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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덧칠된 DJ 이미지 벗기는 데 주력”

    “덧칠된 DJ 이미지 벗기는 데 주력”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지난해 6월11일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특별 강연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서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국민을 상대로 유언을 남긴 셈이다. 수난의 역사로 점철된 전라남도 신안군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피어나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열매를 맺고 떠난 ‘인동초’의 삶을 되짚어 보는 ‘만화 김대중’(시대의창 펴냄)이 완간됐다. 백무현(47) 서울신문 화백이 지난해 가을 1~3권을 잇달아 낸 데 이어 최근 4, 5권을 한꺼번에 출간하며 마침표를 찍은 것. 백 화백은 16일 “무조건 칭찬이 아니라 비판도 담았기 때문에 작업을 마치고 김 대통령을 직접 만나 평가와 소회를 듣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 아쉽다. 아직도 생존해 있는 정치인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완간 소감을 밝혔다. 4권 ‘시대의 한계를 넘어’ 편에서는 1986년 직선제 개헌 투쟁부터 민주화운동의 오점을 남긴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1992년 14대 대선 패배 뒤 정계 은퇴 선언을 했다가 1995년 정계에 복귀하는 순간까지 담았다. 마지막 5권 ‘역사는 발전한다’ 편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수평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낸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극복,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 지난해 8월 서거까지를 다뤘다. ‘만화 김대중’을 그리기에 앞서 백 화백은 3년 넘게 ‘인간 김대중’을 공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쓴 저작물은 물론 정치인, 언론인, 학자 등이 쓴 자료를 광범위하게 살폈다. 김 전 대통령을 반대하고 비판한 글까지 섭렵했다. 그 결과 단순한 위인전이 아닌, 균형 잡힌 인물 이야기가 탄생했다. 13년째 일간지 시사만평을 그리고 있는 감각도 한몫 했다. 백 화백은 이번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으로 고인의 지식이 워낙 폭넓고 저서들이 방대하다는 점을 꼽았다. 철학, 역사관, 가치관을 제대로 파악해 만화적인 재미까지 곁들이며 독자와 소통하게 해야 하는데 녹여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 화백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굳어진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만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빨갱이’와 ‘선생님’이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오갔던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 꽃과 동물을 사랑하고, 남들 앞에서 꺼이꺼이 울고 겁도 많았던 인간적 면모를 재발견하게 된다. 또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을 기준으로 많은 정치인들을 바라보고 있어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나이테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백 화백은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을 즈음해 김대중도서관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2005년 만화 박정희(전2권), 2007년 만화 전두환(전2권)에 이어 한국 현대사 만화 인물 평전 시리즈를 그려가고 있는 그의 붓은 이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향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명해 달라는 독자들 요청이 워낙 많다. 이미 공부를 시작했다. 비극적인 서거 이후 제대로 된 평가 작업이 별로 없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 될 것 같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작업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설] 公試 전교조 지문 출제에 이념잣대 댈 일인가

    우리 사회의 소모적 이념 싸움은 언제쯤 수그러들까. 이번에는 9급 국가공무원 시험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창립선언문을 지문으로 제시한 것이 이념논쟁으로 비화했다. 문제를 제기한 측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전교조에 대한 내용을 출제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목청을 높인다. 나아가 ‘좌파’와 ‘빨갱이들’이 곳곳에 숨어서 공직사회를 물들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험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현대사의 발생시기를 묻는 단편적 문제인데 이념 논란이 벌어져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발단은 지난 10일 치른 9급 공무원 시험의 한국사 17번 문제다. 예시 선언문은 1981년 민정당 창당 선언문(ㄱ),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국민대회 선언문(ㄴ), 1976년 재야단체의 민주구국 선언문(ㄷ), 1989년 전교조 창립선언문(ㄹ) 등이다. 지문마다 핵심어를 유심히 살펴보면 무슨 선언문인지 몰라도 현대사의 흐름 순서를 파악할 수 있는 문제다. 공무원 시험에 굳이 특정정당이나 정치·사회적 단체, 노동단체의 선언문을 인용한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크게 보면 출제자의 의도가 이념지식을 묻는 게 아니라 예문의 핵심어를 통해 사건의 발생순서를 묻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교조 선언문만 유독 문제삼아 침소봉대하고 이를 이념 논쟁으로 핏대를 올릴 사안은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념 문제에 너무 예민하다. 사사건건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면 사회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념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서로 다른 의견이나 성향을 존중해야 한다. 사실 진보나 중도, 보수 모두 개혁의 속도나 사안의 중점에 시각 차이가 있는 것이지 선(善)과 악(惡)으로 딱 잘라 가르기 어렵다. 여론 주도층이나 언론은 사소한 문제를 이념적으로 부각시켜 사회 분열을 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 [서울광장] 천안함은 불신의 바다에 빠졌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천안함은 불신의 바다에 빠졌다/진경호 논설위원

