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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과비평 40돌 “현장에 더 가까이”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은 계간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이 4월부터 창비주간논평을 온라인으로 발행한다. 또 창비가 생산해내는 한국의 문학·인문·사회적 담론을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산하고 상호 토론과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4월에 일본어판 ‘창비’ 웹진을 개설한다. 이어 중국어판도 곧 만들 계획이다. 창비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간 40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면 혁신과 올해 사업계획 등을 밝혔다. 온라인 주간논평은 창비가 계간지로서 갖고 있는 시의적 한계를 넘어 독자들과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현장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개설하는 것.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평과 문학·문화 칼럼 등을 수록해 매주 독자들을 찾아간다. 창비의 일본어판과 중국어판 웹진은 동아시아 진보지식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창비 편집주간인 백영서(53)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잡지 초기의 운동성을 회복해 현장과 보다 밀착된 논쟁적인 `창비표´ 글쓰기를 활성화해 나갈 것”이라며 “운동성의 요체는 편집진의 자기 쇄신”이라고 말했다. 창비는 이를 위해 올해 초 백영서 교수를 편집주간으로 영입하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문학평론가 진정석·이장욱씨 등으로 편집 진용을 새롭게 짰다. 창비는 해방 후 창간된 국내 최초의 문예계간지로 1966년 1월15일 첫 호를 냈다. 창비의 발행부수 1만 5000부는 계간지로는 유례가 없는 수치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서울이야기] (33) 축제 신명나게 즐기기

    [서울이야기] (33) 축제 신명나게 즐기기

    ‘참여경험 14%,1년 평균 참여횟수 0.23회, 만족도 70점.’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서울시민의 문화욕구 및 향유실태 보고서(2002)’에서 밝힌 2001년 서울시민들의 축제 향유실태다. 시민 10명 가운데 1명이 5년에 한번 꼴로 축제에 참여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시간이 없거나(40%), 정보가 없거나(36%), 흥미로운 축제가 없기(20%)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해인 2002년 시청앞 광장을 비롯한 거리 곳곳에서 붉은 악마들의 축제가 펼쳐졌다. 바로 월드컵이다.230만명의 서울시민들이 거리에 몰려들었다. 시간이 없는 시민들은 밤 늦게라도, 정보가 없는 시민들은 입소문으로, 붉은 옷이 없는 사람들은 태극기를 온 몸에 휘감고 축제 현장으로 달려갔다. 신명나는 축제의 본질을 제대로 체험해보지 못한 시민들에게 월드컵은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축제로 가득찬 서울 월드컵에는 16강,8강,4강 진출이라는 연이은 간절한 소망(제의성)이 있었고, 축구 경기 자체의 짜릿한 즐거움 외에도 재미를 주는 응원전과 공연 등 즐길거리들(유희성)이 있었으며, 거리와 광장에서 기획되지 않은 수많은 행위들(현장성)이 있었으며, 함께 응원하고 즐기고 만들어가는 화합과 단결(대동성)이 있었다. 이러한 축제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이후 서울에서 개최되는 축제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의도벚꽃축제에는 500만명, 하이서울페스티벌에는 160만명, 세계불꽃축제에는 130만명, 동대문패션페스티벌에는 100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축제의 수도 늘어났다. 서울시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축제만 해도 2005년 현재 145개에 이르며 한해 지원예산도 210억원에 이른다. 그 가운데 전문가들이 서울대표축제, 이른바 서울형 축제로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선정한 축제도 35개에 이른다. 축제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종묘대제와 설렁탕의 역사를 재현하는 선농제향과 같은 역사전통형 축제가 있는가 하면, 서울의 연극계와 무용계가 하나가 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비주류 문화예술인들이 총집결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미디어와 같은 순수예술형 축제가 있다. 이 외에 1월 설날 민속축제에서 12월31일 송년축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서울은 1년 내내 축제가 열리는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모 페스티부스(homo festivus)를 꿈꾸는 시민들 왜 이렇게 많은 축제들이 열리는 것일까. 시민과 지역사회, 정부, 문화예술계 모두에게 축제는 관심꺼리인 탓이다. 시민들에게 축제는 문화적 욕망을 충족하고 삶을 성찰하며 일상을 새롭게 일구는 기회가 된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호이징하(Huizinga)는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것이 축제라고 정의하면서 놀이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리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 칭한 바 있다. 이를 발전시킨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는 일상에서 억압되고 간과된 감정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기회를 축제로 정의하면서 축제하는 인간의 본능을 가리켜 호모 페스티부스(homo festivus)라 부른다. 일상의 이성적 사고와 축제의 감성적 욕망 사이를 넘나들며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이러한 호모 페스티부스들에 의해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 만큼 축제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휴식과 카타르시스와 욕망 분출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축제를 열망한다. 도시정부와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축제는 장소정체성 형성과 주민통합의 계기를 부여 함과 아울러 지역 이미지의 재창출을 위한 도시 및 장소마케팅의 정책적 수단이 된다.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고 주민화합을 도모하는 한성백제문화제와 강동선사문화축제, 송파다리밟기 같은 역사전통형 축제나 하이서울페스티벌과 청룡문화제 같은 시민화합형 축제, 지역이미지 재창출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이태원지구촌축제나 산업경제형 축제들이 여기에 속한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축제는 시민들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문화교류와 소통,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의 인류학적 풍속을 교류하는 세계통과의례축제, 아시아의 비주류문화예술인들에게 소통의 장을 제공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여성들의 삶을 공유하는 서울여성영화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축제 이렇게 즐겨라 이렇게 다양한 축제들이 서울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도 시민들에게 축제는 다가가기 어렵고 제대로 즐기기도 녹록치 않다. 이름만 축제일 뿐 축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벤트성 행사가 판치는 것도 문제지만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몰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축제의 여섯가지 키워드, 즉 의례성, 집단성, 현장성, 유희성, 일탈성, 창조성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게 참여하고 실천하면 된다. 우선 의례성은 축제의 소망과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16강 진출을 열렬히 기원했던 월드컵 축제, 등불을 밝히며 한해 소망과 염원을 비는 송파다리밟기처럼 자신이 일상 속에서 애절하게 기원하는 것이 있다면 축제에 참여해 온몸으로 그 희망을 빌어보자. 집단성은 축제가 비슷한 삶과 희망을 지닌 개개인이 모여 능동적, 자발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대동제라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연인이나 친구와 혹은 가족이나 친지와 혹은 동네이웃이나 직장 동료와 축제에 참여해 보자. 현장성의 경우 축제는 열린 공간에서 개최되며 그 장소는 고유성과 역사성을 지닌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종묘대제가 종묘에서 열리고, 홍대앞에서 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모든 축제에는 축제의 꽃이라 일컫는 거리퍼레이드가 있다. 현대판 지신밟기라 할 수 있는 퍼레이드에 참여해 축제공간의 의미도 생각해보고, 축제현장의 역사와 정서를 탐색해 보자. 유희성은 ‘축제는 즐거움과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축제는 한판 놀이판이다. 제기차기, 널뛰기 같은 전통민속놀이를 실컷 즐길 수 있는 남산골단오민속축제나 타악기에 온몸의 리듬을 실어 즐기는 드럼페스티벌, 화려한 조명과 불꽃의 화려함을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루미나리에와 불꽃축제, 친구에게 엽서를 쓰며 자연이 선사하는 감동을 즐기는 하늘공원억새축제에서 때론 동적으로 때론 정적으로, 때론 시각적으로 때론 청각·촉각적으로 한판 신나게 놀아보는 것은 어떨까. 일탈성은 축제는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체험의 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축제에는 항상 기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행위와 사건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잠든 심야에 홍대 클럽데이에서 테크노와 국악의 협연에 맞춰 신명나게 음악과 춤에 젖어보면 어떨까. 하이서울페스티벌의 퍼레이드에서 열린 도심을 활보하며 평소 차량으로 가득했던 공간을 맘껏 장악해 보면 어떨까. 마지막으로 창조성의 경우 축제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꿈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이라는 것이다. 호모 판타지아라는 말이 있듯이, 최첨단 미디어와 예술이 만나는 실험이 전개되는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나 만화적 상상력으로 일상을 성찰하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처럼, 현대 도시의 삶 속에서 잉태되는 다양한 꿈과 상상력을 축제를 통해 체험하고 발산해 보자. ●축제의 문화관광상품화를 위해 축제는 우리끼리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축제는 관광상품이자 자원이다. 아쉽게도 아직 서울은 대표적인 관광축제로 손꼽힐만한 축제가 별로 없다. 해외의 유명 축제들처럼 축제를 관광자원화하려는 노력들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다. 해외사례들을 통해서 축제의 관광상품화 전략을 몇가지 세워볼 수 있다. 우선 축제의 역사성을 복원해야 한다.2002년 월드컵에 버금가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즐겼던 조선시대 다리밟기나 석전(돌싸움)에서 보듯, 지금은 사라져버린 우리의 고유성, 우리만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출해야 한다. 또한 주류페스티벌에 참여하지 못한 젊은 문화예술가들이 변두리 구석에서 자기들만의 축제를 개최한 데서 비롯한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에서 보듯, 기획되지 않은 즉흥적이고 때론 일탈적인 축제의 성격을 충분히 살릴 필요가 있다. 아울러 축제의 콘텐츠는 쉽고 단순명료해야 한다. 테크노음악과 그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자체가 관광상품인 베를린의 러브퍼레이드처럼 백화점식 축제가 아닌 핵심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공간과 지역을 연계한 패키지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6개 도시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호주의 빅데이아웃 축제나 도시를 음악장르에 따라 테마공간화한 파리의 음악축제처럼 공간패키지 기획을 통해 관광객을 유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환경과 예술, 민속을 활용해 계절별로 축제화함으로써 이벤트의 천국이라 불리고 있는 일본의 삿포로 축제에서 보듯 무엇보다 지역의 개성, 즉 지역성을 충분히 활용해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축제도시 서울을 위해 문화도시를 꿈꾸는 서울은 그 꿈이 축제가 되고 축제를 통해 그 꿈이 실현되는 진정한 축제도시를 갈망한다. 서울시는 축제유형별로 특화된 서울형 축제를 개발해 서울의 대표축제로 만드는 축제정책을 구상 중이다. 하이서울페스티벌과 서울불꽃축제 같은 대형축제의 정례화를 통한 축제의 서울성 확립,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고유축제 개최, 디지털 인프라와 기술을 활용한 축제의 산업화 도모, 순수기초예술을 육성하는 순수예술축제 개최, 자치구 축제의 특성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축제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대표축제 개발과 같은 프로그램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축제 전담조직 마련 및 민·관파트너십의 구축, 전문인력 양성과 축제교육 프로그램 지원 등 축제 주체적 요소와 거리퍼레이드 지원, 공공문화시설의 축제공간화, 인프라 지원 등 축제 공간적 요소도 아울러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축제 프로그램과 주체, 공간의 삼각네트워크를 통해 서울성과 축제성을 고루 겸비한 축제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축제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서울축제의 임무와 비전, 목표와 전략, 실행사업과 평가에 이르는 일련의 서울 축제지원정책 체계를 마련해, 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서울축제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를 통해 축제와 일상이 결합되는 서울, 서울다운 축제와 축제다운 서울을 기대해 본다.
  •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7) 당나라 문인 육우의 ‘茶經’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7) 당나라 문인 육우의 ‘茶經’

