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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시 수정안 발표] 정총리 “발표 이후 상황은 걱정안해”

    ‘미스터 세종시’로 통하는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10일은 긴 하루였다. 정 총리는 숙면도 하지 못하고 긴 겨울 밤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9월 총리로 내정됨과 동시에 세종시 수정 논란에 불을 붙였던 그가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을 듯싶다. ●“총리지명후 가장 마음 편안해”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하루 앞두고 오전에는 서울 잠실의 교회를 찾았다. 총리가 되기 전에도 찾던 교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특히 충청도민이 이해를 해줬으면 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정 총리는 대부분 시간을 총리공관에 머물면서 ‘세종시 수정안’ 발표 문구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이날 저녁 8시부터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당·정·청 8인 회동을 갖고 세종시 수정안을 최종 조율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 총리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할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에 맡긴다)’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이라면서 “수정안을 발표한 이후의 상황에서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지난 8일 충청 출신 지인들과 저녁을 하면서 “그동안 많은 의견을 들었고 고민도 많았는데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진정성이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면서 “지난해 9월3일 지명된 이후 오늘이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고 그간 힘들었던 속내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지명되자마자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야 한다.”며 세종시 문제를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수 차례 충남 연기군 등 충청지역을 방문하고 재계, 언론계, 과학기술계 등 관련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고향을 팔아먹는 ‘매향노’라는 말도 들었다. 야당은 물론 세종시 원안을 찬성하는 한나라당 친박계와도 껄끄러운 관계를 갖게 됐다. 정 총리는 달걀세례를 받았던 지난해 12월 초에는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총리직을 사퇴하겠다는 입장표명을 하는 것도 심각히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정안 직접 발표후 충청으로 정 총리는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마친 뒤 대전으로 내려가 방송사가 주관하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토론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어 대전 현충원에 들러 참배하고 지역언론사 등 여론주도층과 만찬을 한 뒤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다. 주말에는 충청지역으로 내려가 주민들을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 총리가 웃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아버지의 살신성인 뜻 이으려 10년 노력”

    “아버지의 살신성인 뜻 이으려 10년 노력”

    실종된 여중생을 찾다 순직한 소방관의 아들이 올해 소방간부후보생 시험에서 수석 합격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을 잇기 위해 10년 넘게 소방관 준비를 했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소방방재청이 최근 실시한 제16기 소방간부후보생 시험에서 수석 합격의 영광을 누린 사람은 이기웅(24·경북대 행정학과 3학년)씨. ●“너마저 잃고 싶지 않다” 어머니 반대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해(1998년)는 소방관이던 아버지가 순직한 해다. 당시 대구 동부소방서에 근무 중이던 이씨의 아버지 이국희(당시 44세)씨는 갑자기 내린 폭우로 금호강에서 실종된 여중생 3명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씨 역시 급류에 휩쓸렸고, 안타깝게도 동료 2명과 함께 순직했다. “아버지 영전에서 ‘꼭 아버지와 같은 멋진 소방관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아버지가 한평생 걸었던 살신성인의 길을 제가 잇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는 “너마저 잃고 싶지 않다.”며 간곡히 만류했다. 이씨는 일반 소방관이 아닌 간부가 되겠다고 약속해 간신히 어머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뜻을 세운 이씨는 먼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꾸는 데 힘을 쏟았다. 중학교 때부터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며 체력을 길렀다. 대학도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정학과를 갔고, 군대는 일부러 해병대를 자원했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간부후보생 시험 준비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여름 제대하고 나서부터. 학교를 휴학하고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했다. 서울에 있는 유명 학원에 다니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학비가 없어 거의 독학했다. 시험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잠자는 시간을 3~4시간으로 줄이고 모두 공부에만 매진했다. ‘지성이면 감천’. 고시에 버금갈 정도로 어렵다는 간부후보생 시험에 응시 첫해에 합격했다. 그것도 수석이었다. 반대가 심했던 어머니도 이때만큼은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구조 업무 맡고 싶어요” 이씨는 간부로 합격한 만큼 행정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크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버지와 같은 구조 업무다. 이씨는 합격 후 대전 현충원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가장 먼저 찾았다. 묘소 앞에서 “11년 전 아버지처럼 이제는 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겠어요.”라고 다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김정일위원장 수행빈도로 본 北 권력지도

