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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1 지방선거 서울 구청장 후보들 熱戰속으로…] 동작구- ‘3선 도전 VS 3선 저지’ 후보5명 정책대결

    [5·31 지방선거 서울 구청장 후보들 熱戰속으로…] 동작구- ‘3선 도전 VS 3선 저지’ 후보5명 정책대결

    동작구는 3선에 도전하는 김우중 현 구청장에 맞서 4명의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은 ‘구민 생활 업그레이드’를 외치며 치열한 정책 대결을 펼치고 있다. 3선 저지에 나선 후보는 시의원인 열린우리당 서승제 후보, 초대 민선구청장을 지낸 민주당 김기옥 후보를 비롯해 구의원인 무소속 김익수 후보와 숭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무소속 윤여연 후보다. 김우중 후보의 핵심 공약은 사당권 뉴타운 개발이다. 기존 뉴타운 지구인 흑석지구와 노량진지구를 21세기형 주거단지로 개발하고, 서초구 방배동과 인접한 사당동 1∼5동 일대 40만평에 방배권 못지않은 새로운 뉴타운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또 국립현충원 외곽 근린공원조성, 직장여성을 위한 어린이집 시설 확충 등도 공약했다. 그는 “앞으로의 4년도 지난 8년과 마찬가지로 쾌적한 주거환경 개선과 복지동작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서승제 후보의 핵심 공약은 ‘아카데미 밸리 프로젝트’로 구를 교육문화 특구로 만들겠다는 것. 미취학 아동시설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관내 교육환경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 신대방역에서 보라매 타운을 운행하는 경전철과 품질인증제를 도입해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선수교체’를 통해 서울에서 가장 살기좋은 동네, 이사오고 싶은 동작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설욕전을 다짐하는 김기옥 전 구청장은 구를 ‘청정지역’(Clean City)으로 가꾸겠다는 것과 ‘세금은 적게, 복지는 크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현충공원 남측 주변도로 개설과 유비쿼터스 동작구청을 만들겠다는 공약도 덧붙였다. 김익수 후보는 동작구 교육예산 5%실현, 어린이전용도서관 건립, 한강역사문화 박물관 건립 등을, 윤여연 후보는 주차난, 교육난, 교육문제 해결과 사회적 약자 보호, 청소년문화공간 조성,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등를 공약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5·31 지방선거 서울 구청장 후보들 熱戰속으로…

    향후 4년 동안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구정을 이끌어갈 구청장 선거가 시작됐다. 민선 4기 서울시 구청장 선거에는 모두 103명의 후보가 등록, 평균 4.1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5·31지방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구청장 후보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중구 서울 중구는 5명의 후보가 구청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후보간 물고물리는 접전으로 변수가 많아 ‘무주공산의 주인’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구는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후보가 당적을 바꿔 출마하는 ‘후보 스와핑’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공천을 앞두고 숨진 고 성낙합 구청장의 부인이 출마,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후보에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전장하 전 중구 부구청장이, 한나라당 후보에는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상무위원을 지낸 정동일 전 시의원이 각각 출사표를 던졌다. 전장하 후보는 교육분야 투자를 강화해 중구를 강북의 8학군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신도시 수준의 주거환경 개선, 남산타운내 공용청사 부지에 문화체육센터 건립, 재산세율 경감 등 세금부담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동일 후보는 교육 환경을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기업과 연계해 특목고를 유치하고, 사회보장 시스템 확대, 남산에 테마공원과 레저시설 설치, 청계천에 자전거 도로 설치 등 ‘그린웨이’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 후보에 맞서 후보자 공천을 앞두고 순직한 성낙합 전 구청장의 아내인 박복수씨와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유재택 새 중구포럼 이사장이 무소속으로 나섰다. 민주당에서는 최형신 전 시의원도 출사표를 던졌다. 유재택 후보는 ‘후보 스와핑’을 문제 삼는 한편 중구의 고도제한 해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고도제한을 완화해 중구에 100층짜리 쌍둥이 빌딩 등을 세우는 등 서울의 중심구로의 발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복수 후보는 남편이 못다이룬 공약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종로구 ‘정치1번지’답게 종로구는 구청장 선거 열기가 확 달아오르고 있다. 전·현직 구청장의 맞대결에 전문건축사 출신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어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 구청장인 한나라당 김충용 후보와 전 구청장인 민주당 정흥진 후보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1998년 민선 2기 구청장 선거 당시 김 후보는 초대 구청장 정 후보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결국 김 후보는 2002년 3기 구청장에 당선돼 숙원을 풀었다. 당시 정 후보는 국회의원 보궐 선거 출마로 구청장 선거엔 출마치 않았다. 하지만 종로구는 현재 결코 전·현직 구청장의 맞대결 구도가 아니다. 열린우리당 김영종 후보는 같은 당 부대변인과 서울시의원을 두 차례 역임한 유력한 구청장 후보였던 양경숙씨를 경선에서 꺾는 뚝심을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선거에 첫 출마하는 열린우리당 김영종 후보는 “건축사 경력 23년과 종로구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위원 6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로를 업그레이시킬 전문성을 갖췄다.”면서 “구민이 전문 행정가를 원하는 게 요즘 추세”라고 강조했다. 재선을 노리는 한나라당 김충용 후보는 “재임중 재래시장 현대화사업과 인사동 문화의 거리 조성 등의 실적을 구민한테 평가받겠다.”면서 “종로구의 문화 발굴 등 종로구 문화 발전과 구청사 신축 등 계획한 일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흥진 후보는 “구청장 재임 때 전국 행정대상을 수상하는 등 누구보다 능력있는 후보였다.”면서 “두 차례의 구청장 행정경험으로 종로구의 발전을 앞당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소속 전재갑 후보는 “비록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울산동구청장으로 쌓은 행정경험을 종로구의 발전을 위해 쏟고 싶다.”며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용산구 경쟁률 6대1. 서울의 25개 구청 가운데 3번째로 높은 경쟁률을 보인 용산구는 예상과 달리 정책대결이 돋보인다. 강금실 후보와 오세훈 후보가 시청 용산 이전 문제와 용산 집중개발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구청장 후보들의 정책에 차별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열린우리당 정남길 후보는 서울시청의 용산 이전을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다. 여기에다가 남영동에 있는 USO부지와 철도 부지를 행정타운으로 조성하겠다는 안도 제시했다. 한나라당 박장규 후보는 뉴타운 활성화와 한강로와 용산역 일대의 도심재개발지구 지정, 남산고도제한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가운데 남산 고도제한 완화는 후암동 일대의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보고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성장현 후보도 시청 용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용산을 관통하는 철도의 지하화도 추진키로 했다. 비용은 지하화로 생기는 땅을 개발해 조달한다는 복안이다. 선거전은 아직 차분한 상태다. 박장규 후보는 비교적 느긋하다. 현역 구청장으로서 그동안의 실적이 있는 데다가 관록이 있기 때문이다. 정남길 후보는 젊다는 점과 여당후보라는 점을 무기로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강금실 시장 후보가 용산 개발을 내건 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성장현 후보는 과거 관선 구청장을 거친데다가 6년동안 준비했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김종민 후보는 젊음을 무기로 출사표를 던졌고, 건설사 대표를 역임한 김종완(43) 후보와 5,6대 시의원을 역임한 명영호(56) 후보도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서대문구 서대문구는 열린우리당 문석진 후보와 한나라당 현동훈 현 구청장이 2002년에 이어 두번째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이동거 후보와 민주노동당 이상훈 후보가 추격하는 양상이다.2002년에 민주당으로 출마해 석패한 공인회계사 출신 문석진 후보는 “바꿔야 좋아진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뉴타운 건설개발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4년 안에 끝마치겠다.”는 야심찬 공약을 내걸었다. 구청 공무원의 10%를 뉴타운 분야에 투입, 개발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권역별 할당·목표관리제를 도입해 행정처리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변호사 출신인 현동훈 구청장은 ‘바뀌면 늦어집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재선에 자신감을 보였다. 가좌·북아현 뉴타운 사업과 홍제천 균형개발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현 구청장이 정책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낙후하고 정체된 도시환경을 개선하는데 앞장서겠다.”면서 “가좌 뉴타운 1·2구역은 상반기에 착공하고, 북아현 뉴타운도 하반기에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신촌 기차역을 민자역사로 완공, 문화광장을 조성하고, 문화체육회관·주민자치센터를 연차적으로 개선해 문화·복지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동거 후보는 “서대문구를 강남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며 남가좌동 뉴타운에 50층 이상의 타워형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민주노동당 이상훈 후보는 뉴타운 지역에 공공 임대주택을 20% 이상 짓고, 공공산후조리원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복지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무소속으로 고은석(67)후보가 나왔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SK건설, 루마니아 탈황시설 준공

    SK건설, 루마니아 탈황시설 준공

    |피테슈티(루마니아) 주현진기자|SK건설이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동유럽 지역에서 일괄 수주받은 석유화학 플랜트를 완공,8일(현지시간) 루마니아 아르페킴 정유 공장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된 ‘수첨 탈황설비 플랜트’란 1차로 걸리진 원유에 수소를 첨부해 황함량을 500 이하로 떨어뜨리는 설비다. 루마니아의 정유회사인 페트롬(오엠브이가 인수)이 발주한 플랜트 설비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스티의 북서쪽 근교 피테슈티시 아르페킴 정유공장 안에 있다. 이 탈황설비 플랜트의 하루 생산량은 약 2만 5000배럴에 달하며 공사 금액은 총 4600만달러다. 설계-구매-시공 등을 분리해 발주하는 것이 루마니아의 관행이지만 SK건설은 유럽 유수의 선진 업체들과의 경쟁을 뚫고 이례적인 일괄 턴키식으로 수주했다. 손관호 SK건설 부회장은 “지난 2004년 4월 시작한 공사는 잦은 폭우와 한파에도 애초 계약했던 공사기간보다 2개월이나 앞당겼을 뿐 아니라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마무리됐다.”면서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성해 한국 업체의 우수한 시공능력을 입증하는 한편 동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유럽 국가들은 점점 엄격해지는 유럽의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향후 지속적으로 노후화된 플랜트 시설을 현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SK건설이 이번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앞세워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 동유럽 주변 국가에서 수주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손 부회장, 게오르게 콘스탄티네스쿠 페트롬사 사장, 김대식 주 루마니아 대사, 이온 카르스토유 아르제시주 주지사가 참석했다. jhj@seoul.co.kr
  • [시론] 심상치 않은 일본의 공세외교/연현식 국가정보대학원 국제정치학 교수

