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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이달 당헌 개정 마무리… 대권주자 꽃길 깔아주나

    민주, 이달 당헌 개정 마무리… 대권주자 꽃길 깔아주나

    ‘슈퍼 전대’ 과열 우려… 문제제기 나설 듯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8월 전당대회에 차기 대권 주자들이 출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김부겸 전 의원이 출마해 당권·대권 경쟁이 혼재되면서 ‘슈퍼 전대’로 과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그룹별 의견 수렴에 한창이다. 한 3선 의원은 3일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중요한 시점이지 대선 국면의 조기 과열은 옳지 못하다는 의견이 확산하고 있다”며 “의원들끼리 삼삼오오 공론화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르면 다음주 ‘연판장’ 등을 통해 공식 문제제기에 나설 예정이다. 한 초선 의원도 “코로나19로 내년 상반기 경제 상황이 불투명한데 3월에 또 전당대회를 치르면 문재인 정부 성공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 “차기 주자가 당대표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당의 소중한 자산에 상처가 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식 출마 선언을 주저하고 있는 이 위원장, 김 전 의원도 당 안팎의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해찬 대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의 임기를 분리하는 제도 손질을 전당대회준비위원회(위원장 안규백)에 지시했다. 대권 주자들의 당권 도전이 현실화되자 대선 출마를 위해선 내년 3월 사퇴해야 하는 당대표와 달리 최고위원의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전준위는 부위원장에 3선의 유기홍·한정애 의원을 선임하는 등 본격적인 당헌 개정 준비에 나섰다. 안규백 위원장은 “이달 말까지 컷오프 비율, 당헌 손질 등을 모두 끝낼 것”이라며 “대표와 최고위원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올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준위는 스스로 대선 후보가 될 주자들이 당권을 잡은 뒤 대선 경선룰을 바꾸지 못하도록 8월 전당대회 전 경선룰도 매듭지을 방침이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배민아의 일상공감] 캄보디아의 ‘수원행’ 버스가 그리운 까닭

    [배민아의 일상공감] 캄보디아의 ‘수원행’ 버스가 그리운 까닭

    몇 년 전 캄보디아 여행 중 한 소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서 한국의 오래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풍경과 마주쳤다.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 중 절반 이상이 한글 안내판을 그대로 붙인 채 현역으로 주행하고 있는 한국산 중고 차량들이었는데 그중 우리가 탄 차량은 ‘수원행’이라는 행선지 표시 그대로 캄보디아의 작은 어촌 마을로 향하는, 폐차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정도의 낡은 차량이었다. 등받이 각도 조절 장치도 모두 고장 났고, 창문도 제각각 열린 채 고정돼 만지는 곳마다 뽀얗게 먼지와 묵은 때가 묻어나는 소형 버스였다. 목적지와 경로는 정해져 있지만 정류장이 아니어도 승객이 있으면 멈추고, 이미 만석이 됐지만 차량이 멈추면 앞뒷문을 가리지 않고 승객들은 매달리듯 버스에 오른다. 에어컨도 없이 삐걱대며 느리게 달리는 낡은 버스, 게다가 정원을 초과해 태운 승객들의 땀 냄새와 시장에서 막 옮겨 실은 축수산물들의 비릿한 냄새가 함께 엉키고, 심지어 열린 차창으로 비포장도로의 먼지와 매연을 모두 맞으며 달리는 버스 안 풍경은 딱 70, 80년대 한국을 재현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처음 터미널에서 탈 때 운전자에게 요금을 지불했던 우리와 달리 도중에 탄 승객들은 요금 지불을 하지 않는다. 아니 완전히 만차인 상태에서 몸만 겨우 차에 실었으니 요금을 지불하고 싶어도 운전자에게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이다. 승객들 역시 차비 낼 생각은 아예 없어 보인다. 지불한 차비가 한국 물가에 비하면 아주 소소한 금액이었지만 순간 무료로 이용하는 버스를 외국인인 우리에게만 부당하게 부담시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모든 상황이 조금 짜증스러워지려는 즈음 드디어 종착역에 도착했다. 흩어진 짐들을 꼼꼼히 챙긴 승객들이 앞문과 뒷문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곧바로 제 갈 길로 향하지 않고 차량의 반을 돌아 운전석 옆 창가로 찾아가 차례로 자기가 탑승한 위치를 말하며 차비를 지불한다. 혼잡한 때에 탑승해 차비를 지불하지 못한 승객이 하차 후 직접 운전자를 찾아가 차비를, 심지어 소지한 짐의 부피가 큰 사람은 화물비까지 지불하고 있었다. 큰 금액이 아니었어도 초라한 행색의 그네들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금액이었고 귀갓길 바쁜 걸음임에도 자신이 지불해야 할 요금을 정직하게 지불하고자 줄서서 대기하던 캄보디아 그 ‘수원’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미소 지으며 추억할 수 있는 다소 충격적이고도 인상적인 특별한 풍경이었다. 캄보디아 ‘수원’ 사람들의 양심적 행동과 순수함에 감탄하며 경제적 만족도와 주관적인 행복지수의 함수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우리에게 그들은 쉽게 답한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종교인이다’라고. 요즘은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고 있는 때이다.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일탈 행위와 비상식적인 무례한 행동들, 집단감염의 원인을 제공하는 비규범 종교집회 등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뉴스 기사나 인터넷의 여론을 살피다 낯부끄러운 일이 너무 많아 SNS를 닫고 싶어질 때면 캄보디아의 ‘수원행’ 버스가 문득 생각난다. 사회 곳곳에서 올곧게 하루를 살며 흘린 땀 냄새에 밴 성실함, 팔걸이에라도 걸터앉으라며 자신의 자리를 좁혀 주던 배려, 낯선 외국인에게도 장바구니 속 옥수수를 선뜻 건네주던 넉넉함, 사소한 이야기에 함께 깔깔대던 유쾌함, 출발지와 목적지에 따라 분명하게 대가를 치르던 공정함, 그리고 순서를 기다릴 줄 아는 질서의식까지, 그들에게 종교는 의식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였다. 여론에 역행하며 세상에 걱정을 안기는 종교인들에게 캄보디아 ‘수원행’ 버스 승객들의 한마디를 다시금 전하고 싶다. “우리는 종교인이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 공군 현역병 복무기간 21개월로 단축... 육군 18개월·해군 20개월

