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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내겐 너무 쉬운 사진(유창우 지음, 위즈덤스타일 펴냄)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에다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의 확대까지 겹쳐 이제는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찍는다. 찍다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 그런데 기계장치에 대한 설명과 암호 같은 부호들에 그만 떡하니 막혀버린다. 일간지 사진기자인 저자는 동호회급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말을 쏙 빼놓고 어떻게 사진을 즐길 수 있을지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1만 5000원. ●법은 어떻게 독재의 도구가 되었나(한상범 지음, 삼인 펴냄) 헌법학자이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을 지낸 저자가 한국 땅에서 독재를 가능케 했던 법의 문제를 다룬다. 보통 초대 헌법 기초자로 꼽히는 유진오를 두고 사민주의적 요소를 적극 도입했다는 평이 내려지는데, 저자는 그보다는 일제의 잔재가 잔뜩 끼어있다고 보는 쪽이다. 계엄 상황에서 견제 없이 군부의 독재가 가능하도록 한 점, 예산 편성권이 정부에 있다고 명시한 점 등을 꼽는다. 1만 3000원. ●마하티르(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지음, 정호재·김은정 옮김, 동아시아 펴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면, “IMF의 식민지가 되느니 굶어죽겠다.”고 선언한 인물이 있었다. 그 말레이시아 정치지도자 마하티르 총리가 쓴 자서전이다. 일본의 침체에 대해서도 서구의 비판이 민감해져 일관성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정도니 아시아적 가치의 대표적 옹호자답다. 22년간 독재하에서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는 동방정책을 내세웠고, 이를 통해 가난한 농업국가를 신생공업국으로 변모시켰다. 2만 8000원. ●독부 이승만 평전(김삼웅 지음, 책보세 펴냄) 근현대사 주요 인물들 평전을 펴내고 있는 저자의 이승만 평전이다. 다른 평전과 달리 ‘독부’(獨夫)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잔적(殘賊)은 일부(一夫)에 불과하다, 일부를 죽였단 말은 들었어도 왕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는 맹자의 말에서 따왔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유학자 심산 김창숙이 이승만에 대해 평가한 말에서 따왔다. 2만원.
  • 게으르다고 해서 패배자는 아니다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얼개는 비슷하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여전이 논다. 그러다 베짱이가 돈 많은 개미에게 값싼 이자로 돈을 빌려 집도 사고, 땅도 샀다. 마침 부동산 값이 폭등했고, 부자가 된 베짱이는 추운 겨울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보냈다. 반면, 여름내 일만 했던 개미는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한다는 줄거리다. 새 버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게으름에 대한 인식 변화다. 아침형 인간으로 태어나 죽도록 일만 하기보다는, 좀 더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이옥순 지음, 서해문집 펴냄)가 담고 있는 내용 또한 게으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사실 근면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게으름은 일종의 죄였다. 그런데 시간을 쪼개 일하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게으르다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이면에 불편한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지역과 시대, 종교에 따라 게으름에 대한 인식이 천차만별이라고 본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서양에서는 부지런함이 미덕으로 평가받지만 피지배의 아픔을 겪은 아프리카와 인도에서는 적절한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게 오히려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고 여겼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에서는 근면이 칭송받지만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일견 나태해 보이는 행동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게으름이 죄악으로 치부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저자는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영향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죽도록 일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라고 낙인 찍는 분위기가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면서 게으름을 경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제국 시기, “조선인의 90%가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있다.”고 지적한 독립신문 사설에서 보듯 근면을 강조하는 논조가 주를 이뤘다. 본격적인 산업화에 나선 1965년 대한민국의 구호는 ‘일하는 해’였고, 이듬해는 ‘더 일하는 해, 그 다음 해는 ‘전진의 해’였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4년에도 ‘올해는 일하는 해’였다. 현대사회에서도 게으른 사람은 곧 ‘패배자’로 낙인 찍힌다. 게으름의 장점은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게으름이 세상의 모든 비난을 다 받고 노동과 근면이 칭찬을 독점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들이 되레 문제를 야기하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1만 19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독도·위안부 사태 이후…두 얼굴의 日本] 도쿄 신오쿠보 한인타운을 가다