    [시론] 심상치 않은 일본의 공세외교/연현식 국가정보대학원 국제정치학 교수

    미일 양국은 최근 주일 미군 재편안과 관련해 최종 합의하면서 양국군의 통합임무 수행능력 제고를 목표로 한 최종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대미(對美) 동맹 강화 및 확대를 위한 일련의 헌신적인 노력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경시하는 듯한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러한 일본외교의 이중적인 접근 및 대응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최근의 일본외교는 21세기 신국제질서, 특히 동아시아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질서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이 평가하는 중요한 변화 요소는 중국의 부상 및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문제에 대한 영향력 증대, 한반도에서의 정세변화, 일본의 상대적인 국제위상 위축 등이다. 이러한 21세기 초두의 지역질서 변화에 대해 일본정부는 우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격상시키면서 안보적인 억지력을 확실하게 확보하고 이를 기초로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는 영토문제, 해양권익 확보문제 등에 있어 공세적으로 자주적·독자적인 외교를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공세외교의 강화 및 정착에 유리한 환경과 그 영향을 정리해보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일본 내의 평가가 특별하다. 일본 내각부가 편찬한 책자에 의하면 중국의 경제력은 2016년쯤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은 외교의 폭과 질을 높이고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또한 해양권익 수호를 위한 강렬한 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 중국의 대두는 세계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활용하면서도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경계하는 이중적인 정책인 이른바 ‘컨게이지먼트 정책(congagement policy:봉쇄 및 개입 정책)’을 대중 정책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봉쇄정책의 근간은 미·일동맹의 강화·확대이며 이는 또한 일본 자위대의 전력 및 기능 강화로 연결되고 있다. 셋째, 일본의 공세적인 외교 및 안보정책에 대해 호의적인 국내적 환경이 정비되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다수 의석으로 국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제1야당인 민주당도 외교안보문제와 관련해 현실주의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일반여론도 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역할 확대 등에 대해 우호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공세적 외교 전개는 항시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 커다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역사는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일본의 공세외교를 우리가 주목해야 하며 지역국가들, 나아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관여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사실 지금이야말로 지역정세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일본의 헌신적인 대 주변국 외교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최근의 지지부진한 한·일관계의 상황만 보더라도 일본측에 많은 잘못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양호한 한·일관계 구축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에 일본은 매번 찬물을 끼얹었다. 독도문제, 교과서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지도층 인사들의 망언문제 등 일본이 제기 또는 야기한 일들로 인해 발전의 기회를 모색하던 양국관계는 일순 냉랭해져버리곤 하였다. 일본이 진정 한·일관계의 질적 발전에 관심이 있고 한국의 중국 접근을 우려한다면 한국민 또는 한국정부를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선의에 기초하는 주변국 배려의 태도는 나아가 다양한 동아시아 지역현안 해결의 좋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친미입아(親美入亞)적인 일본외교의 전개를 기대해본다. 연현식 국가정보대학원 국제정치학 교수
  • “프로야구 2개구단 창단이 목표”

    “프로야구 2개구단 창단이 목표”

    방송 해설자인 하일성(57)씨가 프로야구의 실무 총책임자로 선출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8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8개구단 사장단 이사회를 열고 지난달 사퇴한 이상국 전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하일성 전 KBS 해설위원을 제11대 사무총장으로 선임했다. 하 신임 총장은 오는 2009년 3월까지 프로야구 실무를 총괄한다. 성동고와 경희대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한 하일성 신임 사무총장은 선수시절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방송해설자로 오랜기간 야구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환일고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중 1979년 TBC에서 처음 방송 마이크를 잡은 그는 1981년 방송사의 KBS 통합을 거쳐 올해까지 28년간 대표적인 해설자로 활약했다. 경기인 출신으로는 이용일(1981년 12월∼91년 2월)씨와 박종환(1996년 1월∼1998년 3월)씨에 이어 세 번째다. 하 신임 총장은 “경기인 출신도 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면서도 “야구장 현대화와 2개 구단 창단, 동호인 야구 활성화 등에 주력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는 “솔직히 행정업무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속내를 밝힌 뒤 “만약 내가 실패하면 모든 경기인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며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하 총장은 KBO 조직개편에 대해서는 “소문은 많지만 조직 개편은 없을 것이다.”며 “다만 기술위원회와 기획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이 있는데 이 부분은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공직 초대석] 홍도 항로표지관리원 이상익씨

    [공직 초대석] 홍도 항로표지관리원 이상익씨

    “외로움요? 일이 많아 그럴 틈이 없습니다. 이젠 숙달되기도 했고요.” 전남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을 넘게 달리면 절해고도가 눈에 들어온다. 뭍에서 110㎞ 떨어진 곳에서 온통 기암괴석으로 몸치장을 한 섬, 홍도다. 이상익(43)씨는 이곳의 몇 안되는 공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1931년 세운 홍도 등대가 근무처다. 그런데 직함은 ‘등대지기’가 아니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등대지기로 일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더니 “등대지기는 1988년부터 쓰지 않는 말”이란 설명이 돌아왔다. 해양수산청이 아직도 ‘등대 직렬’로 공무원을 뽑고는 있지만, 공식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얀 돔 지붕을 머리에 얹은 등대는 선착장에서 내려 꼬불꼬불 가파른 산길을 400m 정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해발 89m에 자리잡은 관리소에 들어서니 갑자기 주변이 툭 터지면서 망망대해가 시원스레 펼쳐졌다. 발치 아래로 펼쳐진 부드러운 곡선의 만(灣)도 한눈에 훤히 굽어다보인다. 말그대로 절경이다. 이씨는 지난해부터 홍도등대에 근무하고 있다. 목포해양수산청 관내의 소흑산도·강사도·죽도·가사도 등을 두루 거친 뒤 7번째 근무처이다.2년마다 교대 근무를 하니, 그가 등대와 함께 밤바다를 지킨 지도 벌써 14년째다. 홍도 등대엔 이씨를 비롯해 모두 3명이 일한다. 박정율(57) 소장은 25년, 막내 황진성(26)씨는 이제 막 근무를 시작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13m 높이의 등탑 꼭대기에 설치된 등명기를 관리하는 것. 이씨의 안내로 나선형 철제계단을 걸어 꼭대기 방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장비가 현대화돼 “굳이 등탑에 올라가지 않고도 원격 조종으로 점등·소등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1930년대엔 석유백열등으로 밤바다를 밝히다 가스등을 거쳐 요즘은 700W짜리 어른 얼굴만한 전구가 활용된다. 등대 불빛은 홍도에서 45㎞ 떨어진 곳까지 퍼져 나간다.“전국에 유인등대가 모두 49곳인데, 깜빡이는 간격이 모두 서로 다르다. 홍도 등대는 20초에 한번 깜빡이는 곳”이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안개가 자욱한 날엔 등명기도 무용지물이다. 이 때문에 등명기 뿐 아니라 ‘무(霧) 신호기’가 등대마다 갖춰져 있다.“뿌∼우” 하는 뱃고동 소리가 45초를 쉬고 5초 동안 울려 퍼진다. 도달 거리는 5㎞. 해무가 낀 칠흑같은 밤을 항해하는 선박에는 생명의 소리인 셈이다. 전기가 끊어질 경우에 대비한 발전기와 축전기를 관리하고, 관리소 내 환경을 정비하는 것도 주요 일과의 하나다. 유람선을 타고 홍도의 기암괴석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일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이씨는 “겨울철을 빼면 하루 100∼200명씩 찾는다. 일도 많지만 외로울 틈이 없다.”고 말했다. “섬에서만 14년을 근무했는데, 쉽지 않았겠다. 가족들과도 떨어져 있어야 하고….” 위로삼아 말을 건넸더니 무덤덤한 반응만 돌아왔다.“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다 그렇지요.14년이면 얼마 안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을진 몰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였다. 글 사진 홍도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녹색공간] 워드와 한국인의 종족성/박은경 환경과문화 연구소장