    중국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차의 종주국이다. 그런 중국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항주의 매가촌에서 시작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차’개발이 그것이다. 연 300만에 이르는 한국 관광객들이 들르는 필수코스가 바로 매가촌이다. 그들이 만든 ‘새로운 용정차’는 이른바 한국인만을 겨냥한 ‘신상품’이다. 신상품의 핵심은 그 옛날 가마솥에서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구수한 숭늉맛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맛을 낸 매가촌의 ‘용정차’가 연간 수십억원어치나 한국인들에게 판매된다는 것이다. 한사람의 차인으로서 참으로 무섭고도 어이없는 일이 차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차를 차답게 한 것은 차의 고전인 (다경)을 쓴 육우(陸羽·733-804)이다. 육우는 차인들에게 ‘다성’이요 ‘다신’으로 불린다. 육우의 자는 홍점(鴻漸) 또는 계자(季疵), 호는 경릉자(竟陵子) 상저옹(桑苧翁) 다산어사(茶山御使)다. 당나라 현종 개원 21년에 경릉군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으나 부모 출생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육우의 연표에 따르면 중국 복주 경릉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서쪽 서호의 강가에 버려졌다. 인근의 용개사 주지인 지적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호숫가에서 기러기 떼 울어대는 소리에 가까이 가보니 새들이 깃털로 영아를 덮고 있어서 거두어 길렀다고 한다. 매우 어린시절부터 육우는 지적 스님을 시봉하며 불경과 차를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대나무 꼬챙이로 소의 등에다 글을 혼자 연습할 정도로 유교에 심취했던 육우는 불교를 뛰쳐나와 광대가 되어 단역배우 역할을 했다. 나무인형, 아전, 구슬감추기 등을 하는 단역배우였던 그는 얼굴이 못생기고 말마저 심하게 더듬었지만 성실하고 재주가 많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육우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은 20세 때부터다. 경릉으로 좌천되어온 예부랑중 최국보와 교분을 쌓으면서부터다. 최국보와 의형제를 맺은 육우는 그와함께 시·서·화뿐만 아니라 차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펼치게 된다.22세때 육우는 최국보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짐을 아쉬워한 최국보는 육우를 위해 흰나귀 한 마리와 괴목으로 만든 서함을 선물한다. 육우는 오늘날 하남성의 신양일대와 파산협천등 주요 차산지를 여행하며 당시의 최고 명차였던 ‘파동진향명’‘협주차’등을 마셔본다.23세 여름 다시 경릉으로 돌아온 육우는 청탄역 석호옆 동강촌에 은거하며 그동안 수집한 차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한다.(다경)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차 여행이었던 셈이다.‘안사의 난’은 육우를 또 한번 변신시킨다. 그가 제2의 고향으로 불렸던 호주로 피란 간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당대의 시인이자 차승이었던 저산 묘희사의 교연스님과 친구가 된다. 교연스님을 통해 육우의 호주시대가 열린 것이다. 초계로 거처를 옮긴 육우는 피란길을 거쳐왔던 양자강 중유 및 회하유역의 차에 관한 자료들을 다량 수집하고 정리한다. 전란중에도 차에 대해 연구한 육우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27세때 모산으로 거처를 옮긴 육우는 악동 감북 환남 환북 강소의 승주 윤주 상주 등 차구(茶區)를 유람했다. 강소유람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안진경뿐만 아니라 황보중 등 훗날 그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서로 반한 안진경은 후일 육우를 위해 삼계정을 지어줄 뿐만 아니라 조자겸 왕희지 등 당대최고의 문사들과 교류도 주선해준다. 육우는 단순한 차인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이 (저산기)(오흥도경)등 그의 수많은 노작들을 통해 확인된다. ●유명 차생산지 떠돌며 자료모아 육우(32세)가 제작했다는 차 달이는 풍로(茶爐)도 매우 흥미롭다. 육우는 오랑캐로부터 자신이 사는 성스러운 땅을 지킨 기념으로 세발 달린 풍로를 제작한다. 한발에는 주역의 궤인 호랑이(바람을 상징), 꿩(불을 상징), 물고기(물을 상징)를, 한발에는 당이오랑캐를 무리친 기념글을, 한발에는 세상에서 차를 가장 잘끓이는 육씨(자신)와 곰국을 잘끓였다는 진미공을 새겼다. 세발달린 풍로는 평화와 평정을 상징한다. 물 바람 불은 조화롭게 융화해 차의 ‘진미’(眞味)를 맛보게 한다. 육우는 자연과 삶이 완벽하게 조화된 세상을 표현해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정치지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로를 통해 육우가 차와 함께 자연과 평화를 사랑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육우가 (다경)초고를 완성한 것은 33세때다. 당시 32개 주(州), 군(郡)을 답사한 후 띠집에 은거하며 (다경)의 초고를 마침내 완성했다. 차에 대한 육우의 명성이 점점 높아가자 그를 음해하려던 세력도 나타났다.(만구지)란 기록은 그것을 잘 나타내준다. “어느날 육우가 월강차를 따다 불에 쬐어 말리고 있었다. 잠깐 일이 생긴 육우는 어린 노비로 하여금 월강차를 지켜보도록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어린노비는 그만 졸다가 월강차를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이에 화가난 육우는 그 어린 종을 철끈으로 꼬아 묶어 불속에 던져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차의 물질성보다도 차의 정신과 품격을 강조했던 다신이었던 육우의 삶을 의도적으로 폄하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34세때 젊은 어사대부 이계경과의 ‘훼다론’에 관한 일화도 유명하다. 젊은 어사대부였던 이계경이 강남을 순찰하며 명성이 자자하던 육우를 알고 초대했다. 육우는 들옷을 입고 다기를 든 채 초청에 응했다. 초의스님이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몸체이니 진수(眞水:참된 물)가 아니면 그 신기가 나타나지 않고 정제된 차가 아니면 그 몸체를 엿볼 수 없다.”고 말했듯이 차와 물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다. 육우는 그런 점에서 최고의 물 품평가였다. 그는 그가 거처했던 곳들이나 유람했던 곳들의 물을 품천했다. 광주의 곡렴천을 맛본 후 “천길 바위 틈을 뚫고 솟아 나와 구강에 이르러 배를 띄운다.”며 천하제일천이라 품했고, 황주의 난계수는 천하제삼천이라 품하며 중국산천의 물들의 ‘등급’을 매겼다. 육우는 그런 점에서 물의 ‘달인’이었다. 찻자리에 초청을 받은 육우는 이계경에게 우중수인 양자강물을 부탁했다. 이계경은 육우에게 “육군이 차를 잘 한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바이요. 거기다 양자강의 중류는 물이 빼어나니 오늘 두 오묘함이 천재일우하였습니다.”라고 했다. 육우가 이에 “이 물은 양자강물이 아닙니다.”라고 답하자 얼굴이 붉어진 이계경은 물을 떠온 노비를 불렀다. 노비는 이계경에게 양자강물을 떠오다 그만 미끄러져 3분1정도를 다른 물로 채웠음을 고백했다. 최고의 물품천가였던 육우의 뛰어남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집에 돌아온 육우는 이계경이 찻자리를 모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훼다론)을 지었다. 육우는 48세때 비로소 10년에 걸쳐 정리해왔던 (다경)을 탈고 완성했다. 무려 38년간 섭렵했던 차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낸 것이다.(다경)에 대해 당나라 피일휴는 “주나라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차에 관한 일은 경릉사람 육계자의 말이 상세하다. 그러나 계자 이전에도 명(茗)을 마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뒤죽박죽 섞어 삶아 마셨으니 시래기 삶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계자가 비로소 경 세권을 지었더니 그 근원과 제조법, 차 만드는 도구와 만드는 법, 차 끓이는 방법과 그릇, 차를 다려서 마심 등이 자세히 분류되었던 것이다. 소갈증을 풀어주고 역기를 제거시킴은 비록 의원이라도 그와 같지는 않을 것이니, 그 이익됨이 사람들에게 어찌 작다고 하리오.”라고 적고 있다. 송나라의 진사도는 “무릇 차에 대한 저술은 육우로부터 비롯되고, 세간에서의 쓰임 또한 육우로부터 비롯되니, 육우야말로 진리로 차에 공이 있는 사람이다. 위로는 궁성으로부터 아래로는 읍리에 이르고 밖으로 융이만적에 이르기 까지 손님 접대하고 제사지낼 때 먼저 앞에 진설하고, 산과 못으로써 저자를 이루고 장사를 하여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 또한 사람에게 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롭다고 할 것이다.”고 적고 있다. ●‘다경3권´ 1200년 이어온 고전 육우가 현세의 우리에게까지 남긴 (다경 3권)은 그를 다신(茶神)으로 만들었다. 후일 중국에서는 그런 다신을 추모하여 차를 끓여파는 다점에서 도자기로 육우의 상을 만들어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낼 정도였다고 한다. 다신이었던 육우의 위상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다경)을 저술한 육우는 태상시태축이란 관직에 봉해졌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호주의 청당에서 72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육우암정을 파 소주산차를 심어 가꾸고 차를 제다하며 살았다. 전문(全文) 약 7000자(字)로 육우가 편찬한 (다경)(780년쯤) 은 당대(唐代)와 당대이전의 차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실천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중국차 문화의 기초를 확립했다.12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온 (다경)은 단순히 차의 종류나 마시는 방법을 말한 표면적인 책이라기 보다는 ‘차의 정신’을 중요시하고 있다. 육우가 확립한 다학(茶學) 다예(茶藝) 다도(茶道)의 사상과 그것을 정리한 (다경)은 시대를 초월한 차의 명작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다경)은 3권 10장규모로 1장에는 차의 근원,2장에는 차의 연장,3장에는 차 만들기,4장 찻그릇,5장 차 달이기,6장 차 마시기,7장 차의 옛일,8장 차의 산출,9장 차의 생략,10장 차의 그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존하는 (다경)은 4종이 있다. 주(註)가 있는 것으로 이른 것이 남송대 좌규본(左圭本:백천학해본)이고, 주가 없는 것으로는 (백권(百倦)의 설부본)이며, 하나의 증본으로 다기권(茶器卷)을 다구도찬(茶具圖讚)에서 추가한, 명의 (정화은본(鄭火恩本))(선화당본(宣和堂本))이 있다. 넷째는 원문을 가감한 삭절본(削節本)으로 명대(왕기본(王圻本))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다경)은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세계최고의 차 문화를 보유했던 중국 최초의 다서인 (다경)을 수입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다경)은 고려나 조선의 문집에서 간간이 나타나고 있어서 그런 정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다경)이 우리에게도 전해졌거나 간행되었겠지만 그 흔적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 육우가 (다경)을 저술한 이후에 쓰여진 다서들은 대략 2000여권에 이른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분량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그 어느 저술보다도 1200년전 다신 육우가 저술한 (다경)은 지금까지 차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완벽한 고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지금 육우가 묻혀 있는 곳은 중국 호주시 묘서향에 있는 저산이다. 그곳에는 중국 항주시인민위원회가 1995년 10월 새롭게 조성한 묘역에 ‘당옹육우지묘’라고 쓰여져 있다. 육우는 우리에게 다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지금까지도 일깨우고 있다. 그같은 육우의 차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바로 9장인 ‘찻일의 생략’이다.“차를 만드는 도구는 만약 봄에 불을 금하는 때 들의 절간이나 동산에서 일손을 모아 찻잎을 따고 쪄내고 절구질하고 불에 말려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송곳 두드리개 꿰뚫개 시렁 숙석통등 일곱가지 다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차 다리는 그릇들을 만약 소나무 사이의 바위위에 놓을 수만 있다면 구열은 쓰지 않아도 된다. 만약 샘물이나 산곡물 근처에서 차를 달이게 된다면 물통 개수통 물거름자루 등은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도시의 왕공(王公)의 집안에서 찻일을 행할 때에는 스물네가지의 찻그릇 가운데서 하나만 빠져도 다도는 무너진다.”고 적고 있다. 차의 일상성과 현장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찻자리를 빼고는 상황과 현장에 맞게 편안한 찻자리를 일상에서 즐기라는 것이다. 이른바 조주선사가 말했던 ‘차나 한잔 마시는’ 일상의 차도를 강조함이다. 육우는 그의 은사였던 지적스님이 열반하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백옥찻잔도 부럽지 않고 황금술독도 탐나지 않는다. 벼슬하여 아침에 조회드는 것도 부럽지 않고, 저녁에 퇴청하여 고대광실에 오르는 것도 부럽지 않다. 천만번 그리운 것은 서강의 물뿐….” 마치 소동파의 ‘귀거래사’를 보는 듯하다. 소동파는 작은 초암을 짓고 몇 평 안되는 작은 땅에 반은 노란황국을 심어 생을 노래했고, 반은 조(당시 중국의 주식)를 심어 삶을 노래했다. 육우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의 작은 초당인 청당별업에 은거하며 샘을 파고, 차나무를 가꾸며 삶과 자연이 조화된 무욕(無慾)의 삶을 살았다. 만물이 자신의 삶을 회향하는 가을이다. 일지암 초당에 앉아 반야차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고 몸은 가벼워져 저 멀리 하늘을 거니는 듯하다. 일지암 암주
  • “장롱속 문화재 햇빛 보려면 개인소장·수집 인정해줘야”

