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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DJP협력의 역사인식

    한국현대사에서 지도자들의 협력이 절실할 때 분열함으로써 국가의 진운에큰 타격을 입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정치지도자들의 갈등과 반목이 역사를그르친 사례가 크게 네 차례나 있었다.첫번째는 여운형과 송진우다. 해방직후 이들이 손을 잡았다면 건국준비위원회의 좌경화를 막고 임시정부를 봉대하여 정통성 있는 정권을 수립했을지 모른다. 여운형은 해방직전부터 송진우에게 민족해방에 대비할 것을 제의했다.측근을 보내 제휴를 희망하고, 해방당일에는 직접 자택을 방문하여 함께 일할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송진우가 여운형의 거듭되는 합작요청을 거절한 것은 일제협력의 자격지심과 들러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 결과 해방정국은 엉뚱하게 흘러가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암살당했다. 두번째는 해방공간에서 이승만과 김구의 분열이다. 두사람이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대의(大義) 아래 협력했다면 독립운동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통성을갖춘 정부가 수립되고 친일파는 발붙일 곳을 상실했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과 김구는국민의 희망이었고 신화적 존재였다. 두 영수가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국민은 힘을 합해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정부를 세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두 영수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는 한민당과 인민공화국이 각기두 사람을 영수급으로 추대한데서도 드러난다. 만약 이승만이 집권 후 김구를 보호하고 후계로 삼아 제2대 대통령으로 지원했다면,그리하여 김구가 북한측과 새로운 남북협상을 시도했다면 6·25전쟁과 자유당의 12년 폭정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세번째는 4월혁명으로 집권한 윤보선과 장면의 분열이다. 구파의 윤대통령과 신파의 장총리는 민주당의 한 뿌리이면서도 학생혁명이 갖다바친 정권을독식하고자 꼴사나운 이전투구를 벌였다. 내각제 대통령인 윤보선의 책임이컸다.힘을 모아 이승만정권의 부패와 사회악을 청산하며 경제건설과 민주발전에 전력해야 하는데도 권력다툼으로 1년여 만에 군사쿠데타를 맞아 탈권당하고 30여년의 군사통치가 자행되었다. 네번째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이다. 1980년 ‘서울의 봄’때 양김이 협력했다면 신군부의 쿠데타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 6월항쟁 이후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노태우정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헌정의 파행과 양민학살,그리고 전·노씨의 천문학적 부패의 사슬이 끼어들지는못했을 것이다. 역대 지도자들이 협력보다는 분열을 일삼아온 데 비해 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총리는 협력하여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IMF국난을 극복하면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두사람의 협력은 민주화세력의 본류와 근대화세력의 본류가 합류하는, 한국정치사(사상사)에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5·16이래 갈등과 대립관계를 지속해온 두 세력이 공동정권을 수립한 것은 근현대사에서 개화와 쇄국, 독립운동과 친일매족, 통일정부와 분단정부, 민주화와근대화의 대립선상에서 처음으로 합치점을 찾았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들, 예컨대 40년 특정지역의 패권주의가 소외지역으로교체되었다든가, 반세기의 지배구조가 바뀌었다는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하겠다. 또 진보(상대적)진영과 보수(상대적)진영이 협력함으로써 ‘용공 매카시즘’을 극복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펴게되고 민족민주운동의 희생자들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DJP협력의 진정한 가치는 신의냐 대의냐,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를 뛰어넘는, 협력해야 할때 협력할 줄 모르는 우리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처음으로바로잡는 ‘역사인식’이라 하겠다. 칠순을 넘긴 두 지도자와 측근들이 항상이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 질곡의 역사 담긴 우리 옛건축 얘기

    누군가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가.600년이 넘는역사를 가진 고도(古都) 서울은 말 그대로 ‘역사의 현장’이다.그리고 그현장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은 곳곳에 말없이 서 있는 건축물들이다.고궁의추녀 끝에서는 왕조시대의 권위주의 문화가 묻어나고 남산 자락의 왜색 민가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애환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근대건축사의 독보적 연구자인 김정동(金晶東) 목원대 건축도시공학부교수가 펴낸 ‘김정동 교수의 근대 건축기행’은 이러한 건축과 우리 근대사를 아우르는, ‘발로 쓴 문화사’라 할만 하다. 김 교수는 평소 사료 조사와함께 ‘발품팔기’를 아끼지 않는 연구자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그가 지난 20여년간 수도 없이‘가고 또가고’해서 눈에 익힌 근대 건축물들의 ‘애환사’를 건축사가의 눈으로 쓴 글들의 엮음이다. 도시화와 재개발 열기에 밀려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진 옛 건축물들.새 것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는 반기를 들고나선 김 교수는종로의 화신백화점,정동(貞洞)의 손탁호텔, 옛 경기도청 청사, 동양극장 등유서깊은 건축물이 사라진데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한 때 ‘조선인의 자부심’으로 불렸던 화신백화점은 주인의 영욕과 함께이미 자취를 감췄다.또 한말 각국 외교사절과 개화파들의 사교장으로 유명했고 국내 최초의 양식호텔로 우리 건축사에 기록될만한 건축물인 손탁호텔 역시 몇번 주인이 갈리면서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형해(形骸)를 전해주고있다.시인 이상(李箱)이 몇 푼의 커피값이 없어 발길을 돌렸던 경성역(현 서울역) 2층 그릴 역시 지금은 전시관으로 변해 그 시절 경성 멋쟁이들의 얘기는 이제 더이상 들을 수가 없다. 지난 역사 속에서 외세,식민화,전쟁,그리고 파괴로 우리 건축사는 질곡의역사를 기록해 왔다.지난 87년 서울지역에서만도 80여채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무단철거,혹은 훼손됐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50대 초반의 김교수는 명동 국립극장 건물을 그리며 ‘명동 국립극장사(史)는 명동사(史)이며,명동애사(哀史)’라는 말로 감정을 대변한다. “1960년대까지 명동이 문화인의 서식처로 절정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명동에 국립극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명동 국립극장은 명동의 한 복판에서 있으며 미도파백화점으로부터 명동성당까지를 한 축으로 묶는 서울 유일의 문화지대였다.…안수길의 ‘학마을 사람들’이나 이어령의 ‘무익조(無翼鳥)’,폴 뉴먼의 영화도 그 때 거기서 보았다.첫사랑의 여인도 명동에서 만나 헤어졌고,지금의 아내도 거기서 만났다”. 바로 그 명동 언덕배기에 서있는 ‘고단한 자의 안식처’ 명동성당.원래 그 자리는 순교자 김범우의 집터였다.일제 때는 이 일대 명례동(明禮洞)을 일황의 호칭을 따서 명치정(明治町)으로 불렀는데 이는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땅이라는 의미였다.지난 1세기 동안 우리 근·현대사를 지켜본 명동성당은종교적 의미를 넘어 시대의 조감자(鳥瞰者)로 자리매김되고 있다.김 교수는“건축물은 역사·인간·문화 이 모든 것을 담고 ‘무언의 기호’로 우리에게 그때의 일들을 말해주고 있다”고 설명한다.푸른역사 9,000원정운현기자 jwh59@
  • [대한매일의 오늘]’정직한역사 되찾기’한국언론 새지평

    대한매일은 제호를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 신문인지를 쉽게 구별할 수 없는‘언론의 몰개성 시대’에 확연히 눈에 띄는 지면구성으로 성가를 높이고 있다.독자로 하여금 뚜렷하게 ‘무엇인가 다른 신문’으로 인식케 만드는 두축은 ‘정직한 역사되찾기’를 위한 일련의 시리즈와 ‘행정뉴스’면이다. ‘역사되찾기’는 ‘제2공화국과 장면(張勉)’, ‘민주열사열전’등으로 대표된다.지난달 막을 내린 ‘제2공화국…’은 대한매일이 역점을 두는 현대사 정리작업의 일환이다.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애썼으나,이어진 권위주의 정권들에 의해 ‘무능하고도 부패한 정권’으로 폄하된 민주당 정권의실상은 무엇이고,이 시점에서 되새겨야 할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를 치밀한취재와 폭넓은 인터뷰를 통해 30회에 걸쳐 심층 탐구했다. 특히 28∼29회는 민주당 정부 시절 당 대변인이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회고담을 실었다.김대통령은 러시아 방문길에 오르기 직전 대한매일의 서면회고 요청에 원고지 34장 분량으로 소상히 구술하여 시중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장준하(張俊河)선생으로 시작한 ‘민주열사 열전’은 12월31일20회로 끝날 때까지 어두운 시대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의 진실은 무엇이고,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대한매일의 지면을 통한 ‘역사되찾기’ 노력은 각종 편찬사업으로 이어졌다.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창간 95주년 기념사업으로 최근 완간된 ‘백범(白凡) 김구(金九) 전집’ 전12권과 지난해 발간한 ‘구국언론 대한매일신보’가 그것이다.‘김구전집’은 반봉건·항일독립투쟁과 통일 자주 독립국가 건설에 헌신한 백범의 정신을 올바로 정립하여 국가발전의 계기로 삼자는 취지.‘구국언론…’ 역시 신보(申報)의 항일 언론활동과 일제 시대 매일신보로 이름이 바뀐 이후의 오욕의 역사 등을 담아 언론사를 통해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28면을 1면처럼 편집하는 파격으로 출범 초기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행정뉴스’는 공직사회 소식을 가장 빠르고 자세하고,정확하게 전하는 지면으로 공인받고 있다. 특히 공무원 시험정보를 담는 ‘고시(考試) 플라자’는 행정뉴스면에서도특화된 지면.일부에서 과열을 우려하기도 하는 고시열풍을 정확한 정보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자랑스런 공무원’ 역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을 격려함으로써 비리를 캐내는 것과 함께 모범사례를 소개하여 공직사회가 정도를 걷게 한다는 언론본연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한편 주한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한국과 한국민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영문 팩스뉴스 서비스(The Korea Daily Fax News)도 대한매일만이 수행하는 독특한 역할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김삼웅 칼럼] 김대중·장면정부의 멍에

