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현대사
    2026-04-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02
  • 독일 대문호가 기록한 프랑스 혁명의 마지막 페이지…연극 ‘당통의 죽음’

    독일 대문호가 기록한 프랑스 혁명의 마지막 페이지…연극 ‘당통의 죽음’

    24년 짧은 생에 4편의 작품만 남기고도 ‘대문호’ 반열에 오른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희곡 ‘당통의 죽음’이 6년 만에 한국 연극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은 뷔히너가 프랑스 혁명의 마지막 페이지를 기록한 ‘당통의 죽음’을 오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다. ‘당통의 죽음’은 뷔히너 작품 중 유일하게 그의 생전에 발표된 작품으로, 집필 당시 봉건체제를 비판하고 망명길에 오른 그가 단 4주만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문단은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에 뷔히너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리고 있다. 극은 프랑스 혁명의 마지막 국면, 실존 인물 조르주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첨예한 갈등을 다룬다. 특히 그간 열정적으로 주도해온 혁명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반기를 드는 당통의 모습은 혁명가이기 이전에 고뇌하는 개인의 생각과 자유, 그에 대한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이수인 연출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몰입한 나머지, 타인을 함부로 단순화시키는 일이 만연한 현대사회에도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면서 “진지한 화두를 지닌 고전이지만, 관객들이 장황하거나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빠르고 힘 있게 작품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통 역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준 대로 받은 대로’에서 고전을 깊이 있게 해석해낸 백익남이, 로베스피에르 역에는 엄태준이 캐스팅됐다. 여기에 이원희, 주인영, 홍아론 등 다양한 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입증한 국립극단 단원들이 작품에 생기와 깊이를 더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이의진의 교실 풍경] 이상한 나비 효과

    [이의진의 교실 풍경] 이상한 나비 효과

    1학기 중간에 교육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지금도 개개의 교사가 학교생활기록부에 접근하려면 교육부가 발급한 인증서가 있어야 로그인이 가능하다. 그런데 2학기부터는 한발 더 나아가 휴대폰 문자든 ARS든 인증을 한 번 더 거치는, 이른바 2차 인증을 의무로 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교사들이 반발한다. 이미 학교생활기록부는 교육부로부터 발급받은 인증서가 없으면 접근 불가다. 한데 거기서 번거롭게 인증을 한 번 더 거치라는 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학교생활기록부에 대한 대국민 불안감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달래 보자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차 인증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당사자 아닌 누군가가 불법으로 학교생활기록부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증서를 뚫는 자가 2차 인증을 못 뚫을 리 없다. 업무의 불편함만 가중시키는 조치였고, 이 때문에 대부분 교원단체가 반발했다. 그제서야 2학기를 앞두고 다시 공문이 내려왔다. 대입과 직접 연관 없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2차 인증을 거치지 않는 상태로 모두 원위치, 고등학교만 ‘교과별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입력 시 2차 인증을 거치는 걸로 말이다. 맞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는 중요하다. 꼭 대입의 전형 요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 정보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의 가장 민감한 정보들이 무더기로 실려 있는 게 바로 생기부다. 주민번호, 살고 있는 집 주소, 성적, 성적 관련 특기사항, 각 교과 교사가 수업 시간에 관찰한 학생에 대해 기록한 특기사항까지 한 아이의 학교생활 전체가 기록돼 있는 공문서다. 그렇기에 보안과 관련해서 해마다 현장의 교사와 교직원을 조이는 지침이 끊임없이 새로 생기고 하달된다. 그럼 현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보안을 책임지는가. 우선 담임을 제외한 개개의 교사는 일부 영역에만 접근 가능하다. 예를 들어 동아리 관련 사항을 기록하려면 자신이 맡고 있는 동아리만 열리고, 그 외에는 열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생기부를 출력하는 경우에도 보안과 관련해 절차가 나뉜다. 외부 제출용의 경우 행정실에 정식으로 발급 신청을 해야 한다. 이때 반드시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만 한다. 검토, 확인용의 경우에만 담임교사가 출력할 수 있는데 그 경우 외부 유출은 불가하고 그 자리에서 검토, 확인한 후 바로 분쇄기에 넣어 파기하게 돼 있다. 오늘도 우리 반 학생이 생기부를 출력해 달라고 왔길래 행정실 가서 정식으로 신청하라고 했다. 개인정보가 모두 담겨 있는 거니 보안에 신경 쓰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고도 꼭 물가에 어린애 내놓은 심정이라 결국 어디 흘리지 말라고 뒤통수에 대고 한 번 더 잔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깜짝 놀랐다. 졸업한 사람의 생기부가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마구 공개되고 있는 게 아닌가. 졸업생의 생기부는 학교 내 어떤 교사도 접근 불가다. 딱 두 명만 예외다. 행정실의 생기부 출력 담당자와 나이스 업무 담당 교사만 열람 및 출력 권한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구멍이 뚫릴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을 행사해 유출을 지시한 건지 정의감에 불타는 한 개인이 저지른 범법행위였는지 아직까지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식이면 법이고 뭐고 우습다. 생각해 보자. 졸업했는데도 내 아이의 생기부가 본인 동의 없이 누군가에 의해 낱낱이 털리는 상황을 말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있다 해도 선량한 다수의 사람은 언제든 자기 개인정보가 낱낱이 털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늘 불안에 떨어야만 한다. 게다가 학교 현장에서는 작금의 사태와 관련해 또 무슨 엉뚱한 조치가 내려올까 두렵다. 잘못은 엉뚱한 놈이 했는데 뒷수습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하는 상황, 이미 우리는 이런 ‘이상한 나비 효과’를 수십 년째 겪고 있기 때문이다.
  •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198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바로 제작 자유화 물결 그리고 할리우드 직배(직접배급) 영화의 상륙이다. 1985년 7월 제5차 개정영화법 시행으로 자유롭게 영화사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그 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 12월 제6차 개정영화법의 공포로, 외국영화사의 국내 진출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추석 시즌에 개봉한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에이드리언 라인, 1987)가 할리우드 영화사의 첫 직배 영화였다. 영화인들은 격렬한 직배 저지 투쟁에 나섰고, 이는 청년 영화인들의 영화계 민주화 투쟁, 또 스크린쿼터 투쟁으로 이어졌다.이 시기 한국영화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충무로에서는 이장호와 배창호의 후예들이자 영화운동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이명세 등이 등장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일련의 사회비판적 영화들을 내놓았다. 바로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로 명명된 작품 경향이다. 또 대학과 사회운동단체 등 제도권 영화계 밖에서는 한국 특유의 영화운동이라고 할 ‘독립영화’가 등장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1990년대의 르네상스를 예비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포착해 본다.●제작 자유화 그리고 직배 저지 운동 제5공화국 정권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혹은 올림픽이라는 정권 차원의 과업 때문인지 문화예술 영역을 강조했고, 예산 지원과 규제 검열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가동했다. 1984년 영화시책부터 반영된 영화예술 및 영화산업 활성화 방안도 당시 문화정책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었다. 1962년 1월 제정부터 1973년 제4차 개정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영화법이 국가의 통제를 위해 존재했다면 1984년 12월 공포된 제5차 영화법은 개방 영화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다. 영화제작업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됐고, 전격적인 독립제작제도까지 신설됐다. 영화업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제작 신고만 하면 누구나 연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1986년 하명중영화제작소를 시작으로 그해 27곳이 신고한 독립제작사는 1980년대 후반 100여곳에 달할 정도로 영화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남프로덕션(대표 정지영), 파랑새(윤명오), 새빛영화제작소(주경중), 흙바람(장경기), 장산곶매(이은) 등이 충무로 시스템의 안팎에서 독립제작에 열중했다. 문화공보부의 영화 검열 업무도 심의제로 이름을 바꿨고, 주관자 역시 반관반민 기구인 공연윤리위원회로 이관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 육성 및 자율화 정책이 추진된 배경에는 1985년부터 시작된 한미 영화협상이 있었다. 미국영화수출협회(MPEAA)의 끊임없는 압력 끝에 한국영화는 전면적인 시장 개방이 예고된 상태였다. 결국 제6차 영화법 개정(1986년 12월 31일)으로 1987년 7월 미국 영화사들이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올림픽 기간인 1988년 9월 추석 프로그램으로 UIP(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미국 메이저영화사의 연합배급사) 직배 1호 ‘위험한 정사’가 개봉했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존립 기반이 무너졌다며 격렬히 저항했다. 대부분의 영화사는 여전히 한국영화 제작보다 외화 흥행 수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9일 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철야농성으로 시작된 미국영화 직배 반대 운동은 9월 24일 수백명의 영화인이 ‘위험한 정사’를 개봉한 신영극장과 코리아극장에서 점거농성을 하며 더욱 격앙됐다. 직배 저지 투쟁은 해를 넘기면서 더욱 과격해졌다. UIP 직배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관람석에서 암모니아 통과 뱀 자루가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극장 안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1990년까지 영화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결국 직배 반대 운동은 한계를 드러내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화 창작자, 제작자, 영화관 소유주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너무나도 이해관계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6년, UIP 직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이면에 직배 영화 배급권을 둘러싼 극장주들의 암투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도전·실험 기반한 ‘코리안 뉴웨이브’ 등장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박광수, ‘성공시대’의 장선우,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명세 그리고 1988년 직배 반대 운동을 통해 영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남부군’(1990)의 정지영 등 다소 유화적인 사회 분위기에 등장한 새로운 감독군과 작품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코리안 뉴웨이브의 등장은 제작, 검열 등에 관한 영화정책의 변화와 맞물린 결과였고,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성취한 사회변혁의 기운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뉴웨이브의 선두주자는 박광수였다. 그는 데뷔작 ‘칠수와 만수’에서 장기수 아버지를 둔 만수(안성기 분)를 통해 연좌제 문제를 언급했고,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서는 탄광촌으로 도피한 운동권 대학생을 다루며 주제 의식에서도, 영화 미학에서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장선우는 영화적 화두와 미학적 스타일을 고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선우완과 공동 연출한 ‘서울황제’(원제 서울예수, 1986)로 검열의 수난을 겪은 그는 실질적인 데뷔작 ‘성공시대’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1990)과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에서 물러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연출 방향을 전환했다.박광수와 장선우가 예민한 사회적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영화언어에 대한 실험을 놓치지 않았다면, 정지영은 전통적인 영화 화법을 기반으로 한국 현대사의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는 쪽이었다. 그는 3년 동안 매달린 ‘남부군’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 남한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정면으로 다뤘고, ‘하얀전쟁’(1992)에서는 베트남전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해 갔는지 그려 내며 사회파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두 작품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을 한국영화에서 가장 먼저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정지영의 과감한 행보는 이후 한국영화가 소재와 검열의 한계를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한편 이명세는 사회 비판의 장에서 물러나 영화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열중했다. 데뷔작 ‘개그맨’(1989년 개봉)은 갱스터와 코미디 장르의 관습을 흥미롭게 비트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특별한 구성을 축조해 냈다. 이후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 ‘첫사랑’(1993) 등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감독의 화면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이처럼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단일한 범주로 묶기 힘든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국영화 세대교체이자 르네상스의 가교 사실 코리안 뉴웨이브가 공식적인 운동이나 영화 사조로서의 집단적인 흐름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이장호, 이원세, 배창호 등으로부터 비판적 리얼리즘 시각을 계승하며 영화언어의 자각을 통한 미학적 실험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전체 혹은 1990년대 중반까지로 범위를 더 넓힐 수도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의 이장호,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배창호, ‘만다라’(1981)의 임권택부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의 배용균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간한 영문 자료집 ‘Korean New Wave’에서 대상 작품들의 시기를 1980년에서 1995년까지로 설정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크게 보면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0년대 한국영화가 이룬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1980년에 활동을 재개한 이장호를 비롯해 배창호, 정지영, 신승수, 장길수, 박철수 등이 충무로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은 것과 영화운동 세대인 장선우, 박광수, 박종원, 이정국 등이 1980년대 후반 충무로에 입성한 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또한 이장호의 조감독 출신이 배창호, 장선우, 박광수 등이고 배창호의 조감독 출신이 신승수, 이명세 등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는 흐름을 엿볼 수 있다.시대정신을 새기며 새로운 영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새로운 물결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예감하게 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장미빛 인생’(1994)의 김홍준, ‘세상 밖으로’(1994)의 여균동, ‘세 친구’(1996)의 임순례, ‘넘버3’(1997)의 송능한, ‘초록물고기’(1997)의 이창동 등이 등장했고, 이들 작품은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제 의식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뉴웨이브’로 명명됐다. 물론 장선우를 위시해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역시 1990년대 내내 진가를 발휘했다. 그들의 작업은 1990년대 한국영화가 작가주의 미학과 대중적 감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모범이 되는 것이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책꽂이]