    “첫 직선 문화재위원장인 만큼 마지막 소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일 문화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년 임기의 위원장으로 뽑힌 안휘준(65)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전체 위원장과 3개 분과위원장을 동시에 맡게 돼 어깨가 무겁지만 전문위원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며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전체 문화재위원들의 투표에 의한 위원장 선출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에는 분과위원장들이 간선을 통해 위원장을 선임해 왔다. 안 위원장은 “위원회 활동이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청계천·낙산사 문제 등에서 맹활약했던 시민단체들의 자문을 적극 수용할 것”이라면서 “문화재위원 수준에 못지 않은 전문위원 195명의 전문성과 현장성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과의 관계에 대해 안 위원장은 “갈등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면서 “다만 문화재청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처럼 학예직 등을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문화재 지정분야가 일부에 치우쳐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개인 소장가나 수집가의 활동이 애국행위임을 사회가 인정하고 보호해 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위원회는 부위원장에 박언곤 홍익대 교수와 정징원 부산대 교수를 뽑은데 이어 각 분과위원장도 다음과 같이 선임했다.△동산·국보지정·문화재제도 안휘준 교수△건조물 박언곤 교수△매장 정징원 교수△사적 한영우 한림대 교수△무형 김광언 인하대 교수△천연기념물 이인규 서울대 교수△근대 이만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EBS, 시청자 참여 프로 늘린다

    EBS가 28일부터 봄 개편에 들어간다. 교육 기간방송의 위상 강화, 민주시민의식 고취, 열린 문화공간 확대, 광복 60주년 기념, 유아·어린이 프로그램 개발, 실업문제 극복과 경제강국 방향성 모색 등 6가지 큰 틀 안에서 프로그램 신설과 기존 프로그램의 내실화를 기했다고 방송사 측은 설명했다. 눈에 띄는 신설 프로그램은 ‘생방송 토론카페’(금 오후 10시50분)로, 토론·토크·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시도이다.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가 진행을 맡아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듯 편안하게 토론을 하고, 음악도 들려준다. 인물ㆍ사회다큐멘터리에 도전하는 ‘EBS 스페셜’(목 오후 10시)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주제에 다가선다.EBS와 MBC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된 ‘EBS 연중기획, 교육이 미래다’(금 오후 10시)에서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아동 프로그램으로는 한국판 ‘텔레토비’를 표방한 ‘똑똑! 노리하우스’(금 오전 9시15분)가 신설된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뮤지컬 프로그램이다. 평일에 방송되는 ‘톡!톡! 보니하니’에는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코너 ‘아자아자 금요일’(금 오후 6시10분)을 새로 추가했다. 이밖에 기존 프로그램 가운데 ‘TV 정치교실’은 ‘시민의 신문’ 정지환 기자와 ‘헤딩라인 뉴스’로 잘 알려진 인터넷뉴스 이명선 아나운서가 가세했고,‘미디어 바로보기’는 현장성을 강화했다.‘지금도 마로니에는’(토·일)은 2시간 늦어진 오후 10시50분으로 시간대를 옮겼다.FM라디오에는 손석춘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 처음으로 진행을 맡은 ‘EBS 월드FM 손석춘입니다’와 영어교육 프로그램 ‘초보탈출,English Go!Go!’,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김진수의 충전, 영파워’가 새롭게 전파를 탄다. 이번 봄 개편 가운데 지상파 TV의 개편 비율은 9.1%. 개편 때마다 15∼20% 정도를 물갈이했던 것에 비하면 소폭이다. 박달화 편성기획팀장은 “안정 속 소폭 개편이라는 취지 아래 시청·청취자의 참여폭을 늘리는 등 프로그램의 내실화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7.핀란드의 평생학습

