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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멈춰도 끝나지 않는 납북자 가족의 60년 가슴앓이

    전쟁 멈춰도 끝나지 않는 납북자 가족의 60년 가슴앓이

    한반도를 눈물과 피로 물들인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일단락된 지 60년이 지났다. 고운 새색시의 손에 검버섯이 피고, 철모르던 아이가 노인이 되는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차마 묻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전쟁 당시 북한에서 납치해간 ‘전시 납북자’들의 이야기다. 돌아오지 않는 피붙이를 평생 가슴앓이하며 기다린 전시 납북자들의 가족.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남긴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듬는 시간이 마련된다. KBS 1TV가 27일 오후 7시 10분 정전 60주년 특별기획으로 방영하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쟁 통에 제대로 된 인사 한마디 할 새 없이 북으로 끌려간 납북자들은 지금까지 생사확인조차 되지 않아 남은 가족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됐다. 전시 납북자 가족들은 모르쇠로 일관해온 북한과, 전시 납북자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과 냉대, 무엇보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겨내야 했다. 반세기가 지난 뒤에야 가족들의 노력으로 납북자 명부가 발견되고, 이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전시 납북자가 규명되고 인정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공식 인정된 납북자는 2265명.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전시 납북자 수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리고 가족들의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기 기술자인 황갑성씨의 장남 황용군씨는 아버지의 유골이라도 품에 안아보고 싶다. 그가 13세 되던 해 전쟁이 터졌다. 외할머니 댁으로 피신해서 담배 장사를 하며 소일하던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아버지는 그에게 “곧 데리러 오마”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북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황씨는 아버지 대신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도 중도에 포기하고 살아야 했다. 그는 아버지의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빈 유골함을 목에 걸고 미국의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까지 찾아갔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전시 납북자 인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강화금융조합이란 어엿한 직장에 다니던 일등 신랑감 김재봉씨는 전쟁이 터지자 북으로 끌려갔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남편을 잃은 아내 김항태씨는 뱃속에 딸이 있는지도 모른 채 6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환갑을 넘긴 딸과 함께 남편의 고향이자 신혼살림을 차렸던 강화 교동도를 다시 찾은 김항태씨의 눈에 또다시 눈물과 고통이 번진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여명의 눈동자·수사반장 등 한국 드라마 거장

    23일 숨진 김종학 PD는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등 대작 드라마들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드라마의 거장이다. 격동의 현대사,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판타지 등 선 굵은 연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MBC PD로 입사한 그는 1981년 ‘수사반장’으로 데뷔했다. 그의 대표작 ‘여명의 눈동자’(1991)와 ‘모래시계’(1995)는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각각 격동의 근현대사를 조명한 작품으로 ‘여명의 눈동자’는 최고 시청률 70%를 기록했으며 ‘모래시계’는 방영 당시 ‘귀가 시계’라 불리며 전 국민을 TV 앞에 붙들어 앉혔다. 그의 히트작에는 송지나 작가와의 파트너십이 뒷받침됐다. 송 작가와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총 7편에서 손을 맞잡았다. 역시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합작품이었던 MBC ‘태왕사신기’(2007)는 배용준이라는 최고의 한류스타와 550억원이 넘는 제작비로 화제가 됐다. 그가 1999년 차린 김종학프로덕션은 ‘베토벤 바이러스’, ‘풀하우스’ 등을 제작하며 인기드라마의 산실로 통했다. 또 제작자로서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 영화 ‘인샬라’, ‘산부인과’ 등에도 참여했다. ‘태왕사신기’ 이후 5년 만에 PD로 복귀했던 SBS ‘신의’(2012)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비운을 안겨 준 작품이다. 100억원을 투입한 블록버스터이자 김희선, 이민호 등 톱스타들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방영 전 화제를 모았지만 시청률은 부진했다. 그런데다 배우들의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드라마 종영 후에도 주·조연급을 비롯한 배우들의 출연료 6억 4000만원이 지급되지 않아 지난 5월 배임,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피소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스타 감독으로서 일련의 송사를 거치며 심적 부담과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거라는 게 방송가의 중론이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방송가 안팎에서는 잘못된 외주제작 관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현재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편당 제작비는 3억원 정도인데, 이 중 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는 절반 수준”이라면서 “외주제작사들은 제작비의 절반을 협찬과 해외 판매 등으로 조달해야 하지만, 시청률을 올리지 못하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드라마의 거장이 고시텔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이날 방송가는 충격에 빠졌다. ‘신의’가 방영될 당시 드라마 국장을 지냈던 김영섭 SBS 콘텐츠파트너십 부국장은 “걸작 드라마들로 한국 드라마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주인공으로, 방송계의 큰 손실”이라면서 “한참 더 활동할 수 있는 분인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상실·부재·망각…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어느 가난한 농부가 악마에게 아이를 빼앗긴다. 몇 년 뒤 아이를 잊지 못한 농부는 악마를 찾아가 결투를 요구한다. 악마는 농부에게 아이를 보여준다. 예상과 달리 아이는 악마의 정원에서 더없이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 악마는 제안한다. 아이를 데리고 가도 좋지만 아이는 두 번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없다. 아이가 가난한 삶을 물려 받게 될 거라 생각한 농부는 절망스럽게 울면서 악마를 떠난다. 농부는 악마에게 망각의 약을 건네받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아버지가 어린 남매에게 들려주는 우화로 시작한다. 1952년, 아버지는 세 살 난 딸 파리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있는 부잣집에 입양시키러 떠날 참이다.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오빠 압둘라는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파리는 카불에 남고 압둘라는 아버지를 따라 가난한 시골 마을로 돌아온다.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버지의 우화는 환영처럼 평생 남매의 삶을 따라다닌다.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호세이니는 ‘그리고 산이 울렸다’에서 남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전작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렀던 배경은 미국과 그리스, 프랑스로 폭을 넓혔다. 독자를 빨아들이는 이야기꾼의 재능은 더욱 깊어졌다. 작품은 9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952년 가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3세대를 거치며 1949년과 2010년, 1974년을 오간다. 궁극적인 중심 인물은 파리와 압둘라이지만 9개 장의 주인공은 모두 다르다. 파리를 입양하는 진보적인 여성 시인 닐라, 닐라를 사랑하는 운전사 나비, 카불에서 전쟁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그리스 의사 마르코스 등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작품은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의 60년을 훑는다. 각 장은 독립적인 단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각각의 이야기를 엮어 가면서 호세이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밀과 상처가 있고, 세계의 뒷면은 고통과 연민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은 그것들을 지금 당장 이해하거나 아물게 할 수 없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위로할 수는 있다는 낙관이다. 작품은 상실과 부재, 망각의 정서로 가득 차 있다. 9개 장 중 어떤 조각을 떼어놓아도 슬프고 아름답다. 호세이니는 인물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묘사한다. 이야기의 부피가 커지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밀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쉽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서울신문이 창간 109주년을 맞았다. 1904년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탈에 맞서던 당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조선을 위해 싸운 어니스트 베델은 37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면서도 “나는 죽으나, 신보(新報)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낯선 나라 조선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베델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베델은 박은식, 신채호 등 한국의 선각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립과 번영을 누리는 조선의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선각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현대사에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구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고, 국가의 발전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충분히 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는 이러한 역사인식과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는 국가발전의 양적 측면 못지않게 질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국민중심적인 비전’이다. 또한 “우리가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백범 김구 선생님처럼 이웃과 함께 성장하는 협력적 공동발전을 지향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신뢰 외교’는 이러한 국정 기조를 구현하기 위한 철학이자 외교전략이다. 국가 간의 관계나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 있어 지속가능한 협력은 항상 신뢰의 수준과 같이 했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자 순리이기도 하다. 신뢰외교는 진정성과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일관되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공고한 상생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러한 국정 기조와 외교 전략의 기치하에 확고한 안보를 토대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여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해야 할 때는 강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지키는 한편, 유연해야 할 때는 원칙 안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남북 간 신뢰구축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신뢰외교를 동북아 지역으로 확대하여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을 협력의 구도로 바꾸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연성 이슈에서 시작하여 협력의 습관을 축적함으로써 함께 번영하는 동북아를 차분히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주변국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평화롭고 협력적인 동북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신뢰형성 과정이 상승 작용을 일으킬 때 통일 과정도 촉진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을 넘어 박근혜 정부는 지구촌의 행복이라는 기조하에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인권 증진, 기후변화와 세계 경제문제 해결 등 글로벌 거버넌스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개도국에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 맞춤형 개발협력을 통해 나눔과 배려의 대한민국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간 성공적인 한·미,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에 기반한 포괄적인 협력의 틀을 구축하고, 북한에 대해 강력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도발 의지를 차단하면서 변화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촉구해 왔다. 또한 북극이사회 진출 등을 통해 새로운 외교 지평을 확대하고, 아세안과 동남아, 중남미 등 우리 외교의 후방을 든든히 하였다. 최근 한반도 문제는 물론 주요 국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의 위상과 역량이 크게 달라졌다. 핵심국들과의 전략적 소통이 더욱 원활해졌고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우리의 능동적인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또한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100여년 전 역사의 변방에 내던져졌던 객체가 아닌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베델과 같은 선각자들이 꿈꾼 조선의 미래가 국민행복, 한반도 행복, 지구촌 행복의 시대로 구현되리라 확신하며, 서울신문 창간 10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D-20 ‘고졸 검정고시’ 대비법

