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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이 뭔지 알고 개처럼 버는 겁니까?”

    “돈이 뭔지 알고 개처럼 버는 겁니까?”

    설날 뒤끝이다. 아이들이 가장 풍요롭게 흥청거리는 때다. 연 2조원에 이른다는 풍성한 세뱃돈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때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두둑한 주머니를 앞세워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PC방 등에서 게임머니를 구입한다. 부모들은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소비를 통한 잠시의 일탈을 만끽하도록 허용한다. 굳이 설날이 아니라도 평소 제대로 돌보고 대화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을 돈으로 보상하곤 한다. 전통사회에서 부모의 농사를 돕고, 소 여물 베며 노동의 주체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던 아이들은, 현대사회에서 철저히 소비의 주체로 우뚝 선다. 한국투명성기구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10년 감옥 사는 한이 있어도 10억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응답한 중고생이 17.7%를 차지했다. 또한 어느 설문조사는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은 재력 뿐’이라는 대학생이 44%라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데이트할 때마다 포기된 아르바이트 시급 4000원이 떠올라 결국 연애를 포기한 ‘88만원 세대’의 서글픈 청춘의 풍경들도 있다. 이런 풍경도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결혼식장을 폭격해 무고한 민간인 50여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 보상금은 가족당 200달러였다. 9·11테러 희생자들에게 지급한 보상금의 6800분의1에 불과하다. 가까운 예도 있다. 회사가 보너스를 줬다. 아싸! 그런데 동료들은 100만원을 받았는데, 나만 90만원을 받았다. 기분이 심히 울적해진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어떤가. 동료들은 모두 70만원을 받았는데, 나만 80만원을 받았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다. 이렇듯 우리네 삶은 쉼 없이 돈을 욕망하고, 돈에 상처받고, 돈과 관계를 맺고, 많은 가치들을 돈으로 환산한다. 대체 돈이 무엇이기에. ‘돈의 인문학’(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돈의 실체에 둘러 쳐진 껍데기를 한 꺼풀씩 벗겨낸다. 부자되는 법, 대박 터뜨리는 법 등을 다루는 재테크 책이 난무하고, 책과 신문, TV, 그리고 퇴근 뒤 술자리에서도 돈에 대한 궁상과 허세가 함께 떠들어진다. 그러나 정작 돈이 나에게 무엇인지는 얘기되지 않고 있다. ‘돈은 최상의 하인이고, 최악의 주인’이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포리즘까지 굳이 언급할 필요없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우리 속담만 상기해도 돈이 갖고 있는 양면성은 명확하다. 정승처럼 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개처럼 버는 법만 부지런히 좇는 시대이니 더욱 그러하다. ‘거리의 인문학자’로 통하며 강단 안팎을 오가면서 강의하는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눈 부릅뜬 채 인문학과 사회학의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해 돈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인문학적 접근을 한다고 해서 어려운 이론을 앞세우지 않는다. 재미있는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며 누구나 삶 속에서 쉽게 사유할 수 있도록 했다. 돌돈-크고 무거울수록 가치가 높았다-을 썼던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캐롤라인 군도 야프 섬 사람들 이야기, 농담이나 불법, 사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달의 토지를 분양해 떼돈을 번 미국 남자 이야기, 영화와 시, 소설이 곳곳에서 적절하게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는 “인문학적 사유가 지금 닥친 금전적 어려움에 직접적 해결책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성찰의 끈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더욱 무기력하게 돈의 위력에 휩쓸리고 빨려들게 된다.”면서 “인문학은 돈과의 관계를 리모델링하는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서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진다. 자녀(혹은 남)에게 돈 이외에 주고 있는, 줄 수 있는 ‘그것’이 있는가. 자녀(혹은 남)도 ‘그것’을 감사하게 받고 있는가. 그리고 대답하며 결론짓는다. 당신의 삶에 ‘그것’이 있다면 당신은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1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최정호·정진홍·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 임용

    국내 인문학 분야의 최고 석학들이 2011학년도 봄학기부터 울산대학교 강단에 선다. 울산대학교(총장 김도연)는 미래에 대한 예지력으로 언론계·학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최정호(78) 교수와 종교문화 연구의 대가인 정진홍(74) 서울대 명예교수를 인문대학 철학과 석좌교수로, 민족주의 사회학자로 명성을 쌓은 신용하(74) 서울대 명예교수를 사회과학대학 사회과학부 석좌교수로 각각 임용한다고 9일 밝혔다. 최 교수는 ‘독일현대사’ 강의를 통해 1·2차 세계대전과 동서냉전, 분열과 통합의 유럽 현대사를 개괄하고 21세기를 전망한다. 정 교수는 ‘종교문화의 이해’ 과목을 통해 종교가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해결법을 제시한다. 신 교수는 ‘현대사회학의 사상과 이론’ 강의를 통해 현대사회학 대가들의 사상과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씨줄날줄] 배달의 기수/김성호 논설위원

