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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 ‘삼성맨’ 이만수 친정 치러 간다

    [프로야구] ‘삼성맨’ 이만수 친정 치러 간다

    이만수(52) SK 감독대행이 마침내 친정 대구로 간다. 이번엔 얄궂게도 ‘적’으로 간다. 정규시즌 3위에 그쳤지만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23일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에서 롯데를 물리치고 SK를 사상 첫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이만수 감독대행의 저력이 놀랍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대행과 삼성의 인연이다. 이 대행은 2007년 SK의 수석코치가 되기 전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1982년 원년 멤버로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프로 1호 안타, 1호 홈런은 물론 1984년 프로 첫 ‘트리플 크라운’(타율·홈런·타점 각 1위)을 달성하는 등 진기록을 줄곧 제조했다. 삼성에서만 16년간 선수로 뛴 그가 삼성 감독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듯했다. 하지만 구단과의 갈등으로 끝내 부름을 받지 못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코치로 몸담으면서 지도력을 착실히 쌓아 갔다. 국내 SK로 둥지를 옮겨 튼 뒤에는 김성근 전 감독 밑에서 수석 코치와 2군 감독을 오갔다. 그 사이 대구중과 한양대 5년 후배인 류중일 감독이 삼성 사령탑에 오르는 것을 씁쓸히 지켜봐야 했다. 그런 이 대행이 친정팀을 이끄는 후배와 처음으로, 그것도 대망의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된 것이다. 이에 이 감독대행은 “(선후배 관계는) 상관없다. 야구만 하니까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현역 시절 젊음을 온통 불태웠던 삼성과의 인연이 그리 쉽게 정리되지는 않을 터. 그는 “SK에 처음 와서 삼성과 붙을 때는 마음이 뒤숭숭했는데 5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감각이 없어졌다.”면서 “대구 팬들은 물론 삼성을 응원하겠지만 그중 절반은 SK를 응원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PO 3차전이 끝나고 최태원 SK 회장이 “이 감독대행을 고향에 보내드리자.”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그 말이 이뤄졌다. 좋은 게임을 할 것 같다.”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런 이 대행을 홈에서 맞이하는 류 감독의 각오는 단호하다. 류 감독은 이날 SK의 한국시리즈 진출이 결정된 직후 “상대 팀도 같은 초보 감독인데 결코 지고 싶지 않다.”며 이 대행과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예고했다. 류 감독은 “SK가 올라오길 학수고대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와 감사하다.”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삼성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내리 4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당초 우려를 씻고 김성근 전 감독의 야구에 자신의 야구를 접목하기 시작한 이 대행의 야구가 한국시리즈에서 화려하게 꽃피울지 주목된다. 부산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열린세상] 인류무형유산 보전을 위한 NGO 역할/이세섭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열린세상] 인류무형유산 보전을 위한 NGO 역할/이세섭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지난해 6월 유네스코 무형유산 자문 비정부기구(NGO)로 승인받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3박4일 동안 국내외 9개의 NGO를 초청, 유네스코 무형유산 자문기구 국제포럼을 열었다. 아태지역 NGO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동 방향과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이 포럼에는 유네스코 NGO로 활동하는 인도의 공예부흥트러스트(CRT)와 고아문화유산집행기구(GHAG), 중국 과학기술사학회(CSHST), 베트남 문화연구자원개발센터(A&C) 관계자들과 유네스코 방콕사무소 관계자, 국내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활발한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특히 인도의 CRT와 GHAG의 활동에 대해 참가자들 모두가 찬사를 보내며 NGO ‘모범사례‘로 꼽았다. 이들이 발표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인도는 460개가 넘는 부족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부족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장신구,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요, 이야기, 음악과 춤 등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각 부족의 조직적 종교의 신념체계, 고대 민중의 지혜를 체계화한 수없이 많은 종교집단과 종파도 부족단위만큼 많고 다양하다고 이들은 밝혔다. 하지만 인도 역시 다른 지역의 무형유산처럼 산업화, 세계화, 도시화의 파도에 휩쓸리며 중요한 무형유산들이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젊은 세대들의 관심 부족, 무형유산에 대한 잘못된 인식, 지위의 불평등과 교육의 확산, 새로운 고용형태, 문명의 이기에 의한 삶의 변화로 무형유산들이 훼손되고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인도의 이 분야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NGO를 꾸려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중에는 유네스코 무형유산 자문 NGO로 활동하고 있는 CRT와 GHAG의 활동이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1999년에 출범하여 13년째 운영되고 있는 CRT는 현재 남아시아의 공예, 직물, 민속예술을 포함한 전통문화 관련 기술과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이트(www.craftrevival.org)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아시아 8개국에 걸친 6만명 이상의 전통문화 계승자와 현역 활동가들에 대한 접촉 목록, 모범사례연구, 시민사회조직, 3500권의 책과 자료, 토론가 대담 등의 자료를 게시하며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11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GHAG 역시 인도 서부 고아 주(州) 지역의 인류무형유산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전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GHAG는 수년에 걸쳐 고아 주의 수도 파나지 지방자치단체,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포르투갈 문화재단, 인도 고고학연구소, 인도 문화예술유산트러스트 등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고아 지역의 문화유산 보호에 필요한 기준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문화유산 구조 및 특성 목록, 예술, 음식, 춤, 무대 예술을 문서화하여 자료화했다. 대중문화침입으로 위험에 처해 있는 고아 주의 하위계층과 주변 집단의 문화예술에 대한 문서기록, 문화유산 구조와 자연 유적지 보호를 위한 법령까지 마련할 정도로 역량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서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NGO들은 자신들의 활동상을 바탕으로,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공동의 관심사를 치열하게 논의하고 협의했다. 다문화시대 문화원형성의 범위는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무형유산 등재의 대륙별 불균형 해소를 위해 NGO는 어떤 역할과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등은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핵심 사항이었다. 97개인 자문기구의 조직화 방안, 무형문화유산 프로그램을 통한 국가·지역·계층 간 문화 불균형 해소 방안, 무형유산 정보소통을 위한 ‘국제 플랫폼’ 기능의 필요성, NGO 간 지속적인 상호교류를 통한 협력강화 등도 핵심쟁점이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도 유네스코 자문 NGO로서 이번 포럼에서 제기되고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활동방향을 고민하면서 포럼에 참여한 다른 나라 NGO의 요청대로 무형유산 정보소통을 위한 ‘국제 플랫폼’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 군인공제회 이사장에 김진훈

    군인공제회는 제12대 이사장으로 예비역 중장 김진훈(62)씨가 취임했다고 18일 밝혔다. 김 신임 이사장은 육사 30기 출신으로 56사단장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특전사령관, 건군60주년기념사업단장 등을 지냈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대의원회의에서 선출되며 국방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한다.
  • 배우 임주환 ‘심장질환’으로 정훈병 복무…연예병사에는 불합격

    배우 임주환 ‘심장질환’으로 정훈병 복무…연예병사에는 불합격

     심장질환을 앓았던 배우 임주환이 정훈병에 배치돼 복무 중이다.  임주환은 군입대 후 심장질환으로 국군통합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지난 9월 퇴원, 정훈공보부에서 복무하고 있다.  입대 전부터 심장질환을 앓았던 임주환은 기초군사훈련을 받다가 증세가 악화돼 국군통합병원과 소속 사단 의무대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임주환은 지난 5월17일 춘천 102보충대를 통해 입소했다. 당시 모 사단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던 중 심장에 이상이 생겨 경기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몸 상태가 나아져 강원 삼척의 모 사단의 의무대에서 입원 치료받았다.  그는 입대 전 군 징집 면제나 공익근무가 가능했지만 현역 입대를 고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주환은 입대후 국방홍보원에 지원, 연예병사(연예사병) 서류심사를 통과했으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임주환은 드라마 ‘이 죽일놈의 사랑’, ‘눈의 여왕’, ‘꽃보다 남자’, ‘탐나는도다’ 등에 출연했으며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 ‘쌍화점’, ‘수상한 고객들’ 등을 통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1980년, 부산 민주화 투쟁 소설로 재조명

