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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韓·美동맹과 정전체제

    다사다난했던 2003년이 저물고 있다.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해였지만 외교통일분야에서 남남갈등만큼 우리 사회를 뒤흔든 단어는 없는 것 같다.그리고 남남갈등의 쟁점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논란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일년 내내 지루한 공방전을 벌인 북핵문제에서도 한·미공조와 남북공조는 남남갈등의 핵심 이슈였고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도 한·미동맹은 최대의 논란거리였다.더불어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기지 이전문제에서도 한·미동맹의 미래모습을 놓고 우리 사회는 홍역을 겪어야만 했다. 올해가 한·미동맹 50주년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번잡할 정도로 많은 학술회의가 개최되기도 했다.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50년이 되는 올해는 동시에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이라는 역사성을 띠고 있다.한·미동맹 50주년과 정전체제 50주년이 한반도 현대사의 쌍생아라는 사실 자체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의 과도기적 현실을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한·미동맹과 정전체제의 동시성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한·미관계에 대한 남남갈등을 배태하고 있는 구조이자 조건이다.그렇기 때문에 분단된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덕분으로 우리가 정치·경제적 발전을 구가했음을 간과할 수 없는 반면,한·미동맹 자체가 바로 정전체제라는 분단의 멍에 위에 형성된 것임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한국은 적잖은 혜택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한·미동맹이 한국의 현대사에 반드시 긍정적 결과만을 양산하지는 않았다.한·미동맹은 정전체제와의 쌍생아라는 본질적 한계로 인해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애초부터 갖고 있었다.한·미동맹이 공고해질수록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이 그만큼 어려워졌던 것이 그간의 현실이었다.지금 남북관계 개선 이후 민족화해가 증진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에서 한·미동맹이 적잖이 위협받는 것도 바로 그러한 시대적 한계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미동맹은 우리가 유지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특히사회주의의 실패와 북한체제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목도하면서 향후 우리의 미래는 당연히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한·미동맹의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20세기 한·미동맹과 21세기의 그것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20세기가 냉전이라는 대외적 상황과 정치·경제적으로 아직 발전하지 못한 신생국 한국이라는 대내적 상황을 전제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한·미동맹은 다소의 불평등과 부작용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탈냉전과 남북관계의 개선 그리고 민족화해의 증대라는 대외적 상황을 맞고 있고 더불어 경제규모 세계 11위의 OECD 국가,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진척되고 있는 정치·경제적 발전상황을 대내적으로 맞고 있는 상황이다.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되 그 내용과 수준을 과거 20세기의 냉전시대와는 다른 21세기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21세기 한·미동맹은 군사적 차원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관계에서도 이제 변화된 환경에 맞게 새롭게 조정되어야 한다.물론 이것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혜택을 제공했던 한·미동맹 자체를 거부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남북관계의 개선과 향후 통일과정을 고려하고 그리고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 한국을 감안해 이제 앞으로의 한·미동맹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내용과 수준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면 당연히 거기에 맞게 동맹관계도 변화해야 한다.지금의 한국이 과거의 한국이 아니고 지금의 한반도가 과거의 한반도가 아님은 이제 지금의 한·미동맹 역시 과거의 한·미동맹과 질적으로 달라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그리고 그것은 정전체제와 쌍생아를 이루고 있는 분단의 부산물로서의 한·미동맹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분단을 혁파하고 새로운 한반도 질서창출에 기여하는 그리하여 민족화해와 통일시대에 걸맞은 한·미동맹이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 근 식 경남대 교수 극동문제연구소
  • [사설] 50년만에 귀국한 국군포로

    국군포로 전용일씨가 50년동안 한순간도 잊지 않았던 조국으로 돌아왔다.20대 초반 청년으로 포로가 됐된 그가 늦게나마 귀국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그러나 칠순 노인의 깊게 파인 주름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과 분단의 비극이 배어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특히 지난 6월 함께 탈북한 아들이 중국 공안에 발각돼 강제 북송됐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아들의 강제 북송과 많은 위기를 넘기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전씨의 귀국과정은 분단으로 인한 뒤틀린 현대사의 비극을 말해주고 있다. 전씨의 힘겨운 귀국에는 불성실하고 미온적인 대응을 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국방부는 아주 간단한 국군포로 확인조차 제대로 못했다.주중 대사관과 국가정보원 관계자도 탈북 국군포로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홀대했다고 한다.조국을 위해 몸바친 사람을 국가가 돌보지 않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는 전씨의 귀국을 계기로 국군포로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00여명으로추산되고 있다.귀국을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후속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탈북 국군포로들을 위한 정부 부처의 협조체제와 중국과의 협력 강화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귀국한 탈북 국군포로 30여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북한은 국군포로가 한 명도 없다는 거짓 주장을 중단하고 진지하게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에 나와야 한다.정부도 북한과의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사고/‘조정래 칼럼’ 싣습니다

    대한매일이 새해부터 서울신문으로 새 출발하면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사진·60)씨의 칼럼을 싣습니다.‘조정래의 세상보기’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찾아갈 이 칼럼은 “한국문학의 정신이자 지조”로 불리는 작가의 뜨거운 육성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근현대사를 꿰뚫는 한국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태백산맥’을 비롯해 ‘아리랑’‘한강’ 등 대하소설을 잇달아 집필한 지난 20여년 동안 조씨는 소설 이외의 글은 가능한 한 삼가 왔습니다.오랜 ‘글 감옥’에서 나와 서울신문 독자와 숨결을 맞대게 된 그는 ‘우리 민족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조정래의 세상보기’는 대하소설 작가의 엄정한 통찰력과 태백산맥 그 넓은 지역에 나는 돌쩌귀풀꽃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던 따뜻한 마음이 함께 투영되면서 품격 높은 칼럼의 미학을 보여 주고 지적 즐거움을 아울러 선사할 것입니다.뒤틀리고 혼탁한 오늘의 우리 정치·사회에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며 역사의식을 일깨우기도 할 것입니다. 1943년 전남 승주에서 태어난 작가 조정래씨는 1970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해 단편집 ‘어떤 전설’‘20년을 비가 내리는 땅’‘황토’‘한,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불놀이’ 등을 냈고 대하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등으로 80년대 이후 한국문단에서 불꽃처럼 빛나는 작가가 됐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그의 작품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습니다.새해부터 격주로 월요일에 연재될 ‘조정래의 세상보기’는 소설의 감동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줄 것입니다.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 [마당] 중국학 방향전환 할 때