    올해 제2회 고졸 검정고시 시험일(8월 6일)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검정고시는 학력이 단절된 중년층을 위한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이유로 정규교육을 중단한 청소년들도 많이 응시한다. 검정고시 담당 강사들을 통해 각 과목 출제 방식과 공부 방법을 알아봤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국어 과목은 문학 영역에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지문이 출제되는 추세다.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과 외부 지문을 결합한 문제의 출제율이 높아지고 있다. 김지상 에듀윌 강사는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의 갈래나 배경, 주제 등을 기초로 학습해야 한다”면서 “출제 범위가 같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의 기출문제를 풀면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수학 과목에서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단원은 ‘함수’다. 공식이 많고 계산이 복잡하다는 이유에서다. 김봉현 한양학원 강사는 “일차함수, 이차함수, 유리함수, 무리함수뿐만 아니라 사인(sin), 코사인(cos) 등 삼각함수의 기본 개념도 알아놔야 한다”면서 “정해진 함수식에 숫자를 대입하는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어의 경우 어휘·숙어의 난도가 높아지고 독해 지문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또 생활영어 비중도 커지고 있다. 박영진 에듀윌 강사는 “문법을 알아야 긴 문장을 해석할 수 있다”면서 “많은 문제를 풀면서 어휘력을 키우고, 의미 단위로 문장을 끊어서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사회 과목의 지리 영역에서는 지형 및 기후와 관련한 내용이 다수 출제된다. 일반 사회 영역은 경제 성장요인, 물가, 환율 등을 알아야 한다. 이재은 정훈사 강사는 “지도, 그래프 등 자료 해석 문제, 이슈를 활용한 문제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다른 강사와 마찬가지로 기출 문제 풀이를 강조했다. 국사는 시대별 통치구조의 특징과 주요 역사적 사건을 비교·분석해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사진과 그림 자료도 놓칠 수 없다. 근현대사 단원도 신경 써야 한다. 이 강사는 “고대부터 중세, 근세까지 중앙 정치 제도, 영토 확장, 주요 왕의 통치업적 등은 기본으로 챙겨야 한다”고 전했다. 과학 과목을 담당하는 홍성걸 한양학원 강사는 응시생들이 고전하는 과목으로 물리와 화학을 짚었다. 물체의 운동과 관련된 개념, 화학식을 이해하기 위한 원소 기호를 숙지하는 일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홍 강사는 “화학에서 전해질과 앙금 문제는 출제될 확률이 90%”라며 “지난 문제를 통해 자주 등장하는 화학식과 원소기호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이슈 & 논쟁] 한국사 수능 필수