    [독도·위안부 사태 이후…두 얼굴의 日本] 도쿄 신오쿠보 한인타운을 가다

    “열흘 전쯤 30여명의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승합차 3대에 나눠 타고 몰려와 ‘조센진은 돌아가라’며 행패를 부립디다. 일본 경찰은 보고만 있고요. 대통령의 ‘독도’(다케시마) 방문은 성급했다고 봅니다. 여태껏 일본인 10명 중 1명만 ‘다케시마’란 단어를 알았는데, 지금은 90% 이상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귀가하던 재일교포 회사원 강대근(45·IT기업 근무)씨는 목소리부터 높였다. “15년간 일본에 거주하면서 이처럼 답답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한국 정부가) 정치력 부재로 재외 국민의 삶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술을 마시면 늘상 어깨동무를 하던 일본인 동료조차 요즘 부쩍 거리를 두더라. 거래선이 끊길까 염려하는 한인 중소업체의 불안감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밤 일본 도쿄 신주쿠구 신오쿠보역. 2001년 유학생 이수현씨가 철로에 뛰어내려 일본인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이케멘도리 거리를 따라 조성된 한인타운에선 심심찮게 교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도쿄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에 비견될 정도로 인기 있는 데이트 코스였다. 하지만 태극기와 일장기가 내걸린 한류백화점은 일찌감치 셔터를 내렸고, 한식집들도 좌석의 5분의1이 채 차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한 숯불구이집 주인은 “(한국 정부의 태도는)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면 속이 시원하긴 해도 당장 생계에 영향을 받으니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한국과 일본 정부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일본 열도의 한인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은 이번에도 겉으로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신오쿠보 한인타운이 경제적 타격을 입는 등 후폭풍이 가시화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들은 “곪은 게 터졌다.”면서 “조만간 폭풍이 몰려올 것”이라며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 식당과 한류관련 상품 판매업소들의 매출은 급락했다. ‘명동김밥’의 종업원은 “손님이 지난달 초보다 하루 평균 60% 줄었다.”면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러 오던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뜸하다.”고 전했다. 걸그룹 카라의 브로마이드가 붙은 한류 기념품점에선 “하루 매출이 10만엔(약 144만원)가까이 됐는데 최근 10%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유학생 조지영(23)씨는 “한때 일본인 부랑배들이 신주쿠 거리에서 ‘다케시마가 누구 땅이냐고 물은 뒤 폭력을 행사한다’는 괴담이 돌았다.”면서도 “일본 정치권과 언론이 나서 반한 감정을 부추기지만 일본인 다수는 아직 동요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신오쿠보의 상권이 타격을 받은 데 대해선 “일본인 한류 ‘오타쿠’(마니아)들이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잠시 발길을 끊은 것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내놓았다. 실제로 한인 사회의 불안감과 달리 도쿄 중심부의 오다이바와 신바시, 롯폰기 등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침착했다. 오다이바의 비너스 아웃렛에서 쇼핑하던 여고생 하시모토 마나미(18)는 “가족들도 다케시마 얘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면서 “이민호가 주연한 ‘시티헌터’를 최근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롯폰기에서 만난 여대생 요코 다케베(23)와 하마시키 나트미(21)는 “한류에 특별히 관심도 없지만 한국에 대해 나쁜 감정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은행원이라는 사사모토 슈헤이(43)는 “다케시마 문제는 궁지에 몰린 일본 민주당 정권과 레임덕에 놓인 한국 정부가 벌인 합작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세카이분카 출판사의 도미오카 게이코 에디터는 “일본인들은 현대사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수가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지난달 10일 9911명, 11일 1만 3223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오히려 8.3%, 42.2%씩 늘었다. 송일국 등 일부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의 방영이 연기됐지만 지상파·위성방송의 한류 드라마 방영 건수는 지난 4월 36편에서 이달 53편으로 47.2%나 늘었다. 한 대기업의 주재원은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정치권과 5% 남짓의 우익세력이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향후 일본진출 한국기업과 한인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도쿄 글 사진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유장한 물줄기는 길을 따라 둥그렇게 굽이쳤다. 물줄기 곁에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을 복주머니 모양으로 감싸고 돌았다. 사람들은 충주호에 잠긴 땅을 떠나 새로 만들어진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남한강에 그물을 던져 쏘가리, 메기 등속을 잡았고, 오랫동안 그래왔듯 매년 가을마다 육쪽 마늘밭을 일궜다. 충북 단양군 이야기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1342~1398)이 단양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와 최소한 이곳에서만큼은 사실(史實)로서 회자되고 있다. 또한 현대사 속 시대와 불화했던 비운의 시인이자 뛰어난 출판편집자인 신동문(1928~1993)이 문필을 꺾고 이곳으로 찾아들어 밭을 일구며 말년을 보냈다. 단양 사람들은 그의 시비를 만들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끼워 넣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삼봉로를 중심축 삼아 씨줄날줄로 얽혀 있다. 삼봉로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로명 주소는 꽤 친숙했다. 외지인이 흔히들 찾는 장다리식당(삼봉로 370)이며 돌집식당(중앙2로 11), 대교식당(중앙2로 9) 같은 제법 유명한 식당에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니 “어디세요. 차 가지고 오시면 삼봉로 ×× 찍으시면 돼요.”라고 대뜸 도로명 주소를 얘기한다. 1985년 계획지구로 조성돼 길이 비교적 간명하게 만들어졌고 유서 깊은 옛이야기와 현대 문화사의 인물 등이 잘 버무려져 생활 속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덕분이다. 횡으로 늘어선 삼봉로에서 수변로, 중앙로, 도전로, 별곡로, 상진로가 종으로 삐져 나와 있다. 아무튼 삼봉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식당마다 순댓국도 마늘순댓국, 갈비탕도 마늘갈비탕, 밥도 마늘밥, 떡갈비도 마늘떡갈비 등 온통 마늘 음식 천지다. 여기에 대강양조장(대강로 60)에서 만든 소백산 막걸리를 곁들이면….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입가를 스윽 훔치며 즐겨 찾을 만한 길이다. 하지만 식도락만으로 만족하기에 삼봉로가 품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함의는 너무도 크다. ●‘신동문 시비’ 소금정 공원에 위치 신동문이라는 이름은 어지간한 문학 딜레탕트에게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신동엽, 김수영 등과 같은 1960년대 현실 참여시인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1960년 4·19혁명을 태평로 길 위에서 직접 봤고, 사회 변혁에 대한 확신을 총칼에 맞서는 청년의 거친 숨결 속에서 품는다. 그리고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群)들’이라는 108행에 이르는 격정의 장시를 써내려갔다. 신동문은 시인이면서 또한 기획력 번뜩이는 편집자이자 문단의 마당발이기도 했다. 잡지 ‘새벽’의 편집주간이던 그는 문예지도 아닌 그 잡지에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을 게재한다. 이후에도 신구문화사, 사상계, 창작과비평사 등 진보적 문학주간지의 토대를 닦고 당대 시인, 문인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야 함은 남은 자의 당연한 몫. 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을 나와 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면 상진대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삼봉로가 시작된다. 차로 5분 남짓만 가면 대명리조트(삼봉로 187-17), 청소년수련관(삼봉로 187-18) 바로 길 맞은편에 소금정 공원이 있다. 남한강 기슭과 삼봉로 사이에 좁고 길게 위치한 공원이다. 주거하는 건물이 아니기에 도로명 주소는 따로 없다. 이 공원 입구에 바로 신동문 시비가 있다. 화강암 너럭바위에 새겨 놓은 시편은 ‘내 노동으로’의 마지막 세 번째 연이다. 그가 마지막 남긴 시다. 굳이 전문을 읽지 않더라도 그의 절절했던 고뇌가 스며온다. 신동문은 문득 절필한 뒤 1975년 서울을 등지고 단양으로 낙향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계속된 독재정권이 그를 낙담케 했음은 훗날 사람들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서 포도밭을 가꿨고, 침술을 배웠다. 마지막 떠날 때까지 18년 동안 약 10만명에게 무료로 시술해 줬고, 일대에서는 그를 ‘신바이처’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경주 단양군 민원봉사과장은 “신동문 선생은 병원을 찾을 수도 없이 가난한 이들의 병을 침술로 치료해 준 뒤 치료비 걱정에 쭈뼛거리고 있으면 씩 웃으며 ‘노래나 한 자락 불러 봐라’하며 돌려보냈다고 들었다.”고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가 생전을 보낸 집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으로만 남아 있다. 옛 중앙선 철길을 따라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가는 길 왼쪽에 있지만 아무런 표지도 없어 쉬 찾기 어렵다. ●정도전의 지략 서린 도담삼봉 물론 단양 하면 소년 정도전의 지략과 담대함이 서린 도담삼봉을 빼놓을 수 없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과정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사상가이자 지략가였다. 그에 앞서 낡은 체제를 바꾸고자 했던 혁명가였다. 비록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불운의 정도전이지만 단양땅에 와서는 민간설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의 호가 삼봉이라는 점, 아호가 종지라는 점 등을 가운데 놓고 얘기는 살을 붙이고 몸집을 키워 간다. 지현숙 단양군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의 얘기인즉슨, 본래 강원도 정선에 있던 도담삼봉이 홍수로 떠내려 왔단다. 정선군에서 자꾸 도담삼봉에 대한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자 그 지역 관아들이 쩔쩔 매고 있는데, 그때 소년 정도전이 나타나 “도담삼봉 때문에 오히려 물길이 막혀 홍수가 나니 도로 가져가라.”고 했단다. 모두 소년 정도전의 총명함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여기에 정도전의 아명인 종지(宗之)도 사실은 단양에서 가장 높은 양백산전망대인 종지봉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덧붙여졌다. 종지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종지봉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선후관계는 알 수 없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단양 사람들의 정도전에 대한 자부심이다. 뭐래도 좋다. 도담삼봉에 가려면 삼봉로를 따라 뱀허리처럼 굽이치는 남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 상류로 거슬러 가야 한다. 도담삼봉 터널을 지나자마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로 이뤄진 세 개의 봉우리에 각각 처봉, 남편봉, 첩봉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자욱한 아침 물안개가 피어 있는 모습이나 남한강이 흘러 돌아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김홍도와 최북 등 조선 후기에 도담삼봉을 그림으로 그린 이들이나 당대의 문인들이 써내려간 한시(漢詩)가 100편이 넘는다 하니 도담삼봉 휴게소 건물(삼봉로 644-13)에 오르거나 10분 남짓의 발품을 팔아 석문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담삼봉이 특히 멋지다. 글 사진 단양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18회는 광주 북구 민주로를 소개합니다.
  • 연극 ‘일곱집매’로 본 기지촌 여성의 삶

