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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역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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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설 50돌에 돌아본 위상/문민시대 「민생·치안경찰」로 거듭나다

    ◎6·25때 공비 토벌·전후복구에 앞장서/자유당땐 「시녀」 오명… 지탄대상되기도/91년에 경찰청으로 독립… 중립성 확보 지난 반세기 한국 경찰은 시대와 정치상황에 따라 명암과 영욕이 엇갈린 발자취를 남겼다. 45년 해방과 함께 「군정경찰」로 출범한 경찰은 6·25전쟁 당시 「구국·호국경찰」로서 멸공전선과 공비토벌에 참여했다.자유당시대 4·19의거때는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속에 파출소가 습격당하는 수난도 겪었다.60년대 이후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에는 화염병의 표적이 됐고 국민들의 민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인권유린과 과잉수사를 비난하는 지적도 받았다.86년 청사독립에 이어 91년 기구독립으로 개혁의 전기를 마련한 경찰은 갈수록 늘어나는 민생치안의 수요속에서 신뢰받는 경찰상을 주민 생활에 뿌리내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구식 경찰제도와 「경찰」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894년 갑오개혁때였지만 일제 식민지 통치로 경찰제도가 단절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해방 2개월뒤인 45년 10월21일 미군정청경무국으로 출범한 한국 경찰은 이듬해인 46년 1월16일 경무부로 지위가 격상되면서 조직도 확대,개편된다.3만6천여명의 적은 인원과 보잘것 없는 장비였지만 미군정 당국은 「민주경찰」 「민중의 지팡이」 「봉사와 질서」를 구호로 내걸었다.정부수립이전 과도기 성격의 경찰은 좌우익 싸움과 공산테러 등으로 어수선한 치안을 유지하고 국군창설이전 국방임무를 맡는 등 「건국경찰」의 면모를 보였다. 정부수립직후인 48년 9월2일 정부조직법이 제정되면서 경찰조직은 내무부 치안국으로 격하 조정,본격적인 「국립경찰」시대를 맞았다. 6·25 전쟁때는 국군과 함께 전선을 맡으면서 후방지원과 전시치안 임무도 동시에 수행했다.전쟁동안 3천1백61명이 희생됐지만 9만2천8백여명의 적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다.전후에는 공비토벌에 투입돼 전쟁의 상흔을 회복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53년부터 시작된 경찰관계법령의 통·폐합작업으로 비로소 경찰기구의 정비·개편과 행정합리화에 눈길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자유당시대의 경찰은 지나친정치편향으로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특히 정권과 밀착,3·15부정선거에 개입하고 4·19의거 당시 시위군중에 발포하는 역사의 오류를 범하기에 이르렀다.그 결과 4·19의거후 중견간부급이상 4천5백여명이 숙정되는 비운을 감수해야 했다.신뢰와 권위가 실추된 경찰은 질서유지 임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경찰 중립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5·16군사혁명 이후 경찰 내부에는 최고책임자에서부터 중간관리층까지 군인이 주요 보직을 장악하고 군장교출신이 경찰직에 특채되는등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그러나 혁명이후 60년대를 거치면서 경찰의 행정관리는 차츰 선진국의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해 경찰발전의 전환점을 맞았다.경찰본연의 임무를 찾아 「봉사경찰」 「보호경찰」로서 실질적인 국민편의 기능을 수행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여 나갔다.66년 7월 「경찰윤리헌장」에 이어 69년 1월 「경찰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민주경찰을 지향하는 출발점과 직업공무원제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제3공화국 이후 권위주의정치체제를 유지하려는 정치권의 「외풍」과 함께 북한의 도발이 격화되면서 경찰은 대공간첩섬멸과 반정부시위 진압이라는 두가지 기능에 얽매이게 된다.「민주·민생경찰」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데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었다. 74년 8월15일 문세광 저격사건을 계기로 고유기능 회복과 조직 활성화 차원에서 같은해 12월 치안국이 치안본부로 승격되고 본부장 직급도 차관급으로 격상됐다.그러나 현역 육군중장이 예편,본부장으로 보임함으로써 내부에선 자성의 계기를 맞는다. 10·26사건으로 제5공화국이 들어선뒤 학생·재야의 반정부시위가 박종철군 변사사건,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지면서 경찰은 국민으로부터 「체제·공안경찰」로 낙인찍힌다. 이와함께 80년대를 거치면서 강력·조직 범죄의 급증으로 국민들의 체감치안은 갈수록 악화됐고 이에 따른 민생치안 수요도 급증했다.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치른 경찰은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에야 종래 「체제·공안경찰」의 오명을 벗고 「민생·치안경찰」로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경찰의 정치중립성에 대한 논란도 계속돼 91년 5월 경찰법 제정으로 내무부 보조기관이 아닌 외청형태의 경찰청이 발족하기에 이르렀다.경찰이 내부 인사권과 인력·장비·예산 등에 대한 독자적 기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기구독립과 더불어 기존의 「경찰윤리헌장」을 「경찰헌장」으로 개정,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생활경찰」상을 15만 경찰의 실천덕목으로 제시했다.올해 지방자치제 도입으로 또다시 변화와 도전의 시기를 맞은 경찰은 무엇보다 자치단체와 원만한 협조속에 주민생활의 고충을 적극 해결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 최주활씨는 누구/해외근무 경험 풍부한 통역 출신

    ◎부친은 6·25때 전사… 부인과 2남1녀/82년 체코서 군사기밀 수집하다 추방 이번에 귀순한 최주활씨(46)는 상좌계급의 북한 현역군인으로 우리나라의 중령과 대령사이에 해당하는 고위 군간부다.지금까지 귀순한 북한 현역군인 28명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49년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명성동에서 태어난 최씨는 평양 외국어 유자녀학원에서 10년간 공부한뒤 19세때인 68년 7월 인민군에 입대,정찰국 소속 항공육전여단에 배치돼 하사로 복무했다.70년부터 2년동안 정찰국 산하 외국어강습소(현 압록강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워 75년까지 인민무력부 외사부 양성(수습)통역원으로 근무했다.그뒤 3년동안 평양외국어대학 노어과에 편입해 공부한뒤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지도원으로 일하다 79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부임,해외파견업무를 담당했다. 최씨는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활동하던중 신형방독면과 화염방사기 등 군사과학 비밀자료를 수집한 혐의로 82년 북한으로 추방돼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부장에 임명됐으며 91년상좌 계급으로 진급했다. 특히 최씨는 80년이후 대외사업국에 근무하면서 북한 군사대표단 통역원으로 러시아·헝가리 등지를 10여 차례 방문하는 등 비교적 많은 해외 나들이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1월 우리나라의 군수기지사령부에 해당하는 병참·보급담당부서인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에 임명된 최씨는 중국 연변등지에서 무역실무 대표단으로 활동하다 지난 6월19일 대표단에서 이탈,동남아 제3국을 거쳐 지난달 말 귀순했다. 가족으로는 모친 이순음씨(67)와 평양시 평천구역 의약품 관리소 판매원인 부인 조현실씨(42),딸 애화양(17),아들 철준(12)·철민군(10)이 북에 남아 있고 부친 최석보씨는 6·25당시 전사했다. 형 금활씨(51)는 사회안전부 병기국 「11·24관리소」 소장으로 최씨와 같은 상좌계급이다. ◇약력 △49년 4월19일 함북 청진시 신암구역 명성동 출생(46세) △59년9월∼68년3월 평양 외국어 유자녀학원(11년제)10년재학중 군입대 △68년3월∼70년11월 정찰국소속 항공육전여단(하사) △70년11월∼72년10월 정찰국 외국어강습소(현 압록강대학)노어과 졸 △72년10월∼75년8월 인민무력부 외사부 양성(수습)통역원 △75년8월∼78년9월 평양외국어대학 노어과 3년편입(상위) △78년9월∼79년5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지도원 △79년5월∼82년7월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 △82년7월∼94년12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부장(91년 상좌 진급) △95년1월∼95년6월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 △북한내 주소 평양시 동대원구역 문신1동 70반 아파트 12층2호 회
  • 상근 예비역 현역 복무 폐지/정부 국감 답변

