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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 모드로 편의점 알바하는 유튜버

    ‘문재인 대통령’ 모드로 편의점 알바하는 유튜버

    “저희 가게에서 계산할 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할인받을 것입니다” 이는 지난 25일 유튜브 채널 보물섬이 공개한 영상 일부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귀에 익숙한 표현인데 조금 다릅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조금 바꾼 것이죠. 이 영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분해 손님을 맞는 설정입니다. 영상을 보면, 한 남성이 문재인 대통령 분장을 하고 등장합니다. “19대 알바생 문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최저 시급 6470원이 적합한지 몸소 체험해 보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손님이 고른 맥주를 보며, “벨기에 맥주, 독일 맥주. 맥주 대통합”이라고 말한 뒤 할인 소식과 축하를 건넵니다. 그리고는 계산을 하려다 말고, “밥 좀 먹고 오겠다”고 말합니다. 손님이 당황하자 그는 “사람이 먼저다. 알바가 먼저다”라며 “밥을 먹고 오겠다”며 자리를 뜹니다.그는 곧 삼각 김밥 하나를 들고 돌아와서 “제가 썩어빠진, 유통기한이 지난 적폐청산 김밥을 먹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손님)께서는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깨끗한 김밥만 드시고요”라며 “적폐김밥 제가 다 해치우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영상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정말 비슷하게 한다”, “보는 내내 웃음이 나온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영상을 제작한 ‘보물섬’팀은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개그 지망생이기도 한 이들은 배우 김상중과 문재인 대통령 성대모사의 콘텐츠를 제작해 누리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 영상=보물섬 유튜브 채널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당나귀 후보자는 골라내야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당나귀 후보자는 골라내야

    세상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혜성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외양은 그럴듯하나 정작 보잘것없는 기량을 보여 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주위로부터 비웃음을 받게 되는데 이런 서투른 짓거리를 두고 검려지기(黔驢之技)라고 한다. 그 쥐꼬리만 한 기량마저 바닥이 난 것을 검려기궁(黔驢技窮)이라고도 했다. 중국 검주(黔州)에는 당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끌고 와 산 아래서 길렀다. 덩치와 목소리가 큰 이 낯선 동물을 본 호랑이가 혹시 산신령이 아닐까 두려워 가까이 가질 못했다. 그런데 이 당나귀는 큰소리치고 뒷발질하는 것 외엔 별 재주가 없음을 알고, 달려들어 잡아먹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검주는 지금의 귀주(貴州)로 고구려 연개소문의 둘째 아들 연남건의 유배지다. 연개소문이 죽은 후 서로 도우며 국사를 돌보던 세 아들은 주위의 이간질로 내분이 일어난다.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고구려는 내분까지 겹쳐 결국 당나라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보잘것없는 기량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야말로 검려지기의 당사자였다. 이렇듯 하찮은 재주를 믿고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고 화를 자초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우선 겸손함이 없다.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된 김굉필은 지방관으로 부임한 조원강의 부탁으로 그의 아들인 조광조를 가르치게 된다. 어느 날 김굉필은 어머님께 보내려던 꿩고기를 고양이에게 도둑맞자 하인을 심하게 나무란다. 이를 본 조광조가 군자의 말씀이 신중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직언하자 “네가 나의 스승이구나”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겸손함이다. 이런 겸손함이 있어야 “전하의 좌우에는 오직 내시들과 궁녀들만이 있을 따름이니 전하께서 평소에 무슨 책을 보고 계시고,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어떤 말을 듣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는 이율곡의 만언봉사 같은 직언을 진심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독선과 독주만 있을 뿐이다. 겸손함은 곧 애정이다. 밤새 내린 눈으로 덮인 나무들을 보고 제주 유배인 추사는 “시원찮은 나무들이 모두 매화가 되었다”(雜樹園村倂是梅)고 했다. 참으로 무릎을 치게 하는 표현인데 시원찮은 것들을 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힘이 바로 애정인 것이다. 겸손함과 애정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겸손함과 애정이 없으면 사람이 천박하고 경솔해진다. 그것이 바로 검려지기요 검려기궁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번만은 잘 뽑아야 한다. 정치인을 믿느니 사기꾼을 믿는 게 낫다고 하지만 최근에 우리가 겪은 국정 농단의 참담한 비극을 생각하자면 아무리 심사숙고해도 모자람이 없다. 큰소리나 치고 뒷발질이나 하는 후안무치의 검려지기 후보자들은 반드시 골라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함과 애정으로 이 사회의 어려운 계층들을 위할 줄 알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고 세계만방에 줏대를 세움으로써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어쩌면 이런 바람이 허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대와 달리 지난 시간이 늘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단초만은 마련돼야 한다. 혹한의 광장에서 우리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갈등했던 것도 이런 바람 때문이지 않았는가. 이런 바람이 남의 일이 아니라면 당나귀의 재주밖에는 없는 검려지기의 후보자를 골라내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인 것이다.
  • [기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아리아리’/이건범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

    [기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아리아리’/이건범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서로 힘을 북돋우며 주고받을 인사말로 “아리아리”를 골랐다. ‘파이팅’이라는 정체 모를 영어 구호 대신에 이 아리땁고 여운이 길게 남는 우리말을 쓰겠단다. 멋진 결정이다. 국립국어원에서 2004년에 ‘파이팅’의 순화어로 ‘아자’를 권장해 방송에서 제법 사용되는 편이지만,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힘을 얻어 가는 ‘아리아리’가 ‘아자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적대감을 부추기는 ‘파이팅’ 말고 다른 말을 쓰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된 일. 그 가운데서도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제안한 ‘아리아리’는 단연 돋보였다. 그는 ‘아리아리’가 ‘없는 길을 찾아가거나, 길이 없을 때는 길을 낸다’는 뜻의 우리말이라며, “정선 아리랑 등 각종 아리랑에 ‘아리아리’의 길 찾아간다는 의미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세상의 굽이굽이 온갖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긴 안목으로 호방하게 길 나서는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시인 성기완 교수의 풀이는 조금 더 자세하다. 광개토대왕비에서 한강을 이르는 ‘아리수’의 ‘아리’는 ‘크다’는 뜻의 옛 우리말이고, 박혁거세 신화에서 보듯이 ‘알’은 ‘기원, 생기다’라는 뜻이니, ‘아리’는 기원이 되는 큰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 깨끗하고 성스럽고 큰 기원에서 비롯한 됨됨이를 ‘아리따움’이라고 한단다. 크고 아름다운 태양을 보면 눈이 아린데, ‘으리으리하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기서 ‘아리다’는 ‘눈이 아프다,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하다’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결국 ‘아리아리’는 아픔 속에서도 크고 아름다운 나의 비롯됨을 찾아가는 신명의 표현인 것이다. 잊혀져 가는 옛말을 되살리거나 새말을 만들어 사용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설고 새로운 것은 과거의 권위와 주위의 눈치 때문에 쉽사리 매력을 드러내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외국의 힘을 등에 업은 영어, 전통의 권위를 누리는 어려운 한자어가 손쉽게 우리 말살이를 지배한다. 하지만 이런 말살이에서는 소통과 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영어 낱말은 자신이 전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뽐내려 할 때, 빈약한 내용과 성능에 화장발을 내고자 할 때 자주 쓰인다. 뒤처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어 낱말을 써야 한다. 공공 영역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학력이나 외국어 능력의 차이에 따라 국민을 차별하기까지 한다. 최근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3D 프린터’와 같은 전문용어를 먼저 쉬운 말로 바꾸지 않으니 사정이 더 나빠진다. 이에 비해 기성세대가 세대 사이 소통을 가로막는다고 걱정하는 ‘새말 홍수’ 속에는 ‘아리아리’처럼 비옥한 땅을 약속하는 양분도 섞여 있다. 잘 만든 새말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쓸데없이 외국어를 쓰는 세태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하나 된 열정’을 구호로 내건 평창이 ‘아리아리’를 고른 것이야말로 열정의 속살에 용기가 배어 있음을 보여 준다. 평창, 아리아리!
  • 뚜벅뚜벅, 제주를 기억하다

