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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오시비엥침의 추억/서동철 논설위원

    폴란드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크라쿠프를 찾았을 때는 6월이었지만,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떨어져 반팔 옷으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성 마리아 성당이 있는 중앙광장 주변의 시장을 둘러보다 야겔로니안 대학의 로고가 가슴에 새겨진 긴팔 티셔츠를 사 입었던 기억이 난다. 1364년 개교한 이곳 야겔로니안 대학은 중부 유럽에서는 1348년 문을 연 체코 프라하의 카를 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가 길다. 크라쿠프는 14세기 초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폴란드의 수도였다. 하지만 1759년 오스트리아에 편입됐고, 1815년부터는 크라쿠프공화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나치의 ‘살인 공장’이었던 오시비엥침과 브제진카 수용소는 크라쿠프에서 40㎞ 남짓 떨어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는 오스트리아 통치 시절 독일식으로 바뀌어 불린 지명이라고 한다. 폴란드 사람들은 오시비엥침과 브제진카를 외지 사람들이 침략자식 표현인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로 부르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런 방식의 호칭은 서울이나 부산을 여전히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처럼 게이조우(경성·京城)나 가마야마라고 부르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폴란드군 막사를 개조했다는 오시비엥침 제1수용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입구에 ‘노동이 자유를 주리라’는 유명한 나치의 선전 문구가 높이 내걸린 바로 그 수용소다. 반면 광활한 평원에 세워진 오시비엥침 제2수용소, 즉 브제진카 수용소는 그야말로 ‘초대형 살인 공장’이라고 해도 좋았다. 제1수용소의 20배가 넘는 크기에 300동의 막사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학살 대부분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철길이 붉은 담장의 수용소 내부로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죽음의 문’이라고 불렀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용소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한 탓인지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강조하는 엄청난 전율은 느끼지 못했다. 한국사람은 다르지 않은 분노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은 아닌지…. 관동대지진 당시와 난징의 대학살이 그렇고,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그렇다. 타민족을 말살하는 국가권력 차원의 폭거라는 점에서는 오시비엥침에서 나치가 했던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오시비엥침을 찾은 일본인 가운데 아베의 과거사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이곳의 참상에는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신문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오시비엥침을 방문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사진을 보면서 지난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종면 칼럼] ‘동굴의 수사학’ 누굴 위한 것인가

    [김종면 칼럼] ‘동굴의 수사학’ 누굴 위한 것인가

    남태평양 솔로몬 섬 부족민들은 농지를 개간할 때 나무를 자르지 않고 나무에 욕설만 퍼붓는다고 한다. 그저 나무를 향해 저주의 말을 쏟아내면 며칠 뒤 나무는 스스로 말라죽고 만다는 것이다. 인도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대사로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사람의 말귀를 알아들을 리 없는 무정물도 그럴진대 피와 살이 도는 인간이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선한 말은 목숨을 구하는 활인검이지만 악한 말은 죽음을 가져오는 살인검이다. 최근 논란을 빚은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 발언이 그 한 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으니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 중의 대통령’으로 굳건히 믿고 있는 사람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결국 홍 의원은 만무방 신세가 돼 원내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극단적인 말은 늘 화를 부른다. 이번엔 반신반인(半神半人)인가. 귀태 소동도 그렇지만 신격화 논란 또한 영 마뜩잖다. 남유진 경북 구미시장이 지난주 박 전 대통령 96주년 탄신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한 것이 사단이다.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개인의 헌사를 두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말꼬리를 잡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국민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추도의 자리에서, 더구나 자치단체장이라는 공인의 입장이라면 할 말과 안 할 말쯤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상궤를 벗어난 소신은 밀실의 고백으로 족하다. 일본도 아니고 무슨 현인신(現人神) 모시듯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다. 공경이 아니라 불경이다. 당장 한쪽에선 “사이비 종교수준”이니 “미친 나라”니 하는 격한 반응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을 굳이 두려워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불감앙시(不敢仰視)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오죽하면 대구지역의 한 유력신문은 반신반인이라는 말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됐네! 이 사람아’라고 말할 듯하다”는 씁쓸한 촌평까지 실었겠는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구미시장은 존경하는 인물을 제대로 존경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는 보다 정제된 형태로 내실있게 이뤄져야 한다. 일찍이 17세기 영국 계몽주의 사상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눈을 가려 사물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네 개의 우상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동굴의 우상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비춰 세상을 재단하려는 개인적 편견을 가리킨다. 그런 옹색한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상의 그림자를 거둬내야 비로소 진실이 보인다. 반신반인이라는 주문에라도 걸려 박 전 대통령의 전체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그르친다면 그건 개인을 넘어 민족사의 불행이다. 최근 대표적인 친노무현계 인사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언급이 주목된다. 그는 중국의 덩샤오핑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평가기준을 들어 마오쩌둥 격하 움직임을 물리친 사례를 소개하며 박 전 대통령은 경제발전 공로 등을 감안하면 공적이 7, 과오가 3 정도 된다고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을 겨냥한 정치적 발언인지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변방’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그런데 ‘중심’을 자처하는 모모한 인사들이 반신반인이니 뭐니 캄캄한 ‘동굴의 수사’를 일삼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역사적 자해행위다. 지금이야말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핵으로 하는 근현대사 해석의 골을 메워나가야 할 때다. 우리는 정녕 화해와 용서의 게티스버그 정신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가. 세상사 모든 것은 공과상반(功過相半)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정직하게 평가하고 기억하면 된다. 그것이 사위어가는 국민대통합의 불씨를 되살리는 길이다. 허공에 대고 반신반인을 외치는 ‘그들만의 카니발’은 통합의 적이다. 크게 하나가 되는 대동(大同)의 제전이라야 진정한 박수를 받을 수 있다. jmkim@seoul.co.kr
  • [이슈&이슈] 부산 영도다리 도개기능 복원

    [이슈&이슈] 부산 영도다리 도개기능 복원

    “금순아~ 어디로 가서~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국민 가수 현인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 일부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어 ‘민족의 다리’로 불리는 부산 영도다리가 47년 만에 복원돼 다시 들어 올려진다. 부산시는 오는 11월 완공을 앞둔 도개교인 새 영도다리를 하루 한 차례 들어 올리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앞서 시는 지난 9일 중구 대교동 영도다리 재가설 건설현장에서 도개기능 시연행사를 가졌다. 새 영도다리에는 해체된 옛 영도다리 자재가 일부 사용됐다. 허남식 부산시장이 도개용 버튼을 누르자 거대한 다리 상판이 기계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된 영도다리의 전체 길이 215m 중 31.3m 부분(상판 무게 590t)이 2분 만에 75도 각도까지 들어 올려지자 이를 지켜보던 행인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일시정지했다 다시 내려오는 데 10분이 걸렸다. 1966년 도심 교통량 증가와 노후화로 도개 기능이 중단된 지 47년 만이다. 시는 2007년 7월 영도대교 보수·복원공사의 첫 삽을 뜬 지 6년여 만에 상부공(교각이나 기초공 위에 있는 상판) 가설을 모두 완료하고 도개교 시험운전을 했다. 다리 복원공사는 롯데건설이 맡았으며 사업비 1000억원은 롯데쇼핑이 전액 부담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11월 개통된 영도다리는 중구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영도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이자 최초의 도개교였다. 이 교량은 선박을 통행시키려고 교량의 본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한 다리로, 도개 기능이 중단될 때까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길이 31m 상판이 하루 7차례 정도 올라가면서 그 아래로 배가 지나갔다. 다리가 들어 올려질 때를 맞춰 수많은 인파가 구경올 정도로 장관을 이뤘다 한국전쟁 때는 몰려든 피란민이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 친·인척, 연인 등을 만나려고 다리 밑을 찾으면서 ‘우리나라 1호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며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산가족들에겐 하염없는 기다림의 장소이기도 했다. 가족들의 생사를 알고 싶어 역술인을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리 밑에는 점집이 줄지어 들어서기도 했다. 2000년대 초 폐쇄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다리 주변은 추억의 사진을 남기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시는 결국 4차로의 다리를 해체하고 도개 기능을 살린 6차로의 신설교량을 2007년 착공했다. 예전에는 도개를 위해 50마력짜리 유압식 전동기가 쓰였지만, 지금은 전기식으로 소음이 거의 나지 않는 215마력짜리 전동기 2대를 사용한다. 94개의 대형 톱니바퀴 기어로 1개가 돌아갈 때마다 1도씩 최대 94도까지 들어 올릴 수 있게 설계됐다. 현재 공정률 91%인 영도다리는 길이 215m, 폭 25.3m로 도개교 길이는 31.3m 규모로 복원됐다. 상부공 가설은 5개 블록으로 나뉘어 설치됐다. 시는 마무리 작업과 함께 도개교 시험운전을 몇 차례 더 한 뒤 11월 말쯤 정식 개통할 예정이다. 시민 이재웅(57)씨는 “어릴 때 부모 손잡고 영도다리가 올라가는 장면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며 “아련한 추억이 서린 영도다리의 상징적인 도개 기능이 복원된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시는 이 다리가 완공되면 관광상품화해 하루 한 번씩 들어 올릴 계획이다. 시간대는 교통량이 많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한 점심시간대 등을 고려하고 있다. 허 시장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매일 특정 시간대에 다리를 들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경찰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영도다리의 옛 도개 기능 재현을 앞두고 해양관광도시 영도의 관문지역 경관을 한층 산뜻한 모습으로 바꾸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영도다리∼봉래교차로∼부산대교 1.55㎞ 구간을 대상으로 국비와 시비 56억원을 투입해 내년 말 준공을 목표로 영도다리 특화거리 조성사업, 영도 관문 상징가로 조성사업 등 3개 개선 사업을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영도 관문지역의 무질서한 가로시설물과 보행공간에 토털 디자인 개념을 도입, 보행자 중심의 가로환경으로 조성된다. 영도다리 특화거리 조성사업은 영도경찰서 앞 ‘영도와 영도다리 스토리텔링 공간 조성사업’ 등이 주요 내용이며 영도 관문지역의 새로운 관광자원 역할을 하게 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원로 가수 ‘현인’에 푹 빠진 중학생…2대8 가르마까지 ‘경악’