    ◎군인 보수 공기업 수준 인상/이 한은총재 “한은법 개정안 논란 소지” .”.”.’.’(()) 국회는 28일 법사·내무·국방 등 13개 상임위별로 37개 소관부처와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계속했다. 국방위의 육군본부에 대한 감사에서 윤용남육군참모총장은 『상근예비역 대상자가 향토사단에서 6주동안의 신병교육을 마치면 곧바로 향토방위 부서에 배치,병역의무기간 28개월의 나머지 기간동안 근무토록 하는 개선책을 국방부에 건의했다』고 병역법개정 의사를 밝혔다. 상근예비역제도는 방위병제도를 폐지한 대신 지난해부터 새로 도입한 것으로 지금까지는 대상자가 12개월 동안의 현역근무를 마친 뒤 16개월동안 향토방위 부서에서 근무토록 해왔다. 윤총장은 이어 『직업군인의 보수체계를 개선해 오는 98년까지 국영기업체 수준,2000년까지 대기업 수준으로 인상될 수 있도록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윤총장은 「하나회」 등 군내 사조직에 대한 인사정책에 대해 『과거 은연중에 인사관리상 혜택을 받은 사실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난해까지 한시적으로 특별관리를 하도록 조치했지만 지금은 동일한 조건에서 인사관리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윤총장은 민주당 강창성 의원이 중·소대장및 하사관 부족을 주장한 데 대해 『중대장및 소대장 운영수준은 98.4%와 98.9%이며 하사관은 1백5%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오는 12월까지 2차 군구조 개편작업을 단행,하부구조를 보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정경제위의 한국은행에 대한 감사에서 이경식 총재는 한은독립문제와 관련,『국회에 계류중인 정부의 한은법 개정안은 중앙은행의 중립성이나 위상을 오히려 약화시킬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앙은행제도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해 정부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총재는 그러나 『한은독립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계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 신중히 처리해야 할 사안이고 우선은 중앙은행의 자율적 운영이 관행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선 관행정착,후 한은독립」의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 「5·18」 대법 재항고/고소·고발 6백14명

    5·18 고소·고발인 6백14명은 25일 이 사건 당시 진압군 지휘관이었던 김동진 합참의장등 현역군인 11명을 상대로 낸 재정신청을 고등군사법원이 기각한데 불복,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공소권 없음」 결정의 당부 여부 ▲이 사건 공소시효가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시점인 80년 8월16일인지 여부 등을 심리할 계획이다.
  • 신당·자민련/외부인사 영입 막바지 피치

    ◎야권 「새인물 모시기」 중간 점검/1차수혈 매듭… 학계·관료출신 스카웃 난항­신당/충청권 여의원에 손짓 “실속챙기기”로 선회­자민련 가칭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외부인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당세확장이라는 당장의 효과 말고도 내년 14대 총선에서 「인물대결」로도 뒤지지 않겠다는 계산에서다.신당이 각계 전문가 등 신진인사 영입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자민련은 우선 구여권 인사들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그러나 생각 만큼 영입작업은 순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외부인사에 대한 1차 영입작업을 7일 사실상 매듭지었다.신당측은 오는 11일의 발기인대회에 1차로 2백명에 가까운 외부인사가 발기인 자격으로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 예상한 1백명선을 넘어섰으나 명망 있는 인사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법조계나 군출신은 「간택」할 만큼 여유가 있었으나 학계·문화계·관료 및 정계 출신은 「가뭄속에 콩나듯」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박지원 대변인은 『10일까지 1백∼2백명의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며 『그러나 「정부의 압력과 회유 때문에」,「현역의원이 지역구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가 입당을 번복했다』고 영입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법조계에서는 변정수 전헌법재판소재판관을 비롯,22명이 확정됐으며 천정배변호사(경기 안산)등 10여명에게 지역구가 배정됐다. 이들 말고 부장판사 진급을 앞둔 서울의 현직 여성판사의 영입이 추진중이며 수석 부의장급으로 또 한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과도 물밑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관료출신으로는 허재영 전건설부장관이 확정됐으며 1∼2명의 다른 전직장관과 3∼4명의 구여권 인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출신으로는 용영일 전국방부정보본부장과 천용택 전비상기획위원장 등 10여명이 포함됐다.그러나 장태완 재향군인회장은 본인이 거절했고 보훈처장 출신의 민모씨는 관망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양성철 경희대교수와 정희경 전현대고교장(여)등이 확정됐으며 현직총장 K씨와 서울대교수 H씨,중앙대교수 K씨가 거론되고 있다. 문화계인사로는 홍보위원으로 활동중인 탤런트 정한용씨말고 연극인 손숙씨,방송인 김한길씨,작가 김홍신씨,영화감독 이장호씨,영화배우 문성근씨 등 10여명과 접촉중이나 지역구 문제로 이번에는 4∼5명만 참여하고 나머지는 총선직전에 영입할 전망이다. ○…최근 자민련의 영입작업은 실리로 돌아선 인상이다.목소리만 높이던 지방선거전과는 다른 분위기다. 우선 영입대상인 민자당의 현역의원은 충청권의원들과 중부권의 친(친)JP(김종필 총재) 성향 의원들이다.충청권에서는 대전의 이재환·남재두의원이 꼽힌다.충남의 성무용·김범명·오장섭·송영진의원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변수가 있지만 충북의 박준병의원도 대상자다.공화계 뿌리인 이택석 의원과 전국구의 조용직의원은 아직도 「JP계」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내년 총선에 당선 가능한 인사들에 대한 조심스런 물밑 교섭도 병행하고 있다.1차 영입대상자의 명단에는 노재봉 전국무총리의 이름이 보인다.노전총리의 영입은 보수세력의 본산으로 발돋움하려는 자민련으로서는 상징적인 뜻이있다는 생각이다.이밖에 김용래전서울시장과 한석용 전강원지사,이태섭·봉두완·홍희표·이낙훈 전의원 등이 눈에 띈다.모두 자민련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서울·인천·경기·강원출신들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영입 가능성이 높은 이재창·심재홍전경기지사,전용원(구리)·이국헌(고양)전의원에게도 공을 들이고 있다.
  • 「5·18」 공소시효 연장/20일정도… 군인 11명 재정신청 따라