    우리 사회가 믿음을 잃어버린 시점을 사회학자 성경륭은 6·25 전쟁으로 봤다. 한강다리를 폭파해 피란길을 끊은 위정자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언제 이웃의 거짓 밀고로 처형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우리를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홉스적 상태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비단 6·25뿐이겠는가. 우리로 하여금 불신 유전자를 키워가도록 한 현대사의 굽이는 넘쳐날 정도로 많다. 이승만 정권의 무능, 5·16 군사정권의 공포정치,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빈부갈등, 사회지도층의 부도덕, 정치인들이 증폭시킨 지역갈등, 외환위기…. 그런 아귀다툼 속에서 우리는 믿다가 낭패를 보느니 의심하고 배척하며 나를 지키려 했다. 살기 위해 신뢰 대신 불신을 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규정한 ‘저신뢰사회’로 일찌감치 편입해 들어갔다. 2008년 초여름을 뜨겁게 달군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은 바닥까지 떨어진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을 올곧이 보여 줬다. 제아무리 대통령이 아무 문제 없다며 미국 쇠고기를 먹어 보여도 PD수첩의 왜곡·과장보도가 댕긴 서울광장의 촛불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해 겨울의 미네르바 소동은 또 어떤가. 정책당국과 유수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30대 평범한 청년을 한국판 루비니로 떠받들었다.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 잠긴 그날 밤 이 나라도 바다에 잠겼다. 불신의 바다로 또다시 순식간에 빠져 들어갔다. 천안함을 두 동강 낸 물기둥이 있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침몰 순간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과 적의(敵意)의 물기둥이 치솟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천안함 생존장병 57명의 증언이 군 당국의 1차 조사결과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실망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일도, 각본대로 짜맞춘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침몰 직후부터 유력언론들이 패를 나눠 북한 소행입네 아닙네 줄다리기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불신은 분명 군이 자초했다. 군은 무려 2주 동안 침몰시간조차 아귀를 맞추지 못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29분이 지나 합참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보낸 첫 보고는 ‘천안함이 침수되고 있다.’였다. 그러나 군의 모자람을 따지는 한편으로 불신을 키워 내기에 너무도 비옥한 사회적 토양도 직시해야 한다. 앞뒤 자른 채 장관 해임부터 요구하고, 군 기밀이 존재이유를 상실한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군이 하나를 설명하면 의문이 10개가 붙는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당한 장병 말은 믿어도 다각도로 상황을 파악한 ‘당국’은 믿지 못하는 현실을 봐야 한다. 1987년 11월 미얀마 상공에서 벌어진 KAL858기 폭파사건은 20년이 지난 2007년 10월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위 활동이 마무리된 뒤에야 조작의 굴레를 벗었다. 북한공작원 김현희가 그토록 자신의 범행이라고 외쳤지만 ‘정권 연장을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는 의혹은 이후 정권교체와 맞물려 점점 더 몸피를 불려 나갔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그 질긴 의혹의 자양분이었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끌어올릴 것이 너무도 많다. 천안함 실종자와 함체를 건져 올리고, 천안함의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아울러 불신의 바다에 던져진 우리 사회도 함께 끌어내야 한다. 불신의 질(質)을 살펴 정부를 못 믿겠다는 쪽과 안 믿겠다는 쪽을 가리고, 안 믿겠다를 못 믿겠다로, 못 믿겠다를 지켜보겠다로 바꿔나가야 한다. 불신의 뿌리를 찾아 신뢰로 치환할 처방을 구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향후 대응과 별개로 국민 불신을 달래기 위해 초계함 한 척을 끌어올리는 것조차 외세가 필요한 신뢰 부재의 사회자본으로 황차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신뢰하기 위해 불신한다고 한다. 이 불신의 역설이 담고 있는 신뢰 회복의 가능성을 정부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천안함이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구조요청일 것이다. jade@seoul.co.kr
  • 상하이 영화에 비친 중국의 현대

    중국인뿐만이 아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도 중국 상하이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 같다. ‘인디아나 존스2-마궁의 사원’(1984)에서 존스 박사가 영화 초반에 누르하치의 유골을 두고 액션을 펼치는 도시가 바로 상하이다. ‘미이라3-황제의 무덤’(1998)에서 주인공 일행이 모험을 벌이는 주요 장소도 상하이다. 1930~40년대 상하이는 서양인들에게 동양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고, 동양의 파리이자 모험가들의 낙원으로 여겨졌다. 아편전쟁 뒤 영국, 프랑스의 조계지가 세워지며 오랫동안 서양에 대한 중국의 대외 창구 노릇을 했던 상하이는 그러나,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동양 모더니즘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국제도시로서의 명성을 홍콩에게 넘겨주고 만다. 상하이가 옛 영화를 찾은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푸둥 지구 개발로 뒤늦게 개혁·개방에 뛰어든 상하이는 불과 10여년 만에 중국 문화·경제의 중심지이자 최고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제 상하이는 베이징올림픽의 3.5배에 달하는 경제효과가 예상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세계박람회를 다음달부터 6개월 동안 대대적으로 펼쳐낼 예정이다. 임춘성 목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와 곽수경 동아대 중국학 전공 강사 등 7명은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에 견줘 생소한 개념인 상하이 영화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진단한다. ‘상하이 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산지니 펴냄)에서 20세기 상하이 영화 가운데 상하이 배경의 141편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그려지고 변해왔는지, 상하이인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지 조명한다. 저자들은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는 21세기에 상하이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하이는 중국 근현대사의 진행과정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근현대 중국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 영화는 상하이로 인해 입지를 확보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었고, 상하이는 영화로 인해 근현대화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하이 영화는 상하이, 나아가 중국 근현대화의 요체다.” 2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무명씨에서 법정스님까지 5600명

    누가 뭐래도 ‘만인보’의 주인공은 560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이다. 이름대로 만명은 안 된다 해도 이 정도면 한국 현대사 속에서 울고 웃었던 한국인의 만상(萬狀)을 골고루 다 담고 있다고 해야겠다. 30년 기나긴 걸음의 영광스러운 시작은 시인의 할아버지였다. “우선 내 어린 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1권 ‘시인의 말’)는 말처럼, 시인은 서시에 바로 이어 시 ‘할아버지’에서 식민지를 살아가는 구한말 세대의 전형으로 자신의 할아버지를 등장시켰다. 그러고는 어린 시인에게 ‘가갸거겨’를 가르친 ‘머슴 대길이’로 걸음을 옮기고, 이어 가족은 물론 시인의 고향 마을을 거닐던 가난한 이웃들을 모두 훑으며 만인보의 7권까지를 채운다. 이후 만인보는 광복과 전쟁, 군사독재 등 격동의 시기를 살아낸 사람들을 23권까지 다룬다. 이때부터 만인보에는 이승만, 박정희 등 권력자부터 함석헌, 장준하 같은 재야 운동가들이 본격 등장한다. 문익환 목사,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종교지도자들은 물론 김지하, 신경림, 백낙청 등 시인과 함께 호흡했던 문인들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만인보는 역사의 흐름을 쥐고 흔든 유명인들보다는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민초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에 가깝다. 마지막 30권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1980년 광주’로 돌아간 것만 해도 그렇다. 여기서 시인은 인배, 윤숙자, 김중식처럼 누구여도 좋을 이름의 인물들과, 아예 이름자도 없는 무명씨, 뱃속 아기, 고아, 재수생, 택시기사 등 갑남을녀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아무도 모르게 절명한 영혼들을 시 속에서나마 되살려낸다. 만인보의 긴 걸음은 마지막 ‘그 석굴 소년’에서 끝난다. 24~26권에서 고승들을 훑기도 했던 시인은 여기서, 마치 수행자처럼 석굴 안에서 돌책을 보는 소년을 등장시킨다. 그러면서 ‘오늘밤도 그대 따라가는 / 만인의 삶 이야기 삶과 죽음 이야기 그칠 줄 모르니’라고 했으니, 만인보의 인물행진이 5600여명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200여년… 경계인 울린 진혼곡

