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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하)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하)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인생의 큰 변화는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외교관을 꿈꾸던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군인의 길로 들어선 것이 첫 터닝 포인트였다면,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지내면서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것이 두 번째 변화의 계기였다. 김 전 부위원장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지만 체육회 1년 예산은 문교부에서 나온 1억원이 전부였다. 돈이 없는 경기단체의 장에 정치적 실력자를 배정하다피시 했다. 사격은 박종규(대통령 경호실장), 복싱은 김택수(국회의원), 축구는 장덕진(농수산부 장관) 하는 식이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들어간 건 아닌데 좌우간 (경호실 차장으로) 힘이 있을 때니까 호주머니 털어서 (선수들을) 여관에 합숙시키곤 했다”고 돌아봤다. 태권도와 어떤 접점도 없었던 그가 이런 행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비전 때문이었다. ‘체력은 국력’이란 강령 아래에선 국위 선양할 것이 태권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에만 사범이 10명 있을 정도로 해외에 사범들이 많았지만 국내에는 중앙 도장도 없고 세계연맹도 없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였다.” 1971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협회에 체계라곤 없었다. 30개 파로 나뉘어 제각각 단증을 발급하는가 하면 사범 교육 제도도 전무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어수선하던 태권도계에 국기화, 세계화, 국위 선양의 기수, 호국의 기수란 네 가지 비전을 제시하고 기틀을 잡아 나갔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70년대를 관통한 불도저식 개발은 태권도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협회장 취임 일성으로 중앙 도장인 국기원 건립을 내세운 그는 막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인다.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란 직함이 그 추진력에 연료를 제공했을 터. “호주머니 털고 친구에게 용돈 뜯어다가 지었다. 땅은 양택식 서울시장에게 빌렸는데 그것도 옥신각신했고. 돈이 없으니까 여기저기서 기부도 받았다. 이병철 삼성 회장 300만원, 정인영 현대건설 부사장 200만원 등등…. 청와대 경호관 월급이 2만원일 땐데, 그때 그 돈이면 굉장한 거다. 철근은 인천제철에서, 지붕은 벽산에서 슬레이트를 갖다 놨다. 동창들 찾아가서 (사정해서) 지었다. 시멘트 한 포가 270원, 철근 1t이 2만원 할 때다.” 72년 중동 오일쇼크가 덮쳤지만 국기원은 그해 11월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취임한 지 1년 10개월 만의 일이다. 다음 목표인 세계화를 위해 73년 5월 국기원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대회 직후 국기원에 20개국 대표가 모여 세계태권도연맹이 만들어진다. 이로써 태권도의 국내 보급을 맡은 대한태권도협회, 세계 각국에 태권도를 전파하고 외국 협회를 관리하는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란 무도의 본산으로서 두 단체를 지휘하는 국기원이란 지금의 체계가 비로소 갖춰졌다. 태권도의 기반을 닦은 주인공이기에 지난 2월 태권도의 올림픽 핵심 종목 잔류 결정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법했다. 그는 “스위스 로잔 집행위원회 전에 (주변에) 전화로 물어보니 ‘레슬링은 총회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태권도는 그런 염려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태권도가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들어갔을 때 찬성 85표, 반대 0표로 들어갔지 않았나. 최근에는 찬성표만큼 반대표가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그때의 힘이) 아직은 남아 있다. 현재 IOC 부위원장인 세르 미앙 능(싱가포르), 토마스 바흐(독일), 크레이그 리디(영국)와 존 코츠(호주) 집행위원은 그때 모두 태권도를 도와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레슬링은 힘이 하나도 없다. 겉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이런 일은) 힘을 갖고 하는 것”이라고 은근히 자신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태권도가 계속 살아남으려면 복싱에서 헤드기어를 따온 것, 펜싱을 보고 전자호구를 도입한 것처럼 앞으로도 끊임없는 개혁을 해야 한다. 마케팅과 국제적 감각이 아직은 부족하다.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가 세계태권도연맹을 도와줘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태권도에서 외연을 넓힌 그는 74년 2월 대한체육회 부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으로 취임, 스포츠 외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는 영화 제목을 본뜬 ‘동방불패’(東方不敗)란 말을 들을 정도로 굵직굵직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한편 국제 스포츠 무대의 요직을 차지한다. 83년 암으로 사망한 김택수 IOC 위원에 이어 2년 뒤 박종규씨마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는 86년 10월 17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91차 IOC 총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된다. 일주일 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그는 88년 IOC 집행위원, 92년 IOC 부위원장으로 뽑혔고 97년 무주·전주 유니버시아드, 99년 용평 동계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느라 숨 가쁘게 세계를 누볐다. 그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 이어 2000년 시드니 대회를 통해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것으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이것을 최고의 업적으로 손꼽는다. 시드니 대회에서는 남북 동시 입장이라는 정치적 이벤트까지 성사시키며 99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개최지 선정을 둘러싸고 IOC 위원 매수와 금전 살포가 있었음이 밝혀져 위원들이 대거 제명되고 개혁안이 통과)로 인한 타격을 만회하는 노련미를 발휘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기반이 상당히 떨어져 나간 이 스캔들 때문에 김 전 부위원장이 30년 동안 쌓아 온 명성과 입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2001년 IOC 위원장에 도전했다가 자크 로게 현 위원장에게 밀려 쓴잔을 마시고, 이듬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실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대회 조직위원회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여기에 더해 2003년 프라하 IOC 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일은 조금씩 그의 쇠락을 부채질한다. 결정타는 2003년 12월에 시작된 검찰 수사였다. 그는 세계태권도연맹 등의 공금 38억원을 2000년쯤부터 빼돌렸고 각종 청탁과 함께 8억여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004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억 8800여만원이 선고된 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치소에서 그는 “정치적 누명을 쓴 것”이라며 IOC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명 노력을 했지만 IOC는 2005년 2월 그를 제명하는 권고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해 7월 총회에서 제명될 움직임이 보이자 그는 두 달 전에 부위원장직을 자진 사퇴한다. 6월 30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는 지금도 자신을 몰락시킨 검찰 수사를 “평창 유치 실패의 책임을 돌리기 위한 정치세력의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IOC 위원들 얼굴만 보면 ‘태권도’, 또 보면 ‘평창’, 이러고 다녔다. 체육회장을 하면서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 되려면 동계올림픽도 유치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한국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쇼트트랙밖에 없었다. 평창(을 위한) 테스트로 시작한 게 99년 용평 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밴쿠버와 평창의 시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나 따라온 국회의원들은 나만 믿고 되는 줄 알았는데 (실패하니) 내용도 모르고 내가 부위원장 (재선)하려고 (유치에) 방해를 놓았다고 했다. 나는 평생 태권도, 올림픽 하면서 한국 체육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사람인데 방해를 놓았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정치세력 힘이라는 게 사람을 잡더라.” 세간의 시선과 그의 입장에는 이렇게나 큰 간극이 있다. 정치권에 대한 커다란 피해 의식을 감추지 못했다. “평창이 2007년 과테말라 총회에서 세 번째로 도전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지철씨와 변양균씨를 시켜 (현장에) 오지는 말고 팩스와 전화로 도와달라고, 그러면 사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사면을) 안 해 주고 나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특별사면)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다.” 한국 스포츠와 함께 격동의 40여년을 보낸 뒤 그는 활동하던 단체들의 고문직을 맡으며 2선으로 물러난다. 최근에는 집필과 특강에 전념하고 있다. 1년에 절반은 집을 떠나 세계를 떠돌던 현역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농을 던졌다. “이제는 명예회복도 많이 되고 (사람들이) 업적도 많이 알게 되고…. 편하다. 일본과 한국의 여러 대학에 특강도 나가고 가만히 있어도 석좌교수 해 달라는 데(명지대·조선대)도 있다.” 소년 시절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는 좋아하는 피아노 덮개도 다시 열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시절 독주도 많이 했는데…. 쇼팽을 가장 좋아한다. 집사람도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나왔고 우리 딸(차녀 혜정씨)도 피아노를 전공했다.” 겉으로 보면 세계 무대를 향한 열정의 파랑(波浪)은 잦아든 듯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IOC 무대와 한국 스포츠 외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스포츠 외교 전문가가 없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나간 뒤 스포츠 외교를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며 체육인재육성재단(2007년 설립)이라는 게 생겼던데 그게 잘 되겠나? 인재가 저절로 키워지나? 현장에서 커야지. 인품도 있어야 하고 교양도 있어야 한다. 상대방 문화도 알고 우리 문화와의 차이를 초월해 마음을 끌고 와야 하는 게 스포츠 외교다. 나는 누가 키웠나?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뛰고 IOC에서 올림픽 치르면서 사람 사귀면서 커진 거지 누가 돈 대줘서 키운 게 아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남재준 “4·3사건은 폭동” 강연 논란