    8월15일로 예정됐던 5·18 고소·고발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이 최대 20일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광주 민중항쟁연합」(상임의장 정동년) 등 5·18 고소·고발인들이 이 사건 피고소·피고발인 58명 가운데 김동진 합참의장 등 현역 군인 11명에 대한 군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불복,국방부에 재정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대검,재항고기각 한편 대검찰청은 이날 「5·18 진상규명 및 광주항쟁 정신계승 국민위원회」 대표 김상근씨와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정동년씨 등 6백14명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등 35명을 상대로 낸 재항고에 대해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 「5·18」항고 기각/서울고검

    서울고검(검사장 김기수)은 28일 「5·18사건」의 고소·고발인 6백14명이 전두환 전대통령 등 피고소·고발인 47명에 불기소처분한 서울지검항고를 『이유없다』고 기각했다. 검찰은 또 김동진 합참의장 등 현역군인 11명에 대해 제출한 항고는 현행법상 현역군인에 대해서는 항고권이 없어 고소·고발인들이 위하했다고 밝혔다.
  • 미 한국전참전비 27일 워싱턴서 제막

    ◎“자유민주주의 수호”/미 국민정신 되새겨/한·미 정상·참전용사 등 참석 성대한 행사/한반도서 숨져간 3만3천여 병사의 넋 기려/부산 피란당시 텐트촌 재현 등 다양한 행사도 27일 제막식과 함께 일반에 공개되는 워싱턴의 한국전참전비는 단순히 한국전쟁에서 싸우다 숨진 미군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지키려 애쓴 미국민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매년 수백만 미국민들이 찾아오는 워싱턴 한복판 몰(Mall)공원에 「자유는 공짜로 얻는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세워진 한국전참전비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숨져간 3만3천여 영령들의 귀중한 자유수호 의지를 역사 속에 길이 빛나게 할 전승기념비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전참전비가 워싱턴 한가운데 자리잡게 됨으로써 한국전쟁이 2차대전 후 냉전체제 아래서 최초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 전쟁으로, 또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보병전쟁으로 미국이 끝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전쟁이라는 미국역사상,미군전사상 새롭게 자리매김되는 의미 또한 갖는다. 이같은 역사적 의미를 뒷받침하듯 오는 27일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그리고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과 참전용사,한국전 참전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성대한 제막식과 이를 전후해 개최되는 각군 주관 행사 등은 이른바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내용들로 돼있다. 또 전장터를 의미하는 삼각형 부분은 삼각형의 긴 꼭지가 원의 중앙에 도달케 돼 있으며 주진입로가 되는 좌측 변에는 한국을 비롯한 유엔참전국들의 국명을 돌판에 새겼고 우측 변에는 화강암 벽면을 길게 설치해 한국전쟁중 미군활동의 전체과정을 부조했다. 미국 참전비건립위원회와 한국전참전기념사업위원회의 주관으로 미육군 공병대가 시공한 이 참전비는 92년6월에 착공,3년1개월만에 완공되는데 총비용은 1천8백만달러가 들었으며 한·미 양국 기업들의 모금과 기념주화 판매 등 수익사업 등으로 충당됐다. 참전비 제막식 관련행사는 다음과 같다. ◆26일=낮 12시몰공원에서의 텐트촌(Tent City) 개장식으로부터 본행사가 시작된다.부산 피난 당시를 연상케 하는 이 텐트촌에는 각국 참전재향군인회,정부유관기관 등 현재 16개 단체가 입주를 신청했다.하오 7시에는 미해병대가 이와지마 기념비에서 미해병대의 황혼(Sunset) 퍼레이드를,미육군은 백악관앞 엘립스광장에서 군악연주회를 갖는다. ◆27일=상오 10시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묘에서 진혼제를 시작으로 하오 3시에는 양국 대통령이 참석,제막식을 갖는다.하오 8시부터는 불꽃놀이 등 축제가 열리고 같은 시각 미해병대의 이브닝 퍼레이드가 열린다. ◆28일=상오 11시 워싱턴기념탑 아래 광장에서 3만여명의 참전용사와 현역병이 참가하는 대형 열병식이 거행된다.20세기 들어 처음이며 남북전쟁 이후 최초로 행해진다.하오 1시에는 해군기념비에서 진혼제가 열린다. ◆29일=상오 11시 참전용사 귀환 환영 퍼레이드가 시내 중심가에서 펼쳐지며 하오 4시 텐트촌의 철거로 모든 행사를 끝맺는다. ◎“참전비는 전장서 잃은 내몸의반쪽”/참전기념위 사무국장 웨버 예비역대령/“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무한한 긍지”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이 참전비를 세움으로써 한국전쟁의 끝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한국전참전비 공사장에서 만난 윌리엄 웨버 예비역 육군대령(69)은 베트남참전비가 10여년 전에 세워진데 비해 한국전참전비가 이제 세워진 것은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80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한국전참전기념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해온 그는 『한국전쟁은 2차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명분있는 전쟁이었다』면서 『피로 지켰던 한국이 오늘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가는 것을 볼 때 참전용사의 한사람으로 무한한 긍지와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전에서 몸의 반을 잃고 한평생을 살아온 내게 이 참전비는 뒤늦게 되찾은 내몸의 반쪽』이라는 개인적 의미 부여도 서슴지않는 웨버 대령은 켄터키 주둔 미 187 공수여단의 팀장인 대위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적후방 교란 임무를 띠고 8월말 평남 순천에 투하되었다.다음해 2월 중국군과의 원주전투에서 한쪽 팔과 다리,눈을 잃고 본토로 후송될 때까지 7개월간 적진 구석구석을 낙하산을 타고 누볐다.타고난 군인이었던 그는 퇴원 후 정부에서 제의해온 많은 좋은 자리들을 거부하고 군에 남기를 희망,2차대전 때부터 37년간 미육군을 지켜왔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피흘림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 『자유와 민주를 지킨다는 일념에서 아무 조건없이 낯선 땅 한국을 찾았을 뿐인 만큼 그 관계는 「빚」으로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우정」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전대통령 정권창출위한 기초행위/「5·18」수사 사태의 성격

