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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가요, 바람의 아들

    잘 가요, 바람의 아들

    ‘바람의 아들’ 이종범(42)이 마지막으로 그라운드에 선다. 그는 26일 광주 KIA-LG전에서 은퇴식을 한다. 지난달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선언했던 이종범은 홈인 광주에서 팬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KIA 구단은 은퇴식을 경기 전후로 나눠 진행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행사 직전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1993년 해태에 입단한 뒤 일본 생활을 제외하고 16시즌 내내 한 팀에서 뛴 이종범을 보내는 팬들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이종범 팬카페는 이날 조간 신문에 전면 헌정 광고를 실을 예정이라고 25일 밝혔다. 헌정 광고에서는 현역으로 뛰었던 1993~2012년의 숫자와 뛰어난 재능을 상징하는 ‘神’(신)이라는 글자를 배경으로 힘차게 배트를 휘두른 뒤 타구를 응시하는 이종범의 눈빛을 보여줄 계획이다. 또 원태연 시인의 헌정시 ‘포기하지 않는 사람’ 역시 함께 실릴 예정이다. 은퇴식이 열리는 26일 경기 인터넷 예매분은 이미 매진됐다. 이종범 기념구 세트는 판매에 들어가자마자 준비한 수량 400개가 모두 팔렸고 은퇴 기념 금장 유니폼도 10만 5000원이란 높은 가격에도 판매 첫날인 24일 200장 주문이 들어왔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야인’ 장외룡 “칭다오 돌아갈 때”

    ‘야인’ 장외룡 “칭다오 돌아갈 때”

    ‘야인’ 장외룡(53) 감독이 결국 ‘친정’ 칭다오 중넝을 택했다. 인천의 사령탑 후보로도 거론되며 거취가 주목됐던 장 감독이 칭다오와 정식계약을 맺기로 지난 22일 합의했다. 칭다오 구단 홈페이지도 장 감독이 이날 오후 칭다오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칭다오를 떠난 이후 약 6개월 만에 돌아간 것이다. 장 감독은 처음에는 칭다오의 제의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16일 이장수 광저우 헝다 감독이 구단과의 갈등 때문에 경질된 것도 장 감독이 마음을 선뜻 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장수 감독은 팀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려 놓고도 물러나야 했다. 후임으로는 이탈리아 출신 명장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내정된 상태. 자본과 힘의 논리만으로 좌지우지되는 중국축구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는 개탄이 쏟아졌고 장 감독으로서도 이를 무시한 채 칭다오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칭다오 단장이 몸소 한국까지 날아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설득하자 장 감독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중국 슈퍼리그 14위로 턱걸이해 강등을 면했던 칭다오 지휘봉을 지난해 잡은 뒤 6위에 올려놓아 팬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 칭다오는 그가 떠난 뒤 다시 리그 꼴찌로 떨어졌고 “장 감독을 다시 데려오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장 감독은 올해 다롄 아얼빈 지휘봉을 잡았지만 개막 이후 3무1패의 부진한 성적을 내고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최근 “다롄을 그만두자마자 칭다오에서 계속 연락이 왔다.”고 털어놓았다. 다롄에 남아 있던 코칭스태프와 동반 입단을 요구해 관철시키고 계약을 결심했다. 대우 로얄즈에서 현역 생활을 했던 장 감독은 1995년부터 일본 실업팀인 토스 푸투레스의 감독을 맡았고, 1999년 친정팀인 대우에서 잠시 감독 대행을 맡다가 2001년부터 삿포로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03년 인천 수석 코치에 임명돼 K리그로 돌아온 그는 스타 선수 없이도 2005년 인천을 전·후기 통합 1위에 올려놓으며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국내 지도자로는 유일하게 한국, 일본, 중국 프로리그를 모두 경험했지만 그는 여전히 ‘야인’으로 불린다. 2008년 12월 인천을 떠나 일본 J리그 오미야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나 지난해 리그 하위권 칭다오의 부름에 응한 것도 ‘야인 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지명직 최고 이정현 확실, 강원·非朴·여성 추가 물색

     새누리당이 5·15 전당대회 이후 추가 당직 인선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지명직 최고위원 두 자리와 사무총장 자리를 누가 거머쥘까에 관심이 집중된다.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 당 대변인 등까지 포함한 최종인선안은 주말 전후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명직 최고위원 두 자리 가운데 한 자리는 4·11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40%에 가까운 득표율로 석패한 이정현 의원이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새누리당은 예전에도 호남 몫으로 최고위원 한 자리를 배려해 왔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는 당내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다. 취약 지역인 강원, 여성, 비박(비박근혜)계를 배려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적임자를 물색 중이다.  당의 조직과 재정을 담당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될 사무총장에는 친박 핵심 중진인 최경환 의원이 유력하다. 당 관계자는 “친박(친박근혜)계가 지도부를 싹쓸이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대선을 앞두고 당 살림을 꾸려 나가려면 당 실세가 사무총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중립 또는 비박계 중진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여의도연구소장으로는 현 김광림 의원을 교체할지 유임시킬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 의원이 소장직을 맡은 지 5개월도 채 안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체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경우 탈당한 김성식 의원과 부소장직을 역임한 바 있는 권영진 의원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러나 현역 의원이 소장직을 맡아온 관례를 당 지도부에서 깰 것인가가 관심사다.  당 대변인은 초선 의원이 맡아온 관례가 있으나, 재선 의원이 맡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선에서는 지난해 원내대변인으로 검토됐던 김세연 의원의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수차례 당직 제의를 고사해온 바 있어 이번에 맡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초선에서는 SBS 앵커 출신인 홍지만 당선자의 이름이 나온다. 여성대변인의 경우 18대 의원들이 대거 탈락해 재선 가운데에서는 적임자 찾기가 어려운 상태다.  한편 황우여 대표는 18일 대표 비서실장에 재선의 황영철(강원 홍천·횡성) 의원을 낙점했다. 쇄신파인 황 신임 비서실장은 18대 국회에서 원내부대표, 원내대변인, 비상대책위원 등을 지내며 황 대표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내부고발자들 여전히 배신자 낙인에 고통”

