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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언론법 여론 독과점 허용해선 안된다

    여야는 언론법을 100일의 사회적 논의를 거쳐 표결처리하기로 그제 합의했다. 언론법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일어난 것은 한나라당이 제안한 방송법 등 관련 법률 개정안들이 여론의 독과점을 심화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여야 합의로 파국을 막은 것은 다행이나 언론법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재벌과 보수 언론에 방송을 줌으로써 여론 독과점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이다. 개정될 언론법은 여론의 독과점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여론의 다양성을 기초로 성립한다. 이는 현대사를 통해 절절이 입증되어 온 교훈이다.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회기 중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물러선 것은 작은 진전이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아직도 재벌이 종합편성이나 보도전문 뉴스채널에 진출할 길이 열려 있으며, 신문사 특히 보수 신문은 지상파 방송도 지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자본과 권력의 지배를 받거나 지배하는 언론이 여론 시장을 좌우하면 소수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태롭게 될 것이 틀림없다. 헌법재판소가 2006년 신문·방송 겸영을 금지한 신문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일간신문과 지상파 방송은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미디어 수단이므로 이 두 수단의 융합은 언론의 다양성 보장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고 지적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자 한다. 사회적 논의가 의미 있으려면 여야가 논의 결과를 존중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참고만 한다.”느니 “자문만 하면 된다.”면서 그 의미를 격하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야 모두 사회적 논의기구의 활동을 국민 여론 수렴의 좋은 기회로 삼기 바란다.
  • [EBS플러스]

    ●EBS플러스1 05:00 한국근현대사 06:00 고전문학 07:50 특별한 국어(상) 10:30 세계테마기행 11:10 역사극장 12:00 내신6감 국어(상),물리 13:40 특별한 국어(상),과학 18:00 EBS포스 고전문학 21:00 수능 고3 일본어 ●EBS플러스2 09:20 중 1 국어 10:15 딩동댕 유치원 11:00 어린이 모험극 <스파크> 12:00 중 2 국어, 수학8-가 15:30 공인중개사 강좌 16:00 독학사 교육 강좌 17:00 초등 친절한 선생님 국어 19:00 중 1 국어, 수학1-1 (재) 20:20 중 1 퍼펙트 체크업 (재) 국어 21:40 중 2 수학8-가 23:00 중 3 국어
  • 재래시장 변화의 몸짓 ‘광주 대인시장’ 가보니…

    재래시장 변화의 몸짓 ‘광주 대인시장’ 가보니…

    27일 오후 광주광역시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대인시장. 한때 빈 점포만 늘어가던 시장 한쪽이 예술인들로 북적인다. 화가·도예가·소리꾼들이 직접 망치를 들고 못을 박거나 화실·공방의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등 부산하다. ●빈 점포가 예술인들 창작실·공방으로 20㎡ 안팎의 다닥다닥 붙은 점포들에 새로 페인트가 칠해진다. 내부는 주인의 취향에 따라 독특한 창작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대인시장의 요즘 풍경이다. 이는 전국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활기를 잃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금속공예가 조수진(41·여·도도공방 운영)씨는 “이전에 정육점으로 사용된 점포를 얻어 공방으로 꾸렸다.”며 “예술인들이 잇따라 둥지를 틀다 보면 젊고 유능한 작가들도 몰려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씨의 창작실 맞은편은 동양화실, 바로 옆 ‘북 카페’, 뒷골목 찻집과 국악인 연습실 등이 입주를 서두르고 있다. 언뜻 보면 현대미술과 재래시장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예술인 집단 거주촌이 형성되는 것은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비엔날레의 영향이 크다. 광주비엔날레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재래시장’과 ‘문화예술’을 접목한 ‘복덕방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당시 장미란·선동렬 등 운동선수를 벽화로 등장시키는 등 ‘친근함’으로 호평받았다. 이 전시회 덕택으로 당시 대인시장엔 관람객이 몰려들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상인들도 크게 반겼다. 인근에 백화점 등이 들어서면서 시들해 가던 상권 부활에 신바람이 났다. 복덕방 프로젝트 참여작가 중 일부는 시장 안에 창작실을 마련하고 아예 눌러앉았다. ●예술·시장 접목 비엔날레 ‘복덕방’ 영향 광주시는 이를 계기로 시장 일대를 ‘문화특구’로 가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곳에 ‘예술인 공방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창작·전시·판매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만든다. 이를 위해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 5대 사업을 확정했다. 이 가운데 입주 작가 육성 프로그램인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최우선 추진된다. 작가들의 작업실 임대료 등을 지원한다. 진흥위는 최근 장기 체류작가 10명을 선정했다. 또 다음달 4일까지 공모를 통해 입주 작가 20명을 추가 선발한다. 장기적으론 미술단체와 외국인 작가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 이 프로젝트의 총감독인 박성현(전 복덕방프로젝트 큐레이터)씨는 “광주의 근현대사와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재래시장과 상인의 삶을 예술 소재로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라며 “작가들의 각종 창작품을 매주 토요일 장터에 내놓아 문화교류와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시장일대 문화특구 조성 착수 시장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이정순(57·여)씨는 “지난해 가을 비엔날레의 복덕방프로젝트의 덕을 톡톡히 봤다.”며 “당시엔 전시장을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매상이 50% 이상 올랐고, 최근 예술인촌이 입주하면서 그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인근 횟집주인 김모(45)씨는 “예술인들이 들어오면서 빈 점포가 눈에 띄지 않는 것만도 시장의 쇠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며 “서민들의 삶과 예술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재래시장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침체를 거듭하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마련했다.”며 “국내 최초로 예술작품과 시장 상품이 동시에 판매되는 문화 교류 장소로 가꿔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이주노 ‘빨간구두’로 넌버벌 퍼포먼스 연출가 컴백

    이주노 ‘빨간구두’로 넌버벌 퍼포먼스 연출가 컴백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이주노가 넌버벌 퍼포먼스 연출가 겸 제작자로 변신한다. 넌버벌 퍼포먼스 ‘프리즈’에 참여하며 공연 연출에 첫 발을 내딛은 이주노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이주노의 빨간구두’를 제작했다. 그는 대사 없이도 화려한 춤과 신나는 음악만으로 스토리와 재미를 담아내는 작품을 만들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 되고 있는 스트리트 댄스를 주소재로 하는 ‘빨간구두’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비보이(B-boy)들과 재즈댄서들이 신비의 빨간구두를 두고 벌이는 꿈과 야망,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전설적인 춤꾼을 도와주며 선물 받은 구두 한 켤레로 본인의 성공은 모두 구두의 힘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구두를 도난당하고 좌절을 하게 되지만 전설의 춤꾼을 다시 만나 본인의 의지로 세계최고의 댄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주노는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민들이 ‘빨간구두’를 통해 꿈과 희망이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닥친 경제 불황에 좌절하는 모든 젊은이에게 새로운 도약의 의지를 심어주고 싶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또 “이번 작품에 언어의 벽이 없는 만큼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 도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계획을 전했다. 한편 이주노는 ‘이주노의 빨간구두’ 출연자를 OBS ‘주철환 김미화의 문화전쟁’의 오디션을 통해 춤꾼들을 선발했다. 이주노는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고 무대에설 배우들을 뽑는 과정을 지켜보니 (춤꾼의) 피가 끓는다.”며 “2000년 이후 춤을 거의 추지 못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간간히 춤 연습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때는 정말 평생 춤만 추고 살줄 알았고 그러고 싶었다.”고 말하는 이주노는 “나는 언제든 무대 위에 다시 설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춤을 추는 것보다 나보다 훨씬 더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후배들이 세계시장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주노가 제작 및 연출을 맡은 ‘이주노의 빨간구두’는 오는 3월 20일부터 숙명여대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사진제공 = 픽스애드)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옛 서대문 형무소 최초 건축도면 발견

