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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곡작가 이현화(이세기의 인물탐구:129)

    ◎조직속에 마멸되는 소시민 아픔 고발/냉소적인 풍자로 날카로운 현실비판/겸손한 신사지만 할일과 할말은 다해 이현화는 조용한 사람이다. 모션이 크지 않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방의 심층에 스미듯 접근하여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친밀한 존재로 끝까지 남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괴팍스러움을 과시하지 않지만 범상한 인물 또한 아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시시한 것을 용납하지 않고 책임지고 자신의 세계를 펼친다고 믿는다.그래서 그의 작품을 선택하려는 연출가들은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이현화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만 그는 연출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협의 과정에서도 연출가의 의도를 이해하여 작품을 왜곡시키거나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영합하지 않는다. 그와 많은 작품을 해온 연출가 채윤일은 『일류교육을 받은 정상적인 직업인에다 손색없는 연극인,훌륭한 가장이지만 그에게는 원만한 구석이 없어보이고 자신의 작품을 보호하는데 편집광적」이라고 했다.그러나 일단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면 배우와 연출가의 몫으로 모든 것을 돌린다. ○연극반 후배와 화촉 그는 언제봐도 겸손하고 예의바른 신사다. 어떤 일에서는 한 템포 뜸을 들이고 어눌한 편이지만 할말은 다하고 할일은 다하고야 만다.그의 작품만 봐도 알수 있다.작품속에 담긴 작의에는 임의성과 작의성이 도사리지만 그 모든 진행에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른바 무대위에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형식을 떠나 생생하고 직접적인 실체험과 생체험으로 관객에게 접근하여 감정에 충격을 가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두 쌍의 기이한 남녀가 벌이는 「쉬­쉬­쉬­잇」이나 「누구세요?」는 언뜻 보면 일상적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사랑의 부재를 그리고 있는것 같지만 실은 거대한 조직사회에서 마멸되어가는 소시민의 아픔을 파헤치고 있다.문제작 「0.917」역시 성인들의 일상적 삶의 무의미함에 의표를 찌르고 있지만 인간의 무의식속에 잠재된 원천적 리비도를 표출하여 그 시대를 살고있는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억압을 그리고있다.이른바 수면에 떠오른 민초의 존재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그속에 잠재된 무진장의 힘이 수면에 떠오를 때의 예측할수 없는 위기감과 돌발사태에 대한 경고다.0.917이란 빙산이 잠수되어있는 부분과 수면위에 나타나있는 부분의 비율이다. 「불가불가」나 「카덴짜」같은 역사극도 논리적 전개와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기 이전에 「훼절을 요구하는 왕」과 「절개를 굽히지 않는 신하」의 고문을 반복적으로 감행하여 작품전체에 「가학성」을 부각시키는 독특한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그리고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역사의 흐름이 잘못되게한 책임은 「그것을 저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으며 그것은 수백년이 지난 오늘,「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자신」임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이현화는 날카롭다.「연극은 더이상 거짓되고 피상적 현실의 사실묘사일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평론가 심정순은 「그 기법과 개념이 프랑스의 앙토낭 아르토의 잔혹극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연극평론가 김방옥도 지난 75년이래 지속적으로 공연되어온 그의 「누구세요?」를 보고 「아직도 이만한 작품이 다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현화에게는 다행인지 모르나 우리 연극계로서는 불행한 일」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그의 희곡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성장과정이 기묘하게 맞물려 있음을 짐작할수 있다. 그는 먼저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월남한 실향민이다.한글교육 1세대에다 초등학교 3학년때 6·25를 만났으며 중학교입시로 상급학교에 진학했고 고교 3학년때 4·19,대학 1학년때 5·16,군입대무렵에 6·3사태 등 시대의 고비고비를 가장 섬세한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맞고 있다.그래서 초기에는 냉혹한 사회구조속에서 소멸되어사는 현대인의 자아상실문제와 정체성의 불확실성에 주력하고 80년대에 접어들자 부도덕한 조직에 짓밟히는 민초의 삶,짓밟혀도 짓밟혀도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에 조명하고 있다. 서울 효자동에서 운수업을 하던 이문호씨의 3남2녀중 넷째.서울중학시절 누님이 권해준 「한국문학전집」속에 실린 유치진의 희곡을 읽고 「소설이나 시보다 더 재미있는 문학장르」에 반해서희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1970년」이란 어느때보다 행운의 해였다고 기억한다.그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당선했고 한국방송공사(KBS)에 입사했으며 군제대후 연세대에 복학해서 연희연극회에 영어연극반을 신설,스트린드 베리히의 「이스터(부활제)」를 연출하다가 여주인공 엘리노어역을 맡았던 후배 이영자씨를 만나 결혼했다. 작품의 숫자는 많지않지만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질때마다 숱한 화제를 뿌리면서 수많은 상을 휩쓸게 된 것은 다양한 주제와 창작적 흥미에도 불구하고 사회성이나 역사성보다 개인적 삶의 의미를 심층있게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또 언어사용은 간결하고 함축적이면서 약간의 냉소적 풍자와 함께 운문적이고 명료한 산문적 대사를 구사하고 있다.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 차원에서 이성적 논리에 호소하기 보다는 감각적·심리적 충격에 호소하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마다 숱한 화제 독창성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전통연극에서 얻어낸 영감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해내는 능력도 그만의 가공할 극작술과 무대의 실제를 잘 터득하고 있는 노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50대중반인 지금도 서정성과 낭만을 잃지않고 만년 소년같은 심성과 취미를 지키는 그는 새 작품을 쓸 때마다 반드시 새 만년필을 사고 그린색 잉크를 고집하여 컴퓨터나 노트북이 아닌 육필로 작품을 탄생시킨다.언젠가부터 수면속에서도 자신의 창작생활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여전히 조용하다.그러나 그의 사고는 앙칼지고 그의 실천성은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짚고 넘어갈 것은 반드시 짚어내면서 상대방의 가슴에 스미듯 접근하여 가장 진실한 정과 진리의 빛을 남겨준다.연극계의 비범한 존재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그는 눈부신 계절에 또 하나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위한 그 시작을 서두르고 있다. □연보 ▲1943년 황해도 재령 출신 ▲61년 서울고 졸업 ▲67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 ▲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요한을 찾습니다」 당선, 극단 광장공연(이진순 연출),KBS(한국방송공사) 입사,드라마PD ▲75∼80년 희곡 「누구세요?」 극단민중극장공연(정진수 연출) ▲1976년 중앙일보 창간10주년기념 문예작품모집에서 희곡 「쉬­쉬­쉬­잇」 입상,극단 자유극장공연(김정옥 연출),KBS 쇼PD ▲78년 희곡 「카덴짜」 극단 민중극장공연(정진수 연출) ▲78∼84년 희곡 「0.917」 극단 쎄실극장공연(채윤일 연출) ▲79년 희곡 「우리들끼리만의 한번」극단 쎄실극장공연(채윤일 연출) ▲81년 희곡 「산씻김」동랑레파토리극 극단 공연(유덕형 연출) ▲82년 KBS 교양PD,교양다큐멘터리 및 「문화가산책」 창설 ▲87년 희곡 「불가불가」 극단 쎄실극장공연(채윤일 연출),대학극 「오스트라키스모스­도편추방」(서강대 연대 등 전국대학연극부에서 공연) ▲90년 희곡 「넋시」 국립극단공연(강영걸 연출),「산씻김」(이윤택 연출) 일본공연,KBS교양국제부장 ▲91년 「카덴짜」(정진수 연출) 일본공연 ▲96년 희곡 「키리에­위대한 위증」 극단 여인극장공연(강유정 연출),KBS위성방송부장 ▲97년 「키리에」 미주지역 순회공연,현재 한국방송공사 심의위원 〈수상〉 문학사상신인작품상(77년) 영화연극상·한국연극영화예술상·서울평론가그룹상(78년) 현대문학상(79년) 대한민국문학상(84년) 대한민국연극제및 서울극평가그룹 희곡상(87년) 동아연극상작품상·백상예술대상(88년) 〈저서〉 희곡집 「누구세요?」(예문관 79년) 「0.917」(청하출판사 85년) 불어판 「Unpossible,impossible(불가불가)」(프랑스 르밀러드줄 출판사) 등
  • 양자강 하류지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5)

    ◎7천년의 역사·문화가 살아 숨쉰다/송·원·명·청대 거치며 걸출한 문인·묵객 대거 배출/당도·양주·항주·소주·소흥 등서 중국문학 꽃피워 지난달 12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가 5회째를 맞는다. 그동안 중국의 국민시인 이태백이 만년을 보낸 양자강 하류의 당도시와 꽃과 술과 물의 마을 양주,한말의 망명시인 김택영이 묻힌 남통,송나라 시인 진관이 공부한 고우시 등을 찾았다.이처럼 중국문학 대가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양자강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6천300㎞의 강이다. 양자강의 지리조건과 역사는 황하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장강으로 불리는 양자강,그 길다란 용틀임은 황하의 스무줄기에 상당한 수량을 유출하면서 그 겨드랑이에 중국의 쌀 수요량 10분의4를 산출하는 세칭 어미지향을 거느리고 있다. 그럼에도 인문사회의 역사는 황하보다 천년이 넘게 뒤져 있다.장강유역에 주대의 유물이 간혹 보이지만 역사의 기록은 기원전 6,7세기의 춘추시대 오 월에서 비롯된다.그마저 정치의 중심이나 번영의 시장으로 각광을 받기는 송원 양대부터임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마저 생생하게 기록했다.항주는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다고. 물론 남송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벌써 춘추전국때 오월문화를 비롯해서 육조때의 남조문화가 바탕을 닦은 것이다.그 빛과 힘은 양자강의 하류에 응집되었다.여기서 말하는 양자강 하류란 강서성 호구로 부터 안휘성 동남단과 양자강삼각주,곧 양자강 남북연안에 위치한 절강성과 강소성 상해 등 3개 시·성을 통칭하고 있다. 양자강 하류지역은 남송·원·명·청을 거쳐 민국과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줄곧 상승의 기세다.비단과 도자기를 비롯 쌀·차 등 농산품의 생산과 수출로 경제의 번영을 누리면서 희곡과 미술 등의 예술로 강남문화를 일구었는가 하면 성리학과 실학의 연구로 근대화·민주화의 앞장에 섰다.거기다 근대문학의 가장 뜨거운 산지가 됨으로써 문인을 배출하는 못자리가 되었다. 필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던 「중국고대문학사」와 「중국근대문학사」에 등장하는 문인들을 그 출생지와 활동지별로분류한 나머지 그 전체의 4할쯤이 이곳서 태어나고 이곳에 작품을 썼다는 일차적인 통계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물론 송대 이후 특히 명·청 양대에 집중되어 있다.따라서 시와 산문·평론등 귀족문학은 물론 시민문학으로서 그 광장을 넓혀 소설과 희곡등 다양한 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황하는 열악한 지리환경을 극복한 채 정치문화의 번영을 누렸고 양자강은 풍요로운 지리환경임에도 중화문화의 종속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남송때에야 그 지기와 인걸을 발휘했던 것이다. 1949년,새로운 중국이 건설되고 한중관계가 단절된 뒤 중국의 고고학계에는 지각변동에 상당하는 새로운 발굴과 함께 새로운 발견,새로운 학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그것은 1953년 섬서의 서안교외인 반파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3300년까지 존재했을 신석기 문화유적을 발견하여 북방의 문화사를 2000년이나 소급한 일이 있었다.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제까지 적막한 옥토로만 여겼던 장강 하류지역에서 연거푸 놀라운 문화가 햇빛을 보기 시작하 것이다. 1958년 상해 근교 청포현 숭택에서 기원전 3400년에서 4000년의 정제 석기를,1959년 절강 가흥근교인 마가빈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의 신석기와 홍도를,다시 1973년과 1977년 두차례에 걸쳐 절강 여요현 나강향 하무도에서 기원전 5000년의 쌀과 목조건축·방직·축목등의 유적을 각각 발굴 연구하면서 7000년이나 숨겼던 비밀이 어렴풋 풀리게 된 것이다. 문학은 자연지리적 환경보다는 인문사회적 환경의 산물이요,중국은 황하와 장강을 중심한 남북문화지만 선후적 관계보다는 개성적 차이로 발전되었다는 1차적 결론을 얻을수 있었다.그것은 장강삼각주의 지형이 말해 준다.그 서북에 낮은 산악과 구릉이 남북으로 누워있을뿐,절대의 면적이 수로가 사통팔달하는 대평원이어서 배산임수해야 인물을 낸다는 통속적인 풍수설을 뒤엎고 있다.또한 장강 삼각주에서 출토된 신석기 유물들은 북방의 동시대 유적인 반파의 그것보다 오히려 정교한 데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과 목적으로 필자는 안휘성의 동남단인 당도에서 출발,장강삼각주의 문학 유적을 전전하면서 그 현장을 확인키로 했다.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을 길러준 남경을 거쳐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의 고향 회남과 「경화연」의 저자 이여진의 고향 연운항,송나라 문호 소동파가 최후를 마친 상주,「삼국지」를 재현시킨 북고산의 진강,원말의 영웅소설 「수호전」의 배경이요 그 저자 시내암과 청나라의 이름난 시인이자 화가인 정판교의 고향인 흥화.명말의 시인 전겸익의 고향인 상숙,역시 명말 시인 진자룡의 고향인 송강,명나라 후칠자의 수령인 왕세정의 고향 태창,역시 명말의 시인 고염무의 고향으로 지방극 곤극의 고장인 곤산,명말의 문인이자 여행가인 서하객의 고향 강음,당나라때 대시인 백거이 위응물 유우석 등이 벼슬살이했던 소주.청말의 문학평론가 왕국유의 고향인 가흥,만당의 시인 두목이 벼슬했던 호주,송나라의 거물 사객인 주방언과 청나라때 문학이론가 원매 등의 고향이요,당 송의 대시인이었던 백낙천과 소동파가 치적을 남겼던 항주.명나라때 시인이요 대사상가였던 왕양명과 역시 시인이었던 황종희의 고향 여요,한나라때의사상가였던 왕충의 고향 상우,송나라 대시인 이었던 육유와 현대문학의 비조인 노신의 고향 소흥,청나라때 희곡가 이어와 중국 현대시단의 거성인 애청의 고향인 금화 등이 앞으로 연재의 대상이 된다. 그 많은 곳을 되돌아보면 청록색의 망망대야,그 풍요로운 평원과 수향에서 중국문학사의 절반이 이룩된 것을 볼수 있었다.
  • 이태백의 당도시(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