    숨가쁜 현대사회에서 속도는 흔히 선(善)으로 간주된다. 남보다 먼저 많은 것을 이뤄내려는 ‘빨리빨리’의 숭앙. 주변의 많은 신조어에 속도의 접두사가 붙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위키백과사전, 위키노믹스, 위키피디아의 위키(Wiki)만 해도 ‘빨리빨리’란 뜻의 하와이 말이란다. 속도의 범람 속에 느림은 둔하고 게으른 가치로 폄하되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에선 버튼을 연신 눌러대고 음식점엔 재촉의 고성이 요란하다. 한국의 ‘빨리빨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속도의 대명사다.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근성의 이름. 이 한국의 빨리빨리엔 양면의 평가가 따른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동력이라는 찬사가 있고, 삼풍백화점·성수대교의 비참한 붕괴를 부른 조급증에 대한 폄하도 무성하다. 그런데 세계인의 인식은 갈수록 긍정보다는 부정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에 외신들은 일제히 ‘빨리빨리’의 한국문화 탓이란 해설을 달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의 조루증 유병률을 놓고도 ‘빨리빨리’ 근성이 들먹거려진다. 요즘 주변에서 가장 흔한 ‘빨리빨리’의 풍속도는 이른바 ‘배달의 기수’다. 대·소로를 안 가리는 오토바이의 무한질주. 제 시간에 물건·음식을 대려는 목숨 건 배달의 물결이다. 어떤 피자 체인은 30분 내에 피자를 배달한다는 30분 배달제를 운영 중이다. 시발지인 미국에선 배달 사망사건으로 15년 전 사라졌다는데 이 땅에선 여전하다. 최근 5년간 오토바이 사고 산업재해자가 7081명에 달한다는 노동부 통계도 있고 보면 얼마나 많은 ‘배달의 기수’가 목숨을 잃었을지 모를 일이다. 각계 인사들이 마침내 ‘배달의 기수’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엊그제 청년유니온·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문제의 피자회사에 30분 배달제를 중단하라는 서한을 전달했다. 학자며 문화예술인들이 속속 속도배달 반대운동에 동참하고 있단다. 무한질주의 배달을 타깃 삼은 움직임이지만 잘못된 ‘빨리빨리’의 속도전과 생명 경시에 대한 집단 저항이 아닐까. “빨리빨리 살 것을 강요하는 바쁜 현대생활은 인간을 망가뜨리는 바이러스다.” 12년 전 느리게 사는 도시, ‘슬로 시티’ 운동을 시작한 이탈리아의 파울로 시장의 말. 지금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빨리빨리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카이사르 암살 후 로마의 내란을 정리한 아우구스투스는 ‘천천히 서둘러라.’고 했단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도 있는데, 목숨 건 ‘배달의 질주’라니….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美, 레이건을 그리다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은 6일(현지시간) 미국은 레이건에 대한 추억에 푹 빠졌다.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지난 2004년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특집 기사를 통해 미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이건의 삶을 소개하고 미국 사회에 남긴 유산을 집중 조명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태어난 일리노이 주의 농촌 마을 탐피코에서 그가 영면한 캘리포니아 주 시미밸리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기념 행사가 열렸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옛 소련과의 경쟁에서 강력한 미국을 실현했던 지도자로, 특히 대중적 호소력과 친화력이 뛰어나 ‘강인함’과 ‘낙관’의 인물로 각인돼 있다. ●‘강인함·낙관의 인물’로 평가 특히 공화당이 오늘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하고 보수주의의 정의를 다시 내린 지도자로 평가되면서 공화당은 2012년 정권 재탈환을 목표로 레이건의 정치적 유산을 잡기 위한 ‘레이건 마케팅’에 열중했다. 공화당의 잠재 대선 후보군들은 국민적인 레이건 회고 붐을 겨냥해 경쟁적으로 레이건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인기가 많은 레이건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공화당원들이 많아 후보들도 레이건 정신을 추종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전했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지난 4일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레이건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레이건 전 대통령이 중시했던 가치들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초기에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평가절하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됐던 점을 상기하며 주류 언론들과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레이건의 고향 마을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 행사에 연설자로 참석할 뿐 아니라 최근 레이건 화보집을 만들어 기록 영화까지 상영하며 레이건 정신 전파에 나서고 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최근 연설에서 레이건을 자주 인용하고 있고, USA 투데이 기고문에서도 “레이건 정신은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는 최근 펴낸 회고록에 레이건 정신이 자신의 정치철학에 영감을 줬다고 소개했다. 헤일리 바버 전 미시시피 주지사와 존 헌츠먼 주중대사는 레이건 대통령 당시 백악관에서 일했던 경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레이건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공화당 후보들의 태도는 오히려 이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무조건 추종 공화에게 부담 지적도 워싱턴포스트는 6일 레이건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했지만 현실 정책을 추진하면서는 민주당과도 타협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였다면서 현재의 공화당을 지배하는 강경 보수 성향의 티파티류 정치 노선과는 구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들은 레이건이 공화당에 영감을 일으키는 원천이 될 수는 있지만, 1980년대와는 다른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레이건에 대한 향수는 공화당 후보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14년 침묵을 깨고 40일만에 써내려갔죠”

    “14년 침묵을 깨고 40일만에 써내려갔죠”