    [책꽂이]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김창길 지음, 들녘 펴냄) 15년간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가 사진 그 너머 세계의 징후들을 담았다. 1989년 6월 중국 텐안먼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2019년 오늘의 홍콩을 소환하는 식이다. 미국의 대공황,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던 김주열과 이한열의 사진 등도 함께 꺼내놓았다. 398쪽. 2만 2000원.캉탕(이승우 지음, 현대문학 펴냄) 캉탕이라는 대서양의 한 작은 항구도시에서 과거를 스스로 단절시키고 이방인이 돼 낯선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총 33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홀수 장은 3인칭으로, 짝수 장은 1인칭 시점으로 기술돼 흥미를 더한다. 지난해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240쪽. 1만 1200원포톡스(한종인 지음, 품 펴냄) 얼굴 주름살을 펴주는 보톡스에서 착안해 마음 주름살을 펴주는 책이라는 뜻으로, ‘포토 톡 스토리’(PHOTO TALK STORY)의 준말이다. 신문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하고 대학에서 편집과 인쇄매체를 연구했던 저자가 은퇴 후 경기 광주 산속마을로 이주해 전원의 삶에서 마주하는 들꽃과 자연을 담았다. 짤막한 시적 문장이 여운을 더한다. 192쪽. 1만 5000원.감각의 역사(진중권 지음, 창비 펴냄) 인공지능, 복합현실, 디지털 예술 등 각종 기술과 매체의 발달로 감각지각의 대변동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 미학자인 저자가 물질이 스스로 감각하고 사유한다고 생각했던 고대의 물활론부터 중세 아랍의 광학, 감각을 이성 아래 포섭한 근대철학, 인간의 몸과 감각체험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524쪽. 2만 5000원.도둑맞은 손(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이음 펴냄) 1992년 프랑스, 누군가 타인의 잘린 손을 버렸다. 당시 법으론 이는 ‘무죄’다. 몸은 ‘존엄한 인격’이지만 여기서 잘려나간 신체 일부는 주인 없는 ‘물건’이라 버려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파리10대학에서 법의 역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이런 불합리를 타파하기 위해 인간에게 몸의 소유권을 주고, 물·햇볕·식량·환경 조건 등과의 관계 속에 몸을 놓자고 말한다. 364쪽. 1만 8000원.하우스 오브 갓(사무엘 셈 지음, 정회성 옮김, 세종서적 펴냄) 소설가, 극작가이자 하버드대 의대 교수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 인턴인 로이 바슈의 눈을 통해 의료실습에 의한 심리적 고충과 병원 시스템의 비인간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영국의 의학 저널 ‘란셋’으로부터 “20세기 가장 뛰어난 의학 소설”이라는 평을 들었다. 324쪽. 1만 3500원.
  • 구국 영웅들의 빛바랜 흔적… 근현대사 야외박물관 산책

