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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사실관계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담하다. 전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저지른 전쟁 범죄에 맞선 30년의 오랜 활동이 기부금의 개인적 횡령, 주먹구구식 회계 비리 등 파렴치범으로 몰리며 도매금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국제인권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의 빛나는 역사가 허물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뼈아픈 비판도 있고, 모종의 의도에 근거한 억측도 있고, 웬지 주류세력이 된 것 같으니 그냥 비판을 받아라는 식의 몰가치적 비난도 있고, 이참에 기사 조회수 좀 늘려보겠다는 언론 상업주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이죽거리며 내뱉는 썩은 웃음소리들이 있다. 1990년 11월 일본의 전쟁 범죄에 맞서 만들어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김학순 할머니로 시작해서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덜란드, 호주 등 전세계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한 수요집회는 1440차에 이르도록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의 추악한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 요구는 높았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공식 사죄 및 법적 배상도 외면해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제 정대협, 정의기억연대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적반하장의 입장을 낸다. 일본 우익 매체 산케이신문은 지난 19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반일집회를 중단하고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영훈, 이우연 등 극우세력의 이데올로그들은 “강제징용은 없었다. 위안부는 고위험 고수익 시장” 등 기존 의견을 반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힘입어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미래통합당 홍문표 의원은 “(윤미향 전 대표는) 이완용보다 더한 사람”이라는 무시무시한 비유를 했다. 더더욱 참담한 일이다.회계에 부정함이 있고, 활동에 위법함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관성에 빠져 무사안일했다면 시민들의 죽비를 내려맞아야 한다. 하지만, 전쟁 성폭력 이슈를 힘겹게 끌고오며 국제인권운동사에 길이 빛나는 활동과 성과까지 부정되어선 안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극우세력이 이용할 틈을 줘서도 결코 안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부여당(민주당 계열 옛 야당)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은 대부분 도덕성에 타격을 입을 때다. 유교적 문화가 남아 있기에 국민들이 도덕성이라는 가치에 더욱 민감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잣대는 하필 이들 진보적 가치를 가진 세력에 유독 엄격하게 들이대진다. 그래서 진보단체 혹은 진보를 지향하는 기자 개인 등에서는 스스로 ‘도덕성 컴플렉스’에 빠진 경우 또한 많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였다가는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세력의 위상 추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덕’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 수단이다. 전통적 측면에서 변화보다는 안정,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를 보수주의자로 지탱시켜줄 수 있는 핵심 무기가 도덕이다. 민족과 국가의 개념 역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반면 진보주의를 실천하고 지향하는 이라면 기존의 관성과 제도, 질서, 문화에 대한 전복을 꾀하기 마련이다. 어떤 진보의 가치도 그 배경에 도덕을 필수 기초 요소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 속 상황은 달랐다. 한국의 보수 세력의 기초는 ‘도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민족 또는 국가의 이익 또한 아니었다. 숱한 보수세력의 정치인, 기업인들은 반공, 반북이라는 이념적 토대 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시작해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보수세력의 대통령들이 보여준 부도덕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또한 기업인들 역시 권력에 막대한 돈을 건네며 자신들의 부를 더욱 키우는 데 혈안을 했다. 장삼이사 같은 평범한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 또한 필요하면 기꺼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어 대고, 또 한때는 가스통까지 들고 광장으로 나와 공권력을 위협했다. 배려, 공정, 타인 및 공동체 존중 등 도덕의 가치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기에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세력이 오히려 ‘도덕’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진보의 가치를 왼손에 들고, 도덕을 오른손에 든 채 ‘도덕적이지 못한 보수’와 맞서는 양상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자승자박이다. 필연적으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이라 하더라도 사적 욕망이 없을 수 없는 개인들의 모임이다. 공공의 가치의 제도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공동체 발전에 대한 비전 마련 등 전통적 의미의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뒤섞여서 진보세력을 이룰 뿐이다. 필연적으로 언제든 도덕적 일탈의 개인이 나올 수도 있는 구조인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에서 도덕적이지 않은 채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의기억연대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조중동이 100년 동안 저지른 과에 비하면 천분의 1, 만분의 1일 것이고, 그 역사적 기여는 조중동의 백배 천배’(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페이스북 인용)라는 항변처럼 억울함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항변 또한 많은 이들에게 ‘겨 묻은 개와 × 묻은 개’ 사이의 싸움처럼 비쳐지기 일쑤다. 이제는 시민이 나설 때다. 일탈하는 진보세력 내 개인은 따끔히 단죄하더라도 그 가치와 방향까지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옥석구분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사회의 힘은 시민에 있기 때문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52% “피해자 문제 해결 중요역할 못해” “수요집회, 계속될 필요 없다” 48% 응답 기존 시위 방식 사회적 논의 필요 방증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더불어 누구도 함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성역’에 해당했다. 위안부 문제와 세월호 참사는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있는데다 국민 대다수가 공동체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고발’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성과와 앞으로의 운동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된 까닭이다. 20일 서울신문이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 우리리서치와 공동 진행한 정의연 논란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당 이슈에 대해 28.9%는 ‘매우 잘 안다’, 52.8%는 ‘조금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81.6%가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도를 표명한 셈이다. 여성(77.5%)보다는 남성(85.8%)이, 연령별로는 40대(87.7%)와 50대(86.6%)가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 권역별로는 서울(89.3%) 거주자의 인지도가 평균을 웃돌았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85.0%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43.4%는 ‘외부 수사기관의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정의연의 지금까지의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정의연 성금 사용처와 관련해 절반이 넘는 52.5%는 ‘생존한 위한부 할머니의 복지에 주로 사용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기존의 ‘생존자 복지와 인권운동 병행’ 방식에 대해서는 30.6%만이 동의했다. 인권운동에 치중해야 한다는 답변은 16.1%에 그쳤다.이날 1440회를 맞은 수요집회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도드라졌다. 48.4%는 ‘더 이상 시위 형태로 계속될 필요는 없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에 조금 못 미친 43.8%였다. 수요집회 등 기존 위안부 피해자 운동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논란을 반영하듯 정의연 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았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연의 활동에 대해 절반을 조금 넘는 51.9%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8.9%,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3.0%였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응답은 40.4%였다. 정의연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진보와 보수 등 이념 문제와 친일, 민족 문제로 다뤄지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56.7%는 ‘부정적’, 23.6%는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관련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정의연 논란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60.0%는 ‘신뢰한다’, 34.2%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수진영의 공격’이라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정의연 전 이사장)의 주장에 국민 여론이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용수 할머니가 마녀사냥식 ‘묻지마 보도’를 이어가는 일부 언론을 겨냥해 ‘근거 없는 억측과 비난, 편가르기 등이 우리를 위해 기여할 것은 없다’고 지적한 데 대해 77.5%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3.4%에 불과했다. 후원금 유용과 회계 부정 등 정의연을 둘러싼 의혹은 해소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75.3%가 ‘공익법인을 통합 관리할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도 비슷한 취지로 읽힌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어떻게 조사됐나 이번 조사는 전국 20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설문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 범위는 ±3.5% 포인트다. 서울신문과 설문을 공동 기획한 공공의 창은 이번 조사를 수행한 우리리서치 외 15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회사가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론조사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2016년에 만들어졌다. 정부·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성금, 할머니 위해 써야”… 위안부 운동 정당성 훼손 우려

    52% “피해자 문제 해결 중요역할 못해” “수요집회, 계속될 필요 없다” 48% 응답 기존 시위 방식 사회적 논의 필요 방증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더불어 누구도 함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성역’에 해당했다. 위안부 문제와 세월호 참사는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있는데다 국민 대다수가 공동체의 문제이자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고발’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이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성과와 앞으로의 운동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된 까닭이다. 20일 서울신문이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 우리리서치와 공동 진행한 정의연 논란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당 이슈에 대해 28.9%는 ‘매우 잘 안다’, 52.8%는 ‘조금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81.6%가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도를 표명한 셈이다. 여성(77.5%)보다는 남성(85.8%)이, 연령별로는 40대(87.7%)와 50대(86.6%)가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 권역별로는 서울(89.3%) 거주자의 인지도가 평균을 웃돌았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85.0%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43.4%는 ‘외부 수사기관의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정의연의 지금까지의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정의연 성금 사용처와 관련해 절반이 넘는 52.5%는 ‘생존한 위한부 할머니의 복지에 주로 사용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기존의 ‘생존자 복지와 인권운동 병행’ 방식에 대해서는 30.6%만이 동의했다. 인권운동에 치중해야 한다는 답변은 16.1%에 그쳤다.이날 1440회를 맞은 수요집회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도드라졌다. 48.4%는 ‘더 이상 시위 형태로 계속될 필요는 없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에 조금 못 미친 43.8%였다. 수요집회 등 기존 위안부 피해자 운동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논란을 반영하듯 정의연 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았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연의 활동에 대해 절반을 조금 넘는 51.9%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8.9%,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가 23.0%였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응답은 40.4%였다. 정의연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진보와 보수 등 이념 문제와 친일, 민족 문제로 다뤄지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56.7%는 ‘부정적’, 23.6%는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관련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정의연 논란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60.0%는 ‘신뢰한다’, 34.2%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수진영의 공격’이라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정의연 전 이사장)의 주장에 국민 여론이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용수 할머니가 마녀사냥식 ‘묻지마 보도’를 이어가는 일부 언론을 겨냥해 ‘근거 없는 억측과 비난, 편가르기 등이 우리를 위해 기여할 것은 없다’고 지적한 데 대해 77.5%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3.4%에 불과했다. 후원금 유용과 회계 부정 등 정의연을 둘러싼 의혹은 해소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75.3%가 ‘공익법인을 통합 관리할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도 비슷한 취지로 읽힌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어떻게 조사됐나 이번 조사는 전국 20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 설문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 범위는 ±3.5% 포인트다. 서울신문과 설문을 공동 기획한 공공의창은 리서치뷰·리얼미터·우리리서치·리서치DNA·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한국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리서치·서던포스트·세종리서치·소상공인연구소·DPI·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5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회사가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론조사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2016년에 만들어졌다. 정부·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 주호영 “5·18은 현대사 불행” 심상정 “광주서 朱 제일 환영”