    벌써 십수년이 넘도록 하루에 두 번씩 신경안정제의 일종인 ‘바리움’을 먹어야 한다.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탓이다. 조금만 집중하거나 앉아 있으면 현기증이 나며 무기력해지고 온몸이 쑤신다. 의사는 “가능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과 똑같은 온도로 뜨겁디뜨겁게 끓고 있는 피는 아무리 더디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 예언자적 역할도 결코 놓지 않는다. ●“민족의 공멸을 피해야 하는 이유 알려야…” 지난 1일 소설가 남정현(78)을 만났다. 그가 200장 가까운 꽤 긴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1996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이후 무려 14년을 훌쩍 넘겨 내놓은 ‘편지 한 통’이다. 국가보안법이 화자(話者)가 돼서 미국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 1965년 그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든 단편소설 ‘분지’와 마찬가지로 ‘편지 한 통’ 역시 남정현 특유의 풍자적 문체와 함께 냉철한 세계사적 인식이 어우러져 있다. 이 작품은 이달 하순 발행될 계간지 실천문학 2011 봄호에 실린다. “어휴, 소설 같지도 않은 것을 썼는데, 뭐하러 만나요.”라며 손을 내젓던 남정현이었지만, 막상 찾아가자 자그마한 체구로 환히 웃으며 따뜻하게 맞아주고,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45년 넘게 살고 있다는 서울 쌍문동 집에 들어서니 거실에 걸린 신학철 화백의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국가보안법(당시 반공법) 위반 혐의를 받으며 ‘분지’ 필화사건으로 법정에 섰을 때 당시 수사검사를 쳐다보던 그의 얼굴을 담아냈다. 30대 초반의 남정현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정신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세상 어떤 것도 거칠 것 없다는 듯 도발적인 얼굴 속에 검사를 향해 마치 “당신 참 안됐수.”하는 심드렁함도 엿보인다. 40여년 세월의 주름살만 덧붙이면 딱 지금의 남정현이다. 십수년의 침묵을 깨고 작품을 다시 쓴 이유를 물었다. “외세에 빌붙어 목숨을 유지해 온 수구세력들에 인류사적 평화의 가치, 민족의 공멸을 피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꼭 쓰고 싶었고, 40일 만에 썼죠.” 건강상태 등 버거운 조건을 감안하면 벼락같이 써 내려간 셈이다. 컴퓨터 자판을 한 자 한 자 더듬더듬 눌러 가다 힘겨우면 가끔 놀러오는 열네 살 손자에게 구술해서 써 내려갔다. 그동안 주변에서는 악화되는 건강을 봤을 때 더 이상 작품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는 ‘편지 한 통’이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물론 남정현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다. 그는 “동학의 입장에서 우주의 중심축이 바뀌는 ‘인내천’(人乃天)을 구현하는 작품을 써 보고 싶다.”면서 “시장의 원리가 인간의 원리로 바뀌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지’ 사건 당시 공안 “손목 잘라 버리겠다” ‘분지’는 그를 유명한 소설가로 만들었지만, 수사당국으로부터 “다시 소설을 쓰면 손목을 똑 잘라 버리겠다.”는 공포를 함께 심어줬다. 등단 3년차에 동인문학상(1961년)을 받는 등 전도양양한 청년작가의 입에는 그렇게 재갈이 물려졌다. ‘분지’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수 일가족을 통해 근현대사에 대한 파천황적 인식을 보여 줬다. 독립투사 아버지, 미군에 강간당한 뒤 미쳐 죽고만 어머니, 미군의 첩이 된 누이, 그리고 그 미군의 아내를 강간한 홍만수 등 당대 한국사회와 역사를 파격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손목 절단’에 대한 실제적인 공포와 끊겨 버린 외부 원고청탁에 의해 본의 아닌 절필이 시작됐다. 그러다 1973년 오랜만에 ‘문학사상’에 ‘허허선생’을 쓰는 등 조심스레 창작활동에 들어가던 중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갔고, 과작(寡作)의 길이 이어졌다. 야만의 시대가 찍어 낸 화인을 몸 곳곳에 남긴 그이지만 문학을 바라보는 눈은 더욱 그윽해졌다. “문학이라는 것은 어디 특별한 형식에 한정된 것이 아니죠. 굳이 시나 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문학 속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성경, 불경, 논어, 도덕경 등 모든 것들이 이미 문학입니다. 문학은 우주처럼 큰 것이죠.” 후배들에 대한 당부의 얘기 또한 절절하다. “문명의 축이 바뀌는 바람소리가, 굉음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 문인입니다. 우리 후배들도 기술뿐이 아닌 철학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얘기가 두 시간 가깝게 이어지니 그가 몹시 힘겨워 한다. 이렇듯 아픈 시대가 남긴 상처는 몸이 가장 나중까지 기억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국제 이목 ‘3대세습’ 北으로

    아프리카에서 민주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면서 북한의 3대 세습 체제가 새삼 외신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英 일간지 “北 철저한 우상화”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 31일 전 세계 현대사에서 어떤 독재자도 시도하지 않은 3대 세습이 북한에서 철저한 우상화 속에 진행되고 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63년 동안 지배한 북한 주민들이 개방을 통해 김씨 일가의 거짓말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김정은이 그런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모함과 정치적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은 폐쇄되고 통제된 아프리카 독재국가의 민주화 시위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위력을 발휘한 것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집트를 30년간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는 1980년 이후 북한을 세 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김씨 일가와 가깝기 때문에 무바라크의 실권은 김씨 일가에도 심리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집트의 통신 재벌 오라스콤이 북한에서 운영하고 있는 3G 휴대전화가 북한 사회에서 민주화와 개혁 요구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을지를 전문가들은 지켜보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보도에서 “김정일의 최대 과제는 막내 아들 김정은의 업적을 부각시켜 자신과 유사한 이미지를 심고, 이를 통해 ‘가족 정권’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지난해 5월 통통하게 살찐 얼굴의 김정은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한국과 일본에서는 할아버지인 김일성 전 주석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김정은이 성형수술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김정일의 출생 기록과 각종 업적, 골프 성적, 프로필 등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장된 우상화 사례들을 열거하며 북한의 개방으로 주민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3대 세습의 독재 행적이 도마에 오르는 것이 김씨 일가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많은 주민이 굶주리고 있는 반면 김씨 일가는 해외 은행계좌에 수십억 달러를 예치하고, 100만 달러 이상의 최고급 포도주를 수입하는 등 사치를 일삼고 있으나 북한 언론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 최대과제는 김정은 업적부각” 텔레그래프는 최근 러시아에서 레닌의 유해 이전 논란이 벌어진 것에 김정일이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라며 자신이 아버지 김일성의 유지를 받들었듯이 아들 김정은도 자신의 사후에 똑같이 해주기를 바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주화 욕구와 경제적 빈곤에서 비롯된 아프리카의 시민항쟁이 최신 통신 기기를 통해 북한의 폐쇄사회로 옮겨 붙을지 외신들이 눈여겨보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5일 TV 하이라이트]