    200여년… 경계인 울린 진혼곡

    구효서(53) 소설은 경계짓기를 거부하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소설의 형식 또는 문체는 물론, 주제와 문제의식의 다양한 변주는 결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신작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문학에디션뿔 펴냄)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작 ‘나가사키 파파’에서 혈육, 국가의 경계 언저리 범주만을 제시하던 그였다면 ‘랩소디’에서는 그 지평을 한껏 넓혔다. 민족의 경계, 국가의 경계, 혈육과 신분의 경계, 이념의 경계, 종교 속 신성(神性)의 경계 등은 그의 작품 안에서 형해(形骸)화된다. 그는 집착과 번민을 낳는 그 경계의 안과 밖을 쉼 없이 보여주며 경계의 끄트머리 지점을 확인시킨다. ‘랩소디’ 속 슬픈 페르소나들을 달래주고 지탱시켜 주는 것은 오로지 웅장한 선율과 상실된 사랑이었다. 소설에는 두 편, 혹은 세 편의 서사(敍事)가 서로 이야기에 파고들며 씨줄 날줄이 되어 교직한다. 액자소설 형식이다. ●조선 짐작하게 하는 디아스포라 ‘아마도’ 조선에서 먼 땅을 건너온 이의 후손인 요한 힌터마이어는 교회 오르간 풀무꾼에서 일약 왕후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궁정악단의 작곡가로 거듭난다. 그러나 아무리 위장했더라도 비천한 신분에 주어진 음악의 과도한 천재성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기기 어렵고 오히려 자신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시대의 경계선을 넘어섰던 열정과 재능은 그를 다시 조선땅으로 돌아오도록 만든다. 그가 남긴 악보마다 조선을 의미하는 ‘선(鮮)’의 문장(紋章)이 남겨져 있는 것으로 그가 조선인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웅혼한 ‘코리안 디아스포라(離散)’ 이야기의 시작이다. ●비운의 천재 김상호 혹은 겐타로·토마스 김 그리고 200년 하고 수십 년이 지난 뒤 또 다른 비운의 천재 음악가 김상호, 혹은 겐타로, 혹은 토마스 김의 이야기가 사이사이 펼쳐진다. 재일 한국인 2세이면서 남과 북, 일본, 독일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그가 곳곳을 떠돌며 유랑하듯 노마드의 삶을 사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비운의 사랑에 내몰려 일본에서 독일로 와 음악에 몰두한 겐타로는 토마스로 살며 힌터마이어의 기록을 좇아 독일에서 평양으로 간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서울 연주에 초청받았으나 공항에서 곧바로 붙잡혀 17년의 감옥 생활을 거친다. 그리고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묘비에 첫사랑과 공유했던 강렬한 보랏빛의 배색기호만을 덩그러니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기억의 정리자 하나코·나 여기에 겐타로의 아름답고 강렬한 첫사랑, 그리고 40여년 전 의문의 이별을 나눴던 하나코가 ‘김상호이거나 겐타로이거나 토마스’인 그의 삶의 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짜맞춰 나간다. 또한 소설의 주변부에 있지만 독일, 일본, 한국에 정주하지 못한 또 다른 경계인인 화자 ‘나’는 하나코와 함께 두 개의 이야기를 넘나든다. 한결같이 폭풍의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 이들이니 소설 역시 폭풍 같을 수밖에 없다. 시간의 흐름을 훌쩍 넘나들고, 독일과 일본, 남한, 북한을 쉴 새 없이 오 가는 몇 개의 서사는 그 웅혼함은 둘째치고, 따라잡을 만 하면 저만큼 달아나고, 또 겨우 허덕거리며 손에 잡았나 싶으면 또다시 풀쩍 뛰어 크게 내뺀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 현대사 속 누군가의 신산했던 삶이 어른거린다.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비운의 재독 음악가 윤이상이 떠오르거나, ‘유학생간첩단 사건’의 서승, 서준식 형제가 생각난다. 초청을 받아 독일에서 입국하자마자 연행되며 분단의 질곡을 체감해야 했던 송두율이 떠오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모든 억압받고 추방당한 경계인들과 노마드들을 위한 진혼(鎭魂) 랩소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北 “금강산 南당국 자산동결”

    북한이 앞서 예고한 금강산 관광 관련 강경 특단 조치를 8일 행동으로 옮겼다.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남조선 당국의 자산인 금강산 면회소와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문화회관, 온천장, 면세점을 동결하고 그 관리 인원을 추방한다.”고 밝혔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대변인은 “위기에 처한 금강산 관광을 구원할 길이 없게 된 조건에서 위임에 따라 이미 천명한 대로 금강산 관광지구 남측 부동산에 대한 조사에 이어 다음의 행동 조치로 들어간다는 것을 엄숙히 선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남조선 보수패당이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을 우롱, 모독하고 공동선언의 정신과 민족의 지향에 배치되게 대결의 길로 계속 나가는 경우 개성공업지구사업도 전면 재검토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변인은 이어 “남조선 당국에 의해 현대와의 관광합의와 계약이 더 이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됐으므로 곧 새로운 사업자에 의한 국내 및 해외 금강산관광이 시작될 것”이라면서 “이번 부동산조사에 참가하지 않은 남측의 현대증권, 이든상사, 평안섬유공업주식회사의 사업권을 박탈하고 그 관계자들의 금강산 출입을 불허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성명 발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북한의 이러한 일방적 조치는 사업자간 계약 및 당국간 합의 위반은 물론 국제규범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즉각 철회돼야 한다.”면서 “금강산·개성 관광 문제는 당국간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하며 북한의 이번 조치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명동성당 재개발될까