    원로 가수 ‘현인’에 푹 빠진 중학생…2대8 가르마까지 ‘경악’

    원로가수 ‘현인’ 광팬 중학생 화제 원로가수 ‘현인’에 푹 빠진 15세 중학생이 화제다. 2일 방송된 KBS 2TV ‘안녕하세요’에서는 가수 현인을 좋아하는 ‘애늙은이’ 중학생 아들 때문에 고민이라는 박희경 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 중학생은 최신곡은 전혀 듣지 않고 원로가수 현인의 ‘신라의 달밤’ 등의 노래를 부르고 레코드판도 직접 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인을 좋아하는 중학생은 8대2 가르마의 헤어스타일에 어머니에게 한복을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해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또 자신의 꿈이 가수라고 밝힌 이 중학생은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해 현인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 눈길을 끌었다. 이 중학생은 현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편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현인 좋아하는 중학생이라니”, “현인은 성인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지?”, “현인 노래를 부르고 대단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잔치 잔치 열렸네~ 전국 곳곳 ‘책 잔치’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책 잔치가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다. 2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학교 등이 연대해 전국 각지에서 6700여건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풀뿌리 독서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 독서활동가가 170여개 독서 활동에 참여하며, 인문학자와 함께 관련 지역을 탐방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전국 120여개 도서관에서 11월까지 진행된다. 지역주민이 관심을 둔 주제를 바탕으로 지역 대학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서아카데미 강좌’가 11월까지 운영되며, 취약지역 주민을 위한 ‘문학 작가 파견 사업’도 전국 70개 도서관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 전시회를 비롯해 디지털북페스티벌, 장애인 독서한마당 등 풍성한 행사를 마련했다. 13일부터 10월 27일까지 본관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이미륵:독일이 사랑한 동양의 현인’ 전시회에는 도서관이 소장한 이미륵 개인 문고 자료를 중심으로 미공개 서신, 친필 원고, 유품, 친필 서예 작품 등 80여점이 전시된다. ‘디지털북 페스티벌 2013’(24~26일)은 최신 기술을 활용한 전자책 전시 및 체험을 통해 디지털 출판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30일에는 제3회 장애인 독서 한마당이 열린다. 각 지역에서는 ‘책 읽는 학교, 책 읽는 직장, 책 읽는 마을’(서울 성북), ‘보수동 책방 골목 책의 소리를 듣자’(부산 중구), ‘찾아가는 북콘서트 책 마실 가자’(경기 화성) 등의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오는 25일 서울 서대문 구립 이진아도서관에서는 독서문화진흥에 기여한 유공자를 발굴해 포상하는 ‘제19회 독서문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파주 북소리(9월 28일~10월 6일, 파주출판도시 일대), 와우북페스티벌(9월 18~23일, 마포 홍대주차장 주변) 등의 대형 행사도 이어진다. 다음 달 23일에는 도서관, 출판, 독서 관계자 3000여명이 참여하는 제50회 전국도서관대회가 제주에서 열린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현대사회 문화의 현주소와 운명을 묻다

    문화의 영역에서도 소비자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창작자와 구분지어 문화예술을 누리는 입장과 주권을 강조하는 개념으로도 통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문화예술의 소비자는 시장 논리에 들어 있다. 실제로 문화는 백화점에 진열된 온갖 상품과 마찬가지로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유행과 소비의 한 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행의 시대’는 이른바 불확실성으로 표현되는 현대사회 속 문화의 운명을 짚어 낸 흥미로운 책이다. ‘멈출 수 없는 소비사회에서 잠재적 고객의 혼을 빼놓으려 수없이 경쟁하면서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 보관소.’ 책에서 정의된 문화의 현주소는 이런 설명으로 이어진다. “소비시장은 우리를 문화의 요구에 복종하도록 길들이고, 우리는 소비시장에 의해 식민화되고 착취된다.” 문화는 원래 민중에게 최고의 사상과 창의력을 전해 주고 교육하는 변화의 동인이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그런 사명의 역할 대신 유혹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그 문화가 만들어 낸 유행을 매일 소비하고 살아가고 있다. 온 인류가 공유하는 똑같은 문화는 초국적 자본이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상품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백화점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곧 진열대에서 사라질 상품처럼 동시적인 소비와 유행이 일상화된 문화 역시 다양성이 바탕이다. 많은 현인들은 그래서 이제 시장으로 넘어간 문화의 역할을 놓고 이렇게 말한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다문화주의가 대안이라고.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은 다양성 존중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이해한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분열의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책 말미에서 저자는 대중과 예술이 계속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못 박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 시대의 예술은 만남 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나고 실현된다. 그러한 만남을 위해서는 지역적인 풀뿌리 예술과 공연 계획을 장려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리코노믹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리코노믹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리코노믹스’(Likonomics)가 경제 전문가들의 입에 부쩍 오르내린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이름과 이코노믹스를 합성한 신조어로 ‘리커창의 경제정책’이라는 뜻이다. 세계 2위의 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경제정책에 미세한 변화만 줘도 국제 금융가가 요동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20일 금융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림자 금융을 규제하기 위해 돈줄 죄기에 나서자 은행 간 단기금리가 무려 25%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른 ‘투매 쓰나미’가 24일 상하이 증시를 덮쳐 주가를 5%나 끌어내리는 바람에 세계 금융시장을 ‘블랙 먼데이’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 단적인 예이다. 리코노믹스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더라도 부양책을 쓰지 않고, 공공부채를 줄여 나가며, 경제구조 개혁을 단행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10개 분기 중 9개 분기에서 성장률이 떨어졌고 지난 2분기 성장률도 7.5%까지 주저앉았다며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거론했다. 중소기업 경기 악화로 그림자 금융이 폭증하고 지방부채가 급속히 부실화하고 있는 등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리 총리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경제지표 때문에 정책 방향을 갑자기 수정할 수 없으며, 어렵게 만들어낸 구조조정 기회에도 영향을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장도 20일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개혁을 통해 성장과 취업 문제에 대처하겠다”면서 “중국이 또다시 대규모 부양책을 실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리 총리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 경제에 낀 거품을 빼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중국 정부의 생각처럼 그리 녹록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7일 중국이 현재의 경제 모델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오는 2018년부터 성장률이 지금의 절반 수준인 4%로 반 토막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때문에 리코노믹스가 주룽지(朱鎔基) 부총리 시절인 1990년대 초반과 같이 성장률 둔화를 감수하며 경제구조 개혁을 통해 국유기업 부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승부수가 될지,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처럼 자충수를 두게 될지 첫 고비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데 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은 24%(2012년 WTO 통계 기준)로 호주(29%)에 이어 세계 2위이다. 특히 가공 수출을 위한 중국의 중간재 수입은 지난 5월 3.2% 줄어든 데 이어, 6월에는 7%나 감소해 하락 폭이 더욱 커졌다. 중국에 중간재를 주로 수출하는 우리 경제로서는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 포인트 떨어지면 우리 성장률도 0.4% 포인트 하락한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추산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이 2.8%에 머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을 만큼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가 리코노믹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khkim@seoul.co.kr
  • 지율 스님, 문재인 의원 상대 명예훼손 소송 패소

