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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 범시민운동으로 추진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 범시민운동으로 추진

    경남 창원에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을 유치하기 위해 창원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쳤다.창원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 추진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 각계 기관·단체가 참여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 범시민운동본부’가 구성됐다고 14일 밝혔다. 창원시청에서 이날 출범식을 한 범시민운동본부는 문화예술·교육·산업·금융·노동·여성·노인·체육·보훈·환경 등 각계 40개 기관·단체 대표와 기존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추진위원회 위원 30명이 참여했다. 황무현 마산대 아동미술학과 교수와 정혜란 창원시 제2부시장이 공동본부장을 맡았다. 범시민운동본부는 앞으로 각 분야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 당위성과 이점을 알리고 홍보활동을 하는 등 유치 분위기 조성에 앞장선다. 창원시는 마산만을 매립해 만든 인공섬 ‘마산해양신도시’에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를 추진한다. 3만 3000㎡ 규모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건립할 계획이다. 사업비는 2185억원으로 예상한다. 창원시는 문체부가 지난 7월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건희 기념관)을 서울에 건립하는 대신, 지역문화 격차 해소 방안으로 지방에 국립문화시설 확충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창원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을 스마트 기술에 기반한 미래형 미술관으로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마산해양신도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설때 까지 103만 창원시민이 염원을 모아 한마음으로 유치에 힘써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 덕수궁에 뜬 기묘한 사슴 이렇구나, 신선의 세계란

    덕수궁에 뜬 기묘한 사슴 이렇구나, 신선의 세계란

    조선 문인들이 상상 속 정원 향유했듯정원·식물서 영감 얻어 작품 10점 제작 뿔 위로 나뭇가지 자란 사슴 조각 ‘원’여성 의지 담은 ‘눈물이 비처럼…’ 눈길덕수궁에 사슴이 나타났다. 즉조당과 준명당 앞 정원 한가운데 서서 검은 눈망울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사슴의 뿔 위로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뻗어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동물은 조각가 김명범의 작품 ‘원’이다. 원래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모란 화단이 조성됐다가 1980년대 덕수궁 정비사업을 하면서 창경궁에서 가져온 괴석으로 꾸며졌다. 전통정원의 핵심 요소인 괴석은 영원불멸의 상징이며, 사슴 또한 불로장생을 표상하는 십장생의 하나다. 괴석과 사슴이 함께하는 풍경은 그야말로 신선의 세계이자 상상의 정원이다. 덕수궁 곳곳에서 이런 색다른 정원 풍경이 펼쳐진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가 공동 기획한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을 통해서다. 고궁과 현대미술의 만남을 표방한 프로젝트는 2012년, 2017년, 2019년에 이어 올해로 네 번째다. 이번 전시는 석조전, 함녕전 등 건축물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덕수궁의 정원을 주제로 삼은 점이 특징이다.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의 역사를 돌아보고, 동시대 정원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사유한다. 부제 ‘상상의 정원’은 18~19세기 조선의 문인들이 글과 그림을 통해 상상 속 정원을 향유했던 ‘의원(意園)’문화에서 따왔다. 조각가, 미디어아트 작가 등 현대미술가 외에 조경가, 애니메이터, 식물학자, 국가무형문화재 장인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9개 팀이 수개월간 덕수궁을 답사하며 정원과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 10점을 선보인다. 석조전 정원 잔디밭에는 윤석남이 폐목을 잘라 만든 조각상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1930년대 어느 봄날´이 놓여 있다. 선택받은 소수만 출입할 수 있었던 궁궐에 이름 없는 조선 여성들의 모습을 밝은 색채로 표현한 조각을 세워 근대기 여성들의 의지를 담아냈다. 정원이 완성된 1938년 무렵 식재돼 수령이 80년 넘는 노거수 두 그루가 폐목으로 빚은 작품의 의미를 더한다. 조경가 김아연은 덕흥전과 정관헌 사이 빈 공간에 고종 일가가 사용한 카펫을 고증한 문양과 덕수궁 건축물의 단청 문양을 섞어서 만든 ‘가든 카펫’을 펼쳤다. 관람객은 신발을 벗고 카펫 위를 거닐 수 있다. 식물학자이자 식물세밀화가인 신혜우는 지난 4월부터 전시 직전까지 덕수궁에서 자라는 160여종의 식물들을 관찰하고, 조사했다. 그러면서 “대한제국 황실 전속 식물학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했다. 함녕전 행각에 전시된 ‘면면상처: 식물학자의 시선’은 그런 가정 아래 덕수궁에서 채집한 식물들을 표본과 그림, 글 등으로 세밀하게 풀어냈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 온 나라에 퍼져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로 불린 망초는 덕수궁에 깃든 아픈 역사를 새삼 일깨운다. 국가무형문화재 채화장 황수로 장인이 만든 붉은 복숭아꽃 ‘홍도화’는 석어당에 걸렸다. 조선 왕실은 생화로 실내 장식을 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명주와 모시 등으로 만든 화려한 조화를 궁중 의례와 향연에 사용했는데 이를 채화(綵華)라고 한다. 애니메이터 이용배와 조경학자 성종상이 함녕전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던 고종을 상상하며 제작한 애니메이션 ‘몽유원림’, 미디어아트 작가 이예승이 증강현실로 구현한 상상의 정원 ‘그림자 정원: 흐리게 중첩된 경물’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윤석남, 김명범, 김아연의 작품은 밴드 ‘잠비나이’의 멤버 심은용, 김보미가 작곡한 신곡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다. 작품 앞에 설치된 QR코드를 스캔하면 된다. 전시는 11월 28일까지.
  • 덕수궁에 웬 사슴이…현대미술로 펼친 ‘상상의 정원’을 거닐다

    덕수궁에 웬 사슴이…현대미술로 펼친 ‘상상의 정원’을 거닐다

    덕수궁에 사슴이 나타났다. 즉조당과 준명당 앞 정원 한가운데 서서 검은 눈망울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사슴의 뿔 위로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뻗어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동물은 조각가 김명범의 작품 ‘원’이다. 원래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모란 화단이 조성됐다가 1980년대 덕수궁 정비사업을 하면서 창경궁에서 가져온 괴석으로 꾸며졌다. 전통정원의 핵심 요소인 괴석은 영원불멸의 상징이며, 사슴 또한 불로장생을 표상하는 십장생의 하나다. 괴석과 사슴이 함께하는 풍경은 그야말로 신선의 세계이자 상상의 정원이다. 덕수궁 곳곳에서 이런 색다른 정원 풍경이 펼쳐진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가 공동 기획한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을 통해서다. 고궁과 현대미술의 만남을 표방한 프로젝트는 2012년, 2017년, 2019년에 이어 올해로 네 번째다. 이번 전시는 석조전, 함녕전 등 건축물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덕수궁의 정원을 주제로 삼은 점이 특징이다.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의 역사를 돌아보고, 동시대 정원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사유한다. 부제 ‘상상의 정원’은 18~19세기 조선의 문인들이 글과 그림을 통해 상상 속 정원을 향유했던 ‘의원(意園)’문화에서 따왔다. 조각가, 미디어아트 작가 등 현대미술가 외에 조경가, 애니메이터, 식물학자, 국가무형문화재 장인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9개 팀이 수개월간 덕수궁을 답사하며 정원과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 10점을 선보인다.석조전 정원 잔디밭에는 윤석남이 폐목을 잘라 만든 조각상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1930년대 어느 봄날‘이 놓여 있다. 선택받은 소수만 출입할 수 있었던 궁궐에 이름 없는 조선 여성들의 모습을 밝은 색채로 표현한 조각을 세워 근대기 여성들의 의지를 담아냈다. 정원이 완성된 1938년 무렵 식재돼 수령이 80년 넘는 노거수 두 그루가 폐목으로 빚은 작품의 의미를 더한다. 조경가 김아연은 덕흥전과 정관헌 사이 빈 공간에 고종 일가가 사용한 카펫을 고증한 문양과 덕수궁 건축물의 단청 문양을 섞어서 만든 ‘가든 카펫’을 펼쳤다. 관람객은 신발을 벗고 카펫 위를 거닐 수 있다.식물학자이자 식물세밀화가인 신혜우는 지난 4월부터 전시 직전까지 덕수궁에서 자라는 160여종의 식물들을 관찰하고, 조사했다. 그러면서 “대한제국 황실 전속 식물학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했다. 함녕전 행각에 전시된 ‘면면상처: 식물학자의 시선’은 그런 가정 아래 덕수궁에서 채집한 식물들을 표본과 그림, 글 등으로 세밀하게 풀어냈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 온 나라에 퍼져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로 불린 망초는 덕수궁에 깃든 아픈 역사를 새삼 일깨운다. 국가무형문화재 채화장 황수로 장인이 만든 붉은 복숭아꽃 ‘홍도화’는 석어당에 걸렸다. 조선 왕실은 생화로 실내 장식을 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명주와 모시 등으로 만든 화려한 조화를 궁중 의례와 향연에 사용했는데 이를 채화(綵華)라고 한다. 애니메이터 이용배와 조경학자 성종상이 함녕전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던 고종을 상상하며 제작한 애니메이션 ‘몽유원림’, 미디어아트 작가 이예승이 증강현실로 구현한 상상의 정원 ‘그림자 정원: 흐리게 중첩된 경물’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윤석남, 김명범, 김아연의 작품은 밴드 ‘잠비나이’의 멤버 심은용, 김보미가 작곡한 신곡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다. 작품 앞에 설치된 QR코드를 스캔하면 된다. 전시는 11월 28일까지.
  • 바다 쓰레기, 작품이 되다