    김대중정부와 장면정부는 38년의 시차를 두고 있다.한국현대사에서 두 정권은 출범과정과 성격 그리고 시대상황에 있어서 공통점이 매우 많다. 우선 정통성에서 일치한다.장면정부는 이승만 독재를 붕괴시킨 4월혁명의결과로 태어났으며 김대중정부는 32년 군사정권과 여기에 뿌리를 둔 문민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명예혁명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장면정부가 4·19혁명의 결과라면 김대중정부는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시민혁명의 산물이랄 수 있다.‘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지도자를중심으로 정통성과 합법성의 강고한 기반 위에서 출범한 두 정권이 쉽게 반대세력의 도전에 취약성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혁명 또는 명예혁명적 과정을 거쳐 합법적으로 집권했지만 상층부 일부만 바뀌었을 뿐 구정권의 인물과 관행이 그대로인 앙시앵 레짐의 ‘허리부문’을 개편하지 못했다. 둘째,독재를 부정하는 안티에서 출발한 새정부는 구체제의 억압구조와 규제를 풀게 되고 따라서 ‘당근과 채찍’을 놓아버린,일종의 무장해제한 권력체이다.여기에 국민은 무한대의 자유를 요구하고 정부에는 청교도적 순결성을바라면서 국민과 정부 사이에 단층현상을 드러낸다. 셋째,‘단군 이래의 자유’가 허용된 상황에서 야당과 사회단체 그리고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사람들까지 자신들의 정체성회복의 심리에서 정부공격에앞장서고 일반시민들의 무책임한 시위와 권리의 남용이 나타난다.또한 정권의 시혜로 주어진 자유가 정권을 옭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다. 넷째,내각제의 권력분산구조에서 효과적으로 시국에 대처하지 못하고(장면정부)내각제에 발목이 잡혀(김대중정부)권력누수의 조짐을 보인다. 다섯째,독재와 부패를 청산하고 새국정모델을 제시하는 개혁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희생도 따른다. 그런데 총론적 개혁은 지지하면서 각론의 피해 당사자들은 저항하게 되고다수 국민은 조급하게 개혁의 과실을 요구한다. 여섯째,장면정부는 3·15부정선거원흉·부정축재원흉의 처단이라는 ‘혁명과업’의 해결이 당면과제로 주어졌고,김대중정부는 IMF체제의 국난극복 과제에 매달렸다.그러다보니 국민대중이 요구하는 개혁과 구체제청산작업이 더디게 되었다. 기득층의 저항 소외층의 비판 일곱째,기득층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 개혁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고 소외층은 기대심리에서 개혁이 지지부진하다고 비판한다.이렇게 하여 개혁과 기대치에 대한 괴리가 증폭되면서 민심이반현상이 나타난다. 여덟째,‘동지적 적대세력’과의 동거를 들 수 있다.장면정부는 같은 뿌리에서 분당한 신민당의 극심한 도전에 시달리고 김대중정부는 다른 뿌리의 공동정권인 자민련의 ‘우호적 적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개혁세력이 결집되지 못한 것이다. 아홉째,진보·보수 지식인의 협공이다.기회주의적인 언론·지식인그룹은 그렇다치지만 진보·정론지를 자처하는 언론과 지식인들까지 ‘정권때리기’에 앞장선다.이승만 정권에서 심한 탄압을 받아온 혁신계와 진보언론이 장면정부공간에서 가장 심한 반정부 비판세력이 되었다.김대중정부를 보수·진보지식인과 언론이 피아 구분없이 비판하는 것도 장면시대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현정부에 의해 합법성을 인정받게 된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이 정부에더욱 과격하다거나 이념적·생태적으로 우호적이어야할 언론과 지식인이 더공격적인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지식인 그룹의 역사의식 결론적으로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으로부터 동시다발의 공격을 받으면서 ‘민주주의와 경제개발’(장면정부)이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김대중정부)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기득세력의 두터운 장벽과 저항 그리고 분별잃은 혁신세력의 협공으로 장면정부는 쿠데타세력에 빌미를 주게 되고 김대중정부는 개혁정책이 흔들린다. 5·16 이후 지식인과 언론인,진보진영이 당한 시련과 고통을 생각하고 국가발전의 퇴영을 돌이키면서 비판활동의 본질을 되새겨봐야 하겠다.비판은 지식인의 본령이고 존재가치다.그러나 사사로움과 선정성과 하이에나식의 교활함이 겹칠 때 ‘이론적으로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는 죽게 되는’현상을 초래한다.언론인·지식인과 진보 그룹의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주필 kimsu@
  • [대한광장] 경조금과 미풍양속

    반만년 우리의 역사동안 우리만이 가진 미풍양속 가운데 경사나 애사가 있을 때 정성스럽게 마련한 경조금을 주고받는 것을 두고 중국이나 일본이 몹시 부러워했다.청나라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는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 했고 일본의 개화사상가 후쿠자와(福澤)는 ‘조선인의주고 받는 인심이 곧 그들의 친선과 국력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외국인도 경조사에 성금을 주고받는 것을 인심의 총체와 국력의 상징이라고 칭송했다.그것은 곧 ‘품앗이’로서 주고 받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며 품위와 생활의 척도이기도 했다. 고대에는 두레 형식에서 부터 이웃돕기 전통이 싹터 고려,조선조 이후 오늘날까지 아름답게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고려때의 보(寶) 이후 조선조에서는계(契)가 크게 유행했다.이는 친목을 목적으로 했으나 공제·식산의 의미로확대,보급되었다. 그중 공제계에는 혼상계(婚喪契) 등이 10여 종류가 있어 혼례때와 장례때마음으로부터 성금을 듬뿍 주어 상대를 기쁘게 했고 슬픔을 함께 나누기도했다.이것이 곧 미풍양속이다.지금도 그 당시의 축의금 방명록이나 장례부의금명단이 발견되곤 하여 우리 선조들의 경조금 전통지키기가 연면성을 띠고오늘에 이르고 있음이 증명된다. 얼마전 정부는 ‘옷로비사건’등 불미한 일이 계속 터져나오자 공무원 10계명이라는 준수사항을 총리훈령으로 만들었다.이는 흩어진 공직기강을 쇄신하려는 고육책에서 고심해 만들었다는 흔적이 역력하다.당위성이나 필요성·명분에 누구도 이의를 달 여지가 없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볼 것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맞으며 시행방법·절차상 당사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찬성하고 적극 협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공직자의 경조비는 1급이상 고위공직자의 경우 못받게 되어있다.그러나 공무원이 아닌 형제자매는 받을 수가 있다는 것으로 되어있다.1급 이상의 공직자들에게 뇌물성 경조금을 줄 사람이라면 ‘현장’ 아닌 뒷거래나 음성적이고도 교묘한 수단과 방법으로 수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될 것이다. 경조금을 주고받는 일은 아름다운 한국인들의 풍속이며 국력신장의 상징이라는것을 외국인들도 지적한 바 있다.순수하고도 아름다운 경조금의 수수는 계속 지키게 하되 소위 ‘뜨는 자리’나 ‘인허가 업무 담당자’등 뇌물성경조금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의 업무규제를 대폭 풀던가,민간기관으로 이양해서 그야말로 상호 품앗이로서 인심에 상응하게 미풍양속을 지키게 계도하고권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더욱이 내기만 하고 받지는 말라는 것은 오히려 본래의 뜻을 떠나 더 반발하게 하는 등 분란의 요인이 된다고 본다.우리 사회에서 경조사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상식이고 이것이 관례가 되어 잘 지켜 진다면 모를까 우리의 미풍양속인 경조금 주고받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또 적발해도 처벌조항이 없는 미비점이 악용될 소지를 낳고 있다.자칫 잘못 다루다가는 공직사회뿐 아니라 국민간의 경조사에 불신감이나 왕래 조차하지 않는 극한적,무미건조한 사회로 전락되지나 않을까 싶어 나라의 인심고르기를 염려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오히려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액수 상한제도 문제가 있다.받은 만큼 주는 것이 관례며 상식이 된 마당에경조금액수를 규제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잘 안지켜져 오히려 있으나마나한 ‘우스운 상한제’가 될 공산이 크다.권세에 따라서 늘었다 줄었다 하는 뇌물성 경조금은 더이상 비밀이 아닌 공공연한 사실이다.모범을 보여야할 공직자들이나 사회지도층에서부터 솔선수범,경조사때 성금을 받지 않는 풍조가 있어야 아래로 확산된다. 장제스(蔣介石)총통은 1949년 대만으로 옮겨온 이후 단돈 5만원 정도의 부정한 사실이 적발되었을 때 친인척까지 극형에 처했던 경우를 생각해봄직하다.그뒤 공직사회는 물론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부정·부패·비리가 근절됐다는 소식은 우리를 부럽게 한다. 우리 역사속의 아름다운 풍속인 경조사때 성금 주고 받기가 뇌물성으로 흐르지 않고 예전처럼 순수한 뜻에서 오갈 수만 있다면 그대로 둬도 좋을 것이다. [李 炫 熙 성신여대 교수·현대사]
  • [사고]인기 칼럼 ‘대한광장’ ‘대한시론’ 필진 바뀝니다