    지율 스님, 문재인 의원 상대 명예훼손 소송 패소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자서전 ‘운명’ 가운데 천성산 터널과 관련된 부분을 허위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정효채)는 환경운동가 지율 스님이 문 의원을 상대로 낸 출판물에 대한 사실보도요청 및 명예훼손 소송에서 24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증거, 자서전의 문맥 등을 살펴보면 해당 부분이 아주 정확하게 기술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허위의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천성산 전통사업의 백지화, 대안 노선 검토를 공약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문 의원의 표현인 ‘재검토’는 ‘백지화’와 의미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허위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지율 스님의 명예와 직접 관련이 없다”면서 “따라서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문 의원은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해 대화와 타협을 위한 조정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해당 부분을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율 스님에 대한 부정적 내용도 서술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율 스님은 지난해 6월 문 의원을 상대로 자서전 ‘운명’의 내용 정정과 사과문 게재, 20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당시 지율 스님은 “책에는 천성산 터널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따른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며 “하지만 노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노선 재검토가 아니라 백지화와 대안노선 검토였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천성산 터널 사건을 정치적으로 불교계의 사안으로 만든 것은 참여정부였다”면서 “노 대통령이 갈등을 조정한 게 아니라 갈등을 조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슈&논쟁] 제한상영가 등급제

    [이슈&논쟁] 제한상영가 등급제

    영화가에 ‘제한상영가 등급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논란의 불씨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 이 영화는 지난 6월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첫 번째 심의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일반극장 상영이 불가능했다. 극 중 아들과 어머니의 성관계 장면 등이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의 이유였다. 감독은 20여컷을 수정하거나 삭제해 재심의를 요청했으나 지난 16일 영등위는 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이에 감독은 초강수로 맞서고 있다. 필름을 더 잘라내 영등위에 세 번째 심의를 신청하되 오는 26일 영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연 뒤 찬반투표에서 30% 이상 반대하면 아예 개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제한상영가 등급 전용관이 없는 현실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영등위원장의 퇴진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贊] “외부로 표현되는 예술의 자유는 그 사회가 용인하는 한계 지켜야” 이우승 변호사·영등위 감사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가 “직계 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 표현이 과도하여”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이를 두고 영화계 일부에서는 제한상영가 결정이 ‘사전검열’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와 등급분류 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외부에 표현되지 않은 채 내부에 머무는 한 절대적인 자유에 속하는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와는 다르다. 외부적으로 표현되는 예술의 자유는 그 사회에서 용인하는 한계를 넘는 경우 법률로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 자유가 아니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모든 예술적 표현이 가능해야 하며 어떤 영상물이든 자유롭게 상영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언제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표현물이 공개되고 유통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제한상영가 등급의 헌법적 권위가 확인되는 것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폭력적, 선정적 표현이 담겼거나 일반적인 사회윤리나 국민정서에 끼칠 부정적 내용이 담긴 영화라면, 이를 충분히 감안하여 제한된 공간(제한상영관)에서 상영하라는 제도이다. 영국, 호주 같은 선진국들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운영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공공성에 기반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등급제도는 이미 완성된 영상물에 대한 어떠한 변경도 요구하지 않으며 단지 관람에 적절한 연령별 등급을 결정하고 내용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그것도, 대중을 상대로 상업적 상영을 할 영화에만 적용된다. 그럼에도 최근 영화계 일부에서는 “예술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위헌”이라며 등급분류의 공익적 가치와 신뢰를 부당하게 흔들고 있다. 현 등급분류제도가 “사전검열이 아니며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한 이용연령분류 절차”라는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남용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등급제도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널리 채택한 제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세르비안 필름’이란 영화가 좋은 예다. 2012년 영국에서는 이 영화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행위 및 아동 성폭력 장면 등이 문제가 돼 4분 11초를 삭제한 후에야 18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영국은 등급기구에 영화 삭제 권한이 있음) 호주에서는 ‘등급거부’ 결정이 나와 상영을 하지 못했고 스페인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한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 선진국에서도 그 나라의 공공적 가치를 저해하는 표현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제도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해를 조정하는 타협과 절충의 산물이며, 표현의 자유와 공공적 이해의 중재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어 사실상 상영할 곳이 없다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등급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정부에서 제한상영관 운영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았으니, 이는 별도로 해결할 문제다. 제한상영가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이해한다면 ‘표현의 자유’ 논쟁은 쉽게 종식될 것으로 기대한다. [反] “제한상영 등급은 상영불가 판정… 도덕적 잣대 시험 관객에 맡겨야”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1996년 무렵 나는 영화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그 매체의 기자들은 지속적으로 수년간 끈질기게 검열철폐 캠페인 기사를 썼다. 그때까지 한국의 심의제도는 원성이 높았다. 조금씩 규제기준이 완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검열이었다. 검열과 심의는 다르다. 심의는 관람등급만 매기는 것이고 검열은 제작주체에게 삭제를 강요하는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에 확립된 완고한 기준은 질긴 관성을 발휘해 누구에게는 금기를 깨는 예술적 표현인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사회적으로 유해한 불량품으로 보였다. 2000년 헌법재판소가 당시의 심의제도가 사실상 검열이라며 위헌판결을 내린 것은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그때 이후로 한국영화는 확대된 표현의 자유를 업고 르네상스를 누렸다. 한참 영화심의제도 개선 문제로 시끄러웠던 그 시절,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를 기억한다. 그 영화는 예매 개시 직후 삽시간에 표가 매진됐고 극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외설 판정을 받고 극장개봉이 불투명했던 그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이들은 시큰둥했고 어떤 이들은 흥분했다. 가장 위선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의 대답은 이랬다. “이 영화는 극장개봉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이 보기엔 부도덕하고 유해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발품을 팔아 영화를 봤을 어떤 시민들의 이런 반응을 방송 인터뷰에서 보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당신은 봐도 되고 우리는 보면 안 되나”라고 즉각 반문하고 싶어진다. 우리 중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랜 세월 내면화된 검열관의 마음이 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가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착각을 받는다. 요즘 영화인들 사이에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기준이 퇴행적이라는 불평을 많이 듣는다. 강우석의 ‘전설의 주먹’은 학교 폭력이 나온다는 이유로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이 영화에는 분명 학교 폭력이 나오지만 주제는 청소년기에 잘못된 폭력을 휘두르면 인생이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친절하게 설득하는 건전한 가족영화 쪽이다. 요사이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는 두 차례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린 것은 상영불가 판정이다. 한국에는 제한상영가 등급 전문상영관이 없으니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려면 심의위원들이 지적한 부분을 잘라야 한다. ‘뫼비우스’에 상영불가 판정을 내린 심의위원들에게 항변하고 싶다. 당신들은 판단해도 되고 우리는 판단하면 안 되나. 명색이 영화평론가인 필자도 아직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존재하지 않는 극장에서 상영하라니 김기덕의 ‘뫼비우스’는 사실상 포르노나 극악무도한 스너프 필름과 같은 대접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김기덕의 영화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평론가지만 그가 위험한 예술가라는 점만은 존중한다. 그가 도덕적 금기를 깨는 묘사를 일삼는 감독이고 그의 영화의 표현수위가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가 금기시된 묘사를 할 때 그럴 만한 예술적 동기를 제시하는 통찰의 소유자라는 점은 인정한다. 아마도 ‘뫼비우스’는 이전까지의 김기덕 영화에 비해 더 과격한 묘사가 들어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이자 관객으로서 나는 이 영화가 건드리는 도덕적 잣대의 시험에 기꺼이 들고 싶다. 이미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한 영화감독의 신작을 밀실에서 몇 명이 자기들 마음대로 상영불가 판정을 내리는 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기덕은 최근 보도자료를 돌려 관계자들을 모아 시사한 뒤 여론청취라도 하겠다고 읍소했다.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도덕적 금기와 혼동하는 이런 상황에서 문화선진국 운운은 비극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3년만의 신작 ‘색채가’ 평가 엇갈려