    주호영 “5·18은 현대사 불행” 심상정 “광주서 朱 제일 환영”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를 거치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온 미래통합당과 정의당이 20일 덕담을 주고 받으며 화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취임 인사차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심 대표를 만나기 위해 국회 본관 정의당 대표실을 찾았다. 심 대표는 주 원내대표를 맞으며 “엊그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행사 때 광주에서 주 원내대표가 환영을 제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주 원내대표는 광주를 방문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5·18 망언’ 등에 대해 사과했다. 주 원내대표는 심 대표의 환대에 “5·18은 현대사의 기록인데 40년 동안 해결 못 된 채 갈등이 반복됐다”며 “현대사의 불행을 빨리 정리하고 국민통합,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광주를 방문해보니 ‘5월에서 미래로’라는 문구가 있더라. 방향이 바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행사장에서 본 ‘미래로’와 통합당 당명에 담긴 ‘미래’가 가리키는 지점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심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협력도 제안했다. 심 대표는 “더이상 5·18이 정치의 볼모가 돼선 안 된다”며 “법적으로 다 정리된 문제고, 정의로운 문제를 볼모로 붙잡고 있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21대 국회에서는 초반부터 매듭을 지어야 한다”며 “4·3과 함께 (5·18을) 역사의 자리에 세워놓고, 우리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심 대표가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황교안 대표를 예방했을 때는 양측 모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당시 심 대표가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원천무효 해야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자 황 대표는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고 맞섰다. lkh2011@seoul.co.kr
  • 1980년 시민군 ‘생명’ 된 주먹밥… 2020년 빛고을 명물로 ‘부활 꿈’

    1980년 시민군 ‘생명’ 된 주먹밥… 2020년 빛고을 명물로 ‘부활 꿈’

    40년 전 광주 어머니들은 계엄군에 맞서 싸우는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뭉쳐 건넸다. 흰 쌀밥에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밥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외부로부터 고립된 1980년 5월 18~27일 10일간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 버틴 나날이었다. 전통시장인 양동시장 등지에서 장사하던 아주머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로변과 주택가 골목 등지에 솥단지를 내다 걸고 밥을 했다. 아주머니들은 “밥 먹고 힘내 이겨내자”며 밥을 뭉쳐 나눠 줬다. 광주의 ‘주먹밥’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지역에서 주먹밥이 ‘나눔’과 ‘연대’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통하는 이유다.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즈음해 주먹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 협동조합은 ‘주먹빵’을 만들어 ‘1980년 5월’의 공동체 정신을 나누고 있다. 5·18이 음식으로 부활한 격이다. 광주시도 이런 의미가 깃든 주먹밥과 주먹빵을 지역 대표음식으로 만들기 위해 레시피 개발과 판매점 확대에 나섰다. 자치구도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주먹밥 메뉴를 개발·보급하는 등 힘을 보탠다. ●광주 주먹밥 전문점 1호 ‘밥콘서트’ 19일 낮 12시쯤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 ‘밥콘서트’에는 20~30대로 보이는 남녀 2명이 ‘5180 주먹밥세트’를 시켜 놓고 자리를 잡았다. 상추와 튀김, 김가루를 묻힌 주먹밥이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한 손님은 “주먹밥세트는 당근·오이·삼겹살 등 식재료가 한데 섞이면서 맛도 좋지만 색깔도 예쁘다”며 휴대전화 카메라를 눌러 댄다. 밥콘서트는 모두 16종의 주먹밥 메뉴와 차돌박이편백찜, 불고기뚝배기 등 다양한 곁들임 메뉴를 판매한다. 대표 메뉴인 5180 주먹밥세트는 매일 주먹밥 2종류와 상추튀김, 멸치국수, 떡볶이, 샐러드 등이 곁들여진다. 가격은 5180원(부가세 제외)이다. 무등산나물주먹밥, 주먹밥과 달걀로 눈사람 모양을 꾸며낸 낙지볶음주먹밥, 여럿이 함께 먹을 수 있는 플라워주먹밥, 아이들의 입맛을 고려한 돈가스주먹밥 등도 있다. 밥콘서트는 지난 2월 초 문 연 ‘광주 주먹밥 전문점 1호’다. 그러나 이틀 만에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발생하면서 애로를 겪고 있다. 청년 셰프 권영덕(31) 대표는 “주먹밥을 광주 상징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뛰어들었으나 감염병 여파로 손님은 크게 늘지 않는다”며 “그러나 미래를 보고 새로운 메뉴 개발과 맛 개선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아시아문화전당·충장로·오피스 빌딩 등과 이웃해 젊은층이 많이 오가 이들의 입맛 공략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2만여명이 오가는 호남의 관문 호남고속철(KTX) 광주송정역사 2층 대합실에도 주먹밥을 파는 ‘광주주먹밥·오백국수’점이 있다. 특히 외지인들이 드나드는 만큼 광주 주먹밥을 전국으로 알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국수를 곁들인 주먹밥세트가 주메뉴다.최근 광주를 다녀간 김희택(57·서울 동작구)씨는 “서울행 열차 출발 시간이 빠듯해서 주먹밥을 시켜 먹었다”며 “김가루와 멸치·참치·깨소금·참기름 등이 섞인 주먹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역에서는 주먹밥이 간편 대용식으로 인기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지난 3월 중순, 광주 서구의 한 식당에는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이 새벽부터 몰려들었다. 코로나19 극복에 고군분투하는 대구 의료진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보내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들은 1980년 5월에 그랬던 것처럼 맛깔스런 주먹밥 도시락 518개를 만들었다. 반찬은 연잎줄기 나물·제육볶음·바나나·방울토마토·삶은 브로콜리였다. 도시락엔 ‘힘내요 대구! 응원해요 광주!’란 응원 엽서를 동봉했다.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40년 전보다 고급 재료가 훨씬 많이 들어가 맛도 뛰어나고 당시 나눔과 연대의 정신까지 담았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지난해부터 전문가 11종과 시민공모 20종의 레시피를 개발해 8곳에 보급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취임한 이후 ‘상상과 나눔’이 깃든 주먹밥을 브랜드화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5월 광주대표음식 페스티벌과 100인 토론회를 갖고 주먹밥, 상추튀김, 무등산보리밥, 송정리떡갈비, 오리탕, 육전, 계절한정식 등 7개 종목을 대표음식으로 선정했다. 같은 해 6~7월 전문가가 참여, 11종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힘난다찰주먹밥, 힘난다주먹밥, 묵은지불고기주먹밥, 깍두기볶음주먹밥, 떡갈비주먹밥, 매콤낙지주먹밥, 애웁닭주먹밥, 나물비빔주먹밥, 멸치주먹밥, 햄꽃주먹밥, 계란주먹밥 등이다. 이어 주먹밥 레시피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 공모전과 전문점 1곳·판매점 8곳을 지정했다. 올해부터는 광주디자인진흥원 주도로 이미지 브랜드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전문점을 육성하고 판매업소를 확대한다. 전일빌딩 245 4층에 주먹밥 체험관을 운영하고 ‘광주마케팅 청년트럭’의 주먹밥 판매 등도 지원한다. 또 포장 디자인과 창업 컨설팅 지원, 주먹밥 페스티벌, 온·오프라인 홍보 등으로 주먹밥을 널리 알린다.●마을협동조합, 오월주먹빵도 출시 ‘오월주먹빵을 아시나요.’ ‘5·18 스토리’를 입힌 주먹빵도 관심을 끌고 있다. 밀·보리 주산지인 광주 광산구 본량 마을 주민들은 지난 3월 ‘본빵협동조합’을 구성했다. 33명이 4900만원을 모았다.지역에서 나는 우리밀과 보리를 소비하고, 빵을 판 수익금은 마을 축제비용으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역의 한 제빵사가 재능기부로 제빵기술을 익히면서 모두 4종류의 빵을 개발했다. 마을 인근 건물을 임대해 제빵기를 들여놓고 훈련을 거듭했다. 3개월 만인 지난 6일 처음으로 ‘오월주먹빵’을 만들어 냈다. 빵 속은 양파와 느타리버섯 등을 다져 넣었다. 겉은 씹는 맛이 날 정도로 적당히 딱딱하고 속살은 부드러운 감칠맛이 난다. 제빵과 재료 준비 작업에는 보통 주민 조합원 5~10명이 번갈아 가면서 참여한다. 오월주먹빵은 입소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합 측은 이날 하루 동안 주먹빵 700개를 만들어 675개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8개들이 한 세트가 2만원, 낱개는 2500원이다. 광산구 공익지원센터가 빵에 스토리를 입히고 마케팅을 지원한다. 센터는 최근 처음 출시된 빵에 ‘오월주먹빵’이란 이름을 붙였다. 주먹빵 포장지에는 5·18 당시 가슴 먹먹한 사연을 새겨 넣었다. “쫓아오는 공수부대를 피해 건물 2층 미용실로 뛰어들었다. 미용실 주인은 ‘내 아들’이라며 공수부대원을 쫓아냈다. 아주머니가 수협건물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얼굴이라도 뵐 생각에 농성동 집으로 갔다. 속옷을 갈아입고 아버지께 큰절을 드리고 나오려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흘렸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 ‘엄마를 찾아서 금방 올게요’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등이다 공익지원센터는 사연 33개를 한국현대사료연구소가 1990년 발간한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에서 뽑아냈다. 노란색 포장지마다 한 문장씩을 새겨 넣었다. 빵 8~10개들이 1세트를 사면 사연이 각각 다른 포장지가 눈에 띈다. 구매자에겐 빵 외에 ‘오월서한’ 33개 전부를 정리한 사연 묶음집, 5·18민중항쟁 10일간 시간대별 기록 등도 함께 배달된다. 광주의 오월을 알리는 자료가 빵 포장지에 담겨 자연스레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공익지원센터 홍보팀 김창헌씨는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할 때 마을사업설명회, 참여자 모집, 서류 보충 등 허드렛일을 지원했다”며 “오월주먹빵 판매가 잘되면 노인 부업과 자녀 일자리 마련 등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청년들의 교과서 밖 5·18… 기억을 공유하고 오월을 기록하다