    ◎취라산 강변공원 곳곳에 시선기린 유적이…/달 잡으러 몸던진 채석강물에 태백의 환상 어리고/청산아래 외로운 무덤 묘포엔 「시인」아닌 「명현」으로 새 기획연재물 허세욱 교수(고려대 중국문학)의 「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가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신문을 통해 독자들을 만난다.이 시리즈는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만년을 보내고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송나라 문호 소동파,「수호전」의 저자 시내암,송나라 시인 백낙천,중국현대문학의 비조 노신 등이 태어나고 작품활동을 벌인 위대한 중국문학의 산실인 양자강 하류의 어제와 오늘을 필자의 깊이있는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해나게 된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동요처럼 당나라 시선 이태백은 살아서 달에 놀았지만 죽어서 땅에 묻혔다.그 묻힌 땅을 찾아서 가는 길이다. 그는 천재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심지어 한국의 어린이조차 남의 나라 시인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 친숙했던 시인이건만 낳아서 묻힐 때까지 기구한 구름나그네였다. 이태백은 기원 701년,무역상이던 아버지를 따라 서역의 쇄엽,그러니까 지금의 키르기스공화국 토크마크부근에서 출생,다섯살때 고향인 사천성 강유현 청련향으로 귀국했다.고향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출향관,중국의 강남·강북 많은 땅을 떠돌다가 예순한살되던 761년 섣달,당도의 현령으로 있던 족숙 이양빙 집에 기식하다가 이듬해 11월,끝내 늑막염으로 병사했다.당도의 동북교외에 위치한 용산 동록에 매장됐다 다시 58년 뒤인 기원 820년,역시 용산 건너편 청산의 서쪽 산자락에 이장,오늘에 이른 것이다. 혈통에 대한 이설도 분분했다.부조의 오랜 외유때문에 혼혈일 가능성 외에도,심지어 이족으로 보는 호인설도 있지만 그의 자작시나 행장·묘비의 기록에 따라 한족,그것도 장상의 후예로 보인다. 이백과 당도의 인연은 깊었다.중·만년에 방랑점으로 삼은 선성·금릉(지금의 남경)·광릉(지금의 양주)등지를 연결하는 중간점인 데다 그가 숭모하던 남조의 시인 사조(464∼499)가 태수를 지낸 곳,그래서 한동안 선성서 살면서도 일곱번이나 당도를 출입했다.지금 태백이 영구지지로 묻힌 곳도 사조의 고택이 있던 청산 그 산자락이었다. 당도시에서 북쪽으로 10㎞도 안되는 마안산시,서남쪽에 양자강 강줄기를 치마처럼 휘감고 우뚝 선 해발 130m의 취라산은 전체가 이태백기념관이랄 만큼 그를 기리는 유적으로 널려 있다. 평생 벼슬을 마다하고 시주화월에 미쳐서 강호를 떠돌던 이태백은 인생이 몽땅 저물어버린 기원 756년,나이 56세에 당나라 현종의 열여섯째 아들인 영왕이 형인 숙종과 벌인 친위쿠데타에 연루,심양에서의 옥고과와 야랑으로의 유배를 겪다가 나이 59세에 석방된다.그러니까 그의 만년 6년은 반란에 옥고,가난에 병고,끝없는 시련에 꺾이고 만 것이다.그가 친위쿠데타에 끼어든 것은 당시 장안을 협공한 안록산의 반군,그 무도한 발굽에 무력해진 정부군을 돕겠다는 비분강개 때문이었다. 과연 그의 절필로 알려진 「임종의 노래(임종가)」엔 뜻을 이루지 못한 한이 서려 있다. 「대붕이 난다,사방을 떨치며, 중천서 날개를 꺾이자 건널 힘이 없어라. 바람에 사무치고,저 해솟는 나무에 노닐었지만 옷소매가 걸렸어라. 뒷날 누가 알랴! 공자가 가버린 뒤라 슬퍼할 이 없거늘」 대붕비혜진팔예 중천추혜력부제 여풍격혜만세 유결상혜괘좌결 중니망혜수위출체 필자는 이 절필이 씌어진 현장에서 이를 암송하면서 이태백 최후의 땅을 밟았다.그의 문학을 사랑한 지 40여년,그가 객사한지 1천2백34년만에. 남경에서 서남쪽으로 한시간남짓,마안산 시계에 접어들자 하늘을 뚫는 굴뚝에 까만 연기.마안산 속스러운 거리를 뚫고 계속 남하했다.이윽고 오른편에 신록의 작은 산이 보였다.그 모양이 파란 고동 같다 하여 「취라산」.하지만 우리에겐 「채석산」이 다정하여라.작은 돌다리를 지나 「채석진」이란 방문을 지나자 채석산 강변공원의 경내에 들어섰다.신록이 옹알대는 오솔길을 걷자 뜻밖에 누런 기와의 대웅전이 육중하게 버티고 섰다. 바로 「태백루」다.그 지붕,그 기둥,그 처마.과연 건물의 웅장함에 표일한 이태백의 기상이 넘쳐 흘렀다.당나라 원화연간에 창건했지만 여러번 병화에 소진,지금 이 3층누각은 청나라 광서연간에 세운 것이다. 문간 양쪽에 웅크리고 있는 돌사자로부터 정루앞의 굽이굽이 병풍,정루 2∼3층마다 바람인 듯 표표하게 유랑하는 이태백의 유람도에 쇠탈한 조각상,거기다 그를 기리는 비명들.과연 「태백루」는 저 동정호의 「악양루」,무창의 「황학루」와 함께 중국 3대누각으로 칠 만했다. 하지만 필자는 어서 이 엄숙한 전당을 벗어나고 싶었다.저 산꼭지에는 비록 전설이지만 이태백의 최후를 증언하는 현장이 지금도 채석강 맞바람에 천리장강을 굽어보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거기서 엉망진창으로 취한채 저 채석강의 달을 잡으려 풍덩 투신해버리는 그 미치광이의 환상을 잡고 싶어서였다. 채석산 정상은 과연 가슴이 후련했다.장강이 아찔하게 굽어뵈는 벼랑위로 넓은 반석위에 「연벽대」란 큼직한 글씨.그러니까 옥을 꿰어놓은 관망대라는 뜻이지만 어디 천년전부터 전설로 불리던 「착월대」만큼 친숙하랴! 착월대서 조망하는 장강의 도도함이나 착월대서 굽어보는 천인단애의 「채석기」는 분명 절경이었다.그래서 이태백은 여기서 「우저에 배를 매고 (야박우저회고)」란 명시를 썼고,송나라 시인 매요신은 이태백의 투강설화를 시에 옮겼다.그뿐만 아니었다.현대의 요절시인 주상(1904∼1933)은 이태백이 투신했다는 채석기 밑에서 1933년12월5일 새벽,상해서 남경으로 가는 연락선에서 투신자살했다.지금은 착월대옆에 붕조처럼 두팔을 활짝 벌리고 훨훨 비상하는 이태백조상을 세웠고,그 위로는 이태백의 투강자살을 기념하는 의관총이 있다. 채석산을 내려와 당도시 동남쪽 청산 아래 당도현 하동향 태백촌에 있는 이태백의 무덤으로 발을 옮겼다.말하자면 전설의 현장에서 사실의 현장으로. 청산은 해발 200m에 가까운 낮은 산.하지만 평지에 있는 이태백의 묘는 초행자가 인가로 알고 지나치기 일쑤다. 건너편 용산에서 이장한 이 묘는 그의 고향 사천 강유로부턴 만리타관이었다.이태백 생전의 친구이던 범작의 아들 범전정이 이 지방 관찰사로 있을때 이태백의 두 손녀 청에 따라 이장을 결정한 것이다. 묘역은 상당히 넓었다.공원을 방불케 다양한 관상수,초입엔 장중한 「태백사」,당나라 헌종때 세웠다지만 여러 차례 중건한 듯새로웠고,열몇개의 비,그중에 「임종의 노래」가 새겨져 가슴을 뭉클케 했다. 무덤은 묘각안에 있었다.다섯겹의 두레석에 둘러싸인 무덤,2m높이의 운석 묘표엔 「당명현이태백지묘」가 이국나그네를 어리둥절케 했다.그의 호방한 일생에 비추어 한낱 시인으로 묘비를 달지 않고,하필이면 그가 혐오하던 도덕군자인 명현으로 받들었을까. 이태백 스스로는 어이없게 찡그리고 있을지 몰랐다.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이 「시인 이태백」을 찾고 있는데 말이다.당나라의 명시인 가도는 여기 이백묘를 참배타가 객사하지 않았던가?
  • 김성곤 서울대 교수,두번째 영화산문집 내