    무라카미 하루키 3년만의 신작 ‘색채가’ 평가 엇갈려

    ‘하루키 특수’ ‘하루키 열풍’이라는 수식어를 어김없이 재현하며 ‘그’가 돌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64)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가 지난 1일 베일을 벗었다. 하루키를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그의 소설이 문화계의 축제냐, 출판시장의 독이냐를 따지는 논란은 무의미하다. 출간된지 하루 만에 출판가는 엇갈린 작품 평으로 분분하다. ‘1Q84’ 이후의 문학적 압박을 딛고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했다는 호평에, 새로운 시도를 찾을 수 없다는 박한 평가까지. 신작 속으로 순례를 떠나본다. 스무살의 다자키 쓰쿠루는 반년간 죽음의 위(胃) 속에 잠겨 있었다. 쓰쿠루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 따위는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다.”(7쪽) 계기는 명백했다. 다섯 손가락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뤘던 네 명의 친구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절교를 당했기 때문이다. 16년의 가혹한 세월이 흘렀다. 서른여섯의 쓰쿠루는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친구 사라는 왜 거부를 당했는지, 스스로 이유를 밝혀보라고 주문한다. “안쪽에서는 아직도 조용히 피가 흐르고 있을지 몰라”라며. 완벽했던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남자는 ‘왜’라는 물음을 품고 순례를 시작한다. 시선을 내내 붙드는 하루키식 서사의 흡인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간결한 문체와 단순한 이야기 전개로 독자를 물음표의 풀장에 빠뜨린다. 일본에서 ‘청춘연애소설로의 귀환’이라는 평이 나왔듯 투명한 청년의 감성도 그대로다. 상실을 돌아보며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세심히 짚어나가는 작가의 성찰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개인의 고독, 소외 등에 대한 불안의 코드도 짙다. 이름 속에 적(赤), 청(靑), 흑(黑), 백(白)의 ‘색채가 있는’ 네 친구들에 반해 ‘색채가 없는’ 쓰쿠루가 따돌림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듯이.‘1Q84’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상실의 시대’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배경으로 깔았던 음악 애호가 하루키는 이번에도 음악을 이야기를 엮는 재료로 내보냈다. 헝가리 출신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소곡집 ‘순례의 해’가 주인공이 기억을 재생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는 통로가 된다. 순례의 끝에 쓰쿠루는 결국 용서와 회복에 이른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충분하고 견고한 껍질을 만들어낼’(430쪽) 수 없었던, 위기 앞에서 수단을 가릴 처지가 못 됐던 친구의 나약함을 이해한다. 이를 두고 최재철 한국외대 교수는 작품의 주요 키워드로 회복과 소통을 꼽으며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오려는 개인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소설은 후회와 상실감, 상처로 가득한 고독한 청년이 순례를 통해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쳐 스스로 회복하고 구제하는 과정을 그렸다”며 “동시에 쓰쿠루의 이름 속 한자 작(作)이나 그가 세상과 연결되는 장소인 철도역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는 데서 개인이 과거와 상처에 함몰되지 않고 소통을 통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오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 복제’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는 점은 아쉽다. ‘해변의 카프카’ ‘노르웨이의 숲’ ‘스푸트니크의 연인’ 등 전작들의 기시감이 짙다는 지적이 많다. 조주희 한양여대 교수는 “인물의 설정이나 변화 과정, 인물 간 구도, 불명확한 의도 등이 전작들과 겹친다.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여러 수수께끼를 남겨놓는다는 점도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하루키 평전 ‘하루키 하루키’의 저자인 일본 문학평론가 히라노 요시노부 야마구치대 교수도 조 교수를 통해 본지에 신작의 명암을 전해 왔다. 그는 작품 속 표현인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빗대 이렇게 평했다. “‘1Q84’ 이후 창작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이 정도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그의 작가적 노력과 역량에 감탄했다는 게 좋은 뉴스다. 나쁜 뉴스는 전작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점이 없다는 것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중 공동성명 문구 ‘디테일 외교전’

    오는 27일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통해 채택할 부속서와 공동선언문인 ‘한·중 미래 비전 공동성명’은 문안 조율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상이 외국 정상과의 양자 회담에서 부속서를 채택한 것은 1998년 당시 김대중(DJ)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유일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부속서가 채택된 적은 없다. 그만큼 양국 정상이 한·중 관계의 확장적 발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얘기다. 한·중 공동성명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양국 정상의 표현 수위다. 10여 차례에 걸쳐 진행된 비공개 실무접촉의 핵심 의제가 ‘비핵화’이며, 표현 문구를 놓고도 팽팽한 ‘디테일 외교전’을 펴고 있다는 후문이다. 19일 정부소식통 등에 따르면 우리 측은 공동성명에 ‘북한 비핵화’라는 문구를 적시하자고 요구하는 반면 중국 측은 기존의 관례적 표현인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유지하자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정권이 북한뿐이라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양국 공동성명에 비핵화 이행 주체를 명확히 밝히자는 게 우리 측 입장이다. 정부는 북핵 불용의 확고한 원칙 아래 북한의 선(先)비핵화 조치를 압박하는 표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지만 중국은 한반도의 포괄적인 비핵화 촉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국 측 인사들과 교류가 깊은 한 전문가는 “중국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불용 및 비핵화 협력 합의를 양국 당국자의 구두 브리핑을 통해 발표했다”면서 “중국이 문서로 남는 공동선언문에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는 안보 현안을 기록하는 것에 외교적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비핵화를 전제 조건으로 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중국 측도 적극적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 역할론을 중시하고 있고 중국 측도 충분한 이해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방한했던 탕자쉬안(唐家璇) 전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중국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호응한 바 있다. 동북아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한 다자 대화틀인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도 중국 측의 지지가 표현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측은 그러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확장 모델인 ‘서울 프로세스’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탈북자 문제의 의제화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통상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문구는 회담 직전까지도 실무교섭이 이뤄지고 표현도 수정된다”며 “문구보다는 양국 정상의 실질적인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타나토스의 시대를 어찌할 것인가?/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타나토스의 시대를 어찌할 것인가?/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이제는 사라진 여신이 되었지만 동양의 여신 서왕모는 양면성을 지녔다. 그녀는 마귀할멈과 같은 모습일 때는 죽음의 여신이지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일 때는 불사약을 지닌 생명의 여신이었다. 신화를 상징으로 풀면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내재하는 삶과 죽음의 양면성이라 하겠다. 프로이트도 우리에게는 삶의 본능인 에로스적인 욕망과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적인 욕망이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유명 인사의 자살 이후 이를 모방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신드롬, 과거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자살 공유 사이트라는 것의 존재, 꽃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서슴없이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실정 등을 볼 때 확실히 타나토스적인 욕망이 목전의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상황에 따라, 소신에 따라 정당화되고 때로는 찬미되기도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시엔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를 보면 로마의 현인 세네카가 총애하는 여종의 시중을 받으며 우아하게 자기 손으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있다. 신미양요 때의 미 해병대 측 기록을 보면 강화도 전투에서 패배한 조선군이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서 그 투혼에 감동했다는 대목이 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충정공 민영환은 음독해 순국한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라났다는 충절의 일화를 남기고 있거니와 오백년 조선 시기를 통해 여성들이 정절 이데올로기에 의해 목숨을 버린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과거에는 자살이라 하지 않고 자진(自盡)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썼다. 그러나 나라가 망할 때 명분에 죽고 사는 노론계의 인물들은 즉각 자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행합일을 추구하는 소론계의 인물들은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저항하는 방식을 택해 투쟁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 어떤 충절의 행위라 해도 자진이 미사(美事)로만 여겨진 것은 아니었다. 근래의 비극적인 사건 중 필자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무명의 한 젊은 주부와 한때 화려한 은막의 스타였던 최진실씨의 자살이다. 특히 최진실씨의 경우는 친인척의 잇따른 자살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주었던 사건이었지만, 필자는 좀 다른 각도에서 비극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무명의 한 젊은 주부. 남편은 떠돌이 노동자였다.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손 벌릴 곳도 없는 그녀는 생활고를 못 이겨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투신했다. 아이 때문에 산다고 했는데 그런 이유마저도 존재하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구원받기를 포기하고 어린 두 아이와 더불어 자살을 감행한 극한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는,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최진실씨는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입지전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표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중은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인터넷에서의 갖은 음해와 비방은 결국 그녀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근대의 불우한 여성 작가 김명순이 절망한 ‘독한 세상’을 감내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그녀의 모습은 이 사회가 약자의 부상에 대해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 주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로 향하고 한류가 세계를 석권한다 할지라도 자살률 1위의 국가라면 결코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아니다. 금수강산, 한강의 기적, IT 강국, K팝 등 그 모든 찬사도 죽음 앞에서는 의미가 없으며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의 존재도 빛이 바랜다. 자살률 1위라는 이 불행한 현실은 젊은 날의 ‘아픔’이나 누구나 겪는 삶의 ‘무게’ 정도로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벗어났다. 무명의 한 젊은 주부와 최진실씨의 비극적인 사례에서 보았듯이 그것이 설사 개인의 ‘아픔’이나 ‘무게’에서 출발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사회가, 우리가 껴안고 책임질 일이었다. 황지우의 시구를 넓게 인유하자면 우리 모두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는 마음가짐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 北 수석대표 ‘급’ 회담 때마다 달랐다