    바다 쓰레기, 작품이 되다

    미국 현대미술가 마크 디온은 지난 8월 한국 민간환경단체, 공공기관과 협업해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서 해양 쓰레기를 주웠다. 플라스틱 부표, 어망, 유리병 등 해양 환경을 훼손하는 잔해물이 끝없이 나왔다. 그는 이렇게 수집한 쓰레기 일부를 박물관이나 과학 실험실에서 볼 법한 방식으로 진열장에 가지런히 배치해 ‘해양 폐기물 캐비닛’ 설치 작품을 완성했다.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작업하는 마크 디온의 국내 첫 개인전 ‘한국의 해양생물과 다른 기이한 이야기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개막했다. 그는 아마추어 생태학자이자 고고학자, 수집가로 전 세계를 탐험하며 환경 파괴, 동식물 멸종 위기를 유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업 세계를 펼쳐 왔다. 캐비닛 연작은 1996년 독일의 발트해와 북해를 여행하며 수집한 오브제들을 진열한 데서 시작됐다. 이듬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에서 수집한 사물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선보였고, 1999년 영국 런던 템스강의 수집품을 모은 테이트모던 전시와 2000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확장 공사 현장에서 주운 오브제들을 진열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2년 전 갤러리의 전시 제안을 받고 한국 지도부터 펼쳐 봤다”면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여서 해양 문화에 특별히 관심을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선반과 서랍 안에 정교하게 진열된 해양 쓰레기들은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인류보다 더 오래가는 사물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는 “폐기물로 인한 한국 해양의 문제는 미국이나 멕시코 등 다른 나라들과 유사하다”며 “인류가 하나의 바다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해양생물학자의 연구실을 연상케 하는 설치 작품 ‘한국의 해양생물’도 흥미롭다. 20세기 초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영감을 주고받으며 학문적 성과를 이루던 해양 선박연구실을 재현했다. 낡은 철제 캐비닛에는 다양한 해양생물 표본들이 놓였고, 여러 개의 작업대에는 해양생물을 기록하기 위한 그림 도구들이 자리잡고 있다. 작가는 황학동 풍물시장에서 세월의 흔적이 깃든 소품을 직접 구했고, 수산시장에서 해양생물을 구입해 표본으로 만들었다. 세밀화가 3명이 연구원처럼 해양생물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도 전시의 일부로 진행된다. 작가는 “작업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 지난 30여년간 내 작업의 핵심”이라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하는 완성된 작품 이면에 어떤 과정이 있는지 직접 보고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해양생물의 행태를 기술한 대형 신작 드로잉 작품들과 해양 파괴로 인한 산호 백화현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핏빛 산호’, 석유 화학물질인 타르를 뒤집어쓴 공룡과 황새 조각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오는 11월 7일까지.
  • 시간이 비켜 간 사이 청춘이 움트다

    시간이 비켜 간 사이 청춘이 움트다

    시간이 자라처럼 느리게 가는 도시가 있다. 충북 청주다. 이 도시에선 시간이 왜곡돼 흐르는 듯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 밀러 행성처럼 말이다. 이 행성에선 1시간이 지구의 7년과 같다지. 어쩌면 이 도시에서 불과 몇 시간을 보냈는데도, 도시 밖에서는 벌써 수십년의 시간이 아주 바삐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청주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원도심’이라 할 만한 곳이 많지 않다. 하긴 시간이 더디게 흐르니 옛것이 그리 낡아 보일 리도 없을 터다. 한데 도드라진 여행지는 없어도 다녀온 이들마다 편안하고 좋은 곳이라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는 곳이 청주이기도 하다. 이제 전하려는 건 그 무색무취의 도시 안쪽에서 길어 올린 풍경들의 이야기다.무서움은 종종 낯섦에서 시작된다. 어딘가 다른 모습, 익숙하지 않은 형태와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경계가 시작된다. ‘탑동양관’의 건물들을 마주할 때 느낌이 딱 그랬다. 우리 전통 기와를 올린 적벽돌의 서양풍 건물은 대낮인데도 어딘가 기이한 느낌을 안겼다. 저 단단한 적벽돌집 지하실 어디선가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뭐, 그만큼 이질적이고 독특했다는 뜻이다. 과장은 좀 보탰지만. 탑동양관은 ‘탑동에 있는 서양식 건물’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1932년(시초에 대한 기록이 저마다 달라 청주 역사 책자를 기준으로 삼았다)까지 세워진 여섯 채의 건물이 탑동 언덕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국내 어디서도 이런 형태의 경관은 마주한 기억이 없는 듯하다. 건물을 지은 이들은 미국의 북장로교 선교사들이다. 한국명 ‘민노아’(프레드릭 S 밀러) 등이 청주 외곽의 구릉지대에 정착하면서 숙소와 병원 등으로 쓰기 위해 지었다. 당시 듣도 보도 못했던 유리, 스팀 보일러, 수세식 변기 등의 건축 재료들이 건물 신축에 쓰였다. 탑동양관을 비롯한 선교촌의 당시 면적은 얼추 5만평에 달했다고 한다. 건물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전통과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이란 공통점만 제외하면, 입구부터 처마까지 다 다르다. 건물은 할리우드 ‘로코’ 영화의 배경으로 쓰일 법한 몸체에 전통 기와가 얹혀진 형태다. 팔작이나 우진각 등의 한옥 지붕이 경계면에 약간의 변형만 준 것과 달리, 이 양관들은 지붕 가운데 기와를 여러 개의 처마처럼 겹쳐 놓거나, 세우는 등 다양하게 멋을 냈다. 청주 사람들조차 탑동양관을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여학교 안에 있어서다. 졸업생 등 일부 외엔 탑동양관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이고, 설령 알았다 해도 겁 없이 여학교 교정을 드나들 이는 아마 없었지 싶다. 탑동양관을 둘러싼 일신여중·고교 역시 선교를 위해 세운 ‘미션스쿨’이다. 다만 연혁은 탑동양관보다 짧다. 탑동양관은 모두 6개동이다. 이 가운데 후문 밖의 1호 양관은 개인에게 팔렸고, 2호는 충북노회 등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덕혜옹주’ 등의 영화와 드라마 등이 양관 2호에서 촬영됐다. 학교 안에 있는 건 3호~6호다. 1호를 제외하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주변 건물에 올라가 보면 탑동양관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파트를 앞세운 도시화 물결은 이미 학교 담장 옆까지 밀려들었다.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개발 욕망의 틈바구니에 낡은 문화재가 옹색하게 낀 모양새다. 일신여중·고처럼 ‘미션스쿨’이었던 인근의 세광중·고교는 진작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다행히 옛 건물은 학생들 사이에서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교목실, 다도실, 상담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여학교 교정에 있다 보니 잘못 얼쩡댔다간 ‘경을 칠’ 수 있다. 등하교 전이나 주말 등 여학생들이 교내에 없는 동안에 학교 측의 양해를 얻어 들여다봐야 한다. 모든 게 느린 청주지만 빛의 속도로 사라진 것도 있다. 영화관이다. 서울에선 전통의 영화관 폐관 소식이 최근에야 관심을 끌었지만, 청주에선 이미 수십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복합상영관의 출현 때문은 아니었다. 공룡 멸종처럼 원인 불명인 채 한순간에 사라졌다. 