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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8)광주 북구 민주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8)광주 북구 민주로

    그날 이후 광주(光州)는 울분과 참담함의 도시였다. 대인동 시외버스공용터미널 광장 앞에 틀어놓은 치직거리는 흑백 TV 비디오 화면 앞에 모여든 누군가는 “오메, 저거를 어째야스까잉~.”하며 혀를 끌끌 찼고, 누군가는 그 끔찍한 광경에 눈시울을 찍어 내며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도, 눈을 떼지도 못한 채 몸서리쳤다. 대학생 형이나 삼촌이 있는, 일찌감치 머리가 굵은 중·고등학생들은 모여서 그 비디오테이프를 쉬쉬하며 봤고, 불끈거리는 가슴 속 혈기를 어쩌지 못해 종주먹만 연신 휘둘렀다. 그날 이후에도 광주는 평온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통곡조차 허락되지 않아 숨죽여 흐느꼈고, 술로 푸념하는 방향 없는 증오가 충장로 밤거리에서 흔들거렸고, 휴가 나온 얼룩덜룩 군복의 군인은 봉변당할까 무서워 얼른 민간인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학살은 끝났고, 광주는 평온해 보였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해마다 5월이면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지나다녔던 질척질척했던 길은 번듯한 4차선 도로가 됐고, 볼품없는 풀두덩에 비석 하나씩 서 있던 망월동 묘지는 웅장한 국립묘지가 됐다. 희미해진 기억은 다시 복원된다. 2012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이하 5·18민주묘지) 앞길 민주로를 찾았다. 길 위에서는 더 이상 그날 이후의 울분과 참담함을 찾기 어려웠다. 광주에서 담양군으로 넘어가는 동문대로를 시·군 경계선 조금 못 미치는 곳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민주로다. 4.7㎞ 길이의 길에 도로명주소는 1~459번까지 붙여졌다. 5·18민주묘지는 ‘민주로 200’이니 중간 약간 못 미친 곳 오른편에 있는 셈이다. 민주로에서 5·18민주묘지 앞으로 518번 버스가 지나갔다. 의미심장하다. 광주 도심과 시 외곽인 망월동, 운정동 등을 잇는 시내버스다. 노선번호가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런데 단순히 번호만 그렇게 부여한 것이 아니었다. 노선표를 죽 살펴보니 상무지구 5·18자유공원에서 시작해 5·18기념문화센터를 지나 금남로를 따라 옛 전남도청~옛 상무관-~대인시장~전남대 정문 등 1980년 5월 그날 광주의 흔적을 샅샅이 더듬어 보도록 설계됐음을 눈치챌 수 있다. 20분에 한 대씩이니 제법 뜸하다. 설, 추석 같은 명절이나 5월에는 민주로가 일방통행으로 바뀌며, 5·18민주묘지까지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5·18민주묘지 들머리인 ‘민주의 문’을 넘어서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민주주의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진혼의 공간이다. 민주광장, 추념문, 참배광장을 지나 산기슭 즈음부터 묘역이다. 맨 앞줄에 5월 27일 새벽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을 지키면서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시민군 대장 윤상원이 누워 있다. 왼쪽 세 번째 줄에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은 최미애는 당시 꽃 같은 스물여섯의 새색시였음을 보여주듯 흰색 웨딩드레스 사진이 영정으로 놓여 있어 보는 이를 더욱 처연케 한다. 언론인의 사표이자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송건호 선생 등이 묻힌 5·18민주묘지를 둘러보고,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흔히 망월동 구묘지라고 말하는 민족민주열사묘역이 있다. 1980년 당시 셀 수 없이 쌓여 가는 시신들을 치우기 위해 신군부가 급하게 만든 묘역이다. 안장 절차도 없이 손수레와 트럭에 실어 버리다시피 묻어버린 곳이다. 국립민주묘지가 조성된 뒤 신묘역으로 이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이들이 망월동 땅밑으로 찾아들어와 민주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김세진, 이한열을 비롯해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으며 1991년 5월 항쟁을 촉발시켰던 강경대 등이 안장돼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광주시민, 중·고등학생 등 한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에 5·18의 속살과 진실을 처음으로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자리도 예정돼 있다. 2004년부터 “죽게 되면 꼭 광주 망월동에 묻히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알렸던 힌츠페터는 지금 독일에서 심장병으로 투병 중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던 광주시 측도 사실상 허용 입장을 밝혔다. 이쯤 되면 5·18이 왜 더 이상 1980년 5월에 머무르지 않는지, 왜 광주라는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망월동 묘지 앞에 주저앉아 서럽게 우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2002년 7월 망월동묘지는 국립5·18민주묘지로 승격됐고, 죽은 이들과 다친 이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상도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영화화 작업도 숱하게 이뤄졌다. 또한 5·18 관련 기록물은 지난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더 이상 ‘1980년 5월, 광주’라는 시공에 머무르지 않음을 선언적으로 보여 주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 듯한 ‘민주’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길 위에서 망월(望月)의 간절함은 빛이 바랜 듯하다. 하지만 매년 5월 민주로 위를 걷는 시민들은 여전히 수런거린다. 광주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광주 정신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이다. 실제 아직껏 시민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두둥실 달이 떠올라 어두운 역사의 밤길을 비춰 주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여전하다. 글 사진 광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19회는 충남 아산시 아산온천로입니다.
  • [서울광장] 고통의 기억, 치유의 정치/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고통의 기억, 치유의 정치/김종면 수석논설위원