    명동성당 재개발될까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이자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호흡했던 서울 명동성당(사적 258호)이 재개발 논란에 휩싸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측이 성당 진입로에 대형 건물 두 채와 주차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조감도)을 내놓자, 일부에서는 성당의 경관과 안전성을 해칠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지난해 12월29일 문화재청에 ‘명동성당 종합 계획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계획안의 핵심은 성당 입구 오른편과 테니스장 주변 공간에 지상 9층, 13층짜리 건물을 신축하는 것이다. 여기다 진입로 양쪽 지하에 대형 주차장과 근린생활시설을 만들고, 지상에는 녹지도 조성한다. 서울대교구는 올 1월에 명동성당 권역의 현상변경 신청을 문화재청에 냈고, 2월에는 문화유적 지표조사도 벌였다. 그러나 서울대교구의 ‘명동 개발 1단계 현상 변경안’을 심사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일 승인을 보류했다. 고층 건물 건축으로 성당 경관이 훼손되고, 지반 침하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영렬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장은 “사적지 주변 경관도 해치지 않고 문화재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심층적으로 더 고민하고 신중히 진행해야 한다.”면서 “이번주 중 다시 현장 검토를 하고, 5월 말에 재심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 보존을 위해서라도 종합개발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계획대로 지하 주차공간이 마련되면 지금처럼 성당 앞마당으로 자동차가 들어서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수십년 동안 교구 안에서 토론하고 검토해온 사안”이라면서 “안전검사 전문기관의 검증결과와 진동방지공법 보고서 등을 문화재청에 제출하고 (지적받은 부분을)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현대사회의 비인간성 고발

    현대사회의 비인간성 고발

    ‘미필적 고의’는 한 개인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이를 ‘의도와 별개로 생긴 불행한 결과’들에 넓게 적용한다면, 국가를 포함한 공동체에도 유효한 표현일 것이다. 공동체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꾸려졌으나, 종종 의도치 않게 한 개인을 불행에 빠뜨리기도 한다. 소설가 한지혜(38)가 6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소설집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실천문학사 펴냄)는 ‘사회가 저지르는 미필적 고의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9편의 수록작들은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자연스레 생겨난 부조리한 인간 관계와 삶의 방식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비인간성을 고발한다. 부조리를 표현하기 위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는 ‘실종’이다. 아내를 위한 저녁을 준비하다가 나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남자(‘당신이 그린 그림은’), 허물어져 가는 마을에서 살다가 어느날 사라진 택시운전사(‘미스터 택시 드라이버’) 등 작품 속 인물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별 이유없이 갑작스레 사라진다. 실종은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면서 각각의 주제를 형상화한다. 표제작은 죽지도 않은 남편을 자기가 죽였다며 사망신고를 내고, 또 스스로는 실종신고를 하고 사라진 여자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 관계의 단절을 이야기한다. 가정사뿐 아니라 예민한 사회 문제 속에서도 실종은 있다. ‘실종’이란 작품에서는 재개발 열기에 들뜬 분위기 속에서 치매 노인과 자폐증 아이가 마을을 떠돌다 사라지지만,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순간 이들은 신상기록까지 모두 지워져 있다.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을 그려내면서 소설의 문체는 덤덤하다. ‘남편은 방금 죽었고-내가 그랬다-내 앞에는 내가 사랑하는 구두와 버튼 한 번이면 열 수 있는 문이 서 있을 뿐이다.’처럼 메마른 말들은 소설이 까발리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실종’을 표명한 것도 의미가 깊다. 첫 번째 소설집에서 자신이 속한 청년 세대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갔던 한지혜는 이번에는 자전적 서사의 틀을 벗어나 인물과 소재의 폭을 넓혔다. 그는 “내가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내가 써보지 않은 방식으로 써보고 싶었다.”며 향후 활동에도 변화를 예고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 :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자기 행위의 결과로서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나도 상관없다고 하는 행위자의 심리상태
  • 4·19 50주년 기념 사료총집 발간한다

    4·19 혁명과 그 이후 반세기의 모습과 역사를 기록한 사료집이 발간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31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4월혁명 사료총집 발간위원회’ 출범식을 갖는다. 6월 사료선별을 마치고, 10월 사료총집을 발간한다. 사료집은 1960년대 민주화운동 역사정리사업의 첫 걸음이다. 4월혁명에 대한 객관적 사료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정리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후대에 물려줘 잇게하기 위해 계획됐다. 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 연구자에게 이를 제공, 관련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기로 했다. 사료집에는 1952년 12월부터 3·15부정선거 관련 사료, 2·28대구학생의거(1960년), 이승만 하야성명 발표까지 4월혁명 사료가 포함된다. 총 8권으로 구성된 출판물 500질과 사료집 미수록물을 포함한 DVD 3000부를 제작한다. 출판물은 4월혁명 일지 1권, 국내외 사료편 6권, 사진집 1권으로 구성됐다. 사료집은 전국 대학·공공 도서관 등에 배포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2·28대구민주운동기념사업회, 3·15의거기념사업회, 제5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와 공동 발간하며 향후 온라인에서 공동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박홍환 특파원 베이징은 지금]박사증에 가짜결혼 증명서까지 이색 제수품으로 본 中의 31일

    “바오마(寶馬·BMW의 중국식 이름)를 타고, 별장으로 놀러가 애인과 즐기세요.” 청명절(한식) 연휴를 앞둔 중국에 이색 제수용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종이로 만든 돈을 태워 부(富)에 대한 망자(亡者)의 한을 풀어주는 것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됐다. 빈부격차가 확대될수록 중국의 서민들은 현실의 ‘로망’을 제수용품을 통해 투사하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곧 재로 변할 모형으로라도 마음 속에 간직하겠다는 소망일까? 중국인들의 청명절 제수용품에 대한 집착은 각별하다. 세태의 변화에 따라 제수용품도 발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실제 ‘바오마’ ‘볘수(別墅·별장)’ ‘박사증’ ‘영주권’ 등 최근 유행하는 제수용품은 언론을 통해 종종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유명 연예인도 새롭게 제수용품 목록에 올랐다. 영화배우 장만위(張曼玉)나 가수 차이이린(蔡依林) 등과의 가짜 ‘결혼증명서’가 단돈 50위안(약 8500원)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젊고 예쁜 여성이나 건장한 남성, 콘돔 모형까지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음란 제수용품’으로도 불린다. 일부는 ‘빗나간 효심’을 질책한다. 하지만 막는다고 없어질지는 의문이다. 중국의 청명절 제수용품이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전통적인 것은 역시 ‘종이돈’이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선조의 묘지 앞에 만두나 국수 한 그릇 올리고, 종이 돈을 태우는 게 후손들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제수용품 변화의 이유는 역시 사회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베이징 시민 왕빈(王斌)은 “호화롭고, 역동적인 현대사회에서 살아보지 못한 선조들에게 약간의 돈을 들여 그걸 보여주는 게 뭐가 나쁘냐.”고 되물었다. 그런 점에서 ‘젊고 예쁜 여성’이나 가짜 결혼증명서는 왕빈 등 많은 중국인들에게 이상한 일이 아닐 법도 하다. 어차피 제수용품은 세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니까.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의 저장대학 펑강(馮剛) 교수는 30일 반관영 중국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제사 방식을 없애서도 안 되겠지만 온라인제사, 가정제사, 헌화제사 등 새로운 제사 방식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청명절을 진짜 청명하게 맞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stinger@seoul.co.kr
  • 문성근 “작은 연못에서 한국영화 미래 봤다”