    옛 서대문 형무소 최초 건축도면 발견

    서대문형무소가 최초 건축도면에 따라 원형대로 복원된다. 이는 지난달 서대문형무소의 건축도면이 발견된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진행됐던 서대문형무소 보수 공사가 복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달 15일 발견된 건축도면은 서대문형무소의 1936년도 원형 도면이다. 격벽장(수감자 체육시설), 구치감(미결수 수용소) 등의 모든 시설현황이 나와 있다. 형무소로서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도면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대문·서울시·문화재청 747억원 들여 복원 추진 서대문구는 24일 “서울시, 문화재청과 함께 이 도면을 토대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도면은 구가 형무소역사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 추진하던 중 국가기록원에서 발견됐다. 구는 서대문형무소 보수사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자연환경연구소에 학술용역을 맡겼다. 연구소가 국가기록물을 검토하던 중 이 도면을 찾은 것이다. 문화재청이 523억원, 서울시가 224억원을 투입하고 서대문구가 총괄 공사를 맡아 원형 그대로 되살리기로 했다. 사적 324호인 서대문형무소는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 탄압기관이다. 서대문구 의주로 247(현저동 101번지)에 있다. 지난 한해 57만여명이 이곳을 찾아 독립투사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다. 구는 이달부터 설계에 들어가 2020년까지 복원사업을 마칠 예정이다. 형무소역사관 원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한제국 관보(국가의 공고 기관지)와 조선 총독부 관보, 국가기록원 총독부 기록물 등 각종 사료와 도면 문헌조사에 역점을 두었다. 또 광복회와 독립운동 관련단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고증절차를 진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3·1절 맞이 체험행사도 마련 복원사업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추진된다. 1단계 사업은 2011년까지 시행된다. 구는 총 144억원을 들여 청사 외벽 백색타일을 없애고, 벽돌을 이용해 원형대로 재구성한다. 현재 역사관에 소장된 무쇠솥 등을 이용해 취사장을 복원한다. 수용자들의 운동시설인 격벽장을 다시 만들어 체험시설로 활용한다. 또 독립운동가 유족과 유품 기증자 증언을 토대로 영상물도 제작한다. 2015년까지 진행될 2단계 사업에서는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 공장터, 담장, 망루 등을 다시 설치한다. 2020년 마무리될 3단계 사업에서는 전시시설뿐 아니라 교육, 학술세미나 공간을 확대한다. 구는 이와 함께 제90주년 3·1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다음달 1일 오후 1시30분, 오후 3시30분에 독립만세 재현 체험행사가 준비돼 있다. 예약하면 독립운동가 복장으로 독립선언서 낭독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밖에 OX 문제 풀기, 음악회, 얼굴에 태극기 그려넣기, 태극기 그리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신상영 서대문구 문화체육과 팀장은 “형무소 복원사업이 끝나면 서대문구가 역사·문화 관광 명소로 한층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진보·보수 두 학자의 한국근대 100년 ‘소통하기’

    진보·보수 두 학자의 한국근대 100년 ‘소통하기’

    그릇에 물이 담겨 있다. 어떤 이는 물이 ‘절반이나’ 찼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이는 물이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고 한다.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틀린 것일까? 진보쪽에 서 있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와 보수적인 학자로 분류되는 허동현 경희대 교수가 지식인과 친일, 여성, 대중문화, 종교 등 한국 근대 100년의 다양한 풍경들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박 교수가 먼저 아쉬움과 부족함을 꼬집으면, 허 교수는 긍정적인 부분에 무게를 실으며 받아친다. 이들의 ‘말씨름’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을 보는 듯하다. 박 교수는 근대 여성의 표상으로 칭송받는 신여성도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여성을 ‘정숙’과 ‘음탕’이라는 두 기준으로 나누고 심판하는 남성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 교수는 여성의식과 직업의식, 민족의식을 갖고 남성 지배 사회와 식민지라는 이중 장애를 넘어서려고 했던 신여성의 능동적인 모습에 주목한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의 성매매에 대해서도 후벼판다. 박 교수에게 성매매는 자본주의 체제와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적인 산물로 사회악이다. 2004년 정부가 성매매방지법 등 성매매 근절 대책을 실시한 것도 동유럽 국가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일단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생매매 여성을 사회 구성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책이 충분하지 못해 탈성매매가 아니라 선진국형 성매매로 옮아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허 교수는 성매매 여성의 주체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계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이자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성매매 여성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악몽에서 세상을 깨우는 도구여야 한다는 박 교수는 한류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낸다. 유럽에서 일고 있는 한국 영화와 태권도 열풍을 소개하며 유럽인들은 ‘한국’이 아니라 신기하고 낯선 ‘아시아’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딴죽을 건다. 그러나 허 교수는 영화는 욕망을 파는 문화상품으로 바라본다. 옛날에는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했으나 이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 국적과 문화를 넘어선 한국 대중문화가 유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앞으로 과제는 ‘쌍방통행’이라고 진단한다. 두 교수가 이렇듯 비틀고 꼬집고 다른 시각으로 함께 역사 쓰기를 하며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소통’과 ‘공존’이다. 어느 사회의 어느 구성원이든 정치·사회적 이해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같은 역사 서술을 생산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고 강변한다. 토론으로 사회 구성원 스스로 선택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가르기와 단절, 강요가 횡행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내일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다. 이번에 나온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는 두 교수의 세 번째 공동 작업이다. 앞서 한국 근현대사를 테마로 ‘우리 역사 최전선’(2003년)과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2005년)를 내놓은 바 있다. 둘은 경희대에서 함께 있었다. 박 교수가 노르웨이로 떠난 뒤 서로 안부도 묻고 의견도 교환했던 일이 일련의 작업을 위한 디딤돌이 됐다. 1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민중이 역사 주체로 떠오른 3·1운동 세계 反제국주의 투쟁 선봉장 역할”