    201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단연 국민통합이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화합과 상생의 대동사회를 열어가라는 것이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쟁도 결국은 양극화에 찌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보듬으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인간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만 살 수 없듯 배부른 돼지로만도 살 수 없다. 사실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밥 문제에 앞서 정신의 허기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과거와의 화해’ 행보는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박 후보는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지난 악연을 뒤로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해 의미 있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전태일재단 방문은 쌍용차 노동자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산업화시대 노동 탄압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불쑥 간 것 자체가 어쩌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일이었는지 모른다. ‘유신’으로 상징되는 현대사의 상처는 피해자들에게는 영원한 트라우마다. 국민통합이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만큼이나 고달픈 일이라 해도 멈춰서는 안 된다. 문제는 다시 역사인식이다. 박 후보는 그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해 유신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기존 입장 그대로다. 새누리당이 삼고초려해 영입한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조차 유신과 관련,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법관 시절에 ‘긴급조치가 위헌이다’는 판결을 한 바가 있다는 것”이라고 공언한 마당이다. 그럼에도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은 요지부동이니 보편적 상식을 지닌 국민으로서는 그가 내미는 손을 선뜻 잡기 어렵다. 유신은 40년이 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만만찮은 후과를 수습해야 하는 현안이다. 지난 역사의 얼룩으로 말미암아 통합의 사각지대가 생긴다면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박 후보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역사 청맹과니’들부터 좀 정리했으면 좋겠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다. 국민은 측근에게서 후보를 본다. 심심찮게 구설에 오르는 홍사덕 전 의원의 말이 가관이다. 그는 유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 연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된 바로 다음 날, 그렇잖아도 박 후보의 파격적인 통합 발걸음이 진정성을 의심받는 판에 그게 할 소리인가. 유신은 국가를 사유화하고 권력을 인격화했다. 그 결과 헌정이 결딴났다. 아무리 과를 떠나 공을 인정한다 해도 결코 미화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박 후보 둥지에는 ‘침묵의 나선’이 흐르나 보다. 쓴소리도 곧은 소리도 듣기 힘들다.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며 때로는 그보다 더 강경하게 ‘충성 처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정치판의 생리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염우염치는 있어야 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개념’ 발언에 ‘그 입 다물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박 후보의 박제된 이미지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유신 저항의 상징인 김지하 시인까지 ‘접촉 대상’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국민통합을 무슨 기획상품 찍어내는 것쯤으로 여긴다면 그건 코미디다. 억지춘향식 파격의 연출은 감동이 아니라 진정성을 갉아먹는 바이러스다. 다급할수록 평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과오에 대한 반성 없는 ‘100% 대한민국’ 구호는 공허하다. 가짜 희망이다. 그런 정신적 인프라로 통합행보에 나서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차라리 통합의 좌판을 거두는 편이 낫다. 역사에 비약은 없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역사라고 해서 건너뛸 수 없다. 유신의 망령을 빨리 털어내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이웃이 철지난 ‘유신병’을 앓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유신을 버려야 박 후보도 살고 국민도 산다. 박 후보가 대통령의 딸이 아니어도 유신에 대해 똑같은 평가를 내릴까. 박 전 대통령을 오로지 전직 대통령으로서만 대상화해 보면 된다. 망각에도 윤리가 있다. 피어린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라. 더 낮은 곳에서 더 열린 자세로 미래를 위한 치유의 정치를 펴나가기 바란다. jmkim@seoul.co.kr
  • 두개의 인혁당 사건 박근혜 헷갈렸나

    두개의 인혁당 사건 박근혜 헷갈렸나

    11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여러 다른 증언들도 감안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또 다른 논란거리를 낳았다. 이날 박 후보와 새누리당의 움직임 등 전후 사정을 고려했을 때 1, 2차 인혁당 사건을 혼동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당 안팎에서는 신한국당 국회의원을 지낸 박범진 전 한성디지털대 총장의 ‘인혁당 증언’이 박 후보의 ‘여러 다른 증언’ 발언의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박 전 총장은 2010년 출간한 학술총서 ‘박정희 시대를 회고한다’에서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고 썼다. 그는 “입당할 때 문서로 된 당의 강령과 규약을 봤고, 북한산에 올라가서 오른손을 들고 입당 선서를 한 뒤 참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총장이 언급한 인혁당 사건은 1974년 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아닌, 1964년 중앙정보부가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 변란을 획책했다고 밝힌 1차 인혁당 사건을 의미한다. 반면 2007년 대법원의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2차 인혁당 사건은 1975년 8명이 사형 선고를 받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들은 당시 대법원에서 최고 징역 3년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후 1차 사건은 노무현 정권 시절 과거사위원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짜맞추기’라고 결론내려졌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1, 2차 인혁당 사건을 헷갈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면서 “박 후보와 박 캠프 사람들에게 한국 근·현대사 특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김경두·황비웅기자 golders@seoul.co.kr
  • 수난의 현대사, 축제 통해 되새겨요

    수난의 현대사, 축제 통해 되새겨요

    15~16일 국내 최대 독립·민주화 축제 ‘2012 서대문 독립 민주 페스티벌’이 열린다. 서대문구가 민족 수난사를 상징하는 지역에서 현 세대의 역사 의식을 재정립하고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우선 15일 오후 1시 30분부터 메인무대인 독립문 앞에서 주민과 학생이 참여한 독립·민주 퀴즈 프로그램이 열려 흥을 돋운다. 오후 3시 30분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통곡의 미루나무’ 아래에서 독립·민주·미래 세대를 하나로 묶는 ‘통곡을 희망으로’ 이야기 콘서트가 진행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행복뮤지션 이수나·김수환·김성훈씨가 초청됐다. 오후 6시부터는 본행사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독립·민주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풋프린팅 행사가 진행된다. 독립운동가는 1920~1925년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된 김영근·이봉양·임우철·이인술 선생의 발자취를 담는다. 민주인사는 1976년 유신철폐를 주장한 ‘3·1 민주구국선언’과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가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한 이해동(78) 목사와 인권 변호사인 한승헌(78) 전 감사원장 등이 풋프린팅에 참여한다. 구한말 의병장으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한 허위 선생과 군부정권에 항거한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반부조상도 제작해 유족에게 전달한다. 오후 7시부터는 초청가수 울랄라세션을 비롯해 치바사운드·바닐라시티·더크랙 등 인디밴드, 국악공연단이 대거 출연하는 열정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16일에는 오후 5시 30분부터 맛깔나는 광대무대인 ‘연희집단 더 광대’ 공연이 열리고 7시부터는 독도를 세계에 알린 가수 김장훈이 열창한 뒤 관객과 솔직담백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문 구청장은 “독립 민주 페스티벌은 세대와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 속에서 과거와 대화하고 성찰을 통해 미래로 향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安측 “협박이 구태지 문제제기가 구태냐” 민주 “朴, 유신옹호는 헌법의식 결여 방증”

    야권은 10일 MBC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야권에 역공을 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해 일제히 재반격을 가했다. 민주통합당은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발언에 날을 세웠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측은 박 후보가 금태섭 변호사의 폭로를 ‘구태’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날을 세웠다.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현대사마저 부정하는 후보가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그는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는 단순한 과거사의 문제가 아니라 그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 폐해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사의 문제”라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박 후보가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회피, 부인하는 것은 헌법의식이 결여됐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도 즉각 논평을 내고 “박 후보가 홍사덕 전 공동선대위원장의 ‘유신옹호’ 발언을 ‘개인적 의견’으로 치부하고,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한 것은 그의 무책임, 무원칙, 역사의식 부재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공격했다. 금 변호사는 박 후보가 “친구끼리의 이야기를 확대 해석하고 침소봉대하는 것이 구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협박한 것이 구태지 문제제기가 어떻게 구태냐.”고 대응했다. 그는 “협박이 문제가 있다는 내 생각을 말한 것인데 이를 새누리당이 네거티브 공방이라고 하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추가 대응에 대해서는 “상황을 보면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박근혜 “유신·인혁당 역사판단 맡겨야”… 과거사 입장 고수

