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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共 朴正熙시대‘통치일지’발견

    청와대는 지난 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68년까지 국가재건최고회의 및제3공화국 대통령 비서실에서 작성한 국정 일지를 발견,11일 공개했다. 청와대 공보수석실 통치사료비서관실은 최근 청와대 도서관 창고의 자료를정리하는 과정에서 5·16 이후 집권한 최고회의 수뇌부 일지 및 63년 12월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취임한 뒤 68년까지 5년동안 대통령 비서실이 작성한 일지 총 15권중 67년분 1권을 제외한 14권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자료는 검은색 하드커버의 겉장에 ‘日誌’라고 한자로 적혀 있으며,국가재건최고회의 통치기 및 제3공화국의 주요 사항을 항목별로 나눠 펜글씨로기록하고 있다. 일지에 따르면 첫날인 61년 5월16일에는 ‘혁명’이라는 항목에 ‘미명 군부에서 무혈혁명,군사혁명위원회 설치하고 정권인수를 선언,전국에 비상계엄령,혁명위 각급회의를 소집하고 전 국무위원을 체포할 것을 명령’이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 61년 10월18,19일 이틀동안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미 제7함대 항공모함을 비공개로 시찰했다는 등 비공개 기밀사항도 수록되어 있다. 아울러 61년 9월7일자 ‘중요업무’란에는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특수폭행으로 서울지검에 송치됐다’는 내용과 함께 ‘각 정당 및 사회단체에 대한동향을 내사중’이라는 보고사항이 들어있다. 정 비서관은 “특히 최고회의 초기에는 ‘외교’를 제1항목에 두어 최고회의가 쿠데타 성공뒤 국제여론을 민감하게 체크했음을 반증한다”면서 “현대사학계의 검증을 거친 결과,당시의 통치활동을 기록한 유일한 일지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통령 관련 기록물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후대 역사의 심판이나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국가자산이라는 게 김 대통령의인식”이라면서 “이달중 정부기록보존소로 자료를 이관해 국가자료로 영구보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광주민주항쟁 스무돌 대규모 기념행사

    5·18광주민주항쟁 스무돌을 앞두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13∼21일 서울과 광주를 비롯한 전국 13개 도시에서 대규모 문화예술제 ‘2000 님을 위한 행진곡’을 펼친다.5·18을 기념하는 문화행사가 광주 지역을 벗어나 전국으로 확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교향악단이 주관하는 음악회 ‘광주여,영원히’,국제음악제 ‘휴먼보이스’‘5·18영화제’등 20여개의 크고작은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서울시교향악단은 정치용단장의 지휘로 작곡가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강준일의 ‘만가,상여나가는 소리’‘슬픈노래’,비니야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먼저 막올리고,20일광주 망월동 주무대에서 공연한다.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국제음악제’는 광주항쟁의 정신을 국제적으로공유하려는 취지에서 마련한 행사. 평화와 인권을 표방하는 제3세계 진보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우타고에합창단(일본)가비노 팔로모레스(멕시코)카르미나 카나비오(페루)델포 솜브라(인도네시아)등 동남아·중남미 국가들의 음악인들이 초청됐다.국내에서는 안치환과 자유 이정열 강은일 김원중 등이 참가한다. 민족음악인협회 조영신차장은 “민주와 평화의 근현대사를 함께 해온 세계각국의 음악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연례 행사로 키워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5·18영화제’(18∼21일)는 서울,광주,부산 등 3곳에서 동시에 열린다.‘꽃잎’‘박하사탕’등 극장개봉을 통해널리 알려진 작품들과 ‘오,꿈의 나라’‘부활의 노래’등 독립영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레드헌트’등 외화가 소개된다. 17일 오후7시30분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는 극단 토박이,포즈댄스시어터,민음협 프로젝트그룹 ‘삶,뜻,소리’,김영동,정태춘 등이 참가하는 특별공연이 펼쳐진다.한편 지난 3일 울산을 출발점으로 삼은 민예총의 전국순회공연단은 대구 속초 대전 등 10개도시를 돌아 17일 안산에서 보름간의 여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행사를 총괄한 민예총 임명구 사무총장은 “5·18정신이 문화예술의 감동속에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
  • 19회 미술대전 대상 ‘숨을 쉬고 있는 상자’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석원)가 주최한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제1부 비구상계열:한국화,양화,판화,조각)에서 조각 ‘숨을 쉬고 있는 상자’를 출품한 이상길씨(李祥吉·36)가 대상을 차지했다. 우수상은 한국화 ‘고유감성-(대지)’를 내놓은 최창봉(崔昌鳳·36),서양화 ‘나반의 정원’을 출품한 장수창(張水昌·39),판화 ‘지적인 제안’을 출품한 김경아(金瓊兒·30),조각 ‘디이칠칠(de77)’을 낸 정동명(鄭東明·30)씨가 각각 받았다. 이번 미술대전에는 한국화 500점,양화 691점,조각 38점,판화 61점 등 모두1,290점이 응모해 특선과 입선을 포함,315점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수상작은 15일부터 2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며 개막에 앞서 15일오후 3시 시상식이 거행된다.서울전시에 이어 12월에는 포항과 광주에서 순회전을 연다.다음은 특선자 명단■한국화 ▲한경혜 노병렬 황현숙 김지영 전영숙 강영지 박영학 유정상 최라영박옥남 이길우 조희경 한윤기 이창훈 강규성 ■양화▲윤종석 박봉춘 박점영 박태홍 이재삼 김병구 유서형 우은정 이규학현종광 김태은 이혜경 황나영김동석 ■판화 ▲김필구 한 용 김진숙 이명숙 ■조각(야외) ▲이재길 우무길. *대상 수상 이상길씨 “제도화된 관습 속 상호소통 열망 상징”. “상자는 우리들의 삶과 생각을 구속하는 제도화된 관습을,숨을 쉬는 마개구실을 하는 코르크는 막힌 현실에서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을 상징합니다” 10일 발표된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조각가 이상길씨는 자신의 조각품을 단절된 현대사회에서의 소통가능성을 묻는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숨을 쉬고 있는 상자’는 작가가 지난 5년 동안 매달려온 작업 테마.작가는 스테인레스와 알루미늄,유리,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먼저 냉혹한기하학적 구도의 상자를 만든다.그 상자는 죽어 있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무언가를 향한 움직임과 생명력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특히 버려진병의 코르크 마개는 ‘치즈의 눈’처럼 외부와 내부의 소통 가능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쓰인다. 작가는 앞으로 ‘숨을 쉬고 있는 상자’작업과 병행해꿈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할 작정이라고 말한다.“이상적인 의미의 꿈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꾸는 꿈을 통해 내적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서울대 조소과와 일본 다마 미술대학원을 나온 그는 일본 유학시절 일본 이과전(二科展)에서 특선을 받기도 했다.6월말에는 도쿄 이낙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광장] 386세대 選良들을 향해