    공익정론지 대한매일의 고정칼럼인 ‘대한광장’이 1일부터 올 하반기 새로운 필진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이와 함께 대한매일이 올해 신설한전문가들의 ‘특별기고’도 ‘대한시론’으로 새 출발을 합니다. ‘대한광장’은 각 분야에서 전문성과 개혁 마인드를 갖춘 필자 15명이 다양한 소재와 자유분방한 필치로 월·수·목·토요일에 여러분을 만나게 될것입니다. ‘대한시론’은 필진 8명이 한달에 두 차례씩 당면 현안에 대한 깊이있는분석과 함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도 아울러 제시할 것입니다.독자 여러분의 더욱 큰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필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광장 ▲金武坤 동국대 교수(40·신문방송학) ▲金芝娟(57·작가) ▲朴鍾淳 서울 충신교회 담임목사(59) ▲朴宗和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55·전한신대 교수) ▲朴智東 광주대 교수(60·언론학)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65·재미사학자) ▲白京男 동국대 교수(58·정치외교학) ▲孫章來 현대정공고문(62·전 말레이시아 대사) ▲圓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55) ▲李東益 신부(44·가톨릭대 교수·윤리신학) ▲李炫熙 성신여대 교수(62·현대사) ▲林玄鎭 서울대 교수(50·사회학) ▲趙璧 미 미시건공대 교수(43·기계공학) ▲崔甲壽 서울대 교수(45·서양사학·진보평론 공동대표) ▲洪思琮 정동극장장(45)?대한시론▲姜京根 숭실대 교수(43·법학) ▲金信福 서울대 행정대학원장(52) ▲金裕南 단국대 교수(60·한국정치학회장) ▲金孝錫 정보통신연구원장(50·경영학) ▲成裕普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56) ▲李萬烈 숙명여대 교수(60·한국사) ▲李晩雨 고려대 교수(45·경영학) ▲黃台淵 동국대 교수(42·정치학)[가나다 순]
  • [굿모닝 새천년 패러다임을 바꾸자](7)대립을 넘어 相生시대로

    IBM과 애플은 미국의 대표적인 컴퓨터 회사이다.그러나 두 회사의 경영전략은 판이하게 다르다.애플은 매킨토시라는 PC를 생산하면서 순혈주의를 고집했다.컴퓨터의 부품생산에서 완제품 조립까지 모든 과정을 독점했고,심지어모니터까지 자사가 공급하는 것만 쓰도록 했다.반면 IBM은 문호를 개방했다. 모니터와 본체 등 모든 부품을 교환해 쓸 수 있도록 호환성을 높였다. 이에따라 이용자들은 호환성을 이용,PC를 업그레이드하는 등 성능을 향상시킬 수있었으며 부품업체끼리의 경쟁으로 부품의 질도 높아졌다. 후발주자이던 IBM이 애플을 앞서 나간 것은 물론이다.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이후 애플도 IBM PC용으로 개발된 일부 프로그램을 매킨토시에서 쓸수 있게하는 등 호환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근대 이후 지구역사는 투쟁과 갈등으로 점철됐다.정(正)과 반(反)이 투쟁과정을 거쳐 합(合)이 된다는 헤겔의 변증법,환경에 적합한 적자(適者)만 생존한다는 다윈주의가 지배한 사회였다.이러한 약육강식의 논리를바탕으로 세계 열강은 다투어 영토를 확장하기에 바빴고 급기야는 두차례의 세계 전쟁으로 비화됐다.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도 투쟁과 갈등,대립,혁명의 원리는 여전히 지구를 지배했다.그 결과 한쪽에서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반대편에서는 식량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또 탐욕스러운 개발욕구는 숲과 산,강을 마구 파헤쳐 놓았다.훼손된 환경은 우리들이 먹고 마시는 물과공기를 오염시키며 부메랑처럼 그 대가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다.문명과자연이 상생(相生·Both All)의 길을 찾지 못하고 대립적인 존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이같은 ‘정글의 법칙’은 21세기의 정보통신사회,지식사회에선 더이상 통용될 수 없다.컴퓨터와 인터넷,디지털 등 정보화 시대의총아들은 폐쇄성을 거부하고 개방,열린 사회를 지향한다.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정보통신망은 세계 각국의 안방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국경의 장벽을 제거한다. 새천년준비위원회 이어령위원장은 “다가올 새 천년은 너죽고 나살고 식의파괴의 패러다임이 아니라너살고 나살고의 상생체제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문턱을 높이는 ‘애플’이 아니라 ‘IBM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생체제는 이미 여러곳에서 감지된다.유럽연합(EU)으로 정치적 결속력을다진 유럽은 올 초 유로통화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경제적 통합을 가속화시켰다.뒤늦은 깨달음이지만 도로로 잘리워진 산허리에 다시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만들어지고 강가에는 물고기의 생존과 산란을 위해 콘크리트 벽 대신 수초가 심어진다.통합전산망을 운영하는 항공사들은 승객의 주문을 대지 못할경우에는 경쟁 항공사로 안내해주는 것에 익숙해졌다.고양이와 개처럼 으르렁 거렸던 현대·대우·기아 등 자동차 3사도 자재와 부품,고객서비스 등을통합 관리하는 ‘초고속 전자상거래(CALS)프로젝트’를 구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배타적인 경쟁이 공멸을 가져올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새천년의 전환점에 왜 상생이 화두로 등장하는 것일까. 상생은 말 그대로 함께 사는 것이다.대립과 갈등,투쟁과 전쟁이 아니라 융합하고 화합하고 관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화해와 용서의 정신은 바로 휴머니즘으로 가는 밑거름이다.인간이 기본인 인본주의는 새천년의 화두가 아니라 인류가 생존하는 한 영원한 키워드일 것이다. 임태순기자 stslim@- 밀레니엄 탐방-‘相生’테마 무대공연 활발 문화예술계에서 ‘상생’은 굵직한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다양한 장르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미술·문학 작가나 무대예술 연출가들은 이미 ‘상생’을주제로 다양한 실험작들을 발표했거나 시도하고 있으며 문화 소비자들도 작품속에 드러난 ‘상생’의 의미를 시대의 당연한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는분위기다. ‘상생’의 의미가 문화예술계에서 이처럼 폭넓게 수용되는 것은 테마 자체가 문화예술의 영역 안에 담겨지기에 훌륭할 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의 공감대 형성에도 손쉽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상생’의 메시지 전달은 특히 무대예술에서 두드러지는데 민족춤위원회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렸던 ‘민족춤제전’과 서울예술단이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매주 금요일 상설공연하고있는 가무악‘상생-비나리99’ 공연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이 가운데 민족춤위원회의‘민족춤제전’ 공연은 인류가 생긴 뒤 동서양을 이어온 정보의 역사를 나흘간에 걸친 춤으로 꾸민 옴니버스 무대.정보문명과 새 밀레니엄을 무용언어로풀어낸 것으로 관객들은 출연진의 춤과 몸짓 자체가 정보전달에 빼놓을 수없는 수단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마지막날 공연은 사이버 공간에 서있는 인간이 상생 존중의 길을 찾아 순례에 나서는,‘상생’의 의미를강조한 독특한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다.이 작품은 지난 15일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에 이어 오는 9월17∼18일 청주 예술의전당 무대에 다시 오른다. 또 서울예술단의 가무악 ‘상생-비나리99’는 철저하게 상생의 의미를 강조한 공연.근현대사에서 당면했던 어려움을 영상과 마임,춤으로 해석하면서 이념의 갈등,지역간 감정을 상생의 개념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을 담았다.구체적으로는 액막이를 바라는 서민의 마음을 비나리굿으로 풀어냈다.서울예술단이아픔으로 점철된 20세기를 극복하고 21세기의비전을 제시한다는 뜻에서 기획한 장기공연으로 지난 4월부터 시작해 10월15일까지 예정돼 있다. 아울러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있는 사물놀이단인 사물놀이 한울림도 상생을 강조하고 있는 단체.이들이 세계인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아우르기 위해 벌이고 있는 공연예술·연구교육·음반기획사업에 상생의 정신이 들어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성호기자kimus@- 밀레니엄 포인트-한국인은 지나치게 흑백사고에 젖어있나 상생(相生)의 시대를 열어 가자는 주장에는 늘 ‘한국인이 지나치게 흑백사고에 젖어 있다’는 지적이 따르곤 한다. 한국인은 정말로 흑백사고에 깊이 물들어 있을까. 대답은 제각각이다.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많다. 한국인들이 극단적인 사고로 흐른다는 지적은 외국인들로부터도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 왜 그렇게 됐을까. 문화계의 팔방미인으로 불리워지는 이어령(李御寧)교수는 그 시초를 조선조의 유교 사상에서 찾는다.조선조의 유교사상이 극단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최근 베스트 셀러에 오르 내리고 있는 ‘공자가 죽어야나라가 산다’는 꽤 ‘극단적’인 제목의 책에서도 주장되고 있다. 유교 특히 주자학은 아주 좁은 범위 안에서의 서로 다른 주장 말고는 거의모든 사고,사상,해석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부쳤다.권력 다툼은 곧잘 교리 싸움으로 포장됐다.중재자나 중간자가 설 땅은 매우 좁았다. 이런 극단적인 사고가 국가를 쇠잔하게 만들고 말았지만 조선 왕조가 무너진 뒤에도 우리에게는 다양한 사고를 키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일제 시대는 지식인들에게 친일이냐 저항이냐의 선택을 강요했고 해방후에는 사회주의냐 반공이냐를 선택해야 했다.백범 김구(金九)를 비롯한 민족 지도자들의 죽음은 중간자가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상 공간에서 차지할 땅이 거의 없음을 보여 주었다. 이어지는 남북분단과 독재는 남이냐 북이냐,민주 투쟁이냐 아니면 독재에붙어 영달을 꾀하느냐의 선택만을 남겨 놓았다.민주화의 주장 속에서는 개발의 공이 안 보였고 개발의 논리에서는 민주화는 잠꼬대 취급을 받기일쑤였다. 이와 관련 이교수는 신한국인이라는 저서에서 “심지어 종교까지도 한국에들어오면 엄숙해지고 엄격해진다”면서 “이념이 착색되면 아주 극단화된다”고 말한다. 서동철기자 dcsuh@
  • 白凡 서거 50주년 다양한 추모 행사