    ◎대부분의 영화는 ‘문학의 자손’/“데미 무어 주연 「주홍글씨」의 메시지는 애정의 해피엔딩 아닌 미의 탈청교주의” 영문학자 김성곤씨가 두번째 영화산문집 「문학과 영화」를 민음사에서 내놨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인 김씨의 책은 여러가지로 이채롭다.영화마니아들이 앞다퉈 평을 거드는 고급예술영화에 연연하지 않고 김씨의 관심은 아파트촌에서 비디오 대여순위 몇위권에 드는 미국 대중영화쪽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한국의 학자들중에 김씨만큼 「헐리우드 영화」 많이 봤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이도 없을 것이다. 문학을 각색한 영화만 다루면서 영화에 대한 코멘터리에다 원작과의 비교고찰까지 덧붙인 점도 재미있다.문학이 현대 영상문화의 가장 풍부한 수원이라는 점은 거듭 확인돼 왔지만 잘 알려진 거의 모든 영화들이 문학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아내는 시각도 독특하다.영상언어속의 뭔가 미묘한 것을 독해하거나 예술적 의미를 캐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평들 와중에서 그는 자신만의 상식적 잣대로 일사천리 영화를 읽어내려 간다.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전공한 문학자답게 그 잣대란 현대 미국사회의 징후,현대 서구문명을 통해 삶을 바라보기이다. 미국의 유령코미디 영화 「아담스 페밀리」는 미국 및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기괴한 인물들을 오히려 귀엽게 그려내 나와 다른 이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몰아세우는 차별의식을 비판한 포스트모던 영화라는 것.데미 무어 주연의 「주홍글씨」에 대해서는 롤랑 조페 감독이 미국문학에 무지해 원작을 훼손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고 꼬집는다.작품의 메시지는 유럽적 청교주의를 극복한 미국의 「홀로서기」이지 감상적 애정의 해피엔딩일수 없다는 것.「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오발탄」「무진기행」「바보들의 행진」 등 현대문학을 각색한 한국영화평도 실었다.
  • 최인호씨 10년만에 선보인 장편 「사랑의 기쁨」

    ◎「삼각관계」속 탁트인 모성애의 한축/연인향한 맹목적 연정보다 더 큰 자식사랑 예민한 감수성의 문체로 사랑받아온 작가 최인호씨가 모처럼만의 신작장편 「사랑의 기쁨」상·하를 도서출판 여백에서 선보였다.80년대의 가장 대중적 러브스토리의 하나인 「겨울나그네」를 쓴 작가가 10여년 더 익힌 붓끝으로 보다 난숙한 사랑을 탐색해본 작품이다. 연애소설에 양념과도 같은 삼각관계가 여기에도 등장하지만 이 작품의 삼각형은 성질이 좀 다르다.프랑스 현대문학자 지라르가 말한 숨막히는 욕망과 치정의 삼각형이 아니라 한 축이 모성애로 툭 트여 열린 형태다. 장유진과 그의 딸 김채희,유진의 연인 최현민이 삼각형의 각 꼭지점을 차지한다.아빠와 이혼하고 30여년을 혼자 살아온 엄마가 유방암으로 죽은 뒤 유품을 정리하다 우연히 채희는 엄마가 애인에게 남긴 편지 한장을 발견한다.추적끝에 밝혀진 애인의 정체는 한때 국내 명문대의 영문과 교수였던 현민.그가 이름없는 대역에 생계를 의지하던 유진에게 떳떳이 자기이름으로 번역소설을 출간하게끔도와주면서 존경과 감사로 시작된 두사람의 만남은 사랑의 불꽃으로 번진다.하지만 사랑의 결실을 코앞에 두고 아빠의 죽음에 충격받은 채희가 파괴적 거식증에 걸리자 유진은 딸을 위해 연인을 포기한다.연인을 향한 맹목적 연정보다 자식에 대한 애증이 엄마에겐 더 큰 사랑이었던 것이다. 영문학 전공자들끼리의 사랑이야기답게 책은 많은 영문학작품들을 덤으로 맛보여 준다.타고르의 「기탄잘리」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등 영시,포크너 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 등이 곳곳에 스며 자칫 청승맞은 중년의 정염으로 떨어지기 쉬운 이야기에 향기를 보태고 있다.
  • 소설가 윤흥길(이세기의 인물탐구:122)

    ◎불행한 시대를 증언하는 서민의 양심/날카로운 현실비판·화해의 정서 공유/능란한 사투리 구사로 해학의 멋 더해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다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면서」 소설 「장마」의 무대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서서히 스며든다.「악의에 찬 빗줄기」는 「손가락으로 그저 꾹 찌르기만」해도 「선명한 물기가 배어」나오고 후렴처럼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처연한 슬픔이 치렁치렁 이어진다.윤흥길 소설은 토속적인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면서도 문장마다 판소리의 사설조가 절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단순히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질퍽한 당대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치밀하게 직조되어 평론가 천이두는 이를 「문학의 백미」로 평하고 있다. ○등장인물 심리묘사 치밀 76년 그의 첫번째 창작집 「황혼의 집」이 나왔을때 그 속에 실린 「장마」를 읽으면서 소설가 이문구는 「언젠가 반드시 나오리라고 기대한 제대로 쓴 소설」에 감동하여 「혼자 웃다 울다 하느라고 담배 한갑을 다 태우고는」 자신도 모르게 「왔구나!」하는 탄성을 질렀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빗소리처럼 구슬프게 가슴에 파고드는 이 한편의 소설은 발표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명문의 명문」「명편중의 명편」으로 꼽힌다. 평론가 김치수는 「도중에서 그만둘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방금 읽은 소설의 여운이 한동안 가시지 않는 것이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윤흥길만의 매력이자 독창성」이라고 했다. 윤흥길이라고 하면 우선 「장마」와 「황혼의 집」「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장편 「에미」「완장」「밟아도 아리랑」 등 문체가 일렁이는 눈부신 주옥편을 얼마든지 들 수 있다.그리고 어느 소설을 읽던 「음험한 세력의 위협 아래 놓인 소시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비극으로 치닫는 중에도 「인간적인 면」과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다.사회저변에 산재된 모순과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도 그것이 소설인 이상 그는 「글만의 묘미」를 완벽하게 살리는 미점을 지킨다. ○「반신마비」로 집필 주춤 79년 일본의 젊은 세대의 문학적 기수이던 나카가미 겐지(중상건차)와의 교분이 계기가 되어 「장마」가 「나가자메(장우)」라는 타이틀로 일본문단에 소개됐을때 요미우리·아사히신문 등은 「지적소설」로 이를 일제히 호평하고 특히 평론가 아키야마 도시(추산준)은 「인간을 응시하는 철저한 작가정신」과 「곳곳에 번뜩이는 세태풍자와 야유의 직재성」을 특필한 바 있다.두번째 창작집인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그해 연말과 연시 2개월동안 3판매진,이후 일본어로 동시출간된 장편 「에미」와 「완장」이 현대문학상·한국창작문학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던 83년 무렵에는 문단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집중되어 「윤흥길 전성시대」를 맞기도 했다.그러나 베를린에서 열린 제3세계 문학축제 참가후 예상치못한 「반신마비」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는 왕성하던 집필을 잠시 주춤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윤흥길은전북 정주에서 식산은행에 다니던 윤상오씨의 2남4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풍요로운 환경에서 「도련님」으로 불리던 어린시절이 있었고 「사세에 따라 적당히 굴신하면서 영달을 도모하는 직장생활에 적응치 못한」 부친의 무능탓에 「가난이 점철된 어두운 사춘기」를 보냈다.전주사범 졸업후 익산군 소재 국민학교 교사시절에 「소설을 통해서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각」에서 뒤늦게 문학에 입문했다. ○한때 초등교 교사지내 그와 절친한 이문구에 의하면 「아무날 아무데서 보더라도 본디 생긴대로 그냥 남아 있는 별종이 곧 윤흥길」이며 「서너마디는 건네야 한마디 넘어올지말지한 더디고 무딘 입」「아무리 말쑥한 옷을 걸쳐도 반찬 없이 밥먹고 나온 사람처럼 멋적은 표정」이 그의 겉모습이다.그러나 어눌하되 호불호가 선명하고 경거부박을 경계하여 자신이 하기 싫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에 타협이 없다. 최근의 새 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역시 찬란한 어휘구사와 풍자의 범람으로 한번 소설을 손에 들면 끝까지 놓지 못한다.또 이미사어가 돼버린 「자닝하게」「툽상스럽게」「옴나위없이」「왜장치는 소리」며 「방짜」와 「행짜」,「우두망찰」「족탈불급」 등 우리의 고유어를 소설문맥속에 되살려 익살과 해학의 맛을 톡톡히 실감시킨다. 그의 절제력은 주목할 만한 사상적 메시지를 전개하는 자리에서도 「관념을 극구 피하고 구체적인 스토리와 주변묘사」로 작가의 의도를 투영한다.「인간심리의 섬세한 기미를 포착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그의 뛰어난 능력」일 것이다.가족은 오늘날까지 끝없는 기도로 감쌀 뿐만 아니라 진솔한 호남사투리의 출처인 어머니 조옥성 여사(74)를 모시고 있고 부인 유경순씨와의 사이엔 남매,과기대를 졸업한 아들 아람은 현재 예일대 재학중이고 딸 예니는 이대에 다니고 있다. 그의 최근의 소설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문학적 응전이며 작가적 문제의식을 강렬히 환기시키기 위해 「사실주의 작가가 드러내게 마련인 안이한 평판성」 대신 「사실주의적 세계를 비사실주의적 시각으로 전화」하려는 의지가강하다.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 윤흥길은 이제 「한국문학사라는 넓은 체계속에 편입되어」 작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이룩한 위치다.그래서 작가는 「어떤 형태로든지 불행한 시대를 증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며 「밝음 저쪽에 가려진 어둠 가운데서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이 작가가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역할」임을 실천하는 시기다. 「아무날 아무데서 보더라도 본디 생긴 그대로」「더디고 무딘 입」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정통적인 소설관과 그 기법을 견고히 지키고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만의 명철한 창락의 글을 쓰고 있다. 현실에 도사린 환부를 날카롭게 도려내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중에도 「따스한 해조」와 「화해」의 정서를 함축하는 그의 소설은 독자의 언 가슴을 훈훈하게 녹여주면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시대 우리만의 작가」로 언제라도 풋풋하게 이곳에 서 있다. □연보 ▲1942년 전북 정주출생 ▲61년 전주사범학교 졸업 ▲68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소설 「회색면류관의 계절」 당선 ▲73년 원광대 국문과 졸업 ▲76년 첫창작집 「황혼의 집」(문학과 지성사) 출간 ▲78년 첫장편 「묵시의 바다」(문학과 지성사) 출간 ▲79년 중편 「장우(장마)」(동경신문출판국),「황혼의 집」일어판 출간 ▲81년 나카가미 겐지(중상건차)와의 문학대담집 「동양에 위치하다」 출간 ▲82년 장편「에미」(한국방송사업단),일어판 「모」(일본 신조사) 출간 ▲84년 베를린 제3세계문학축제 참가 ▲89년 전작장편소설 「낫」(일본 각천서점) 출간 ▲95∼현재 한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표작품집〉 창작집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77년 문학과 지성사)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79년 창작과 비평사),장편 「순은의 넋」(80년 도서출판 은애),중단편집 「장마」(민음사),창작집 「완장」(83년 현대문학사),문학수상록 「문학동네 그 옆동네」(83년 전예원), 장편 「백치의 달」(85년 삼성출판사),중편집 「꿈꾸는 자의 라성」(문학과 지성사),장편 「묵시의 바다」(87년 문학사상사) 「밟아도 아리랑」1·2권(91년 문학과 지성사) 「산에는 눈 들에는 비」(93년 세계사),에세이집 「텁석부리 하나님」(95년 문학동네」,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1·2권(97년 현대문학사)등 다수 〈수상〉 한국문학작가상(77년) 한국창작문학상·현대문학상(83) 요산문학상(95년)
  • 시집에도 없는 1945∼55년 작품/잊혀진 미당의 시 15편