    이번 16대 총선에서는 ‘바꿔 바꿔’라는 선전구호의 덕분인지 세칭 386세대라고 불리는 13명의 청년정치인이 금배지를 획득했다.몇몇 언론은 386세대선량들이 기성 정치세력에 쉽게 동화되었던 부끄러운 선배 운동가들을 닮지말라고 주문한다.이것은 4·19세대와 6·3세대에 대한 실망의 반작용일 게다.한편에서는 구태의연한 선거행태에 식상하여 정치적 무관심이 고조된 국민정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정책중심의 의정생활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요구도 있다.이는 낡은 정치의 개혁을 염원하는국민의 순정(純情)을 대변하는 것일 게다. 국민들은 그들 젊은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단순 거수기노릇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여야라는 현실정치의 경계선을 더 높은 정치적 신념으로 돌파하면서 학창시절에 그토록 간절하게 희망해왔던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십이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그들 소수의 지도자를 앞장세워 주며 이름없이 빛도 없이 자신들을 밀어주었던 수많은 학우와 선배들의 피와땀,그리고 후배들의 기대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30대의 연령층,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세대적동질성만으로 똘똘 뭉쳐서 선배와 후배들 사이를 비전없이 돌진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우려하는 지역감정 이상으로 세대간 갈등을 증폭시켜 386세대 정신을 오염시킬 것이다.그렇게 되면 그들은 국민에 의해 일회용 정치상품으로 용도 폐기되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그들은 학창시절 너무나도순수했기에 투옥을 마다않고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으며 사심없는 봉사와 희생으로 민주화를 견인했거나,견디기 힘든 시대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며 고달픈 일들에 매달렸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대학에 다니던 80년대는 한국 현대사상 일찍이 없었던 격동과 변혁의 시대였다.그때 그들은 한국민주화의 걸림돌이 남북분단으로부터 빚어진민족내부의 갈등과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빈부갈등이라는 것을 명석한 두뇌로 간파하고 이 갈등들을 총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싸워왔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들이 과연 초지일관(初志一貫)해 왔던가에 의심의눈초리를보내는 후배들 또한 적지 않다. 그들의 빛나는(?)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16대 총선을 맞아 한 정당으로부터는 주사파 4인방으로 몰리고 또 다른 한 정당으로부터는 당내 주사파를 잘 단속하라는 역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그들이 색깔을 뒤집어쓰지 않고 당당하게 여의도에 입성할수 있게 해주었다.그들은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투옥자나 80년대 계엄령 투옥자에 비하면 큰 행운아들이다.운동권 출신 급진 좌경 후보라는 빨간색 칠하기가 먹혀들지 않을 만큼 시민사회의식이성숙했기 때문에 그들은 30대에 국민의 대표로서 남녀노소 누구를 불문하고우리 공동체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엄한 호령을 할 수도 있고정부와 재계를 향해서도 자유와 정의를 지켜가도록 훈계할 수 있는 특권도얻었다.그렇지만 그들이 이 특권의 향유에만 집착한다면 이전투구를 되풀이하는 우리 정치세계에서 일개 의원직은 계속 가질지 모르지만 정치적 성장은보장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386세대라는 정체성(正體性)을 인정받으면서 시대의 미래를 이끌기에는 각 당에 흩어져 있더라도 13명이면 충분하다.이상한 비유라고 또 빨간칠을 하려는 페인트장사(?)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카스트로는 82명으로 혁명을 시작했던 과거를 후회하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진 10여명만으로 충분히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던가. 13명의 30대 정치인에게 거는 우리들의 기대는 참으로 크다.국가보안법을비롯한 냉전법률은 물론이고 그들의 후배들이 이적행위자로 몰리지 않도록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각종 악법들을 뜯어고치면서 입법부를개혁하고 정치권을 정화하는 일, 한발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키고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일에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모든 국민들은 세대를 초월하여 그들의 초지(初志)를 믿고 따를 것이다.젊은 그들의 정치생명도그들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용감한 실천에 의해 오래도록 푸르싱싱할 것이리라. 柳一相 건국대교수 언론홍보대학원장
  • 힐러리 “10대도 힘들지만 부모는 더 힘들어”

    [뉴욕 연합] “10대들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겠지만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은훨씬 더 힘들다.”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뉴스위크 최신호(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외동딸 첼시를 키운 부모로서의 심경을 이렇게 피력했다. 지난 2월 첼시가 만 20세가 돼 10대 부모역에서 갓 졸업한 힐러리는 “첼시가 안전하게 성인이 된 데 감사하고 있으며 우리 부부가 매우 운이 좋았다는것도 알고있다”면서 오늘날의 10대들이 스트레스와 소외감, 폭력적 문화환경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느끼며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힐러리 여사는 “이런 10대의 부모역할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면서 10대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좌절감속에서 부모의 책임을다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힐러리는 첼시가 고교 때 숙제로 밤을 샐 때 함께 있어주고 대학입학 때는기숙사에서 쓸 용품을 같이 쇼핑하는 등의 관심과 사랑을 보였다면서 10대자녀에 대한 부모의 작은 노력이 자녀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역설했다. 힐러리는 또패스트푸드와 TV,직장에서의 스트레스등 현대사회 환경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가족이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 것이라면서 첼시가 대학기숙사로 떠나기 전에는 세 식구가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같이 식사를 하는것에 최우선권을 뒀다고 소개했다.
  • 민주당 對野 대화·타협분위기 살린다

    ‘4·24 영수회담’ 이후 민주당의 대야(對野) 공세수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여야간 모처럼 조성된 대화와 타협의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이나 현대사태,각종 민생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집권 여당으로서 초당적 협력정치에 앞장서야 한다는 여론의 주문과도 무관치 않다. 실제로 여야간 원구성 협상이나 한나라당의 부정선거보고대회 등 최근 민감한 정치현안을 둘러싸고 민주당 지도부는 극도로 자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대변인단의 논평도 “비교적 온건해졌다”는 평이다. 민주당은 특히 지난달 29일 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주례당무보고를 통해 여당의 역할론을 거듭 강조함에 따라 당분간 신중한 행보를 계속할 전망이다.김대통령은 이날 서영훈(徐英勳)대표 등 당 6역에게 “여당이영수회담의 합의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비판을 받게 된다”면서 “여당이 성의를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야당이 수(數)를 과신하여 남용하면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전제하긴 했지만,국정운영의 한축인 민주당이 스스로 협력과 상생의 정치 실현에 적극나서야 한다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원구성 협상을 맡고 있는 민주당 박상천(朴相千)총무도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여당에게 과반수를 주지 않은 것은 야당과 대화,협력하라는 뜻”이라며여야간 합의정신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호흡조절’은 각당의 체제정비 일정,한나라당 지도부의 이미지부각 작업 등과 맞물려 단기적 화해무드 조성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그러나 선거사범 수사나 병역비리 문제 등 첨예한 돌출변수가곳곳에 깔려 있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여야간 휴전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단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박찬구기자 ckpark@
  • “開院준비 늑장 안된다”

    오는 6월5일 제16대 국회 개원(開院)을 앞두고 국회의장 선출과 상임위 배정 등을 둘러싼 여야간 원구성 협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자칫 개원 지연사태를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특히 현대사태와 공적자금 투입,남북 정상회담,고액 과외문제 등 시급한 국정·민생 현안이 쌓여 있어 종전 국회처럼 여야간 당리당략이나 정쟁(政爭)으로 개원이 늦어지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11대 국회 이후 총선부터 차기 국회 개원까지 평균 두달 이상씩 ‘입법기관 공백’ 사태를 빚는 비정상적인 현실을 제도적·사회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내달 3일 강원도 산불과 구제역 파동을 다루기 위해 소집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도 여야간 원구성 협상과 부정선거 시비 등으로 여론에 떼밀린 모양갖추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이번 총선에서 부적격 인사 낙선운동을 주도한 정치개혁시민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총선 이후 남은 임기 동안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집중 감시,그 결과를 차기 선거의낙선 대상자 선정 지표에 적극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해 주목된다. 여야 총무는 지난 24일 이후 공식·비공식 접촉을 통해 의원정수 감축에 따른 상임위 위원정수 조정 방안 등 원구성 협상을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다.여야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영수회담 정신을 살려 법정 개원일을 지키겠다는 원칙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장 선출과 상임위원장 배분,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문제등 구체적인 쟁점에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박상천(朴相千)총무는 최대 쟁점인 국회의장 선출문제와 관련,“야당이 국회의장직을 차지하면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반면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국회는 제1당인 한나라당이 맡는 게 당연하다”고 맞섰다.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문제를 둘러싼 민주당과 한나라당간 견해도 엇갈린다.민주당은 자민련의 원내 협상 참여가 ‘음성(陰性)정치’의 지양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법안 발의 하한선인 20명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정치개혁시민연대 김석수(金石洙)사무처장은 “국회의장을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선을 실시해서라도 국회를 제때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역대 국회개원 현황과 전망