    北 수석대표 ‘급’ 회담 때마다 달랐다

    남북 당국회담 무산 이후 북측 수석대표의 ‘급’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북측은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내세운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에 대해 장관급이라고 주장한 반면, 우리 측은 차관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조평통에 대해서도 북측은 “북남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하는 공식기관”이라고 주장하지만, 남측은 당 공식조직인 통일전선부의 외곽 사회단체쯤으로 보고 있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남북 접촉 과정을 돌이켜 보면 남측은 대부분 통일부(또는 통일원)가 창구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나섰던 정도가 예외에 해당한다. 반면 북측은 들쭉날쭉했다. 2007년 8월 이관세 당시 통일부 차관은 최승철 당시 통전부 부부장과 개성에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을 가졌다. 통일부와 통전부가 카운터파트였다. 김양건 통전부장도 2009년 8월 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과 개별 면담했다. ‘통일부장관의 상대는 통전부장’이란 우리 측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보다 훨씬 앞서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에도 정상회담 예비접촉 수석대표로 이홍구 당시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과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가 합의서에 서명했다. 정부는 김 비서가 통일전선부장을 겸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는 통전부보다 조평통이 전면에 나선 경우가 더 많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21차례 계속된 남북 장관급회담의 북측 대표인 전금진, 김령성, 권호웅의 공식 직함은 ‘내각 책임참사’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전 정부 때의 남북대화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려 아마추어처럼 대북 협상을 할 것이 아니라 과거 남북대화 경험을 되살려 보다 성숙한 남북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영도다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 “니(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우(주워)왔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 장난투의 놀림이었지만 참말로 알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영도다리에서 부산 사람들은 고향 같은 친근함을 느낀다. ‘구포다리는 걷는 다리요, 영도다리는 드는 다리요, 영감다리는 감는 다리요’라는 익살스러운 부산지방의 구비 민요도 있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조금 못 미치는 영도(影島)는 선사시대의 패총 유적이 많고 해안 경치가 아름다운 섬이다. 영도와 부산의 본토 남포동을 잇는 다리가 영도다리다. 영도의 남쪽 끝에 있는 태종대로 가려면 영도다리를 건너야 한다. 6·25 피란 시절 영도다리 밑은 피란민들이 비를 피하고 잠을 청했던 공간이었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처럼 영도다리는 피란민들이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향수에 빠졌던 곳이기도 했다. 영도다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4년 11월 준공됐다. 준공식에는 멀리 김해나 밀양에서까지 6만 인파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밤새 제등행렬도 이어졌다고 한다. 영도다리가 명물 중의 명물이 된 것은 국내 유일의 도개교(跳開橋,draw bridge)였기 때문이다. 영도다리는 부산의 남항과 북항 사이에 있어서 배가 영도 남쪽을 돌아가는 시간 낭비를 해결하는 비책이 도개교였던 것이다. 영도다리는 하루에 여섯 차례 들어 올려졌다. 거대한 물체가 하늘로 치솟아 오를 때 처음 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부산사람들은 그저 “영도다리가 끄덕끄덕한다”고만 했다. 그러나 교통량의 증가로 1966년 9월부터는 영도다리가 들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다리를 들어 올릴 때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려야 했다. ‘배 몇 척을 보내려고 수많은 차들이 기다려야 하느냐, 배가 돌아가면 되지’ 하는 원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노후화된 영도다리를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결국 복원하기로 결정되어 2006년에는 부산시 기념물 제56호로도 지정됐다. 이듬해 7월 보수·복원공사가 시작되어 최근 상판 연결공사가 끝났다. 부산시는 다리를 복원함과 동시에 47년 만에 도개 기능도 재현한다고 한다. 올 연말에는 영도다리가 ‘끄덕끄덕’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낭만적인 풍경을 위해서라면 잠시 교통이 정체되는 것쯤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中 윈난성 후타오샤 트레킹 체험… ‘차마고도’를 걷다