    “내부고발자들 여전히 배신자 낙인에 고통”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1992년 3월 22일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는 당시 국군기무사령부에 근무 중이던 24세의 한 젊은 장교. 젊은 군인의 양심선언은 충격적이었다. 국군기무사령부 주도로 일부 군부대에서 선거 전 여당 지지를 위한 정신교육이 이어졌고 부재자투표도 공개 혹은 대리투표로 행해지는 등 광범위한 선거 부정 행위가 자행됐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용기는 그해 선거판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12월 대통령 선거부터 군인들은 부대 밖에서 민간인들과 함께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군부대 내 부정 선거도 점차 사라졌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시민단체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과 호루라기재단 주최로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당시 전 육군 9사단 28연대 소속 현역 중위로 양심선언에 나섰던 이지문(44)씨도 함께했다. 이씨는 “2006년 부패 방지법이 제정되고 지난해부터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적으로 내부 고발을 꺼리고 고발자를 배신자로 여기는 풍토가 잔존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실 양심선언 뒤 이씨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양심선언 직후 연행됐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불명예 제대를 해야 했다. 재판을 통해 3년 뒤에야 중위로 복권돼 명예는 회복했지만 임관하기 전 입사가 결정됐던 대기업으로의 복귀는 끝내 무산됐다. 이씨는 “지금도 내부 고발자들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에 고통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변화를 촉구했다. 이씨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추첨으로 다양한 계층의 시민을 대표로 뽑아 이를 보완하자는 이른바 ‘추첨민주주의’다. 지난해 연세대에서 이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다음 달 관련 정치 포럼을 출범시키는 등 관련 연구와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때 이른 초여름의 날씨로 신록이 제 빛깔을 온전히 드러낸 5월 초순. 경북 상주시 육군 50사단 상주대대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군복을 입은 한 무리 아주머니들의 구호 소리가 요란하다. “충성! 신고합니다. 강영숙 외 00명은 훈련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아줌마 특유의 억척스러움·진지함… 현역 장병들도 박수 갈채 여성예비군 소대 훈련 입소식이다. 구호와 대열은 엉성해 보여도 표정만은 여느 장병들 못지않게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훈련은 안보교육, 응급 처치술, 화생방, 모의전투 순으로 빡빡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진지함으로 ‘아줌마 부대’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서바이벌 장비를 활용한 모의전투에서는 평균 나이 50대 중반의 전업 주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 현역 장병들도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연령은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지만 훈련에 대한 열정과 봉사정신은 한결같이 뜨거워 농번기인데도 전원이 입소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을 둔 강영숙(51) 상주여성예비군 소대장은 “군복을 입어 보니 오히려 아들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다.”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예비군 활동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원들 중 ‘고참병’ 격인 김삼순(63)씨는 “총을 든 순간 여자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군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기력이 닿는 대로 향토 방위에 힘을 보탤 생각”이라며 의욕을 내보였다. 서울 구로구 여성예비군은 창설된 지 4년째인 도시 여성예비군이다. 평시 급식 지원 활동을 하는 날, 남자예비군들에게 줄 간식을 챙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농촌 지역에 비해 연령대가 낮아서인지 군복을 입었지만 꽃핀을 꽂은 파마머리에 귀고리를 착용한 모습 등이 사뭇 이채롭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니 모두 작업을 멈춘 채 거울 보고 화장을 고치기에 바쁘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속에는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고 남자들의 아성에 도전한 ‘맹렬 여성’의 패기가 배어 있다. 처녀 시절 여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신혜숙(39)씨는 “총을 들고 직접 싸우지는 않아도 여성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 같아 보람 있다.”며 “군복 입은 모습이 잘 어울려요?”라며 수줍어했다. 여성예비군은 향토예비군설치법(1961년 제정, 1968년 전면 개정)에 따른 ‘지원 예비군’으로서 각 지역 군부대가 지자체에 협조하여 소대 1개씩을 편성하고 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을 보인 후 5월 10일 현재 전국적으로 139개 소대에 5382명이 활동 중이다. 국방부 예비전력과 조병철 과장은 “평시에는 향방작계훈련 참여는 물론 재난 재해 구호 활동과 각종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민·군의 가교 역할을 하고 전시에는 동원 및 향방작전 간 급식 지원, 응급 구호, 후송 지원, 선무 활동 등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 전국 139개 소대 ‘가동’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구로구 여성예비군 김옥휘(46)씨는 “각 가정의 버팀목인 여성들이 국가 안보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예비군 활동에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바람처럼 여성예비군이 여성 국방 안보 참여의 모범적인 모델로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오션스 일레븐(KBS1 밤 11시 40분) 잉카 제국 유물을 훔친 죄로 5년을 복역한 대니 오션은 출감과 동시에 사상 최대 규모의 카지노 털이를 계획한다. 일단 참모장 격인 러스티를 만나 각 방면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은다. 천재 소매치기 라이너스, 폭파 전문가 배셔, 중국인 곡예사 옌, 현역에서 은퇴했던 베테랑 사기꾼 사울 등 총 11명의 팀이 꾸려진다. ●사랑아 사랑아(KBS2 오전 9시) 미대 입학시험을 위해 승희와 승아는 서울로 간다. 승아는 김춘봉을 만나지만 앨범 제작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에 태범을 만나러 평화건설을 방문한다. 하지만 만나지 못하고 메모만 남기고 돌아오게 된다. 한편 명주는 한약재를 사기 위해 약재거리로 나간다. 승희 역시 윤식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약재거리로 향한다. ●천사의 선택(MBC 오전 7시 50분) 상호는 회사 내 지분 확보 문제로 수철의 보고를 듣다가 은설의 등장에 깜짝 놀란다. 은설은 키스 자국이 있는 냅킨을 보여 주며 따진다. 상호는 유란의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채고 식은땀을 흘린다. 한편 유란의 이간질로 상호가 민재의 존재를 의식하는 가운데, 은설은 봉사 때문에 늦는다며 상호를 안심시킨 뒤 예고 없이 사장실로 향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 25분) 초등학교 2학년 경민이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 욕설과 폭력으로 보는 사람 모두 혀를 내두르게 한다. 또 목청도 좋아 신나는 악쓰기 한 판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게다가 지나가던 아이의 발을 걸고 가방을 휘두르며 친구들에게 무차별 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경민이가 나타났다 하면 피하기 바쁘다. ●세계의 아이들(EBS 밤 8시 50분) 아시아의 별 베트남의 정식 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다. 국민은 베트남인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 중국인과 53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꼬박 3일을 달려 도착한 하장에 롱타우 마을이 있다. 첩첩산중 울창한 숲에서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에 온전히 삶을 내맡기고 살아가고 있는데…. ●해피 고 럭키(OBS 밤 11시 5분) 포피(샐리 호킨스)는 아이들에게 고루고루 신경을 쏟는 훌륭한 초등학교 교사다. 하지만 개성 넘치는 패션 스타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녀는 수업을 마치면 공중돌기, 플라멩코 댄스에 도전한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클럽에서 밤새 놀기도 하며 독신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그녀 앞에 키다리 매력남이 등장한다.
  • 동해로 주소 옮긴 軍장병에 휴가비 10만원