    지난 81년 11대부터 94년 15대 국회까지 총선 이후 실제 국회 개원(開院)일까지 평균 기간은 67.8일이다.11대는 16일,12대는 108일,13대는 34일,14대는 97일,15대는 84일이 걸렸다. 총선이 실시된 해마다 평균 두달 이상씩 ‘입법부 공백’ 상태가 벌어진 것이다.통상 총선이 끝나면 여야가 선거 후유증과 차기 원구성 협상으로 힘을소진하는 등 남은 국회 회기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버리는 정치 현실과무관치 않다. 당초 예정된 개원일과 실제 개원일도 12,14,15대 국회에서 각각 한달 이상씩 차이가 났다. 국회의원 선거일(임기 만료일 전 50일 이후 첫번째 목요일)과 국회 개원일(임기개시 후 7일)을 선거법과 국회법으로 정한 15대 이후에는 산술적으로만따지면 길게는 57일,짧게는 51일간의 공백기간이 생긴다. 그러나 15대 당시 개원일은 국회법상 6월5일을 한달 가량 넘겼다.결과적으로 96년 4월11일 총선 이후 7월4일 국회 개원까지 무려 84일이 걸린 것이다. 당시 개원이 늦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옛여당인 신한국당이 총선 이후 무소속 당선자를 잇따라 영입하는 등 여야간 인위적 정계개편을 둘러싼 첨예한 공방에서 비롯됐다. 과거 상임위원장 배분 등 여야간 원구성 공방으로 인해 개원이 지연된 구태가 21세기형 새로운 국회상(像)을 구현하겠다던 15대 국회에서도 어김없이재연된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16대 국회에서도 개원 지연 현상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여야간 원구성 협상이 초반부터 국회의장 선출,상임위원장 배분,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문제 등을 놓고 삐걱대고 있기 때문이다.여야 모두 ‘4·24 영수회담’의 정신을 살려 법정 개원일을 지키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협상 전망을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대사태나 투신사 공적자금 투입,고액과외,주가하락,남북정상회담개최 등 국정 주요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또다시 국회 개원이 정쟁(政爭)의볼모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특히 고액과외나 공적자금문제 등 민생과 직결된 사안은 임기만료(5월29일)를 한달이나 남긴 15대 국회가 나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일부 시민단체가 총선 이후 임기만료일까지 의정활동을 차기 공직자 선거때 낙천·낙선운동의 주요지표로 삼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당락을 떠나 임기만료일까지 신사적인 의정활동을 펼쳤는지 시민단체와유권자가 적극 감시한다면 국회 공백상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박찬구기자 ckpark@. * 개원 앞둔 16대국회 쟁점.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는 개혁입법처리,부정선거 국정조사 등에서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야 영수회담에서 인권법,통신비밀보호법 등 개혁입법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합의했지만 실무적인 차원에서 마찰이 예상된다. 인권법은 인권위원회의 위상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민간 독립기구화를 주장하는 정부·여당과 독립법인화를 주장하는 야당이 다시 맞설 태세다.그러나 여당측에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뒤 최종결정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함으로써 타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도 15대 국회 심의과정을 통해 ‘감청대상 대폭 축소’ 등‘큰 줄기’에는 합의상태에 이르렀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의견이다.그러나긴급감청폐지 등에 대한 야당의 주장이 계속될 경우 진통이 예상된다. 부패방지법은 특별검사제 상설화가 쟁점이다.이와 관련,한나라당이 특검제를 별도로 협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관련법의 처리 전망은 밝은 상태다. 그러나 특검제를 둘러싼 여야간 대립이 또다시 전개될 듯하다. 금융실명제법은 주요 개정 방향이 예금자 비밀보호 조항이기 때문에 여야간 큰 이견이 없는 상태다.자금세탁방지법은 야당측에서 ‘야당탄압용’으로악용되는 것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마련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선거법개정은 여당이 1인2표제를 다시 주장할 경우 야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4·13 총선과 관련,야당의 ‘부정선거 국정조사’요구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이는 선거사범처리와 연관돼 있다. 낙선한 소속 출마자들의 사기진작 차원에서도 공세를 취해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 내 분위기다. 금융권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의 공적자금 추가투입문제도 쟁점이다.한나라당은 “필요성이 인정되면 국회동의를 해준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추가투입의 가능성을 따져본 뒤 결정하겠다”는 전제를 달고 있어 국회 처리시 여야간 마찰이 예상된다.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야당의 반응도 관심거리다.회담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경우 야당의 원내 공세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박준석기자 pjs@
  • 한국전쟁 ‘양민학살’ 체계적 진상규명

    한국전쟁 50주년을 앞두고 전후 군·경 등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양민)학살문제가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시대적 과제’ 차원에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국회에서 ‘4·3사건특별법’제정과 ‘노근리사건’으로 양민학살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되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사건들이 아직도 학계는 물론 당국,일반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식인 사회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이들은 강정구(동국대)·강창일(배재대)·김동춘·한홍구(이상 성공회대)교수와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조용환 변호사,차미경 국제민주연대 강사,한성훈 한국인권재단 간사,정희상시사저널 정치팀장 등 10여명.현대사나 사회학 전공교수,양민학살 관련 취재나 저서를 출간한 언론인,사회·인권단체 실무책임자,관련 소송을 맡은 변호사들로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가칭)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문제 진상규명을 위한 모임’(민간인학살모임·대표 강정구동국대교수)을 결성했다.이들은 오는 6월14일 ‘양민학살문제 왜 해결돼야하나’,‘전쟁전후 양민학살의 실태’를 주제로 한 심포지움과 함께 양민학살 사건으로 숨진 사람들의 유족으로부터 증언을 청취하기로 했다. 이들이 양민 학살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사건발생 반세기가 지남에 따라 더이상 이 문제의 진상규명과 해결방안 마련을 늦출 경우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양민학살 관련 자료수집차 학살현장을돌아본 김동춘 성공회대(NGO학과) 교수는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학살사건의 경우 10분이면 들어갈 수 있는 동굴 내의 유골이 50년동안 그대로 방치돼있어 시간이 50년간 정지된 느낌을 받았다”면서 “당사자들은 거의 사망한데다 대부분의 유족들이 연좌제의 악몽을 떨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 상태여서 유족들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문제해결의 1차 책임자인 당국은 해결보다는 오히려 관련자를 탄압해 왔다.대전·대구형무소 피학살자유족회가 61년 좌익으로 몰려 가혹한 탄압을 받은 이후 각 지역의 피해자 유족들은 아예 입을다물어버렸다는 것.그러나 거창사건,제주 4·3사건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고 지난해 노근리사건으로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표면화되면서 겨우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국인권재단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유족회나 대책위가 결성돼있는 곳은 경기 고양과 강화를 비롯해 경북 문경 경산 구미 포항,전남 함평 나주,충북 영동 단양,전북 익산,경남 사천·마산·창녕·함안·의령 등 10여곳이고,지방의회에 특위가 구성된 곳은 경북·경기·전남 함평군 등 3곳으로 나타났다. 피해지역이 집중된 경남의 경우 지난 2월 도 차원의 대책위를 결성하고 서명운동 등을 통해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문경사건유족회는 지난 3월헌법소원을 제출했으며 함평사건유족회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특별법이 제정된 거창·제주지역은 법 시행,또는 시행령이 마련 중인데 일부 지역에서는 이념적 갈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대표를 맡은 강정구교수는 “한국전 전후의 민간인 학살은 개별 사건마다 다소 차별성은 있지만 우선 인권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각지역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포괄적으로 다룰 단체 결성과 여론 확산작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임시연락처는 (02)733-4163. 정운현기자 jwh59@
  • 현대문제, 대우사태와 다르다

    현대그룹의 자금악화설이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사실에 근거하지 않은온갖 루머들로 ‘제2의 대우사태’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낳고 있다.그러나 현대사태는 대우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정부와 금융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쏟아지는 루머들 현대의 자금악화설은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하고있다. 먼저 정몽구(鄭夢九) 정몽헌(鄭夢憲)회장의 왕권쟁탈전으로 현대의 신뢰에는 이상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정부가 현대를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조사 등으로 압박한다는 말도 나온다. 자금줄인 현대투신의 사정도 좋지않은 가운데 최근 참여연대는 현대투신의펀드간 불법 편출입을 문제삼았다.프랑스의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해 현대자동차의 입지축소도 불가피하다.이런 악재(惡材)들을 모아놓으면 현대의자금악화설이 그럴듯하게 들릴 만하다. ■현대,대우와는 다르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전문가들의 현대에 대한 시각은전혀 다르다.우선 대우는 특별히 돈을 버는 계열사가 없었지만 현대는 자동차,전자,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들이돈을 벌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유동성(현금)확보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대우는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았다. 부채비율도 그렇다.현대의 부채비율은 181%로 대우의 355%의 절반수준이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연원영(延元泳) 상임위원은 “부채비율이 다르다는 게 현대와 대우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대우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인 지난해 초만 해도 자구(自救)실적 이행률이 18.5%에불과했다.같은 시기 현대의 자구실적 이행률은 목표치를 뛰어넘었다.대우는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지만 현대는 이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노력해왔다는 얘기다. 대우는 계열분리 작업도 지지부진했지만 현대는 일단 명목상으로는 분리작업을 끝낸 상태다.그러나 형제간 다툼으로 표면화된 경영권 문제를 매듭짓지못하고 있는 것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지난 98년 10월 일본의 노무라증권이 대우그룹 자금악화 관련 보고서를 낸 뒤 대우의 자금악화설이 표면화됐었다.노무라증권이 최근 다시 현대자동차의 경쟁력 약화라는 보고서를낸 것으로 알려졌다.비슷한 점이라면 비슷한 점이다.현대전자의 주가조작에서 드러난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경영스타일도 불안요인이다. 대우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현대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악화될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곽태헌기자 tiger@
  • 이 재경 “현대 단기 현금흐름 이상 없다”