    이미 문화비평은 중요한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역사학자 헤이클렌 화이트는 그의 논문집을 내면서 ‘문화비평집’이라는 부제를 붙였다.자신의 집중 연구영역이 현대사상 방면임에도 불구하고 주된 의도를 역사·문학·철학과 인류학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문화 비평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 역시 적지 않은 저작들이 문화 비평서인데,그는 현재 문학 비평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작품들이 철학·신학·사회이론 등 제 방면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문학’이라는 범주에 가두지 말고 ‘문학 비평’보다는 ‘문화 비평’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문화라는 화두가 인문과학의 비중 있는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는가? 문학가·역사가·철학가 등 전공을 막론하고 문화라는 영역에 들어오는가? 우선 사상과 관점의 다원화를 들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중국학도 60,70년대까지 주로 사상·관념 위주의 연구였으나 8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사 취향의 문화 연구로 전환했다.미국의 이런 연구 방향은 유물사관에 의해 무장한 중국학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으나,우연인지 필연인지 90년대 이후 중국의 중국학은 문화사 연구열로 가득 차 21세기에도 사회사 연구와 더불어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사실상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부쩍 많아진 구미 유학파들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데,보수적 학문 성향이 강한 타이완에서도 미국 유학 출신의 학자들이 서서히 포진하면서 중국학의 학제적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이러한 양상은 연구의 세계적 동시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인다. 중국학에 관한 연구가 원활히 이루어지려면 학과를 초월하여 종합적인 연구를 지향해야 하며,보다 범주가 넓은 ‘사상 문화’ 연구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안동의 선비문화에 감탄을 토해냈던 두웨이밍(杜維明) 교수는 그와 전공이 다른 장하오(張灝),피터 버거 등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인류학·사회학·역사·문학·철학 등 서로 다른 각도에서 중국의 전통 유학을 문화사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학과 개념으로 중국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사실상 사상사·철학사·문학사·문화사를 막론하고,중국학은 문(文)·사(史)·철(哲)이 융화되어 관통했지,결코 분업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천편일률적이고 세부적인 학과 구분에 치우쳐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국 관련 학과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한국에서의 중국학도 문화 방면을 중심으로 연구방향을 모색할 때다.왜냐하면 학문 영역의 지나친 세분화는 학과간의 소통과 대화의 필요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같은 전공이라고 해도 대화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모든 전공의 영역을 초월하여 소통과 대화의 장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문화인 셈이다. 학과를 초월한 학제적 연구가 이미 일반화되고 심지어 도식화된 틀을 억압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된 중국 이해라는 확고한 목적을 갖고 이 새로운 종류의 연구를 수행시킬 수 있는 틀을 확립할 경우,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학문적 교류의 자유는 그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김 원 중 건양대 교수 중국학
  • 불밝힌 미아리 고갯마루/성곽·구름다리 조명등 점등식 미래지향의 모습으로 탈바꿈

    우리 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사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애환의 미아리고개가 아름답고 역동적인 미래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북구(구청장 서찬교)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미아리고개 정상에 있는 구름다리와 인근 성곽 등에 대한 야간경관 조명작업을 완료,16일 저녁 점등식을 갖고 불을 밝혔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그동안 한강교량 등 많은 곳에 대한 조명작업을 펴왔지만,미아리고개 조명작업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미아리고개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사연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6·25때는 북한군과 중공군,그리고 많은 피란민들이 이 고개를 넘었다.이곳에서 헤어진 이산가족도 많다.미아리고개 사수를 위해 수많은 목숨도 바쳤다. 병자호란 때도 청나라 군사가 이 고개로 넘어왔다가 다시 돌아갔다고 해서 ‘되너미’고개라고 불린다. 60년대 이후에는 수많은 점집과 판자촌,미아리 텍사스 등 사창가 등이 들어서 어두운 현대사의 한 단면을 연상케 한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노래에서 ‘울고넘는 이 고개여,한 많은 미아리고개’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암울하고 상처뿐인 시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이런 미아리지역에 재개발·재건축 바람이 불며 판자촌은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바로 인근 길음지역에는 뉴타운이 들어서고,사창가인 속칭 ‘미아리 텍사스’는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돼 새로운 변신을 꿈꾸고 있다. 구는 이런 변화의 움직임에 맞춰 조명의 컨셉트도 ‘시련의 역사’를 극복하고 ‘희망찬 미래’에 맞췄다. 구름다리와 옆의 성곽,정자 등도 환하게 불을 밝혀 어둡고 우중충한 곳의 대명사인 ‘미아리고개’를 밝고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꾸몄다. 조덕현기자 hyoun@
  • EBS ‘사담 후세인’ 특집다큐

    EBS는 미군에 생포된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다룬 특별 다큐멘터리 ‘사담 후세인 그는 누구인가?’를 17일 오후 10시에 방송한다. ‘사담…’은 후세인 전 대통령의 탄생부터 미국과의 두 차례 전쟁과 잠적,그리고 생포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이라크 현대사를 조명한다.
  • 간이역등 29곳의 공간 문학적 서정으로 메워/최재봉 ‘…사이버스페이스까지’