    1980년, 부산 민주화 투쟁 소설로 재조명

    요즘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찌질’한 가장(家長) 연기를 탁월하게 해내는 배우 안내상씨는 토크쇼에서 충격적인 과거를 밝혔다. 1988년 광주 미국문화원에 사제 폭탄을 설치했던 골수 운동권이었다는 것. 정치인을 제외한다면 운동권 출신으로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안씨가 그 시절을 완전히 떠났다면, 소설 ‘1980’(산지니 펴냄)을 펴낸 노재열(53)씨는 “나는 아직 현역이자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1980’은 부산 녹산공단의 노동상담소장으로 일하는 노씨의 첫 소설이다. 1980년 5월 17일 전국 비상계엄령 확대가 선포되자 부산 남포동에서 ‘성전 포고에 즈음하여’란 유인물을 뿌린 주인공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5·18 30주년을 맞으면서 관련자들이 모여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관련 자료가 너무 없고 글이 부정확하며, 특히 당사자의 글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써놓은 게 있다’고 말했다. 글을 써놓은 지는 15년이 넘었지만 남에게 보이기 겁나 그렇게 세월이 지났다.” 노 소장의 소설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부터 1981년 3월까지만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그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인 부림사건(대학생, 교사, 직장인 등을 반국가단체 찬양 혐의로 구속하여 고문한 사건) 당시 1차로 구속돼 꼬박 2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전두환 군사정권 8년 동안 세 차례나 구속돼 20대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내거나 수배 상태로 있었다. 노 소장은 “소설에서 부림사건은 다루지 않았다. 5·18 이후의 사건을 담게 되면 또 다른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맞아 죽은 사람, 깡패 두목 등의 이야기를 보고서 형식으로 하려면 한계가 있었다. 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고통당하고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설로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일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가상의 인물도 없다. “물고문을 하려면 사람을 꽁꽁 묶어야 해. 통닭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은 머리가 거꾸로 서면서 하늘을 향해 입과 코가 벌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얼굴에 젖은 수건을 덮어씌우고 물을 부으면 항우장사라 해도 버티기가 힘들어.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만 해도 죽을 고통인데 거기다가 공기 대신 물을 들이마시게 되면 급기야 폐가 난도질 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토하게 되지.” 저자의 체험에 기반을 둔 감방 구조, 내부의 자체 규율, 고문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끔찍함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노 소장은 당시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개인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다. 그 사람도 군부세력의 지시를 받아 끔찍한 일을 자행했던 하나의 희생자다. 뺨 한 대 때리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라며 그들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1990년대에는 ‘80년대식 글 나부랭이들’ ‘우려먹기식의 운동권 후일담 소설’이란 평들이 있었다. 노 소장은 “내가 볼 때는 아직 더 해야 하고 지금까지 나온 문학은 주변부 이야기일 뿐이다. 평론가들이 벌써 문을 잠그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학적 재미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이 우직한 소설의 저자는 “20대 젊은 대학생이 이 책을 봐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그는 특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 지역에만 국한된 투쟁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광주뿐 아니라 부산, 대구 등 전국에서 이뤄진 투쟁이었지만 의미가 축소됐고,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국가유공자는 장례 비용이 나라에서 나오지만 5·18 민주화 유공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노씨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회계층 간의 내용으로 보면 변한 게 없다.“며 “우리 사회가 빨리 변해 소외된 사람이 늘었다.”고 한탄했다. 30년 전 빛났던 청춘의 아픈 기록을 소설로 풀어낸 저자의 목소리는 뜻밖에 담담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일본통신]’홈런왕’ 야마사키의 빈자리가 씁쓸한 이유

    [일본통신]’홈런왕’ 야마사키의 빈자리가 씁쓸한 이유

    역대 일본야구 최고령 홈런왕 기록은 카도타 히로미쓰(63)가 가지고 있다. 카도타는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시절인 지난 1988년 만40세의 나이로 44개의 홈런을 쳐내며 최고령 홈런왕에 등록했다. 카도타는 이후 오릭스로 이적한 1989년 33개, 1990년 31개의 홈런을 쳐내며 불혹의 나이가 무색할만큼의 장타력을 뽐냈던 대표적인 타자다. 그렇다면 현역 선수들 중에 최고령 홈런왕 기록은 누가 가지고 있을까? 바로 얼마전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퇴단 된 야마사키 타케시(43)가 그 주인공이다. 야마사키는 2007년 외국인 타자 터피 로즈(전 오릭스)와 시즌 막판까지 가는 혈투 끝에 43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개인 통산 두번째 홈런왕을 차지했다. 당시 야마사키가 홈런왕에 등극할때의 나이가 만 39세다. 야마사키는 우여곡절의 대명사격에 해당되는 선수다. 1989년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해 1996년 첫 홈런왕(39개)을 차지하기 전까지 풀타임으로 한 시즌을 소화해 본적이 없었던 타자다. 이후 야마사키는 오치아이 히로미쓰(현 주니치 감독)가 니혼햄으로 이적하자 이듬해부터 팀의 4번타자 자리를 꿰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탄탄대로를 달릴것 같던 야마사키는 2002년 부상으로 쓰러지며 2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하며 잊혀진 선수가 됐다. 정교함보다는 장타력, 그리고 장타력을 제외하면 내야수로서 특출나게 내세울것이 없었던 야마사키의 쓰임새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우승을 노리던 주니치 입장에선 지명타자에나 어울릴법한 야마사키의 존재가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 야마사키는 오릭스로 이적한다. 이적 첫해 홈런 23개를 쳐내며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듬해인 2004년 또다시 부상으로 쓰러졌다. 야마사키에게 내려진 가혹한 시련이었다. 오릭스 구단은 그해를 끝으로 야마사키를 방출한다. 실의에 빠져 있던 야마사키를 구출한건 신생구단 라쿠텐 골든이글스였다. 2005년 라쿠텐은 센다이시를 연고로 새롭게 창단된 구단이다. 라쿠텐에서 야마사키는 이적 첫해 부상을 떨쳐내며 25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불사조와 같은 모습을 재현한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무릎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도 이쯤이다. 그리고 한 시즌을 잘보내면 이듬해 부상이 찾아왔던 것을 말끔하게 해소하며 노무라 카츠야(전 감독)가 부임했던 2006년, 모처럼 만에 규정타석에 들며 19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야마사키가 노장 파워를 제대로 보여준 것은 2007년이다. 그해 야마사키는 타율 .261 홈런43개, 108타점을 기록하며 주니치 시절이었던 1996년 이후 무려 11년만에 홈런왕에 등극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해 라쿠텐은 신생구단으로서 처음으로 꼴찌에서 탈출(4위)했는데 야마사키의 활약 역시 밑거름 됐던 것은 당연했다. 타자가 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하락하는게 파워다. 그래서 보통의 노장 선수들은 짧고 간결한 스윙으로 타격폼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야마사키는 원래부터 정교함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고 아직도 풀스윙으로 일관하는 대표적인 타자다. 올해 야마사키는 8월 18일 경기(세이부전)에서 개인 통산 400홈런을 기록했다. 42세 9월만에 기록한 최고령 400홈런 신기록이다. 이런 야마사키가 올해를 끝으로 라쿠텐을 떠난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올 시즌 부진했던 타선을 정비할 계획으로 내년부터는 좀 더 젊은 팀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단에선 야마사키에게 올 시즌 후 현역 은퇴, 그리고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야마사키가 이를 거부했다. 10일 경기(지바 롯데전)가 라쿠텐에서 마지막 경기된 야마사키는 홈구장인 크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를 찾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뜨거운 눈물을 보이며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쿠마 히사시와 타나카 마사히로 등 동료 선수들 역시 눈물을 보인 것은 마찬가지. 야마사키에 대한 라쿠텐 팬들의 사랑은 말로 다 형언할수 없을 정도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라쿠텐이 창단할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4번타자 자리를 지켜왔고 아직까지 라쿠텐에서 야마사키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쳐낸 선수가 없었을 정도로 팀을 대표하던 타자였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전권을 쥔 호시노가 선수단을 장악하는 그리고 기존의 색깔을 지우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말 감독에 취임한 호시노는 비록 농담이었지만 기자들 앞에서 ‘아라이 타카히로(한신)를 데려오고 싶다’ 며 멀쩡한 4번타자 야마사키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호시노가 야마사키를 대신해 4번타자로 생각하고 있는 선수는 요코하마에서 뛰었던 브렛 하퍼로 알려져 있다. 노장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실력이 있고 아직 힘이 있다면 경험적인 측면에선 오히려 팀에 더 보탬이 되는 경우도 많다. 올해 라쿠텐에서 야마사키(11홈런)보다 더 많은 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없다. 시즌 중반 손가락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되지만 않았다면 20홈런 이상은 충분히 쳐낼수 있었다. 팀 체질개선이 필요하더라도 이런식의 선수정리는 말이 많을수 밖에 없다. 약팀 라쿠텐을 위해 헌신했던 그리고 창단 멤버로 ‘불꽃부활’의 화신이었던 야마사키의 퇴단은 결코 팬들을 배려하는 행동이 아니다. 사진=왼쪽은 호시노 센이치, 오른쪽은 야마사키 타케시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일본통신] 다르비슈와 타나카 막판 승자는?