    김정일위원장 수행빈도로 본 北 권력지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방 군부대와 경제시설 등을 찾는 ‘현지지도’에 소수의 최측근 인물을 대동함으로써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는 인물일수록 실세로 꼽힌다. 2009년 한 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은 누구일까. 24일 통일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현재 모두 157차례 현지지도를 했고, 여기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내민 주요 인물은 13명이다. 그중 최다 수행은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108차례나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85회),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77회), 현철해 북한군 총정치국 상무부 국장(56회), 이명수 국방위윈회 행정국장(48회) 등이다. 김기남 비서는 선전·선동과 김정일 우상화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대표적 구호인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도 그의 작품이며 김 국방위원장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주요 문헌이나 각종 축하문의 경우 대부분 김 비서의 손을 거친 것이다. 특히 그는 향후 북한 후계 구도에서 김 위원장의 3남 정은의 우상화 작업을 담당할 유력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김 비서는 신중하고 침착한 언행으로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우며 매사 꼼꼼하고 일처리에 실수가 없어 한 번도 숙청을 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김 비서에 대해 “김정일 앞에서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측 조문단의 단장으로 서울을 찾았다. 2005년 8월에는 북한 인사로는 처음 서울의 국립 현충원을 방문했다. 장성택 행정부장은 김 위원장의 매제다. 그는 한때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04년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좌천되면서 2005년에는 단 한 번도 현지지도에 동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6년부터 권력을 회복, 올해 김 위원장의 측근으로 회생했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했다. 그는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져 있다. 현철해 국장은 1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수행 횟수에서 상위권을 지켰다. 그는 10년간 모두 435회 현지지도에 동행했다. 과묵한 성격에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이 철저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동작구, 희망근로 최우수구 선정

    동작구, 희망근로 최우수구 선정

    서울 동작구가 희망근로사업 서울시 최우수구로 선정됐다. 동작구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희망근로 평가에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우수구로 선정돼 이달 말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평가는 올 하반기 전국 시·군·구 모두 246개 기관(일반 행정구 포함)을 대상으로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서면 및 현장 확인 등으로 이뤄졌다. 주요 평가항목은 ▲사업 추진성과 ▲상품권 유통 ▲참여자 관리 ▲지역여론 ▲지자체 추진역량 등이다. 또 현장 확인 심사에서는 사업의 실체 및 주민편익 정도 등 실질적 생활밀착형 사업추진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구는 올 5월부터 희망근로 전담부서인 ‘취업복지추진단’을 만들고 희망근로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한 사업발굴에 나섰다. 그 결과 모두 211개 사업에 1680명의 희망근로자들이 희망의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시작한 태생적 한계로 쓰레기 줍기 등 땜질식 일자리 중심으로 실시한 다른 자치구와 달리 생활밀착형 희망근로사업을 적극 추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도심속 녹색쉼터를 제공해 준 ‘현충원 외곽공원 등산로 정비’ ▲골목길 순찰차 사각지대의 범죄를 예방하는 ‘우리마을 안전지킴이’ ▲녹색 재활용사업인 ‘폐기 자전거 재활용’ ▲자매결연 농촌 일손 돕기 등이다. 구는 이들 생활밀착형 사업 발굴로 희망근로 참여자에게는 일하는 보람을, 지역주민에게는 생활편의를 제공하는 등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뒀다. 또 저소득층 집수리 및 달동네 재해예방 등 친 서민사업을 펼쳐 소규모의 주민숙원을 해결했다. 모두 20여억원 정도의 희망근로상품권을 사용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을 했다. 김경규 부구청장은 “올해 사업 추진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욱 많은 주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쏘아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서민이 행복한 ‘복지동작’이 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권쾌복 전 광복회장 별세

    제13대 광복회장을 지낸 애국지사 권쾌복 선생이 19일 오후 2시30분 별세했다. 88세.1921년 경북 칠곡에서 출생한 선생은 대구사범학교에 다니던 1941년 항일결사 단체인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했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경의 손에 넘어가 다혁당의 실체가 드러났다. 2년여간 미결수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선생은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광복과 함께 출옥했다. 1956년 5월 신한통운 상무를 지낸 뒤 1964년 5월 광복회 이사로 선임됐다. 1996년 8월 광복회 제13대 회장에 당선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유족으로는 조영기(84) 여사와 권오인 건국대 교수 등 2남2녀. 발인은 22일 오전 8시. 오전 10시30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광복회장으로 영결식이 진행된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02)483-3320.
  • DJ서거 100일 추모기도회