    남재준 “4·3사건은 폭동” 강연 논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제주 4·3사건은 무장 폭동”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3일 남 원장이 육군참모총장 퇴임 후인 2008년 현역 군인을 대상으로 했던 ‘북한의 대남 전략과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의 강연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서 남 원장은 “제주 4·3사건은 남로당 제주지부 휘하 1000여명이 주동이 돼 북의 지령으로 일으킨 무장 폭동 내지는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남 원장은 지난달 20일 인사청문회에서 제주 4·3사건과 관련, “4·3사건은 북의 지령을 받은 사람에 의해 시작된 것일 뿐 참여한 사람이 모두 폭도는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남 원장의 과거 이런 강연은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는 것으로 이 같은 내용에 남 원장이 동의한다면 국정원장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불참한 것에 대해 “약속을 지킨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그는 위령제가 열린 제주 4·3평화공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 불참은) 아쉽고 안타깝다. 그분은 공약했고 꼭 참석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김운용(82)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건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자신의 발자취를 오롯이 모아둔 ‘김운용닷컴’(www.kimunyong.com) 사무실이 입주한 곳이었다. 약속 시간 10분을 앞두고 그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남색 캐시미어 코트, 맞춰 두른 고동색 에르메스 목도리는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이날은 택시법의 재의결을 요구하며 택시업계가 총파업을 벌인 날이었는데, 그는 기자에게 “택시 스트라이크 때문에 오는 길은 괜찮으셨소”라고 영어를 섞어 말을 건넸다.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첨병으로 오래 활약한 세월이 묻어났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며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86년 IOC 위원, 1988년 IOC 집행위원, 92년 부위원장에 당선돼 활동했다. 그동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 입장, 1994년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승인 등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굵직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을 진두지휘한 그다. 좌절되긴 했지만 2001년 유색 인종으로는 최초로 IOC 위원장직에 도전, 세계에도 얼굴을 알렸다. 그의 인생을 함축한 ‘올림픽 30년, 태권도 40년’ 문장 속에는 한 사람이 일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성취와, 딱 그만큼의 시련이 녹아 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운동과 영어를 유난히 좋아했던 한 소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1936년, 다섯살 나이에 부모님 손을 잡고 대구 만경관에서 ‘민족의 제전’이란 올림픽 기록영화를 본 것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 느낀 강렬한 두근거림은 어쩌면 훗날 그가 올림픽 무대의 중심에서 일하리라는 자기암시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다섯 살 위의 형은 “동아일보가 손 선수의 일장기를 지워서 큰일이 났다”고 말해줬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친 김도학(1936년 별세)씨의 영향으로 어린 형제는 또래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대구 조선민보사 기자였다가 서무부장 겸 경리부장으로 일했던 부친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바이올린과 오르간 연주를 즐겼고 문학에도 소질이 있었다. 부친을 닮아 그는 다재다능한 소년으로 자라난다. 서울 욱구중학교(1945년 해방 후 6년제 경동중학교로 변경, 현 경동고)에서 공부 말고도 복싱·스케이팅·공수도 등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연마했고, 피아노도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과목별 편차가 심했다. 영어는 월등히 뛰어났지만 수학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면서 5등 하는 게 1등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저서 ‘미련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 중에서) 특히 영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내 꿈이 외교관, 피아니스트, 국제법 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원래 영어를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엔 방학 때 다음 학년도 책을 미리 읽고 4학년 때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캐롤’(찰스 디킨스), ‘스케치북’(워싱턴 어빙) 같은 문학 작품도 많이 읽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왔을 때는 그들이 주둔한 동숭동 서울대에 찾아가 보초들과 회화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선교사가 세운 연희대(현 연세대)를 택하게 됐다. “그때는 (연희대가) 국제적인 학교라 외국 교사가 많아서 성경도 영어로 1주일에 3시간, 회화도 언더우드 부인이 직접 가르치는 3시간, 영어강독 3시간 등 일주일에 영어만 9시간 공부했다.” 그러나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소용돌이는 그가 외교관의 꿈을 이루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대학 2학년이던 1950년 제2회 고등고시 행정 3부(현 외무고시)에 응시한다. 응시원서 마감일인 6월 20일 대학 1학년 수료증과 인지세 2000원을 들고 고시회관에서 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불과 닷새 뒤 전쟁이 터졌다. 시험은커녕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생은, 특히 그런 격동기를 통과하는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향인 대구로 피란가지 못해 서울에 갇혀 있던 그는 9월 말 서울이 수복되고 나서 육군본부에서 국제연합 연락장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라 징집 공고가 곳곳에 나붙었는데, 국군과 미군의 공조를 위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역시 절실했던 것이다. 당시 19세이던 그는 연희대 학도호국단 사무실에 가서 2학년 재학증명서를 뗀 뒤 이를 4학년으로 고치고 나이도 응시 자격인 21세로 올리는 ‘문서 위조’를 감행하면서 지원한다. 1951년 12월 그는 보병 중위로 임관해 동해안을 지키는 5사단의 사단장 전속부관으로 발령받는다. 인생의 항로는 바뀔지언정 목적지를 바꾸지 않는 것은 그의 영민함 덕이었다. 영어가 나침반이 됐다. 엉겁결에 군인이 됐지만 그는 좋아하는 영어책을 놓지 않았다. 외교관이 될 수 없다면 군사외교 분야에서 활동하면 됐다. 기회는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왔다. 1953년 1월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보병학교 훈련 시험에 합격해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보병학교를 다녀온 것을 비롯해 세 차례나 군사유학을 다녀왔다. “요즘 한창 얘기하는 드론(첨단 무인폭격기)을 1955년에 벌써 공부했다. 산 영어를 많이 하니까 (나를) 써먹기 좋잖아. 직업군인도 아닌데 (군대에서) 내보내지를 않았다.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참모총장의 전속부관으로 일했다. 참모총장이 미8군과 매일 접촉해 탄약이나 기름을 지원받던 때였으니….” 1960년 4·19 혁명 당시엔 계엄사령관이었던 송요찬 참모총장의 부관으로 일했고 다음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송 장군이 내각수반(총리)에 오르면서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8월 주미대사관 참사관이 돼 워싱턴으로 갔지만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청와대에서 미국담당 1급 비서관으로 일하라는 전갈을 받고 귀국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해가 맞물리면서 경호실 보좌관(차장 1급)으로 발령이 난다. 그 뒤 6년 동안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한다. 조금 길지만 그의 육성 증언을 옮겨본다. “장군을 맨 처음에 뵌 건 1954년 2군단 소속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포병사령관을 할 때였다. 나는 막 미국 유학을 다녀온 상태였다. 세 번째 유학을 마치고 1군사령부 비서실에 있을 때 그분은 작전참모부장이었는데, 비서실이 참모장 소속이었다. 그때 장군들은 주말이 되면 자유당에 ‘사바사바’하러 다녔는데 박 장군은 안 그랬다. 휘하에 소령이나 대위들 데리고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 우리를 만나면 ‘김 소령 어디가, 한 잔 할래?’ 하고 말도 건넸다.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판공비를 본인이 안 쓰고 다 나눠줬는데, 나도 많이 얻어 썼다. 그분의 성품이 드러나는 얘기가 두 가지 있다. 상관이었던 송요찬 장군이 1963년 동아일보에 ‘군은 민정이양하고 복귀하라’는 성명서를 낸 뒤 구속됐잖나. 그걸 풀어주고 송 장군이 나온 뒤에 딸을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시키는 걸 도와줬다. 자신이 한 번 친 사람들도 후에는 명예회복을 해줬다. 순경 시켜서 ‘누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가족에게 갖다주라’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는데, 내가 출장 다녀오면서 여비를 털어서 카디건 같은 걸 사오면 ‘이런 거 왜 사왔어’하며 나무라셨다. 선물 같은 건 당연한 건 줄 알고 ‘좀 더 사오지’ 할 법도 한데, 그 정도로 인정이 있는 분이었다. 5·16 후에는 박 장군이 내각 수반으로 왔을 때 의전비서관으로 있었다. 1968년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가서 6년간 모시다가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왔다. 경호실에 가려고 해서 간 게 아니었지만 막상 가보니 (경호실이) 권총만 차는 데가 아니고 미국 식으로 서비스, 즉 공공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다른 기관들과 협력도 해야 하고 사전 경비를 위한 장비도 준비해야 하고…. 경호실에 있으면서도 다른 심부름(군사원조 관련)도 많이 했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책임지고 나왔다. 사표를 냈더니 박 대통령이 부르더라고. 장례식 때문에 좀 가다듬고 나서 부르는 거라면서 봉투를 줬다. ‘다시 부를 테니까 가 있어’ 했다. 그런데 그 후에 자신이 암살당했으니…나는 (청와대를) 나와서 태권도만 열심히 했다. 1971년에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 제의도 들어오긴 했는데 내가 고사했다. 4·19 때 자유당이 하루저녁에 무너지는 걸 다 봤는데…절대 안한다고 했다.” 육 여사 묘소에 참배를 하고 청와대를 떠난 김 전 부위원장은 1971년 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별’들의 마지막 봉사