청주엔 영화관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중소도시 수준을 겨우 넘는 곳치고는 꽤 많은 편이었다. 청주대 앞 청도극장, ‘2편 동시상영의 명가’ 자유극장, 싹 밀어져 ‘청소년 광장’이 된 중앙극장 등에 갈 곳 없는 청춘들이 들끓었다. 지금도 근근이 ‘핫플’의 지위를 이어 가는 시내 철당간 주변에도 영화관이 두 곳이나 있었다. 철당간 바로 앞은 청주극장, 그 옆은 현대극장이었다. 지금은 서점과 유명 백화점이 각각 들어섰다. 고려 시대 구조물인 철당간(국보 41호)과 최신식 건물이 ‘따로 또 같이’ 어울린 모습이 퍽 독특한 미감을 안겨 준다. ‘청주 행성’의 시간대로라면, 불과 두어 시간 전에 철당간 앞을 오갔을 숱한 옛사람들의 모습도 어른대는 듯하다. 철당간에서 성안길을 건너면 중앙공원이다. 중앙공원은 서울의 탑골공원과 비슷하다. 어르신들이 많다. 수령이 1000년을 헤아린다는 은행나무 ‘압각수’, 병마절도사영문 등의 볼거리가 있다. 망선루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라떼시절’ 이야기가 고려 공민왕(1361) 때까지 거슬러 오른다. 물론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는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복원됐다. 중앙공원에서 성안길로 나서는 좁은 골목엔 이름난 맛집들이 몰려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고추만두’부터 쫄쫄호떡, 떡볶이, 메밀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들과 만날 수 있다. 특히 공원당의 메밀국수는 청주의 노스탤지어 먹거리라 부를 만하다. 예전 청주에선 빵집에서 분식도 함께 팔았다. 어쩌면 분식집에서 빵을 팔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라면, 즉석 떡볶이 등이 주메뉴이면서 고로케, 팥빵 등을 함께 파는 집도 적지 않았다. 공원당 메밀국수는 당시의 흐릿한 흔적이다. 서문다리 인근의 서문우동도 비슷하다. 우동 맛집으로 인기를 끌면서는 원래 상호에서 ‘제과’를 떼고 아예 ‘우동’으로 갈아탔다. 성안길에서 그리 멀지 않다. 성안길은 청주 도심의 번화가다. 옛 이름은 ‘본정통’이다. 일제강점기에 어느 도시, 어느 중심가에나 있었던 ‘혼마치’와 같은 말이다. ‘본정통’이 ‘성안길’로 바뀐 건 1994년이다. 바뀐 이름이 정착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여전히 청주 시민 상당수가 ‘본정통’이란 이름에 더 익숙하지 싶다. 성안길은 자박자박 걷는 재미가 있다. 오래된 건물과 말끔한 건물이 뒤섞여 있다. 한데 희한하기도 하지. 오래된 건물도 그리 낡아 보이지 않고, 최신 건물도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청주 행성’이라 그렇지 싶다. 성안길 건너편은 중앙동이다. 전설적인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목욕탕인 ‘학천탕’을 카페로 바꾼 ‘목간’(목욕의 사투리), 옛 중앙극장 자리에 들어선 청소년 광장 등이 명물이다. 옛 청주역을 철길과 함께 전시관으로 꾸민 ‘청주역사(驛舍)전시관’은 셀피 찍으려는 ‘청춘’들이 많이 찾는다. 청주의 간선도로는 T자 형태다. 사통팔달인 여느 지역과 다르다. 간선도로의 교차점에 상당공원이 있다. 아무도, 여전히 아무도 찾지 않는 공원이다. 그래도 쉬기는 딱 좋다. 1970년대의 권위주의적이고 계몽적인 기념물들 사이에서 쉬다 보면 입으로 실소 한 모금이 절로 새어 나온다. 상당공원 주변으로도 볼거리들이 많다. 우선 현 충북도청 본관이 등록문화재(55호)다. 충북문화관(등록문화재 353호)도 둘러볼 만하다. 일본 강점기 때 지어진 이후 충북 도지사 관사로 쓰이다 2010년 전시시설로 바뀌었다. 지역 작가들의 미술, 조각, 사진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충북문화관 바로 위의 청주향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일품이다.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노거수 몇 그루가 대성전을 호위하고 있다. 인근의 성공회 성당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셀피 사진의 명소로 발돋움하는 중이다. 한옥 지붕에 아치형 창문 등 서구 건축 양식이 가미됐다.옛 연초제조창은 몇 안 되는 청주의 ‘핫플’ 중에서 첫손 꼽을 만한 곳이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세워진 연초제조창은 국내 최대 담배공장이었다. 거대한 건물 안에서 3000여명의 직원이 연간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해 국내외로 공급했다고 한다. 2004년 문을 닫은 연초제조창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뻔하다가 2018년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복합문화시설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다.옛 연초제조창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문화제조창C, 그리고 동부창고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전시 기능보다 수장과 복원에 무게를 둔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다. 개방형 수장고 등 다양한 전시 공간을 갖췄다. 코로나19로 휴관하다 7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미술관 외부에도 예술의 향기가 가득하다. 벽에 걸린 거대한 인쇄물은 권민호 작가의 연작 ‘회색 숨’의 하나다. 미술관 앱을 내려받아 벽에 비추면 휴대전화 화면에 SF영화의 미래도시를 연상시키는 증강현실(AR) 콘텐츠가 펼쳐진다. 제조창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1970년대 모습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는데, 볼수록 신기한 콘텐츠다. 한석현 작가의 설치미술작품 ‘다시, 나무 프로젝트’도 있다. 연초제조창 터에서 고사한 목련을 소재로 제작했다. 잔디광장 끝엔 담뱃갑을 모티브로 세운 ‘게이트 센터’가 있다. 원래 안내소 용도로 세운 구조물인데, 청주시와 미술관 어느 곳도 애정을 두지 않는 눈치여서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미술관 옆은 문화제조창C다. 청주 공예비엔날레 전시관, 도서관, 카페, 쇼핑몰 등이 들어찼다. 8일부터 새달 17일까지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온·오프라인으로 열린다. 32개국 309명의 작가가 참여해 119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동부창고는 1960년대 지은 7개 동의 담뱃잎 저장창고 가운데 일부를 재활용한 공간이다. 코로나로 활기를 잃은 모습이지만, 동부창고 8경 등 인증샷 명소를 찾는 발걸음은 꾸준하다. 미술관 바로 뒤에 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로를 건너면 천주교 내덕동주교좌성당이 나온다. 정진석 추기경(1931~2021)이 무려 28년이나 머물렀다는 성당이다. 주교좌성당 역시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절충된 형태다. 엄격한 건축 양식을 따르는 유럽 선교회에 견줘 비교적 개방적인 미국 메리놀회에서 세웠기 때문이다. 가장 독특한 건 종탑이 측면에 위치한 것이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성당들이 건물 중심에 종탑을 둔 것과 다르다. 성당은 야트막한 언덕에 터를 잡았다. 적요한 성당에서 도심을 굽어보는 맛이 각별하다. 반면 눈엣가시 같은 건축물도 있다. 골프연습장이다. 키 낮은 문화시설이나 공원 정도가 들어서면 좋을 공간을 고래 등뼈 같은 골프연습장이 꿰차고 있다. 이 구조물 하나로 공간과 공간의 연계성이 완벽히 차단되고, 문화와 예술의 향기로 충만했던 기분도 덩달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옛 연초제조창에서 안덕벌을 거슬러 오르면 청주대 예술대다. 여기서 조붓한 산길을 따라가면 벽화로 유명한 수암골과 만난다. 이제 도심을 벗어나 대청호로 간다. 늘 맑은 바람 일렁이는 곳. 청주 쪽 대청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경관은 문의문화재단지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에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꼽은 곳이다. 대청댐 건설로 수몰될 뻔했던 주변 지역의 옛 건축물 등을 옮겨와 너른 공원으로 조성했다. 대청호가 굽어보이는 산자락 중턱에 자리해 시원한 풍경이 일품이다.
  • 세월이 머무는 사이 예술이 터 잡다