    지난 2월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 소속의 하인스 워드가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계선수가 서양인들의 우람한 풋볼선수들 사이에서 건재한 모습에 열광했고, 그가 얻게 된 돈방석에 대리만족이라도 하듯이 즐거워했다. 지난 4월3일 영웅이 된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김영희씨와 한국에 왔다. 워드가 극적인 터치다운으로 스틸러스를 승리로 이끌었던 것처럼 고향땅에 터치다운함으로써 파란만장한 김영희씨의 삶을 인간승리의 순간으로 승화시켰다. 워드는 자신에게 한국 피가 흐르는 것을 원망한 적이 있다며 이제는 그 사실이 송구스럽다고 토로했는데, 그의 솔직한 고백의 저편에는 이 땅에 사는 우리들 자신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인은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고 살아가고 있다. 피부·머리·눈동자 색이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이 한국인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허구적 ‘종족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국인이 떠나보낸 이들은 하인스 워드만은 아니다. 실은 우리들과 피부·머리·눈동자 색깔이 같은 화교들에게도 다른 ‘종족’이라는 굴레를 씌워 1960년 이후 그들의 생계수단이었던 중국 식당조차 하기 어렵게 해 4대째 살아온 그들을 한국 땅에서 떠나보냈다.1882년 임오군란 이후 한국 땅에 들어오기 시작하여서 1940년대에는 10만명에 이르렀던 화교들은 1970년대부터 한국을 떠나서 2000년 즈음에는 1만 5000여명으로 축소되었다. 100여년간 유일한 다른 종족집단이 화교들이었지만 한국이 지난 40년간 겪은 현대화와 산업화는 이제 다양한 외국인들을 한국사회에 유입시키고 있다. 젊은 여성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농촌에 이제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한국인의 부엌을 차지해가고 있고, 단일민족을 그렇게 외치던 한국 땅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을 혼혈로 바꾸고 있다. 동남아 신부를 찾아준다는 거리의 홍보물에 놀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농촌 결혼의 두 쌍 중 한 쌍이 외국인과의 결혼이고 100쌍 중 11쌍이 외국인과의 혼인이라는 보도는 이제 한민족이 단일 혈통이라는 주장을 실효가 없게 만들었다. 2004년 말 약 42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살고 있어 인구의 1%를 차지하고 있다. 또 임금노동자 1450만명 중 3%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21세기 한국인들의 혈통은 실로 다종족적인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이제 한국 땅에는 수많은 하인스 워드를 출산하고 있다. 김영희씨는 20여년 전에 아들을 안고 미국 땅으로 건너갔지만, 이제 태어나는 한국 땅의 혼혈아들은 아마도 이 땅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여 미래 한국의 동력이 되게 하려면 우리 모두 ‘한국인’이라는 종족성을 재인식시키는 공공 인식을 증진해야 한다. 종족성은 원래 생물학적이고 원초적인 문화를 강조하는 근원주의적인 면과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상황주의적인 면이 있다.1980년대 미국사회과학 분야에서 크게 부각된 종족성에 대한 논쟁에서 사회정치적인 상황에 따라서 종족성이 변한다는 상황주의적 이론이 더욱 현실성이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였다. 한국사회도 후기산업화로 들어가면서 한국인들의 노동에 대한 의식과 현실이 급변하면서 한국의 노동시장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열리고, 농촌의 신랑들이 동남아 신부를 맞게 되는 세상이 된 현실을 한국인들은 주지해야 한다. 달라진 사회, 경제적 현실에 적응하려면 이제 우리와 다르게 생기고 한국말이 어눌한 혼혈아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의식을 우리 마음에 심어야만 출산율이 1.16으로 세계 최저여서 남한의 인구가 1400만명에 그친다는 2100년에도 우리 손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하인스 워드는 한국인들에게 종족성을 가르친 훌륭한 사회선생이었다. 박은경 환경과문화 연구소장
  • [수도권플러스] 서울 재래시장 쇼핑환경 조사

    서울시는 사단법인 한국주부클럽연합회와 함께 24일∼5월 31일 종로구 광장시장 등 서울시내 재래시장 177곳의 쇼핑환경 실태를 조사한다.조사는 ▲시설 및 쇼핑환경(진입로, 주차장, 화장실, 위생상태) ▲상거래질서(신용카드 취급, 영수증 발급, 가격 및 원산지 표시) ▲고객서비스(교환, 반품, 환불, 소비자 피해 고발 및 처리 ) 등 3개 분야로 나뉜다. 시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수 재래시장 8∼9곳을 선정, 이를 인증하는 ‘Hi-Market’ 현판을 달아주고, 시설 현대화를 우선 지원하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 매화 향기까지 쏙 빼담았네

    매화 향기까지 쏙 빼담았네

    집주인의 너털웃음 소리가 따사로운 봄 햇살과 함께 집안 가득 부서져 내린다. 창밖은 온통 매화 천지. 백, 청, 홍매가 어우러진 풍광은 방안 가득 꽃그림자를 드리우며 누운 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적신다. 광주 무등산 자락 춘설헌(春雪軒)을 찾은 기자를 집주인 직헌(直軒) 허달재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맞았다. 직헌은 현대 남화를 완성한 의재 허백련 선생의 장손이자, 그의 남화를 이어받아 현대화한 ‘신남화’풍 작업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뚜렷한 거처 없이 떠도시던 할아버지께서 50년 전 이곳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전 할아버지 발치에서 서예를 배웠고요. 손님들이 워낙 많이 찾아와 세 칸짜리 집이 항상 북적였습니다.” 직헌은 의재를 사사했으면서도 미술대학에서 현대 미술사조를 배웠고, 이는 현재 그가 독자적 화풍을 일구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가(大家) 밑에 대가 없다.’는 고언(苦言)이 마음에 짐이 되다 보니 한때 늘 거기서 벗어나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고 했다. 허나 이젠 그마저도 체화함으로써 좀 편안해졌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남화풍을 전수한 직헌은 90년대 중반 이후 화풍에 큰 변화를 준다. 먹과 물감이 흘러내리는 추상적 배경에 새와 달, 오리나 인간형태 같은 상형 그림을 주로 그렸다. 또 ‘매’(梅),‘난’(蘭) 등 글자와 그림을 조합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등 실험성 짙은 작업을 시도했다. 이들은 선화(禪畵)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는데, 직헌은 “현실보다는 내재적 사의(寫意)로 미의 무한함을 순간적인 삶과 결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이같은 시도는 전통적 동양화 평가에 인색한 파리나 뉴욕 등지의 전시로 이어졌고, 호평을 받았다. 25일까지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허달재’전은 이같은 신남화풍의 진수들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이번엔 특히 지난해 상하이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았던 작품들이 많다. 대작인 ‘포도’와 ‘홍매’ 그림을 비롯해 사군자에 포도와 연화를 포함한 병풍그림, 잔 글자의 반복을 통해 조형을 이룬 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사선 구도의 ‘홍매’나 둥근 여백을 남긴 ‘포도’는 여전히 직헌의 인기품목답게 세련된 화면운영을 보여준다. 즐겨 그리던 소재 ‘죽림초옥’에 구현된 고요한 대밭 바람의 분위기도 직헌다운 화풍이다. 특히 ‘雪’이나 ‘茶’ 등의 글자를 달항아리와 조합시킨 작품들은 소탈하면서도 현대적 미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직헌은 1년 중 3분의1만 이곳 춘설헌에서 머문다. 성남 분당에 집이 있다 보니 가까운 서울 염곡동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매화 만발한 춘설헌과 아파트 빽빽한 염곡동을 오가며 그는 몸안에 내재된 ‘전통’과 ‘현대’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02)549-7574. 광주 무등산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국 미술계, 청년작가 발굴 소홀”

    “한국 미술계, 청년작가 발굴 소홀”

    |베이징 임창용기자|현대미술시장에서 중국 미술은 요즘 하나의 ‘현상’으로 거론된다. 하루가 다르게 작품 가격이 뛰어오르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품귀현상까지 빚는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13일 중국에서 개막된 제3회 베이징아트페어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줄 것 같다. 여기서 잡히는 중국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국제화’다. 현재 가장 각광받는 중국 작가군에 속하는 왕두(50)와 양샤오빈(43)을 13일 만나 중국 현대미술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국 현대미술의 힘은 국제화입니다. 중국미술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국력 신장도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 실력이 늘었기 때문이지요.” 프랑스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왕두는 “작가든, 화랑이든 이제 국제적 마인드를 갖고 작품을 만들거나 거래해야 한다.”며 “자기 나라와 전통만을 고집하면 세계적 작가가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미술에 대해 “국제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상업적 거래에 뛰어난 화랑은 많지만 세계적 작가를 키우는 데 인색하고, 특히 청년작가 발굴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광둥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80년대 이후 전위적 성격의 조각작업을 해왔으며, 베니스비엔날레, 바젤아트페어 등의 단골손님이다. 지난 2001년엔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이번 아트페어엔 마치 구겨진 종이를 거대하게 확대시켜놓은 것 같은 작품을 출품해 눈길을 끌고 있다. 왕두는 특히 미디어적 성격의 설치와 조각 작업을 주로 해오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우리는 정보망 속에 살고 있고, 정보망 속에서 우리를 잃는다.”며 “미디어는 마치 미사일 같다.”고 비유했다. 양샤오빈은 “중국 경제가 세계적으로 비상하는 가운데 세계인들이 중국 미술에도 주목하게 된 것”이라는 보다 현실적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그러나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미술이 한 단계 진화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며 “앞으로 중국 현대미술이 얼마나, 어떻게 변하고 위상이 높아질지 섣불리 점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왕두와 달리 그는 한국 미술에 대해 희망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 아트페어에 출품된 한국 작품들을 대부분 보았다는 그는 “한국 미술도 상당히 국제화되고 있고, 특히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화 작업이 상당히 인상적이다.”고 호평했다. 양샤오빈은 장샤오강·위에민준·팡리쥔 등과 함께 10대 중국현대작가로 평가되며, 지난해 12월 서울 갤러리 미가 주최한 중국미술특별전에 ‘무너진 자유의 여신상 아래에 깔려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란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sdragon@seoul.co.kr
  • 의정부 부대찌개 중국에도 진출