    뚜벅뚜벅, 제주를 기억하다

    봄 여행주간이 오는 29일부터 시작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관광공사,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국내여행 수요 창출을 위해 벌이는 대형 이벤트다. 새달 14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봄 여행주간에도 여러 프로그램들이 마련됐다. 제주에서는 ‘제주시 원도심의 재발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시 재생 전문가와 함께 제주 재생 현장을 돌아보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의아하다. 제주에 원도심이 있다고? 보통 원도심이라고 하면 대도시가 외연을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낙후되어 가는 도심 지역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를 지방 소도시 정도로 인식되는 제주에 적용하니 어딘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라 안에서 가장 극심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 제주다. 개발로 인한 상전벽해가 하루아침에 생겨난다. 그러니 원도심을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라고 전제한다면 제주야말로 숱한 원도심을 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글로컬제주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제주 원도심을 돌아봤다. 오롯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제주인 듯 아닌 듯한 풍경들이 제법 많았다.원도심은 제주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축적된 장소다. 제주의 지리, 역사적 근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는 제주목관아와 제주성(城)이 있었던 구도심을 일컫는다. 제주공항을 기준으로 보면 제주시 동쪽에 해당된다. 제주성을 중심으로 일도 1동, 이도 1동, 삼도 2동과 건입동, 중앙로, 칠성동 등이 포함된다. 삼도동은 제주 삼성신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제주를 일군 삼형제가 활을 쏴 정한 각각의 거주지가 그대로 이름이 됐다. 맏이가 일도, 둘째가 이도, 막내가 삼도를 중심으로 거주지를 형성했다고 한다. 원도심이다 보니 제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간선도로, 극장 등 기록으로서 최초가 된 것들이 꽤 많다. 제주 최초의 제빙공장 터, 거울공장 터, 발전소 터, 1920년대 목욕탕 터 등도 이 일대에 있다. 1950년대 가장 먼저 양복점과 양장점이 들어선 패션의 거리이기도 했다. 미용실, 다방 등의 간판도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가장 번화한 곳은 칠성로다. 지금껏 ‘제주의 명동’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양·부 삼성 시조가 세 지역의 땅을 나눠 차지할 때 북두칠성 모양으로 대를 쌓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각각의 대는 일제강점기 무렵까지 보존됐으나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칠성로란 이름으로만 남았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칠성로 일대는 제주의 중심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연동 등 이른바 ‘신제주’에 자리를 내줬고, 새 천년이 되면서 화려함도 잃었다.원도심 투어의 출발지는 동문로터리다. 이어 산지천 일대-건입동 동자복-금산수원지(김만덕 기념관)-탑동광장-북초등학교-관덕정-삼도동 문화의 거리-오현단 등을 돌아본 뒤 동문시장에서 마무리한다. 동문로터리와 동문시장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 사실상 출발과 종착지가 같은 원형의 코스로 이뤄졌다. 동문로터리 건너편의 ‘동문시장’ 간판을 내건 옛 건물이 눈길을 끈다. 1965년 세워진 옛 동양극장 건물이다. 건물엔 제주 바다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외벽의 원형 창문은 여객선을 떠올리게 하고 지붕은 물결치는 파도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원도심의 랜드 마크로 삼을 만한 자태다. 원도심 한복판엔 산지천이 흐른다. 한라산에서 발원해 원도심 중심부를 관통한 뒤 산지포구에서 바다와 몸을 섞는 하천이다. 한때 최고의 상권을 자랑했던 동문로, 칠성로, 중앙로, 탑동, 동문시장 등이 이 하천 양쪽에 매달려 있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오염이 심해지면서 1960년대 복개됐다가 2002년 옛 모습을 되찾았다.사람이 사는 마을은 물길 주변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산지천도 마찬가지. 기원전 1세기쯤부터 제주와 육지를 잇는 뱃길의 중심지 노릇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지천 끝자락의 산지포는 제주의 관문이자 최고의 상업지역이었다.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으로 회자되는 의녀 김만덕(1739~1812)의 객주터가 있던 곳도 산지포였다. 객주를 통해 재산을 모은 만덕은 조선 정조 때 나라에서 보낸 구휼미가 풍랑으로 전복되자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아 관덕정에 가마솥을 걸고 죽을 쑤어 굶주리는 백성을 먹였다. 이를 기리는 기념관이 산지천 아래쪽에 있다. 김만덕 객주터는 최근 옛 모습대로 재현돼 주막집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객주터 바로 위에는 복신미륵이 떡하니 서 있다. 복신미륵은 행운과 복을 가져다 주는 미륵보살을 뜻하는 말이다. 제주성 동쪽에 있는 자복이라 해서 동자복이라 불린다. 용담동의 서자복과 함께 제주성을 향해 마주 보고 서 있다. 동자복은 입상이다. 신장이 286㎝, 얼굴이 161㎝이다. 눈 위에는 눈썹을, 앞가슴에는 맞잡은 팔의 소맷자락을 표현했다. 예전 제주에도 성이 있었다. 제주성은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갈랐다. 서울의 이른바 ‘4대문 안’을 떠올리면 알기 쉽겠다. 성 밖에는 초네따이(시골아이)가, 성 안에는 시에따이(도시아이)가 살았다. 지금도 제주목관아 뒤편의 ‘묵은성’(지나간 옛 성을 뜻하는 사투리) 지역에는 평수 너른 옛집들이 남아 있다. 제주성벽은 일제강점기에 산지포구와 오현단 등의 조성 공사에 쓰이느라 산산이 해체됐다. 몽돌해변을 매립해 조성한 탑동광장, 설립 연도가 올해로 꼬박 110년이나 된 북초등학교를 휘휘 돌아가면 관덕정(보물 제322호)에 이른다. 제주목관아 앞에 있는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꼽힌다. 조선 세종 때인 1448년 처음 지어진 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관덕정 앞 뜨락엔 돌하르방 2기가 서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도 내 40여기의 돌하르방 중 하나다. 근래에 조각된 돌하르방에 견줘 단연 비범한 자태다.도로를 건너면 삼도동 문화의 거리다. 미술, 공예 등 작가들의 공방이 밀집돼 있다. 제주도 한량들의 회합 장소였던 향사당 등 볼거리가 은근히 많다. 이 골목에 제주 고유의 초가집이 남아 있다. 초가는 안거리와 밖거리 2채로 이뤄져 있다. 단단한 돌담과 새(띠), 집줄로 바둑판처럼 얽어 맨 초가지붕은 태풍도 견딜 만큼 견고하다. 오현단은 제주 발전에 공헌한 송시열 등 다섯 명의 현인을 배향하는 옛 터다. 유적지 둘레를 제주성지가 둘러치고 있다. 오현단에서 남수각을 거쳐 내려오면 동문시장이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주)동문시장, 동문재래시장, 동문공설시장 등으로 나뉠 만큼 규모가 크다. 오메기떡 하나 사들고 천천히 돌아보기 딱 좋다.이제 화북포구를 말할 차례다. 원도심의 ‘연관검색어’쯤 되는 곳이다. 다소 떨어져 있긴 해도, 원도심의 형성과 관련이 깊고 정서 역시 맞닿아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게 좋다. 화북포구는 고전소설 ‘배비장전’의 고사가 얽힌 곳이다. 풍경만큼이나 담긴 이야기들도 곱다. 예전 화북포구는 제주에서 뭍과 연결되는 두 곳의 관문 중 하나였다. 수많은 비바리(갯마을 처녀의 사투리)들이 뭍에서 군역 등을 마치고 돌아오는 연인을 마중하던 곳이자, 눈물로 배웅하던 곳이다. 그렇게 쌓인 비바리들의 애환의 두께가 ‘배비장전’을 낳은 것일 터다. 포구는 억척스러운 삶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다. 섬인 탓에 포구가 필요했지만 화산섬의 거친 자연은 이를 쉬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이 얕고, 바위는 뾰족해 배를 부수기 일쑤였다. 제주 사람들은 노고에 지혜를 얹어 이를 해결했다. 수중 암초인 ‘여’나 그보다 높은 ‘코지’를 중심으로 돌을 쌓아 파도의 위력을 줄이고, 내부를 ‘안캐’, ‘중캐’, ‘밧캐’의 세 칸으로 나눴다. 아직 원형을 잃지 않은 제주의 몇몇 포구들이 일직선으로 뻗은 뭍의 나룻터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동문로터리 인근 대동호텔(064-722-3070)은 1971년 세워진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도 재일교포나 일본인 등 수십년 인연을 가진 이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동문시장 안에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오메기떡이 특히 알려졌다. 횟집도 있다. 1층에서 생선을 고르고 2층에서 먹는 형태다. 기념품으로 인기인 말린 옥돔 등도 싸게 살 수 있다.
  • “5월 대선, 역대 가장 격렬한 네거티브戰 될 것”