    中 윈난성 후타오샤 트레킹 체험… ‘차마고도’를 걷다

    지금 여기는 차마고도(茶馬古道)입니다. 정확히는 여러 갈래의 차마고도 가운데 중국 윈난성(雲南省) 위룽쉐산(玉龍雪山·5596m)과 하바쉐산(哈巴雪山·5396m) 사이의 후타오샤(虎跳峽)로 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길은 험합니다. 말과 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습니다. 협곡의 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호랑이(虎)가 건너뛸(跳) 수 있었겠지요. 한데 사방을 둘러친 풍경은 몇 마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고 빼어납니다. 풍경에 홀려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곧장 수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겁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길인 셈이지요. 차마고도의 후타오샤 구간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족히 이틀은 걸립니다. 이번엔 ‘빵차’를 타고 이동하다 핵심 코스에 내려 트레킹을 즐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단기 속성 코스’ 쯤 될까요. 전 구간을 발품 팔아 걷는 것에 견줄 수야 있겠습니까만, 그 길에서 만난 감동의 깊이 만큼은 결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후타오샤 트레킹에 나서기 전 몇 가지 알아둘 게 있다. 먼저 삼강병류(三江幷流)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진샤강(沙江)과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 등 세 개의 물줄기가 26㎞ 거리를 두고 함께 흐르는 것, 혹은 그 지역을 뭉뚱그려 일컫는 말이다. 세 강은 각각 양쯔강과 메콩강, 살윈강의 최상류를 이룬다. 이 가운데 후타오샤를 관통하는 물줄기가 진샤강이다. 겨울엔 옥빛, 여름엔 황톳빛으로 빛깔을 달리한다는 강이다. 진샤강은 남진을 거듭하다, 장강제일만이란 곳에서 180도 회전해 리장으로 흘러들어 간다. 리장 안에서만 614㎞를 굽이친 진샤강은 쓰촨성 등을 거치며 한껏 폭을 넓히는데, 그게 바로 양쯔강이다. 샹그릴라현 후타오샤진에 이른 진샤강은 위룽쉐산과 하바쉐산 사이를 할퀴며 지난다. 바로 이 구간, 그러니까 오래전 한몸이었다가 지각변동으로 떨어진 두 개의 거대한 산이 몸피를 바짝 좁힌 협곡이 후타오샤다. 협곡의 길이는 20㎞ 남짓. 폭은 가장 가까운 곳이 30m 정도다. 진샤강과 설산의 최대 표고차는 3900m에 달한다. 차마고도는 바로 이 후타오샤의 거친 산자락 사이를 지난다. 차마고도는 ‘밑줄 쫙’ 쳐가며 알아두자.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꼽히는 곳이다. 실크로드 보다 앞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차마고도는 윈난성 등 중국 서남부의 푸얼차(普?茶)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선 ‘평균고도 4000m가 넘는 산자락에 다져진 험준한 길이 5000㎞ 정도 이어진다’고 적고 있다. 이 길을 따라 교역에 나선 상인 조직이 마방이다. 마방들은 차나 말 외에 소금과 약재 등 다양한 물품들을 실어 날랐다. 티베트 불교가 전래된 것도 바로 이 길을 통해서였다. 차마고도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후타오샤의 차마고도는 그 중 하나다. 중국 정부가 민간인의 티베트 입경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차마고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중국 서남부의 리장(麗江)은 소수민족의 전시장 같은 곳이다. 궁벽한 소도시에 20여개의 소수민족들이 살아간다. 중국인들조차 소수민족의 삶을 엿보기 위해 리장을 찾는다고 한다. 리장 시내를 벗어나 214번 국도로 갈아탄다. 티베트의 라싸까지 가는 국도다. 오래전 마오쩌둥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가던 길이기도 하다. 낡은 길이 주는 감동은 ‘신작로’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깊이를 가졌다. 길 양 쪽으로 줄곧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흐른다. 황톳빛 진샤강 위에 세워진 경홍교(景虹橋)를 건너면 샹그릴라다. 티베트 말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란다. 유럽인들에겐 1933년 영국의 제임스 힐턴이 지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전설의 이상향으로 각인된 곳이다. 샹그릴라는 해발 3300m로 리장(2400m) 보다 고도가 높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리장과 다소 다른 건축 양식 등에서 서역의 향기가 물씬 전해 온다. 후타오샤 트레킹은 최소한 1박 2일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후타오샤의 정수만 골라 보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후타오샤진에서 진샤강과 나란히 달리는 로 패스(Low path)를 따라 차를 타고 가다, 하바쉐산 중턱의 중도객잔(2600m)까지 오른 뒤, 차마고도와 합류해 관음폭포까지 다녀오는 식이다. 이때 동원되는 탈 것이 ‘빵차’다. 식빵처럼 통통한 형태를 한 승합차다. 생긴 건 볼품없지만 차마고도 트레킹에선 조랑말 만큼이나 유용하다. 차마고도를 에워싼 산은 거대하다. 그에 견줘 사람과 길은 턱없이 작다. 사진으로는 도무지 표현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그저 실핏줄 같은 저 길 위로 사람과 말이 걷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석이 깔려 있지 않은 길은 바닥이 깊이 파였다. 흙길이라고는 하나, 단단하기가 포장도로에 견줄 만한데도 길 가운데가 움푹 파인 거다. 얼마나 많은 말과 사람들이 밟고 지났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몸 돌릴 틈 없는 좁은 벼랑길에서 마방끼리 마주치면 어떻게 될까. 가이드 김성철씨는 “마방을 이끄는 우두머리 ‘마고토’끼리 협상을 벌여 적은 규모의 대상이 싣고 온 짐과 말을 모두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고 했다. 물론 물건값은 온전하게 보전해준다.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오도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오가며 마주하는 위룽쉐산과 하바쉐산은 높고 또 깊다. 웅혼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그 험준한 산에서도 생명이 자란다. 키 작은 관목들이 진회색 산자락을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거인이 짧은 초록빛 비단 치마를 걸친 듯, 어색한 몰골이다. 하지만 그 치열한 생명력은 경외롭기까지 하다. 주민들의 삶도 산자락을 따라 팍팍하게 이어진다. 급경사의 산자락에 계단식 밭을 일궈놓았다. 염전 형태의 광물 채집 시설도 이채롭다. 설산 위쪽의 광산에서 배출된 물을 가둔 뒤, 물에 함유된 미세한 광물을 걸러내는 설비다. 현지 가이드는 “허술한 시설로도 해마다 2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거둔다”고 했다. ‘짭짤’한 수준을 넘어 화수분에 가깝다. 차마고도의 풍경이야 어디서나 가슴 벅차지만, 마지막 산굽이에서 마주한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왼쪽으로 관음폭포가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고, 수십길 아래로는 장선생객잔 등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져 있다. 그 사이로 진샤강이 황톳빛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간다. 멀리서는 실핏줄 같았던 관음폭포지만, 바짝 다가서 보면 제법 수량이 풍성하다. 차마고도 버전의 오아시스다. 물은 맑고 차다. 하바쉐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짓한 트레킹에 아쉬움도 남을 법하다. 한데 이쯤에서 돌아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길이 준 울림은 이미 차고도 넘쳤으니 말이다. 윈난을 말할 때 리장(麗江)고성(古城)을 빼놓을 수 없다. 사방가(四方街)에서 방사선 형태로 뻗어 나간 네 갈래 길 위에 1000년을 넘나드는 건축물들이 어깨를 맞댄 채 서 있는 곳. 길바닥엔 오화채색석이 촘촘하게 깔렸고, 위룽쉐산(玉龍雪山)의 만년설 녹은 물이 세 갈래로 마을을 적시며 흘러가는 곳이 바로 ‘동방의 베니스’ 리장고성이다. 해발 2400m의 나시족자치현인 리장은 중국 내에서도 ‘깡촌’으로 통했다. 그러다 1996년 발생한 대지진은 고성의 가치를 한껏 높여 줬다. 인근의 현대식 건물들은 하릴없이 스러졌지만, 고성은 끄떡없이 서 있었던 것. 3000여 채에 달하는 우아한 목조건물들은 서로 맞닿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연환계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실핏줄 같은 100여개의 골목길로 연결된 건축물은 서로가 버팀목 노릇을 한다. 반면 화재엔 취약하다. 조조의 대군도 제갈공명의 화공 한 방에 케이오되지 않았던가. “고성 앞에 세워진 물레방아 모양의 대수차(大水車) 또한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액막이”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길바닥엔 박석이 깔렸다. 수많은 말과 마방들이 오가는 동안 길이 파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근 흑룡담에서 발원한 수로는 세 갈래로 나뉘어 고성 곳곳을 적시며 흘러간다. 리장고성이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성 안에는 약 3만명의 주민이 산다. 그중 90%가 나시(納西)족이다. 나시족은 개구리를 숭상한다. 개구리가 하늘에서 동파교 경전을 가져와 인간에게 전해 줬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시족의 개구리에 대한 친밀감은 전통 복장에서 잘 드러난다. 나시족 여인들마다 등 뒤에 장식물을 메고 다니는데, 이게 꼭 개구리처럼 보인다. 거북이 등껍질을 닮은 장식물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원을 수놓았다. 머리엔 달처럼 둥근 모자를 쓰고 다닌다. 이른바 피성대월(披星戴月)이다. 별을 등에 지고, 머리엔 달을 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새벽별 보며 집을 나선 뒤 달 뜨는 밤에 돌아올 만큼 오래 일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사와 농사를 전담했던 나시족 여인들의 힘겨운 생활사가 배어 있는 표현인 셈이다. 리장고성은 1200년 전(1700년이란 견해도 있다) 세워진 바이사(白沙)고진(古鎭)과 1000년 역사의 수허(束河)고진, 그리고 800년 된 다옌(大硏)고진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리장 시내의 다옌고진을 리장고성이라고 부른다. 세 곳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시간을 내 따로 찾는 게 좋겠다. 리장고성을 기준으로 수허고진은 4㎞, 바이사고진은 10㎞ 정도 떨어져 있다. 규모는 작아도 번다한 관광지가 돼 버린 리장고성보다 한결 옛 정취가 살아 있다. 리장고성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게 위룽쉐산이다. 여태 단 한 차례도 인간에게 정상을 내주지 않은 산이다. 해발고도는 ‘현재’ 5596m다. 한라산을 3개 쌓아 놓은 것과 맞먹는 높이다. 지각활동이 활발해 지금도 높이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산군들의 자태가 기막히다. 은빛의 용이 꿈틀대는 듯하다. ‘옥룡’이란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산은 거대하다. 5000m 넘는 고봉만 13개, 72개에 이르는 4000m급의 ‘낮은’ 봉우리는 이름조차 없다. 그 안 어딘가에 ‘만년설 녹은 물로 차를 끓여 마시고, 사슴을 타고 다니며, 호랑이로 밭갈이를 하는 사람이 산다’는 전설 속 옥룡제삼국도 있을 게다. 불끈 솟은 산은 리장 어디서나 풍경의 주인이 된다. 위룽쉐산에서 캐낸 오화채색석은 리장고성 등의 길을 포장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산 중턱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 승속을 가르는 듯한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면 해발 4506m의 빙천 세계다. 고산 증세로 머리는 어지럽고, 가슴은 답답하다. 예서 4680m의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가야 한다. 후들대는 다리로 마지막 계단을 딛고 서면 웅장한 위룽쉐산의 산군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글 사진 샹그릴라·리장(중국)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수첩] ▲아시아나항공이 중국 리장까지 주 2회(목·일요일) 전세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리장 공항이 생긴 이래 외국계 항공사로는 처음이다.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 목요일 출발은 4박(기내 1박) 5일, 일요일 출발은 5박 6일 일정이다. 6월 16일까지 1차 운항, 7월 18일~10월 17일 2차 운항한다. 아시아나 전세기를 이용한 관광상품은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투어2000, 혜초여행사, 라이브투어 등 다섯 곳에서만 판다. 대부분 리장과 다리(大理), 혹은 리장과 후타오샤 등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리장을 기준으로 후타오샤까지는 100㎞, 버스로 3시간쯤 걸린다. 위룽쉐산은 25㎞로 40분 거리다. 리장고성 수로의 원천인 흑룡담은 리장 시내에 있다. 가뭄으로 물은 바짝 말랐으나 리장 주민들이 성소로 여기는 곳이니 둘러보는 게 좋겠다. ▲위룽쉐산 빙천세계에선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50위안(약 9200원)에 방한 점퍼를 빌릴 수 있다. 고산증세를 완화시키는 산소통도 1개 당 50위안이다. ▲후타오샤 트레킹에 이용되는 조랑말은 200~300위안쯤 받는다. 객잔 숙박비는 150 위안선이다.
  • 슈스케2 김지수, 다이어트 성공…충격적인 반전외모