    백범 김구선생 서거 50주년을 추모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24일 백범전집(대한매일신보사 펴냄)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서거일인 26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KBS주최의 추모음악회가 열리고,7월초에는 강화자베세토 오페라단이 창작오페라 ‘백범 김구와 상해 임시정부’를 무대에 올린다. 7월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는 ‘백범 김구…’는 4막 2장으로 구성됐으며 중국 상하이(上海)시절 백범 김구와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애국활동을 재조명했다. “맹목적인 애국주의가 아니라 한일합방에서 해방,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회고하고 ‘통일’이란 새로운 희망을 담아내겠다”는 것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장수동씨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창작오페라가 난해하다는 우려에 작곡을 맡은 단국대 이동훈교수는 “작품 전반에 걸쳐 웬만한 사람도 아리아를 콧노래에 따라 부를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들었다”며 “오케스트라의 극적인 연주 부분 등에선 현대적 기법과 한국적 선율도일부 가미했다”고 덧붙였다. 공연 중에 무대 옆 스크린 3대에 나오는 임시정부 당시의 영상화면과 2개의 무대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 등은 관객에게 색다른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치용 교수가 맡았으며 김구역은 바리톤 김성길과 류현승이,윤봉길역은 테너 박성원과 이현,김구선생 어머니 곽낙원에는 메조소프라노 강화자와 황경희가 각각 맡았다.윤봉길의 상대역인중국여성 이화림역에는 소프라노 신주련과 신애령이 출연한다. 이번 무대에 이어 오는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현지 교민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도 추진 중이다.(02)3476-6224. 2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리는 추모음악회에는 200명으로 구성된 연합시립합창단의 합창과 서울대 이애주교수의 춤공연과함께 유명연예인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강선임기자
  • [사설]‘白凡 金九全集’ 출간

    白凡 金九全集이 출간되었다.조국의 자주 독립과 통일을 위해 순수한 열정으로 한평생을 바친 겨레의 큰 스승 백범의 전집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매일신보사는 창간 95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백범서거 50주기에 맞춰 이 전집을 출간하고 오늘 각계 인사를 모신 가운데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다. 국민적 숙원사업의 하나가 정리된 것이다. 전 12권의 방대한 전집은 본사에서 위촉한 백범연구의 저명한 교수와 전문가 등 10명이 1년여 동안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발굴하여 편찬한 것이다. 백범의 생애는 민족의 수난과 맥을 같이한다.그는 근현대 민족사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반봉건·항일독립투쟁, 통일 자주 독립국가 건설에 헌신하다가 암살당했다. 백범의 암살과 함께 통일조국 건설의 꿈은 사라지고 분단체제가 굳혀지면서 반세기 동안 이땅에서는 동족상쟁과 냉전적 적대구조가 지속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백범은 자신의 표현대로 ‘상놈’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에까지 오르면서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의 일념으로 살아온 우리 겨레의위대한 지도자요 스승이다. “뒷날에 뉘 있어 스스로 나라를 사랑했다 이를 양이면 스스로의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고 이제 백범 가신이의 생애에다 물어보지 않고는 스스로 아무나 나라를 사랑했다 생각하지 말아라.”(박두진, ‘오 백범선생’)는 평가가 여전히 공감을 받는 백범은 바로 민족의 영원한 표상(表象)이다. 본사의 이 전집출간으로 자체적으로는 정명(正名)회복과 정체성 확대의 계기가 되고 국가적으로는 올바른 역사정립을 통한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범의 애국정신과 평화통일 사상이 국민통합과 다시 꼬이기 시작하는 남북의 화해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평화통일의 지침이 되길 기대한다. 전집은 국내외 자료를 빠지지 않고 수록하였지만 북한쪽의 자료를 수집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루 빨리 화해와 교류의 문이 열려 백범생가에도 이 전집이 봉정되고 북쪽자료가 추가되는 증보판이 나오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 이제 여기 남을 것은 차운산 한 쪼각 돌에 새긴 ‘대한민국임시정부주석김구’가 아니라 삼천만 겨레의 가슴깊이 대대로 이어갈 비바람에도낡지 않을 마음의 비명입니다.”란 조지훈씨의 ‘마음의 비명’대신 이 전집이 백범연구는 물론 일그러진 한국근현대사를 바로잡고 통일조국을 세우는국민의 지침서가 되었으면 한다.
  • [이어령의 새 천년읽기]밀레니엄 게이트(上)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이다.하지만 생태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로렌츠의 보고서를 보면 비둘기의 싸움처럼 잔인하고 치열한 것도 없다.상대방이 죽어 쓰러질 때까지 계속 쪼아대기 때문이다.평화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영어의 경우 peace에 감탄부호를 붙여 동사형으로 사용하면 “비 사이렌트! ”( 입닥쳐,조용히 해 )와 같은 뜻이 된다. 평화의 어원인 라틴어 팍스가 전쟁과 정복의 지배언어로 쓰여왔다는 것은일리치의 지적이 아니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팍스 로마노나,팍스 브리타니카는 어느 강대한 제국(帝國)이 무력으로 세계를 제패하여 천하를 통치한 시대를 뜻한다.말하자면 로마인이,영국인이 입닥쳐라고 소리치면 온 천하가 숨을 죽이고 조용해지는 것을 평화라고 불렀던 시대이다.그래서 조지 오웰이 그린 1984년의 가상적인 나라에서는 아예 “전쟁”을 “평화”라고 부른다. 20세기초 자유 무역제도가 처음 생겨나게 되었을 때 신문들은 이제 이 지구상에서 전쟁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고 했다.그리고 소련이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에도 역시 신문들은 전쟁없는 영구한 평화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하지만 그 말이 끝나자 마자 1차대전이 일어났고 걸프전이 벌어졌다.결과적으로 20세기의 역사는 전쟁으로 막을 열고 전쟁으로 막을 내린 시대가 되었다.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총 2천 340주 가운데 이 지구에서 진정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주는 겨우 3주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앨빈 토플러는 적고 있다.전쟁을 장마철에 비유하고 평화를 그 먹구름사이로 잠시 내비친 햇빛이라고 정의한 사람은 역시 천재였다. 동양인들도 예외가 아니다.투표 계산을 할 때에도 곧잘 애용되는 한자의 정(正)은 올바르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원(字源)을 분석해보면 군사들이 남의 나라 성을 쳐들어가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갑골문자의 정자는 오늘의 발 足자처럼 썼는데 위의 口는 나라를 에워싼 성벽을 나타낸 것이고 아래의 止자는 발 모양을 그린 것으로 행진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正자는 征服의 征자나 무력의 武자와 뿌리가 같은 것으로 전쟁이 곧 정의라는사상을 담은 글자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父자도 두 손에 도끼를 들고 서있는 전사의 모양이아닌가.그래야만 살았고 그래야만 가정과 나라를 지켰던 것이 ‘삶의 문법’이요 ‘생존의 규칙’이었다.그러나 같은 전쟁의 패러다임이라고 해도 파워폴리틱스의 서구 문명과 문치교화(文治敎化)의 모럴 폴리틱스로 대비되는 유교문명은 서로 다른점을 지니고 있다.볼테르가 부러워한 것처럼 서양에는 글짓기를 하여 관리가 되는 과거(科擧)제 같은 것은 없었다.그 대신 서양에서는 등자(橙子)가 발명되어 말을 타고도 싸움을 할 수 있게 되면 곧 기사(騎士)와 기사도(騎士道)가 생겨나게 되고 그 힘을 밑받침으로하여 봉건제가 생겨난다.그러다가 대포가 발명되면 이번에는 그 견고했던 성채가 무력해지면서 봉건제도도 함께 붕괴하고 만다.이렇게 모든 기술과 사회제도가 전쟁 패러다임에 의해서 부침해온 것이 파워 폴리틱스를 내세운 서구문명의 전쟁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문명도 모두가 전쟁패러다임에서 파생된 것들이다.베니치아의귀족들이갈릴레오의 망원경에 거금의 지원금을 내준 것은 결코 지구가 도는지 해가 도는지의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그것은 오로지 먼 바다에 떠있는 배가 적의 군함인지 아닌지를 식별해 내는 군사장비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남태평양 섬의 어민들은 이상하게도 자기네들이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놓아둔 채 서양에서 들여온 통조림고기를 사 먹는다.그들은 선진 문명의 상징물로 부러워하고 있는 그 통조림이 바로 나폴레옹이 개발한 전쟁 산물이라는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이다.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먹을 수 있는 보존식을 개발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은 현상금을 걸었고 1804년 아페르가 통조림의 원리를 발명하게 되었다.오늘날 평화로운 도시의 슈퍼마켓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통조림문화에 귀를 기울이면 유럽대륙을 향해 끝없이 쏘아대던나폴레옹의 포성이 울려오고 있는 것이다. 산업문명의 꿈을 실현시킨 공산품의 표준화도 나폴레옹의 전술에서 비롯된것이다.대포의 바퀴를 끼우고 빼낼 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보나파르트의권력은 모든 나트의 홈과 그 크기를 똑같이 만들어내게 한 것이다.서구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온갖 기술과 그 발명품들은 크든 작든 나폴레옹의 발상처럼 전쟁터에서 발명된 것들이다.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비행기가 급속도로 개발되고 실용화된 것은 그것이 적진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는 전쟁무기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펜실배니어 대학에서 최초로 개발된 아니액 컴퓨터 역시정확하고 빠른 탄도계산을 위해 미 국방성이 발주한 전쟁장비였다. 술집에까지 불황을 가져왔다는 인터네트의 새 문명은 어떤가.그것 역시 “부루터스 너마저”이다.펜타곤의 컴퓨터가 적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를대비하기 위해 미 군부가 그 자료들을 여러 곳에 분산시키고 네트워크화한것이 바로 인터네트의 기원이다.원격 화상회의의 기술개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이 적의 핵 공격을 피해 각지로 흩어져있어도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군사 참모회의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군사기술이다.더 이상 장황한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군수용 반도체의 수요가없었더라면 어떻게 한가롭던 플람 과수원의 “산타클라라의 골짜기”가 연일 다우 지수의 신기록을 갱신하는 “실리콘 밸리”로 변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전쟁 패러다임속에서 나온 서구문명의 특성을 세인트 조지 콤플렉스라고 부르기도 한다.그것은 악령을 퇴치하고 공주와 결혼을 하는 서구 영웅전설의 원형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사랑과 평화의 선행사는 언제나 악령 죽이기라는 그 전쟁으로 되어 있다.그러므로 악령이 없을 때에는 악령을 스스로만들어내야만 한다.그것이 이따금 서양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는 마녀 사냥이며 나치에 있어서의 유태인이다. 소련의 퇴장으로 악령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재빨리 이슬람-유교 커넥션이라는 새로운 악령을 만들어낸 것이 한때 지식계에 선풍을 몰고온 헌팅턴의“문명의 충돌”이다.20세기의 전쟁 책임을 서양 문명에 몰아세우자는 것이아니다.그렇게 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악령만들기의 또 하나의 세인트 조오지 컴플렉스의 감염자가 되는 것이다.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 상생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다시 보여줌으로써 서구 문명자체를 탈구축하려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참여할수 있는 것이다.부국강병으로 상징되어온 20세기 전쟁 패러다임을 땅에묻으려고 하는 것은 양차 대전에 수백만의 사상자를 내고 진저리를 친 서구문화권의 당사자들이다.오히려 그 낡은 패러다임을 뒤늦게 좇으려고 하는 것이 근대화의 무지개를 뒤^^는 그 주변 국가들이다.그 증거로 2차 대전후 계속된 국지전쟁은 모두가 비 서구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동아시아도 그런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홉스 바움의 말대로 서구중심의 20세기 문명은 끝나가고 있다.“인구면에서만 보아도 20세기의 전성시대에는 인류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유럽 백인들이 이제는 6분의 1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구 식민지에서 유입된 이민들에 둘러싸여 바리케이트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의 사회 조직 하나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20세기의 기업은 군대조직을 그대로 빼다 옮겨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군대의 총 사령관이 기업에 오면 재벌 총수가 되고 작전 참모실은 기획실이나 비서실이 된다.국 과장의 조직체계는 사단 연대 대대의 피라미트 구조이고 사병은 바로 사원이다.보초대신 수위가 서있는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드라카의 지적대로 21세기의 기업은 군대 조직이 아니라 교향학단조직을 모델로 하게 된다고 말한다.서구문명의 파워 폴리틱스 자체가 모럴폴리틱스로 변해가면서 상극의 갈등원리가 상생(相生)의 융합원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관리체제는 참여체제로, 독점은 분유(쉐어)로, 일방통행은쌍방향으로 탈구축되어 간다.기능을 위주로하는 공장이 이제는 감동을 나누는 예술 무대의 원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쟁의 패러다임이 평화의 패러다임으로 변한다는 것은 ‘생산’이 ‘창조’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지금까지는 현실주의자들이 한 기업이나 사회를 이끌어갔다면 앞으로 오는 새 천년은 꿈꾸는 자의비저너리에 의해서,그리고 강자(强者)가 아니라 적자(適者)에 의해서 그 자리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꿈꾸는 덕치주의를 펴다가민족의 존립마저 상실할 뻔했다.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덕치주의가 새 패러다임으로 부상하려는 이 때에 서구의 낡은 파워 폴리틱스,리얼 폴리틱스의 유산을 상속한입양아처럼 되어 있다.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지구 최후의 분단국에서 살고있으며 북한은 굶주리면서도 핵과 미사일의 무한 강병(强兵)정책을 만방에고하고 있다.그를 빌미로 일본의 극우론자들은 평화헌법에 다시 색칠을 하자고 하고 전쟁의 진저리였던 “기미가요”가 다시 울려퍼지게 되었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 평화의 열두 대문을 세우자는 것이 어리석고 무의미하게 보일는지 모른다.그러나 몽고병의 전화속에서 우리는 그냥 항쟁만 한 것이 아니라 수십년동안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냈다.그런평화에의 의지가 이 나라를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며 21세기 새벽에 온 세계를 향해 평화선언을 하고 평화의 밀레니엄 게이트를 기공할 수 있는 자격을갖게 한 것이다.지금 새 천년을 향해서 떳떳하게 평화를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대체 몇이나 될 것인가.남의 나라 영토를 뺏지 아니하고도,폭력으로 노예를 부리지 아니하고도 이 정도의 부와 문화를 누리며 사는 나라가 한국 말고 대체 또 어느 나라가 있을 것인가. 임진왜란을 겪은 한국이었지만 일본인에 주자학을 가르쳐 병마(兵馬)를 충효로 바꾸는 문승지효(文勝之效)로 3백년간 왜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던그 힘의 원천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이제야말로 그 문화의 힘이 새로운 천년을 지배하는 원동력이 되는 세상이다.100만의 한국인이 그 서원(誓願)의 글을 담아 자신의 서명을 평화의 대문 벽위에 새겨갈 수만 있다면 팔만대장경과도 같은 원력은 온 세계 사람들에게 퍼지며 미사일보다 강한 방벽을 만들어 낼 것이다.평화가 한 나라만의 것이 되었을 때에는 한 마리의 양처럼 약하지만 그것이 열 나라 백나라의 것이 되었을 때에는 사자무리보다도 강하게 된다. 낙원을 의미하는 영어의 파라다이스는 원래 아랍말로 나무도 꽃도 없는 황무지를 뜻한 것이라고 한다.전쟁과 환경오염의 20세기 문명의 뒤안길에 버려진 난지도에 이 평화의 대문을 세운다면 우리는 악취속에서 난초의 향내를맡고 쓰레기 더미에서 푸른 잔디의 생명력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힘으로 20세기의 황무지를 21세기의 낙원의 땅으로약속하는 평화의 열두 대문 하나가 이곳에 세워지는날 2002년 월드컵 손님으로 찾아온 온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곳에 모여 새 천년의 평화와 행복을 다짐하고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온 세인트 조지 컴플렉스를 푸는 거대한 상생의 사당이 될 것이며 십년마다 평화의 역사를 정리하는 현대사의 타임 터널이 되어줄 것이다.팍스 로마노의 개선문을 뒤집어라,그러면 한국의 평화와 행복의 그 열두 대문 밀레니엄 게이트가 될 것이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남정현의 분지(4)