    “5월 대선, 역대 가장 격렬한 네거티브戰 될 것”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직선제인 1987년 13대 대선 이후 이번 19대 대선이 역대 가장 격렬한 네거티브(흑색선전)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공직선거법 58조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특정 후보를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다. 국내 네거티브 캠페인의 미시사와 그 양면성을 다룬 ‘네거티브 아나토미’(글항아리)의 저자 배철호(왼쪽) 메르겐 대표컨설턴트와 김봉신(오른쪽) 데이터컨설턴트는 이번 대선에 대해 그야말로 “창고 대방출 수준의 온갖 네거티브가 극렬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6일 전망했다. ●가짜 뉴스·여론조사로 진화… 팩트체크 중요 역대 대선에서 네거티브는 늘 작동해 온 계책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은 ‘지역 균열’인 ‘동서 투표’와 ‘이념 균열’인 ‘남북 투표’가 극심했고, 최근에는 ‘계층 균열’인 ‘상하 투표’와 ‘세대 균열’인 ‘노소 투표’가 뚜렷해지는 양상이란 게 두 컨설턴트의 진단이다. 거기다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디지털로 포장된 네거티브는 후보자에 대한 정보 감별 자체를 어렵게 하는 ‘가짜뉴스’와 ‘가짜 여론조사’ 현상으로 진화되고 있다. 저자들은 특히 “크고 작은 거짓말을 뒤섞어 버전을 달리하는 가짜뉴스는 진영 내 폐쇄적인 네트워크(온라인 카페와 단톡방)에서 그 품질을 확인한 후 대중에게 확산된다”며 “선거 기간이 짧다 보니 소기의 목적(상대 흠집내기)을 달성하고 나면 실수였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끝”이라고 지적했다. 공신력 있는 주요 미디어의 ’팩트 체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촛불과 태극기 자기장에 갇힌 선거 우려 정치인들을 손쉽게 혐오하는 표현인 ‘코스프레’도 강력한 네거티브 수단이다. ‘서민 코스프레’부터 ‘착한 사람 코스프레’는 갖다 붙이면 특별한 설명조차 필요 없게 된다. 후보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상관없이 깍아내려지기 때문이다. 배철호씨는 “이번 대선은 촛불이 촉발한 광장의 대선으로 촛불의 요구가 무엇인지라는 근원적 성찰을 통해 국가의 새로운 기초를 다지는 ‘정초 선거’(Founding Election)의 시대정신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현실은 촛불과 태극기(보수)의 자기장에 ‘갇힌 선거’로 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네거티브 선거가 반드시 나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인사청문회보다도 못한 지금과 같은 대선 후보들의 검증으로는 뽑지 말아야 할 후보를 걸러내기 어렵다고 본다. 김봉신씨는 “선거 기간이 짧다 보니 물리적으로 후보를 검증할 시간이 부족하고, 각 후보들의 정책마저도 ‘가운데’로 수렴되다 보니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각 캠프도 결정적 ‘한 방’을 노리게 될 것”이라고 봤다. 두 저자는 철저한 후보 검증을 위해서는 능력과 자질, 도덕성이 부족한 후보를 정당하게 비판하는 방식의 네거티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선 후보들이 미디어의 후보 검증을 ‘근거 없는 폭로전’으로 비난하며 외면하는 건 잘못된 것이며, 유권자 역시 네거티브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전제는 사회의 보편적 윤리와 가치에 부합하고, 품격과 원칙이 있는 네거티브다. 배철호씨와 김봉신씨는 “함량 미달의 후보를 선택한 결과는 역사적으로 참담하기 짝이 없다”며 “네거티브 검증을 각 정당 내부에서 제도화하고, 언론의 책임 있는 검증, 그리고 사전·사후 규제를 엄격히 해 공동체 가치를 저해하는 언동에 대해서는 강력히 제재하고 퇴출하는 사회적 합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탈리아·캐나다 아기들이 많이 운대요

    이탈리아·캐나다 아기들이 많이 운대요

    이유 없는 배앓이 ‘콜릭’ 심해 獨·덴마크 아기는 비교적 적어갓 태어난 아기들의 모습은 ‘천사’와도 같지만 일단 울기 시작하면 부모는 당황한다. 보통 배가 고프거나 졸리다는 의사표현인데, 소화기관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생후 3~4개월 이전 아기들은 ‘콜릭’이라는 이유 없는 배앓이 때문에 울기도 한다. 영국 워윅대 의대 소아과·심리학과 연구진과 런던 킹스턴대 심리학과 공동연구진은 콜릭과의 연관관계를 찾기 위해 세계 9개국의 3개월 이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루 중 우는 시간을 분석했다. 울음의 양을 처음 계량화한 이 연구는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소아과학 저널’ 4일자에 실렸다. 독일·덴마크·일본·캐나다·이탈리아·네덜란드·영국·미국·호주의 영유아 8800명을 관찰하고, 각국의 영유아 건강 관련 데이터베이스, 아이들의 울음과 관련한 논문 5680건을 메타 분석했다. 그 결과 보통 생후 2주까지는 하루에 약 2시간가량 울고 시간이 점점 늘어나 생후 6주에는 2시간 15분으로 최절정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후 점차 울음시간은 줄어 생후 3개월째에는 하루에 1시간 10분 정도만 운다. 국가별로는 이탈리아·캐나다·영국 아기의 울음시간이 비교적 길고, 덴마크·독일·일본 영아들의 울음시간이 가장 적었다. 아이들의 울음시간은 콜릭을 판단하는 척도로도 보는데, 연구팀은 평균치를 벗어날 경우 콜릭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콜릭은 갓 태어난 아이들이 저녁이나 새벽에 이유 없이 발작적으로 울고 보채는 현상으로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연구로 영국이나 캐나다 아기들에게 콜릭이 많이 나타나고 덴마크나 독일 아기에겐 비교적 적다는 걸 추정할 수 있다. 디터 볼크 워윅대 소아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정상적인 울음의 범위를 계산해 아기가 콜릭으로 고통받는지를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무고는 비열한 범죄다/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무고는 비열한 범죄다/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불신과 불화의 시대에는 타인을 향한 고소 고발이 급증한다. 권익을 침해한 이를 법적으로 처벌해 달라는 고소는 정당한 요구다. 또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도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타인의 위법 행위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는 고발은 민주 사회를 위한 소금 역할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사회가 혼란해질수록 무고한 고소 고발이 남발된다는 점이다. 민주정이 활발하게 실행되던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까지 고대 아테네에도 고소 고발이 빈발했다. 기원전 399년 현인 소크라테스를 시민법정에 세운 것도 고발이었다. 시인 멜레토스, 정치인 아니토스, 웅변가 리콘은 합세하여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를 구실로 고발했다. 초인간적인 것을 믿는 소크라테스가 초인간적인 존재인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내가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많은 사람의 편견과 시샘 때문일 것”이라고.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시민들을 일깨우고 설득하며 꾸짖는 등에의 역할을 자임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영혼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하고 캐묻는 귀찮은 존재였다. 게다가 청년들이 소크라테스 특유의 질문법을 본받아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도발적인 질문들을 해댔으니,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원망할 만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의당 억울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 Sokratous)에서 사형이 확정된 이후 소크라테스의 최후 변론을 전했다. “죽음을 피하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게 훨씬 더 어렵습니다. 죽음보다 비열함이 더 발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느리고 연로해서 둘 중 더 느린 죽음에 따라잡혔지만, 내 고소인들은 영리하고 민첩해서 둘 중 더 빠른 것, 즉 사악함에 따라잡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비열하고 사악한 고발인들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고 독배를 마셨다. 이는 아테네가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해 스파르타에 항복한 이후, 공황에 빠졌던 시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민주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친 소크라테스에게 전가된 측면이 있었다. 아무튼 분명 부당한 무고였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비난과 분노가 일상화된 요즘 우리 사회에도 고소 고발이 차고 넘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경쟁 상대를 흠집 내기 위한 무리한 고소 고발전이 난무하게 된다. 명예훼손, 모욕, 허위사실 유포 등 떠도는 풍문이나 조작된 정보를 토대로 상대방을 낙인찍기 위한 중상모략들이다. 이런 고발인들은 소크라테스의 예언대로 결국 “진리에 의해 사악하고 불의한 자들이라는 판결을 받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두물머리에 흐르는 ‘인간 다산’의 향기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두물머리에 흐르는 ‘인간 다산’의 향기