    ◎계엄확대는 강력한 정국주도의 표현/국보위를 5공 탄생의 산실로 삼아 위헌·위법 여부가 문제되고 있는 행위는 외형적으로 최규하 전대통령의 재가를 받거나 대통령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다. 즉,최전대통령은 중앙정보부 기능의 효율성을 위해 전두환 전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했고 비상계엄 확대 선포안을 재가했으며 계엄사령관은 계엄군을 국가보안목표에 투입하고 정치 목적의 옥외집회·시위와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또 소요조종자와 권력형 부정축재자를 법에 따라 신중하게 조사토록 당부했으며 합수부는 주요 정치인과 학생 대표들을 체포했다. 이와함께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과 군의 긴밀한 협조를 위해 국보위를 설치하는 것을 재가하고 전전보안사령관을 상임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따라서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최전대통령의 국군통수권 행사이거나 국가 긴급권과 법령에 근거한 집행행위들로서 외형적으로는 최전대통령의 국가행위에 해당된다. 그러나 비상계엄의 확대,정치활동의 금지,국보위의 설치등은 전전사령관이대통령의 지시없이 추진한 조치들로서 정권 창출의 기초행위로서의 실질도 갖고 있다. 먼저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정보를 장악하고 각료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집권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계엄 확대는 군의 정치개입을 초래하게 되고 비상기구의 설치나 국회의 해산,정치활동의 규제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야 하는데도 전전사령관이 참모들에게 입안하게 한뒤 지휘관회의에서 결의하는 형식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정국장악 의사 없이는 추진할 수 없는데도 전격 추진,집권한 사실에 비춰 전전사령관은 계엄 확대로 정국을 장악할 의도가 있었다. 특히 정치활동 금지는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았고 정치권을 배제하고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의사가 강력히 시사된 것이다. 더욱이 가택연금은 법적 근거도 없고 불법구속·가혹행위 시비가 야기되고 재산헌납·공직사퇴도 정국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인사들을 제거한 것으로 경쟁자 없이 권좌에 오르게 된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 전국 비상계엄에서는 계엄사령관이 행정을 관장하게돼 있음에도 국보위상임위가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내각을 통제하는 계엄사령관의 권한을 행사했다. 또 전전사령관은 상임위원장에 취임하자 헌법개정안을 작성,개헌작업에 반영하는 등 국보위를 5공화국 탄생의 산실로 삼았다. 결국 국보위는 자문기구로서보다는 비상기구와 같이 행정부를 통제하는 권력기구로 운영돼 전전위원장이 실질적 주도자임을 과시하는데 이용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최전대통령의 국사행위의 외관을 갖고 있어도 실지로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사망으로 초래된 권력 공백기에 12·12 사건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 전전사령관이 정권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전국 비상계엄이라는 특수상황과 국군 보안사령관,중앙정보부장 서리,국보위 상임위원장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한 정치적 성격의 행위다. 다만 광주민주화시위의 발단이 된 전남대와 도청앞에서의 학생과 공수부대의 충돌은 학생들이 계엄군의 기습적 대학점령 등에 분격하고 계엄확대를 통한 군의 전면 등장과 김대중씨 등 정치지도자와 학생지도부의 체포에 반발,시위를 벌였고 공수부대가 폭동진압식의 강경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태가 악화된 원인은 부대원들이 시위대의 투석으로 부상하자,남녀노소나 시위가담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가격하거나 체포하는 강력한 공격적 진압으로 부상자가 발생하고 연행자들을 반라로 만들어 기합을 주기까지 하여 극도의 분노감과 적개심을 야기시켰다. 또 보도통제로 악성 유언비어가 발생하고 시민들로 하여금 고립감과 격렬한 저항감을 야기,공수부대를 몰아내자는 결의를 하게 됐다. 이에 공수부대에 차량돌진을 감행했고 공수부대가 발포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시민들도 무장저항을 하게 되는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 □5·18사건 수사 일지 ▲94·5·13=정동년 광주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등 이 사건 피해자 3백22명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등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 ▲7·13=서울지검,피고소인중 현역군인 14명 국방부에 조사의뢰. ▲10·19=한완상씨등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 22명,전·노 전 대통령등 10명 고소. ▲10·28=장기욱·이부영의원 등 민주당 「민주개혁 정치모임」소속 의원 29명,전·노 전대통령등 신군부 인사 23명 고발(이에 따라 피고소·고발인은 모두 58명으로 늘어남). ▲10·31=5·18관련 고소고발 사건 조사 착수. ▲11·23=정동년씨 소환조사. ▲11·30=장기욱의원 조사. ▲12·1=5·18 당시 민주청년협의회 상임의장 이신범씨 조사.국방부 검찰부,5·18 관련 현역군인 90여명 수사착수. ▲12·2=KNCC 인권위원장 김상근목사 조사. ▲12·5=5·18 당시 31사단장겸 전남지역 계엄분소장 정웅씨 소환조사. ▲12·1∼16=당시 전교사 사령관 소준렬·윤흥정씨 소환. ▲12·17=피고발인중 차달숙씨등 3명 무혐의 처분. ▲12·19=신현확전총리 조사. ▲94·12·21∼95·1·20=당시 공수부대등 진압부대의 대대장급 군간부 소환조사. ▲95·1·25=이희성씨 소환. ▲2·1=국방부 검찰부,김동진합참의장 등 현역군인 12명 조사착수. ▲2·9=당시 합참의장 유병현씨 소환조사. ▲2·15=당시 내무장관 김종환씨 소환조사. ▲2·17=남덕우 전국무총리,신병현 전부총리등 국보위위원 17명 서면조사. ▲2·21=당시 국방장관 주영복씨 소환조사. ▲3·21∼4·7=당시 20사단장 박준병의원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으로당시 보안사 대공처장겸 합수부 수사국장 이학봉전의원,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의원,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의원,특전사령관 정호용의원 소환조사. ▲4·11=당시 3공수여단소속 상사 첫 소환. ▲4·14=민주당 김옥두·한화갑의원,전두환 전대통령 등 10명을 내란혐의로 고소. ▲4·14=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 재소환. ▲4·22=당시 보안사언론팀장 이상재의원 소환. ▲4·26=당시 국방장관 주영복씨 재소환. ▲4·29=전·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서 발송. ▲5·11=「헬기 총기난사」주장 미 피터슨 목사 조사. ▲5·19=노전대통령 답변서제출. ▲6·2=전전대통령 답변서제출. ▲6·7=최전대통령,검찰 방문조사 불응 통보. ▲7·18=최종 수사결과 발표.
  • “강군만이 이땅에 평화 보장”/김 대통령 군부대 방문 스케치