    강원 동해시는 주소지를 동해로 옮겨 오는 군 장병에게 정착지원금 등 60만원 외에 휴가비 10만원씩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동해시는 17일 인구 증가 효과를 얻기 위해 동해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겨 오는 군 장병들에게 장려금과 정착지원금을 지원해 온 것 외에 연간 1차례 10만원의 정기 휴가비용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동해시 인구 늘리기 시책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또 전입 가구에 지원하는 생필품이 사실상 필요 없는 독신 장병에게는 문화활동 상품권으로 대체 지원하는 내용의 인구 늘리기 시책도 추진한다. 쓰레기봉투, 공공 주차장 이용권 대신 영화 관람권 2장매씩을 준다. 전입시민이 된 현역 일반병에 대해 정기 휴가비 10만원씩을 지원하는 것은 인구 증가효과는 물론 근무지에 대한 애향심을 높여 전역 이후에도 동해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시는 이미 지난해부터 조례를 통해 주소 이전 군 장병에게 1인당 10만원의 장려금과 군 전역 이후에도 지역에 정착하면 가구당 정착지원금 1회 50만원을 지원해 오고 있다. 인구 9만 4400여명을 유지하는 시는 이 같은 군 장병 인구 유인책으로 지금까지 장병 1100여명과 정착지원 장병 50여명의 유입 효과를 얻고 있다. 이승우 시 행정지원과 담당은 “앞으로도 군 장병의 우리 시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전입장려 등 새로운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동해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패션 인생 60년 기념전 여는 디자이너 노라노

    [김문이 만난사람] 패션 인생 60년 기념전 여는 디자이너 노라노

    세월의 옷 단추를 잠시 풀어보자. 1956년 11월 29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 그랜드볼룸.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피아노 연주는 ‘마포종점’ ‘초우’ ‘비 내리는 호남선’ 등 수많은 곡을 히트시킨 젊은 작곡가 박춘석씨가 맡았다. 이어 원피스 코트 앙상블 등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처음 보는 광경에 시선을 집중했다. 1부가 끝나고 2부에서는 바이올린 선율 속에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나온 여인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또다시 흥분했다. 마지막으로 그해 최고의 여배우상을 수상한 조미령씨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천히 등장했다.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모델들이 나란히 무대에 섰다. 사회자가 “오늘의 주인공 디자이너 노라노!”라고 외쳤다. 그러자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답하며 많은 꽃다발을 주인공에게 안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열정 하나로 60여년 동안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오롯이 패션 인생을 살아온 디자이너 노라노(84)씨. 그에게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국내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최초의 해외 유학 디자이너, 최초로 패션쇼를 연 디자이너 등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 노창성은 최초의 방송인이었고 어머니 이옥경 또한 최초의 아나운서였으니 말 그대로 ‘최초’라는 수식어를 연이어 만들어낸 특별한 집안이다. ●“50년대 옷 딸에게 물려줄 것”에 큰 감명 노씨는 요즘 또 하나의 ‘최초’를 준비하고 있다. 1952년 서울 명동에 의상실을 처음 연 후 올해로 6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강남구 신사동 호림미술관 JNB갤러리에서 ‘Nora Noh의 LA VIE EN ROSE展’(노라노의 장미빛 인생전)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패션계에서는 60년 동안 의상실을 운영하면서 한번도 빠짐없이 계절마다 패션쇼를 하고 60주년 행사를 갖는 디자이너는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의미 부여를 한다. 이번 행사는 지난 세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여배우들과 다양한 분야의 VIP 고객들로부터 증정받은 노씨의 작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또한 작품을 연도별로 전시해 195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의상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노씨의 작품을 오마주한 현재의 내로라하는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및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 등도 다수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유명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씨 등에 의해 기획됐다. 한국 패션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준비됐다. 특히 노씨가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4년 동안 과거의 여배우 등 국내외에서 자신의 옷을 소장한 사람들을 만나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던 의상을 다시 수집해 한곳에 모은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84살이란 나이를 뛰어넘어 영원한 현역으로 살아가는 노씨를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남의 의상실에서 만났다. 검은 커튼 레이스 재킷 차림이 인상적일 만큼 젊어 보였다. 까만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원래 흑색이라는 것은 상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성에게는 자주 독립을 상징한다.”며 웃었다. 평생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살아온 자신감을 녹여낸 듯한 옷차림이라고나 할까. 물론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다. 노씨가 앉은 자리 뒤편에는 하얀 웨딩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궁금해하자 “1959년 미스 코리아 오현주씨가 미스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베스트 드레서 상을 받을 때의 의상이다.”라면서 “이번 전시에 선보이려고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전시 얘기부터 나왔다. “젊은 친구들이 (전시를) 하는 거고, 저는 단지 지난 60년 동안 만들었던 옷들을 다시 제공받아 전시장에 건네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요. (잠시 생각하더니) 사실은 나이 80이 넘게 되자 60년 세월에 대해 뭔가 현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편하고 참 오래 입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50년 전에 제가 만들었던 옷을 아직도 갖고 계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어떤 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이러한 노씨의 생각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그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50년 전 약혼식 때 옷을 입었던 사람과도 연락이 닿았고 1962년 당시 양단 코트를 가지고 있다는 재미교포에게서도 소식이 왔다. 1950년대에 만든 한복 느낌의 ‘아리랑 드레스’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해외 교포에게는 여러 번 사정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빌려 오기도 했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이 유명했을 무렵 배우 엄앵란씨가 즐겨 입었던 오드리 헵번의 원피스나 1960년대 TV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나옥주, 사미자, 윤소정, 정혜선 등 유명 스타들이 드라마를 통해 입었던 의상도 어렵지 않게 제공받았다. 또한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가 부임지에 갈 때 입었던 의상도 기증받았다. “해외에 계신 어떤 분은 아리랑 드레스를 지금도 매년 8·15 때 입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가 꼭 딸한테 물려주겠다는 얘기를 해주셔서 너무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 400벌 정도 모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특색 있는 것 위주로 60벌 정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영화배우, 음악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분들이 아직도 옷을 갖고 있어 참 고맙더군요. 저도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엄앵란씨가 제 옷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됐습니다(웃음).” ●“옷은 잘 절제된 멋 나와야”가 신념 이어 의상의 시대적 변천사와 관련해 잠시 언급한다. “1950년대는 아시다시피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었지요. 영화나 연주 의상, 쇼 의상, 창극 의상 등을 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유행에 따라갔습니다. 1960년대에는 TV드라마가 생겨나면서 의상 협찬을 통해 제 옷이 대중들에게 다가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성복 시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여성들의 활동이 많아지면서 투피스 형태의 여성용 정장이 생겨나 인기를 끌었지요.” 노씨는 이 무렵 미국 뉴욕의 고급 백화점 ‘삭스’에 진출해 ‘메이드 인 코리아’ 패션을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아울러 뉴욕에서의 패션쇼 등을 통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아마 2000년 봄이었지요. 미 브라운대학 초청으로 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참석자 대부분이 교수였는데 제가 1940년대에 미국에서 패션 공부를 했던 일, 1980년대 뉴욕 7번가에 진출해 한국산 실크를 널리 알리며 외화를 벌어들인 일 등 50년을 한결같이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옷이란 잘 절제된 멋이 나와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더니 다들 많은 박수로 대접을 해주더군요. 특히 50년 외길을 걸어온 점에 아주 놀라워했습니다.” 이때 미국의 패션업계에서는 “노라노는 한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창조한 여인이며 그녀의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퍼졌다.”고 높이 평가했다. 노씨는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3월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유복한 집안의 차녀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혼자 된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한 뒤 영어 공부를 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이은의 영어 교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아버지는 1927년 초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을 개국한 공로자이며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어머니는 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게 됐다. 이처럼 일찍부터 ‘멋을 내는 가풍’의 외가 쪽이나 부모들을 보고 자란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이너의 끼를 타고 났다. ●“놀고먹는다는 것은 죽음 기다리는 것” 경기여고 재학 시절에는 책을 무척 좋아하는 문학 소녀였다. ‘이와나미 문고’라는 일본의 문고판 책은 거의 다 읽다시피 했을 정도다. 그러다 고 3때 일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했으나 얼마 안 가 이혼하게 되면서 원래의 끼를 살려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광복 직후 외환은행 설립을 위해 한국에 온 미국인 스미스의 비서로 일하면서 가끔 각국의 대사들과 장관들이 참석하는 파티를 도울 때 직접 드레스를 만들어 본 것이 계기가 돼 스미스의 추천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 이후 미국과 한국, 프랑스와 일본 등을 오가며 토종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렸다. 학창 시절 읽었던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노라’가 집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찾듯 노씨 역시 ‘노라’라는 이름을 갖고 새 인생을 펼쳤던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60년 동안 쉼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첫째는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했고 둘째는 어떤 목적이나 욕심을 두지 않았으며 사람 만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산다는 것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고 놀고먹는다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도전은 하되 욕심을 버렸기에 오늘날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에 의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노라노 디자이너는 본명은 노명자다.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프랭크 왜건 테크니컬 칼리지’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피난지인 부산에서 쇼 의상 등을 만들었고 1952년 서울 명동에 의상실 ‘노라노의 집’을 열었다. 이후 패션의 중심지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앙 아트스쿨’에서 수학한 뒤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1966년에는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했다. 1974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이후 매년 계절마다 국내에서 패션쇼를 여는 등 60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 세계 패션그룹 ‘패션대상’(2000) 등이 있다.
  • [일본통신] 강정호, 주니치 우승공신 ‘우노’와 평행이론?