    군사시설보호구역과 군 협의 업무가 많은 접경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장성 출신을 안보정책자문관으로 잇따라 채용하고 있다. 경기 양주시는 21일 각종 군 협의 업무를 자문해 줄 관군협력관에 지난 1월 말 예편한 손기화 전 육군 65사단장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사무관(5급) 대우 계약직이지만 현삼식 양주시장은 손 협력관을 예우해 시장 접견실을 집무실로 내줬다. 이같이 군과의 협의가 많은 접경지역 지자체 가운데 양주시처럼 군 장성 출신을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한 곳은 경기도, 김포시, 파주시, 포천시 등 확인된 곳만 5개에 이른다. 도는 2006년 10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예비역 장성 4명을 안보정책자문관으로 임용해 을지연습 및 군 관련 업무 협의 때 교량 역할을 맡기고 있다. 파주시는 2010년 10월 투자진흥과 군관협력팀에 예비역 소장 출신의 군사정책자문관 1명을 배치, 각종 군 협의 업무에서 조언을 받고 있다. 포천시는 2010년 12월부터 총무국에 3년 계약직의 군협력관을 두고 있으며, 김포시는 지난해 10월부터 행정과 소속으로 5급 상당의 안보자문관을 배치했다. 채용된 자문관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 사단장 출신이라 지역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해당 지자체가 산업단지 조성이나 대학·종합병원 유치 때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국책 또는 시책사업과 관련한 대형 시설의 입지 가능 여부를 사전 심사할 경우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가장 큰 쟁점은 군 작전계획에 지장을 주느냐인데, 이들 자문관이 간단히 가부를 판단해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군부대와 협의 때 윤활유 역할을 한다. 실제 시 면적의 91%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인 파주시에서는 군사정책자문관 역할이 두드러진다. 곡릉천 등 대형 하천에 30~40년 전 설치된 대전차 장애물인 용치가 물 흐름을 방해해 집중호우 때 제방 붕괴나 농경지 침수 등의 피해를 입혀 왔으나 관할 군부대 반대로 철거를 못 해왔다. 그러나 자문관이 2011년 용치를 대체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 관철시켰다. 파주LCD기숙사 신축, 적성산업단지 조성, 영태리 훈련장 이전 등 군 작전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각종 숙원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자문관들은 보통 매주 20~24시간 근무하며 2000만원대 낮은 연봉을 받고 있으면서도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종기 파주시 군사정책자문관은 “파주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하다 보니 제2의 고향이 됐다. 현역 때 군인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 못하는 게 늘 안타까웠다. 마침 집도 파주에서 가까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뭔가 역할을 더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직급 등 대우에 상관없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명채 파주 투자진흥과장은 “학식과 덕망이 높고 공사가 분명해 군 협의 업무뿐 아니라 6·25 전적지 조사 및 서적 발간 등 기타 업무에도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현역군인 주말골프 실태 조사