    [일본통신] 다르비슈와 타나카 막판 승자는?

    2011 일본프로야구도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센트럴리그는 주니치 드래곤스의 우승이 사실상 확정적이고, 퍼시픽리그는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2연패를 확정지었다. 팀당 3-10경기씩만 남겨 놓은 현재(13일 기준) 이제 관심은 A플래스(포스트시즌 진출)에 들 마지막 3위 싸움만 남아 상태다. 현재까지 센트럴리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퍼시픽리그는 오릭스 버팔로스가 3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순위싸움 못지 않게 개인 타이틀 경쟁도 치열하다. 센트럴리그는 타격왕, 그리고 요시미 카즈키(주니치 17승, 평균자책점 1.67)와 우츠미 테츠야(요미우리 17승, 평균자책점 1.74)가 벌이는 다승,평균자책점 1위 싸움은 마지막까지 가봐야 윤각이 드러날듯 보인다. 또한 후지카와 큐지(한신, 38세이브)와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37세이브)의 구원왕 싸움, 아라이 타카히로(한신, 89타점)와 쿠리하라 켄타(히로시마, 87타점)의 타점왕 싸움 역시 여전히 안개속이다. 홈런 30개를 쏘아 올린 블라디미르 발렌티엔(야쿠르트)의 홈런왕은 기정사실이다. 퍼시픽리그는 홈런-타점 2관왕이 확실한 나카무라 타케야(세이부), 그리고 올 시즌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요코하마에서 이적해 온 우치카와 세이치(소프트뱅크, 타율 .344)의 타격왕이 확정됐다. 우치카와는 40년만에 양대리그에서 모두 수위타자를 차지하는 선수가 됐으며 올해 극심한 투고타저 바람을 뚫고 고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에선 마지막 경기까지 가봐야 될듯 싶다. 탈삼진왕은 다르빗슈(276개)로 확정됐다. 하지만 다승왕 경쟁은 세명의 선수가 경합중이다. 다르빗슈 유(니혼햄)와 타나카 마사히로(라쿠텐) 그리고 데니스 홀튼(소프트뱅크)은 나란히 18승을 기록중이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등판 횟수는 단 한경기다. 평균자책점 부문은 타나카가 1.33으로 1위, 그리고 다르빗슈가 1.44로 2위를 달리고 있는데, 만약 마지막 경기에서 타나카가 무너지고 다르빗슈가 호투를 한다면 다르빗슈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 가능성도 있다. 다르빗슈와 타나카는 공교롭게도 세이부전이 올해 마지막 등판 예정일이다. 다르빗슈는 18일, 그리고 타나카는 15일에 출격한다. 아이러니 한것은 현재 3위 오릭스에 1.5경기차 뒤진 4위를 달리고 있는 세이부가 아직 포스트시즌 진출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이부 입장에선 4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하필이면 일본 최고 투수 2명을 연달아 상당하게 돼 부담스럽지만, 최선을 다할수 밖에 없다. 아직 순위싸움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이부의 운명을 쥐고 있는 다르빗슈와 타나카, 그리고 마지막 세이부전을 통해 개인 타이틀이 결정되는 상황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다르빗슈와 타나카의 경쟁은 이뿐만이 아니다. 투수에게 있어 최고의 진리품인 사와무라 에이지상 역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와무라상을 받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기준은 7가지다. 경기 출전수 25경기 이상, 15승 이상, 평균자책점 2.50 이하, 투구 이닝수 200이닝 이상, 10완투 이상, 탈삼진 150개 이상, 승률 6할 이상이다. 다르빗슈는 28경기 출전, 18승, 1.44의 평균자책점, 233이닝, 10완투, 탈삼진 276개, 승률 .750(18승6패), 타나카는 26경기 출전, 18승, 1.33의 평균자책점, 217.1이닝, 13완투, 탈삼진 230개, 승률 .783(18승5패)로 사와무라상 7개 기준을 모두 채웠다. 누가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화려한 성적표다. 양리그 통틀어 단 한명에게만 수여되는 사와무라상은, 센트럴리그에선 이 기준에 부합되는 투수가 없기에 올해는 퍼시픽리그에서 나올수 밖에 없다. 이 두선수는 예년같으면 사와무라상 뿐만 아니라 리그 MVP까지 노려볼수 있을 정도의 성적이지만 통상적으로 MVP는 리그 우승팀에서 나왔다는 전례를 감안하면 아쉬움마저 들 정도다. 참고로 최근 4년간 퍼시픽리그 MVP는 모두 투수가 차지했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다르빗슈는 지난 2007년 사와무라상과 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한 바 있다. 2009년엔 비록 와쿠이 히데아키(세이부)에게 사와무라상을 양보했지만 MVP에 오르며 리그 현역 투수들중 2번의 MVP 기록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선수가 됐다. 또한 그는 올 시즌을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끝내게 되면 5년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이란 위엄을 달성하게 된다. 타나카는 이제 확실히 다르빗슈 다음인 2인자 투수란 소릴 들을만 하다. 그동안 개인 타이틀 수상 경력은 없지만 그의 나이(1988년생)를 감안하면 이제부터가 전성기다. 하지만 타나카는 올 시즌 환상적인 투구로 인해 다르빗슈를 위협하는 투수로 올라섰다. 2007년 리그 신인왕에 빛나는 타나카는 내년에는 다르빗슈가 일본에 머물 가능성이 없기에 어쩌면 올 시즌이 마지막 승부라고도 할수 있다. 올해 일본야구는 유난히 투수력의 득세가 심했던 해다.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만 해도 26명(센트럴 13명, 퍼시픽 13명)이나 되며 1점대 평균자책점 역시 6명(센트럴 3명, 퍼시픽 3명)이다. 하지만 센트럴리그에선 이닝이나, 완투 그리고 탈삼진 부문에 있어 다르빗슈와 타나카에 대적할만한 투수는 없었다. 18일 다르빗슈의 세이부전 마지막 등판이 끝나면 사와무라상 수상자 역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 서울시장 두 후보의 컨셉트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 서울시장 두 후보의 컨셉트