    [일본통신] 강정호, 주니치 우승공신 ‘우노’와 평행이론?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는 강정호(25. 넥센)의 초반 페이스가 무섭다. 강정호는 현재(16일 기준) 타율 .343 홈런12개 28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특히 이제 30경기를 치른 시점이기에 그의 홈런 숫자 12개가 가리키는 것은 실로 대단하다고 볼수 있다. 특히 지난해 홈런왕인 최형우가 부진에 빠져 있고 돌아온 홈런타자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의 홈런 페이스가 주춤한 가운데 강정호 혼자 치고 나가고 있는 형국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이러한 강정호의 홈런 추이를 놓고 볼때 일각에선 유격수 홈런왕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강정호가 지금의 페이스를 시즌 끝까지 유지해 홈런왕에 등극한다면 1990년 장종훈(당시 빙그레) 이후 22년만에 ‘유격수 홈런왕’에 오르게 된다. 일본에서도 유격수 홈런왕은 흔한 일이 아니다. 현역시절 ‘괴짜 선수’로 불렸던 우노 마사루(현 주니치 타격코치)가 1984년 37개의 홈런으로 유격수 홈런왕에 올랐고 이듬해인 1985년엔 41개의 홈런으로 역대 유격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갖고 있다. 우노는 18년의 현역 생활동안 1,620개 안타 338홈런 936타점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타자다. 하지만 우노의 방망이 실력은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불릴만 했지만 수비는 형편 없는 선수였다. 우노는 1979년 주니치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첫 해 27개의 실책으로 첫 실책왕에 올랐고 이후 내리 4년연속 실책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현역 시절 총 7번의 실책 1위와 더불어 통산 그가 기록한 실책은 무려 270개나 된다. 평범한 타구를 놓치는 어이없는 실책은 물론 안타성 타구를 잡고 1루로 송구한다는 것이 우익수에게 던지는 등 수비로만 놓고 보면 최악의 선수 중 한명이었다. 우노가 현역 시절에 홈런을 많이 쳐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골든글러브 상을 수상하지 못했던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노의 진가(?)는 수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주루사의 귀재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자추월사건’은 아직도 일본야구팬들의 기억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우노는 1984년 5월 5일 다이요 훼일즈(현 요코하마)전에서 팀이 1-4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 3회초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섰다. 한방이면 역전이 가능했지만 우노는 평범한 우익수 플라이에 그쳤고 루상의 주자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다이요 우익수인 타카기 요시카즈는 이 공을 떨어뜨렸고 타카기가 공을 놓치는 순간 주자들은 일제히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타자주자였던 우노는 타카기가 공을 떨어뜨린 순간부터 전력질주해 1루주자를 추월하는 엽기스런 플레이로 관중들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당시 경기가 ‘어린이 날’ 이였던 관계로 어린 야구팬들에게 우노란 이름 석자는 확실히 각인됐던 것은 물론이다. 이후 우노의 주자추월사건은 텔레비젼의 ‘진기명기’ 프로에 단골이 됐다. 우노는 현역시절 통산 78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도루자는 무려 96개였다. 우노가 출루를 하면 제발 뛰지 마라는 덕아웃의 사인을 무시하고 자신의 도루능력(?)을 과시하곤 했는데 1992년 개막 직전 인터뷰에서 그해 목표를 3할 30홈런 3도루 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우노에게 있어 잊을수 없는 경기가 또 있다. 프로 입단 후 주전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을 무렵인 1981년 8월 2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전설의 헤딩사건 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주니치 투수는 호시노 센이치(현 라쿠텐 감독)였고 호시노는 6회까지 무실점으로 막강 요미우리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주니치가 2-0으로 앞선 7회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어이없는 사건이 우노에게서 일어났다. 2사 1루 상황에서 야마모토 코지가 친 타구는 내야와 외야의 중간에 떴고 우노는 자신이 타구를 처리하겠다고 사인을 보내며 높이 뜬 타구의 낙하지점에 미리 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마모토가 친 타구는 우노의 글러브 속이 아닌 그대로 우노의 머리를 강타하고 말았다. 타구에 헤딩을 한 우노는 그자리에서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했고 우노의 머리를 강타한 타구는 왼쪽 펜스까지 굴러가며 1루주자는 홈까지 여유있게 안착할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타자주자였던 야마모토가 홈까지 파고 들었지만 아웃, 결국 호시노는 3피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2-1 완투승을 거둘수 있었다. 당시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했냐면 ‘안티 요미우리’의 선두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호시노는 요미우리가 1980년부터 이어오던 158경기 연속득점 기록을 깨겠다고 장담하며 마운드에 올랐던 경기였다. 만약 7회말 우노의 헤딩사건이 없었다면 자신의 손으로 요미우리의 연속경기득점 기록을 저지할수 있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노의 헤딩사건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일본의 야구관련 프로그램에서는 너나할것 없이 진기명기의 단골 레파토리로 소개됐고 벌써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도 유투브와 같은 곳에서는 그의 헤딩 플레이를 쉽게 볼수 있을 정도다. 우노는 자신의 헤딩사건으로 인해 전국구 스타가 됐지만 텔레비젼에서 그 당시 플레이가 재반복되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시즌에 소년야구교실에 참가해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난 일본프로야구에서 최초로 타구를 헤딩한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엉뚱한 발언도 했다고 하니 그의 개그 본능은 삼성의 박석민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일설에 의하면 어린이들이 우노에게 “아저씨 야구공에 헤딩하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라며 우노를 곤욕스럽게 했던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수비가 불안했던 우노에겐 한가지 징크스가 있었는데 코칭스탭들이 유격수 수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우노를 3루나 외야수로 기용했지만 그럴때면 타격이 침체돼 어쩔수 없이 우노를 유격수로 기용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유격수를 보지 않으면 화끈한 장타가 종적을 감춰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노의 현역시절 기록을 보면 41홈런을 쳤던 이듬해인 1986년엔 3루수로 기용됐지만 타율 .211 홈런10개로 성적이 급추락 했지만 1987년 유격수로 다시 돌아와서는 타율 .270 홈런30개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온 적도 있다. 거포는 삼진이 많다는 걸 증명하듯 2년연속(1983-1984) 삼진왕, 그리고 우노의 통산 삼진갯수는 무려 1,306개나 된다. 1994년 지바 롯데에서 은퇴한 우노는 야구평론과 TV 해설 등을 하다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주니치 타격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 이후 다시 야구평론과 TV 해설로 돌아갔던 우노는 올 시즌 주니치의 타격코치로 다시 돌아와 주니치의 3년연속 리그 우승에 힘을 보태고 있는 중이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티파티 신예에 6선 무릎꿇다