    DJ서거 100일 추모기도회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0일 추모기도회가 25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고인의 묘역에서 열렸다. 기도회에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차남 김홍업 전 의원 등을 비롯한 유가족과 전직 비서진, 국민의 정부 때 각료 및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민주당에서는 정세균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 문희상 국회 부의장, 박지원 정책위의장, 박주선·김진표·송영길 최고위원, 전병헌 전략기획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무소속 정동영·신건 의원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와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 상도동계 핵심인사들도 참석했다. 상도동계 일행은 행사 5분 전에 도착해 김홍업 전 의원, 권노갑·한화갑·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인 이 여사는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행사 뒤에는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동작구 생활형 희망근로로 주민 불편 싹~

    동작구 생활형 희망근로로 주민 불편 싹~

    서울 동작구가 희망근로사업을 생활밀착형 사업 위주로 추진해 지역 주민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2일 동작구에 따르면 도심속 쾌적한 녹색쉼터를 제공하는 ‘등산로정비’, 주민생활 구석구석 불편사항을 바로 해결하는 ‘시민불편살피미’, 경찰 순찰차의 순찰 사각지대 안전을 돌보는 ‘우리마을 안전지킴이’ 등 생활밀착형 224개 사업에 1880명의 희망근로자가 참여, 근로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김우중 구청장도 이날 현충원 외곽 근린공원 등산로 정비 현장을 찾아 참가자 목소리를 듣는 등 희망근로가 주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각종 지원에 나섰다. 이에 따라 한시적 기간 동안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시작된 희망근로사업의 태생적 한계로 쓰레기줍기 등 단순사업 중심으로 진행하는 다른 자치단체와 달리 동작구는 주민생활 편의 향상과 희망근로자의 근로의욕 성취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구는 지난 7월부터 희망근로사업 참여자와 지역 주민의 현장대화를 통해 애로사항 등을 듣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 구청 간부들이 직접 지역 내 희망근로 사업현장을 찾는 희망근로 사업 현장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구는 간부 직원들의 현장체험에서 지적된 사항과 건의사항 등을 희망근로 사업에 즉시 반영, 주민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사업추진에 최선의 행정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뉴타운·환경·교육인프라 균형개발 동작구 ‘新개념 미래도시’로 쑥쑥

    뉴타운·환경·교육인프라 균형개발 동작구 ‘新개념 미래도시’로 쑥쑥

    서울 동작구가 균형발전을 통해 21세기형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노량·흑석뉴타운을 축으로 지하철 9호선, 노량진 민자역사 추진 및 수산시장 현대화, 현충원 외곽지역 공원화,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이 서로 맞물려 도시 발전을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19일 동작구에 따르면 2012년 완공 목표로 노량진뉴타운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구를 관통하는 지하철 9호선이 이미 개통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에따라 구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노량진 민자역사와 현충원 공원화 등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우중 구청장은 “동작구를 서울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뉴타운·환경·교통·교육 인프라 등을 복합적으로 개발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면서 “2012~15년 각종 사업들이 마무리되면 삶의 질 향상과 경제 활성화 등으로 서울의 ‘뉴강남’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량·흑석뉴타운 ‘복지동작’ 토대 김 구청장이 11년간 동작발전을 위해 노력한 성과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도시발전은 ‘나눔과 복지’에 있다는 김 구청장의 철학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복지를 향한 도시발전의 중심이 바로 뉴타운사업. 2003년 지구지정된 노량진뉴타운은 2012년까지 노량진1·2동과 대방동 일대 76만 1160㎡를 첨단 주거·문화단지로 탈바꿈시킨다. 현재 6개 촉진구역과 2개의 존치구역으로 나눠 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달 말 서울시에 촉진계획 변경결정·고시를 신청하고, 다음달 승인이 나면 구역별로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1구역은 내년 6월 말 입주를 시작한다. 또 8개 구역으로 나눠 사업이 진행 중인 흑석뉴타운도 5구역은 공사가 진행 중이며, 4·6구역도 이주를 마치고 철거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흑석뉴타운은 2015년까지 흑석동 89만 8160㎡를 환경친화적이고 격조 높은 미래형 도시로 꾸밀 계획이다. ●현충원 공원화 등 지역발전 시너지 효과 도시는 주거환경개선뿐 아니라 교통, 문화 등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바로 동작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은 지하철 9호선 개통이다. 현재 노량진·노들·흑석·동작역이 지나며 유동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지역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 이에따라 구는 노량진을 쇼핑,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각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대형 쇼핑몰과 멀티플렉스 극장, 대형 서점, 대형 스포츠센터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각종 행정적 지원에 나섰다. 노량진 민자역사와 함께 수산시장 현대화사업도 주무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 등에서 내부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다. 또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녹지 확충을 위해 국립서울현충원 외곽지역을 근린공원으로 꾸민다. 구의 핵심 추진사업으로 지난 2003년 김 구청장이 국방부 등 관련 기관과 수십 차례 협의를 한 끝에 국방부의 조건부 동의를 얻어내면서 일부분이지만 보상작업과 근린공원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병규 문화공보과장은 “앞으로 구는 굵직한 사업들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각종 행정적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동의대 사태’ 순직경찰관 추모비 제막

