 길을 함께 개척해 온 우리 자랑스러운 후보들, 더 많이 당선시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눈물을 쏟았다. ●국민의당 “지금부터 다시 시작” 국민의당도 이날 서울시당에서 중앙선대위 해단식을 진행했다. 안철수 대표는 “선거운동 과정 중에 지역구 후보가 없다보니, 현수막을 걸지도 못하고 대중연설도 할 수 없는 정말 극심한 제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며 “제가 참 많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유권자 분들의 6.8%, 거의 200만 명에 달하는 분들이 저희를 지지해주셨다”며 “양극단의 진영대결 때문에 할 수 없이 거대정당 중 하나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분들의 마음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안 대표는 “이제 시작”이라며 “다른 거대정당들 선거가 끝나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저희는 선거가 끝난 지금이 바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올드보이 손학규, 쓸쓸한 퇴장 0석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낸 민생당도 이날 선대위 해단식을 열었다. 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은 “민생당이 누가 봐도 존립의 위기에 처해있다”면서도 “제3지대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손 위원장은 “대한민국 미래 정치를 위해서 제3지대가 세를 펼쳐나가야 한다”며 “거대양당제를 끝내고, 다당제로 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적 안정을 취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정화 공동대표는 “조속히 당을 재정비하고 정상화해 다시 일어설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장정숙 원내대표는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포토인사이트] 현충원 찾은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포토인사이트] 현충원 찾은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장, 더불어시민당 우희종ㆍ최배근 공동대표 등과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와 21대 총선 당선자들이 17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연이어 찾아 현충탑에 참배 후 방명록을 남기고 돌아갔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부고] 방석준씨 장인상, 장주호씨 상배, 이동호씨 모친상, 조민수씨 부친상

    ●방인식씨 별세, 방석준(전 KBS 대전방송총국 보도국장)씨 장인상, 12일 새벽, 충북 보은요양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8시 30분. 043-542-4440 ●김문자씨 별세, 장주호(세계생활체육연맹 총재, 한국체육인회 회장)씨 상배, 장의영(삼성전자 전무) 장태영(오라클연구원) 장영미(오하이오도미니칸대 교수)씨 모친상, 12일 오후 10시 04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실, 발인 14일 오전 11시. 02-3410-3151 ●이영숙씨 별세, 이정호(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이동호(신한금융투자 기업금융2센터장)·이경아씨 모친상, 13일, 국립대전현충원, 발인 14일. 042-718-7114 ●조태영씨 별세, 조민수(경인방송 미래전략실장)·영홍(전 인천시의원)씨 부친상, 13일 인천 송도하나장례문화원 특1호실, 발인 15일 오전 8시. 032-832-4443
  • 당명 자꾸 헷갈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국회 보내달라”

    당명 자꾸 헷갈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국회 보내달라”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당명을 헷갈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9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상봉터미널 팔각정 앞에서 진행된 지원유세 연설 중 ‘미래통합당’을 ‘더불어민주당’으로 잘못 말했다. 그는 “이번에도 서울시민들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도록 더불어민주당 후보자를 많이 국회에 보내시면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실정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당명과 관련해 김종인 위원장의 실수는 이날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일 부산 지원유세 중 “부산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을 봤을 때 최종적으로는 통합당이, 민주통합당이 압승하리라고 믿는다”면서 미래통합당을 민주통합당이라고 잘못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2011년 12월 민주당과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뜻을 모은 정당으로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중 하나다. 7일에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미래통합당을 민주통합당이라고 잘못 말했다.김종인 위원장은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직후 지난 1일 서울국립현충원을 참배한 자리에서도 방명록에 ‘민’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미래통합당’이라고 적어 눈길을 끌었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김종인 위원장은 2016년에는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요청으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그 해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靑 “문 대통령 식목일 행사가 관건 선거? 금강송이 알 것”

    靑 “문 대통령 식목일 행사가 관건 선거? 금강송이 알 것”

    “관건 선거 할 수 없고, 할 필요도 못 느낀다”“호국영령·경북지사도 총선행보 아닌지 알 것”야권이 문재인 대통령의 현장 방문에 대해 ‘관건 선거’라고 비판하자 청와대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전날 문 대통령의 은행장 간담회를 ‘예정에 없던 간담회’로 표현하며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외부 접촉이 늘었다고 지적한 언론 보도를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 전념하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관권선거는 한 일도 없고,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일 구미산단 방문, 3일 4·3희생자 추념식 참석, 5일 강릉 옥계면 산불피해 복구현장 방문 등은 대통령의 정상 직무를 수행한 것”이라며 “청와대는 선거와 거리두기를 선언해 그 약속을 지켰으며 앞으로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식목일인 지난 5일 강릉을 방문한 것과 관련 “식목일은 정부 수립 전인 1946년에 지정돼 이날은 나무만 심고 다른 일을 하지 않게 공휴일로까지 지정됐다”며 “그날 나무를 심은 게 총선 행보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심은 옥계면 금강송은 (대통령의 일정이) 총선 행보인지 아닌지 알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1일 구미산단 방문 일정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은 의료용 필터를 마스크용 필터로 전환해 무상 공급하는 기업 등을 만났다”면서 “대통령에게 ‘국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 이철우 경북지사도 (그날 일정이) 총선 행보인지 아닌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과 지난달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 수호의 날 행사 참석과 관련해서도 “모두 법정기념일로, 여기에 가는 것이 총선용 행보인지는 대통령이 추모한 영령이 아실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전날 문 대통령이 5대 금융지주사 등을 만난 것을 두고도 “소상공인 긴급경영자금을 신속히 집행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왜 관권선거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를) 경제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한 것이 관권선거인지 아닌지는 국민이 아실 것”이라며 “외부 행보 일정 횟수를 세서 작년보다 늘었다고 보도한 언론이 있는데 작년과 지금 코로나 위기 상황이 같은지 되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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