    [이젠 사람입국이다] 7.핀란드의 평생학습

    핀란드는 인구 520만명에 불과한 유럽의 작은 국가이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 등의 국제경쟁력 평가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강소국이다(2004년 IMD 경쟁력순위 8위,WEF 경쟁력순위 1위). 핀란드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과학기술과 교육훈련에서의 경쟁력이 핵심요인이다. 핀란드는 과학기술강국, 인적자원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핀란드의 혁신역량과 교육시스템, 대학배출인력의 질, 기업의 재직근로자 교육훈련 등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핀란드의 노동시장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2003년 현재 핀란드의 노동인구는 약 260만명, 실업률은 9.1%이다. 프랑스나 그리스 등 일부 유럽국가에 비해서는 실업률이 낮지만, 미국(6.0%)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7.1%)보다는 높다. 장기실업은 줄어들고 있지만 구조적 실업이 여전해 인력부족 속에서도 실업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핀란드 정부는 고용증대를 경제 및 노동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실업 완화, 고급 노동력 공급에 초점 핀란드에서 실업은 주로 저학력층에 집중돼 있다. 실업자의 40% 이상이 기초교육과정만을 이수한 저학력층이다. 지식정보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가운데 근로자의 능력과 전문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단순인력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업 해소방안으로서 교육훈련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핀란드 노동시장의 또다른 문제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인력부족의 심화 가능성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와 출산율 저하에 따라 2015년까지 100만명의 노동력이 줄어들 전망이며, 이는 현재 취업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핀란드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취업률 제고, 근로자의 직무능력 향상을 통한 생산성 제고, 외국인 숙련노동력의 유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인력부족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역시 교육훈련을 통한 노동력의 질적 제고가 강조되고 있다. 2003년 10월 핀란드 노동부는 구조적 실업의 완화와 노동공급 촉진을 위해 ‘노동정책전략 2003∼2010’을 채택했다.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는 구조적 실업의 축소와 예방, 숙련노동력의 확보 및 인구구조 고령화로 인한 인력부족에 대한 대응, 은퇴시기 지연 및 취업기간 연장 유도, 노동생산성 및 작업조직 향상과 직무만족 증대 등이다.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공공 직업안정서비스의 개혁, 노동시장 지원정책의 적극 활용, 적극적 노동정책 프로그램 및 교육훈련 강화, 취업기간 연장 등의 정책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의 경제성장 둔화 속에서도 실업률이 높아지지 않고 있는 것은 교육훈련과 같은 적극적 노동정책(active labor policy)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실업 해소, 인력부족 완화, 노동력의 질적 제고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근로복지 증대라는 모든 과제가 교육훈련투자의 확대와 질적 제고라는 측면으로 귀결된다. ●교육훈련 제공자로서의 기업의 역할 강조 핀란드에서 성인 대상의 교육훈련은 재직근로자 훈련(PT·Personnel Training), 자기주도적 성인 직업훈련(SMT·Self-Motivated Adult Training), 노동시장훈련(LMT·Labor Market Training)으로 구분할 수 있다. 투지아 레미넨 핀란드 노동부의 노동력개발·지도팀장은 “과거에는 이들 훈련과정이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했으나, 최근에는 이 세 가지 영역이 중첩되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재직근로자 훈련은 평생학습 시스템 아래 기업에서 제공되는 교육훈련을 의미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인적자원의 경쟁력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이 교육훈련의 최종수요자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교육훈련의 제공자로서의 기업의 역할 변화가 요구된다. 근로자의 지속적인 능력개발을 위해서는 평생학습이 중요하며, 평생학습의 장으로서 기업 내 교육훈련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2004년 IMD보고서는 핀란드를 재직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교육훈련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국가로 꼽았다. 핀란드 수출액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노키아(Nokia)의 경우 인적자원개발은 기업의 핵심전략으로서 강조된다. 안나 타비스 노키아 인사담당 부사장은 “최고의 인재들을 채용,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제공함으로써 최고의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노키아의 인사관리 전략”이라고 말했다. 총급여액의 3∼4%를 교육훈련비로 투입하며, 근로자 1인당 연간 70시간 안팎의 교육훈련을 제공한다. 교육방식은 정규교육훈련과 상급자의 지도(mentoring), 현장학습(talent management system)으로 이뤄진다. 근로자와 상급자, 인사담당 관리자간의 상호 유기적인 연계에 의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한다. 또 대학 교과과정이 산업현장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주요 대학들과 다양한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도 중소기업의 교육훈련투자는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따라서 핀란드 정부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교육훈련 확대를 위한 별도의 지원방안을 제공한다. 중소기업은 인력부족 때문에 근로자를 생산현장에서 빼내 교육훈련을 제공할 만한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노동부는 ‘직무순환(Job Rotation)’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대체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대체근무에 대한 비용지원 프로그램으로서, 중소기업이 근로자를 외부기관에 위탁교육 보내는 동안 정부가 실업자 풀(pool)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해준다. 이와 함께 개별 중소기업에서 교육훈련을 하기 어려우므로 소규모 사업장의 훈련수요를 취합, 훈련기관에서 수요에 적합한 맞춤형의 집합적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적 기본권으로 학습권 규정 자기주도적 성인 직업훈련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성인 단계에서도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학습권이 확립돼 있어 평생학습이 상대적으로 쉽게 이뤄질 수 있다. 재직 중인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필요에 따라 ‘학습휴가’를 요청할 수 있으며, 원칙적으로 기업은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휴가기간 중 고용은 보장된다.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면에서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핀란드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다. 학습휴가 동안에는 기술직업대학인 폴리테크닉(Polytechnic)이나 대학에서 정규교육을 받거나 기타 직업교육훈련과정을 이수하기도 한다. 대학·폴리테크닉은 기업과의 산학협동이 활발해 교육훈련의 현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시장훈련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일부로서 성인 인구의 직업능력 향상, 인력수급의 균형 유지 및 촉진, 실업과 인력부족 해소 등에 목적이 있다. 노동시장훈련은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의 양적·질적·지역적 수요변화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게 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근본적으로 성인들이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러 있거나 되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향상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합하는 맞춤식 직업훈련의 성격을 갖는다. 주로 실업자 대상의 훈련이지만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사람이나 재직근로자도 훈련대상이 될 수 있다. 노동시장훈련은 현재 200개 이상의 다양한 직업 영역에 걸쳐 연간 4000∼5000여개의 훈련과정이 제공되고 있다. 노동부의 재정지원 하에 성인훈련센터나 폴리테크닉, 기타 직업교육기관 등에서 연간 6만 4000여명이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시장훈련은 숙련수요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지역 단위에서 설계되며, 훈련과정의 70%가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자격제도와 연결돼 있다. 훈련 이수생들은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훈련과정을 평가하는데 3분의 2 정도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훈련과정 이수 3개월 뒤의 목표실업률 40%는 대체로 지켜지고 있다. ●지식기반사회 대비한 시스템 구축해야 핀란드는 평생학습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고 성인 인구의 평생학습 참여율도 매우 높다. 재직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교육훈련투자가 활발하고 자기주도적인 성인 직업훈련도 활성화돼 있다. 노동시장훈련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각각의 훈련시스템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적자원강국으로서의 핀란드의 면모는 이러한 평생학습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는 사람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사회이며 평생학습을 통한 인적자원의 경쟁력 확충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핵심과제이다. 우리의 여건에 맞는 평생학습 시스템의 구축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동백, 몸이 열릴 때/장창영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동백, 몸이 열릴 때/장창영

    동백, 몸이 열릴 때 장창영 한때는 너도 불 밝히던 심장이었다 눈 밟는 소리에도 온통 가슴 설레어 어쩔 줄 몰라만 하던 붉디 붉은 눈이었다 하기야 그때는 너조차 몰랐을게다 네 몸을 사정없이 훑으며 지나간 것이 한 떨기 바람, 그도 아니면 감당 못할 욕망이었 는지 꽃무리 지고 난 후 다시 또 여기 서 있다 실팍한 가슴 한켠 환한 불씨 동여맨 채 안에서 밀어올려낸 향기 한 올 풀어 건네며 ■ 시조 당선소감 당선 연락을 받던 날은 동지였다. 그날 저녁, 글쓰는 형 몇몇과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팥죽을 먹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 끓인 팥죽이 한 다리 건너 우리에게까지 건네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 정은 이처럼 소소한 것에서 생겨나 다른 이들의 마음 속에 웅숭깊게 자리매김하는 걸 게다. 아마 시조가 지향하는 바도 팥죽을 끓이는 이의 마음 씀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쓰지 못할 때처럼 비참한 경우가 또 있을까. 매년 신춘을 겪어 본 이들이라면 찬바람이 불 때마다 제 몸 안에 갇혀있던 무엇인가가 목청을 돋우는 것을 느꼈으리라. 이제 매번 마감시간 직전까지 휘둘리게 했던 그 무엇이 이 자리에 내디디게 만든 힘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글을 쓰는 매 순간마다 숨쉬게 하며, 살아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힘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마음 써 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내게 가장 큰 스승이다. 지금까지 글과의 인연을 놓지 않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빚을 진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시조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합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누군가 길을 만들었기에 다음에 나선 이들은 보다 쉽게 갈 수 있다. 만약 그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인생은 외롭지 않다. 나로서는 이제 시조라는 든든한 벗을 얻은 셈이다. 나 역시 후에 오는 이들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 주고 싶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기에. ●약력 1967년 전주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현대시 전공) 200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전주대학교 교양학부 객원교수 ■ 심사평 신춘문예는 기존의 작품수준을 월등 뛰어넘는 새로운 패기,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한다. 올해 응모된 작품들은 종전에 비해 수준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에 대한 열기가 그만큼 높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응모작품 대부분이 시조의 틀을 지키면서도 현대성을 지녔고 소재면에서 다양했으며, 삶의 현장성을 갖고 노래한 것과 우리 역사성을 갖고 노래한 것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심사기준은 시조가 갖는 형식을 지키되 어떻게 새로운 리듬, 감각으로 현대적 기능으로서의 기법을 구사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당선작 ‘동백, 몸이 열릴 때’는 하나의 꽃이 깨어나는 신생의 날카로운 감성과 언어의 배합 같은 것들이 신선했다. 시조의 운율을 갖고 재구성하면서 새맛나는 기량을 보여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금동반가사유상’(한분옥)은 안정감 있고 상당한 시적 수련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최종 당선작과 겨루었으나 소재 면에서 신선감이 덜해 선외로 밀려났다.‘광개토태왕비’(방승길)는 고구려 역사왜곡과 잃어버린 고구려의 역사성을 면밀히 관찰하는 투시력으로 힘줄 넘치게 쓴 작품이다. 그러나 힘에 너무 치우쳤고 언어의 조탁에서 밀렸다.‘사랑’(이지윤)은 서정성과 시조다움에 가까운 작품이다. 첫발을 내딛는 신인의 시조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진도아리랑에 부쳐’(이태호)는 시조 가락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현대시로서의 의미, 새로운 감각을 살려내지 못해 아쉬웠다. 이근배·한분순
  • 기술자격시험 응시요건 대폭 강화

    앞으로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치를 때 전공학과에 대한 제한 규정을 두는 등 응시요건이 대폭 강화된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이 1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2007년 1월1일 이후 시행되는 자격시험부터 적용된다. 노동부가 마련한 시행령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자의 경우 현재는 학과 구분 없이 기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나 2007년부터는 응시하려는 자격 종목과 관련된 학과를 졸업한 경우에 한해 응시할 수 있다. 응시하려는 자격 종목과 관련이 없는 학과 졸업자는 2년간의 동일 직무분야 현장 경력이 있어야 시험을 볼 수 있다. 일본은 관련 학과와 비관련 학과 졸업생에 대해 필요경력 연수에 차이를 두고 있으며, 미국도 해당 전공자나 지정교육과정 이수자에 한해 자격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동부는 국가기술자격 시험 출제위원 위촉시 산업현장 전문가를 우선 위촉, 문제출제에 해당분야 산업수요 및 기술변화를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한국산업인력공단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2개 기관에만 위탁되어 있는 국가기술자격 검정의 시행을 특정 종목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성을 가진 다른 기관도 시행할 수 있도록 위탁기관을 확대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자격취득자가 해당 분야에서 충분히 우대받을 수 있도록 산업현장의 수요를 정확히 반영한 국가기술자격제도를 운영하는 데 힘쓰기로 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도시생태포럼, 시민에 문호 활짝