    문성근 “작은 연못에서 한국영화 미래 봤다”

    문성근(57)은 미안하다고 했다.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제대로 역할을 해냈는지 항상 가슴이 쓰리다고 했다.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다. 우리 영화판을 지켜내는 데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고 긴 한숨을 내쉰다. 새달 15일 개봉하는 영화 ‘작은 연못’으로 돌아온 문성근을 만나봤다. 무엇이 그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을까. ●작은 연못은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성 작은 연못. 전쟁 영화다. 1950년 7월. 한반도 허리에 있는 충북 영동군 산골짜기 대문바위골. 미군이 패하면서 전선은 읍내까지 내려오고 마을에 피란령이 내려진다. 주민들은 피란길에 오른다. 미군이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7월 땡볕 아래 꾸역꾸역 남하하는 사람들. 하지만 믿음과 달리 그들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병사들은 이들을 향해 난사를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총구가 왜 자기들에게 향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쓰러져 간다. 한국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상처 ‘노근리 학살 사건’이다.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몰랐던 우리 농민들. 하지만 그들은 피를 흘려야 했다. 그렇다. 전쟁은 끔찍했다. 종족 싸움이든, 종교 분쟁이든, 이권 혈투이든, 이데올로기 대립이든,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성근은 말한다. “충돌이 일어나면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는다. 어떤 형태의 전쟁이든 정당성은 없다. 그게 작은 연못의 메시지다.” 문성근은 원래 노근리 참사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AP통신 기자는 “노근리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동료 기자(AP통신 기자)가 왜 한국에서 노근리 참사를 다룬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의아해하더라.”고 전했다. 때마침 이상우 감독이 노근리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이 감독 자신도 실향민이라 그 누구보다 분단의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 믿었다.” 노근리 유족들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참사 때 눈이 먼 할머니 이야기, 부모를 다 잃고 혼자 살아온 사람의 사연….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화를 찍었다. 송강호, 문소리, 유해진 등 특급 스타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동지애였다고 했다. “제작비가 부족하다 보니 도움이 절실했다. 자연히 배우들도 찾기 어려웠고. 뜻밖에 충무로를 이끌어가는 간판 배우들이 나서줬다. 특히 출연배우 중의 한 사람인 김뢰하의 공이 컸다. 자신의 친정인 대학로 연극계에 ‘좋은 영화를 만든다. 도와달라.’고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모두 흔쾌히 와 줬다.” 영화가 ‘반미’(反美) 느낌이 난다고 슬쩍 찔렀더니 문성근은 이내 진지해진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더니 “정말 그렇다면 그 사람은 편협한 관점을 지닌 것”이라고 점차 목소리를 높인다. “공격하는 미군들도 고민한다. 그들도 평생 무거운 짐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전쟁이다. 총을 쏜 사람이 중국군이든, 북한군이든 뭐가 달라지나. 누구를 대입해도 똑같다. 그 잔혹성을 말하고 싶었다.” ●송강호·문소리 등 톱스타들 노개런티 자진합류 문성근은 지금의 영화판에 아쉬움이 크다. 책임 의식도 느낀다. 1999년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재탄생했을 당시 그는 부위원장을 맡았다. 어떻게 하면 한국 영화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한국 영화가 전성기를 누렸을 당시, 그 전성기의 좋은 산업 구조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후배들에게 못내 미안하다. “대형 배급사가 밀려 들어오자 영화인의 힘이 약해졌다. 이걸 막지 못했다. 결국 영화인은 계약 관계에서도 항상 약자가 돼 버렸다. 산업구조 안에서 하부구조로 전락해 버렸다. 힘의 균형이 무너져 버린 거다.” 그는 항상 영화인들이 뭉쳐 그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영화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배급사가 있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영화인들이 안주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대형 배급사의 힘이 너무 강했다. “결국 그 문제점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영화계의 다양성이 죽어가고 있지 않나. 영화인들은 이런 현실에 질려 버렸다. 그래서 다들 힘이 빠졌다.” 하지만 문성근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문성근은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 속에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봤다고 했다. 영화인들의 구애 속에 국내 최고의 컴퓨터그래픽(CG) 회사인 ‘모팩 스튜디오’에서 무보수로 작업을 해줬다. 물론 개봉 뒤 수익은 흥행성적에 따라 나눠 갖는다. 촬영장비 업체들도 선뜻 나섰다. 덕분에 40억원 규모의 영화를 10억원에 해결했다. “작은 연못을 찍을 때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좋은 대본을 가지고 영화인들 스스로 투자를 받고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우리가 집단으로 붙어보자. 무슨 영화인들 못하겠냐.’고 말하면서.” ‘4대강 사업’ 반대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문성근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많다고 했다. “정부를 믿고 싶다. 하지만 더 시급한 사안이 있지 않을까. 아직도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무상급식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그걸 먼저 생각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브래지어, 전투는 계속된다’ 전시회 화제