    필화란 항용 그렇듯이 논리나 진실보다는 강압의 질서로 재단되는데,‘분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1966년 9월 6일부터 시작된 이 재판은 1967년 6월28일 제1심 언도에 이르기까지 8회에 걸쳐 공판이 진행되었다.한승헌·이항녕·김두현 제씨가 변호인으로,작가 안수길이 특별변호인으로 등장했던 이재판의 절정은 1967년 2월 8일부터(박종연 부장검사로 교체) 시작된 증인심문이었다. 한재덕(공산권문제 연구소장),이영명(군속.함흥공산대학 출신),최남섭(간첩.구속 중),오경무(간첩.구속중) 등 검찰측 증인과 변호인측의 이어령 증인이 등장했던 이 호화 캐스트의 법정은 강변과 궤변이 난무하여 현대사에서 가장 문학적인 논쟁의 공판으로 남을 만하다. “어느 신사가 애용하는 파이프를 만드는데 쓰여졌다고 해서 장미뿌리는 파이프를 위해서 자란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는 등의 문학적 수사론으로 옹호한 것은 이어령이었고,홍만수가 태극기를 미국여인들의 배꼽 위에 꽂는다는 마지막 구절은 민족 자주성의 상징이라고 한 것은 안수길이었다.특히 북한 언론들이 전재했다고 작가를 처벌하는 것의 부당성에 대하여 안수길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나치 독일이 반미 선전자료로 삼았으나 그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고 변론했다. 이항녕은 미국의 시사지 ‘타임’이 1967년 3월 10일자호에서 ‘애국자에대한 보상’이란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뤘다면서 왜 애국자를 우리 법정이처벌해야 되느냐고 반문했으며,한승헌은 ‘분지(憤志)를 곡해한 분지(焚紙)의 위험’이란 제목으로 실정법의 오류로 비판의식의 문학을 말살시킬 수 있다는 경고성 변론을 했다. 한국문인협회는 법원 당국에 진정서를 냈고,여러 언론기관은 다투어 ‘분지’의 무죄성을 강조했는데 그 한 예를 ‘조선일보’ 1967년 5월 26일자 사설 ‘계급의식과 반미감정의 표현론’에서 볼 수 있다.재판에 계류중인 사건이라 판결에 영향을 미칠 보도나 사설은 피해야 되겠지만 “그대로 방관해 두었다가는 국가헌법의 해석상 자칫하면 큰 오해를 빚어낼 염려가 있고,또한그것이 외국의 식자들에게 잘못 소개될 때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그릇인식하는 자료로 왜곡될 가능성조차 엿보이는 내용이 있음을 우리는 중시”하여 언급한다면서 이 소설이 지닌 계급의식과 반미감정을 유죄시하는 사회적인 통념의 부당성을 지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반미 감정에 대해서는 “미국의 정책 중 우리의 비위에 맞지 않은 것이 있으면,얼마든지 배척,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자주독립 국가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갖고있다고 우리는 확신한다”고 주장하며,한창 반미감정을 부추기던프랑스의 드 골 대통령을 예찬하는 것도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냐고 비꼬았다.사설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우리 스스로 창살없는 감옥으로 만드는 우만을 절대로 범해서 안되겠기에 감히 일언하는 바이다”고 끝맺는다.최석채 주필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사설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뿐만 아니라 남재희 당시 문화부장은 백낙청교수에게 ‘분지’에 관한 글을 청탁하여 옹호하는 내용을 실어 둘 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동아일보의남중구(당시 법원 출입)기자는 한 번도 빼지않고 이 사건을 취재하여 정확한 기사를 남겼던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7년 6월 28일 제1심에서 ‘분지’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는데,이것은 사실상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곧바로 언론들은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 판결문은 (1)북괴가 대남적화의 수단으로써 우리나라에 ‘반미감정 조성’‘반정부 감정 조성’‘계급의식 고취’에 광분하고 있다함은 공지의 사실이다.(2)피고인의 표현에는 ‘반미적 감정’‘반정부적 감정’‘계급의식고취’의…요소가 다분하다.(3)행위자의 표현을 지득한 자가 반국가단체의활동에 호응하는 감동을 일으킬 요소가 있음을 인식함으로써…범죄요건이 성립된다는 삼단논법을 취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럴 경우 “대한민국에서 반공법에 저촉되지않는 언론이나 정당활동이나 예술활동이 있을 수 없게 된다는논리에 귀착된다”(조선일보 1967.6.29)고 경고했다. 작가 남정현은 뭐라고 했을까.“민족적인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언사가 용납되지를않는 것”을 재확인하여,“미국에 대한 비판은 곧 그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는,“미국이 없으면 나라도 없고 나라가 없으면 자기(수사관)도 없다는 식으로 미국이라는 존재와 자신의운명을 동일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사건은 변호인과 피고가 다 당시의 사법권 독립성에 대한 회의 때문에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사실상 막을 내렸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국립발레단 ‘춤의 대중화’ 동참