    연극 ‘일곱집매’로 본 기지촌 여성의 삶

    “왜 굳이 이런 아픈 기억을 꺼내 들은 거죠?”(관객) “잊고 싶은 기억을 자꾸 끄집어내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나온 ‘닿을 수 없는 거리’라는 표현처럼, 슬픔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 문제를 한국에 있었던 어떤 사건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겁니다.”(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식에 따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관객)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면서 현대사의 부침에 시달린 우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제야 꺼내놓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인식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이 교수) 지난 2일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는 한바탕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과연 1950~70년대 기지촌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가, 한국 현대사의 부침 속의 희생양에 불과한가이다. 주제를 던진 것은 이날 무대에 오른 연극 ‘일곱집매’였다. 일곱집매는 주한 미군 캠프인 험프리가 있는 경기 평택시 안정리의 옛 이름이다. 일곱 집이 다정한 자매처럼 살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군사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밀어버렸고, 6·25전쟁 때 미 공군 비행장으로 바뀌어 캠프 험프리가 들어섰다. 이 안정리 기지촌을 무대로, 연극은 이제는 노인이 돼 쓸쓸히 살아가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담고 있다. 무대는 할머니들이 사는 작고 허름한 방 7개에 둘러싸인 앞마당이다. 기지촌 아이들의 입양 문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한국계 미국인 하나가 이곳을 찾았다. 냉정한 순영 할머니와 발랄한 화자 할머니, 기지촌에서 낳고 자란 청년 춘권, 미군 철수 활동가 상철, 기지촌의 젊은 여성 필리핀인 써니를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아들 마이클을 미국으로 입양 보낸 순영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려던 하나는 되레 질문을 받는다. “기자, 작가, 어린 여대생들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갔지. 하지만 달라진 게 없어. 선생은 뭐에 쓰려고 하지? 박사학위를 따는 거 말고는, 뭐가 달라지는데?” 하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기지촌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 등을 거쳐 그가 찾아온 대답은 ‘기록’이다. “인간이 단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망각될 수 없도록. (할머니) 죽기 전에 슬픔을 새겨두고 떠나요. 사람들이 몰랐다고 말할 수 없도록.” 두 할머니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기지촌에 들어온 어린 순영이 미군에게 하룻밤 대가로 받은 돈은 40달러. 살림에 보태고 동생들을 공부시키는데 유용했다. 아버지는 몸을 팔았다면서 때리기 일쑤였지만 돈이 부족하면 또 순영을 찾았다. 당시 정부는 ‘외화벌이 산업역군’이라면서 미군을 ‘손님’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성병관리까지 했다. 행여 도망이라도 갈까봐 ‘애국자’라고 부추기고 “나중에 아파트 한 채 받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유출을 막았다. 한국 현대사의 부침 속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이제는 ‘자발적으로 몸을 판 양공주’라는 오명과 정부의 외면 속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연극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처절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눈물을 담아둔 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애써 욕지거리를 해대면서 유쾌하게 포장하는 화자 할머니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덕분에 2시간 30분에 달하는 연극은 지루할 새가 없다. 대본을 쓴 이양구(극단 해인 대표)씨는 “(화자 할머니는)긴 연극을 끌어가기 위해 설정한 인물이 아니라 실제 할머니들에게서 본 모습의 일부”라면서 “너무나 아픔이 깊어서 선뜻 꺼내 들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포장하면서도 늘 죄책감에 사로잡혀 계시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1950~70년대 우리나라의 기지촌 문제는 강제냐 자발이냐 이런 차원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준 상처와 제도적·구조적 폭력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리에서 10년째 기지촌 할머니들을 돌보면서 이 공연을 기획한 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연극 ‘나비’(2005)를 통해서 확산됐듯이 이 연극으로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9일까지. 1만~1만 5000원. 070-8236-044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국악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 5~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추상표현주의 화가이자 오페라 연출가인 아힘 프라이어가 새롭게 해석한 ‘수궁가’. 군주국 바다와 무정부 상태인 뭍을 오가는 민중영웅 토끼(미스터 래빗)를 통해 현대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국립극장이 올해 처음 시작한 국립레퍼토리 시즌제의 개막작이자 국립창극단의 세계거장시리즈 첫 작품. 2만~9만원. (02)2280-4115~6.
  • 전쟁과 분단, 한국의 시뻘건 속살 드러내다

