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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질문하는 소설, 경험하는 콜라주’-김중혁론

    고대 그리스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의 기원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여인이 연인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빛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벽에 그린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옹기장이였던 여인의 아버지 부타데스가 딸의 그림을 본떠 빚은 점토 형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조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시원(始原)의 욕망과 대상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영역(oikos)과 공적 영역(polis)의 경계가 깨지면서 발생한 것이 ‘사회’라는 아렌트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우리의 사회는 개인의 욕망조차 자아를 충족시키는 내밀함에서 벗어나 공적 담론의 장 속에서 공익적 측면을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진행을 개인 욕망의 발현 과정으로 본다면,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 속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시된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의 개인적 욕망은 때로 성적(性的)인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집단적 도덕성으로 재단되기도 한다. 결국, 계량화가 가능해지고 공적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순수하고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은 유아기적 망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균질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다양한 욕망들은 서열화 속에서 재배치된다. 이제 욕망은 비교우위 없는 순수한 발현을 억압당한 채 잘못된 대상에 고착되거나 인터넷의 작은 화면 속에서 일쑤 신경질적으로 해소된다. 마치, 떠나고 없는 연인의 그림자를 향해 말없음을 타박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이다. 욕망조차 계열화된 현실에서 소설 행위(쓰기/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소설이 이야기와 달리, 이전 시대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 후대의 경험으로 확장되거나 조언을 포함하지 않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소설은 정보가 그랬듯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 유통의 과정으로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소설행위의 의미 역시 정보가 소비되는 방식처럼 한 순간 안에서만 소비되고, 우리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만화경 속에 갇히고 만다. 이 글이 김중혁의 소설(‘펭귄뉴스’(2006), ‘악기들의 도서관’(2008). 두 권의 단편집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창작과 비평, 2009년 봄), ‘C1+y=:[8]:’(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 ‘유리의 도시’(현대문학, 2009년 8월), ‘1F/B1’(문학동네, 2009년 가을) 등이 있다. 단편집에서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작품의 제목과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소설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러한 작업은 부타데스 이후 멀어져 가고만 있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되어 있다.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들을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때로 쉽게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무용지물 박물관’), 결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협력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인물들은 만나지도 않거나(‘자동 피아노’), 아니면 아예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비닐광 시대’). 반면에 이럴 때조차 이들은 서로 여전히 “작고 가냘픈”(‘자동 피아노’, 29쪽)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두 인물들은 매개물을 통해 가까워진 두 개의 항이 아니라 매개물을 통해 반복되고 변주되는 하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들은 ‘여성들의 서사적 비중이 축소된 남성적 유대관계’(신수정)나, ‘전형적인 남성 버디(buddy)소설의 면모’(심진경)로도 파악된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의 의미를 구축하는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다면 성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우리는 다만 반복적 이형태(異形態)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동참하게 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상대자로 ‘나’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유명사를 부여받지 않은 대상은 독립적 역할보다는 ‘나-나’로의 반복과 변화를 이끈다. 가령, ‘나와 B’에서 ‘나’는 ‘B’와 음악으로 인해 ‘핵융합’을 한 것처럼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의 관계는 ‘B’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음반 가게 점원인 ‘나’가 음반을 훔치려던 ‘B’를 처음 만난 뒤, 몇 번의 이직을 겪는 ‘나’와 무명 기타리스트에서 주목받는 신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B’의 사이를 ‘하나로 합쳐’졌다고 보기에 둘 사이는 느슨하다. 음악이라는 공통 취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B’는 ‘음반을 두 번 정도 듣고 난 다음엔 음반과 거의 똑같이 기타를 연주’(195쪽)하는 전문가이고,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예 전기기타를 배우기도 힘든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내 습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를 볼 때마다 왼쪽 엄지로 나머지 왼손 손가락들의 끝을 비비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매끄러운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은 내 손가락 끝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중략…) 한 달 전 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중략…)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나와 B’, 210~211쪽.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재발견이다. ‘나’는 ‘B’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자신 내면의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다시 이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졌던 순수한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갑자기 음악(기타)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등의 결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손가락 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순간은 우리가 전망을 가지고 억압과 대결을 펼치든, 현실을 비틀어 냉소적 거리를 두든 오히려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적 억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망이나 목표는 그 자체로 억압되고 조작된 욕망에 노출되어 뒤틀린 결과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말이 보여주는 의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리거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과는 구별된다. 이제 우리는 조작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욕망, 즉 시원(始原)의 욕망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김중혁은 이러한 반복과 변주가 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 붙이는 이름(제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우리는 ‘무용지물/ 박물관’, ‘사백 미터/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단어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묘한 호기심과 낯섦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의 명명은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더욱 늘어난다. ‘자동/피아노’, ‘악기들의/도서관’, ‘유리/방패’, ‘무방향/버스’(제목의 /부호는 인용자) 등이 그것이다. 지적한 제목들은 모두 이질적인 두 단어가 A+B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이 A나 B 어느 한쪽과 관련된 이야기거나, A가 B(혹은 B가 A)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전달하는 의미들은 사실, A∩B를 통해 파생되며 이를 통해 A나 B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의 공통점에 기반하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A‘(또는 B’)가 무한대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집합적 운동이라고 새롭게 불러도 좋을 이와 같은 김중혁의 소설적 전략은, ‘반복(repetition)’과 ‘이접(離接.disjunction)’을 통해 모든 ‘토대’를 집요하게 해체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이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갖는 성과이다. ‘엇박자 D’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이 성과를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합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음이 맞질 않았다. 박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중략…)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엇박자 D’, 280~281쪽. 공연기획자인 ‘나’가 2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합창단 친구 ‘엇박자 D’를 만나 같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 공연에서 ‘나’ 몰래 친구가 준비한 앙코르 장면은 소설속의 ‘나’가 그랬듯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기획한 ‘엇박자 D’는 합창단 시절, 자발적으로 단장까지 맡을 정도로 유일하게 열성적이었던 친구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의 박치이자 음치’(255쪽)여서 실제 공연 때는 선생님에게 립싱크만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엇박자 D’는 결국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망친 장본인이 된다. 그 뒤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던 ‘엇박자 D’는 전공으로 무성영화를 선택한다. 무성영화를 통해서, 영상과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깨닫고 위에 언급한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의 소설적 과정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엇박자 D’의 의도를 알게 된다. 실상, 음치라는 것은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것’이며 ‘평생 그렇게 세뇌’(270쪽) 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억압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이 음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억압이 작용하지 않는 시원의 욕망을 만남으로써 주체들이 자유롭게 해방되고 나아가 ‘서로의 소리’를 억압하지 않는 ‘화음’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 보여주는 교집합적 운동의 힘이다. 교집합적 운동 속에서 억압되/하지 않는 욕망을 만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집합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기이다. 운동성을 상실한 모든 것은 결국 그 힘을 잃고 다시 계열화 속으로 수렴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위험은 계시적인 교훈이나 전망으로 구체화되면서, 문학작품이 운동성을 상실한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김중혁은 자신의 소설이 처할 수 있는 이 비극적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여 표준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지속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억압적 현실⇒구체적 전망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고정적 틀 그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망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의 비트(beat)를 억압하기 위한 진압군과 이에 맞선 저항군이 전쟁 중인 현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각각 배경으로 삼은 ‘펭귄뉴스’와 ‘유리방패’처럼 비교적 억압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이러한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난다. 이는 억압의 체계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읽힌다. ‘전쟁 중인 현실→무감각한 나→저항군인 그녀→그녀와의 우연한 만남→그녀를 따라 저항군이 되는 나’로 이어지는 ‘펭귄뉴스’의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소 의외로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다. 전쟁 중인 현실조차 ‘지루하고 재미없’(263쪽)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살갗이 곤두서’(274쪽)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그 의외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제 곁에 있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는 죽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펭귄뉴스’, 357쪽. ‘비트’를 매개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집합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만, 이것 자체가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의 전환은 아니다. 교집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된 주체는 다른 주체와 거리를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자유의 공간 즉, 운동성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어디에도 ‘반납’할 수 없는 ‘정말 사적인 비트’(357쪽)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비트’는 ‘그녀’와 ‘나’만의 매개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D’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358쪽)거릴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속적인 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파리의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공원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문학·철학·영화 등의 다양한 비건축적 개념을 적극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건축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촉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은, 점·선·면의 세 체계를 따라 설계된 각각의 공간이 한 공간 안에서 중첩되고, 분열되고, 해체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설계의도에 따르면, 응집력 있는 구조들을 중첩시켰을 때 하나의 초응집적 거대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될 수 없는 것, 즉 전체성에 반대하는 것이 생겨난다. 