    간이역,카페,절,무덤,사막,숲…. 우리 문학에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해온 소재들이다.어쩌면 우리 문학사는 그 ‘빈 사이(空間)’를 나름대로의 서정과 상상력으로 메워온 숱한 작가들의 고백이 아닐까? 이룸출판사에서 나온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최재봉 지음)는 그 공간들을 다룬 다양한 작품들을 저자가 발로 누빈 기록이다.10여년 동안 한겨레신문 문학기자였던 그가 연재한 기사를 바탕으로 새로 잇고 누비고 한 이 글은 같은 ‘틈’이 보기에 따라서 얼마나 다채롭게 변주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국문학의 공간 탐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빈집’을 비롯한 29곳의 공간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동일한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목소리의 작품들을 일일이 캐낸 저자의 열정이 묻어있다. 예컨대 저자는 ‘포장마차’라는 공간에서 시인 안도현의 ‘숭어회 한 접시’와 임영태의 ‘포장마차’에 담긴 “매혹적 자태”를 끄집어 낸다.이어 김승옥의 단편 ‘서울,1964년 겨울’의 한대목으로 안내한 뒤 포장마차가 지닌 매혹의원인을 “따스한 인정,낯선 사람들끼리의 의기투합” 등으로 분석한다. 저자의 공간을 통한 문학보듬기는 다양하다.일그러진 우리 현대사에서 저항의 상징은 문학.투옥된 문인들이 유달리 많았던 터라 ‘감옥’은 문학의 단골 소재였다.그 곳은 “억압적인 현실과 그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상징”(김지하)하거나 ,“확고한 투쟁 의지로 강고한 성채를 이루면서도 뜻밖의 따뜻한 서정성을 발휘”(김남주)한다.여기에 송기원·김영현·황석영의 경우처럼 빼어난 작품을 낳은 ‘문학적 자궁’이기도 하다는게 저자의 시선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이런 책 어때요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유재현 지음 창비 펴냄 격변의 현대사를 경험한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3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소설가인 저자는 베트남 공산당 지도자 호치민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패권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비판한다.인도차이나 공산당의 주도권을 쥔 호치민은 캄보디아와 라오스 공산당운동의 자주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스탈린식 비타협 노선을 앞세웠다.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메콩 삼각주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모습,한때 마약과 섹스의 낙원으로 불린 프놈펜,라오스의 고도 루앙파방 등 인도차이나의 매혹적인 자연과 유적도 다룬다.1만 5000원. 저널리즘의 기본요소 빌 코바치 등 지음 / 이종욱 옮김 한국언론재단 펴냄 미국 애리조나 주 출신 상원의원 존 매케인은 하노이에서 5년6개월간 전쟁 포로로 지낼 때 가장 그리웠던 것은 안락이나 음식,자유,심지어 가족이나 친구도 아니었으며 “검열하거나 왜곡되지 않은 풍부한 정보였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인식에 대한 본능(awareness instinct)’이라 할 만하다.그만큼 뉴스는 우리 삶에 간절한 것이다.이 책에서는 언론의 기본 원칙을 논한다.영국 ‘맨체스터 가디언’의 편집인인 C.P.스콧의 “논평은 자유로운 것이지만,사실은 신성하다.”라는 말은 오피니언 저널리스트에게 퍽 시사적이다.1만 5000원.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초의 과학자 마이클 화이트 지음 / 안인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동물은 모두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여겨 고기를 먹지 않은 채식주의자이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구를 만드는 데 열광한 발명가.인간의 시체를 며칠 밤낮으로 해부하면서 인간의 신체가 가치없는 인간이 지니기엔 너무 훌륭하다고 경탄한 과학자.아름다운 성모와 여성을 즐겨 그리면서도 여성을 혐오하고 미소년만 사랑한 화가.그가 ‘르네상스 맨’이란 한마디로 표현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다.그는 모든 기록을 다른 사람이 쉽게 읽지 못하도록 왼손을 이용해 ‘거울글씨’를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남들이 자기 생각을 훔쳐갈까 두려워 했던 것이다.1만 8000원. 이거룡의 인도사원 순례 이거룡 지음 한길사 펴냄 세계 사상의 요람인 인도 곳곳에 널려 있는 사원들을 종교학자의 눈으로 살폈다.“참된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참되다.참되고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이 셋은 영원하며,하나의 실재를 드러내는 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오는 카주라호 사원,태양사원으로 불리는 코나락 사원 등 힌두교 사원을 탐방.불탑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산치의 마하스투파,카를라 탑원 등을 둘러보면서 흔히 인도 불교학자들이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로 드는 ‘불교의 자연사’,즉 불교가 소멸해 힌두교의 넓은 바다에 용해되었다는 견해를 소개한다.1만 5000원. 리더십 3막 11장 존 휘트니·티나 팩커 지음 / 송홍한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많은 ‘창조’를 해낸 사람은 셰익스피어라고 했다.그가 탐색하지 않은 주제란 하늘 아래 거의 없다.선과 악,사랑과 증오,정의와 불의,오만과 겸손,죄의식과 결백,전쟁과 평화 등 세상사의 온갖 주제를 다뤘다.그 중에서도 특히 되풀이해 다룬 주제가 리더십이다.이 책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권력의 본질과 리더십의 기본 원리를 살핀다.저자들은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며,리더십은 연극적 능력이라고 말한다.1만 7500원.
  • [씨줄날줄] 신판 연좌제

