兆 넘어… 京의 경제학
10,000,000,000,000,000.
일, 십, 백, 천, 만…. 세기도 힘든 1경(京)원이다. 단위도 생소하고 감도 잡히지 않는 ‘경’이라는 돈이 요즘 우리 경제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 국부는 1경 630조원(2012년 말 기준)이고, 총 금융부채는 1경 302조원(2013년 말 기준)이다. 전 세계 조세 회피처에 숨어든 돈도 11조 달러, 우리 돈으로 1경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쯤 되니 ‘도대체 1경원이 얼마냐’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인기 드라마 속 여주인공 천송이의 화법을 빌리자면 ‘어마무시한‘ 돈이다.
1경원은 1조원의 1만 배다. 1에 동그라미만 16개가 붙는다. 1만원짜리 만 장을 뭉쳐 1억원을 만들었다면 그 돈뭉치가 1억개가 있어야 한다. 만원짜리는 가로 14.8㎝, 세로 6.8㎝다. 1경원을 만원짜리로 가로로 이어 붙이면 1억 4800만㎞가 된다. 지구 둘레가 4만 192㎞이니 지구를 3682만번 휘감고도 남는다.
15일 종가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08조원이니 삼성전자 회사를 48개 사고도 남는다. 온 국민(4월 말 기준 5120만명)이 약 2억원씩 나눠가질 수도 있다.
영어 표현은 따로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1000조원(쿼드릴리언·quadrillion)과 1조원(트릴리언·trillion)을 활용해 ‘텐(10) 쿼드릴리언’ 혹은 ‘10 thousands trillion’이라고 쓴다. 이 때문에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얘기가 꾸준히 나온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 액면단위를 줄이는 것으로, 쉽게 말해 우리 돈의 동그라미를 몇 개 날리는 것이다. 예컨대 1000원을 1원으로 만드는 식이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이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였다. 하지만 사회적 혼란과 비용이 엄청나다는 반발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주열 신임 한은 총재도 지난 3월 인사청문회 때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은 충분히 있지만 부작용이 크다”며 추진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1경원의 다음 단위는 해(垓)다. 동그라미가 20개다. 그다음은 자(10의 24승), 양(10의 28승) 등이 있다. 가장 큰 수는 무량대수(無量大數)다. 동그라미가 68개 붙지만 구체적인 숫자보다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수라는 추상적 의미가 강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불가사의’(不可思議)도 원래는 숫자 단위다. 10의 64승으로 무량대수 바로 밑이다. 더 나아가면 겁, 업 등도 있다. 숫자가 발달한 중국, 인도에서 주로 유래된 표현들이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현빈 외모+50억원’과 ‘1경원’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설문조사도 진행됐다고 하니 1경원이 우리 생활 속으로 많이 들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