    청년들의 교과서 밖 5·18… 기억을 공유하고 오월을 기록하다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리는 청년들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스스로 5·18민주화운동을 알릴 플랫폼을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고, 책을 썼다. 청년들은 역사적 사건의 발생 순서를 외우라고 강요하는 수업방식은 후지다고 입 모아 말했다. 영화와 전시처럼 교과서 밖 세상에서 만난 5·18이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였다고 했다. 미래세대에게 5·18민주화운동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이들은 답을 알고 있다. ‘518NOW’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뜻 깊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던 서울 청년들이 모인 단체다. 문화기획을 연결고리로 만난 11명의 청년들은 플랫폼(518now.kr)을 만들어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를 알리고, 5·18민주묘지 버스정류장에 있던 토지 매매 광고를 5·18민주화운동 광고로 바꾸기 위해 모금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광주와 5·18민주화운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다양했다. 유지원(23)씨는 지난해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 연대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이인주(26)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 ‘26년’ 등을 보고, 장은지(25)씨는 광주를 여행하다가 5·18민주화운동에 빠졌다. 이들은 딱딱한 교과서 속 5·18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보거나 직접 겪은 경험이 더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탁율민(34)씨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학습 기억을 떠올려 보면 교과서 장면보다는 매년 5월 18일마다 학교에서 묵념을 하고, 부모님과 민주묘지를 지나치면서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씨는 “청소년 시기에 글로만 정보를 받아들이면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콘텐츠로 5·18민주화운동에 접근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여성 2인조 독립큐레이터 ‘장동콜렉티브’ 김소진(25)씨와 이하영(25)씨는 5·18민주화운동이 얼마나 잔혹했는지에 집중하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이뤄 낸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시작한 ‘오월식탁’ 프로젝트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오월식탁은 90년대생 청년들이 광주 할머니 5명을 만나 5·18민주화운동 때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머니의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어 먹는 프로젝트다. 올해는 서울기록원에서 전시 중이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새롭게 2명의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를 선보인다. 광주에서 자란 김씨가 그날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5·18민주화운동을 익숙하게 배웠던 것과 달리 충남 홍성 출신인 이씨는 5·18민주화운동을 잔인한 일로 기억했다. 이씨는 “6살 때 사진전시실에서 그날의 사진을 보고 잔혹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중학생이 된 후 광주 비엔날레에서 희생자의 눈을 감겨 드리는 전시를 보고 나서 비로소 두려움을 극복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학교에서 배웠던 5·18민주화운동은 숫자와 화살표로 기억한다”며 암기식 교육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씨는 “앞으로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해 나갈 사람들은 우리 세대인 만큼 더 많은 또래와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젊은 세대들도 5·18민주화운동을 상관없는 옛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삶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회사원인 오지윤(31)씨와 권혜상(29)씨는 광주와는 연고가 전혀 없는 수도권 청년이다. 두 사람은 2017년부터 2년간 12명의 20~30대 청년들에게 ‘광주’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 내용을 엮어 지난달 ‘요즘. 광주. 생각.’이란 책을 펴냈다. 회사 선후배인 둘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5·18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생겼다. 오씨와 권씨는 “청소년 시절 배웠던 5·18민주화운동은 시험을 위한 공부였다”면서 “역사 교육이 고조선, 청동기 시대 등 고대사를 자세히 배우고 4·19, 5·18, 6·10과 같은 현대사는 대충 훑고 지나가지 않나”라고 회상했다.영화 ‘택시운전사’는 무엇이 달랐을까. 권씨는 “서울에 살던 외부인이 광주에 들어가 5·18을 겪는 이야기여서 수도권 사람으로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씨는 “사건의 잔혹함보다 시민들의 자발성, 연대의식 등 긍정적인 가치를 부각시킨 영화라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5·18 교육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오씨는 “지금까지는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미래세대가 스스로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새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시험용 인식되는 5·18… 현재로 이어지는 나눔과 배려 가르쳐야”

    “시험용 인식되는 5·18… 현재로 이어지는 나눔과 배려 가르쳐야”

    교사들이 말하는 교과서 속 5·18과 대안 교재엔 민주화운동 단편적 나열돼 한계 사건 깊게 다루는 ‘계기수업’ 통해 보완 문답식 인정교과서로 생생한 역사 습득 “40년째 왜곡·막말 바로잡아야 인식 변화”40년 전 그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싸운 역사는 오늘날 청소년에겐 ‘시험 범위’가 돼 버렸다. 서울신문이 만난 10대 대부분은 5·18민주화운동을 과거 사건으로 여겼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묻는 말에는 한참을 망설였다. 건강한 시민을 길러 내야 할 학교는 5·18 영령이 남긴 민주 정신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걸까. 해답을 찾기 위해 현직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3명을 만났다. 김영주(40·14년차) 광주여고 교사, 박래훈(42·16년차) 전남 순천 별량중 교사, 이희정(34·2년차) 강원 원주 북원중 교사다. 김씨와 박씨는 올해 광주교육청의 5·18 인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이씨는 원주에서 광주까지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으러 다닐 정도로 더 생생한 수업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신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일어난 5·18을 옛날 사건으로 느끼는 건 당연하다”며 “과거의 정신이 현재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지난해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주먹밥이 선정됐듯이 5·18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은 시민들의 나눔과 배려”라면서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라고 말했다. 이씨는 “5·18은 박제된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반민주적인 요소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도록 하는 힘”이라며 “학생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가르치려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교사들은 현재 교과서와 현장의 한계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현재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5·18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이 단편적 사건으로 각각 나열돼 있다”며 “학생들에게 ‘또 독재하고 또 저항한다’는 인상만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씨는 “교과서에는 당시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직전까지 저항한 민중의 희생과 성숙한 시민 의식, 자치 능력이 치밀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적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는 계기수업이 부족한 교과서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 광주·전남 지역 학교들은 5·18기념재단과 함께 인정교과서를 개발해 수업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김씨는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5·18 등 계기수업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면서 “교사 입장에선 학교 관리자가 ‘지역 정서에 맞지 않다’며 눈치를 주면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역 특색과 교사 개인의 역량을 살린 다채로운 수업이 많아지면 좋겠다”며 “광주가 5·18이라면 대구는 2·28민주운동, 제주는 4·3사건, 강원은 분단과 통일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계기수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생생한 역사를 가르치려면 교사가 먼저 배워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정교과서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박씨는 “광주교육청에서는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5·18 연수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면서 “5·18을 모르는 교사가 얼마나 되나 하겠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단순히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교사가 자세히 알아야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5·18 인정교과서는 학생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단 최근의 관점까지 포괄한 것”이라며 “사건 이후 트라우마, 역사 왜곡, 다른 나라와의 연대, 청소년과 여성의 입장 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를 모두 5·18이라는 소재로 얘기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40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5·18 왜곡과 막말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5·18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이 드러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발포 명령자도 모른다.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교육 현장에서도 청소년에게 5·18의 가치를 바르게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과 혐오, 5·18에 대한 ‘낙인’은 청소년이 아니라 기성세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사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5·18 교육? 지금의 우리와 연결고리 찾는 데부터 시작해야”

    “5·18 교육? 지금의 우리와 연결고리 찾는 데부터 시작해야”