    박근혜 “유신·인혁당 역사판단 맡겨야”… 과거사 입장 고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10일 5·16 쿠데타와 유신 평가 논란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면서 “5·16 당시 상황을 봤을 때 내가 만약에 당시에 개인이고, 지도자였다면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객관적으로 봐야 되지 않나.”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유신 논란에 “판단은 국민의 몫” 박 후보는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친박근혜계 홍사덕 전 의원의 유신 옹호 발언에 대해 “그것은 그분의 생각”이라고 전제한 뒤 “몇십 년 전 역사라 지금도 논란이 있고, 다양한 생각이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가 객관적인 판단을 해 나가지 않겠는가, 그것은 역사의 몫이고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당 안팎에서 수차례 입장 변화를 촉구했지만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박 후보의 강한 뜻이 읽힌다. 박 후보는 “우리 현대사는 압축적 성장의 역사로, 굴절도 있었고 그림자도 있었다.”면서 “성과는 계속 발전시키고, 어두운 면과 상처는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유신에 대해 “아버지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까지 하면서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다.”면서 “그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에 피해를 입으신 분들, 또 고초를 겪은 분들에 대해서는 딸로서 사과드리고, 우리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된다.”고 밝혔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반도가 박 전 대통령을 만들어 간 방법과 박 전 대통령이 한반도를 만들어 간 방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한다는 글이 많이 생각난다.”며 한 재미 작가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이어 인혁당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관련,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라고 반문한 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답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 박 후보의 입장이) 더 진전된 것이 없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에 대해 대법원에서 서로 다른 판단이 나왔다.”고 거듭 설명했다. ●安 협박 논란에 “친구간 이야기” 박 후보는 정준길 전 공보위원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불출마를 종용, 협박했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폭로에 대해서는 “친구끼리 한 이야기인데 이걸 이렇게 확대해석하고 침소봉대하는 것도 구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정 전 공보위원이) 좀 더 주의를 했어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 사이의 전화통화를 너무 침소봉대해서 사찰이니 협박이니 공방을 벌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정 전 위원이 들었다고 전한 ‘안철수 루머’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그 내용은 잘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검사 출신인 정 전 공보위원을 기용한 것이 안 원장의 검증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런 것과 전혀 관계없다.”고 답했다. 박 후보는 “저도 네거티브를 하도 많이 당해서 제가 멘붕(멘털 붕괴)이 올 지경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우리가 그런 식으로 하는 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당내에서 그런 역할을 맡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일부의 국정조사 주장에 대해서는 “통일이 안 된 개인 생각을 이야기한 것 같다.”면서 “당 지도부나 여기서는 출마도 안 한 분이고 친구끼리 주고받은 걸 가지고 무슨 국정조사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경두·김효섭기자 golders@seoul.co.kr
  • [책꽂이]

    ●내겐 너무 쉬운 사진(유창우 지음, 위즈덤스타일 펴냄)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에다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의 확대까지 겹쳐 이제는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찍는다. 찍다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 그런데 기계장치에 대한 설명과 암호 같은 부호들에 그만 떡하니 막혀버린다. 일간지 사진기자인 저자는 동호회급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말을 쏙 빼놓고 어떻게 사진을 즐길 수 있을지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1만 5000원. ●법은 어떻게 독재의 도구가 되었나(한상범 지음, 삼인 펴냄) 헌법학자이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을 지낸 저자가 한국 땅에서 독재를 가능케 했던 법의 문제를 다룬다. 보통 초대 헌법 기초자로 꼽히는 유진오를 두고 사민주의적 요소를 적극 도입했다는 평이 내려지는데, 저자는 그보다는 일제의 잔재가 잔뜩 끼어있다고 보는 쪽이다. 계엄 상황에서 견제 없이 군부의 독재가 가능하도록 한 점, 예산 편성권이 정부에 있다고 명시한 점 등을 꼽는다. 1만 3000원. ●마하티르(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지음, 정호재·김은정 옮김, 동아시아 펴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면, “IMF의 식민지가 되느니 굶어죽겠다.”고 선언한 인물이 있었다. 그 말레이시아 정치지도자 마하티르 총리가 쓴 자서전이다. 일본의 침체에 대해서도 서구의 비판이 민감해져 일관성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정도니 아시아적 가치의 대표적 옹호자답다. 22년간 독재하에서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는 동방정책을 내세웠고, 이를 통해 가난한 농업국가를 신생공업국으로 변모시켰다. 2만 8000원. ●독부 이승만 평전(김삼웅 지음, 책보세 펴냄) 근현대사 주요 인물들 평전을 펴내고 있는 저자의 이승만 평전이다. 다른 평전과 달리 ‘독부’(獨夫)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잔적(殘賊)은 일부(一夫)에 불과하다, 일부를 죽였단 말은 들었어도 왕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는 맹자의 말에서 따왔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유학자 심산 김창숙이 이승만에 대해 평가한 말에서 따왔다. 2만원.
  • 게으르다고 해서 패배자는 아니다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얼개는 비슷하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여전이 논다. 그러다 베짱이가 돈 많은 개미에게 값싼 이자로 돈을 빌려 집도 사고, 땅도 샀다. 마침 부동산 값이 폭등했고, 부자가 된 베짱이는 추운 겨울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보냈다. 반면, 여름내 일만 했던 개미는 허리디스크에 걸려 고생한다는 줄거리다. 새 버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게으름에 대한 인식 변화다. 아침형 인간으로 태어나 죽도록 일만 하기보다는, 좀 더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이옥순 지음, 서해문집 펴냄)가 담고 있는 내용 또한 게으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사실 근면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게으름은 일종의 죄였다. 그런데 시간을 쪼개 일하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게으르다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이면에 불편한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지역과 시대, 종교에 따라 게으름에 대한 인식이 천차만별이라고 본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서양에서는 부지런함이 미덕으로 평가받지만 피지배의 아픔을 겪은 아프리카와 인도에서는 적절한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게 오히려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고 여겼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에서는 근면이 칭송받지만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일견 나태해 보이는 행동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게으름이 죄악으로 치부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저자는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영향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죽도록 일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라고 낙인 찍는 분위기가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면서 게으름을 경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제국 시기, “조선인의 90%가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있다.”고 지적한 독립신문 사설에서 보듯 근면을 강조하는 논조가 주를 이뤘다. 본격적인 산업화에 나선 1965년 대한민국의 구호는 ‘일하는 해’였고, 이듬해는 ‘더 일하는 해, 그 다음 해는 ‘전진의 해’였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4년에도 ‘올해는 일하는 해’였다. 현대사회에서도 게으른 사람은 곧 ‘패배자’로 낙인 찍힌다. 게으름의 장점은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게으름이 세상의 모든 비난을 다 받고 노동과 근면이 칭찬을 독점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들이 되레 문제를 야기하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1만 19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독도·위안부 사태 이후…두 얼굴의 日本] 도쿄 신오쿠보 한인타운을 가다