    ◎국문학자 최현식씨,「밤」·「눈」·「통곡」 등 논문서 소개 「민족 방언의 요술사」「어떤 말이나 붙잡아 놀리면 그대로 시」라는 한국시의 최고봉 미당 서정주씨(82)의 시가운데 시집을 통해 접할수 없었던 시들이 새롭게 발굴됐다.국문학자 최현식씨(연대 박사과정)가 2월 창간될 계간 「한국문학평론」에 기고한 논문 「전통의 변용과 현실의 굴절」을 통해 지난 1945∼55년 발표된 미당의 시가운데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채 잊혀진 15편을 소개한 것. 이 시들은 「개벽」「현대문학」 등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수록됐으나 스크랩 등 자료로 남지 않아 그의 시집이나 전집 등에 실리지 못했던 것. 새로 발굴된 작품은 「밤」「눈」「통곡」「피」「저녁노을처럼」「선덕여왕찬」「춘향옥중가(3)」「백옥누부」「곰」「그날」「깐듸송가」「팔월십오일에」「영도일지(대)」「일선행차중」「산중문답」 등.이 작품들은 41년 발표된 첫시집 「화사집」의 원죄의식에서 60년대 「신라초」「동천」 등의 동양적 윤회와 영원성으로 이행한 미당 시세계를 이해하는데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 있을것을…… 서 있을것을……//구부러져 내리는 나무 그늘에/맨발 벗고 서 있을것을//푸른 지식의 잎사귀들이/하늘에서 처럼 소근거리는/나무 그늘에 서 있을것을/오르 내리는 맥박을 세며/높았다 낮아지는 숨결을 세며/물이랑 위에 떠서 있듯이/호수운 사람으로 서 있을것을 //금줄의 근네위에 서 있을것을//누었을 것을…… 누었을것을……/어둡고 무거운 밤하늘 아래/누른 소같이 누어 있을것을/입에다 너을 여물도 풀도 없이/아귀 삭이고 누었을것을/이리도 쉽게 헤어져야할/우리들의 사랑이었더라면/만나서 반가워 소리쳐 우던 날의/통곡을 통곡을 그치지말것을!〉(통곡전문.46년 12월 「해동공론」 수록)
  • 윤홍길씨 신작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종말론에 휩쓸린 망나니부부 검질긴 「잡초」의 인생유전/작부출신 부월과 「별」다섯 전과자 임종술/우연히 만난 사이비종교의 선교사 되는데… 세태풍자의 대가 윤흥길씨가 신작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1∼2를 현대문학사에서 펴냈다.96년 7월까지 삼년이상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것을 묶었으며 먼젓번 장편 「완장」의 속편격이다. 제목에서 자칫 종교소설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번 작품은 정작 「완장」의 망나니부부 임종술과 김부월이 서울에서 시한부 종말론 교파에 휩쓸려 벌이는 웃지못할 소동을 다루고 있다. 저수지관리인 완장하나 차고 갖은 행패를 일삼다 쫓기듯 고향을 빠져나온 임씨네 부부는 훔쳐온 수양어머니 패물로 차린 서울 새살림마저 거덜나자 「너죽고 나죽자」는 심정으로 겨울 한강에 투신하러 나간다.여기서 예수믿고 「빛의 길」로 들어선 박장로를 만나 부부는 「재기」의 발판을 얻는다.「길잃은 어린 양」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박장로 일가의 후덕한 보살핌속에 작부출신 부월은 회개한 사마라이여인 못지않은 간증의 여왕으로,종술은 저수지시절 뺨치게 힘있는 빌딩관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같은 부부가 오랜만의 고향나들이에서 돌아오는 서울역에서 「10월 28일 휴거」를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파와 마주치면서 소설의 해학은 꼭지점까지 달려간다.종말론이 가진자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겨 재산을 통째로 알겨먹을 「노다지광」임을 순식간에 눈치채고 이들의 선교사로 또한번 변신한 부월과 종술이 조직 깊숙이에서 구린 내막을 속속들이 들춰보여주는 것이다. 갖은 꾀로 한몫 잡는데 혈안이 된 작부출신 부월과 「오성장군」(별다섯의 형무소 출입경력)주먹을 자랑하다가도 마누라 한마디면 스르르 떡심풀려 어리숙해지는 종술.세인의 기준으로 볼때 이들은 의인은 커녕 정반대의 유형임이 분명하다.그럼에도 이 못말리는 한쌍을 미워하기란 쉽지 않다.배신과 양다리걸치기를 천연덕스럽게 해치우는 이들이야말로 사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기를 떡먹듯이 되풀이해온〉 우리의 피해자 이웃들이기 때문이다.물러터진 천성에 늘 제꾀에 제가 넘어가면서도 살아갈잔머리를 굴리며 번번이 벌떡 일어서는 이들 부부는 검질긴 잡초의 생명력을 닮았다. 〈시방은 요래 꽁지 빠진 장닭맨치로 추레혀 뵈야도 왕년에는 지가 널금 일대를 사정없이 주름잡던 뫼미구만요〉〈고속도로 타딧기 김부월 슨교사 한참 깃발 날리는 판국인디…〉 등 비릿하고도 걸판진 부부의 남도사투리가 소설 전체에 기세좋게 펼쳐진다.
  • 강출판사의 「한국현대비평가 연구」

    ◎주요평론가 18인의 「평론세계」 탐구/해방∼60년대∼현대문학기의 중진 대상/「좌­우파」 민족문학·「순수­참여」 논쟁 등 다뤄 국내 문학평론가들의 평론세계를 논한 「한국 현대 비평가 연구」가 다음주 강출판사에서 출간된다(김윤식·이주형·권영민·이동하 외 지음).문학평론가 김윤식씨(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회갑기념문집 형식으로 나오게 된 이 책은 의례적 축하문집에 그치지 않는다.뜯어볼수록 책 자체로 뜻깊으며 흥미로운 글들도 많다. 책속에는 현대의 주요 평론가 18명을 한명씩 분석한 비평가론이 시대순으로 실려있다.해방공간의 인물을 다룬 1부,60년대 평론가들을 조명한 2부,현대의 중진들에 접근한 3부로 나눠지며 해방이후 「민족문학」 개념을 둘러싼 좌우파의 논쟁 및 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전개를 정리한 논문 한편씩이 각각 1,2부 말미에 덧붙어 총 20편이 실렸다. 김씨는 물론,그의 제자인 19명의 비평가들이 한편씩 맡아쓴 이 책은 이처럼 문학적 근대부터 90년대까지를 무대삼은 종합적 비평가론이다.문학의 본령인 창작이나 평론은 물론이고 작가론마저도 어색하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지만 비평가론만은 아무래도 부수적 관심거리거나 그 전문성때문에 연구실에 갇혀있기 십상이었다.그나마 학문적 조명의 대상이 돼온 근대 평론가들은 물론,현대의 문제적 평론가나 대중평론가라고 간과해 버리기 쉬운 60년대 인물들까지 망라해 한권으로 끌어묶은 이같은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부엔 이헌구·김동리·백철·김동석·곽종원·조연현론,2부에 송욱·천이두·이선영·김우종·김용직·김붕구론,3부에 이어령·유종호·이재선·김우창·김현·김윤식론이 수록돼 있다. 1부의 근대 평론가들은 거의 김씨의 연구로 개척되다시피한 인물들이며 실제로 조연현에 대해서는 김씨 자신의 글이 실렸다.천이두,이선영 등 2부의 비평가들도 현대비평의 초창기를 열어온 공로에 비해 대부분 제대로 살펴지지 않아왔다. 이동하씨(서울시립대 교수)의 이어령론 「영광의 길,고독의 길」은 한 평론가가 학문적 관심대상에서 소외돼가는 경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문학평론가로,국문학자로,일본문명연구자로,88올림픽 개·폐회식 연출자로,초대문화부 장관으로 영광의 일로를 걸어온 듯한 이씨가 정작 자신에 대한 연구논문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고독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정황을 60년대 후반 김수영과의 순수·참여 논쟁에서 표명한 이씨의 너무나도 똑부러진 입장에서 찾으며 이것이 이씨의 행로를 제약했다는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형구씨(안성산업대 교수)는 현대의 비판적 지성을 대표하는 평론가 김우창론에서 「고전적 좌파의 사회사상부터 현대의 뉴레프트에 이르는 비판적 사회주의 사상까지 아우르는」 김씨의 「자유주의」를 「회색의 사변 비평」이라 이름짓고 있다. 또 권성우씨(동덕여대 교수)는 지난 90년 세상을 뜬 평론가 김현을 대중문화비평가라는 측면에서 살폈다.그는 김씨의 대중문화 관련 에세이 네편을 검토,김씨가 서구추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점도 있지만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누구보다 앞서 대중문화에 문을 열었던 평론가라고 결론지었다.
  • 문학평론가 김윤식(이세기의 인물탐구:112)