    [이슈 & 논쟁] 한국사 수능 필수

    반만년 역사를 한 학기에 가르치는 파행적 교육법으로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과 한국사 교육이 위기에 처했다.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7명이 6·25전쟁을 ‘북침’이라 일컫고, ‘3·1절’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학생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뒤늦게 역사교육 강화 방안 마련에 나서며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학생들이 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손에 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학 입시 반영만큼 효과적인 대책이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과 중국과 일본이 촉발시킨 ‘역사전쟁’에 맞서기 위해 한국사 교육 강화가 시급하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 하지만 한국사 수능 필수가 능사일까. 입시 위주 암기식 역사교육이 우리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양측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 본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일러스트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贊]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357시간 교육…中·日보다 적어 더이상 외면받는 과목 방치 안돼” 최근 국가적 이슈가 돼 버린 역사교육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으로 역사교육 강화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매우 기형적인 교육방식과 입시제도에 의해 ‘학교에서 가르치지만 배우지 않는 과목’으로 전락했다. 또 중국·일본과의 역사 갈등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한국사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정작 학생들은 소 닭 보듯이 역사 과목을 보고 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중국에서는 애국주의 교육의 핵심으로 중국사가, 일본에서는 과거 영광 재현을 위한 과목으로 일본사가 강조되는데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육에 손을 대더니 학생에게 외면받는 한국사를 만들어 버렸다는 현실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중국·일본과 역사전쟁을 한다면서도 현재 시행 중인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역사교육 시간을 총 357시간(초등 102시간, 중등 170시간, 고등 85시간)으로 중국(446시간), 일본(375시간)에 비해 가장 적게 만들었다. 게다가 ‘집중이수제’라는 학원주입식 단기 속성 방식이 도입되면서 중·고교에서는 2년에 배울 한국사 내용을 1년 또는 1학기에 몰아서 가르쳤다. 결국 이미 중학생 때부터 한국사는 재미없고 짜증만 나는 과목이 돼 버렸다. 더욱이 한국사는 2005학년도 대입수능 필수에서 선택과목이 되면서 27.7%만 선택하더니 서울대 진학생만 공부하는 과목이 된 이후인 2013학년도 수능에서는 전체 응시생의 7.1%(4만 3918명), 그리고 201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에서는 6.7%(4만 243명)가 선택했다. 만일 서울대마저 입시 과목에서 한국사를 제외한다면 한국사는 선택 0% 과목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상황이 됐다. 이는 대입이란 지상목표 앞에 입시와 관련이 없는 과목이면 어떤 명분과 논리로도 선택받지 못하는 가슴 아픈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최근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하는 도중 극소수 학생만이 기초적인 역사 관련 물음에 답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특강이 끝나고 고 3학생이 자신은 서울대를 준비하지 않아 진작 한국사를 포기해 우리 역사를 잘 몰랐는데 1학년 후배가 답을 잘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났다고 했다. 솔직히 한국사를 공부하고 싶어도 서울대에 갈 학생이 아닌 사람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해 선택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이 너무 화가 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반면 미국 조기 유학을 준비하는 지인의 아들은 미국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시험인 SAT를 준비하면서 미국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우수한 인재가 유학을 가면서 미국사는 열심히 하지만 한국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성장한 ‘우수한 해외유학 인재’가 우리나라에 돌아와 국가 운영에 참여할 때 과연 무엇을 근거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 이공계 학생들은 더더욱 역사 과목을 접할 길이 없다. 정말 역사가 필요 없는 것일까. 1980년대 철길을 도로로 바꿔 확장하는 공사가 실시됐는데, 일제가 의도적으로 우리 역사 유적을 파괴하고 한반도의 혈맥을 끊기 위해 부설한 철길을 도로로 덮게 됐다. 뒤늦게 이를 알려 주니 당시 지역 국토관리청장이 공사 설계 때 그 내용을 알았으면 유적을 복원한 뒤 도로 방향을 바꿨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5억원이면 될 유적 복원이 이제 1000억원이 넘는 대공사가 돼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는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역사 지식과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사례다. 인문계뿐만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에게도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사 교육 정상화는 대입수능 필수화가 아니면 현실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이 교육계의 답이다. 학생들의 부담이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 미래의 주역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국가 백년을 아니 만년을 위해 할 것은 해야 한다. [反] 나인호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시험 위한 역사교육 본질 흐려져…정치·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 얼마 전 여러 언론은 청소년들의 역사에 대한 무식함을 연일 질타했다. ‘3·1절’과 ‘6·25’에 대한 무지, ‘야스쿠니 신사(神社)’의 ‘젠틀맨’(紳士)으로의 오해와 같은 비난이 그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사교육의 강화와 한국사의 수능 필수 과목 지정’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정확한 진단에 입각한 타당한 주장일까. 먼저 정량적 기준에서 볼 때 한국사가 경시되고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탄하기를 국사 과목이 서울대 입시를 위한 소수에게 한정돼 대다수의 학생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2012학년도의 경우 사회탐구 영역 가운데 ‘국사’를 선택한 학생은 12%에 불과했으나, 같은 한국사 계열인 ‘근현대사’ 과목은 45%로 세 번째로 많이 선택된 과목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역사 지식은 모두 ‘근현대사’에서 가르치는 것들이다. 국사 과목이 외면을 당해 한국사 지식이 빈곤하다는 말은 사실과 어긋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사를 모르고는 각종 공무원 시험 및 공기업 시험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겠다. 9급 공무원, 경찰 공무원 그리고 소방공무원 시험에서 한국사는 필수 과목이다. 또 외무·행정고시에 지원하려면 한국사검정능력시험 2급에 합격해야 한다. 올해부터 중등교원임용시험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이 시험 3급 합격이 필수적이다. 이 밖에 각종 공기업 시험에서 이 시험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둘째, 시험 준비를 위한 한국사 교육 및 학습이 더 큰 문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가 말했듯이 역사란 과거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시험을 위한 역사교육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역사교육 과정에 담긴 이론과 현장 교사들의 교육학적 고민은 시험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이제 필연적으로 암기 위주의 딱딱하고 지루한 과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주제를 선택해 심도 있는 토론 수업을 진행하고 역사 에세이를 쓰게 하는 유럽 및 미국의 역사교육과 단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올리기 위해 주입식으로 교과서의 진도를 끝내야 하는 우리의 역사교육은 결코 같은 것일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사의 수능 필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암기 위주의 수업이 아닌 토론과 이해 위주의 역사 수업을 주장한다면 이는 공허한 수사학에 불과하다. 셋째, 한국사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외눈박이 역사교육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수능 관련 통계를 한 번 더 언급하자. 불과 8%의 응시자만이 선택한 세계사는 사회탐구 과목 가운데 꼴등을 차지했다.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의 세계사 인식은 쇄국시대에나 걸맞은 수준이다. 미국 및 유럽, 그리고 일본의 역사교육에서 자국사와 세계사의 비중은 거의 반반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개정 7차 교육과정 이후 ‘세계사 속의 한국사’ 교육의 틀이 갖춰졌다. 그러나 현재 국제 역사학계의 흐름이 초국사(transnational history), 더 나아가 글로벌 히스토리의 패러다임 속에서 진행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사와 세계사가 더욱 유기적으로 통합된 역사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사 교육을 강조하는 목소리 가운데 역사교육을 국가안보와 애국주의, 즉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도구로 간주하는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현재 동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한·중·일 삼국의 ‘역사전쟁’은 ‘과거를 현재의 욕망으로 해석’하려는 이러한 민족주의 역사학의 산물이다. 더 나아가 근래 과열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논쟁을 보자. 역사가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위한 날카로운 무기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역사가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기능하는 한 나는 역사교육의 강화에 반대한다. 이런 역사의 과잉은 니체가 말했듯이 현재의 삶을 질곡시킨다. 미래를 향한 창조성과 에너지를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 유쾌한 척, 행복한 척… 그 뒤엔

    유쾌한 척, 행복한 척… 그 뒤엔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알쏭달쏭한 미소는 무엇을 뜻할까. 얼핏 웃는 것 같기도, 우울한 것 같기도 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현대인의 획일적 웃음을 표현해 온 화가 김지희(29)의 연작 ‘양머리 소녀의 미소’도 마찬가지. 투명하고 맑은 눈과 해맑은 미소를 머금어 금방이라도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얼굴을 절반쯤 가린 커다란 선글라스 뒤로 알 수 없는 고독이 느껴진다. 교정기와 ‘오드 아이’(양쪽 눈동자 색깔이 다른 것)를 소재로 삼았다. 마치 두 얼굴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원초적 한계를 콕 집어내는 듯하다. 작가는 “현대인의 획일적인 웃음과 자화상을 경쾌한 미술적 언어로 풀어내고자 했다. 물질문명이 쏟아낸 온갖 욕망과 불안을 소녀의 미소에 담았다”고 말했다. 작가는 4~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청작화랑에서 초대전을 연다. 군복의 위장 무늬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사회의 첨예한 경쟁을 조형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인물 연작에 이어 6년 만에 선보이는 연작 시리즈 ‘버진 하트’(virgin heart)도 나온다. (02)549-3112.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올 국가직 7급 필기 특징 분석