    [독도·위안부 사태 이후…두 얼굴의 日本] 도쿄 신오쿠보 한인타운을 가다

    “열흘 전쯤 30여명의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승합차 3대에 나눠 타고 몰려와 ‘조센진은 돌아가라’며 행패를 부립디다. 일본 경찰은 보고만 있고요. 대통령의 ‘독도’(다케시마) 방문은 성급했다고 봅니다. 여태껏 일본인 10명 중 1명만 ‘다케시마’란 단어를 알았는데, 지금은 90% 이상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귀가하던 재일교포 회사원 강대근(45·IT기업 근무)씨는 목소리부터 높였다. “15년간 일본에 거주하면서 이처럼 답답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한국 정부가) 정치력 부재로 재외 국민의 삶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술을 마시면 늘상 어깨동무를 하던 일본인 동료조차 요즘 부쩍 거리를 두더라. 거래선이 끊길까 염려하는 한인 중소업체의 불안감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밤 일본 도쿄 신주쿠구 신오쿠보역. 2001년 유학생 이수현씨가 철로에 뛰어내려 일본인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이케멘도리 거리를 따라 조성된 한인타운에선 심심찮게 교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도쿄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에 비견될 정도로 인기 있는 데이트 코스였다. 하지만 태극기와 일장기가 내걸린 한류백화점은 일찌감치 셔터를 내렸고, 한식집들도 좌석의 5분의1이 채 차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한 숯불구이집 주인은 “(한국 정부의 태도는)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면 속이 시원하긴 해도 당장 생계에 영향을 받으니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한국과 일본 정부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일본 열도의 한인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은 이번에도 겉으로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신오쿠보 한인타운이 경제적 타격을 입는 등 후폭풍이 가시화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들은 “곪은 게 터졌다.”면서 “조만간 폭풍이 몰려올 것”이라며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 식당과 한류관련 상품 판매업소들의 매출은 급락했다. ‘명동김밥’의 종업원은 “손님이 지난달 초보다 하루 평균 60% 줄었다.”면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러 오던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뜸하다.”고 전했다. 걸그룹 카라의 브로마이드가 붙은 한류 기념품점에선 “하루 매출이 10만엔(약 144만원)가까이 됐는데 최근 10%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유학생 조지영(23)씨는 “한때 일본인 부랑배들이 신주쿠 거리에서 ‘다케시마가 누구 땅이냐고 물은 뒤 폭력을 행사한다’는 괴담이 돌았다.”면서도 “일본 정치권과 언론이 나서 반한 감정을 부추기지만 일본인 다수는 아직 동요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신오쿠보의 상권이 타격을 받은 데 대해선 “일본인 한류 ‘오타쿠’(마니아)들이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잠시 발길을 끊은 것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내놓았다. 실제로 한인 사회의 불안감과 달리 도쿄 중심부의 오다이바와 신바시, 롯폰기 등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침착했다. 오다이바의 비너스 아웃렛에서 쇼핑하던 여고생 하시모토 마나미(18)는 “가족들도 다케시마 얘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면서 “이민호가 주연한 ‘시티헌터’를 최근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롯폰기에서 만난 여대생 요코 다케베(23)와 하마시키 나트미(21)는 “한류에 특별히 관심도 없지만 한국에 대해 나쁜 감정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은행원이라는 사사모토 슈헤이(43)는 “다케시마 문제는 궁지에 몰린 일본 민주당 정권과 레임덕에 놓인 한국 정부가 벌인 합작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세카이분카 출판사의 도미오카 게이코 에디터는 “일본인들은 현대사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수가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지난달 10일 9911명, 11일 1만 3223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오히려 8.3%, 42.2%씩 늘었다. 송일국 등 일부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의 방영이 연기됐지만 지상파·위성방송의 한류 드라마 방영 건수는 지난 4월 36편에서 이달 53편으로 47.2%나 늘었다. 한 대기업의 주재원은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정치권과 5% 남짓의 우익세력이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향후 일본진출 한국기업과 한인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도쿄 글 사진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유장한 물줄기는 길을 따라 둥그렇게 굽이쳤다. 물줄기 곁에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을 복주머니 모양으로 감싸고 돌았다. 사람들은 충주호에 잠긴 땅을 떠나 새로 만들어진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남한강에 그물을 던져 쏘가리, 메기 등속을 잡았고, 오랫동안 그래왔듯 매년 가을마다 육쪽 마늘밭을 일궜다. 충북 단양군 이야기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1342~1398)이 단양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와 최소한 이곳에서만큼은 사실(史實)로서 회자되고 있다. 또한 현대사 속 시대와 불화했던 비운의 시인이자 뛰어난 출판편집자인 신동문(1928~1993)이 문필을 꺾고 이곳으로 찾아들어 밭을 일구며 말년을 보냈다. 단양 사람들은 그의 시비를 만들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끼워 넣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삼봉로를 중심축 삼아 씨줄날줄로 얽혀 있다. 삼봉로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로명 주소는 꽤 친숙했다. 