    클래식을 주로 다뤄온 국립발레단이 현대무용과 모던 발레 안무가에게 문을활짝 연다. 국립발레단의 탄탄한 기술에 새 장르를 접목시킬 주역은 남정호교수(한국종합예술학교·현대무용)와 제임스 전(서울발레시어터 단장·모던 발레).이들은 ‘춤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춤의 전도사’들이다. 남교수는 24∼25일 낭만발레 ‘파 드 카트르’를 패러디한 ‘99 패러디 파드 카트르’를,제임스 전은 오는 7월 29∼30일 창작 모던발레 작품인 ‘위험한 균형’을 선보인다. 국립발레단은 그동안 ‘해설이 있는 발레’나 ‘토요 광장’ 등을 기획하는등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는 어디까지나 클래식 발레였다.이번엔 그 틀마저 깨뜨리려는 것이다. 지난 16일 서울 국립극장 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남교수는 “발레는 서양귀족사회나 궁중에서 유래돼 현대인의 정서와 거리가 먼 점이 있지만 재미있는 무대로 공감을 얻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현대물이 이번을 계기로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기를 바란다”며기대에 부푼 모습을 보였다.그는 1부에서 원작 ‘파 드 카트르’를,2부에서 이를 패러디한 창작 현대무용 작품을 보여준다.여기서 남녀 무용수 4쌍을 등장시켜 사랑에 대한 4가지 해석을시도한다. “학교 다닐 때 흥미있게 본 원작의 느낌을 되살리려 애썼습니다.청순한 사랑을 비롯해 에로스와 관능을 포함한 정열적 사랑,남녀 평등시대의 동등하고이기적인 사랑,결혼으로 상징되는 공인된 사랑의 허구성등을 담았습니다”. 제임스 전의 이번 춤은 다소 어려운 작품으로 보인다.워낙 음악적인 영감에무게를 많이 두는 스타일인 데다 작곡자 존 아담스의 곡은 멜로디와 베이스의 변화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그럼에도 제임스 전의 이번 춤은 에너지가넘치는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그는 ‘현존 ⅠⅡⅢ’ 등에서 간단명료하면서도 힘이 솟구치는 표현을 드러낸 바 있다. “이번 작품은 클래식과 전혀 다른 성격이어서 국립발레단으로서는 새로운경험이 될 것입니다.제 색깔을 뚜렷이 드러내기보다 현대적인 가능성을 찾으려는 자세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1부에서 고전발레 ‘레이몬다 결혼식 파 드 되’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뒤 2부에서 본격적으로 창작품을 올린다.비딱하게 기울어진 3각형세트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대사회의 위기와 아슬아슬한 지구의 운명을 상징한다.작품이 진행되면서 차츰 안정감을 되찾는 데 제임스 전은 이 동력을 ‘도덕적질서회복’에서 찾겠다고 설명한다.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은 “드라마가 있는 남정호씨의 현대무용과 음악이 있는 제임스 전의 안무를 만나는 것은 우리 발레단과 관객에게 신선한 자극이될 것”이라고 말했다.(02)2274-3507이종수기자 vielee@
  • 강은교씨 ‘소로의 노래’ 번역

    “미국 환경보호주의의 요람은 월든 호수의 물결에 흔들리던 소로의 보트였다” 미국 ‘피치트리’출판사의 편집자이자 소로 연구자인 팀 호만은 미국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를 아예 환경보호론자로 못박는다.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소로는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시조.아름다운콩코드에서 태어난 것을 일생의 가장 큰 행운으로 여긴 그는 대학시절과 몇차례에 걸친 여행 때를 제외하곤 고향을 굳게 지켰다.그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그만큼 절실한 것이었다.시인 강은교씨가 3년에 걸쳐 옮겨 엮은‘소로의 노래(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이레)는 소로의 문학과 사상의 정수가 담긴 글모음집이다. ‘소로의 노래’에는 소로가 생전에 낸 두 권의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과 ‘월든’를 비롯,‘메인주의 숲’‘케이프 코드’‘유람여행’‘저널’ 등에 나오는 글들이 엄선돼 실렸다.이중 ‘월든’은 콩코드 마을의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산 2년간의 경험을 기록한 책.극도로 단순한 자족적 생활 속에서의 사색의 흔적이 간결한 문체에 담겼다. 소로가 살던 시기는 19세기 중반.하지만 그의 자연사랑,생명사랑은 100년의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도 전혀 낯설지 않다.수채화같은 묘사는 잠자는 감성을 깨워 일으킬 만큼 뭉클한 힘이 있다.“숲은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정직한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혼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빈 공간이 아니라 생명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인 것이다.몇분간 나는 그들과의 교감을 즐겼다”소로는 단순히 자연을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자연에 대한 애정을 더욱깊은 인간애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데 진정한 미덕이 있다.여가나 명상,자연과의 조화,공존 등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소로의 문학은 실용성만을 고집하는 현대사회에서 특히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광장] 진보잡지들과 명예훼손

    문명사적으로 언어의 중요성은 상당부분 훼손돼 가고 있다.그리고 그 자리에 이미지가 들어서고 있다.그러나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해온 탁월한 소통수단이었던 언어를 이미지가 완전히 대체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이미지는 언어의 추상성을 교정하는 직접적 매체로서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의 즉물성’은 언어의식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세련된 발화양식이 될 수 없다.더군다나,이미지 언어는 그것의 생산을 위해서 기술과 자본에 매여 있다는 한계를 드러낸다.따라서,인류는 여전히 소통수단으로서 언어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더구나,우리사회는 아직까지 언어문화를 폐기처분하고 이미지문화로 달려갈 만큼 충분히 심화된 언어의식을 갖고 있지못하다. 이렇게 문명사적으로 근원적인 논의까지 하지 않더라도,우리사회의 언어의식은 별로 높은 수준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그러나 최근 몇년사이 다양한방식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말의 봇물은 우리 사회가 어느덧 심화된 언어의식을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실감나게 한다. 세계 안에서 ‘말한다’는 것은 왜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말’이 권력을 구성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이 점을 인지하는 것은 대단히중요하다.왜냐하면,현대사회처럼 모든 것이 간접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삶의모든 요소는 절대로 직접적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을 통한 진실의 조작은 우려할 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따라서‘말의 운용’을 지켜본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권력행위를 감시한다는 아주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 안에 ‘일인잡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그 잡지들이 대중의 환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옛날처럼 거대 언론들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말’을 통해 진실을 조작하는 형태를 그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의 각성과 맥을 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수 있는 잡지가 ‘말’이란 표제를 택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이 잡지가 보수언론처럼 두루뭉수리한 비판전략을 택하지 않고,매우 구체적인 비판대상을 적시한다는 것은,오피니언의 구성방향을 정하는 말의 운용자들에게 투명성과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한 전략의 선택은,그럴듯한 수사와 대중들에게 겁을 주는 현학적 논리 뒤에 숨어서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는 말의 운용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말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그러나 당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라. 그런데,이런 잡지들이 줄곧 ‘명예회손’이란 덫에 걸려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말의 정당성’을 묻는 비판자들에게 말로 정당성을 설득하는 대신,힘에게 도움을 청하겠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라 보여진다.실명비판을 한 당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비판의 대상에게 정당성을 증명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것은 ‘법’이라는 제도 이전에,한명의 논객이 사회 안에서 지고 있는 개인적·실존적 책무에 관한 문제이다.‘법’이라는,모든 개인적인 차이를 지워서 일반화된 경우로 다루는,종래엔 비판의 구체적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단어의 시시비비나 가리게 되는 기술적 영역의 일이 아니란 것이다.논쟁의 장으로 나와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일이 툭하면 명예훼손으로 겁을 주는일보다 훨씬 더 떳떳한 일이다. 설사 명예훼손 재판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논쟁의 장에서 정당성을 증명하지 못했던 비판 당사자의 도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법은 도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당신의 거짓말은 언제라도 당신을 노리고 있다.그것은 당신 스스로의 손으로 당신 자신을 향해 저지른 존재론적 명예훼손이다. ‘말’은 만만한 물건이 아니다.그것을 녹록하게 생각지 말라. [金 正 蘭 시인·상지대 교수]
  • [기 고] ‘북풍’공방의 진실과 허구