    ◎“6·25 전몰장병 숭고한 희생이 번영 밑거름”/미 「오그래디 구출작전」 예로 들며 해병 격려/비상벨 직접 눌러 공군 비상출동태세 점검 김영삼 대통령은 6·25발발 45주년을 앞두고 15일 육·해·공군 각급 부대를 순시,훈련과 경계 임무에 전념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새벽 중부전선 육군 ○○부대에 도착,연병장에서 장병들과 20여분 동안 구보로 아침운동을 한 뒤 사병식당에서 조찬을 함께 하면서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국토방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6·25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전쟁이며 수많은 전몰장병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처럼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강조한 뒤 『우리가 힘이 있을 때만이 북한 및 주변국가가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여러분들의 사기넘친 행동은 내 자신 학도의용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고 『장병들의 구릿빛 얼굴을 보면 거제 바다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같아 정다움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부대 하사관 관사를 둘러보고 자녀교육 등 전방지역 군인가족들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한 뒤 『장병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전차부대 훈련장을 방문,훈련상황을 지켜본 뒤 『정예강군만이 이땅에 진정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도높은 훈련,고도의 전술연마를 당부했으며 훈련후 환호하는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 ○…김대통령은 이어 헬기편으로 공군○○부대에 도착,직접 비상벨을 눌러 비상출동태세를 점검하고 기동시범을 참관한 뒤 『완벽한 영공방위태세를 확립하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공군부대를 출발,경기 남부지역으로 이전한 해병대사령부를 처음으로 방문,현황을 보고받고 장병들과 오찬.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미 해병특공대가 보스니아에서 피격된 미공군 F­16 전투기 조종사 스콧 오그라디대위 구출작전을 벌인 것을 예로 들면서 국경을 초월,「귀신잡는 해병」의 전통계승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오찬에 배석한 해병 영웅 고 이인호 소령(월남전에서 전사)의 아들 현역 해병 이제욱 대위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시하기도.
  • 러 「승전 50년」 행사 법석/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코너)

    모스크바시민들은 지난 29일부터 무려 열흘이 넘는 장기 연휴에 들어갔다.공식휴일은 메이데이휴일인 5월1일,2일과 2차대전 「승전 50주년 기념일」인 5월8일,9일이지만 중간에 끼인 날까지 계속 노는 직장이 태반이어서 그야말로 황금연휴에 젖어든 모습들이다. 연초부터 박차를 가해온 승리의 날 행사준비는 막바지 손질이 한창이다.주요 행사장소는 붉은 광장과 크렘린 옆 마네슈광장,그리고 승리박물관이 새로 들어선 시외곽의 빠끌라나야 고라광장.붉은광장에선 5월9일 4천5백명의 퇴역군인과 사관생도 2천명이 참가하는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진다.클린턴 미국대통령을 비롯,전세계 50여개국 지도자들은 레닌묘위에 마련된 단상에서 이 퍼레이드를 참관하게 된다. 현역군인들이 펼치는 진짜 퍼레이드는 시외곽의 빠끌라나야광장에서 거행된다.체첸전쟁에 대한 국제여론을 감안,서방지도자들 앞에서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이 퍼레이드에는 장갑차,탱크 2백여대와 전투기 70대,1만명의 병력이 참가한다.지난 17일부터 매일 하오6시면 이들 병력과 장비들이 예행연습을 위해 시내로 이동했다가 자정쯤 부대로 되돌아간다. 이 때문에 퇴근시간에 2∼3시간씩 도로가 차단돼 시민들의 불편을 주어왔으나 대낮에 2백여대의 탱크가 시내로 들어가는 장면은 큰 구경거리임에 틀림없다.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또 쿠데타가 난 게 아니냐며 불안해하기도 한다.연휴기간중에는 시내 도처에서 낮에는 브라스밴드행진이 펼쳐지고 밤에는 폭죽놀이가 계속된다고 한다. 옐친정부가 이번 행사에 기울이는 정성은 대단하다.공식적으로 발표된 행사비용이 자그마치 55억루블(1백10만달러).2천여종의 포스터가 거리에 나붙었고 수만장의 국기가 시내를 장식했다.버스,전차들에도 각가지 문양,포스터가 부착됐다.시공보실이 배포한 자료에는 이번 행사의 목적이 『당시 우리 군의 영웅적 행적을 되새김으로써 국민들의 애국심과 조국방위정신을 드높인다』고 적혀있다.국내 정치적인 효과는 물론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사정을 보면 이런 요란한 행사치레는 아무래도 걸맞지 않은 것같다.체첸공화국에서는전투가 계속중이고 월소득 30달러이하의 빈곤계층이 전체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이다.이런 마당에 채무국 지도자들을 우르르 불러 모아놓고 요란한 잔치를 벌인다는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 「섬나라」 황금연휴… 일인이 몰려온다/관광 “호황”… 검색“비상”

    ◎「엔고」타고 평소의 3배이상 입국/옴교 원정 보복테러 대비 초긴장 이번 주말부터 5월 첫째주까지 일본인관광객이 줄을 이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특히 5월3∼4일전후에는 평소의 3배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 기간 서울과 제주도·경주등 주요지역의 호텔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며 한·일노선의 항공편도 벌써 동이 나는등 관광업계가 호황을 누리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는 오는 29일이 식목일이고 30일은 일요일로 연휴가 되며 5월3일은 헌법기념일,4일 국민체육일,5일 어린이날,6∼7일 주말로 황금연휴가 이어지는데다 최근의 「엔고」현상으로 일본인이 한국등지로 국외여행을 하는 것이 국내여행보다 오히려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은 연휴와 연휴 사이에 낀 5월1∼2일을 「샌드위치 데이」로 대부분 휴가를 얻어 4월말부터 5월8∼9일까지 한국등 해외여행에 나서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일본인관광객 등의 대거입국이 예상되자 관계당국은 출입국관리비상령을 내리고 공항·항만 등 출입국장소는 물론호텔·지하철·백화점 등 공공장소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등 보안당국과 호텔등 관광업계는 특히 23일 옴진리교 제2인자가 재일동포에게 살해된 데 따라 추종세력이 보복테러를 하기 위해 관광객 등으로 위장잠입할 가능성등에 대비,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포공항경찰대는 이에 따라 첫 비행기와 마지막 비행기의 이착륙 1시간을 전·후해 공항청사의 화장실과 사무실 쓰레기통 등을 샅샅이 검색,폭발물과 유해가스 등을 탐지하고 있으며 소속 경찰관 40명을 경찰특공대에 보내 대테러훈련을 시켰다. 경찰은 아울러 공단과 협조,고체·액체폭약 및 유해가스를 탐지할 수 있는 최신형 검색기 9대를 들여와 여객및 화물청사에 배치하기로 했다. 공항경찰대는 세관및 출입국관리소등과 협조,이날부터 일본·중국·미국등지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은 미성년자까지도 철저하게 검사하기로 하는 한편 여권 없이 신분증만으로 입·출국이 가능하던 미8군 소속 현역군인에 대한 심사도 강화했다. 이에 발맞춰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은 11개이던CC­TV를 66개의 컬러TV로 대폭 늘리거나 교체했으며 3일이던 녹화테이프 보관일도 1주일로 늘렸다.
  • “중립국감독위 활동 포기”/폴란드,한국에 통보