    현직 역사교사 3인이 말하는 “5·18 교육 이렇게 하자” 단순 서술 아닌 스스로 묻고 답해야‘주먹밥’처럼 나눔과 배려 가치 연결 교사도 적극적 학습하되 독선 경계해야왜곡·막말 처벌하는 정부 역할도 필요40년 전 그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싸운 역사는 오늘날 10대 청소년에겐 ‘시험 범위’가 되어버렸다. 서울신문이 만난 많은 청소년이 민주화 운동을 과거의 일로 여겼고, 내용도 제대로 몰랐다. 현재 학교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주고 있을까. 미래 세대에게 5·18을 포함한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현직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3명을 만났다. 김영주(40·14년차) 광주여고 교사, 박래훈(42·16년차) 전남 순천 별량중 교사, 이희정(34·2년차) 강원 원주 북원중 교사다. 김씨와 박씨는 올해 광주교육청의 5·18 인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이씨는 강원도에서 광주까지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으러 다닐 정도로 더 생생한 수업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교과서 단편 서술 한계…스스로 생각하는 수업 필요” 근무 지역도 기간도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으로 “학교 수업에서 단순히 과거 기록을 전하는 데서 벗어나 현재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어나기도 전이니 당연히 옛날 사건으로 느껴지겠지만, 과거의 정신이 현재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주먹밥이 선정됐듯, 5·18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고 나선 시민들의 나눔과 배려”라면서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라고 말했다.이씨는 “5·18은 박제된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반민주적인 요소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도록 하는 힘”이라면서 “학생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가르치려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사들은 현재 교과서와 현장의 한계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현재 근현대사 부분에서 5·18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이 단편적 사건으로 각각 나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한 흐름인데도 시민들의 역량이 축적되는 과정을 알 수 없고, ‘또 독재하고 또 저항한다’는 인상만 줄 수 있다”면서 “민주화 운동끼리 연결 지점이 없어 피해 내용 중심으로 서술된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교과서에는 당시 계엄군의 도청 진압 직전까지 저항한 민중의 희생과 성숙한 시민 의식, 자치능력이 치밀하게 나오지 않는다”면서 “단순 사건 나열만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민주화 운동은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더 심도 있게 교육할 수 있는 계기수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5·18 기념재단과 함께 인정교과서를 개발해 학교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김씨는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5·18 등 계기수업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면서 “교사 입장에서 학교 관리자가 ‘지역 정서에 안 맞다’며 눈치를 주거나, 일괄적으로 강요하는 교육은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업을 준비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독선에 빠지지 않게 관리하고 소통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계기수업 격차 커…지역 특색 살려야 이씨는 “지역과 교사 개인마다 역량이 차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오히려 이런 특색을 살려 다채로운 수업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광주가 5·18이라면 대구는 2·28 민주운동, 제주는 4·3사건, 강원은 분단과 통일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전문성을 보장하도록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학생들에게 생생한 역사를 가르치려면 교사가 먼저 나서서 배워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정교과서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박씨는 “광주교육청에서는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5·18 연수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면서 “5·18을 모르는 교사가 얼마나 되나 하겠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단순히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교사 스스로 자세히 알아야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인정교과서는 학생들 스스로 질문, 응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단 최근의 관점까지 포괄한 것”이라면서 “사건 이후 트라우마, 역사 왜곡, 다른 나라와의 연대, 청소년과 여성의 입장 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를 모두 5·18이라는 소재로 얘기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4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왜곡과 막말 등에 대해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박씨는 “5·18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이 다 드러났다고 하지만, 당장 발포 명령자도 모른다.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이런 역할을 다 해야 교육 현장에서도 청소년에게 5·18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지역 차별적인 인식이나 5·18에 대한 ‘낙인’은 청소년이 아니라 기성세대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오히려 미안하다”면서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역사를 사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내가 ‘5·18 덕후’가 된 이유…각자의 방식으로 ‘오월’을 기억하는 청년들

    내가 ‘5·18 덕후’가 된 이유…각자의 방식으로 ‘오월’을 기억하는 청년들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리는 청년들이 있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에 태어나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스스로 5·18민주화운동을 알릴 플랫폼을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고, 책을 썼다. 청년들은 역사적 사건의 발생 순서를 외우라고 강요하는 수업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입 모아 말했다. 영화와 전시처럼 교과서 밖 세상에서 만난 5·18이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였다고 했다. 미래세대에게 5·18민주화운동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이들은 답을 알고 있다.5·18 40주년 행사 한눈에…11명의 청년 모임 ‘518NOW’ ‘518NOW’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뜻 깊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던 서울 청년들이 모인 단체다. 문화기획을 연결고리로 만난 11명의 청년들은 플랫폼(518now.kr)을 만들어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를 알리고, 5·18민주묘지 버스정류장에 있던 토지 매매 광고를 5·18민주화운동 광고로 바꾸기 위해 모금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광주와 5·18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양했다. 유지원(23)씨는 지난해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연대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이인주(26)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 ‘26년’ 등을 보고, 장은지(25)씨는 광주를 여행하다가 5·18민주화운동에 빠졌다. 이들은 딱딱한 교과서 속 5·18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보거나 직접 겪은 경험이 더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탁율민(34)씨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학습 기억을 떠올려보면 교과서 장면보다는 매년 5월18일마다 학교에서 묵념을 하고, 부모님과 민주묘지를 지나치면서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씨는 “청소년 시기에 글로만 정보를 받아들이면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콘텐츠로 5·18민주화운동에 접근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그날의 공동체의식에 주목…독립큐레이터 ‘장동콜렉티브’ 여성 2인조 독립큐레이터 ‘장동콜렉티브’ 김소진(25)씨와 이하영(25)씨는 5·18민주화운동이 얼마나 잔혹했는지에 집중하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이뤄낸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시작한 ‘오월식탁’ 프로젝트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오월식탁은 90년대생 청년들이 광주 할머니 5명을 만나 5·18민주화운동 때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머니의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어 나눠 먹는 프로젝트다. 올해는 서울기록원에서 전시 중이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새롭게 2명의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를 선보인다. 광주에서 자란 김씨가 그날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5·18민주화운동을 익숙하게 배웠던 것과 달리 충남 홍성 출신인 이씨는 5·18민주화운동을 잔인한 일로 기억했다. 이씨는 “6살 때 사진전시실에서 그날의 사진을 보고 잔혹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중학생이 된 후 광주 비엔날레에서 희생자의 눈을 감겨 드리는 전시를 보고 나서 비로소 두려움을 극복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학교에서 배웠던 5·18민주화운동은 숫자와 화살표로 기억한다”며 암기식 교육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씨는 “앞으로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해나갈 사람들은 우리들이니까 더 많은 또래와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청소년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을 상관없는 옛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삶과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청년들은 광주를 어떻게 기억할까? 직접 들었다…오지윤·권혜상 작가 회사원인 오지윤(31)씨와 권혜상(29)씨는 광주에 연고가 전혀 없는 수도권 청년이다. 오씨와 권씨는 2017년부터 2년간 12명의 20~30대 청년들에게 ‘광주’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 내용을 엮어 지난달 <요즘. 광주. 생각.>이란 책을 펴냈다. 회사 선후배인 둘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5·18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생겼다. 오씨와 권씨는 “청소년 시절 배웠던 5·18민주화운동은 시험을 위한 공부였다”면서 “역사 교육이 고조선, 청동기 시대 등 고대사를 자세히 배우고 4·19, 5·18, 6·10과 같은 현대사는 대충 훑고 지나가지 않나”라고 회상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무엇이 달랐을까. 권씨는 “서울에 살던 외부인이 광주에 들어가 5·18을 겪는 이야기여서 수도권 사람으로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씨는 “사건의 잔혹함보다 시민들의 자발성, 연대의식 등 긍정적인 가치를 부각시킨 영화라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새로운 5·18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금까지는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미래 세대가 스스로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새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트럼프 “이번 대선으로 中·오바마정부 심판”

    트럼프 “이번 대선으로 中·오바마정부 심판”

    ‘백신 탈취·러 스캔들’ 묶어서 또 비난‘오마바 행정부는 제조업 일자리 수백만개를 중국에 빼앗겼고 중국은 현재 미국의 백신을 훔치려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오바마게이트’를 언급하며 국면 전환을 꾀하는 가운데 행정부 관료들이 급기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중국을 동급으로 놓고 싸잡아 비판했다. 코로나19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밖으로는 중국, 안에서는 오바마를 동시 타격하는 전략을 펴는 것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17일(현지시간) ABC방송 인터뷰에서 오는 11월 대선을 두고 “여러모로 중국에 대한 국민 투표가 될 것”이라며 “오바마가 조 바이든의 공보비서라는 새 일을 얻어 기쁘다. 그의 행정부는 수백만개 제조업 일자리를 중국으로 떠나가게 한 무능 그 자체였다”고 맹공을 가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제를 3년 반 만에 건설했는데 중국은 약 30일 만에 끌어내렸다. 나는 중국을 비난한다”며 “바이든은 중국의 오랜 친구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맞선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과 무역협상에 서명했고 중국은 지적재산권 도둑질을 멈추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중국 정부가 미국의 백신을 훔치려 한다는 믿을 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며 “그들은 폭리를 취하고 세계를 인질로 잡아두기 위해 그 백신을 사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오바마 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적 범죄”이자 “사기극”이라는 주장을 이어 갔다. 그는 “이 일로 사람들은 감옥에 가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그 사람들(오바마와 바이든)은 부패했다”고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와 중국을 묶어 공격하는 것은 코로나19 대응 미흡과 경기 침체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국면 전환과 지지층 결집을 모색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52만 7664명(한국시간 18일 오후 3시 기준), 사망자는 9만 978명이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오월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아빠는 딸의 역사가 됐다