외지인이 흔히들 찾는 장다리식당(삼봉로 370)이며 돌집식당(중앙2로 11), 대교식당(중앙2로 9) 같은 제법 유명한 식당에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니 “어디세요. 차 가지고 오시면 삼봉로 ×× 찍으시면 돼요.”라고 대뜸 도로명 주소를 얘기한다. 1985년 계획지구로 조성돼 길이 비교적 간명하게 만들어졌고 유서 깊은 옛이야기와 현대 문화사의 인물 등이 잘 버무려져 생활 속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덕분이다. 횡으로 늘어선 삼봉로에서 수변로, 중앙로, 도전로, 별곡로, 상진로가 종으로 삐져 나와 있다. 아무튼 삼봉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식당마다 순댓국도 마늘순댓국, 갈비탕도 마늘갈비탕, 밥도 마늘밥, 떡갈비도 마늘떡갈비 등 온통 마늘 음식 천지다. 여기에 대강양조장(대강로 60)에서 만든 소백산 막걸리를 곁들이면….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입가를 스윽 훔치며 즐겨 찾을 만한 길이다. 하지만 식도락만으로 만족하기에 삼봉로가 품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함의는 너무도 크다. ●‘신동문 시비’ 소금정 공원에 위치 신동문이라는 이름은 어지간한 문학 딜레탕트에게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신동엽, 김수영 등과 같은 1960년대 현실 참여시인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1960년 4·19혁명을 태평로 길 위에서 직접 봤고, 사회 변혁에 대한 확신을 총칼에 맞서는 청년의 거친 숨결 속에서 품는다. 그리고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群)들’이라는 108행에 이르는 격정의 장시를 써내려갔다. 신동문은 시인이면서 또한 기획력 번뜩이는 편집자이자 문단의 마당발이기도 했다. 잡지 ‘새벽’의 편집주간이던 그는 문예지도 아닌 그 잡지에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을 게재한다. 이후에도 신구문화사, 사상계, 창작과비평사 등 진보적 문학주간지의 토대를 닦고 당대 시인, 문인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야 함은 남은 자의 당연한 몫. 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을 나와 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면 상진대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삼봉로가 시작된다. 차로 5분 남짓만 가면 대명리조트(삼봉로 187-17), 청소년수련관(삼봉로 187-18) 바로 길 맞은편에 소금정 공원이 있다. 남한강 기슭과 삼봉로 사이에 좁고 길게 위치한 공원이다. 주거하는 건물이 아니기에 도로명 주소는 따로 없다. 이 공원 입구에 바로 신동문 시비가 있다. 화강암 너럭바위에 새겨 놓은 시편은 ‘내 노동으로’의 마지막 세 번째 연이다. 그가 마지막 남긴 시다. 굳이 전문을 읽지 않더라도 그의 절절했던 고뇌가 스며온다. 신동문은 문득 절필한 뒤 1975년 서울을 등지고 단양으로 낙향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계속된 독재정권이 그를 낙담케 했음은 훗날 사람들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서 포도밭을 가꿨고, 침술을 배웠다. 마지막 떠날 때까지 18년 동안 약 10만명에게 무료로 시술해 줬고, 일대에서는 그를 ‘신바이처’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경주 단양군 민원봉사과장은 “신동문 선생은 병원을 찾을 수도 없이 가난한 이들의 병을 침술로 치료해 준 뒤 치료비 걱정에 쭈뼛거리고 있으면 씩 웃으며 ‘노래나 한 자락 불러 봐라’하며 돌려보냈다고 들었다.”고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가 생전을 보낸 집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으로만 남아 있다. 옛 중앙선 철길을 따라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가는 길 왼쪽에 있지만 아무런 표지도 없어 쉬 찾기 어렵다. ●정도전의 지략 서린 도담삼봉 물론 단양 하면 소년 정도전의 지략과 담대함이 서린 도담삼봉을 빼놓을 수 없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과정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사상가이자 지략가였다. 그에 앞서 낡은 체제를 바꾸고자 했던 혁명가였다. 비록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불운의 정도전이지만 단양땅에 와서는 민간설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의 호가 삼봉이라는 점, 아호가 종지라는 점 등을 가운데 놓고 얘기는 살을 붙이고 몸집을 키워 간다. 지현숙 단양군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의 얘기인즉슨, 본래 강원도 정선에 있던 도담삼봉이 홍수로 떠내려 왔단다. 정선군에서 자꾸 도담삼봉에 대한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자 그 지역 관아들이 쩔쩔 매고 있는데, 그때 소년 정도전이 나타나 “도담삼봉 때문에 오히려 물길이 막혀 홍수가 나니 도로 가져가라.”고 했단다. 모두 소년 정도전의 총명함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여기에 정도전의 아명인 종지(宗之)도 사실은 단양에서 가장 높은 양백산전망대인 종지봉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덧붙여졌다. 종지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종지봉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선후관계는 알 수 없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단양 사람들의 정도전에 대한 자부심이다. 뭐래도 좋다. 도담삼봉에 가려면 삼봉로를 따라 뱀허리처럼 굽이치는 남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 상류로 거슬러 가야 한다. 도담삼봉 터널을 지나자마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로 이뤄진 세 개의 봉우리에 각각 처봉, 남편봉, 첩봉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자욱한 아침 물안개가 피어 있는 모습이나 남한강이 흘러 돌아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김홍도와 최북 등 조선 후기에 도담삼봉을 그림으로 그린 이들이나 당대의 문인들이 써내려간 한시(漢詩)가 100편이 넘는다 하니 도담삼봉 휴게소 건물(삼봉로 644-13)에 오르거나 10분 남짓의 발품을 팔아 석문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담삼봉이 특히 멋지다. 글 사진 단양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18회는 광주 북구 민주로를 소개합니다.
  • 연극 ‘일곱집매’로 본 기지촌 여성의 삶