    대살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사전을 찾아보면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을 대살(代殺)이라고 한다.사전에는 없지만 또 다른 뜻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제주도 4·3사건이나 6·25때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검거대상인데 몸을 피했다면 가족 가운데 한 명을 대신 죽이곤 했고 이를 대살이라고 했다.연좌제의 가장 지악한 형태인 것이다.누군가를 대신해 목숨을 바친 그들은 풍상과 함께 산하의 보드라운 흙이 되었지만,현대사 굽이굽이에 뿌려진 그들의 핏자국은 아직 선명하다. 6·25이후 대살은 거의 없어졌지만 연좌제는 살아남았다.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에 1980년 8월1일 연좌제 폐지라고 소개돼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연좌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그 이후에도 연좌제 관행으로 인한 폐해를 호소하는 주장이 그친 건 아니다. 연좌제는 취업과 출국시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작가 이문열씨는 어느 자리에선가 “나는 아버지가 월북할 때 겨우 세 살이었고,얼굴도 기억 못하고 아버지에게 감화를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길이 다 막혔다.공무원도 못 되고 해외도 못 나가고….할 일이 제한되어 버리는 결과가…”라고 말했다.연좌제의 폐해를 그린 한강의 작가 조정래씨도 “당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인권까지 제약을 가하는 나라가 문명국가 중에 과연 있을까.”라고 개탄한다. 연좌제는 국가가 국민을 의심하는 제도다.국가나 이념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질식시키고 입을 틀어막는 제도다.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도 장인의 좌익 경력과 관련지어 얽혀 들어갈 뻔했었다.연좌제의 망령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겐 경계의 대상이 또 하나 생겼다.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14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아버지 조병옥 박사가 친일파”라면서 “조 대표는 입을 열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나중에 김 의원은 광복 후 친일파 형사들을 등용했던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조 박사의 광복 전후 행적에 대해선 비판이 열려있다.그렇더라도 ‘애비가 빨갱이면 자식도 입닫고 살라’는 연좌제는 안되고 ‘애비가 친일파면 자식도 입닫고 살라.’는 연좌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일까.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는 바뀌었지만 논리 구조는 합동이다.진보와 보수,혁명과 반혁명 어떤 이름으로라도 연좌제는 연좌제.인간성에 대한 비열한 공격일 뿐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본 풍경/서울 선화랑 ‘매그넘 풍경사진’展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단체인 매그넘(MAGNUM) 소속 작가들의 작품은 보통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오지 인간들의 삶,대도시의 뒷골목 등 흔히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주로 앵글을 맞춰 왔다.그러나 매그넘은 예술사진 분야에서도 탁월한 수준을 자랑한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매그넘 풍경사진’전은 다큐멘터리 보도사진에 매달려온 매그넘으로서는 좀 생소한 ‘풍경사진’의 진수를 보여준다.매그넘 창립 멤버인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조지 로저,로버트 카파를 포함해 질 페레스,알렉스 웹,브루스 데이비드슨,스티브 매커리,조지프 쿠델카 등 매그넘 정회원 40여명의 풍경 사진 130여점이 전시중이다.이번 전시는 1997년 매그넘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획,1999년부터 시작한 세계 순회전의 하나다.전시작들은 1938년부터 1996년까지 시기적으로 50여년에 걸쳐 있다. 작품들은 풍경사진이지만 시대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산업화와 도시 풍경,전쟁과 폐허의 풍경 등을 통해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사진은 ‘풍경 바라보기’‘실재하는 풍경’‘재발견된 풍경’‘풍경 속의 인간’‘전쟁 풍경’ 등 다섯 가지로 나뉘어 걸렸다.‘풍경 바라보기’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구성된 풍경사진들을 보여준다.원경에 풍경이,근경에는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뒷모습이 놓인다.‘실재하는 풍경’은 특정한 지역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재발견된 풍경’은 건설하고 파괴하기에 바쁜 현대사회의 시각적인 기호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모았다.‘풍경 속의 인간’은 엑스트라가 아니라 풍경의 주인공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전쟁 풍경’은 전쟁의 참화로 일그러진 도시,국경지대의 난민 등 인간 유린에 대한 기억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작품들로 꾸며졌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매그넘은 2차대전 직후 설립돼 지금까지 전쟁의 목격자 역할을 해왔다.창립자인 로버트 카파는 베트남 취재중 지뢰를 밟아 숨졌고,또 다른 창립 멤버인 데이비드 세이무어는 수에즈 전선에서 이집트군의 기총 소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사진가 개인의독특한 스타일로 기록되고 해석되고 재발견된다.그런 점에서 매그넘 회원들은 리포터라기보다는 작가에 가깝다.전시 기간 중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사진평론가 이기명씨가 전시작품들을 설명하는 행사를 마련해 일반의 이해를 돕는다.내년 2월28일까지.(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편집자에게/ 장기적 국가경영 계획을 수립할 때

    -‘중국 대한(對韓)행보 심상찮다’(대한매일 12월13일자 1면) 기사를 읽고- 중국이 우리를 속국(?)이란다.물론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지만,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국가였던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 속 소수민족이 세운 일시적인 국가라고 하니,말로 표현하지 않았다뿐이지 논리상 그 소리다.그것도 일부 인사나 단체의 왜곡된 인식이나 돌출 행동이 아니라 국가가 공식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통해서다.일본은 아직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러시아는 동해상의 어로 구역을 제한하고 있고,미국은 우리 군대를 자기네 전쟁터에 파병하라고 한다.한 술 더 뜬 중국은 아예 우리 역사를 내놓으라고 한다. 한반도 현대사를 볼 때 주변 4강의 입김은 절대적이다.특히 냉전시대에는 적과 아의 구분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확연했다.하지만 이제 국제정세나 남북관계의 변화 등에 따라 그 모든 것이 변했다.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미·일·러·중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혹 우리 안에 중국에 대한 역사적 향수나 혹은 막연한 일체감같은 것이 있다면 이는 더욱 심각하다.무서운 식민 사대주의일 뿐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감정적 대응만으로는 안된다.장기적 국가 경영 프로젝트,즉 정치적 이해관계나 세대·지역을 뛰어넘는 국가적 전략전술을 수립해야 한다.국제사회에서 적이 동지가 될 때,동지가 적이 될 때를 항상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시열 도서출판 운주사 대표
  • 24일 개봉 실미도/ 32년만에 살아난 ‘잊혀진 진실’