    구국 영웅들의 빛바랜 흔적… 근현대사 야외박물관 산책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9회 망우리’ 편이 지난달 31일 중랑구 망우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무더위와 장마를 피해 저녁 시간대에 진행한 5차례의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이 끝나고 오전 10시 평상 투어로 돌아온 날이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집결지 망우역을 출발, 지역 명물 동부고려제과와 우림시장을 둘러봤다. 우림시장 앞에서 165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부제일병원 정류장에서 내려 망우리 공원으로 향했다. 망국의 한이 서린 13도 창의군 탑을 지나 이태원 묘지 무연고자 합장묘역의 유관순 열사 추정묘에서 묵념을 올렸다. 열사에게 띄우는 편지를 써서 기억의 나무에 매다는 추도 이벤트도 가졌다. 이어 유상규, 방정환, 한용운 선생 묘를 차례로 순례했다. 망우리에 묻힌 49위의 독립지사와 문인·예술가의 자취를 둘러보기에 2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특히 유관순 열사 추정묘는 드높은 이름에 비해 열악한 참배길과 무너진 봉분, 조악한 가짜 꽃이 엄숙함을 흐리게 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동부고려제과와 망우리 공원 2곳이었다. 해설을 맡은 이지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13도 창의군 탑 앞에서 충과 효의 갈림길에 선 지도자의 선택과 독립지사들이 남긴 구국의 목소리를 조곤조곤 들려줬다. 8월의 마지막 날 서울의 동쪽 끝자락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되돌아본 뜻깊은 시간이었다.망우리는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망우리 묘지인지, 망우리 공원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공동묘지에서 공원으로 바뀐 지 반세기가 흘렀건만 아직 정체성을 찾지 못한 탓이다. 행정지명은 중랑구 망우동 산57-1이지만,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라는 ‘고리짝’ 지명이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망우리는 공원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공동묘지인 것이다. 망우리라는 지명이 망우산이라는 자연지명을 잡아먹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라는 섬뜩하고 부정적인 죽음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망우산이라는 멋진 산 이름을 활용, ‘망우산역사문화공원’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해발 282m의 망우산은 중랑구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 구리시에 걸터앉은 나지막한 산이다. 서울의 동쪽 경계인 용마산과 봉화산, 아차산과 첩첩이 겹쳤다. 망우산은 백악산~낙산~남산~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안쪽 경계 ‘내사산’과 함께 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동쪽 바깥경계 ‘외사산’의 일부를 형성한다. ‘망우’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묏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는 고개 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근심을 잊게 됐다”고 말했다고 해서 붙었다.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해 조선 역대 왕과 왕비 등 9기 17위가 모셔진 구리시 동구릉에서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동구릉 가는 길목에 자리한 망우산에 오르면 한강 이북의 도봉산과 수락산, 불암산이 줄줄이 펼쳐지고 한강 이남 검단산과 예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조선시대 서울에 사는 백성이 죽으면 서소문 밖 애오개(아현), 광희문 밖 신당, 남산 바깥 이태원, 동소문 바깥 미아리에 각각 묻혔다. 멀리 서쪽 은평구 이말산과 북쪽 도봉구 초안산은 양반이나 궁녀, 내관, 중인층의 묘역으로 쓰였다. 잘나가는 서울양반은 고향 선산까지 내려가거나 경기·충청 일대에 묻혔다. 특히 남산 밖 이태원 부근 지금의 용산 미군기지 일대는 서울 최대의 공동묘지였다. 1905년 일본군이 이 땅을 군사기지로 수용할 때 무려 117만여기의 무덤자리를 확인한 바 있다. 일제강점 후 경성 부립 공동묘지가 사대문 밖에 조성됐는데 경성이 점차 확장되면서 1933년 양주군 망우리에 83만2800㎡ 규모의 공동묘지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용산구 이태원 일대와 마포구 노고산 등지에 있던 공동묘지를 옮겨왔다. 이후 1973년까지 40년 동안 서울시민 전용 묘지 구실을 했다. 이 시기 서울에서 사망한 사람의 운구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대개 망우리로 향했다. 1963년 서울의 면적을 두 배 이상 확대하는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경기도 지역 12개 면 90개 리가 서울에 편입됐을 때 서울 동북부의 변방 망우리도 서울특별시가 됐다.망우리에는 한때 5만기 가까운 묘역이 조성됐고 폐장되기 전까지 해방과 한국전쟁, 4·19혁명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품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묘 터가 부족해지자 경기도 벽제리, 용미리, 언주리(양재) 등에 공동묘지를 조성해 화장과 이장 등이 이뤄졌다. 묘지 사용이 중단됐어도 한식, 추석 때면 조문행렬로 들썩거렸다. 무덤이 빠져나간 터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 지금처럼 숲이 우거진 것은 20년이 채 안 된다. 이전에는 봉분만 가득한 민둥산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4.7㎞의 망우리 순환로를 ‘사색의 길’로 정비했고 길가에 연보비를 세워 묘역의 주인을 알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죽음의 공간이 삶의 공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은 7360기가 남아 있다. 유관순, 한용운, 오세창, 방정환, 지석영, 박인환, 이중섭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독립유공자와 저명한 예술가, 문인재사 46명이 영면해 있다. 안창호, 송진우, 나운규, 김영랑도 한때 이곳에 묻혔다. 18세 소녀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9월 서대문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망우리로 옮길 때 2만 8000여명의 이름 모를 유해와 함께 화장돼 합장됐다. 잇따른 투옥과 순국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열사의 묘지를 망실한 때문이다. 열사의 묘는 지금껏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속 한 명으로 기억되다가 지난해 9월 기념사업회 등에서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 표지비’를 마련, 비로소 이름을 얻었다. 딱한 일이다.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당하기 전 “고국에 묻어 달라”고 간절한 유언을 남겼으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 사례와 닮은꼴이다.망우리 공원 초입 13도 창의군 탑은 항일의병의 구국 혼을 기리는 기념비적 조형물이다. 망우산 고개는 경기 동북부에서 양주를 거쳐 서울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1908년 수도를 탈환하겠다며 전국 13도에서 모인 창의군의 진격로이기도 했다. 1907년 정미7조약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총대장 이인영을 위시한 1만 의병이 들고일어난 조선말 대사건이다. 군사장 왕산 허위는 300여명의 선발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인 망우리까지 진공했으나 이인영이 부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내려간 사이 사기를 잃은 병력이 흩어지는 바람에 일본군의 공격에 패퇴했다. 이후 길을 잃은 의병항쟁은 국외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게릴라전을 벌이던 허위는 체포돼 서대문형무소 첫 사형수로 처형됐다. 동대문~신설동~청량리 구간 간선도로에 허위의 호를 딴 왕산로라는 도로명이 남아 서울진공작전 실패의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망우산은 사연 많은 산이다. 그 산에 깃든 망우리 공원은 단순히 과거의 공동묘지이거나 현재의 공원이 아니다. 마치 살아 있는 야외 역사박물관처럼 느껴진다. 명멸한 숱한 인물을 통해 근현대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2012년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15년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 까닭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0차 홍릉숲길 산책 ■일시 및 집결장소 : 9월7일(토) 오전10시, 고려대역 3번 출구(개찰구 안)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 강북 ‘랑랑랑 탐험대’ 독립선언서를 완성하라