    ●한국 현대사 증언(KBS1 오전 6시 10분) 격동의 한국 현대사 60년. 굴곡진 역사의 순간에 대한 생생한 증언. 그리고 주요 사건과 인물에 얽힌 뒷이야기.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단초가 된다.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았던 주요 인사들과의 대담을 통해 현대사를 조명하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KBS2 밤 9시 50분) 샘이 오토봇들과 함께 지구를 구한 지 2년. 오토봇은 지상군과 협력해 남은 디셉티콘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네스트 팀’을 결성하고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다. 반면 디셉티콘들은 마지막 남은 큐브 조각을 찾아 메가트론을 부활시키기 위해 다시 샘을 뒤쫓는다. 이런 내막을 전혀 모르는 샘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설특집 MBC 창사 50주년기념 나눔콘서트 하춘화 리사이틀50(MBC 밤 12시 30분) MBC 창사 50주년 기념 특별공연으로 진행되는 이번 콘서트는 가수활동 50년을 맞은 하춘화의 대표 히트곡들을 비롯,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가요사를 대표하는 명곡들을 시대별로 편곡, 구성해 가요사와 사회사를 노래로 재현하는 뜻깊은 무대다. ●내사랑 내곁에(SBS 밤 11시)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종우(김영민).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던 날, 종우는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란 지수(하지원)와 운명처럼 재회한다. 그리고 1년 뒤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의 신혼보금자리는 바로 병원. 종우는 숟가락 하나 손에 쥐는 것도 힘들지만, 아내 지수가 있어 행복하기만 한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EBS 밤 11시 15분) 1940년대 미국령 푸에르토 리코. 무시로 미국에 들어오는 푸에르토 리코의 빈민들이 뉴욕의 백인 사회에 제2의 할렘을 만들어 말썽의 근원이 되었다. 백인 지역과 푸에르토 리코 사람들의 지역이 인접한 뉴욕의 웨스트사이드에서는 백인 젊은이들과 푸에르토 리코의 젊은이들 간 텃세 싸움이 되풀이되고 있었는데…. ●OBS토요시네마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OBS 밤 11시 20분) 매력 넘치는 해적 캡틴 잭 스패로는 현재 해적 생활을 그만두고 한적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인생이 사악한 해적 캡틴 바르보사에 의해 위기를 맞는다. 캡틴 바르보사가 잭 스패로의 해적선 ‘블랙펄’(Black Pearl)을 훔치고 총독의 아름다운 딸 엘리자베스 스완을 납치해 가는데….
  • [글로벌 시대] 한국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한국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에만 초점을 두고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논하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있다. 물론 식민지 시대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해방 후의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 한·일 기본조약 체결 이래 20세기 후반의 한·일 관계사에 대한 무지(無知)가 일반 대중에게 여러가지 오해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전 일본 도쿄 진보초(神保町)의 고서점에 책을 사러 간 적이 있다. 헌책 몇 권을 사면서 가게 주인인 60대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한국에서 일한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말했다. “한국에서 일한다니 힘들겠네. 반일감정이 아직 있을 테니까. 일본 패전 때 반일감정은 거의 없었네. 패전을 맞아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조선인들 중에는 ‘왜 일본으로 돌아가는 거지? 여기서 함께 살자’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했던 사람도 있었다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반일정책 때문에 손바닥을 뒤집은 것처럼 일본을 혐오하게 되었어.”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고, 해방 때에는 눈물을 흘려 이별을 아쉬워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4년 정도 지나, 한국인 사회학 교수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사이좋게 살았고, 해방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아쉬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해방 후 새롭게 나라를 규합해 운영하려고 할 때 국민이 일제 황국신민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독립국가가 될 수가 없지요? 국민의식을 일제 황국신민으로부터 탈각시키기 위해서는 반일정책을 해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가 있었어요.” 현대의 일본인에게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때로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역사를 고려함으로써 관용정신을 가지고 한국인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60여년 전의 역사문제가 자신에게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고 느끼는 일본 젊은 세대에게는 현재에 이를 때까지의 경과를 설명하는 편이 역사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인간정신의 ‘현재’를 구성하는 기저 요소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현대의 한국인에게는 ‘반일 세뇌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해방 후에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것을 인식해 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정치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반일 감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민족의 벽을 넘어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민족주의 사상은 그 민족성이 부정되고 시달리는 상황이나, 해방 후의 한국과 같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민족을 규합해 그 존엄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귀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크게 바뀌었다. 지금은 한국이 독립국가인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도 비약적으로 올랐다. 군사정권이나 개발독재 시대도 있었지만, 근면한 국민성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경제발전과 사회자본 정비, 기술력 향상 등 여러가지 면에서 선진국화하고 있다. 이미 독립해서 풍부한 사회를 구축한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너무 강조하면 단순한 자민족 우월주의, 인종주의 사상에 빠질 우려가 있다. ‘민족주의 세뇌정책’은 사회에 다양한 폐해를 가져올 것이다. 획일적이고 예외가 없는 자민족상(自民族像)을 추구한 나머지, 같은 민족 내에서 이질적인 인격이나 사고방식을 배제하고, 사회집단에서 다양성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창조적인 사고활동의 환경을 억압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자민족상의 심리적 투영 작용으로서 타민족에 대해서도 획일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파악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 B형 최대 2과목… 국어B+수학B 동시선택 못해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 B형 최대 2과목… 국어B+수학B 동시선택 못해

    올해 고교에 들어가는 신입생들이 치르게 될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의 가장 큰 특징은 국어·영어·수학 모두 수준별 시험을 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수리(수학)영역만 수준별 시험을 치렀다. ●이름 바꾸고 교과중심 출제강화 현재의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의 과목 명칭이 ‘국어·수학·영어’로 바뀐다.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항 출제도 교과 중심 출제가 강화된다. 이기봉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선진화정책관은 “그동안의 수능이 범교과적 출제를 강조하다 보니 학교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게 힘들었다.”면서 “이를 실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맞추자는 것”이라고 개편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국어 A형의 경우 다양한 소재의 지문을 활용할 수 있지만 출제 내용은 국어Ⅰ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또 수험생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EBS교재와의 연계율 70%도 계속 유지된다. 교과부는 수능과목별 출제 범위나 내용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시험 계획을 발표할 때 구체 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수준별 시험은 이번 개편안의 핵심이다. 국어·수학·영어 세 과목 모두 A·B형으로 나뉜다. A형은 출제 범위가 좁고 쉬운 수준이고 B형은 현행 수능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험생이 각자 A·B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더 어려운 B형은 최대 2과목만 선택할 수 있고 국어B와 수학B는 동시에 선택할 수 없다. 상위권 학생을 원하는 대학들이 국·영·수 모두 B형을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 수험생이 인문계열 수준의 국어와 자연계열 수준의 수학을 동시에 준비할 경우 수험 부담이 늘어나고, 고교 교육과정 운영에도 무리가 온다는 점도 감안됐다. 수준별 시험응시의 경우 인문사회계열 진학 희망자는 국어B, 수학A, 영어A 또는 B, 이공계열 진학 희망자는 국어A, 수학B, 영어 A 또는 B를 선택하면 된다. 예체능계열이나 특성화고 진학 희망자는 국·수·영 모두 A형을 선택하면 된다. ●과목별 문항수·선택과목 변경 출제문항 수와 배점도 상당부분 바뀐다. 5개 문항인 국어의 듣기평가는 지필평가로 대체된다. 모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 국어와 영어는 문항 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 50개인 문항 수를 5~10개 정도 줄이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탐구영역은 3과목을 선택하던 것에서 2과목 선택으로 선택과목 수가 1과목 줄어든다. 사회탐구는 현재 11과목 중에서 3과목을 선택하는 것에서 10과목에서 2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과학탐구는 8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과학과목은 현재와 변함이 없지만 사회과목의 경우 한국지리와 세계지리, 경제지리가 한국지리와 세계지리 2과목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국사가 한국사로 합쳐졌다. 세계사는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로 구분됐고, 윤리는 생활과 윤리가 윤리와 사상으로 나뉘었다. 마이스터고 및 특성화고 학생들이 응시하는 직업탐구영역은 앞으로 개발될 예정인 직업기초능력평가와 유사하게 성격이 바뀐다. 총 17개이던 과목 수도 농생명산업, 공업, 상업정보, 수산·해운, 가사·실업 등 5개로 줄어든다. ●전문가들 “B형 목표로 준비하라” 2014학년도 수능개편안에 대해 입시업체 관계자들은 예비 고1들의 철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영·수에 수준별 시험이 도입됐지만 대학들이 보다 어려운 B형 시험을 필수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예를 들면 인문사회계열에서는 국어B, 수학A, 영어B를, 이공계열에서는 국어A, 수학B, 영어B를 필수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때문에 수험생들이 우선 B형을 목표로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분석실장은 “B형의 경우 고난이도 형태가 아닌 현행 수준의 난이도이기 때문에 일단 B형을 준비하면서 성적 변화를 지켜본 다음 2학년에 올라가서 응시할 시험 유형을 결정하는 것도 늦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5월정신 널리 알리고 화합·소통에 역점”