    올 국가직 7급 필기 특징 분석

    지난 22일 2013년 국가직 7급 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 필기시험을 치렀다. 올해 7급 공무원 선발 예정 인원은 총 630명이다. 지난해보다 69명을 더 뽑아서 그런지 올해 필기시험 원서 접수 인원은 총 7만 1397명으로, 지난해(6만 717명)보다 대폭 늘었다. 많은 접수 인원에서 보듯 관심이 뜨거웠던 필기시험의 합격자는 9월 6일 발표된다. 그날 누군가는 합격의 기쁨을, 누군가는 탈락의 아쉬움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올해 비록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고 해도 7급 공무원의 꿈을 계속 가슴에 품고 있다면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올해 필기시험의 출제 유형에 대한 평가 및 분석은 기본이다. 서울신문은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들을 통해 이번 7급 공무원 필기시험의 특징을 정리해 봤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라면 공통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를 피할 수 없다. 정채영 강사는 올해 국어 시험에 대해 “공무원 시험 공부를 충실히 한 학생이라면 무난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됐다”면서 “지엽적이거나 까다로운 문제는 없었고 지금까지 출제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새로운 출제 유형도 눈에 띄었다. 정 강사에 따르면 매년 한 문제씩 출제됐던 한시(漢詩) 문제가 2년 연속 나오지 않았다. 대신 ‘한자어’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가 강조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정 강사는 “중세·현대 국어 문법을 묻는 문제가 출제된 점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어, 문법뿐만 아니라 어문규정, 맞춤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가 출제되므로 앞으로 특정 영역에 편중된 수험 준비는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어 시험은 공무원 시험 수험생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과목으로 알려져 있다. 손재석 강사는 올해 영어 과목의 경우 “독해는 평이했으나 어휘와 문법이 다소 어려웠기 때문에 80~85점 정도가 최상위 점수층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난이도는 전체적으로 중상 정도였다”고 분석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손 강사는 난도가 다소 높았던 원인으로 중상급 이상의 어휘를 묻는 문제가 출제된 점을 꼽았다. 이어 그는 “과거 6년간 꾸준히 일정 문제 비율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영어 시험에서 ‘작문’을 요구하는 문제가 강세”라면서 “가정법 등 자주 출제되는 문법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 과목을 가르치는 선우빈 강사는 “지난해에 비해 평이한 문제들이 제시됐다. 대부분의 문제가 기출문제를 많이 본 수험생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었고 난도 자체도 높지 않았다”고 풀이했다. 출제된 문제를 시대별로 보면 전근대사(선사시대~조선 후기)가 12문제로 가장 많았고 근현대사 부분에서 6문제, 분류사 분야에서 2문제가 출제됐다. 선우 강사는 “국가직 7급 한국사 시험은 한마디로 말하면 수능 유형의 사료 제시형 문제와 과거 단답형 공무원 문제의 절충”이라면서 “물론 직렬마다 다르겠으나 일반행정직의 경우 한국사 합격권 점수는 85~90점”이라고 예상했다. 국가직 7급 공무원 시험 모집 직렬 중 ‘일반행정’ 직렬 선발 예정 인원수가 가장 많다. 일반 부문에서는 199명, 장애인 대상 부문에서는 17명을 뽑을 예정이다. 일반행정직 필수과목인 행정법 시험을 놓고 김정일 강사는 “지난해보다 쉽게 출제됐다”면서 “지엽적인 법령 문제는 감소한 반면 판례 문제가 많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판례 중에서도 지방자치법상 주민소송 대상에 관한 내용이 출제된 만큼 최신 판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는 “주민소송뿐만 아니라 행정조직법상 권한, 토지거래허가, 공용환권 등 각론 분야에서 꾸준히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면서 “각론뿐만 아니라 총론 분야 기본이론과 판례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일반행정직 필수과목인 행정학 시험은 그동안 기출문제에서 주로 다룬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신용한 강사는 “특히 시장 실패의 원인, 정책유형론,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 공무원의 징계 등 일부 문제는 기출문제를 충분히 학습한 수험생이라면 크게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 강사는 “이번 시험에서 국회법에 있는 국회 결산과정과 국가정보화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보화책임관의 역할을 묻는 문제는 수험생들 입장에서 조금 당황스러웠을 것”이라면서도 “이는 법령을 정확하게 암기하고 있는지를 물었다기보다는 두 개념에 대한 인식으로 정답을 유추할 수 있는 순발력을 물어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서울 플러스] 북한산 순국선열 심포지엄

    강북구(구청장 박겸수) 27일 덕성여대 대강의동 202호에서 ‘북한산 순국선열·애국지사 심포지엄’을 연다. 이준, 손병희, 여운형 등 북한산 자락에 묻힌 애국지사의 생애에 대해 논의한다. 북한산 자락에 예정된 시립근현대사기념관 건립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행사다. 문화체육과 901-6213.
  • ‘한국민주주의전당’ 건립 유치 뜨거운 3파전…새달 서울·창원·광주 중 한 곳 확정