    공군 현역병 복무기간 21개월로 단축... 육군 18개월·해군 20개월

    정부가 2일 국무회의를 열고 현재 22개월인 공군병 복무기간을 21개월로 단축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전역자들은 22개월간 복무한다. 이후 2주일에 하루 꼴로 단축돼 내년 12월 이후 전역자는 21개월만 복무하면 된다. 이는 대통령 승인을 거쳐 시행된다. 이로써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국방개혁 2.0에 따른 병사 복무기간 단축이 오는 2021년 12월 완료된다. 2021년 12월 이후 전역자부터 육군·해병대는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1개월 복무한다. 국방부는 “현역병의 복무기간 단축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동시에 과학화 훈련을 통한 숙련도 향상, 전투 임무 중심의 군 인력배치 등으로 군 전투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속보] 민간항공기로 입국한 주한미군 장병 코로나 확진

    [속보] 민간항공기로 입국한 주한미군 장병 코로나 확진

    민간 항공기편으로 한국에 입국한 주한미군 장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주한미군사령부는 2일 “새로 전입한 주한미군 현역 장병이 미국발 민항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장병은 지난달 30일 인천공항에 입국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은 뒤, 곧바로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격리시설로 이동했다. 주한미군은 이 장병을 격리시설에서 대기시키던 중 검사 결과가 나오자, 그를 기지 내 의료시설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주한미군 관련 확진자는 모두 31명(완치 28명)으로, 이 가운데 장병 확진자는 7명이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3명은 모두 현역 장병이다. 앞서 주한미군은 지난달 27일에 미국 정부 전세기를 타고 온 장병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의사 게으름에 6급 대상자 3급 입대, 소멸시효 지나

    의사 게으름에 6급 대상자 3급 입대, 소멸시효 지나

    징병 신체검사에서 면제 대상인 6급을 받아야 할 젊은이가 3급을 받아 입대했다며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군의관의 잘못과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배상청구권이 인정되는 기간이 지나 원고가 실제로 배상을 받을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88단독 김범준 판사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14년 재신체검사에서 ‘과거 골절상으로 6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은 뒤 운동 제한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3급 판정을 받아 육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입대 두 달 만에 심한 고관절 통증을 호소한 끝에 다시 군 병원 진단과 검사를 거쳐 6급 판정을 받고 이듬해 의병 전역했다. 이에 A씨는 “면제처분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현역으로 복무해 신체적·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일단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신체검사 당시 A씨의 진술과 제출된 자료 등에 의해 운동 제한이 있음이 확인되므로 징병검사 전담 의사는 6급 판정을 해야 했는데도 만연히(주의를 게을리하여) 3급 판정을 했다”며 “징병검사 전담의의 과실로 현역 판정을 받았으므로 국가는 A씨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A씨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판결했다. 민법상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 기간이 일정 정도 지나면 권리가 사라진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손해나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으로 정한다. 재판부는 “A씨가 의병전역을 한 2015년 1월 무렵에는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다고 봐야 한다”며 “소송을 2018년 12월에 냈으므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설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정세균 “내 꿈은 진행형”···국회 떠나는 이들의 소회

    정세균 “내 꿈은 진행형”···국회 떠나는 이들의 소회

    정세균 “정치 가능성 희망과 기대의 끈 놓지 않아” 최재성 “백수 최재성 마주할 고독 더 지독할 것” 유승희 “3선 동안 넘치는 사랑 받아”20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불출마 하거나 낙선해 떠나는 의원과 새로 입성할 당선자들의 메시지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야인이 된 이들은 담담한 심정으로 ‘추후를 도모하겠다’고 밝혔고, 21대를 맞이하게 된 당선자들은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이낙연 전 총리에 이어 국무총리 직을 수락해 21대 국회에 불출마한 정세균 총리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의원으로서의 경력을 마치는 소회를 적었다. 정 총리는 “두 번의 탄핵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지나왔다. 동물국회도 겪었고, 반대로 식물국회도 경험했다. 적대와분열, 증오와 분노의 정치로 흘러가는 ‘정치 양극화’현상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고,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4년동안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자신의 정치 ‘커리어’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그는 “최고의 영예인 국회의장까지 이뤘다. 이제 국회의원은 졸업하지만 그 꿈은 정치에 몸을 담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행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송파을에서 패배한 민주당 최재성 의원도 국회를 떠나는 심정을 밝혔다. 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불출마는 했었지만 떨어지기는 처음이다. 제법 험한 여정을 겪어왔던 현역 정치인 최재성보다 백수 최재성이 마주할 고독이 더 지독할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 의원은 ”임재법의 비상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정치 16년,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불안 속에서 제 자신을 버려두고 살았다. 16년이라는 그 시간이 방황의 시간이었나 보다“라고 회상했다. 3선의 유승희 의원도 마지막 의정보고를 통해 ”17대 비례, 19대와 20대 성북갑 국회의원으로 너무나 많은 분들, 특히 성북구 주민들의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일했다“며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 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제가 27년 동안 몸을 담고 있는 민주당원으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국민이 질색하는 이미지 지우고 공감력 높여야”

    “국민이 질색하는 이미지 지우고 공감력 높여야”

    성일종 “당 살릴 수 있다면 모든 일 한다” 김미애 “일상의 문제 해결하는 정당 돼야” 김현아 “金위원장·청년 멋진 컬래버 기대” 김병민 “마지막 기회… 방향성 명확해야” 김재섭 “청년들이 도전하는 시스템 필요” 정원석 “외부 인물에 의존하는 한계 극복” 통합당 사무총장에 낙선한 김선동 내정전국 단위 선거 4연패의 미래통합당을 개조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6인의 비대위원은 28일 ‘통합당과 국민 사이의 괴리감 해소’를 공통 과제로 꼽았다. 이들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특히 국민들이 질색하는 통합당의 요소들을 덜어 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재선 의원인 성일종(57) 비대위원은 “김 위원장과 호흡을 맞춰 당을 살리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다할 것”이라며 “비대위원 개인의 방향성보다 비대위 전체의 방향성을 잡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싱글맘인 김미애(51·초선 당선자) 비대위원은 급할 때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경험을 들며 “우리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책, 공감하는 능력을 향상하는 역할이 제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실용 정당, 정책 정당, 대안 정당”을 목표로 제시했다. 또 “우리 당이 소홀하다고 여겨졌던 소통과 공감 능력, 품격을 높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20대 비례대표 의원 출신인 김현아(51) 비대위원은 “정치와 권력의 속성을 아주 잘 아는 노련한 김 위원장과 경험은 부족하지만 열정과 실력 또 미래라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청년들의 멋진 컬래버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직전 현역이자 낙선한 원외라는 경험, 국민 일상에 가장 밀접한 실물경제인 부동산 전문가로서 이슈나 견해, 원내와 원외 간 간극을 메우고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김병민(38) 비대위원은 이번 비대위의 성격을 “우리 당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규정했다. 김 비대위원은 “가장 먼저 당이 가진 정강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철학과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으니 중구난방 그때그때 이슈에 우왕좌왕하게 되고, 이는 국민에게 ‘쇼’로만 인식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바라볼 때 정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지점과 요소를 덜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4·15 총선에서 서울 도봉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재섭(33) 비대위원은 “결국 정치와 정당은 선거에서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세대교체, 청년들의 도전을 북돋우는 훈련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선거를 이해하는 젊은 사람들의 도전을 키우는 비대위 역할을 고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김병준 비대위가 시도한 ‘조직위원장 공개 오디션’에서 최연소 우승자로 정치에 입문한 정원석(32) 비대위원은 “차세대 인재 플랫폼 구축”을 과제로 꼽았다. 정 비대위원은 “인재들을 제도적으로 육성하고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틀을 만들고 싶다”며 “매번 영입한 인재도 자리를 못 잡고, 계속 외부 인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통합당 사무총장에는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김선동 의원이 내정됐다. 당 살림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은 통상 3선 이상 중진 의원이 맡아 왔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원외 인사가 맡게 됐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이번 주말, 월드컵 4강은 잊는다