    세월이 머무는 사이 예술이 터 잡다

    시간이 자라처럼 느리게 가는 도시가 있다. 충북 청주다. 이 도시에선 시간이 왜곡돼 흐르는 듯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 밀러 행성처럼 말이다. 이 행성에선 1시간이 지구의 7년과 같다지. 어쩌면 이 도시에서 불과 몇 시간을 보냈는데도, 도시 밖에서는 벌써 수십년의 시간이 아주 바삐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청주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원도심’이라 할 만한 곳이 많지 않다. 하긴 시간이 더디게 흐르니 옛것이 그리 낡아 보일 리도 없을 터다. 한데 도드라진 여행지는 없어도 다녀온 이들마다 편안하고 좋은 곳이라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는 곳이 청주이기도 하다. 이제 전하려는 건 그 무색무취의 도시 안쪽에서 길어 올린 풍경들의 이야기다.무서움은 종종 낯섦에서 시작된다. 어딘가 다른 모습, 익숙하지 않은 형태와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경계가 시작된다. ‘탑동양관’의 건물들을 마주할 때 느낌이 딱 그랬다. 우리 전통 기와를 올린 적벽돌의 서양풍 건물은 대낮인데도 어딘가 기이한 느낌을 안겼다. 저 단단한 적벽돌집 지하실 어디선가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뭐, 그만큼 이질적이고 독특했다는 뜻이다. 과장은 좀 보탰지만. 탑동양관은 ‘탑동에 있는 서양식 건물’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1932년(시초에 대한 기록이 저마다 달라 청주 역사 책자를 기준으로 삼았다)까지 세워진 여섯 채의 건물이 탑동 언덕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국내 어디서도 이런 형태의 경관은 마주한 기억이 없는 듯하다. 건물을 지은 이들은 미국의 북장로교 선교사들이다. 한국명 ‘민노아’(프레드릭 S 밀러) 등이 청주 외곽의 구릉지대에 정착하면서 숙소와 병원 등으로 쓰기 위해 지었다. 당시 듣도 보도 못했던 유리, 스팀 보일러, 수세식 변기 등의 건축 재료들이 건물 신축에 쓰였다. 탑동양관을 비롯한 선교촌의 당시 면적은 얼추 5만평에 달했다고 한다. 건물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전통과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이란 공통점만 제외하면, 입구부터 처마까지 다 다르다. 건물은 할리우드 ‘로코’ 영화의 배경으로 쓰일 법한 몸체에 전통 기와가 얹혀진 형태다. 팔작이나 우진각 등의 한옥 지붕이 경계면에 약간의 변형만 준 것과 달리, 이 양관들은 지붕 가운데 기와를 여러 개의 처마처럼 겹쳐 놓거나, 세우는 등 다양하게 멋을 냈다. 청주 사람들조차 탑동양관을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여학교 안에 있어서다. 졸업생 등 일부 외엔 탑동양관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이고, 설령 알았다 해도 겁 없이 여학교 교정을 드나들 이는 아마 없었지 싶다. 탑동양관을 둘러싼 일신여중·고교 역시 선교를 위해 세운 ‘미션스쿨’이다. 다만 연혁은 탑동양관보다 짧다. 탑동양관은 모두 6개동이다. 이 가운데 후문 밖의 1호 양관은 개인에게 팔렸고, 2호는 충북노회 등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덕혜옹주’ 등의 영화와 드라마 등이 양관 2호에서 촬영됐다. 학교 안에 있는 건 3호~6호다. 1호를 제외하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주변 건물에 올라가 보면 탑동양관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파트를 앞세운 도시화 물결은 이미 학교 담장 옆까지 밀려들었다.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개발 욕망의 틈바구니에 낡은 문화재가 옹색하게 낀 모양새다. 일신여중·고처럼 ‘미션스쿨’이었던 인근의 세광중·고교는 진작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다행히 옛 건물은 학생들 사이에서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교목실, 다도실, 상담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여학교 교정에 있다 보니 잘못 얼쩡댔다간 ‘경을 칠’ 수 있다. 등하교 전이나 주말 등 여학생들이 교내에 없는 동안에 학교 측의 양해를 얻어 들여다봐야 한다. 모든 게 느린 청주지만 빛의 속도로 사라진 것도 있다. 영화관이다. 서울에선 전통의 영화관 폐관 소식이 최근에야 관심을 끌었지만, 청주에선 이미 수십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복합상영관의 출현 때문은 아니었다. 공룡 멸종처럼 원인 불명인 채 한순간에 사라졌다. 청주엔 영화관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중소도시 수준을 겨우 넘는 곳치고는 꽤 많은 편이었다. 청주대 앞 청도극장, ‘2편 동시상영의 명가’ 자유극장, 싹 밀어져 ‘청소년 광장’이 된 중앙극장 등에 갈 곳 없는 청춘들이 들끓었다. 지금도 근근이 ‘핫플’의 지위를 이어 가는 시내 철당간 주변에도 영화관이 두 곳이나 있었다. 철당간 바로 앞은 청주극장, 그 옆은 현대극장이었다. 지금은 서점과 유명 백화점이 각각 들어섰다. 고려 시대 구조물인 철당간(국보 41호)과 최신식 건물이 ‘따로 또 같이’ 어울린 모습이 퍽 독특한 미감을 안겨 준다. ‘청주 행성’의 시간대로라면, 불과 두어 시간 전에 철당간 앞을 오갔을 숱한 옛사람들의 모습도 어른대는 듯하다. 철당간에서 성안길을 건너면 중앙공원이다. 중앙공원은 서울의 탑골공원과 비슷하다. 어르신들이 많다. 수령이 1000년을 헤아린다는 은행나무 ‘압각수’, 병마절도사영문 등의 볼거리가 있다. 망선루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라떼시절’ 이야기가 고려 공민왕(1361) 때까지 거슬러 오른다. 물론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는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복원됐다. 중앙공원에서 성안길로 나서는 좁은 골목엔 이름난 맛집들이 몰려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고추만두’부터 쫄쫄호떡, 떡볶이, 메밀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들과 만날 수 있다. 특히 공원당의 메밀국수는 청주의 노스탤지어 먹거리라 부를 만하다. 예전 청주에선 빵집에서 분식도 함께 팔았다. 어쩌면 분식집에서 빵을 팔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라면, 즉석 떡볶이 등이 주메뉴이면서 고로케, 팥빵 등을 함께 파는 집도 적지 않았다. 공원당 메밀국수는 당시의 흐릿한 흔적이다. 서문다리 인근의 서문우동도 비슷하다. 우동 맛집으로 인기를 끌면서는 원래 상호에서 ‘제과’를 떼고 아예 ‘우동’으로 갈아탔다. 성안길에서 그리 멀지 않다. 성안길은 청주 도심의 번화가다. 옛 이름은 ‘본정통’이다. 일제강점기에 어느 도시, 어느 중심가에나 있었던 ‘혼마치’와 같은 말이다. ‘본정통’이 ‘성안길’로 바뀐 건 1994년이다. 바뀐 이름이 정착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여전히 청주 시민 상당수가 ‘본정통’이란 이름에 더 익숙하지 싶다. 성안길은 자박자박 걷는 재미가 있다. 오래된 건물과 말끔한 건물이 뒤섞여 있다. 한데 희한하기도 하지. 오래된 건물도 그리 낡아 보이지 않고, 최신 건물도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청주 행성’이라 그렇지 싶다. 성안길 건너편은 중앙동이다. 전설적인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목욕탕인 ‘학천탕’을 카페로 바꾼 ‘목간’(목욕의 사투리), 옛 중앙극장 자리에 들어선 청소년 광장 등이 명물이다. 옛 청주역을 철길과 함께 전시관으로 꾸민 ‘청주역사(驛舍)전시관’은 셀피 찍으려는 ‘청춘’들이 많이 찾는다. 청주의 간선도로는 T자 형태다. 사통팔달인 여느 지역과 다르다. 간선도로의 교차점에 상당공원이 있다. 아무도, 여전히 아무도 찾지 않는 공원이다. 그래도 쉬기는 딱 좋다. 1970년대의 권위주의적이고 계몽적인 기념물들 사이에서 쉬다 보면 입으로 실소 한 모금이 절로 새어 나온다. 상당공원 주변으로도 볼거리들이 많다. 우선 현 충북도청 본관이 등록문화재(55호)다. 충북문화관(등록문화재 353호)도 둘러볼 만하다. 일본 강점기 때 지어진 이후 충북 도지사 관사로 쓰이다 2010년 전시시설로 바뀌었다. 지역 작가들의 미술, 조각, 사진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충북문화관 바로 위의 청주향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일품이다.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노거수 몇 그루가 대성전을 호위하고 있다. 인근의 성공회 성당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셀피 사진의 명소로 발돋움하는 중이다. 한옥 지붕에 아치형 창문 등 서구 건축 양식이 가미됐다.옛 연초제조창은 몇 안 되는 청주의 ‘핫플’ 중에서 첫손 꼽을 만한 곳이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세워진 연초제조창은 국내 최대 담배공장이었다. 거대한 건물 안에서 3000여명의 직원이 연간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해 국내외로 공급했다고 한다. 2004년 문을 닫은 연초제조창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뻔하다가 2018년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복합문화시설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다.옛 연초제조창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문화제조창C, 그리고 동부창고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전시 기능보다 수장과 복원에 무게를 둔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다. 개방형 수장고 등 다양한 전시 공간을 갖췄다. 코로나19로 휴관하다 7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미술관 외부에도 예술의 향기가 가득하다. 벽에 걸린 거대한 인쇄물은 권민호 작가의 연작 ‘회색 숨’의 하나다. 미술관 앱을 내려받아 벽에 비추면 휴대전화 화면에 SF영화의 미래도시를 연상시키는 증강현실(AR) 콘텐츠가 펼쳐진다. 제조창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1970년대 모습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는데, 볼수록 신기한 콘텐츠다. 한석현 작가의 설치미술작품 ‘다시, 나무 프로젝트’도 있다. 연초제조창 터에서 고사한 목련을 소재로 제작했다. 잔디광장 끝엔 담뱃갑을 모티브로 세운 ‘게이트 센터’가 있다. 원래 안내소 용도로 세운 구조물인데, 청주시와 미술관 어느 곳도 애정을 두지 않는 눈치여서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미술관 옆은 문화제조창C다. 청주 공예비엔날레 전시관, 도서관, 카페, 쇼핑몰 등이 들어찼다. 8일부터 새달 17일까지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온·오프라인으로 열린다. 32개국 309명의 작가가 참여해 119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동부창고는 1960년대 지은 7개 동의 담뱃잎 저장창고 가운데 일부를 재활용한 공간이다. 코로나로 활기를 잃은 모습이지만, 동부창고 8경 등 인증샷 명소를 찾는 발걸음은 꾸준하다. 미술관 바로 뒤에 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로를 건너면 천주교 내덕동주교좌성당이 나온다. 정진석 추기경(1931~2021)이 무려 28년이나 머물렀다는 성당이다. 주교좌성당 역시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절충된 형태다. 엄격한 건축 양식을 따르는 유럽 선교회에 견줘 비교적 개방적인 미국 메리놀회에서 세웠기 때문이다. 가장 독특한 건 종탑이 측면에 위치한 것이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성당들이 건물 중심에 종탑을 둔 것과 다르다. 성당은 야트막한 언덕에 터를 잡았다. 적요한 성당에서 도심을 굽어보는 맛이 각별하다. 반면 눈엣가시 같은 건축물도 있다. 골프연습장이다. 키 낮은 문화시설이나 공원 정도가 들어서면 좋을 공간을 고래 등뼈 같은 골프연습장이 꿰차고 있다. 이 구조물 하나로 공간과 공간의 연계성이 완벽히 차단되고, 문화와 예술의 향기로 충만했던 기분도 덩달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옛 연초제조창에서 안덕벌을 거슬러 오르면 청주대 예술대다. 여기서 조붓한 산길을 따라가면 벽화로 유명한 수암골과 만난다. 이제 도심을 벗어나 대청호로 간다. 늘 맑은 바람 일렁이는 곳. 청주 쪽 대청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경관은 문의문화재단지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에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꼽은 곳이다. 대청댐 건설로 수몰될 뻔했던 주변 지역의 옛 건축물 등을 옮겨와 너른 공원으로 조성했다. 대청호가 굽어보이는 산자락 중턱에 자리해 시원한 풍경이 일품이다.
  • ‘혐한 논란’ DHC, 결국 한국에서 철수한다

    ‘혐한 논란’ DHC, 결국 한국에서 철수한다

    “15일 영업 종료…마일리지 소진해야” 공지혐한 발언·코로나19 겹치면서 철수하는 듯각종 혐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일본 화장품 브랜드 DHC가 20년 만에 한국에서 철수한다. DHC 코리아는 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영업 종료 안내문’을 냈다. 회사는 쇼핑몰 영업이 오는 15일 오후 2시에 종료된다고 밝혔다. 마일리지도 영업 종료 전에 사용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DHC 코리아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 여러분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국내 영업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2년 4월 한국시장 진출 후 19년 5개월 만에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명확한 영업 종료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 혐오 발언 등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불매운동이 사업 철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은 혐한을 부추기는 글을 여러 차례 DHC 홈페이지에 올렸다. “자이니치(재일한국인·조선인)는 모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요시다 회장의 차별 조장 행위를 NHK가 취재하자 NHK가 일본을 ‘조선화’시키는 원흉이라는 취지의 글도 있었다. 2019년에는 DHC의 자회사인 ‘DHC 텔레비전’에 출연한 극우 성향의 인사가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한국은 원래 바로 뜨거워지고 바로 식는 나라다.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출연자는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예술성이 없다. 내가 현대미술이라고 소개하며 성기를 내보여도 괜찮은 것인가”라고 망언을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DHC 불매 운동이 시작됐고,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제품 할인행사를 진행하면서 방문자가 몰려 현재 홈페이지 접속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 풍경이 된 예술… 박수근이 내게로 왔다