    베일에 가려졌던 사건을 소재로 해 제작 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린 ‘실미도’(제작 시네마 서비스)의 실체가 드러났다.가슴을 싸하게 적시는 선이 굵은 액션 드라마다.24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1971년 8월23일 전국을 발칵 뒤집은 ‘실미도 사건’을 소재로 한 것. 수류탄과 카빈총으로 무장한 특수부대원 23명이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뒤 서울로 진입하던 중 군·경과 대치하다 자폭한 사건이다.그 와중에 이들이 한때 ‘무장공비’로 잘못 발표되면서 전군에 비상령이 내리는 등 수도권이 혼란에 휩싸였다. 영화는 이 실화를 뼈대로 하면서 ‘픽션’이란 살을 붙인다.쉬쉬하면서 이뤄진 특수부대 창설부터 해체까지의 과정 자체가 워낙 극적인 데다 ‘투캅스’‘마누라 죽이기’ 등 숱한 히트작에서 탁월한 스토리 전개를 인정받은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짜임새 있게 진행된다.최고배우로 자리잡은 설경구와 국민배우 안성기의 열연에 허준호·강신일·임원희 등 연기파 배우들이 가세해 탄탄하게 받쳐준다. 영화의 이미지는 우울하다.권력이라는 보이지않는 거대한 구조에 의해 조종당하는 ‘자동 인형’들의 항거는 태생부터 비극을 잉태한다.특히 용도 폐기처분된 뒤 몰살될 운명에 분노해 서울로 올라오다 ‘무장공비’란 누명까지 쓰면서 자폭이라는 ‘최후의 항거’를 선택하는 마지막 장면은 심금을 울린다. 강우석 감독은 ‘684 특공대’이야기를 기승전결식이란 정공법으로 풀어간다.그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으로 ‘인간 병기’가 되었으며 어떻게 배신당하고 최후를 맞는가를 박진감 있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통령 암살을 위해 김신조 등 북한특수부대가 침입한 이른바 ‘1·21사태’에 맞대응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창설된다.북파공작원 출신의 교육대장 최재현(안성기) 준위는 사형수 강인찬(설경구) 등 생의 막바지에 몰린 31명을 차출해 실미도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탄생시킨다.그러나 북파 예정일에 급작스러운 상부의 명령으로 임무가 중단되고 2년 가까이 방치되다가 해체,즉 몰살명령이 내려진다.자신들의 ‘운명’을 알게 된 요원들은 ‘죽음의 항거’에 나선다.감독이 탄탄한 구성과 굵은 스토리 전개에만 신경을 쓴 탓일까.탈취한 버스 속의 인질이 대치 과정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다가 풀어주는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등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느슨한 요소가 더러 보인다.하지만 이야기꾼 감독은 자신의 특기를 최대로 살렸고 배우들도 혼신의 연기로 응수했다.우울함의 강도를 낮추려 원희(임원희)를 중심으로 훈련과정에 웃음 장치를 슬쩍슬쩍 밀어넣은 덕에 이들의 최후는 역으로 더 가슴시리다.그 덕에 “북으로 보내달라.”“그래도 ‘무장공비’는 너무 하잖아.”라는 등의 684부대원의 절규는 오래 남는다. 이종수기자 vielee@ ■실화와 영화 사이 실제 사건과 영화는 닮았으면서 다르다.골격은 같지만 어떤 부분은 픽션인데 그 이유는 두 가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처럼 ‘실미도 사건’도 베일에 가려 있었다.국민의 정부 이후 대북 방첩부대(HID) 등 ‘인권 사각지대’가 거론되면서 외부에 알려졌지만,재판기록 등 관련자료의 열람이 금지돼 있고 생존자도 없다.또 극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강우석 감독은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이 등장하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관객들에게 부담을 주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래서 ‘상상의 옷’은 불가피했다. ●누가,왜 684부대를 만들었나‘1·21사태’ 직후 68년 4월 김형욱 중정부장의 지시로 창설됐고 이철호 제1국장이 운영을 책임졌다.‘684부대’란 이름도 창설시기에서 따왔다.이후 대북정책이 평화 무드로 바뀌면서 북파부대는 무용지물이 된다.영화는 이 내용을 시사만 할 뿐 구체적 인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왜 실미도를 탈출했나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이 부대원 강인찬에게 ‘해체 명령’을 슬쩍 엿듣게 해 항거하게 하지만 실화에서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불만이 기폭제였다. ●요원들의 신분과 사연 강인찬이 요원으로 차출되기 전 조폭이 된 주된 이유는 연좌제로 인한 불우한 환경이다.당시 요원 가운데 이런 사연의 주인공이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전과자가 많았지만 구체적 캐릭터는 픽션이다.또 영화에서 요원들은 인민군가를부르는데 강 감독은 “실미도 주민들은 당시 인민군가로 잠을 깼다고 증언했다.”며 “사투리를 비롯한 북한 익히기 훈련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체포 뒤 고문에 대비해 인두로 살을 지지는 훈련장면도 나오는데 이는 684부대가 아니라 북파부대(HID)요원의 증언을 참고한 것이다. ●부대원 31명…자폭과 생존 부원은 31명.이중 8명은 훈련 도중 죽거나 자살했고 23명이 탈출했다.15명이 자폭해 숨졌고 2명은 군·경에 피격돼 사망했으며 6명이 부상했다.이 중 2명은 병원에서 숨졌고 4명은 군사재판 뒤 바로 총살됐다.영화에서는 탈출한 28명이 전원 자폭하는 것으로 처리됐다.
  • “가고싶은 고국 땅이건만 ‘자수서’와 바꿀순 없었소”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씨