    전쟁과 분단, 한국의 시뻘건 속살 드러내다

    “글쎄요. 회전이랄까, 유행이랄까. 화단도 너무 흐름이 빠른 것 같아요. 새로운 게 뭐 있느냐는 얘길 자꾸 듣다 보면 아, 나도 그러면 바뀌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답변이 선선했다. 새로운 작품을 보니 신학철 작가가 떠오른다고 하자 딱히 부정한다거나 뭔가 다른 접근법임을 애써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럼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라고 받아넘긴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거리낌 없이 다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한술 더 떠 “붉은 산수 때도 중국 그림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뭘.”이라며 씩 웃어 버린다. 이세현(45) 작가. 10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본관과 신관을 통틀어 전시한다. 전시가 이렇게 대규모로 이뤄진 까닭은 그놈의 인기 때문이다. 해외에서의 바쁜 전시 일정 때문에 이번 전시가 국내에서 여는 첫 개인전일 뿐 아니라 그간 변신을 위해 별러 왔던 신작을 동시에 선보이는 자리다. 본관에는 기존 연작 시리즈, 신관에는 신작 시리즈가 전시돼 있다. 작가는 홍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7년 가까이 무명으로 지냈다. 그림은 물론 조각, 설치, 드로잉 등 안 해본 게 없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가슴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기댈 곳은 작품뿐. 전 재산을 털어 영국으로 떠났다. 마지막 도전지 영국에서 그만 대박이 터졌다. 첼시예술대학원 졸업 전시에서 작품이 다 팔려 나가더니 입소문이 나 각종 전시에 불려다녔다. 세계적인 컬렉터인 울리 지그가 직접 런던 작업실에 찾아와 작품을 사 가기도 했다. 거기에다 미국 페이스갤러리에서 그의 작품 3점을 판화로 제작하기까지 했다. 국내에선 익숙지 않은 이름이라 조용히 넘어갔지만 페이스갤러리는 검증된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만 다룬다.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에 이어 두 번째였을 뿐 아니라 젊은 작가를 택했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화젯거리였다. 작품의 어떤 점이 관심을 끌었을까. 역시 답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우리 산하를 봤던 경험을 살려 그 느낌대로 고향 통영 앞바다를 그렸다. 단, 녹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속에다 분단, 전쟁, 군사 문화, 급격한 근대화가 낳은 을씨년스러운 풍경들을 섞어 넣었다. 한국의 시뻘건 속살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낸 것이다. 울리 지그도 그의 작품을 수집한 이유로 “분단의 비극성을 정면으로 다룬 작가를 찾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붉은 산수’ 혹은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연작의 탄생이다. 대작인 데다 세필로 붉은색 한 가지만으로 장시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은 그야말로 악전고투다. 최신작에서는 변신이 뚜렷하다. ‘붉은 산수’ 연작이 수평적인 공간성이 두드러진다면 이번에 내놓은 ‘분재 산수’는 수직적인 시간성이 돋보인다. 풍경 속에 녹아 있는 듯 펼쳐져 있던 이런저런 한국 현대사의 흔적들이 이번엔 분재 모양으로, 수직적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도 인공적인 냄새가 가득 풍기는 ‘플라스틱 가든’이다. 혹시 피비린내 나는 슬픈 역사를 인위적으로 꺾어 넣어 억지로 저렇게 아름다운 분재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되묻는 듯하다. 웃긴 건 그 분재를 담은 그릇이 고무 대야라는 점이다. 성공한 역사, 위대한 역사라는 공치사들이 그렇게 유치하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아닌지 되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 외에 설치 작품도 있는데 ‘무릉도원’이 눈에 띈다. 철근 기둥 위에다 시멘트 집을 얼기설기 엮었는데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는 그 모습이 현재의 우리 아니겠느냐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02)739-493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서해안 인근 천산 정상에 감춰진 ‘천산수도원’. 폐암으로 투병하다 죽은 형 강영호의 유품을 챙기던 강상호는 형의 유고 속에서 이 신비의 수도원을 처음 접한다. 이곳은 흙과 돌과 나무로만 지어진 절벽 위 천혜의 요새다. 72개의 지하 방에선 아름다운 벽서들이 발견된다. 성서를 정성껏 필사한 벽서 안에 숨은 역사적 진실에 대해선 그 누구도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실 속 구원 문제에 집착해 온 작가 이승우(53·조선대 교수). 그의 신작 장편 ‘지상의 노래’(민음사 펴냄)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서사구조를 품고 있다. 5명의 주인공이 엮어 가는 다섯 이야기는 복잡한 형이상학적 다층 구조를 이뤄 흥미를 배가시킨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현대사의 굴절된 단면에 숨은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 가고 이 과정에서 ‘인과’(因果)라는 삶의 굴레를 확인한다. 죽은 자가 ‘유업’(遺業)을 남기고 살아있는 자가 이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소설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원리로 작용한다. 그러나 작가는 “서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과 뉴욕을 덮친 태풍 사이의 관련만큼 비정형적이고 무의식적이다. 나비가 날갯짓하지 않아도 태풍은 일어날 것”(40쪽)이라며 인과에 대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형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수도원을 답사하고 벽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대기업 해외 주재원 강상호의 이야기, 그 책을 읽고 천산수도원의 벽서에 관한 글을 쓴 대학 교회사 강사 차동연의 이야기, 차동연이 쓴 글을 읽고 그에게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 퇴역 군인 ‘장’의 이야기, 장의 이야기에 나오는 군사정권의 핵심 한정효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박 대위에게 겁탈당한 사촌 누나 연희를 사랑했던 ‘후’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천산수도원. 이곳은 강영호의 군 복무지이자 퇴역 군인 ‘장’이 군사정권 수뇌인 장군의 명을 받고 한정효를 가둬 둔 장소다. 또 다른 장군은 권력을 잡은 뒤 문제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수도원을 덮쳐 좁다란 지하 방에 수도사들을 몰아넣고 산 채로 매장했다. 자신이 사라지면 모두 평화로울 것이라 믿고 이곳을 떠났던 한정효는 죽은 ‘형제들’의 시신을 매장하며 방마다 그림을 그리듯 벽서한다. 한정효를 돌보며 그의 일을 마무리하고 숨을 거둔 ‘후’까지. 등장인물들이 모두 죄의식에 사로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천산수도원의 거대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독자들이 받는 감흥은 남다르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쓴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떠올릴 만하다. 형이상학과 신학이 잘 버무려진 소재가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이는 작가가 문학계에선 드물게 신학을 전공한 뒤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 온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수도원 지하의 72개 방을 초대 교회 신자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 이곳에서 발견된 엄청난 분량의 벽서는 중세 벽서인 ‘켈스의 책’에 비유한다. 이 가운데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미적 추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랑과 죄가 얽히며 작용하는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10년간 이야기의 모티브를 머릿속에 꼭꼭 숨겨 놓았으면서도 제목만큼은 미리 정해 뒀다고 했다. 그런데 왜 천상의 노래가 아닌 지상의 노래일까. 작가는 “천상수도원이 공간적 배경이지만 이곳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결코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천상수도원이 이상향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부족함과 불안정함, 부당함을 역설적으로 얘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구원, 욕망, 권력이 매개체였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교회사 강사인 차동연이 수도원 72개 방에 묻힌 ‘형제들’의 비극을 신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설명하지 못했을 때 ‘후’의 입을 빌려 소설로 풀어 나간 것처럼 작가도 무언가 얘기하려 했다. ‘5·16’과 19년 뒤에 일어난 ‘5·18’의 아픔이 그것이다. 책 속에 등장한 2개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작가는 “굳이 안 써도 다 아는 ‘장군’의 이름들과 같은 것”이라며 “역사적 사건을 구체화하지 않고도 이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박사논문은 ‘홍경래 난’… 高大 한국사 강의 마치고 출국 앞둔 앤더스 칼슨 런던대 교수