    다산 정약용(그림·1762~1836)은 강진 유배 10년째를 맞은 1810년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당부하는 말을 적어 보낸다. 부인 홍씨가 보내온 치마를 자른 천에 가르침을 적은 ‘하피첩’(霞?帖)이다. 자식들을 곁에서 이끌어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두 아들은 그동안 28세, 25세로 장성했고 장손 대림도 태어났다.‘하피첩’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서첩에 쓰인 비단에는 바느질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3첩 가운데 한 첩은 모두 비단을 썼지만, 나머지는 비단과 종이를 섞어 썼다. 두 첩에 을(乙)과 정(丁)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으니 애초 4첩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은 태종 17년(1417) 전라도의 도강(道康)현과 탐진(耽津)현을 통합했다. 강진(康津)이라는 땅이름은 짐작처럼 두 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그럼에도 치소(治所)가 자리잡고 있던 고을은 여전히 탐진으로 불렀다. 다산이 강진이 아니라 탐진이라고 하는 이유다. “내가 탐진에 유배 중인데,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부쳤다. 시집 올 때 입었던 결혼 예복이다. 홍색은 바래고 황색도 옅어져서, 서첩으로 만들기에 꼭 맞다. 재단하여 작은 첩을 만들어, 경계하는 말을 붓 가는 대로 써서 두 아들에게 물려준다.…‘하피첩’이라고 한 것은 ‘붉은 치마’(紅裙)라는 말을 숨기고 바꾼 것이다’ ‘하피첩’의 머리글이다. 하피란 어깨에 두르는 일종의 겉옷이라고 한다. 부인 홍씨가 혼인 때 입었던 치마를 보낸 것을 두고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남편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다짐이라는 해석이 많지만, “초심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주장도 있다. 객지에서 한눈팔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라는 것이다. 정작 다산은 그렇게 ‘깊은 뜻’을 부여하지는 않은 듯하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사제의 연을 맺은 시골 아전 황상에게 건넨 서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다산은 1814년 28조각의 천에 가르침을 적어 애제자에서 보냈는데 크기도, 빛이 바랜 정도도 모두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을 유배지의 다산은 부인의 치마, 자신의 낡은 옷자락을 잘라 종이 대신 썼던 것 같다. 빛바랜 천에 쓴 글은 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가족이나 제자에게만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하피첩’을 넘기면서 ‘서울을 떠나지 말라’는 글에 눈길이 갔다. “중국은 문명이 훌륭한 풍속을 이루어 궁벽한 시골에서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는데 장애가 없지만, 우리는 도성에서 수십리만 떨어져도 인간의 법도에 눈뜨지 못한 동네”라고 했다. 그러니 벼슬이 끊어지면 바로 서울에 살 곳을 정하여 세련된 문화적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다산은 자식들에게 “지금은 너희를 물러나 살게 하고 있지만, 훗날 계획은 도성 십리 안에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왕십리(往十里)라는 서울 동대문 밖 땅이름도 혹시 옛사람의 이런 인식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다산은 그러면서도 “고가(古家)와 세족(世族)은 저마다 상류의 명승을 점거하고 있다”며 옛 터전을 굳게 지키라고 당부했다. 마현(馬峴), 곧 마재는 다산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합류한 한강이 마재에 이르면 다시 용인과 광주에서 흘러드는 소내와 만난다. 소내 혹은 우천(牛川)은 이제 경안천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마재에서 육로로는 도성까지 하루가 넘지만, 뱃길로는 순식간이다. 다산의 인식처럼 ‘한다 하는 집안’들이 한강 상류에 터를 잡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마현의 지명 유래는 정약용이 ‘다산시문집‘에 자세히 적어 놓았다. 마을 어르신 사이에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이 산천의 정기를 누르고자 쇠말(鐵馬)을 만들어 묻어 놓았고, 이후 주민들이 콩과 보리를 삶아 제사를 지내 마현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런 구전이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왜구가 산천의 정기를 누른 것을 알았으면 뽑아내 폐기하거나 식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정상인데 하물며 제사를 지내느냐는 것이다. 지금 철마산(鐵馬山)은 마재 북쪽으로 20㎞도 넘게 떨어져 있다. 다산이 언급한 철마산은 멀지 않은 예빈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팔당댐은 북쪽의 예빈산과 강 건너 남쪽의 검단산 자락을 가로질러 막은 것이다. 이웃마을에 역참(驛站)이 있어 말이 넘어다니던 고개여서 마재라 이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다산설(說)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다산의 집안 시조는 고려 유민으로 조선 개국 이래 황해도 배천에 은거한 정윤종이다. 나주 정씨 집안에서 벼슬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다산의 12대조인 정자급부터인데, 이후 9대가 문과(文科)에 급제했다. 대과(大科)라는 별칭처럼 고급관리를 뽑는 시험이다. 그런데 서울을 중심으로 기반을 쌓아가던 나주 정씨는 정쟁이 치열해지면서 숙종 무렵 뿔뿔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나섰다. 정시윤이 마재에 정착한 것도 이때라고 한다. 다산은 5대조인 정시윤의 마재 정착 과정을 역시 ‘시문집’에 남겼다. ‘공은 만년에 소내 북쪽에 오래 머물러 살 곳을 찾아 초가 몇 칸을 짓고 임청정(臨淸亭)이라 이름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소요하고 한가히 지내며, 깨끗한 마음을 지켜 당세에 뜻을 두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임청정기’(臨淸亭記)에는 ‘공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동쪽에는 큰아들이, 서쪽에는 둘째 아들이 살고, 막내에게는 이 정자를 주었다. 유산(酉山) 아래 조그마한 집을 지어 측실에서 낳은 자제를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산 아래 집은 훗날 여유당(與猶堂)으로 불리는 다산의 집이 됐고, 유산은 그의 무덤이 됐다.마재에 가 보면 다산의 설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산 유적지는 오늘날 그의 위상만큼이나 매우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넓게 둘러친 담장 안에 무덤과 살던 집, 사당인 문도사(文度祠)와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이 규모 있게 배치된 모습이다. 문도는 다산의 시호(諡號)다. 다산 유적 앞에는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실학박물관이 보인다. 물론 한 사람을 위한 박물관은 아니지만 다산이라는 인물의 상징성 때문에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산유적 기행은 마을 서쪽의 마재성지(聖地)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마재 정씨 집안의 약현, 약전, 약종, 약용 4형제 가운데 약현을 제외한 3형제는 천주학에 깊이 공감했다. 정약종은 아우구스티노, 정약용은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신유박해 당시 정약종과 부인 유조이, 큰아들 철상, 작은아들 하상, 딸 정혜는 모두 참수형에 처해졌다. 정약전이 흑산도,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천주교는 정씨 형제의 생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정씨 형제는 또 한국 천주교 역사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자연에 스며야 좋은 건축” 20세기 걸작 남긴 라이트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자연에 스며야 좋은 건축” 20세기 걸작 남긴 라이트

    “건축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다.”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의 실현을 평생의 작업으로 삼았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좋은 건축이란 ‘풍경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짓기 전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1936년 설계해 폭포 위에 지은 ‘낙수장’은 유기적 건축의 정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로, 미국 뉴욕 맨해튼에 1959년 완성된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미스 반데어로에,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세계 3대 근대 건축가로 꼽히는 라이트는 1867년 6월 8일 위스콘신주의 작은 도시 리치랜드센터에서 태어나 91세였던 1959년 4월 9일 사망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70여년간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1000여건의 디자인과 600개의 작품을 남겼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에서 정식 건축수업을 받지 못했던 그는 20세이던 1888년 시카고파의 핵심인물인 루이스 설리번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건축 실무를 익혔다. 설리번 밑에 있으면서 몰래 자기 이름으로 6채의 주택을 설계한 것이 발각돼 해고되자 1893년 시카고에 사무실을 차리고 독립했다. 라이트는 열심히 일하면서 점차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찾아냈다. 현대 건축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천재 건축가 라이트는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괴팍한 성격과 무절제한 낭비벽, 속도광, 여성 편력으로 스캔들을 일으키곤 했다. 조강지처를 두고 건축주의 아내(매이마 체니)와 바람이 나고, 아내가 이혼을 해 주지 않자 유럽으로 떠났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911년부터 시카고에서 300㎞ 떨어진 스프링 그린의 언덕에 집을 짓고 고대 웨일스의 음유시인 이름을 따서 ‘텔리에신’이라고 이름 지었다. 끔찍한 방화 사건으로 연인 매이마가 사망하는 불행한 일도 있었고 개인 파산, 이혼과 위자료 소송 등을 겪으며 극심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텔리에신은 48년 동안 라이트의 작업과 인생의 구심점이 됐고 재기의 발판이 됐다. 1932년부터는 실습생들을 모아 건축 실무를 가르치고 유기적 건축의 실현을 위한 실험도 함께 했다. 라이트는 “위대한 건축은 대지와 굳건히 결합해 주변 환경과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에 다른 곳에 옮겨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잡은 텔리에신은 그가 평생 추구한 유기적 건축의 완벽한 구현인 셈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길] “광장 촛불은 정치권 향한 경고… 각 정당은 민심 수렴부터”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길] “광장 촛불은 정치권 향한 경고… 각 정당은 민심 수렴부터”