    당파적 이익보다는 국익을 앞세워야 한다는 소신을 보여온 미국의 원로 정치인이 당파적 이익을 앞세운 정치 신예에게 일격을 맞고 36년 정치인생을 마감하게 됐다. 현직 상원의원이 자발적 은퇴가 아니라 경선에서 패배해 의사당을 떠나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미 정가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미국 정치의 정파성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머독 지지 보수파, 초당적 행보 지적 낙선운동 미 공화당 내 최장수 현역 상원의원인 리처드 루거(80)는 8일(현지시간) 치러진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선거 공화당 경선에서 극우 보수 성향의 티파티 그룹이 지원하는 인디애나주 재무장관 리처드 머독(60)에게 졌다. 이로써 1976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6선에 성공하고 1996년에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도전했던 루거는 7선 고지의 목전에서 의사당을 떠나게 됐다. 당내 보수파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구제금융 경기부양책 찬성,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시민권 부여,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인준 찬성 등 초당적 행보를 해온 루거에 대해 “오바마가 가장 좋아하는 공화당원”이라면서 낙선운동을 펼쳐 왔다. 루거는 이날 패배를 인정하면서 “오는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될 수 있도록 머독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당이 정당의 노선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설득을 멈춘다면 오래 성공할 수 없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루거의 퇴장으로 공화당에는 초당파 정치인이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해 여야 국가부채 협상에서 티파티 등 공화당 내 강경그룹은 비타협적 정파성으로 미국을 디폴트(국가부도) 직전까지 몰고감으로써 사상 초유의 국가 신용등급 하락을 초래한 바 있으며, 이들의 위세에 눌려 올 초 경선을 앞두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공화당 내 초당파 정치인들 대부분이 경선 포기를 선언했었다. ●초당파 의원 거의 없어… 정파성 심화 우려 루거는 2차례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외교통으로, 1991년 샘 넌 상원의원과 함께 소련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불능화를 지원하기 위한 ‘넌-루거법’을 입안했다.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1990년대 초반 북핵위기가 불거진 이후 고비마다 북핵문제에 대해 온건 대화론에 입각한 정책을 역설한 인물이다. 공화당 소속임에도 부시 행정부 시절 동맹국과의 협의를 무시한 일방주의 외교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고, 민주당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초당적 외교에 힘을 기울여 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새누리 원내대표 ‘친박’ 이한구

    새누리 원내대표 ‘친박’ 이한구

    새누리당의 19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4선의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이한구 의원이 선출됐다. 정책위의장에는 이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나선 3선의 진영 의원이 당선됐다. ‘박근혜식 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이 9일 19대 당선자를 대상으로 원내대표 선거를 실시한 결과 이한구·진영 의원이 결선 투표에서 전체 138표 중 72표를 얻어 66표에 그친 남경필·김기현 의원을 앞질렀다. 앞서 1차 투표에서는 남·김 의원이 58표, 이·진 의원이 57표를 각각 얻어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이주영·유일호 의원은 1차 투표에서 26표를 얻는 데 그쳐 탈락했다. 이 신임 원내대표는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김부겸 의원을 대구 수성갑에서 꺾고 4선 고지에 오른 정책통이다.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 위원장의 ‘경제교사’로 불리며 박 위원장의 대선 공약 등 이른바 ‘박근혜 노믹스’를 만들 적임자로 꼽힌다. 이 원내대표는 “2040 미래세대들이 정치인에게 원하는 가장 큰 것이 정의”라면서 “기회와 거래가 공정해야 하고 지역과 계층 간 불리하고 차별되는 구조를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대결에 대해 “술수보다는 원칙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회를 리드하겠다.”고 덧붙였다. 진 신임 정책위의장은 한때 박 위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계 인사였으나 2010년 이후에는 친이(친이명박)계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당내 계파 간 소통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당내 화합으로 대선 승리… 야당과도 최대한 상생할 것”

    “당내 화합으로 대선 승리… 야당과도 최대한 상생할 것”