    폴란드 정부는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감독위원의 활동을 더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는 뜻을 최근 우리 정부에 통보해 온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또 지난 2월 28일 폴란드의 중립국감독위원 5명이 북한의 물리적 강압에 의해 판문점에서 축출된 직후 게리 럭 주한 유엔군사령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특별보고서도 안보리의 공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지난 53년 7월 유엔군과 북한·중국군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와 함께 한반도 정전체제의 한 축을 이뤄온 중립국감독위원회는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보이며,북한은 이를 대체할 평화협정의 체결을 한층 강도 높게 요구할 전망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폴란드 정부는 북한이 중립국 감독위원을 축출한 뒤 북경이나 판문점 남측지역에 위원을 상주시켜 감독활동을 계속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지리적 여건이나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역할에 비춰 현실적으로 이행되기 어렵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폴란드측 감독위원이었던 오차릭 소장등 현역군인 5명은 판문점에서 축출된 뒤 평양과 북경을 거쳐 지난달초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무르고 있으며 조만간 다른보직을 부여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체코에 이어 폴란드도 활동을 중단하게 됨에 따라 중립국감독위원회의 북한측 당사자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하고 『남측의 감독위원국인 스위스와 스웨덴 감독위원단도 상대측이 없어져 매일 열도록 규정된 회의와 협정위반 감시,사찰등의 활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아직까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비롯한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우리 정부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북한측이 미국측에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하더라도 남북한 당사자간의 협의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 북한 탈출 조창호씨/모교 연대 명예졸업

    연세대 재학중 6·25사변을 맞아 현역소위로 납북됐다가 43년만인 지난해 10월 중국을 통해 탈출한 조창호(65)씨가 오는 27일 모교 졸업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학교측은 『조씨가 북한의 온갖 학대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애국심과 군인정신으로 조국에 돌아온 점이 연세대의 건학이념인 진리와 자유에 부합될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의 명예를 드높여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
  • 실명제… 정치개혁 입법… 새국가틀 구축(민주화에서 세계화로:10)

    ◎개발시대 폐단 개선에 조직적 대응 긴요/국민욕구 적절히 반영 「이익의 정치」펼때/재산공개 등 공직비리 발본 노력 높이사야/권위주의 구조 타파… 국민의식 전환계기로 □정담 이인제 민자의원 전노동장관 김영식 세종대교수·정치사회학 오석홍 서울대교수·행정학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개혁의 기치를 들고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다.일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난날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각종 개혁조치들이 여러 분야에서 과감하게 단행됐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다.문민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성과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지향점은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오석홍 교수(서울대·행정학)및 김영식 교수(세종대·정치사회학) 등 전문가와 노동부장관등을 역임하는등 개혁정책추진의 한 주역이던 이인제 의원(민자당) 3인의 정담으로 살펴본다. ▲오 교수=새정부는 정치및 행정에 있어 정당성을 복원하는 데 대단한 역점을 두고 출범했습니다.순국선열의 유해를 봉환한다거나 옛 일본총독관저와 총독부를 허문다는 것이 모두 그 노력을 반영하는것입니다.「12·12」 등 근접한 몇 사건에 대해서도 「쿠데타적」이라고 규정하는등 과거의 청산및 역사복원의 상징적 조치를 많이 단행했습니다. 공직자의 재산등록및 공개까지 포함해 일련의 제도를 정비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를 비롯해 경제정의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제도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그런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정치개혁에 있어서도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안 받는등 윗물맑기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지요.국회및 정당의 내부운영을 정상화하는 노력도 돋보였습니다.민주화를 위한 경선제 도입도 눈여겨볼 만한 것입니다.가장 큰 것은 선거의 부정타락을 막는 개혁입법을 단행했다는 점입니다. ○제도정비 큰 의의 ▲김 교수=개혁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로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하나는 문민정부라는 것의 성격에서 개혁이 가지는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또 하나는 문민정부가 종전 정부와 달리 권위주의의 청산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정부행정조직의 개편이나 축소는 그자체보다 전체사회에 주는 영향이 상당합니다.그러나 새 정부는 부처조직의 축소뿐만 아니라 공직자 재산공개,금융실명제,정치개혁 입법등을 통해 문민정부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단순히 군인출신이 잡던 정권에서 재야나 민주활동을 하던 민간인이 잡았다는 사전적 의미로 문민정부나 개혁이 정의되어서는 안됩니다.제도적으로 새로운 요소들이 포함되어야 그 의미가 살아나게 됩니다. ▲이 의원=여당에 몸담고 있는 현역의원으로 문민정부의 개혁정책에 관해 평가받아야 할 처지에서 스스로 평가하자니 조금 어색합니다(웃음).지난 2년동안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 개혁정책이 추진되어왔습니다.잠시도 쉬지 않고 베스트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문민정부 출범직후 오랜 기간 누적된 권위주의의 잔재를 일소하는 데서 개혁은 시작됐습니다.김영삼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한푼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스스로 깨끗함을 실천했고 공직자윤리법을 통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구조를 근원적으로 차단했습니다.이런 개혁조치들은 여론의 힘이 있었기에 전격적인 단행이 가능했습니다. 민주정치는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정치개혁법으로 선거혁명의 바탕이 마련되었고 국회운영,정치자금분배,정당운영에서도 여러 개혁조치가 단행됐습니다. ▲오 교수=행정쇄신위원회의 활동등을 통한 정부의 규제완화도 완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습니다.지방자치선거를 예정대로 하겠다는 것도 진일보한 조치입니다.단체장선거는 지방의회선거와 질이 다릅니다. 정부의 감사및 통제조직의 위상이 정상화된 것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감사원·경찰·검찰이 비교적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예전에는 안기부나 보안사 등 권력기관 밑에서 숨도 못쉬지 않았습니까.이들 감사기관 외에 옴부즈맨제도 등을 도입,부패 제거및 권력통제차원의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그 때문에 정권의 정당성이 제고되고 있는 셈이지요. 특히 군의 개혁은 압권입니다.김 대통령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많은 고수들이 이야기하더군요.만일 다른 이가 집권했다면 여러 이유로 군개혁을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김 교수=사회분야에서 권위주의의 청산이 주는 영향은 굉장합니다.민자당은 권위주의 청산을 논하면서 결론은 대부분 정치문화로 돌리더군요.국민의 정치가치및 의식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식이지요.그러나 역으로 이제까지의 제도적 권위주의가 사회의 밑바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그런 과정을 거쳐 사회구조까지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문민정부 출범후 사회전체가 정부에 대해 갖는 기대가 커졌습니다.87년부터 민주화가 시작됐다지만 사실상 정치민주화가 본질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문민정부부터입니다.이 때문에 개인및 집단의 욕구가 집중적으로 분출되고 있습니다.정부가 이들 욕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반영하는지가 대단히 중요해졌습니다.「이익의 정치」가 강조되는 시기가 왔다고도 생각합니다. ○일도 손못댄 개혁 ▲이 의원=개발독재시대의 「부익부 빈익빈」의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개혁조치가 단행되었습니다.대표적인 것이 금융실명제입니다.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부동산실명제 개혁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금융및 부동산실명제는 개혁의 엣센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일본도 못하는 개혁을 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변화와 개혁의 기치를 내건 2년만에 마침내 정부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지표를 제시했습니다.문민정부 초기에 세계화를 내세우면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이제는 구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새 질서를 창조하는 데까지 승화되고 있습니다. ▲오 교수=5년 임기동안에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현재의 과거청산진행을 보면 개발시대에 축적된 폐단과 장래의 위험성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에는 역부족입니다.우리 사회제도에는 「날림」이 많습니다.현정부가 책임은 없지만 대응해야 합니다.그런 측면에서 조직적 접근이 미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정치적·행정적 정당성의 복원과 부패척결입니다.이같은 누적된 문제들은 현정부가 많은 업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속시원하게 결말이 났다고 보기 어렵습니다.「5·6공세력」과 연결되는 지지기반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지금까지의과거청산은 역사적 규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부의 예견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정통관료들은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 자연히 예견력이 떨어집니다.단적인 예가 바로 지방자치제입니다.과연 지방자치제에 대비한 준비를 얼마나 해왔는가 하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정적 정부로서의 기능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이익충돌과 갈등은 정보화사회에 접어들면 더욱 극명해집니다. 새로운 일을 과거의 방식대로 처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불만입니다.민주주의를 하려면 절차도 민주화해야 합니다. ▲김 교수=개인이 원자화되면서 가치와 욕구가 제 각각으로 분화돼 합일적 가치를 도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강한 욕구부터 처리하면 대증적 정책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그런 식의 개혁은 결국 타협으로 흘러 본래의 의미를 상실합니다.따라서 정책의 기반인 국민적 가치를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민자당은 국민의 정치의식이 낮다는 탓만 하고 있습니다.하지만 국민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 하는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정당은 정책과 이익·권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의무와 책임의 문제,즉 공공선과 공공의 이익을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 제도가 유신의 요소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이런 혼합된 형태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대통령이 책임지고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확립돼야 합니다. ○고칠것은 고쳐야 ▲이 의원=문민정부가 지난 2년동안 해온 개혁조치들은 대통령의 결단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고 일부에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그러나 민주정치에서의 보편적 가치인 법치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의사결정과정이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은 불가피했다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왜냐하면 개혁의 대상이 독재정권을 지탱하던 조직들이었기 때문입니다.개혁대상을 상대로 오랜 시간 공개적 논의를 거쳐 개혁의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혁은 대형사건·사고로 다소 퇴색된 것이 사실입니다.집단이기주의의 분출도 한몫을 거들었습니다.지난 30여년 진행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적폐가 나타나고 있는 것과 함께 권위주의시절에는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거나 은폐되던 일들이 이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공개적이고 합리적인 이익을 헤아리는 제도와 관행이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지방자치는 문민정부의 큰 과제입니다.권위주의정권들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이제까지 어떤 자치제를 실시해야 국가의 통합과 국민의 복리증진,그리고 지방자치제가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안된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풍부한 인력과 자료가 있는 행정관료집단이 그런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들은 지방자치제에 반대했습니다.국가적,그리고 국민복리차원에서 여야가 논의해 선거 전에 고칠 것은 고치고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방향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 부산대 주사파 비밀조직 적발/자주대오