    슈스케2 김지수, 다이어트 성공…충격적인 반전외모

    슈퍼스타K2가 낳은 대표적인 스타 가수 김지수가 충격적인 다이어트 결과를 네티즌에게 선보였다. 27일 김지수의 한 지인 트위터에 따르면 “너무 큰 버거. 이렇게 먹고 운동으로 다이어트 성공. 60kg대 진입”이라는 글과 두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 속 김지수는 빅 사이즈 햄버거와 비교될 정도로 홀쭉해진 뱃살을 선보였다. 또 마치 성형을 한 것처럼 몰라보게 달라진 날렵한 턱선을 자랑하고 있다. 김지수는 햄버거를 입에 문 채로 활짝 웃어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소속사 측은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서도 하루 3시간 정도 운동을 통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인 듯”,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까”, “외모도 더 멋있어졌으니 앞으로 좋은 노래도 많이 들려주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빌 게이츠, 6년 만에 1위 갑부로

    빌 게이츠, 6년 만에 1위 갑부로

    기부 천사의 6년 만의 귀환과 독점 재벌의 추락.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57)가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73)을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되찾았다고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와 USA투데이 등이 보도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BBI)에 따르면 게이츠의 보유자산(지난 15일 기준)은 727억 달러(약 81조원)로 세계 부자 1위에 올랐다. 올 초 주가 상승에 힘입어 재산이 100억 달러(10조원)나 늘어난 덕분이다. 지난 2000년대 중반까지 10년간 이 분야 선두를 지켰던 그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7년 이후 5년 연속 2위에 머물렀다. 반면 5년간 BBI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슬림은 721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달 멕시코 의회가 반(反) 통신 독점법을 통과시킨 뒤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자산이 20억 달러 이상 줄어들어 최고 갑부 자리를 게이츠에게 내줬다. 해당 법안은 시장 점유율 50% 이상의 방송·통신 기업을 강제로 분할하게 하는 제도로, 슬림이 이끄는 텔멕스텔레콤과 아메리카 모빌은 각각 멕시코 휴대·유선전화 시장의 70%, 90%를 차지하고 있다. 두 부호의 자산 차이는 6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는 정반대다. 게이츠는 세계 최대 규모(362억 달러)의 공익 재단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280억 달러를 기부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모범적인 부자로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슬림은 국가 위기 당시 벌어들인 돈으로 독점 사업을 펼쳐 멕시코 국민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BBI 3위는 총 자산 596억 달러를 기록한 ‘오마하의 현인’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82)이 차지했고, 유럽 최고 부자이자 스페인 의류제품 ‘자라’(ZARA)로 유명한 인디텍스 창업자 겸 회장 아만시오 오르테가(76)는 560억 달러로 4위에 올랐다. 아시아 최고 부자는 278억 달러로 15위에 오른 리카싱(85) 청쿵그룹 회장이었고, 한국인은 113억 달러로 95위를 기록한 이건희(71) 삼성그룹 회장이 유일했다. 한편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100대 억만장자의 재산이 2조 100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4400억 달러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순위에 든 부호 중 지난해 재산이 불어난 억만장자는 무려 80%에 달해 글로벌 경기 침체 중에도 탁월한 재테크 수완을 발휘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5개국어’ 가능” 朴 대통령 외국어 실력 어떻길래…

    8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의회 영어 연설로 박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영어와 중국어, 스페인어, 불어 등 5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토론이 가능할 만큼 능숙하고 중국어와 스페인어는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방미 기간 중에도 오바마 대통령과 통역 없이 10여분 간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 “어린 시절 청와대에 살면서 미국인 교사에게 과외를 받았고 프랑스어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가면서 배웠다”고 적었다. 박 대통령은 1974년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 그르노블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앞서 1972년에는 스페인에서 현지어로 연설한 경험이 있다. 중국어는 청와대를 나온 뒤 EBS를 통해 5년 이상 독학했다고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은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각국 사절단을 접견하는 과정에서도 돋보이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영어로 대화할 때 세련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을 청와대는 강조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지난 1월 14일 와이트만 주한 영국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와이트만 대사가 “예전에 한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지만 한국어를 잘 하지는 못한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영어로 “It‘s the thought that count(해보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취임직전인 지난 2월 22일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써먼 연합사령관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대해 영어로 “ditto(동감이다)”라고 화답했다.  피오라소 프랑스 고등교육연구부장관을 접견했을 때에는 박 대통령이 격식을 갖춘 불어 표현인 “Veuillez vous asseoir(어서 앉으시지요)”이라고 했고, 지난 26일 에스삐노사 페루 제1부통령과의 접견 마무리에 박 대통령이 “Muchas Gracias”(매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페루 측 인사들이 놀란 표정을 짓자 박 대통령은 “Hablo un poco espanol”(제가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대답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고도 한다. 앞서 25일 류엔동 중국 국무위원을 접견하면서 박 대통령은 “Xie xie”(감사합니다), “Zai jian”(다시 봅시다)등 기본적 인사를 직접 건넸다. 온라인뉴스팀 iseoul@seoul.co.kr
  • [부고] 동교동계 거목 ‘사무라이’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