    의정부 부대찌개 중국에도 진출

    ‘부대찌개’는 전쟁과 빈곤의 상징에서 신세대의 퓨전요리로 진화했다. 이제는 전국적인 대중 메뉴지만 의정부의 부대째개만큼 전통의 맛을 내지는 못한다. 의정부에서도 가장 많은 부대고기 전문점이 밀집한 곳은 의정부 1동 ‘명물 의정부 찌개 거리’다. 그 중에서도 허기숙(75) 할머니가 지금도 손님을 맞는 ‘오뎅집’이 가장 오래됐다. 문을 연 지 47년째로 솥뚜껑을 뒤집어 냄비로 사용한다. ●20~30대에 시작, 60~70대된 할머니들의 깊은 손맛 국물 맛이 걸쭉하며 입에 감기는 뒷맛이 일품이다. 찌개 거리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집은 1972년 박용복(68) 할머니가 문을 연 ‘형네식당’이다. 이 집 부대찌개는 버터 냄새가 나면서도 상대적으로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부대찌개와 전골, 스테이크가 주 메뉴다. 박 할머니와 아들 임동혁(35)씨가 운영하는 본점에선 찌개와 전골, 딸 순혁(45)씨가 15년 동안 운영 중인 분점에선 찌개·전골외에 스테이크도 메뉴로 내와 소주를 즐기는 주당들이 많이 찾는다. 이 두 집 외에 찌개 거리엔 10여 곳의 부대찌개 전문점이 모여 있지만 집집마다 조금씩은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 입 맛따라 단골들도 다르다.3대가 찾아오는 이들도 드물지 않고 때론 4대가 단골인 경우도 생기고 있다. 부대찌개의 주 재료는 원래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소시지와 스테이크로 김치나 양배추 등과 섞어 만든다. 두부·당면·버섯을 다시마와 멸치를 우려낸 육수에 넣고 끓인다. 양념으로 고춧가루·양념장·후추·김치·파·마늘이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요즘엔 미군 부대가 축소되고, 신세대의 입맛도 옛날과 달라 부대에서 나오는 재료는 드물고 주로 수입 재료를 쓴다. 수년전만 해도 쇠고기외에 칠면조·고슴도치 고기까지 잡탕으로 섞어 버터 냄새가 물씬한 오리지널 부대고기를 맛 볼 수 있었다. 의정부 1동 찌개 거리가 수입 재료를 쓸 때도 가능동 지역 3곳의 부대고기 집은 부대에서 나오는 재료를 이용해 술안주로 제격인 볶음 요리 등을 찌개와 함께 내놨었다. ●오리지널에 가까운 맛 보려면 가능1동으로 가야 부대찌개의 본래 맛을 잊지 못하는 40∼50대 이상의 기성세대 중엔 의정부 1동의 현대화된 부대찌개를 상대적으로 일반 ‘김치찌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옛 맛의 향수를 토로하기도 한다. 가능1동 동사무소 옆에 45년째 한자리에서 영업하는 임순학(75)할머니의 ‘실비집’과 ‘정통부대고기(기사식당)’‘부산집’, 임 할머니의 딸이 의정부 2동 낙원웨딩부페 뒷 골목에 차린 ‘할머니 부대찌개’ 등이 ‘올드 부대고기’의 특징을 아직도 갖추고 있다. 부대찌개(초창기에는 ‘부대고기’라고 일컬었다.)는 한국전쟁 이후 주한 미군 전투부대인 미 2사단 사령부가 가능동에 주둔하면서 시내 곳곳에 예하 7개 부대를 포진시키면서 생겨났다. 부대찌개가 전쟁과 가난을 상징한다 해서 의정부시는 20년전 부터 공식적으로 ‘의정부 찌개’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도 의정부 찌개라는 말보다 부대 찌개가 통용된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2월 공개한 ‘한국음식 메뉴 영문표기 지침서’에 부대찌개는 ‘Potluck stew with hotdogs & baked beans’다. 삶은 콩을 베이컨과 구워 소시지를 섞은 간단한 스튜요리를 뜻하지만 부대찌개보다 의정부 부대찌개 전문점에서 ‘스테이크’라는 이름으로 파는 요리쪽에 가깝다. ●신세대 즐겨찾는 퓨전요리로 ‘진화´ 전쟁의 피폐함 속에서 탄생한 부대찌개는 전쟁의 상흔이 아물어 갔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 신세대의 퓨전요리가 됐으며, 해외에도 진출하고 있다. 서울 신촌 연세대 주변엔 떡볶이와 부대찌개를 결합한 퓨전 음식점이 성업 중이고, 중국 베이징에도 부대찌개 전문점이 진출했다. 주한 외국인들도 버터맛과 한국의 전통 음식 찌개가 결합한 부대찌개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부대찌개의 유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고 정설이 없다.60년대 초 당시 존슨 미 대통령이 방한, 오산 기지를 방문하면서 들른 부대앞 식당에서 햄·소시지 등을 섞어 고추장을 풀어 만든 찌개를 내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존슨탕’으로 불리다가 미군이 주둔한 타 지역으로 전해져 부대찌개가 됐다고 한다. 의정부가 원조가 아니며 탄생 당시부터 외국인의 입맛에 맞았다는 얘기인데 확인하긴 어렵다. 의정부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영국 여왕 ‘엉덩방아’ 찧은 사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80번째 생일이 오는 21일로 다가옴에 따라 17일자 타임 최신호는 둘째아들인 앤드루 왕자 및 측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했다. 1952년 즉위한 이래 여왕은 300만통의 편지를 받았고,110만명의 손님을 접대했으며,129개국을 256번 공식 방문했다. 앤드루 왕자는 여왕이 메모의 작은 실수를 지적하고 공식 연회에서 사진사의 위치를 직접 지정할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고 유머도 풍부하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가족들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새로 고용된 하인이 의자를 뺐다고 한다. 하지만 여왕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자리에 다시 앉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모든 가족이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으며, 여왕은 울상이 된 하인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지난 1월 여론조사기관 모리(MORI)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9%의 영국인이 공화정으로 바꾸기를 원했다. 이는 1968년에 실시된 같은 조사보다 단지 1%포인트가 늘어난 수치다. 영국인의 68%가 왕실 유지를 원하는 이유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고’를 저질렀지만, 여왕은 모범적인 행동으로 존경을 얻었기 때문이다. 앤드루 왕자는 “여왕은 결코 영국인을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왕실은 2000년부터 이메일을 사용하고, 매력적인 웹사이트를 구축했다. 직원들에게 휴대용 정보통신 단말기 블랙베리를 나눠주면서 현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는 여왕을 본받아 왕실은 권위적이고 행정편의적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는 왕실 직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한 요인이다. 왕실은 명예를 드높인 사람에게 수여하는 여왕의 증서도 서예가가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만들면서 연간 13만 5000달러(약 1억 3000만원)를 절약했다. 지난해 영국 왕실이 쓴 공적 자금은 6400만달러(약 640억원)로 전년보다 2.3% 줄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곱창? 인천 제일시장이 짱~

    곱창? 인천 제일시장이 짱~

    곱창과 순대는 시장에서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 생각한다면 뭔가를 아는 사람이다. 서민과 잘 어울리는 이들 음식은 깔끔한 장소보다는 군상들이 북적이는 시장통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점포 70여개 중 33개가 곱창집 인천시 남구 도화동에 있는 제일시장은 곱창과 순대의 집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1950년대부터 곱창집이 하나둘씩 생기더니 지금은 무려 33개에 달한다. 시장 전체 점포가 70여개인 점을 감안하면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제일시장도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곱창집만은 여전히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제일시장의 급격한 몰락을 막는 ‘효자상품’인 셈이다. 이곳에는 저녁 무렵이면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밤 늦게까지 꾸준히 찾아든다. 때문에 저녁 8∼9시 무렵이면 파장하는 시장 점포와는 달리 곱창집들은 대개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한다. 손님들은 주로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이나 근로자들이며, 소탈한 외식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이곳 곱창과 순대는 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생명력이 질긴 원동력인 것이다. ●중짜 전골+소주 2만여원이면 서너명이 실컷 일단 가격이 파격적이다. 곱창 전골과 볶음의 경우 대 2만원, 중 1만 5000원, 소 1만원이다. 이보다 조금 비싸게 받는 집도 있지만 도토리 키재기다. 시장 인심을 반영하듯 양 또한 넉넉해 작은 것은 2∼3명, 중간 것은 4∼5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따라서 서너명이 와서 곱창 중간 것과 소주 2명을 먹으면 2만 1000원이면 된다. 1인분에 6000원씩 파는 집도 있다. 곱창을 대충 먹은 뒤 무료로 제공하는 야채와 쫄면 또는 라면(2000원)을 넣어 끓이면 다시 한 그릇이 된다. 밥을 넣어 볶아 먹을 수도 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곱창은 모두 돼지곱창이다. 한때 소곱창도 다뤘으나 값이 비싼 데다 제맛이 안 나는 수입 곱창이어서 지금은 파는 집이 거의 없다. 따라서 돼지곱창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야채와 양념을 많이 쓴다. 곱창 전골에는 손질한 곱창에 육수·콩나물·당근·양파·당면·파·쑥갓·순대 등이 들어가며 다대기로 간을 맞춘다. 철에 따라서는 냉이·깻잎·미나리 등이 첨가된다. 곱창 볶음은 육수와 콩나물이 적게 들어가는 대신 양파·양배추·깻잎 등을 많이 사용한다. 다대기를 넣지 않은 백곱창은 들깨가루·양파·깻잎 등을 넣어 버무려 겨자에 찍어 먹는데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곱창은 인천 십정동에 있는 도살장에서 사오기 때문에 싱싱한 편이다. 내장은 신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대개 하루나 이틀 사용할 분량만 들여온다. 순대국(4000∼5000원)과 머릿고기(1만원)도 손님들이 즐겨찾는 메뉴. 머릿고기와 순대, 콩나물 등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 술국은 중짜 1만원, 대짜 1만 5000원이다. ●튀긴 닭 한마리 6500원 시장 내에 있는 6곳의 닭집들도 나름대로 고객층이 형성돼 있다. 마찬가지로 싸게 파는 것이 손님을 끄는 ‘무기’다. 튀김닭 한 마리를 시중 치킨집의 절반 가격인 6500원에 파는데 크기는 오히려 치킨집것 보다 크다. 양념을 할 경우는 500원이 추가된다. 이밖에 닭강정 7000원, 삼계닭 2000원, 생닭은 대짜 기준으로 3500∼4000원에 판매된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싸게 파는 도매형 정육점도 시장 내에 서너곳 자리잡고 있다. 이곳 상인들은 지자체가 추진하는 재래시장 현대화에 회의적이다. 상인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부담이 가지만 어차피 곱창·순대와 닭집 등으로 특화된 이상 현대화된 시설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곱창집을 운영하는 박모(48·여)씨는 “시설 개선에 돈이 많이 들어가면 자연히 음식값이 비싸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싼맛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구정 이삭]