    이헌재(李憲宰) 재정경제부 장관은 27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대그룹의 단기 현금흐름에는 이상이 없다”며 “시장에서의 충격적 반응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가 대우사태를 걷는 게 아닌가 현대는 대우와 기본적으로 다르다.현대는 계열사들이 돈을 잘 벌고 현금흐름도 나쁘지 않다.현대는 단기 유동성이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며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구체적인 계열사의 자금사정은 자동차는 현재 지분정리작업이 막바지에 있는 등 6월까지 계열분리작업이 이뤄지고,외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 중이다.전자와 중공업은 돈을 잘 벌고 있으며,건설은 지난해 누적결손을 대부분정리해 올해는 수익개선이 기대된다. ■현대투신은 어떤가 유동성에 다소 문제가 있다.오랫동안 누적된 연계콜 2조∼3조원 흐름에 문제가 있느나 이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결할 일이다.대우채로 인한 손실 1조원가량은 그동안 증자 8,000억원과 수익 등으로 충당해클린화돼 심각히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금감위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현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지난해 현대증권 주가조작사건과 바이코리아운용에 대한 위규처리,현대투신운용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일련의 조치로 현대가 어려움을 겪어온 건 사실이다.최근 일련의 자구노력 조치로 경영체제가호전되고 있다.현대의 구조조정 의지가 확고한 지와 기업지배구조를 고쳐 투명성을 확보하느냐가 신뢰회복의 관건이다. ■현대에 대한 정부의 압박은 없는가 정부가 현대를 비롯 4대 재벌에 대해세무조사와 부당내부거래조사 등 의도적이거나 표적조사를 하는 게 아니다. 경기회복에 따른 정기적인 세무조사이며,공정위도 만약 구조조정본부가 불법행위를 한다면 조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현대에 대해 다른 의도가 없다. ■‘현대사태’를 낙관하는가 5월 금융 계열사가 주총을 통해 경영지배구조의 투명성과 독립성,책임성을 강화하는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다.실질적인 사외이사 선출과 감사위원회 도입,준법 감시인 선출 등의 구체적인 조치로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현대가 다른 모습을 취할 것으로 알고 있다. 박선화기자 psh@
  • 현대사 주요인물 100명 친필휘호 한눈에 본다

    한국 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중요인물 100여명의 친필 휘호를 한눈에 볼 수있는 홈페이지(www.docuyoo.co.kr)가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한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힘찬 필체를 사이버 공간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트를 공개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 데도 방명록에는 격려의 메시지가가득하다. 박정희(朴正熙)·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을 비롯 정계 학계 언론계 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빼어난 활동을 한 유명 인사들의 친필을 한 번의 클릭으로 만나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수환(金壽煥) 추기경,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시인 등 생존 인물의 휘호도 눈길을 끈다. 분야별로는 소설가 박종화(朴鍾和),시인 이은상(李殷相)선생 등 문학인들의휘호가 가장 많고 김은호(金殷鎬)·허백련(許百鍊) 화백, 경봉(鏡峰)스님 등의 휘호도 눈에 띈다. 조명환기자 river@
  • 원로사학자 2人의 ‘화려한 노후’

    ●계간·학회지 낸 강만길·조동걸 교수. 원로사학자 두 사람이 ‘화려한 노후’를 자랑하고 있다.은퇴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학계와 후학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주인공은 조동걸 국민대 사학과 명예교수(68)와 강만길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67).두 사람은 모두 역사연구의 ‘외길’을 걸어왔다.조 교수가 정통 연구자로 역사연구에 전념해왔다면,강 교수는 80년대초 해직의 시련을 겪기도 했고 참여지식인으로도 활동해 왔다.그러나 두 사람 모두 학자로서의 지혜,선비의 풍모,지식인의 식견을 두루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한 후배 역사학자는 “조교수는 아직도 후학들의 월례 토론모임은 물론 뒷풀이조차 빠지지 않는다”면서 “조 교수는 ‘은퇴한 현역’”이라고 말했다.역사학계의 한 중진교수는 “강 교수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역사연구자로 이 시대 선비의 상징”이라고 평했다.지난해 정년퇴직한 강 교수는 성북구청 뒤편에 자신의 호를딴 ‘여사서실’을 열고 집필과 후학을 지도하고 있으며 강 교수보다 1년 먼저 은퇴한 조 교수역시 지난해 받은 상금의 일부로 자택 인근에 집필실을마련,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두 사람은 편집(발행)인 자격으로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신서원)와 ‘한국사학사학보’(반년간)를 각각 창간,선보였다.이는 두 사람이 평소 해온 일련의 작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강 교수는 평소 ‘역사의 대중화’를 줄기차게 모색해 왔다.그는 잡지창간의 목적을 “역사가 그저 학문,그저 옛이야기가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삶을 이끌어내는,그래서 모든사람들이 공유하는 힘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그동안 강 교수는‘현재성과 대중성이 있고 그 위에 발전적 역사인식이 깃들일 수 있는 역사’를 위해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고쳐 쓴 한국근대사’‘역사를 위하여’‘20세기 우리역사’‘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 등 여러 권의 사론집(史論集)을 냈다.‘내일을 여는…’창간호에서 ‘왜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했는가’‘38선은 왜 그어졌는가’‘역사인물 바로보기’ 등을 기획한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독립운동사,그 가운데서도 의병·독립군연구에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조교수는 한국사 연구의 큰 ‘흐름’에 주목해 왔다.이번에 창간된 ‘한국사학사학회보’는 지난해 2월 그 자신이 주동이 돼 결성한 ‘한국사학사학회’가창립 1년만에 내놓은 첫 성과물이다.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얼룩진 모습처럼 한국사학이 온갖 시련을 겪어왔는데 이제 그동안의 역정을 학문적으로 정리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강 교수가 창간한 잡지가 교사·학생 등 일반상대라면,조 교수가 창간한 학회지는 순수 학술지로 전문연구자용이다.이번 창간호에는 ‘용비어천가에 나타난 역사의식’(정구복)을 비롯해 ‘조선초기실록편찬체제의 변화에 관한 연구’(오항녕) 등의 논문이 실려 있다.특히 이학술지는 ‘나의 역사연구’라는 코너에서 생존한 원로 역사학자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있는데,창간호에서는 서양사 전공자인 노명식 전서울대 교수(71),한국사의 이기백 전서강대 교수(76),한국고고학 및 고대사 분야의 김정학전고려대교수(89),동양사의 고병익 전서울대 교수(76) 등 4명의 증언을 실었다. 정운현기자 jwh59@
  • “한국사학계 아직도 황국사관 못벗어”