    “민중이 역사 주체로 떠오른 3·1운동 세계 反제국주의 투쟁 선봉장 역할”

    3·1운동 90주년을 앞두고 동아시아와 세계사의 맥락에서 3·1운동을 재평가하려는 학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극렬했던 시기에 일어난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높이 평가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라는 자각의 목소리가 드높다. 이와 함께 3·1운동을 기점으로 역사의 주체로 전면에 나선 민중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논의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범세계적 이상과 지향점 제시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3·1운동은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두주자로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범세계적인 이상과 지향점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새달 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는 ‘3·1운동 90주년 기념 국제 학술강연회’를 앞두고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세계사적 의의를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세계 식민지 해방투쟁사에서 우뚝한 위상을 갖는다. 국가를 세우고 정부 조직을 구심점으로 삼아 무려 27년 가까이 투쟁한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3·1운동은 바로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내는 시점이자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세계 개조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나선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강연회에선 겅윈즈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이 ‘중국 근대사와 5·4운동의 역할’, 마쓰오 다카요시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1919년과 다이쇼 데모크라시’, 토머스 녹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 교수가 ‘윌슨의 이념과 세계질서’를 각각 발표한다. 한국근현대사학회가 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3·1운동의 세계사적 맥락과 해외 한인사회’ 학술대회에서도 3·1운동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민족운동으로만 평가해선 안돼 3·1운동을 통해 부상한 ‘민중’에 대한 재평가도 주목을 끈다. 김희곤 교수는 “3·1운동은 전통적인 피지배계급이 아니라 민중이 새로운 국가와 정부조직체를 요구했고, 이에 맞춰 임시정부가 조직돼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정 체제가 등장했다.”면서 “구성원 거의 모두가 참가한 저항은 곧 민중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것이자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2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3·1운동, 기억과 기념’학술대회에선 역사의 주체로서 역량을 보여준 민중의 부상과 그들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근대 시위 문화 등에 대해 토론한다. 주최측은 “그간 3·1운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3·1운동 배경, 전개과정, 영향 등에 국한되어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오로지 하나의 결론, 즉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만 평가했던 점을 극복하고자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은 좌와 우, 남과 북이라는 권력 주체의 기억과 기념 방식, 대중적 상징성을 갖는 유관순 영웅 만들기의 역사, 역사 교육을 통해 재구성된 3·1운동의 기억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3·1운동의 기념이 관성화되고, 타성화되는 데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핸드폰, 주연 엄태웅·박용우 연기 빛나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핸드폰, 주연 엄태웅·박용우 연기 빛나

    일상에서 사용되는 물건은 영화의 훌륭한 소재다. 어느덧 현대인에게 친숙한 존재가 된 핸드폰이 요즘 제작되는 대부분의 영화 속에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장르를 불문하고 등장인물들은 핸드폰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핸드폰은 간혹 단순한 물건을 넘어 영화의 전개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경우를 ‘폰부스’(2002년), ‘셀룰러’(2004년), ‘추격자’(2008년), ‘커넥트’(2008년) 같은 스릴러에서 찾을 수 있다. 핸드폰 하나가 사건을 일으키고, 갈등을 증폭시키는가 하면, 위기를 해결하기도 한다. 연예인 매니저인 승민의 하루는 힘들고 괴로운 일의 연속이다. 관계가 소원한 아내는 어색한 얼굴로 그를 대하고, 끊이지 않는 접대자리가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며, 사채업자가 때때로 찾아와 빚 독촉과 함께 신변을 위협한다. 새로 발굴한 여배우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그에게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바삐 움직이던 그가 핸드폰을 잃어버리는데, 그 속에 중요 업무정보는 물론 비밀 동영상까지 들어 있다는 게 화근이었다. 동영상이 유출될까 봐 불안에 떨던 그는 마침내 핸드폰을 습득한 남자와 통화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핸드폰’은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두 남자의 게임을 그린 스릴러다. 영화를 연출한 김한민은 한낱 기계에 불과한 핸드폰이 유발한 갈등을 거의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핸드폰’은 감독의 전작인 ‘극락도 살인사건’의 단점과 장점을 반복하고 있다. 반전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거듭되는 후반부의 상황이 여전히 눈에 거슬리지만, 단순한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우려내는 흥미진진한 맛이 좋다. 특히 높이 평가할 부분은 감독의 스타일이다. 요즘 한국감독들의 고질병인 작가연하는 자세를 던져버린 그는 오직 주제의 구축과 이야기의 결말을 향해 전력질주한다. 대중적인 남자영화를 계속 만들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김한민의 장르영화를 특징짓는 건 장르의 가면 밑으로 숨겨 놓은 주제의 유별남이다(그런 점에서 그는 순수한 스릴러 감독은 못 된다).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이 스릴러와 공포영화의 외피 아래 ‘지식인과 권력자에 의해 희생당하는 민중의 이야기’를 은유했다면, ‘핸드폰’은 스릴러 주자로 내달린 끝에서, 잃어버린 건 핸드폰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고 말한다. 핸드폰을 잃은 민수와 핸드폰을 주운 이규는 공히 웃음을 팔며 사는 사람들인데, 타인들은 두 사람의 노력을 모멸감으로 되갚는다. 예의는 그렇게 증발한다. 영화는 환멸을 잘못된 방식으로 해소했던 두 사람의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 또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비극을 부른 건 우리 모두의 말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김한민의 영화는 변형된 형태의 ‘사회파 작품’이다. 가능하면 대중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한국의 근대와 현대사 가운데 잘못 끼워진 부분에 대해 그가 좀 더 많은 문제를 제기하기를 바란다. 영화를 돋보이게 한 배우들의 열연도 칭찬감이다. 엄태웅과 박용우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에 휘말린 두 남자의 상실감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감독 김한민, 18세 관람가. 영화평론가
  • [김수환 추기경 추모] 3초 조문 위해 수시간… “그래도 행복”

    [김수환 추기경 추모] 3초 조문 위해 수시간… “그래도 행복”