    서울 강북구가 오는 21일 오전 10시부터 북한산 일대에서 역사체험 프로그램 ‘너랑나랑우리랑 역사야 놀자’를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역사야 놀자’는 3·1독립운동 100주년 및 한국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우리나라 근현대 유물·유적지를 엮어 구가 2017년 조성한 ‘너랑나랑우리랑 스탬프 힐링 투어’ 산책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역사야 놀자는 이동형 추리 역할게임(RPG)이다. 일명 ‘랑랑랑 탐험대’인 참가자들이 독립운동가가 돼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식으로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된다. 올해 탐험대 메인 미션은 ‘독립선언서를 완성하라!’다. 시작점인 근현대사기념관에서부터 우이동 만남의 광장까지 기점별 관문을 통과하면서 미완의 독립선언서를 완성하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초등학생 이상으로 역사에 관심 있으면 참여할 수 있다. 모집 인원은 400명으로 9일부터 20일까지 서울시 공공서비스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하거나 행사 당일 현장접수도 가능하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프로그램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향한 뜨거웠던 열망이 쉽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글로벌 In&Out] 일본 재군비화와 NHK의 한국전쟁 역사 왜곡/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일본 재군비화와 NHK의 한국전쟁 역사 왜곡/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한국전쟁은 한민족의 역사적 비극이면서 일본 현대사에도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점령 미군은 그 병력의 일부 한반도 파견으로 인해 1950년 8월 10일 일본 무장조직으로 경찰예비대를 결성했다. 이는 일본 육상자위대로 발전해 최근 아베 정권이 개헌함으로써 일본 육군으로 바꾸려고 하는 주춧돌이 됐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 우파들에게는 최근 보도된 일본 쇼와 천황의 반성을 통해 일본이 이제 ‘정의의 편이 됐다’는 인식을 자국민과 국제사회에 주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NHK가 냉전시대의 사고를 부활시키고 한국전쟁의 역사를 왜곡한 ‘조선전쟁 비록’이라는 기록 영화를 제작하고 지난 2월 상영했다. 한국전쟁은 동족의 내전이기도 하고 미소의 국제전이기도 해 두 차원에서 바라봐야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NHK는 한반도의 내부적 모순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 전쟁을 소련의 지도자인 스탈린이 처음부터 계획한 침략전쟁으로 해석하며 일본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NHK가 가장 많이 활용한 방법은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애용하는 부적절한 인용, 즉 실제 문헌에서 그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를 삭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1949년 12월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을 만났다. NHK에서는 이 회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스탈린은 핵을 보유한 것으로 인해 미국에 대항하는 자신감이 깊어지고 있었다. 스탈린: ‘미국은 우리와의 전쟁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다. 일본도 아직 부활하지 않았고 전쟁할 능력이 없다.’” 이 부분만 보면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전쟁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실제 문헌을 보자. “마오쩌둥: 가장 중요한 문제는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중국은 전쟁 이전 경제 수준까지의 회복과 국내 정세 안정화에 3~5년 정도의 평화가 필요하다. 중국의 중요한 문제 해결의 가부가 평화 가능성의 유무에 달려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가 세계 평화를 어떻게 얼마 동안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탈린 동지, 당신의 의견을 물을 것을 저에게 위임했다.” “스탈린: 중국은 지금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평화 보장은 4년 동안 평화를 누린 소련에도 중요한 문제다. 지금 중국에 위협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아직 부활하지 않아 전쟁할 능력이 없고, 전쟁을 부르고 있는 미국에는 전쟁이 제일 두려운 것이다. 유럽인들도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과 전쟁할 대상이 없는 것이다. 김일성이 중국을 침략하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평화는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우리가 협력한다면 평화는 5∼10년뿐 아니라 20∼25년, 아마도 더 긴 기간 동안 보장할 수 있다.” 스탈린이 남침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마오쩌둥을 안심시켜 주는 내용이다. 또 한 가지 예는 중국과 소련이 1950년 2월 24일 체결한 창춘철도, 뤼순항 및 다롄에 대한 협정의 다롄 군사시설에 관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중국이 일본이나 일본 동맹국의 침략으로 인해 군사행동을 한다면 양측은 공동 군사작전을 위해 뤼순항 해군기지의 사용을 허용하는 내용인데, NHK는 일본이나 일본 동맹국의 침략이라는 관건적 부분을 생략해서 “스탈린이 부동항을 얻기 위해 한국전쟁을 발발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중국이 직접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아무리 왜곡해도 한국전쟁을 “일본이나 일본 동맹국을 향한 침략전쟁”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NHK의 주장은 근거가 전무하다.
  • 서점인들이 뽑은 올해의 작가 조정래

    서점인들이 뽑은 올해의 작가 조정래

    소설가 조정래가 서점인들이 뽑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서점의 날인 11월 11일을 앞두고 제3회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작가’를 3일 발표했다. 한국 현대사 3부작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발표한 조정래 작가는 올해 ‘천년의 질문’(해냄출판사)을 출간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은 문학 부문에서 김숨 작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현대문학), 아동·청소년 부문에서 황영미 작가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문학동네)가 받았다. 인문·정치·사회·역사 부문에서는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 경제·경영·과학 부문에서는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웨일북), 실용·예술·어학·자기계발 부문에서는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동아시아)을 선정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영주서 ‘제1회 세계인성포럼’…현대 사회 인성 중요성 각성

    경북 영주시는 오는 17일부터 이틀 동안 영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제1회 세계인성포럼’을 연다고 3일 밝혔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인성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번 포럼의 첫날에는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인성교육과 인문정신’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한다. 둘째 날에는 정범진 전 성균관대 총장이 ‘인성순화와 선비 사상’을 주제로 발표하고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이 특별 강연을 한다. 이틀 동안 ▲학교에서 인성을 말하다 ▲사회에서 인성을 말하다 ▲가정에서 인성을 말하다 3개 주제로 세션 발표를 한다. 이 자리에는 조동성 인천대 총장, 벤 넬슨 미네르바대학 설립자, 인옌루 중국 제녕시 맹자서원집행원장,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등 국내외 인성분야 석학 15명이 참석한다. 종합 토론에서는 이진구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이희범 이사장, 서중일 순흥향교 전교, 장영희 영주시의회 의원, 강구율 동양대 교수, 박상환 대한검정회 선임연구원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성교육 방향과 교육기관·정부기관 역할 등에 의견을 나누고 전망을 논의한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이번 포럼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신 가치인 선비정신 의미를 되새기고 현대사회 문제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지역감정과 망국병/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지역감정과 망국병/박록삼 논설위원

    ‘지역감정’의 시원(始原)에는 그저 ‘소박한 다름’이 있을 뿐이었다. 주변 자연 환경에 따라 지역의 물산이 달랐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를 날로 먹는 곳이 있는가 하면 소금 뿌려 뒀다 귀한 날에만 밥상에 내는 산세 깊은 지역도 있었을 테다. 반대로 산나물의 몸값 또한 두 지역이 서로 달랐으리라. 물길이 가르고 산등성이가 나눈 지역들은 오랜 세월 속 말투와 풍속 등 조금씩 다른 문화를 갖게 만들었다. 지역의 다름은 ‘같음’을 공유하는 내 마을, 내 고장에 대한 애정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럼에도 ‘지역감정’이라는 단어 앞에 찰떡궁합처럼 달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망국적’이라는 표현이다.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임을 많은 이들이 공감했음을 나타낸다. ‘××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군대에서 이유 없이 구타를 당했거나 멀쩡한 혼인을 파혼당했던 이들, ‘○○도 출신 군인들만 모아 광주에 투입했다더라’라는 유언비어 등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들이다. 누군가는 박정희 정권에서 정치적 이유로 호남을 차별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대로 ‘훈요10조’며 ‘조선왕조실록’을 들먹이며 지역 차별의 뿌리 깊음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논거로 쓴다. 하지만 더이상 ‘지역의 다름’을 강조할 수 없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다고 말하기 머쓱할 정도로 시공의 차이는 없어졌다. 다양성이 존중되면서도 ‘더 큰 같음’을 만든, 눈부신 유비쿼터스 세상이다. 실제 ‘지역감정’이라는 괴물은 최근 10~20년 사이 정치, 사회, 문화 각계의 크고 작은 노력에 의해 허물어지며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 지역감정보다 더 본질적 모순이 있음에 세상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어설프게 지역감정에 기대 뭔가를 도모했다가는 고스란히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저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지역감정에 대해 “사실 지역감정의 대립은 중앙 엘리트 사이의 권력을 둘러싼 경쟁의 산물일 뿐 그것이 영남과 호남의 지역민이 갖는 문화적 특성이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내뱉은 “광주일고 정권” 등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철저히 퇴행적이라며 비판받는 이유다. 내년 21대 총선에서 부산경남(PK) 표를 얻기 위해 관 속에 묻힌 지역감정을 부활시키는 게 유리하다 여겼을지 모르겠으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천박한 의도만 내비칠 따름이다. PK의 민심도 어설픈 지역감정의 선동에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youngtan@seoul.co.kr
  • ‘장르’는 어떻게 주류가 되었나