    동교동계 원로로 6선 의원을 지낸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이 2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군사정부와 여당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짙은 눈썹 등으로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1987년 당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무렵 신민당에서 당론에 반대하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한 이철승·이택희 두 사람의 제명을 앞장서 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1932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영등포공고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연합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1979년 10대 국회에 당선된 뒤 11대를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6선을 기록하면서 입지전적인 정치인으로 불렸다.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김대중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부터 동교동계 거목으로 성장했다. 15대 국회에서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고,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후보 확정 이후 탄탄대로였던 그의 정치인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단일화협회 소속으로 탈당했으며, 국민경선을 사기극이라고 폄하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03년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그해 3월 의원직을 사퇴했다. 고인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일석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장학사업에 힘써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창례 씨와 장남 종수(재현인텍스 소장), 장녀 혜경(주식회사 설악 대표이사), 사위 팽헌수(한국마리나협회 수석자문위원)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이대 목동병원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6시30분.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고인은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된다. (02)2650-2743.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다. 무작정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동백섬이 선연하게 보이는 해운대는 싫었다. 대신 자갈치 아지매가 손짓하는 ‘남포동’과 부산 속 작은 섬인 ‘영도’를 단 하루 만에 돌았다. 화통한 남포동 꼬불꼬불 미로엔 ‘없는 게 없다’ 부산에 몇 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도 ‘부산 가이드북’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종종 허풍을 떤다. 그건 부산을 아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의 표현법이었다. 누군가 부산 여행을 도와 달라 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나는 넓은 오지랖을 쫙 펴곤 여행 멘토를 자처했다. 부산 초보자의 단골 질문 중 하나는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멀어?”다. 멀다.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지하철을 타면 최소 45분이 걸린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운대에선 맨얼굴의 부산을 느낄 수 없다. ‘짠’하고 ‘찐’한 부산을 만나고 싶다면, 부산역에서 신평행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된다.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5분이면 남포역과 자갈치역에 도착한다. 큰 도로를 중앙에 끼고 왼쪽이 자갈치시장, 오른쪽이 남포동이니 두 역 중 어디에 내려도 무관하다. 그곳엔 “어서 오이소” 하고 두 팔을 내젓는 부산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정신없이 돌아가는 남포동엔 없는 게 없다. 먹을 것도 ‘천지 삐까리매우 많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입을 것도 ‘천지 삐까리’, 볼 것도 ‘천지 삐까리’. 남포동의 초입은 대영시네마와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마주 보고 서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 광장. 광장에는 현재 영화인 48명의 손이 박제돼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과 배우 이자벨 위페르, 홍콩의 욘판 감독도 핸드 프린팅 대열에 합류했다. 남포동 인근의 낡은 극장에서 시작된 ‘작은 영화제’ 앞에는 이제 ‘국제’라는 호칭이 붙는다.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영화인의 손도장을 찾다 정신을 차리니 구불구불한 골목 안이었다. 얼키설키 뒤엉킨 골목은 거대한 미로 같았다. 지하철역을 등지고 남포동 BIFF광장에 서면, 앞으로 창선동 먹자골목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부평동 족발골목, 오른쪽으로 광복동 패션거리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릇노릇한 씨앗호떡과 굵직한 부산 떡볶이가 차려진 노점상을 비집고 쭉 직진하면 ‘아리랑거리’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의자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비빔당면, 국수 등을 흡입하고 있다. ‘도떼기시장, 깡통시장’ 등 다양한 별명을 자랑하는 국제시장도 아리랑거리와 멀지 않다. 1945년 해방 이후 각종 군수 물자가 시장을 통해 풀렸는데, 지금도 국제시장에선 일제, 미제 등 각종 수입품이 팔리고 있다.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남포동을 떠나 자갈치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니, 찾아가기 참 쉽다. 오랜만에 찾은 자갈치 시장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최민식 사진작가가 그리워졌다. ‘날 것의 사진’을 고집한 그가 왜 그토록 자갈치 시장을 사랑했는지, 시장 주변을 한 바퀴만 돌면 알 수 있다. 자갈치 시장은 펄떡이는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언제나 역동적이다. “회 한 접시 먹으소.” 권하는 호객행위도 여기선 거추장스럽지 않고 정겹다. 자갈치 시장 뒤편에선 영도다리가 훤히 보였다. 1 자갈치시장에선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장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길이 분주하다 2 신신한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 남포동 길거리 음식 트로이카 씨앗호떡 BIFF광장엔 긴 줄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단 하나.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서다. 기름이 흥건하게 둘린 판 위에 찹쌀 반죽을 떨어뜨리면 금세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다. 호떡의 가운데를 가위로 쭉! 그 속으로 땅콩, 해바라기 씨 등의 견과류가 두둑하게 들어간다. 뜨끈뜨끈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찹쌀이 입 안에 엉겨 붙고 견과류가 오도독 씹힌다. 위치 부산시 중구 남포동 5가 BIFF광장 일대 가격 900~1,000원 비빔당면 국수만 비벼 먹는 건 아니다. 새하얀 당면도 부산에서는 새빨간 양념 옷을 입는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거창하지 않다. 면과 양념장을 분주하게 섞은 뒤 토핑으로 올라온 김치, 시금치를 곁들여 젓가락질 하면 된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2,000원 충무김밥 속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김밥’과 함께 부추 김치, 무 김치, 오징어 무침이 반찬으로 나란히 따라 나온다. 하얀 종이가 깔린 쟁반 위로 검정, 빨강의 조화는 참 곱다. 정신없이 김밥 하나, 반찬 하나를 떠 먹는 동안, 할머니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징어는 남기지 말고 다 챙겨 무래이, 안 그럼 혼낸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3,000원 영도등대는 태종대 여행의 메인요리다 ©나명선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수줍은 영도 한 맺힌 다리 너머, 외로운 섬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화자는 영도다리를 서성이는 어느 사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흥남부두에서 누이 금순이의 손을 놓친 오라비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걸린 외로운 초승달을 보며 흐느꼈을 것이다. 어디 금순이와 금순이의 오라비만 헤어졌을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피란민들은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간절한 주문을 외웠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잔인한 약속은 마음의 덫이었다. 희망고문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영도다리를 서성거렸다. 오늘은 오려나, 내일은 오려나…. 자갈치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피란민의 애끓는 애환이 덕지덕지 붙은 영도다리를 건넜다. 그림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절영도·絶影島이 살았다는 섬이 바로 영도다. 실제 신라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선 말이 자랐다고 한다. 신석기 사람들에게도 영도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신석기 유적인 ‘동삼동 패총’은 영도의 역사를 말해 준다. 국립 해양대학교 입구에 들어선 동삼동 패총 박물관에 바로 그 ‘패총’이 잠들어 있다. 먼 길을 온 여행자가 영도까지 찾아드는 이유는 뻔하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곤 했다는 ‘태종대’가 영도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던 버스가 태종대에서 멈췄다. 나는 태종대와 무려 세 번이나 만났다. 자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직접 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 태종대 축제에서 반딧불이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太宗臺태종대’라 쓰여 있는 묵직한 대형 돌덩이도 그대로였고, ‘다누비’ 열차도 여전히 손님을 태우고 씽씽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쭉쭉 뻗은 나무가 조성돼 있고 그 사이사이로 살짝살짝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여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던 바다는 남항 조망지에서 인심을 썼다. 부산의 대표 항구인 남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항 조망지’는 야경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남항 조망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태종대 최고의 명당인 전망대와 영도등대가 나오니까. 전망대엔 두 아이를 끌어안은 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로 나가면 모자상의 비밀이 풀린다. 고개를 빼꼼 내밀자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바위와 자살바위가 양쪽으로 보였다. 모자상을 세운 건 다 자살바위 때문이다. 한때 한 해 평균 30명이 자살바위 인근에서 목숨을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모자상을 세운 뒤로는 자살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전자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주전자섬’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내 눈을 따라다녔다. 어느 지점에서 보든 바다 위에는 주전자섬이 떠 있었다.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의 정중앙엔 주전자섬, 그 뒤로 대마도, 거제도가 나란히 서 있다. 물론 대마도와 거제도는 날씨가 쾌청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손님이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마음이 급하겠지만 영도등대는 놓쳐선 안 된다. 영도등대를 봐야 태종대를 다녀갔다고 ‘인증’할 수 있다. 1906년 설립된 영도등대는 벌써 100살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태종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불투명해졌다. 어느덧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도등대 위에 자리한 태종사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다시 뭍으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지나던 순간, 신기하게도 배 멀미를 느꼈다. 1 영도등대 일대는 예술이 꽃피는 문화공간이다 2 바다가 펼쳐지는 태종대 산책로에선 봄을 만끽할 수 있다 3 여행객을 태우고 씽씽 달리는 다누비 열차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www.koreatravel.or.kr 태종대 짬뽕 태종대에 도착하면 범상치 않은 중화 요릿집이 하나 버티고 있다. 이름부터 정직한 ‘태종대 짬뽕’.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이 많은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하다. 짬뽕을 주문하면 종업원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태종대 짬뽕 맞지예?” ‘태종대’ 세 글자에 유독 힘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이 오른 꽃게, 입을 살짝 벌린 홍합, 도톰한 오징어 등…. 국물을 한 입 떠 먹으면 “살아있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주말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3시에도 손님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후루룩 먹고 일어나는 건 암묵적인 예의다. 찾기도 쉽다. 버스 정류장에서 태종대 입구 쪽으로 걸어가면 왼편으로 식당이 보인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동삼 2동 986-9 문의 051-405-2992 대표메뉴 일반 짬뽕 4,500원, 태종대 짬뽕 6,000원, 태종대 짜장 5,500원, 하얀 짬뽕 6,000원 ▶travie info 추천 여행사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약 3시간. 비싼 기차 비용을 들여서 내려갔건만, 초행길이라 헤매면 곤란하다. 더구나 주말이면 부산행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도권 거주자라면 열차 티켓부터 현지 이동까지 도와주는 여행사의 힘을 빌려도 좋다. 기차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홍익여행사는 다양한 부산 여행 상품을 갖추고 있다. 상품가격도 KTX 왕복 비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저렴한 편이다. 문의 홍익여행사 www.ktxtour.co.kr 02-717-1002 태종대 탐방 코스 태종대를 돌아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걷기, 다누비 탑승, 유람선 탑승. 이중에서 4.3km의 순환도로를 운행하는 열차 ‘다누비’를 타면 태종대 관광은 훨씬 편하다. 단, 주말이면 탑승객이 워낙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주요 코스 광장 승차장→태원자갈마당→구명사→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정문 입구 하차장 탑승료 1,500원 부산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9번 출구, 시내버스 88번, 101번 남포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6번 출구, 시내버스 8번, 30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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