    ◎이면의 진실 꿰뚫는 혜안의 통찰/춘원연구 1인자… 10년간 자료수집 열정/문학이론·작가론 등 망라 저서 1백여권 지난봄 김윤식의 35년 글쓰기를 중간결산하는 「김윤식선집」이 출간됐을때 책 말미에 종합된 논문목록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그는 62년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이래 초기엔 5,6편에서 10여편의 평론을 발표해왔고 80년대에 들어 30여편,93년에는 무려 45편 등 문학사 문학이론연구 작가론 작품론을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섭력해왔다.여기에 73년이후 해마다 2,3권에서 5,6권의 저서를 출간,단독저서만 71권에다 공저 역서가 11권,편저 공편이 17권이나 된다.이는 그의 글쓰기와 치열한 문학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면일 것이다. 그의 저서에는 「기왕의 권위나 규범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해나가는 자유인의 모범적인 초상」이 들어있다.독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중요한 의미와 가치들을 비상한 통찰력과 설득력」으로 일깨우고 아무도 먼저 캐내지 못한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을 직접 찾아다닌 「땀의 흔적」이 책의 갈피마다에 서려있다.그를 두고 통상 「발바닥으로 글쓰는 사람」이란 말은 왠지 미흡하다.그는 온몸과 정신이 온통 쓰고 읽고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실천자이기 때문이다. ○발바닥으로 글쓰는 사람 그의 글쓰기는 「엄밀한 학술적 연구,끊임없는 현장문학 비평활동과 예술기행 양식의 센시티브한 글」들이 병행되어 있다.특히 그만의 평전문학은 작가의 「내면풍경」을 복원함으로써 「인간의 오롯한 모습을 재현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한사람의 작가를 연구하기 위해 그가 들이는 공과 시간과 정성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어렵다.우리문학사에 획을 긋는 기라성같은 인물들을 일사불란하게 투찰한 밀착비평중에서도 춘원 이광수에대한 열정은 유난히 남다르다.그 시간과 분량에서 이를 따를수가 없고 춘원에 관한한 그를 떼어놓고 말할수도 없다.「이광수와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무릎을 꿇고 배울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는 구절만으로 집념을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그가 춘원에 관한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것」은 69년 하버드엔칭 장학금으로 도쿄대에 유학하면서부터다.유독 일본체류를 희망한 것은 근대문학을 이룩한 문인들의 대부분이 도쿄유학생출신이라는데 착안하여 그들의 「현해탄 콤플렉스의 정체」를 캐보기 위해서였다.일본의 각 도서관을 돌다가 먼저 춘원의 첫작품인 「사랑인가」를 확인하게 되었고 「간다(신전)고서점과 와세다대학 도서관과 근대문학관을 헤매던 세월,겨울에도 동백꽃 붉게 핀 울타리를 돌면서 내젊음을 도쿄바닥에 흩뿌렸다」고 돌아보고 있다.그의 나이 33세였다. 귀국후 그는 춘원에 대한 다방면의 기초연구를 마친후 80년에 다시 일본에 건너갔다.「와세다대 서고에서 하루종일 자료를 조사발굴하고 점검하는」 과정에서 3개월만에 「개조」(1936.8)에 실린 일어로 쓴 춘원의 단편 「만영감의 죽음」을 찾아냈다.세검정을 무대로한 이 소설을 읽어 가는동안 「그가 살았던 시대적 풍경과 그것에 반응하는 그의 내면세계를 순간적으로 헤아리게 되어」 그해말에 귀국,이번엔 춘원이 살았던 세검정 「홍지동 산장」을 세밀하게 답사해 나갔다.작가의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춘원연구」를 쓴바 있는 김동인을 동시에 연구하는등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쓰기 위해 그것을 준비한 기간은 무려 10년이나 된다.그때부터의 세검정 승가사와 문수봉 산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평뿐만 아니라 그의 일상을 객관적으로 관조한 수필은 「어떤 글보다 섬세한 내면의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다」는 평을 듣는다.『두 바보의 길』『서재주인의 독백』같은 글은 짧은 콩트식의 시적인 글맛을 살리면서 그의 면모를 면면에서 보여준다.「싸락눈이 내리는 그 소리는 참으로 쓸쓸하고 듣기 좋다」「겨울이 겨울다워서 우리는 가슴설레곤 했다」는 구절이 있고 「백색원고지가 놓여있다.운동장만큼 넓고 아득하다」「그는 원고지위에서 그의 운명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숙명적인 글쓰기와 관련된 대목도 나온다.그가 평론 외에 청년시절에 시와 소설을 써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새벽까지 서재 불밝혀 그는 한마디로 철두철미하고 집요하다.그의서재엔 새벽까지 불이 켜져있기 일쑤이고 아침 8시에 전화를 해도 그는 벌써 연구실에서 받는다. 문학에서는 강경과 창경의 글을 쓰면서도 평소엔 「과묵」한 편이고 사무적인 일에서는 공과 사를 구별하여 제자들이 연구실에 찾아와도 굳이 「왜왔느냐?」고 「용건」을 묻지 않는다.모든 것에 절제의 선을 그어 「하고」「안하는것」을 분명하게 가리고 실력으로 탄탄히 무장된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그외 영화와 여행을 좋아하고 미술에 대해서도 「그림이란 복제불가능한 유일한 예술,적어도 신화가 깃들어야 하는 것,그자체가 스스로 원광을 뿜어내야 한다」는 안목을 지니고 있다. ○연구작가 족보까지 확인 단지 신기한 것은 이상이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했듯이 글외엔 그에대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이다.그는 한 작가의 연구를 위해 족보에서 학적부 성적표까지 확인하면서도 막상 문단에서는 교류가 빈번하지 않고 그의 집을 공개하는 일도 없다.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에서 자녀없이부부만이 살고있다. 경남 진영에서 십리 들어간 벽촌에서 태어나 그는 「장난감이나 친구가 없는」대신 「참으로 희한한 글자와 그림으로 가득찬」「누나들의 교과서를 엿보는 것」으로 유년기를 보냈다.마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면서 「쪽빛 바다와 제비꽃」을 보았고 진주예술제에서는 「강남꽃보다 더 푸른 흐름」과 「강위에 걸린 긴 다리」를 보았으며 그때부터 서서히 문학소년다운 시원을 싹틔운 것 같다. 「문학은 한시대의 악을 좀더 깊은 악으로 파악케 하는 장치이고 어떤 사회적 현상도 문학적 검증없이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는 그의 문학관은 방대한 집필의 분량만큼이나 드높고 폭넓게 「견고한 성과」를 이룩하고 있다.그리고 이제 「젊음의 순수성으로 부단히 자신의 세계를 확대해온 한 사상가의 모습」으로 어느 때는 내연으로 어느때는 창회의 글로써 앞으로도 도저하게 그의 문학을 지켜갈 것이다. □연보 ▲1936년 경남 김해 출생 ▲59년 서울사대 국어과 졸업 ▲61년 「현대문학」평론 추천 ▲62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68년부터 서울대 재직 ▲69∼70년 도쿄대 유학 ▲76년 서울대 「문학박사」 학위 ▲78년 미 아이오와대 IMF(국제작가회의) 참가 ▲79∼현재 서울대 인문대 교수 ▲80년 도쿄대 「이광수연구」 ▲81∼85년 「문학사상」에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연재 ▲83·89년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SOAS)주관 AKSE(유럽지역 한국학모임) 참가 ▲86·88년 네덜란드 라이든대 한국문학심포지엄 등 학술회의 다수참가 〈저서〉 「한국문학사론고」(73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76년) 「문학과 미술사이」(79년) 「한국근대문학사상사」(84년) 「한국근대소설사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전3권 「우리 소설과의 만남」 「안수길연구」(86년) 「이상연구」 「염상섭연구」(87년) 「한국현대문학사론」(88년) 「임화연구」(89년) 「한국현대현실주의소설연구」(90) 「작가와 내면풍경」(91년) 「환각을 찾아서」(92년) 「한국근대문학사상연구」(84·94년) 「설렘과 황홀의 순간들」(94년) 「지상의 빵과 천상의 빵」(95) 「북한문학사론」외 공저 역서 등 82권과 편저공편 등 〈수상〉한국출판문화상(73년) 대한민국문학상(87년) 김환태평론문학상(89년) 팔봉비평문학상(91년)
  • 서양화가 이만익(이세기의 인물탐구:108)

    ◎내면세계 귀기울이는 「문학적 화가」/중학때 국전입선… 「출품자격」 논란 일으켜/매서운 절제력으로 격조있는 개성 표출 「냉철한 지성의 화가」로 지칭되는 화가 이만익,그는 하나의 정해진 틀과 격식에 얽매이기보다 새로운 것을 향해 달리고 변모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투철하게 이룬 완벽주의라고 할수 있다.그가 지난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말하는 그림,소리없는 시」란 부제로 「40년 회고전」을 열었을때 화단 일각에서는 그의 나이가 「40년전」을 열기에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의아심을 갖는 이들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림 40년전을 여는 뜻」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충만한 침묵」 머물러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에 매달리고 미술반활동을 시작한 것은 효제국민학교 2학년때부터고 그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이는 실로 50년에 이르는 세월』이며 「철없이 어린 날에 끄적거린 것이 어찌 그림이겠는가 웃을지도 모르지만」 「철모르고 순진하게 바쳤던 지난날의 시간들에 더없이 애정이 간다」고 했다.그래서 「한걸음멈추어 서서 지나온 나를 돌아다보고 맞이할 시간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 그가 겪은 「좌절감의 흔적」들을 한자리에 모아 펼쳐보이기로 한 것이다.전시에는 52년 그가 경기중 2학년때 그린 스케치에서 95년 신작에 이르는 2백40여점의 대작 소품이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이만익의 그림은 우리 역사의 삶속에 깃들인 인물들을 하나같이 관조하는 분위기다.잔잔하게 미소띤 얼굴에는 기다림이나 그리움,슬픔과 기쁨이 엇갈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의 연민 위에는 「충만한 침묵」이 초연히 머물러 있다.그가 정물이나 풍경이 아닌 인물에 유달리 집착하는 것은 화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하나의 생명에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선은 굵고 힘찬 유기적인 곡선에다 색채는 원시적인 원색이면서도 미술적인 녹청 군청 산호색이 정제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른바 선과 색은 표현적 차원이 아닌 상징적 의미이며 정교하게 계산된 필치와 「긍정적 시각」으로 선명한 회화효과를 추구해내고 있다.삶을 찬미하는 마음에서 나온 장식성 또한 「정감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정돈시킨 것」으로 이는 그의 최근의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크게 세가지 시기로 분류된다.50년대와 60년대는 주로 역 대합실이나 아기를 등에 업은 노인,생활에 지치고 고단한 청계천일대의 풍경 등을 대상으로 삼고있고 프랑스 유학 이후 어둡고 탁한 색채 대신 색채의 순도와 강도를 살린 장식적 화면을 조성하게 되었다.이른바 포만과 방출을 통과하여 마음속에 붓을 담가 그리는 「독자적 양식」을 구축하게 된 셈이다. 그는 『그림이 어렵고 모호해져서 공허한 논리로 옹호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래서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문학적 주제와 소재를 선택하게 되었고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을 장대한 기상으로 정립하거나 「정읍사」 「삼국유사」속의 민족적 정서와 순수한 심성,민화·민담·탈춤에 이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 판소리에서 서민의 정취와 시와 해학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풍경보다 인물에 집착 이에대해 오병남 교수는 그의인물들은 「지워도 지워지지않는 우리의 한 자화상」이며 작가는 『인생의 애환과 정한에 직접 가담하지 자기 감정의 통로를 차단하여 그림속의 사연을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즉 그의 특기인 「무심한 방관자로서 작품에서의 작가의 감정을 매섭게 절제·생략하고 있다」는 평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는 것처럼 그도 어릴때부터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운명이 결정지어졌다.그리고 남들보다 배이상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냈다 하더라도 그때마다 「풍운이 있는 곳엔 항상 서조」가 깃들이고 있음을 예감하여 비통과 고통마저도 「우주의 상서로운 빛,자연의 은총,인간의 따스한 정」으로 극복해왔고 그로인한 여유와 사유의 차원에서 「무념」의 경지를 맞게 됐는지도 모른다. 황해도 해주 상동에서 그는 배재고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부친과 경기고녀 출신인 지식인 부모밑에서 태어났다.부친은 해방전 타계하고 46년 어머니 이경숙 여사를 따라 6남매가 월남,53년 경기중 3년때 그린 「정동의 가을」과 「골목」등 2점이 제2회 국전에 입선하기도 했으나 중학생의 국전입선이 논란되면서 국전출품자격을 「대학 3년 이상」으로 규정시켜놓은 바로 그 장본인이기도 하다. 서울대 미대 재학중 국전 특선으로 다시 한번 야심에 찬 경력을 쌓았고 졸업후에는 대학때의 스승인 이봉상의 안국동 화실에 드나들면서 앙가주망 동인 활동으로 「의식있는 그림」을 발표하여 그때마다 화단의 기대를 모았다.66년부터 국전 3년연속 특선,이후 4년간은 「맹랑한 낙선」의 고배를 거듭 마신 끝에 그는 「미술계라는 제도권」과 국전의 불합리성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언제나 자신감 넘쳐 이만익의 세계에는 러시아 해빙시대의 기수이던 예프투셴코의 분위기가 언뜻 풍겨난다.혹은 혁명적 이미지의 르페브르나 실존적인 야스퍼스같은 프로필이 엿보일 수도 있다.어쩔수 없이 예술가의 면모를 굳건하게 지닌 그는 「회화의 문학성」을 끝내 고집하여,미술평론가 원동석에 의하면 그는 「이 시대 걸출한 문학적 화가」에 틀림없다.「그림속의 잔물결같은 미소와 슬픔을아련하게 깔면서 음영이 없는 원색의 대비,모나지 않은 형태의 균형감각,원근법을 무시한 평행적 구성등은 마치 영원을 향해 정지하고 있는 옛 벽화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그의 평이다. 당당한 눈빛과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는 명쾌한 실천적 행동은 어느 장소에서나 그늘이나 복안이나 위선이 없어보인다.평소 술을 즐기고 친구를 좋아해서 폭넓은 층과 친분을 트면서 사적인 모임에는 미인 부인인 김대화씨를 대동하기도 한다.자녀는 남매.지난 6월에는 시카고에 체류중인 여장부같은 어머니 이경숙여사가 92세의 나이로 그림전을 열어 집안의 기세를 한껏 과시해보였다. 이만익은 「항상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들은 것을 마음속에다 솔직하게 기록할줄 아는 명철을 지닌 작가」다.격조있는 개성과 군더더기가 없는 단순한 평면성으로 누가 봐도 「이만익의 것」임을 알게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했으나 그는 끊임없이 불뿜는 활화산인 듯 특유의 암자색을 분출하려는 정열로 또한번의 용틀임과 비약을 꾀하는 시기다. □연보 ▲1938년 황해도 해주 출생 ▲1953년 경기중 3년때 국전입선 ▲1959년 서울대 재학중 국전특선 ▲1961년 서울대 미대졸업 ▲1966∼68년 국전 연속3회 특선 ▲1962∼94년 앙가주망 동인전 ▲1973년 제1회 개인전겸 도불전 ▲1973∼74년 프랑스 아카데미 괴츠연수,르살롱전(은상) ▲1975년 귀국개인전(서울미술회관) ▲1977년 서울미술관 개인전 ▲1978년 서울미술관 개인전 ▲1979년 동덕미술관 개인전 ▲1980년 파리 개인전 ▲1981∼84년 「현대문학」지에 「그림으로 보는 삼국유사」 연재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신세계미술관및 광주개인전 ▲1983년 이탈리아 한국현대미술전(밀라노),국제조형작가회의(IAA) 한국대표단참석(헬싱키) ▲1984년 문예진흥원미술회관 개인전 ▲1985년 「그림으로 본 삼국유사」출판기념전(선화랑) ▲1986년 현대화랑초대 판화전, 파리 그랑팔레·독일 브레멘개인전 ▲1987년 ’87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89년 서울갤러리·부산일보화랑·라디오프랑스초대 개인전(파리) ▲1988년 서울올림픽 및 장애자올림픽미술감독 ▲1990년 도쿄 아트엑스포 개인전 ▲1991년 현대화랑·부산금화랑 개인전 ▲1992년 강남현대화랑·쥴리아나 아트갤러리 개인전 ▲1994년 제5회 이중섭미술상수상기념전(조선일보미술관),춤과 음악의 미술전(한가람미술관),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95년 이만익 그림 40년회고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수상〉이중섭미술상(93년)
  • 시인·무용평론가 김영태(이세기의 인물탐구:105)