    북한의 대남 위협 공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일부 군 장성들이 골프를 쳤다는 비판에 따라 군 당국이 현역 군인의 주말 골프장 이용에 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군 관계자는 13일 “현역 군인의 군 골프장 이용과 관련해 국방부가 총리실과 함께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면서 “위수지역 이탈 여부 등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이 자체 조사에 착수한 전국의 군 골프장은 서울의 태릉과 충남의 계룡대를 포함해 모두 29곳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현역 군인은 주말이라도 휴가를 내지 않았으면 한 시간 이내에 부대로 복귀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에서 근무하는 현역 군인이 충남 계룡대로 내려가 골프를 쳤다면 위수지역 이탈로 징계가 불가피하다. 군 골프장 시설에 대해서는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 왔다. 군 당국은 군 골프장을 ‘체력단련장’으로 지칭해 설립목적이 체력 증진에 있음을 강조한다. 군 골프장 이용료는 현역 군인은 1만 5000~3만 5000원, 예비역은 4만~7만 5000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민간인은 6만~15만원선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골프장은 부대 바로 옆에 있기에 대기하는 군인이 골프를 치다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부대로 복귀할 수 있다”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산보다 효율적인 운동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군 골프장 이용객 중 현역 군인의 비율은 18~25%이고 대부분이 예비역과 민간인이다. 군 장병 체력 증진이라는 목표가 무색하고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주요 지휘관들이 휴일인 주말에 운전병을 데리고 관용차량을 이용해 골프장을 출입하는 것도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많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설] ‘준전시 체제’ 군골프장에 현역이 즐비하다니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과 유엔의 북핵 제재를 트집잡아 연일 전쟁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엄중한 국가안보의 위기 속에서 우리 군의 일부 장성들이 지난 주말 태릉 등 군 전용 골프장에 간 것으로 드러났다. 참으로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대체 어느 나라 장군들인가. 막가파 수준인 북한의 대남 협박에 연평도 주민을 포함한 국민은 시시각각 상황을 주시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다. 그런데 국토방위에 전념해 국민의 불안을 씻어줘야 할 장성들이 한가롭게 골프장을 들락거렸다니 그저 말문이 막힌다. 지난 주말은 어떤 상황이었나. 북한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한라산에 인공기를 꽂겠다고 호언장담한 지 불과 며칠 후였다. 이에 따라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6일 경계태세를 한 단계 격상했다. 대통령은 주말에도 위기관리상황실에서 대응 전략을 짜느라 여념이 없었다. 북한군의 동태도 예사롭지 않았다. 북한군 총참모장 현영철은 9일 오후 판문점을 시찰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가까운 황해도 해안의 북한군 해안포들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일촉즉발의 긴박한 시간에 장성들이 골프를 즐긴 작태를 그냥 넘길 일인가. 국방부는 어제 1차 진상 파악을 통해 “군의 주요 직위자들은 골프 약속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김민석 대변인은 “지난 주말 골프를 공식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다”면서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됐기 때문에 해당자들은 골프를 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발표 내용으로 미루어 국방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전군에 비상이 걸린 ‘준전시 체제’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주요 직위자가 아니면 골프를 쳐도 괜찮다는 뜻인가. 군사적 긴장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골프 금지 여부를 떠나 장성쯤 되는 군인이 작금의 군사적 분위기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국회에서는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의 채택이 무산됐다. 부동산 투기 의혹과 퇴역 후 무기중개업체 근무 등이 큰 문제였으나, 3년 전 천안함 폭침 이튿날 예비역 신분이지만 골프를 친 사실도 질책을 받았다. 그런 김 후보자가 군 기강을 바로 세우고 믿음직하게 장관직을 수행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을 임명하기 전에 국민 다수의 이런 우려를 한번 더 생각해 보길 바란다.
  • “안보 위중한데 장성들 골프라니…” 朴대통령 격노

    “안보 위중한데 장성들 골프라니…” 朴대통령 격노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국방부에 대한 당부 사항으로 “안보가 위중한 이 시기에 현역 군인들이 주말에 골프를 치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특별히 주의를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며 군장성의 기강 해이에 대해 경고했다. 앞서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청와대는 정부 이양기에 나타날 수 있는 공직기강 해이 문제에 대해 각별히 주목하고 있으며 공직자들의 직무수행을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고 윤창중 대변인이 밝혔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관계부처와 진상 파악에 즉각 착수했다고 보고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직원들은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대남 위협 공세에도 일부 현역 장성들이 지난 주말 골프를 쳤다는 보도가 나오자 어이없어 했다. 박 대통령이 ‘안보 해이 만큼은 넘어갈 수 없다’고 격노하며 발본색원을 지시했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달 말 허 실장 명의로 ‘청와대 직원, 골프장 및 향락시설 출입 금지령’이 내려져 말단 직원조차도 ‘자중모드’로 지내온 지 한참인데 군 수뇌급들이 그럴 수 있느냐”는 분위기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시 대상도 전체 직원인 데다 ‘자제령’도 아닌 ‘금지령’이어서 솔직히 좀 당황해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골프를 친 현역 장성들은 지난 9일과 10일 군 전용 골프장(체력단련장)인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을 이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주말 골프를 공식적으로 금지시키지는 않았지만 여단급 이상 지휘관들에게 1시간 내 복귀할 수 있도록 위치하라고 지시했고 주요 직위자들은 현 상황을 감안해 스스로 골프 약속을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금지된 사랑’ 스웨덴 릴리언 왕자비 별세

    스웨덴 베르틸 왕자와의 ‘금지된 사랑’으로 잘 알려진 릴리언 왕자비가 스톡홀름의 자택에서 10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97세. 릴리언 왕자비는 스웨덴 왕실에서 숨기고 싶어 했던 민감한 인물이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인 릴리언은 1943년 런던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던 베르틸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릴리언은 영국인 배우 이반 크레이그와 결혼한 현역 모델 겸 배우였다. 2년 뒤인 1945년 릴리언은 다른 여성과 교제하고 있던 크레이그와 이혼했다. 스웨덴 언론은 베르틸 왕자와 평민 출신 릴리언의 러브 스토리를 ‘스웨덴판 신데렐라’ 이야기로 묘사하는 등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베르틸 왕자의 부친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 국왕이 평민 출신의 이혼녀라는 이유로 아들과의 결혼을 극력 반대했고, 이들 커플은 수십년간 동거하며 왕실의 승낙을 기다려야 했다. 이들은 프랑스 상트막심 마을과 스톡홀름의 집을 오가면서 사랑을 키웠다. 결국 구스타프 6세 아돌프 국왕이 세상을 떠난 뒤인 1976년 이들은 33년 만에 공식적으로 결혼할 수 있었다. 1995년 80세가 된 릴리언은 “내 인생을 요약하면 나의 사랑만이 남을 것”이라면서 부군인 베르틸 왕자에 대해 “그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릴리언과의 로맨스로 스웨덴에서 ‘프린스 차밍’으로 불리며 인기를 누린 베르틸 왕자는 1997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릴리언 왕자비는 2010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軍 문민화 반대…보수적 軍心의 ‘아이콘’

    軍 문민화 반대…보수적 軍心의 ‘아이콘’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의 첫 육군참모총장(36대)으로 일했지만 ‘군 문민화’에 반대하며 끊임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립한 보수적 군심(軍心)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다.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에는 군 검찰을 국방부 산하로 옮기는 군 사법 개혁 방안을 비판하며 “고려시대 무신(武臣) 반란 사건(정중부의 난)은 무인들을 무시하고 문인들을 우대한 결과”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는 당시 병력, 복무 기간 단축에 반대했고 주적 개념을 놓고 노 전 대통령과 대립했으며 국방부 장관 입각 제의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까다로울 정도로 청렴하고 군인정신이 투철해 ‘선비’ ‘생도 3학년’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현역 시절 부하들과 회식 후 마무리로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쏟아낸 일화도 있다. 선친의 영향을 받아 한시에 능통하고 골프를 즐기지 않으며 주어진 임무에 전력투구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총장 재임 중 장성 진급 비리 의혹에 휘말려 2005년 4월 사실상 불명예 전역하는 등 상반된 행적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군 검찰은 육군이 2004년 10월 단행한 준장 진급 심사에서 남 국정원장 후보자와 근무한 경험이 있는 진급 대상자 15명 중 10명이 진급했고 (남 후보자와 관련 있는) 사조직 인맥들도 다수 진급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를 진급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했다. 경춘고속도로가 착공되기 직전인 2004년 11월 강원 홍천군의 밭 510㎡를 사들여 부동산 투기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남 후보자 부인이 매입한 이 지역은 경춘고속도로 개발이 예정되면서 공시지가가 3배 넘게 뛰었다. 그러나 남 후보자 측은 “3년 전부터 주말농장으로 쓰고 있다”며 투기 의혹을 부인했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2007년 대권 후보를 뽑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 경선 때 국방안보분야 특보로 정책 조언자 역할을 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육사 25기 동기인 강창희 국회의장이 그를 박 대통령에게 연결해 줬다는 말도 있다. 18대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국방안보분야 특보로 활동해 진작부터 새 정부 주요 요직에 하마평이 오르내렸다. 남 후보자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직을 맡은 사람이 육사 27기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다. 김 내정자를 박 대통령에게 소개해 준 이도 남 후보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은숙(64)씨와 2녀가 있다. ▲서울(69) ▲배재고 ▲육사 25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제36대 육군참모총장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귀퉁이 땅만 산 토지신탁 때문에… 건물 못짓게 됐다”