    브래지어를 통해 여성의 시대적 역할과 사회적 지위의 변화을 조명하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열려 화제가 되고 있다. 유방암 예방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 8일 여성의 날부터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브래지어, 전투는 계속된다.’. 전시회는 브라질 콜라주조각가협회가 준비한 기획 행사로 사이버, 자연, 로맨스, 폭력 등을 주제로 한 컨셉 브래지어가 다수 선보이고 있다. 전시되고 있는 브래지어는 컨셉에 맞춰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가슴의 압박 정도까지 세심하게 조절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예술작품이다. 전시회 관계자는 “브래지어를 통해 역사적으로 여성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어떻게 고난을 당해왔는지를 도발적으로 조명해 보자는 게 이번 전시회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컨셉에 따라 사용된 소재는 재미있다. ‘이브의 브래지어’라고 명명된 작품은 자연이 소재다. 나뭇잎과 풀로 제작됐다. ’과잉보호’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도 있다. 인조가족으로 제작된 컵에 열쇠, 자물쇠, 핀 등이 장식품으로 달려 있다. 이름대로 여성이 과잉보호의 대상이던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단단한 컵에 기관총대를 꼽은 도발적인 작품도 눈길을 끈다. 폭력과 전쟁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 현대사회에 들어 당당히 제자리를 찾으려는 여성들의 피나는 노력을 동시에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젤라틴 캐러멜로 제작된 ‘맛있는 브래지어’, 롤 홀더로 제작된 ‘실용 브래지어’ 등도 눈길을 끄는 출품작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론] 한·일 새로운 100년과 역사 매듭 풀기/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시론] 한·일 새로운 100년과 역사 매듭 풀기/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최근 의미심장한 보도가 있었다.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 따르면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를 200년간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의 폐기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시점에서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진실은 승리한다는 철칙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은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민족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다.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하는 정한론(征韓論)의 호재로서는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제의 한반도 강탈은 침략이 아니라 과거의 지배를 되찾는 것에 불과하다는 오도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실제 이러한 주장은 영국의 유수한 신문인 ‘런던타임스’(1897년 9월17일)에 이어 중국의 잡지 ‘시무보(時務報)’에 전재되기까지 했다. 이렇듯 임나일본부설은 한국 민족에게는 독립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송두리째 박탈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로서 한껏 악용되었다. 이와 관련해 일제 강점기의 교과서에 수록된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상상도가 상기된다. 신라 해변에 상륙하여 어깨에 화살통을 멘 군복 입은 신공황후의 왼손은 긴 활채를 내려뜨려놓고, 오른손은 이마에 대고 멀리 응시하며 정찰하는 삽화인 것이다. 단 한 장의 삽화가 주는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 황국사관에 입각한 ‘일본서기’의 관련 내용은 한국인들을 끝없는 절망감에 빠지게 하거나 분노하게 만들었다. 전후에 간행된 일본 국사 교과서에도 관점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영악할 정도로 세련된 논조를 구사하며 파고들었다. 즉, 일본열도를 통일한 야마토 조정은 4세기 후반경 기술 노예와 선진 문물 및 철자원의 획득을 위해 한반도 남부로 진출하여 가야를 자국 세력하에 두었다는 것이다. 허구로 가득 찬 임나일본부설을 붕괴시키기 위해 ‘일본열도 내 삼한분국설’을 비롯한 숱한 학설이 남북한에서 쏟아졌다. 그럼에도 임나일본부설은 철옹성처럼 군림했다. 그러던 망령이 한국과 일본 학자들 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걷히고 만 것이다. 더불어 한·일 양국의 지성과 양식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로써 자국의 입장만 강요하던 일방통행식 연구에서 벗어나 정직한 역사 해석이 가능하다는 공감대를 구축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랬기에 왜구의 주요 구성원이 일본 학계에서 주장하던 것처럼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사실과, 일본열도의 벼농사와 금속문명이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는 사실에도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제는 한일병합과 관련한 근대사 문제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루어져야 할 순서인 것 같다. 불법이었던 을사늑약과 독도 영유권 문제 등 근·현대사의 숱한 부분에서 양국은 여전히 커다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 진출의 역사적 근거로 여겼던 임나일본부설의 종언은 비록 구속력은 없다지만 그 자체가 지닌 상징성만으로도 큰 파급 효과를 지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임나일본부설에 연원을 두었던 그 뒤의 모든 불행한 사건들에 대한 진실 규명도 실타래 풀리듯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되지 않은 사안은 역사관의 차이로만 돌리기보다는 상대 측의 공감대를 유도하거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이제 선수는 우리가 쥐었기 때문이다. 소위 임나일본부의 운영 주체로 새롭게 지목된 안라(安羅)가 있던 경남 함안 지역을 학생들과 종일 답사하고 온 날이라 소회가 더욱 각별한 것 같다. 한술 밥에 배 부를 수야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이제 한·일 간의 과거사를 바로잡고 편향된 역사인식을 교정할 수 있는 역사 매듭풀기의 시작으로 본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역사의 사필귀정을 믿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를 지나간 한·일관계 100년의 악몽을 반전시킬 수 있는 미래 100년의 서곡으로 간주한다면 몽상일까?
  • 을사늑약·강제징집 부인…日 오욕의 근대사 왜곡 고집