    ‘이승만 대통령의 장학생’에서 유신 치하의 망명객에 이어 5·6공화국의 ‘국사범’으로 아직도 일본을 떠돌고 있는 ‘통일운동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은 정경모(79)씨다.10여년 전 민족주의자 고(故) 김구·여운형·장준하 등이 저승에서 나누는 대화 형식을 빌려 반민족행위자들을 통렬하게 꾸짖은 ‘찢겨진 산하’(거름 펴냄)로 국내에 알려진 그의 삶은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이승만 장학생' 에서 ‘국사범'으로 최근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해외 민주인사 한마당’ 행사에 송두율 교수 등과 함께 초청돼 귀국을 준비하다 ‘자수서’를 내라는 정부 제안에 “비굴한 형식을 거치느니 거부하겠다.”며 끝내 귀국을 포기해 화제가 됐다.초청인사 50명 중 입국을 거부한 두 사람이 정씨와 그의 부인이었다.일본 도쿄에서 작은 학숙(學塾)을 세워 제일교포 2세들과 일본인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다 건강이 안 좋아져 지금은 요코하마(橫濱)시 히요시(日吉)에 사는 그를 히요시역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준법서약서’ 안 써도 된다고 해서 관계자를 만났더니 자수서를 쓰라고 해.차라리 여기서 그대로 살다가 꺼졌으면 꺼졌지 그런 수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내가 자수서를 쓰면 문익환 목사를 부인하고 나를 파괴하는 거야.” 정씨의 귀국을 막고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89년 문익환 목사와 방북해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고,그전에도 문 목사의 방북을 준비하러 평양에 갔었다.95년엔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와 함께 방북했다. “방북 당시 문 목사와 허담씨가 서명한 ‘4·2 공동성명’은 남북화해의 초석이었어.거기에 놀란 노태우 정권이 당황해 ‘남북기본합의서’(91년 12월)를 내놓았는데 ‘4·2성명’을 계승한 거야.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발표한 6·15 성명도 당시 성명에서 연유한 것이지.그런데 어찌 ‘실정법을 어긴 죄인임을 자인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자수서를 내미는가 말이야.” ●판문점 통역일로 문익환목사와 인연 그가 문익환 목사를 사주해 방북을 권유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문 목사와의 인연은 50년 전에 맺어졌다.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씨는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 미국 에모리대학으로 유학을 가 화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당시만 해도 환전이 불가능해 친분이 두터웠던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학비를 대주기도 하고 송금도 도와주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면 주미 대사가 “당신 같은 사람은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조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권유해 미국 국방부 직원이 돼 도쿄 극동군최고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유학파’로 같은 일을 하러온 문익환을 만났다.두 사람은 정전협정이 논의되던 판문점에서 통역장교로 함께 일했다. 통역일은 정씨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었다.좌익이 데모하는 게 보기 싫어 유학을 갈 정도의 보수적 학생이었던 정씨는 중국의 펑더화이 사령관 등을 만나면서 한반도 정세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비롯한 동북아 현대사 서적을 탐독하며 ‘미국의 정체’를 파악했다.그러던 정씨는 1970년 박정희 독재 정권에 환멸을느껴 일본으로 망명을 감행했다. 정씨에게 송두율 교수 입국이 오버랩되는 건 당연하다.송 교수를 둘러싼 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인텔리티까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정원 능력을 과소평가한 거지.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다가 증거를 들이미니 그때마다 시인할 수밖에.차라리 황장엽씨의 폭로 등 모든 것을 털고 귀국하는 게 나았을 거야.” 내친 김에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다.“국정원의 입장은 이해해.하지만 실정법 위반 이전에 문 목사와 나의 방북 의미를 생각해야 돼.그리고 늙으면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고.자수서에 이름 석자 써넣으면 고국에 갈 수 있지만 살아온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 ●‘장길산' 일본어 번역 내년7월 마무리 화제를 바꿔 황석영씨의 소설 ‘장길산’의 일본어 번역에 대해서 물었다.황씨는 86년에 “제 작품 번역은 선생님 이외에는 해낼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이미 ‘한씨 연대기’ 등을 통해 황씨에게 매료된 상태였고 ‘장길산’을 읽느라 전철역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선뜻 동의는 했지만,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일역 등으로 짬을 못내다가 밀입북했던 황씨가 귀국해 구속된 93년부터 ‘마음의 빚’에 눌려 번역을 시작했다.94년 1권 번역 출간에 이어 1년에 1권꼴로 9권을 번역한 상태다.내년 7월이면 완역한다.(정씨는 ‘장길산’ 일역 관련 일화 등을 최근 창비사가 낸 ‘황석영 문학의 세계’에 ‘황석영과 나’라는 글에서 밝혔다.)꼿꼿하게 원칙을 지켜온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나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만해 한용운 선생 빼고 독립선언문 쓴 33인이 모두 넘어갔잖아.그런 지조를 지킨 ‘최후의 1인’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일제와 싸울 수 있지 않았겠어.” 인터뷰를 마칠 즈음 갑자기 비가 내렸다.댁까지 바래다드리겠다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는 평생 신념을 지키며 산 올곧음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요코하마 이종수특파원 vielee@
  • [인터넷 스코프] 양성평등의 세상 만들자

    남녀가 함께 참여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남녀의 비율이 어느 정도일 때 가장 이상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두 개의 포럼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토론 참여자들은 7대3 정도의 성비(性比)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단다.일단 여성이 늘어나 5대5가 되면 남성들은 불쾌감을 나타내고 훼방을 놓거나 참여를 거부하는 등 토론의 진행을 방해한다고 한다. 인터넷의 등장은 사회적 약자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소수 권력 계층만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누렸다면,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보통 사람들도 많은 사람들을 향해 하고 싶은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인터넷의 이런 특성은 여성에게도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여성 학자들은 인터넷이 오프라인 세계에서 겪어야 했던 남성중심의 불평등에서 벗어나 여성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며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되리라고 기대했다.그렇다면,전체 인구의 60%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지금,인터넷 세상은 과연 남녀가 평등하게 대우받는 아름다운 유토피아일까? 사이버마초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자기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고 폭언과 욕설로 인터넷 토론방을 누비는 사람을 말한다.이들은 여성부와 각종 여성단체 사이트에 ‘타도페미’ ‘아저씨’ ‘군필자’ 등 남성임을 드러내며 여성을 비하하고 욕설을 퍼붓는다.인터넷 세상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이 남성다움의 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한 몸부림이다.이들이 추구하는 남성다움의 문화란 여성에게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여 여성의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고,침묵을 강요해 남성들의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여성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화여대는 학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성난’ 남성들의 공격을 받는다고 한다.3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공무원채용시험의 군필자 가산점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을 때 이화여대 홈페이지는 이 결정에 항의하는 네티즌들로 홍역을 치렀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사이버마초가 등장하지 않더라도,최근에 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보다 여성들만 참여하는 커뮤니티에서 자기를 더 많이 표현하게 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이런 현상은 많은 여성학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인터넷 세상 역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언니네,달나라딸세포,줌마,살류주 같은 여성주의 인터넷 사이트의 인기는 남성중심의 공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맘껏 펼쳐보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인터넷 세상 역시 오프라인 세계의 불평등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여성주의 인터넷 사이트인 언니네에서 ‘오빠네 세탁소’방을 운영하고 있는 남성들은 여성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무지를 깨우치고 가부장적 남성성과 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이렇게 깨어있는 남성들이 있고,인터넷 세상을 양성평등의 장으로 만들어 가려는 활기찬 여성들이 있다. 인터넷은 아직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이고 아직도 새롭게 건설 중인 미완성의 세계이다.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인터넷은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을 조절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될 수 있으며,남녀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양성평등의 세상이 될 수 있다.모든 네티즌이 함께 양성평등의 인터넷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김 경 희 한림대 교수
  • ‘한국 근·현대사 여명의 인물전’