    국방부 산하 군인공제회가 전액 출자한 ㈜대한토지신탁이 어린이공원 부지에 포함된 사유지를 귀퉁이 일부만 매입해 진입로가 없어지자 토지주가 “맹지(도로와 연결 안 된 토지)가 돼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됐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28일 경기 고양시에 따르면 ㈜아이엔티디씨는 2007년 경의선 탄현역 인접 지역에 탄현역세권개발(주상복합아파트 신축) 사업을 추진하면서 김모(63)씨 집과 집터(탄현동 173-4)를 3.3㎡당 2950만원에 매입하기로 하고 매도확약서를 건네받았지만 2700만원으로 가격을 낮추더니 자체 사정을 이유로 일방 파기했다. 이후 이 업체는 어린이공원 조성을 위해 김씨 집터 일부가 다시 필요해지자 당초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1200만원대를 제시했다. 김씨가 이를 거부하자 아이엔티디씨는 김씨 집터 346㎡ 중 66㎡만 분할해 2010년 3월 집과 함께 강제로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쳤다. 사업부지 가운데 3분의2 이상 토지를 확보하고 토지주 2분의1 이상 동의로 사업시행자 지정을 받았을 때, 협의매수가 안 되면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을 적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집 건물은 매입해 철거하고, 집터는 66㎡만 수용할 경우 나머지 대지 280㎡에는 도시계획이 변경돼 진입로가 없어져 집을 지을 수 없게 된다”며 잔여 부지 280㎡도 함께 매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이엔티디씨에 이어 새 시행사가 된 대한토지신탁은 김씨의 매수 청구에 대해 “나머지 대지는 김씨의 인접한 또 다른 토지(탄현동 174-35)에 진입로를 내면 종전처럼 활용(건물 신축)이 가능하다”며 잔여 부지는 매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결국 김씨는 집을 비워 주지 않고 경기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했지만 두 위원회는 “잔여 부지가 도로와 접한 김씨 토지와 잇닿아 있어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7월과 이달 22일 김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신문이 관할 일산서구청에 확인한 결과 김씨 잔여 토지(173-4, 173-35)는 탄현역세권개발사업으로 지구단위계획이 변경돼 2008년쯤 맹지로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이서규 주무관은 “위원들이 보통 일주일 전부터 심사 자료를 받아 검토하지만 한 번에 200여건을 처리하다 보니 완벽하게 검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軍 내부 김병관 퇴진론 확산

    軍 내부 김병관 퇴진론 확산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터져나오자 군 내부에서는 “의혹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대로는 장관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군 수뇌부는 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행여나 육사 28기 동기인 김관진 현 국방부 장관, 김 후보자가 2사단장 시절 부하로 데리고 있던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등에게로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군의 이 같은 기류는 김 후보자가 설령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체면이 구겨진 상태에서 64만 대군을 통솔할 영(令)이 설 수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20일 김 국방부 장관 주재로 군 수뇌부들이 참석한 합동참모회의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무기수입 중개업체 유비엠텍의 고문을 맡으며 K2 전차의 핵심 부품 ‘파워팩’이 지난해 독일산으로 결정된 것과 관련해 김 장관에게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21일 이에 대해 “독일업체의 선정은 국내 업체의 기술 개발 지연이 가장 큰 원인으로 제조업체가 아닌 중개업체의 자문을 맡은 예비역 장성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라면서 “실무를 맡은 방위사업청과 전문가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라며 펄쩍 뛰었다. 육군은 김 후보자가 2사단장 시절인 1999년 부대위문금을 개인 명의의 통장으로 관리하고 부하 장교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업무처리로 경고조치를 받았다는 점과 관련, 사단 참모장이던 조 참모총장이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52만 육군의 수장이 옛 상급자의 의혹 때문에 증언대에 선다는 것은 사기를 고려해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현역 복무 당시 군의 ‘비밀병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우수한 군인이었으나 예편 후 처신 때문에 구설수에 올라 안타깝다”면서 “후배들의 명예를 위해 용퇴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국민들이 장성으로 전역하면 (김 후보자처럼) 방산업체에 취직하는 것을 관행으로 볼까봐 걱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편 김 후보자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여태까지 제기된 의혹 중 주소지 이전 문제 등 일부 신중하지 못한 점은 불찰”이라면서 “정상적이고 문제가 없는 것까지 의혹으로 부풀려 저와 주변인들의 인격이 훼손되고 있음은 유감”이라면서 인사 청문회에서 검증받겠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인사]