    오전 10시46분. 김수환 추기경이 누워 있는 유리관이 멀리 바라보이는 대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명동성당에서 1㎞쯤 떨어진 남산1호 터널 입구에서부터 줄을 선 지 벌써 50분 가까이 지났다. 날씨는 여전히 매서웠다. 발도 시리고 목 뒤쪽이 추위로 뻣뻣해지는가 하면 콧물마저 흐른다. 성당 관계자들은 ‘목례만 하고 지나 가세요.’라고 적힌 푯말을 들어 보였다. ‘조문객들이 밖에서 1시간이 넘게 추위에 떨고 있으니 빨리 조문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연이어 귓전을 때렸다. 이제 막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는데 재촉하는 목소리가 야박하다고 느껴졌다. 조문객들은 그러나 안내에 따라 빠르게 성호를 긋고 짧게 묵상한 뒤 입구 맞은편 출구로 나갔다. 조문에는 불과 3초 정도가 걸렸다. 정면에선 김 추기경의 구두 밑창만 보였다. 출구 쪽으로 움직여 유리관을 바라보니, 그제야 옆 얼굴이 살짝 보인다. 일반 조문객과 유리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까이서 조문하고 있는 수녀님들이나 주요 인사들이 부러웠다. 출근길에 ‘오늘은 명동성당 조문객 행렬에 동참해 보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유리관 때문이었다. 유리관 공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첫 장면에 나오는 존경받은 한 신부님의 죽음을 연상시켰다. 어제는 남산까지 줄이 늘어섰다고 하더니, 오늘도 오전 10시30분을 넘어서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 내 뒤의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들은 부천에서 7시쯤 채비를 차려 나왔다고 했다. 일행 중 한 아주머니는 이미 어제 낮 12시에 조문줄을 선 뒤 연도(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와 위령미사를 마치고 오후 6시에 귀가했다고 했다. 서울 창동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입성도 허술했지만 “어제·오늘은 하느님도 감기에 걸리지 않게 봐주실 것”이라고 장담했다. 조문객 줄 뒤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스쳐 지나갔다. 오전 11시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문이 예정돼 있었다. 짧은 조문이 끝난 뒤 1시간의 연도와 1시간의 추도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다시 줄을 섰다. 모든 행사가 끝났을 때는 오후 1시였다. 명동성당을 걸어 나오는데 “지금 조문하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누군가가 소리쳐 안내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1970~1980년대 격동의 현대사의 한 장이 닫히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명동성당 종마루에 앉은 채 뙤약볕 아래서 최루탄 가스와 땀 범벅으로 1980년대를 보냈던 격정의 20대들도 떠나가는 것 같다. 명동성당 앞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의 김 추기경이 환하게 웃으며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 다툼·갈등의 세상 묵묵히 품어 내-김지길 목사 김수환 추기경은 그저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 속의 친구처럼, 때로는 듬직한 동지처럼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1923년생이고 김 추기경은 1922년생이니 나이도 비슷했고, 비록 교파는 달랐어도 신을 섬긴다는 입장에서도 그러했다. 게다가 민주화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헤쳐온 연대 의식도 컸을 것이다. 참 말없고 묵묵한 분이었다.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늘 남의 이야기를 듣는 축이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이도, 기대에 못미침을 불평하는 이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도 모두 한 품에 넉넉히 안아냈다. 그날도 그랬다. 그날 나는 명동성당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주 앉았다. 아마도 1986년 남짓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개신교도 천주교도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운동을 펴나가던 상황이었다. 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으로서 김 추기경을 만나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자고 제안했다.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몇 차례씩 성명서를 내며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을 때였지만 각자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단결과 연대가 절실했다. 우리의 힘과 목소리를 더욱 키우기 위해 같은 목소리를, 같이 담아서 내보자는 취지로 명동성당을 찾은 것이고 김 추기경에게 이같이 제안한 것이었다. 이날 김 추기경은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화한 표정으로 긍정의 미소를 보내며 공동성명을 함께 내자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공동성명을 내지는 못했다. 비슷한 목소리로 각자 성명서를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당시 추기경 비서실에서 공동 성명의 형식을 반대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화가 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이미 김 추기경에게 충분히 마음이 전달됐고, 김 추기경의 마음을 전달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그이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1987년 6월 들불처럼 번졌던 뜨거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도, 투쟁의 방향을 고민하는 회의석상에서도 김 추기경은 없었다. 여기저기 나다니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어른의 역할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이자 동지로서 늘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TV를 통해 선종 소식을 들었다. ‘아, 먼저 갔구나.’하는 생각이 맨먼저 들었다.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편안하게 갔으니 다행스럽다. 다툼과 갈등, 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몸으로 보여줬던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가 새삼 다시 울려퍼질 수 있게 된 점도 다행스럽다. 참 존경스러운 분을 이제는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돼 울적하다.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 만나게 되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 KNCC 회장> ● 낮은 곳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유시춘 작가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과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가위눌려 지내던 이 척박한 우리 현대사의 한가운데 늘 계셨다. 부끄러운 ‘유신’왕정 시대에 민주공화국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그 아름다운 헌법의 가치가 한낱 휴지처럼 구겨박혔을 때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들은 ‘진리와 양심을 외면하고 거역하는 집권자의 죄악’을 직시하고자 분연히 일어났다. 그때부터 명동은 민주 회복과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이땅의 가장 낮은 곳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들의 등대이자 구난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폭도’의 누명을 쓴 채 거처할 곳 없이 황량한 거리를 배회하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과 그 가족들이 처음으로 기댄 곳도 김 추기경이었다. 8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압정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캠퍼스마다 성난 물결이 넘치고 감옥이 양심수들로 그득했을 때, 우리는 명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민주화의 들불로 타오르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집회와 농성은 명동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명동의 어르신인 당신의 허락을 얻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으므로 그곳은 바로 우리의 ‘진지’라고 지레 믿었다. 1986년 찌는 듯한 어느 더운 날에 우리는 ‘부천서 성고문사건 규탄연대집회’의 장소를 구하기 위해 김 추기경을 찾았다. 그때 동석한 한 야당 지도자를 향해 김 추기경께서는 ‘국민이 선출해 주었으면 국회에서 잘해야지.’하시며 마뜩잖아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조차도 암묵적 동의와 격려로 알고 집회를 강행했고 그곳은 수라장이 되었다. 하여, 드디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그 ‘명동농성’이 있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명동은 김 추기경이 있어 어두운 시대의 지친 영혼들이 쉴 수 있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고 절절한 소망을 외치던 그 수많은 수녀님과 신부님들의 행진을 우리 역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의 견고한 벽을 뚫고 중생의 번뇌로 출렁이는 사바세계로 현현한 순간이었다. 그때 교회는 진실로 화려하고 장중한 교회건물로부터 그리고 성탄절마다 소리내는 자선냄비로부터 해방되어 이땅의 고난 속에서 스스로 거듭난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이 땅의 모든 양심, 고해에 허덕이며 내일에의 꿈을 잃지 않은 고달픈 중생들에게 이제 김수환 추기경은 영원한 ‘이데아’요, ‘역사’요, ‘대중의 의지를 대표하는 위인’이었다. 우리 시대는 아직 위인을 부르고 있다. 빈자의 절규는 하늘을 찌르는데 권력은 자꾸 뒷걸음치려 한다. 바라건대 부디 생전처럼 높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고 ‘아무 곳에나 잘자라는 앉은뱅이 민들레로 돋아/ 타는 마음으로 이 땅을 지켜보다/ 꽃 다하면 풀씨로 산천 떠돌며’ 이 땅을 굽어 살피시기를. <전 국가인권위원>
  •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 안의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긴 ‘큰 횃불’로 인정받는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던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를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였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양심의 울림과 행동을 끈질기게 이어갔던 투사였다. ●박정희 독재정권 비판 시국 메시지 김수환 추기경이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삼도직물 사건부터. 당시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을 놓고 추기경은 주교단 공동성명을 통해 교회가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정당함을 전격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 차원에서 낸 최초의 성명서로 기록된다.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와 인권에 개입하기 시작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과 유신헌법 선포, 긴급조치 등 독재와 부정부패가 극성일 무렵 성탄절 미사를 통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고 나선 것은 유명하다. 당시 KBS를 통해 방송된 미사 강론에서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인가.”라고 비판했으니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1971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시절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는 공동사목교서를 발표한 데에 이어 이듬해 ‘평화의 날’을 맞아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선포, “불의와 부정부패, 부조리, 인권탄압, 독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일인독재체제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그 유명한 시국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그 이듬해인 1972년 8월이었다. “인권과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선 정치적 민주화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을 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정치”를 거듭 촉구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이다.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1974년 구속된 사건은 유신체제하 독재정부와 천주교회의 대립 차원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마다 추기경은 “우리 민족이 처한 아픔이자 교회의 아픔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직선제 주장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1979년 유신 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국가권력과의 대립을 거듭해야만 했다. 1976년 명동 3·1절 기도회, 1978년의 전주교구 7·18기도회 등에서 사제들이 잇달아 구속되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와중에서 모든 신자들에게 ‘광주를 위한 특별기도’를 요청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 부산의 미 문화원 사건, KBS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언론통제 등 군부독재에서 빚어진 사회문제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1986년 군사정권에 개헌실시를 촉구한 데 이어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를 비판,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장했다. 그 끝에 나온 6·29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실시는 결국 문민정부를 등장시킨 큰 발판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내가 제일 바보” 자화상 선보이며 뼈 있는 유머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내가 제일 바보” 자화상 선보이며 뼈 있는 유머