    연극 ‘일곱집매’로 본 기지촌 여성의 삶

    “왜 굳이 이런 아픈 기억을 꺼내 들은 거죠?”(관객) “잊고 싶은 기억을 자꾸 끄집어내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연극에서 나온 ‘닿을 수 없는 거리’라는 표현처럼, 슬픔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 문제를 한국에 있었던 어떤 사건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겁니다.”(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식에 따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관객)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면서 현대사의 부침에 시달린 우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제야 꺼내놓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인식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이 교수) 지난 2일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는 한바탕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과연 1950~70년대 기지촌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가, 한국 현대사의 부침 속의 희생양에 불과한가이다. 주제를 던진 것은 이날 무대에 오른 연극 ‘일곱집매’였다. 일곱집매는 주한 미군 캠프인 험프리가 있는 경기 평택시 안정리의 옛 이름이다. 일곱 집이 다정한 자매처럼 살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군사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밀어버렸고, 6·25전쟁 때 미 공군 비행장으로 바뀌어 캠프 험프리가 들어섰다. 이 안정리 기지촌을 무대로, 연극은 이제는 노인이 돼 쓸쓸히 살아가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담고 있다. 무대는 할머니들이 사는 작고 허름한 방 7개에 둘러싸인 앞마당이다. 기지촌 아이들의 입양 문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한국계 미국인 하나가 이곳을 찾았다. 냉정한 순영 할머니와 발랄한 화자 할머니, 기지촌에서 낳고 자란 청년 춘권, 미군 철수 활동가 상철, 기지촌의 젊은 여성 필리핀인 써니를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아들 마이클을 미국으로 입양 보낸 순영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려던 하나는 되레 질문을 받는다. “기자, 작가, 어린 여대생들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갔지. 하지만 달라진 게 없어. 선생은 뭐에 쓰려고 하지? 박사학위를 따는 거 말고는, 뭐가 달라지는데?” 하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기지촌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 등을 거쳐 그가 찾아온 대답은 ‘기록’이다. “인간이 단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망각될 수 없도록. (할머니) 죽기 전에 슬픔을 새겨두고 떠나요. 사람들이 몰랐다고 말할 수 없도록.” 두 할머니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기지촌에 들어온 어린 순영이 미군에게 하룻밤 대가로 받은 돈은 40달러. 살림에 보태고 동생들을 공부시키는데 유용했다. 아버지는 몸을 팔았다면서 때리기 일쑤였지만 돈이 부족하면 또 순영을 찾았다. 당시 정부는 ‘외화벌이 산업역군’이라면서 미군을 ‘손님’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성병관리까지 했다. 행여 도망이라도 갈까봐 ‘애국자’라고 부추기고 “나중에 아파트 한 채 받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유출을 막았다. 한국 현대사의 부침 속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이제는 ‘자발적으로 몸을 판 양공주’라는 오명과 정부의 외면 속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연극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처절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눈물을 담아둔 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애써 욕지거리를 해대면서 유쾌하게 포장하는 화자 할머니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덕분에 2시간 30분에 달하는 연극은 지루할 새가 없다. 대본을 쓴 이양구(극단 해인 대표)씨는 “(화자 할머니는)긴 연극을 끌어가기 위해 설정한 인물이 아니라 실제 할머니들에게서 본 모습의 일부”라면서 “너무나 아픔이 깊어서 선뜻 꺼내 들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포장하면서도 늘 죄책감에 사로잡혀 계시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1950~70년대 우리나라의 기지촌 문제는 강제냐 자발이냐 이런 차원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준 상처와 제도적·구조적 폭력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리에서 10년째 기지촌 할머니들을 돌보면서 이 공연을 기획한 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연극 ‘나비’(2005)를 통해서 확산됐듯이 이 연극으로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9일까지. 1만~1만 5000원. 070-8236-044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국악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 5~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추상표현주의 화가이자 오페라 연출가인 아힘 프라이어가 새롭게 해석한 ‘수궁가’. 군주국 바다와 무정부 상태인 뭍을 오가는 민중영웅 토끼(미스터 래빗)를 통해 현대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국립극장이 올해 처음 시작한 국립레퍼토리 시즌제의 개막작이자 국립창극단의 세계거장시리즈 첫 작품. 2만~9만원. (02)2280-4115~6.
  •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서해안 인근 천산 정상에 감춰진 ‘천산수도원’. 폐암으로 투병하다 죽은 형 강영호의 유품을 챙기던 강상호는 형의 유고 속에서 이 신비의 수도원을 처음 접한다. 이곳은 흙과 돌과 나무로만 지어진 절벽 위 천혜의 요새다. 72개의 지하 방에선 아름다운 벽서들이 발견된다. 성서를 정성껏 필사한 벽서 안에 숨은 역사적 진실에 대해선 그 누구도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실 속 구원 문제에 집착해 온 작가 이승우(53·조선대 교수). 그의 신작 장편 ‘지상의 노래’(민음사 펴냄)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서사구조를 품고 있다. 5명의 주인공이 엮어 가는 다섯 이야기는 복잡한 형이상학적 다층 구조를 이뤄 흥미를 배가시킨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현대사의 굴절된 단면에 숨은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 가고 이 과정에서 ‘인과’(因果)라는 삶의 굴레를 확인한다. 죽은 자가 ‘유업’(遺業)을 남기고 살아있는 자가 이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소설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원리로 작용한다. 그러나 작가는 “서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과 뉴욕을 덮친 태풍 사이의 관련만큼 비정형적이고 무의식적이다. 나비가 날갯짓하지 않아도 태풍은 일어날 것”(40쪽)이라며 인과에 대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형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수도원을 답사하고 벽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대기업 해외 주재원 강상호의 이야기, 그 책을 읽고 천산수도원의 벽서에 관한 글을 쓴 대학 교회사 강사 차동연의 이야기, 차동연이 쓴 글을 읽고 그에게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 퇴역 군인 ‘장’의 이야기, 장의 이야기에 나오는 군사정권의 핵심 한정효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박 대위에게 겁탈당한 사촌 누나 연희를 사랑했던 ‘후’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천산수도원. 이곳은 강영호의 군 복무지이자 퇴역 군인 ‘장’이 군사정권 수뇌인 장군의 명을 받고 한정효를 가둬 둔 장소다. 또 다른 장군은 권력을 잡은 뒤 문제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수도원을 덮쳐 좁다란 지하 방에 수도사들을 몰아넣고 산 채로 매장했다. 자신이 사라지면 모두 평화로울 것이라 믿고 이곳을 떠났던 한정효는 죽은 ‘형제들’의 시신을 매장하며 방마다 그림을 그리듯 벽서한다. 한정효를 돌보며 그의 일을 마무리하고 숨을 거둔 ‘후’까지. 등장인물들이 모두 죄의식에 사로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천산수도원의 거대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독자들이 받는 감흥은 남다르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쓴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떠올릴 만하다. 형이상학과 신학이 잘 버무려진 소재가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이는 작가가 문학계에선 드물게 신학을 전공한 뒤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 온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수도원 지하의 72개 방을 초대 교회 신자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 이곳에서 발견된 엄청난 분량의 벽서는 중세 벽서인 ‘켈스의 책’에 비유한다. 이 가운데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미적 추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랑과 죄가 얽히며 작용하는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10년간 이야기의 모티브를 머릿속에 꼭꼭 숨겨 놓았으면서도 제목만큼은 미리 정해 뒀다고 했다. 그런데 왜 천상의 노래가 아닌 지상의 노래일까. 작가는 “천상수도원이 공간적 배경이지만 이곳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결코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천상수도원이 이상향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부족함과 불안정함, 부당함을 역설적으로 얘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구원, 욕망, 권력이 매개체였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교회사 강사인 차동연이 수도원 72개 방에 묻힌 ‘형제들’의 비극을 신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설명하지 못했을 때 ‘후’의 입을 빌려 소설로 풀어 나간 것처럼 작가도 무언가 얘기하려 했다. ‘5·16’과 19년 뒤에 일어난 ‘5·18’의 아픔이 그것이다. 책 속에 등장한 2개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작가는 “굳이 안 써도 다 아는 ‘장군’의 이름들과 같은 것”이라며 “역사적 사건을 구체화하지 않고도 이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전쟁과 분단, 한국의 시뻘건 속살 드러내다