    한국 민주주의가 전환의 길목에 섰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곪아 터지는 과정에서 사법 당국은 눈을 감았고 재벌은 비선 실세와의 상부상조 속에 잇속만 챙겼다. 의회는 견제 기능을 잃었으며 언론도 ‘평형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고장 난 공적 시스템, 특히 대의민주주의를 가동하도록 강제한 것은 촛불이었다. 반정치적 시민저항권의 양상이었던 2007년 광우병 촛불시위와 달리 이번에는 진보와 보수, 세대, 지역을 초월한 정치적 저항의 모습으로 나타났기에 결국 탄핵이란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즐겨 썼던 표현인 ‘비정상의 정상화’란 측면에서 ‘박근혜 이후 체제’의 첫 번째 키워드인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과제들을 짚어봤다.●개헌:국정농단 원인·재발방지 해법?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터라 유력 대선 주자들, 정치권에서도 셈법에 따라 견해가 엇갈리는 지점이다. 요약하자면 ‘1987년 체제의 태생적 한계인가, 박 전 대통령의 문제인가’에 모인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았고, 현행 헌법에 파면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탄핵에까지 이르렀는데 헌법 탓, 개헌으로 몰아가는 건 손쉬운 해결책만 찾으려 하거나 정략적 접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입법·사법·행정부, 재벌, 언론이 총체적으로 잘못한 ‘종합예술’이었는데 헌법만 바꾸면 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오히려 법을 안 지켜도 어물쩍 넘어가는 관행을 없애는 게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국정농단 원인의 일부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한 또 이런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면서도 “문제는 국회의원 다수가 개헌을 원하는 것과 달리 많은 국민이 개헌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역대 모든 직선제 대통령이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았고 제왕적 대통령제 탓에 국정농단이 벌어졌다는 논리는 맞지 않지만,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개헌이 필요한 건 맞다”면서도 “여론조사 결과 등을 봤을 때 지금 당장은 국민이 개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대학원장은 “‘87년 헌법’의 결정적 잘못은 국민이 배제된 채 정치인들끼리 합의를 봤다는 것인데 현재 논의되는 4년 중임제든, 6년 단임제든, 내각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권력구조만 얘기한다면 이건 87년 체제의 또 다른 반복이 될 것”이라면서 “정치공학적 접근이 아니라 공론화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권력구조를 수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직접민주주의 vs 대의민주주의 1600만여 촛불의 힘을 목도한 이들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와 변혁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물론 직접민주주의냐 아니면 대의민주주의냐는 식의 접근은 아닐 것이다. 시민 주권, 혹은 정치 참여의 확대로 상징되는 대의민주주의의 심화를 실현하기 위한 통로가 모색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는 대체 관계가 아닌 보완 관계”라면서 “촛불광장에서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을 타깃으로 했지만 궁극적으로 정치권 전체를 향해 ‘제대로 하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대의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국민이 광장에 나서서 직접 바꿨다. 광장을 숙의의 장이자 토론의 장으로 만들었다”면서도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광장의 민심을 대선 주자들이 실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촛불이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움직인 것이고 헌법에 명시된 제도를 작동하도록 강제한 것”이라면서 “과거 시민들은 청와대 앞에서 집회하지 말라고 하면 안 했지만 이젠 100m 앞에서 해도 된다는 걸 알았다. 일상으로 돌아간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오작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텐데 이들의 목소리를 좀더 광범위하게 반영하는 제도, 공적 시스템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복원: 정치권의 과제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의 유력 주자들은 앞다퉈 ‘국가대개조’ ‘적폐청산’ ‘개혁’ 등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사실상 원점으로 회귀한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 원장은 “원점으로 돌아가 민주주의의 A, B, C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면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처럼 정당정치의 토대가 튼튼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탄핵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걸 의회로 바통 터치하기보다는 국민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이 먼저 나서 그들만의 개혁 과제를 만들 게 아니라 촛불민심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민심을 기반으로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당이 민심을 듣는 방법은 광장만 있는 게 아니다. 토론회장일 수도 있고 법을 만들기 위한 공청회장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도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예상외의 승리를 거둔 것은 결국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공천 파동 등에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이라면서 “각 정당은 민심의 요구가 무엇인지, 특히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책공약 등을 통해 수렴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너무 멀리서 해법을 찾기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질적인 계파 갈등의 원인이 되는 투명하지 못한 공천권 행사, 대통령과 여당의 수직적 관계, 당정협의 등만 해결해도 민의의 전달이 원활해지고 대의민주주의가 좀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면서 “상시국회 등 국회가 기본에만 충실해도 작지만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치란 게 국민이 의회에 권한을 위임하고 갈등 현안들을 해결하라는 것이지만 그것을 의회에서 풀지 못하고 광장으로 나와 시민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고만 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열린세상] 대선 2라운드가 시작됐다/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선 2라운드가 시작됐다/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선 2라운드가 오늘 시작됐다. 대선 예비후보 등록이 진행 중이고 오는 20일까지 대선일이 확정될 예정이다.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5월 9일 대선이 유력해지면서 정당들도 분주해졌다. 바른정당이 가장 먼저 3월 28일 대선 후보를 정하고 민주당은 가장 늦은 4월 3일이나 8일 대선 후보가 결정된다. 4월 15~16일 후보 등록이고 선거운동이 시작된다.대선 2라운드는 ‘찬탄’과 ‘반탄’ 집회 속에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과 함께 시작돼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 일부에선 “헌재의 역모”라며 “탄핵에 불복종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후유증이 있다 하더라도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 여론이 그렇다. 헌재 선고 직후의 여론을 보면 86%가 탄핵 결정을 잘했다고 했고 92%가 승복하겠다고 했다. 대선 정국 1라운드는 ‘반(潘) 사퇴’와 함께했다. 반 사퇴의 뿌리는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에서 시작됐고 그 후 정권 심판과 교체의 분위기가 지배적이 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9월 이후 계속돼 온 ‘반기문 우세’는 ‘문재인 우세’로 바뀌게 됐다. 그래서 올 1월 한 달 실시된 16개의 여론조사에 ‘문재인 우세’가 15개로 나타났다. 2월부터 최근까지의 대선 후보 관련 여론조사도 비슷했다. 대체로 보면 51~78%의 유권자가 야권·진보 후보를 지지하고 9~22%는 여권·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셈이다. 7대3의 판세다. 대선 2라운드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야권 우위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무엇보다 ‘보수 10년’의 피로감과 ‘박근혜 파면’이 결정적이다. 물론 민주당 경선 결과가 첫 분수령이겠지만 뒤집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위론과 대세론의 분기점은 첫 경선 지역 호남이다. 야권 대표는 호남이 결정한다. 호남 지지 없는 야권 대선 후보는 없다. 민주당 집권의 마지막 관문은 ‘정의로운 통합’의 안정감과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절반 전후로 알려진 ‘문재인 비호감’ 유권자의 선택은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무거운 책임감’을 말한 민주당 대표 회견장의 태극기 배경과 “정치가 탄핵당했다는 심정으로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는 국회의장의 언급은 상징적이고 그들의 과제를 말한다. 반면 구여권과 보수는 막판에 몰렸다. 그나마 남은 변수는 보수 재편을 주도하는 바른정당과 김종인 전 대표의 ‘비문·비박 연대’ 시도다. 이들은 ‘탄핵으로 정권교체는 이미 달성’됐기 때문에 ‘국민 통합을 위한 대연정’을 지향한다. 탄핵 기각 탄원서에 서명한 구 여당 소속 56명을 일단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보수세력을 바른정당이 흡수해 보수의 대표성을 확보하느냐가 한쪽의 분기점이다. 문제는 누가 보수의 단일 대안으로 나설 수 있느냐다. 후보마다 강약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수 수구화와 왜소화의 위험’을 가진 후보, ‘3연속 대구·경북(TK)의 부담’을 가진 후보 아니면 시간도 없는데 낮은 인지도부터 극복해야 하는 후보들이라 고민이다. 여기에 어떻게 감동과 반전의 단일화를 이루느냐도 중요하다. 개헌은 연결 고리다. 민주당 내 ‘비문 개헌파’와 자유한국당 추가 이탈자 그리고 잔류파까지 합하면 개헌 추진 동력은 충분해 보인다. 문제는 ‘반패권 개헌 빅텐트’의 국민 공감이다. 이때 반문의 다른 표현인 반패권이 국민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국민들이 이해하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개헌을 거부할 경우 민심의 탄핵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비문·비박의 명분이지만 ‘분권 지향의 개헌’은 협치를 명분으로 한 정치권 소(小)영주들의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패권 반대와 합치’의 국민 설득이 필요한 이유다. 정치공학적이라는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비문·비박의 개헌 연대에 공감하더라도 정체성 혼란은 남는다. 이 대목에서는 국민의당이 핵심이다. ‘독자완주론’의 국민의당이 갖고 있는 선택지의 폭이 넓어 제3지대에서 리베로역을 맡은 몇몇 거물의 정치력이 얼마나 발휘될 수 있을지가 결정적일 것이다. ‘정권교체를 통한 적폐 청산’ 대 ‘비문·비박 개헌 연대’의 대선 2라운드, 오늘 시작이다.
  • [씨줄날줄] 김정은과 국제형사재판소/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김정은과 국제형사재판소/황성기 논설위원