    “오월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아빠는 딸의 역사가 됐다

    다시 오월, 父女의 이야기 1980년 5월 폭력의 기억은 여전히 트라우마다. 40년이 흘렀지만 누군가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 닥치면 지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조건반사처럼 그 끔찍한 고문과 조사관이 떠오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매를 맞다 정신을 잃으면 고향집 앞 마당이었고, 양동이 물로 정신이 돌아오면 505보안부대 조사실이었다. 그렇게 이봉주(59) 조선대 물리학과 교수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그의 나이 19세, 광주 금호고 2학년(1년 휴학)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소년은 중년이 됐고, 당시 소년만 한 나이의 딸이 생겼다. 딸 재민(19)양은 올해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했다. 이 교수는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고문당한 얘기를 털어놨고, 종종 그때 얘기를 나누곤 한다. 이 교수는 딸과 그 또래에게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끔찍했던 경험 탓인지 혹시라도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라고 얘기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럽다. 다만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딸 재민양은 아빠에게 “모진 고문에도 살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아빠의 트라우마가 더는 우리 사회에서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13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했던 옛 전남도청 앞 광주 동구 금남로의 한 사무실에서 이들을 만났다.●까까머리 소년, 계엄군 만행에 분노하다 40여년 전 소년은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는 당시 박정희 군부 정권을 대놓고 비판은 못했다. 다만 가끔 가족에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소년은 스스로 찾아봤다. 당시 ‘신동아’ 잡지에 실린 유신헌법을 비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대 김상진(당시 26세) 열사의 기사를 읽고 ‘고귀한 죽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고한 희생을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본가가 전남 나주였지만 광주에서 유학했다. 1980년 금호고 2학년 시절 3㎞ 거리에 전남대가 있었다. 비상계엄령이 확대될 무렵 등교할 때마다 대학생 형들의 시위를 목격했다. 교련복 입은 전남대생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를 외치며 전경, 군인들과 대치했다. 그리고 대학생 형들이 계엄군이 휘두르는 곤봉에 맥없이 꼬꾸라지는 모습을 봤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그때 소년은 아버지의 혼잣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년은 17일부터 시위에 참여해 구호를 외쳤다. ●“광주는 어떠냐” 묻고 따라오라더니 고문 20일 광주 지역 중·고등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때마침 나주에 계신 부모님이 모내기 일손이 부족하다고 연락이 왔다. 소년은 본가에 내려갔다. 광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22일 오후 2시쯤 큰집 사촌 형이 영산포 시내에 시민군 버스가 돌아다닌다고 전해 줬다. 설마 싶었다. 영산포 시내로 나갔는데, 진짜였다. 손을 번쩍 들고 광주에서 영암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세워 탔다. “김대중 석방하라, 전두환 물러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구호는 세 가지였다. 이후 영암군에서 지프차와 군용레커차, 앞 유리가 깨진 광주고속버스 등을 포함해 차량 7~8대가 일렬로 행진했다. 시민군은 인근 경찰 지서(지금의 파출소)에서 카빈소총과 폭탄 등 무기를 빼냈다. 시민군은 무기를 확보하고자 전남 지역으로 내려온 듯했다. 소년도 카빈소총과 철모, 탄띠로 무장했다. 시민군은 해남 군부대로 향했으나 더는 진격하지 않고, 원래 목적지인 광주로 향했다. 그러나 광주로 가는 길목은 모두 계엄군에 의해 차단당했다. 하늘에선 헬기 소리가 들렸다. 시민군 대열은 광주 효촌동 앞 연탄공장, 송정리 광주비행장 입구, 송정기차역 등에서 모두 저지당했다. 특히 광주비행장 입구에서 계엄군 탱크가 포신을 시민군 쪽으로 돌렸을 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미 하루가 지난 터라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았다. 23일 오전 10시쯤 나주 본가로 돌아가기 위해 광주비행장에서 남쪽인 영산포를 향해 걸었다. 송정리 민가에 들러 카빈소총 등을 맡겼다. 어떤 마을 경찰 지서(파출소)를 지나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이 “광주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데모하고 그럽디다” 하고 답했더니 잠깐 따라오라고 그랬다. 따라갔더니 파출소 숙직실이었다. 그는 무전기로 “폭도 2명을 잡았다”고 보고했다. 30분 만에 장갑차가 왔다.●19살, 인간의 잔인함과 비참함의 끝을 보다 끌려간 곳은 광주비행장 조사실이었다. 이름과 나이, 부모의 직업을 비롯해 그간의 행적을 모두 불라고 했다. 겁에 질린 소년은 빠짐없이 사실대로 다 말했다. 무장했다는 사실까지 털어놨다. 폭행은 가차 없었다. 고등학생이 공부 안 하고 시위에 참여했다고 무수히 맞았다. 한 시간쯤 조사받고 광주 서구 화정동에 있는 505보안대로 인계됐다. 백열전구 하나 켜진 조사실은 입구부터 피비린내가 났다. 2차 조사가 시작됐다. 물고문도 두 종류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코와 입에 천을 대고 물주전자를 붓는 것과, 물을 계속 먹이고 뛰게 하는 것. 사람이 많이 맞으면 피오줌이 나온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소년은 그곳에서 인간의 잔인함과 비참함의 끝을 봤다. 매를 피하려고 개처럼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자신을, 살려 달라고 비는 소년을 비웃으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성인 남성을 목격했다. 돌이켜 보면 정신이 나갔었다. 눈 감으면 나주 집 마당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 뜨면 고문이 시작됐다. 조사가 끝나도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수감실은 파놉티콘(원형감옥) 형태였다. 보안사 직원 한 명이 모든 재소자를 볼 수 있다. 재소자들이 이 직원을 정점으로 일렬로 무릎 꿇고 있는데, 자세가 흐트러질라 치면 보안사 직원은 군화로 무릎을 짓이겼다. 역설적이게도 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수복되는 날, 소년은 한결 편해졌다. 잡혀 온 사람이 많아지면서 감시도 매의 빈도도 낮아진 것이다. 그렇게 103일간 구속돼 고문을 받았다. 속으로 ‘10년 정도 옥살이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 검찰은 소년에게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40년 후… 진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 소년은 1982년 조선대 물리학과에 진학했고, 일본에 유학을 가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0년 모교로 돌아와 물리학과 교수가 됐다. 이 교수는 유학 생활이 힘들 때면 5·18민주화운동 때 받았던 고문을 생각했다. 그러면 조금은 위안이 됐다. 딸 재민양은 1993년 결혼해 낳은 둘째다. 딱 40살 차이 나는 늦둥이다. 이 교수는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 5·18민주화운동 행사에 데려가 그간 겪었던 일들을 설명해 줬다. 당시 재민양은 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교과서에서만 듣던 얘기가 아빠의 역사일 줄은 몰라서다. 재민양은 아버지에게 자부심도 느꼈다. 중학교 때는 학교 공개수업 때 주제가 5·18민주화운동이면 본인이 발표하겠다고 자원했다. 1차 자료를 인터넷이 아닌 아버지에게 얻었다. 실제로 5·18은 재민양에게 학창 시절 내내 주요 ‘화두’였다. 이 관심은 민주화운동으로, 나아가 근현대사로 확장됐다.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광주 사람인데도 ‘북한에서 지령받은 사람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오해하고 있을 때마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 항상 죄송하고 감사해요. 아버지가 인류애를 상실할 만한 일을 당하던 똑같은 시기에 저는 교실에서 편하게 공부만 했잖아요. 힘들다고 응석 부린 걸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죄송해요. 아버지가 트라우마로 여기고 피해 사실을 계속 외면할 수도 있는데, 제게 말씀해 주신 것도 감사하죠. 덕분에 제 시야가 트였고, 인생의 목표를 찾는 데도 도움이 컸어요. 아버지는 제 은인이에요.” -딸 재민이 아빠에게 “진로에 대해 한 번도 ‘이것 해라, 저것 해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제 아버지도 정부가 잘못됐다는 말은 해도, 나가서 싸우라고 한 적은 없거든요. 부모가 그래요. 자기 생각을 강요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딸이 스스로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기특할 따름입니다. 또래 친구들도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40년 전 시민군 아빠가 딸에게 광주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광주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5·18은 역사책 속 사건”… 청소년 2명 중 1명만 “제대로 알아”

    “5·18은 역사책 속 사건”… 청소년 2명 중 1명만 “제대로 알아”

    1980년 5월, 10대 청소년 36명이 광주에서 목숨을 잃었다. 독재에 맞서다 희생당한 소년 시민군이 있었는가 하면,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총탄에 맞아 쓰러진 아이도 있었다. 이들의 죽음으로 민주화는 앞당겨졌고 독재는 끝을 맺었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근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날의 아이들과 또래인 오늘의 청소년에게 5·18은 역사 속 사건에 불과하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인데도 10대 절반은 5·18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너무 먼 얘기였다. 서울신문은 5·18기념재단에서 발표하는 5·18 인식조사 5개년치(2015~2019)를 분석하고, 전국 만 15~19세 청소년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결과 5·18에 대해 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10명 중 절반에 불과했다. 재단이 조사한 ‘5·18민주화운동 인지도’에 따르면 지난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전국 평균은 57.3점이었다. 중학교 3학년인 김지영(15·가명)양은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전두환 정권이 시민을 학살했다는 정도를 안다”면서 “태어나기 전 일이라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역사책에서 배우는 과거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김유진(16·가명)양은 “또래 중 광주가 아닌 전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아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인식 격차는 지역에 따라 뚜렷했다. 인지도 점수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광주·전라’가 68.5점으로 가장 높았고 ‘대구·경북’과 ‘강원·제주’가 58점, ‘인천·경기’가 57.4점으로 뒤를 이었다. ‘부산·울산·경남’은 54.7점, ‘대전·충청’은 53.8점이었고 꼴찌는 ‘서울’로 52.1점이었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윤지형(19)양은 “광주 출신 친구와 얘기해 보면 확실히 5·18에 대한 인식이 더 깊은 것 같다”면서 “저한테는 단순히 숭고한 과거 정도인데, 광주 친구들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경남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박주아(16)양은 “아무래도 지역 때문에 5·18보다는 부마민주항쟁이 더 익숙하다. 학교에서 그 주제로 뮤지컬을 한 적도 있어서 부마항쟁에 대해서는 잘 안다”면서 “과거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 중심으로 관심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5·18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정규 교육과정에서조차 과거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학교에서 주로 교과서로 5·18을 배웠으나 이 비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최근 1년간 5·18민주화운동을 들어 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인지 경로를 살펴보면 2015년까지 ‘교과서·홍보 책자 등’이 52.8%로 가장 높았다. 이 비율은 2017년까지 가장 높았지만, 2018년부터는 ‘영화·홍보 영상 등의 영상물’이 앞질렀다. 지난해의 경우 ‘영화·홍보 영상’으로 5·18을 인지했다는 비율은 28.4%였고, ‘TV·신문 등 대중매체’가 23.4%,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22.2%였다. ‘교과서·홍보 책자 등’은 18.8%에 그쳤다. 고등학생 임현지(17)양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정작 역사 시간에 5·18에 대해 제대로 배워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임양은 “조선 후기까지는 꼼꼼히 배우는데 그 이후는 수업 시간이 모자라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최근에야 관련 영화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고, 독재 역사가 그렇게 길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대부분은 이렇듯 영화 또는 다큐 등 영상물을 통한 학습욕구가 높았다. 직접 체험하면서 과거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수업도 선호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심규원(16)양은 “가수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데 가사 중에 5·18 관련 내용이 있어 관심이 생겼다”면서 “역사적 사실이라도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영화나 노래 등으로 알려주면 좋을 텐데 학교에서는 너무 시험 범위만 맞추다 보니까 그걸 공부해야 한다는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안효정(18·가명)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제주 4·3사건에 대해 계기수업을 했는데 외부에서 강사도 초청하고, 영상도 보고, 오랜 시간 동안 조별 토론활동도 하는 등 심도 있게 배우니 기억에 남더라”면서 “글로만 배우는 수업은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는 것과 달랐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어른들의 정치적 성향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고등학생 이승재(17)군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과서에서 민주화운동을 서술하는 내용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도 달라지는 것 같다”면서 “좌우 진영에 따른 특정한 생각을 주입하지 말고 학생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5·18은 옛날 일” 청소년 절반만 제대로 안다