    김수환 추기경은 늘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따뜻한 지도자였다. 김 추기경은 지난 2003년 11월18일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삶이 뭔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이런 모습을 잘 설명해준다. 김 추기경은 2007년 10월 모교인 동성중고 100주년 기념전에서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을 그리고 밑에 ‘바보야’라고 적은 자화상(그림)을 선보이면서 “내가 제일 바보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잘난 척을 하고 살아가지만 결국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겸손하게 지적한 것이다. 엄숙한 장엄미사나 주교 서품식에서도 추기경은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2002년 11월21일 김운회 주교 서품식에서 그는“김 주교님이 주교된 것을 축하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뭐냐면 김씨가 주교 됐다는 것. (웃음) 우리 주교단에 김씨 주교가 5명이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다 나가래요. 얼마나 외롭게 느껴지는지! 거기에 비해 산 김씨 10명이 죽은 최씨 한 명도 당하지 못하죠. 주교회의에 최씨의 기가 얼마나 강한지! 그래도 걱정이 덜한 것은 최씨 위에 강씨가 있어. (웃음)” 라고 말했다. 이어 김 추기경은 “사실은 주교에게는 최씨도 김씨도 없다.”면서 “주교는 백성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는 차별 없이 모두가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며 좌중을 인도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목도하면서 국민들 걱정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지도자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김 추기경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김 추기경은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대를 강제진압하려는 정부에 “여기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맨앞에 당신들이 만날 사람은 나다. 내 뒤에 신부들이 있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밟고 우리 신부들도 밟고 수녀들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을 만난다.”고 선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부디 하늘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 시민·네티즌·천주교회 반응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애도했다. 특히 1970~1980년대 소용돌이의 한국 현대사에서 언제나 직언을 마다하지 않고 올곧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 김 추기경의 생전 행보에 시민들은 교파를 떠나 안타까워했다. ●종파 초월한 포용정신 기려 오승균(27·학생)씨는 “우리나라 천주교에서 오랫동안 가장 높은 자리에 계셨던 분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이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누구나 거리낌 없이 존경할 만한 분이셨는데 아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인 이지은(24·여)씨는 “정진석 추기경 이전 우리나라 유일한 추기경으로서 그분은 거목 같았다. 병환에 오래 계셔서 곧 선종하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소식을 들으니 당황스러울 뿐”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시민들도 김 추기경이 생전 보여줬던 포용의 정신을 기렸다. 직장인 최모(54)씨는 “종교인이 보여야 할 표상을 평생 온몸으로 실천한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인터넷에는 김 추기경을 기리는 추모사이트가 마련됐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고 김수환 추기경 편히 잠드소서’라는 추모사이트(http://web.pbc.co.kr/legacy/event/cardinal_ksh/)에는 추기경의 약력과 영상모음, 추모게시판 등으로 꾸며졌다. 아이디 ‘성요셉’이 “서민들 마음 속 빛이 되셨던 추기경님 편히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이라고 올리는 등 수백편의 글이 올라왔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ID ‘술래잡기’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셨던 추기경님. 이렇게 가시다니…. 부디 하늘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소서….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석해 했다. 네이버에도 그의 선종을 알리는 게시판에 순식간에 추모 리본이 수천개씩 달리며 추모의 물결이 계속됐다. ●전국 천주교회 슬픔에 잠기다 김 추기경이 태어난 곳이자 사제 서품을 받은 대구대교구 등 전국의 천주교회에서는 이날 밤 곧바로 추모 미사를 준비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대구대교구는 선종 소식을 접하자마자 ‘주교평의회’를 소집해 1951년 9월 김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계산성당에서 17일 오전 11시 공식 분향소를 설치, 신도들의 조문을 받기로 했다. 대구대교구 관계자는 “추기경님은 격동의 한국사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신 분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1966년 김 추기경이 주교로 임명된 마산교구도 17일 교구 차원에서 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마산교구 관계자는 “추기경님이 주교로 처음 임명된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면서 “내일 마산교구 차원에서도 빈소가 차려지고 각 성당별로 추모 미사와 기도가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당시 주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임하던 중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주교로 임명됐다. 부산과 광주대교구 역시 17일 오전 사제평의회를 열어 추모 미사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재학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은 “추기경님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에 큰 구멍이 난 것 같다.”면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 봉사했던 가톨릭의 큰 어른을 잃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서울 이재연·대구 김상화기자 oscal@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정치권 “큰 별이 졌다”

    정치권은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한결같이 “큰 별이 졌다.”며 애도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모든 신앙인의 표상이며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족적을 남긴 김 추기경의 영전에 온 국민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민족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의 등불을 밝힌 고인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면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김 추기경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때 국민과 동행한 정신적 지도자였고, 이념적 중간이 아닌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하신 분”이라면서 “김 추기경의 마음을 이어받아 따뜻한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김 추기경은 우리 현대사의 큰 별이었고, 어두웠던 시절에는 빛이었고, 그분의 삶은 사랑이었다.”면서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가톨릭 신자로서 만났지만 40년 이상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고 인연을 소개한 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종교적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도자가 남긴 말씀이 우리 사회가 바르게 가는 지침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日에 한국의 혼 ·情의 문화 보여줄 것”