    아프리카 대륙의 조그만 나라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이었던 찰스 테일러는 2012년 4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에 세워져 징역 50년형을 선고받는다.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민간인 학살을 교사하고 방조한 죄였다. 그는 대통령 재직(1997~2003) 때 다이아몬드 최대 산지인 시에라리온으로부터 다이아몬드 공급권을 받는 대가로 시에라리온 반군에 무기를 제공했다. 반군은 내전 11년 동안 인구 600만명 중 1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잔학 행위와 학살을 일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 때 나치 독일의 관계자들이 전범으로 처벌된 적은 있지만 국제재판소에서 전·현직 국가 원수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은 테일러가 처음이었다.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 암살 배후가 북한으로 드러나면서 이목이 쏠리는 국제기구가 ICC이다. 집단 학살,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형사처벌할 목적으로 2002년 설립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나 국가의 주권을 존중도 하고 한편으로는 국제재판소의 체포, 기소, 판결권이란 강제력도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로 각국이 고민하다 1998년 이탈리아 로마에 모인 120개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을 채택하면서 빛을 봤다. ICC는 북한과도 인연이 있다. 북한 인권 상황의 ICC 회부 촉구 등을 담은 북한 인권결의안이 2014년 이후 3년 연속 채택됐다. 결의안에는 인권 유린이 북한 지도부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며 제재 대상도 김정은으로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결의안 채택과 ICC 회부는 별개의 문제다. 김정남 암살의 책임을 물어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를 ICC에 제소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은 ICC 회원국이 아니어서 재판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다. 2003년 나이지리아로 망명해 2006년 체포된 테일러는 ICC가 있는 네덜라드 헤이그 교외의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재판을 받았다. 유엔 안보리가 의지를 갖고 회부를 하면 ICC가 수사할 수 있지만 안보리 주요 멤버인 중국, 러시아가 북한 편을 들 것이 뻔하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못 이긴 중국 등의 찬성으로 안보리가 ICC에 회부를 하더라도 북한이 ‘최고 존엄’(김정은)에 대한 ICC 수사에 협조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고 두 손 두 팔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제3국의 공항에서 잔혹 무도한 테러를 저지른 범죄 집단을 규탄만 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한국인 최초로 ICC 소장을 지낸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은 지난해 10월 뉴욕에서 열린 ‘북한 인권 현인그룹’에서 “우리는 언젠가 북한의 지도자를 ICC 법정에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지만 북한 지도부에 대한 ICC 제소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철의 공조’를 모색할 때가 왔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문화마당] 프로와 아마추어/정재왈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

    [문화마당] 프로와 아마추어/정재왈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

    오래전 일이지만, 한 해 연극 100편은 족히 보던 때가 있었다. 업으로 달려들어 전투하듯이 낮이건 저녁이건, 주말이건 대학로를 누비며 닥치는 대로 연극을 봤다. 20년 전쯤 대학로 소극장 형편은 신식으로 치장한 요즘과 천양지차여서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등받이조차 변변치 않은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연극 보는 건 고역이었다. 보고 나면 온몸에 쥐가 날 정도도 뻐근했다. 그래서 당시 ‘전투’라는 말은 내겐 사실이었다. 어쩌면 열정은 미움의 다른 표현인가 보다. 그 전투 이후 좋고 그른 작품을 고를 만한 눈이 트이고, 세련되고 수준 높은 외국 것에 더 눈길을 돌릴 기회가 생기면서 열정이 식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시시하다며 대학로의 연극을 멀리하게 됐고 그 무대의 배우를 잊게 됐다. 애정 어린 평자에서 벗어나 예술경영, 예술행정에 취미를 붙이면서 예술가들을 한낱 지원 대상으로 상대화했다. 돌이켜보면 예술(연극)과 예술가(연극인)에 대한 오만불손한 태도였음을 고백한다. 부지불식간에 밴 방자한 태도를 반성하게 하는 각성의 순간을 얼마 전 경험했다. 연극을 다시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의 전투는 아니더라도 ‘사랑싸움’ 정도는 되살려야겠다는 강한 충동 같은 것. 지난달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보면서 그런 감정이 솟구쳤다. 요즘 한창 신기 오른 고선웅의 연출력이 좋아서?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중국 작가 기군상의 탄탄한 극작술에 반해서? 둘 다 부인할 수 없으나, 참 오랜만에 출연 배우들이 연극 사랑의 불씨를 지펴 주었다. 장두이·정진각·이영석. 이 쟁쟁한 주연급 중진들과 주인공 역의 하성광 등등. 십수 년 연극과 무대를 멀리한 사이 그들도 연극 무대에서 멀리 떠난 줄 알았다. 내가 그랬으므로 그들도 그랬어야 마땅한 것처럼. 그런데 웬걸. 오히려 그들은 그 전보다 더욱 당당한 모습으로 무대에 있었고, 그곳에서 절정에 이른 연기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비절장절한 ‘조씨고아’의 복수극은 이들에 의해 완결됐다. 말 그대로 프로였다. 대학로 척박한 환경에서 넉넉잖은 지원금으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이 배우들이 수십 년을 한결같이 버티는 힘이야말로 프로 근성이 아니면 설명한 길이 없다. 그들이 분투하던 시절을 한참 동안 공백기로 지냈음을 아쉬워하는 반성의 시간에 매스컴은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전했다. 이 관련 영상과 함께 내 눈에는 대학로 배우들의 고된 삶이 오버랩됐다. 문화예술계에 좀 있었다고 해서 그들만큼 나는 과연 프로일까? 부끄러웠다. 조 전 장관은 어느 인터뷰에서 문화예술 ‘애호가’로서 관계 부처 장관의 직분에 대한 강한 애착과 소망을 키웠다고 했던 걸 봤다. 어떤 것에 흠뻑 사랑에 빠져 즐기는 자, 이를 우리는 애호가라 부른다. 소위 이 아마추어는 대상에 대한 애정의 단초일지언정 본질에 다가서긴 아직 부족한 상태다. 아마도 이 순진한 아마추어적인 접근법이 블랙리스트라는 어마어마한 공포에 대한 불감증을 키운 건 아닌지 안타깝다. 애호가의 관심만으로는 ‘조씨고아’ 같은 배우들의 삶과 그가 속한 세계의 이면을 이해하고 살필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시중에서 흔히 하는 말로 ‘프로는 불을 피우고, 아마추어는 옆에서 불을 쬔다’고 한다. ‘프로는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지만, 아마추어는 책임을 피하는 데 급급하다’고도 한다. 작금 블랙리스트 광풍에 휩싸인 문화예술계를 진정시킬 진짜 프로는 어디에 있는가.
  • [길섶에서] 새끼 원숭이/서동철 논설위원

    또래 동료와 잡담을 나누다 TV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다. 리모컨을 돌리다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나 ‘TV동물농장’에서 채널이 멎는 때가 많다고 했더니 맞장구치는 분위기다. 사람, 동물을 가리지 않고 가식 없는 삶에 애정이 가기 시작하는 나이라서 그럴까. 물론 ‘자연인’에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만 비쳤던 것은 것은 아니었지만…. 엊그제는 새로 번역된 ‘점필재집’을 넘기다 ‘새끼 원숭이’(猿子)라는 한시에 눈길이 갔다. ‘조의제문’으로 유명한 김종직의 문집이다. 세조 13년(1467) 일본에서 바친 원숭이를 궁중에서 보고 오언시를 지었다. 한반도에는 자생하지 않으니 접하기 어려운 짐승이었다. 그럼에도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한 대상으로만 삼지 않았다. 점필재는 ‘몸은 이미 대궐 안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향에 가 있네/ 어미의 창자가 끊어질 게 분명한데/ 괜스레 배에 싣고 왔구나’ 하며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발동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은 ‘단장의 미아리고개’처럼 흘러간 옛노래에나 어울리는 표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품위 있게도 쓰는구나. 하기는 나도 ‘TV동물농장’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황야도 천국이 되리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황야도 천국이 되리