결국 이 공간은 반-맥락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실제 공원 내 기능들의 중첩은 고정된 시설물로서의 기능성과 편의성에서 벗어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을 탄생시킨다. 일상 언어학에서 말하는 관습적인 절차나 효과로서의 ‘맥락(context)’을 파괴하는 이 공간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소설적 공간, 이른바 ‘무중력 공간’(이광호)과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소설들은 종래의 작품들에서 기피해 온 이질적인 소재나 인물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공간에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하는 어떠한 억압적 기준 없이 자유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단절적인 대화나 전통적 서사 구성을 거부하는 듯한 문체, 현실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환상적 비현실 또한 그 결과물이자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김중혁의 소설 역시 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과 냉소적인 거리를 두거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현실들과 겹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변별성을 통해 보다 많은 욕망들을 해방시킨다. 따라서 비교적 전통 서사에 충실하게 진행되던 김중혁의 소설은 언제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자동피아노’, 35쪽)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때의 ‘가벼움’이 바로 단순한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김중혁만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 ‘거리두기’ 역시, 앞서 언급한 빌레트 공원에서 폴리(folie)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광기, 무분별한 짓이나 말,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진 폴리는 이 공원의 설계 단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점 체계 속의 폴리는 실제 빨간색 철골 구조물들로 형상화되었는데 공원 내에서 쉽게 눈에 뜨이기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이 폴리는 전체 공간을 나누고 분리시키는 동시에 면과 선 체계의 폴리들과는 상호충돌하고 왜곡되어, 애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공원전체가 탈통합적인 공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준점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모든 것들과의 반복과 중첩, 그리고 다시 그것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방패’, 180쪽. 위의 장면 속 ‘나’와 ‘M’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내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시험조차 같이 치른다. 심지어 한 명만 뽑는 회사의 면접시험도 ‘막무가내’로 같이 치르는 이 둘은 전형적인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일종의 퍼포먼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 예술적 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면접관으로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된다.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동안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던 주인공들이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입장’(178쪽)이 된 것이다. ‘점수를 받는 사람’에서 ‘점수를 주는 사람’(176쪽)으로바뀌게 된 이 발랄한 치환은 현실의 체계를 뒤엎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적 서열구조의 확대·재생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개취업의 기준에 함몰되어온 인물들이 그 틀을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우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스무 번째였는지 스물한 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178쪽)-에 ‘피곤’을 느끼고 만다. 애초부터 이들의 ‘자리바꿈’은 사실 무분별하게 정보를 생산해 내는 매스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벤트’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변화가 억압이 작동하는 체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체계 안에 다시 포획되고 말았음을 느낀 순간, ‘나’는 ‘M’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집합적 운동이 다시 체계 내에 갇히고 말 때, 김중혁의 ‘거리두기’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성을 확보한다. 교집합적 반복과 변주, 그리고 거리두기까지 포괄한 김중혁 소설의 운동성은 작가 특유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공간과 교직(交織)된다. ‘마니아적인 열정과 감수성’(박진), ‘사물들을 해방시키는 수집광’(김형중), ‘등장인물들의 마니아적 취향과 취미를 개성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물-예술’(심진경) 등으로 평가되는 김중혁의 사물에 대한 애착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공업적’ 성격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한 ‘정보’의 유통은 후대로 전달되는 경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실과 관련 없이 사건만 난무하는 시대로의 변모를 지적한 벤야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적 확산이 가능한 정보만이 중요시되고,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개인의 경험들이 획득하는 의미와 그 깊이가 외면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많은 경험들이 구전적인 방식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를 벤야민은 수공업적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의 특성을 빗대서 말한 ‘옹기그릇에 남아있는 손흔적’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가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취급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김중혁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소재들을 사용한다. 마치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그의 소재에는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공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음에서 작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자. “잠수함 설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집에 있는 잠수함 모형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비틀스의 영화 ‘Yellow Submarine’에 등장했던 잠수함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네요.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심술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한번 만져보세요. 잠수함 앞모습이 바로 그래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미끈하죠. 창문은 왼쪽에 여덟 개, 오른쪽에도 여덟 개가 있어요. 이 창문을 통해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거죠. 그리고 꼬리 쪽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 있어요. 지느러미 아래쪽에는 잠수함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어요. 프로펠러는 바람개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위쪽에는 네 개의 잠망경이 올라와 있는데요, 잠망경은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굽힐 수 있게 만든 스트로 아세요? 그걸 잠망경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 그리고…….” (…중략…)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 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무용지물 박물관’, 33~34쪽. 대상과 직접적 연관없는 “물고기, 바람개비, 스트로” 등을 동원하여 잠수함을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각과 경험들 역시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잠수함’을 경험적 실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보편화시키는 정의(定義)는 ‘무용지물’이 되고, 나아가 감각 주체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방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달리 “통조림”처럼 압축되지 않고 수많은 감각과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위의 긴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 된다. 김중혁이 선택한 소재들의 수공업적 성격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계열화된 체계 안에서 박제된 상태의 사물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물이 바로 작가의 탐구 대상이다. 먼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지도가 그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에스키모들이 ‘기억과 소리’로 만들고 촉각을 동원하여 ‘상상하는 지도’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제작과 활용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반복적인 경험 안에서 유용한 이 지도는 그 자체로 수공업적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로 인해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78쪽)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사물에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이 ‘나’와 중첩되어 나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 역시 갇혀있던 가치판단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탐구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심화되어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쪽)는 생각이 든 ‘나’가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악기점에서 만든 이 ‘도서관’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악기 소리만’ 있는 곳이다. 악기는 애초에 인류가 감정표현과 전달의 도구인 신체를 보충하는 보조수단이었다. 여기에 악기를 사용해온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악기가 분류되고 체계화되면서 점점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전문연주자를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체계 내로 편입되지 않은 개별적 경험들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차단당한 것이다. 사실상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되기 직전까지도 사물들은 오직 사용자들의 경험과 경험사이에서만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적 체제의 강제성을 보편타당성으로 받아들여 사물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해 왔던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된 박물관 안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은 채 개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저 전시물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김중혁의 수공업적 사물에 대한 탐구는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박물관’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체계에서 소외된 모든 것들을 ‘악기도서관’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긁거나 할퀴거나 두드리거나 뜯거나 쓰다듬거나 꼬집으면서’(127쪽) 억압되/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그보다 더 처음으로, 더 처음” -‘유리방패’, 178~179쪽(인용자 재구성). 시원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전도되고 억압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억을 통해 더듬어 가는 ‘처음’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하는 데리다는 기원을 아예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부타데스의 딸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던 순간부터 실제 대상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현존(presence)과 부재 사이의 ‘놀이’ 그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는 모든 차이의 진폭과 오류마저 자신의 안으로 포획하는 강력한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이 자체 내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처방만이 유효하게 거론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든 욕망들을 중첩시키면서 멈추지 않고 차이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전략으로 모든 경험과 욕망들의 ‘흔적(trace)’이 새겨진 사물을 사용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에 가까’운 ‘타자기’(‘회색괴물’),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주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몸을 통째로’ 빌려주는 ‘투명’한 ‘피아노’(‘자동피아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되는 작업을 하는 디제이들의 ‘비닐레코드’(‘비닐광시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들이 결국 무한대의 욕망들에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끌린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최근작인 ‘C1+y=:[8]:’에서 ‘보드빈터’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정글의 특성을 도시에 연결시켜 보다 쾌적한 도심을 만들고자 하는 도시 연구가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심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공간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탐사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목적지로 충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도심 속 길들의 일부분이며, 수많은 익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의 연결일 뿐이다. 이 ‘길’이야말로 도시가 생성되기 이전 개인의 욕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첫 길’이며, 그 ‘처음’은 억압 자체가 무화되고 인류전체의 경험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원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길 위로 부지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그의 소설행위가 하나의 답변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지속적인 질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끝>
  • SBS FM ‘박동선 비망록’ …코리아 게이트 풀릴까