    도시생태포럼, 시민에 문호 활짝

    “서울이 생태도시로 거듭날 때까지 포럼은 지속됩니다.” 일반 시민이 제시한 아이디어도 서울이 생태도시로 바뀌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또 서울시가 진행하는 생태도시계획에 대해 시민이 직접 따끔한 한마디를 할 수 있다.서울시 시설계획과 도시생태팀이 운영하는 ‘생태도시포럼’에 참가하면 누구나 전문가와 똑같은 발언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도시포럼은 지난 1998년 시에 도시생태팀이 만들어지면서 한 시민단체가 운영해오던 생태도시 전문가 모임을 이어받아 운영해오는 모임이다.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시민·공무원·전문가·시민단체활동가 등이 자유롭게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나누는 일종의 민·관협력체제다. ●전문가·시민 머리맞대는 토론의 장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인공시설물을 잘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도시개발의 전부로 인식돼왔다.결과적으로 환경과 생태계가 훼손돼 주민들의 삶의 질은 급격히 저하되고 총체적으로 위험 사회에 직면하게 된 것이 오늘날 도시의 현실이다. 생태도시라는 개념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회의 이후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목표가 실현된 도시를 뜻한다.미국의 데이비스,독일의 베를린·함부르크,네덜란드의 델프트,일본의 고베·기타큐슈,브라질의 쿠리티바 등이 대표적인 생태도시로 꼽힌다. 포럼은 위촉받은 주제 발표자가 먼저 강연을 한 뒤 지정토론과 자유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유토론 시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가진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지금까지 모두 60회에 걸쳐 열린 포럼에서는 주로 생태도시의 개념,도입방안,외국의 생태도시 사례 등이 집중 조명됐다. 포럼에서 논의된 다양한 선진기법이나 아이디어는 실제로 서울시가 생태도시 계획을 추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교통체계개편,도시생태공원,바람길을 이용한 도시계획,생태면적률,토양투수지표 등 거의 모든 생태도시 정책들이 대부분 포럼에서 먼저 다뤄지고 논의됐다. 포럼을 담당하는 송윤락 도시생태팀장은 “작년 은평뉴타운 개발계획을 세울 때는 포럼에서 다룬 다양한 기법들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었다.”며 “공무원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많은 아이디어를 포럼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매달 셋째 수·목 시청별관서 열려 서울시는 내년부터는 포럼을 보다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토론모임에 그쳤지만 내년부터는 회원들이 포럼을 통해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한다.현장탐방 등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직접 생태도시 개념을 체득할 수 있도록 현장성도 강화한다. 포럼에 참가하려면 매달 셋째주 수요일 또는 목요일 오후 7∼9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0층 회의실에 가면 된다.지속적인 참가를 원하면 포럼에 참석해 회원으로 가입하면 좋다.회원이 되면 생태도시포럼이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이메일로 제공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www.freechal.com/ecoforum)에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거나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비용은 무료(02)731-6345.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16개 창작소그룹 기획전 ‘리얼링 15년’

    노동미술위원회,두벌갈이,그림공장,거리미술동호회,유알아트,반지하,미메시스,플라잉 시티,평화유랑단,오아시스….미술의 현장성과 공공성에 유독 관심을 기울여온 국내의 대표적인 창작소집단의 이름이다.이들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80년대 ‘현장미술’의 연장선상에 있다.그것은 또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이 주를 이룬다.이들의 활동은 넓게 보면 모두 리얼리즘 미술의 계보에 속한다. 리얼리즘 미술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리얼링(real+ing) 15년전’은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에서의 리얼리즘의 흐름을 짚어본다.창작소그룹 16팀과 개별작가 35명이 참여한 대규모 기획전이다.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거부감을 주기도 하는 ‘리얼링’이란 말은 리얼리즘 미술이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사비나미술관과 서울민족미술인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의 특징은 리얼리즘 미술을 양식이나 유파의 문제로 보지 않고,예술과 삶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다.전시는 평면회화와 판화,다큐멘터리 사진,영상설치,퍼포먼스,오브제 작품 등 다양한 구색을 갖췄다.소윤경의 ‘작은 카리스마’,노순택의 ‘코메리카 프로젝트’,구본주의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이원석의 ‘오늘도 아무일 없었다’ 등 40여점이 나와 있다. 한편 전시장 입구에는 책꽂이 형식의 설치물에 80년대 대표적인 리얼리즘 미술인 민중미술 관련 자료들을 둬 지난 시기의 리얼리즘과 동시대 리얼리즘의 관계를 살펴 보도록 했다.전시는 8월6일까지.(02)736-4371.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집중탐구 5黨의 ‘길’]⑤민주노동당-‘낮은곳’ 목소리 정책에 담아낸다

    지난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에 들어오는 민원은 하루 30∼40건에 이른다.총선 전에 비해 두배가 넘는다.당사로 찾아오거나 전화로 읍소하는 사람,홈페이지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남기는 사람 등은 부푼 기대감의 반영이다. 반면 경제부총리(4월21일)와 통일부장관(28일)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예방은 물론,전경련(29일),세계최대 미국계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26일),외국계 증권회사 ABN 암로(28일),전경련 현명관 부회장과 노회찬 사무총장 만남 예정(5월4일) 등 국내외 ‘자본’측의 줄잇는 방문은 민주노동당의 정책·강령에 대한 ‘위협감’과 ‘두려움’을 확인시켜주는 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양측에 기대와 위기감을 교차하게 만든 데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다.그들이 들어옴으로써 ‘정치·사회 문화인식’이 바뀔 것이라는 점과 함께 노동관련법 등을 둘러싼 사회의 논쟁이 심화되며 새로운 법,제도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정치권 분위기 변화 선도 작업복 입고(단병호 당선자),생활한복에 고무신 신고(강기갑 당선자)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에서 10분 남짓 걸어 국회를 드나드는 민주노동당 의원 모습들은 상징적인 예다.국회의원이 더이상 특권 속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으로 인한 정치권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정당정치 모델’의 제시다.당비를 내는 5만 당원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공직·당직 선출 과정 및 ‘당원소환제’ 등은 이미 정치권 전체에서 공감을 받고 있는 주요한 정치개혁 과제가 됐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내세우는 ‘현장성,연대성,전문성’은 기존 정치권의 의정활동과 큰 차별을 이룬다.노동자,농민,서민 등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현장을 중요시하겠다는 입장과 함께,그러한 요구들을 단순한 주장과 구호가 아니라 현실가능한 제도와 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의정지원단’,‘공동정책보좌관제’ 등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즉,‘대중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담아내는 의정활동’이 ‘민주노동당 정치’가 만들어낼 변화의 요체다. 또한 이는 ‘개혁중도’를 표방한 열린우리당과 ‘중도보수’의 한나라당이 정책적 차별성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 된다. ●부유세로 세상을 바꾼다 민주노동당의 핵심 구호 중 하나가 바로 ‘부자에게 세금을,서민에게 복지를’이다.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서 사회복지에 쓰겠다는 것이 민주노동당 정책의 기조다.이 핵심에 부유세 도입을 통한 ‘세제 개혁 5개년 계획’이 있다.무상교육,무상의료,청년실업 고용의무제,최저임금 인상 등 민주노동당 공약과 정책의 재원 마련은 세제 개혁과 연관돼 있다. 계획에 따르면 주식양도소득세 신설과 환경세,금융자산부과세 등으로 5년 동안 부유세 11조원을 포함,약 49조원을 걷는다.부유세 과세 대상은 순자산 10억원 이상 계층으로,민주노동당측은 2만∼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않다. 한 기업체 사장은 “국가가 순자산을 포함한 개개인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느냐.”면서 “보유세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또한 이중과세,자본의 해외유출 우려 논란이 제기된다. 민주노동당 정책위 송태경 국장은 “부유세는 소득세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보유세와 함께 실시하는 나라들이 많다.”면서 “직접세보다 간접세가 많은 상황에서 소득불평등에 따른 조세형평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반대 논리를 일축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자문위원 칼럼] ‘심각한 저널리즘’의 퇴조/이재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

    저널리즘적 시각에서 요즈음 우리 신문의 문제점을 여러가지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심각한 저널리즘’의 퇴조이다.다시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각종 쟁점을 객관적이면서 심층적으로 다루어 그 맥을 제대로 짚어줄 수 있는 신문기사가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심각한 저널리즘’은 신문의 몫이었다.신문기자들은 심층성 있는 기사를 가장 중요한 저널리즘의 구성요소로 인식해 왔다.이를 위해 때로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취재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도 많았다.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요즘 신문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오히려 ‘심각한 저널리즘’은 방송으로 옮겨간 듯한 생각이 든다. 가끔씩 편파성 등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방송사들은 각 사의 간판 심층취재 프로를 통해서 ‘심각한 저널리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이처럼 신문의 ‘심각한 저널리즘’이 퇴색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심각한 저널리즘’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침해와 관련된 소송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심각한 저널리즘’은 현장성과 영상적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방송이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인격권 침해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반면에 심각성이 약화된 신문은 지면의 대부분을 의사사건(pseudo events)이나 연예오락기사들로 채운다.즉,자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사고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십성의 정치기사,홍보용 이벤트 기사,톱스타나 스포츠스타 또는 스타 정치인과의 인터뷰 기사,선정주의적 기사,누가 무슨 일을 하거나 어디에 참석하거나 하는 동정기사,그리고 오늘의 운세 등 장식적 성격이 짙은 콘텐츠로 채워져 있다. 다른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운세는 신문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언제부터인지 스포츠지와 종합일간지 구분 없이 거의 모든 신문에 오늘의 운세란이 자리하고 있다.일종의 오락거리로 분류되어 문화면에 싣는 경우가 많다.서울신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한 주 동안 빠짐없이 문화종합면(또는 광고문화면 등)에 바둑,유머와 함께 오늘의 운세가 하나의 세트처럼 실렸다. 필자는 평소 오늘의 운세를 심심풀이 삼아 보지만 믿지는 않는다.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다.그저 바둑이나 유머와 같은 수준의 오락거리로 생각한다.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이러한 콘텐츠가 신문의 심각성을 떨어트리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신문을 포함해서 여러 신문들을 자세히 읽다 보면 오늘의 운세처럼 없어도 되고 있어도 되는 가벼운 정보,또는 재미로 알아나 보라는 식의 정보들이 상당수 있음을 알 수 있다.물론 저널리즘의 구성요소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오락적 측면의 기사들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신문이 방송과 차별되는 것이 바로 정보의 양과 다양성,그리고 심층성이라고 할 때 심층성이 떨어지는 정보가 다수를 차지한다면 아무리 다양한 내용을 제공한다 해도 그 의미는 줄어들게 된다.방송의 경우 시청자들의 요구를 알고서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것을 시청자들이 알아서 선택해서 보라는 경향이 강하다.그렇기 때문에 신문은 더욱더 독자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에 맞는 정보를 전하는 매체이어야 한다. 이재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
  • [기고]‘가산점 폐지’ 사범대 거듭나는 계기로/서정화 홍익대 교육학 교수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는 동일 지역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 사범대 졸업자와 복수·부전공 교사자격증 소지자에게 주는 가산점은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응시자의 공직취임을 상대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이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 결정으로 사범대 학생들은 불안해 하며,사범대 교수들과 교육부·지역교육청의 교육행정가들은 당혹해 해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동안 운영되어온 가산점 제도는 지역별로 교사확보,특히 도서·벽지를 비롯한 농어촌 지역의 교사 공급에 크게 기여해 왔다.이번 헌재의 결정이 가산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법률적 근거를 제대로 마련하여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사임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래 사범대는 중등교육을 담당할 유능한 예비교사를 양성·배출하여 2세 교육을 담당할 특수목적 대학으로 설립·운영돼 왔다.그래서 교직을 희망하는 학생은 사범대에서 4년동안 교사양성이라는 목적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한다.엄정한 전형과정을 거쳐 교사로 임용된 다음에는 교직사회의 주축을 형성해왔다.물론 사범대 출신 말고도 교직과정이나 교육대학원 등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하여 교직으로 진출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완적이고 제한적이다. 앞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범대의 질적 수준을 높여 훌륭한 예비교사를 배출할 수 있도록 국가차원의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정부는 11개 교육대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울였다.2003년부터 5년에 걸쳐 교사교육센터 설치라든지 정보화추진 등을 위해 1000억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범대에 대한 투자는 없다시피 하다.특히 사립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교육과정 운영이나,교육방법·교수 등 교육 프로그램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사립 사범대에 지원이 전혀 없다는 점은 시정돼야 한다.앞으로 사립 사범대에도 장학금을 지급하고 대학별 평가결과에 따라 행정·재정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또 여건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교사 충원을 계속 확대하여 나감으로써 학교교육의 질적 향상을 촉진해야 한다. 사범대를 살리려는 사범인들의 노력도 더욱 절실해져야 한다.확고한 교직의식과 책임감 있는 교사를 배출하기 위해 차별화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사범대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도록 교과교육을 강화하고 이를 담당할 교수들을 충원해야 한다.또 사회적 변화와 필요에 부응하도록 교육과정을 개편,운용할 뿐 아니라 새 교육방법을 익히고 가르칠 수 있게끔 최신 기자재를 확보하여 활용해야 한다.특별활동 또는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 등도 잘 운영하도록 현장성 높은 지식과 자질을 습득시켜 주어야 한다. 아울러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일이 최우선적인 과업임을 인식하고 뜨거운 교육애와 열정을 지닌 교육 전문인을 길러내어야 한다.여기에는 대학 경영자의 이해와,특별한 관심과,지원이 전제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교원양성은 사범대·교육대 등의 교원양성을 주축으로 하고 보완적인 측면에서 교직과정 및 교육대학원에서 교사를 양성·배출하여 왔거니와,이러한 목적형 양성 체제의 기조는 유지돼야 한다.지나치게 개방형으로 교원양성제를 운용하면 교직의식 결여나 전문성 미흡으로 교직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아지고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을 담보하기 힘들 것이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우람한 건물과 최신 교육 기자재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무엇보다 교육에 관한 확고한 사명감을 가지고 교과에 관한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기술을 갖춘 우수한 예비교사를 배출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그 핵심이다.차제에 우수한 중등 예비교사를 배출하는 요람으로 자리잡도록 정부와 대학들이 새로운 사범대 로드맵을 작성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서정화 홍익대 교육학 교수 ˝
  • 영화로 다시 만나는 오구