    전쟁과 분단, 한국의 시뻘건 속살 드러내다

    “글쎄요. 회전이랄까, 유행이랄까. 화단도 너무 흐름이 빠른 것 같아요. 새로운 게 뭐 있느냐는 얘길 자꾸 듣다 보면 아, 나도 그러면 바뀌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답변이 선선했다. 새로운 작품을 보니 신학철 작가가 떠오른다고 하자 딱히 부정한다거나 뭔가 다른 접근법임을 애써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럼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라고 받아넘긴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거리낌 없이 다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한술 더 떠 “붉은 산수 때도 중국 그림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뭘.”이라며 씩 웃어 버린다. 이세현(45) 작가. 10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본관과 신관을 통틀어 전시한다. 전시가 이렇게 대규모로 이뤄진 까닭은 그놈의 인기 때문이다. 해외에서의 바쁜 전시 일정 때문에 이번 전시가 국내에서 여는 첫 개인전일 뿐 아니라 그간 변신을 위해 별러 왔던 신작을 동시에 선보이는 자리다. 본관에는 기존 연작 시리즈, 신관에는 신작 시리즈가 전시돼 있다. 작가는 홍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7년 가까이 무명으로 지냈다. 그림은 물론 조각, 설치, 드로잉 등 안 해본 게 없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가슴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기댈 곳은 작품뿐. 전 재산을 털어 영국으로 떠났다. 마지막 도전지 영국에서 그만 대박이 터졌다. 첼시예술대학원 졸업 전시에서 작품이 다 팔려 나가더니 입소문이 나 각종 전시에 불려다녔다. 세계적인 컬렉터인 울리 지그가 직접 런던 작업실에 찾아와 작품을 사 가기도 했다. 거기에다 미국 페이스갤러리에서 그의 작품 3점을 판화로 제작하기까지 했다. 국내에선 익숙지 않은 이름이라 조용히 넘어갔지만 페이스갤러리는 검증된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만 다룬다.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에 이어 두 번째였을 뿐 아니라 젊은 작가를 택했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화젯거리였다. 작품의 어떤 점이 관심을 끌었을까. 역시 답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우리 산하를 봤던 경험을 살려 그 느낌대로 고향 통영 앞바다를 그렸다. 단, 녹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속에다 분단, 전쟁, 군사 문화, 급격한 근대화가 낳은 을씨년스러운 풍경들을 섞어 넣었다. 한국의 시뻘건 속살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낸 것이다. 울리 지그도 그의 작품을 수집한 이유로 “분단의 비극성을 정면으로 다룬 작가를 찾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붉은 산수’ 혹은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연작의 탄생이다. 대작인 데다 세필로 붉은색 한 가지만으로 장시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은 그야말로 악전고투다. 최신작에서는 변신이 뚜렷하다. ‘붉은 산수’ 연작이 수평적인 공간성이 두드러진다면 이번에 내놓은 ‘분재 산수’는 수직적인 시간성이 돋보인다. 풍경 속에 녹아 있는 듯 펼쳐져 있던 이런저런 한국 현대사의 흔적들이 이번엔 분재 모양으로, 수직적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도 인공적인 냄새가 가득 풍기는 ‘플라스틱 가든’이다. 혹시 피비린내 나는 슬픈 역사를 인위적으로 꺾어 넣어 억지로 저렇게 아름다운 분재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되묻는 듯하다. 웃긴 건 그 분재를 담은 그릇이 고무 대야라는 점이다. 성공한 역사, 위대한 역사라는 공치사들이 그렇게 유치하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아닌지 되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 외에 설치 작품도 있는데 ‘무릉도원’이 눈에 띈다. 철근 기둥 위에다 시멘트 집을 얼기설기 엮었는데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는 그 모습이 현재의 우리 아니겠느냐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02)739-493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박사논문은 ‘홍경래 난’… 高大 한국사 강의 마치고 출국 앞둔 앤더스 칼슨 런던대 교수

    박사논문은 ‘홍경래 난’… 高大 한국사 강의 마치고 출국 앞둔 앤더스 칼슨 런던대 교수

    앤더스 칼슨(46)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교수는 박사논문으로 19세기 초 홍경래의 난을 연구했다. 덕분에 한국사 연구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특이하게 평가된다. ‘홍경래 난’(1811년) 연구자는 칼슨 교수를 포함해 오수창 서울대 교수 등 국내외로 3명밖에 없다. 한국사에서 순조-헌종-철종으로 이어지는 1860년까지 세도정치와 민란 등 19세기 연구는 거의 중세의 암흑과 가까운 수준으로, 18세기 영·정조 시대에 대한 화려한 조명과 비교하면 더욱더 척박하다. 20일 서울 효자동에서 만난 칼슨 교수는 “원래 근대 한국에 관심이 있는데, 먼저 19세기 한국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19세기는 ‘민란의 세기’로 관심이 많았다. 지도교수인 유럽 한국학의 대모인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교수가 홍경래의 난을 연구해 보라고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초 방한해 고려대 국제하계대학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강의한 그는 27일 출국하기에 앞서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막걸리 파티로 사랑방 좌담회를 열고 있었다. “19세기 초 민란이 많았던 이유는 국가가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중앙정부와 상업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방사회 사이에 사회·경제적 갈등이 불거져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19세기에 조선 왕조의 국력은 어디서부터 약해졌나? 칼슨 교수는 1809~1815년의 대흉년을 이유로 들었다. 6~7년간의 가뭄과 흉작은 조선의 국부, 경제력을 바닥에서부터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 식민지배의 아픈 경험 때문에 19세기 조선을 비판적으로 보는데, 너무 비판적으로 보면 안 된다. 긍정적으로 보라.”고 덧붙였다. 칼슨 교수는 “19세기 세도정치와 어린 왕들의 리더십 부재를 자꾸 비판하는데, 부적절하다. 조선에는 500년 전통의 관료제도가 버티고 있었기에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는 적절하지 않다. 또한, 세도정치도 관료제도하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결정과 행동이 중요하고, 사회 변화는 개인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국고가 탕진돼 세금을 더 거두려고 제도를 바꾸자 1860년대에 다시 민란이 일어난 것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의 식민지화는 내부로부터의 붕괴가 아니라 외부 변수 즉, 일본의 야심과 서양국가들의 조선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만약 홍경래의 난이 성공했더라도 성공적인 근대화로 가기보다는 제국주의적 압력으로 조선은 훨씬 더 약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세기 말 동학혁명 역시 제국주의적 압력으로 성공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덧붙였다. 한류가 유럽의 한국학 연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하였다. “K팝과 한류가 유럽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를 끌자, 최근 런던대 한국학 신입생이 30여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10년 전에는 5명에 불과해 폐강될까 조마조마했다며 방긋 웃는다. 그는 “런던대는 학비도 있고, 입학 조건도 까다로워서 적지만, 학비가 없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한국학과에는 100여명씩 몰린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스톡홀름대학을 마치고 그저 한국에 매료돼 1991~1993년 2년 6개월 한국에서 살았다는 그는 “런던대 한국학과에서 1학년을 마치고 나면 고려대의 교환학생으로 오는데, 학생들이 완전히 한국에 넘어간다.”고 했다. 홍대, 이대, 명동, 대학로 등 24시간 다이내믹하게 재밌고 즐겁게 놀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류 덕분에 신입생이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가 유럽 학계에서는 새로운 고민거리다. 한국을 알고 싶어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늘어났지만, 한국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과제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광주야말로 아리랑에 부합하는 곳”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아리랑 음악만을 위한 축전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가 갖는 의미와 정서를 녹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오는 10월 5~7일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세계아리랑축전’의 김명곤(60) 총감독은 21일 서울 동성로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축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아리랑과의 인연이 각별하다는 말로 운을 뗀 김 총감독은 “1986년에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첫 공연으로 ‘아리랑’을 올렸다.”면서 “연극만이 아니라 영화와 창극 등 무대에서, 또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활동하면서도 아리랑을 살려내는 것을 내 숙제이자 행복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야말로 현대사에서 고통과 한을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넘어선 아리랑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라면서 “고난과 한을 공감과 상생, 자유의 정신으로 승화시키자는 의미를 담아 시민들과 젊은이가 함께하는 축전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고 강조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심청가엔 유·불·선 아우르는 종교와 철학이”

    “심청가엔 유·불·선 아우르는 종교와 철학이”