    박사논문은 ‘홍경래 난’… 高大 한국사 강의 마치고 출국 앞둔 앤더스 칼슨 런던대 교수

    앤더스 칼슨(46)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교수는 박사논문으로 19세기 초 홍경래의 난을 연구했다. 덕분에 한국사 연구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특이하게 평가된다. ‘홍경래 난’(1811년) 연구자는 칼슨 교수를 포함해 오수창 서울대 교수 등 국내외로 3명밖에 없다. 한국사에서 순조-헌종-철종으로 이어지는 1860년까지 세도정치와 민란 등 19세기 연구는 거의 중세의 암흑과 가까운 수준으로, 18세기 영·정조 시대에 대한 화려한 조명과 비교하면 더욱더 척박하다. 20일 서울 효자동에서 만난 칼슨 교수는 “원래 근대 한국에 관심이 있는데, 먼저 19세기 한국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19세기는 ‘민란의 세기’로 관심이 많았다. 지도교수인 유럽 한국학의 대모인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교수가 홍경래의 난을 연구해 보라고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초 방한해 고려대 국제하계대학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강의한 그는 27일 출국하기에 앞서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막걸리 파티로 사랑방 좌담회를 열고 있었다. “19세기 초 민란이 많았던 이유는 국가가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중앙정부와 상업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방사회 사이에 사회·경제적 갈등이 불거져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19세기에 조선 왕조의 국력은 어디서부터 약해졌나? 칼슨 교수는 1809~1815년의 대흉년을 이유로 들었다. 6~7년간의 가뭄과 흉작은 조선의 국부, 경제력을 바닥에서부터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 식민지배의 아픈 경험 때문에 19세기 조선을 비판적으로 보는데, 너무 비판적으로 보면 안 된다. 긍정적으로 보라.”고 덧붙였다. 칼슨 교수는 “19세기 세도정치와 어린 왕들의 리더십 부재를 자꾸 비판하는데, 부적절하다. 조선에는 500년 전통의 관료제도가 버티고 있었기에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는 적절하지 않다. 또한, 세도정치도 관료제도하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결정과 행동이 중요하고, 사회 변화는 개인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국고가 탕진돼 세금을 더 거두려고 제도를 바꾸자 1860년대에 다시 민란이 일어난 것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의 식민지화는 내부로부터의 붕괴가 아니라 외부 변수 즉, 일본의 야심과 서양국가들의 조선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만약 홍경래의 난이 성공했더라도 성공적인 근대화로 가기보다는 제국주의적 압력으로 조선은 훨씬 더 약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세기 말 동학혁명 역시 제국주의적 압력으로 성공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덧붙였다. 한류가 유럽의 한국학 연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하였다. “K팝과 한류가 유럽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를 끌자, 최근 런던대 한국학 신입생이 30여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10년 전에는 5명에 불과해 폐강될까 조마조마했다며 방긋 웃는다. 그는 “런던대는 학비도 있고, 입학 조건도 까다로워서 적지만, 학비가 없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한국학과에는 100여명씩 몰린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스톡홀름대학을 마치고 그저 한국에 매료돼 1991~1993년 2년 6개월 한국에서 살았다는 그는 “런던대 한국학과에서 1학년을 마치고 나면 고려대의 교환학생으로 오는데, 학생들이 완전히 한국에 넘어간다.”고 했다. 홍대, 이대, 명동, 대학로 등 24시간 다이내믹하게 재밌고 즐겁게 놀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류 덕분에 신입생이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가 유럽 학계에서는 새로운 고민거리다. 한국을 알고 싶어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늘어났지만, 한국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과제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광주야말로 아리랑에 부합하는 곳”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아리랑 음악만을 위한 축전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가 갖는 의미와 정서를 녹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오는 10월 5~7일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세계아리랑축전’의 김명곤(60) 총감독은 21일 서울 동성로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축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아리랑과의 인연이 각별하다는 말로 운을 뗀 김 총감독은 “1986년에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첫 공연으로 ‘아리랑’을 올렸다.”면서 “연극만이 아니라 영화와 창극 등 무대에서, 또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활동하면서도 아리랑을 살려내는 것을 내 숙제이자 행복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야말로 현대사에서 고통과 한을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넘어선 아리랑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라면서 “고난과 한을 공감과 상생, 자유의 정신으로 승화시키자는 의미를 담아 시민들과 젊은이가 함께하는 축전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고 강조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심청가엔 유·불·선 아우르는 종교와 철학이”

    “심청가엔 유·불·선 아우르는 종교와 철학이”

    “심청가에는 유교와 불교, 선교를 아우르는 종교와 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효’사상이 상실된 현대사회에서 가정의 근간을 되살리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현대사회 가정 되살리는 데 기여”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배우 겸 국악인 오정해(41)씨가 지난 20일 열린 원광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국악예술학 석사과정을 마친 오씨는 2004년 원광대 대학원 불교학과에 진학, 본격적으로 동양예술학을 공부해 왔다. 처음부터 철학 박사 학위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동양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구하고자 시작한 공부였다. 향학열을 불태웠는데도 학위 취득에는 8년이 걸렸다. 마당극 ‘학생부군신위’와 영화 ‘천년학’ 등에 출연하며 연기와 판소리 등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1997년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둔 오씨에게는 가정생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씨는 “박사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하고 수년간 자료를 모았는데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정말 힘들었다.”며 일인다역이 쉽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학위 취득에 8년 걸려 ‘판소리 심청가의 예술성 연구’란 주제로 쓴 박사 학위 논문에선 판소리와 종교, 철학을 짝짓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오씨가 보는 심청가는 소리와 사상, 예술성 등 3박자를 갖추고 있다. 오씨는 “판소리가 우리 민족의 한과 흥 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심청가는 종교적, 철학적 깊이가 있다.”면서 “심청가에 들어 있는 효와 삶의 도리 등을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봤다.”고 말했다. 심청가의 ‘인당수’(물)는 어머니를 뜻하는데, 이를 우리 구전 설화를 통해 증명하는 식이다. 인당수는 당시 한반도에 폭넓게 퍼져있던 모태신앙을 대변하기도 한다. 한편 오씨는 1999년 전주 우석대 국악예술과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뛰어든 뒤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연극을 통해 관객을 만날 계획을 갖고 있는 오씨는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83.97% 득표’ 박근혜 새누리 대선후보 확정

    ‘83.97% 득표’ 박근혜 새누리 대선후보 확정

    20일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오는 12월 19일 실시되는 18대 대통령 선거의 당 후보로 선출되면서 120일간의 시험대에 섰다. 헌정 사상 유력 정당의 첫 여성 후보다. 그러나 박 후보의 주변 인사들은 박 후보의 정치와 역사인식에 대한 태도에 문제점이 있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흔히 지적되는 ‘소통’에서의 문제점도 이 ‘태도’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그가 썼던 글에서 이러한 점을 이해할 수 있다. 1994년부터 한국문인협회 수필분야 회원으로 활동한 여류 문인 박근혜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글을 쓴다는 평가를 받는다. 삶, 죽음,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글을 썼는데 부모의 피살, 측근들의 배신이 낳은 고통과 고독의 산물로 여겨진다. 일부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를 ‘지나친 진지함’과 연결 짓는다. 옳고 그름, 진정성과 본질에 대한 집착이 ‘정치적 감성 전달’에 미숙함을 낳고 있다는 얘기다. “정제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지만, 설득과 논쟁에 약하다.”, “토론식 학습은 선호하지만, 쟁점에 대한 논쟁은 꺼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프트한 대화는 잘하지만, 까칠한 대화에는 약하다.”고도 한다. 감성을 선호하는 20대, 논쟁을 원하는 30~40대에 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정책 논의는 잘하지만 가치와 담론을 다루는 대화에는 잘 나서지 않는다.”는 대목은, 그가 어떤 위기에 처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5·16 등 현대사에 대한 시각의 문제’는 현재 그를 향한 공세의 주요 초점이다. 그는 역사 인식과 이념 문제에 맞닥뜨렸으나 아직까지는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가장 격렬할 수밖에 없는 논쟁의 장이지만 그는 여기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논쟁은 먼저 당내에서 터져 나올 전망이다. “이 문제에 대한 돌파 없이 대선 승리를 바라볼 수 없다.”는 의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박 후보는 이날 오후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전체 유효투표의 83.97%인 8만 6589표를 얻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김문수(8955표·8.68%) 후보, 김태호(3298표·3.20%) 후보, 임태희(2676표·2.60%) 후보, 안상수(1600표·1.55%) 후보 등의 순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자녀로는 처음으로 대선에 도전하는 박 후보는 당선 직후 수락 연설 및 기자회견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지운·김경두기자 jj@seoul.co.kr
  • “오늘은 게으름뱅이의 날!” 침실로 변한 남미도시