    이번 주말, 월드컵 4강은 잊는다

    30일 황선홍vs 설기현···31일 최용수vs 김남일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들이 이번 주말 프로축구 K리그에서 지략 대결을 펼친다. 올해 K리그의 최고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31일 FC서울 최용수(47) 감독과 성남FC 김남일(43) 감독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다. 18년 전 독일과의 월드컵 4강전이 열렸던 곳이다. 최 감독은 서울 지휘봉을 모두 합쳐 9시즌째 잡고 있는 베테랑 사령탑이다. 중간에 중국 슈퍼리그로 갔다가 2018년 사상 처음 하위권으로 추락한 서울을 다시 맡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낸 뒤 지난해에는 3위까지 끌어 올렸다. 서울은 개막전에서 강원FC에 역전패하고 또 그라운드 밖의 일이긴 하지만 ‘리얼돌 논란‘으로 혼란스런 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광주FC와 포항 스틸러스를 연파하고 분위기를 되찾았다. 현재 ‘양강’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에 이어 3위다.김 감독은 초보 사령탑이다. 경착륙 우려를 딛고 개막전 광주 원정에서 첫 승을 신고했고 이후 2경기 연속 비겨 무패 5위에 올라있다. 현역 시절에는 ‘진공 청소기’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수비수였던 김 감독은 성남을 맡고는 공격 축구를 선언했다. 실제 성남은 지난해보다 훨씬 날카롭게 벼려진 창을 휘두르고 있다. 특히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취임 회견에서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가장 이기고 싶은 팀”이라며 서울에 대한 승부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루 앞서 K리그2에서도 월드컵 영웅들이 맞대결을 펼친다. 대전하나시티즌 황선홍(52) 감독과 경남FC 설기현(41) 감독이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격돌한다. 구도는 비슷하다. 황 감독은 베테랑, 설 감독은 초보 사령탑이다. 둘 모두 1부 승격을 노리고 있다.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변신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승격 1순위 대전은 현재 3승1무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경남은 1승2무1패로 5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밉상과 근성 사이… “오재원 같은 선수도 필요” vs “예의 지켜라”

    밉상과 근성 사이… “오재원 같은 선수도 필요” vs “예의 지켜라”

    두산 오재원이 지난 26일 SK전에서 보여준 스윙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평소 ‘밉상’과 ‘근성’ 사이를 오가는 그의 플레이로 인해 논란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오재원은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2회 초 SK 투수 박종훈이 투구하려는 순간 타격 자세를 풀었고 박종훈의 공은 볼이 됐다. 가끔씩 타석에서 타격 의지가 없는 선수들이 비슷한 제스처를 보여준 사례의 일환으로 간주돼 심판과 상대 벤치는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팬들 사이에서 해당 행동이 스윙인지 아닌지 이슈로 떠오른 뒤 오재원이 27일 경기를 앞두고 “이슈가 되고 있어서 욕 먹는 것을 안다. 이유가 없진 않지만 내가 욕 먹는 게 낫다”고 말해 논란이 더욱 커졌다. ‘할많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의 뉘앙스로 받아들여지면서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오재원은 경기 중 욕설 논란으로 ‘오식빵’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규정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플레이로 상대 팬들의 분노를 자아내 ‘밉상’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재원은 2015 프리미어12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시원한 빠던(배트 플립)을 선보이며 ‘오열사’라는 별명을 얻고 “우리팀 선수라면 최고”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악착 같은 플레이에 ‘근성’의 아이콘으로도 떠올랐다. 일부 팬들 사이에선 “오재원이 상대 투수를 무시했다”며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상대는 약속된 플레이를 펼치는데 일방적으로 리듬을 깨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경기 중 상대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모습이 은근슬쩍 용인되면서 경기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문율’이 존재할 만큼 매너가 중요한 야구의 매너도 영향을 끼쳤다.한편에선 “오재원이어서 더 논란이 된다”는 반론이 나온다. 다른 선수였으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났을 일이 오재원이어서 일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오재원 같은선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지나치게 매너를 중시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꼭 미덕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승엽 SBS해설위원의 현역 시절처럼 홈런을 치고 배트를 조용히 내려놓는 매너도 좋지만 시원하게 빠던을 선보이며 현장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승부를 위해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은 팬들에게 또다른 재미 요소가 될 수 있다. 과거 롯데 외국인 타자였던 카림 가르시아는 열받으면 그 자리에서 방망이를 부러뜨리며 화내는 모습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종목은 다르지만 현역 축구선수 시절 돌직구와 기행으로 유명했던 이천수도 상대 감독의 발언에 자극받아 여과없이 도전장을 내밀고, 상대 선수의 비매너 플레이를 응징했던 행동들이 승부욕으로 재평가 받으며 팬들 사이에선 “저런 선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투수 출신 이동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오재원의 입장에서 타이밍이 안 맞아서 내린 거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투수 입장에선 최선을 다해 상대하기 위해 나섰는데 상대가 그런 행동을 보이면 진이 빠지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타자 출신 장성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0-0 상황이었고 초구에 타이밍이 안 맞아서 배트를 내린 것으로 타자 입장에선 큰 문제가 없어보인다”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매너가 없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볼이 돼서 그렇지 박종훈이 스트라이크를 던졌으면 오재원이 손해다. 박종훈의 폼이 타이밍 잡기가 어려워 공을 한 번 본 것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비대위 3040·수도권 낙선자 전면배치