    ●회고록 '인간 단군을 찾아서' 출간 상고사 연구학자 최태영 옹. “역사가 올곧게 정립돼야 개인과 사회가 바른 길을 나아가게 됩니다.올바른 역사의식이 그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격동의 근·현대사를 한 몸으로 겪어온 최태영옹.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학자요,상고사 연구자로서 한세기를 살아온 원로학자이다.최근 그의 인생 역정을 정리한 회고록 ‘인간 단군을 찾아서’(학고재 펴냄)가 100회 생일을즈음해 나왔다.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왜곡되고 질곡의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 현실을 보면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큰일이라 생각했어요.일제가 식민사관으로 부정하는 단군의 실체를 학문적으로 연구해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최옹은 우리 상고사에 관한 자료를 처음 손에 쥐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그가 걸어온 인생역정은 이렇듯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교훈과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그는 공부 외에는 단 한 군데도 곁눈질하지 않은 올곧은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글을 정리한 김유경 전 경향신문 문화부장은 “격동의 한국역사를 살아 오시는 동안 친일·친공을 한번도 하지않은 유일한 분”이라며 “삶의 자세가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어른”이라고 말했다.특히 그를 일제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본어를 쓰는 것을 거부한 유일한 분이라고 소개한다. 회고록은 단군전설이 있는 황해도 구월산 근처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파노라마같은 길을 일화중심으로 따라간다.여기에는 그가 접촉했던 우리 역사속의 인물들이 그려지고 있다.박영효와 서재필,이승만,김구를 필두로 정인보와 홍명희,이광수,김성수,양주동이 등장하고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원한경(언더우드 2세),모펫,게일,쿤스 같은개신교 선교사들도 있다. 회고록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도 바로잡고 있다.예컨대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 설립자인 언더우드가 일제 치하에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신사 참배를 허용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론 그가 신사참배를 반대했으며,김구와 이승만이 결정적으로 충돌한 첫케이스가 48년 연희전문에서 열린 언드우드동상 제막식이었음을 밝힌다. 특히 식민사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학자 이병도와 김재원 전 국립중앙박물관관장과 얽힌 일화는 주목을 끈다.최옹은 두 지인을 식민사학에서 탈피시키려 애써 결국은 이들을 환골탈태시켰다고 책을 통해 밝힌다. “신채호와 정인보 등 민족사학자들이 대거 납북되거나 사망해 일제하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던 식민사학자들이 대거 강단에 서게 됐으며 그 중심인물이 이병도 였습니다.이병도는 결국 단군이 실재인물이라는 점을 인정했으나그 후학들이 실증사학에 매달려 숲을 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최옹은 한국 사학계가 아직까지 일제의 ‘황국사관’을 답습하고 있다며 젊은 역사 후학도들을 질타했다. 그의 인생관은 언제나 ‘서두르지 않고 한결같이’ 살아가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무슨 일이든 서두르면 안돼요.급하게 가면 탈이 나게 돼 있거든요.사고가 한곳으로 쏠리는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이 때문에 최옹은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좌우명을 써달라면언제나 ‘한결같이 살자’란 문구를 적어준다고 말했다. 최옹은 일제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뛰어든 상고사연구에 얽힌 삶도 소상히 소개했다. “역사가 깊은 나라에는 신화가 있습니다.여기에 역사적 사실이 반영돼 있지요.하지만 우리의 경우 다릅니다.일제가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신라가 한국사의 시작이라며 단군조선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역사적 왜곡을 한 것이지요.조상의 뿌리가 잘리면서 단군과 우리가 이산가족이 된 것입니다”최옹에게는 대한민국 학술원 최고령 회원,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유일한생존자,서울대 초대 법대학장을 역임한 한국 법학의 살아있는 전설,한국 상고사 연구가란 직함이 언제나 따른다.국내 사학계에는 그의 학맥이 없음에도불구하고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단군사상을 가장 안전하게 학문적으로통합할 수 있는 학자로 꼽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최옹은 일본 메이지대를 졸업한 뒤 경신학교 이사장 겸 교장을 역임했다. 해방후에는 이승만정권에 합류하지 않고 정치를 멀리했고 한국전쟁이 끝난뒤에는 상고사연구에 본격 뛰어들었다. 최옹은 현재 인천에서 의사인 외동아들과 살고 있다.거동은 힘들지만 밤새워글을 읽는다고 말하는 그는 아직까지 서재를 지키는 것은 왜곡된 우리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회고록은 그동안 최옹이 발표한 글에다 그의강의노트 및 메모,구술 등을 김유경 경향신문 전 문화부장이 정리한 것이다. 정기홍기자 hong@
  • 6·25 납북인사 생사·행적 통협·조평통 통해 공식 확인

    독립운동가·국회의원 등 남한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납북된 것은 한국전쟁와중의 일이다.그러나 해방직후 북으로 넘어가 정착했거나 48년 ‘남북협상’에 참가했다가 북에 잔류한 인사들은 자진월북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6·25발발 3일만인 50년 6월28일 서울을 점령한 후 북한 노동당 군사위는통일전선 강화를 목적으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남한의 저명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해 이들을 강제로 연행했다.당시 작전명령은 ‘모시기공작’.물론 이들 가운데는 ‘국회프락치사건’ 관련자 등 소위 참여파 잔류인사들은 자진,또는 권유로 출두했다.당 군사위는 이들을 성향별로 다섯 부류로 분류해 포섭대책을 마련하고 7월 중순부터 3개월정도 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4차에걸쳐 평양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9월15일 연합군의 인천상륙과 28일 서울 수복으로 퇴각을 거듭하던인민군은 평양이 함락되기 전에 남측요인들을 다시 후방으로 옮겼다.남측인사들 가운데 사망자가 생긴 것은 바로 이 때부터다.유동열은 10월18일 자강도 희천 근처에서,춘원 이광수는 10월25일 만포에서 각각 사망했고,행렬에서낙오됐던 국학자 정인보는 11월 하순경 초산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김규식은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있던 만포 적십자병원에서 12월10일 사망했다. 휴전 이후 납북인사들의 행적이나 생사여부는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다가 56년 7월 결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통협)와 61년 5월 결성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에 남측인사들의 면면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생사여부와 북에서의 활동 등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납북인사들의 재북 행적이 남한 사회에 구체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들어 남파된 북측 인사들이 전향,증언하면서부터.6·25 당시 ‘모시기공작’의 실무자였던 김모씨(작고)가 처음으로 재북 남측인사들의 행적을 공개한데 이어,북한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60년대 중반 월남한 이항구씨(67)는 월·납북 문인들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기도 했다. 남측인사들의 재북 행적,생사여부 등이 증언집으로 출간된 것은 70년대부터다.통협 출신으로 남파된 후 전향한 조출씨(작고)는 납북인사들의 행적을 모일간지에 연재한 후 이를 단행본으로 묶어 71년 ‘38선’을 출간했다. 이로부터 20년 뒤인 지난 91년 언론인 출신의 이태호씨는 북한에서 정무원 부부장·조국통일민주전선 부국장 등을 역임한 신경완씨(가명·80년대 망명·98년 작고)의 증언을 토대로 ‘압록강변의 겨울-납북요인들의 삶과 통한의 한’이라는 책을 출간했다.또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운 편사연구사는 신씨의 증언과 남한내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김규식 선생의 비서로 만포까지 동행했던 권태양(북한에서 작고)의 일대기를 재구성해 95년 ‘통일독립의 한국현대사’를 출간했다. 한편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그동안 대북정보가 절대부족한 상황에서 관계자들의 증언은 소중한 자료이며 납북인사들의 행적 등을 다룬 학위논문은아직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평양 리포트/(하)월·납북 인사 행적·최후