    함세웅(咸世雄·신부) 안중근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독립유공자유족회,주한러시아대사관과 함께 9일 서울 정동 러시아대사관에서 애국 선열들의 초상화를 전시하는 ‘한국 근·현대사 여명의 인물전’ 개막식을 갖고 10,1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전시한다.
  • 이런 책 어때요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 니논 헤세 지음 / 두행숙 옮김 웅진닷컴 펴냄 동양과 서양,자연과 정신,예술가와 사상가,은둔자와 세속인 사이를 오간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만년은 한 여인과 나눈 사랑으로 더욱 위대하고 풍요로웠다.그 여인이 바로 헤세의 세번째 부인이 된,이 서간집의 주인공 니논 헤세다.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삶의 후반을 함께한 여인 니논 헤세가 헤르만 헤세와 나눈 사랑의 기록이자 그녀 내면의 자서전이다.둘의 만남은 예술가로 탁월한 문학적 업적을 이뤘지만 가정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데는 실패한 한 남자와 그를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헌신적이고 지적인 여성의 흔치 않은 결합을 보여준다.2만원. 셰익스피어평전 파크 호년 지음 / 김정환 옮김 북풀리오 펴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실제인물이 아니라 영국이 꾸며낸 신화적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갈 정도로 일화와 전설이 무성한 인물이다.그는 바다와 변신의 신인 프로메테우스만큼이나 신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다.이 책은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르네상스시대 혹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라는 거시적인 틀 안에서 그의 생애와 작품을 분석한다.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변화하는 시대상이 짙게 반영돼 있다.예를 들어 ‘햄릿’이나 ‘맥베스’‘리어왕’ 등은 봉건적 질서가 붕괴하고 골육상쟁이 빈발하던 셰익스피어 당대 상황과 무관치 않다.2만 8000원. 브랜드 괴담 매트 헤이그 지음 지아이지오 커뮤니케이션즈 펴냄 쿠어스 맥주는 ‘긴장을 풀어라(Turn it loose)’라는 문구 때문에 스페인에서 불운을 맞았다.그 문구가 ‘당신은 설사로 고생할 것이다.’라는 말로 번역됐기 때문이다.언어 장벽으로 인한 국제 마케팅 실패 사례다.남성적인 할리 데이비슨 향수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들은 마니아적인 충성심을 보였다.그 이름과 브랜드 로고를 문신으로 새겨 넣을 정도였다.여세를 몰아 할리 데이비슨은 티셔츠·장신구 등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파는 등 브랜드 확장을 꾀했지만 실패였다.이 책에는 기업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브랜드 실패담이 담겼다.1만 3000원. 문항라 저고리는 비에 젖지 않았다 자명 김지태전기간행위원회 엮음 석필 펴냄 부산 지역의 향토 기업가로 출발,세계적인 실크재벌 ‘한국생사’를 이끈 언론인(부산일보 사장)이자 정치인(2대 국회의원)인 자명 김지태 평전.이승만은 재집권을 꾀하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도모하고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안을 강행하려 한다.당시 김지태는 이승만의 정치자금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군법회의에 기소된다.이것이 1951년 조방낙면(朝紡落綿) 사건이다.이 책은 해방 이후 70년대 말까지 험난했던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준다.문항라(紋亢羅)는 무늬를 넣어 속살이 약간 얼비칠 만큼 얇고 섬세하게 짠 옷감을 가리키는 말.1만 2000원. 나무의 치유력 패트리스 부샤르동 지음 / 박재영 옮김 이채 펴냄 에너지 장(場)이 있는 나무를 가까이함으로써 육체와 정신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나무의 치유 에너지를 연구해온 저자에 따르면 자작나무는 부드러운 특성을 지니고 있어 갖가지 충격을 극복하는 데 이용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자작나무는 또 조화의 에너지가 있어 인간관계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전나무는 유동적인 특성으로 인해 몸속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든다.빛과 생명력이라는 특성을 지닌 소나무는 피로,나약함,우울증 등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오감을 통해 나무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나무와 일체가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1만 4000원.
  • 이종승 교육평가원장 사의

    이종승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수능 언어영역 복수정답 등의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1일 사의를 밝혔다. 이 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수능시험을 총괄하는 기관의 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통감해 사임할 것”이라면서 “2일 수능 성적이 발표되면 올해 시험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만큼 수능 성적 통보에 맞춰 사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지난달 27일 고건 국무총리도 이 원장에 대해 임면권자인 최송화 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에게 해임을 요청했다. 이 원장은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로 지난해 9월 교육과정평가원장에 선임됐으며,임기는 2005년 9월까지 3년간이었다. 이 원장의 전임 김성동 평가원장도 2002학년도 수능 난이도 실패와 함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편향 기술과 관련한 정부대책 문건유출 의혹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박홍기기자
  • 세상 모순 알리는 ‘푸른 호각 소리’/6년만에 8번째 시집 ‘은빛 호각’ 낸 이시영 시인