    ◎춤을 찾아 떠도는 문단의 보헤미안/공연장마다 출현… 화제작 대본 직접 쓰기도/시작·평론·그림 쉼없는 행보… 작품집 40권 김영태는 언제나 공연장주변에 서 있다.10년전이나 20년전 보다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외환은행에 다닐 때는 직업상 신사복 차림을 할수 밖에 없었으나 직장을 스스로 떠난 지금 그는 복장부터가 마음껏 자유로워졌다. 「내 키는 1미터 62센티인데/모리스 라벨의 키는 1미터 52센티 단신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라벨과 나」란 시의 첫구절처럼 크지 않은 체구에다 말투에는 전혀 힘이 들어있지않고 머리를 약간 외로꼰 담배피우는 모습이 그의 이미지다.「접시,호리병,기묘한 찻잔을 수집하기/화장실 한구석 붙박이/나무장안에 빽빽이 들어찬/향수진열 취미도/나와 비슷합니다/손때묻은 작은 소지품들이(누에문양 포켓수건이나 열쇠고리까지)/제자리에 있어야하고」. 실제로 그가 30여년을 살던 종로구 사직동집은 골동소품에서 인형과 이색적인 찻찬,책과 1천3백여장이 넘는 LP판들이 온통 도배를 한듯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책과커피향이 어울리는 코펠리아무대의 분위기였다. 천성적으로 치밀하고 꼼꼼한 그는 작은 낙서한장 버리지 않았고 지난 30년간의 족적을 「Ma Vie(나의 인생)」란 책으로 묶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정리해 보이고 있다.66년에 직접 손으로 쓴 결혼청첩장이며 김구용 박목월 김춘수 신석정 황동규 마종기 권옥연이 보내온 친필 엽서,오영수 휘호,조병화의 소묘,그가 그린 포스터 프로그램 책표지에 이르기까지 먼지도 버리지않는 섬쩍함이 섬뜩하다. 그런 그를 생전의 김현은 「초속주의자」 혹은 「좋은 의미의 딜레탕트」라고 했고 같은 문학평론가인 김인환은 「미학추구자,김종삼 이후 문단의 마지막 보헤미안」으로 부르고 있다.또 캐리커처에 능한 소묘가·무용평론가·시인으로서 모름지기 「우리시대의 삼절」로 찬사된다.그는 스스로를 『아름다움을 훔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묘와 평론에는 그나름의 새롭고도 빛나는 색채가 들어있다.시와 춤과 그림을 동시에 작업하는 과정에서 「춤과 그림은 그의 시의 내용이며 시와 춤은 그의 그림의 내용」이기 때문이다.그의 시는 대부분 아름다운 대상을 순간의 떨림속에서 태어나게 하면서 「어느 때는 목청 높은 대담한 사설조로 상황에 대한 해학적 음성」을 펼치기도 한다. ○꼼꼼한 성격의 수집광 시인 김승희는 「저 탐미의 괴물」을 향해 『현대인의 반타이타니즘을 그는 한컵 가득 독약처럼 마시지만 그러나 그는 독약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고 꼬집는다.피아노와 그의 발레그림들은 「언뜻 팔에 힘을 빼고 흐느적흐느적 술취한 듯이 비틀거리는 선의 파격적인 굴절이나 데포르마시옹으로 외계의 간섭에 맞서는 야유의 메시지」이다. 발레리나가 턴을 하는 찰나나 도약 직전을 섬광 같은 솜씨로 포착하면서 막연한 형태의 생략과 색채의 요점을 「부호와 관념만으로」 남기고 있다. 그는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강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서울토박이다.종로바닥에서 유명했던 「김인기 포목점」의 김인기씨가 그의 조부이고 부친은 장사나 이재에는 취미가 없는 김종화씨로 일본 무사시노미대 출신. 화가로 활동하진 않았으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미대에 진학했고 홍대재학중 박남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그동안 시집만도 15권,끊임없이 쓰고 끊임없이 발표하여 산문집·무용평론·무용자료집·시론집·소묘집·음악평론집 등 40권에 이른다. 연극 음악평에도 손댔으나 그에게 맞는 것은 무용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봄에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춤작가 12인전」에서 현대무용가 이정희가 그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무용화한 「풍경」에 10여분간 특별출연,커피를 갈고 스탠드를 켜며 담배 피우는 마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 펼쳤다. 그외 최현의 「비상」,전홍조의 「멀리서 노래하듯」,박명숙의 「결혼식과 장례식」「잠자며 걷는사람 잠자며 걷는나무」 등 무용공연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들은 거의 그가 대본을 썼거나 그의 시에서 빌린 것이고 책표지 포스터 프로그램과 수많은 캐리커처와 무용가·작가를 위한 헌시를 썼다. 그는 무용인들의 닳아빠지지 않은 순결한 심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그중에서도 특별히 최현과 절친하다.까다로운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과 통하 듯이 춤이아름다운 실력있는 이 원로와는 음악매니아로서 의기투합 한다. 자유로운 그는 틈틈이 여행을 즐긴다.해외에서 무대에 올려진 중요한 공연을 보기 위해 무용단의 해외공연에 따라나서거나 여행적금으로 가장 아름다움 춤이 있는 지구상의 모든 곳을 떠돌아다닌다.3년 전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강수진이 「로미오와 줄리엣」주역으로 데뷔하는 공연에 참관했고 올해도 세차례나 밖에 다녀왔다. 그는 『철저하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닌다.나는 보통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문득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언가 내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한글에서 밝히고 있다.과연 그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니는 「움직이는 극장」「사시사철 춤보러 다니는 구경꾼」으로서 그는 예술가다운,시같은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더구나 인형제작가인 부인 정복생과 두아들이 미국에 유학후 뉴욕에 머물러버리자 20년 가까이 혼자서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춤작가 12인전」 특별출연 그래선지 그의 최근 연작시인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읽는 이의가슴에 한줄기 흐르지 않는 눈물을 삼키게 한다.「무엇이 이제까지 나인가/질문을 하지만 답이 없습니다/시험지에 답못쓰는 답답함/눈물을 흘릴줄 몰라도/흐르는 눈물이 답입니다」.윌리엄 제임스의 「슬프니까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퍼진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증명해보이는 시이다. 김인환은 『비트겐슈타인이 수학자란 수학의 언어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했듯이 김영태는 시와 춤,그림과 음악을 가지고 논다』고 말한다.놀이가 빨리 끝날까 두려워 그는 「아껴가며 음미하면서 논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폐품이고 서향창에 어쩌다가 헹군 헝겊천사」라고 고백하면서 부드러운 검은색의 헐렁한 외투에 숄더백과 벙거지차림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공연장에 나타난다.그리고 그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에 고통과 환희,비참과 영광의 색채를 칠함으로써 「그의 시의 이미지들은 중립적인 경쾌함 대신 현실의 중압감을 버티려는 환상」으로 독자에게 읽혀진다. 그의 아호는 「지푸라기」라는 뜻의 「초개」다. 한달이면 50여차례 공연을 보러가고 낮에는 혜화동글방에서 집필,「삶은 소진하다 가는것」이라는 그의 행보는 그의 자작시 「허행초」처럼 어딘가에 구속당한데 없이 유유하고 자적하다.일찍이 김수영시인이 지적한대로 「예술적 냄새가 너무 짙은」 김영태 초상화는 그의 소원대로 주변사람들에게 독특한 탐미의 이미지를 새기고 그래서 그의 흔적은 이 검은 도시의 밤하늘에서 별빛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연보 ▲1936년 서울 출생 ▲57년 경복고 졸업 ▲59년 「사상계」지 시추천 ▲61년 홍대 서양화과 졸업 ▲65년 첫시집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 출간 ▲68년 외환은행 조사부 입사,극단 자유극장 동인,첫번째 산문집 「공기의 모든 부분속에서」 출간 ▲71∼95년 개인전 6차례 ▲75년 「12인의 인성을 위한 대사더듬기」(백병동 작곡)공연 ▲76년 단막극 대본 「이화부부」(이원경 연출공연) ▲80년 미술잡지 「선미술」 주간 ▲81년 음악펜클럽 총무간사 ▲82년 한국무용평론가회 회원 ▲84년 판뮤직페스티벌 「대사더듬기」재공연,일본국제무용콩쿠르 심사,서양화 10인전(낙산공방) ▲85년 첫번째 무용평론집 「갈색 몸매들,아름다운 우산들」출간,「객석」·국립극장·영화진흥공사 자문위원 ▲88년 단막극 「이화부부」현대무용으로 공연(배정혜 안무,정성조 음악) ▲89년 한국무용평론가회 회장,동아무용콩쿠르 심사 ▲90년 서울무용제 운영심사위원 ▲91년 음악평론집 「음의 풍경화들」 출간,외환은행퇴 직 ▲93년 한·일댄스페스티벌도쿄공연 참가,윤덕경무용단 중국공연 동행 ▲96년 무용자료집 「풍경을 춤출수 있을까 Ma Vie」출간,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출강 시집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 15권,산문집 「핀지콘티니가의 정원」 등 9권,무용평론집 「멀리서 노래하듯」 등 6권,소묘집 「선의 나그네」 등 6권,총40권. 현대문학상(72년) 시인협회상(82년) 서울신문 문화예술평론상(89년) 예음공로상(94년) 현대무용진흥회 공로상(95년)
  • 노벨상과 번역/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스톡홀름에서 발간되는 보수계 조간신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는 특히 문학면의 권위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다.이 신문은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기 전날 세계문단의 주목할만한 작가 몇사람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는다.여기 언급된 사람중에서 다음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돼 있다.심사과정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 한림원에서 논의된 최종후보가 이 신문에 언급되는 것인지 여부는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지난 94년 이 신문사를 찾았을때 문화부장 페터 루터슨씨는 한국문학에 대해 깜깜한 상태였다.한국의 문학작품을 읽어본적도 없고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작가도 없다고 말했다.물론 스톡홀름의 어떤 서점에서도 한국문학 서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노벨상에 대한 우리의 짝사랑은 이토록 대책 없는 것이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란드 시인 비스와와 쉼보르스카는 수상소감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스웨덴어로 번역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번역이 서툴렀다면 내 작품은 오늘날 거론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만큼 번역은 중요하다.한국문학은 지금까지 438종의 작품이 27개국에서 16개 언어로 번역·출판(문예진흥원 집계)됐지만 노벨문학상에 접근하기는 아직도 까마득하게 멀다. 이미 두번이나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일본에는 현대문학 초창기부터 사이덴 스티커,도널드 킨 등 일본문학에 매료된 외국인이 있었다.우리나라에서는 네이티브 스피커들의 한국문학 번역 참여가 이제 걸음마 단계다. 한국문학을 평생 전공하는 외국인학자가 많이 나오고 그들이 한국문학 번역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그렇게 번역된 우리 문학작품이 구미 출판시장에서 문화외교적 차원이 아닌 상업적 차원에서 출판되고 유통될때 한국 문학은 노벨상을 갖게 될 것이다.
  • 노벨 문학상 비슬라바 심보르스카