    풍경이 된 예술… 박수근이 내게로 왔다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소도시들이 있다. 강원 양구도 그중 하나다. 이 즈음엔 박수근 미술관만으로도 양구를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전시된 미술 작품과 이를 품은 건축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됐다. 관람객 역시 자연스레 작품 일부가 된다. 양구가 최전방의 군사도시라는 선입견은 시내 안쪽의 예술공간 몇 곳을 더 돌아보는 순간 와르르 깨진다.지금 박수근 미술관을 찾아야 하는 이유. 첫째,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유화 4점이 오랜 세월 돌고 돌아 그의 곁으로 다시 왔다.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작품이지만 어쩐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정겹다. 작품을 기증한 이는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다. 함께 기증한 박수근의 드로잉 작품 14점도 만날 수 있다. 둘째, 관람객이 덜한 요즘이 차분하게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이 작품들이 처음 전시된 건 지난 5월이다. 예약제로 진행된 전시인데도 평소보다 2~3배가 넘는 구름 인파가 몰렸다. 요즘은 좀 뜸하다. 전시가 종료되는 10월 즈음엔 더 많은 인파가 몰릴 수도 있다. 미술관은 박수근의 정림리 생가 터에 세워졌다. 미술관을 설계한 이종호(1957~2014) 건축가는 이 공간을 “선생이 처음 ‘그림’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곳”이자 “선생의 그림에 어떤 원형으로 작용했을 풍경이 있는 곳”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이 공간에 “선생과의 만남을 만들어내는 통로”이면서 “매개의 장치”가 되는 건축물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술관은 그 다양한 구상들의 결과물이다.●‘아기 업은 소녀’, ‘농악’ 등 경매서도 보기 힘든 작품 한곳에 박수근 미술관은 박수근기념전시관과 현대미술관, 라키비움, 박수근 파빌리온, 어린이미술관 등으로 구성됐다. 이종호 건축가는 이를 “대지에 새겨진 미술관”이라고 규정했다. “박수근의 그림은 그려진 것이기보다 새겨진 것”이란 자신의 인식을 설계에 고스란히 투영한 것이다. 새겨진 그림은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박수근 기념전시관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이 그랬다. 일반적으로는 주차장이나 주 출입로에서 곧바로 건물 출입구와 마주한다. 박수근 기념관은 달랐다. ‘파사드’(정면을 뜻하는 건축 용어)가 정면에 없었다. 이 탓에 출입문의 위치를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보지 못한 관람객들은 정문을 찾아 건물 외벽을 이리저리 기웃대야 했다. 나중에 정문을 찾은 이후에야 관객들은 비로소 이 약간의 불편함조차 건축가의 설계 의도란 걸 깨닫게 된다.‘출입구로서’ 박수근 미술관의 파사드는 출입로 뒤에 있다. 외벽을 끼고 한 바퀴 빙글 돌아야 정문이 나온다. 우리 전통의 옹성(甕城)과 비슷한 구조다. 이종호 건축가는 미술관을 설계하며 “선생을 만나는 길이 쉽고 짧아서야 되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 다소 불편한 건 이 때문이다. 외벽의 재료는 화강석 조각들이다. 박수근 그림의 질감과 똑같다. 박물관 누리집의 설명처럼 그림의 마티에르(표면의 질감)와 합일된 건축의 마티에르를 여기서 본다.전시실엔 돌아온 유화와 드로잉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기증받은 유화는 ‘한일’(閑日, 한가한 날, 1950년대), ‘아기 업은 소녀’(1962), ‘농악’(1964), ‘마을풍경’(1963) 등이다. ‘한일’은 해외로 반출됐다가 200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돼 한국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아기 업은 소녀’(1962)는 옥션 경매에 잘 출품되지 않아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을 만큼 희소가치가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농악’(1964)은 1965년 이후 소장처가 확인되지 않았던 작품 중 하나다. 슬라이드 사진을 통해서만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된 기증 작품은 모두 진품이다. 작품이 아무 보호장치 없이 그대로 드러난 듯해 깜짝 놀라는 이들을 종종 본다. 작품은 무반사 유리가 감싸고 있다. 잘 보이지 않을 뿐 없는 건 아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숨결로 작품에 흠이 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박수근의 삶의 편린들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자료를 통해 가족과의 애틋한 사연, 당대와 불화한 예술인의 쓰디쓴 인생 역정 등을 엿볼 수 있다. 전시실을 나오면 무릎에 팔짱을 낀 박수근 동상이 나온다. 그 옆은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빨래터’와 자작나무 숲이다. 전시실에서 조붓한 언덕길을 오르면 박수근 묘다. 그의 처 김복순과 함께 누워 있다. 묘 건너편에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현대미술관, 라키비움, 박수근 파빌리온 등이다. 무엇보다 박수근 파빌리온의 자태가 시선을 잡아끈다. 박수근 파빌리온은 세 동의 건물이 통로로 이어진 형태다. 박수근의 아틀리에 노릇을 했던 서울 창신동의 집이 모티브다. 파빌리온 입구의 동판에는 ‘자연에 새겨진 익숙한 질서를 존중하는 궁극의 기념홀’이라 새겨져 있다. 라키비움(Larchiveum)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증강 현실 등 실감형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다. 현대미술관 역시 건물의 독특한 미감이 일품이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있고, 안에서도 밖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차갑고 정연한 콘크리트 건물 틈바구니에서 쉴 수 있는 나무 의자도 정겹고 기쁘다.●군사도시? 청춘공원 등 시내 안쪽에서도 조형 작품 수두룩 읍내에도 찾아볼 만한 조형 미술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파로호 꽃섬 맞은편의 청춘공원은 조각 공원이다. 인문학 마을, 캠핑장 등이 들어선 용머리 공원도 예전엔 ‘용머리 조각공원’이었다. 강변 여기기저에 조각 작품들이 많다. 용머리 공원 아래 있는 한반도섬은 파로호 중간에 우리나라 모양으로 조성한 인공 섬이다. 산책 삼아 걷기 좋다. 한반도섬 양쪽으로 다리가 놓여 걸어서 이쪽저쪽을 오갈 수 있다. 해안면으로 넘어간다. 최고 볼거리는 단연 ‘펀치볼’(Punch Bowl)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분지를 둘러친 모습이 화채 그릇과 비슷해 이런 이름을 얻었다. 을지전망대에서 이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지만, 현재 리모델링 작업으로 폐쇄 중이다. 그나마 실감 나게 펀치볼을 볼 수 있는 곳은 도솔산전투위령비 인근의 전망대다. 돌산령 터널이 생기기 전 양구에서 해안으로 갈 때 이용했던 지방도로의 정상 부근에 조성된 전망대다.●해발 1000m 산들의 분지 ‘펀치볼’… DMZ 야생화 공원도 길은 구불거리고 경사도 급하다. 반면 주변은 고원분지처럼 탁 트였다. 정상 부근엔 군부대도 있다. 돌산령을 내려서면 가까운 거리에서 두 곳의 야생화 공원과 만난다. DMZ자생식물원과 해안야생화공원이다. DMZ자생식물원은 근래에 조성돼 다소 황량하고, 야생화공원은 가을 들꽃들이 피지 않아 썰렁하다.해안은 안보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다만 을지전망대 외에 제4땅굴, 두타연 등 주요 안보관광지들이 폐쇄 중이다. 개방된 곳은 전쟁기념관이다. 기념관 들머리에 직사각형 기둥 아홉 개가 세워져 있다. 피의 능선 전투, 펀치볼 전투, 도솔산 전투 등 한국전쟁 당시 양구 일대 아홉 개 산자락에서 벌어졌던 고지전(高地戰)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기념관 안에도 다양한 조형 미술 작품들이 있다.
  • 지금, 여기… 낙원상가 화려했던 과거 소환

    지금, 여기… 낙원상가 화려했던 과거 소환

    실시간으로 정보가 유통되는 시대에 ‘지금, 여기’의 힘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압박한다. 시의성이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 전시공간 d/p에서 9월 18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긴 지금(The Long Now)’은 현대미술 작가 4명의 시선으로 시의성의 개념을 다각적으로 펼쳐 보인다. 낙원악기상가 신진 기획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건축가 최나욱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이현종 작가는 음악과 패션을 소재로 한 오브제 작품 ‘잭앤쿡’과 ‘파고다 고-고’를 통해 근대문화유산인 낙원악기상가의 화려했던 과거를 소환한다. 1세대 주상복합건물이자 당대 유행의 중심지였던 장소의 역사성을 담은 작품들은 시의성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상대성과 임의성을 환기시킨다. 전혜주 작가는 낙원빌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에서 채취한 물질, 먼지 등을 표본으로 진열해 개인이 감각하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준다. 정재경 작가는 15년째 재개발 예정지인 서초구 내곡동 현인마을에 사는 유기견들을 다룬 영상 ‘어느 마을’을 통해 우리가 지칭하는 ‘지금’, ‘여기’의 범주를 되묻는다. 허수연 작가는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다룬 자료들을 수집해 하나의 조각으로 만들어 시간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전시공간 d/p는 별들이 흩어지고 모이는 ‘이산 낙원(discrete paradise)’의 약자로, 다채로운 기획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 [전시] 서울갤러리 추천 8월 넷째 주말 전시