    “5·18은 옛날 일” 청소년 절반만 제대로 안다

    청소년 5.18 인식조사 5년치 분석해보니 1980년 5월, 10대 청소년 36명이 광주에서 목숨을 잃었다. 독재에 맞서다 희생당한 소년 시민군이 있었는가 하면,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총탄에 맞아 쓰러진 아이도 있었다. 이들의 죽음으로 민주화는 앞당겨졌고 독재는 끝을 맺었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근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날의 아이들과 또래인 오늘의 청소년에게 5·18은 역사 속 사건에 불과하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인데도 10대 절반은 5·18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너무 먼 얘기였다. 서울신문은 5·18기념재단에서 발표하는 5·18 인식조사 5개년치(2015~2019)를 분석하고, 전국 만 15~19세 청소년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결과 5·18에 대해 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10명 중 절반에 불과했다. 재단이 조사한 ‘5·18민주화운동 인지도’에 따르면 지난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전국 평균은 57.3점이었다. 전국 평균 인지도 57.3점…서울이 꼴찌 중학교 3학년인 김지영(15·가명)양은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전두환 정권이 시민을 학살했다는 정도를 안다”면서 “태어나기 전 일이라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역사책에서 배우는 과거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김유진(16·가명)양은 “또래 중 광주가 아닌 전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아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인식 격차는 지역에 따라 뚜렷했다. 인지도 점수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광주·전라’가 68.5점으로 가장 높았고 ‘대구·경북’과 ‘강원·제주’가 58점, ‘인천·경기’가 57.4점으로 뒤를 이었다. ‘부산·울산·경남’은 54.7점, ‘대전·충청’은 53.8점이었고 꼴찌는 ‘서울’로 52.1점이었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윤지형(19)양은 “광주 출신 친구와 얘기해 보면 확실히 5·18에 대한 인식이 더 깊은 것 같다”면서 “저한테는 단순히 숭고한 과거 정도인데, 광주 친구들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경남에 거주하는 고등학생 박주아(16)양은 “아무래도 지역 때문에 5·18보다는 부마민주항쟁이 더 익숙하다. 학교에서 그 주제로 뮤지컬을 한 적도 있어서 부마항쟁에 대해서는 잘 안다”면서 “과거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 중심으로 관심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5·18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정규 교육과정에서조차 과거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학교에서 주로 교과서로 5·18을 배웠으나 이 비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최근 1년간 5·18민주화운동을 들어 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인지 경로를 살펴보면 2015년까지 ‘교과서·홍보 책자 등’이 52.8%로 가장 높았다. 이 비율은 2017년까지 가장 높았지만, 2018년부터는 ‘영화·홍보 영상 등의 영상물’이 앞질렀다. 지난해의 경우 ‘영화·홍보 영상’으로 5·18을 인지했다는 비율은 28.4%였고, ‘TV·신문 등 대중매체’가 23.4%,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22.2%였다. ‘교과서·홍보 책자 등’은 18.8%에 그쳤다. 교과서보다 영화로…수업 시간엔 “조선 후기까지만” 고등학생 임현지(17)양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정작 역사 시간에 5·18에 대해 제대로 배워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임양은 “조선 후기까지는 꼼꼼히 배우는데 그 이후는 수업 시간이 모자라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최근에야 관련 영화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고, 독재 역사가 그렇게 길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대부분은 이렇듯 영화 또는 다큐 등 영상물을 통한 학습욕구가 높았다. 직접 체험하면서 과거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수업도 선호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심규원(16)양은 “가수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데 가사 중에 5·18 관련 내용이 있어 관심이 생겼다”면서 “역사적 사실이라도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영화나 노래 등으로 알려주면 좋을 텐데 학교에서는 너무 시험 범위만 맞추다 보니까 그걸 공부해야 한다는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안효정(18·가명)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제주 4·3사건에 대해 계기수업을 했는데 외부에서 강사도 초청하고, 영상도 보고, 오랜 시간 동안 조별 토론활동도 하는 등 심도 있게 배우니 기억에 남더라”면서 “글로만 배우는 수업은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는 것과 달랐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어른들의 정치적 성향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고등학생 이승재(17)군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과서에서 민주화운동을 서술하는 내용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도 달라지는 것 같다”면서 “좌우 진영에 따른 특정한 생각을 주입하지 말고 학생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오월을 지켜줘서 고마워요”…아빠는 딸의 역사가 됐다