    ‘장르’는 어떻게 주류가 되었나

    2007년 연재 시작 이래 종이책 누적 판매 부수만 600만부를 넘긴 게임 판타지 소설 ‘달빛 조각사’(로크미디어)는 이른바 ‘장르 문학’이다. 개별 웹소설 플랫폼에서 장르 소설 종합 판매량은 30만부에 육박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장르 문학 비평서, 작법서 등이 연이어 출간된다.국내 서브컬처 창작자·연구자들로 구성된 장르 전문 비평팀 ‘텍스트릿’은 최근 비평집 ‘비주류 선언’(요다)을 출간했다. 책은 장르란 무엇인지 밝히고, 장르와 현대사회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규명하고자 노력했다. 장르 문학에 관한 정의는 “고유한 서사 규칙과 관습화한 특징들이 있어서 독자들에게 별다른 정보가 제시되지 않고 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누구든지 책을 펼쳐 드는 순간 그것이 어떤 장르에 해당하는지 알게 되는 작품”(조성면 문학평론가)을 가장 보편적으로 쓴다. 책에 따르면, ‘장르 문학’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통속문학, 대중 문학 같은 용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중 문학과 장르 문학이 유사한 용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 문학은 수용자를 중심에 둔 반면, 장르 문학은 작품 자체를 규정하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소비사회에서 ‘장르’는 일정한 특징을 묶어 개별 작품의 특성을 규정해 자신이 경험한 게 무엇인지 쉽게 알도록 한다. 대상의 속성을 나타내는 요즘 시대의 화법인 ‘해시태그’처럼, 장르는 우리가 어떤 소비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반영하기도 한다. ‘비주류 선언’은 이런 특성을 반영하는 판타지, SF, 무협, 로맨스 같은 전통적인 ‘장르’부터 ‘19금’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게임 판타지, 히어로물, 케이팝 같은 최전선 장르까지 포괄한다.‘쓴다면 재미있게’(홍시)는 DC코믹스의 만화 작가이며 소설가인 벤저민 퍼시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원칙을 소개한 책이다. 장르 서사를 배척하는 편견에 맞서 작가는 “늘어지는 대화를 써야겠다면 캐릭터들에게 상황을 줘라”, “작가의 설명 충동은 독자를 모욕한다”, “폭력을 다루냐 마느냐에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에 천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순수문학과 장르 문학을 이렇게 비교한다. “순수문학 소설은 정교한 문장, 빛나는 메타포, 기저에서 도도히 흐르는 테마, 지극히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강조한다. 한편 장르문학 소설은 가장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는 게 발군이다.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장르 문학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독서에의 유인동기라는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독립운동 헌신 명문가를 배운다

    서울 강북구와 근현대사기념관은 ‘2019 독립민주시민학교 특별강좌’ 수강생을 오는 18일까지 모집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강좌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백산무역과 경주 최부자의 독립운동’ 전시와 연계돼 이뤄진다. 강의는 ▲마지막 ‘경주 최부자’ 최준의 독립운동 ▲백산 안희제의 독립운동 방략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경주 최부자 주손 최염 선생 회고) 등 최부잣집과 백산무역을 다룬다. 그 외에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서간도 독립군의 개척자 석주 이상룡 ▲이회영 형제들의 망명과 항일 역정 등의 강좌가 마련된다. 구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헌신한 다른 명문가, 자산가들에 대해서도 폭넓게 알아보는 시간이 마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며 수강료는 무료다. 오는 21일부터 10월 6일까지 3주간 매주 토·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운영된다. 교육은 근현대사기념관 2층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기자답게 선비처럼 ’출간 ...40년 글쓰기 차용범 기자

    ‘기자답게 선비처럼 ’출간 ...40년 글쓰기 차용범 기자

    ‘기자’의 사전적 의미는 신문 통신 잡지 방송 등의 분야에서 취재 편집 논평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선비’는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또는 학문을 닦은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 해놓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사람을 선비정신이 투철하다고 말한다. 곧 시대적 사명감, 청렴과 청빈을 우선가치로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게 선비 정신이다. 선비정신은 정론 곡필을 통해 사회 비평과 감시, 개인적 소신을 펴는 기자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으로 미뤄 기자와 선비는 일맥상통한다. 둘 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지조를 중요시한다. 언론인으로서 꼿꼿한 선비로 살아온 차용범기자(64)가 최근 40년 언론인 생활을 뒤돌아보는 ‘기자답게 선비처럼-차용범기자 글쓰기 40년’(미디어줌·408P)을 펴냈다. 책자에는 다양한 삶의 궤적을 솔직 담백한 필체로 담았다.그는 “어느 시대이든 기자는 조선의 선비처럼 꼿꼿한 지조, 강인한 기개와 함께, 항상 권력 감시에의 깨어 있는 근성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를 전제로 기자의 길과 글의 궤를 잘 지켜왔는지 자성하고자 한다.”라며 책 발간 동기를 적었다. 유신체제에는 20대 혈기왕성한 청년 차용범이 있었고, 이후 민완 기자로서,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드높이고 이후 공직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필은 놓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틈틈이 칼럼을 쓰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물론 현직 기자들에게도 그가 겪어온 기자 생활은 뱃사람에게 바닷길을 알려주는 북극성처럼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저널리스트로 잘살아왔는가, 나는 역사의 현장을 얼마나 잘 지켰나?, 한 시대 기자는 어디에 살아야 하는가,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면 국민이 지고 권력이 이긴다는 비장함으로 글을 쓰는가? 등은 이 책에 흐르는 저자의 자문이다. 책에는 ‘나의 저널리즘’, ‘나의 기사·나의 글’, ‘내가 만난 사람들’ 등 3부로 나눠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1부에서는 ‘나의 저널리즘’에서는 대학신문 시설, 부산일보 시절, 부산매일 시절, 미국 국무부 초청 연수 등을 통한 보람과 아쉬움,에피소드를 담았다. 동아대학 학보사 기자시절 당시 유신정권에 반대하던 동아일보를 돕고자 학보에 격려 광고를 낸 것이 화근이 돼 제적됐었다 ,우여곡절끝에 복학돼 학보사 편집국장때 또한번 필화를 겪었다.학보 기획 연재물이 문제가 돼 퇴학처분과 함께 군에 징집된것.입대뒤 학교측의 배려로 무기정학으로 낮춰지는 바람에 제대후 복학했다.당시 시대의 아픔상이다 2부에는 ‘나의 기사·나의 글’에서는 탐사보도와 사건기사, 기획특집과 해외취재, 칼럼·사설과 인물평전 등을 통해 ‘권력은 진실 앞에 결코 강할 수 없고, 언론은 진실 앞에 결코 약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3부 ‘내가 만난 사람들’에서는 이인형, 장원호, 안상영, 허남식, 김우중 등 선배와 스승, 지우(知遇) 등을 통해 깨달은 배려의 삶을 기억했다. 또 저자는 사건기사·탐사보도, 기획특집, 해외취재, 칼럼·사설, 인물평전 등의 5개 주제에 따라 자신의 상징적 기사를 선정, 취재배경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의미를 평가했다. 김민남 동아대 명예교수(언론학)는 서평에서 “ 차기자는 공공 사안에 대한 견해나 주장을 제시하는 사설과, 시대현상을 논평하며 여론형성에 이바지한 시사칼럼 등을 집필했다”며 “ 우리 근 ·현대 언론 120년 역사의 한 축을 만드는데 한몫을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는 격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라고 소개했다. “나는 일찍이 기자를 꿈꾸었고, 그 꿈을 성취해 행복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경남 하동출신으로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로 출발, 부산매일에서 사회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지냈다 .부산매일사회부장 시절에는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부산북부서 강주영 양 유괴살해사건 고문조작수사 추적보도 등 한국탐사보도의 개척에 일익을 담당했었다. 미국 미주리주립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언론자유론과 탐사보도론을 공부했다. 동아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 부경대 경성대 등에서 25년여 언론학을 강의했다. 한국기자협회부산시 지부장,부산언론인클럽사무총장(초대), 한국언론인 학회, 관훈클럽, 포럼 신사고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시 미디어센터장, 벡스코 상임감사, 부산국제광고제 부집행위원장, 부산환경공단 상임감사 등을 역임하며 부산시정 발전에도 많은 이바지를 했다. 한국언론학회 언론상 본상(1996), 봉생문화상(1991)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기획 르포 ‘낙동강 살아나는가?, 보도평론 ‘권력, 인권 그리고 언론’, 시사칼럼 ‘부산 부산사람 부산시대’, 전공교재 ‘현대사회와 매스커뮤니케이션’(공저), 인물비평 ‘부산사람에게 삶의 길을 묻다’ 등 다수 저서가 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한국영화의 역사’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의 역사’ 임권택 감독은