    SBS FM ‘박동선 비망록’ …코리아 게이트 풀릴까

    SBS 러브FM(103.5MHz)은 4일부터 ‘SBS 특별기획 한국현대사 증언-제7편 코리아 게이트 박동선의 비망록’을 방송한다. 박동선 사건은 지난 1976년 10월 24일 미 ‘워싱턴 포스트’지가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정부의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90여명의 미국 국회의원 등 공직자에 대해 매수공작을 했다.”고 1면에 대서특필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워싱턴 포스트와 타임지의 특종 경쟁으로까지 번지면서 일명 코리아 게이트로 명명된 박동선 사건은 “한국 정부의 사주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박동선 개인의 이익을 위한 로비 사건이냐.”를 놓고 무려 3년 여간 지루한 공방을 했고, 이로 인해 한미관계 발전과정에서 양국 정부를 가장 오랫동안 괴롭히며 힘들게 했던 일로 기록된다. 방송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그 이면의 새로운 증언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하비브 주한 미대사와 박동선의 워싱턴 정가 고위층 인맥을 배경으로 한 거침없는 로비 활동이라는 개인적인 갈등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대미 로비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 등이다. 제작진은 “코리아게이트 사건은 당시 허약했던 우리외교의 토양과 치부를 드러낸 미숙했던 로비 활동의 씁쓸한 이면사”라며 “방송에서 공개되는 박동선 비망록을 통해 당시 한국정부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또 잃은 것은 무엇인지 역사적인 교훈도 되새겨 볼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SBS 제공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 키워드로 본 2009 한국정치

    2009년은 용산참사와 함께 시작했다. 한 해가 지나도록 피해자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용산의 아픔처럼 올해 한국 정치도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2009년을 관통한 ‘키워드’를 통해 한국 정치를 돌아본다. ●죽음 - 친노·동교동 다시 주목 한국 현대사는 2009년을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해로 기록할 것이다. 퇴임 이후 ‘시민 권력’을 꿈꾸던 노 전 대통령은 5월23일 봉하마을 뒷산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몸을 던졌다.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렸다.”던 김 전 대통령은 이후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다 8월18일 급성호흡곤란 증후군으로 서거했다. 이들의 서거는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무한경쟁 시대를 살면서 귀찮고, 비효율적이라며 무시해 왔던 민주주의가 우리 시대에서 진정 실현되고 있는가를 묻게 됐다. 친노(親)와 동교동계가 다시 주목받는 계기도 됐다. 민주당사 대표실에 나란히 걸린 두 사람의 초상화는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바랐던 민주세력 대연합은 요원하기만 하다. ●변경 - 세종시 수정 정국 달궈 “대선 때 약속한 것을 바꿔 갈등과 혼란을 가져온 것은 죄송하다.” 11월27일 많은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곱씹었다.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이 대통령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하려던 세종시 계획의 수정을 공식화했다. 여론은 찬반으로 나뉘었고, 정치권도 출렁댔다. 세종시 논란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충돌을 불러왔다. 박 전 대표는 원안 고수를 강조하며 충청권 민심을 자신의 쪽으로 돌리고 있다. 친이(親李)계와 친박(親朴)계가 새해 벽두 정부의 수정안 발표 이후 어떤 동선을 보일지 주목된다. ●치수 - 4대강 예산국회 변수 이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에서 수정돼 나온 4대강 사업은 연말 예산국회를 파행으로 몰았다. 수자원공사로 사업 이전, 교육·복지·지방재정 등의 예산삭감 등을 놓고 여야는 팽팽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93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계수조정소위를 구성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상징’이다. 야당은 “대운하를 위한 속임수”라고 공격하는 반면 여당은 “제2의 청계천 신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미디어법 - 미디어법 현재진행형 미디어법 논쟁은 직권상정, 회의장 점거, 경호권 발동, 의원 사직서 제출, 재투표·대리투표, 헌법재판소 심판 청구 등 역대 국회에서 보기 드문 기록을 남겼다.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인 미디어법을 두고 여당은 “미디어 산업 발전”, 야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언론장악”이라며 대치하고 있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국민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7월22일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 직후 야 3당이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가처분 및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10월29일 헌재는 의원들의 심의 권한이 침해됐음을 인정하면서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하는 애매한 판정을 내렸다. 미디어법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창구 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서울신문 선정 2009년 국내외 10대뉴스

    서울신문 선정 2009년 국내외 10대뉴스

    2009년은 벽두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데 이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는 등 유난히 충격파를 던진 죽음이 많은 한 해였다. 강호순 사건 같은 강력사건과 연예계 성상납 같은 추문도 있었지만 남북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 공동 진출하고, 한국이 2010년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는 등 한반도에 희망의 기운이 감돈 한 해이기도 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미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이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고, 비록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구가 겪고 있는 온난화라는 공통의 위기를 앞에 놓고 세계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올해 10대뉴스를 국내와 국제 부문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국 내 김대중·노무현 前대통령 역사 뒤안길로 검찰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 고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한국 사회는 전에 없던 감정의 극한을 경험했다. 충격, 당혹, 참담, 분노, 연민…. 저마다 다르되, 복합적이었다. 8월에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영결식이 국장으로 치러졌다. 한국 현대사와 민주주의에서 그의 존재감이 어떠했는지…. 상실의 한 해였다. 미사일 발사·핵실험… 잇단 북한발 충격파 북한은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5월 2차 핵실험, 11월 대청해전을 유발하며 1년 내내 남한을 자극했다. 8월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12월에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이 이어졌다. 표면에 드러난 남북관계는 냉랭했지만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비밀접촉설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17년만의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용산재개발 철거민 참사… 보상문제 난항 1월20일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4층짜리 남일당 건물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다. 경찰이 철거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옥상 망루에 불이 붙었고, 화재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화재 원인, 강제 철거, 과잉 진압, 유족 보상 등을 둘러싼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종시 원안수정 논란… 국론분열 양상 정운찬 국무총리가 9월 초 내정과 동시에 꺼낸 세종시 원안 수정 입장은 올 하반기 최대 뉴스로 떠올라 지금도 활화산이다. 충청권과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까지 수정 반대에 가세하면서 국론분열 양상으로 치달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대통령과의 대화’를 갖기에 이르렀다. 수정안 최종본이 발표되는 내년 1월11일 이후에도 메가톤급 뉴스로 위력이 계속될 전망이다. 내년 G20정상회의 서울유치 ‘국격 우뚝’ 내년 11월 세계인의 눈과 귀가 서울에 집중된다. 지구촌 최고의 20개 부자나라(G20) 정상들이 대한민국에 모두 모인다. ‘아시아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경제올림픽’이 열리는 셈이다. 한국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일대 사건이다. 지구촌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국격(國格)을 한 단계 끌어올릴 호기이기도 하다. 미디어법 등 입법전쟁… 난장판 국회 오욕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은 7월 여름 국회를 끝없는 파행으로 밀어 넣었다. 직권상정, 회의장 점거, 국회 경호권 발동, 의원직 사퇴, 재투표·대리투표 논란 등 입법부 파행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여야의 불신은 연말 예산안 심의로 이어졌다. 새해 예산안이 연내에 처리되지 못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준(準) 예산을 편성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나로호 궤도진입 실패… 절반의 성공 2009년 8월25일 오후 5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KSLV-I)가 전 국민적 관심속에 우주를 향해 발사됐다. 자국 땅에서 자국의 로켓을 쏘아 올렸다는 데 의의를 가지며 우리나라 우주개발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한쪽 페어링(위성덮개) 미분리로 과학기술위성2호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데 실패함으로써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인면수심 강호순·조두순 반인륜범죄 경악 올해도 반인륜적 강력 범죄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 1월 군포 여대생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강호순은 미궁 속에 빠졌던 경기서남부지역 부녀자 연쇄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졌다. 2008년 12월 8세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은 징역 12년의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국민들은 지나치게 낮은 형량에 분노했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남아공월드컵축구 사상 첫 남북 동반진출 태극전사들은 1986년부터 월드컵 축구 본선 7회 연속 진출이라는 꿈을 일구며 국민들을 들뜨게 했다. 아시아예선을 무패(7승7무)로 마쳤다. 북한도 44년만에 본선에 올라 사상 처음으로 남북이 동반 진출하는 역사를 쓰게 됐다. 한국의 7연속 본선행은 브라질 등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번째 기록. 본선에서 한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B조에 편성됐다. 연예계 성상납 파문·잇단 자살 충격 지난 3월, 탤런트 장자연의 자살은 연예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던졌다. 신인 배우 장자연의 자살이 화제를 몰고 온 것은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이 연예계의 고질적인 성(性)상납과 매니저의 폭력 때문이었다는 유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4월과 11월에는 신인 배우 우승연과 모델 김다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연예계가 깊은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국 제 미국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 시대’ 개막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취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월20일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이라크 주둔군 철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지시하는 등 의욕적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러시아, 유럽과 관계를 재정립하고 중동과 평화의 외교시대를 열었으며 이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경제 회복… 두바이 사태 새 변수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앞다퉈 내놓은 경기부양책의 효과로 세계 경제는 지난 2년의 경기침체를 탈출해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세계 증시는 지난 3월 바닥을 찍은 뒤 상승랠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 정부가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을 6개월 유예해 달라며 채무상환 유예를 선언하면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신종플루 대재앙… 208개국서 1만명 사망 지난 4월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처음 발생한 신종플루는 빠른 속도로 확산,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현재까지 208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사망자수가 1만명을 넘었다. 빠른 확산속도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신종플루에 대한 경보 단계를 최고수준인 ‘대유행’으로 격상했다. 각국은 치료제와 백신 비축에 나서는 등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GM·크라이슬러 등 美 자동차제국 몰락 세계 금융위기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도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미국 업계 1위인 제너럴모터스(GM)와 3위 크라이슬러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잇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 세계는 자동차 제국의 몰락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GM은 파산법원의 주도로 감원과 채무 조정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착수해 ‘뉴 GM’을 출범시켰다. 리스본조약 발효… EU 27개국 정치 통합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EU)의 미니 헌법인 리스본조약이 12월1일 발효했다. 이로써 경제통합에 이어 정치적 통합을 본격화한 ‘유럽 합중국’이 탄생했다. 회원국 만장일치제였던 의사결정 구도를 다수결로 변경, 정책결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EU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는 헤르만 판 롬파위 벨기에 총리가 당선됐다. 日 하토야마 집권… 54년만에 정권교체 ‘8·30 중의원 선거’로 1955년 이후 계속돼온 자민당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 심화된 민심 이반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자민당은 지난 2007년 7월 참의원에 이어 중의원까지 민주당에 내줬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새로운 일본’을 기치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 의원 친족의 국회의원 입후보 제한 등 7가지 공약을 지켰다. 코펜하겐 기후회의 선진·개도국간 온도차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지난 7일부터 19일까지 열렸다. ‘선진국 책임론’을 내세우는 개발도상국과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선진국의 이견은 결국 제대로 된 정치적 합의조차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194개 회원국 중 28개국만이 동의한 ‘코펜하겐 협정’은 내용면에서뿐만 아니라 절차상 문제를 갖고 있다. 中 신장위구르 유혈 충돌… 197명 사망 지난 7월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시위로 197명이 죽고 1700여명이 다쳤다. 수백년간 곪아온 중국 내 소수 민족의 분리 운동과 자본주의 도입 이후 이 지역 GDP가 2배 이상 늘었음에도 대부분의 부를 한족이 차지하는 현실이 맞물린 결과였다. 중국 정부는 지역 투자를 늘리는 등 ‘위구르 달래기’에 나섰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하늘나라로 마이클 잭슨이 지난 6월25일 자택에서 심장 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각종 추문과 건강에 대한 억측을 불식시킬 것으로 기대됐던 영국 런던에서의 컴백 공연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연예계 최대 뉴스메이커였던 만큼 사망소식은 각종 인터넷 검색 순위 1위를 장식했고, 사후에만 저작권료 등으로 10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이란대선 부정 의혹… 혁명이후 최대 시위 6월13일 실시된 제10대 이란 대선은 당선자가 발표되자 예상치 못한 후폭풍에 휩싸였다.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 간의 박빙이 예상됐지만 아마디네자드가 압승하자 무사비 지지자들은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개혁 진영의 결집으로 이어졌고 각지에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 정이현 신작 2주만에 베스트셀러로