    “5월정신 널리 알리고 화합·소통에 역점”

    “5월 정신을 널리 알리고, 관련 단체의 화합과 소통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5·18기념재단의 새 이사장으로 선출된 시인 김준태(62)씨는 25일 “광주 시민은 물론 모든 국민에게도 사랑받는 5·18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임 이사장들이 ‘5월 단체’ 사이의 불화 등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잇따라 물러난 것을 의식한 듯 “소통과 화합을 통해 5월의 이미지와 품격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정치색이 없고 ‘5월 정신’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역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의 권유로 공모에 나서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임기 2년 동안 5월 내부에 있는 분열의 기운을 막고, 5월 정신의 전국화와 국제화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영어, 일어, 중국어 등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새롭게 단장하고, 5·18 당시 시민들이 보여줬던 공동체 정신을 한반도 통일의 초석으로 삼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1980년 전남고의 교사였던 그는 시민항쟁이 진압당한 뒤 일간지인 전남매일 6월 2일자 1면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기고했다는 이유로 신군부에 의해 교단에서 쫓겨났다. 이 시는 곧바로 외신을 타고 광주를 세상에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시가 게재된 뒤 그는 20여일 동안 정보 기관원들을 피해 도망다니다 어린 자녀들을 보러 잠깐 집에 들렀다가 체포돼 광주보안대에서 고초를 겪었다. 그는 이후 1986년 복직 후 언론계로 옮겨 ‘광주전남현대사’ ‘정사 5·18’등을 기획했고, 1998년부터 조선대 초빙교수로 활동했다. 그의 저작 가운데 ‘콩알 하나’(중1), ‘참깨를 털면서’(고2)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고1) 등이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문장에 정평이 나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동아시아 관점서 꿰뚫어 본 한·중·일