    을사늑약·강제징집 부인…日 오욕의 근대사 왜곡 고집

    제2기 한·일 역사공동위원회가 23일 양국 정부에 제출한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며 공식 활동을 종료했다. 2기 공동위원회는 한·일 고대사 중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확인하는 등 부분적인 성과를 냈다. 하지만 1기 위원회의 쟁점 사항이었던 근·현대사의 식민지 과정 등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을 보인 채 각자 의견을 병기하는 선에 그쳤다. 또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은 논의조차 하지 못해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는 평가다. ●고대사… 임나일본부 허구 확인 2기 위원회가 거둔 가장 큰 수확은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확인한 것. 한·일 고대사 부분을 연구한 제1분과에서 한국은 “‘일본서기’ 신공(神功) 49년조의 해석을 통해 왜의 임나 지배를 논하던 전형적인 임나일본부설은 설득력을 상실했다.”며 “임나일본부의 외무관서적 성격으로 미루어 ‘안라왜신관’(安羅倭臣館)이라는 용어로 대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시했다. 일본 또한 “한반도에서 왜인의 활동 흔적은 여러 곳에서 인정되지만, 왜국의 영토가 존재했다는 이해는 불가능하다.”며 “왜국이 한반도에서 대대적인 군사 전개를 했다는 이해에는 재검토와 정정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아울러 일본의 벼농사와 금속 문화가 한반도에서 전래됐다는 사실에도 대체적인 의견일치를 보았다. ●중·근세사… 왜구는 일본 어부 1300~1400년대 한국 연안에서 출몰했던 왜구의 정체에 대해 ‘고려·조선인설’ ‘제주도 해민설’ 등의 주장이 그동안 일본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이들이 쓰시마와 이키, 마쓰우라 등의 영주와 해민(어부)들이었다는 결론을 냈다. 아울러 양국 연구진은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도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내부 불안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인식을 같이했다. ●근·현대사… 양국 인식차 커 한일병탄 과정과 식민지 시대에 대한 성격 규정 등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양국의 역사 인식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무엇보다 “일본이 한반도를 일방적으로 침략한 것이 아니라 한국 주류 세력도 이에 동조했다.”거나 “고종이 을사조약을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약의 주체로서 반대 운동을 탄압했다.”는 등 일본의 편향된 인식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인 노동자 동원 과정에서 강제와 폭력이 없었다는 주장도 반복된 것으로 드러났다. ●교과서 왜곡관련 논의도 난항 2기 공동위원회에서 처음 수행한 양국 교과서에 대한 연구 역시 현저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한·일 관계의 지뢰밭’이라 할 독도 영유권과 위안부 문제 등은 주요 의제에서 제외됐다. 한국 측 위원장인 조광 고려대 교수는 “유럽이 30~70년 걸려 공동교과서를 만들었고 아직 의견이 합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공동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3기 위원회 출범 여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2001년 일본 후소샤(扶桑社)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을 계기로 이듬해 출범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2005년 6월 1차 보고서를 낸 뒤, 2007년 6월 34명의 위원이 참여한 2기 공동위원회를 출범시켰고, 24개 공동 연구주제에 대해 67차례 회의 끝에 이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시간제공무원 정부서 임금보전 검토

    정부가 다음달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공무원 시간제 근무’ 제도 활성화를 위해, 시간제(Part time) 공무원이 전일제 근무(Full time) 공무원보다 적게 받는 임금 일부를 보전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23일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교수 등 전문가와 중앙 및 지방 공무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직생산성 향상을 위한 유연근무제 활성화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정만석 행안부 인사정책과장은 ‘공직 내 시간제 근무 활성화 방안’이라는 자료집을 통해 “공무원이 시간제 근무를 할 경우 줄어드는 보수 일부를 보전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시간제 근무 공무원은 주 15~35시간만 일하고, 근무 시간에 비례해 보수를 받기 때문에 전일제 근무 공무원(주 40시간 근무)보다 월급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행안부 분석 결과 9급 3호봉 공무원이 하루 4시간씩만 시간제로 일할 경우 월급은 78만원에 불과하다. 육아휴직 중인 공무원이 일을 전혀 하지 않고도 한 달에 50만원의 수당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에 맞지 않다. 이 때문에 공직사회에는 2002년부터 시간제 근무 개념이 도입됐지만 지난해 말 현재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공무원은 1121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중 1117명은 시간제로 근무할 수밖에 없는 계약직 공무원이고, 일반 공무원은 고작 4명뿐이다. 정 과장은 “시간제 공무원의 보수를 보전하는 방안은 예산과 관련이 있는 만큼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는 여러 전문가들이 시간제 근무 등을 포함한 ‘유연근무제’가 공직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진종순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영국의 경우 공무원이 6세 미만의 자녀가 있거나 18세 미만의 장애 자녀가 있으면 유연근무 신청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세부적인 지침을 갖고 있다며 우리도 보다 구체적으로 유연근무가 가능한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교수는 또 “유연근무제가 뿌리내린 스웨덴은 여성 고용률이 높음에도 출산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출산율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꼭 유연근무제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귀희 숭실대 교수와 양건모 이화여대 교수는 “유연 근무를 하는 공무원에 대한 승진과 임금 지급 비율을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따라 공무원 참여도가 달라질 것”이라며 “근무 형태가 어떻든 간에 같은 성과를 내면 동일한 대우를 보장하는 원칙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 [사설] 한·일 근현대사 왜곡도 바로잡아야

    역사의 기록은 승자에 치우쳤음을 세계사는 역력히 보여준다. 그런 차원에서 한·일 고대사 왜곡의 상징으로 통했던 임나일본부설의 폐기는 획기적이다.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최종보고서의 내용이다.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한·일 정상이 약속해, 양국 사학자들이 도출한 공식적 사안인 것이다. 늦게나마 허구의 역사를 바로잡은 역사 교정의 인식은 반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역사를 고쳐 현실로 옮기겠다는 실천의지는 멀기만 한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6세기 중엽 200년간 일본의 야마토(大和)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한반도 지배설이다. 백제·신라·가야를 정복해 주물렀고 가야에 둔 일본부(임나일본부)가 그 통치의 핵심이란 주장이다. 임진왜란기 중국(明)을 치기 위해 조선에 길을 내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이나, 한·일강제병합의 근저에 임나일본부설을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양식 있는 학자·시민들이 끊임없이 허구임을 주장해 왔으나 일본 정부와 주류 사학계는 줄기차게 밀어붙였던 터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학자들이, 그것도 정상 간 약속에 따라 국가 간 차원에서 정면으로 뒤집은 인식은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보편적 통사(通史)에 대한 현실적 거부이다. 임나일본부설의 허구를 인정한 마당에 근·현대사의 잘못은 왜 바로잡지 못하느냐는 의구와 불만이 크다. 양국 학자들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을사늑약과 강제병합조약, 한일협정, 식민지 강제동원과 수탈에서 일본 측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일강제병합조약만 하더라도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이고 한반도 식민지화는 돌이킬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태평양전쟁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을 놓고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해결됐고 지금의 조약 개정 주장은 정치적인 것으로 일축했다. 일본 측 학자들은 참고수준이나마 일본 교과서의 임나일본부 삭제를 권고키로 했다고 한다. 학자만의 협의에 머물 게 아니라 일본 정상의 약속대로 국격에 맞는 실행이 따라야 할 것이다. 도처에서 빗나간 과거사를 들추고 고발하는 증거와 사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말만의 청산은 이제 어디서도 통할 수 없다는 역사의 뼈저린 증언을 일본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23일 유연근무제 공청회