    52번째 ‘잡초’ 영화인생 전환점 작가적 자의식 작품에 담아 ‘취화선’ 칸 감독상… 세계적 반열193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임권택은 부친과 삼촌의 좌익 활동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몸소 겪었다.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좌우의 살벌했던 이데올로기 투쟁은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빨치산 활동을 한 부친 탓에 그의 집안도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고초를 겪던 18세의 임권택은 어렵사리 다니던 광주 숭일중학교(당시 6년제)를 관두고 혈혈단신 부산으로 떠난다. 피란지에서의 생활 역시 하루 노동으로 연명하는 고된 나날이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군화 장사를 시작하며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1950년대 중반 한국영화 제작이 활기를 띠면서, 임권택도 우연한 기회에 영화계에 들어가게 된다. 서울로 올라간 군화 장사꾼들이 ‘장화홍련전’(정창화, 1956)을 제작했는데, 영화 일을 도와달라며 그를 부른 것이다. 처음에는 제작부 일과 소품 담당을 하다,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에 들어가며 어깨너머였지만 연출을 배우기 시작한다. 28세였던 1962년 만주웨스턴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고,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많을 때는 한 해 7~8편을 만드는 직업 감독으로 다작의 시기를 거쳤다. 주로 사극과 액션, 전쟁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충무로 시스템에 순응한 감독이었지만, 대신 장르영화의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영화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은 52번째 연출작 ‘잡초’(1973)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작가적 자의식을 영화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인터뷰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실문화연구, 2003)에서 그는 “‘잡초’가 내 삶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영화라면 ‘왕십리’는 내 살고 있는 땅을 사랑하기 시작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이장호, 하길종 등 ‘영상시대’ 감독들이 새로운 한국영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구석에 몰린 느낌”을 받았다던 임권택의 회고에서, 당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라는 그의 뼈아픈 고민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왕십리’(1976)는 ‘별들의 고향’(1974), ‘바보들의 행진’(1975) 등 1970년대 ‘청년영화’들에 대한 그의 대답과도 같은 영화다. 이후 그는 ‘족보’(1978), ‘짝코’(1980),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등 작가주의 감독 임권택으로 평가되는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의 삶이 반영된 한국적인 주제를 놓고 조심스럽지만 치열하게 ‘한국’영화를 찾아가던 때인 것이다. ‘서편제’(1993)로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100만 흥행에 성공한 후, ‘춘향뎐’(2000)의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취화선’(2002)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계기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2014년 김훈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배우 안성기가 합류한, 102번째 작품 ‘화장’을 연출했다. 임권택은 한국영화의 역사, 그 자체다.
  • 뚱뚱해서 왕따 당하던 178㎏ 여성, 적성 찾아 새 삶 시작한 사연

    뚱뚱해서 왕따 당하던 178㎏ 여성, 적성 찾아 새 삶 시작한 사연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장 뚱뚱한 여학생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왕따를 당했던 20대 여성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 새 삶을 살게 된 사연이 알려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사는 29세 여성 하젤은 몸무게가 약 178㎏에 달하는 초고도비만 환자다. 어린 시절부터 뚱뚱했던 하젤은 줄곧 동급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등 어두운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1년에 추가수입으로 약 1500만원을 버는 인터넷 인기 스타다. 그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치즈케이크를 맛있게 먹거나, 배부르게 먹은 뒤 불룩 나온 배를 만족스럽게 두드리는 영상이나 사진을 공개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통해 식욕의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하젤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먹은 음식의 최대 칼로리는 1만 칼로리에 달하지만, 평소에는 영상 한 편당 2000칼로리 정도를 먹는 편이다. 자신의 개인방송 페이지의 구독자들이 요청하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그 음식을 먹은 뒤 솔직한 소감을 말하기도 한다. 하젤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지금은 먹방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행복감을 느낀다”면서 “나는 내 몸과 내 몸의 굴곡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사람들 역시 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사람들은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내게 기부를 하기도 한다”면서 “지난 1년 간 사귀어 온 남자친구도 나를 매우 지지해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알도록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여성의 개인방송 영상과 사진은 현지의 한 성인사이트를 통해서만 접속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자신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하젤은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큰 관심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취향일 뿐”이라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민중사 100년 성지, 잊혀진 강북 자부심 세울 것”

    “민중사 100년 성지, 잊혀진 강북 자부심 세울 것”

    “3·1운동부터 4·19민주화혁명까지 근현대 민중사를 보려거든 서울 강북구로 오세요.”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꿰어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라는 강북의 보배를 만들었다. 높은 빌딩숲 개발에 집착하는 대신 3·1운동의 발상지인 봉황각, 민주화의 성지인 국립 4·19민주묘지, 건국의 초석을 다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6위의 묘역 등 지역에 있는 역사문화 자산을 토대로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를 구축하면서 강북을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관광 도시로 자리매김시킨 것이다. 3선 가도를 거침없이 달려오면서 역사문화관광벨트 공정률도 70%에 달한다. 역사문화관광벨트의 핵심 사업지 중 하나로 독립자금을 댔던 최부잣집 관련 전시가 한창인 근현대사기념관에서 23일 박 구청장을 만났다. -역사문화관광벨트를 정의한다면. “역사문화관광벨트 대상지는 미아뉴타운 인근 북한산생태숲부터 시작해 우이동계곡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우이동과 수유동 일대 약 18만㎡ 부지에 봉황각, 4·19민주묘지, 애국지사 16위 묘역 등 각종 역사 시설들이 즐비하다. 도선사, 화계사 등 전통사찰과 청자가마터, 근현대 자수역사가 전시된 박을복 자수박물관,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울창하게 늘어선 솔밭근린공원 등 문화 시설도 많다. 강북구의 자산이다. 이 일대에 12개 지점으로 이뤄진 역사문화관광벨트 건립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작년에 개관한 이곳 근현대사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벨트 종착역에 가족 캠핑장도 만들고 있다. 역사문화 자원을 조명해 강북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을 높였다고 자부한다.”-역사문화벨트 완성도는. “북한산 역사문화 관광벨트는 총 12개 지점으로 이뤄져 있다. ▲우이동 만남의광장 ▲윤극영가옥 ▲청자가마터체험공간 ▲근현대사기념관 ▲냉골문화체육커뮤니티 ▲미양주민쉼터 ▲우이동가족캠핑장 ▲소나무숲길만남의광장 ▲진달래도시농업체험장 ▲예술인촌 ▲빨래골암석공원 ▲삼양체육과학공원 등이다. 이 가운데 ▲만남의광장 ▲윤극영가옥 ▲근현대사기념관 ▲미양주민쉼터 ▲삼양체육과학공원 등 5곳이 완성됐다. 나머지도 사업도 진행 중이어서 공정률이 70%에 육박한다고 볼 수 있다.” -민선 5기 구청장이 된 2011년부터 역사문화관광 도시의 완성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사업을 추진했는데. “2002년 처음 구청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8년간 야인 생활을 하면서 매일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우리 동네에 영면 중인 순국선열 애국지사 16명(묘)을 다 만났다. ‘땅속에서 있으면 묘지일 뿐이지만 끄집어 내면 완벽한 근현대사로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역사문화관광벨트를 구상했다. 첫 구청장 임기인 민선 5기 당선 이듬해인 2011년 박원순 시장에게 강북의 이 같은 역사문화 특성을 살려 근현대사박물관을 지어달라고 제안했고 역사에 조예가 깊은 박 시장께서 기념관 건립이란 아이디어로 화답하면서 사업이 빛을 보게 됐다. 아마 2002년 구청장 선거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북한산 역사문화벨트사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웃음)”-민선 7기 들어 추가로 진행하는 역사문화관광벨트 사업이 있다면. “조선시대의 브리태니카라고 부를 수 있는 임원경제지를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 선생이 강북구 번동에서 쓰셨다. 이에 해당 지점에 임원경제지 체험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또 우이 구곡(九曲) 명소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제1곡인 만경폭부터 적취병, 찬운봉, 진의강, 세묵지, 월영담, 탁영담, 명옥탄, 재간정까지 9개의 명소가 있다. 강북구 우이동 산 68-1 일원으로 우이동 계곡 약 2.3㎞ 구간이다. 1762년 조선 정조 당시 대제학을 역임한 풍산 홍씨 가문의 홍양호(1724~1802) 선생이 이름 붙인 뒤 가꾸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1곡은 사업의 복원설계 용역을 마치고 지난해 착공에 들어갔으며 8~9곡에 해당하는 부분은 복원사업을 마친 상태다. 사업이 완성돼 캠핑장, 도선사, 봉황각 등 주변 관광자원과 어우러지면서 관광벨트를 완성할 것이다. -역사문화관광이 강북의 정체성이자 먹거리라면 도시개발 사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도시재생과 역세권 개발 투트랙으로 가고 있다. 우선 강북구는 우이신설 경전철 역사뿐 아니라 기존 수유역, 미아역, 미아사거리역과 같은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한 역세권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또 수유1동, 인수동, 4·19거리를 포함한 우이동, 송중동, 번2동 등 지역을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수유1동은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됐고 인수동과 4·19사거리 일대는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에 이름을 올렸다. 인수동에 총 100억원, 4·19사거리 일대에 200억원, 뉴딜사업에 선정된 수유1동에 연계사업비까지 총 772억원을 투입한다.” -지역에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우리 지역에 재개발 재건축이 해제된 곳이 많다. 출구 전략 때문에 해제된 곳에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주차장, 여가문화활동공간 등 주민편익시설을 대거 구축해야 한다.” -3선 이후 계획이 궁금한데. “서울 시민들이 강북구의 역사문화관광벨트를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갖도록 사업을 마무리 짓는 데 전념하겠다. 구청장 이후의 계획은 구청장 임기가 끝나는 3년 후에 다시 고민하겠다. 남북 통일과 동북아문제에 관심이 있다.” -강북구만의 장점이라면. “우리 구는 전체 면적의 약 60%가 숲이다. 건강도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북한산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에 흡착돼 다른 지역보다 공기가 좋다. 실제로 북한산 둘레길 1구간이 소나무숲길인데 지리산 덕유산보다 피톤치드(살균성 물질)가 더 많다는 연구도 있다. 강북에 오셔서 깨끗한 공기와 함께 강북의 역사문화관광 자원을 만끽하길 바란다.” 진행 주현진 부장 jhj@seoul.co.kr정리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통합축제 새 지평 연 보성… 발굴 의병만 777명 ‘의향’ 알린다