    남미에서 이색적인 기념일행사가 열려 화제다. 콜롬비아의 이타구라는 지방도시에서 19일(현지시간) ‘국제 게으름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게으름뱅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을 맞아 이타구이에서는 주민들이 침대, 해먹(나무 등에 달아 사용하는 그물이나 천으로 된 침대), 매트리스 등을 들고 길로 쏟아져 나왔다. 길에는 침대가 줄지어 놓이고, 가로수와 전신주 사이에는 해먹이 설치됐다. 도시는 순식간에 집단 야외침실로 변했다. 주민들은 침대 위에서 뒹굴거나 잠을 자며 마음껏 게으름뱅이 하루를 보냈다. ’게으름뱅이 체질’이 아니라 잠을 청하지 못한 사람들은 잠옷을 입은 채 길에 모여 놀이판을 벌였다. 현지 언론은 “게으름의 날을 맞아 주민들이 완전 나태에 빠졌다.”면서 “길에선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당당히 ‘국제’라는 표현까지 붙은 ‘국제 게으름의 날’은 28년 전 이타구에서 제정(?)됐다. 노동절은 버젓이 존재하면서 국제적으로 쉬는 날은 없다는 데 착안해 주민들이 스스로 지키기 시작한 기념일이다. 기념행사를 주관한 주민 마리오 몬토야는 “노동을 기념하는 날이 있다면 쉬는 날, 게으름을 피우는 날을 기념하는 날도 있어야 민주적”이라면서 “평소와는 다른 일로 하루를 보내보자는 뜻으로 날을 정해 행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주민은 “현대사회는 휴식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면서 “휴식이야 말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개발시켜주는 최고의 상태”라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민주, 연일 박근혜 책임론… 朴 “진상위 조사 끝난 일”

    민주, 연일 박근혜 책임론… 朴 “진상위 조사 끝난 일”

    민주통합당은 17일에도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재야 정치인이었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37년 전 타살 의혹과 관련, “반드시 사망 원인에 관한 진상을 밝혀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세의 표적은 박 전 대통령의 딸로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다. 책임론을 제기,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로 비쳐진다. 이해찬 대표는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장준하 선생은 현대사의 증인”이라며 “사망 원인에 관한 규명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박 후보는 부당한 통치, 불의의 정권에 맞서 죽어간 죽음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지금 권력을 탐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5·16쿠데타와 유신 정권에 대한 반성과 사죄”라고 공격했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장준하 선생의 주검이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계신다. 참 나쁜 사람들! 그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며 승승장구를 꿈꾸고 있다니….”라며 박 후보를 겨냥했다. 이 대표는 정세균 대선 경선 후보와 함께 경기 파주시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37주기 추모식 및 장준하공원 개원식에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이날 ‘장준하 선생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부영 상임고문을 임명, 박 후보의 사죄를 촉구하며 책임을 묻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후보는 이날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현장 목격자 등에 대한 조사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나. 그런 기록들이 있는 것을 나도 봤다.”고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99세 노작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채색하다

    99세 노작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채색하다

    “거, 왜 나이 얘기를 꺼내 가지고…. 전 나이 생각 안 합니다. 여기 모두가 죽을 사람들이고, 산다는 건 곧 죽음 속에서 산다는 얘기지요. 모두가 만나는 게 죽음인데 때 되면 간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투는 어눌하고 발음은 샌다. 그런데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흘리는 싱긋 웃음은 해맑다. 9월 16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강남에서 한국 추상의 1세대, 기하추상의 대부로 꼽히는 한묵(작은 사진) 작가의 회고전이 열린다. ●시대별 작품 40점·미공개작 4점 전시 작가는 1914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아홉으로 최고령 생존 작가다. 그런데 1961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직 거기서 산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자주 이름이 들먹여지는 작가는 아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데다 스스로도 작품에 진전이 없다 싶으면 애써 전시를 하지도 않았으니 더 그랬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작업해 왔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낸 도록이 첫 도록이란다. 한국 개인전도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오늘의 작가전’ 이후 처음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만주로 이주한 작가는 그 곳에서 미술을 배우고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공부를 이어 나갔다. 광복과 함께 금강산에 머물다 분단으로 북한에 남았다가 1·4 후퇴 때 월남해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를 거쳐 홍익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야말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 낸 것이다. 이제 홍익대 교수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꾸려졌을 때 작가는 홀연히 그림을 제대로 그리겠노라며 프랑스행을 택했다. 프랑스 공부를 통해 이전 한국에서 하던 구상 같은 추상을 버리고 완전한 기하추상의 작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작품 40여점과 미공개작 4점을 전시해 뒀는데 작가의 변화상이 읽힌다. 초기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상황을 그려냈다면, 프랑스로 건너간 뒤엔 3차원적 공간을 2차원 캔버스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들, 3차원에다 시간까지 끌어들여 만들어낸 작품들로 차츰차츰 변화해 왔다. ●한국전쟁 후 모습·광주민주화운동 참사 그려 아무리 추상이라 해도 한국 현대사를 겪은 상흔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1958년 잡지 ‘신태양’ 표지 그림으로 그린 ‘흰 그림’은 발표 당시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해서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이다. 1987년작 ‘동방의 별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담은 작품이다. 부인 이충석(81)씨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르몽드 신문에 그 참상이 전해졌는데 그 뒤로 한 1년 정도는 붓을 못 잡을 정도로 괴로워했다.”면서 “그들의 눈동자를 위로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작가와 이중섭(1916~1956)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유학 시절, 금강산 시절, 서울 시절을 모두 함께했을 뿐 아니라 이중섭의 마지막을 수습한 이가 바로 작가다. 그런데 이중섭 얘기만 나오면 작가는 입을 잘 열지 않는다. 생전에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고 거의 굶어 죽다시피 한 그가 안타까워 그러는 것이다. 부인에 따르면 지난해 이중섭 장례식 때 쓰였던 방명록을 우연히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건네줬더니 너무 속상해하며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고 했다. 그 비통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싫다는 것이다. 부인조차 “이중섭에 대한 얘기는 아픔이 너무 커서인지 절대 안 하려고 해서 나도 별로 들은 바가 없다.”고 전할 정도다. 기자의 질문에도 작가는 회갑 때 이중섭을 기리며 지었다는 ‘친구가 날아간 동녘하늘을 바라보며’라는 시만 보여줄 뿐이었다. (02)519-08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8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법