    새누리당 이한구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계파를 초월해 당내 화합을 제1의 기치로 내걸고 대선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4선의 관록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별명을 가진 정책통이다. 대구 수성갑이 지역구로 대구·경북(TK) 지역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정치인이다. 19대 총선에선 민주통합당 김부겸 의원을 꺾고 지역구를 수성했다.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박 위원장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이다. 보수 성향에 원칙주의자이나 그동안 경제 정책·입법 활동을 바탕으로 대선 국면에서 박 위원장의 주요 공약인 경제 민주화와 박근혜 노믹스를 실현할 주요 인물로 꼽힌다. 다음은 이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승리를 예상했나. -(PK 출신인) 이주영 후보 표가 상당수 나에게 올 걸로 기대했다. →초선이 76명에 이르는 여당 원내 사령탑으로서 대선을 준비할 복안은. -초선이든 다선이든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해 좌절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당론으로 국회의원이 헌법기관 역할을 못 한 측면도 있다. 국회가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의원들의 관심 분야, 현안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협치 정신을 갖고 일해 대선을 승리로 이끌겠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에 비해 협상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야당과 최대한 상생으로 가겠다. (격투기인) K1 경기가 아니라 육상경기로 생각한다. 국회 몸싸움 방지법이 통과돼 (재적 인원) 60%의 동의가 있어야 국회가 움직인다. 전투력보다 협상력이 더 중시될 것이다. 이슈 선정 경쟁은 하겠지만 바람잡이식 정책이 아니라 성숙한 정책만 내놓겠다. 박 원내대표는 국정 경험도 많고 정보력도 있어 우리 당과 국민의 뜻을 잘 아실 걸로 생각한다. →계파 부담 때문에 늦게 출마했다는 지적이 있다. -(친박계와 소원했던) 진영 의원과 저는 속칭 친이(친이명박) 의원들과도 친하고 쇄신파 의원의 말도 경청한다. 더 이상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 콘셉트는 없다. 당내 화합이 제1의 기치다. 계파, 지역보다 능력, 전문성에 맞춰 사람을 등용하겠다. →표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남경필 의원은 여러 비판 속에서도 용감히 당 쇄신을 위해 애써 왔던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그 정신을 받아들여 원내 전략을 짜고 운영할 때 최대한 반영하겠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이한구 원내대표 ▲67·경북 경주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캔자스주립대 경영학 박사 ▲행시 7회 ▲대우경제연구소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 ▲16, 17, 18, 19대 의원
  • 日 고령자 전용 취직창구 인기

    일본 후쿠오카현이 지난 4월에 개설한 고령자 취직 지원창구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쿠오카현이 지난 4월 23일에 연 ‘70세 현역응원 센터’에 지난 1일까지 110명이 방문해 취업을 상담했고 70건의 상담 전화가 오는 등 상담 건수가 180건에 이른다. 이 센터는 일본에서 최초로 생긴 고령자 전용 취업 상담창구다. 후쿠오카현 측은 지원창구에 상담원 2명과 코디네이터 2명을 배치했지만 취업을 원하는 고령자들이 몰려들자 2명의 직원을 추가로 파견하는 등 고령자 일자리 찾아주기에 애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상담자 대부분은 “연금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뭔가 일을 하고 싶다.”, “구인 잡지에서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고령자라는 이유만으로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자영업을 했던 한 남성(69)은 “매달 10만엔(약 140만원)이 안 되는 연금으로는 생활하지 못해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구인잡지 광고는 믿지 못하는데 이 센터는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준다고 해서 기대를 갖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인들의 왕성한 취업의욕에 비해 취직 자리는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다. 후쿠오카현은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기업의 비율을 현행 16%에서 2016년까지 30%로 늘릴 계획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노익장? 생고집? 고령의 글로벌 재계 거물들

    노익장? 생고집? 고령의 글로벌 재계 거물들

    연륜을 내세운 노익장인가, 고집불통 노욕인가.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81)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해 영국 의회로부터 ‘글로벌 기업을 이끌기에 부적합하다.’는 이례적인 비판을 받은 것을 계기로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이 1일(현지시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영 일선에서 뛰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가 5인을 소개했다. 마카오의 카지노 황제로 불리는 스탠리 호 마카오관광오락공사(STDM) 회장은 올해 90세의 나이에도 아랑곳없이 현역을 고집하고 있다. 2002년 외국계 진입 허용 이전까지 마카오의 도박 산업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지금도 마카오 도박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은 가족 간 분쟁으로 시끄러웠다. 4명의 부인과 17명의 자식들이 31억 달러(약 3조 5000억원)의 재산 분배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였다. 세계 최대 과일회사 돌(Dole)의 데이비드 머독(89) 회장도 그에 못지않은 ‘원로 현역’이다. 1985년 돌을 인수해 세계적인 업체로 키워낸 그는 125세까지 장수하는 것을 목표로 저열량 위주의 과일 야채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적인 가구 회사 이케아(IKEA)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86)는 이케아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의 은퇴법에 따라 1999년 서류상으로는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뗐지만 실제로는 가구 디자인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긴다. 재산 규모 425억 달러로 세계 부자순위 4위이지만 검소한 생활로 유명하다. CBS, MTV, 파라마운트사 등을 자회사로 둔 미디어그룹 비아콤(Viacom)의 섬너 레드스톤(88) 회장은 해가 갈수록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횟수가 줄고 있지만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아들딸과 갈등을 빚으면서 평화롭지 못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독일 슈퍼마켓 체인 알디(ALDI)의 칼 알브레히트(92) 대표는 세계 10위권 부자이지만 언론 등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은둔 생활을 즐기는 독특한 스타일의 기업인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하프타임] 안정환, 아시안드림컵 코치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설립한 JS파운데이션이 오는 23일 태국에서 주최하는 제2회 아시안드림컵에 최근 현역에서 은퇴한 안정환(36)이 코치로 나선다. 안정환은 “비록 박지성이 대표팀 후배이긴 하지만 어느 때보다 뜻깊은 대회를 열게 돼 참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JS파운데이션 측은 2일 “안정환을 비롯한 한·일월드컵 4강 주축 멤버들이 이 대회를 통해 그때의 감동을 되새길 것”이라며 “이을용과 이천수, 송종국 등도 참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회 수익금은 태국 유소년축구 육성단체와 홍수 피해 어린이 지원단체에 전달된다.
  • 몰려오는 전설, 설레는 음악 팬