    [전시] 서울갤러리 추천 8월 넷째 주말 전시

    서울신문이 운영하는 미술전문 아트플랫폼 서울갤러리(www.seoulgallery.co.kr)는 8월 넷째 주말을 맞아 주변의 가볼만한 미술전시를 추천한다.대구에서 활동하는 이팔용 작가의 ‘이팔용 초대개인전 : 푸른 핏줄’이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24일부터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돌 표면에 가느다란 선들의 조합과 화석처럼 박혀있는 자연의 흔적들을 그려넣어 극사실적 표현을 현대적 감각과 색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커피라는 재료에 전통 수묵화 및 수채화 기법을 적용하는 ‘커피그림쟁이’ 장인영 작가의 색다른 전시 ‘장인영 개인전 : 커피로 그리다’전이 서울신문·서울갤러리 특별전시장에서 9월 3일까지 개최된다. 이번주는 단체전 전시들이 눈에 띈다. 강리, 구은정, 김신혜 등 12인의 작가들이 참여한 ‘푸른유리구슬소리 :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전은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9월 5일까지, 김온, 김혜원, 박서보 등 11인의 작가들이 참여한 ‘시시각각’전이 용산구 드로잉룸갤러리에서 9월 10일까지, 권진희, 서희수, 이상협 등 9인의 작가들이 참여한 ‘사유공간’전이 강남구 케이옥션 전시장B1에서 9월 14일까지 열린다. 용산구 베리어스 스몰 파이어스(VSF)는 나이트 갤러리와 함께 협업 전시 ‘SUNBURST’전을 9월 1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이트 갤러리 소속 작가인 안드레아 마리 브레이링, 미라댄시, 사마라 골든, 로보트 나바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서지민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서지민개인전 : [web발신]무료수신거부’전이 중구 리:플랫에서 다음달 18일까지 열린다.전혜주, 정재경, 이현종, 허수연 작가가 참여한 단체전 ‘긴 지금’전이 종로구d/p에서 9월 18일까지 개최되며, 추상회화 작업을 통해 현대 도시의 심리적 풍경을 그리는 구지윤 작가의 개인전 ‘혀와 손톱’이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윤상윤 개인전 : 유벤투스’전이 마포구 씨알콜렉티브에서, ‘이채은 개인전 : 결국 한방향으로 흐르는 시간들’전이 성동구 챕터투 야드에서 개최된다. 세 전시 모두 9월 25일까지. 놓치기 아쉬운 사진전도 있다. 마포구 대안공간 루프에서는 박형근 작가의 사진전 ‘차가운 꿈’을 개최한다. 작가는 17여 년 동안 제주의 모습을 대형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천혜의 자연경관과 원시성에 가려진 제주도의 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트라우마 : 퓰리처상 사진전 & 15분’전이 열린다. 옥승철, 김기라, 이동욱, 김옥선 외 2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둘다 9월 26일까지 전시한다. 인천의 정서진 아트큐브에서는 2021년 세번째 전시로 조은필 작가의 ‘그랑블루 Le Grand Bleu’전을 다음달 26일까지 개최하며, 용인시 갤러리위에서는 자의식에 의해 새롭게 조형된 이질적 세계를 캔버스에 흥미롭게 풀어내는 김형무 작가의 초대전 ‘Landscape-Nowhere’전이 다음달 29일까지 개최된다.최수환 작가의 개인전 ‘Walk in Emptiness’전이 10월 3일까지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정정엽 작가의 개인전 ‘걷는 달’전이 10월 31일까지 파주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열린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함께 기획한 특별전 ‘수중유물, 고려바다의 흔적’이 10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지난 1976년부터 2019년까지 40여 년간의 수중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신안선과 고려 선박에서 인양된 수중유물 450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백화점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을 방불케하는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신규 개관전시로 국내외 유명작가의 작품 100여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아트컬렉티브 : 나우&네버’전을 11월 21일까지 개최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서보, 이강소, 이우환, 전광영 등 거장들의 작품과 에드루샤, 오스 제미오스와 미스터 등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다음 주에 시작하는 전시회를 소개한다. ‘조은혜 개인전 : The Wave of Seoul’이 서울갤러리 특별전시장에서 9월 3일부터 10일까지 열린다. 조은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물과 연관된 장소를 그린 작품을 선보이는데, 다채로운 색감과 생기있는 리듬감이 특징인 그의 작품은 우리의 삶과 물결을 엮어 개인과 사회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김지혜, 형세린 작가의 ‘그즈음’전이 서대문구 갤러리 아미디에서, 김춘재 작가의 초대전 ‘Tiny wood’전이 서초구 스페이스 엄에서, 천현태 작가의 초대전 ‘한국의 미’전이 종로구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이외에도 많은 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보다 자세하고 더 많은 전시 소식은 ‘서울갤러리(www.seoulgallery.co.kr)’ 사이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 확산으로 임시 휴관 혹은 예약제로 운영하는 전시장이 다수 있으니 방문하기 전, 전시장 운영정보를 꼭 한번 확인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바란다. 서울 마포구는 여성의 임신·출산 전 과정과 자녀의 건강 관리를 돕는 ‘햇빛센터’가 19일 문을 연다고 밝혔다. 구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완화하고자 지난해 8월 서울시로부터 2억 9000만원을 확보해 모자건강센터로 이용되던 마포구 보건소 2층 전체를 햇빛센터로 넓혔다. 기존보다 2배 넓은 584㎡의 공간에 난임부부 상담실, 모자건강 교육실, 임산부 휴게 쉼터, 오감발달존 등이 마련됐다. 구는 이곳에서 난임부부 지원 확대, 산후도우미 및 산후조리비 지원, 수유 지원, 산후우울증 예방 관리 등 다양한 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1인 가구 비율이 유독 높은 마포구는 출산율 또한 저조하다”며 “퍼주기식 지원 대신 지역사회가 임신과 출산, 산후 관리까지 함께 한다는 기조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서울광장] 서울 설치 이건희 기증관, 다시 생각해 보라/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서울 설치 이건희 기증관, 다시 생각해 보라/서동철 논설위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구경할 생각을 아예 포기했다. 앞으로도 관람을 예약하는 ‘인터넷 클릭 속도전(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건희 기증관’을 서울에 짓겠다고 공표했다. 그것도 경복궁 동쪽 송현동 부지와 용산 중앙박물관 동편 부지로 압축했다. ‘접근성’을 이유로 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명품전이 열리면 파리만 날린다는 뜻인가. 역설적으로 명품전의 열기는 문체부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한다. 정부의 문화정책과 민간의 문화투자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민간의 문화투자가 접근성 좋은 입지를 우선시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찾아야 수익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마저 같은 논리에 매몰되면 문체부가 추진하는 문화 시설은 인구 집중 지역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말고는 어디에도 세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황당하지 않은가. 당연히 수도에 있어야 하는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과는 다른 문제다. 이건희 컬렉션이 화려하다지만 서울 문화권의 기반을 뒤흔들 정도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 기증관이 수도권 밖, 그것도 문화 기반이 취약한 고장에 들어선다면 해당 도시는 물론 주변 지역까지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고도 남는다. 이건희 컬렉션을 한 지역을 문화적, 경제적으로 환골탈태시키는 거대한 바람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부를 설득하고 싶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퇴락하던 공업도시 빌바오는 1997년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면서 도시가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다. 이런 변화를 ‘빌바오 효과’라고도 한다. 이건희 기증품 수준의 컬렉션이고, 지금의 국민적 관심이라면 ‘빌바오 효과’ 이상의 ‘이건희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이런 게 바로 ‘문화적 태풍’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건희 기증관 이야기가 나온 이후 필자의 뇌리에 줄곧 감도는 이름은 탄광도시 태백이다.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지역을 거론하기 시작했으니 미술관 적지를 좀더 생각해 본다. 남북 접경지대인 연천과 철원은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길 주변이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은 우리의 통일 의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두 고장은 그동안 문화적 혜택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건희 기증관은 ‘금강산 문화권’의 시발점으로 역할도 할 것이다. 새만금이 이건희 기증관의 적지라고 주장하면 조금 뜬금없을까. 바다를 막아 조성한 새만금은 엄청난 규모의 산업단지다. 한국을 대표하는 21세기형 첨단 산업단지를 지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건희 기증관은 이곳을 최첨단 산업과 최첨단 문화가 공존하는 ‘핫플레이스’로 만들 것이다. 지금은 실리콘밸리 출신이 현대미술을 이끄는 시대가 아닌가. 문화와 산업은 배척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포용하는 관계다. ‘무진장’이라고 부르는 무주, 진안, 장수도 있다. 수도권에서 이어지는 대전·통영 고속도로와 익산·포항 고속도로는 장수에서 만난다. 익산~장수 구간은 이미 개통됐고, 장수~포항 구간도 단계적으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가야 문화를 되살려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산간 지역이다. 영남에서는 역사 유산은 적지 않되 현대 문화는 빈약한 중앙고속도로 주변의 영주와 봉화가 생각난다. 광주와 대구를 이을 달빛고속철도 주변 도시도 대상에 넣어야 한다. 달빛철도는 담양, 순창, 남원, 장수, 함양, 거창, 합천, 고령을 지난다. 달빛철도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영호남 화합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이유는 수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건희 기증관은 지역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달빛철도의 경제성을 끌어올리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건희 미술관 비수도권 건립 기초지자체 연대’가 결성됐다는 뉴스도 들린다. 부산, 대구, 울산, 충남, 경북, 경남, 전남 등의 19개 기초지자체가 미술관 서울 건립 방침 철회와 지방 건립을 요구하는 모임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나열한 지역은 하나같이 이건희 기증관의 유치를 꿈도 꾸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건희 기증관을 건립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가 문화적 파급효과에 있다면 어디가 됐건 문화가 성긴 지역으로 보내야 한다. 그것이 정부 문화정책의 상식이 아닐까 싶다.
  • 아주 특별한 DMZ… 안쓰럽지만 빛나는

    아주 특별한 DMZ… 안쓰럽지만 빛나는

    정연두 작가, 3년간 DMZ 50차례 방문 주변 전망대 13개를 각각 극장으로 삼아오브제·퍼포먼스 등으로 설화·역사 풀어정연두 작가는 2017년부터 3년간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에 이르는 비무장지대(DMZ) 주변 13개 전망대를 50여 차례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 “DMZ의 사계절을 담고 싶다”는 제안을 담은 장문의 편지가 국방부를 움직였다. DMZ의 자연과 북녘 풍광을 촬영한 작가들은 드물지 않지만, 그의 작업은 특별나다. 칠성전망대 사진에는 총 대신 오색 풍선을 든 군인들이, 도라전망대 사진에는 줄다리기하는 남자가 있다. 강화 평화전망대를 찍은 사진에선 페트병으로 엮은 구조물을 뒤집어쓴 남자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가 ‘DMZ 극장’으로 이름 붙인 연출 사진 작품들이다. 엄혹한 분단 현실을 직시하는 공간인 전망대에 펼쳐진 엉뚱한 장면들은 기이한 감정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이 한 장의 사진 앞뒤에 놓여 있을까.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다원예술프로그램 ‘DMZ 극장’은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등을 통해 사진 속 다양한 서사들을 풀어놓는다. 정 작가와 10년 넘게 호흡을 맞춰 온 수르야 연출가가 협업했다. 각각의 전망대 이름을 딴 ‘오두산 통일극장’, ‘승리극장’, ‘멸공극장’ 등 13개 극장 사진 작품과 각 전망대에 얽힌 현실 혹은 우화를 함축한 조형 오브제가 전시돼 있고, 이를 배경으로 7명의 배우가 참여하는 ‘DMZ극장’ 퍼포먼스, 1인 안내자가 작품을 소개하는 ‘안보인 관광’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지난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정 작가는 “처음엔 건물, 풍경 등을 찍었는데 어느 전망대나 통유리창과 객석이 있는 모습이 마치 극장 같아 보였다”면서 “DMZ 주변 지역의 역사와 설화, 전쟁과 분단에 관한 일화 등을 소재로 공연 장면처럼 연출해서 찍게 됐다”고 말했다. 수르야 연출가는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는 주제여서 예술적으로 풀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이념, 정치 등의 선입견에서 한발 떨어져 DMZ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멸공극장’의 민들레 벌판 이야기는 피란민들 사이에 떠돌던 구전 설화가 모티브가 됐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지뢰를 피하기 위해 “먼 들에 가지 마라”고 했던 말이 민들레로 변형됐다고 한다. 두 예술가는 이 설화를 씨앗 삼아 전쟁고아로 버려진 후 지뢰를 밟아 영원히 이곳에 살게 된 민들레 할머니의 서사를 사진과 오브제, 퍼포먼스로 풀어놓는다. ‘고성 통일극장’에는 멧돼지, 곰, 고라니 등 금강산 야생동물에 관한 전설이 스며 있다. 모닥불 주변에 동물들이 둘러앉아 세상사를 주고받는 상상 속 이야기는 동물 탈을 쓴 배우들의 동화적 퍼포먼스로 구현된다. 페트병으로 만든 오브제를 구명대 삼아 바다를 건너온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강화 평화극장’, 승리 전망대 주변에 흐르는 화강(花江)의 여신을 다룬 ‘승리극장’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DMZ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정 작가는 “무엇을 전달할까보다 무엇을 전달하지 않을까 고민했다”면서 “내가 느꼈던 DMZ 경험을 공유하는 데 의의를 뒀다”고 말했다. 수르야 연출가는 “DMZ가 품은 안쓰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에 관객이 공감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안보인 관광’ 퍼포먼스는 화~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3시에, ‘DMZ 극장 퍼포먼스’는 9월 1일부터 매주 수·토요일 오후 4시에 사전 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 ‘혐한’ 日화장품 DHC, 인기 캐릭터 ‘무민’에 손절당해(종합)