    ‘동의대 사태’ 순직경찰관 추모비 제막

    ‘5·3 동의대 사태’ 순직 경찰관들을 위한 추모비가 13일 부산 연제구 연산5동 부산지방경찰청 앞 동백광장에서 사건 발생 20년 만에 제막됐다. 이날 오전 11시에 열린 제막식에는 강희락 경찰청장, 허남식 부산시장,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김중확 부산경찰청장, 당시 동료와 유가족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비 건립은 지난 5월3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동의대 사태 순직 경찰관 2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강희락 경찰청장의 지시로 이뤄졌다. 유가족 등이 추도식 때마다 대전현충원까지 가지 않고 부산에서 추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추모비는 문종승 세명대 교수가 제작했다. 건립비는 7000여만원. 추모비는 가로 8m, 너비 4.8m, 높이 1.1m의 검은색 화강암으로 돼 있다. 순직한 경찰관들을 상징하는 7개의 조형물이 반원 형태로 연결돼 참수리(경찰의 상징)가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을 하고 있다. 조형물 뒤에는 순직 경찰관을 추모하는 시가 새겨져 있다. ‘5·3 동의대 사태’는 1989년 5월3일 학내 입시부정 사건을 규탄하던 대학생들을 진압하던 전경 5명이 도서관에 감금되자 경찰이 이들을 구하려고 진압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경찰관과 전경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사건이다. 이에 따라 학생 70여명이 구속됐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국정감사] 국정감사서 세종시 건설문제 다시 도마 위에

    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서는 지난달 정운찬 총리의 인사 청문회를 계기로 국정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세종시 건설 문제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선진 “9부·2처·2청 이전” 세종로 정부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국감에서 야당인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은 ‘9부 2처 2청 이전’이라는 원안 유지를 촉구했다. 반면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원안 추진과 수정론이 다소 엇갈렸고, 몇몇 의원은 아예 세종시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러나 세종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인 정 총리는 관례를 이유로 이날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공방은 다소 맥빠진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국감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9시40분부터 여야 국감위원들과 20분간 환담한 뒤 국감이 진행 중이던 오후에는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예방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헌법기관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도 국정감사장에 나온다.”면서 “총리실 간부들이 답변할 수 없는 성격의 질의가 많으니, 총리는 질의가 끝난 뒤 일괄답변 형식으로라도 답변을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세종시를 둘러싼 의원들의 질의는 여야의 기존 입장에서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대통령과 총리, 여당 대표 간에 세종시법에 대한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갈등과 혼란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는 더 이상 혼란을 야기하지 말고 국민과의 약속대로 중앙행정기관 이전 변경고시를 하루빨리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의 박상돈 의원은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화상회의 등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행정의 비효율성을 논하는 것은 후안무치”라며 “정부 정책의 연속성 없이 국가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은 “총리 발언으로 촉발된 세종시 논란은 우리 사회를 지역적으로, 정당별로 편가르기를 하게 만들어 놨다.”며 “결자해지 차원에서 총리가 성공적인 세종시 조성에 적극 앞장서 국민, 특히 충청권 주민에게 총리의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현경병 의원은 “야당 측이 세종시는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대운하는 약속을 지키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총리실장 “효율성 재고 방안 고민” 총리 대신 답변에 나선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봤는데, 캐나다와 호주의 행정수도인 오타와와 캔버라의 경우를 본다면 세종시에 행정부 일부만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면서도 국정의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국감 일정 ●법사위 감사원(오전 10시 감사원)●정무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및 소관연구원(오전 10시 국회)●기재위 국세청, 서울지방국세청, 중부지방국세청(오전 10시 국세청)●외통위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사무처(오전 10시 국회)●국방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립서울현충원, 국방홍보원, 국군기무사령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등(오전 10시 국방부)●행안위 행정안전부(오전 10시 정부종합청사)●교과위 교육과학기술부(오전 10시, 세종로청사)●문방위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중앙박물관, 예술의전당 등(오전 9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오후 2시 국회)●농식품위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오전 10시 국회)●지경위 지식경제부(오전 10시 지식경제부)●복지위 보건복지가족부(오전 10시 보건복지가족부)●환노위 환경부(오전 10시 환경부)●국토해양위 국토해양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오전 10시 국토해양부)
  • [오늘의 국감]