    ■나경원 ‘청취 행보’ 10·26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3일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와 홍준표 대표의 동시 지원 사격을 받으며 유세의 첫걸음을 뗐다. 나 후보는 이날 서울 구로구 디지털산업단지와 재래시장을 오전엔 박 전 대표와, 오후엔 홍 대표와 각각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세 사람의 등장으로 한나라당은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등 계파를 초월한 이미지를 내세워 일견 총력전을 펼쳤다. 나 후보는 오전에 박 전 대표와 함께 서울관악고용지원센터와 벤처기업협회를 잇달아 방문하며 ‘청취 유세’를 펼쳤다. 구직자들, 벤처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고충을 듣는 정책 행보였다. 나 후보는 오전 10시 30분쯤 감색 점퍼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으로, 박 전 대표는 짙은 자주색 재킷에 검정 바지 차림으로 이보다 조금 일찍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 내 상담코너에 들어선 박 전 대표는 구직자들에게 “오늘 (나 후보와) 같이 나와 있는데 서울시 고용·복지 쪽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60대 구직 남성에게는 “우리 (나 후보)….”라고 말하며 손짓으로 나 후보를 소개하기도 했다. 청년실업프로그램 수강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 후보는 “전국 실업률보다 서울의 실업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실업률을 낮추는) 일자리 시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나 후보의 경쟁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전 대표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그동안 많이 보셨잖아요. 얘기 안 해도….”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특히 장애아동에 대해 힘썼던 따뜻한 마음으로 서울시정도 이끌 것으로 본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곧바로 인근 마리오타워에 있는 벤처기업협회로 이동한 두 사람은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 엠텍비전 이성민 회장 등 벤처기업 대표 11명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뜻밖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패하며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내준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참석, 박 전 대표 및 나 후보와의 조우가 이뤄졌다. 박 의원은 두 사람에게 “제 지역구를 방문해 줘서 감사하다. 오늘 간담회 잘하고 가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세 사람은 두세 마디 덕담을 나눴고, 박 의원이 먼저 자리를 떴다. 박 의원은 건물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벤처협회장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돌아가고 ‘ㅁ’자형으로 마련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간담회를 시작한 나 후보와 박 전 대표는 업체 대표들의 의견을 A4 용지에 깨알같이 메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인력운용 등 벤처기업 경영난에 대해 성토가 이어지자 때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 후보는 “창년 창업뿐 아니라 노인창업,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멘토시스템에도 관심을 갖겠다.”면서 “시장으로서 할 수 없는 중앙부처 일은 박 전 대표가 잘 챙겨주실 거라 본다.”고 박 전 대표를 추어올리기도 했다. 오후 들어 나 후보는 홍 대표와 함께 구로2동 중앙시장을 찾아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홍 대표는 길거리 유세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여성 서울시장을 한번 만들어보자.”면서 “서울시장을 한번 만들어보고 내년에 여성 대통령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외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홀로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일대 카메라렌즈 제조업체 등 벤처기업을 도는 일정을 소화했다. 오전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라며 악수하고 얘기도 건네는 등 한층 적극적인 스킨십을 보였다. 구로기계공구산업단지조합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고충을 듣고 “나 후보가 같이 오지는 못했지만 제가 꼭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박원순 ‘토크쇼 유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범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유세는 한마디로 이색적이었다. 카페 차양을 단 듯한 유세 차량과 CF송으로 친근한 시민 참여형 유세를 선보였다. 우렁찬 유세 음악으로 주위의 관심을 끌었던 기존 선거유세 방식과는 달랐다. 범야권 단일후보답게 선대위 출정식에는 손학규 민주당·이정희 민주노동당·유시민 국민참여당 등 야당 대표들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유명 야권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박 후보는 “정치에 염증 내는 대한민국 국민과 서울시민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선거)모습에 반드시 감동할 것”이라면서 “10월 26일 기호 10번 박원순이 서울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박 후보는 선거운동이 시작된 13일 0시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첫 신고식을 하며 바닥 민심을 살폈다. 이어 오전 7시 30분 남대문 시장 인근의 지하철 회현역으로 나가 출근길 인사를 나눴다.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 대표도 동행했다. 박 후보는 손가락 10개를 펴보이며 기호 10번임을 강조했다. 오전 9시 선대위 출정식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진행됐다. 박 후보를 비롯해 야당 의원들, 캠프 관계자, 지지자까지 150여명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현장에는 소형 트럭을 개조한 일명 ‘카페 박원순’ 유세차가 등장했다. CF송으로 유명한 가요 ‘버블버블’을 개사한 로고송도 울려 퍼졌다. 박 후보의 유세차에는 한 전 총리를 비롯해 손 대표, 이 대표, 유 대표 등 야권의 대표 인사들도 올라 박 후보를 지원 유세했다. 선거기간 대여 형식으로 동원된 49대의 유세차량은 선거운동이 끝나는 오는 25일까지 선거운동원들을 태우고 서울 구석구석을 누빌 예정이다. 차량은 보통 선거에서 쓰는 1.5t 트럭보다 크기가 작은 ‘타우너’, ‘라보’ 차종을 개종했다. 높은 단상에서 후보자가 마이크를 들고 시끌벅적하게 유세하기보다 ‘길거리 토크쇼’를 하고 싶다는 박 후보의 뜻이 반영됐다. 연두빛 앞치마 유세복을 두른 박 후보는 “늘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기에 유세차도 작게 만들었다.”면서 “늘 낮은 곳에서 시민과 함께 있겠다. 모든 곳이 시장실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년 너무나 고통을 안겨준 전시·겉치레 행정의 서울시정을 깨끗이 설거지하겠다. 이 옷을 입고 미래 서울을 요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유세차가 이렇게 아담하고 작을 것을 예상했느냐.”면서 “박 후보의 철학이 담긴 유세차”라며 소형 유세차를 자랑했다. 한 전 총리는 박 후보의 기호 10번을 무려 6번이나 언급하며 “박 후보가 당선되면 작은 복지가 실현된다. 손을 잡아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시민들은 유세차에서 박 후보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하는 등 기존 유세장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연출했다. 박 후보는 유세차에서 시민들과 정책과 비전 등을 솔직히 토론한다는 계획이다. 오후 7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박 후보에게 소망을 말하는 시민유세 ‘시민의 시장이다’가 진행됐다. 박 후보는 물론 손 대표와 유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현장에 나타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지지를 당부했다. 문 이사장은 “선거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지원 유세를 하는 건 생전 처음”이라면서 “이번 선거는 순수하게 살아온 사람이 정직한 방법으로 정치가 가능한지 가늠하는 시험대다. 시민들이 박 후보를 지켜줘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소셜 네트워크 효과도 극대화했다. 트위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실기간으로 올리는가 하면 ‘원순닷컴’을 통해 온라인 칭찬댓글을 달고 선거현장에서 노래를 불러줄 ‘희망합창단’, 20~30대에 직접 정책 자문을 얻기 위한 ‘희망2030정책자문단’ 등을 공개 모집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상황 어렵다고 꿈 포기하게 만들면 한국만화의 모차르트 나올 수 없어”