    ‘혐한’ 日화장품 DHC, 인기 캐릭터 ‘무민’에 손절당해(종합)

    여러 차례 ‘혐한’을 드러낸 일본 화장품 대기업 DHC가 그동안의 차별·혐오 조장 행적 때문에 핀란드의 인기 캐릭터 ‘무민’과 추진하던 협업이 무산됐다. 지난 23일 DHC와 무민은 콜라보 제품 출시를 발표하고, 트위터 등 각종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관련 제품을 홍보했다. 무민 캐릭터가 그려진 핸드크림과 립밤 제품 등이 한정 수량 판매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품 출시 발표 이후 이에 대한 비판 의견이 트위터 등에 쏟아졌다. 무민이 상징하는 세계관이 차별을 조장하는 기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네티즌들의 비판이 빗발친 것이다. 이후 24일 정오쯤 무민 공식 사이트와 트위터 계정에서 DHC와의 콜라보 제품 관련 정보가 모두 삭제됐다. 일본 내에서 무민 캐릭터를 상품화할 권리를 보유한 기업 ‘라이츠 앤드 브랜즈’(Rights and Brands)는 DHC에 무민 캐릭터를 사용한 화장품의 추가 생산 중단을 요구했다. 이 회사는 무민 캐릭터를 사용하고 싶다는 DHC의 협업 요청을 지난해 9월 허락했다가 거의 1년 가까이 지나 최근 제품 출시까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문제를 인식하고 제휴 중단을 선언한 셈이다. 무민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핀란드 회사 측은 이날 일본판 허프포스트의 질의에 “DHC와의 협업을 중단하도록 일본 내 저작권 관리 회사에 지시했다”고 답변했다. 이어 “수많은 팬들로부터 이번 협업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무민 측은 어떠한 차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민 측은 협업 중단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DHC 회장을 거론했다. 무민 측은 “DHC 회장의 발언은 무민의 원작자 토베 얀손이 보여준 가치관과 완전히 반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무민의 일본 공식 사이트는 성명을 통해 “라이센스 제품 일부가 불쾌감을 안긴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 향후 라이센스 제품에 대해 인권 관련 내용을 엄격히 심사하기로 했다며 “그러한 인식 없이 계약이 진행된 경우에도 문제점이 발견되면 즉시 계약 중단 및 제품 유통을 금지하겠다”고 강조했다. DHC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해 “본건에 관한 설명을 삼가겠다”며 답변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혐한을 부추기는 글을 여러 차례 DHC 홈페이지에 올렸다. 요시다 회장은 경쟁사인 산토리가 광고에 코리아(한국·조선) 계열 일본인들을 주로 기용해 인터넷에서 야유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또 요시다 회장의 차별 조장 행위를 NHK가 취재하자 NHK가 일본을 ‘조선화’시키는 원흉이라는 취지의 글도 있었다. DHC 측은 그 전에도 여러 차례 혐한 관련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2019년에는 DHC의 자회사인 DHC TV에 출연한 극우 성향의 인사가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한국은 원래 바로 뜨거워지고 바로 식는 나라다.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고, 다른 출연자는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예술성이 없다. 내가 현대미술이라고 소개하며 성기를 내보여도 괜찮은 것인가”라고 망언을 했다. 심지어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해 지금의 한글이 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 왜곡 발언도 나왔다. 요시다 회장은 2016년 2월 홈페이지의 회사 소개 코너에 올린 메시지에서 재인 한국·조선인을 ‘사이비 일본인’이라면서 “모국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라고 쓰기도 했다.
  • ‘혐한’ 日화장품 DHC, 인기 캐릭터 ‘무민’에 손절당해

    ‘혐한’ 日화장품 DHC, 인기 캐릭터 ‘무민’에 손절당해

    여러 차례 ‘혐한’을 드러낸 일본 화장품 대기업 DHC가 그동안의 차별·혐오 조장 행적 때문에 핀란드의 인기 캐릭터 ‘무민’과 추진하던 협업이 무산됐다. 지난 23일 DHC와 무민은 콜라보 제품 출시를 발표하고, 트위터 등 각종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관련 제품을 홍보했다. 무민 캐릭터가 그려진 핸드크림과 립밤 제품 등이 한정 수량 판매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품 출시 발표 이후 이에 대한 비판 의견이 트위터 등에 쏟아졌다. 이후 24일 정오쯤 무민 공식 사이트와 트위터 계정에서 DHC와의 콜라보 제품 관련 정보가 모두 삭제됐다. 무민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핀란드 회사 측은 이날 일본판 허프포스트의 질의에 “DHC와의 협업을 중단하도록 일본 내 저작권 관리 회사에 지시했다”고 답변했다. 이어 “수많은 팬들로부터 이번 협업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무민 측은 어떠한 차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민 측은 협업 중단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DHC 회장을 거론했다. 무민 측은 “DHC 회장의 발언은 무민의 원작자 토베 얀손이 보여준 가치관과 완전히 반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무민의 일본 공식 사이트는 성명을 통해 “라이센스 제품 일부가 불쾌감을 안긴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 향후 라이센스 제품에 대해 인권 관련 내용을 엄격히 심사하기로 했다며 “그러한 인식 없이 계약이 진행된 경우에도 문제점이 발견되면 즉시 계약 중단 및 제품 유통을 금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혐한을 부추기는 글을 여러 차례 DHC 홈페이지에 올렸다. 요시다 회장은 경쟁사인 산토리가 광고에 코리아(한국·조선) 계열 일본인들을 주로 기용해 인터넷에서 야유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또 요시다 회장의 차별 조장 행위를 NHK가 취재하자 NHK가 일본을 ‘조선화’시키는 원흉이라는 취지의 글도 있었다. DHC 측은 그 전에도 여러 차례 혐한 관련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2019년에는 DHC의 자회사인 DHC TV에 출연한 극우 성향의 인사가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한국은 원래 바로 뜨거워지고 바로 식는 나라다. 일본은 그냥 조용히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고, 다른 출연자는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예술성이 없다. 내가 현대미술이라고 소개하며 성기를 내보여도 괜찮은 것인가”라고 망언을 했다. 심지어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해 지금의 한글이 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 왜곡 발언도 나왔다. 요시다 회장은 2016년 2월 홈페이지의 회사 소개 코너에 올린 메시지에서 재인 한국·조선인을 ‘사이비 일본인’이라면서 “모국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라고 쓰기도 했다.
  • [길섶에서] 용주사 옆 미술관/서동철 논설위원

    작고한 성찬경 시인의 전시회가 열린대서 경기 화성시에 갔다. 미술관은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릉 및 건릉과 두 무덤의 수호사찰 용주사에서 멀지 않았다. 융·건릉과 용주사는 몇 차례 찾은 적이 있는데도 몇 년 사이 주변이 급격히 도시화해서인지 가는 길은 낯설었다. 시인은 생전 서울 응암동 자택을 ‘물질고아원’이라 이름붙였다. 온갖 잡동사니를 집안이며 마당에 가득 쌓았으니 고물상과 다름없었다. 시인은 이것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전시를 둘러보니 1960년대 시작했다는 시인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시각에서도 선구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손길이 갔다지만 ‘고아원’에 쌓인 ‘고물’이 ‘작품’으로 보이는 것은 큐레이팅의 힘이다. 좋은 전시를 보니 미술관도 다시 보였다. ‘엄 뮤지엄’. 융·건릉에서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좁은 골목으로 구불구불 올라가야 나타난다. 서양화 기법이 인상적인 용주사 대웅보전 후불탱은 단원 김홍도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은가. 용주사에서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화성시를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는 생각이다. 이 작은 미술관이 수준 높은 전시를 이어 가 다양한 문화를 이 길가로 불러모으는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
  • [거리 미술관]13.히스토릭 스타(Historic Star)

    [거리 미술관]13.히스토릭 스타(Historic Star)