    비대위 3040·수도권 낙선자 전면배치

    인물·노선·정책 고강도 쇄신안 논의 예고 기반 없는 신인 많아 ‘김종인 원톱’ 우려미래통합당의 재건과 혁신을 주도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4·15 총선 때 수도권에서 패배한 젊은 낙선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27일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공개한 비대위 명단에는 재선의 성일종(57, 충남 서산·태안) 의원, 김미애(51·부산 해운대을) 당선자, 김현아(51) 전 의원, 김재섭(33)·김병민(38) 전 후보, 정원석(32) 전 당협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애초 김 위원장이 정치 경험이 없는 외부 전문가를 대거 영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김 위원장은 직접 선거를 뛰어본 3040을 전면에 배치했다. 청년정당을 꾸리다 통합당에 합류한 김재섭 비대위원은 서울 도봉갑에서 진보진영의 대모인 인재근 의원에게 패했으나 40.4% 득표로 선전했다. 지난해 당의 공개오디션에서 청년인재로 발탁된 정 비대위원은 서울 강남을 당협을 맡았으나, 유력인사들의 사천(私薦)이 반복돼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김미애 비대위원은 부산 방직공장 여공, 초밥집 사장,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3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싱글맘이다. 보수정당에서 보기 드문 그의 삶의 궤적이 통합당의 재건 방향과 닿아 있다는 평가다. 유일한 현역 의원인 성 의원은 김 위원장이 당을 초·재선 중심으로 운영하고자 발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대위는 통합당의 인물과 노선, 정강·정책을 총망라해 고강도 쇄신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부분 비대위원이 당내 기반이 전혀 없는 신인이라는 점에서 결국 ‘김종인 원톱 비대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 김 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특정 현안에 입장 차를 보이는 갈등 상황에서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비대위 3040·수도권 낙선자 전면배치

    비대위 3040·수도권 낙선자 전면배치

    미래통합당의 재건과 혁신을 주도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4·15 총선 때 수도권에서 패배한 젊은 낙선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27일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공개한 비대위 명단에는 재선의 성일종(57, 충남 서산·태안) 의원, 김미애(51·부산 해운대을) 당선자, 김현아(51) 전 의원, 김재섭(33)·김병민(38) 전 후보, 정원석(32) 전 당협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애초 김 위원장이 정치 경험이 없는 외부 전문가를 대거 영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김 위원장은 직접 선거를 뛰어본 3040을 전면에 배치했다. 청년정당을 꾸리다 통합당에 합류한 김재섭 비대위원은 서울 도봉갑에서 진보진영의 대모인 인재근 의원에게 패했으나 40.4% 득표로 선전했다. 지난해 당의 공개오디션에서 청년인재로 발탁된 정 비대위원은 서울 강남을 당협을 맡았으나, 유력인사들의 사천(私薦)이 반복돼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김미애 비대위원은 부산 방직공장 여공, 초밥집 사장,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3명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싱글맘이다. 보수정당에서 보기 드문 그의 삶의 궤적이 통합당의 재건 방향과 닿아 있다는 평가다. 유일한 현역 의원인 성 의원은 김 위원장이 당을 초·재선 중심으로 운영하고자 발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대위는 통합당의 인물과 노선, 정강·정책을 총망라해 고강도 쇄신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부분 비대위원이 당내 기반이 전혀 없는 신인이라는 점에서 결국 ‘김종인 원톱 비대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 김 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특정 현안에 입장 차를 보이는 갈등 상황에서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KBO 대표 거포 최정 최연소 3000루타, 이대호 롯데 최초 3000루타 도전

    KBO 대표 거포 최정 최연소 3000루타, 이대호 롯데 최초 3000루타 도전

    KBO 리그 대표 거포로서 현역선수 최다 홈런 1, 2위를 달리고 있는 최정(336홈런)과 롯데 이대호(313홈런)가 역대 16번째 3000루타 경쟁에 돌입했다. 26일 현재 이대호는 2993루타로 3000루타까지 7루타를 남겨놓고 있고, 최정은 2978루타로 3,000루타에 22루타를 남겨두고 있어 이대호가 먼저 3,000루타 고지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KBO 리그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 최초 3000루타를 달성한 타자가 될 전망이다. 2001년 9월 20일 마산 삼성전에서 개인 첫 루타를 신고한 이대호는 2011년 2000루타, 일본 프로야구(NPB)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다가 국내 복귀한 이후 2018년에 2500루타를 기록했다. 이대호의 한 시즌 최다 루타는 2018년 기록한 322루타다. 최정은 26일 현재 나이 33세 2개월 28일로 역대 최연소 3000루타 주인공 자리를 노린다. 종전 최연소 기록은 2016년 한화 김태균의 34세 4개월 6일이다. 최정이 3000루타 기록을 달성할 경우 약 14개월 가량 기록을 앞당긴다. 최정은 2005년 SK 와이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2005년 5월 14일 대전 한화전에서 3안타를 치며 개인 첫 루타를 기록했다. 이후 2016년 2000루타, 2018년 2500루타를 차례로 달성했다. 최정의 한 시즌 최다 루타는 2017년 KBO 홈런상을 수상하며 기록한 294루타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본 게임보다 작전타임에 열광… 유튜브가 바꾼 ‘핫 플레이어’