    “상황 어렵다고 꿈 포기하게 만들면 한국만화의 모차르트 나올 수 없어”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꿈을 포기하게 만들면 한국 만화의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시대 최고의 만화가’로 통하는 허영만(64) 화백을 13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났다. 그의 출세작 ‘각시탈’(1974)이 ‘한국만화걸작선’ 17번째 작품으로 복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그의 소회와 계획을 들어봤다. ●“좋아하는 것 하는 게 가장 중요” 허 화백은 지금 출판만화 시장이 어려운 게 ‘하루가 24시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만화를 볼 세대들이 공부에, 학원에 쫓겨 시간이 없다는 데서 만화의 비극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어린 친구들이 자기가 좋아서 만화가를 꿈꿔도 부모들이 말린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는 “먹고살 수 있느냐는 나중 문제”라면서 “좋아하는 것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스티브 잡스의 꿈과 성공을 예로 들었다. ●“검열 때문에 뱀 머리에 리본 그린 적도” 그는 뱀을 그리면 흉칙하다고 사전검열당해 뱀 머리에 리본을 그려 넣던 때도 있었다고 소개하고 “만화 그릴 맛 안 나던 무지막지하던 시절을 살았다.”면서 “사전검열이 사라진 뒤에도 나도 모르게 뿌리 내린 자기검열에서 벗어날 때까지 4~5년이 더 걸렸다.”고 토로했다. 후배들에 대해서는 질책을 쏟아냈다. 과거와 같은 규제가 없는데도 대충 그리는 후배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연재하는 웹툰 쪽은 빨리 데뷔를 하다 보니 일찌감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면서 “하지만 데뷔가 쉬운 만큼 도태되기도 쉽다는 사실을 많은 후배들이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1974년 ‘집을 찾아서’로 데뷔해 40년 가까이 만화가 길을 걸어온 허 화백은 1988년쯤을 큰 고비로 꼽았다. “당시 잡지, 대본소, 단행본을 동시에 그렸지요. 화실 식구가 무려 23명이나 됐습니다. 제가 직접 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군요. 어느 날 나 자신이 만화가가 아닌 중소기업 사장처럼 느껴지더군요. 화실을 해체하고 문하생을 3명만 남기는 결단을 내렸지요.” 허 화백의 작품은 지금까지 ‘식객’과 ‘타짜’, ‘날아라 슈퍼보드’ 등 11개가 모두 14차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졌다. 지금은 1970~80년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던 ‘각시탈’의 드라마화 작업이, 야구를 소재 삼아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제7구단’의 3D 영화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영상에 담긴 내 작품이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어요. 도저히 계속 앉아 보고 있을 수준이 안 되는 작품들도 여럿 있었지요. 서너 개 작품은 아예 시사회 중간에 일어나 버렸어요. 내 작품 연출의 묘미는 처음부터 모든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최대한 감추고 아끼고 자제하는 것인데 그걸 몰랐던 경우들이지요.” ●全作 출간엔 “새것도 그릴 게 많은데…” 현재 허 화백의 작품들은 국내 만화가 중 처음으로 전작(全作) 출간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부정적이다. “옛 추억은 그대로 간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새것도 그릴 게 많은 데 냄새 풀풀 나는 것들을 다시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與, 박원순 학력·병역·이념 총공세-野, MB 사저·나경원 재산 집중타

    與, 박원순 학력·병역·이념 총공세-野, MB 사저·나경원 재산 집중타

    10·26 재·보궐선거의 법정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13일에 맞춰 여야는 총력전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비롯해 전국 42개 선거구에서 실시되는, 규모상 ‘중형급’ 선거지만 내년 총·대선의 지형이 걸려 있다는 무게감에 여야 지도부와 소속 의원 대다수가 선거 현장에 투입된다. 한나라당은 12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을 지역별 선거책임자로 임명했다. 유승민 최고위원이 대구·경북·경남, 원희룡 최고위원은 서울, 남경필 최고위원이 부산, 김장수 최고위원이 강원, 홍문표 최고위원이 충청 등을 맡는다. 특히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선거 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전원이 참석한 선거전략회의에도 자리했다. 박원순 야권 단일 후보의 학력, 병역, 시민운동 경력에 대한 검증은 물론 이념 성향을 거론하며 공세 수위도 높이고 있다. 홍 대표는 “박 후보가 천안함 폭침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 억울한 장병이 수장됐다’는 식의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면서 “과거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한 분이지만 이런 안보관, 국가관을 갖고 시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서울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최고위원들을 배치했다. 또 현역 의원들을 서울 지역 48개 당협별로 배정해 유세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신축 부지 매입 문제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재산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해 나갈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 후보는 당 소속 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을 설득해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는 게 중요한 만큼 당 조직력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대외적으로는 이번 선거를 이 대통령과 오세훈 전 시장에 대한 심판론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이지만 여야 후보들은 이미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공약을 발표했고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토론회에 나서고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지역 곳곳을 누비며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렇듯 예비 후보자로 등록하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더라도 선거일 120일 전부터 다양하게 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다. 후보들의 이러한 움직임과 맞물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선거 관련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다만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만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 별도로 있다. 우선 현수막을 내걸 수 있고 선거운동원들이 거리 유세를 벌일 수 있다. 유세차도 동원할 수 있으며 신문, 방송, 인터넷에 광고도 할 수 있다. 장세훈·황비웅기자 shjang@seoul.co.kr
  • 허영만 “인터넷 웹툰 만화가들, 목에 잔뜩 힘 들어가서는...”

    허영만 “인터넷 웹툰 만화가들, 목에 잔뜩 힘 들어가서는...”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꿈을 포기하게 만들면 한국 만화의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시대 최고의 만화가’로 통하는 허영만(64) 화백을 13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났다. 그의 출세작 ‘각시탈’(1974)이 ‘한국만화걸작선’ 17번째 작품으로 복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그의 소회와 계획을 듣고 싶었다.  허 화백은 지금 출판만화 시장이 어려운 게 ‘하루가 24시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만화를 볼 세대들이 공부에, 학원에 쫓겨 시간이 없다는 데서 만화의 비극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어린 친구들이 자기가 좋아서 만화가를 꿈꿔도 부모들이 말린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는 “먹고 살 수 있느냐는 나중 문제”라면서 “좋아하는 것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스티브 잡스의 꿈과 성공을 예로 들었다.  그는 뱀을 그리면 흉칙하다는 사전검열에 뱀 머리에 리본을 그려 넣던 때도 있었다고 소개하고 “만화 그릴 맛 안나던 무지막지하던 시절을 살았다.”면서 “사전검열이 사라진 뒤에도 나도 모르게 뿌리 내린 자기검열에서 벗어날 때까지 4~5년이 더 걸렸다.”고 토로했다.  후배들에 대해서는 질책을 쏟아냈다. 과거와 같은 규제가 없는 데도 대충 그리는 후배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연재하는 웹툰 쪽은 빨리 데뷔를 하다보니 일찌감치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면서 “하지만 데뷔가 쉬운 만큼 도태되기도 쉽다는 사실을 많은 후배들이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1974년 ‘집을 찾아서’로 데뷔해 40년 가까이 만화가 길을 걸어온 허 화백은 1988년쯤을 큰 고비로 꼽았다.  “당시 잡지, 대본소, 단행본을 동시에 그렸지요. 화실 식구가 무려 23명이나 됐지요. 제가 직접 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군요. 어느 날 나 자신이 만화가가 아닌 중소기업 사장처럼 느껴지더군요. 화실을 해체하고 문하생을 3명만 남기는 결단을 내렸지요.”  허 화백의 작품은 지금까지 ‘식객’과 ‘타짜’, ‘날아라 슈퍼보드’ 등 11개가 모두 14차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졌다. 지금은 1970~80년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던 ‘각시탈’의 드라마화 작업이, 야구를 소재 삼아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제7구단’의 3D 영화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영상에 담긴 내 작품이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어요. 도저히 계속 앉아 보고있을 수준이 안되는 작품들도 여럿 있었지요. 서너개 작품은 아예 시사회 중간에 일어나 버렸어요. 내 작품 연출의 묘미는 처음부터 모든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최대한 감추고 아끼고 자제하는 것인데 그걸 몰랐던 경우들이지요.”  현재 허 화백의 작품들은 국내 만화가 중 처음으로 전작(全作) 출간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부정적이다.  “옛 추억은 그대로 간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새 것도 그릴 게 많은 데 냄새 풀풀 나는 것들을 다시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는 ‘현역’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성시경측 “군대 휴가일수 특혜 아니다”

    최근 가수 성시경(32)이 군 복무 기간 휴가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소속사인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는 10일 “휴가 일수와 병과 배치는 적법한 절차였기에 특혜가 아니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08년 7월 입대한 성시경은 적법한 절차에 의거해 군악병으로 선발돼 군 복무를 성실히 이행했다.”면서 “특혜를 통한 휴가 일수 및 병과 배치와 관련된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7일 국회 국방위원회 신학용(민주당) 의원은 “성시경이 육군 1군사령부 군악대에서 복무하다 지난 5월 전역했는데 복무 기간 정기휴가 25일을 포함해 117일의 휴가와 8일 이상의 외박을 받아 최소 125일 이상을 부대 밖에서 보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성시경의 군악대원 선발과 관련한 특혜 의혹도 제기했다. 성시경의 소속사 황세준 대표도 10일 트위터에 “(성시경은) 명령에 의해 연예사병이 아닌 현역 군악병으로서 100회 이상의 행사에 동원돼 포상 휴가를 받았다.”면서 “그 과정에서 일반 병사보다 많은 휴가를 받은 건 사실이나 특혜를 받아 휴가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두산 새 감독 김진욱 투수코치