    ◎“인간 진실의 조각 섬세하게 풍자”/공산체제에서도 정신적 독립·영혼 중시/「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결합한 시인」 평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73)는 「풍자적이고도 섬세한 언어로 인간의 작은 진실들이 역사적,생물학적 문맥속에 살아나는 시」라는 작품세계 평과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를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결합한 듯한 시인」이라고 극찬했다.그녀는 「쿼바디스」의 셍키에비치(1905),「농민」의 레이몬트(1924),「한낮의 밝음」의 밀로즈(1980)에 이어 폴란드인으로는 네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여성으로는 아홉번째 수상이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잘 나타내는 시(시)로 1980년작 「유일한 것(nothing twice)」을 인용했다.『웃음과 키스로,우리는 별들 아래 합일을 찾는다.우리가 두 줄기의 물방울처럼 다를 지라도(우리는 일치한다)』라는 내용. 28년 폴란드 중서부 지방 태생인 그녀는 46년 「나는 언어를 찾는다」로 데뷔한뒤 50년대 초반 처녀 시집 「그래서우리는 산다」(52년)를,2년뒤 두번째 시집을 잇달아 펴내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시들을 썼다.하지만 공산주의 검열이 무력화된 57년이후 존재와 인간내면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 본격적으로 시세계를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의 문학세계는 실존적 문제를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언어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서정시인이지만 단순한 미학주의에 빠지지 않고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줄곧 파헤쳐왔다.인류,사랑,죽음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언어의 결을 최대로 살리기 때문에 까다롭지만 유럽 10여개국에 번역본이 나와있을 만큼 중요한 작가로 대접받고 있다.정신적 독립과 영혼의 문제에 천착하는 그녀의 시는 지식인층에서 새시대의 징표로 받아들여지면서 폴란드 전후세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최근작인 93년의 「끝과 시작」까지 50여년의 시작생활동안 10여권의 시집을 펴냈다.또한 수많은 비평서,프랑스시 번역본 들을 내면서 평론가 겸 학자로도 활약해왔다.53∼81년에는 문학잡지 「지시에 리테라키에」의 논설위원으로도 일했으며 조용한 생활을 즐기는 수줍은 성격으로 알려져있다.폴란드 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삼색연작 영화의 하나인 「레드」는 그녀의 시 「첫눈에 느낀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 시에 살고있는 심보르스카는 남부의 휴양지 자코파네에서 수상소식을 듣고 폴란드 전국라디오방송 제트(ZET)를 통해 『상을 기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믿기 어렵다.매우 행복하고 놀랍다.이제 얼마 살 것 같지 않다』고 소감을 밝혔다. 외대 폴란드어과 정병권 교수는 『심보르스카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섬세한 언어로 그려왔으면서 특히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실존적 시세계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역대 최고인 1백12만달러가 수여된다. □심보르스카 연보 ▲폴란드 시인,번역가,문학비평가 ▲23년 7월2일 포즈난 근처 프로웬트­브닌에서 태어남 ▲크라크푸에 있는 야골레니언대학 졸업 ▲45년 문단 데뷔 ▲52∼83년 폴란드 작가협회 회원 ▲53∼81년 문학주간지 「지시에 리테라키에」 논설위원 ▲91년 괴테상 수여 ▲대표시집으로 「자신에게 하는 질문」,「모래알 전경」,「다리위의 사람」,「소리,느낌,생각:70편의 시」,「끝과 시작」 등이 있음. ◎내가 본 심보르스카/외대 폴란드어과 코바리크 교수/폴란드 현대작가중 첫손 꼽히는 문인/10여개국서 번역돼… 교과서에도 수록 폴란드 크라크푸 야골레니언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94년부터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야드비가 코바리크씨(Jadwiga Kowalik·여·56)는 『심보르스카의 노벨상 수상은 셍키에비치 밀로즈 레이몬트 이후 문단에서 노벨상을 기대하고 있던 폴란드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교수로 있던 야골레니언 대학의 국제 현대문학 심포지엄과 크라크푸시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문학가 모임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소식을 들은 직후 폴란드의 집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통화에 실패,대신 문학하는 친구들과 기쁨을 나눴다는 그는 심보르스카가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변치않는 아름다운 외모와 친절한 마음씨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심보르스카가 폴란드 현대작가 가운데 첫손 꼽히는 작가로 유럽에서만 독일을 비롯,20개 나라에서 그녀의 시집이 번역됐고 폴란드 고교 교과서에 많은 시가 수록돼 있어 그녀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폭넓게 사랑받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또 심보르스카는 70년대 초 남편과 사별한뒤 크라크푸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자녀는 없다고 했다.
  • 근·현대문학 희귀자료 한곳에/한국애서가클럽 「문학의해」기념 전시

    ◎「혈의 루」·「서유견문」·「오뇌의 무도」 등 2천점/최남선 등 작고 문인 99명 육필원고 등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인 이인직의 「혈의 누」,최초의 수필집인 유길준의 「서유견문」,최초의 번역시집으로 김억이 펴낸 「오뇌의 무도」등 한국 근현대문학 희귀자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애서가클럽(회장 정성구)이 문학의 해를 맞아 오는 4일부터 11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에서 개최하는 이 전시회에는 한국 근현대문학의 거의 모든 장르에 걸친 희귀자료 2천여점이 출품돼 눈길을 끈다. 출판목록을 보면 시집으로는 1923년에 나온 김억의 시집 「해파리의 노래」 초판본과 김억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 재판본,24년에 발간된 변영로의 「조선의 마음」 초판본을 비롯해 김동환의 「국경의 밤」,김소월의 진달래꽃」,한용운의 「님의 침묵」,「정지용시집」,김기림의 「기상도」,임화의 「현해탄」,신석정의 「촛불」 초판본 등 희귀본 2백34종 3백권이 선보인다. 소설집은 1907년에 나온 이인직의 「귀의 성」 초판본과 「혈의 누」 재판본,「은세계」 초판본을 비롯해 염상섭의 「만세전」 초판본,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초판본,박계주의 「순애보」 초판본,조명희의 「낙동강」 재판본,김동인의 「광화사」 초판본 등 2백96종이 출품됐다. 이밖에 수필·평론집은 1895년에 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 초판본과 최재서의 「문학과 지성」 초판본(1938년) 등 90종 1백여권이 선보인다.이와함께 최남선 등 작고문인 99명의 육필원고 1백30점·사진자료 20점 등을 전시,한국 근현대문학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했다.
  • 시인 이규호씨 「에세이 법구경」 펴내

    ◎현대감각으로 풀어 쓴 「불교경전」/명쾌한 구성·해학적 법문… 삶의 교훈 가득/기독교 성경까지 인용… 「모범적 인생」 인도 『법구경을 읽는 것은 삶의 바깥을 서성거리다가 삶의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이 경전속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삶의 현장이 눈부실만큼 가득히 펼쳐져 있기 때문이죠』 중견시인 이규호씨(58)가 불교경전 「법구경」을 현대감각에 맞게 풀어 쓴 「에세이 법구경」(도서출판 장원)을 펴냈다. 기원전 1세기 무렵 인도의 승려 법구가 엮은 것으로 알려진 「법구경」은 명쾌한 구성과 해학적인 법문,실생활과 밀접한 내용 등으로 불교 원시경전 가운데서도 가장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경전.흔히 인용되는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라든가 「하늘이 칠보를 비처럼 내려도 욕심은 오히려 배부를 줄 모른다」는 구절도 「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부처님의 말씀을 단순히 불경 책갈피에만 꽃혀 있을법한 낡은 교훈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어제의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위한 오늘의 말씀이에요.그 가르침을 항상 명심한다면 누구든 모범적이고 긍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구경」은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 여러 성현들의 어록은 물론 기독교의 성경 구절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있는 것이 특징.하나의 예로 이 책은 「법구경」 화향품에 나오는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다시 말해 덕있는 사람의 향기는 천천히 젖어든다는 말을 『간디와 나의 부친의 은덕이 부지불식중에 나를 감화시켰다』는 네루의 자전적 고백에 견줘 설명한다.각종 비유와 암시를 통해 불법을 전하는,다분히 비유문학적인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법구경」을 또다른 비유를 통해 재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법구경」은 팔리어로 담마파다(Dhammapada),즉 「진리의 말씀」을 뜻합니다.사람과 사람 사이가 날로 메말라져가는 요즘,이 책은 분명 삶의 이치를 일깨워줄 「지혜의 서」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 63년 「맨살에 배어든 빗물에」「봄비소고」등의 시가 「현대문학」지에 추천되면서 등단한 그는 내년 봄쯤 동양철학서 「에세이 도덕경」과 신작시집 「안단테 칸타빌레」도 낼 예정이다.
  • 서양고전 전집 출간 붐/출판계,40세 안팎 교수들 동원 번역