    “日에 한국의 혼 ·情의 문화 보여줄 것”

    │도쿄 문소영특파원│“작가들이 ‘장돌뱅이’도 아니고 솔드 아웃(sold out·매진) 여부로 작가를 평가하면 안 된다. 나는 이번에 일본에 한국의 혼을 남기고 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지난 13일 일본 도쿄 모리아트센터 갤러리에서 단독 개인전을 연 전광영(65) 작가는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각오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 작가는 1984년 일본 긴자거리의 화랑에서 페인팅으로 개인전을 연 뒤로 일본 중심가에서 전시회를 열어 보리라고 25년간을 벼려 왔다. 2년 전 모리아트센터의 집행위원인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대 교수로부터 개인전을 갖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국의 역사, 보자기 문화, 정의 문화를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월까지 일본 롯폰기 힐스 모리타워 52층 전관에서 70년대 초기 회화를 비롯해 한지로 싼 스치로폼을 쌓아 회화식으로 구성한 ‘집합’ 작업 30여점을 선보이게 됐다. 평면작업뿐만 아니라 입체 작업과 설치 작품까지 내놓았다. 1946년생인 전 작가는 일본의 심장부에서 한국의 문화를 선보이게 된 것에 자못 감격했다.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동안 얼굴은 붉어지고 목소리는 격양됐다. “평소 일본을 오갈 때와 다르게 이번에 현해탄을 건너면서 마음이 싸했다.”면서 “십자가를 지고 일본에 온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막식 날 일본 언론이 보여준 예민한 관심에도 촉각이 곤두선 분위기가 역력했다. 전 작가는 삼각형의 스치로폼을 고서가 적혀 있는 한지로 싸서 끈으로 동여맨 뒤 이것을 빈 틀에 눌러 담아놓은 형태의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페인팅에서 이런 작업으로 돌아선 것은 1994년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30년 전에 그린 그림들이 독창적이지 않아서 불만이 많았다.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다니 하고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미국 유학에서 그는 “아무리 서양 그림과 닮게 그리고 비슷하게 그려 봤자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내 이야기를 해야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초등학교 시절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한약방을 하는 큰집 시렁에 줄줄이 매달려 있던 약봉지들이 떠올랐다. 한지 오브제가 탄생한 순간이다. 서양이 박스 문화로 규격 외에는 여분이 없지만, 한국은 보자기 문화로, 규격도 없고 필요하면 추가로 더 우겨넣을 수 있는 여유와 정이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보이는 설치작업에선 ‘고뇌하는 두상’과 ‘상처받은 너와 나의 심장’이 눈에 띈다. 고뇌하는 두상은 설악산의 울산바위 같은 느낌으로 불뚝 서 있다. 마주 보는 상처받은 심장은 일제강점기와 격변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숯검정이 된 우리 어머니들(한국)의 영혼을 대변한다. 전광영 작가의 전속 화랑인 더 컬럼스의 장동조 대표는 “세계적으로 이우환은 일본 작가로, 백남준은 미국 작가로 알려져 있어 진정한 한국의 토종작가는 전광영 작가가 시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로버트밀러 갤러리와 코네티컷 얼드리치 현대미술관에서 가진 개인전으로 국제적 지명도를 높인 상황에서 새 디딤돌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올 6월 캐나다 몬트리올, 8월 싱가포르, 9월 모스크바, 12월 미국 와이오밍, 내년 베이징국립미술관의 개인전 등이 기획돼 있다. symun@seoul.co.kr
  • 할리우드식 연애 ·결혼·가정 3色 보고서

    할리우드식 연애 ·결혼·가정 3色 보고서

    ‘연애’, ‘결혼’, ‘가정’. 2월 중순에 찾아온 할리우드 영화 세 편은 인생의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는 이들 주제에 관해 각기 다른 해석을 들려준다. 지난 12일 개봉한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와 19일 개봉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 ‘말리와 나’가 그들이다. ■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 아홉남녀의 밀고당기는 연애이야기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He’s Just Not That Into You)’는 밸런타인 데이를 겨냥해 만든 로맨틱 코미디물. 연애·결혼을 둘러싼 아홉 남녀의 심리전이 주된 내용이다. 7년간 사귄 베스(제니퍼 애니스톤)와 닐(벤 애플렉)은 결혼 여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지지(지니퍼 굿윈)는 소개팅 후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고, 그런 지지에게 알렉스(저스틴 롱)는 따끔한 훈수를 둔다. 벤(브래들리 쿠퍼)은 우연히 만난 안나(스칼렛 요한슨)에게 설렘을 느끼고, 제닌(제니퍼 코널리)은 남편 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의심한다.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안나 탓에 헷갈려하는 코너(케빈 코널리), 귀가 얇은 탓에 ‘삽질’만 반복하는 메리(드류 베리모어)가 보는 이들까지 가슴을 졸이도록 한다.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작가 그레그 버런트와 리즈 투칠로가 집필한 동명 연애지침서를 영화화한 만큼,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는 연애 노하우가 즐비하다. 기존 로맨틱 코미디물에서 봤음 직한 전형적 설정과 뻔한 반전에 실망을 느낄 관객도 있을 듯. 하지만, 화려한 캐스팅을 보는 재미에 더해 관객 스스로 적극적인 의미 부여를 해낸다면, 단순한 팝콘 무비 이상의 가치는 충분할 성싶다. ■ 레볼루셔너리 로드 - 1950년대 美격변기…결혼의 의미 조명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는 타임지 선정 현대문학 100선에 꼽히기도 한 리처드 예이츠의 동명 소설(1961년)이 원작이다. 세계적 흥행작 ‘타이타닉’(1997년)의 커플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렛이 주연해 보석 같은 명연기를 선사한다. 영화는 뉴욕 맨해튼 교외지역의 한 가정을 비춘다. 겉으로는 행복하기 짝이 없는 부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아내 에이프릴(케이트 윈즐렛)은 배우의 꿈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고, 프랭크(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지루한 직장일과 안정된 가정에 권태를 느낀다. 둘은 새로운 삶을 찾아 파리로 이민갈 것을 결정하지만, 에이프릴이 세번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 등을 통해 미국 중산층의 삶을 신랄하게 풍자한 샘 멘데스 감독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1950년대 미국 급변기에 나타난 인간군상과 결혼생활에 뷰파인더를 들이댔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는 사랑과 결혼의 본질, 현대사회 속 여성과 남성의 역할, 가족이란 이상향과 현실의 부조화 등에 대해 심도 깊은 시선을 보여준다. ■ 말리와 나 - 사고뭉치 강아지 통해 깨닫는 가족의 소중함 ‘말리와 나(Marley & Me)’는 2006년 큰 인기를 끌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할리우드 스타 오언 윌슨과 제니퍼 애니스톤이 주연을 맡았다. 칼럼니스트 존(오언 윌슨)은 어느날 제니(제니퍼 애니스톤)와의 결혼과 신문사 취직이라는 행운을 동시에 거머쥔다. 새로운 가족을 맞길 바라는 제니와 달리 존은 아직 아빠가 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런 그에게 친구 세바스천은 집에 개를 들이라고 조언한다. 충고에 따라 존은 제니에게 선물로 강아지 말리를 선물하는데, 말리는 매일같이 말썽을 일으킨다. 덕분에 둘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말리의 이야기를 쓴 존의 칼럼은 유명세를 탄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사고뭉치 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보다 다층적인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 식구나 다름없는 말리 덕분에 깨닫는 가족의 소중함, 풋내기 신혼부부가 부모가 되면서 겪는 혼란과 정신적 성숙 등 평범한 삶에서 느낄 법한 고민과 교훈이 가득하다. 전반부가 두 남녀에게 고르게 비중을 두었던 데 반해, 후반부는 주로 남자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여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老평론가, 한국 현대문학 역사를 말하다