    수도 서울은 627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도시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서울에는 고궁 등 조선시대 문화유산자원에서부터 근대화 이후 고속성장의 상징인 마천루가 도시 곳곳에 혼재돼 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일대는 이러한 서울의 역동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도시재개발로 이 일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층 빌딩군으로 변신하기 시작했으나 1394년 조선왕조의 한양천도 이후 서민들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들이 즐비하다. 청진동 중에서도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가까운 GS종로타워 일대는 이러한 문화역사 체험의 공간으로 가볼만하다. GS건설 본사와 하나로의료재단 등이 사용 중인 이 쌍둥이 빌딩 1층 유리 바닥 아래에는 조선시대의 주거 문화 유적지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400년 전 이 일대에 거주하던 조선시대 중인과 상인들의 거주지로, 화약의 폭발력으로 탄환을 쏘는 조선군의 주력무기인 총통도 발견돼 보존돼 있다.시선을 이 건물 앞으로 돌리면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대형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정영훈(56) 조각가의 ‘Metaphysical Draw, Historic Star’라는 2014년 제작한 추상 조각이다. 가로 6.6M, 세로 6.2M에 높이 7m 규모다. 이 조형물은 스테인리스 재질에 붉은 색으로 도장을 해 멀리서 보더라도 눈에 띄는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작가는 작품 표지판을 통해 “공간적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한 추상 조각으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현장의 시 공간성은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영원한 빛의 생명을 간직한 별(star)로 승화하는 의미를 부여하였다”고 적고 있다. 작품은 멀리서 보면 커다란 거미 형상이나 농악대의 상모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작품 이름에 별이 들어가 있는데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정 작가는 이에대해 작품명에 사용한 별은 형태적 별이 아니라 대중스타,스포츠 스타 등의 표현에서 처럼 존경을 담은 추상적 의미로서의 별이라고 말한다. ‘추상조각은 구상조각이나 반추상조각에 비해 일반인에게 호소할만한 대중성은 약한 것같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대미술의 매력은 관람자가 (근대미술처럼) 작품을 감상할 때 그냥 아름다움을 읽는게 아니라 자신의 기억이나 지식 등 여러 요소들을 연관시켜가며 ‘예술적 쇼크’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감상자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데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감상하는 사람의 생각의 폭과 깊이에 따라 추상조각의 대중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작품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이 작품은 모두 연결돼 있으나 그 연결부위의 굵기는 일정하지 않다. 3차원 공간에다 커다란 붓으로 단번에 그림을 그리듯 아래 위로, 그리고 옆으로 꺾이며 연결된 포물선 모양에서 회화적 강약과 농담이 느껴진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이 작품은 하나의 3차원 선으로 연결된 공간상의 드로잉으로 나에게는 캘리그래프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고,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미국은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모범국가로 통하지만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인종차별성 흑백분리 정책을 20세기 중반까지 유지했다. 1950년대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시는 버스 이용 시 백인석과 유색인석 구별 등 흑백차별 정책을 펴고 있었다. 버스 이용객의 75%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은 빈 자리가 있을 때는 앉아 있다가도, 백인이 타면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만원이 되면 아예 내려야만 했다.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교통이용 정책은 1955년 큰 변화를 맞는다. 퇴근길 버스에 탄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받고도 이를 거부했다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버스타기 거부운동으로 번졌다. 1년 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버스 이용에서 흑백 분리는 위헌이라며 연방대법원에 위헌심판을 청구했고 결국 대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이 들불처럼 번졌으나 지금도 흑인차별 시비는 끊이질 않고 있다. 조선시대 백성들도 통행에 있어 차별대우를 받았다. 종로는 조선왕조의 궁궐이나 관가가 몰려 고관대작의 왕래가 잦은 큰 길이었다. 당시 고관대작들은 가마나 말을 타고 다닌 반면, 하급 관료나 백성들은 걸어 다녔다. 게다가 백성들은 종로에서 가마나 말을 탄 고관대작들을 보게 되면 길을 터주고 엎드려야 했다.이런 신분에 따른 차별이 달가울 리 없는 백성들이 양반들과 부딪치지 않고 허리를 펴고 다니던 길이 피맛길이다. 백성들이 이용하면서 주막이나 국밥집 등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먹거리 상점들도 들어섰다. 하지만 2009년 종로구 청진동 일대 재개발로 인해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남아있는 예전의 피맛골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GS종로타워 옆에 들어선 르메이에르 빌딩에 피맛골 표지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히스토릭 스타에서 195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적 교통정책을 무너뜨린 흑인들의 함성과 조선시대 피맛골을 이용하던 백성들의 애환을 떠올려본다. 이들의 과거와 서울시민들의 일상이 영원한 빛을 지닌 생명의 별로 승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 롯데百 ‘동탄 3040’ 지갑 열기 승부수

    롯데百 ‘동탄 3040’ 지갑 열기 승부수

    롯데쇼핑의 야심작인 롯데백화점 동탄점이 경기 화성시에 20일 문을 연다. 롯데백화점이 새 점포를 여는 것은 2014년 수원점 이후 7년 만이다. 동탄점은 백화점과 야외 쇼핑몰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조성됐다. 연면적 24만 6000㎡ 규모로 지하 2층에서 지상 6층까지 총 8층으로 지어졌다. 메종마르지엘라, 펜디, 로에베 등 젊은 감각의 패션 브랜드 약 500여개가 입점했으며,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은 예술·문화·식음료(F&B) 등 체험 콘텐츠로 채워졌다. ‘살아 있는 현대미술의 전설’로도 불리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10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단순히 쇼핑하는 곳을 넘어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겠다는 목표다. 장소를 동탄신도시로 점찍은 이유는 젊은 부자를 뜻하는 3040 ‘영앤리치’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화성시의 40대 이하 인구 비중은 72.6%로 전국 평균(59.3%)보다 높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사업장도 포진해 있어 소득수준도 높다. 2018년 기준 화성시의 지역총생산(GRDP)은 77조원으로 경기도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았다.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로 꼽히는 ‘동탄맘카페’ 회원 약 40만명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최근 델타 변이 등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문을 여는 만큼 방역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숫자에 접촉하지 않고 손가락만 대도 눌리는 ‘접근 인식 엘리베이터 버튼’이 대표적이다. 방문객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으며 체온을 측정하는 ‘열화상 인공지능(AI)’ 등 현존하는 첨단 방역 기술을 망라했다는 설명이다. 동탄점 오픈으로 수년간 부진했던 실적이 반전할지 주목된다. 롯데쇼핑 매출은 2017년 17조 9291억원에서 지난해 16조 1844억원으로 줄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도 15조 9954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소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적인 전망을 깨기 위해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맡은 강희태 롯데그룹 부회장 주도로 동탄점 흥행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황범석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 대표는 “동탄점은 브랜드 구성, 경험 콘텐츠, 방역 등 모든 부분에서 기존 백화점의 틀을 깨고 최근 트렌드와 상권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점포”라면서 “동탄의 랜드마크를 넘어 국내 백화점을 대표하는 점포로 거듭나도록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40만 동탄맘’ 잡는다”…롯데쇼핑 명운 달린 롯데百 동탄점, 20일 연다

    “‘40만 동탄맘’ 잡는다”…롯데쇼핑 명운 달린 롯데百 동탄점, 20일 연다

    롯데쇼핑의 야심작인 롯데백화점 동탄점이 경기 화성시에 20일 문을 연다. 롯데백화점이 새 점포를 여는 것은 2014년 수원점 이후 7년 만이다. 동탄점은 백화점과 야외 쇼핑몰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조성됐다. 연면적 24만 6000㎡ 규모로 지하 2층에서 지상 6층까지 총 8층으로 지어졌다. 메종마르지엘라, 펜디, 로에베 등 젊은 감각의 패션 브랜드 약 500여개가 입점했으며,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은 예술·문화·식음료(F&B) 등 체험 콘텐츠로 채워졌다. ‘살아 있는 현대미술의 전설’로도 불리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10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단순히 쇼핑하는 곳을 넘어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겠다는 목표다. 장소를 동탄신도시로 점찍은 이유는 젊은 부자를 뜻하는 3040 ‘영앤리치’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화성시의 40대 이하 인구 비중은 72.6%로 전국 평균(59.3%)보다 높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사업장도 포진해 있어 소득수준도 높다. 2018년 기준 화성시의 지역총생산(GRDP)은 77조원으로 경기도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았다.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로 꼽히는 ‘동탄맘카페’ 회원 약 40만명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최근 델타 변이 등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문을 여는 만큼 방역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숫자에 접촉하지 않고 손가락만 대도 눌리는 ‘접근 인식 엘리베이터 버튼’이 대표적이다. 방문객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으며 체온을 측정하는 ‘열화상 인공지능(AI)’ 등 현존하는 첨단 방역 기술을 망라했다는 설명이다. 동탄점 오픈으로 수년간 부진했던 실적이 반전할지 주목된다. 롯데쇼핑 매출은 2017년 17조 9291억원에서 지난해 16조 1844억원으로 줄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도 15조 9954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소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적인 전망을 깨기 위해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맡은 강희태 롯데그룹 부회장 주도로 동탄점 흥행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황범석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 대표는 “동탄점은 브랜드 구성, 경험 콘텐츠, 방역 등 모든 부분에서 기존 백화점의 틀을 깨고 최근 트렌드와 상권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점포”라면서 “동탄의 랜드마크를 넘어 국내 백화점을 대표하는 점포로 거듭나도록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단색화 거장’ 김기린 화백 별세

    ‘단색화 거장’ 김기린 화백 별세

    단색화의 거장 김기린 화백이 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5세.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에 매료돼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프랑스 디종대에서 문학을 배우다 미술을 공부하기로 했다. 이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다녔다. 1960년대 전반기부터 구상화를 그렸고 이후 평면을 다차원적으로 탐구했다. 60년대 중후반에는 흑·백·적·황·녹색의 배치가 독특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1970년대에 들어 단색이나 다른 두 색으로 사각형 안의 사각형을 그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을 발표했다. 1980년대엔 사각의 캔버스 안에 작은 사각형과 그 안의 달걀형 점을 기본단위로 한 평면 모노크롬 회화 ‘안과 밖’ 연작을 제작했다. 화려한 원색을 사용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그의 작품은 디종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소장 중이다. 유족(부인과 1남 1녀)은 모두 프랑스에 살고 있다.
  • ‘단색화’ 거장 김기린 화백 별세

    ‘단색화’ 거장 김기린 화백 별세

    단색화의 거장 김기린 화백이 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5세.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에 매료돼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다. 프랑스 디종대에서 문학을 배우다 미술을 공부하기로 했다. 이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다녔다. 1960년대 전반기부터 구상화를 그렸고 이후 평면을 다차원적으로 탐구했다. 60년대 중후반에는 흑·백·적·황·녹색의 배치가 독특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1970년대에 들어 단색이나 다른 두 색으로 사각형 안의 사각형을 그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을 발표했다. 1980년대엔 사각의 캔버스 안에 작은 사각형과 그 안의 달걀형 점을 기본단위로 한 평면 모노크롬 회화 ‘안과 밖’ 연작을 제작했다. 화려한 원색을 사용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2016년 갤러리현대에서 그간 공개되지 않던 196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발표한 작품을 아우르는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디종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소장 중이다. 유족(부인과 1남 1녀)은 모두 프랑스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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