    ‘한국민주주의전당’ 건립 유치 뜨거운 3파전…새달 서울·창원·광주 중 한 곳 확정

    4·19혁명, 5·18 광주항쟁, 부마항쟁, 6·10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 속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해 건립을 추진중인 ‘한국민주주의전당’의 유치를 둘러싸고 서울·창원·광주 등 세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이 뜨겁다. 반면 200여억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아 예정대로 착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안전행정부는 23일 “한국민주주의전당 건설을 차질 없이 시작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용역비, 설계비, 건축비 등 내년 예산 146억원을 신청했다”면서 “9월 정기국회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지만 지난해 전액 삭감된 바 있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 예결위까지 거쳐 어렵사리 78억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막판 복지예산에 밀려 전액 삭감됐다. 올해에도 1차 심의에서 152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일단 제외됐다. 현재 한국민주주의전당 유치에 발벗고 나선 지자체는 서울과 창원, 광주다. 각 지자체마다 역사 속 민주주의 기여를 내세우며, 민주주의 교육 및 국제적 교류 용이성, 민주주의 상징성, 국가균형발전 등을 들어 유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서울시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만나 옛 중앙정보부가 있던 서울시청 남산 별관을 리모델링해 한국민주주의전당을 짓기로 합의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정 이사장, 김상근 목사, 함세웅 신부 등 시민사회 원로 10명으로 꾸려진 민주주의전당건립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단에서도 이 같은 내용으로 진행했으나 지난 2월 급제동이 걸렸다. 4·19혁명의 들불을 지핀 곳이자 부마민주항쟁의 도시인 마산(통합창원시)에서 민주주의전당 유치를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대선에서 경남에서 민주주의전당 유치를 지역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지역시민사회와 지방정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앞서 5·18민주화운동의 도시 광주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광주를 찾아 공약으로 걸어 5년 내내 기대를 부풀렸으나 무위로 그쳤다. 하지만 민주주의전당 서울 건립이 흔들리자 다시 유치 경쟁에 가세했다. ‘5·18 광주 정신의 세계화’ 등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공동위원장단은 이달초 민주주의전당 건립을 둘러싼 세 지역의 입장 및 부지 확보 등 진행 상황을 확인했고, 다음 달 중으로 건립 지역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일단 안정적으로 부지를 확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간담회 등을 통해 지역 의견도 충분히 수렴할 계획”이라면서 “민주시민 교육, 국제교류 등 본질적인 사업 자체가 중요한 만큼 깊이있는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CEO칼럼]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지요?/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CEO칼럼]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지요?/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2013년 상반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갑을(甲乙)관계였다. 갑을관계라는 말은 본래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계약 당사자의 명칭이 자꾸 반복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갑과 을이라는 말은 힘의 논리에 따라 우리 사회의 강자와 약자 사이의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관계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계약서 작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와 신의성실이다. 이것은 갑과 을이 상호신뢰의 바탕 위에 신의성실을 원칙으로 맺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계약이란 갑과 을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업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이를 통해 상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평적인 거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춘추시대 말기, 진(晉)나라 헌공이 소국인 괵(?)나라를 정벌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와 괵나라 사이에는 우(虞)나라가 있었다. 이에 헌공은 우나라의 우공에게 괵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길을 빌려주면 보물을 바치겠다고 제안하였다. 보물을 주겠다는 헌공의 제의에 솔깃해진 우공이 진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자, 우나라의 중신인 궁지기가 극구 반대하였다.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 사이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입니다. 옛 속담에도 덧방나무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와 괵나라의 사이를 이르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이와 입술 같은 관계인 괵나라를 정벌하려는 진나라에 길을 빌려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눈앞의 보물에 눈이 먼 우공은 결국 진나라 군대에 괵나라를 칠 수 있도록 길을 빌려주었고, 괵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 헌공은 귀국하던 길에 기세를 몰아 우나라마저 멸망시켜 버렸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갑과 을의 관계도 입술과 이의 관계와 같다. 갑이 없으면 을이 어려워지고, 을이 없으면 갑이 힘들어진다. 요즘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동반성장이란 동반(同伴)과 성장(成長)이란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동반은 어떤 일을 하거나 길을 갈 때 함께하는 것, 또는 함께 행동하는 짝을 말한다. 성장은 사람이나 동식물 등이 자라서 점점 커지거나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점점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동반성장이란 함께 크는 것을 말한다. 지금 갑과 을 사이에도 동반성장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상호신뢰와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계약서의 기본으로 돌아가 갑을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계약서에서 갑과 을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계약서에 아예 갑과 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갑과 을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청산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기업윤리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항상 갑의 역할만 할 수는 없다. 갑도 때로 을이 되기도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을로서 느꼈던 불공정함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로잡아 나간다면 갑을관계의 재정립은 아주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사람은 혼자일 때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매사가 이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에는 빨리 커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갑과 을이 서로 힘을 모으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며, 상생의 정신으로 함께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함께할 때 새로운 힘은 더욱 크게 생겨날 테니까.
  • [정전협정 60년] 브루스 커밍스 美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60년] 브루스 커밍스 美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한국전쟁’