    지난 89년 초연 이후 270여만명의 발길을 극장으로 끌어모은 연극 ‘오구’가 28일 영화로 바뀌어 관객을 찾아간다. 개봉전 이 영화에 쏠린 주된 관심은 펄펄 뛰는 연극의 현장성이 앵글 속에서 어떻게 빚어지는가였다.앞질러 말하자면 감독 이윤택은 영화의 테크닉을 활용해 ‘오구’가 줄 수 있는 상상력의 자장을 넓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연극의 ‘신명’에는 못미쳤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의 줄거리는 경남 밀양의 황씨 할머니가 낮잠을 자다 꿈 속에서 죽은 남편을 본 뒤 죽음을 준비하려고 산오구굿을 벌이다가 저승으로 간다는 것으로 연극과 별반 차이가 없다.다만 무당 석출(전성환)의 딸인 미연(이재은)과 황씨 할머니의 아들이었다가 죽은 뒤 저승사자로 내려온 용택(김경익)의 러브스토리를 보태 이야기선이 넓어졌다. ‘감독 이윤택’은 일단 영화에서만 가능한 기법을 동원하여 환상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저승사자가 소와 함께 이승으로 내려오거나,황씨 할머니 손자로 환생하는 장면 등은 연극에서는 거둘 수 없는 효과다. 하지만 영상에 익숙한 강부자나 이재은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대사 톤이나 과장된 몸짓 등에는 연극무대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다.이쯤되면 영화로 거듭나면서 얻은 것보다 연극이 잃은 게 더 커보인다.영화로 들어온 신명나는 굿판과 풍물소리를 보노라면 무대에서 집중력있게 뽑아내는 열기가 그리울 지경이다. 그래도 영화 ‘오구’는 여전히 볼거리가 많다.굿과 풍물,상여 장면 자체로 잊혀진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 특히 젊은층의 호기심을 자극한다.연극에는 없는 저승사자와의 러브스토리를 펼치는 이재은의 열연도 영화의 볼거리를 더해주는 요소.‘오구대왕풀이’소리를 처연하게 뽑아내는 굿패의 일원에서 선술집 작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폭넓은 연기를 과시한다. 이종수기자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4)이청준