    두산 새 감독 김진욱 투수코치

    김진욱(51) 두산 1군 투수코치가 사령탑으로 올라앉았다. 이로써 LG 김기태 감독에 이어 서울을 연고로 한 두 팀은 모두 내부 승진으로 감독 선임을 마무리지었다. 프로야구 두산은 9일 김진욱 1군 투수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고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두산은 “김 신임 감독이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들과 많은 대화로 뚜렷한 동기와 목적을 심어주는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 선수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아 당황스럽지만 나를 선택해 준 구단에 감사한다.”며 “팀 재건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두산에는 재능있고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이 많다. 이들과 열심히 노력해 언제나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강한 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팬들이 즐거워하는 열정적이고 깨끗한 야구를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구단과 협의해 코칭스태프를 구성하고 오는 14일 선수단과 상견례를 한 뒤 마무리 훈련을 이끌 예정이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천안북일고-동아대를 거친 김 감독은 1984년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1992년까지 9시즌 동안 221경기에 출장해 53승71패16세이브, 평균자책점 3.61을 기록했다. 현역 은퇴 뒤에는 분당 중앙고 감독, 구리 인창고 창단 감독을 지냈고 2007년부터 두산 코치를 맡았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김진욱 두산감독 선임 “강한 팀 깨끗한 야구 펼치겠다”

    김진욱 두산감독 선임 “강한 팀 깨끗한 야구 펼치겠다”

    두산베어스는 9일 김진욱 1군 투수코치를 제8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김진욱 두산 감독(51)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천안북일고와 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에 입단해 1992년까지 9시즌 동안 221경기에 출장해 53승 71패 16세이브, 방어율 3.61을 기록했다. 현역 은퇴 뒤에는 분당 중앙고 감독, 구리 인창고 창단감독을 거쳤고 2007년부터 두산베어스 코치로 활동했다. 김진욱 감독은 이날 “두산에는 재능있고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이 많다. 팀 재건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선수들과 열심히 노력해 언제나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강한 팀을 만들고 팬들이 즐거워하는 열정적이고 깨끗한 야구를 펼치겠다”고 두산 감독 선임 소감을 밝혔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김진욱 두산 신임 감독은 코치시절 선수들과의 대화를 통해 뚜렷한 동기와 목적을 심어주는 소통의 리더쉽을 발휘해 선수들로부터 신임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진욱 감독은 구단과 협의하여 코칭스탭을 구성하고 오는 14일 선수단 상견례 후 국내외에서 마무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사진 = 두산베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안철수 대선 나올 것… 내년 3월 정당정치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안철수 대선 나올 것… 내년 3월 정당정치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한 달 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치 나들이’ 일주일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영원한 전략가’로 통했고, 최근엔 안 원장의 정치 멘토로도 불렸던 그를 6일 어렵게 만났다. 안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의 뜻을 접고 학교로 돌아간 뒤로 그 역시 한 달간 침묵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식사라도 하자며 간신히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여전히 신중했고, 말도 가려서 했다. 안 원장이 일주일간의 ‘정치 나들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직후 그로부터 미안한 마음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직간접 전달받은 뒤 아직 접촉이 없다고 밝혔다. 안 원장이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양보’한 과정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을 삼갔다. 그러나 그토록 신중한 그가 힘 주어 말한 게 있다. “(총선을 한 달 앞두는) 내년 3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이 올 것이고, 지금의 정당 정치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와 함께 안 원장이 내년 12월 대선에 나올 것으로 예견하기도 했다. →안철수 바람, 안풍은 여전한 건가. -기성정당으로부터의 민심이 떠났는데 안철수 말고 마음 줄 데가 없지 않나. 쉽게 안 사라질 것이다. →박원순 후보의 야권 단일화 승리도 안철수의 힘인가. -박 후보는 지지율 10%가 안 나오던 사람이었다. 안 원장이 양보해 나온 효과다. 한나라당, 민주당이라는 거대한 정당이 안철수 한 개인에게 지진을 만난 것처럼 흔들리는 걸 봐라. 얼마나 약하면 그 모양일까. →대안 정치세력이 나올 토양이 돼 있나. -그렇다. 미국 월가 시위처럼 학생들뿐 아니라 서민들의 분노가 말도 못한다. 내년 봄 대학 등록 시즌이 되면 물가가 엄청 올라 있을 거고, 유럽의 위기가 한국에 전이되면서 선거를 앞두고 충격이 올 것이다. 현재의 대권 구도는 날아가고 제3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제3세력의 정치화는. -제3세력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심리는 전혀 죽지 않았다. 그럼 이제는 두 당 중에 하나가 없어지거나 아예 혁명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보수진영의 시민세력화 움직임이 있나. -보수진영은 원래 그런 거 잘 못한다. →정계 대개편 가능성은. -가능성이 많다. 기성정당 의원들의 이탈도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가 당선되면 그런 상황이 가속화될 것이다. →나경원 후보가 당선되면. -그런 상황이 올까. 박 후보가 위기를 맞으면 안 원장이 나오지 않을까. →안 원장이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안 원장이 한나라당이 변하면 한나라당도 지지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의 정체성은. -한나라당 공천 때마다 현역의원 40%를 바꾸지만 당은 그대로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적으로 강고한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싸우다가도, 공통의 이익에는 뜻을 같이한다. 안 원장은 진보, 보수 이분법으로 보지 말라 했고, 이분법은 의미가 없는 시대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대권 밀약설은. -글쎄. 세력이 있어서 약속했다면 모르겠는데, 박 후보 개인적으로 약속했다는 것, 우습지 않나. →안 원장의 강세가 계속 이어질까. -당연히 이어질 것이다. 보수언론이나 세력은 흠집을 내려 할 것이지만, 안 먹힐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볼 때 보수언론이나 세력이 도덕적으로 공격할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안 원장이 제3 정치세력의 구심점이 되는 건가. -제3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보수, 진보도 아니다.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초월해야 한다. 여야의 협공을 받게 될 것이다. 안 원장이 시련을 겪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서 막상 그런 현실에 부닥치면 감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 원장이 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관건은 국민들의 지지다. 지지를 얻으면 이를 극복할 것이고, 지지가 없으면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은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이미 무너진 것 아닌가. 안철수 대세론이 일찍 와서 잘된 측면이 있지. 다행인 면이 있다. 박 전 대표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지. →박 전 대표가 한국 정치가 위기라며 나경원 후보를 돕겠다고 했는데. -지면 한나라당은 패닉에 빠질 것이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박 전 대표가 극복하는 역량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위력을 보이는데. -인상이 좋다. 깨끗하고, 탐욕스럽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인간적이다. 그런데 정치적 명분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실패에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이춘규 선임기자·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독침테러 기도 탈북자 기소

    독침테러 기도 탈북자 기소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6일 대북전단을 살포해 온 보수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를 독침으로 살해하려 한 탈북자 출신 전 ㈜남북경협 이사 안모(45)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특수잠입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안씨로부터 압수한 독침 1개, 만년필 독총과 손전등 독총 1정씩, 독약 캡슐 3정 등을 공개했다. 독침 등 암살무기가 국내에 반입되기는 1997년 최정남 부부간첩 사건 이래 14년 만이다. 안씨는 지난달 3일 오후 3시 서울 지하철 신논현역 3번 출구에서 같은 탈북자 출신인 박 대표를 독침으로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안씨는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 정찰총국으로부터 독침 등을 건네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 독침은 길이 132㎝, 무게 35g의 볼펜 모양으로 뚜껑을 다섯 번 돌리면 11㎜의 독이 묻은 침이 튀어나온다. 손전등형 독총은 길이 165㎜, 무게 263g이며 안전장치를 빼고 버튼을 누르면 독약 성분이 발사된다. 유효 사정거리는 10m다. 독약 캡슐은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3배 이상 강해 50㎎만 복용해도 사망에 이르는 물질로 만들어졌다. 안씨는 남북경협 사업을 위해 몽골 주재 북한 상사원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에게 포섭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한 전 여광무역 대표 김덕홍씨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정찰총국은 김 전 대표에 대한 신변보호가 강화돼 암살이 어렵자 테러 목표를 박 대표 등 탈북자 출신 반북단체 간부로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떠나는 합참의장에 3번 기립박수 친 미 대통령