    18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법

    15일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18일 치러지는 제1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국사시험) 지원자가 6만 484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5월 실시된 제15회 시험 지원자 수(3만 3993명)의 약 두 배다. 특히 중급 시험 지원자는 모두 2만 6942명으로, 지난번 시험(1만 2056명)보다 2.2배 늘어났다. 내년부터 교원임용시험에 응시하려면 한국사 시험 3급 이상(중급)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5급 공채와 법원행정고시에는 한국사 시험 2급 이상(고급)이 응시 요건으로 적용되고 있다. ●중급 지원자 지난 5월 시험보다 2.2배↑ 고급 지원자도 3만 266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전 시험(1만 8530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초급시험 지원자는 5235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사 시험의 ‘널뛰기 난이도’는 올 4월 교육과학기술부 감사 이후 안정화되는 추세다. 고급 시험 합격자는 14회에서는 69%, 15회에서는 63%로 각각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출제 측이 이 정도 수준의 난이도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한국사시험은 구석기~고려·조선 전기~후기·근현대사가 3분의1씩 같은 비율로 출제되고 있다. 분야별로는 정치·문화사의 비율이 경제·사회사보다 높았다. 직전 15회 시험에서도 고대 국가의 혼인풍속(7번), 강강술래(22번) 등 문화사에 관한 문제가 다수 출제됐다. 이 같은 문화사 중심의 출제에 대해 이운우 에듀스파 한국사 강사는 “수험서 중심에서 답사나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 중심으로 출제함으로써 한국사 공부법을 바꾸려는 의도가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난이도 중급 중심으로 기출문제 풀어봐야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우선 기출문제 중심으로 공부하되 상급 이상의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는 다시 출제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합격률이 4~5%대에 불과했던 7회와 10회 기출 문제를 놓고 씨름하기보다는 다른 회차의 문제를 많이 풀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 최근 사료제시형 문제나 문화재에 대한 문제들이 자주 출제되고 있다. 중요한 사료는 따로 챙겨 보고 문화재 사진도 어느 시대, 어떤 문화재인지 확실하게 기억해야 한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기고] 지역에서 시작한 나라사랑/박춘희 송파구청장

    [기고] 지역에서 시작한 나라사랑/박춘희 송파구청장

    얼마 전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웃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 ‘애국가의 작곡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한 초등학생이 자신감 넘치는 목청으로 ‘베토벤’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허무맹랑한 장난이라고 넘기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는 국민의 인간적 삶을 보장한다. 손기정 옹이 따낸 눈물의 금메달에서부터 보트피플, 탈북 난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나라 없는 사람들의 설움을 근현대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이처럼 국가는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울타리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갖가지 이유를 들어 애국가를 폄하하려는 이들도 등장했다. 아무리 국가보다는 개인, 우리보다는 나를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한다 하더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애국가와 국민의례마저 간소화라는 명분 아래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구청장직을 수행하면서 참석했던 크고 작은 행사를 되짚어 보면 역시 국민의례를 간략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고, 더러는 아예 생략하는 행사도 있었다. 간소화라는 개념은 ‘빨리빨리’ 문화의 소산이다. 이를 평가절하하거나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라 사랑을 표현하는 최소한의 의식마저 잠식당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지역에서부터 나라 사랑의 분위기를 다잡아야 했다. 필자와 직원들, 그리고 주민들이 마음을 합쳤다. 이내 ‘태극기 달기’, ‘애국가 부르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 6월에는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부터 종합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올림픽로 한복판에 태극기를 약 3㎞에 걸쳐 게양했다. 이후로도 동(洞)마다 태극기 거리를 지정하고, 국경일이 되면 태극기 달기, 태극기 그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현행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정상 태극기 꽂이 설치에 관한 기준이 없는 2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에도 태극기 꽂이 설치를 의무적으로 시행해 총 3700여개의 태극기 꽂이를 새로 만들었다. 애국가를 부를 기회도 늘려가고 있다. 동별 애국가 부르기 대회는 물론, 모든 행사마다 애국가 제창 순서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참석한 주민들에게는 그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유도했다. 태극기를 향해 서서 모든 주민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이제 송파에서만큼은 낯선 광경이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에서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신세대 엄마들, 거동이 힘든 장애인들까지도 무더위와 불편함을 감내하며 국민의례와 애국가 부르기에 기꺼이 동참해 줬다. 나라 사랑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 것이다. 올여름 우리는 유난히도 애국가와 태극기를 자주 접했다. 제30회 런던올림픽의 이야기다. 지구 반대편에서 울려퍼지는 응원의 함성에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됐다.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경기장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느낀 가슴 벅찬 감격, 그 내면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이제는 작은 행동으로나마 나라 사랑의 마음을 표현할 때다.
  • 순경 필기시험 D-9 마무리 정리법