    본 게임보다 작전타임에 열광… 유튜브가 바꾼 ‘핫 플레이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 유튜브는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다. 스포츠의 기본은 경쟁하는 상대방과 무대, 경쟁을 위한 규칙이 세세하게 정해져 있지만 유튜브 시대의 스포츠는 기존 틀을 파괴하며 종목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코로나19로 ‘슬기로운 집콕 생활’이 화두로 떠오른 시대에 유튜브와 스포츠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살펴봤다.●다양하게 변신하는 스포츠 축구는 팀당 11명의 선수가 직사각형의 운동장 안에서 상대 골대에 골을 넣어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다. 농구와 야구 역시 경기장 규격, 출전 선수 규모는 다르지만 승부를 위한 기본 규칙이 있다. 풋살 축구, 3대3 농구 등 변형된 규칙을 적용한 사례도 있지만 기본 틀은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튜브에선 다르다. 축구 전문 유튜브 채널 ‘슛포러브’는 축구로 다양한 실험을 펼친다. 35m 밖에서 축구공을 차서 농구 골대에 넣기, 36m 높이에서 떨어지는 공 트래핑하기, 시속 40㎞로 달리는 차에 축구공을 차서 넣기, 한강을 가로질러 축구공으로 과녁 맞히기 등 기상천외한 콘텐츠를 발굴해 유저들에게 제공한다. 다른 종목과의 결합도 시도한다. 최근에는 골프 선수 박인비, 배상문과 은퇴한 축구 선수 이영표, 조원희와 함께 골프공과 축구공으로 하는 볼링핀 맞히기 대결 등을 펼쳤다. 전통적 의미의 축구는 아니지만 축구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농구와 야구 등도 마찬가지다. 농구 유튜브 채널 ‘뽈인러브’는 자전거 타고 중거리슛 넣기, 바다에서 수중농구하기 등 농구를 변주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햄버거 체인점 ‘맘스터치’는 자사 유튜브 채널 ‘터치플레이’를 통해 은퇴한 농구 선수들이 전국의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농구 대결을 펼치는 ‘새싹 밟기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에 볼 수 없던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야구 유튜브 채널 ‘프로동네야구’도 프로선수와 일반인이 던진 공의 분당 회전수(RPM) 비교 등 야구라는 틀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신선한 콘텐츠로 인기다.●하승진·김연경·김동현 등 개인 채널 인기 최근 몇 년 사이 은퇴 선수들에게 새로운 진로가 생겼다면 바로 ‘유튜버’다. 비단 은퇴 선수뿐만 아니라 현직에 있는 선수들도 ‘유튜브’에 뛰어들고 있다. 레전드 골키퍼 김병지는 은퇴 후 유튜버로 변신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가 운영하는 ‘꽁병지tv’는 구독자 33만명을 거느린 중견 유튜브 채널이다. 김병지 정도의 경력을 가진 선수라면 프로 생활을 접고 지도자로 직행할 수 있었지만, 그는 유튜브를 통해 선수가 아닌 일반인과 유소년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축구 노하우를 전수하는가 하면 축구 관련 이슈가 생기면 채널을 같이 운영하는 구성원들과 함께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누기도 한다. 농구 선수 하승진도 은퇴 후 20만 구독자를 보유한 프로 유튜버가 됐다. 하승진은 유튜브 초기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라는 콘텐츠를 제작해 농구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일반적인 코스처럼 은퇴 후 코치 과정을 밟았다면 가지지 못할 영향력이 유튜브를 통해 발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배구 김연경(‘식빵언니 김연경’), 농구 이관희(‘농구선수 갓관희’), UFC 김동현(‘매미킴TV’) 등은 유튜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선수다. 김연경처럼 스타성이 큰 선수들이 직접 자신의 일상을 전하고 소통하자 팬들의 호응도 크다. 농구와 배구는 연맹이나 구단이 직접 선수들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국농구연맹(KBL)이 운영하는 ‘크블TV’, 한국배구연맹(KOVO)이 운영하는 ‘코보티비’ 등을 비롯해 각 구단들도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팬들과의 교류 접점을 넓히며 톡톡 튀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인기 영상으로 뜬 ‘자료 화면’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주목받지 못했거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던 일화들이 다시 뜨기도 한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엔 방송사에서 자료 화면으로 제공해야 볼 수 있던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가 직접 콘텐츠를 주도하고 소비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유튜브로 가장 화제가 되는 스포츠는 단연 농구다. 농구는 열정적인 작전 타임 영상 등이 다양한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와 콘텐츠) 현상을 만들어 낸다. 농구계 최고의 밈으로는 ‘신명호는 놔두라고’, ‘이게 불낙이야’ 등이 꼽힌다. 슛이 약한 신명호를 수비하느라 다른 선수에게 찬스가 만들어지자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이 선수단에 “신명호는 놔두라고 40분 내내 얘기했는데 안 들어먹으면 어떡하자는 거야”라고 호통치면서 신명호는 농구계 최고의 유튜브 스타가 됐다. 여기에 착안해 ‘신명호를 놔둬봤습니다. 신명호의 1:1 실력은?’, ‘신명호를 놔두면 안 되는 이유는?’ 등의 서브 콘텐츠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감독 시절 불같은 성미를 자랑했던 허재 전 감독은 아예 광고까지 찍었다. KCC 감독 시절 심판 판정에 대해 “이게 불낙(블락)이야”라고 화를 낸 과거 발언은 예능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를 놀리는 말로 자리잡았다. 최근 고양 오리온을 통해 코트에 복귀한 강을준 감독도 과거 창원 LG 사령탑 시절 “성리(승리)했을 때 앵웅(영웅)이 나타나”라는 작전 타임 발언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팬들은 벌써부터 ‘성리학자’ 강 감독의 작전 타임을 기대하고 있다. 과거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일으켰던 선수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담아 스타가 되기도 한다. 축구 선수 시절 ‘풍운아’로 이름을 떨쳤던 이천수는 유튜브에서 자신의 과거 사건 모음집을 보면서 오히려 웃음 소재로 소화시켜 호감을 얻었다. 야구계의 풍운아 정수근도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의 ‘김인식TV’, 전 투수 출신 박명환의 ‘박명환야구TV’ 등에 나와 자신의 과거사를 웃음 소재로 제공해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줬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이라면 과거 행동으로 미운털이 박힌 채 대중의 기억에 남았을 선수들이 유튜브를 통해 재조명받으며 팬들에게 스타로 자리잡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 ― 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 감독님만의 선수 지도 철학이 있는가. “감독인 나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 각자의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면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데 선수들 얘기를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도와준다. 배구가 재밌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선수 시절에 내가 싫었던 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었지만 도움이 됐던 것들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 올시즌 유일한 이적생인 고예림 선수가 ‘새 직장’ 현대건설이 다른 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을 꼽더라. “선수들이 저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훈련 시간에 선수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준다. 수비와 세터 간 호흡은 어떤 식으로 맞출 건지, 어느 위치에서 수비할 건지 등을 얘기한다.” ―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시면. “주중에는 오전 8시 30분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먹고 오후 훈련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운동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 “훈련 시간 중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고전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패스트와 한중록을 읽었다. ―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격언이 있나. “항상 겸손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위치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 감독님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차가워보인다는 얘기를 하더라. “저는 정적인 사람이다. 여행보다는 책 읽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굉장히 단호하다. 과거 일에 끙끙 앓고 미련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정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 말도 들어보면서 묵묵히 숙고(熟考)한 뒤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뒤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지 않나 싶다.”―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김철용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제가 일신여중으로 스카우트 됐는데 김철용 선생님도 제가 고등학교 갈 때 일신여상에 부임하셨다. 고3 언니들이 전국체전이 끝나고 실업팀으로 간 뒤인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뵀다.” ― 김철용 감독은 당시 A속공을 가장 잘하는 1학년 이도희를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시켰다고 하던데.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터를 시키려고 했는데 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세터들이 워낙 욕을 많이 먹으니까 하기 싫었다. 중학교 때는 신장이 큰 편이라 항의가 받아들여졌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배구 선수 치고는 신장이 170cm로 작은 편이라 안 먹혔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공격수였는데 당시 주전 세터였던 임혜숙 언니가 1학년 중반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나가는 바람에 세터 자리가 비었고 그때 김철용 감독님이 세터를 시켰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거였다. 제가 1학년때 고3 언니들이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토스를 초보자가 하는데도 언니들이 받아주고 잘 때려주니까 계속 이겼던 것 같다.” ― 초등학교 1학년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10살 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배구를 시작한 배경은. “키가 커서? 어렸을 때는 잘 뛰고 그랬나보더라.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는데 부모님이 몸이 약하니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가 저를 되게 예뻐하셨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운동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학교 선생님이 설득했다. 그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 김철용 감독과 이도희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고교랭킹 1위로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가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 흥국생명이 이다영을 데려갔다. 이다영이 부진할 때 믿고 기용해 리그 최고 세터 수준으로 키운 걸로 아는데. 현대건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아쉽지 않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FA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거기 가서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정을 갖고 그 선수를 키웠기 때문에 그 선수가 좋은 선수가 성장하길 바란다. 팬들의 그런 비판은 2018~2019 시즌에 이다영 선수가 힘들어할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이다영의 대체자인 세터 이나연 영입도 화제였다.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단계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있다. 이 선수가 얼마나 따라올지, 이 선수가 내가 얼만큼 발전 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선수랑 같이 훈련해보면서 이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단점은 안 보이게 하면서 장점 부각되게 하는게 제 역할인 거 같아서. 이나연 선수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다영 선수는 당연히 포함 될테니 이다영 선수를 빼고 코치 시절부터 통틀어서 감독님 밑을 거쳐간 세터 중에 기억에 남는 세터를 말해달라. “염혜선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여서 좀 더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는 선택이 굉장히 좋은 선수여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흥국생명 이영주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공격수 였다가 세터로 전향한 선수였다. 프로팀에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 선수라서 구질도 좋고 그래서. 운동을 좀 더 오래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김다인 선수가 제 밑에서 올해 3년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선수가 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수원시청에서 뛰던 김주하는 결혼 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감독님과 닮았다. 감독님도 수원시청에서 뛰셨다.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리베로 김주하 선수를 선보이지 못하고 끝난게 아쉬웠다. 김연견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는데 이영주는 너무 어렸고, 고유민은 리베로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레프트 백업으로 원위치했다. 그래서 김주하 선수에게 부탁을 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김주하는 우리 팀의 주전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다. 수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번 시즌 개인사로 작년에 그만둔 것 같더라. 몸이 좀 많이 아팠는데 몇개월 쉬고나니까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김주하 선수는 체력이라든지 고질적인 부상이 있다. 충분히 체력 보강을 해야 시즌때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많이 얘기를 했다.” ―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대권보다 장수? 충청권 의원 ‘가늘고 긴 정치’