     “미합중국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지난달 30일 낮(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포트 마이어스 미군 기지 연병장.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입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리 와 있던 조 바이든 부통령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 등의 영접을 받으며 VIP석에 올랐다. 그리고 이날 부로 43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는 멀린 의장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시작된 미 합참의장 이·취임식 행사에서 군 최고통수권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떠나는 멀린 의장에게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멀린 의장이 마지막 의장대 사열을 하고 무대 위로 돌아오자 오바마 대통령은 일어나 박수로 맞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멀린 의장이 무대 아래서 훈장을 수여받은 뒤 무대로 올라올 때 다시 기립박수로 맞았으며, 멀린 의장이 고별연설을 마친 뒤 자리에 돌아올 때도 일어나 박수로 맞는 등 이날 행사에서 3차례 이상 기립박수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멀린 의장이 이임식을 마치고 차에 오를 때까지 지켜서서 환송한 뒤에야 행사장을 떠났다.  이날 행사는 미국 정부가 군을 얼마나 예우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패네타 장관은 멀린 의장은 물론 그의 부인 데버러 여사에게도 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이임하는 멀린의 가족과 취임하는 마틴 뎀프시 신임 합참의장 가족을 모두 무대 앞으로 불러 축하 인사를 건네는 순서도 마련했다. 이에 화답하듯 데버러 여사는 군가가 연주될 때 목청껏 따라불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멀린의 두 아들과 뎀프시의 외아들이 모두 미군 현역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며 치하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프로야구] 사직에 부활한 최동원… 롯데 PO직행 응원

    [프로야구] 사직에 부활한 최동원… 롯데 PO직행 응원

    30일 부산 사직구장. 전광판에 스물여섯 청년 최동원의 얼굴이 비쳤다. 순식간에 시간은 1984년 10월 9일 한국시리즈 7차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무리인 것은 알지만 올해의 마지막 경기다. 꼭 이겨야 하니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최동원은 그날 완투하며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둔 단 한 명의 투수, 고(故)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추모식과 영구 결번식이 프로야구 롯데와 두산의 경기 전 열렸다. 롯데는 이날을 ‘최동원 데이’로 정하고 고인의 현역 시절 등번호인 11번을 구단 역사상 최초로 영구결번했다. 고인의 어머니 김정자씨와 동생 최원석씨, 부인 신현주씨, 장남 최기호씨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영상이 흐르며 행사가 시작됐다. 경남고 후배인 임경완은 롯데 선수들을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선배님의 야구에 대한 열정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선배님의 영전에 우승을 바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추모사가 이어지는 동안 어머니 김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장병수 사장이 영구결번을 선포한 뒤 1루 외야 펜스 위에 11번 유니폼이 그려진 깃발이 게양됐다. 3루 외야 펜스에는 주황색 원 안에 ‘11’이라는 숫자를 넣은 기념판이 설치됐다.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자체 제작한 대형 현수막과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레전드를 추모했다. 이날 프로야구인 모임인 일구회는 최 전 감독과 고(故)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을 2011 일구대상 공동 수상자로 정했다. 부산시는 제54회 부산문화상 수상자로 최 전 감독을 선정해 어머니 김씨에게 상패를 전달했고, 롯데장학재단은 아들 기호씨에게 대학 장학금을 전달했다. 기호씨는 아버지의 11번을 등에 새긴 채 시구를 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야구를 했던 기호씨는 꼭 아버지처럼 빠른 공을 낮게 던져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롯데는 두산을 6-3으로 꺾고 2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롯데는 남은 3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면 무조건 2위를 확정한다. SK는 문학에서 삼성을 2-0으로, 넥센은 목동에서 한화를 3-0으로 각각 이겼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통한의 알버트 푸홀스, 10년 연속 3할 기록 실패

    통한의 알버트 푸홀스, 10년 연속 3할 기록 실패

    흔히 타격을 3할의 예술이라 부른다. 그리고 30홈런은 거포의 기준이라 칭한다. 다소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겠지만 100타점 역시 중심타자라면 반드시 기록해야 할 기준점에서 어긋남이 없는 수치 중 하나다. 하지만 현역 생활을 하는 타자들중 3할-30홈런-100타점 중 어느것 한가지도 도달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어떻게 보면 한 시즌을 뛰면서 3할-30홈런-100타점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알버트 푸홀스(31. 세이트루이스)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5타수 1안타(1타점)를 기록하며 타율 .299로 시즌을 마감했다. 빅리그 데뷔 해인 지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오던 10년연속 3할 타율 기록이 깨진 것이다. 덧붙여 2타점이 필요했던 이 경기에서 1타점에 그치며 99타점을 기록, 이 부문 역시 10년연속 100타점 기록에 만족하며 그 기간을 11년으로 연장하지 못했다. 9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3할-30홈런-100타점이 확실시 됐던 푸홀스는 팀의 와일드카드 진출에 있어 부담감이 느껴져서인지 최근 5경기에서 23타수 4안타(.174)에 머무는 등 극심한 난조를 보이며 결국 대기록에 실패했다. 지난해까지 푸홀스가 가지고 있던 10년연속 3할-30홈런-100타점 기록은 14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보다 더 많은 3할 타율, 그리고 더 많은 30홈런과 100타점 기록을 가진 선수는 있지만 이 세가지 기록을 모두 묶어 10년연속 이어온 타자는 푸홀스가 유일했다. 더군다나 푸홀스는 이 기록을 메이저리그 루키 시즌부터 이어온 것이라 그 아쉬움이 클수 밖에 없다.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이 지속되긴 했지만 그래도 푸홀스라면 본연의 몫을 충분히 해낼줄 알았다. 푸홀스를 의심하는 것은 죄악이란 우스게 소리 역시 푸홀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푸홀스는 6월 한때 부상으로 인해 기록연장이 종료될 위기에서 당초 6주 진단의 손목부상을 단 16일만에 완치해 내는 에어리언과 같은 모습을 보이며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이후 차츰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더니 어느새 30홈런을 넘기면서 동시에 3할과 100타점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팀은 극적으로 애틀랜타를 따돌리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선수 본인의 대기록은 중단되고 말았다. 비록 대기록이 중단된 푸홀스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올 시즌 푸홀스의 부진(?)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8월 중순 세인트루이스가 와일드카드 싸움을 할때만 해도 애틀랜타에 5경기차로 뒤져 있었다. 그리고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올 시즌이 힘들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즌 막판 보여준 푸홀스의 맹타는 팀이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으로서는 연속 시즌 기록 행진은 무산됐지만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선 푸홀스가 살아났기에 그나마 와일드카드라도 손에 쥘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푸홀스는 11년연속 3할-100타점 기록은 단 1리와 1타점이 모자라 무산됐지만 11년연속 30홈런 기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또하나 아쉬운 것은 10년연속 30개 이상의 2루타를 기록했던 것도 올 시즌을 끝으로 중단됐다는 사실이다. 올 시즌 푸홀스가 기록한 2루타 수는 29개. 마치 아홉수에 걸린 사람처럼 모든 기록들이 단 하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본인 커리어 사상 최악의 출루율(.366)과 장타율(.541) 그리고 .907의 처참한 OPS(출루율+장타율) 역시 오점으로 남긴 2011 시즌이다. 덕분에 지난해까지 유지해온 통산 타율 .332이 .328로 그리고 장타율 역시 .617로 떨어졌다. 2009 시즌이 끝날때까지만 해도 1.050의 OPS 역시 올 시즌이 끝난 지금 1.037로 내려와 있는 상황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게 되는 푸홀스가 내년에 세인트루이스에 잔류할지 아니면 이적할지는 모르지만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인다. 일각에선 그의 전성기가 점점 지나고 있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후반기에 보여준 모습만 봤을때는 아직은 이르다. 야구선수 그중에서도 타자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떨어지는 파워의 손실이 과거에 비해 두드러졌을때를 말한다. 이 기준으로만 놓고 보면 올 시즌 리그 홈런 3위(37개)에 오른 푸홀스의 파괴력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걸 알수 있다. 타격사이클로만 놓고 보면 최근 내리막길을 걸었던 푸홀스이기에 디비전시리즈때는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못다한 기록중단이 포스트시즌에서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주목되는 이유다. 한편 아메리칸리그에선 탬파베이 레이스가 뉴역 양키스를 상대로 극적인 대역전승부를 연출하며 포스트시즌을 위한 마지막 티켓 한장을 손에 넣었다. 탬파베이는 7회까지 7-0로 뒤지며 이대로 끝날줄 알았던 승부를 8회 6점, 9회 투아웃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을 만든 뒤 연장 12회 에반 롱고리아의 끝내기 홈런으로 양키스를 8-7로 물리쳤다. 야구에 있어 반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야구가 지닌 참다운 재미를 만끽할수 있는 그야말로 드라마와 같은 한판 승부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선데이기자가 본 호므런왕 행크 아론