    김흥곤 선생(76·북한평화통일촉진협의회 고문)은 남한 현대사연구자들이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재북 인물중 한 사람이다.그는 전남 광주 출신으로 약관 22세 때부터 조소앙(임정 외무부장)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다.48년 4월 남북연석회의때는 조 선생을 수행해 평양에 다녀왔고,50년 9월 15일 미군의 인천상륙후 인민군의 후퇴때 조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북행길에 올랐다.그는 지난 56년 7월 조소앙을 중심으로 안재홍,엄항섭(임정 선전부장),오하영(민족대표 33인중 1인),최동오(임정 국무위원),송호성(광복군·국방경비대 총사령관),김효석(자유당시절 내무장관)등 남한측 인사들이 조직한 북한 ‘평화통일촉진협의회’(이하 통협)에 참가해 현재 이 단체의 고문으로있다.그는 재북 임정요인들의 북에서의 삶과 최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4월 7일 오후 5시 평양 보통강호텔 면담실에서 어렵게 선생을 만났다. ●증언을 결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선생님의 증언은 우리 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남에서 온 기자선생을평양에서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민족주의 애국인사들의 운명에 대해 제가 70평생 체험한 이야기를 하려 하니 정확히 보도해주기 바랍니다”●선생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조소앙 선생의 비서가 되셨습니까. “일제하 광주사범학교 3학년때 2종 교원시험에 합격해 교원생활을 했는데학생들에게 조선어 공부를 시키다가 43년 반일교원으로 몰려 파면당했습니다.독립운동가 출신 당숙의 소개로 서울 백남운 선생댁에 피신해 있었는데 해방후 임정요인들과 함께 귀국한 조 선생이 비서를 구하면서 내 얘기를 들으시고 비서로 삼으신 겁니다”●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셨을 때 일들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남의 좌익세력들은 비법적으로 배를 타고 해주로 들어갔지만 민족주의 세력은 합법적으로 올라갔습니다.김구,김규식(임정 국무위원),조소앙,조완구(임정 국무위원) 선생 모두 자기 차로 평양에 가서,그 차로 돌아다니다가 내려가셨습니다.연석회의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은 대단했습니다.참가자들에게 양복 와이셔츠도 해주고 과일,사이다 같은 것을안겨주면서 열렬히 환송했습니다”. ●남에서는 남북연석회의가 실패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오늘의 관점에서 남북연석회의를 평가하신다면? “그것은 우리 역사상 공산주의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이 합작 단결을 과시한최초의 대민족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지금도 평화통일하자면 이념을 떠나민족이 대단결하는 것 밖에 다른 방도가 있습니까.앞으로도 민족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북남연석회의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남북연석회의에 대해 남한의 보수진영 학자들은 ‘남북협상은 전적으로 북측에 이용당했다’는 입장이다.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남북협상 가운데 남북연석회의는 그런 측면이 있지만,이어 열린 남북요인회담(4김회담 포함)은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한의 민족적 노력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편집자주]●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녹두꽃’에는 김 선생님께서 50년 9월 인민군이후퇴할 때 안재홍,조소앙 선생을 모시고 평양까지 후퇴한 것으로 나와있는데,후퇴과정과 그때의 민족주의 인사들의 모습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남쪽에서는대부분 이 분들이 강제로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들을 모시고 올라온 내가 납치범이란 말인가.당시 그 분들은‘남북협상파’ 세력이라고 불렸습니다.그분들은 ‘남북 국회가 우선 통합해서 통일헌법을 채택하고 50년 8·15를 기해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평화통일방안을 50년 6월 26일 국회에 상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6월 25일 전쟁이 난 것입니다.전쟁이 터진 후 조소앙 선생은 ‘우리가 조금만 빨리 평화통일방안을 통과시켰다면 이런 유혈전쟁이 없었을 텐데’하고 통탄해 하셨습니다.9월 15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습니다.남북협상을 주장하시다가 김구 선생이 희생당하신 것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외국군 철수와 평화통일’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민족주의 애국인사들의 안위를 걱정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조 선생께서는 빨리 유혈전쟁을 그치고 평화통일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고 전쟁이 그리 오래 가리라고는 보지않으셨습니다.이남 언론에서는 우리가 개성에서 서흥,봉산을 거쳐 대성산으로 갔다고 보도했는데 우리는 미국대사관에서 노획한 차를 타고 임진강 수중다리를 거쳐 다른 길로 왔습니다”[이에 대해 서중석교수(성균관대·현대사전공)은 “당시 북행길에 오른 사람들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조소앙·김규식·원세훈 등 중도우파 계열의 인사들이나 친일파로 지목된 이광수·백관수 등은 납북됐다고 볼 수 있다.반면 ‘국회프락치사건’ 관련자 등은 자진월북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당시 김씨처럼 남측인사들의 북행길에 동행했던 신경완씨(가명·80년대 망명·98년 작고)의 증언집 ‘압록강변의 겨울’에 따르면,서울을 점령한 6월 28일 노동당 군사위는 남한내 주요인사들을 포섭,재교육하여 통일전선을 강화키로 결정하고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요인들을 연행,체포했으며,9월 15일 연합군의 인천상륙후 후퇴하면서 평양에서 재교육을 받고있던 남측요인들을 데리고 자강도 만포까지 후퇴한 것으로 돼 있다-편집자주]●평양에 도착해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당시 평양 대동강 남쪽에 국제전화중계소가 있었습니다.그곳은 국제적으로 등록된 곳이라 폭격을 안하게 되어 있습니다.우리는 9월 20일 평양에 도착해서 국제전화중계소 인근 농촌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동네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해와서 융숭하게 대접받은 후 백선을 두른 특별열차를 타고 강계까지 갔습니다”●북으로 간 민족주의 인사들은 박헌영,이승엽사건과 56년 ‘종파사건’이나면서 큰 고초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최근 공개된 58년 10월 6일평양주재 러시아대사 푸자노프의 ‘업무일지’에 따르면 “58년 9월 30일 동료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조소앙 선생이 대동강에 투신자살했다”고 기록돼있습니다.사실입니까?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조 선생이 별세하신 것은 58년 9월 10일입니다.별세하실 때까지 조 선생은 상급(장관급) 대우를 받으면서 상(장관)들이 사는평양 흥부동 4호주택에 사셨습니다.별세하실 무렵 선생은 학질을 심하게 앓아 많이 쇠약해 있었습니다.별세 전날인 9·9절 술을 드시고 10일 새벽 대동강으로 산보를 나가셨다가 현기증을 일으켜 물에 빠지셨는데 겨우 정신을 차려 집에까지 오셨습니다.그길로 남산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만 운명하시고 말았습니다.병원에서는 사망원인을 학질로 진단했습니다”●김규식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 주십시오. “김 선생께서는 50년 12월 10일 만포 적십자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머리 뒤에 혹이 있고,오랜 숙환이 계셔서 전쟁중에 후퇴하시면서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조완구,김의한(임정요인 김가진의 아들),엄항섭,송호성,유동열(임정 군무부장) 선생 등 다른 임정요인들의 사망시기와 최후도 궁금합니다. “면담에 나오기 전에 신 기자의 질문요지를 전해 받고,남에 있는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에게 제삿날이라도 정확히 알려주어야겠다는 일념에서 한분 한분 돌아가신 날짜를 정확히 적어 가지고나왔습니다(선생은 실제로 약 8쪽의 종이에 자필로 빽빽히 적은 메모를 보여주었다).조완구 선생은 홍명희 부상(차관)의 고모부가 됩니다.평소에도 홍명희 선생이 자주 나와 잘 돌봐드렸는데54년 10월 27일 평양 대성산구역 청암동 자택에서 운명하신 후 홍명희 부상이 주관해서 장례를 잘 치러드렸습니다.김의한 선생은64년 10월 9일 평양시 동대원구역 새마을동 자택에서 운명하셨고,통협 상무위원으로 부상급 대우를 받으시던 엄항섭 선생은 62년 7월 31일 평양에서 별세하셨습니다.통협 상무위원 송호성 선생은 평양 북새거리 자택에서 59년 3월 24일 운명하셨고,유동열 선생은 전쟁중 후퇴하다가 50년 10월 18일 자강도 희천 계선 쌍방골에서 폭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제헌의원 가운데 생존해 계신 분들은 어떤 분들이십니까. “경남 함안 국회의원이던 강욱중 선생은 69년 7월 1일 돌아가셨습니다.역시 제헌의원 출신이신 최태규 선생은 올해 80으로 얼마전 팔갑상을 받으셨습니다.통협 상무위원으로 재직하고 계십니다만 심장이 안 좋으셔서 요즘은 집에서 쉬고 계십니다”●돌아가신 민족주의 애국인사들의 묘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김규식,조소앙,조완구,오하영,엄항섭,유동렬,최동오,임규섭 선생은 신미리 애국열사릉에,그외 통협 회원들은 신미리와 삼석구역(대성산) 특설묘지에 계십니다.또 통협 결성전에 돌아가신 현상윤(고려대 총장·50년 9월 25일폭격으로 사망),백관수(동아일보 사장·제헌의원·51년 10월 25일 폭격으로사망),정인보(국학자) 선생 역시 삼막 특설묘지에 모셨습니다.정인보 선생의따님은 홍명희 선생의 며느리가 되어 지금 평양 청류동에 살고 있습니다”junyoung@
  • 평양 리포트(중)컴퓨터 열풍