    여야, 텃밭 영호남은 과감한 물갈이 경합지 충청은 현역 의원 계속 공천 다선 많은데 대선주자 없는 기현상 21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진 가운데 충청권에서는 다선 의원(3선 이상)이 되는 당선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이 25일 지역구별 당선자 선수를 분석한 결과 충청권에서는 총 26명의 당선자 중 절반에 가까운 46%(12명)가 3선 이상이다. 초·재선은 54%(14명)를 차지했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18명 중 6명(33%), 미래통합당 당선자 8명 중 무려 6명(75%)이 다선이다. 호남(28석), 영남(65석)과 각각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 크다. 민주당의 호남 다선은 단 4%(1명)인 반면 초·재선은 96%(26명)나 된다. 통합당은 영남에서 다선이 25%(14명), 초·재선이 75%(42명)다. 수도권(121석)에서도 초·재선이 66%(80명)로 다선 34%(41명)보다 비율이 높다. 이 같은 현상은 정치 구도상 충청권이 인적 쇄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거대 양당이 텃밭인 호남과 영남 위주의 물갈이를 하는 사이 비교적 상징성이 떨어지는 충청권에서는 다선 의원들이 안정적으로 공천을 받은 것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소수라도 상징성이 큰 인물을 쳐내는 게 효과적이다 보니 충청권은 손을 안 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영호남 다선들이 줄줄이 국회 밖으로 밀려나면서 21대 국회 의장단도 충청권 차지가 됐다. 최다선(6선)인 민주당 박병석(대전 서갑) 의원은 이날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공식 추대됐고, 야당 몫 부의장에는 5선의 통합당 정진석(충남 공주·부여·청양) 의원이 유력하다. 다선이 많은데도 ‘김종필·이인제·안희정’ 이후 충청권 대선 주자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이재명·오세훈·황교안(이상 수도권), 이낙연(호남), 박원순·안철수·김두관·김부겸·유승민·홍준표(이상 영남), 이광재(강원), 원희룡(제주) 등 여야에서 거론되는 대선 주자 가운데 충청권 인사는 없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충청권이 물갈이에 소극적인 건 지역 인재를 키울 의지가 약하다는 뜻”이라며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모습 때문에 충청권 정치엔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스페이스X 첫 유인 발사 28일 새벽 예정, 두 우주인의 인연