    ●광진구 그동안 직접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청소하던 도로 주변 시설물을 현대화된 세척장비로 세척,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사람이 직접 닦을 때는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았고 많은 인력을 요구, 신속히 시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는 이를 해결키 위해 제설작업차량 유니목에 브러시와 고압세척기를 장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세척장비 가격은 2100만원. 하지만 인건비를 대폭 절감, 결과적으로 더 경제적이다. ●금천구 다음달 초부터 산림생태계 복원을 위해 독산동 금천체육공원주변 등 4곳의 산림에 다양한 향토수종을 심을 예정이다. 이번 공사는 아카시아나무 등 단순림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산수유, 산벚나무, 복자기 등 11종 960그루를 심는다. 또 식용이 가능한 산딸나무와 산벚나무, 산수유 등도 심을 계획이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다음달부터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2만 1111가구를 대상으로 ‘무료 가스 안전점검 및 불량부품 교체’를 실시한다. 본부는 서울도시가스 등의 지원을 받아 매년 두 차례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중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가구에 무료로 가스 안전점검을 해주고 있다. ●광진구 다음달부터 정영섭 구청장이 직접 기업을 방문, 일자리를 발굴할 예정이다. 구는 관내 중소기업에 공공근로자들을 보내 구직 현황을 확인한 뒤 일자리가 나오면 해당 업체 조건과 맞는 구직자에게 알선해줄 방침이다. ●강서구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의료급여 지원 신청을 연중 받는다. 지원대상은 올해부터 12세 미만에서 18세 미만으로 확대 실시된다. 차상위계층의료급여 지원대상은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로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이 없는 가구 해당자이다. 암과 백혈병 등 107개 희귀난치성질환은 의료급여 1종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고혈압과 당뇨 등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자의 경우와 지원가구 가운데 18세 아동이 있는 경우엔 의료급여 2종으로 보호를 받는다.1종 보호를 받는 경우 급여범위 내에 본인 부담은 없다.2종은 15%가 본인 부담이다. 신청을 원하면 거주하는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에게 진료비 영수증 등 관련 서류를 첨부, 신청하면 된다.02)2600-6784 ●성북구 지난 29일 노인의 여가선용과 건강증진을 위한 공간,‘상월곡실버복지센터’를 개관했다. 이 센터는 지하 1층과 지상 3층 연면적 174평 규모로 경로당과 체력단련실, 컴퓨터 교실, 교육실, 휴게실 등을 갖췄다. 교육실엔 한국무용과 민요교실, 서예, 수지침 등의 프로그램을 개설한다. 관내 60세 이상 어른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회원관리를 위해 이용을 원하는 주민은 사진 2장과 도장, 신분증을 갖고 신청해야 된다. 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 4번 출구로 나오면 걸어서 1∼2분 거리에 있다.02)963-1082
  • 지동시장 순대 끝내줘요

    지동시장 순대 끝내줘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시장은 100년 역사를 가진 먹을거리 시장이다. 얼핏 보면 여느 시장과 다를 바 없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순대 특화시장임을 한 번에 알 수 있다. ●순대집 40여개 몰려… “100% 국산 재료 사용” 40여곳의 순대집들이 저마다 최고의 맛을 자부하며 뜨거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맛은 손님들이 더 잘 알아요. 값을 따지지 않고 100% 국내산에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고 있어요.” 40년 역사를 갖고 있는 ‘지동순대’집 종업원 고숙진(55·여)씨는 장사가 잘되는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하루에 200∼300팀의 손님을 받습니다.” 이 집에서 9년째 일을 하고 있다는 고씨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순대라고 자랑한다. 잡채와 선지 등 8가지 재료를 섞어 찐 순대는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그만이어서 수원 양념갈비와 함께 수원의 대표음식으로 통한다. ●쫄깃쫄깃 담백… 전국 업소서 편육등 택배 주문 고씨가 보여준 수첩에는 서울을 비롯한 인천, 경기도 포천, 충북 영동·단양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전화 주문한 30여곳의 업소 명단이 적혀 있었다. 먼거리는 진공포장된 순대를 보내주기 때문에 전화 주문을 하면 택배로 보내준다.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에 데워 먹으면 즉석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1㎏짜리 소매가격은 1만 2000원이다. 가게에서 먹는 순대는 2인분 한 접시에 3000원.3500원하는 편육은 돼지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없고 쫄깃쫄깃한 맛 때문에 주문이 밀린다.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김모(45·여)씨는 “수원에서 살다 최근 이사를 갔는데 순대 맛을 잊을 수 없어 아이들과 함께 내려 왔다.”고 말했다. 바로 옆 호남순대집은 순댓국으로 유명하다. 한 그릇에 4000원하는 순댓국은 담백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하다. 다른 고기를 넣지 않고 순수 돼지 뼈로만 꼬박 24시간 국물을 우려냈기 때문이다. 25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를 돕고 있다는 민은기(36)씨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심 후해 순댓국 ‘추가 공기밥´ 공짜 인심도 후해 순대와 머릿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어준다. 추가로 시키는 밥은 공짜다. 때문에 점심 등 식사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10여분 기다려야 겨우 먹을 수 있다. 오후에는 수업이 끝난 중·고교생과 대학생,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성인 서너명이서 실컷 먹어도 5만원을 넘지 않아 직장인들의 회식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어느 집이나 단골이 있기 마련인데 이집 단골들을 순대 먹으러 왔다가 일손이 모자라면 설거지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정겨움이 살아있다. 고향집 등 순대볶음과 곱창집들도 식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평일 저녁에는 술안주로, 주말엔 가족 나들이 음식으로 그만이다. ●총 200여점포… 농·수·축산물등 먹을거리 즐비 지동시장에는 순대말고도 농·수·축산물과 건어물, 식품 등 먹을거리라면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200여 점포가 밀집돼 있다. 신선할 뿐 아니라 대형할인점보다 싼 품목도 즐비하다. 상인들의 박수소리, 젓갈 냄새 등으로 삶의 현장이란 느낌을 들게 한다. 무엇보다 맘씨 좋은 주인을 만나거나 흥정을 잘만 하면 값도 깎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 덕분에 시설도 깨끗하게 단장했다. 최극렬 상인회장은 “최근 대형유통업의 지방진출로 재래시장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시설을 현대화하고 경영을 혁신한다면 돌파구는 있다.”며 “순대 전문시장으로 특화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재래시장 박람회에서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각종 전시회·농악 공연등 볼거리도 풍부 화성에 인접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해 시장 외형을 성곽처럼 꾸몄다. 그래서인지 화성을 둘러보러 온 관광객들의 코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팔달산 서남각루에서 출발한 성곽순례는 성장대∼화서문∼장안문∼화홍문∼연무대∼창룡문∼봉돈∼동남각루까지 5.4㎞에 이른다. 종착점인 동람각루와 지동시장간의 거리가 80여m에 불과하다. 성곽을 한바퀴 도는데 2시간30분가량 걸리는데 순례를 마친 후 먹는 순대 맛은 꿀맛이다. 지동시장은 먹을거리뿐 아니라 볼거리도 풍부하다. 바로옆 팔달문과 지동교간 구간을 ‘차없는 거리’로 단장했는데 날씨가 풀리면 사진과 미술 전시회, 길거리 농구대회, 전통무예전, 농악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500대 수용 규모의 주차타워를 갖추고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열린세상] ‘사립 국민’ ‘국립 국민’이 따로 있나/이성낙 가천의대 총장

    얼마전 유럽의 한 일간지 기자에게서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원동력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 질문을 받고 ‘그게 과연 무엇일까.’ 몇번 자문자답하면서 서원(書院)제도를 떠올린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높은 관직을 지낸 사람이 언제고 그 자리를 떠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고장에 크고 작은 서당 또는 서원을 세웠다. 학식이 높은 그들이 집안 구성원이나 이웃을 위해 서당을 세우거나, 조금 크게는 고향 마을 사람들을 위해 향교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학식이 출중한 분의 가르침을 받고자 마을 단위를 넘어 전국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어 서원이 형성되고 서원 중심의 학파가 생겼다. 이처럼 서당·향교·서원이라는 교육 네트워크가 조선시대 말기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오늘의 우리나라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인재 교육을 사학에 많이 의존해 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지금도 인재 교육을 사학에 의존하기는 별다를 바 없다. 우문(愚問)이겠으나 만일 조선시대에 서당과 서원이 없었다면, 그리고 지난 세기 동안 사립학교, 특히 사립대학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국가가 지금처럼 사립대학을 홀대하여도 되느냐라는 것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가가 연구비 관련 정책자금을 배정할 때면 으레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차별한다. 그 액수를 비교해 보면, 국립대학이 사립대학보다 10∼20배나 많다. 이런 불합리한 정책이 거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 국립대학의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관리비를 포함한 재정을 국가 예산으로 책정하여 배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책정한 연구비나 특정 프로젝트(예를 들면 BK21)에서 국립대 몫이 따로 있고 사립대 몫이 따로 있다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사립대학에 몸담은 교수는 물론이고 대학생 모두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 한때 국가 정책으로 의사 배출을 권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국립 의과대학과 사립 의과대학을 차별하지 않았다. 배출된 의사의 머릿수에 따라 균등하게 국가 보조금을 지급했다. 독일에서는 수년전 병원 시설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실적에 따라 보조금을 분배한 적이 있다. 그때도 병원의 병상 규모에 따라 환자당 지급액에 차이를 두었지, 병원이 국립인지 사립인지 또는 종교 기관에서 관리하는지가 차등 지급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사립대학도 엄연히 사회적 공공영역(Public domain)이다. 하물며 사립대학에 적을 둔 학생 또한 국가에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적의 아들·딸인데, 어떻게 사립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국가가 주는 각종 수혜사업에서 차별을 받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국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에 비해 ‘조금 덜 공부해도 되고’,‘조금 손해를 봐도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러다 우리나라가 사립대학에서 교육받은 ‘사립 국민’과 국립대학 출신의 ‘국립 국민’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국가가 배분하는 보조금은 재단의 성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대학 교육의 질을 확보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의 학적에 따라 국가에서 학생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 [기고] 아프리카 농업개발 지원 필요하다/정해창 한국농촌공사 대외사업처장