    순경 필기시험 D-9 마무리 정리법

    올 하반기 순경 공채 필기시험이 오는 25일 치러진다. 일반순경, 전의경 특채, 101경비단 등을 모집하는 이번 채용에는 모두 558명을 최종 선발한다. 여기에 3만 1480명이 지원해 56.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영어·한국사(비전공 과목)와 형사소송법·경찰학·형법(전공 과목)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최근 출제 경향을 짚어 본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 경찰 영어시험에서는 생활영어가 전과 달리 3문제 이상 출제된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이영신 김재규경찰학원 영어 강사는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을 따로 정리하고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복습하라.”면서 “무리하게 두꺼운 생활영어 책을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영어 기출 문제 중요… 가끔 그대로 출제되기도 이번에도 앞뒤 대화를 바탕으로 빈칸을 채우는 문제 등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A, B의 대화에서 A가 “Can I give you a hand?”(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B의 대답을 들은 뒤 ‘No, not at all.”(아뇨. 전혀요)라고 대답했을 때 B가 한 말을 고르는 문제가 나올 수 있다. “If you don’t mind.”(괜찮으시다면요)라는 ‘부정을 통한 긍정 대답’이 답이다. 또 ‘Don’t bother’(괜찮다. 그럴 필요없다), ‘Your party’(너의 일행·동료), ‘Don’t bite off more than you can chew’(분수를 지키자) 등의 표현도 알아 둬야 한다. 문법은 지난해 하반기 3문제, 올 상반기에는 4문제가 출제됐다. 문법은 기초 실력부터 쌓아 올려야 하는 부분이라 공부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더라도 순경 채용시험의 경쟁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고득점이 필수다. 특히 문법의 경우 문제를 푸는 것뿐만 아니라 영어의 전반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무조건 암기만 하기보다는 좀 쉬운 교재부터 자기 수준에 맞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편이 낫다. 어휘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 각각 4~5문제가 출제됐다. 최근에는 어려운 어휘보다는 중·하급 난이도의 어휘가 많이 출제되고 있다. ‘take down’(철수하다), ‘hang around’(돌아다니다), ‘turn a deaf ear to’(~에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다), ‘make up for’(보상하다, 보충하다), ‘turn down’(거절하다), ‘look after’(돌보다) 등의 어휘가 출제될 수 있다. 또 ‘locate’(~을 찾다, 발견하다), ‘violation’(위반, 침해), ‘tendency’(경향, 추세), ‘esteem’(존경), ‘preface’(서문), ‘prelude’(전조, 전주곡) 등의 어휘도 헷갈릴 수 있으므로 꼼꼼히 챙겨 둬야 한다. 독해 문제는 매년 9문제씩 가장 큰 비중으로 출제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3문제가 독해에서 출제되기도 했다. 주로 주제, 요지, 제목을 찾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으며 빈칸, 글의 흐름, 일치, 순서, 지칭추론 등이 최근 집중적으로 출제되는 경향이다. 이 강사는 마무리 공부법으로 우선 지금까지 자신이 봐 왔던 교재를 꾸준히 반복학습할 것을 강조했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교재로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전체 목차를 잡아 보는 방식 등으로 최종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기출 문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경찰 영어는 기출 문제가 거의 비슷하게 출제되거나, 심지어 그대로 반복 출제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한국사 개념 문제는 주로 경제사·사회사에 집중 올 상반기 처음 실시된 한국사에서는 자료 제시형 문제가 10문제, 개념이나 지식을 묻는 일반적인 단답형 문제가 10문제 각각 출제됐다. 단원별로는 부여의 풍습 등 초기 국가에서 1문항, 고대에서 5문항(왕들의 업적, 삼국시대의 문화, 통일신라 시기 유학, 농민 안정책, 발해사), 중세 고려에서 3문항(정치기구, 사회시책, 사회조직), 근대 태동기 조선에서 4문항(조선 후기 국학연구, 사회구조의 변동, 조세제도, 성리학의 변화), 근·현대사에서 6문항(흥선대원군의 업적, 갑신정변,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3·1운동, 신간회, 근대 사학사),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1문항이 출제됐다. 신명섭 강사는 “상반기에는 첫 출제라 조금 쉽게 출제됐지만, 이번부터 난이도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선 조선정치사 부문은 상반기에 전혀 출제되지 않아 이번 출제 가능성이 점쳐진다. 조선 전기 체제정비 과정에서 주요 왕들의 업적, 사림의 대두와 붕당 정치, 조선의 통치체제는 반드시 정리해 둬야 한다. 또 선사시대 관련 내용은 꼭 암기해야 한다. 석기시대의 유적지와 청동기, 철기시대의 주요 주제와 특히 고조선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고, 석기시대 유적지는 단순히 암기만 하지 말고 지도를 통해 위치를 파악해야 하며, 고조선은 청동기·철기 시대와 관련지어 공부해야 한다. 또 신라와 발해의 관계, 고려와 조선의 대외관계 변화, 대청 관계의 변화 등 시대별 대외 상황도 정리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독립운동은 국내·만주·중국 본토로 나눠 내용을 잘 정리해 둬야 한다. 또 해방과 분단과정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과정 전체도 중요하다. 한국사 시험에서 개념 문제는 주로 경제사와 사회사에 집중된다. 수취체제의 변화과정을 시대별로 비교해 알아 둬야 한다. 고대에서는 민정문서, 조선 수취체제의 변화 등이 출제 빈도가 높다. 영정법, 대동법, 군역의 변화과정과 결과, 영향도 꼼꼼히 챙겨 두자. 토지제도의 시대별 변화 역시 전체적으로 살필 부분이다. 특히 조선에서 과전법, 직전법, 관수관급제, 녹봉제로의 변화와 그 결과 국가의 토지 지배력 강화와 지주전호제의 확산은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사회사에서는 여성의 지위와 가족, 혼인제도의 변화와 관련해 고려와 조선을 비교하는 문제가 출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 강사는 마무리 공부법으로 ▲단원별 개요로 빠른 시간에 내용을 정리해 볼 것 ▲기본서의 단원별 큰 제목과 소제목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 볼 것 ▲주제·단원별 문제집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 등을 강조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해방뉴스 1호엔… 기독교역사박물관 전시회

    해방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 격동의 혼란기 한국 교회와 개신교 인사들의 모습이 녹아 있는 희귀 자료들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경기 이천시 초지리·관장 한동인 장로)이 박물관 설립 11주년을 맞아 15일부터 올 연말까지 마련하는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교회의 재건과 건국활동’전. 해방과 분단 상황에서 한국 교회와 개신교 인사들의 활동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 68점이 전시된다. 전시 자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의 활동이 담긴 신문, 잡지, 단행본, 설교집들.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김구 선생이 간략하게 논술한 내용을 정리한 ‘김구 선생 혈투사’며 ‘대한독립운동과 임시정부투쟁사’, ‘임마누엘 제9호’, ‘맑스주의와 기독교’, ‘어린이신문’ 등 모두 이 박물관을 건립한 한영제 장로가 생전 30여년간 청계천을 돌며 수집한 것들이다. 이 가운데 1945년 9월 15일 발행된 ‘해방뉴스 1호’와 이승만·김일성·조만식 등 좌우 진영의 주요 인사들이 포함된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씨명’, 재미교포 김용중이 설립한 한국문제연구소에서 만든 ‘Voice of Korea’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희귀 자료다. 1945년 9월 15일 발행된 ‘해방뉴스 1호’는 해방 이후 국내 상황과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씨명’은 1945년 9월 6일 경기여고 강당에서 개최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선출된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 명단이다. 그런가 하면 ‘Voice of Korea’는 1943년부터 1961년까지 발행한 주간지를 엮은 것으로 6·25전쟁 당시의 ‘고창 학살 사건’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이 밖에 독도 전경 사진과 독도 관련 최초의 본격적인 학술 논문 ‘독도 소속에 대하여’(심석호)를 실은 ‘사해 창간호’(1948년 12월 12일 조선사연구회 발행)와 유관순의 사촌 올케로 국내 최초의 여성경찰서장(경북경찰국 소속 대구 여성경찰서장)을 지낸 노마리아의 활동을 담은 사진첩도 흥미롭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복원 현장 공개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복원 현장 공개

    15일 광복절을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인 ‘경교장’ 복원 공사 현장이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된다. 복원 과정을 살펴보고 싶은 시민은 이날 오후 1시, 2시, 3시 정각에 경교장 앞으로 오면 담당자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경교장은 내부에 임시정부 관련 전시물을 더해 오는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일에 시민들에게 정식 개방될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평동에 있는 경교장은 백범 김구의 사저로 1945~46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사용된 곳이다. 이곳은 국무위원들이 대한민국의 광복과 새로운 미래를 계획했던 곳이고, 민중들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벌이던 무대였으며,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을 맞아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인 경교장 복원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교장은 지난 60여년간 병원시설, 외국 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훼손돼 오다 2년 전 강북삼성병원의 협조로 복원 공사에 착수했다. 현재 건물을 복원하는 1단계 공사는 공정률 97%에 달하며 오는 20일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경교장 복원 현장에는 당시 김구 주석을 비롯, 국무회의 각료 등 역사적 인물들의 숨결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김 주석이 사용한 서재에는 역사적 사건들을 고스란히 목격했을 벽면 가구와 벽난로가 보존돼 있으며, 천장 몰딩이나 타일 등도 그대로 남아 1930년대 건축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창문에는 김 주석을 향해 발사된 총탄 흔적이 복원돼 있다. 김수정 시 문화재과 조사연구팀장은 “실질적으로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였던 이곳이 복원되면 임시정부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고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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