    ■동아시아센터 △명예이사장 이수성△이사장 이건개△회장 윤창규△고문 최병화 임종순△소장 김창완△사무처장 배성한△사무국장 이세주△기획국장 전용배 ■신용보증기금 ◇본부장 <승진>△관리부 김진△대구경북영업본부 박국근△신용보증부 박학양△인사부 이상경<전보>△감사실 손주형△경기영업본부 선병곤△서울동부영업본부 오철우△충청영업본부 박철용△특화사업영업본부 한동안△호남영업본부 노용훈 ■한겨레신문사 △출판관리부장 정태희 ■동부금융연구소 ◇부사장 승진△부소장 유용주 ■동부저축은행 ◇상무 승진△경영관리팀장 김순태 ■신한금융지주 ◇부장 승진△HR팀 신현민◇부장 이동△시너지추진팀 정용기△감사팀 정상원△글로벌전략팀 노용훈 ■신한은행 ◇승진 <부장>△중소기업고객 조석환△자산관리솔루션 박광옥△글로벌사업 나종윤△여신관리(부장심사역 겸임) 이재복△IT기획 최병규△인사 김인기<센터장>△금융공학센터 배진수△신한 프라이빗 뱅크 부산센터 류문선△신한PWM서울파이낸스센터 전재유<지점장>△국민연금강남 김호용△노원역 김광조△사북 정진철△삼성동 정상혁△소공중앙 박종득△안양중앙 서용근△원주중앙 박동옥△잠실트리지움 겸 잠실타운 박용대△중앙유통단지 정재환△해운대 한인현△K.B.S 서영일△개금동 박영철△거제 김도현△관저동 홍형곤△광안동 최희진△교하 김주형△다사 김용성△당리동 천승용△대청로 박병준△도마동 박찬오△동해 곽정근△마산역 김용현△무거동 김재삼△법동 박재순△북문로 이영식△분당서울대병원 이상우△삼척 최영준△서초3동 노경훈△송도웰카운티 김용희△신천동 황재필△쌍용동 이형범△약사동 박은영△여주 김권주△용암 이준원△용전동 신현배△울산법원 김세경△울산현대 성정환△장산역 김재봉△전민동 김진민△진주 김태호△진천 장용석△학익동 이계엽△해운대백병원 양동하△후평동 최익준◇전보 <부장>△영업추진 전재원△기관고객 임준효△기업고객 조대희△외환사업 최정선△여신기획 이재학△개인여신심사(부장심사역 겸임) 최영일△리스크총괄 김임근△리스크공학 방동권△여신감리(부장심사역 겸임) 정기승△금융결제 김영재△인재개발 김구현△총무 배두원△투자자산수탁 허균△미래전략 이영종△감사 최용식△광교영업 최현섭<실장>△WM기획 여민호△나라사랑금융 김인현△증권운용 강호철△비서 정용욱<센터장>△소비자보호 문용주△직원만족 최두연<지점장>△간석동 김낙영△갈현동 전병철△강남대역 이환승△강동타운 김태수△강서 이규현△개포남 겸 개포2동 차동근△건국대 박영호△경북대 김도형△고덕동 이병곤△고읍 오동경△공항동 송석봉△관악 김영환△관양동 조태원△광명푸름이 윤석주△광장동 김정우△광주학동 고영조△광화문 이정우△구리중앙 맹성준△구미중앙 김한진△구산역 양만엽△구성언남동 임영균△구성연원마을 신명식△구일역 이동수△국립암센터 김태용△군산 한민희△군인공제회관 신동진△군포 김태흠△금왕 음상진△금촌 김재용△김포고촌 이상원△김포장기 노진한△나운동 강용규△남가좌동 이정호△남대문중앙 정찬일△남부법원 손경익△남산타운 이재용△남악 양경규△내손동 성영식△녹산 이기택△다대포 유왕동준△당산역 이상철△당산중앙 최형규△대구법원 이대희△대림중앙 박대서△대방역 임충섭△대전롯데 이한원△대치동 이정수△대흥역 도은수△도봉동 최우성△도봉로 육근록△도산대로 어태수△도안신도시 김정호△돈암동 이재곤△동국대 최석주△동백역 노용균△동부법원 김태형△동탄솔빛나루 서대원△동탄하늘빛 겸 동탄시범단지 허윤영△둔촌동 오인식△뚝섬역 김원배△마들역 이병희△마린시티 신복기△마산창동 김웅조△마천동 박성현△마포역 이강덕△마포중앙 유상우△마포 손충순△망우동 이상준△명동역 강미선△명일역 조규일△명일중앙 임연택△목동11단지 박한준△목동역 임재훈△목동하이페리온 서춘수△목동현대백화점 신태웅△문정동 겸 SMART 문정래미안 선우대롱△미금동 김기종△미금역 이영철△미아동 이종문△박달동 이근영△반야월 우동희△반포래미안 이상화△반포타운 정세훈△발산동 윤영호△발산역 강승구△방배동 오윤관△방이동 이환용△방화동 소병수△백궁 김홍욱△범일동 방우건△병점 박호광△보라매 배을용△봉명동 송완섭△봉선동 윤영숙△봉은사로 한소순△봉천동 장성룡△부산서면 윤시영△부천상동 정상교△부천위브더스테이트 최두열△부평중앙 최계동△분당구미동 진성관△분평동 최동환△사가정역 박창원△사당남성 박도진△사당역 최태문△사당중앙 이종찬△산곡동 최용준△산남동 이정주△산본래미안 송인욱△산본중앙 국성호△산본 나규찬△삼성서울병원 진영섭△삼양동 김경민△상도동 예정호△상록수 김정수△서부트럭터미널 조영곤△서산 유한승△서소문 배상덕△서울광장 김성곤△서울대병원 이금철△서청주 김종필△서초동 최성걸△서현동 황민△서현역 방병성△석촌역 박영진△성남은행동 진창하△성당동 배영락△세교 안동섭△소하 이희성△속초 최진우△송강 최미중△송림동 최명기△수락산역 김호출△수원대 신동화△수원역 고연호△수지신봉 하상봉△수지신봉타운 김재영△숙명여대 김성완△신당동 송영림△신도림동 김순종△신사남 강정택△신영통 이해웅△신월동 박수용△신촌 이정호△쌍문역 곽준석△아현동 권무상△안동 임영하△안양비산동 이부근△안양 정종민△압구정동 조혜영△압구정로데오 김성주△양양 여환준△양주 최승권△여의도자이 원교희△역곡 정영복△역삼2동 조승수△역삼중앙 홍기운△연산동 손미웅△연신내 최성조△영주 구태본△영통역 임윤택△영통 박석희△영화동 정광균△류동 이진천△오송 이재규△옥련동 김상주△온산 오승배△온천동 김승록△용산파크타워 안치완△용인보라 조성호△용인 이혜용△워커힐 이평태△원효4가 최기복△원효로 장래관△월성동 이상우△을지로 한봉규△의정부법원 황규현△이촌동 박정범△익산중앙 최광호△인계동 설성화△인천논현역 고상준△인천삼산동 한삼봉△인천터미널 장필규△일산덕이 차민석△일산문촌 조경선△일산위시티 정태우△일산중앙 엄진섭△일산탄현 김근배△잠원역 채배준△장승배기역 배한경△장위동 김동균△장전동 위만량△정릉 겸 SMART 정릉스카이 장연순△정자역 최두연△제기동 구연성△제기역 김혁중△제주중앙 황명수△종로광장시장 김재준△죽전 차상선△중동 박현주△중화역 김화진△지산동 조병만△철산동 배기구△청담동 김민환△청주대 유경태△청주 이용희△침산동 문상한△타임스퀘어 정원양△테크노마트 길양배△테헤란로 박희성△포천 왕재성△푸른청라 박성수△풍납동 최태영△하남 박세홍△하남풍산 김제국△한양대 정병각△행신중앙 임성△행신 김홍익△현대계동 김광원△화양동 임호경△화정 김영식△효자동 연채흠△후곡마을 박영식△흑석동 정중종△흥인동 전용진△GS타워 김문광
  • 10개월간 외출·휴가 71일… 일반 병사의 3.4배