    스페이스X 첫 유인 발사 28일 새벽 예정, 두 우주인의 인연

    더그 헐리(53)와 봅 벤켄(49)이 9년 만에 미국 영토에서 발사되는 유인 우주왕복선에 몸을 실어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떠나는 역사적 탐험에 나설 순간이 이제 사흘도 남지 않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비행시험 조종사인 두 사람은 코로나19로 지구촌이 시름을 앓는 와중에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유인 캡슐 ‘크루 드래건’(Crew Dragon)에 탑승, 27일 오후 4시 33분(한국시간 28일 새벽 5시 33분)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우주센터를 떠나는 팰컨 9 로켓에 실려 지구 궤도의 ISS를 향해 솟구칠 예정이다. 텍사스주 휴스턴 기지에서 훈련을 받아 온 둘은 지난 20일 케네디센터에 도착해 준비 마무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발사 시간이 30일(이하 현지시간) 같은 시간으로 미뤄질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27일 예정된 시간대의 기상 여건이 발사에 적합할 확률은 40%로 예보됐기 때문이다. 해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지난 2011년 7월 미국의 마지막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의 승무원 넷 중 한 명이었던 헐리는 ‘데모-2’로 명명된 이번 비행의 사령관을 맡는다. 아내 카렌 니버그도 우주를 두 차례 다녀왔다. 그 기간 아들 잭을 낳고 키우다 지난해 은퇴했다. 공군 대령인 벤켄도 우주왕복선에 두 차례 탑승해 우주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아내 메건 맥아더 역시 2009년 허블 천체망원경 수리를 위해 마지막 우주왕복선 비행에 참가했다. 현역이며 2024년 NASA의 달 탐사에 처음으로 도전할 여성 후보로 손꼽힌다. 아들 테오(6)를 뒀다. 벤켄은 “첫 비행 때는 아들이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아들과 짜릿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니”라며 들떠했다. 두 부부 모두 2000년 NASA의 우주비행사 교육생 동기란 인연도 남다르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헐리와 벤켄은 캘리포니아주의 스페이스X 본사에서 시뮬레이터를 통해 캡슐 드래건 작동 훈련을 해왔다. 크루 드래건이 무인 시험비행을 통해 검증되긴 했으나 유인 비행은 처음이라 위험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헐리는 “우주왕복선이 아니라 훨씬 작은 캡슐이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최첨단 비행체”라고 믿음을 보였다. 짐 브라이든스타인 NASA 국장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두 우주비행사를 환영하며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모든 미국인에게 당신들은 진정한 밝은 빛”이라면서 “모두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지난 2011년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종료 후 미국에서는 9년 만에 처음 유인 발사가 재개되고, 민간 기업이 화물을 넘어 우주 인력 수송까지 담당하는 민간 우주탐사 시대가 열리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ISS를 오가는 단거리 우주비행은 민간기업에 맡긴다는 구상에 따라 스페이스X, 보잉 등과 계약을 맺고 유인캡슐 개발을 추진했지만 목표한 일정보다 많이 늦어졌다. 이에 따라 ISS를 오간 미국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7000만~8000만달러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하고 러시아에서 발사하는 소유스 로켓을 이용했다. 사실상 독자발사 능력을 상실한 거인데 이번 발사는 스페이스X가 개발한 유인 캡슐에 대한 최종 테스트로 성공하면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우주 인력 수송 능력을 회복하는 의미를 갖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참관할 것으로 예상된다. NASA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집에서 지켜볼 것을 당부하고 있으나 케네디 우주센터의 39A 발사장 주변에는 많은 시민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39A 발사장은 스페이스X에 대여된 곳으로 이전에 아폴로 우주선과 우주왕복선 등이 발사되기도 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는 지난해 3월 크루 드래건의 무인 시험비행에 성공했으나 이후 지상 시험 도중 캡슐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해 우주비행사를 실제로 태우고 이뤄지는 ‘최종 테스트’가 이제야 진행된다. 지난 1월 무인 발사를 통해 비상탈출 시험까지 모두 마쳐 유인 시험비행에 청신호를 얻었다. 크루 드래건 캡슐은 지름 4m에 높이 8.1m로 승무원을 7명까지 태울 수 있으며 스위치 없이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작동한다. 크루 드래건의 화물 캡슐은 이미 ISS를 여러 차례 오가며 우주 화물을 수송해 왔다. 스페이스X와 경쟁해온 보잉도 유인 캡슐 ‘CST-100 스타라이너’를 개발했으나 무인 시험 도중 도킹에 실패하는 등 기술적 결함이 잇따라 발견돼 유인 시험비행이 늦어지고 있다. NASA가 지난 2014년 보잉과 42억달러, 스페이스X와 26억달러의 유인캡슐 개발 계약을 체결할 때만 해도 보잉이 뒤처질 것이라고 누구도 점치지 못했다고 한 미국 언론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입덕일지] 불꽃 같은 모델, 한혜진의 이유 있는 인기

    [입덕일지] 불꽃 같은 모델, 한혜진의 이유 있는 인기

    “불꽃 같은 직업인 것 같아요.” 한혜진은 자신의 직업인 모델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 완벽한 신체와 비율로 최고의 정점에서 활활 타올랐다가 산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불꽃에 비유했다. 그런 의미에서 데뷔 21년차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혜진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모델이다. 최근 예능을 통해 잘 알려진 친근한 ‘달심’ 한혜진이 아닌, 프로페셔널한 모델 한혜진의 매력에 대해 분석해 봤다. ▶ 모델 분야의 개척자, 한혜진 한혜진이 모델 중에서도 ‘톱모델’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보그, W, 엘르, 바자 등 국내 각종 잡지 표지모델을 섭렵한 것은 물론 세계 4대 패션쇼(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에 모두 선 한국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2006년 밀라노 컬렉션 구찌쇼 최초의 한국인 모델, 2007년 F/W 뉴욕 컬렉션 안나수이쇼 최초의 한국인 피날레 모델이 된 한혜진. 동양인 모델, 그 중에서도 한국인 모델에 대한 수요와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 이러한 타이틀을 얻었기에 한혜진은 가히 ‘이 분야의 개척자’라고도 불린다. 한혜진은 자신 이후로 많은 한국인 모델들이 해외 패션쇼에 진출하게 된 것에 대해 지난해 방송된 KBS2 ‘대화의 희열2’에서 이렇게 말했다.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 갔다 온 사람이 ‘그 세계는 이렇다더라’고 전해주면 그 다음에 나가는 친구들은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잖아요. 이게 참 좋은 것 같아요” ▶ “군기란 없다” 선배 한혜진의 남다른 인성 한혜진이 진정한 톱모델로 꼽히는 또 다른 이유 중에는 일명 ‘군기 센’ 모델계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한혜진은 자신이 겪었던 모델 세계에 대해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천지였다”고 말한 바 있다.“맨날 혼나는 게 일이었어요. 도시락 늦게 가져왔다고 혼나고, 선배들 안 갔는데 먼저 쇼장 밖으로 나갔다고 혼나고, 메이크업 두 번 받는다고 혼나고, 눈썹 하나 더 붙였다고 혼나고.” 하지만 그녀가 후배 모델들과 있을 때의 모습은 이와는 달랐다. 후배 모델인 이현이는 선배 한혜진에 대해 “처음엔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후배들을 위한 것이었다”며 “한혜진은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혼자 미움을 받더라도 총대를 메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델 이혜정 또한 모델계 군기를 없앤 모델로 장윤주, 송경아, 한혜진을 꼽았다. 지난해 모델 데뷔 20주년을 맞은 한혜진은 “선배들이 현역에서 잘 버텨주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지금처럼 느낄 때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 모델만이 할 수 있는 재능 기부, 디지털 런웨이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많은 행사가 취소된 가운데, 패션계도 타격을 피해가진 못했다. 서울시 주최 글로벌 패션쇼 ‘서울패션위크(SEOUL FASHION WEEK)’ 서울컬렉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모델 한혜진은 업계에 도움이 되고자 ‘디지털 런웨이’라는 장을 마련했다. 약 40명의 디자이너들의 옷 100벌을 입고 혼자 패션쇼를 선보인 것. 모델로서 한 패션쇼에서 최다 30벌을 입어봤다고 말한 한혜진에게 100벌을 입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공개된 디지털 런웨이 현장 속 한혜진은 정신적∙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모델만이 할 수 있는 일로 타인을 도울 수 있음을 되새기며 프로답게 디지털 런웨이를 마무리했다. 그의 특별한 재능기부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 한혜진, 알고보니 기부천사 한혜진은 평소 자신이 모델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한혜진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2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성금 1000만원을 기탁했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고성군, 속초시 등 강원지역에 발생한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2016년에는 기부를 위해 플리마켓을 여는 모습이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혜진은 2014년 소속사 아카데미를 통해 20대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토크콘서트 형식의 재능 기부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혜진은 그 누구보다 모델로서 베풀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임효진 기자의 입덕일지 : ‘입덕’할 만한 스타를 발굴해 그의 모든 것을 파헤칩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역대 추도사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역대 추도사