    ●법사위 헌법재판소(오전 10시 헌법재판소) ●정무위 국무총리실(오전 10시 정부종합청사) ●외통위 외교통상부, 한국국제협력단, 한국국제교류재단, 재외동포재단(오전 10시 국회) ●국방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립서울현충원, 국방홍보원, 국군기무사령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등(오전 10시 국방부) ●행안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오전 10시 국회) ●문방위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한국정책방송원 등(오전 10시 문화체육관광부) ●농식품위 농업협동조합중앙회(오전 10시 국회) ●복지위 보건복지가족부(오전 10시 보건복지가족부)
  • 이재오 위원장 자전거타고 민생속으로

    신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업무 첫 날부터 이른 시간에 자전거로 출근하는가 하면 시장 등을 찾아 민생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이 위원장은 1일 은평구 구산동 자택에서 서대문구 미근동 권익위 청사까지 8㎞ 거리를 자전거로 출근했다. 푸른색 상의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6시24분 자택을 출발해 은평구청·무악재역·서대문역을 거쳐 30분 만에 사무실에 도착, 집무를 시작했다. 자전거 마니아로 유명한 이 위원장은 앞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전거 출·퇴근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 위원장이 일찍 출근함에 따라 주요 간부와 직원들도 평소보다 일찍 나올 수밖에 없어졌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이날부터 간부회의를 종전보다 한 시간 앞당겨 오전 7시30분에 갖기로 했다. 한 간부 직원은 “위원장이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오늘은 6시도 되기 전에 사무실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직원들의 출근시간도 덩달아 빨라졌다고 귀띔했다. 이 위원장이 솔선수범함으로써 자연히 조직 기강이 잡히고 있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간부회의를 마친 뒤 현충원을 참배하고, 이어 서울 구로구에 있는 자율시장과 국가산업단지공단 내 중소기업을 방문해 서민·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추석 연휴에도 민생 현장을 살펴보고 그 결과를 향후 정책에 반영할 방침이다. 이 같은 이 위원장의 행보는 취임사에서 밝혔듯 격식보다는 일을 중시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으로 풀이된다. 또 중도실용이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앞장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권익위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은 한나라당 사무총장 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03년, 비상대책회의를 한 시간 앞당긴 것은 물론 출·퇴근 시간을 아끼느라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숙식하며 일에 대한 열정을 보인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역귀성’ 부모님 서울오기 전 이것만은