    통합축제 새 지평 연 보성… 발굴 의병만 777명 ‘의향’ 알린다

    철쭉·서편제·다향 등 4개 축제 함께 개최 율포 활어잡기 페스티벌 새달까지 열려 비수기없는 사철 관광으로 지역 활성화 8년 간 못 풀었던 도시가스 공급도 해결 김철우(55) 보성군수는 전남 22개 시군 중 가장 젊은 자치단체장이다. 그러나 정치 경력이 풍부해 최연소 정치인이란 타이틀과 인연이 많다. 1998년 제3대 보성군의원에 출마해 전국 최연소 당선이란 기록을 썼다. 3선을 하며 5대에는 전·후반기 의장을 지낼 정도로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는 의리와 뚝심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민당에 입당해 지금까지 32년간 민주당을 지키고 있다. 중앙당 부대변인, 정책위원회 부의장,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해 중앙 인맥도 풍부하다. 김 군수는 지난해 취임 후 “꿈과 희망이 넘치는 보성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녹차와 소리의 고장을 넘어 군민들이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군정을 펴나가고 있다. 오랜 정치 경험으로 상황 판단과 추진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김 군수는 부임 1년 동안 이전 군수들이 엄두도 못 냈던 걸쭉한 사업들을 해결해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고 있다.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제외 조치에 따른 갈등과 맞물린 상황에서 예부터 충신열사가 많아 의향이라 불려온 ‘의병의 고장’ 알리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지난 5월 통합 페스티벌 관광객 60만여명 보성군은 축제를 통합해 새로운 대한민국 축제 패러다임을 만들었다고 20일 밝혔다. ‘사계절 비수기 없는 지역’을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시도로 지역축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년 5월 봄철 축제 통합페스티벌로 지역 모든 축제를 통합했다. ‘5월 하면 보성으로!’라는 말을 연결 짓도록 했다. 지난 5월 축제를 통합 개최해 관광객 60만여명을 불러모았다. 이 기간 경제적 파급 효과는 766억원에 이른다. 군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보성다향대축제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판소리의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서편제 보성소리축제를 동시에 열었다. 전국 최대 철쭉 군락지에서 펼쳐지는 일림산 철쭉 문화축제, 율포해변 활어잡기 페스티벌 등 4개 축제를 같이 개최했다. 군 전체를 하나의 축제장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는 다채로운 내용을 즐길 수 있게 하면 더 오랜 기간 방문객이 지역에 머무르게 하겠다는 게 전략이었다. 계절을 연결하는 ‘율포해변 활어잡기 페스티벌’은 지난 5월부터 다음달까지 매주 토요일 율포해변 일원에서 만날 수 있다. 상설화 결정에 대해 김 군수는 “지속적인 관광객 유치를 고민하던 중 청정 득량만의 제철 수산물을 활용하는 활어잡기 축제는 지역 음식점과 숙박업소뿐만 아니라 어민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으로 상설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군수의 판단은 적중해 성황을 이루면서 유료 참가자만 회차당 1000명을 육박했다. 보성읍 시내 활성화 성공사례는 진도 등 인근 시군부터 전북 무주군, 경북 예천군 등 축제 관계자들이 견학하러 올 정도다. ●보성읍 도시가스 사업 1100억원 투입 2023년이면 보성군 보성읍에 도시가스가 공급돼 주민 9000여명이 혜택을 받는다. 보성읍 도시가스 공급 사업은 2011년부터 시작돼 8년 넘게 경제성 미비 등의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태로 표류해왔다. 김 군수가 취임 1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보성읍 에너지 복지 현실화가 코앞까지 왔다. 보성군 벌교읍은 지난해 8월부터 도시가스가 공급됐으나 보성읍의 경우 한국가스공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진행 등을 자진철회하면서 사업 무산 위기에 놓였다. 김 군수는 그동안 연료비 절감 등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에 맞춰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연계한 소외지역 에너지 복지차원으로 사업 논리를 바꿨다. 인적·물적망을 총동원해 사업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 군수를 비롯한 군 직원들은 매주 1회 이상 중앙부처를 방문하고, 국회의원을 면담하고, 유관기관을 수시 방문해 보성군의 생각과 사업 논리를 피력했다. 결국 1년여 만에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김 군수는 “숙원사업 해소를 위해 국회, 중앙정부, 가스공사 등을 찾아다니며 보성읍 가스 공급의 당위성 설명과 건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며 “지난 2월 청와대 주관 전국시장·군수·구청장 초청 국정 설명회에서 보성읍에 도시가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한 게 밑거름이 돼 국무회의 통과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보성읍 도시가스 사업은 장흥~보성~벌교(58㎞)를 잇는 가스배관 주 관로 사업이다. 사업비 1100여억원이 투입된다. 도시가스 공급이 완료되면 주민들은 연간 연료비 80여만원을 절감하고, 연간 32억원(4000가구)이 절약될 것으로 예상된다.●임진왜란~광복 350년 의병사 종합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언급됐듯 ‘보성 가서 주먹자랑 하지 마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용감하게 싸운 보성군민의 용기와 패기에 붙여진 일본의 두려움이었다. 지난해 군은 ‘보성의병사’ 제작에 착수해 의병 777명을 발굴해냈다. 평민 중심의 의병들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만 기록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보성사람들이 의병 활동에 가담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성은 밀고자가 적어 일본이 의병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보성군민 전체가 의병을 지키고 의병활동에 도움을 주는 잠재적 의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성의 의병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부터 광복한 1945년까지 약 350년간 세월을 모두 포용하는 우리나라 의병사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스승이자 퇴계 이황의 제자 죽천 박광전 선생은 노령인 나이에 700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에 참전, 승리를 이끌었다. 보성에서 창의한 전라좌의병이 진주성 전투 등 전국구로 의병활동을 펼친 기록은 보성 의병이 지역방위를 넘어 전국적인 의병활동에 적극 나섰다는 것을 뜻한다. 호남에 가장 먼저 3·1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장소도 보성이다. 보성은 6·25 전쟁 전후로 민족상잔의 아픔을 담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등 의병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포괄하는 문화적 자원까지 겸비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고 선조에게 보낸 장계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를 쓴 곳이 바로 보성의 열선루다. 이순신 장군은 보성에서 10일간 머물며 수군을 모병하고, 군량미를 확보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보성의 선거이 장군, 최대성 장군 등과 함께 싸웠다.백범 김구 선생은 1898년 보성 득량면 쇠실마을에서 약 40일간 피신 생활을 했다. 광복 후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하고 다시 쇠실마을을 찾아 보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서재필 선생은 외가인 보성 문덕면 가내 마을에서 보성군수 서광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갑신정변에 참여했다. 홍암 나철 선생은 벌교읍에서 태어나 민족 대종교를 만들고, 만주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한 호남 의병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김 군수는 “보성은 녹차의 고향 다향, 서편제의 본향 예향, 충신열사가 많은 의향으로 3보향의 고장이다”며 “국가 위급 시마다 구국활동을 펼쳐왔던 남도의병의 중심지역이라는 사실을 모든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더 힘쓰겠다”고 밝혔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독립지사 발자취 새긴 서대문