    10개월간 외출·휴가 71일… 일반 병사의 3.4배

    군 복무 중인 가수 비(31·본명 정지훈)와 유명 여배우 김태희(33)의 연애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역 육군 병사인 정지훈 상병의 근무 태도와 잦은 외출·외박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정 상병의 열애 장면을 포착한 사진 속에서 그가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 모자를 벗고 다니는 등 군기 문란 논란도 겹쳐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2011년 10월 입대한 정 상병은 지난해 3월부터 국방홍보지원대에서 연예병사로 근무하고 있다. 연예병사는 군 홍보와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공연활동을 한다. 2일 국방부에 따르면 정 상병은 연예병사 활동 중 다섯 차례의 포상휴가로 17일, 개인 성과제 외박 10일, 공무상 출장(외박) 명목으로 44일 등 총 71일을 영외에서 보냈다. 정기 휴가는 쓰지 않고 남겨 뒀다. 출장 44일은 스튜디오 녹음과 안무연습을 위해 25일, 국군방송 위문열차 출연을 위해 19일을 사용했다. 이는 일반 병사가 복무기간 21개월 동안 받는 평균 휴가 일수 43일(10개월 기준으로 21일)보다 많아 특혜 논란을 촉발했다. 현재 일반 병사에게는 4박 5일의 신병 위로휴가 1회, 복무기간 중 정기 휴가 3회(9박 10일 1회, 8박 9일 2회), 외출은 한 달에 1회, 외박은 1년에 4회를 준다. 정 상병은 지난해 3월 연예병사로 편입되기 이전에 일반 병사로 근무할 때 병가(봉와직염) 7일, 위로·포상휴가 9일, 특급전사 포상휴가 7일 등 23일을 받아 연예병사와 일반 병사 근무 때의 휴가와 외박 일수를 합하면 94일에 이른다. 군 관계자는 “국방홍보원 연습장이 변변치 않아 영외의 연예기획사 연습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공연 준비를 위해 외부의 백댄서와도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외출을 나가 공식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 사적 용무를 봤는지와 군모를 착용하지 않고 부대를 나갔는지를 조사하고 있으며 사실을 확인한 뒤 규정에 의거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상병 측은 “휴가 일수와 관련해 특혜는 없었다”면서도 “복장 위반에 대해선 국방부의 조치에 따를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는 현재 군 복무 중인 나머지 15명의 연예병사에 대해서도 휴가와 외출·외박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연예병사의 과도한 특혜 논란은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제기됐다. 지난해 9월 전역한 가수 박효신의 경우도 특혜 시비가 있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10·27법난 빨리 청산하고 가야”

    “10·27법난 빨리 청산하고 가야”

    “1700년 한국 불교사상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입니다. 32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명확한 진상규명과 피해배상, 명예회복이 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난 9월 제3대 ‘10·27법난 진상규명및 명예회복 심의위원회’(법난위) 위원장을 맡은 조계종 총무부장 지현 스님. 4일 아침 총무원 사무실에서 만난 스님은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특정 종교(불교)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해 폭력을 행사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10·27법난이란 1980년 신군부의 핵심세력인 합동수사본부에서 불교 정화를 명분으로 조계종 스님과 불교 관련자 1929명을 강제연행, 수사·고문하고 군·경 합동병력 3만여명을 투입해 사찰·암자 5731곳을 일제 수색한 사건이다. 2007년 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를 통해 ‘신군부의 계획된 법난으로 특정한 종교단체에 무리하게 적용한 국가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건’으로 규정했지만 불교계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해 불만이 쌓여 왔다. “당시 논산 관촉사에서 새벽예불을 드릴 때 군인·경찰이 들이닥쳐 나를 포함한 스님들을 법당에 감금한 채 폭행하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발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지현 스님. “사실상 나라 전체의 스님들이 폭력의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그런 무지막지한 만행을 일반 국민들은 물론 젊은 스님들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단다. ‘법난위’는 2008년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가동하기 시작한 국무총리실 산하기구. 국무총리가 임명하는 정부기관 차관급 국가위원 4명과 민간위원 4명, 그리고 사무국 성격의 지원단으로 구성됐지만 그동안 원활한 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개월여 위원장을 맡아 보니 조직 성격이 잘못됐어요. 지원단에 현역 군인 7명이 들어 있으니 피해자 아닌 가해자들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앞장선 꼴이지요.” 그래서 스님은 지원단에 파견된 현역군인들을 12월 중 전원 복귀시키기로 최근 국방부와 합의했다. “법난위가 활동한 지 4년이 흘렀지만 따져보면 명예회복은커녕 진상규명이며 피해배상 어느 것 하나 이뤄낸 게 없는 셈이지요. 그런데도 법난 특별법과 법난위 활동 시한이 내년 6월 말이면 만료되니 안타깝지요.” 우선 특별법 시한 연장이 필요하고 피해 대상자 확대를 포함한 법령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종단 차원에서 1980년 12월 31일 이전 조계종 소속 스님 9796명에 대해 일괄적으로 피해자 신고 및 명예회복 신청을 했으나 지금까지 피해자 명예회복 109건, 의료지원 37건이 전부다. “다행히 국회 불교신자 의원들 모임인 정각회를 중심으로 불교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조만간 의원발의를 할 예정입니다. 법난위 시한 연장과 피해 대상 확대가 주 골자인 개정안이 통과되면 큰 변화가 있겠지요. 불교계 요구가 다 받아들여지진 않겠지만….” 엄연히 법난의 피해자가 전국에 숱한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지현 스님은 그 모순을 다름 아닌 무지와 무관심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결코 불교계만의 비극으로 볼 수 없는 역사적 오점인 10·27법난을 국민들과 공감하고 알리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지난 10월 조계사 앞마당에서 연 기념법회와 추모음악회며 피해자 스님 간담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법난 사실에 많이 놀랐어요.” 스님은 그 공감의 행보를 계속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단다. 14, 16일 대구·부산법회를 필두로 지역 순회법회가 시작되고 1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선 ‘10·27법난 재조명을 위한 세미나가 열릴 예정이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경제브리핑]

    국민銀, 국군장병 전용 적금상품 출시 국민은행은 26일 국군장병 전용 적금상품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의무복무 중인 현역병을 위한 우대적금은 6개월 이상 24개월 이하에서 하루 또는 월 단위로 만기일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다. 저축 한도는 계약기간이 12개월 이하면 120만원, 12개월 초과면 240만원이다. 이율은 급여이체 우대이율 0.3% 포인트를 포함해 최고 연 5.5%(24개월 기준)다. 의무복무병 이외의 군인들을 위한 우대적금은 1·2·3년제 정액적립식이다. 기업銀 여자배구단 득점때마다 기부 기업은행은 26일 알토스 여자배구단이 2012~2013 프로배구 V리그에서 1득점할 때마다 10만원씩 최고 1억 5000만원을 적립해 복지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부금은 승리한 게임의 득점 수에 따라 쌓인다. 이날까지 정규리그 30경기 가운데 6경기를 치른 알토스 배구단은 4450만원을 적립했다. 기부금은 홈 경기가 열릴 때마다 연고지인 경기 화성의 복지단체에 전달될 계획이다.
  • “아버지와 하늘 지키는 늠름한 딸이 될게요”

    “아버지와 하늘 지키는 늠름한 딸이 될게요”

    “어렸을 때 조종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어요. 이제 저도 아버지와 함께 조국의 하늘을 지킬 수 있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29년간 육군 항공의 헬기 조종사로 외길 인생을 걸어온 아버지를 동경하며 그 뒤를 이어 조종사가 된 여군 중위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지난 16일 육군항공학교 12-2기 항공장교 양성반을 마친 이아름(27) 중위. 이날 수료식에는 헬기 조종사인 아버지 이원춘(50) 중령이 참석해 40주간의 교육훈련 과정을 무사히 마친 딸에게 육군항공 조종사 자격 휘장을 직접 달아 줬다. 육군은 18일 아버지와 딸이 현역 헬기 조종사로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중위는 목원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나 어릴 때부터 꿈꾸던 군인의 길을 잊지 못해 2010년 7월 여군사관 55기로 임관했다. 지난해 정보통신 소대장 보직을 마친 이 중위는 육군항공 조종사 과정에 지원해 엄격한 선발절차를 통과했고, 올 3월부터 육군항공학교에서 조종사가 되기 위한 양성 교육을 받았다. 이 중령은 현재 육군항공학교에서 항공군수학교육대장으로 재직 중인 베테랑 조종사다. 1981년 3사관학교 18기로 임관했고 1984년 육군항공 조종사가 된 이래 2000여 시간의 비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령은 “헬기 조종사의 길은 정신력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등 순탄치 않기에 걱정도 많이 했지만 딸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고 말했다. 이 중위가 조종할 헬기는 UH60(블랙호크)기. 이 중위는 이 헬기로 병력과 물자 수송 임무를 맡을 예정이다. 현재 육군에는 여군 조종사가 30명 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미모 여군, 英보디빌딩 대회 출전 ‘비키니상’