    최근 북한해군의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남북한 함정간 대치 및 교전 등의일련의 사태와 관련,정치권에서 ‘신북풍론’공방이 일고 있다.야당은 북한경비정이 연일 북방한계선을 침범,우리 해군과 교전을 벌인 것이 마치 정해놓은 수순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하고 ‘신북풍’의혹을 제기하였다. 사회 일각에서도 현정부가 국민연금문제,고급옷로비 사건,조폐창 파업유도의혹 등으로 야기된 위기상황을 국면전환하기 위해 북한과 연결하여 서해에서의 교전 상황까지도 야기한 것으로 반신반의하고 있다. 원래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남북한 관계만큼 한국정치는 물론 북한정치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경우는 없었다.13대 대선 직전 KAL기 폭파사건,14대 대선 전 이은실 간첩단 사건,1996년 총선 전 북한군 DMZ 시위사건,1997년 대선 당시 총풍사건 등은 한국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만한 중대한 사건들이었다.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 남북한 당국이 연루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으나,‘북풍’은 한국정치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없는사실이다. 북풍은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적대적 공존관계’에 있을 경우 만들어질 수 있다.과거 정부는 서로 영합게임적으로 적대시하는 남북한 냉전관계를 국내정치에 활용해왔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과거 정부는 권위주의체제하에서 불균등산업화전략을 채택,사회불평등 심화,인권 유린 등 많은 정치·사회적 갈등을 양산함으로써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곤 했다.과거 정부는 이러한 정치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과의 연계하에 속칭 ‘북풍’을 일으켜 국가안보를 정권안보에 이용해 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던 것이다.이와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적 북한도 남북한 관계의 ‘적대적 공존관계’에 편승,남한과의 적절한 긴장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적’에게 전가하는 수법을 구사해 왔다. 그러면 이번 서해상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과연 남북한 당국이 쌍방간에 짜고 한 ‘또 하나의 북풍’이라고 볼 수 있는가? 북한은 경제난,식량난등 경제위기를 타개해야 하는 동시에,경제위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체제수호 차원에서 제어해야 하는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이러한 측면에 비추어볼 때 북한은 현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북한식 정경분리정책을 통해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면서도,남북한 교류협력 증진이 체제유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여 항상 잠수정 침투,간첩선 남파 등 남북관계 긴장을적절한 수준에서 유지시키는 대남전략을 구사해 왔다. 예컨대 북한은 현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 지난해 6월,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했을 때에도 잠수정을 동해에 침투시켰을 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선이 첫 출항을 할 때에도 강화도에 괴선박을 출몰시켰다.이러한 북한의 모순적 대남정책은 실리추구와 체제단속이라는 북한내부 사정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서해상에서의 남북한 교전사태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북한은 이번 21일 차관급 남북대화에서는 비료지원이라는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동시에,남북교류에 따른 체제동요를 서해상의 교전을 통해 최소한의 수준으로 억제하겠다는,과거부터 지속해온 대남정책을 이번에도 시도했던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한다는원칙에 의거,‘국민의 정부’ 출범 이래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이에 따라 정부는 대북화해·협력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사업 허용,비료·식량 등 대북지원을 하고 있다.이와 동시에 정부는 북한 도발시 이에 강력 대응한다는 원칙 아래,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작년에도 남해에서 북한 반잠수정을 격침시킨 바 있다.따라서 이번 서해에서의 교전도 대북정책상의 무력도발 불용 원칙에 따라 예외없이 수행되었던 정책적 결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북간의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현정부가 정치적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적대적 공존관계하에서나 가능한 긴장조성용 북풍을 일으켰다는시각은 그야말로 합리적인 논점이 결여된 당리당략의 극치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더욱이 수많은 북풍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정당이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을 들게 한다. [黃炳悳 통일硏 선임연구원]
  • [특별기고] ‘민들레’들의 눈물과 손수건

    신록의 5월이 가고 녹음 짙은 6월이다.그런데 해마다 오가는 5월과 6월이왜 아직도 우리에게는 계절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찾아오는지…. 5월 하면 61년 5·16 군사쿠데타와 80년 광주 5월 민주항쟁이 떠오른다.한국 현대사에서 5월은 우리에게 두 번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를 안겨준 달이다. 그리고 6월은 50년 6·25전쟁의 비극과 87년 ‘6월항쟁’의 환희를 교차시킴으로써 우리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현재 우리는 6월항쟁 12주년을 맞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시국선언과 기념식, 시민달리기 대회, 민주대합창 1999 등 갖가지 행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념행사의 규모만큼이라도 우리가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젊음을 불사른 사람에 대해 기억하고 위로나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유가족들은 의문사 진상규명과 고인들의 명예회복을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6개월 이상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농성투쟁을 담은 영상 다큐멘터리 ‘민들레-한많은 어버이의 삶’이최근 한 독립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돼 필자는 이 영상물을 지난 8일 민언련회원들과 함께 명동성당 구내 땅바닥에 앉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없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 이후,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즐거운 일이 있어도 웃음을 되찾을 수 없게 된 열사들의 어버이와 유족들이그 ‘잿빛 삶’도 부족하여 아직까지도 노숙하는 모습을 우리 모두 찾아가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손수건을 꺼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비로소이 땅에 진정한 민주의 꽃이 활짝 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금 이 메마른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최근 잇달아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과 스캔들의 바닥에는 일부 상류계층의 개인주의와 출세주의가 깔려 있다. 최근 국민들의 여론을 들끓게 한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조폐공사 노조 파업유도’ 발언만 해도 그렇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아직도 ‘공안사건’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참으로개탄스러운 점은 그러한 ‘공작’이나 ‘탄압’을 마치 큰 공적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고위 공직자들의사고방식이다. 설사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긴다 할지라도,우리 사회는 해고에 대한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 아닌가? 이 ‘공안 공작’ 의혹에 대해 김대중대통령이 국정조사권 발동에 동의한것은 환영할 일이다.그런데 국정조사가 착수되기도 전에 언론들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래서는 정말 안된다.여야 모두가 작은 절차로 티격태격하기에 앞서,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한가를 저울질하기 앞서,이번에야말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한번 제대로 밝혀보자는 대승적인 합의부터 하라. 적당한 폭로와 적당한 은폐,또는 흥정,혹은 당리당략으로 국정조사가 요식행위로 끝난다면 국민들의 정치불신,국회불신은 회복불능에 빠질 것이다. 6월항쟁 12주년,지금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화운동 때문이거나 IMF 때문이거나 간에 고통의 눈물에 젖은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따뜻한 손수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사회의 온갖 음습한 모순과 비리구조에 대한 진실한 원인규명과처방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成 裕 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일러스트레이터 정동욱씨 개인전

    중견 일러스트레이터 정동욱의 개인전.22일까지 경인미술관 제3전시실(02-733-4448).현대사회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지 순수회화나 텍스트의 설명적인 그림 또는 디자인의 부수적인 요소에 그치지 않는다.그것은 사회예술의한 축으로 현대 산업사회의 중요한 조형수단이 되고 있다.대중매체를 통해미적 체험을 전해주며 독자적인 표현방식과 커뮤니케이션 예술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분색(分色,broken color) 방식과 번짐기법을 활용,생동감 넘치는 환상의 공간을 연출한다.음악적인 리듬에기초한 다채로운 화면을 선보이는 그의 작품세계는 기하학적 구상주의로 요약된다.
  • [굄돌] 과거를 사랑하는 학교

    사람들은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지 않고 시계에 맞춰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시계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과거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변화한 19세기부터였다.그 즈음 널리 퍼진 것이 오늘날의 학교였고,사람들은여기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이 학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교육입국조서’가 반포되던 1895년이었다.그후 1945년 해방까지 학교는 전반기 50년간 일제의 영향권에서 ‘황민화교육’의 현장이었으며,후반기 50여년간은 이른바 냉전 이데올로기의생산 체제가 되어야 했다.이와같이 지난 100여년간 학교의 발자취는 굴절된한국현대사처럼 신성한 교육공간을 져버리는 길을 걸어왔던게 사실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학교 교육은 인류가 치른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정치적이념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다소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학교교육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교과서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등장한 선전 영화나 대중강연과 함께 집단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도구의 하나였다.당시 선을보였던기관총처럼 그것은 인간의 의식을 겨냥한 심리적 무기였던 것이다.게다가 최근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 시절의 관행들,예컨대 잘 알려진 주번제도를 비롯하여 애국조회,관외출타 허가제,연수제도,폐품수집이나 새마을청소의 날,1교시 40분 수업 등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일본 군부의 파시즘 교육체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쓰레기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거의 제대로 검토조차 된 적이 없었다.오히려 이제는 학교 문화를 지배하는 보수적 풍토의 한 요소로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까닭은 대부분 그 과거를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만큼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학교 사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따라서 학교의 과거를 모르는 한,그 과거의 학교 성격은 지속될 것이다.그런데도 근본적인 개혁에는 눈을 감고 학교 울타리 안에서나 밖에선 툭하면 학교는 변해야 한다는 공허한 소리가 반복되고 있는 것같다.마치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일제시대의 시계소리처럼. [이치석 서울용두초등교 교사]
  • [제2공화국과 張勉](30·끝)시리즈 결산 전문가 좌담