    ‘역귀성’ 부모님 서울오기 전 이것만은

     3일간이란 짧은 추석연휴에 자식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서울로 오는 ‘역귀성’을 택한 노부모님들.이번 추석엔 서울의 주요 관문인 서울역 등지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많이 달라져 꼼꼼히 익혀놓지 않으면 부모님을 고생시켜드리기 십상이다.자식·손자손녀 주려고 바리바리 싼 꾸러미를 두손에 든 노부모님이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면 바뀐 버스정류장 정도는 숙지해 놓아야 할 것같다.  서울역과 반포 서울고속터미널 인근 교통시스템이 지난 설때와 달리 많이 달라졌다.서울고속터미널 앞에 버스중앙차로제가 시행돼 기존의 버스정류소가 옮겨졌고, 서울역 앞에는 버스환승센터가 생겨 이곳 또한 버스정류소의 위치가 싹 바뀌었다.또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노선도 늘어 굳이 택시를 타지 않아도 편하게 도착할 수 있다.  ●서울역 앞에서 버스타려면 노선도 꼭 참조  서울역에 내려 버스를 타러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서울역 주변 10여곳에 산재됐던 버스정류소를 한 곳에 모은 시내버스환승센터가 지난 7월 25일 개통됐다.기존 버스정류소에 익숙했다면 많이 헷갈릴 수 있다.  원칙만 알면 간단하다.서울역에서 나오면 바로 정면에 보이는 1~7번 정류소 중 1~2번은 택시를 이용하는 곳이다.용산·김포(인천)공향 방향으로 가려면 3번 정류소에서,용산·광명·시흥·노량진 방향으로 가려면 4번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강남·분당·퇴계로 방향은 5번,고양·은평·구리 방면은 6번 정류소를 이용하면 된다.한강로→한국은행·시청 방면 버스는 7번 정류소에서 탈 수 있다.    서울역 계단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있는 전체 노선도를 참조하면 편리하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 교통정보센터 홈페이지(http://topis.seoul.go.kr) 혹은 120 다산콜센터(전화 120번)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고속터미널 앞에서 버스 타려면 차도 중앙에서  반포 서울고속터미널 앞도 많이 바뀌었다.지난 6월 13일부터 구 반포삼거리∼논현역 사이 3.5㎞ 구간에 중앙차로제도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이용할수 있는 버스는 143,148,360~362,401,4212,4318,4425,4425(심야),462,540,540(심야),6000,640,6411,642,642(심야),643,8541,9408번이다.가장 가까운 중앙차로 정류장은 신세계백화점이 입점한 센터럴시티(호남선) 빌딩 바로 앞에 있다.이외 노선은 주변에 있는 가변차로 정류장,마을버스·공항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터미널에 내려 9호선 타고 ‘슝~’  지하철 9호선의 개통도 고속터미널에서 내린 어르신들이 알면 좋은 정보다.9호선이 지난 7월 24일 개통되면서 서울 동남 지역과 서북부 지역을 바로 잇게 됐다.신논현역에서 개화역까지 52분이면 간다.고속터미널에서 동작(현충원)까지 5분40초 거리가 급행을 타면 3분15초로 줄어든다.고속터미널에서 김포공항까지 급행을 이용하면 43분에서 27분30초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단 다른 노선으로 환승이 바로 되지 않는 곳이 있으니 지하철 9호선 홈페이지(http://www.metro9.co.kr/index.do)에서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지하철·시내버스 연장 및 증편  한편 3~4일에는 서울의 지하철과 시내버스 막차 운행시간이 연장된다.또 추석연휴기간 고속·시외버스도 증편된다.  3~4일 지하철 1~9호선은 종착역을 기준으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2~30분마다 1대꼴로 하루 총 142차례 늘어난다.또 같은 기간에 시내버스는 서울역·청량리역·영등포역·용산역 등 기차역과 반포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동서울·남부·상봉 등 주요 버스터미널에서 새벽 2시까지 탈 수 있다.연휴기간 고속·시외버스는 하루 1828회를 늘려 모두 7166회 운행되고 30일 오전 4시부터 10월5일 자정까지 개인택시 부제가 해제된다.  1일 오전 6시부터 4일 자정까지 남부순환로 남부버스터미널~서초IC 구간(0.5㎞) 양방향의 도로변 1개 차로는 임시 버스전용차로로 운영된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서울플러스] 日 다하라시 중학생들 방문