    “한국 사람들은 왜 어느 쪽이 전쟁을 일으켰는지에만 관심이 있습니까.” 브루스 커밍스(70) 시카고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한이 한국전쟁의 책임을 놓고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비난전을 그만둬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의 부인인 한국인 우정은 박사가 학장으로 있는 버지니아주립대 캠퍼스 내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커밍스 교수는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날짜와 한국인 이름을 자료도 없이 술술 말해 한국전쟁 연구의 최고 권위자임을 실감케 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당신의 수정주의 이론에 반해 옛 소련의 기밀문서를 통해 북한의 남침이 확인됐는데. -나는 수정주의자가 아니라 개척자다. 내가 쓴 글은 미국 정부의 1급 비밀 문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침공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1985년부터 전두환 정권이 그렇게 (조작)한 것이다. 내가 1990년에 쓴 책은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기존의 관념을 허물려는 시도였다. 한국전쟁의 뿌리는 1945년 이후 발생한 일련의 일들에 있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반도 분단을 결정했고 소련이 나중에 그것을 수용했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기반이 됐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진주했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잡았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은 근본적으로 내전이다. 나는 북한이 남한을 6월 25일 침공한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침공이 남한의 자극에 의해 일어났는지 여부다. 1949년 8월 옹진, 개성, 철원 등지에서 남북 간 충돌이 격화됐다. 이승만이 공격을 원할 때 주한 미국대사가 반대했고, 김일성이 공격을 원할 때 주북 소련대사가 반대했다. 양측의 공격 욕구는 이렇게 억제됐다. 그리고 이듬해 봄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이 김일성에게 제한적인 대남 공격을 승인한 것이다. →소련 기밀문서 공개에도 불구하고 기존 이론을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기밀문서를 통해 소련의 연관성이 예상보다 깊숙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을 빼면 나머지는 별로 수정할 필요를 못 느낀다. 나는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여전히 굳은 확신을 갖고 있다. 다만 책을 쓰는 시점에 아직 나오지 않은 문서에 대해서는 예상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다른 학자들이 하지 못한 방대한 북한 문서를 연구했다. 나는 지난 20여년간 내가 하지도 않은 말 때문에 공격받았다. 사람들은 내 책을 읽지도 않고 말했다.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부러 유도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안 했다. 나는 단지 딘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이 탱크와 항공기를 한국에 두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무기로 이승만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남한은 북한이 6월 25일 침공했을 때 대처할 무기가 없었다. 애치슨은 한국에 대해 매우 모호한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김일성은 어리석게도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애치슨이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로 인해 미국은 많은 ‘옵션’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약 이승만이 공격하면 미국은 지원하지 않는 반면 북한이 공격하면 이승만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애치슨이 남한을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한 이유는 이승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을 공격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남한이 북한을 침공할 가능성도 있었다는 얘기인가. -1949년 5월부터 12월까지 38선 곳곳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싸움을 남한이 먼저 시작했다. 따라서 1950년 6월 25일의 침공은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켰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949년 8월 주한 미국대사는 워싱턴에 보낸 전문에서 “이승만이 북한군의 옹진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철원을 공격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국전쟁의 본질은 당시 남북한의 지도부가 서로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 모두 뜨거운 감자를 두 손에 쥐고 있는 꼴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이 그해 12월부터 한국군에 “38선에서 도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후 38선 남쪽이 조용해졌다. 남한의 공격을 남침 명분으로 삼으려던 김일성이 1950년 2월 주북 소련대사에게 “왜 남한이 요즘 공격을 안 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남한을 배제한 것은 북한의 침공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1949년 6월 30일 남한에 있던 마지막 미군이 오키나와로 나간 직후 애치슨 장관이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에게 ‘만약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유엔에 회부한다’는 메모를 건넸다. 한국전 발발 1년 전에 이미 전쟁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탈린이 승인하지 않으면 북한은 남한을 침공할 수 없는데, 스탈린은 침공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소련이 2차 대전의 후유증 때문에 새로운 전쟁에 뛰어들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스탈린이 허락지 않으면 감히 중국도 전쟁에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탈린이 통제하는 획일적인 공산주의가 있다고 잘못 추정한 것이다. →한국전쟁의 특징은 무엇인가. -반(反)식민지 전쟁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전과 매우 비슷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빨치산 출신 김일성 등은 북한을 접수한 반면 남한에서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밀려났다. 남한에서 미국은 일본 경찰과 장교 출신들을 기용했다. →한국에서는 내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곳에서 8마일(약 12.8㎞)만 리치먼드 쪽으로 가면 남북전쟁박물관이 있다. 거기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군을 침공할 명분을 얻기 위해 남군의 공격을 유도하는 속임수를 썼다’는 내용이 씌어 있다. 남부 사람들은 남북전쟁이 내전이 아니라 주(state)들끼리 벌인 전쟁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6월 25일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만 나쁘고 남한은 결백한 게 된다. →한국과 미국도 한국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인가. -미국의 책임이 크다. 미국은 38선을 그을 때 어떤 나라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쁜 결정이었다.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반도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승만도 큰 책임이 있다. 그는 일본군에서 복무한 장교를 기용했다. →결국 한국전은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발생했다고 봐야 하나. -아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국 내 모순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45~1950년 사이 일련의 사태들이 영향을 줬다. →지난 60년간 정전체제는 잘 운영됐다고 보나. -아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 매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났다. 정전체제는 평화협정으로 대체돼야 한다. 중국과 소련은 1990년대 초 남한을 승인했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의 교훈은. -미국인으로서 나는 한국전쟁 당시의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김일성의 반(反)식민지 운동에 봉착한 것이다. 1944년 국무부 문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인과 진정한 관계가 없는 반면 만주의 빨치산은 일본군에 잘 대적하고 있다”면서 “김일성을 접촉해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현실화했다면 한국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정전 60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인들은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1997년 북한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갔을 때 한 북한인이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라. “많은 원인이 복합작용한 내전”이라고 답했더니 그는 “한민족에 대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이라고 하더라. 한국전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비난 게임’을 멈추고 화해해야 한다. 글 사진 샬러츠빌(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동아시아 전공) 박사 출신이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한국 현대사 연구에 천착했다.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은 반공주의에 치우친 기존 연구의 평면성을 넘어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식민지와 냉전, 계급 갈등이라는 전쟁의 구조적 기원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전 연구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1980년대 통일, 반미 운동과 맞물려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전쟁 연구는 커밍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생겼다.
  • 아이들 곁에서… 현대사 속에서… 이오덕의 삶 담은 ‘42년 일기’

    ‘노인들도 기저귀를 찬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 기저귀를 만들면 되겠구나 싶었다. 내 손으로 내가 쓸 기저귀를 만들다니, 사람 사는 것이 이것이구나 깨닫게 된다.’(2001년 2월 1일)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의 일기를 엮은 책이 나왔다. 교육자와 우리말 운동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그의 인간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내면의 고백이다. 42년간의 기록을 묶은 ‘이오덕 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경북 상주군 청리국민학교를 비롯한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교사로 지냈던 1962~1986년(1~2권)과 우리말 살리기 등 사회운동에 힘을 쏟은 1986~1998년(3~4권), 충북 충주 무너미 마을로 내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1999~2003년(5권)이다. 앞부분에는 답답한 현실에서 방황하는 젊은 교육자의 고민이, 뒷부분에는 자연 속에서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의 회고가 담겼다. 평생 아이들과 약자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본 그의 모습이 소박한 문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작고하기 이틀 전인 2003년 8월 23일까지 일기를 썼다. 출판사는 원고지 3만 7986장에 해당하는 98권의 일기장에서 이오덕 개인과 시대의 흔적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일기들을 추렸다. 덕분에 이오덕이 남긴 변주된 자서전이자 격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로 완성됐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선포와 5·18 광주민주항쟁, 1987년 6월 항쟁 등의 흔적이 꼼꼼히 기록됐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신경림 시인, 문익환 목사 등 그와 친분을 나눴던 인물들에 대한 기억도 담겼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이승만, 대통령이 되려고 맥아더 장군에 로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되려고 맥아더 장군에 로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보수·진보 간 맞짱토론이 이뤄진다. 보수 성향 단체인 시대정신은 백년전쟁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는 24일 서울 강서구 목동 CBS스튜디오에서 심포지엄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시대정신은 지난 3월 28일 민족문제연구소에 공개토론을 제의했지만 이승만 기념사업회 측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사자(死者)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등 곡절을 겪으며 토론이 미뤄져 왔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당초 4~6회 분량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기획했는데 소송에 대응하느라 아직 1회밖에 만들지 못했다”면서 “공개 토론에 응하는 한편 나머지 제작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유튜브 등에 공개된 백년전쟁은 한국 근현대사가 외세에 부역한 친일 세력과 민족을 지키려 한 독립 세력 간 투쟁으로 이뤄졌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민족문제연구소는 설명했다. 1회에서 이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과 개인비리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을 다뤘고, 전체 시리즈는 문민정부 이전까지의 역사를 다룰 계획이다. 이 연구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이 미국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프레이저보고서’도 제작했는데, 이는 백년전쟁 시리즈의 번외편이라고 설명했다. 시대정신 등 보수 진영은 백년전쟁이 200만건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자 ‘생명의 길’을 제작해 반박했다. 해방 이후 북한이 죽음의 길을 밟은 반면 우리는 생명의 길을 걸었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이 길을 이끌었다는 시각을 담고 있다. 유재길 시대정신 사무처장은 “생명의 길에서 백년전쟁의 12가지 오류를 지적했다”면서 “심포지엄에서 조목조목 따지겠다”고 말했다. 시대정신 측은 토론자로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생명의 길 제작에 참여한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을 내세웠다. 권 교수는 최근 ‘우파 교과서 논란’의 장본인으로 그가 관여한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최종 검정 심사 단계에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을 토론자로 정했다. 양측은 ▲이승만의 기독교계 미국 대학 석·박사 학위 취득 경위 ▲이승만이 미국 신문에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슷한 주장을 펴며 친일을 했는지 여부 ▲한인 여성과의 추문으로 인한 미국 당국의 조사 진위 ▲하와이 국민회 성금과 상해 임시정부 자금 횡령 여부 등에 대한 논지를 입증할 사료를 챙기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도봉구에서 만나는 ‘시대정신’