    오로지 소설가로 남기 위해 일찍이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서재 속으로 들어간 사람,사십 년 세월을 오로지 이야기 쓰기로만 일관해 온 사람,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견해를 떠나 지역과 성별을 떠나 누구나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직조해 내는 사람,그가 바로 이청준이다.문학에서 장인다운 장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한국의 문학과 예술이 완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그것이 사람들에게 해(害)나 독이(毒) 아니라 오로지 미(美)와 이(利)가 되는 길을 찾아 남도인 이청준을 찾아 가자.남쪽으로 가자. 서울 양재동 허름한 커피숍 2층으로 선생을 안내하여 자리를 잡자마자 선생은 담배를 꺼내 피워 문다.그리고 어딘가 못 올 데 와 있다는 심정을 표현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메모지를 꺼내놓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태세다.무엇이든 예정하지 않은 일은 피하려 하는,조심스럽다고나 할까 섬세하다고나 할까,자리를 가리지 않는 선생의 소탈함은 그런 까다로움을 감추기 위한 포즈라고나 할까.나는 선생의불편한 심정을 덜어드리고 싶어 단도직입하기로 한다. “서울을 떠나셨는데 무슨 이유라도……,있으신지요?” “삶이나 문학이나 밤 산길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결국 헤맨다는 건데,헤매다 보니 문학 사십 년이더군요.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리를 확인해보고 싶고,그러려니 주변 공간을 정리하고 싶어졌어요.예를 들면 온 집안에 흐트러져 쌓인 책 같은 거 말이에요.그 책들 좀 정리해서 제대로 만나고 싶은 거……” “올해 펴내신 장편소설 ‘신화를 삼킨 섬’을 읽다보니 옛날 ‘이어도’가 생각났습니다.감명 깊게 읽던 대학 시절이 그리워지더군요.신화나 무속세계에 천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우리 현재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리가 있는데,하나는 꿈이고,다른 하나는 그 꿈을 실현하는 힘이겠지요.꿈은 내일에 대한 이념이랄까요? 이것을 공적으로 실현하는 힘은 권력으로 귀착되는 것 같아요.삶이 이렇게 진행된다면,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정신인데,그 정신이 태어나고 거(居)하는 곳은 우리의 역사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논의를 수없이 해왔어요.그렇지만 실제 우리 삶이 얼마나 행복해졌느냐,값지게 살고 있느냐,이런 문제로 들어가 보면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뭔가 빠져 있고 겉돌고 있는 것 같아요.이런 생각 끝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어떤 심성,즉 영적인 차원과 넋의 문제에 대한 천착이 결여되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그 부분을 빼 놓고 역사의 차원,과거 경험의 차원에서만 소설을 써서는 안 되겠다,더 깊은 근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신화의 세계죠.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우리 무속이죠.그 무속 혹은 신화에 우리들이 이어온 넋의 요소가 가장 많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문학관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글쓰기라는 것이 결국에는 하늘이에요.하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문제라는 거죠.달리 이야기하면 그것은 우주관이지요.현실이나 역사는 어떻게 보면 특수성입니다.보편으로서의 하늘,곧 신화를 확대해가면 우주적 통합에 다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 작품 가운데 ‘서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듯한데요.아마 임권택 감독 덕분이시겠지요.그러나 그것이 ‘남도사람’이라는 연작소설집의 한 부분이고 또 ‘언어사회학 서설’이라는 다른 연작소설집과 연결됐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서 신화적인 요소는 늘 중심 역할을 해왔고,문학도 그런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남도 사람’은 그런 세계를 찾아다닌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 것이고 ‘언어사회학 서설’은 세속적이고 도회적인 삶에 대한 반성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이렇게 도시와 시골을 왕복하는 속에서 삶의 균형,즉 삶의 현장성과 근원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신화적인 세계는 현실적인 삶의 겹을 이루어줄 요소라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이쯤에서 내가 정작 여쭈어 보고 싶었던 이야기로 들어가기로 한다.선생은 남도의 예인,장인이고 한(恨)의 초극과 승화를 보여주는 예술가다. “우리 문화예술의 가장극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한의 정서를 드는데요.그것이 무얼까요?” “이렇게 정리해봅니다.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고,자기가 누려야 할 몫을 누리지 못했을 때 겪게 되는 감정의 부조화라고.부조화로 인해 겪게 되는 삶의 정서라는 것이지요.흔히 한 맺힌다는 것은 심한 일을 당했다는 거거든요.가령 광주 항쟁 이후의 문제같은 것은 광주 사람들이 시민의 자리에서 쫓겨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몫을 못 누린 때문에 생겨난 한의 문제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한을 정리해놓고 보면 원한도 될 수 있지요.이것을 풀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려면 그것을 씻어내야 하는데 그럴 요량으로 만든 것이 우리네 굿이죠.그것을 남에게서 풀려고 하면 앙갚음이 되고 복수가 되죠.일종의 폭력이 되는 것이죠.그것을 자기 안에서 자기가 풀 때 원한은 원한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으로 승화되는 거지요.용서하고 받아들여서 자기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킨단 말이죠.그러려면 굉장히 내면적인 자기 결단이 필요하죠.그리고 그 부분이 문학같은 예술의 몫이지요.문학의 몫이라는 게 결국은 우리 정신이나 정서를 답답하게 굳히기보다는 그것을 풀어서 넓게 열려고 하는 탄력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한을 씻는 문학을 해 오신 셈인데요.” “힘과 힘의 대결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일,힘에 의해서 자꾸 휘둘리는 삶을 원래의 삶의 자리로 돌려주는 것이 문학이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떤 신념이 느껴집니다.오늘같은 시대에 한국문학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는 신념이라는 말을 경계합니다만…… 우선 지금은 대량 첨단정보 유통시대이지요.그러다 보니 그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정보를 제대로 검색하거나 선택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가치관의 혼란을 잡아주어야겠지요.둘째로 이상과 현실의 대립 구조 속에서 배제의 현상,배제의 사고,배제의 담론이 범람하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현재는 과거를 배제해요.또 미래는 현재를 배제하고.젊은 사람들은 늙은이를 기성세대라고 해서 배제하고.정치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요.자기 독선을 넘어서 보다 넓은 가치를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문화예술은 유통주의자들의 천국처럼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만……,과연 장인정신이라는 것이 오늘같은 세상에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지요?” “장인의 세계는 원창조의 세계여서 어느 시대나 그런 세계를 요구하게 마련이지요.장인이 같은 물건 만드는 법은 없어요.나는 그런 생각을 하죠.삶의 벼랑에서 이 작품을 쓴다.이것 쓰고 나면 더 못쓸 것이다,하는 각오로 쓰고…….그러니까 장인들 세계라는 것은 죽을 각오로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자기 끝을 아니까 한 걸음을 더 나갈 수가 있는 거지요.자기 삶의 끝에 서있지 않으면 그 삶에 묻혀버리죠.그런 장인의 세계는 원정보 생산이고 진짜 창조의 핵이기 때문에 오늘 같은 세상이라고 해서 버려질 수가 없을 겁니다.유용성과는 좀 떨어져 있는 비물질적·정신적 가치의 세계를 이루면서 우리 삶의 근저를 형성해 주는 거지요.” “젊은 예술가들은 지금 어떤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걸까요? ”우리 시대에 제일 문제가 된 것은 개인·개성·자유였어요.그 후 개발독재로 산업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평등의 문제가 대두되었지요.그것이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어요.이후로는 양상이 달라졌어요.지금은 인류사의 두 개 사상 틀,즉 자유를 보수하여 연결짓고 평등의 요소를 확대하는 두 가지 요소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문학에서는 특히 그렇지요.인문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그러한 부분을 획득해 가야만 삶의 가치가 더 넓어지고 높아질 수 있습니다.“ 생은 연신 담배를 물고 한 가닥 연기를 내 쪽으로 연신,느리고 길게,흘려보내고 있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소설 쓰시려고 교수직을 버리신 적이 있으신데요? “소설은 모든 지식정보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교수는 지식정보가 신전이에요.그러니까 그 두 개가 다 부딪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인터뷰를 마치자점심때가 되었는데 선생은 당뇨때문에 바깥에서 식사를 하기 어려운 몸이 되었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나는 그런 선생을 막을 수가 없다.선생은 허름한 커피숍 문을 더듬더듬 열고 나가서는 우산을 들고 빗속으로 멀어져 갔다.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겸허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이청준 ●겸허가 밴 장인의 삶 김유정(金裕貞)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둘 없는 친구인 소설가 안회남(安懷南)은 그를 기려 ‘겸허(謙虛)’라는 소설을 썼다.가난과 폐병에 시달리던 친구의 생애를 슬퍼한 그 소설에는 김유정의 머리 맡에 겸허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더라는 사연이 적혀 있다. 용인까지 어떻게 찾아오냐며 서울 양재동 서초구민회관이라고 있는 데 그 앞에서 만나 어딘가로 가자고 하셔서 일손이 줄겠다는 마음에 덜컥 응했다.비는 내리는 데 내가 오히려 늦게 돼 선생이 약속 장소에서 두리번거리고 계셨다.서둘러 비 그을 곳을 찾는 데 오전인지라 다들 문을 닫고 허름한 커피숍 하나만 겨우 들어갈 만했다. 너무 누추해서 어떻게 하느냐고,다른 곳을 찾아 드리겠다고 했는데,선생은 괜찮다고,당신은 담배만 피울 수 있으면 된다고,주섬주섬 뭔가 종이쪽을 꺼내시는데,보니,팩스로 넣어드린 질문 용지다.오늘 하실 말씀을 빼곡하게 메모해 놓으신 그 종이쪽이 왜 그리 귀해 보였는지.담배를 피워 물고 앉으신 선생의 모습은 어딘가 이유도 없이 내게 미안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선생의 겸허였다. ●남도 멋에 한국 미학 구축 1939년 전남 장흥 출생인 이청준은 남도 예술의 멋과 향취를 한껏 뿜어내는 예인·장인이다.열 살에 뒤늦게 국민학교에 들어가 4·19가 일어난 1960년에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에 입학하여 4학년 재학중에 당대 지식계를 대변하던 ‘사상계’를 통해서 문단에 나왔으니,김현·김승옥 등이 중심이 된 ‘산문시대’ 동인들과 함께 4·19세대 작가라고 할 것이지만,독보적인 길을 걸었다. 어렸을 때 형제와 부친이 세상을 뜨는 등 외롭고 가난한 삶 속에서 소설을 쓴 그는 ‘병신과 머저리’(1966),‘매잡이’(1968) 등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동안 ‘언어사회학 서설’과 ‘남도사람’으로 대변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시민사회가 제시하는 합리성의 모순에 대한 반성,그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인간상의 탐구로 이어졌다.‘당신들의 천국’(1974-5),‘이어도’(1974),‘서편제’(1976),‘눈길’(1976),‘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1984),‘씌어지지 않은 자서전’(1985) 등 숱한 화제작을 남겼다. ‘흰옷’,‘축제’,‘신화를 삼킨 섬’ 등 근년 작품들은 시민사회의 합리주의적 도구성에 대한 반성,한국 사회와 역사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에 바탕해 용서와 화해,신화와 근원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최인훈이 한국 현대사를 서구적 지성으로 날카롭게 응시하면서 ‘표현주의적’ 모던함을 추구한 작가였다면 이청준은 그러한 문학사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미학을 구축한 문제적인 작가라고 할 것이다.
  • 명창 박동진 그는 누구인가 / 소리에 눈 뒤집혀 산 ‘큰 광대’

    8일 타계한 박동진 옹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할 만한 판소리 명창이었다.1992년 한 TV 광고에 출연하여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일갈한 것이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듯,우리도 몰랐던 우리 것의 소중함을 심어준 진정한 광대(廣大)였다.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인 박 명창은 1916년 현재의 충남 공주시 무릉동 감나무골에서 태어났다.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부모는 면서기라도 시킬 요량으로 그를 대전에 있는 중학교에 보냈지만,졸업을 몇달 앞두고 이동백 송만갑 장판개 이화중선 김창용 등 당대 명창이 망라된 협률사의 공연을 보고 자신의 말처럼 “눈깔이 홀랑 뒤집혀지는” 체험을 한다. 이후 머슴노릇을 하며 청양의 시골소리꾼에게 배우고,대구의 기생들 소리선생을 하다가 박초월 김소희 박귀희 등이 활동했던 여성창극단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조학진에게 적벽가,정정열에게 춘향가,박지홍에게 흥보가,유성준에게 수궁가,김창진에게 심청가를 잇따라 배우면서 앞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25살 무렵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자살을 하려고 독약을 마시는 쓰라린 기억도 있었다. 그러나 열등감을 오기로 극복하면서 한국전쟁 직후 만난 두 번째 부인의 내조 속에 하루 10시간씩 6년 동안 소리공부에 전념한 것이 오늘날 그를 있게 한 바탕이 됐다.1962년에는 국립국악원,1967년에는 국립창극단에 들어가 소리공부를 계속하면서 1968년 흥보가를 시작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완창했다.잊혀져 가던 판소리를 부흥시키고,수많은 명창들이 완창에 도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970년 서울신문 문화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73년에는 적벽가로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됐고,1982년에는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1998년 늦가을 고향에 판소리 전수관을 세우면서 후진양성에도 의욕을 보였지만,다음해 평생을 뒷바라지하던 부인과 사별한 뒤 급격히 쇠잔해졌다. 그는 지난달 7일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도 소리를 하시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하지.소리보다 더 좋은 것을 보지 못했어.요즘은 너무 양악에들 빠져 있지만….세상이 미쳐 돌아가 민족의 얼과 정신을 잃어가는 거지.”라고 변함없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남겼다. 한편 박 명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날 저녁부터 조문행렬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노무현 대통령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심대평 충남지사 등 각계에서 보낸 조화도 빈소 안팎을 메웠다. 빈소를 찾은 윤미용 국립국악원장은 “판소리 발전에 큰 획을 그으신 분”이라면서 “앞으로 이만큼 국악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추모했다.국악인 신영희씨는 “내가 TV코미디에 나가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국악인이 무슨 귀족이냐,광대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자신감을 얻은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빈소에는 이밖에 고인과 30여년 동안이나 호흡을 맞춰온 중요무형문화재 고법 보유자 주봉신 명고수와 이영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최승희·강정자 등 후배 국악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한편 고인이 마지막까지 원로사범으로 적을 두고 있던 국립국악원 광장에서 10일 신영희씨의 추모창 등으로 영결식이 치러지면 유해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선영에 안장된다. 서동철 기자 dcsuh@ ■소리에 시대정신·현장성 담아 민초 곁으로 69년 흥보가 등 다섯마당 완창 신기원 “나는 명창보다 광대가 더 좋다.좌중을 웃기고 울리는 광대야말로 소리꾼이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다.” 박동진 명창이 생전에 몇 번이고 강조하던 얘기다.그는 종종 ‘욕쟁이 명창’이라고 불릴 만큼 육두문자를 섞은 욕설을 늘어놓는 것이 특기였다.품위를 떨어뜨린다고 곱지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관객이란 파안대소하면서 웃음보를 터뜨려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소리에 서서히 빠져들기에” 적절히 의도된 것이었다. 박 명창은 국악팬들로부터 판소리의 대부로 떠받들어지기 이전까지는 ‘근본을 알기 어려운 소리’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당대의 명창들로부터 판소리 다섯 마당을 모두 섭렵했지만 스승들로부터 충분한 구전심수(口傳心授)를 이루지 못하고 ‘피나는 탐색 끝에 스스로 터득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 명창의 ‘약점’은,역설적으로 판소리의 시대정신과현장성을 살리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완벽하게 물려받은 스승의 바디가 없으니,평생 추종해야 할 소리의 모범 또한 없었다.판소리 문화의 보수적인 틀에서 벗어나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설도 과감히 바꾸었고,어려운 한문투를 쉬운 요즘 말로 고치는 것은 물론,그때그때 유행하는 말까지 집어넣은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대중성에만 머물렀다면 오늘날의 박동진으로 추앙받지는 못했을 것이다.그는 1969년 흥보가를 시작으로 판소리 전 마당을 완창해 토막소리에 그치던 소리판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여기에 변강쇠타령과 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숙영낭자전,무숙이타령 등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잊혀졌던 마당을 차례로 모두 세상에 빛을 보게 만들었던 것은 그가 판소리 문화의 재정립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1973년에는 9시간40분짜리 창작판소리 ‘이순신전’을 발표하고,‘예수일생’을 판소리로 짜 선교활동을 폈던 것은,현대사회에서도 판소리가 살아있는 예술로 충분히 효용을 갖고 있음을 확신했기에가능했던 일이었다. 서동철기자
  • [대한포럼] ‘통제’만 있는 청계고가대책