    기자 일행이 평양에 도착한 4일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엔 봄기운이 완연했다.대동강변에 위치한 고구려시대 평양성의 동쪽 장대 연광정 부근에서는 인민학교 여자아이들 너댓명이 줄넘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하는 노래에 맞춰 차례로 줄을 넘어 들어왔다가 나가는 놀이 방식은 우리와 같은데 노래를 ‘미미솔 미미솔 미솔 파미레’하는 식으로 계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특이했다.한참 재미나게 돌아가던 줄넘기 줄이 별안간 멈췄다 했더니 한 남자아이의 훼방 때문이었다. 취재중 점심식사를 위해 보통강 구역에 있는 평양프로그램센터(재일동포와 합작으로설립된 소프트웨어개발연구소) 식당에 들렀을 때 10여명의 젊은 남성들이 포켓볼을 즐기고 있었다. 모란봉공원의 아름다운 숲속에는 청춘남녀들이 다정히속삭이고 있었다. 통일부는 99년 북의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했다고 평가했다.국내외 여러 전문기관에서 북의 경제가 바닥을 쳤다는 평가도 나왔다. 지난해 9월 이후 꼭반년만에 다시 찾은 평양에서 기자는식량부족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경제사정의 징후는 전기로부터 왔다.그러나 이번 방북때는 첫날 저녁식사 때부터 정전이 되었다.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듯 곧 촛불이 들어왔다.안내기자들은 “각종 공장의 조업이 정상화되어 전기수요는 늘었는데 갈수기라서 수력발전소의 전기생산량이 떨어져 전력사정이 긴장하다”고 했다.약 1분 후에 전기는 다시 들어왔다. 기자가 이번 방북취재에서 주요 초점으로 삼았던 문제중 하나가 바로 ‘북의 컴퓨터 및 인터넷정책’이었다.인터넷 벤처산업이 동북아시아 전체를 이끌어 나가고 이른바‘신경제’가 21세기 초 세계경제의 최대 화두로 대두하고 있는 현실에서 북은 어떠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했다.어떤이들은 북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 케이블망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나라라는 점과 현재의 경제난 등을 들어 북에 컴퓨터 인터넷정책이 거의 없는 것으로 단정한다.그러나 세계에서 미국 국방성 인터넷사이트에 가장 많이 접속하는 나라가 북이라는 통계 등을 놓고 볼 때 이는 성급한 판단이다. 기자는 방북취재 첫 날인 5일 만경대구역 선내동에 위치한 조선컴퓨터센터를 방문했다.조선컴퓨터센터는 최근 삼성과의 소프트웨어 공동개발사업 추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의 컴퓨터기술 발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이다.지난 90년 문을 연 후 4,500명의 컴퓨터프로그램 연구개발 일꾼들이조선어처리부문,다매체프로그램(CD)개발부문,경영업무 프로그램화부문,전문가체계부문,게임프로그램 부문,인민경제부문공정조정 부문 등 6개 센터에서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고 있다.조선컴퓨터센터가 개발했거나,개발중에 있는소프트웨어들은 매우 다양했다.‘내나라’라는 워드프로세서를 비롯해 CD로는 ‘우리 강산’‘조선역사유물’‘아리랑’이 있다.또 컴퓨터바둑프로그램인 ‘KCC(조선컴퓨터센터)바둑’은 99년 호스트컵 세계 컴퓨터바둑대회에서우승을 차지하고 세계 최초로 공인 2급을 수여받았다. 지난해 만났던 백철진 생산기술사업처장이 기자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백 처장은 평양리과대학 출신의 컴퓨터전문가이다.그에게북의 컴퓨터 보급및 사용 실태에 대해 들어보았다.“각급 기관,기업소에 거의 컴퓨터가 보급돼 사업을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습니다.일꾼들은 문서를 작성하고 엑셀을 이용해 사업상 필요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정도까지 컴퓨터를 익히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일꾼들에 대한 컴퓨터교육은 직장에서 자체로 강의를 마련해 가르치거나 야간대학,인민대학습당 같은 사회교육기관이 담당하고 있다.백 처장은 “김정일 총비서가 ‘컴퓨터를 안하면 무지몽매에서 벗어날 수 없다.온 나라를 컴퓨터화 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라’고 교시했다”며 김 총비서가 컴퓨터분야에 대해 뛰어난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또 “온 나라를 컴퓨터화하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방향은 우리식으로 프로그램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컴퓨터 분야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세계적 보편성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이같은 보편성과 호환성을 놔두고 굳이 ‘우리식으로 프로그램을 발전’시켜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외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들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일부프로그램을 들여다가 참고하기도 합니다.하지만 대부분은 자체기술로 새로만들고 있습니다.자기 힘으로 안 만들면 진정으로 자기것이 못됩니다.특히프로그램 개발도구(툴)들을 우리식으로 다시 제작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북의 인터넷정책 쪽으로 돌렸다.북은 과연 언제쯤 인터넷망에 접속할 계획일까. “우리도 인터넷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을 요해하고 인터넷망 연결에 대한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넷망에 접속하면 해커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식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해커가 잘 들어올 수가 없다고 보고 네트에 관련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측이 중국에 인포뱅크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남에서는 남북 인터넷교류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그 문제에 대해 백 처장의 의견을 물었다.“우리도 그 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우리 컴퓨터센터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대단히 큽니다.사업에 필요한 설비나 제반 조건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빠른시간 내에 우선적으로 보장되고 있습니다.이는 모두가 강성대국 건설 노정에서 과학기술,정보산업이 반드시 활성화돼야 한다는 국가적 관심 때문입니다”.북에서도 첨단 지식기반산업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신경제’를 중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7일에는 인민대학습당 최희정 총장(53)과 인터뷰를 가졌다.인민대학습당은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하는 기관이자,대학을 나오지 못한 근로자들이대학졸업 수준의 강의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교육의 전당으로 알려져있다.최 총장은 금속재료부문을 전공한 과학자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3년째 인민대학습당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최 총장과의 인터뷰에서기자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인민대학습당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보를 누가 먼저 쥐고 그것을 어떻게 자기생활에 적용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우리 인민대학습당은 서지 형태의 정보는 물론 컴퓨터망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보 및 과학기술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의 컴퓨터망은 어떤 범위에서 구축되어 있으며 누가 사용하고있는 것일까.“독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내각,성,중앙기관,공장기업소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사회 체계망이 구성되어 있습니다.예를 들어 낙원기계공장기업소의 기사장은 자기 기업소에서 인민대학습당 홈페이지에 들어와 필요한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통신망으로 제공하는 곳은 인민대학습당만이 아닌듯 했다.각 도·시·군 도서관은 물론,중앙과학기술통보사,김일성종합대학,의학과학원,발명국 등 여러 곳이 ‘자료기지를 축성’(데이터베이스화)해서 독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이처럼 북에서는 현재‘전사회의 컴퓨터화’ 사업이 상당히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남에서도 나이든층일수록 컴퓨터 인터넷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워 하는데 북에서는 그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우리는 내각의 상,부상,책임일꾼,공장기업소의 지배인 등 간부들부터 컴퓨터를 배워주기 시작해 점차 노동자교육으로확산했습니다.새로운 것을 들이밀자면 우선 간부들부터 무장시켜야 합니다”. 지난해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컴퓨터학부가 컴퓨터과학대학으로 확대 승격되었고 각 대학에 컴퓨터학부가 신설되었다고 한다.여기서 배출된 인력들은향후 북의 정보통신산업 부문에 집중 투입될 것이다.양상은 다르지만 동북아를 휩쓸고 있는 인터넷 벤처열풍에서 북한 역시 무풍지대가 아니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공정위, 구조조정본부 규제 안팎

    공정위가 대부분의 재벌그룹에 설치돼 있는 구조조정본부에 화살을 겨누자일각에서는 정부가 ‘2차 재벌개혁’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재벌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한 과정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최근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우리 재벌그룹의 관행이 궁극적으로 ‘재벌해체’를 추구하는 정부의 뜻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음을 확인하고,재벌 구조개혁의 고삐를 더욱 조이기 위해 마련한 수단인 것만은 확실하다.재정경제부가 재벌 구조개혁을 위해 법적·제도적 틀을 구축한데 이어공정위는 감시의 틀을 좁혀 들어감으로써 재벌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다수의계열사를 지배하는 ‘황제경영’형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구조조정본부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계열사의 인사개입,부당내부거래지시,총수재산관리,상속지시 등 총수의 선단식 경영수단으로 변질돼 이용되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를 방치할 경우 구조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현대사태를 통해 절실히 깨달은 듯하다. 총수의 선단식 경영을 위해 ‘변칙운용’되는 구조조정본부에 계열사에서직원을 파견하고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므로 과징금 부과 등 처벌의 대상이 된다.공정위는 그러나 변칙운용의 기준이 자의적이기 때문에 심사지침에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차제에 재벌의 부당내부거래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보이고있다. 상호채무보증 금지에 따라 대기업의 금융자원에 대한 독점이 완화되고 부당내부거래 억제,감량경영,금리하락 등에 따른 대규모 이익이 실현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으나 시장원리에 맞는 기업경영 관행의 정착은 아직 미진하다는 판단에서다. 계열사 금융기관을 총수의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에 개입한 금융기관도 처벌하고,지능화된 내부거래를 포착하기 위해 내년 2월 종료되는 계좌추적권 발동을 연장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한편 공정위는 지난 98년 5월부터 여섯차례에 걸쳐 대규모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실시한 결과 5대그룹(현대 대우 삼성 LG SK) 166개사에서 총 17조8,517억원의 지원성 거래를 적발,1,70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함혜리기자 lotus@. *공정위의 방침에 대한 재계 반응. 재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그룹의 구조조정본부가 총수의 경영지원 기구로 변질되면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뿐 현행법에 저촉될 이유가 없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공정위의 방침이 구조조정본부의 조기해체를 겨냥한 것이 아닌가 긴장하는 모습이다.문제의 대목이 자의적인 해석의 소지가 많아 남용될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는 특히 공정위가 내년 2월로 끝나는 금융거래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의 연장을 추진키로 하자 부당내부거래 단속을 통해 재벌개혁의 고삐를 다시죄려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현대는 공정위의 강경태도에 대해 “우리는 이미 ‘21세기 현대 경영전략’을 발표하면서 구조조정위원회의 순수 구조조정 업무 충실 등을 결의한 바있다”면서 겉으로는짐짓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현대는 지난달 몽구(夢九)·몽헌(夢憲) 형제의 경영권 갈등을 겪으면서 현대경영자협의회의 즉각 해체,구조조정위원회의 조기 해체 등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5%도 안되는 지분으로 경영 전권을 행사하는 일부 재벌총수의 황제식 전횡을 문제삼는 데 대해서는 “지나친 단순화 논리”라며 적잖이신경쓰는 모습이었다. LG는 “일각에서 보는 것처럼 구조조정본부가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난 적이없다”고 말했다.삼성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삼성 관계자는 “삼성 구조조정본부는 말 그대로 구조조정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면서 “구조조정본부가 총수를 위한 기구 역할을 한 적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SK 관계자는 “최근 일부 그룹의 경영권 싸움이 기폭제가 돼 정부가 규정화작업을 서두르는 것같다”며 “구조조정본부가 구조조정에 충실해야 한다는취지는 이해하지만 ‘총수의 경영권 전횡수단 이용’이라는 대목의 해석이자칫 자의적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공정위가 앞으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정해야겠지만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구조조정본부의 설립취지 자체가 무색해질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안미현 박홍환기자 hyun@
  • 대학가 ‘통일동아리’ 활기