    소설가 정이현의 신작 ‘너는 모른다’가 출간 2주 만에 한국출판인회의 집계 종합베스트셀러 14위에 올랐다. 가족을 위시한 현대사회 인간관계의 피상성을 고발한 장편소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1권은 15주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뒤를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 1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등이 잇고 있다.
  • 시진핑, 반동의 자식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시진핑, 반동의 자식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이 사람의 아버지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였으나 마오쩌둥과 얽힌 권력투쟁에서 낙마하며 감금·유배 등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어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이 사람과 가족들은 반동으로 낙인 찍혔고, 그는 홍위병조차 될 수 없었다. 공산당 입당 신청을 열번이나 했지만 열번 다 퇴짜를 맞았다. 결국 이 사람은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 뒤 복권될 때까지 산시성 북부의 황량한 고원에서 농촌생활을 해야만 했다. ●변방 떠돌며 굴곡 거친 여정 ‘반동의 자식’으로 변방을 떠돌아야만 했던 이 사람이 바로 지금의 중국 국가부주석인 시진핑(習近平)이다. 지난 16일 방한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정·관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던 그는 이변이 없는 한 2012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에 이어 중국 최고 지도자로 등극할 차세대 지도자다. 반동에서 최고 지도자까지 시진핑이 걸어온 길은 드라마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인생 노정은 수많은 굴곡을 거쳤던 중국 현대사와 함께 하고 있다. 신간 ‘시진핑 평전’(우밍 지음, 송상현 옮김, 지식의숲 펴냄)은 올해 56세인 시진핑이 고난을 극복하고 권력자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중국의 경제 성장, 정치권력 변화 등을 함께 짚어낸 책이다. 저자 우밍(吳鳴)은 홍콩의 중국어신문사 주임으로 시진핑, 리커창 연구의 권위자로 불린다. ●포용력과 소탈한 삶이 성공비결 시진핑이 공산당의 ‘황태자’로 등장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중국 공산당 원로 시중쉰 전 부총리의 아들’이나 ‘군대 가수 펑리위안의 남편’으로 불리던 그였다. 그런 그를 이 자리로 끌어올린 것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바닥까지 떨어지게 했던 아버지였다. 태자당(공산당 원로 자제)에 속하는 시진핑은 태자당의 실세인 쩡칭훙 전 국가부주석에 의해 발탁됐다. 2007년 10월에 열린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그는 리커창(李克强)과 함께 나란히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들어가며 ‘두 명의 후계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거기다 그는 “각 방면의 세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며 리커창을 누르고 ‘통합형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수용력 역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이라는 논어 구절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몸에 배어있는 검소함과 소탈함도 마찬가지. 그는 파리가 들끓는 화장장과 쓰레기 매립장에서도 친근하게 노동자들과 섞이며, 상하이시 당서기 때는 호화로운 관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그를 만든 건 아버지의 교육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가치들을 부단히 실천해 최고 지도자 자리로 향하는 정치적 자산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노력이다. 입당이 거부된 채 산시성 농촌에서 일하면서도 그는 장애농민들을 보살피며 “인민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신념을 키웠고, 정딩(正定)현 부서기 시절에는 인민과 가까워질 수 있다며 자전거타기를 고집하기도 했다. 전근 때마다 현지 주둔군을 방문하며 다진 군 세력기반도 시진핑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 ●국내 현직 검사가 번역해 화제 책은 중국에서 최초로 쓰인 시진핑 평전이다. 우밍은 각종 자료와 시진핑 측근 인사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평전을 썼으나, 아쉽게도 시진핑 본인을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국내 번역은 현직 검사인 송삼현 수원지검 특수부장이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2만 5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그리스 神 이미지로 현대사회 5가지 모델 제시