    노무현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따른 자원외교가 결실을 맺어 우리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아프리카 순방에서 타 분야에 비해 소홀히 다루어진 부문이 있다. 바로 농업과 농촌개발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 중 8억명은 날마다 굶주림 속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유엔은 특히 절대빈곤을 2015년까지 반감시키기 위한 ‘천년개발목표(MDG: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수립하게 됐고, 이에 맞춰 세계 각국은 극빈국가들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를 증액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반세기에 걸친 원조성과를 분석한 결과, 빈곤 퇴치를 위해서는 농업생산성 증대가 최우선 과제임을 재인식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농업생산성이 10% 증가하면 하루 1달러 미만의 생활자가 6∼10% 감소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는데, 이는 타 산업분야의 투자효과보다 월등히 높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대외원조 중 농업·농촌 분야는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장기적인 전략 수립 없이 단발성에 그쳐왔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빈곤과 질병 퇴치라는 목표 달성과 더불어 현지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고 우리 기업의 진출을 원활하게 추진하려면 아프리카의 농업과 농촌 개발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농업·농촌 개발 지원은 첫째, 타 분야에 비해 사회적·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 현재 아프리카 인구의 70%는 농촌에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50%는 하루 생활비가 1달러 미만이다. 또한 많은 국가의 농업시설이 오랜 내전으로 거의 파괴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의 빈민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농업생산량이 10% 증가할 경우 하루 1달러 미만 생활자의 9%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농촌에 소득기반을 조성해주면 농민들의 탈농촌을 막아 사회적 안정에 기여하고 인근 소도시지역에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둘째, 자원 확보와 공산품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외교적 효과도 크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 기업의 동남아 진출 사례는 배울 점이 많다. 일본은 동남아 국가의 기아퇴치, 즉 먹을거리 해결을 위하여 저수지·관개시설·농촌개발사업을 먼저 지원하였다. 이를 통해 수혜국 국민들의 호감을 얻은 후 전혀 반감을 사지 않고 건설, 자동차, 공산품 수출에 성공하였다. 셋째, 아프리카 농업·농촌 지원은 우리나라 농업이 세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서 고품질 다수확 농산물을 재배하려고 오랜 기간 노력한 결과 세계 일류의 농업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그런데도 좁은 재배면적에 따른 선입관 때문에 농업은 돈을 벌지 못하는 분야로 인식돼 왔다. 우리 농업기술이 IT나 BT 분야만큼 세계 일류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대외경제협력기금 지원을 통해 아프리카 산유국인 앙골라에서 대규모 농업현대화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이 사업 역시 아프리카 진출의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아프리카 농업과 농촌개발을 위한 장기적인 지원 계획이 기근·질병 퇴치를 실현하면서 우리의 목적하는 바를 취한다면 한·아프리카 모두가 만족하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해창 한국농촌공사 대외사업처장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1981년 이후 30위권에 들었던 건설업체 가운데 대주주의 변동 없이 시공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풍림, 대림 등 8개뿐이다. 나머지 업체는 주인이 바뀌었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났거나 아예 공중분해된 경우도 있을 정도다. 국내 건설산업의 한 획을 긋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기업 보국 신념으로 창업 국내 건설업 20위권으로 성장한 풍림의 뿌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창업 초기부터 다른 기업과 달리 바깥에 기업을 알리기보다는 내실에 충실한 경영을 했기 때문이다. 풍림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림산업과 뿌리를 같이한다. 대림산업의 창업주이자 사장이었던 이석구(작고) 선대 회장이 1960년 군별 공사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작은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2군 업체인 풍림산업(전신·전일기업·1954년 설립)을 인수, 오늘날 풍림으로 키웠다. 이석구 창업주는 1939년 20대 후반에 목재상인 ‘부림상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림산업과 풍림산업의 모태가 됐다. 이석구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경기도 시흥(현재 군포 산본)의 지주이자 외삼촌(이규응)으로부터 사업 자금을 빌려쓰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둘째 아들(재준), 즉 외사촌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림은 이 때부터 두 사람의 노력으로 나날이 번창했고 해방 후 1947년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면서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 창업주의 기업 이념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채 고통스러워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국가를 살리자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1962년 과로한 탓에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대림산업의 경영권을 내놓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이후 대림산업 경영권은 함께 일하던 이재준 사장이 맡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위·무심경영으로 풍림 육성 이석구 창업주의 기업정신은 맏아들 이필웅(64) 현 풍림산업 회장이 물려받았다. 이 회장은 63년 선대 회장이 경영하던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일을 배우면서 기업인이 된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림산업에 다시 입사, 영업부에 배치돼 경영수업을 착실히 쌓기 시작했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풍림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풍림은 당시 경제개발 붐을 타고 각종 공사를 따내면서 커왔다. 해외공사를 활발히 펼치는 동시에 경영관리와 조직정비를 통해 기업을 현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초기 대림산업의 공사를 하청받는 형태에서 벗어나 어느새 중견건설사로 우뚝 성장했다. 풍림의 제2창업은 이필웅 회장이 대림산업 부사장을 역임한 것을 끝으로 1981년 7월 풍림이 대림으로부터 완전 분리, 독립경영을 하면서 시작됐다. 본래 선대 회장이 창업한 대림산업은 동업자인 이재준 사장에게, 창업주의 맏아들인 이 회장은 계열사로 있던 풍림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이 풍림산업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경영 쇄신을 단행, 국내외 조직을 개편하고 관리 인원을 줄이는 한편 전문 하도급 업체를 육성하는 등 공사 전문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풍림에도 위기는 찾아왔다.2차 석유파동에 이은 경제불황, 이로 인한 건설수요 급감은 풍림의 수주 신장률을 꺾는 치명타를 입혔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져 낙찰률이 떨어졌고, 자금조달 능력 부족으로 민간 공사 및 자체 사업 진출은 더디기만 했다. 해외공사 역시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일감 수주가 어렵고 적정 이윤 확보가 쉽지 않아 무턱대고 진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1986년 경영 쇄신에 들어간다. 본사 유사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경영의 효율성을 올리는 동시에 원가 절감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직접 관리인을 줄이는 대신 협력업체를 키워 공사 전문화를 유도했다. 동시에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풍림으로 성장하게 된다.86년 4월에는 강남 테헤란로의 명물 풍림산업 사옥을 준공한다. 풍림빌딩에는 최근까지 특허청이 입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허청 빌딩으로 더 유명했다. 최근에는 이 건물 주변으로 고층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고 복잡해져 찾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테헤란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풍림의 성장 동력에는 이 회장의 경영 마인드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기업을 지혜와 자제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영의 리더는 조직이 잘 운영되도록 작용하고, 최대한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지녔다. 바로 ‘무위(無爲)와 무심(無心)의 경영’이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도전과 성취 욕구가 강한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어려운 시기를 맞아 조직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이 회장은 현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 중이며, 동생 이필승(56) 풍림산업 사장과 지난해 승진한 장남 이윤형(35) 상무가 그를 돕고 있다. 이 사장은 83년 3월에 풍림산업 자금부에 입사해 이후 경리·자재·총무·기획실 등을 두루 거쳐 99년 1월 사장으로 취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현재 풍림은 향후 50년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새로운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우선 풍림은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통해 안정적 성장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우수 인재 확보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핵심 기술 확보 등에 매진하고 있다. 민간 건설 시장 위축, 최저가낙찰제 확대 등으로 공공시장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틈새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자체 보유 부동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오히려 땅 소유 부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높은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수익성 있는 민간 발주 아파트 공사를 적극 수주할 방침이다. 해외건설은 엑슨 모빌이 발주한 러시아 항만 접안시설 및 부대시설 공사와 쉘이 발주한 가스 파이프라인 가압공사 진출을 계기로 해외사업을 강화할 채비를 갖췄다. ●두꺼운 인맥, 단출한 혼맥 이 창업주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따랐다. 풍림을 거쳐간 이재순, 이면훈, 허필은 사장 등이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 대림과 풍림을 키운 전문 경영인들이다. 술은 한 모금도 못했지만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건설업 특성상 술자리도 자주 참석해야 하던 시절이었지만 술 한 모금 못하면서 영업에는 귀재였다고 한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등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건설업의 과당 경쟁 풍토를 정비하고 건설업 발전을 도모하는 등 국내 건설산업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또 해야 할 일을 쌓아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부림상회 시절 주문이 들어오면 이 창업주는 소달구지에 목재를 가득 싣고 직접 배달을 가기도 했다. 소달구지 직접 모는 사장으로 통할 정도로 소탈하고 일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그는 사람 다루기를 잘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사장이라고 할 정도로 앞에서 뛰었다. 형제가 많지만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한정됐다. 풍림산업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으로는 이 사장과 장남 이 상무가 전부다. 부지런함은 가족들에게 그대로 물려줬다. 이 회장이나 이 사장이 현장을 자주 찾고 새로운 사업 구상과 투명경영 추구는 사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금도 매일 역삼동 사옥으로 아침 일찍 출근해 주요 업무를 직접 챙길 정도다. 이 사장 역시 아침 7시면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이 회장의 집안은 형제 자매가 10명인 대가족이지만 혼맥은 단출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굳이 정계·재계 집안과 결혼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부분 집안 어른 소개로 평범한 집안과 혼인했다. 주변 사람들은 풍림의 단출한 혼맥을 놓고 한국 건설업계의 초석을 다지며 50년 이상 성장한 회사답지 않게 복잡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이 회장의 큰 누이 필선씨는 일반적인 가정의 자녀 임대철씨와 결혼했고, 바로 윗누이 역시 평범한 가정의 권철주씨와 혼인했다. 매부들이 서울 공대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관련 기업에 근무했을 정도다. 셋째인 이 회장도 중매로 결혼했다. 이영자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이었다. 이 여사는 몇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달리했는데, 임직원들이 모두 아쉬워한다. 임원들을 직접 집으로 불러 떡국을 끓여줄 정도로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여사를 사별한 뒤 장현덕(47) 여사와 재혼했다. 이 회장은 자식들 결혼 역시 일상적인 가정의 자녀들과 맺어줬다. 큰딸 정민씨는 이동한씨와 혼인했다. 이동한씨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근무하던 중 반 중매 반 연애결혼했다. 국내 굴지의 회사 자녀이지만 결혼식은 조용하게 치렀다. 두 아들 역시 결혼 과정이 평범하고 소리나지 않는다. 큰 아들인 윤형(35)씨는 한양대를 나와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MBA 과정을 밟던 중 알게 된 오유진씨와 연애결혼 했다. 유진씨의 부친은 고려대 교수이다. 작은아들 주형(34)씨는 지난 2001년 말 역시 미국에서 유학 중 만나 사귄 최수현씨와 결혼했는데 사돈 집안은 평범한 가정이다. 이런 풍토는 이 회장의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필승 사장은 대학때 사귄 평범한 집안의 딸 강환량씨와 연애결혼에 골인, 가정을 꾸렸다. 나머지 동생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등 보기 드물게 단출한 혼맥을 유지하고 있다. chani@seoul.co.kr ■ 젊은 아이디어의 산실 ‘영 보드’ 눈길 풍림산업은 젊은 기업으로 통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변신했기에 가능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획기능을 강화, 각 부문별 경영전략 모색을 통한 신속한 의사소통과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획담당 제도와 ‘Young Board(청년경영자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기획담당 회의는 각 사업부(본부)의 부·차장급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교육을 받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격월 1회 정도 전체 임원회의에서 부문별 시장동향, 부문별 전략 등을 브리핑한다. 이들이 브리핑한 내용은 임원들이 즉시 검토,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풍림의 청년경영자회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대리, 과장급 10여명 정도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업무 관련 아이디어나 회사경영에 건의할 사항을 준비해 매달 1회 자체회의를 연다. 회의 결과는 사장과 면담을 통해 직접 건의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년경영자들은 차세대 경영자가 되기 위한 경영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또 고아원, 장애인시설 등 방문 등 회사의 자원봉사활동을 주도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이필승 사장은 “기획담당 제도와 영보드회의 활성화로 열린 경영을 추구하고 의사결정이 빠른 경영 풍토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풍림산업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지난 50여년 오직 한 길, 건설에만 매달려온 풍림산업. 작은 묘목이 모여 울창한 수풀을 이루듯 풍림은 건설업계 20위, 매출액 1조원대의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이름은 목재회사를 시작으로 한 부림상회(富林商會)와 연결된다. 인천 부평역 앞에서 작은 가게를 얻어 문을 연 부림상회는 이후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풍림산업과 대림산업으로 발전,‘풍요로운 울창한 숲(豊林)’을 이루고 있다. 초기 기업가들이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던 것과 달리 풍림은 오직 건설 전문기업으로 한 우물만 파고도 그룹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곁눈질하지 않고 건설만 고집하다 보니 회사가 대그룹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몸집 부풀리기에 치중한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진 것과 비교해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 ‘엄격한 경영수업’ 풍림의 家風 풍림가는 엄격한 경영수업으로 유명하다. 장자 중심으로 경영권을 물려주고, 여자 형제의 경영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다른 기업과 다르다. 몸소 뛰고 정도를 고집하는 것이 가풍(家風)이자 사풍(社風)이다. 창업주 본인이 주문받은 물건을 직접 배달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작업을 지시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대림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도 일감을 따내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국내외 건설현장을 직접 밟았다. 창업주 자신이 검소하고 한눈 팔지 않았을 뿐 아니라 2세,3세 역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회장 역시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 업무부터 배웠다. 이후 각 분야에 근무하면서 경영인의 자질을 키웠다. 특히 풍림산업을 이끌면서 국내외 현장을 누벼 국내 대형 업체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런 경영수업은 3세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장남인 이 상무가 보다 체계화된 기업에서 일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바로 풍림에 입사시키지 않고 삼성전자와 대림산업에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도록 했다. 호랑이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 밑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또 선진 경영기법을 배우도록 미국 시러큐스대로 유학을 보내 MBA 과정을 밟도록 했다. 이후 풍림에 입사한 뒤에도 다양한 업무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개발사업부에서 경영수업을 받던 이 상무는 지난해 승진하면서 조달본부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는 구매·계약 업무를 총괄하면서 건설업의 모든 과정을 두루두루 꿰뚫어보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경영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고, 최고경영자 역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으라는 뜻이다. 풍림 관계자는 “지난해 이뤄진 이 상무의 승진도 경영 수업을 착실히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필승 사장도 조카인 이 상무의 경영수업에 대해 “엄격하게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아야 기업을 이끌 수 있고, 탈이 없는 것”이라며 “(엄격한 경영수업이) 풍림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chani@seoul.co.kr
  • 도심속 시골장터 모란시장