    몰려오는 전설, 설레는 음악 팬

    ‘지름신’이 강림하기에 딱 좋은 때다. 5월에 내한 공연을 하는 굵직굵직한 외국 뮤지션만 10개 팀을 훌쩍 넘는다. 1961년 데뷔한 ‘보사노바의 제왕’ 세르지오 멘데스(71)부터 2004년 1집을 발표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레이철 야마가타(35)까지 세대를 넘나든다. 브라질과 미국, 영국, 일본 등 국적도 제각각이다. 록은 물론 재즈, 리듬앤드블루스(R&B), 솔, 포크 등 장르도 다양하다. 복고 열풍에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얄팍한 공연 기획도 눈에 띄지만 어쨌든 전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보사노바 제왕’ 멘데스 등 록·R&B·포크 등 장르별 거장 방한 오는 8일 한국 팬과 만나는 최고참은 멘데스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1962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보사노바 페스티벌’이다. 21세이던 멘데스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주앙 지우베르투, 지우베르투 지우, 스탠 게츠 등과 함께 뉴욕 재즈계에 브라질 열풍을 일으켰다. 추억을 뜯어 먹고 사는 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2006년에는 블랙 아이드 피스와 함께 자신의 명곡 ‘마스 케 나다’를 다시 녹음했고 지난해에는 애니메이션 ‘리오’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여전히 현역이다. 1970~80년대 절규하는 목소리로 강호를 평정했던 보니 타일러는 12~13일 33년 만에 내한 공연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리오 세이어, 맨하탄스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1984년 빌보드 싱글차트 10주 연속 1위를 달리던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를 밀어낸 록발라드 ‘토탈 이클립스 오브 더 하트’, 댄스곡의 고전 ‘홀딩 아웃 포 어 히어로’, ‘이츠 하트에이크’를 라이브로 들어볼 기회다. ●‘슈퍼밴드’ EWF·재즈기타 벤슨,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19~20일 열리는 서울재즈페스티벌 진용은 음악 팬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슈퍼밴드’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42년 관록의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WF)가 눈에 띈다. 솔과 재즈, R&B, 펑크, 록을 넘나드는 고수들이 뭉친 EWF는 앨범 판매량만 9000만장에 이른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보컬 그룹 명예의 전당,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모조리 이름을 올렸다. 완벽한 연주에 덧입혀진 필립 베일리의 팔세토 창법과 모리스 화이트의 테너 창법은 그들의 전매특허다. 같은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조지 벤슨에게 군침을 흘릴 관객도 줄을 섰다.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 ‘나싱스 고너 체인지 마이 러브 포 유’ ‘디스 매스커레이드’를 애절하게 불러 젖히는 명가수이기 전에 벤슨은 재즈기타리스트로 먼저 이름을 얻었다. 2002년 그의 첫 내한 공연을 지켜본 많은 기타리스트가 감동과 좌절을 맛봤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칙 코리아가 이끄는 퓨전재즈 밴드 ‘리턴 투 포에버’에 불과 19세의 나이로 합류했던 천재 기타리스트 알디 메올라도 기대된다. 현란한, 때론 광폭한 속주 기타로 먼저 명성을 얻었지만 1980년대 들어 속주 속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애상을 담았다. ●노엘 공연 이틀 모두 매진… 팝가수 야마가타 16일부터 전국 투어 영국 록음악의 아이콘 모리세이는 6일 한국을 찾는다. 1980년대에 짧지만 굵은 발자취를 남긴 4인조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과 작사를 담당했던 이가 모리세이다. 버브, 라디오 헤드, 블러, 킬러스 등 영국 밴드의 음악적 스승이자 오스카 와일드와 예이츠의 영향을 받은 시적인 가사로 ‘브릿팝의 셰익스피어’란 별명도 얻었다. 비틀스 이후 가장 성공한 영국 밴드라는 오아시스의 ‘대장’ 노엘 갤러거는 28~29일 공연한다. 솔로 가수 노엘에 대한 한국 팬의 기대치는 순식간에 이틀 공연 티켓을 모두 매진시켰다. 고소와 육탄전을 일삼던, 전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형제 음악인 노엘과 리엄 갤러거의 오아시스는 2009년 해체됐지만 팬들의 그리움은 더욱 커진 모양이다. 오아시스의 작사·작곡·편곡·보컬을 도맡았던 사람이 바로 노엘인 만큼 오아시스 팬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지난 2월 내한 때 팬들이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사실을 알고 있는 레이철 야마가타는 팝가수로는 보기 드물게 전국 투어를 진행한다. 16~20일 대구와 대전, 서울, 부산에서 공연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축소판 세상 만드는 모형 제작의 대가

    축소판 세상 만드는 모형 제작의 대가

    세상을 축소해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에 남기는 작은 거인 ‘기흥성’. 올해로 어느덧 모형 제작 인생 46년을 맞는 그는 이 분야에서는 대가로 손꼽힌다. 현재는 아버지와 후학들을 위해 자신의 작품 인생을 총망라하는 박물관을 세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직접 현장 시찰을 가고 도면을 그려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 등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위풍당당하게 현역 생활을 계속해 오는 미니어처 제작의 선구자 기흥성씨를 1일 밤 10시 40분에 방영되는 EBS ‘직업의 세계-일인자’에서 만나본다. 모형 제작 인생 46년. 그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모형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서 있지 않았던 1960년대에 모형 제작 일에 뛰어들었다. 건축디자이너는 아니지만 회사 건축부에서 일하던 그는 자신의 스승인 고(故) 김수근 선생의 뜻에 따라 회사 내부에 모형팀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모형 제작 일을 시작했고 이후 꾸준히 작업 활동을 이어와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며 미니어처 제작이라는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모형 제작의 일인자’다. 기흥성씨가 제작한 모형을 보면 우리나라의 발전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여의도 개발 ▲경부고속도로 ▲독립기념관 ▲88올림픽 주 경기장 ▲상암 월드컵 경기장 ▲영종도 신공항 등 1960~70년대 개발 연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또 허물어지거나 다시 지어진 건물들의 원형 또한 그가 만든 모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김영삼 정부 시절에 폭파됐던 중앙청의 모형은 건축물로서는 뛰어났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또 2008년 2월 화재로 소실되기 전의 숭례문과 서울역, 서울대학병원 등 많은 건축물이 그의 손에 의해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기흥성씨는 요즘 박물관을 짓는 문제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셨던 아버지와 자신의 길을 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 박물관을 지어 자신의 46년 작품 세계를 총망라할 계획이다. 4번의 심장 수술을 버텨내며 걸어온 길. 그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당당하게 현역 생활을 이어 나가는 그. 오늘도 그의 손끝에서 또 다른 대한민국의 미래가 만들어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형의 세계! 미니어처 제작의 선구자 기흥성씨를 만나본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일본통신] 오가사와라-이나바 엇갈린 행보