    황야도 천국이 되리 -오마르 하이얌 새해가 되니 옛 욕망이 되살아나, 생각에 잠긴 영혼은 고독을 찾아 숨어드네, 거기는 모세의 하얀 손이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오고 예수가 땅속에서 한숨 쉬는 곳. Now the New Year reviving old Desires, The thoughtful Soul to Solitude retires, Where the WHITE HAND OF MOSES on the Bough Puts out, and Jesus from the Ground suspires. *설을 앞두고 페르시아의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아랍어로 ‘4행시들’을 뜻한다)를 읽고 있다. 새해가 되어 옛 욕망이 되살아난다니.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감탄하면서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나오는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mixing Memory and desire)라는 구절이 연상되었다. 엘리엇도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읽었음이 틀림없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잎을 보며 모세의 하얀 손을 생각하고, 대지에서 예수의 숨결을 느끼며 들판을 거니는 시인. 페르시아에서는 새해가 춘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 대기에 충만한 봄기운을 받으며 욕망이 다시 꿈틀댔으리. 왜 인류는 새해를 기념했을까. 우리의 몸과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마음은 새순처럼 젊어지기를 소망해서가 아닌지. ‘모세의 하얀 손’은 구약의 출애굽기 4장 6절에 나오는 기적을 일컫는다.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외투에 넣으라 하여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 꺼내 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피부가 눈같이 하얗게 된지라.” 내가 페르시아어를 배웠다면 원문을 더 깊이 이해하련만. 저 훌륭한 영국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1809~1883)가 영어로 옮긴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려니 정말 힘들다. 루바이야트에는 제목이 달려 있지 않다. 번역본마다 엮인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놓았다. 앞에 소개한 시는 ‘루바이 4’다. 피츠제럴드가 번역한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를 뒤적이다가 압운을 발견하고 놀라 기절할 뻔했다. Desires, retires, 그리고 한 행 건너 suspires. ‘-ires’로 끝나는 AABA의 각운을 만들려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 피츠제럴드를 만나 오마르 하이얌은 다시 태어났다. 구글에서 ‘Omar Khayyam’을 치면 위키피디아에 아주 기다란 글이 딸려 있다. 시인을 소개하는 글에 웬 포물선과 원이 나오나 의아해하면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철학가인, 그리고 어쩌다 시도 썼던 오마르 하이얌의 생애를 따라가 보았다. (세계의 명시를 소개하며 내가 그 골치 아픈 3차 방정식을 다시 공부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다재다능했던 하이얌은 이슬람의 셰익스피어이며 또한 아이작 뉴턴이었다. 오마르 하이얌(1048~1131)은 페르시아의 북동부 지역 거점도시인 니샤푸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직업에서 따온 하이얌이라는 성은 ‘천막 제조업자’를 뜻한다. 어린 오마르는 사마르칸트의 학교를 거쳐 부하라로 옮겨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를 이끄는 학자가 되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발견을 담은 수학 논문들을 썼고 그중 일부가 서양에 전래돼 근대과학을 낳는 토대가 되었다. 셀주크의 술탄 말리크샤 1세의 요청으로 1079년에 그가 만든 새로운 달력은 16세기에 나온 그레고리 달력보다 더 정확했다. 지금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하이얌의 달력에 기초한 ‘이란 달력’을 사용한다. 그는 원과 포물선을 교차시켜 3차 방정식을 푸는 기하학적 방법을 연구한 최초의 수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천 편의 시를 쓴 시인이었다. 한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는지. 그의 시를 읽으며 게으른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 여기 나뭇가지 아래 빵 한 덩이, 포도주 한 병, 시집 한 권- 그리고 당신이 내 옆에서 노래 부르니- 황야도 천국이 되네. Here with a Loaf of Bread beneath the Bough, A Flask of Wine, a Book of Verse - and Thou Beside me singing in the Wilderness - And Wilderness is Paradise enow. * 빵과 치즈, 포도주 한잔, 그리고 재미난 읽을거리가 있으면 당신이 내 옆에 없어도 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나. 하이얌의 4행시에 보이는 현실주의. 어디까지나 여기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현세주의는 고대 수메르인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 황금의 알갱이를 아껴 썼던 사람이나, 비처럼 바람에 날리게 마구 뿌렸던 사람이나, 황금빛 대지로 돌아오지는 못하지 죽어 묻히면, 누가 다시 파 보기나 할까. And those who husbanded the Golden Grain, And those who flung it to the Winds like Rain, Alike to no such aureate Earth are turn‘d As, buried once, Men want dug up again. * 조금의 감상도 허용하지 않는, 번뜩이는 허무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이런 시가 있는데 내가 뭘 더 보태나, 참담한 마음에 그만 은퇴하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새해에 절대로 읽어선 안 되는 시를 괜히 집적거렸다.
  • 朴대통령 “최순실 게이트는 음모…누군가 미리 기획한 것”

    朴대통령 “최순실 게이트는 음모…누군가 미리 기획한 것”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한국경제신문의 정규재 주필과 인터뷰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주필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오후 8시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TV’를 통해 박 대통령과의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https://www.youtube.com/user/Thejkjtv/featured)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열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로 특정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규재 칼럼·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와서’라는 제목으로 현재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약 9분짜리 예고편 영상에서 정 주필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대통령과 1시간 10분 정도 만나 인터뷰를 했다”면서 “최순실 사태, 탄핵 문제, 대통령의 현재 심경, 진실은 무엇인가 등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전했다. 정 주필은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누군가 기획한 것이냐’ 이렇게 물어봤다”면서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누군가가 기획하고 관리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자신의 탄핵안 국회 가결까지 이어진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자신을 겨냥한 음모라는 것이다. 정 주필은 “제가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고, 정확한 워딩 자체는 나중에 저도 동영상을 다시 틀어봐야 할 것 같지만, (대통령이) 누구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오래 전부터 기획하고 관리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헌정사를 위협하고 민주주의의 퇴보를 초래한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자신과 무관한 일이며, 자신을 공격하려는 음해성 논란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어 정 주필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임기 중 열린 기자회견이 미리 준비된 질문지와 답변으로 이어져 논란이 된 점을 의식한 듯 “(인터뷰가 진행되는) 약 1시간 동안 저는 질문지를 가지고 었었고, 대통령은 그냥 왔다. 그래서 제가 ‘돌직구 식으로 질문하겠다, 모든 제기된 의문에 대해서’(라고 말한 뒤) 앉아서 얘기했는데, (대통령이) 답변서 없이 한시간 동안 얘기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몇가지 발언을 편집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주필은 “‘팔다리를 묶였다는 부분은 대통령 체면에 맞지 않는 표현인데, 좀 뺄 수 없겠는가. 대통령으로서 채신머리가 없는 표현으로 느낀 것 같아서 좀 편집을 해달라’ 그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정규재TV 인터뷰 예고편…“정윤회와 밀애했냐” 물어보니

    박근혜 대통령, 정규재TV 인터뷰 예고편…“정윤회와 밀애했냐” 물어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탄핵 가결 이후 처음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갖는다. 박 대통령의 인터뷰는 이날 오후 8시부터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 TV’를 통해 유튜브에서 공개된다고 정 주필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정규재 주필은 이날 오후 7시 이후 ‘정규재 칼럼; 박대통령을 만나고 와서’라는 제목으로 9분 54초짜리 예고편식의 영상을 올렸다. 다음은 정규재 주필의 예고편 영상 발언 전문. 청와대 가서 박 대통령 만나고 왔다. 1시간 10분 정도. 대통령을 청와대 여러 건물 중 상춘재라고 하는 건물에 가서 대통령 만나고 인터뷰 했다. 최순실 사태, 탄핵문제, 박근혜 대통령 심경, 진실은 무엇인가 얘기를 듣고 왔다. 동영상은 지금 작업 진행중이다. 작업이 끝나는대로. 8시 정도에는 볼 수 있도록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대통령은 최근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한마디로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다 라고 말했다. 가공의 산이다. 대통령의 직접적인 표현이었다. 제가 여러가지 돌직구식으로 물었다. 모든 언론이 인터뷰를 신청해놨고. 정규재 TV도 신청해 놨지만.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재판이 진행중인데. 헌재 변호인단에서 대통령께 정규재TV 나가보시면 어떻겠냐고 얘기한 거 같다. 그러면 대통령이 만나겠다고 해서 제가 불려들어가서 얘기를 듣고 왔다. 동영상을 보면 불편해 할 수 있는 정도로 제가 돌직구식으로 질문했다. 정윤회와 밀애했냐. 정유라가 대통령 딸이냐. 최순실과 통장을 같이 썼나. 마약 먹었냐. 이런 식으로 질문했다. 최순실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몰랐나. 이런 거 까지. 굿을 한 적 있나. 이런 식으로 물었다. 대통령을 좋아하는 측에서는 정규재가 너무 심하게 얘기하는거 아니냐고 얘기할 수도 있고. 제가 가서 스트레이트로 물어야 대통령이 직접 말을 들을 수 있다. 스트레이트로 제가 여쭤봤다. 정윤회와 연애, 밀애하셨나. 정유라가 대통령 딸이라는 말이 있는데 진짜냐 이렇게 물었다. 정유라라는 이름이 최근에 최순실을 최서현으로 바꾸면서 같이 바꾼 모양인데. 정유라로 이름 바뀐것도 사건 터지면서 알았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대통령의 딸일 턱이 없죠. 그동안에 대통령 되고 나서 청와대에서 공적인 회의에 제가 여러번 참여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역시 힘은 없구나. 아니 힘이 없다기보다는 내상이 컸구나라는 걸 느꼈다. 목소리도 작아지셨고.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도 1시간 동안 또박또박 말했다. 이번 사태는 누군가 기획한거냐 이렇게 여쭤봤다. 그러니 대통령께서 오래전부터 누군가가 기획하고 관리해 온 거 같다고 말했다. 제가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고. 대통령께서 글쎄 제가 집중해서 하다가 정확하게 워딩 자체는 나중에 저도 동영상을 다시 틀어봐야 할 거 같지만. 누구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기획하고 관리한 사람이 있다. 최근 정치 정세에 대해 약간 얘기를 하셨다. 그렇습니다. 제가 너무 미리 다 얘기하면 재미가 없으실 거 같기도 하고. 조금 이따가 1시간여 지나서 지금 김PD가 작업하고 있는데. 재미있게 봐달라. 편집 없이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한군데 두군데 편집이 있다. 그부분은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부분 중에 너무 아픈 표현을 하셔서. 대통령께서 너무 그렇게 비친다고 생각한 거 같다. 대통령이 마지막에 국민 여러분께 인사를 좀 드려주시죠라고 제가 청을 하고 대통령이 얘기했는데. 한시간여를 저는 질문지를 가지고 잇었고. 대통령은 그냥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돌직구 식으로 질문하겠다 모든 제기된 의문에 대해서. 그래서 답변서를 들고 오실만 한데. 앉아서 얘기했는데. 답변서 없이 한시간여 얘기하고 나서 제가 나오는데. 말하자면 대통령이 했던 얘기중에 이런이런 부분은 그 너무 좀 말하자면 불쌍해 보인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을 느꼈다. 팔다리를 묶여서 라는 부분은 대통령 체면에 맞지 않는 표현인데. 좀 뺄 수 없겠는가. 수족이 다 묶여서. 이런 표현이었는데. 이게 대통령으로서 체신머리가 없는 표현으로 느낀 거 같아서 좀 편집을 해달라. 그렇게 말씀하셔서 뺐다. 사실 뺐다는 얘기를 드리면 대통령께서 안좋아 하실 수도 있지만. 그런데 대화 내용 자체를 정확히 복기를 하세요. 깜짝 놀랬다. 대통령께서 아무 자료 없이 오셨는데도 대화내용 전체에 대해 복기를 하는 걸 보고 제가 깜짝 놀랬다. 여전히 총기는 있으신 분이구나.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힘이 빠져있어서. 제가 좀 딱했다. 이런 얘기를 먼저 보고를 드립니다. 한시간 30분 정도 있으면 여러분이 보실 수 있으니까. 대통령의 탄핵 이후 첫 인터뷰. 여러분이 많이 사랑해주시고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서동욱의 파피루스] 출판의 위대함을 생각하며