    최근 간행된 ‘행복의 역설’(질 리포베츠키 지음, 정미애 옮김·알마 펴냄)에 따르면 인류의 소비 문명은 3단계를 거치며 변화했다. 1880년대 소수의 부르주아 계층만 소비의 주체가 된 1단계, 1950년대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거의 모든 계층이 30년에 걸쳐 풍요를 누린 2단계, 그리고 1970년대 말 이후 과잉물질주의가 이끈 ‘과소비 사회’가 3단계다. 저자가 본 ‘과소비 사회 이후’는 결코 밝지 않다. “과소비사회를 대체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발달할 것이라는 게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현대사회의 삶은 행복과 기쁨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인다.”며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일부 모델에는 그에 상응하는 그리스 신들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첫째는 페니아(빈곤의 여신). 물질 과잉은 소비자를 끊임없이 결핍의 상태로 몰아가고 주기적으로 불만족스럽게 만들어 평온함과 기쁨을 앗아간다. 기쁨을 맛볼 기회가 많을수록 소비자는 더욱 만족의 상태에서 멀어진다. 이것이 바로 풍요 속의 빈곤, 페니아의 강박증이다. 둘째는 디오니소스(술의 신). 전통문화에서 인간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함으로써 개인주의에서 해방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과소비사회는 공동체의 쾌락 대신 개인적인 기쁨으로 대체됐다. 셋째는 슈퍼맨. 현대사회에서는 경쟁력과 유능함, 적극성 등이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다. 개인마다 잠재력을 최대한 격발시켜 자기 초월을 시도한다. 그래서 현대사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늘 ‘슈퍼맨’ 현판이 붙어 있다. 넷째는 네메시스(율법의 여신).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사람들에게 증오심과 질투심, 경쟁심리를 부추겼다. 네메시스는 인간들이 지나치게 많은 부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벌한다. 다섯째는 호모 펠릭스(행복한 인간). 20세기 인류는 위대한 진보를 거듭했지만 지구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현대의 ‘행복한 인간’ 숭배가 더 큰 재앙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저자는 이처럼 다섯 가지 모델을 들어 과소비사회의 종말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저자는 “온전한 만족감 대신 상품의 욕구만을 따른다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고 단언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아직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11억명에 이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올해 통계에 따르면 기아로 고통받는 인구가 10억 2000만명이다. 전쟁보다 기아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행복의 역설’은 이런 곳에서도 유효할까. 저자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은 프랑스다. 2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북촌길 정독도서관

    [테마 스토리 서울] 북촌길 정독도서관

    책만 읽기에는 아까운 도서관이 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며 널따란 담장 곳곳에 오래된 건물 역사만큼이나 세월의 추억이 묻어난다. 인왕산 자락에서 내려온 등산객도, 북촌 한옥마을을 둘러본 관광객들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생각에 빠진다. 1980년대 이전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이곳을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엘리트 양성소였던 ‘경기 중·고등학교’로 기억한다. 경기고등학교가 강 너머로 옮겨간 1976년 이후에 이곳은 너무나 도서관다운 ‘정독(正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름의 ‘정(正)’자는 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풍문여고 옆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화동 언저리에서 정독도서관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동네 어느 곳에서나 도서관을 찾을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한 디지털도서관까지 등장했지만 정독도서관은 여전히 7080세대의 머릿속에 첫 번째로 꼽히는 도서관이다. 등록문화재 2호인 도서관 건물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아날로그 그 자체다. 1927년에 지어진 옛 경기고등학교 건물은 이제 사료관동으로, 1938년 건물이 도서관과 휴게실동으로 쓰이고 있다. 건물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스팀난방시설을 갖춘 최첨단 건물이었다. 도서관으로 문을 연 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독도서관은 여전히 도서관이다. 50여만권에 달하는 장서와 1만 4200여점의 비도서자료, 부설 서울교육사료관에 소장된 1만 2000여점의 교육사료가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평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중·고등학생들과 고시준비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보수공사와 리모델링을 거쳐 이제는 무선인터넷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됐지만 도서관을 가득 채운 면학열기만은 예전 그대로다. 그러나 정독도서관의 가치는 도서관 그 이상이다. 흰색과 미색을 띤 차분한 분위기의 건물과 도심에서 보기 힘든 정원은 공원이 드물었던 시절에 그야말로 ‘낭만의 공간’이었다. 봄 벚꽃과 가을 단풍은 공부를 핑계 삼은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품행제로’, ‘그남자의 책 198쪽’ 등 수많은 한국 영화에서 정독도서관은 등장 그 자체로 70~80년대의 낭만을 표현하는 배경이었다. 17일 오후, 추운 날씨에 도서관 정원에서 팔짱을 끼고 걷는 한 부부가 눈에 띄었다. 김건우(45)씨와 양희연(45·여)씨는 고등학교 시절 정독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며 옛 추억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시험기간이면 새벽 4시에 줄을 서서 입장한 후 공부를 하다가 분수 옆에 앉아서 같이 얘기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풍문여고, 덕성여고 등 여학교들이 많아 남학생들이 일부러 공부하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도서관 관계자는 “추억을 찾는 중년세대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정원을 거닐곤 한다.”고 설명했다. 80년이 넘은 건물 외양은 그대로지만 정독도서관에는 세월이 갈수록 이야기와 추억이 쌓이고 있다. 이웃에 아트선재센터가 들어서고 삼청동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정독도서관은 새로운 ‘문화의 거리’의 중심이 됐다. 각종 전시회를 유치해 갤러리로 옛 건물을 활용하고 다양한 문화센터 강좌도 매일 열린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상의 흐름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독도서관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다시 고개 든 지구 종말론

    다시 고개 든 지구 종말론

    최근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영화 ‘2012’의 흥행 성공을 계기로 종말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대 마야인의 예언에 따라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영화의 핵심 내용은 출판물과 방송·인터넷 등을 통해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2012년을 기점으로 20년 전인 1992년에도 한 교회의 휴거(携擧)설로 사회가 떠들썩한 적 있다. 거기다 세기 말 분위기를 등에 업은 각종 예언까지 가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종말론도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왜 끊임없이 종말론이 회자되는 것일까. 이렇듯 종말론이 대중 사이로 떠도는 현실을 종교계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천재지변에 대한 확장적 상상” 지적 종교계에 따르면 세상을 순환적인 시각으로 보는 힌두교나 민족종교에도 어느 정도 종말의 요소는 있다. 하지만 종말이 주요 교리로 등장하는 것은 기독교 전통. 기독교에서 종말의 모습은 요한묵시록에 잘 표현돼 있다. 묵시록에 따르면 세계가 멸망하는 날에는 일곱 개 봉인이 뜯어지고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며 온갖 재앙이 닥친다. 하지만 실제 기독교에서는 종말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차동엽 미래사목연구소 신부는 “기독교의 종말은 제한돼 있던 우주 질서가 새로운 차원으로 완성되는 때”라면서 “그 순간의 장면은 선인과 악인 간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기독교에서의 종말은 하느님의 뜻이 완성되는 시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세간에 떠도는 종말론은 고통의 장면만을 흥미에 따라 확대한다고 차 신부는 지적했다. 그는 이를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낳은 파괴 욕망” 또는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등 천재지변에 대한 확장적 상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교리에 따른 올바른 종말 이해는 “그 날에 깨어 있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도덕적 자기 반성 vs 포퓰리즘 불교계에서는 종말론 유행 현상을 “도덕성 파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이해한다. 불교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리에 종말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순환적인 시간론에서도 새로 한 시대가 시작될 때는 재앙의 순간이 있다고 본다. 이에 빗대어 불교에서는 지구의 멸망 장면을 일종의 방편법으로 이해한다. 조계종 불학연구소 원철 스님은 종말론 유행이 지구 멸망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현재 우리 삶에 충실해지자는 반성” 또는 “지적 문명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위기의식”이라고 분석했다. 종교계가 아니라 종교학자가 보는 눈은 또 다르다. 김윤성 한신대 교수는 최근의 종말론 유행은 일종의 ‘놀이’ 성격이 짙다고 했다. 그는 “종말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지만 각 교단에서 주장하는 종말에 대한 반응은 다 다르다.”면서 “2000년 이전의 종말론은 세기 말과 얽혀 보편적 전환의식을 유발했지만, 최근에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김 교수는 “종교가 현대사회에서 필수가 아닌 일종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면서 그 교리조차도 대중적 소비문화의 대상이 됐다.”면서 “종말론 유행은 현대사회의 종교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극단적 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열린세상] 헌재에 관한 책의 출간을 보고/금태섭 변호사