    老평론가, 한국 현대문학 역사를 말하다

    김윤식(73). 40년 동안 한국 땅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그는 거대한 산맥과 같았다. 산맥의 속성이 그러하듯 순응하고 경외하는 이를 낳거나, 뛰어넘고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은 이를 만들어낸다. 그 산맥이 거대하고 험준할수록 전자는 커지고, 후자는 줄어든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100권을 훌쩍 넘어서는 저작 리스트에 또 한 권을 더했다.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문학과지성사 펴냄)는 한국 문학이 근대와 현대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교직(交織)해왔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최근 3~4년 동안 발표한 논문을 묶은 것이다. ●‘기본 설계도’ 완성 16년간의 과정 고백 대학에서 ‘근대문학’ 전공을 선택한 김윤식은 ‘강단(비평)과 현장(비평)’ 모두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기까지의 고단하고 험난했던 과정을 맨 먼저 설명한다. 김윤식에게는 먼저 ‘근대’라는 개념에 대한 해명과 정리가 필요했다. 식민지사관 극복의 과제는 인문학만의 것이 아니라 당대 문학에서도 엄존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근대’라는 개념에 접근하기 위해 자신이 들였던 초기 16년의 노력을 4단계로 설명한다. 먼저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위해 4년간 정치학 공부를 했다. 이후 근대 국민국가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불가분했던 경제체제로서 자본제 생산 양식을 알기 위해 경제학도로서 또 4년을 보냈다. 그제서야 겨우 보편성 획득에 이르렀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식민지 경험과 역사를 안고 있는 특수성에 대한 공부가 또 필요했다고 한다. 그렇게 식민지 반제 투쟁을 이해하려 한국 근현대사를 4년간 공부했고, 반자본제 생산양식을 알고싶어 한국 경제사를 4년간 공부했다. 이렇게 도합 16년이 지난 뒤 ‘한국 근대문학의 기본 설계도’를 만들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근대에 대한 개념 해명이 끝났다고 해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치열한 다툼의 틈바구니-거의 절대모순성을 가진-에서 문학이 설 자리가 분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평론가는 근대성 탐구의 확장을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 문인과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 작업을 진행해왔다. ●역사와 문학의 교직·구체적 작가에 대한 비평 이 책에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굵직한 사건을 거치는 동안 우리 문학이 기능했던 모습과 내용, 그리고 최남선에서 시작해 이광수·최재서·김소운·백철·김종삼·김춘수·이청준 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 작가에 대한 비평을 곁들였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는다. 지금도 건재한 ‘산맥의 신화’는 한 번도 부정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00년 초 한 대학원생(문학평론가 이명원)의 표절 의혹 제기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나마 분명히 남아 있다. 그 대학원생은 김윤식의 저서 ‘한국 근대소설사 연구’가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곳곳에 포진한 ‘김윤식의 아들들’은 분노했고, 미움을 산 장본인은 타의로 대학원 과정을 멈춰야 했다. 김윤식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부정도, 긍정도, 어떤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산맥은 무결점이기에 산맥이 된 것이 아니다. 아름드리 나무뿐 아니라 잡목, 들풀, 잔돌까지 모두 아울렀기에 거대한 산맥이 될 수 있었다. 김윤식의 차기 저작을 다시 한 번 기대하는 이유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문화의 다양·창의성 북돋워야/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 교수

    [옴부즈맨 칼럼] 문화의 다양·창의성 북돋워야/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 교수