    도심속 시골장터 모란시장

    “이거 밑지고 파는 겁니다. 아주머니 인상이 좋아 보여서….” 모란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팔면서 잊지 않는 ‘접대용 멘트’이지만 깎은 물건값 보다는 옛 시골 장터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정겨움이 묻어나 기분이 좋은 곳이다. 국내 최대 민속 재래시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모란장은 분당신시가지와 용인 택지개발 등 인근지역의 급속한 현대화 물결속에서도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찾는이가 매년 늘고 있다. 인근에 백화점과 할인매장 등 대형유통매장이 빼곡하게 들어섰지만 고향의 향수를 느끼려는 어르신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가 가격이 저렴한 생필품들을 구하려는 알뜰주부들로 여전히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 뿐인가. 모란시장에서는 개발에 밀려 서울에서 옮겨온 ‘이주민촌’인 성남 구시가지 주민들의 애환도 가득 담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토종 재래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학습장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모란시장이 처음 선 것은 지난 1961년으로 알려져 그나마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향수 달래려는 어르신·알뜰주부들로 북새통 당시 평양이 고향인 한 예비역 육군대령이 재향군인들과 함께 지금의 모란장터(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에서 하천 개간사업을 하면서 생필품조달과 생활여건을 만들려는 수단으로 장터를 조성한 것이 모란장의 시초라고 한다. ‘모란’이란 명칭도 모란봉에서 따와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성남시 수정구 수진2동 모란예식장 주변에 있었으나 1970∼1980년대에는 지금은 분당으로 이전한 성남시외버스터미널과 성남대로변에 형성됐다가 1990년대 초 지금의 수정구 성남동 대원천 복개지(3300여평)로 이전했다. 복개천 주차장부지로 평일에는 유료주차장으로 사용되다 장날이면 재래시장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4·9일 열리지만 개·닭 등 가축시장은 상설 끝자리가 4일과 9일인 날에 열리는 전형적인 5일장이지만 일반 재래시장과는 달리 개와 닭 오리 고양이 등 가축시장이 시장 외곽에 상설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시장에는 모두 950여명의 상인이 등록돼 있지만 소재파악이 안되는 떠돌이 상인까지 합치면 1600여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이곳 상인회의 추산이다. 장터입구에는 주로 농산물과 꽃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또 애주가들을 위한 선술집은 초입에 있다. 닭똥집 등 포장마차 메뉴에서부터 개장국 칼국수 도토리묵 동동주 등 없는 것이 없다. 장날에는 어김없이 입구부터 가득메운 상인들과 주민들로 좀처럼 헤집고 나가기가 어렵다. 특히 주말에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아이들도 가세해 시장을 꼼꼼히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먹을거리·구경거리 가격은 대채로 싼 편이다. 소주안주로 그만인 닭모래집은 한 포대에 3000원이고, 달랑 콩 한소쿠리 가지고 나온 할머니가 ‘몽땅 1000원’이라는 외침도 들을 수 있다. 소쿠리에는 집에서 낳은 강아지가 담겨 있기도 하고, 집에서 기른 대파나 양파, 호박 등을 한 소쿠리 이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재래시장이면 으레 자리잡고 있는 싸구려 의류시장도 줄지어 있다. 누더기를 걸치고 엿을 파는 각설이가 구수한 타령으로 어린이들을 불러모으고, 만평통치약이라는 굼벵이와 지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약효야 어찌됐든 굼벵이는 1㎏에 10만원을 호가한다. ●애완견·개고기 장수 대조적 한쪽에서는 찌그러진 드럼통에 불을 피워 돼지고기와 생선, 메추리 등 재래시장 정취를 구워낸다. 곳곳에서 거리공연이 열려 광대들이 주민들 사이를 뛰어다니는가 하면, 이들을 뛰쫓는 개구장이들의 모습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장 북서편에는 장날마다 애완견시장이 열린다. 한쪽에서 개고기를 좌판에 널어놓고 파는 것과 대조적이다. 시중에선 20만∼30만원하는 푸들과 말티즈, 슈나우저 등을 4만∼5만원대에 살 수도 있다. 혈통을 보여주기 위해 어미를 같이 데리고 나온 상인들도 많다. 한때 중국산이 판친다는 지적이 많아 상인들이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인 발길 부쩍 늘어 사람이 많아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에는 정치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좀처럼 찾지 않던 현직 시장도,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도 부쩍 시장 출입이 잦아졌다. 보신원이 많다 보니 개고기 반대모임회원들의 반대시위도 열린다. 특히 올해는 개띠해로 시위가 잦지만 보신원 상인들은 꿈쩍도 않한다. 이래저래 모란시장은 볼거리가 많다. 매년 5월에는 민속축제도 열린다. 서울 잠실에서 분당행 116번,119번을 타면 된다. 전철분당선과 지하철 8호선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모란시장 바로옆 공터에 유료주차장도 있지만 30분당 1500원으로 비싼 편이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주말탐방] 도축장