    [열린세상] 헌재에 관한 책의 출간을 보고/금태섭 변호사

    밥 우드워즈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미국 연방대법원을 해부한 책 ‘지혜의 아홉 기둥’(원제 The Brethren)을 지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200년 동안 미국인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왔으면서도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연방대법원의 속사정이 이 책을 통해 속속들이 알려졌다. 일반인은 물론 평범한 변호사들에게도 신적 존재로 여겨지던 대법관들의 모습은 상상과 전혀 달랐다. 자신의 주장을 다수 의견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대법관들을 끌어들이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견해가 다른 대법관들과는 비방에 가까운 말을 주고받는다. 물론 인간적인 약점들도 상당히 드러난다. 2007년에는 뉴요커 기자 제프리 투빈이 ‘더 나인’(The Nine)이라는 제목으로 후속편에 해당하는 책을 낸다. 대법관 지명을 둘러싼 암투, 한 시대를 장식했던 유명한 사건들의 판결이 결정되는 과정이 다시 한번 손에 잡힐 듯이 공개됐다. 놀라울 정도로 적나라한 내용이지만 진위를 놓고 시비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법관들 자신이 저자들의 인터뷰에 응해 밝힌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들에 등장하는 일화 중에는 보기에 따라 비난받을 만하거나 대법관들로서는 감추고 싶을 만한 것도 많지만 저자들이 법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거나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를 잃게 했다는 비판을 받지는 않았다. 사건을 놓고 고민하는 판사들의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줌으로써 사법 작용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도왔다는 긍정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대법관들이 인터뷰에 적극 응한 것도 이러한 작업이 연방대법원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법조 기자 출신의 작가가 우리 헌법재판소를 소재로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단순히 사건이나 재판 과정을 열거한 것이 아니라 결정에 관여한 헌재 재판관들이 직접 밝힌 뒷얘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신생 헌법기관인 헌재가 자리를 잡아 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기관과 벌인 힘겨루기, 탄핵이나 수도 이전과 같은 정치적 사건은 물론 동성동본 금혼이나 간통죄 등 한 개인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재판관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간통죄를 폐지하면 속이 뒤집힌 개인들이 직접 폭력을 휘두를지 모른다는 얘기가 평의에서 나왔다는 대목은 법률의 헌법 위반 여부를 결정할 때 재판관들이 어떤 사정들을 고려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헌재가 내린 특정한 결정에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를 떠나 이렇게 결정 과정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헌법재판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외국에 비해 우리 사법은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법정에서 선고된 판결문도 원칙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서류나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판결 선고 전에 이루어지는 일은 전혀 알 수 없다. 흔히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고 하지만, 헌재·법원·검찰 등에서 실제 진행되는 일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사법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것은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포함하는 것이지만, 무조건 감춘다고 독립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개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때 강한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공개하는 관행이 생겨나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나중에 그와 관련된 자료를 남기는 것은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헌재에서 그치지 말고 법원, 검찰에 대해서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금태섭 변호사
  • [사설] 개정교육과정 역사 외면 위험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고교 1학년 ‘역사’ 과목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꾸고, 2~3학년 선택과목에서 ‘한국문화사’를 제외하는 내용의 ‘2009 개정교육과정’을 이달 중 확정하기로 한 데 대해 역사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번 개정교육과정이 역사교육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그대로 실행될 경우 역사교육이 파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현행 일선 고교의 역사교육은 1학년은 ‘국사’를 필수로, 2~3학년은 ‘한국근현대사’와 ‘세계사’를 선택과목으로 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2007 개정교육과정’에 의해 근현대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를 필수로, 2~3학년은 ‘한국문화사’ ‘동아시아사’ ‘세계역사의 이해’를 선택과목으로 적용할 예정이었다. ‘2007 개정교육과정’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역사 인식의 확립을 위해 역사교육 강화를 핵심으로 개정된 것인데 시행도 되기 전에 폐기될 처지가 돼 버렸다.‘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고교 시절 내내 한번도 한국사 교육을 받지 않고 졸업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중학교 때 배우는 근대 이전의 한국사가 정규 교육에서 받는 최종 역사교육이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올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을 정립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오로지 학생 개인의 흥미와 노력 여하에 역사교육의 운명을 내맡긴다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발상이다. 교육당국은 지금이라도 역사학계의 비판과 지적을 받아들여 역사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개정안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 [12일 TV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3일(KBS1 오후 9시40분) ‘겨울바다’ 하면 생각나는 동해안. 그중에서도 강원도 3대 미항이자 동해안 최고의 일출 명소로 꼽히는 강원도 양양 남애항이 있다. 아담한 포구를 중심으로 예쁜 해수욕장이 양옆에 붙어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남애항의 겨울바다를 찾는 사람들과 바다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과학카페(KBS1 오후 7시10분) 2003년, 뉴욕 일대의 전기가 완전히 끊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급작스러운 정전 사태로 도시는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현대사회에서 전기는 단순히 기계를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활과 문화, 산업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전기, 그리고 전기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수상한 삼형제(KBS2 오후 7시55분) 청난은 과자에게 부모님이 신종플루 때문에 결혼식에 못 오신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때 순경이 들어와서 하행선이라는 사람이 마누라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안 찾아주면 또 사고 칠 것 같아 찾아야 된다고 말하자 청난은 기겁한다. 한편 어영은 이상을 집에 초대해 범인에게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인연 만들기(MBC 오후 7시55분) 혼자 별장에 있는 해성을 찾아간 윤희는 그의 낯선 모습에 놀라고, 해성은 윤희에게 진주와 둘이서 밥 먹고 싶다고 말한다. 효은은 여준에게 상은과 함께 놀이동산에 놀러가자고 한다. 여준은 놀이기구 안에서 무서워하는 상은의 곁에 앉아 자신만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20분) 현행법상 가해자 혹은 피의자는 합의나 피의자 방어권을 이유로 범죄 신고자나 피해자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앙심을 품게 되면 그 정보들은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만다. 증인 보호에 철저한 미국의 증인 보호프로그램 운용을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보고 보복 범죄 대책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저수지 공사현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40세도 안 되는 나이에 사망한 배우자. 두 살 때 질병으로 사망한 아들. 15년 전 사망한 딸. 사랑하는 가족을 셋이나 앞세우고, 할머니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사람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사연을 만나본다. ●OBS 스페셜(OBS 오후 8시50분) 고대 향신료의 가치와 오늘날 의학에도 이용되는 향신료에 대해 알아본다. 향신료는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다른 누구에게는 아픔의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변화와 영욕의 세월을 보내며 다양한 맛과 향으로 전 세계 역사를 뒤흔든 향신료의 모든 것이 공개된다.
  • [정윤수의 종횡무진] 월드컵, 각국문화 이해의 기회로

    기차는 몇 시에 떠나는가. 소설가 신경숙은 7시에 떠난다고 썼다. 그녀의 장편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는 오래 사귄 연인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잠시 서성거리면서, 가슴아픈 추억과 미묘한 샅바 싸움을 벌이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이 소설에서 기차는 7시에 떠나지만, 원래 이 소설에 동기가 된 원곡에서는, 기차가 8시에 떠난다.그리스의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그 곡이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Z’, ‘세르피코’ 등에서 유려한 음악을 선보인 그는 그리스 독재 정권에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문제에 적극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행동하는 예술가다. 그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에서 “당신은 비밀을 간직한 채 밤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지/ 기차는 8시에 떠나지만 당신은 홀로 카타리니에 남아있겠지.” 라고 노래했다. 그리스의 어두웠던 현대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탱고는 우아하고 슬픈 아르헨티나 음악이다.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이 아르헨티나의 무곡을 지고지순한 사랑과 슬픔의 노래로 부활시킨 음악가다. 원래 피아졸라는 서유럽으로 건너가서 서양 클래식을 전공하고자 하였으나 그를 가르친 스승 나디아 블랑제가 아르헨티나의 땀 냄새가 배어있는 음악을 권유하였고, 그리하여 피아졸라는 탱고에 몰입하였다. 그의 음악에 대해, 그러니까 아르헨티나의 탱고에 대해 현대 음악가 존 애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낡은 옷처럼, 주름진 육신처럼, 감시, 꿈, 불면, 예언, 사랑과 미움의 말들, 어리석음, 충격, 목가, 정치적 신념, 부정, 의심, 긍정 따위로 순결을 잃은 영혼….”2010 남아공 월드컵 조 주첨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아르헨티나, 그리스, 나이지리아와 함께 B조에 속하게 되었다. 이 B조를 포함하여 전체 8개조의 전력과 16강 예상 팀에 대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 아닌가. 말하자면 같은 조의 3개 나라 뿐만 아니라 나머지 31개 나라에 대하여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이 기회에 각 나라의 전력이나 주요 선수에 대한 정보를 넘어 그 나라들의 현대사와 문화를 좀더 풍요롭게 알게 된다면 이보다 더 의미있는 월드컵은 달리 없을 것이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흥얼거리는 그리스 사람들, 낮에는 축구에 열광하고 밤에는 탱고의 깊은 슬픔에 젖어드는 아르헨티나 축구팬들. 그리고 한국과 나이지리아가 있다. B조에 속한 나라의 공통점은 비극의 현대사를 이겨냈다는 것이다. 강대국의 치열한 다툼에 끼어 속박의 세월을 보냈고 군부 독재의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나이지리아의 근대사는 노예무역과 식민의 삶이었고 그 현대사는 수 차례에 걸친 쿠데타의 연속이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2002 월드컵이 각별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축구와 월드컵은 단순한 대회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두운 현대사 속에서도 네 나라의 국민들은 공을 찼고, 450g에 지나지 않는 작은 공에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실었다. 그리하여 2010년 6월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비록 두 나라만이 16강에 진출하지만, 이 기회를 통하여 네 나라 사람들은 서로를 더 많이 알고, 그리하여 더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 [2009 수능 성적발표] 수리 쉬워 상위권 눈치작전 극심할 듯