    ‘제2공화국과 장면(張勉)’시리즈를 30회로 마감하며 제2공화국 시대와 장면정부,그리고 장면에 관해 총정리하고 평가하는 대담을 갖는다.참석자는 ▲장면정부 때 민의원 의원으로서 내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김영구(金永求)씨와 ▲올 가을 ‘장면 재조명’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사진전시회 등을 준비중인 조광(趙珖)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이다. 김영구전의원 제2공화국을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게 돼 장면정부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반갑습니다.그동안 장면정부의 실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왜곡된 모습만 강조됐습니다.뒤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지요. 조광교수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을 평가하려면 그 기준부터 제대로 마련해야 합니다.한국 현대사의 지향점은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입니다.정치적으로는 문민통치에 입각한 민주사회의 확립,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한 국민소득 증대를 추구하는 것 등이라고 봅니다.하나의 정권이나 인물을평가할 때 이런 정책들을 굳은 신념을 갖고 현명하게 추진했느냐가 중요한평가요소가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야말로 자유당 일당독재에 맞서 국민 참정권 회복에 공헌한 민주투사예요.제2공화국 내각 수반으로서 민주사회 확립을 도모했고,관료 공채제도를 최초로 시행해 관료사회의 전문화와 효율화도 꾀했고.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워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해 이를 관(官)주도가 아닌민간자율 형식으로 실천했습니다. 조교수 장면박사는 이 땅에 단군이래 최초로 민주주의라는 신화를 역사적 현실로 바꿔놓은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자유당 독재체제 아래 위축됐던 각 이익집단과 사회단체들이 분출해 내는 욕구를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억누르지 않았습니다.대화라든지 협력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취했습니다. 김전의원 사실 억업됐던 자유를 풀어주니까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습니다. 방종으로 흘렀다고나 할까요.이를 극복하지 못해 군부세력이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키는 소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하긴 장면정부가 무능해서 쿠데타가일어난 것만도 아니지요.군부세력은 이승만정부 때부터 쿠데타를 계획해왔으니까요. 조교수 각종 한국사 개설서를 들춰보았는데 자유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부정 일변도로 기술했습니다.연구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 평가한 것이지요.저는 장면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아니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부패,무능은 쿠데타이후 군사정권이 정당성을 강변하려고 조작한 것입니다. “부패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그보다는 혁명적인 열정과 순수성을 갖고 정치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청렴성은 정권에서 담보됐습니다.공채제도 하나만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이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전제해야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전의원 공개채용에는 사심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입학시험 보듯 한 거니까요.그때 뽑힌 사람들이 나중에 거의 전부 장·차관을 했습니다.유능한 사람을 시험 쳐서 뽑았으니까 그대로 키우니 인재가 된 거예요. 조교수 장면정부를 ‘데모공화국’운운하는 것도 잘못이지요.쿠데타 직전에는 오히려 데모가 줄고 사회가 안정돼 갔으니까요.데모 하나 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라는 비난은 쿠데타를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부패의 예라고 거론된 사건이 몇가지 있지만,모두 정략적 차원에서 나온 모략이라는 것이(쿠데타세력의)혁명재판에서 입증됐습니다.공판기록에 다 나와 있거든요. 당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시급합니다. 김전의원 당시 우리는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영영 놓친다고 생각하고 밤낮으로 머리를 싸맸습니다.머리를 짜낼만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 밤을 샜어요.국토개발계획의 틀이 거기서 나왔습니다.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져야 해요.군사정부는 장면정부로부터 하나도 이어받은 것이 없다고 하고,국토개발계획도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민주당정부에서 만든 겁니다. 군사정부는 또 아무 기초도 없이 재벌을 양산했습니다.그래서 중소기업의 토대가 없어졌어요.재벌의 배만 불리는 재정·경제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IMF로 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조교수 외교면에서도 대단히 유능한 정권이었습니다.우월한 입장에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추진했지요.제2공화국이 한·일관계에서 어떤 정책을수립하고 무엇을 했는지 더 밝혀야 합니다. 김전의원 한·일관계 정상화 교섭 때 장면정부는 처음 일본에 배상금을 100억달러 요구했어요.일본정부가 깜짝 놀라 “그 절반 정도면 안되겠느냐”고 했습니다.교섭 당사자의 말을 들으니 50억달러는 무난했고 아마 70억∼80억달러는 받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그런데 쿠데타후 군사정권은 ‘3억달러+α’에 합의했습니다.국민을 배신한 것이지요. 조교수 이 문제가 밝혀져야 장면정권의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군사정부는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서둘렀고 국민에게 이같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 6·3사태가 일어난 겁니다. 김전의원 군사정부는 ‘3억달러+α’를 받아서 기반을 닦았다지만 민주당정부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50억달러이상을 받아 경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저는 지금도 그것을 한(恨)으로 생각합니다. 조교수 이는 특히 강조해야 할 부분입니다.일본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매달릴 때 고자세로 나가야 했는데 말입니다.군사정부는 태생적인 취약성 때문에 열세의 입장에서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김전의원 신·구파 갈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조병옥(趙炳玉)박사가 일찍 돌아가신 게 비극이에요.조박사만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신·구파가 갈라서지 않았을 겁니다.윤보선(尹潽善)씨나 김도연(金度演)씨는 리더십을 가진사람이 못됩니다.그나마 윤보선씨가 구파를 장악했더라면 일본 자민당처럼(신·구파가)교대로 정권을 잡았을텐데.그랬다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아30년 동안 군사독재 때문에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기지도,국민이 고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교수 모든 정권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갈등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됩니다.요는 수습과정과 합의된 의견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의 정당성 여부입니다.장면정권은 권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합의를 도출해내는 힘을가졌습니다.내각이 몇차례 바뀌고 보강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쿠데타 직전에는 안정이 됐습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가 평화시에는 훌륭한 재상이 될 수 있지만 난세에는결국 어려웠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하지만 장박사는인간적으로,정치적으로 훌륭한 분입니다.상대방 파트너들이 나빴지요.그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교수 장면박사가(정치에 어울리지 않는)성직자 상이라는 평가는 우리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정치인은 적당히 부패하고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는 평가는 전근대적 지도자 상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장박사는정치인으로서도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련의 저항세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이 때문에 쿠데타로 정권을 상실했다는 시각이 있지만,공과를 논할 때 공(功)은 장박사에게 돌리고 허물은 당시 한국사회의 후진성 내지는 미숙성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당시 과(過)의 대부분은 개인의 능력부족이나 결함에서 유래했다기보다는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전의원 제2공화국 사람들도 다 가고 내 나이도 이제 여든인데….대한매일이 진상을 파헤쳐준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이 시점에서 바로잡지 않으면(장면정부의 진실은)영원히 역사적으로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집니다.학자들이 깊이,또 많이 연구해 나가기 바랍니다. 조교수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그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하는 출발선에 섰음을 알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지요.민주사회의 정당성에관한 일반의 의식을 드높이는 데도 이바지했습니다.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학계에 부여한 점도 빼놓을 수 없지요. 덧붙이자면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에 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우리의 장래를 위해 모델을 찾는 작업에 너무 무관심합니다.학계도 그렇고 일반인도,제2공화국 연구를 강화하고 이해를 깊이해 우리 민주주의를 건전한방향으로 이끌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매일의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현대적 요청에 부합하는,시의적절하고도 역사성을 가진 기획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리 이용원 문호영기자 ywyi@■張勉시리즈 목차 지난 2월23일 시작해 오늘 30회로 끝을 맺은 ‘제2공화국과장면(張勉)’시리즈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2회 국토건설사업(상·하) 3∼5회 경제개발 5개년계획(상·중·하) 6∼8회 윤보선(尹潽善)과의 갈등(상·중·하) 9∼11회 신구파 대립과 분당(分黨)(상·중·하) 12회 소장파(少壯派)의 도전 13∼15회 분출하는 욕구(상·중·하) 16회 혁신계의 부침(浮沈) 17∼18회 봇물 터진 통일론(상·하) 19∼20회 요동치는 군(상·하) 21회 대일(對日)외교 전략 22∼23회 지지부진한 혁명과업(상·하) 24회 실패한 내각책임제 25∼27회 장면의 정치역정·생애(상·중·하) 28∼29회 김대통령 특별회고(상·하) 30회 시리즈 결산 전문가 대담대한매일·스포츠서울 뉴스넷(http:///www.kdaily.com 또는 http:///www.seoul.co.kr/)은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물 총 30회분을 정리,별도의 아이콘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조봉암 탄생 100돌 사상·업적 책으로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공산주의운동가로,해방후에는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올해는 바로 그가 탄생한지 100돌이 되는 해이자 이승만 정권하에서 ‘간첩죄’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40년이 되는 해다.이념의 혼돈 속에서 시작된 20세기가 막을 내리는 가운데 이념과 권력의 희생자였던 그의 사상·업적·일생을집대성한 ‘죽산 조봉암전집’이 7월초 세명서관에서 발간된다. 지난 3월 그의 40주기를 맞아 개최된 학술토론회에 이어 그의 명예회복·재평가와 관련한 두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사후 40년만에 출간되는 ‘죽산 조봉암전집’은 전6권으로 구성돼 있다.‘전집’에는 국내외에서 입수한 문헌·신문자료와 그동안의 연구성과,그리고 진보당 관계자들의 회고담 등 죽산과 진보당 관련 자료가 망라돼 있다. 제1권은 죽산의 개인문집으로 생전에 죽산이 직접 쓴 글 모음집이며,제2·3권은 일제시대∼미군정기 죽산의 항일·공산주의 운동과 해방공간에서의 좌우합작운동 관련자료들(당시 신문자료와 미국서 발굴·입수한 미군정 정보보고서 등)을 포함하고 있다.제4권은 죽산이 ‘진보정치’의 슬로건을 내걸고56년 혁신계를 규합,창당한 진보당 관련자료의 집대성이다.4권에는 특히 1956년 11월10일 진보당 창당식 행사의 녹취록을 풀어서 실었는데 전문공개는이번이 처음이다. 제5권은 ‘진보당사건’ 관련자료만 따로 모은 것이며 마지막 제6권은 생존하고 있는 진보당 관계자들의 회고와 학계의 죽산에 대한 평가·재조명 등연구성과를 모은 것이다. 이번 ‘전집’은 진보당 당원출신 한 인사와 한 소장학자와의 ‘아름다운만남’이 싹을 틔운 결과다.편집위원장 정태영(鄭太榮·68·건국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씨는 당시 동양통신 기자 신분으로 진보당에 입당,활동한것이 문제가 돼 58년 ‘진보당사건’ 재판 때 피고석에 섰던 인물이며 편집간사 오유석(吳有錫·36·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 연구원)씨는 현대사 전공 소장학자다.오씨가 진보당사건 관련 논문을 쓰면서 정씨를 인터뷰한 것이인연이 돼 두 사람은 ‘전집’을 출간키로뜻을 모았다. 당시 진보당원으로 활동한 주인공이자 이미 ‘조봉암과 진보당’을 출간한바 있는 정씨는 증언과 자료수집을 맡고,전문연구자인 오씨는 편집과 해설등 편찬실무를 맡았다.출간경비는 외부지원 없이 전적으로 정씨가 사재를 털어 부담했다.편집진은 국내외의 죽산 관련 자료를 뒤진지 1년만에 7월초 ‘옥동자’ 출산을 앞두고 있다.정씨는 “죽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항상 주도적으로 활동해온 인물이었으나 그동안 관련학계의 연구가 부족했다”며 “‘전집’출간을 계기로 죽산 선생의 명예회복과 인물연구에 자극제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7월 3일 출판기념회를 겸해 죽산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학술발표회도 가질 예정이다.12만원(전6권),(02)702-3862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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