    강제부제 시행과 혼잡교통료 징수 확대.며칠 전 서울시가 내놓은 청계천 복원공사 착공 후 교통대책이다.대중교통 이용 등 시민자율적 대책이 먹혀들지 않으면 사용할 ‘카드’다.10부제든 홀짝제든 승용차의 이용을 억제해 교통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혼잡교통료 징수 확대는 교통 관련 비상대책이 거론될 때마다 나온 단골메뉴다. 대책의 효율성은 차치하더라도 강요 일변도의 권위주의적 자세는 지적받아 마땅하다.싫더라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발상이 입맛을 쓰게 한다.지금은 민선자치시장 시대다.행정의 최우선은 서비스에 두어야 한다.그런데도 서울시의 교통대책에는 통제만 보인다.시민 배려는 없다.별다른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가용 운행을 죄인 다루듯 통제하겠다고 한다.행정편의적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청계천 복원과 관련한 일련의 대책 상당수가 이런 식이다.시민 특히 당사자들의 의견 청취는 생략됐다.교통대책의 핵심 중 하나였던 도봉·미아로의 버스중앙차로제와 주요도로 일방통행제가 대표적이다.경찰과 해당구청이 우선반발했다.오히려 교통혼잡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결국 이들 대책은 내년으로 시행이 유보됐다.현장성 없는 탁상공론이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교통대책을 경찰과 미리 상의하지 않고 결정했다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교통과 관련해 뚜렷한 묘책은 없는 듯하다.자가용 강제부제 시행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부제를 피하려고 별도의 차량을 구입하는 등 부작용만 키우고 효과는 거두지 못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시민들의 불안감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다.청계고가를 포함,청계천로는 하루 17만여대의 차량이 이용한다.공사가 시작되면 전체 12개 차로 가운데 8개 차로가 사라진다.서울 도심의 도로사정을 감안하면 심각한 교통체증은 불을 보듯 뻔하다.교통대란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서울시는 도심 평균차량속도가 시속 21㎞에서 18.3㎞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 수치를 내놓고 있다.그 정도면 참을 만하지 않느냐는 식이다.그러나 이는 도면을 통한 분석결과일 뿐이다.현실적 검증은 받지 못했다.믿고 싶어도 그럴 만한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7월1일 0시를 기해 청계고가도로를 폐쇄하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은 확고하다.왜 서두르느냐는 물음에는 청계고가도로가 너무 낡아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당장 무너질 수도 있으니 얼른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말이 되는가.사실이라면 청계고가는 오늘 당장 폐쇄해야 한다.7월1일까지 기다릴 일이 아니다.아니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 순간부터 차량통행을 금지시켰어야 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정치권의 침묵은 이해할 수 없다.이명박 시장이 한나라당 소속이니 야당은 그렇다 치자.전문가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잇따르는데도 여당마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자충수로 판단해 즐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믿음이다.청계고가를 철거하더라도 대란은 없다는 것을 시민들이 믿게 해주어야 한다.가장 빠른 길은 실제로 문제가 없는지를 실험해 보는 것이라고 본다.문제가 있다면 보완한 뒤 다시 실험하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믿음만 생긴다면 서울시민들도 웬만한 불편쯤은 견딜 마음가짐이 돼 있다고 본다. 청계천 복구는 이명박 시장의 훌륭한 업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여론조사에서도 찬성 의견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시행시기는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적으로 많다.따라서 성급한 공사로 부작용이 잇따르다 보면 시장만 있고 시민은 없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업적이 업보로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선 실험 후 착공’을 간곡히 권한다. 김 명 서 논설위원 mouth@
  • [편집자문위원 칼럼]독자 부르는 ‘움직이는 신문’

    몇해 전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광고카피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 적이 있다.전통적으로 사랑은 은밀하고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길들여져 온 터여서 선뜻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그 은밀하던 사랑도 때론 폭포수나 우레보다 힘찬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대한매일의 변신 노력을 지켜보면서 ‘신문이 움직인다.’는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원래 활자매체의 속성이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과거형에 가깝다면,전파매체는 동시성이 있다는 점에서 현재형으로 분류된다.이는 신문이 즉시성,현장성에 길들여진 요즈음 젊은 세대들로부터 점차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따라서 ‘움직이는 신문’은 떠나는 독자를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한다. 대한매일은 지난 3월1일부터 ‘한눈에 오늘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대대적인 지면개편을 단행했다.사회면을 전진배치하고 문화·스포츠 기사를 후면에 배치했으며,크게 ‘종합’,‘사람과 사회’,‘경제와 e세상’,‘라이프 & 스포츠’ 등 4개의 묶음으로 나누어 유사한 기사들을 한데 모았다.우선 1면 제호를 우측으로 밀고 제호 밑에 공간을 확보하여 매일 세가지씩의 이슈를 강한 붉은색의 이미지와 컷을 사용,전면에 소개함으로써 그 날의 핫이슈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것은 인터뷰를 대폭 늘려,움직이는 신문의 견인차 역할을 맡게 했다는 것이다.‘기획’ 타이틀 아래 관심의 초점이 되는 인물들을 철저히 해부한 메인 인터뷰는 그 내용이나 형식,사진까지도 아주 파격적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이번 개각에서 화제를 일으킨 김두관 행자부장관은 설렁탕집에서 인터뷰를 했고,강금실 법무장관의 경우는 이틀에 걸쳐 밀착 취재를 했다.또한 제각각의 타이틀을 내건 인터뷰도 많아졌다.‘사람과 사회’ 묶음의 ‘이사람’난에는 ‘폴리시메이커’라 하여 정책 결정라인에 있는 고위공직자를 인터뷰했고,또 ‘요즘 어떻게…’ 에는 박세환 동춘서커스단장,권성덕 원로배우 등의 요즘 사는 모습을 전했다.‘피플 인 포커스’에는 조계종 총무원의 첫 비구니 부장이 된 탁연 스님 등 새로운 일을 맡은 이색 인물을 소개했다.그리고 ‘라이프 & 스포츠’ 묶음에는 ‘이사람의 건강보감’이라 하여 유명인들의 건강유지법을 인터뷰와 밀착취재를 통해 자세히 소개했다. 이밖에도 대대적인 고위공무원 인사를 앞두고 정부 각 부처의 후속인사 후보군 등을 도표로 정리한 것은 기사의 신뢰도를 높임은 물론 자료적 가치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대구 지하철 사고를 계기로 사회 각 시설의 문제점을 짚어본 ‘다음은 어느 곳’도 시의적절한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옥에 티라면 전체 면에 부여하고 있는 면제목 가운데 기사내용과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예를 들면 ‘퍼블릭’에는 ‘관가 돋보기’ ‘뉴스 인사이드’ ‘정책진단’ ‘신엘리트관료’ ‘외교관통신’ 등 정책내용이나 심층분석,관가의 뒷이야기 등 주로 공직사회에 대한 내용들이 다뤄지고 있는데 ‘퍼블릭’이란 이름은 잘 와닿지 않는다. 어쨌든 내일은 누가 나오나,무슨 기사가 나오나기다려지는 것만으로도 일단 ‘움직이는 신문’으로서의 첫출발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라 윤 도
  • 개인사진전 여는 서울수서署 최태희 경위

    “현장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경찰관의 업무는 사진작가의 작품활동과 닮은꼴입니다.” 현역 경찰이 ‘경찰의 날’을 맞아 ‘6월의 함성(월드컵)’이란 주제로 20일부터 개인사진전을 열고 있다.서울 수서경찰서에 근무하는 최태희(47)경위는 사진 관련 저작도 펴내고 개인전도 두 차례씩이나 가진 어엿한 현역 사진작가다.최 경위가 전문적인 사진찍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신경성 위장염으로 2년 넘게 고생한 뒤 자기수련을 위한 취미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학원에 다니며 사진을 배웠다.95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하는 국가기능 사진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사진의 매력은 현장성과 진실성”이라고 말하는 최 경위는 서울경찰청 기동대에 근무할 당시 전·의경 3만여명의 증명사진을 찍은 것을 비롯,경찰종합학교·경찰중앙학교 책자 사진과 기동대 교육용 홍보 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했다. ‘상복’도 따라 공무원 미술대전과 경찰문화대전,항공사가 주최하는 여행사진전 등에서 잇따라 입상했다.이름이 알려지자97년부터는 초·중등학교의 학생특별활동 강사로 자주 불려다녔다. 최근에는 한 월간 사진잡지가 선정하는 ‘5대 작가’에 뽑히는 영광도 맛보았다.아는 사람들의 권유로 ‘경찰현장’과 ‘풍경있는 서울’이란 주제로 개인전도 열었다. 이세영기자 sylee@
  • 이런책 어때요 300자 서평/ 스무날 동안의 황토기행 - 사진 곁들인 중국 기행문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중국 현지답사를 통해 ‘기록으로서의 중국’과 ‘살아있는 현실로서의 중국’을 접목시킨 중국 기행문 둘째권.‘북경에서 서안까지’에 이어 이번엔 ‘낙양에서 상해까지’돌았다.사진 280장 지도 40여장이 곁들여져,낙양-소림사-정주-개봉-곡부-태산-남경-소주-항주-상해까지 길을 따라가며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답사 여행서로서의 현장성과 정보성,역사해설서로서의 전문성과 역사적 감수성이 잘 녹아있다.해당 지역의 답사에 유용하도록 ‘세부지역도’가 있는 것이 특징.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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