    도봉구에서 만나는 ‘시대정신’

    초대 대법원장으로 대한민국 법 질서의 기초를 닦은 김병로(1887~1964),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송진우(1890~1945), 겨레의 얼을 강조한 민족사학자로 광복절·삼일절 노래 가사를 쓴 정인보(1893~1950), 대하소설 ‘임꺽정’을 발표해 일제 강점기 민초들에게 용기를 준 홍명희(1888~1968)의 공통점은 뭘까. 광복 전 도봉 지역에 거주했다는 점이다. 특히 김병로, 송진우, 정인보는 ‘창동의 세 마리 사자’로 불렸다고 한다. 뿐만이 아니다. 전 재산을 털어 우리 민족문화를 지키려 했던 전형필(1906~1962), 치열한 저항 정신으로 자유와 삶을 노래했던 시인 김수영(1921~1968), 노동자 인권을 위해 몸을 불사른 전태일(1948~1970),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함석헌(1901~1989), 계훈제(1921~1999), 김근태(1947~2011)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살며 도봉에 흔적을 남긴 인물이 무척 많다. 도봉구는 개청 40주년을 맞아 도봉에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대 정신의 고향, 도봉’이라는 주제로 구민회관 1층 갤러리에서 ‘도봉 역사 인물 사료전시회’를 오는 28일까지 연다. 도봉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양주군 노해면으로, 광복 이후 1949년부터는 서울 성북구로 이름을 달리하다 1973년 7월 1일 성북구에서 분리되며 비로소 도봉구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시회는 조광조, 송시열, 정의공주 등 조선시대 인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현대사에 보다 집중한다. 함석헌의 육필원고 및 ‘씨알의 소리’ 창간호, 김수영의 시집, 전태일의 일기장, 김병로의 민법 및 형법 제정 초안, 정인보의 편지와 삼일절·개천절·광복절 노래 가사 원고, ‘임꺽정’을 연재한 신문 자료 등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 구는 전시회 첫 날인 지난 18일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 의원 등 역사 인물 유가족과 각 기념사업회 관계자 20여명을 초청해 홈커밍데이를 열기도 했다. 구는 역사 인물의 옛 집터를 돌아보는 ‘길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동진 구청장은 “도봉의 역사문화 뿌리를 찾는 다양한 노력이 김수영 문학관·함석헌 기념관 건립, 전형필 고택 공원화, 도봉서원 복원 사업 등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세대 교감과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찾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시, 중구 ‘박정희 공원’ 지원 거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공원 건립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이 조성 추진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지만 정부에 이어 서울시가 투자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문화정책과는 14일 중구가 제출한 박정희 기념공원 건립에 대해 시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며 해당 요청서를 되돌려 보냈다. 지난 11일 관광정책과도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중구의 투자 유치를 반려했다. 중구에 따르면 신당동 일대 4070㎡(1200평) 규모에 285억원을 투자해 주차장을 겸한 박정희 기념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투자 예산 중 정부가 50%(143억원), 서울시가 20%(57억원), 중구청이 30%(85억원)를 부담하기로 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비가 투입될 사업이라면서 계획을 수립할 때 서울시와 전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상황 변화가 있다면 재심사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반송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을 들여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중구 관계자는 연초에 보낸 공문에 따라 자치구 사업예산 투자심사 신청을 했고 사전 협의는 필수 요건도 아니다”라면서 “사업이 논란을 빚으니까 서울시에서 부서끼리 서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5·16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기념공원 건립은 그 흔적을 보존하기 위한 일”이라면서 공원 조성 의사를 밝혔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연극과 함께 떠나는 비극의 근현대사 여행

    연극과 함께 떠나는 비극의 근현대사 여행

    5·18도, 6·10도 지나갔지만 연극판에서는 현대사의 비극을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5월의 광주나 6월 항쟁처럼 굵직한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들은 아니다. 하지만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등 그동안 덜 알려졌던 사건과 현대사의 굴곡에 휩쓸려 고단한 삶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100연극공동체’의 페스티벌 ‘근현대사 100년을 만나다’는 근현대사 100년에 걸친 사건들과 민중들의 이야기를 총 8편의 연극으로 꾸몄다. 극단 창세의 ‘그날’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와 재조사 과정을 거치며 유가족이 지내온 세월을 그렸다. 지금도 타살과 실족의 논쟁이 여전한 가운데 선생의 가족들이 겪은 슬픔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극단 제자백가의 ‘이땅은 니캉 내캉(거장 그리고 눈물)’은 1951년 발생한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을 소재로 했다. 섬세한 음악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고통과 시대적 정서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5월의 광주에서 딸을 구하고 총에 맞아 죽은 아빠가 유령이 돼 딸의 곁을 머물며 도와준다는 내용의 ‘아버지와 살면’(극단 Da), 고문의 후유증을 안은 채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극단 꿈의동지) 등도 주목할 만 하다. 페스티벌을 기획한 이준석 후플러스 대표는 “민주화 인사들의 가족이나 영문도 모른 채 고통을 겪은 이웃 등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치부처럼 여겨졌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일곱집매’(극단 연우무대)도 호평 속에 공연되고 있다. 기지촌 여성에 관해 연구하는 작가와 기자가 평택 안정리 미군 캠프 험프리 부근 기지촌에 살았던 할머니들을 찾아 이들의 고단했던 삶과 아픔을 들여다보고,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오게 한 거대한 구조를 살펴본다. 지난해 열린 제34회 서울연극제에서 우수 작품상과 연기상을 수상했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나와 할아버지’는 한국전쟁때 헤어진 옛 여자친구를 찾아 나서는 할아버지의 여정에 손자가 동참하면서 할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을 대면한다. 민준호 연출은 “단순히 멜로 이야기라 생각하고 할아버지를 관찰하기 시작한 손자가 몰랐던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위기의 한국사 교육] 국민 자긍심 배양에 역사 적극 활용