    영결식때 추도 못한 김대중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1회 이해찬 “친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자랑습니다”6회 유족대표 건호씨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8회 문 대통령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23일 경남 봉하마을에서 엄수된다. 지난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10주기 추도식에 2만명이 참석해 역대 최대규모로 진행됐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규모는 축소됐지만, 의미는 남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고 난 후 처음 맞이하는 추도식일뿐더러, 4년 만에 보수정당의 지도부인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참석한다. 특히 11주기 공식 추도사는 오는 8월 임기가 종료되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한다. 이 대표는 2010년 1주기 추도식 때 추도사에서 “대통령님의 염원과 열망을 우리가 이루는 날까지 우리는 당신의 부활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대 국회를 끝으로 여의도를 떠나는 이 대표가 공식석상에서 현역 정치인으로서 하는 마지막 추도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과 관련해 재조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한명숙 전 총리도 참석한다. 한 전 총리는 2009년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대표로 추도사를 읽었다. 정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대 노 전 대통령 추도식 및 추도사를 모아봤다.●2009년 5월 29일 영결식…한명숙 전 국무총리 추도사 2009년 5월 23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는 이명박 당시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장의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공식 추도사는 노무현재단 초대 이사장인 한명숙 전 총리와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맡았다. 한명숙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며 “잔인한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시라”며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하시는 일이 없기를, 혼자 무거운 짐 안고 홀로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빈다”며 조사를 마쳤다. 이날 헌화가 진행되는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족들의 손을 잡고 오열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할 때는 백원우 의원(현 민주당 민주연구원부원장)이 “어디서 조문을 해”라고 소리치며 달려나오다 경호관들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늦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문 김대중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려고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추도문은 그해 7월 3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라는 책의 추천사 형식으로 뒤늦게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다”며 추도문을 시작했다. 그는 조문객이 500만명이 달한 것을 언급하며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다. 나도 억울하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라고 적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18일 서거했다.●1주기 추도식…이해찬 “친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자랑습니다” 2010년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도식 열렸다. 이해찬 대표는 추도식 추도문에서 “대통령님이 떠나신 지 1년이 되는 지금, 대통령님이 계시던 그 시절을 더욱 그리워하고 대통령님의 철학과 삶을 깊이 되새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세간에서 붙여준 ‘친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것은 명예로운 훈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작년에 님과 김대중 대통령님 등 두 분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면서 “남아있는 우리는 두 분 대통령님께서 평생을 바쳐 이루어온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한반도 평화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우리들은 결코 대통령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님의 염원과 열망을 우리가 이루는 날까지 우리는 당신의 부활을 준비할 것”이라면서 “그때까지는 분노도 슬픔도 눈물도 참겠습니다. 대신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뚜벅뚜벅 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아쉬움도 아픔도 우리가 안고 나아가겠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를 반드시 이루어내겠다”고 다짐했다.●세월호 참사 직후 열린 5주기 추도식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다음 달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 5주기 추도식이 엄수됐다. 이번 추도사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맡았다. 당시 문 의원은 ‘결국 민주주의가 안전이고 행복입니다’라는 제목의 추도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실천한 것처럼 국가는 ‘사람사는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봉사해야 한다”며 “국가와 정치와 민주주의의 중심에 시민의 안녕이 있고, 시민의 구체적인 삶 속에 국가와 정치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생활민주주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는 ‘안전’ ‘책임’ ‘정부’ ‘국가’라는 개념은 물론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며 “세월호 참사의 엄청난 희생은 명백히 이 정부의 책임”이라고 정부의 대응을 질타했다. 그는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대한민국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탐욕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청산해야 할 ‘적폐’이며, 그 적폐의 맨 위에 박 대통령이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정치’가 있다. 박 대통령이 그 사실을 직시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만 적폐가 청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6주기 추도식…여당 대표에게 쓴소리 한 노건호 2015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6주기 추도식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씨의 쓴소리가 파장을 낳았다.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 등 여야 대표가 처음으로 참석한 자리에서 건호씨가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 것이다. 유족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건호씨는 “이 자리에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엔엘엘(NLL) 포기했다며 내리는 비 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앞줄에 앉은 김 대표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 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건호씨는 또 “혹시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 하시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 본인도 그간의 사건들에 대해 처벌받은 일도 없고 반성한 일도 없으시니, 그저 헛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과? 반성?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라고 쏘아붙였다.●대선 직후 8주기…문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찾아오겠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김정숙 여사와 함께 추도식을 찾았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첫 추도식 참석이었으며, 8년간 매번 추도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참석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추도사에서 “저는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 드린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그때 다시 한 번, 당신이 했던 그 말,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십시오”라고도 말했다.●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부시 미 전 대통령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릴 때 인권에 헌신한 노 전 대통령을 생각했습니다. 친절하고 따뜻하고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신 분을 그렸습니다.” 2019년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여러분과 함께 추모할 수 있어서 크나큰 영광”이라며 “최근에 그렸던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유가족들에게 전달해드렸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지도자의 모습이었고 그 대상에는 미국의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국익을 위해 모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 냈고, 물론 견해차는 있었지만, 한미 동맹에 대한 중요성, 공유된 가치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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