    동아시아 관점서 꿰뚫어 본 한·중·일

    역사에 국가적 자존심 문제를 대입하면 답이 없다. 지난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사죄 담화가 나왔지만, 역사교과서 문제는 여전히 화약고다.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은 한국전을 두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마냥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베트남 파병 문제가 걸려 있다. 베트남도 캄보디아를 침공한 전력이 있다. 이런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공통의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 왔다. 독일이 프랑스, 폴란드와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낸 것이 일종의 모범 사례다. 물론 처지가 다르다는 회의론도 있다. 비슷한 국력의 작은 나라들로 분할되어 있어 협상을 통한 공존에 익숙한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중국와 일본이라는 두개의 거대 패자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자들의 도전은 계속된다. 유용태(54)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박진우(55)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박태균(45)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기에 화해를 주도할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세 사람이 최근 펴낸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창비 펴냄)는 이런 믿음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전 논의들과 달리 한·중·일 기계적인 균형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5년간 집필 작업을 진두지휘한 유 교수의 얘기를 대표로 들어봤다. →그간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의는 많았다. 2005년 출간된 ‘미래를 여는 역사’처럼 대개 3국 역사학자들이 토론과 합의를 거쳐 책을 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한국 학자들만 집필에 참여했다. -토론과 합의를 거치다 보니 서술이 지나치게 기계적 균형에 치우치는 대목이 있어 꼭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있었다. 물론 여건이 성숙되면 그런 작업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누가 쓰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 의식을 상대화하고 자국 중심주의를 성찰하는 것이다. 목적에 충실하다면 집필자 국적은 문제가 안 된다. →통상 동아시아 근대는 개항을 기점으로 삼는다. 중국은 아편 전쟁, 한국은 강화도조약을 거론하는 식이다. 이번 책은 17세기부터 서술을 시작하는데. -통상적인 분류는 그게 맞다. 그런데 우리는 17세기 초, 그러니까 조·일, 조·청 전쟁(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란 명칭은 한국 관점에서 나온 표현)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안정된 때부터 서술했다. 이때부터 19세기까지 200년 동안 동아시아에 큰 전쟁이 없다. 이 무렵 안정된 동아시아 질서가 19세기 유럽 문명과 맞닥뜨려 어떻게 변화하고 왜곡되는지를 살펴봐야 그 다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개항 이전의 시기, 즉 ‘해금’(海禁) 시기를 넣었다. →가장 신경 쓴 대목은. -연관과 비교다. 기존의 역사 서술은 특정 사건을 한 나라의 관점에서만 설명한다. 지역과 국가, 국가와 국가, 나아가 동아시아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관시켜 서술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책은 최대한 동아시아 관점에서 다루려 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나라들은 그 사안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비교사적 관점을 넣으려 했다. 한마디로 자국 중심주의 색깔을 최대한 빼려 노력했다. →결론은 반전 평화로 귀결되던데. -근대 이후 중국은 늘 서구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척한다. 하지만 소수민족 문제에 관한 한 중국도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소수민족 문제나 중국 내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화주의에 제동을 거는 이들도 따지고 보면 소(小)중화주의를 추구한다. 근현대사를 살펴 보면 한·중·일 누구도 딱 잘라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고 할 수 없다. 일본도 원자폭탄 투하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피해자인 면이 있다. 우리가 먼저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남들에게도 성찰과 반성을 요구할 수 있다. 그게 분쟁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한국에 대한 사죄를 주장하는 일본인들은 대개 좌파 성향이다. 우리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베트남전 사과 문제가 국가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시끄러웠다. -그런 주장들은 사회의 주류보다는 자본과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에게서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웃 나라와의 화해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책에서) 지역, 국가, 민중이라는 3가지 차원을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베트남전 문제는 우리 사회에 분명 이견이 존재한다. 국가 내부의 성찰이 있어야 국가 대 국가의 평화가 가능해진다. 이번 책이 그런 문제 제기의 한 방식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일본이나 중국 반응은. -‘동아시아사’(史)라는 개념 자체는 일본이 가장 빨랐다. 그걸 고등학교 선택과목(2012년부터)으로 정한 것은 한국이 맨 먼저였다. 일본 학자들의 관심이 무척 크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 같고, 큰누이 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 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 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포토]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 타계●“6·25 없었으면 선생님 됐을 수도”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 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시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쟁·참척의 고통까지 관조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작가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하는 힘을 보여 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깊은 상처 속에서도 늘 글 속에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가장 최근에 쓴 ‘내 식의 귀향’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를 다녀왔다.…비석엔 내 이름도 생년월일과 함께 새겨져 있다. 다만 몰(沒)한 날짜만 빠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가 있는 게 저승의 큰 ‘빽’이다.” 이어지는 글. “다만 차도에서 묘지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이 걱정스럽다. 운구하다가 관을 놓쳐 굴러떨어지면 늙은이가 살아날까 봐 조문객들이 혼비백산(하겠지)…실 없는 농담 말고 후대에 남길 행적이 뭐가 있겠는가.” ●유니세프 활동 ‘한국의 오드리 헵번’ 그는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이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을 찾아다녔다. 암을 발견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 한국위 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마음 속엔 살가움 한가득임을 알기에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같고, 큰 누이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의 유해는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25일 오전 경기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다.    ● 분열의 문단 어머니처럼 보듬어 안던 ‘큰 나목’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셔지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 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 전쟁·참척 고통까지 관조“내 나이 새삼 징그럽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늘 내면의 상처에 주목해왔기에 그의 문장은 섬세한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았다.    ● 암 발견 직전까지 유니세프 한국위 친선대사 활동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호암상 예술상, 보관문화훈장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은 소설가로서 삶에 내려진 작은 상일 뿐이다.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 곤경에 처한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몸 속의 깊은 병을 확인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한국위 평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 고귀한 이상을 가지신 분임을 새삼 확인했다.’라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밤하늘 별로 반짝거리며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오바마 사단’ 시카고 귀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고지 등정을 위한 선거캠프가 이르면 3월 그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 꾸려진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21일 “오바마가 재선캠프 본부를 오는 3월 말~4월 초 시카고에 차리기로 했다.”면서 “현재 백악관에 있는 ‘정치 사무실’은 폐쇄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현대사에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 중 시차가 다를 만큼 백악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재선 캠프를 차린 경우는 없다.”고 했다. 그만큼 시카고행이 모험이고, 오바마로서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얘기다. 신문들에 따르면 선거 캠프의 시카고행은 오바마의 일부 참모진이 반대하는 바람에 수개월간 격론이 이어졌으나 2주 전 윌리엄 딜레이가 백악관 비서실장에 임명된 뒤 결론이 급진전됐다. 전국적인 정치자금 모금과 풀뿌리 선거운동을 위해서는 워싱턴DC를 벗어나는 게 유리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한편에서는 오바마가 2년 전 대선 때 시카고에서 맛봤던 ‘승리의 추억’을 재연하고픈 잠재의식의 발로라는 시각도 있다. 사실 오바마로서는 재선을 앞두고 노심초사할 만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빌 클린턴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카고는 어차피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점에서 별로 득될 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표라도 더 건지기 위해서는 경합지역에 캠프를 차리는 게 낫다는 계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선 캠프를 백악관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버지니아주에 차렸는데, 버지니아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격전지(swing state)였다. 반면 짐 메시나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은 “시카고에 캠프를 차리는 것은 밑바닥 선거운동에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08년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인 데이비드 플러프도 백악관과 시카고가 따로 놀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하면서 선거운동의 중심은 시카고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타이완 100주년 기념 사진전 열려

    타이완 100주년 기념 사진전 열려

    중화민국(ROC·타이완)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시회 ‘우리의 발자국을 찾아서’(Retracing Our Steps)가 20일 강원 남이섬 특별전시실에서 주한타이완대표부(대표 양잉빈) 주최로 개막됐다. 전시는 다음 달 27일까지 무료 전시되며 사진집과 팸플릿 등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전시회에는 1912년 1월 1일 중국 난징에서 중화민국 임시 총통으로 취임한 쑨원(孫文)이 임시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부터 타이완 현대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진귀한 사진 60점이 전시돼 있다. 1986년 10월 7일 당시 장징궈 총통이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30여년 동안 지속돼 온 계엄령을 해제하겠다고 밝히는 역사적 상황을 총통부 비서관으로서 통역하고 있는 마잉주(가운데) 현 총통의 모습도 소개됐다. 또 계엄 아래 첫 반정부 사건으로 불리는 메이리다오 사건(1979년), 야당인 민주진보당 창당(1986년) 등 역사적 굴곡을 증명하는 사진들과 서민들의 애환 및 생활을 담은 사진들도 공개됐다. 양잉빈 대표는 “한국의 7대 무역 파트너인 타이완을 보다 잘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사진전을 마련했다.”면서 “올 한해 국가건립 100주년을 맞아 각종 전시회와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이승만 대적할 野지도자… ‘간첩’ 정치탄압