    [위기의 한국사 교육] 국민 자긍심 배양에 역사 적극 활용

    한국사가 국내 교육 현장에서 찬밥 대접을 받는 것과 달리 중국, 일본 등의 주변국과 해외 선진국은 어린 시절부터 자국 역사에 자긍심을 갖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 자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전통을 체득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의 역사 교육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주(州)마다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도 대부분 역사를 사회 과목에 포함해 초등학교 때부터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뉴욕주의 중학교는 7학년(중1) 때 향토사, 8학년(중2) 때 미국사, 9학년(중3)에는 세계사를 편성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과정인 10학년(고1) 때는 또다시 세계사, 11학년(고2)에는 미국사를 편성해 같은 역사적 사실을 학년에 따라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학습하도록 한다. 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유명한 프랑스도 역사 교육이 학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프랑스 역사 교육의 큰 특징은 현대사 위주로 가르친다는 점이다. 1980년대 들어 근·현대사 비중이 절반을 웃돌고 고교 역사 과목에서는 20세기 현대사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한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 청소년의 민족적 자긍심을 키우는 데 역사 교육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1991년 ‘초·중·고교 역사 과목 사상정치교육 개요’를 발표하고 고대문화사와 근·현대사 교육을 위한 체계를 세웠다.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얕은 곳부터 깊은 곳까지 쉬지 않고 중국 근·현대사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교육부는 최근 2~3개월마다 ‘역사 브리핑’을 배포해 각급 학교에서 실시하는 역사 수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청소년의 역사 기피 현상이 나타났던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도쿄도와 가나가와현 등 수도권 지자체가 고교 역사 과목을 선택에서 필수과목으로 전환한 결과 2012학년도 일본 대학입시에서 일본사를 선택하는 학생이 전체의 40%에 달했다. 일본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한국 내 일본 서적 전문 출판사에 근무하는 이노하라(40)씨는 “일본 내에서도 교과서 왜곡 문제를 두고 찬반 목소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학생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관이나 세계관을 형성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면서 “대학 시험에서 가장 많이 선택되는 과목이 역사일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위기의 한국사 교육] (4·끝) 논쟁 넘어 대안으로

    [위기의 한국사 교육] (4·끝) 논쟁 넘어 대안으로

    한국사 교육의 파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교육부는 최근 일선 교사 출신을 포함시켜 한국사 교육 강화를 위한 추진단을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추진단은 한국사를 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 학생이 역사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등을 연구해 종합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포함한 대학입시 과목에 한국사 과목 비중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다른 교과목과의 형평성을 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과 같은 제도적인 대책 외에도 학생들이 역사 과목에 대해 스스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수업 내용과 방식을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백범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은 13일 “국어, 영어, 수학도 (수험생들의 지망 대학에 따라) 수능 필수과목이 아닌데 한국사를 예외로 두기 어렵고, 대학들이 한국사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수능 필수 응시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면서 “입시에서 어떤 과목 성적을 반영할지는 대학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어 “입시를 위해 한국사 지식을 암기한 뒤 입시가 끝나면 넌더리 나서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만들던 과거 교육도 문제였다”면서 “학생들이 한국사 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교육부가 학교 현장에서 역사 교육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여론에 떠밀려 소극적인 대책만 내놓는다고 비판한다.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회장인 이두형 서울 양정고 교사는 “한국인이 한국사를 알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학생이 없고, 역사 과목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도 많다”면서 “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대입에 포함되지 않은 역사 과목을 공부하라고 무조건 권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역사 교사들이 편향된 이념 논쟁을 걸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진도 맞추기에 급급해 1년 동안 체험학습 한번 못 하는 지금의 역사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0~2011년 역사 과목이 고교 필수과목에서 빠지고 서울대만 수능 중 한국사 성적을 반영하는 일련의 조치가 이뤄진 뒤 수능에서의 한국사 선택률은 2005년 27.7%에서 지난해 6.9%로 줄었다. 학계 역시 교육부의 역사 교육 강화 의지를 의심한다. 대입 반영률 축소 외에 ▲2009년 총 102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어들어 역사 체험활동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한 수업 시간 ▲최근 매년 바뀌다시피 한 역사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한 수업 연구 미비 등이 역사 교육 황폐화를 불러왔는데, 이 같은 현상을 유도한 게 다름 아닌 교육부라는 지적이다. 김창성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사실만 나열한 역사 교과서를 보며 지금 시대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고, 학생들의 흥미도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가 ‘사전’이었다면 해리포터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책’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역사를 홀대하는 교육 당국은 전 세계에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이 어떤 방식의 역사 수업을 선호하는지 연구한 경기 화성시 동탄국제고의 이해영 교사는 “교사는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설명식 수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지만 제한된 수업 시간에 진도를 맞추고 입시까지 고려하면 다른 수업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역사 교육이 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학생들이 제대로 우리 사회를 이해할 것”이라면서 “19세기 이전의 한국사는 동아시아사 속에서, 20세기 이후의 현대사는 세계사 속에서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70년대 이후의 현대사는 역사를 만든 장본인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상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1970년대 이후는 국사에서 다루기보다 정치와 경제 등 사회 과목에서 폭넓게 다뤄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위기의 한국사 교육] 일베와 中·日의 역사왜곡

    [위기의 한국사 교육] 일베와 中·日의 역사왜곡

    최근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의 이미지를 합성한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확산되고, 이 사진에 대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댓글들이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한 사립대 학생들이 만든 이 사진에는 욱일승천기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남녀 학생 7명이 나치식 거수 경례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논란이 커지자 “역사적 의미를 간과한 채 이런 사진을 촬영하게 된 것에 대해 반성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모양이 예쁘다”, “(욱일승천기 모양이) 멋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왜곡된 역사관이 최근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제대로 된 한국사 교육과 시민교육의 부재 속에 ‘1020세대’가 온라인상의 그릇된 역사 인식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걸그룹인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은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라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면서 ‘민주화’ 용어를 잘못 사용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여기서 ‘민주화’는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사용하는 집단 괴롭힘과 강권 등을 뜻한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전씨는 “‘전효성으로 민주화시킨다’는 글을 여러 게시판에서 자주 접했다”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권유한다는 뜻이라고 무의식중에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가수 김진표도 지난해 방송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한 일베식 표현 ‘노운지’를 사용해 문제가 됐다. 김씨는 “단어의 어원이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운지’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이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왜곡된 역사 인식이 담긴 단어들을 습득했다고 했다. 온라인 관계에 집착하는 경향이 큰 1020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탓이다. 일베 등 과격한 인터넷사이트들이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감수성이 예민한 1020세대를 흡수하는 모습이다. 과격한 표현과 역사 뒤집기가 기성 권위에 대한 ‘쿨’(멋있는)한 도전으로 여겨지면서 모방 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역사 왜곡을 일종의 놀이로 보고, 학업 스트레스와 대화 단절 등 오프라인상의 불안감을 인터넷 공간에서 해소하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실제 일베에서 인기 있는 글은 기성세대가 믿는 진실을 과격한 언어로 파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하거나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의 온라인 우익 현상을 연구해온 와카미야 요시부미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은 12일 “요즘 젊은이들은 미묘한 역사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국도 일본처럼 근현대사나 인문교양 역사를 많이 배우지 않는 것이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방지원 신라대 역사학과 교수는 “일베 현상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는 온라인에서 주고받은 잘못된 역사 인식을 학교 교육 등 현재의 정규 교육이 바로잡을 수 없다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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