    미모 여군, 英보디빌딩 대회 출전 ‘비키니상’

    미모의 여군이 영국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브리티시 보디빌딩 대회에서 현역 육군 부사관(corporal)인 멜리사 헤이우드(26)가 ‘베스트 비키니상’을 수상했다. 헤이우드는 대회 참가 전 부터 특이한 이력으로 관심을 불러 모았다. 과거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등 전장을 누빈 그녀는 틈틈히 몸매를 단련하며 대회 참가를 꿈꿔왔다. 헤이우드는 “비키니를 입고 무대에 서는 것과 위장을 하고 훈련을 받는 것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일”이라면서 “대회 타이틀을 얻게 돼 너무나 기쁘며 전우들도 나를 자랑스러워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대에서 받는 각종 훈련과 엄격한 식단 관리가 내 몸매의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헤이우드는 지난 2009년 아프간에서 얼굴에 총상을 입고 간신히 도망쳐 살아난 동료 군인 케이란과 결혼했다.     인터넷뉴스팀
  • [공직열전 2012] 여성가족부

    [공직열전 2012] 여성가족부

    아동과 청소년의 성폭력 문제 해결이 최근 사회적 어젠다로 급부상하면서 여성가족부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여가부는 성매매 방지법과 같이 사회적 파급이 큰 정책을 많이 내놔 ‘강한 부서’로 각인됐다. 하지만 전체 인력이 229명으로 정부 중앙 부처 가운데 가장 작다. 여가부 출범은 곡절이 많았다. 1988년 정무제2장관실에서 시작해 여성특별위원회를 거쳐 2001년 부로 승격됐다. 출범 당시 34개 부, 처, 청에서 공무원 102명이 모여들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의 이름과 업무가 바뀌었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가부 고위공무원이 “우리는 고정 안티 팬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늘 ‘마초’들의 견제를 받아 왔다. 제대군인 가산점 반대, 호주제 폐지 등이 많은 반발을 샀던 여가부의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정책은 약하고 낮은 곳을 지향하며 가족이 행복한 평등사회를 만들겠다는 여가부 정책 목표의 밑거름이 됐다. 여가부 정책이라면 무턱대고 비판하는 남성들은 ‘여가부는 페미니스트니, 남성의 이익을 위한 부처도 만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가부 직원 가운데 여성학을 전공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공직사회 입문 계기도 다양하다. 권용현 기획조정실장은 행정고시 32회로 공직에 입문, 줄곧 여성관련 정책을 담당했다. 1989년 여가부의 전신인 정무장관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여가부 경력 최고참이다. 이복실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은 1984년 행시 28회에 여성으로서는 행정고시 역사상 네 번째로 합격했다. 여성 행시 합격자 1호인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직을 떠났고, 2·3호도 퇴직하는 바람에 이 실장은 행시 출신 현역 최고참 여성 공무원이다. 보육정책국장을 지내면서 영아 기본 보조금을 도입하고,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등 현재의 어린이집 체계를 세운 것을 보람 있는 정책으로 꼽는다. 보건복지부에서 여가부로 보육업무가 이관되던 2004년만 해도 4000억원에 불과하던 관련 예산이 4년 만에 복지부로 돌아갈 때는 1조 5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여가부에서 ‘딸을 잘 키워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보육업무를 복지부에 넘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여가부의 골드마우스’ 손애리 대변인은 1997년 통계청 5급 특채로 공무원이 됐다. 공무원이 된 지 6개월 만에 ‘통계로 본 여성의 삶’이란 보고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말띠, 용띠, 범띠해에는 낙태로 여아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통계로 잡아낸 보고서는 2002년 여가부에서 통계직을 만들어 손 대변인이 자리를 옮기는 계기가 됐다. 이기순 여성정책국장은 정무장관실 시절부터 여성정책을 맡았으며, 여성 일자리 창출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강월구 권익증진국장은 1991년 민주자유당 사무처 공채 1기로 당료생활을 시작해 지난해 9월 고위공직자 개방형 직위 응모로 여가부에 자리 잡았다. 최근 빈발하는 성폭력 사건 예방과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최관섭 청소년정책관은 행정안전부 출신으로 부처 간 인사교류제도를 통해 여가부로 왔다. 임관식 가족정책관은 9급 공채로 시작해 고위공무원이 된 신화의 주인공이지만 본인은 그저 “운이 좋았다.”며 손을 내저을 뿐이다. 말 수가 적고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경남 스타일’지만 가족들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아프간 전쟁터 한복판서 여군이 출산

    영국 해리왕자가 복무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 기지에서 한 영국 여군 병사가 아기를 낳았다고 뉴욕타임즈 등 해외언론이 20일 보도했다. 아기를 낳은 병사는 피지 출신이며 영국군 포병부대 사수로 복무 중이었으며, 영국 국방부 측은 이 병사의 임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임신 중인 여군은 작전에 투입하지 않는 영국군 규정상 현역 영국 군인이 전투지에서 출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측은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면서 “조만간 영국에서 의료팀이 직접 아프가니스탄으로 가 산모와 아기를 데려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이를 출산한 병사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영국 여군 500명 중 한명이며, 현재 이 지역에는 영국 군 9500여 명이 머물고 있다. 한편 이 여군이 아이를 낳은 캠프 배스천은 탈레반과 파병군들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지역으로, 지난주 탈레반 대원 20여 명이 기지에 침투해 미군 해병대 2명을 사살하고 미군 전투기 등을 파괴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날 공격 후 현재 캠프 배스천에서 복무 중인 영국의 해리 왕자를 노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슈스케4 특공대 김정환, 입대 전 훈남 포스 사진 화제

    슈스케4 특공대 김정환, 입대 전 훈남 포스 사진 화제

    Mnet ‘슈퍼스타K4’(슈스케4)에서 훈훈한 외모와 싱어송라이팅 능력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버클리 음대 출신 특공대 김정환의 군 입대 전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진은 김정환 지원자의 개인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면서 공개됐다. 공개된 사진에서 김정환은 ‘슈퍼스타K4’에서 보여주던 짧은 머리에 특공대 군복이 아닌, 긴 머리에 회색 니트와 검은 모자로 멋을 낸 사복 차림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김정환이 군 입대 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은 그간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을 엿볼 수 있어 많은 여성 팬들이 관심을 보내고 있다. 네티즌들은 “주상욱 닮은 꼴”, “사복 센스 만점”, “노래 실력뿐 아니라 얼굴도 우승후보감”, “생방송 때 변신할 모습도 기대된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김정환은 버클리 음대 출신의 현역 군인으로 육군 예선을 통해 등장할 때부터 놀랄 만한 실력으로 주목 받았다. 지난 14일 방송된 5화 방송에서는 김정환이 속한 조가 ‘강남스타일’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선보인 장면이 당일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많은 화제를 모았다. 208만 명이라는 역대 최대 참가인원 중 경쟁을 뚫고 올라온 실력파들이 벌이는 음악의 향연인 슈퍼스타K4의 TOP10의 주인공은 매주 금요일 밤 11시 M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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