    ◎전­현학생회간부·군인 등 10명 구속/한총련 의장 진출… 노동계에도 침투 【부산=이기철 기자】 김일성주체사상을 통해 남한을 해방한다는 계급이론을 학습하고 군과 노동계 등에 침투된 대학가 비밀조직원 11명이 경찰과 군수사기관에 적발됐다. 부산경찰청 보안수사대는 14일 부산대 비밀조직 「자주대오」 총책 장석복씨(22·국문3),93년도 총학생회장 정재호씨(24·무기재료4) 등 부산대 전·현직 총학생회 간부 6명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김선희씨(22·사회3)를 입건했다. 국군기무사령부도 이날 92년도 총학생회장 김수욱씨(25·육군1사단 근무) 등 현역군인 4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93년 8월2일부터 6일까지 경주 도투락월드수련장에서 「롯데그룹 하반기연수」를 위장,김일성주체사상을 통해 남한을 해방한다는 의식화학습을 실시하고 같은해 2월25일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부경총련 결의대회」를 주도하는 등 지난해말까지 14차례에 걸쳐 각종 불법집회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과 군은 또 이들이 현역으로 입대한뒤 휴가나 외박을 나와 기존의 조직원들과 접촉,의식화학습을 계속하거나 졸업예정자들이 경남 양산일대 노동계에 침투,주체사상을 몰래 전파하고 있는 것으로 정보를 입수,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특히 93년도와 지난해에 부산대 총학생회에 조직원인 정씨와 김현준씨(25·구속중)를 각각 내세워 당선시켜 총학생회를 장악하는 한편 김씨가 지난해 「한총련」의장으로 선출되도록 하는 등 전국적인 조직으로 진출을 시도,각 대학학생회를 장악하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주대오」는 지난해 7월 조선노동당 남한지역당 「구국전위대」사건의 부산·경남지역책으로 구속된 박화국씨(29·부산대 법학과)가 89년 8월 부산대 주사파핵심세력들을 규합,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계급투쟁을 목표로 비밀결사체로 결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 군인 12명 조사 착수/군검찰,5·18 관련

    5·18 고소·고발사건과 관련, 현역군인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국방부 검찰부는 1일 이 사건 피고소·피고발인 가운데 현역군인에 대한 조사를 이달부터 착수키로 했다. 군검찰이 피고소등의 조사를 벌일 대상은 김동진 합참의장(5·18 당시 20사단 61연대장),유효일 국방부 동원국장(소장·〃 20사단 62연대 3대대장)등 12명이다.
  • 「쿠데타계획」 입증어려워 “답보”/「5·18」수사 어떻게 돼가나