    [2009 수능 성적발표] 수리 쉬워 상위권 눈치작전 극심할 듯

    올 수능은 지난해 어렵게 출제됐던 수리영역이 비교적 쉽게 출제돼 정시지원에서 상위권 학생들의 극심한 눈치작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고른 점수 분포로 주요 특정영역이 당락을 좌우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때문에 비교적 어렵게 출제된 외국어영역과 과목별 쏠림현상이 두드러진 탐구 및 제2외국어 영역이 당락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쉬워진 수리영역 난이도 올해도 역시 초미의 관심사는 수리영역이었다. 지난해 무척 어렵게 출제된 수리영역 점수가 당락의 핵심 변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수리영역은 다시 체감 난이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쉬워졌다. 수리영역 가·나형에서 문제를 모두 맞춘 학생의 표준점수가 142점이었다. 지난해 154점이었던 ‘가’형은 12점, 158점이었던 ‘나‘형은 16점이나 떨어졌다. 그만큼 쉽게 출제됐다는 의미다. 만점자수는 수리 ‘가’형이 463명으로 지난해 95명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나’형 만점자는 3875명으로 지난해 442명보다 8배 이상 많아졌다. 입시전문 청솔학원 입시연구소에 따르면 특히 올해 수리 ‘나’형의 1등급 커트라인이 원점수 91점 정도로 예상돼 지난해 79점보다 12점이나 상승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올해 수리가 얼마나 쉽게 출제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치우 비상에듀 평가실장은 “남·여 수험생들이 전반적으로 어렵게 느끼는 수리영역이 쉽게 출제돼 상위권이 두껍게 형성될 것”이라면서 “올해 수능 정시에서는 상위권 학생들의 치열한 눈치작전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어영역 최상위권 변수 반면 외국어영역은 지난해보다 다소 어려웠다. 표준점수도, 최고점도 지난해 136점에서 4점 오른 140점으로 나타났다. 만점자수는 4642명으로 지난해 5340명 보다 다소 줄었다. 또 같은 1등급 내에서도 표준점수 차이가 지난해 5점에서 7점으로 벌어졌다. 이는 변별력이 다소 높아졌다는 의미다. 때문에 외국어영역 점수는 1등급끼리 경쟁하는 상위권 변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예상된다. 언어영역은 일부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지난해보다 쉬웠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표준점수 최고점이 134점으로 140점이었던 지난해보다 6점이나 하락했다. 만점자 역시 1558명으로 643명이었던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때문에 올해 언어영역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입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해 수능에선 비주요 영역으로 분류되는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가 수능의 복병이 될 전망이다.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2외국어 영역에서 표준점수 최고점이 아랍어I(100점)와 독일어I·프랑스어I·일본어I·한문(69점) 간 최대 31점이나 벌어졌다. 사회탐구에서는 경제(81점)와 한국근·현대사(67점)가 14점 격차를 보였으며, 과학탐구에서는 물리II·화학II(77점)와 지구과학I(67점)이 10점이나 차이가 났다. 직업탐구에서도 정보기초기술(88점)과 해사일반·해양일반·식품과영양(70점)의 점수차가 18점이었다. 오종운 청솔학원 평가연구소 소장은 “올해 정시에서는 그 어느 해보다 탐구영역을 비롯한 선택과목의 영향력이 클 것”이라며 “자신의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잘 살펴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 기준을 제시한 대학을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영역별 최고점수 ▲언어=134점 ▲수리 가=142점 ▲수리 나=142점 ▲외국어(영어)=140점 ▲사회탐구 윤리=69점 국사=72점 한국지리=77점 세계지리=69점 경제지리=71점 한국 근·현대사=67점 세계사=68점 법과 사회=78점 정치=71점 경제=81점 사회·문화=73점 ▲과학탐구 물리Ⅰ=73점 화학Ⅰ=76점 생물Ⅰ=68점 지구과학Ⅰ=67점 물리Ⅱ=77점 화학Ⅱ=77점 생물Ⅱ=70점 지구과학Ⅱ=73점
  • 고단한 현실 이겨낼 힘 얻으려… 허상에 좀 기대 살면 안 되나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와 친구들은 기나긴 모험 끝에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다. 하지만 천신만고 뒤에 만난 오즈의 마법사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는커녕 아무 힘도 없는 늙은이인 것으로 밝혀진다. 그래도 도로시와 친구들은 꿈을 이뤄줄 ‘오즈의 마법사’라는 존재를 믿고 있었기에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고, 어찌 됐든 결말에는 모두 꿈을 이룬다.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계간지 자음과모음 주최) 수상작인 소설가 안보윤의 ‘오즈의 닥터’는 그 제목에서부터 이미 ‘오즈의 마법사’의 오마주 낌새를 비춘다. 그렇지만 ‘오즈의 닥터’는 ‘오즈의 마법사’만큼 아름답거나 희망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더 처절하고 현실적인 시각으로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실체가 없는 믿음’, 즉 허상과 거기에 기대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정신치료 상담하며 허상 끝없이 지어내 제목대로 소설에는 마법사 대신 의사가 등장한다.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기도 한 ‘팽 닥터’라는 이름의 기묘한 의사다. 환자가 “속이 울렁거려요, 토할 거 같아요.”라고 할 정도로 기괴하고 부조화스런 모습이다. 주인공 화자(話者) 김종수가 만난 그는 두꺼운 목과 각진 어깨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가는 어깨끈의 홈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턱을 덮고 있는 거뭇한 수염자국과 치맛자락 아래로 드러난 검은 털에 덮힌 굵은 다리, 거기다 보라색 입술과 보라색 손톱까지. 그런 꼴을 하고도 팽은 “취미야, 자기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잖아?”라며 오히려 당당하다. 김종수는 정신과 의사인 이 팽 닥터에게 상담을 받는다. 고등학교 교사인 김은 한 학생의 모함 탓에 성 추행범으로 몰리고, 결국 유죄 판결과 함께 정신치료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가 팽 닥터 앞에 앉아 풀어내는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회상이 섞여 들며 진행된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는 일관성이 없다. 처음 김은 춤바람이 난 엄마 얘기를 꺼내지만, 뒤에 다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엄마가 아닌 누나가 된다. 하지만 또 그 뒤에서는 그가 실은 외아들이고, 엄마는 그가 태어날 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치료를 거듭할수록 그의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며, 결국은 그가 이야기를 털어놓던 팽 닥터까지도 허상임이 드러난다. 엄마와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강한 욕구, 자신의 이야기를 한없이 풀어내고 싶다는 충동 등으로 김은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 머문다. 그 경계에서 고단한 현실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와도 같은 존재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닥터 팽인 것이다. 이 길고 달콤한 환상이 끝난 뒤 김은 위대한 환상의 힘에 대해 부르짖는다. “현실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환각이 보이는 상태로 좀 살면 안 되는 건가요? 현실이라고 해봐야 좋을 것도 없잖아요. (…) 나는 이제 환각도 현실도 상관없어요.”라는 그의 고백은 눈에 보이는 진실 만으로는 도저히 삶을 이어갈 수 없는 현대인의 나약함, 또 그 현대인을 억누르는 현대사회의 폭력성 등을 보여준다. ●진실한 삶 살 수 없는 현대인의 나약함 고발 이러한 모습은 “이야기를 못해 몸져누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발사의 모습이 나와 너무도 닮았다.”고 하면서 문학적 거짓, 즉 허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 자신과도 맞닿는다. 소설이라는 허구를 통해 팍팍한 생활에 새 힘을 얻고자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노前대통령 탄핵심판 미공개 소수의견은?

    노前대통령 탄핵심판 미공개 소수의견은?