    “오월을 지켜줘서 고마워요”…아빠는 딸의 역사가 됐다

    5·18민주화 시민군 이봉주 조선대 교수계엄군에 붙잡혀 103일간 모진 고문40년 지났지만 트라우마는 여전딸 재민양, 아빠 고맙고 자랑스러워이 교수, “꾸준한 사회 관심을 가졌으면”1980년 5월 폭력의 기억은 여전히 트라우마다. 40년이 흘렀지만 누군가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 닥치면 지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조건반사처럼 그 끔찍한 고문과 조사관이 떠오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매를 맞다 정신을 잃으면 고향집 앞 마당이었고, 양동이 물로 정신이 돌아오면 505보안부대 조사실이었다. 그렇게 이봉주(59) 조선대 물리학과 교수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그의 나이 19세, 광주 금호고 2학년(1년 휴학)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소년은 중년이 됐고, 당시 소년만 한 나이의 딸이 생겼다. 딸 재민(19)양은 올해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했다. 이 교수는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고문당한 얘기를 털어놨고, 종종 그때 얘기를 나누곤 한다. 이 교수는 딸과 그 또래에게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끔찍했던 경험 탓인지 혹시라도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라고 얘기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럽다. 다만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딸 재민양은 아빠에게 “모진 고문에도 살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아빠의 트라우마가 더는 우리 사회에서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13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했던 옛 전남도청 앞 광주 동구 금남로의 한 사무실에서 이들을 만났다. ●계엄군에 구타당하는 대학생…까까머리 가슴에 불을 지피다 40여년 전 소년은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는 당시 박정희 군부 정권을 대놓고 비판은 못했다. 다만 가끔 가족에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소년은 스스로 찾아봤다. 당시 ‘신동아’ 잡지에 실린 유신헌법을 비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대 김상진(당시 26세) 열사의 기사를 읽고 ‘고귀한 죽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고한 희생을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본가가 전남 나주였지만 광주에서 유학했다. 1980년 금호고 2학년 시절 3㎞ 거리에 전남대가 있었다. 비상계엄령이 확대될 무렵 등교할 때마다 대학생 형들의 시위를 목격했다. 교련복 입은 전남대생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를 외치며 전경, 군인들과 대치했다. 그리고 대학생 형들이 계엄군이 휘두르는 곤봉에 맥없이 꼬꾸라지는 모습을 봤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그때 소년은 아버지의 혼잣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년은 17일부터 시위에 참여해 구호를 외쳤다.●모내기철 나주 본가 내려간 이 교수, 운명처럼 시민군 버스 합류 20일 광주 지역 중·고등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때마침 나주에 계신 부모님이 모내기 일손이 부족하다고 연락이 왔다. 소년은 본가에 내려갔다. 광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22일 오후 2시쯤 큰집 사촌 형이 영산포 시내에 시민군 버스가 돌아다닌다고 전해 줬다. 설마 싶었다. 영산포 시내로 나갔는데, 진짜였다. 손을 번쩍 들고 광주에서 영암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세워 탔다. “김대중 석방하라, 전두환 물러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구호는 세 가지였다. 이후 영암군에서 지프차와 군용레커차, 앞 유리가 깨진 광주고속버스 등을 포함해 차량 7~8대가 일렬로 행진했다. 시민군은 인근 경찰 지서(지금의 파출소)에서 카빈소총과 폭탄 등 무기를 빼냈다. 시민군은 무기를 확보하고자 전남 지역으로 내려온 듯했다. 소년도 카빈소총과 철모, 탄띠로 무장했다. 시민군은 해남 군부대로 향했으나 더는 진격하지 않고, 원래 목적지인 광주로 향했다. 그러나 광주로 가는 길목은 모두 계엄군에 의해 차단당했다. 하늘에선 헬기 소리가 들렸다. 시민군 대열은 광주 효촌동 앞 연탄공장, 송정리 광주비행장 입구, 송정기차역 등에서 모두 저지당했다. 특히 광주비행장 입구에서 계엄군 탱크가 포신을 시민군 쪽으로 돌렸을 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미 하루가 지난 터라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았다. 23일 오전 10시쯤 나주 본가로 돌아가기 위해 광주비행장에서 남쪽인 영산포를 향해 걸었다. 송정리 민가에 들러 카빈소총 등을 맡겼다. 어떤 마을 경찰 지서(파출소)를 지나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이 “광주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데모하고 그럽디다” 하고 답했더니 잠깐 따라오라고 그랬다. 따라갔더니 파출소 숙직실이었다. 그는 무전기로 “폭도 2명을 잡았다”고 보고했다. 30분 만에 장갑차가 왔다.●매를 피해 책상 밑으로…비참함의 끝, 고문의 시간 끌려간 곳은 광주비행장 조사실이었다. 이름과 나이, 부모의 직업을 비롯해 그간의 행적을 모두 불라고 했다. 겁에 질린 소년은 빠짐없이 사실대로 다 말했다. 무장했다는 사실까지 털어놨다. 폭행은 가차 없었다. 고등학생이 공부 안 하고 시위에 참여했다고 무수히 맞았다. 한 시간쯤 조사받고 광주 서구 화정동에 있는 505보안대로 인계됐다. 백열전구 하나 켜진 조사실은 입구부터 피비린내가 났다. 2차 조사가 시작됐다. 물고문도 두 종류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코와 입에 천을 대고 물주전자를 붓는 것과, 물을 계속 먹이고 뛰게 하는 것. 사람이 많이 맞으면 피오줌이 나온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소년은 그곳에서 인간의 잔인함과 비참함의 끝을 봤다. 매를 피하려고 개처럼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자신을, 살려 달라고 비는 소년을 비웃으며 몽둥이를 휘두르는 성인 남성을 목격했다. 돌이켜 보면 정신이 나갔었다. 눈 감으면 나주 집 마당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 뜨면 고문이 시작됐다. 조사가 끝나도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수감실은 파놉티콘(원형감옥) 형태였다. 보안사 직원 한 명이 모든 재소자를 볼 수 있다. 재소자들이 이 직원을 정점으로 일렬로 무릎 꿇고 있는데, 자세가 흐트러질라 치면 보안사 직원은 군화로 무릎을 짓이겼다. 역설적이게도 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수복되는 날, 소년은 한결 편해졌다. 잡혀 온 사람이 많아지면서 감시도 매의 빈도도 낮아진 것이다. 그렇게 103일간 구속돼 고문을 받았다. 속으로 ‘10년 정도 옥살이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 검찰은 소년에게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40년 후…소년이 소녀에게, 소녀는 소년에게 말하다 소년은 1982년 조선대 물리학과에 진학했고, 일본에 유학을 가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0년 모교로 돌아와 물리학과 교수가 됐다. 이 교수는 유학 생활이 힘들 때면 5·18민주화운동 때 받았던 고문을 생각했다. 그러면 조금은 위안이 됐다. 딸 재민양은 1993년 결혼해 낳은 둘째다. 딱 40살 차이 나는 늦둥이다. 이 교수는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 5·18민주화운동 행사에 데려가 그간 겪었던 일들을 설명해 줬다. 당시 재민양은 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교과서에서만 듣던 얘기가 아빠의 역사일 줄은 몰라서다. 재민양은 아버지에게 자부심도 느꼈다. 중학교 때는 학교 공개수업 때 주제가 5·18민주화운동이면 본인이 발표하겠다고 자원했다. 1차 자료를 인터넷이 아닌 아버지에게 얻었다. 실제로 5·18은 재민양에게 학창 시절 내내 주요 ‘화두’였다. 이 관심은 민주화운동으로, 나아가 근현대사로 확장됐다.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광주 사람인데도 ‘북한에서 지령받은 사람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오해하고 있을 때마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아버지께 항상 죄송하고 감사해요. 아버지가 인류애를 상실할 만한 일을 당하던 똑같은 시기에 저는 교실에서 편하게 공부만 했잖아요. 힘들다고 응석 부린 걸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죄송해요. 아버지가 트라우마로 여기고 피해 사실을 계속 외면할 수도 있는데, 제게 말씀해 주신 것도 감사하죠. 덕분에 제 시야가 트였고, 인생의 목표를 찾는 데도 도움이 컸어요. 아버지는 제 은인이에요.” -딸 재민이 아빠에게 “진로에 대해 한 번도 ‘이것 해라, 저것 해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제 아버지도 정부가 잘못됐다는 말은 해도, 나가서 싸우라고 한 적은 없거든요. 부모가 그래요. 자기 생각을 강요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딸이 스스로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기특할 따름입니다. 또래 친구들도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40년 전 시민군 아빠가 딸에게 광주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광주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5·18 매듭 못 풀면 영남 자민련”…통합당의 시선

    “5·18 매듭 못 풀면 영남 자민련”…통합당의 시선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18일 광주를 찾아 ‘5·18 망언’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당내에서는 이를 계기로 극우와 절연하고 5·18 관련 매듭을 완전히 풀어야 통합당이 ‘영남 자민련’으로 몰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날 광주를 찾은 통합당의 태도는 1년 전과 사뭇 달랐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미리 입장문을 내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발언으로 상처를 덧나게 한 데 대해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사과한 데 이어 이날도 재차 고개를 숙였다. 정작 지난해 2월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소속이던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망언이 논란이 됐을 당시 황교안 대표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황 전 대표는 공식 사과없이 5·18 기념식에 참석했다 광주시민들로부터 비난과 물세례를 받았다. 야권 잠룡들도 올해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통합당 유승민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등은 개별적으로 광주를 찾아 5·18 정신을 강조했고, 무소속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에 있어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썼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극우가 보수의 본류인 것처럼 비춰지는 현 상황은 비정상이라며 5·18을 폄훼하는 일각의 주장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을 이루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5·18 유공자와 유가족을 욕보이는 인사들이 있다면 강력 처벌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게 원래 보수의 모습”이라며 “5·18 매듭을 푸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이고, 당을 쇄신하는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4·15 총선 참패로 보수진영이 받은 충격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통합당은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에서 단 16석을 얻는 데 그쳤고, 5·18 망언 3인방은 모두 국회 재입성에 실패했다. 당 관계자는 “5·18 악연은 보수진영이 해결해야 할 첫 과제”라며 “장기적으로는 탄핵에 대한 반성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합당은 영남 자민련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여야, 5·18 40주년 맞아 광주 총출동

    여야, 5·18 40주년 맞아 광주 총출동

    여야가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오는 18일 광주에 총출동할 전망이다. 15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18일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245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전일빌딩245는 5·18 당시 시민들이 몸을 숨겼던 역사적 장소인 전일빌딩을 리모델링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계엄군의 헬기사격 총탄 흔적 245개가 남아있어 숫자 ‘245’를 이름에 붙였다. 지도부는 최고위를 마친 뒤 21대 총선 당선자 전원과 함께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다. 민주당은 이번 광주행을 통해 5·18 진상규명과 역사왜곡처벌법 처리에 대한 의지도 재확인할 예정이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여전히 5·18을 망언과 왜곡으로 거짓 선동하는 반민주적, 반역사적, 반헌법적 작태가 일어나고 있다”며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건 우리 국회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5·18 정신을 포함시키기 위한 개헌 문제도 거론된다. 이형석 최고위원은 “21대 국회에서 철저한 진실규명, 5·18 역사왜곡처벌법 처리, 한국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게재되도록 국회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미래통합당 지도부도 대거 광주를 찾는다.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18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주 원내대표는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로 광주를 택했다. 이로 인해 5·18 망언 논란 등에 대한 사죄 메시지를 낼 것인지 주목된다. 유승민 의원은 5·18 기념식 하루 전날인 17일 유의동 의원, 김웅 당선자와 함께 국립 5·18 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다. 통합당 최고위원인 원희룡 제주지사은 기념식에 참석한다. 통합당의 비례대표 정당인 미래한국당도 광주를 찾는다. 원유철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5·18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주의가 활짝 피어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관훈클럽 ‘6·25와 한국언론’ 세미나

    관훈클럽(총무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장)은 15일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6·25와 한국언론’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연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개최하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6·25전쟁과 언론’을, 윤상길 신한대 미디어언론학과 부교수가 ‘냉전의 언론, 언론의 냉전’을 주제로 발표를 한다. 권재현 동아일보 주간동아팀 부장, 배영대 중앙일보 근현대사연구소장, 유선영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세미나에선 제한된 인원이 참석하고,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제 비치 등 코로나19 확산 예방 조치를 시행한다.
  • 여명 서울시의원, 민족문제연구소가 제기한 소송서 승소