    행정안전부는 23일 서울 계동 현대사옥 대강당에서 공무원의 근무형태를 개인별·업무별·기관별 특성에 맞게 다양화하는 ‘유연근무제’ 도입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권경득 한국인사행정학회장의 사회로 진행되는 공청회에는 진종순 명지대 교수와 배귀희 숭실대 교수가 공직사회 유연근무제의 발전방향에 대해 발제를 맡는다. 이후 관계 전문가들의 토의가 진행된다. 조윤명 행안부 인사실장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유연근무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탄력적인 근무시간 조정을 통해 유연근무제가 국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친미도 반미도 아닌 통섭의 미국史

    친미도 반미도 아닌 통섭의 미국史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실명 비판을 들고 나와 논쟁의 한복판에 우뚝 섰던 이가 있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정치, 경제, 교육, 역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은 그의 비판에는 성역이 따로 없었다. 제도권 안에 머물던 학술적 의제들이 사실상 처음으로 대중들과 접점을 만들어 나간 셈이다. 대중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했고, 그로 인해 ‘지식 대중’의 씨가 뿌려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치부 또는 관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문제를 피부에 와 닿는 언어로 의제화하는 비판적 사유나, 어마어마한 자료 수집과 폭넓은 독서, 그리고 이를 하나로 꿰뚫어 내는 통찰력 등이 어우러져 그는 ‘토론과 논쟁의 지존’ 자리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쉼 없이 현실 정치 등에 대한 발언을 거듭하던 그는 2002년 이후 홀연히 논쟁의 테이블을 떠난다. 그러나 대중적 글쓰기 자체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 산책’(전 18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 10권) 등 더욱 정력적인 저술 활동을 계속해 왔다. 강 교수가 다시 한 번 대역사(大役事)에 나섰다. 이번에는 미국의 역사를 예의 비판적 사유와 통찰력을 앞세워 관통시켰다.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사 펴냄)은 일단 5권까지 나왔고, 앞으로 모두 15권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미국사 산책’은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또는 정복’에서 영국에 대항해 벌인 독립전쟁까지를 다룬 1권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부터 시작해 미국의 역사를 통사(通史)적으로 풀어 나간다. 그리고 2~5권에서는 미국의 건국, 노예제, 남북전쟁, 서부개척, 자본 권력의 대두, 1차 세계대전, 할리우드·미키마우스로 상징되는 문화권력의 탄생 등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번 미국사편에서 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전체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統攝)적 고찰이다. 또 잰걸음으로 시간적 월경(越境)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초기 미국사를 거론하며 쉼 없이 당대 유럽의 상황을 함께 살펴보는 식으로 풀어 나간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뿌리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유럽 이주민들에 있기 때문이다. 지루할 정도로 유럽의 상황이 거론되는 이유다. 또한 그가 자신의 미국사 시리즈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 또는 ‘미국사 비빔밥 요리’라고 자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 그가 힘줘 얘기하는 부분이면서 미국사 시리즈를 쓰고자 했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반미(反美)도, 친미(親美)도 아닌 미국에 대한 객관적 시각의 정립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혜롭게 사는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미국의 장점과 단점을 적절히 섞어서 짚어주는 안전 노선을 추구하게 마련이지만 이들 역시 미국에 대한 근본 입장은 반미 또는 친미, 한 편에 가 닿는다. 반미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친미로부터도 버림받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강준만의 뚝심’은 다시 한 번 우직하게 걸음을 내딛는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등 미국 내 대표적인 진보학자들의 시각과 견해는 물론 새뮤얼 헌팅턴, 대니얼 부어스틴 등 오른쪽에 있는 또 다른 이들 역시 치우침 없이 각자의 논거를 갖고 등장한다. 일상에 대한 미시사, 잘못 알려진 상식 등을 짚어 가며 읽다 보면 아주 재미있다. 다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등 전방위적으로 샅샅이 훑고 있으니 자칫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예컨대 ‘종교가 미국 사회 정립에 미친 영향’ 등 구체적인 키워드를 움켜쥐어야 한다. 1~5권 각 1만 4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양반님들 물렀거라, 똥장군 나가신다(허명남·권기경·조경숙 지음, 김지민 등 4인 그림, 한솔수북 펴냄) 조선시대 바다 건너 왜적들이 듣도 보도 못한 조총을 앞세워 쳐들어 오는데 나라님과 양반님들은 속수무책이다. 이에 똥장수들이 머리를 짜내 새로운 무기를 만든다. 바로 ‘똥대포’다. 조선 백성의 이야기를 부제로 달고 있다. 신분과 직업의 벽, 남녀 차별 등 숱한 한계 속에서도 용감하고 꿋꿋하게 시대를 헤쳐온 조선 백성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9800원. ●지구환경 파수꾼 요리왕 콩쥐(정완상 지음, 이진선 그림, 함께읽는책 펴냄) 초등 과학, 중등 기초과학 교과과정, 그리고 지구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춘향전·별주부전·홍길동전·임꺽정전 등 우리 고전 작품을 빌려 들려주는 시리즈 중 일곱 번째다. 예컨대 임꺽정은 친환경 에너지의 달인이고, 심청이는 바다 환경을 지키는 마린 걸로 변신한다. 이번에는 콩쥐가 친환경 요리 실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나와 환경 호르몬, 유전자 재조합 식품 등 문제점을 재미있게 알려준다. 9700원. ●천년의 도시 경주(한미경 지음, 이광익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현대의 어린이가 신라 시대 사람인 토우를 만나 경주 여행을 한다는 내용으로, 경주의 문화 유산과 신라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냈다. 지금은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을 비롯해 포석정, 신라의 왕궁터가 있었던 월성 지구 등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소개한다. 1만원. ●니 꿈은 뭐이가? - 비행사 권기옥 이야기(박은정 지음, 김진화 그림, 웅진미디어 펴냄)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권기옥에 대한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가난과 여성이라는 장벽을 넘어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간 그는 결국 비행사의 꿈을 실현했다.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가 지나온 아픔의 궤적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김진화의 수수하고 건조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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