    [일본통신] 오가사와라-이나바 엇갈린 행보

    야구에서 3할-30홈런은 흔한게 아니다.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어려운데 30홈런을 기록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덧붙여 몇년 연속 3할-30홈런을 쳐내기란 더더욱 불가능 한 일이다. 미국에선 알버트 푸홀스(32. 에인절스)가 10년연속 이 기록을 수립해 한때는 야구의 ‘아이콘’으로 불렸지만 올 시즌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 기록은 실로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것 역시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푸홀스가 그러하듯 일본프로야구에서도 3할-30홈런을 수차례 이어왔던 타자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바로 한국팬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8. 요미우리)다. 오가사와라는 일본을 대표하던 강타자 중에 한명이었다. 풀타임 주전 13년동안 10번의 3할 타율과 30홈런은 물론 니혼햄(2000-2003)과 요미우리(2007-2010)에서 각각 4년연속 3할-30홈런을 기록했던 오가사와라는 아오키 노리치카(밀워키) 떠난 현재 4,000타수 이상을 기준으로 현역 타율 1위(.313)에 올라와 있다.(2011년 기준) 오가사와라는 일본에선 보기 드물게 정교함과 장타력을 동시에 겸비한 타자다. 니혼햄 시절 멋들어진 콧수염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갓츠(근성)’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도 했던 선수로도 유명하다. 니혼햄 시절 공에 맞아 갈비뼈 부상을 입고도 다음 날 경기에서 홈런을 쏘아 올린 것, 그리고 투수가 집요하게 몸쪽 공을 공략할지 알면서도 배터박스에 가깝게 서서 ‘맞출테면 맞춰봐라’ 라는 식으로 상대 했던 배짱은 오가사와라가 지닌 근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일화다. 특히 몸쪽 공을 공략해 홈런으로 연결하는 타격기술은 일본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오가사와라는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무릎 부상도 그 원인중 하나였고 ‘투고타저’ 영향에서도 자유롭지 못했지만 올 시즌 역시 그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오가사와라의 성적은 규정 타석에 미달되며 타율 .207(58타수 12안타) 3타점 그리고 홈런은 아직까지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경기에선 선발로 출전하지 못하고 대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오가사와라의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방증이다. 오가사와라의 부진을 놓고 그의 나이에 따른 노쇠화를 거론한다. 올해 한국나이로 40살(1973년생)이 되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제 정점에서 내려올 시점이 됐다는 평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가사와라의 부진은 나이로만 판단 할수 없는 뭔가가 있다. 다름 아닌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선수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어서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이나바 아츠노리(39. 니혼햄)다. 가네모토 토모아키(한신, 만44세)나 시모야나기 츠요시(라쿠텐, 만 43세)는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으며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현재 센트럴리그 평균자책점 1위(26이닝, 0.69)를 달리고 있는 야마모토 마사(주니치)는 우리나이로 무려 48세(1965년생)다. 하지만 올 시즌 이나바 처럼 리그를 압도하고 있는 베테랑 선수는 없다. 이나바의 성적은 타율 .379(1위) 4홈런(1위) 23타점(1위) 장타율 1위(.611)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6할이 넘는 장타율과 ‘1’ 넘는 OPS(1.023)는 회춘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대 이상의 모습이다. 이나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큰 경기에 강한 타자 중 한명이었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일본을 대표할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올해로 프로 18년차의 베테랑이지만 2007년 타율 1위(.334)의 타이틀을 얻었을뿐 그 외 홈런왕이나 타점왕과 같은 굵직한 타이틀은 획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30홈런을 기록한 해도 없었으며 세자리수 타점 역시 기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나바는 올 시즌 거의 모든 공격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팀 타선을 이끌고 있다. 소속 팀 니혼햄이 2위 소프트뱅크에 3경기 차이로 앞서며 초반 질주를 달리고 있는 것도 이나바의 활약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때리면 안타라는 인상이 짙을 정도로 그의 이름은 성적 상위권에 모두 배치돼 있을 정도다. 한때 오가사와라와 이나바는 니혼햄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오가사와라가 홋카이도 지역 팬 뿐만 아니라 전국구 인기를 얻으며 구단을 대표하는 타자였지만 이나바는 그 정도의 성적과 인기는 아니었다. 트레이 힐만 감독(현 LA 다저스 코치) 시절인 2006년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던 해 퍼시픽리그 MVP는 오가사와라의 몫이었고 니혼햄이 도쿄 도 지역 연고지에서 2004년 삿포로 시로 연고지를 이적해 인기를 걱정 할때 오가사와라의 역할 역시 결코 빼놓을수 없다. 비록 오가사와라가 이듬해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얻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지만 이적 첫해(2007)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하며 2년연속 양 리그에서 MVP를 받은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 오가사와라의 부진은 이나바와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다른 팀이라면 초반 부진을 딛고 일어설 기회를 주겠지만 지금 현재 요미우리 사정은 베테랑 선수를 신경 써줄 여유도 없을뿐더러 자칫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시즌 중 경질 될 정도로 성적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가사와라의 부진은 최근 경기에서 대타로 출전하고 있는 것에서도 볼수 있듯 선수 자신은 물론 팀 역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오가사와라와 이나바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뜻밖의 성적을 기록중에 있다. 너무나 빨리(?) 성적이 추락한 오가사와라, 그리고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이나바는 베테랑 타자의 엇갈린 행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일본 최고의 타자 중 한명이었던 오가사와라의 부진이 뼈 아프게 다가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정몽준의 장단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4·11 총선에서 7선 고지에 오른 현역 국회의원 중 최다선 정치인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8남 1녀 중 6남으로, 현대중공업그룹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1988년 13대 총선 때 울산 동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정작 정 전 대표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정치 외 활동’이다. 1993년부터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등을 맡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이끌어냈다. 이어 정 전 대표는 200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통합21’을 창당했다. 정 전 대표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후보 자리를 넘겨줬지만 투표 전날 노 후보가 당선 후 자신을 배제하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문제삼아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다. 정 전 대표는 다시 무소속 의원을 지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5선을 지낸 울산 동구를 떠나 서울 동작을에 출마, 6선에 성공했다. 2008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2009년 당시 박희태 대표가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로 사퇴하면서 대표직을 승계했으나 2010년 6·2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에는 2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범현대가(家)’가 참여하는 5000억원 규모의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오랜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이미지와 글로벌 리더십, 현대중공업 대주주로서 쌓아온 실물경제 경험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경쟁자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수도권 경쟁력이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서울에서 재선에 성공했다는 점도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반면 낮은 지지율은 약점이다. 2002년 대선 당시에는 30%대 지지율로 대선 후보 중 1위에 오르기도 했고 한나라당 대표로 재직하던 2009년에도 10%대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1~3%대 지지율에 머물러있다. 당내 세력 부족 문제를 극복하는 것도 관건이다. 더욱이 이번 총선에서 정 전 대표와 가까운 전여옥·이사철·정양석 의원 등이 고배를 마셔 당내 기반은 더욱 위축됐다. 경제 민주화가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재벌 2세’라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경쟁자인 박 위원장과는 서울 장충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정 전 대표는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학교 다닐 때는 알지 못했고 국회에 들어오기 전 테니스 모임에서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커버스토리-놀토 잘 노는 법] 교과서에 ‘놀토’ 답 있다

    토요 견학여행과 관련해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korean.visitkorea.or.kr)는 ‘즐겨찾기’ 해 둬야 할 웹사이트로 꼽힌다. 관광공사가 운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핵심은 ‘토요 체험학습 여행’과 ‘교과서 속 여행지’다. ‘토요 체험학습 여행’은 올 초부터 운용되고 있다. 관광공사가 각 여행사에 역사전통·문화예술·농산어촌·자연생태·과학탐구·기타 등 6개 테마에 대한 상품 구성을 의뢰, 그 가운데 30개 여행 상품을 선정했다. ‘토요 체험학습 여행’ 신청서 접수를 통과한 초등학교에는 여행경비 중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상반기는 ‘완판’됐을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하반기 신청서 접수 공고는 6월 말~7월 초 나갈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아쉬운 점은 참가 대상이 수도권 지역 초등학교에 국한되고 가족 참여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창욱 관광공사 국내관광진흥팀장은 “내년에 전국(의 초등학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가족 단위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과서 속 여행지’는 서울·경기·강원·충청·경상·전라·제주 등 7개 권역별로 교과서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학년별, 주제별로 분류돼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오는 5월부터는 현역 교사이자 여행작가인 김수정씨가 체험 여행과 관련한 다양한 여행지도 소개한다. 아울러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코너를 통해 47개 수학여행 체험기도 싣고 있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는데 여행기 겸 여행정보물로 손색없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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