    대학가의 통일 관련 동아리와 학술모임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은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사회주의적 통일론을 답습하기 보다 통일에대비하고 적극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학생들로부터도 폭넓은 호응을 받고 있다. 지난달 1일 활동을 시작한 서울대 통일 소모임 ‘링고(RINGO·Reunification Inspiring NGO)’는 학생들을 상대로 통일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하루에 5분만이라도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 함께 고민하자고 호소하고 있다.지난 8일에는 홈페이지(www.ringo.or.kr)도 개설했다.이들은 통일 비용에 보태기 위해 ‘통일기금 저금통’을 만들어 500원씩 받고 나눠주고 있다.벌써 500개나팔았다. 학생들은 저금통에 모은 돈을 통일기금으로 기증하게 된다. 이 모임 대표 조지영(趙智英·22·여·물리교육과 4학년)씨는 17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발표 이후 대학생들 사이에도 통일 붐이 일고 있다”면서 “통일분야의 비정부기구(NGO)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북한문제 학술 소모임인 ‘겨레화합 연구학회’는 남북분단이나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매주 토론을 한다.이 학교 북한학과 영화소모임 ‘플리커(flicker)’도 전공을 살려 최근 한 인터넷업체로부터 북한 영화 관련컨텐츠 제작을 의뢰받아 작업중이다. 명지대 북한학과 학회 ‘형설지공’은 96년 발족한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으나 올들어 다시 신입생을 받았다.학생들은 북한 문화나 정치·경제는물론,북한과 관련된 국제정세 등도 공부한다.지난 10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을주제로 토론하는 등 매주 토론회를 열어 회원들간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조선대 동아리 ‘통일21’은 지난 12일 신입생들과 남북정상회담을 주제로토론회를 가졌다.이 동아리는 남북관련 국제정세나 북한 역사 등을 주제로매주 토론회를 열고 있다.국정은(鞠廷恩·22·북한학과 3학년) 회장은 “신입생이 6명이나 가입할 정도로 후배들이 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 기쁘다”고 말했다. 조선대 ‘한국정치연구회’와 ‘제3세계’ ‘정치경제연구’ 등 통일과 남북한의 정치·경제 등을 공부하는 학술 동아리들도 최근 조성되고 있는 통일붐에 고무돼 신입 회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1)부시‘고르비 정상회담

    세계 현대사의 굵은 매듭에는 어김없이 그 시대,세계를 이끌어온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대좌가 있었다.살벌한 군비경쟁속에 인류를 이념의 틀에 얽어맸던 냉전체제도 강대국 정상들의 결단에 의한 회담으로 무너졌다.관계가 소원하기만 했던 나라들의 해빙(解氷)무드 역시 지도자들의 ‘만남’을 필요로했다.정상간의 대화는 묵었던 현안을 해소할 수 있는 장(場)이 될 수 있음을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6월12일의 한반도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새 천년의 기억 한편에 물러서 있는 세기의 정상회담을 돌아보고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89년 美·蘇정상회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4주 뒤인 1989년 12월2일,지중해의 휴양지 몰타해변.정박중인 소련 순양함 ‘막심 고리키’호의 카드놀이방을 개조해 임시로 만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마주앉았다.주위에는 소련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얘기가 잘 안되면 책상을 발길로 걷어 찰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좁군요.”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고르비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정상회담 얘기가 나가자 동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자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오늘 만남도 오래전부터 이어진 대화의 연장선 같습니다.” 헝가리의 국경 개방,베를린 장벽 붕괴 등 냉전의 벽들이 무너지는 소용돌이속에서 구질서의 양대 축인 미·소의 정상은 이렇게 만났다. 부시 대통령이취임한 이후 10월 말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추진해 온 정상회담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한다면 세계는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부시는 참모진과의 협의를 거쳐 준비한 양국 무역협상 개시,소련의 최혜국 대우를 금지시킨 잭슨-바닉 수정안 해제 등 고르비 최대의 관심사항인 경제 제안들을한꺼번에 제시했다. 부시는 무기감축에 관해서도 진일보한 입장을 보였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우리는과거 냉전에서 얻은 교훈들을 토의할 필요가 있으며,대립의 정치학인 냉전적방법론은 전략적 패배를 맞고 있습니다.” 고르비는 다소 철학적인 답변으로대신하며 대화분위기에 신경을 썼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몰타의 기상은 최악이었다.미국의 순양함 벨크냅호와 소련 함정 슬라바호를 오가며 갖기로 한 정상회담은 폭풍우를 꺼린 고르비의 제안으로 장소가 고리키호로 변경됐다. 이튿날 회의에서 고르비는 미·소관계의 이정표를 긋는 중대한 발언을 한다.“우리는 미국이 유럽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며 이것은 유럽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여러분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물론 언쟁도 있었다.아프카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두고 설전이 오갔으며,동독의 변화를 서방의 가치에 기초를 둔 변화라는 부시의 언급에 고르비가 “우리도 민주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되받는 등 한때 공기가 냉랭해지기도 했다. 부시는 고리키호를 떠나지 않으려는 고르비를 위해 이틀 동안 거센 파도속에 함재정을 타고 밸크냅호와 고리키호를 오가,이를 TV로 지켜보던 미 국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몰타회담의 하이라이트는 12월3일 열린 사상 최초의 미·소 정상 공동 기자회견.고르비의 전격 제안이었다. 부시가 기자들에게 “미·소 관계개선으로 고쳐 나갈 수 없는 문제가 세계,특히 유럽에는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을 꺼내자 고르비는 “우리 두 사람은 세계가 냉전의 시대를 지나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영구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기자회견을 끝낸 두 사람이 전용기를 타고 몰타를 떠날 때 회담 내내 멈추지 않던 폭풍우는 빛나는 태양에 그 자리를 내줬다. 45년간 지구촌을 갈라놓은 냉전시대 구질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조지 부시,냉전해체과정 충격없이 연착륙시킨 주역. 미국 41대(1989∼1992) 대통령.89년 1월23일 취임,동구 민주화 도미노,베를린 장벽 붕괴 등 급속한 속도로 진행된 냉전 해체 과정을 충격 없이 연착륙시킨 당사자다. 76세.매사추세츠주 밀튼 출생으로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텍사스에서 정유사업으로 부를 축적,64년 상원의원 출마로 정치에 입문했다.닉슨 대통령 시절주 유엔 대사를 거치고 75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헝가리 국경 개방 이후 선물받은 ‘헝가리 철조망조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소개해 당시 외교 결실에 따른 보람을 은근히 내비쳤다. 98년 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함께 당시를 기록한 회고록 ‘세계의 대전환(A World Transformed)’을 펴냈다. 동구 해체시의 위기관리 능력과 91년의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미 경제의 침체로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줄 무렵 인기가 급추락했다.아들인 조지 W부시가 공화당 후보로 올 대선에 출마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냉전해체 1등공신…90년 노벨평화상 수상.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1985∼1991년),옛 소련 대통령(1990∼1991년).명실상부한 냉전해체의 일등 공신으로 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69세.스타프로폴의 농가 출신.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52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82년 후견인인 안드로포프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공산당 서기장이 되면서 정치적 위치가 급상승했다.이때부터 부패와 비효율에 대한 개혁을 시도,명성을 얻었다. 85년 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는 80년대 국제사회 최대의 화두였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강경파와 개혁파들 사이에서 입지가 흔들렸고 91년 8월강경파들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개방정책은 발트해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소련연방의 해체로 이어졌고 경제는 피폐해졌다.서방에서는 ‘칙사’ 대접을,러시아내에서는 러시아 추락의주범이라는 원성을 듣고 있다.지난해 9월 부인 라이사가 암으로 사망,쓸쓸한말년을 보내고 있다. 김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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