    [서동욱의 파피루스] 출판의 위대함을 생각하며

    지난 일요일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타계했다. 박맹호 회장은 한국 출판의 거인이었다. 한 분야의 거인이란 그 분야의 본성을 그대로 구현하는 자다. 따라서 이 출판인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란 출판의 본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일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그리고 나처럼 책을 읽고 쓰는 일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이들에겐 그런 생각이 필연적인 것 같다. 저자들은 독자를 향해 글을 쓰고 독자들은 저자의 책을 읽는다. 읽고 쓰는 이 일에는 한 단어가 생략돼 있어서 사람들은 저자의 글이 별다른 매개 없이 독자에게로 날아가는 줄 생각할 때도 있다. 쓰기와 읽기 사이에 생략된 그 중요한 단어는 바로 ‘출판’이다. 이 출판이라는 말을 우리는 책이 만들어지는 작업 현장에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편집’이나 ‘기획’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세상의 모습이 어떤 그림으로 그려져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자, 즉 어떤 책이 세상의 모습을 그려 낼 수 있는지 가늠하고, 그런 책이 쓰일 수 있도록 쓰는 이의 정신을 일깨우는 자, 그리고 쓰인 것을 절실히 습득해야 하는 것으로서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자―그것이 편집자 또는 기획자로서 출판인이 하는 일이다. 편집자의 이런 개념과 더불어 막스 브로트, 맥스 파킨스 등 전설적인 이름들이 역사 속에 등장했다. 어떤 책이 세상에 필요한지를 가늠하는 일은 인간의 매우 심오한 행위이다. 그 행위가 세상의 모습을 누구보다 앞서 파악하고 또 바꾸어 나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기가 가진 개념을 통해 세상의 상(像)을 그리고, 그다음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자기가 그린 그림에 맞추어 다듬어 나가는 행위는 바로 인간이 ‘주체’로서 하는 일이 아닌가. 오늘날 서양어에서 ‘서브젝트’(subject)라고 쓰는 ‘주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말 ‘휘포케이메논’의 번역어다. 이 말은 ‘밑에서 떠받쳐 주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주체란 흘러가는 운명에 자신을 수동적으로 내맡기고 있는 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상의 터전을 닦고 만물이 서 있도록 떠받치는 자인 것이다. 즉 만물을 짊어지는 자이다. 그러니 주체의 비밀이란 사실 만물을 짊어짐, 바로 만물을 ‘책임지는 일’에 있다. 만물을 떠받치는 이 주체의 행위, 책임지는 일은 인간의 역사가 알려 주듯 책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이런 주체의 행위는 과거 낡은 유럽에 혁명을 불러와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데 개입한 ‘백과전서’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이 백과전서만큼 집필의 힘 이상으로 기획과 편집의 노고가 책의 근본에 자리 잡은 경우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주체로서 자각한 시기인 ‘근대’와 인간이 세상의 그림을 설계하고 그 설계에 맞추어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작업의 표현인 ‘백과전서’가 서로 맞물려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체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곧 ‘책을 기획하는 주체’인 것이다. 출판이라는 주체의 이 작업이 위대한 까닭은 이 일이 독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만인의 참여 속에서, 즉 ‘공동체’를 이루며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출판이라는 말의 서양어 표현 ‘퍼블리케이션’(publication) 자체가 출판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일임을 알려 준다. 저 단어의 뜻은 ‘공중(public·公衆)의 것으로 하기’다. 쓰는 일과 읽는 일은 반드시 서로 필요로 한다. 읽지 않는 글이란 생각할 수 없고, 글 없는 독서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누가 쓰는 자와 읽는 자를 서로 뗄 수 없이 묶어서 쓰기와 읽기의 공동체를 창출하는가? 바로 출판인이다. 출판인이 준비한 쓰기와 읽기 속에서 화합과 투쟁, 동의와 논쟁, 숭배와 비판이라는 공동체적 삶의 그림들이 펼쳐진다. 이런 공동체의 장을 탁월하게 마련해 주었던 이가 박맹호 회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상실을 깊이 애도한다. 그를 통해 목격한 모범적인 출판인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책을 통한 세상 그림의 능동적 설계자’라는 타이틀과 어떤 점에선 반대된다.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사람들이 말하기 위해 설 수 있는 빈터를 마련해 주길 즐겼던 것이 그의 일상이다. 말하고 듣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이것보다 더 탁월하게 공동체의 터전을 닦고 보호할 수 있는 방식이 있는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올드스쿨’ 신이 “결별한 분들도 많은데..” 아이유 장기하 언급?

    ‘올드스쿨’ 신이 “결별한 분들도 많은데..” 아이유 장기하 언급?

    ‘올드스쿨’에 출연한 배우 신이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23일 방송한 SBS 파워FM ‘김창렬의 올드스쿨’에는 신이가 출연했다. 그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갔고 이를 접한 신이는 “아쉽게 결별한 분들도 많은데 내가 1위냐”며 민망해 했다. 김창렬은 “신이에 대해 궁금해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표현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신이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실제로는 ‘센 언니’가 아니다. 말도 잘 안 하고 그런 스타일인데 연기를 하며 푸는 것 같다”며 “주목받고 이런 게 싫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전혀 못 알아보니까 그것도 좋았다”고 달라진 자신의 얼굴을 셀프디스 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가수 장기하 아이유의 결별 소식이 전해지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설] 반기문 ‘정치 교체’ 구체적 청사진 제시해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그제 귀국했다. 그는 인천공항에 내려 “유엔 사무총장으로 쌓은 국제적 경험과 식견을 어떻게 나라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뇌해 왔다”고 말했다. 스스로 밝히지 않았더라도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한 10년 동안 그가 쌓은 경험과 역량은 대한민국의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 경륜을 이제부터는 국가 발전에 쏟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해 달라는 것은 당연한 국민적 요구다. 하지만 그를 맞은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직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을 환영하는 자리에 걸맞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차기 대선에 나설 유력 후보의 정치권 데뷔를 응원하는 자리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럴수록 성공적인 유엔 사무총장 업무 수행에 대가 없이 성원을 보냈던 국민에게 어떻게 보답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기자회견을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가 이뤄져야 할 때”라는 말로 시작했다. 추진력을 상실한 채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는 정치를 혁파해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겠다는 순수한 뜻이라면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라면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사람의 귀국 일성(一聲)으로는 걸맞지 않다.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가 지향점이 분명해 보이는 표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잘 만든 구호일수록 조금만 아껴 두고 귀국 기자회견에서는 지지자에 국한되지 않은 국민 모두에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야 했다고 본다. 그에게 주어진 소명은 ‘유엔 사무총장급 정치’를 펼쳐 뒤처진 한국 정치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경륜과 역량을 보여 주는 대신 낡은 정치 관행의 유혹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 남북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 또한 갈수록 꼬여만 가고 있다. 흔들림 없다는 한·미 관계마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정리해야 할 것들이 산처럼 쌓여만 간다. 국내 상황은 더욱 어렵다. 조선·해운을 중심으로 실업자는 쏟아져 나오고, 젊은이는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누구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 현실이다. 그럼에도 국민은 아직 반 전 총장이 어떤 철학과 비전으로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안심하고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인물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청사진을 하루라도 빨리 보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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