    중견 시인 이시영(54)이 6년 만에 내놓은 8번째 시집 ‘은빛 호각’(창비사 펴냄)은 새로운 형식과 일관된 시정신으로 빛난다.특히 산문시가 많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시인은 첫시집 ‘만월(滿月)’을 비롯하여 ‘바람 속으로’‘길은 멀다 친구여’ 등에서 주로 쉽고 긴 시로 이야기하듯 세상의 모순을 고발했다. 그러다 시적 연륜이 무르익어서였는지 91년 발표한 시집 ‘이슬맺힌 노래’를 시작으로 94년 ‘무늬’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짧은 시로 변화를 모색했다.노장(老莊)사상을 보는 듯 선시(禪詩)에 가까운 압축적 시는 96년 시집 ‘사이’에서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중에는 2∼3행으로 이루어진 ‘저녁빛 속’‘시월’등 간결한 시에서 함축미를 보여주었다.당시 시인은 “시적 호흡이 긴 시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던 시인이 세상에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더 한가로워진 것일까.이번에 산문시라는 새로운 발걸음을 떼어놓았다.산문시임에도 늘어지거나 산만하지 않고 행간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익살스러운 대화와 차분한 장면묘사로 새만금 갯벌을 살리려는 삼보일배 행렬을 그린 ‘수경 스님,규현 신부님’,날조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허무맹랑함을 고발한 ‘증언’ 등은 산문시라는 틀에서 제값을 발한다. ●산문시라는 새로운 발걸음 선보여 또 동료 문인들을 노래한 작품이 부쩍 많아졌다.이전에 그의 작품을 채운 사람들은 대개 이름없는 민초들이었다.그런데 이번 시집엔 ‘혼불’의 작가 최명희 등 문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유신시절 함께 유치장에 갇혔던 이들은 물론 경찰관까지 몰두하게 만든 이야기꾼 이문구의 모습(‘구류’),두차례 만남에서 “근원적 고독감”과 그의 이면에 담긴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을 느낀 최명희(‘최명희씨를 생각함’),항일투쟁에 빛나는 옌볜 작가 김학철 옹이 의연하고 위엄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노 혁명가의 죽음’) 등을 통해 시인은 ‘문단의 큰 사람’으로서의 다양한 교유경험을 확장시켜 문단사의 한축 혹은 현대사를 풍성하게 한다. ●가난한 이웃에 대한 애정 묻어나 아울러 가난한 이웃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는 이번 시집은 엄격하고 치열한 자세로 한결같이 인간다움을 지향해온 시적 여정을 오롯이 반영한다.그 모습은 다음 시에 비유적으로 담겨있다.“겨울이 깊어가자 라일락나무에 다시 꽃망울이 돋았다/거리엔 바람 불고 하늘은 푸른데/세상의 모든 아픈 것들은 저렇게 오는가”(시 ‘맺힘’ 전문) 시인은 76년 첫시집을 내면서 세상과 자신에게 “정말,좋은 시를 쓰고 싶다.그것이 나의 꾸밈없는 노래이면서 우리들의 진정한 노래로 불려질 수 있는 시를”이라고 세상과 자신에게 다짐한 바 있다. 이번 시집은 새로운 틀을 모색하면서도 그의 초심만은 푸른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종수기자 vielee@
  • 책 / 곰에서 왕으로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펴냄 ‘문명’과 ‘야만’은 어떤 동기에서든 현대사회에서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는 단어들이다.그런데 둘은 반드시 반대 꼭지점에 서야 하는 단어들일까.그에 대한 정의를 인간이 내린다는 건 과연 정당한 일일까. 일본의 종교학자이자 철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가 쓴 ‘곰에서 왕으로’(김옥희 옮김,동아시아 펴냄)는 신화를 다양한 각도로 재해석함으로써 그 해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신화 다양한 각도로 재해석 지은이는 ‘야만’과 ‘문명’을 대립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시각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곰이 사람이 되고 곰과 인간이 결혼하는 등의 신화에 가치를 두던 시대에는 야만이란 개념조차 없었다는 것.그 시대에는 인간과 동물이 상호대칭적인 균형을 이뤘다는 주장이다.지은이는 ‘국가(왕)'가 생기면서 그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논의를 발전시킨다.“공동체의 우두머리인 수장을 대신해 보다 강력한 권력자인 왕이 출현하면서 공동체 위에 ‘국가’란 개념이 탄생했다.”는그는 “그때부터 인간과 동물의 관계,문화와 자연의 관계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고 덧붙인다.국가권력을 가진 인간이 본디 동물의 소유였던 ‘자연의 힘’마저 수중에 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 덕분에 책은 종교학·인류학·양자역학·우주론 등 여러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든다.그러나 논의가 제아무리 여러 갈래로 가지를 쳐도 책의 논지는 하나다.신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신화적 사고’를 다시 가져야 한다는 설득이 그것이다.현대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굵직한 사안들이 책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쉬운 예로 등장하기도 한다. ●‘신화적 사고'는 평화지향적 인류행위 온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광우병의 경우.동물의 뼛가루로 만든 사료를 소에게 다시 먹이는 인간의 행위야말로 야만이며,그런 야만이 결국 인류 자신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풀이다.아직도 잡아먹은 연어의 뼈를 정성껏 강에 흘려보내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화적 의식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전세계를 경악시킨 ‘9·11테러’에도 엇비슷한 시각이 적용된다.테러행위 자체도 야만이지만,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계층의 인간들이 다른 대다수의 인류에게 불균형한 상황을 강요하는 것 역시 또다른 종류의 야만이라고 주장한다.어느쪽이 야만적인지,그걸 단정할 권리가 과연 인간에게 있는지 되짚는 셈이다.첨단의 정점을 딛고 선 현대사회에서 케케묵은 듯한 ‘신화적 사고’가 왜 중요한 것일까.신화가 인류최고의 철학인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고 저자는 귀띔한다.문명(인간)과 야만(동물)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지 않는 신화적 사고.그것만큼 평화지향적이고 관용적인 인류행위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1만원. 황수정기자 sjh@
  • [편집자문위원 칼럼] ‘갈등 조정자’로서의 언론

    이번 한 주도 대한매일에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올랐다.1면에는 예외 없이 정치(정치개혁),외교(파병문제),사회(부안사태,노동자시위),경제(현대사태),해외(터키 폭탄테러),그리고 교육(사교육비)과 관련된 주요 기사들이 실렸는데,공통점은 이들 모두가 양자간의 ‘갈등’(과 이에 의한 폭력)에 관한 것이었다.신문을 보면 최근 들어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여기저기서 거세게 불거져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문제는 이러한 갈등의 해결조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등’을 ‘결정’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넓은 의미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이러한 정치의 주체들 사이에 대화와 타협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은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비록 매체의 급속한 발전과 다원화된 사회의 도래로 기존 언론의 역할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언론은 권력이나 사회적 이익집단이 해낼 수 없는 갈등 해결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사실 이러한 조정자 역할은 언론이 표방하는 객관주의이데올로기와 상치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사실의 전달이 주가 되는 뉴스의 객관성은 계속 견지하면서도 사안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진행상황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 등을 전달해서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예측을 독자들이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 된 조정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대한 심층성(심도) 있는 기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특히 갈등이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분석해 해결점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요구된다.이 때 단순히 관련 공직자나 전문가들의 코멘트를 따거나 외국사례의 소개에만 그치지 말고 좀 더 심층성 있는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광범위한 조사와 내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심층성 기사의 대표적인 예가 ‘기획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대한매일도 가끔씩 기획 시리즈물을 싣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주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최근 사태들을 접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기획 시리즈 기사들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자연스레 생긴다.물론 내용과 편집이 괜찮은 단발성의 기획성 기사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하다.인력이나 비용·시의성 문제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좀 더 과감한 물적ㆍ심적 투자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주 5일 근무제의 정착에 따른 관련 기사들을 발굴ㆍ확충하고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면 좋을 것이다.예를 들어 레저 기사의 경우 가볼 만한 관광지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말고 숙박시설이나 음식점은 어떤지,정확히 어디에 문의를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으면 좋을 것 같다.또 스포츠 기사의 경우도 오늘의 경기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만 전달하지 말고 정확히 어디에서 열리는지,또 그곳에 가려면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은지,어느 역에서 내려 어느 출구로 나오면 좋은지 등과 같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인터넷과 같은 타 매체를 통하지 않고도 쉽게 알 수 있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런 점에서 보자면 11월21일(금)자 ‘스포츠&라이프’ 섹션의 오르골에 대한 기사는 좀 생뚱한 측면이 있다.오르골에 대한 소개가 기사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면 전체를 차지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재 진 한양대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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