    [주말탐방] 도축장

    단백질 공급이 부족했던 시절, 도축장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곳서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던 고깃집들은 서민들의 굴곡진 삶과 애환을 따뜻하게 녹여내는 곳이었다. 그때만 해도 도축장은 도살장으로 불렸다. 숨지기 직전의 단말마, 흥건하게 괸 핏물, 역한 냄새…. 그러나 요즘 이런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전국의 소·돼지 도축장은 지난해말 현재 93곳.1980년대만 해도 500여곳에 달했으나 시설기준이 엄격해진 데다 축산물 수입개방과 함께 식품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위생적인 최신 시설로 탈바꿈하고 있다. 외부인에게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는 도축장을 들여다 봤다. ■ 반입에서 포장출고까지 수도권 유일의 축산물종합처리장인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금산리 ‘안성 도드람 LPC’. 도축장, 가공장, 포장실, 보관창고, 출하실이 컨베이어시스템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며 여느 전자제품 생산공장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겉으론 하루 수천마리의 소·돼지가 도축되는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시설이 깔끔하고 위생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직원들은 청결과 고기의 위생관리를 위해 장화와 모자, 위생가운을 입고 알코올소독, 에어샤워 등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이들은 눈감고도 칼질을 할 정도로 숙련됐지만 위험한 칼을 다루는 일인 만큼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말없이 분주하게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는 고기분리 작업에만 전념할 뿐이다. 그러나 도축장에 들어온 소·돼지들을 잠시 머물게 하는 계류장을 지나 도축장 내부를 들여다 보면 아직도 혐오스러움은 남아 있다. 돼지는 순간 전기충격 요법으로 기절시킨 뒤 날카로운 칼로 목부위의 경동맥을 잘라 도살하지만, 피를 뽑고 털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실내는 하얀 김과 비린내가 어우러져 ‘살풍경’을 연출한다. 전기로 기절시켜 도살하는 돼지와 달리 소는 타격총으로 정수리를 찌르는 방법으로 잡는다. 사람이 직접 해머로 소·돼지의 정수리를 수차례 내리치고 가마솥에 삶아 털을 뽑아내는 ‘무자비한 방법’을 사용하던 20∼30년에 비하면 도축방법도 현대화된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소가 도축장에 이르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 한 직원은 “‘소가 영물’이라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닌 것 같다.”며 우공의 최후를 안타까워한다. 도살된 고기는 갈고리에 꿰어져 줄줄이 이송되며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적출되고, 몸통이 두조각으로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고기가 이송되는 곳곳마다 날카로운 칼과 특수톱을 든 ‘칼잡이’들이 재빠르게 부분별로 자르고 썰고 적출하며 분리해 낸다. 물론 내장과 고기가 상하지 않고 병이 없는 건강한 고기인지 꼼꼼히 점검한다. 자치단체에서 파견나온 수의사 등 검사관이 상주하며 생체검사, 해체검사, 지육검사 등 3차례 검사를 실시해 조금이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곧바로 폐기처분된다. 돼지는 도축돼 육가공공장에 출고될 때까지 30단계의 복잡하고도 정교한 공정, 소는 22단계를 거친다. 소·돼지가 도축장에 이르면 통상 계류장에서 6∼8시간, 도축작업 20분, 예랭실 하루 숙성, 가공과정 20분을 거쳐 이튿날이면 부위별로 고기가 분리돼 소비자를 찾아 차량에 실린다. 이곳에는 ‘급랭터널’이란 독특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돼지는 도축된 후 심부온도가 39도에서 45도까지 급상승한다. 이때 영하 29∼30도의 급랭터널을 90분간 통과시켜 온도를 27∼30도까지 낮춰야 한다. 몸에 남아 있을 각종 미생물 증식을 막기 위한 것이다. 온도가 상승하면 돼지 몸속의 수분이 증발해 살이 퍽퍽하게 되고, 색깔도 하얗게 변해 육질이 떨어진다. 급랭터널을 통과한 돼지는 예랭실로 보내져 18∼24시간 숙성시킨다. 소 역시 같은 시간 보관한다. 소·돼지를 도축한 후 시간이 지나면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신정성(늘어나는 성질)이 없어져 고기가 질기고 맛도 떨어진다. 예랭실에서 숙성되는 동안 고기의 단단한 근육이 풀어져 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기를 얼릴 경우 숙성이 진행되지 않는다. 고기의 맛은 가축의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소에서는 DFD육(검고 단단하며 건조한 고기)이 발생하는 등 육질이 크게 떨어진다. 이경옥 품질관리팀장은 “가축 운송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도축에 앞서 충분한 휴식시간을 줘야 긴장이 풀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도축장에 들어오기 전 계류장에서 머물며 샤워를 시키고 물을 마시게 하는 등 ‘최후의 휴식’을 주고 있다. 소·돼지가 도축장에 입고돼 도축과 내장을 제거하고, 등급판정을 내리고, 세로로 반을 잘라 급랭터널 또는 예랭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 걸린다. 축산물등급판정소 안성출장소 이호철 소장은 “시간이 늦어지면 육질이 떨어지고 세균번식 등으로 위생상 좋지 않기 때문에 도축에서부터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끝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랭실에서 나온 고기는 곧바로 육가공공장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식육처리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정형기술자들의 현란한 칼솜씨가 발휘된다. 이들의 손놀림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소는 골발(뼈와 살을 발라내는 작업)작업을 통해 안심·등심·목심·갈비 등 10부위로 대분할된 뒤 다시 살치살·안심살·꽃등심·양지머리 등 29개 부위로 나뉜다. 돼지도 7개의 대분할,16개 부위로 소분해서 포장된다. 소는 머리·내장 등 부산물을 적출한 지육률이 58%이며, 여기서 뼈와 지방 등을 추가로 발라낸 정육률은 35%이다.600㎏짜리 소에서 순수고기는 220㎏이 얻어진다. 돼지는 100㎏짜리에서 45∼50㎏을 얻는다. 육가공 공정은 공항의 세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격하다. 부위별로 진공포장된 고기는 박스포장되기 전에 반드시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혹 고기 속에 들어있을지도 모를 주사바늘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금속탐지기를 100% 믿을 수 없어 부위별 해체작업을 하는 동안 세심한 관찰이 이뤄지고 있다. 농림부 축산물위생과 이상진 서기관은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2003년부터 7원칙·12개 절차에 따라 위생관리를 하는 HCCP제도를 전면 도입하고 있다.”며 “인증을 받은 도축장도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안성 김병철·원주 조한종기자 kbchul@seoul.co.kr ■ 가짜 한우퇴치 이렇게 “족보를 만들어 가짜 한우는 퇴출시킨다.”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한우 가운데 상당수가 가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산지를 속일 경우 최고 3∼4배가량 폭리를 취할 수 있어 업자들이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입소고기를 한우고기로 속여 파는 일이 어려워진다. 농림부는 현재 시범사업으로 진행중인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2008년부터 전면 실시할 예정이다. 소에 개체 식별번호를 부여한 뒤 사육-도축-가공-판매에 이르는 모든 단계의 정보를 기록, 관리하는 제도이다. 소비자는 판매장에 있는 터치스크린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의 검색란에 쇠고기 식별번호를 입력하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료를 먹여 키웠는지, 항생제 사용량이나 도축검사때 받은 등급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다. 사육자 연락처, 도축장, 가공공장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우의 족보인 셈이다. 횡성한우(이마트 양재점), 안성맞춤한우(LG백화점 부천점), 양평개군한우(삼성플라자 분당점) 등 9곳에서 시범사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돼지고기의 이력추적제가 시범사업으로 실시된다. 농림부 관계자는 “원산지 허위표시 방지 등 유통경로의 투명성이 높아져 먹을거리에 대한 신뢰 회복은 물론 축산업의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좋은고기 고르기 “어떤 고기가 맛있을까?” 고기의 질은 품종, 연령, 성별, 사육방법 등에 의해 결정되지만 일반인들이 이를 구분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구입시 고기가 용도에 적합한 부위인지와 육질 등급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질은 근내지방도(마블링), 고기색, 지방색, 고기의 결 등을 육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 쇠고기는 근내지방이 섬세하고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부드럽다. 고급육일수록 근내지방이 많다. 고기 색깔은 선홍색을 띠면서 윤기가 나는 것이 좋은데 공기중 30분 정도 노출되면 선홍색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갈색으로 변한다. 지방색은 우윳빛을 나타내면서 윤기가 나는 것이 좋다. 사료·나이·영양섭취 상태 등에 따라 진한 노란색을 보이거나 푸석푸석해진다. 고기의 결은 곱고 미세하며 탄력이 있는 고기가 우수한 육질의 고기다. 돼지고기도 쇠고기와 비슷하다. 고기는 칼이나 망치로 표면을 자근자근 두드려주면 조직이 연해지며, 갈비는 고기에 칼집을 내어 넓게 펴 익히면 맛이 한결 부드럽다. 구울 때도 센 불에 양쪽을 한번씩 빨리 구워 막을 만들어야 고기 속의 육즙을 보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쇠고기는 심부온도가 66도 이상이 되면 살균됐다고 본다. 고기속이 약간 붉은 색을 띠더라도 바로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돼지고기는 기생충 때문에 77도 이상이 되도록 충분히 익혀서 먹어야 한다. 보관은 냉장육(숙성육) 상태로 구입한 쇠고기는 고기가 건조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랩으로 포장한 후 0∼4도 냉장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한우가 맛있는 이유는 올레인산이 수입육에 비해 많기 때문. 올리브유에 많이 함유된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으로, 고기 맛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찔찔이’ 조심 일명 ‘찔찔이’로 불리는 병든 소와 죽은 소의 불법 도축과 유통이 여전하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최근 경기도 우시장에서 불법으로 구입한 찔찔이 수십마리를 밀도살해 유통시킨 유통업자와 밀도살자를 무더기 적발했다. 이들은 우시장에서 검역원들의 진단서와 축협 출하증 없이 정상가격의 절반이나 3분의1 가격으로 찔찔이를 구입, 밀도살시켜 정상고기와 함께 서울 등으로 유통시키다 덜미를 잡혔다. 밀도살은 주로 유통업자와 도축업자가 서로 짜고 새벽시간을 이용해 도축한 뒤 정상적으로 도축된 건강한 고기와 섞어 가공과 포장과정을 거쳐 유통시키고 있다. 하지만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만 해도 마을에서 소, 돼지 등을 밀도살하는 예가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병들어 땅에 묻은 소를 파내 먹기도 했다. 유통망이 부족하고 배고프던 시절의 소설 같은 얘기이지만 실제 우리들의 삶이 한때 그러했다. 요즘에도 벽·오지를 중심으로 ‘자가도축지역’이라는 명분(고시돼 있음)으로 어느 정도 밀도살을 허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시되지 않은 지역의 허가된 곳이 아닌 작업장에서 밀도살하다 적발되면 ‘7년이하 징역이나 1억원이하의 벌금’을 감수해야 한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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