    유명한 햄버거 광고 중에 ‘소고기는 어디에 있나(Where is the beef)?’라는 헤드라인의 광고가 있다. 타사의 햄버거는 소고기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을 만큼 양이 적은 데 비해 자사의 햄버거는 소고기의 양이 매우 많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광고이다. 우리 언론에서 이 광고의 소고기만큼 찾기 어려운 것이 바로 문화기사가 아닐까.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이지만 문화는 보도기사에서도, 옴부즈맨 칼럼에서도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문화기사의 뉴스가치를 발굴해 내는 전문성과 노력 및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존 요셔네시와 니컬러스 잭슨 오셔네시는 자신들의 저서 ‘광고와 설득커뮤니케이션’에서 정보를 전달할 때는 수용자의 시각(perspective)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술관과 공연장이 인파로 넘쳐날 정도로 시민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독자는 풍부한 문화기사를 원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문화기사의 양이 부족한 편이었지만 음악, 미술, 공연, 박물관 등 문화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다만 적은 양에 여러 분야를 담다 보니 심층취재 기사는 드문 편이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서울신문 1면의 머리기사 중에서 문화 관련 기사는 ‘한국의 닌텐도 나오려면’(2월6일)뿐이었다. 게임에 대한 정부의 지원,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장은 독자의 시각보다는 게임 산업계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창의적인 문화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사고를 제약하는 억압적인 교육환경 때문일 것이다. 정책담당자의 시각을 담은 정책 홍보성 기사도 있었다. ‘현대사박물관→국립대한민국관 변경’(2월3일) 기사는 박물관의 명칭 변경과 함께 전시내용이 미래형으로 바뀐다는 점을 보도하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의 정책 홍보성 언급만 소개되어 있을 뿐 명칭변경이 적합한지, 박물관에서 미래형 전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 청사진 완성’(2월5일) 기사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없던 광장은 새롭게 만들면서, 있던 피맛길은 없애버리는 몰지각함을 잘 지적하지 못했다. 모로코의 고대도시 페스의 구시가지인 메디나는 미로 같은 골목길이 명물이다. 피맛길만큼 좁은 길이지만 짐을 실은 낙타도 오가며 수많은 관광객이 북적인다. 피맛길은 왜 안 되는가? 역사가 숨 쉬는 구시가지에서는 재개발을 신중히 해야 한다. 부족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언론은 다른 언론사가 주최하는 행사는 축소하거나 보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황금빛 관능미, 숨이 멎는다’(2월3일)는 그러한 관행에 견주어 본다면 예외적이고 참신한 시도였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에곤 실레와 더불어 국민적 우상으로 여기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전시를 깊이 있게 소개했다. 무형유산과 지역밀착형 운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박물관, 지역사회에 뿌리내려야 산다’(2월2일), 공연예술의 기초가 되는 연극 분야의 ‘연극올림픽 내년 서울서 열린다’(2월4일), 신예음악가 3인의 ‘노다메 칸타빌레 리사이틀’을 소개한 ‘무대위 그들의 진짜 연주와 이야기’(2월6일), ‘명성황후’와 ‘화성에서 꿈꾸다’로 대표되는 창작 뮤지컬의 성취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는 ‘김훈 베스트셀러 남한산성, 성남 대표 뮤지컬로 만난다’(2월7일)도 주목할 만했다. 문화가 국가경쟁력의 원천인 세상이다. 문화강국이 되려면 문화정책에서 정치적 성향을 벗어나고 교육내용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해 창의성을 길러 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신문이 앞장서 주기를 당부한다. 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 교수
  • [열린세상] 이라크와 용산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가/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열린세상] 이라크와 용산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가/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국가란 무엇인가. 답하기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유년기부터 우리는 적어도 한 번은 이 질문을 받았고 또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 했다. 특히 군 복무 시절이나 아니면 좀 긴 해외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국가와 민족’, ‘조국’ 등에 대해 꽤 진지하게 한 번씩은 생각해 보았음 직하다. 지난 20세기 초 정당정치가 비로소 자리를 잡기 시작한 유럽 사회에서도 국가란 무엇인가가 난제로 떠올랐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의 일이란 소수의 정치계급 곧 군주나 귀족 그리고 가지고 배운 자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래 노동자를 필두로 한 대중이 새로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은 스스로 세력화하여 정당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자기 계급이나 계층의 이해를 정치나 정책을 통해 주장하였고 또 관철시켜 나갔다. 대중 정치와 정당의 출현으로 정치도 국가도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20세기 지성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한 사람이다. 요즘의 정치적 기준으로 보자면 베버는 아마 중도 좌파, 자유주의 좌파 정도에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게다. 그에게도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피해갈 수 없는 20세기 정치의 난제 중 난제였다. 하지만 국가를 그 목적을 통해 정의하고자 할 때, 당장 국가는 보수건 진보건 정당은 물론이고 각종의 사회단체들과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어떤 정당, 사회단체도 그 이전 국가만이 주장할 수 있었던 공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베버의 선택은 그래서 국가가 다른 것과 구분되는 것은 오직 그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명제였다. 곧 국가란 ‘정당한 물리력의 독점’에 의해 다른 것과 구분된다. 쉽게 말해 다른 정당, 사회단체와 비교해 오직 국가만이 물리력 곧 군대와 경찰과 같은 폭력수단을 독점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모든 국가는 영토 내에서 다른 정치단체가 스스로 무장하여 도전할 때 ‘반란’으로 규정, 법정 최고형으로 대응한다. 물론 이 폭력의 사용, 곧 공권력의 행사는 반드시 정당하게 정해진 절차에 의거해야 하며 또 그 사용자는 사용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세기 말과 이번 세기 초에 걸쳐 우리는 부시의 이라크전쟁에서 물리력의 독점이 깨지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각종 전쟁 전문기업들이 미 행정부의 특혜성 아웃소싱을 통해 전쟁 ‘용역’을 수주한 뒤 미군을 도와 이라크 민중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이윤논리는 전쟁의 사사화(私事化)를 통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해체시키는 수준까지 전개되고 있다. 용산 참사는 그 본질에 있어 이라크와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인들간의 이해 분쟁에 국가가 개입, 공권력을 함부로 행사해 6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잘해야 분쟁 당사자 일방에 고용된 일개 사업자에 불과한 용역업체에 공권력의 사용을 아무런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양도, 위임하는 터무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공권력이 최소한의 중립성과 공정성도 지키지 않을 때, 저항은 궁극적으로 국민 항쟁을 향해 나선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 우리 현대사의 큰 흐름이었다. 우리 헌법의 골간에 해당될 이른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설 용역업체에 대한 공권력의 위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라크와 용산! 이윤 논리에 눈이 먼 사기업에 의해 제공된 ‘살인 용역’,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무책임의 극치, 뒤를 이은 변명과 거짓말, 이 모든 것이 결국 공권력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사설업자를 동원해 자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국가를 국가라 불러야 하나. 정녕 국가란 무엇인가?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 [책꽂이]

    ●문화통합론과 북한문학(박태상·권영민 지음, 한국방송통신대 펴냄) 일순 꽁꽁 얼어 붙은 엄혹한 시기의 한반도, 정치의 영역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문화(문학)가 해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에 한 몫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남북은 차이보다는 더 많은 동질성을 갖고 있는 만큼 ‘문화공조를 통한 통합모델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문학, 이론에 원전 텍스트 분석을 통해 그 성과와 한계 등을 실사구시적으로 지적했다. 9900원. ●미네르바(명운화 지음, 북포스 펴냄) 처음에는 무서우리 만치 정확한 경제 예측 능력으로 뜨거운 각광을 받았고, 이제는 인터넷 공간에서 박탈당한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미네르바’를 소재로 한 팩션(팩트+픽션) 소설이 나왔다. 인터넷 논객 ‘김래호’가 등장해 IMF 환란을 예견하고,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적시한다. 현실과는 다르게 소설 속의 미네르바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청와대 경제정책분과 위원’으로 일하거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위원’으로도 활동한다. 명운화는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한 작가다. 9800원.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안도현·김연수 등 23명 지음, 마음의숲 펴냄) 안도현, 정끝별, 김연수, 문태준, 박민규, 백가흠, 나희덕, 이혜경, 공선옥 등 한국 문단의 젊은 시인, 젊은 소설가들의 글을 모두 끌어 모았다. 담너머로 엿보이는 시인의, 소설가의 번다한 일상을 엿보는 듯도 하고, 장롱 밑에 감춰 뒀던 사진앨범을 몰래 꺼내 보는 기분도 드는, 그리 길지 않은 글 23편이 실린 ‘종합선물세트’다. 1만원. ●숨비소리(홍명진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 제주에서 태어나 해녀가 된 뒤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를 해온 한 여인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어머니 세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시대, 4·3 사건, 베트남 전쟁 등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아온 그는 역사와 시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한 몸에 억압과 폭력을 고스란히 기억해 놓았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 위로 올라온 뒤 참았던 숨을 내뿜을 때 나는 소리를 말한다. 홍명진은 2001년 ‘바퀴의 집’으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지난해 ‘터틀넥 스웨터’로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재등단했다.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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