    “심청가에는 유교와 불교, 선교를 아우르는 종교와 철학이 숨어 있습니다. ‘효’사상이 상실된 현대사회에서 가정의 근간을 되살리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현대사회 가정 되살리는 데 기여”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배우 겸 국악인 오정해(41)씨가 지난 20일 열린 원광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국악예술학 석사과정을 마친 오씨는 2004년 원광대 대학원 불교학과에 진학, 본격적으로 동양예술학을 공부해 왔다. 처음부터 철학 박사 학위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동양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구하고자 시작한 공부였다. 향학열을 불태웠는데도 학위 취득에는 8년이 걸렸다. 마당극 ‘학생부군신위’와 영화 ‘천년학’ 등에 출연하며 연기와 판소리 등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1997년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둔 오씨에게는 가정생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씨는 “박사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하고 수년간 자료를 모았는데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정말 힘들었다.”며 일인다역이 쉽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학위 취득에 8년 걸려 ‘판소리 심청가의 예술성 연구’란 주제로 쓴 박사 학위 논문에선 판소리와 종교, 철학을 짝짓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오씨가 보는 심청가는 소리와 사상, 예술성 등 3박자를 갖추고 있다. 오씨는 “판소리가 우리 민족의 한과 흥 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심청가는 종교적, 철학적 깊이가 있다.”면서 “심청가에 들어 있는 효와 삶의 도리 등을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봤다.”고 말했다. 심청가의 ‘인당수’(물)는 어머니를 뜻하는데, 이를 우리 구전 설화를 통해 증명하는 식이다. 인당수는 당시 한반도에 폭넓게 퍼져있던 모태신앙을 대변하기도 한다. 한편 오씨는 1999년 전주 우석대 국악예술과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뛰어든 뒤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연극을 통해 관객을 만날 계획을 갖고 있는 오씨는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83.97% 득표’ 박근혜 새누리 대선후보 확정

    ‘83.97% 득표’ 박근혜 새누리 대선후보 확정

    20일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오는 12월 19일 실시되는 18대 대통령 선거의 당 후보로 선출되면서 120일간의 시험대에 섰다. 헌정 사상 유력 정당의 첫 여성 후보다. 그러나 박 후보의 주변 인사들은 박 후보의 정치와 역사인식에 대한 태도에 문제점이 있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흔히 지적되는 ‘소통’에서의 문제점도 이 ‘태도’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그가 썼던 글에서 이러한 점을 이해할 수 있다. 1994년부터 한국문인협회 수필분야 회원으로 활동한 여류 문인 박근혜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글을 쓴다는 평가를 받는다. 삶, 죽음,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글을 썼는데 부모의 피살, 측근들의 배신이 낳은 고통과 고독의 산물로 여겨진다. 일부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를 ‘지나친 진지함’과 연결 짓는다. 옳고 그름, 진정성과 본질에 대한 집착이 ‘정치적 감성 전달’에 미숙함을 낳고 있다는 얘기다. “정제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지만, 설득과 논쟁에 약하다.”, “토론식 학습은 선호하지만, 쟁점에 대한 논쟁은 꺼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프트한 대화는 잘하지만, 까칠한 대화에는 약하다.”고도 한다. 감성을 선호하는 20대, 논쟁을 원하는 30~40대에 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정책 논의는 잘하지만 가치와 담론을 다루는 대화에는 잘 나서지 않는다.”는 대목은, 그가 어떤 위기에 처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5·16 등 현대사에 대한 시각의 문제’는 현재 그를 향한 공세의 주요 초점이다. 그는 역사 인식과 이념 문제에 맞닥뜨렸으나 아직까지는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가장 격렬할 수밖에 없는 논쟁의 장이지만 그는 여기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논쟁은 먼저 당내에서 터져 나올 전망이다. “이 문제에 대한 돌파 없이 대선 승리를 바라볼 수 없다.”는 의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박 후보는 이날 오후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전체 유효투표의 83.97%인 8만 6589표를 얻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김문수(8955표·8.68%) 후보, 김태호(3298표·3.20%) 후보, 임태희(2676표·2.60%) 후보, 안상수(1600표·1.55%) 후보 등의 순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자녀로는 처음으로 대선에 도전하는 박 후보는 당선 직후 수락 연설 및 기자회견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지운·김경두기자 jj@seoul.co.kr
  • “오늘은 게으름뱅이의 날!” 침실로 변한 남미도시

    남미에서 이색적인 기념일행사가 열려 화제다. 콜롬비아의 이타구라는 지방도시에서 19일(현지시간) ‘국제 게으름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게으름뱅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을 맞아 이타구이에서는 주민들이 침대, 해먹(나무 등에 달아 사용하는 그물이나 천으로 된 침대), 매트리스 등을 들고 길로 쏟아져 나왔다. 길에는 침대가 줄지어 놓이고, 가로수와 전신주 사이에는 해먹이 설치됐다. 도시는 순식간에 집단 야외침실로 변했다. 주민들은 침대 위에서 뒹굴거나 잠을 자며 마음껏 게으름뱅이 하루를 보냈다. ’게으름뱅이 체질’이 아니라 잠을 청하지 못한 사람들은 잠옷을 입은 채 길에 모여 놀이판을 벌였다. 현지 언론은 “게으름의 날을 맞아 주민들이 완전 나태에 빠졌다.”면서 “길에선 자동차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당당히 ‘국제’라는 표현까지 붙은 ‘국제 게으름의 날’은 28년 전 이타구에서 제정(?)됐다. 노동절은 버젓이 존재하면서 국제적으로 쉬는 날은 없다는 데 착안해 주민들이 스스로 지키기 시작한 기념일이다. 기념행사를 주관한 주민 마리오 몬토야는 “노동을 기념하는 날이 있다면 쉬는 날, 게으름을 피우는 날을 기념하는 날도 있어야 민주적”이라면서 “평소와는 다른 일로 하루를 보내보자는 뜻으로 날을 정해 행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주민은 “현대사회는 휴식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면서 “휴식이야 말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개발시켜주는 최고의 상태”라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민주, 연일 박근혜 책임론… 朴 “진상위 조사 끝난 일”

    민주, 연일 박근혜 책임론… 朴 “진상위 조사 끝난 일”

    민주통합당은 17일에도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재야 정치인이었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37년 전 타살 의혹과 관련, “반드시 사망 원인에 관한 진상을 밝혀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세의 표적은 박 전 대통령의 딸로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다. 책임론을 제기,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로 비쳐진다. 이해찬 대표는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장준하 선생은 현대사의 증인”이라며 “사망 원인에 관한 규명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박 후보는 부당한 통치, 불의의 정권에 맞서 죽어간 죽음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지금 권력을 탐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5·16쿠데타와 유신 정권에 대한 반성과 사죄”라고 공격했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장준하 선생의 주검이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계신다. 참 나쁜 사람들! 그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며 승승장구를 꿈꾸고 있다니….”라며 박 후보를 겨냥했다. 이 대표는 정세균 대선 경선 후보와 함께 경기 파주시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37주기 추모식 및 장준하공원 개원식에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이날 ‘장준하 선생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부영 상임고문을 임명, 박 후보의 사죄를 촉구하며 책임을 묻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후보는 이날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현장 목격자 등에 대한 조사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나. 그런 기록들이 있는 것을 나도 봤다.”고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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