    선데이기자가 본 호므런왕 행크 아론

     위대한 백인(白人)의 신화는 과연 흑인에 의해 깨질까? 지금 미국은 호므런(홈런) 7백개를 친「행크·아론」얘기로 온통 들끓고 있다. 선수생활 21년 동안 모두 7백14개의 호므런을 날린 전설적인 선수「베이브·루드」의 위대한 기록이 조용하고 겸손한 한 흑인 선수에 의해 도전받고 있기 때문. 뜨거운 한여름의 스타디움을 더욱 뜨겁게 만든「행크·아론」이란 과연 어떤 사내일까?   지난 7월2일 밤 3시, 기자는 외야석까지 빽빽이 들어 찬 2만3천여명의 관중에 섞여 어틀랜터 스타디움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요란한 함성을 들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고작 3천명의 관중밖에 모이지 않던 어틀랜터 스타디움이지만 올해는 꼬박 2만 가까운 관중이 몰려든다. 실상 이 구장의 주인인「내셔널·리그」소속 프로야구 팀「어틀랜터·브레이브즈」는 12팀 중 8위로 그리 인기가 없는 팀. 2만여명의 관중은 오직「행크」흑인 선수 한 사람만을 보려고 모여드는 것.  관중의 함성은 두 종류다.『해머링·행크!』(쇠망치 행크) 하며 새로운 호므런을 기대하는 축이 있는가 하면『배드·행크』(악당 행크)라고 소리 지르며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지-』하는 야유를 보내는 축도 있다.  당자인「행크」는 말없이 조용히 타석에 들어선다. 6회말,「브레이브즈」는「마이크·럼」의「드리·런·호머」로「로스앤젤리스·다저스」를 5대4로 리드하고 있다. 1루엔 에러로 나간「에반스」가 서 있다.  「행크」는 열광하는 관중엔 아랑곳 없이 조용히 볼을 기다린다. 투 스트라익 원 볼에서 맞은 제4구는 인코스로 들어오는 드롭성의 약간 낮은 공.『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섰다. 공은「레프트·펜스」를 넘고「브레이브즈」는 7대4로 리드. 이 호므런이「행크」의 선수 생활 통산 6백93번째였고 울해 들어 20번째의 것.  「행크」는 열광하는 관중들에게 두어번 점잖게 인사한 뒤 그대로 덕 아웃에 들어갔다. 매너가 점잖기로 소문난「행크」다왔다.  「헨리·루이스·아론」. 올해 39살인 이 흑인선수는 앨러배머주「모빌」이란 작은 마을 태생으로 키 6척, 몸무게 82kg의 알맞은 체구다.  「행크」란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선수는 올해로 프로야구 선수생활 20년째. 72년부터 74년까지 3년동안 60만불을 받기로 계약한 미국 프로야구계의 최고액 소득자이며 생애 통산 타율 3할1푼1리. 호므런 7백개, 장타(長打·2루타 이상)에선 1천3백72개로「루드」의 기록인 1천3백77개에 불과 5개 처져 있을 뿐이다.  신화적 영웅인「루드」는 선수 생활 21년 동안 모두 7백14개의 호므런을 때렸는데 이것은 한해 평균 34개의 홈런을 때렸다는 얘기다.  「행크」가 매스컴을 타기 시작한 건 70년 5월17일 통산 3천개의 안타를 기록하면서부터 였다. 다음 해 4월27일엔 호므런 6백개를 기록했고 72년 6월10일엔 앞서가던「윌리·메이스」를 앞지르고 홈런 6백49개를 기록,「루드」의 기록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곤 지난 7월21일 어틀랜터 스타디움에서 다시 7백개째의 호므런을 날림으로써 이제 14개만 더 때리면『위대한 백인의 신화』를 깨어버릴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자『검둥이』가『위대한 백인』을 뛰어 넘는 것을 싫어하는 일부 백인 야구팬들은「행크」가 배터 복스에 들어서면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심지어『죽여버린다』는 협박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이런 일에 대해「행크」는 태연하다.  『나는 팬들의 협박편지보다는 상대방 투수와 신문 기자들에 더 신경을 쓴다. 투수가 내게 사구(四球)를 주어 걸려 보내면 호므런을 칠 수가 없고 신문 기자들은 공평하기 때문이다』고.  또 그는『내가 결코「루드」보다 더 위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을 따라 잡을 수 있을 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실제로 일부 야구 팬들은「행크」가 7백14개의 호므런을 때려도「루드」보다는 못하다고 얘기하고들 있는데 그 까닭인즉「루드」가 선수 생활의 첫 4년을「보스턴·레드·속스」의 투수로 보내 이동안 호므런 9개밖에 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만약 투수가 아니고 이때부터 타자로 나섰더라면 기록은 8백대에 가까와졌으리라는 얘기들이다.  어쨌든 야구 사상『가장 위대한 선수』이고『야구 기록사상 캐딜락』이라고 불리는 호므런 7백14개는「행크」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건 사실. 남은 관심은 올해 시즌에「행크」가 과연 이 목표를 이룰 것인가 하는 것.  『올해에 30개만 치면 만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내년에 11개만 더 치면 되니까』  「행크」가 올 시즌 오픈때 한 얘긴데 이미 7백개를 돌파, 14개를 남겼을 뿐이니까「행크」자신의 계획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셈이다.「루드」는 34년에 7백7개를 기록했고 그 다음 해에 6개를 추가했다. 재미있는 것은 기록상의 비교다.「루드」가 7백개째의 호므런을 친 것이 34년 7월13일이고 「행크」는 73년 7월21일. 불과 7일이 늦었고 나이로는「행크」가 6개월 더 늙었다.  문제는「행크」의 건강인데 70~71년엔 무릎의 상처로 고전했으나 지금은 말끔히 나았고 체중도 71년에 89kg이던 것이 지금은 82kg으로 줄었다.  이 체중은「행크」가 처음「메이저·리그」에 출전하던 54년과 똑 같은 상태. 적어도 앞으로 2~3년은 더 현역 선수로 뛸 수 있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런 건강 상태면「루드」의 기록을 깨는 것은 문제없고 과연 올 시즌에 깨느냐? 못깨느냐만 남았을 뿐.  검둥이 선수에 의해 남편의 기록이 도전받고 있는데 대해「루드」의 미망인은 태연하다.  『「행크」나 다른 사람이 남편의 기록을 뛰어넘어도 기억되는 건「베이브·루드」뿐예요. 첫번째니까요』  <어틀랜터=김창웅(金昌雄)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8월5일 제6권 31호 통권 제25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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