    이승만 대적할 野지도자… ‘간첩’ 정치탄압

    죽산 조봉암은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정치 지도자 가운데 한명이다. 자유당정권 시절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적할 야당 지도자로 부상했지만, 한순간에 ‘간첩’의 굴레를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죽산은 1898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초 상경, YMCA 중학부에 다니다 3·1운동에 참가해 처음 투옥됐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中央)대학에서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재일 유학생 중심의 무정부주의 사상운동 단체)에 가담, 항일운동을 하다 귀국했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했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7년간 복역했다. 이후 지하 노동단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구속됐다가 광복과 더불어 풀려났다. 1948년 7월 헌법기초위원장으로 헌법제정에 참여하는 등 건국에 이바지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30%라는 지지율을 얻어 파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인기로 죽산은 이승만과 당시 야당인 민주당으로부터 협공을 받았다. 진보당을 창당한 죽산은 1957년 당기관지 ‘중앙정치’ 10월호에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 이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과는 어긋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한다는 의혹을 받았고, 그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빌미가 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책 읽는 밤(KBS1 오후 11시 40분) 힙합 음악, 마라톤 등의 매개로 젊음의 발산을 보여줌과 동시에,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모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담긴 소설이 있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여전히 불완전한 모습의 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은희경식 성장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를 소설가 김인숙의 추천으로 함께한다. ●뛰뛰빵빵 구조대(KBS2 오후 4시 30분) 써치가 두고 간 편지에 파스칼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파스칼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구조대. 편지를 파스칼에게 전해주기로 한다. 그런데 왕자나 괴물, 외계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구조대의 상상을 깨고, 키 작고 힘없어 보이는 파스칼이 등장해 실망을 한다. 하지만, 알고보니 파스칼의 정체는 따로 있었다. ●아침드라마 주홍글씨(MBC 오전 7시 50분) 인서는 용진을 통해 성조의 이혼사유에 대해 알게 된다. 인서의 연락에 성조는 갈등한다. 한편, 혜란의 부주의로 발목에 화상을 입은 하니. 경서는 서둘러 하니를 병원에 데려가고, 자신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게 한다. 하니가 경서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재용은 경서의 집을 찾아가 하니를 데려가려고 한다. ●괜찮아, 아빠딸(SBS 오후 8시 50분) 2차 공판이 시작되고 병천과 필석이 증인으로 나선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언에도 불구하고 물증이 없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결국, 덕기에 대한 과실 치사 사건에 대해 기환은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는다. 종석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고, 대신 공문서 위조 및 뺑소니건으로 1년형만 받게 되는데…. ●다큐10+(EBS 밤 12시 5분) 인간이 전염병을 정복해 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동안,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들이 현대 사회를 위협한다. 최근 한국의 구제역이나, 지난해 신종플루의 세계적인 대유행 역시 다시 거론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버린 해외 여행 등이 왜, 어떻게 현대인을 바이러스의 위협에 노출시키는지 알아본다. ●멜로다큐 가족(OBS 오후 11시 5분) 우리 사회 숨겨진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게 사는 사람들. 우리 사회를 빛나게 하는 가족의 가슴 뭉클한 리얼다큐멘터리 ‘가족’은 사회 곳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렇게, 나눔의 소중함과 실천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하는 가족들을 만나본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女談餘談] 내가 바뀌겠다/홍희경 경제부 기자

    [女談餘談] 내가 바뀌겠다/홍희경 경제부 기자

    시대가 바뀔 때에는 버티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혁신 기술이 도입되고, 삶의 방식이 급변하고, 직업환경이 달라질 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만 하는 게 기술이라고 했다. 그럴 때 괜히 기회를 찾아 나섰다가는 그나마 갖고 있던 기반마저 사라진다고 했다. 맞는 말 같았다. 당장 한국 현대사만 훑어봐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나서지 말라.”고 했다던 전직 대통령의 어머님 말씀이 진리인 듯싶었다. 기자로 사는 건 보람스럽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즘 들어선 종이신문의 위기감이 극에 달하고, 스마트한 정보기술(IT) 제품이 삶마저 스마트할 것을 강요하고, 종합편성채널이 선정돼 직업환경마저 급변하니 도태되지 않을 길을 찾기에만 바빴다. ‘20대 담론’이 나올 정도로 무엇인가 바꾸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없고, 그나마 나서는 이들도 매장되기 일쑤인 분위기에 맞장구를 쳤다. 현상에 대해 다른 의견을 밝혔다가 법정 싸움을 해야 했던 미네르바나, 동영상 펌질 한 번 잘못해서 직장까지 잃은 민간인 사찰 사건을 보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만 되새겼다. ‘혁신’이라는 말은 TV나 스마트폰 같은 제품에나 붙이는 것이고, ‘공정’이나 ‘상생’이라는 화두는 정부가 내는 보도자료에나 쓰는 말 같았다. 혁신이나 공정한 가치를 삶 속에서 추구한다면, 내 몫의 무엇인가를 빼앗긴 채 실속 없는 바보가 될 것 같았다. 문득 돌아보니 욕심도 많았고, 겁도 많았다. 일을 하려면 무엇인가를 바꿀 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욕심이었고, 있지도 않은 내 몫을 빼앗길까 봐 지레 겁부터 먹은 격이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는 사람을 욕하고 물러서야 할 때 악을 써대는 사람을 동정하며, 그저 멋진 사회를 만들어 줄 초인이나 기다리던 태도를 버리려고 한다. 까짓것 그냥 나 혼자라도 바뀌겠다. 훗날이라도 누군가에게 “넌 나처럼 살지 마.”라고 하는 대신 “난 저렇게는 안 살아.”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는 더 초연하면서 치열해져야 할 것 같다. saloo@seoul.co.kr
  • 애리조나의 총성 그 앞에 ‘독설’이 있었다