    여명 서울시의원, 민족문제연구소가 제기한 소송서 승소

    여명 서울시의원(미래통합당·비례)이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가 지난해 3월 제기한 민·형사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지방법원 민사1001단독 최상열 판사는 14일 민문연이 여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선고기일에서 원고의 청구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렸다. 여 의원은 지난해 2월, 서울시교육청이 1억 원의 예산을 들여 민문연의 출판물을 구매해 각급 학교에 보급한 것을 문제 삼았다. 여 의원은 “민문연의 그간의 출판물은 편협된 역사관과 오류들로 학계의 논란이 많았고, 또 민문연 주 구성원인 민중사학자들의 주의·주장이 서울시민의 혈세가 투입되기에는 합당하지 않은 곳”이라는 논지의 논평을 냈고 이에 민문연측으로부터 형사 고소와 3000만 원의 민사 소송을 당했다. 이후에 진행된 사건은 2019년 6월 15일 여 의원이 경찰로부터 불기소 의견 처분을 받았고 검찰로부터도 불기소처분을 통보 받았으나 민문연은 민변 소속 법무법인과 함께 민사소송을 진행함과 동시에 검찰에 항소를 진행했다. 검찰은 “피의자는 고소인 측과 다른 관점의 평가를 전제로 서울시교육청의 예산집행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보일 뿐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보기 어렵고, 고소인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해 연구하고 ‘친일인명사전’과 같은 저작물을 발간하는 등 주요 단체이고 서울시교육청의 예산집행 경위나 내용, 타당성은 공적인 관심사에 해당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내용에 다소 과격한 표현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소인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피의 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라고 불기소 이유서를 냈다. 여 의원은 “법원의 상식 있는 판결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또한 ‘상식’ 을 걱정해야 할 세상이 왔을 만큼 우리나라 역사학계와 문화계가 전반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 와중 자그마한 승리의 기록이 쌓여 위안을 삼는다”라고 1년 반 동안 이어진 재판 과정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마당] 눈부신 세계를 꿈꾸며/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눈부신 세계를 꿈꾸며/김이설 소설가

    인터넷 개학을 한 덕에 아이들 옆에서 수업을 같이 보곤 한다. 중학생 첫째아이의 수업보다 6학년 둘째아이의 수업이 재미있는데 특히 사회 과목이 그렇다. 6학년 1학기 사회 1단원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 첫 번째 소단원 제목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시민 참여’다. 여기서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이 나온다. 5학년 때 시작한 한국사 영역의 마지막인 현대사를 다루는 과정인 것이다. 어느 인터넷 서점의 이달 이벤트는 ‘오월의 한국사 읽기’다. ‘지금 읽어야 할 우리역사 추천도서’라는 부제가 달렸다. 소개한 12권 중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은 아이와 함께 읽었던 책이다. 4권짜리 세트도서로 마영신, 윤태호, 김홍모, 유승하 작가가 각각 제주 4·3사건,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을 그렸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젊은 세대에게 그날의 뜨거움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기획’됐다. 올해는 4·19혁명 6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니 더욱 뜻깊은 책으로 남는다. 초등학교 정규과정에서는 4·19혁명의 의의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들어선 정권은 국민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고 명시한다. 5·18민주화운동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과 학생들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 6·10민주항쟁은 ‘불법적으로 권력을 잡고 유지하고자 민주주의를 탄압했던 정권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의 민주화 의지를 보여’ 준 계기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민주적인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실천해 나갈 수 있게 한 중요한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사는 데 바빠 국경일이 아닌 기념일들은 잊고 지나치기가 쉽다. 당일에서야 뉴스를 통해 알게 돼도 무심히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다. 문득 봄만 되면 제주와 광주에 향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자 숙연한 마음이 든다. 4월과 5월, 6월은 민주주의라는 빛을 찾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만나는 봄빛처럼 힘겹게 얻어낸 것이다. 아홉 살에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아이는 이제 열세 살이 돼 민주화운동에 대해 배우고 있다. 당시 아홉 살 아이에게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촛불을 들었는지 설명해 주는 일이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욕심을 부렸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정도로 설명했지만, 이제 아이는 ‘권력’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아이는 수업을 보고 매우 의아해했다. 왜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가. 도대체 권력이 무엇이길래 짐승 같은 일을 저지르게 되는가. 그리고 역사는 왜 되풀이되는가. 나는 이제 아이와 함께 조금 더 심화된 역사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를 배우는 일이란 우리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일 테니까. 아이와 함께 온라인 수업을 듣다 보니 이래저래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 좋다. EBS 수업, 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촬영한 수업, 여러 영상 자료 등을 이용한 수업은 여전히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그 와중에도 장점은 있었던 것이다(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그러나 모두가 이렇게 부모의 보살핌 아래에서 수업을 듣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차이를 가지게 됐는지, 그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등교 개학이 또 일주일 미뤄졌다. 어느 부모인들 이 시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종식되지 않은 전염병이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지만 너무 절망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곧 찬란한 여름 햇살 아래 눈부신 세계를 맞이할 테니까. 우리에겐 피 흘렸던 잔인한 봄을 이기고 멋진 세상을 만든 경험이 있지 않은가.
  • 극우의 가짜 5월 넘어… ‘하나 된 5월’을 향해 간다

    극우의 가짜 5월 넘어… ‘하나 된 5월’을 향해 간다

    5·18민주화운동은 성격이 복잡하지 않다.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며 민주주의를 압살하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이를 반대했고, 신군부가 잔인하게 총과 칼로, 그리고 헬기 기총 소사로 시위 시민을 학살한 것이 시작과 끝이다. 그날은 1997년 이미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세계적인 민주화운동의 모범 사례가 돼 유네스코에 기록물이 등재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폭동 vs 저항’이란 대립적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집단 기억’의 공유를 바탕으로 5·18의 정신인 자유, 민주, 평화, 평등이 온 세상에 구현되도록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지적이다.지난해 6월 홍콩 도심 집회에서 5·18 상징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면서 세계에 중계됐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에서 홍콩 어머니 6000여명이 광둥(廣東)어로 번안된 이 곡을 합창했다. 이 장면은 전파를 타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 노래는 현재 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각국의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으레 불리는 ‘민중 가요’로 자리잡았다. 이는 1994년 국민과 해외동포 성금으로 설립된 5·18기념재단의 국제 교류와 연대 사업이 이뤄 낸 성과로 꼽힌다. 기념재단은 1999년부터 매년 5월 ‘광주아시아포럼’과 5·18아카데미 등을 열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가을로 연기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활동가들의 교류와 소통을 주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재단은 2000년부터는 ‘광주인권상’을 제정, 매년 5월 수상자를 선정한다.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로 5·18의 진상을 알리는 각종 출판물과 음반 등의 발간·배포도 이어지고 있다. 5·18이 국제적 민주화의 모델로 위상을 굳혀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1년 5월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다. 2007년 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1963년 법원 판결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적은 있지만 아시아 민주화·인권운동 측면에서 ‘1980년 광주 상황’을 등재했다는 점은 향후 국내 현대사 정립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5·18이 세계 민주화운동의 전형적인 사례로 공인받은 셈이다. ●코로나에도 집회 열겠다는 극우세력 국내 상황은 미완에 머물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5·18민주화운동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5·18이 법적·정치적으로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지만 평가는 제각각인 탓이다. 올 40주년 기념행사도 ‘5월 정신’의 전국화를 목표로 서울·부산·대구·경기 등 전국에서 14개 사업 80여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일부 보수단체는 5·18기념주간에 ‘5·18 폄훼’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자유연대 등 극우단체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5·18 40주년 전야제마저 취소된 상황인데도 16~17일 금남로에서 3000여명이 참석한다는 내용의 집회 신고를 냈다. 이들은 앞서 지난 6일 광주시청 앞 등지에서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조서 등을 공개할 것”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명단 공개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영상매체 등을 통해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 광주시가 ‘감염병예방관리법’에 따라 집회를 금지했지만, 이들은 법원에 집회 금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게릴라식 공격도 이어진다. 수년간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군 소행이라 주장해 온 지만원(79)씨는 지난 2월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은 되지 않았다. 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인 ‘시스템 클럽’(5월 8일)에 ‘무등산의 진달래’란 제목의 글을 통해 “북한 특수군 600여명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1980년 5월 21일 밤중에 광주교도소를 5회 공격했다”고 밝혔다. 지씨의 글은 다른 극우단체의 인터넷 사이트에 퍼져 나가면서 ‘5·18 왜곡과 폄훼’의 진원지 중 하나로 지목된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학살의 주범인 신군부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이를 사실인 양 호도하고,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내용을 퍼뜨리거나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5·18의 전국화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신군부의 왜곡된 자료 보수매체 타고 확산 5·18 왜곡은 최초 12·12 쿠데타를 통해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주도했다. 신군부는 5·18을 불순세력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간주하고 담화문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을 퍼뜨렸다. 2017년 국방부 특조위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당시 군사정부의 조직적인 5·18 왜곡의 일부가 처음 드러났다. 1985년 국방부 주도로 설립된 ‘80위원회’는 ‘광주사태 백서’를 발간하기 위해 군 관련 자료를 모았다.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관련 서류 곳곳에서 왜곡 흔적이 발견됐다. 1988년 광주청문회를 앞두고 설립된 ‘511연구위원회’도 광주에 투입된 각 군의 전투 상보 등을 첨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오인 사격에 따른 계엄군의 사인을 시민군 발포로 숨진 것으로 위장하거나 사망자 검시 보고서 등을 조작해 ‘지휘권 이원화’나 최초 발포 명령자를 숨기는 데 급급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같이 정부가 왜곡한 각종 자료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 확산 바람을 타고 보수 매체 등에 그대로 노출돼 역사를 비틀었다. 이들 내부 집단에서는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5·18을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아직도 이런 정보가 흘러 넘치고 있다. ●광주시 역사 왜곡 대응 전담팀 운영 광주의 광역·기초 의원 90여명은 최근 합동결의대회를 열고 극우 보수단체의 금남로 집회 금지와 5·18 왜곡·날조 금지를 촉구하는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이들은 “일부 극우 세력들은 5·18을 지속해서 비방·폄훼하면서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마저 왜곡하는 몰지각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주시는 역사 왜곡 대응 전담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 4·15 총선 당선자들도 최근 21대 국회에서 ‘5·18 왜곡 처벌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일부 인사들이 5·18을 막말 수준으로 폄훼하는 것은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무관하다”며 “악의적 왜곡은 법으로 엄단하고 5·18의 조속한 진상 규명과 헌법 전문 반영을 통해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기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5·18에 대한 기억의 공유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 정신의 전국화는 영원히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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