    동작구(구청장 김우중)2006년 11월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다하라시 중학생 방문단(단장 이즈미 중학교 이시다 아키미치 교장) 17명이 지난 26일부터 4박5일 간 동작구를 방문했다. 다하라시 7개교에서 선발된 중학생 12명과 교사 4명, 교육위원 1명이다. 이들은 동작구청, 구의회, 숭의여고, 자원봉사센터, 중앙대, 현충원 등을 둘러보고 각종 구정을 비교·체험하고 있다. 총무과 820- 1223.
  • [여의도 블로그] 정몽준 화법은 ‘원론 고수형’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의 화법이 의원들 사이에 화제다. 의원들은 정 대표가 상대를 치켜세우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만 강조하는 ‘원론 고수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지난 8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친이·친박의 화합 방안을 묻는 질문에 “그것을 지금 좋으냐 나쁘냐 얘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청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묻는 질문에도 “정치 교과서에 써 있는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의견대로 하면 된다.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하겠다.”며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삼갔다. 최고위원 시절엔 지도부 회의 때 미리 준비한, ‘정제된’ 메모를 그대로 읽는 일이 많았다. 사석에서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 아예 답변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신임 대변인 등을 발표하기 전날인 7일 일부 의원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당직 인선 내용을 수차례 질문 받았지만, 일언반구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즉석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도 연출됐다. 정 대표는 8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가 취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 백성들이….”라고 말문을 열었다가 곧바로 “우리 국민들이….”라고 정정했다.정 대표의 화법은 이전 대표들의 화법과도 비교된다. 박희태 전 대표는 대변인 출신답게 알맹이 있는 명문을 쏟아내 외화내실(外華內實)형으로 꼽혔다. “청와대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만들겠다.”, “화합이 쇄신이고 쇄신이 화합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전은요?”, “정치의 수치”, “오만의 극치” 등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단문으로 상황을 단번에 정리하는 힘이 있다. 강재섭 전 대표는 폭소를 자아내는 재치형으로 회자된다. 18대 총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큰머슴에, 의원들을 작은머슴에 비유해 지원 유세에서 분위기를 띄웠다. 한 당직자는 9일 “박근혜 전 대표도 처음엔 주로 준비된 말만 읽어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얻었다.”면서 “정 대표도 시간이 지나면 화법이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정대표 취임 첫날 민생행보

    정대표 취임 첫날 민생행보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가 8일 새벽 서울 동작동 노량진수산시장을 찾는 것으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정 대표는 이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방명록에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뜻의 한자성어 ‘견위수명(見危授命)’을 남겼다. 취임 인사차 김형오 국회의장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예방했다. 전날에는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의원 15명과 만찬을 함께 하며 폭탄주를 돌리는 등 약점으로 꼽히던 스킨십 강화에도 공을 들였다. 9일에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 회동을 겸한 당·청 회동을 갖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당 대표가 새로 바뀐 만큼 바로 청와대 회동 일정을 잡았다.”면서 “상견례와 함께 국정 현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개방적인 자세와 분위기로 나가는 게 필요하다.”면서 “정당 안에 칸막이가 있다면 개방도 안 되고 밖의 산소도 공급이 안 된다.”며 당의 변화를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재벌 출신의 약점에 대해 정 대표는 6·25 전쟁 당시 피란처인 부산에서 찍은 흑백 가족 사진 등 2장을 꺼내 보이며 “당시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면서 “평범한 가정,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을 포함해 당내 차기 대선구도가 다양화된 것에 대해 “한나라당의 중요한 인물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4, 5명이 되는 게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그를 둘러싼 당내 시선은 아직 미지근하다. 리더십이 검증되지 않은 데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등 과거 정치 행보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의 한 주요인사가 최근 정 대표에 대해 이에 대한 공개 사과까지 요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날 취임 기자회견장에 현역 의원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점도 당내 기반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친이계 조해진 대변인에 한편 정 대표는 후임 인사를 청와대 및 주류와 소통이 가능한 친이계 인물로 선택했다. 비서실장에는 당료 출신의 정양석 의원을 낙점했다. 대변인으로 안국포럼 출신의 친이직계 조해진 의원을 임명했다. 조윤선 현 대변인은 유임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정몽준 신임대표, 동분서주 취임 첫날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가 8일 새벽 서울 동작동 노량진수산시장을 찾는 것으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정 대표는 이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방명록에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뜻의 한자성어 ‘견위수명(見危授命)’을 남겼다. 취임 인사차 김형오 국회의장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예방했다. 전날에는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의원 15명과 만찬을 함께 하며 폭탄주를 돌리는 등 약점으로 꼽히던 스킨십 강화에도 공을 들였다. 9일에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 회동을 겸한 당·청 회동을 갖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당 대표가 새로 바뀐 만큼 바로 청와대 회동 일정을 잡았다.”면서 “상견례와 함께 국정 현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개방적인 자세와 분위기로 나가는 게 필요하다.”면서 “정당 안에 칸막이가 있다면 개방도 안 되고 밖의 산소도 공급이 안 된다.”며 당의 변화를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재벌 출신의 약점에 대해 정 대표는 6·25 전쟁 당시 피란처인 부산에서 찍은 흑백 가족 사진 등 2장을 꺼내 보이며 “당시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면서 “평범한 가정,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을 포함해 당내 차기 대선구도가 다양화된 것에 대해 “한나라당의 중요한 인물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4, 5명이 되는 게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그를 둘러싼 당내 시선은 아직 미지근하다. 리더십이 검증되지 않은 데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등 과거 정치 행보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의 한 주요인사가 최근 정 대표에 대해 이에 대한 공개 사과까지 요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날 취임 기자회견장에 현역 의원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점도 당내 기반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정 대표는 후임 인사를 청와대 및 주류와 소통이 가능한 친이계 인물로 선택했다. 비서실장에는 당료 출신의 정양석 의원을 낙점했다. 대변인으로 안국포럼 출신의 친이직계 조해진 의원을 임명했다. 조윤선 현 대변인은 유임됐다. 글 / 서울신문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동호 오솔길 산책] 큰 슬픔과 부드러운 흙