    ◎피고소·고발인 58명중 21명 조사/신군부측 의원4명은 소환불응 「5·18」고소·고발 사건의 검찰수사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고소·고발인들이 주장하는 내란죄 등과 관련,신군부의 79년 12·12∼80년 5·18∼80년 8월16일 최규하 전대통령 하야로 이어지는 이른바 「다단계 쿠데타 계획」을 입증하기 어려운데다 피고소·고발인 또한 수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5·18」관련 고소·고발사건은 크게 3부류로 나뉘어 진다. 정동년씨 등 이 사건 피해자 3백22명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35명을 상대로 낸 사건 ▲한완상·김상현씨 등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22명이 전·노 전대통령 등 10명을 상대로 낸 사건 ▲이부영의원 등 민주당 「민주개혁정치모임」소속 29명이 국보위 위원 23명을 상대로 낸 사건 등이다. 이 3가지 사건의 총 피고소·고발인은 58명에 이르고 있다.이들 가운데 29일 현재 검찰에서 조사를 마친 사람은 21명.피고소·고발인중 12명의 현역 군인은 국방부에서 자체조사가 진행중이다. 이와 관련,검찰수사 관계자는 『사건 당시 광주에 투입된 3·7·11여단장을 비롯,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 등 21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면서 『정동년씨와 신현확 전국무총리 등 9명도 고발인과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5·18」 당시 광주에서의 상황 등에 대한 보완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 수사관계자는 『고소·고발인들의 주장대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수경사령관,정호용(정호용) 특전사령관을 비롯,박준병(박준병) 20사단장 등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최전대통령을 협박,전국에 계엄을 확대시켜 광주사태를 일으키고 최전대통령을 하야시켰는지 여부는 당사자들의 진술과 함께 물증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해 이를 암시했다. 검찰은 5·18이후의 사건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당시 국무총리를 역임한 신현확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비상계엄확대를 결의한 국무회의와 2월부터 시작된 충정훈련 등 신군부측의 동향을 파악하려 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신군부측의실세로 통했던 정 전특전사령관 등 국회의원 4명을 소환하려 했으나 이들이 2월초 열리는 전당대회 등을 이유로 소환시기를 미루고 있어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최대의 관심사는 피고소·고발인격인 전·노 전대통령과 참고인격인 최 전대통령에 대한 소환시기 및 조사방법이다. 특히 최 전대통령은 12·12사건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는 「핵심」참고인이어서 서면조사 대신 검사가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최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 무렵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해자들은 김씨가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81년 1월을 기준으로 96년 1월을 꼽고 있고 민주당 개혁모임측은 국보위가 해산된 81년 4월을 기준으로 96년 4월 공소시효가 완성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은 최 전대통령의 하야시점을 기산점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 여론은 어떤가/본사조사(신 지도자론:5)

    ◎“정치권 세대교체 필요” 76%/“새시대엔 새인물 필요”·“국민 바라는 정치안해”/“뉴리더 덕목 1호는 미래비전” 46%/“70세 정치정년론 공감한다” 58.4% 2000년대의 우리나라는 선진 7개국(G­7)의 일원으로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만 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선 선진국들이 더 멀리 달아나려 하고 있고 뒤처진 후발국들이 거센 기세로 추월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정치의 현실은 아직도 정치지도자들의 분파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케케묵은 지역감정을 내세운 정치세력화 움직임이 또다시 유령처럼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망이 클수록 새로운 지도자,우리를 세계로 이끌고 선진사회를 가꿔줄 리더십의 출현을 고대하는 기대도 그만큼 높아지게 마련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지도자상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국민들은 어떠한 변화를 바라는가. 서울신문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과인 미디어리서치사에 의뢰해 이같은 궁금증에 대한 국민들의 뜻을 살펴보았다. 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새로운 지도자가필요하다』고 지적할 정도로 새 지도자를 바라는 국민들의 생각은 강렬했다.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는 45.8%가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있는 지도자」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정치지도자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30.6%가 「매우 필요하다」고 했고 45.4%는 「비교적 필요하다」고 응답,전체의 76%가 세대교체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은 19.8%에 그쳤다.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응답자 가운데는 남자가 81.6%로 70.7%인 여자보다 많았고 고학력·고소득층,사무직 종사자쪽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이유를 주관식으로 물은 결과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인물이 필요해서」라는 답이 21.1%로 가장 많았고 「현재의 낡은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답이 12.4%였다.나머지는 「구세대 세력이 너무 오래간다」「여야가 싸움만 한다」「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등이었다. ○물갈이 시급 48% 새로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가지씩 꼽아보라는 질문에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45.8%가 지지했고 경제지식 37.6%,정치력 35%,통일대비능력 25.2%,전문성 22.2%,행정능력 21.2%순으로 나타났다. 세대교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있다」가 48.4%,「없다」가 46.8%로 거의 비슷하게 양분되어 있다.따라서 국민들은 세대교체를 강력히 원하면서도 그 가능성에는 반신반의하는 것으로 풀이돼 현역 정치인의 기득권이 뿌리 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세대교체가 가능한 시점으로는 29.8%가 97년 대통령 선거 전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고 25.2%가 96년 국회의원 선거 전,20.2%가 올해 6월 지방자치제 선거 전에 가능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물갈이의 폭에 대해서는 대폭적인 인물교체를 원하는 쪽이 39.2%였고 소폭 34.8%,일부 15.8%인 반면 인물교체가 전혀 필요 없다는 답은 6.4%에 불과했다. 물갈이가 시급한 정당에 대한 질문에는 여당이 시급하다는 응답이 27.2%로 야당의 15.2%보다 높았으나 응답자들은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48.6%가 여야 구별 없이 물갈이가 시급하다고 답변해 정치권 전체의 물갈이를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막후 역할 부정적 현재의 여야정치지도자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답변이 38.2%인데 비해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52.2%로 나타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훨씬 많았다. 최근 김윤환 정무1장관이 제기했던 「70세 정치정년론」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가 58.4%,공감하지 않는다가 40.4%였다. 오는 97년 대통령선거에서의 후보유형으로는 직업정치인 44.8%,행정가 21.4%,의사·변호사등 전문직업인 12.4%,학자 10%,군인출신 3.6%의 순으로 나타나 통합적인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역시 정치인 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96년 총선에서도 역시 후보유형으로는 직업정치인 35.2%,행정가 15.8%,시민운동가 14.4%,전문직업인 9.2%,학자 8.4%,기업인 4.2%,군인출신 1.6%로 조사됐다. 이번의 여론조사는 비례할당및 무작위추출법을 사용했으며 전국의 만20살 이상 성인 남녀 5백명을 대상으로 지난 19,20일 이틀동안 전화면접으로 이뤄졌다.
  • 이희성씨 내일 소환/5·18사건 수사

    「5·18」 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사건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씨를 오는 25일 소환,피고소·고발인 조사를 한다고 23일 밝혔다. 검찰은 이날 현재 피고소·고발인 58명 가운데 20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으며 정호용·박준병·허화평의원 등 현역의원 4명을 빠른 시일안에 불러 조사하고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에 대해서도 소환시기및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또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12·12사건과는 달리 이 사건 당사자임을 감안,서면조사 대신 수사검사가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58명의 피고소·고발인중 12명은 현역 군인으로 국방부에서 군투입가담정도등에 대해 집중조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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