    애리조나의 총성 그 앞에 ‘독설’이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소녀는 3000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미국 현대사 최악의 비극 속에서 태어났다. 비통해하던 사람들은 소녀를 보며 “희망의 증거”라며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9살 되던 해, 소녀는 광기 어린 총구 앞에서 힘없이 스러졌다. 소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그린. 아버지 존 그린은 “비극으로부터 와서 비극으로 인해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최연소 희생자인 그린의 죽음 앞에서 미국 사회는 비통함에 잠겼다. 동시에 편가르기와 인신공격, 독설을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결국 그린을 죽음으로 내몬 ‘진범’이라는 비판과 반성이 나온다. 그린은 미국의 다양한 상징을 오롯이 담은 채 태어났다. 9·11 테러 당일 펜실베이니아 웨스트그로브 지역에서 출생했고 이후 테러일에 태어난 아기를 주마다 1명씩 추려 선정한 ‘희망의 얼굴’ 50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그린의 사진이 인쇄된 책자는 9·11 테러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미국 사회에 뿌려졌다. 그린은 밝고 총명했다. 초등학교 학생회 간부를 맡은 그는 동물을 사랑해 수의사를 꿈꿨지만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린은 지역의 유명 여성 정치인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행사장에 따라나섰다가 총탄에 희생됐다. 무엇이 그린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 갔을까. 미 정가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는 새삼 극단적 정치문화의 자화상을 떠올렸다.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을 겨냥한 가해자가 살육극을 벌인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반정부 메시지를 근거로 정치적 불만이 그 배경일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참사의 이면에 독설과 폭력성이라는 정치문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10일 미 정치계에 상대를 자극하는 말이나 위협, 폭력에 대한 맹목적 선동 등이 상당한 수준으로 번졌으며 이번 사건이 극단적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마 카운티의 클레런스 듀프니크 보안관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공직자들이 꾸준히 위협받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미국이 이제 정신차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당파적 이익을 앞세운 격렬한 논쟁이 일상화되면서 사회에 극단의 문화를 퍼뜨리고 있다는 자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진 정치인들은 정치적 힘겨루기 과정에서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독설을 퍼붓는 것은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정가에서는 참사의 원인과 배경을 둘러싼 논쟁도 일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용의자 제러드 리 러프너의 극우 성향을 부각시키며 공화당을 몰아세웠다. 이에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인격장애를 지닌 ‘사이코패스’의 범행으로 몰며 정치적 파장을 줄이려 하고 있다. 기퍼즈와 대립각을 세웠던 보수적 유권자운동 단체 티파티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 우리를 비난하지 말라.”고 항변했다.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겨냥한 책임론도 나온다. 페일린 전 주지사는 지난해 봄 건강보험개혁법안이 통과된 뒤 법안에 찬성한 기퍼즈 의원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 20명을 낙선 대상 ‘살생부’에 올리고 이들 지역구를 사격을 위한 총기 십자선 과녁 모양으로 표시한 미국 지도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때문에 페일린 전 주지사의 정치 선동이 과격분자를 자극해 불행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매뉴얼 클리버 공화당 의원은 “많은 부분은 워싱턴 정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어떤 논쟁에서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말은 이 나라에 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정파와 정당 간에는 치열한 대립이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영국 의회에서 인신 공격을 자제하기 위해 다른 의원을 부를 때 전통적으로 ‘존경하는’(honorable)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이는 툭하면 막말과 육두문자, 멱살잡이가 되풀이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회도 되새겨 볼 문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열린세상] 박근혜 싱크탱크의 출범을 바라보며/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박근혜 싱크탱크의 출범을 바라보며/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발기인으로 참여한 국가미래연구원이라는 싱크탱크의 출범이 정치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참여인사들의 면면이 주목을 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야의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쏟아내는 국가미래연구원에 대한 언급들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다. 부실하고 일관성 없는 정책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국민들로서는 정책을 연구하겠다는 유력 대권주자의 싱크탱크 출범에 거는 기대가 크다. 국가미래연구원 출범 후 상승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이러한 국민들의 기대를 반영한다. 싱크탱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한국 정치사에서 크고 작은 싱크탱크들이 있어 왔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 속에서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선진국의 싱크탱크와는 다르다. 먼저 한국의 싱크탱크는 사조직에 가깝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정책이나 이념중심이라기보다는 정치인 개인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데 활용되어 온 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전문가 집단은 유력한 개인을 중심으로 모였다가, 정치인 개인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사라져 왔다. 이것은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과 브루킹스 연구소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대표하며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정책 방안을 제공해 왔다는 사실과는 대조적이다. 한국도 2004년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계기로 여의도연구소, 국가전략연구소 등 정당을 중심으로 한 싱크탱크가 설립되었으나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용 정책개발 집단의 면모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또한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대부분 비영리법인으로 외부 기부금이나 설립자가 출연한 재단을 토대로 운영되어 특정 개인의 정책목적이나 이념적 편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에 반해 한국의 싱크탱크는 정치인 개인의 지원에 의존하는 열악한 재정 상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싱크탱크가 건설적인 비판이나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지적 독립성을 갖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싱크탱크의 역할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동안 싱크탱크는 정치인 개인의 세를 과시하거나 정치적 목적에 영합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장식용’으로 활용되어 온 점이 없지 않다. 일부 정치인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치적 감이 떨어지거나 대중적 인기를 확보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정치인 스스로 현안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을 활용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전문가들 스스로도 싱크탱크에 참여하는 동기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싱크탱크에 참여하는 것이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학문의 현실정치 참여보다는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싱크탱크에 참여한다는 비판 역시 귀 기울여야 한다. 선거 때마다 뚜렷한 신념 없이 정당, 인물, 후보를 바꿔 가며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이 이러한 비판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싱크탱크는 대화하고 협업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은 협업을 통한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 전문가들의 개별지식만으로는 제대로 된 정책을 개발하기 힘들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좋은 정책들은 개별 전문가의 정책개발이 아닌 전문가 간, 전문가와 대중 간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경제수준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고려하면 싱크탱크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싱크탱크 출범을 계기로 한국의 미래를 위한 좋은 정책들이 개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것은 베버의 말대로 균형감각과 책임의식을 갖춘 전문가들이 특정 정치인과 개인적인 권력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정치적 이념과 국가의 비전을 구현하는 정책개발에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싱크탱크 참여자들이 정권창출의 대가로 권력의 요직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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