    [최동호 오솔길 산책] 큰 슬픔과 부드러운 흙

    여름이 막 가려고 하는 즈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역사의 큰 장이 넘어갔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 왔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어서인지 국민적 충격과 놀라움은 적었던 것 같다. 이보다 앞서 봄이 막 시작될 무렵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국민적 애도 속에 맞았다. 금년은 유난히 국가적 지도자들의 죽음이 발걸음을 깊게 드리운 해가 되는 것 같다. 국립현충원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 사이에 마지막 안식의 자리가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하관식을 보면서 이 자리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의 죽음과 생을 떠올리면 그것은 그대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집약시켜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민족분단의 첫 대통령은 자주독립과 북진통일을 내세웠고, 절대적 빈곤을 극복하고자 했던 대통령은 산업화시대를 선도하면서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민주화를 시대적 명제로 내세운 대통령은 동서의 갈등을 넘어 남북의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정하고 이를 실천하려 했다.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의 만남은 이십세기 한국현대사를 마감하고 갈등에서 화해의 시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결정적 전환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햇볕정책’으로 지칭되는 일련의 화해적 조치들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기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서사시적 파란곡절을 담고 있다. 한 시인은 그의 생을 ‘창파(滄波)의 삶이요, 태산의 죽음’이라고 요약한 바 있지만 필설로 말하기 힘들 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수많은 역경과 위기 가운데서도 이를 극복하고 결연히 나아간 영웅적인 서사시의 주인공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분 자신의 위기 극복의 용기도 물론이지만 그러한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국민들이 그분의 고난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통 받는 국민들로부터 우러나오는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 그들의 소망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킨 지도자로 우뚝 선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사시적 생애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영웅을 위해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대지의 흙처럼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과 마음이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와 함께 살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30여년 단골 세탁소 주인이나 단골 이발사, 그리고 독재정권 시절 그분을 그림자처럼 감시했던 형사들은 물론 그와 함께 살았던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그분의 삶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거인은 죽음의 발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진정한 거인이 죽지 않는 이유는 그분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바람결처럼, 숨소리처럼 살아 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봄이 시작되려는 어느 날 ‘용서하세요.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이 말이 첨예하게 대립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우리가 그 말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태양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여름날 ‘용서와 화해’를 화두로 남겼다. 반목과 갈등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현실에서 이 말은 또 다른 시대로의 전환을 시사해 준다. 이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국민들의 가슴에 메아리치고 더 큰 힘을 얻어서 현실을 주도하는 힘을 발휘한다면 이 두 거인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분들의 영혼은 우리와 함께 살아서 시대를 넘어서는 역사적 생명을 얻을 것이다. 반목하고 갈등하는 풍요는 풍요가 아니다. 큰 슬픔은 격한 충격처럼 빠르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여린 생명들 속에서 뿌리내리고 부드러운 흙이 되어 살아 있는 것이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대전현충원 체험 프로그램 확대 ‘애국 테마파크’로 변신

    창설 30주년을 맞은 국립대전현충원이 올해부터 2012년까지 ‘애국 테마파크’로 조성된다. 국가보훈처는 27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편의 시설물 등을 확충해 대전현충원을 2012년까지 매년 500만명이 방문하는 애국 테마파크로 재탄생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기존의 노후된 호국관을 ‘나라사랑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해 방문객들이 안보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정문 진입로에 8.5m 높이의 국기게양대 50개를 설치하고 대형 태극기를 연중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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