    독립지사 발자취 새긴 서대문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길에는 우리 선조들의 고통스러웠지만 정의롭던 삶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습니다.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부끄러움 없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 우리도 독립지사의 정신을 따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제74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후 4시 40분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전국의 독립·민주지사와 가족 110여명,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과 민주의 길’ 제막식이 열렸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2010년부터 올해까지 10년 동안 서대문독립민주축제를 통해 매년 남겨온 독립지사의 풋프린팅 동판을 모아 길을 조성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제막식에는 2017년과 지난해 각각 풋프린팅에 참여했던 독립지사 김영관(95)씨와 승병일(93)씨, 올해 풋프린팅 대상자인 정완진(92)씨도 동참해 의미를 더했다. ‘독립과 민주의 길’은 가로 50㎝, 세로 37㎝, 두께 35㎜ 크기의 독립지사 풋프린팅 동판 30개와 19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0년 동안 우리나라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담은 가로, 세로 17㎝ 크기의 동판 100개로 조성됐다. 공원 내 3·1독립선언기념탑 진입로 양쪽 약 20m 구간에는 풋프린팅 동판이, 독립관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에 이르는 약 100m 구간에는 역사적 사건 동판이 일렬로 길을 이뤘다. 문 구청장은 제막식 직후 독립지사들과 함께 현장을 거닐며 얘기를 했다. 김영관씨가 자신의 동판을 어루만지며 “발이 작아 보여 쑥스럽다”고 말하자 문 구청장은 “고난의 역사를 싸워낸 강인한 발”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문 구청장과 독립·민주지사들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옥사에서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 사진자료를 소개한 기획전시 ‘만주벌의 별이 되어’를 함께 관람했다. 제막식 행사에 앞서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서대문독립민주축제를 기념해 그동안 풋프린팅에 참여한 독립·민주지사의 사진과 업적을 담은 기념집을 지사와 가족들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문 구청장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이어 온 독립·민주지사 풋프린팅 동판 제작의 여정이 올해로 마무리됐다”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생존자가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 올해는 독립지사 10명, 민주지사 2명 등 최대한 많은 이들의 족적을 남기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문 구청장은 “앞으로도 다른 형태로 역사를 기억해 내는 작업을 이어 나갈 것”이라면서 “매년 역사적 독립·민주사건을 한 가지씩 선정해 관련된 인물들을 기리는 작업 등 다양한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부터 15일까지 이틀에 걸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2019 서대문독립민주축제’에서는 독립군 구출을 위한 6단계 미션 게임 ‘독립군 구출 대작전’, 독립운동가 수감자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미루, 그들의 눈물을 지켜보다’ 등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과 역사콘서트 ‘1919, 그때 우리는!’ 등이 열려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태극활과 태극연 만들기, 안중근 의사 유묵 체험, 대한독립만세 티셔츠 만들기 등 20여개의 체험부스도 운영됐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내가 증인이다… 시민이 외쳐야 한다”

    “내가 증인이다… 시민이 외쳐야 한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와 우익 세력을 보면 광복 후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지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죠.”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용산구의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난 김승은(48) 학예실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국내 최초로 일제강점기 식민지 역사에 초점을 맞춰 꾸려진 이 박물관은 오는 29일로 개관 1주년을 맞는다. 김 실장은 “지난해에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 분위기가 조성돼 전쟁이 정말 끝날 것 같았는데 1년 만에 식민지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시민 1만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17억원 등으로 개관한 이 박물관은 1년간 약 1만 6000명이 찾았다.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사 관련 유물만 3만점 이상이다. 일본 시민단체와의 교류도 활발하다. 청일전쟁 기록화, 야스쿠니 신사 관련 자료 등 현재 전시 중인 400점 중 30% 정도가 일본 시민들이 박물관에 자발적으로 기증한 것이다. 실제 박물관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민초들이 일제의 차별과 수탈에 분노해 만세 운동에 나가는 등 조국 독립에 앞장섰음을 증명하는 사료도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함경도에서 발견됐다는 독립선언서가 그중 하나다. 김 실장은 “서울 종로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가 보름 만에 함경도까지 퍼졌고, 당시 독립운동이 아주 활발히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물관 측은 ‘내가 역사의 증인이다’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강제동원된 이들의 증언 영상과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손 글씨 다짐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것이다. 김 실장은 “후대의 시민들이 역사를 돌아보고, 스스로 ‘내가 증인’이라고 외치며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몰랐던 日식민지 상처… 이젠 가슴 벅찬 광복의 의미 느껴요”

    “몰랐던 日식민지 상처… 이젠 가슴 벅찬 광복의 의미 느껴요”

    “한국에 있는 일본 식민지배의 상처를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보려고만 했을 뿐인데도 너무나 많은 한국 분들이 고마움을 표시해 주셨어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한국인들이 저희 일본인들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일본 대학생 미야자키 히나코(23)에게 올 8월 15일은 여느 해의 그날보다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본에서 기념하는 ‘종전일’을 넘어서 한국인들에게 ‘광복절’로서 8·15가 갖는 의미를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와세다대 문화구상학부에서 문예·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미야자키는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올 초 한국 내 식민역사 현장 탐방 모임인 ‘민카이’를 조직했다. 민카이라는 이름은 ‘모두 함께 가보자’라는 뜻의 일본어 문장 ‘민나데잇테미요’에서 따온 것이다. 민카이는 일본 식민지 역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는 곳들을 직접 찾아가 둘러본 뒤 그로 인해 얻은 생각이나 느낌을 공유하는 한일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전체 회원은 27명으로 상당수는 미야자키가 자신의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뜻을 같이 하자고 부른 사람들이다. 절반인 14명이 일본인이다. 미야자키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도 모임 창립자로서 후배들과 함께 활동을 이끌고 있다. 민카이를 만든 계기는 올 3·1절 100주년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의 언니들과 만나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흔들었는데, 저와 달리 옆에 있던 다른 일본인 친구는 ‘이런 분위기가 무섭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됐죠.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를 모르니까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그렇다 보니 과거에 대해 알기를 더욱 꺼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야자키는 일본인 혼자서는 선뜻 직접 가볼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장소에 여럿이 함께 손잡고 가보기로 했다. 현장을 봐야 비로소 의미 있는 사고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쉽게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칫 민감해질 수 있는 토론의 형식은 배제했다. 현장 탐방은 그동안 서대문형무소를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역사 관련 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집,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가 안치돼 있는 경기 파주시의 서울시립묘지 등에서 차례로 이뤄졌다. 탐방이 진행되고 이를 사진 등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앞으로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문제 수요집회 등에도 가볼 예정이다. 미야자키는 2015년 대학에 입학한 후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한국의 문화, 역사 등에 푹 빠져들게 됐다. “사실 고등학교 때 장근석이나 씨엔블루 같은 연예인들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대해 별로 좋은 인식은 없었어요. 그저 ‘일본을 싫어하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었죠.” 미야자키는 한국의 식민역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활동들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교수님 등 학자들의 발표 중심으로 이뤄지는 학술행사 같은 것은 너무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기가 힘듭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자리가 흥미롭거나 즐거울 리가 전혀 없죠. 쉽고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역사 커뮤니티 같은 것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미야자키는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기였던 올 5월 18일에는 광주 망월동 민주묘지에도 참배를 하고 왔다. 그는 “한국에는 아픈 현대사를 후대에 증언해줄 분들이 많으셔서 다행”이라면서 “일본에는 과거 전쟁의 참화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실 어르신들이 자꾸 세상을 떠나고 계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은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반감이 거의 종교적인 수준인 사람들이 일본에 많지는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사실을 담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려고 합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