    2004년 5월14일 오전 10시3분34초.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대통령 노무현 탄핵심판 사건(2004헌나1)의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기 시작한 시간이다. 당시 헌재의 결정과 관련해 제기된 두 가지가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하나는 시간을 ‘칼’처럼 지키는 헌재가 이례적으로 결정문을 3분여나 늦게 발표한 배경이며, 또 하나는 탄핵에 찬성하는 취지를 담은 소수의견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다. 1일 법조기자 출신의 취재작가 이범준이 펴낸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에는 기자 특유의 근성과 분석을 바탕으로 ‘2004헌나1 미스터리’를 포함,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헌재 결정의 뒷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탄핵심판의 선고가 늦어진 것은 김영일 전 재판관이 오전 10시3분에야 심판정에 들어왔기 때문. 김 전 재판관이 심판정에 늦게 들어온 이유가 두 가지 의문을 풀 단서다. 일반적인 헌재 사건의 결정문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각각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이 나눠 작성한다. 하지만 2004헌나1의 결정문은 이례적으로 주선회 재판관이 첫장부터 끝장까지 모두 작성했다. 또 평의에서 다수의견으로 소수의견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김 전 재판관에게 헌재법이 정한 소수의견 공개를 다수결로 막은 것부터 부당한데, 결정문에 들어갈 소수의견 비공개 이유 작성까지 막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소수의견이 보관돼 있다는 것까지 저자는 밝혀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탄핵 인용 결정에 이르는 논리적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공개를 대신했다. 책은 또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신행정수도 사건, 12·12 사건 등을 둘러싼 재판관들의 고뇌와 갈등,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아르헨티나에 한국소설 바람부나

    아르헨티나에 한국소설 바람부나

    ‘…비극적인 과거와 고도성장의 현재를 한국문학이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국현대문학단편선집’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한국현대문학은 현대사의 비극을 문학적 매개물로 삼는 작가군과 야생의 신자유주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군으로 나뉜다.’(아르헨티나 일간지 ‘디아리오 클라린’ 9월21일자) ‘모든 고독과 저항의 의무를 작품 속에 묘사되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킴으로써 하나의 이미지로 우리를 감동시킨다.”(‘파히나 도세’ 10월11일자) ‘분단문학과 즐기는 문학으로 나누어 한국 현대 문학의 흐름을 짚었다. 감동과 빛깔, 강렬함의 세 가지가 시대를 이어 내려온 한국문학의 특성으로 꼽히며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문학 교류가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레비스타’ 10월17일자) 한국문학번역원은 26일 “최근 ‘한국현대문학단편선집(위 사진)’, ‘새의 선물’(아래·은희경), ‘낯선 시간 속으로’(이인성) 등 한국 소설 3종이 아르헨티나에서 잇따라 출간되며 한국 문학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유력 언론들도 한국 문학 특집기사를 게재하는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올리베리오 코에요가 엮은 ‘…단편선집’은 손창섭·조선작·김승옥·이동하·임철우·하성란·김영하·박민규 등 한국작가 여덟 명의 단편 소설을 묶었다. 이어 나란히 나온 장편소설 ‘새의 선물’과 ‘낯선 시간 속으로’도 아르헨티나 문단과 출판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코에요는 최근 ‘중남미의 주목받는 작가 20인’에 뽑힐 정도로 촉망받는 젊은 작가. 특히 2007년 작가 초청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여섯 달 동안 머물며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한국 현대문학 단편선을 직접 엮고, 최고 유력일간지 ‘디아리오 클라린’에 글을 기고한 배경이다. 또 평론가 헥토르 파본은 ‘레비스타’ 기사를 통해 한국의 고전문학부터 사이버문학까지를 개괄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2일 장기기증 생명나눔 콘서트 개최

    장기 기증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따르면 본부가 설립된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장기 기증 신청자 수는 총 3만 3000여명이었다. 하지만 올 한 해 장기 기증 신청자 수는 이에 맞먹는 3만명(11월10일 현재). 올해 2월 생명의 빛을 나눠주고 떠났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폭발적으로 커진 장기 기증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장기 기증 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2009년 한 해를 기념해 ‘2009 장기기증자 봉헌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22일 서울 가톨릭의대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주제로 장기 기증자 및 그 가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행사는 2부로 나눠 열린다. 1부는 봉헌미사로 올 한 해 장기 기증을 실천하고 세상을 떠난 고인들을 위해 봉헌된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각막 기증을 신청한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기증자 가족들에게 감사패도 전달한다. 2부 행사는 생명콘서트다. 이 콘서트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생명프로젝트 앨범 ‘생명…사랑해, 기억해’ 출시를 기념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가톨릭 신자 가수인 김광진, K2 김성면, 김수희, 나무자전거, 더스토리의 나인, 바다, 박완규, 이소은, 제이, 파페라가수 마리아 등이 앨범작업에 참여했다. 영화배우 안성기(왼쪽), 탤런트 김태희(오른쪽), 김지영 신부의 낭송과 하피스트 정연화의 연주도 담겨 있다. 생명위원회 위원장 염수정 주교는 “현대사회는 생명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를 통해 듣고 생명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행사는 장기 기증자 가족 및 신청자는 물론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 홈페이지(www.obos.or.kr) 참조.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서울 구석구석 돌며 만난 사람·풍경 이야기

    ‘서울, 북촌에서’(김유경 글, 하지권 사진, 민음인 펴냄)는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지낸 김유경씨가 북촌을 비롯해 서울 구석구석을 돌며 만난 사람과 풍경을 촘촘히 엮어놓은 책이다. 중견 사진가 하지권씨 등이 찍은 200여컷의 사진들이 북촌의 향취를 그대로 아로새긴 듯 생생하다. “서울 사람이 갖는 감수성의 맥을 따라 처녑 속 같은 북촌의 문화를 관통하는 여정이었다.”고 저자는 감회를 전한다. 수많은 주민, 문화인, 건축물, 자연의 모습이 옴니버스처럼 펼쳐진다. 가회동과 삼청동 중심의 종로구 일대 한옥은 “북촌 풍경의 백미”로 꼽을 만큼 아름답다. 흔히 북촌 하면 양반 대가들의 동네를 떠올리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집들이 많단다. 철물점 주인, 한옥을 재건축하는 대목장, 서울 토박이인 음악 칼럼니스트 등과의 대화가 한옥 생활의 묘미, 옛것의 가치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도심에서 북악산으로 접어드는 삼청동길은 호젓한 주택가에서 인파가 북적이는 상가로 변신했다. 눈요깃거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어 생기와 활력이 넘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희비의 시선이 엇갈린다. 저자는 북촌이 서울시의 보호 정책 아래 되살아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디자인 한옥’으로 획일화되고 도시계획 명목으로 골목길이 확장되면서 많은 전통가옥들이 잘려나갔다고 말한다. 무심히 지나쳤던 공간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원서동의 언더그라운드 미술학파 ‘인사 미술 공간’, 프랑스인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평창동 관경재, 57년째 빈대떡에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피맛골 열차집, 그리고 종로 보신각과 광화문 네거리 등. 저자는 “의식주만이 아니라 개인을 넘어선 여러 의례, 얼굴 모습과 눈초리, 말씨 하나까지 북촌 특유의 분위기가 감춰진 듯 들어 있었다. 관광객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오래된 서울 사람의 사는 모습이 깊디깊은 문을 지나 섬광처럼 보일 때가 몇 번 있었다.”고 말했다. 600년 고도의 정수, 어제와 오늘이 드러나기도 한다. 가령, 순정효 황후 윤씨의 송현동 친정집은 시대의 흐름을 타며 변해왔다. 일제 강점기엔 일본 식산 은행의 관사 터로 넘어갔다가 해방이 되자 미국 대사관 직원 사택 단지로 쓰이고, 지금은 한 기업이 소유한 빈터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한옥들이 변화를 겪는 가운데,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집안 정도가 한옥 저택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한 건축가 엄덕문, 서울에서 100년을 산 법학자 고 최태영 박사, 조선 마지막 황후 순정효 황후의 후손 윤흥로씨 같은 산증인들에게서 육성으로 듣는 근현대사 이야기는 역사의 무게와 잔향을 실감하게 한다. 대한제국의 황실 복식 유물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사연, 군사 정권 시절의 이면을 엿보게 하는 삼청각 뒷이야기 등 이 책이 발굴한 사실들도 흥미롭다. 1만 8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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