    ◎민음사­괴테 이어 헤세·톨스토이 추진/솔 출판사­카프카·도스토예프스키 예정/열린책들등­프로이트·융의 정신분석 기획 등교길 버스안에서 문고본으로 만나곤 했던 「죄와 벌」의 도스토예프스키나 「데미안」의 헤르만 헤세.문학청년들의 학창시절을 수놓았던 이들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됐다.국내출판계에 서양 유명작가 전집출간 바람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괴테,헤세,톨스토이,릴케의 전집을 한꺼번에 준비중인 민음사는 괴테전집의 1차분으로 독일교양소설의 원형으로 꼽히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두권을 먼저 발간했다.솔출판사에서는 다섯권씩 낼 예정인 버지니아 울프 및 카프카의 전집가운데 울프의 「등대로」와 일기선집인 「그래도 나는 쐐기풀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에세이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을 선보였다.도서출판 열린책들이 5년전부터 공들여온 20권짜리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은 내년쯤 완간돼 나올 예정.이밖에 열린책들과 민음사는 각각 프로이트와 융의 전집을 기획,서구 정신분석학의 양대 석학에까지 전집출간 범위를 확대했다. 이같은 서구작가 전집은 전집의 볼륨을 감당할 출판사의 역량과 학계의 번역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한두명도 아닌 고전작가들의 전집이 이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은 일단 출판계의 양적 성숙을 방증하는 셈이다. 이 전집들은 무엇보다 새로운 번역으로 새 세대의 언어감각을 겨냥하고 있다.과거에 나온 단행본들이 원로학자들의 낡은 표현을 답습하거나 일본어 중역에 의존,번역의 정확성과 문학적 세련도를 떨어뜨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 지난 69년 정음사에서 전집이 나온적이 있지만 일본어 중역이었다.이번 전집들은 자연스럽고도 오역없는 문장,보다 현대감각의 해석을 지향,한글로 된 현대문학에 뒤지지 않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한번 전집이 번역되면 상당기간 해당작가의 「정전」구실을 하기 때문에 시대감각에 맞는 번역은 더욱 중요하다.따라서 각 출판사마다 가장 젊은 연배를 번역자로 내세우고 있다.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의 역자로는 40세전후의 국내 각대학 노문학과 교수 25명이 망라됐다.헤세전집,울프전집 역시 소장전공자들이 대거 번역에 나서고 있다. 민음사의 헤세전집은 「데미안」 「크눌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을 연내 출간하는 것을 필두로 12권으로 완간된다.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외국작가의 하나인 헤세가 보다 손쉽게 읽히도록 전집이지만 소프트커버로 만들 예정.1차분 두권을 포함해 전18권 발간예정인 괴테전집은 연말까지 시집,「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를 펴낸다.톨스토이 전집은 1차분으로 「어린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 「부활」 등 4권이 출간된 뒤 23권까지 순차적으로 나온다. 울프전집의 나머지 책들인 「댈러웨이 부인」 「자기만의 방」도 연내 출간된다.단편선집 두권을 앞세울 카프카전집의 경우 문제적인 독일현대작가의 내면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일본 대표 단편선/아쿠타가와 등(화제의 책)

    ◎일본 근·현대 문학의 흐름 메이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52명의 단편들을 수록.가와바타 야스나리·오에 겐자부로 등 노벨상 수상작가를 비롯해 하야마 요시키같은 실험작가,여류작가 우치다 핫켄·하야시 후미코 등 다양한 성향의 작가들을 망라,일본 근현대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꾸몄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오에 겐자부로의 「인간의 양」,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유미우라의 시」,자살한 천재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 등이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가운데 특히 아쿠타가와의 단편은 전기적인 사실들을 미묘하게 비켜가면서 곳곳에 허구적인 장치를 적절히 배치,일본의 전통 사소설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소설가 김채원(인물탐구:101)

    ◎틀·관념 거부… 투명·영롱한 문학세계 지향/산수화 같은 셈세한 묘사… 문단에 신선한 충격/새로운 언어·글쓰기 형식 찾아 고집스런 노력/파인 김동환·여류뮨인 최정희사이 출생… 언니도 소설가 김채원의 단편 「가득찬 조용함」은 4개의 파트로 나눠진 소넷 같은 소설이다.첫 패러그래프는 이렇게 시작된다. 「조그만 아이가 커다란 목욕탕에 들어앉아 오색공을 가지고 놀고 있다.아이의 머리통보다 조금더 큰 공이다.빨강·파랑·노랑·주황·초록으로 칠해진 공의 색채가 이 한낮을 바로 그런 색채의 무수한 조각으로 갈라놓고 있다」.「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들과 가끔씩 불어오는 미풍이 그런 색채속에 휘말려 소용돌이」치듯 작가는 눈에 보이지않는 비실제의 색채를 만져지는 실제로 실천시키고 있다. 83년 김채원이 이 소설을 발표했을 때 문학평론가 원형갑은 「이와 같은 섬세한 묘사의 세계는 산수화에서 느낄수 있는 녹차의 맛과도 같은 맛」「귀떨기를 스치고 지나는 가을 바람과도 같은 인간의 진지함을 돌이키게 된다」고 호평한바 있다.그리고 「그의 소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이미 겪었던 삶을 다시 살아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삶으로 우리를 유도하기때문」이라고 했다.「그의 예사롭지 않은 작가적 감수성」은 내적독백 무의식 잠재의식 패러디의 방법으로 「스토리라는 이데올로기에 매어있지않고」 「그의 주인공들은 스토리를 전제하는 가운데 살고있지도 않으며 다만 일상이 그려놓은 단조로운 기억과 환상위에 어렴풋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그 형상위에 일상의 발자욱을 겹치면서 본래의 자취에다 진실의 밝은빛을 뿌려나간다」는 것이 평론의 요지다. ○스토리 전제않고 작업 김채원은 소설 「초록빛 모자」「겨울의 환」이 널리 알려져있으나 그의 소설을 대중적인 인기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일단의 평자들은 「그것에 남성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넓은 범주의 페미니즘 문학」으로 구분짓기도 한다.그러나 그는 「작가로서의 세계감각」과 「즉물적이고 즉사 즉시적인 생활문장」으로 그 어느것도 충실하게 현실에 대응하고 소설진행상에서도 장면과 장면의 연결보다는 「장면과 장면의 겹침으로 얻어지는 상황성의 포착에 성공」하고 있다.그리고 이 상황성을 강조하기 위해 문체의 다양한 변화가 유도되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 88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독자의 관심을 끌고있는 중편 「겨울의 환」은 나이 들어가는 한 여성의 갖가지 떨림을 음악에서의 안단테 칸타빌레와도 같은 우아한 필치로 받아낸 것이 특징이다. 한 여성의 떨림을 「시간과 삶」의 출렁거림에 실어서 흔들림과 설렘,두려움으로 함축시키고 그안에 센티멘토(정감)와 스케르초(해학)를 담아 운명에 대한 외경심과 운명지향성의 무게로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현실·초현실 넘나들어 최초의 장편소설인 「형자와 그 옆사람」에 대해 시인 김화영도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바 있다.「다른 대다수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중년에 접어드는 한 여자의 일상에 관한 이 소설은 목마르게 삶의 중심을 찾는 몸짓과 느닷없는 환상의 떨림이 미묘하게 교차되면서 박명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반추상의 우울한 그림을 이루고 있다」고 「해설」에 쓰고있다. 이어서 평론가 권영민의 「김채원의 소설속에는 작가자신의 의식의 그림자가 환상처럼 드리워져있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가장 특이한 감성을 지닌채 일상의 테두리에서 언제나 머뭇거리고 있는 한 인간」이 작가자신의 의식의 흐름에 실려 현실과 초현실과 피안과 차안의 언덕을 자재로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는 복합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형자와 그 옆사람」을 출간했을 당시 『현실적으로는 책이 많이 팔렸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그러나 『그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한사람도 만나지 말았으면』했고 때때로 『아주 다른류의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두가지 마음에서 모순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는 찬물처럼 차갑고 풀잎처럼 연약해보이지만 고집이 센편이고 급진적이며 엉뚱한 면이 많아서 자신의 상상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상상은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일」이라고 고지식하게 밀어붙인다.이점은 일찍이 그의 소설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원로 황순원씨가 「어떤 틀이나 관념에 매이지않고 독자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호감이 간다」고 예고한 것을 뒷받침해준다. 김채원은 「국경의 밤」의 시인 파인 김동환과 「흉가」「탄금」등의 주옥같은 단편으로 1940년대 문단을 풍미한 여류 최정희사이의 딸로 언니인 김지원도 소설가다.본명은 「달속의 선녀」인 「항아」에서 딴 항란,문단에서는 드물게 미모의 자매로도 유명하다. ○한때 일서 교편잡아 그가 유년에 살던 집은 꽃과 나무가 많고 아침이면 꿩이 마당에 내려오던 「동숭동 낙산 바로밑의 외딴집」으로 전란에 시달린후 「왠지 지붕은 진흙같은 것을 이고 점점 무거워지고 기둥은 점점 가늘어져서 바람부는 밤이면 집은 밤새워 사력을 다해 바람과 싸워야했고」 「어머니는 매일밤 좀도둑때문에 아귀가 맞지않는 마루문에 커다란 못을 박고는 아침이면 장도리로 다시 못을 빼곤 했다」고 돌아본다.6·25가 나던해 그집에서 『아버지 파인은 인민군에게 잡혀갔고 어머니는 새벽이면 머리맡에 불을 켜놓고 글을 썼으며 그런 집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필연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그집이 우리를 품어 언니도 나도 글쓰는 사람으로 분만해 주었다』고 말한다. 한때는 절방에 누워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읽었고 이대 미대졸업후 일본에 건너가 도쿄에 있는 한국학교 미술교사,언니 김지원이 있는 뉴욕에 머물다가 다시 파리로 건너가 이응로 김창열씨등 파리화단의 화가들과 교분을 갖기도 했다.문단교류는 활발치 않으나 어머니 최정희여사가 살아계실때 그를 따르던 후배들의 모임인 정릉구락부의 이제하 김문수 서영은 김청조 김경옥 이재연 조문진 등과 친분이 있고 가족은 79년 시인 김영태의 중매로 만나 결혼한 백동규교수(아주공대 교수)와 그의 동화집 「장이와 가위손」의 「장이」인 아들 수장(고1)이 있다. 파인과 최정희의 후예답게 그는 「설익은 감을 씹듯 함부로 덤벼드는 혈기」나 「홍수와도 같은 구태의연한 이야기의 여울속에 허우적거리는 석연찮은」 여느 소설들과는 달리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처럼 투명하고 영롱한 문학세계」를 지향하여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의식있는 평자들의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한순간의 신선한 풍경 하나에도 소설을 찾아내어 「내면에 잠자고 있던 삶의 격정」을 일깨우고 「그만의 얘기,그만의 언어,그만의 접근방법으로 창의의 욕구」를 되살리는 작가다.「언제나 언어의 새로움과 소설형식면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그가 펼쳐낼 또다른 미지의 문학세계」는 시인 장석주에 의하면 「김채원이라는 작가를 가진 한국문학이 우리에게 베푸는 행복의 하나」가 아닐수 없다. 어떤 의견분분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의 소설에서 보이는 「이상스러운 차가움」,「비애에 가까운 차가움이 소설 도처에서 발견되는 때문」이며 들릴듯말듯 나지막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목소리속에 담긴 편광과도 같은 번뜩임,비실제조차 실제로 실현시키고야마는 진실을 향한 열정때문일 것이다. □연보 ▲1946년 경기도 덕소출생 ▲64년 이대부속고 졸업 ▲68년 이대 미대 회화과 졸업 ▲1972년 일본 도쿄 한국학교미술교사,도쿄(동경)대 외국인을 위한 클라스수업 ▲74∼75년 단편 「먼바다」「밤인사」로 현대문학소설 추천,도미,뉴욕 아트스튜던트리그 수업,단편 「얼음집」「자전거를 타고」「달의 손」발표 ▲76년 도불,김지원과의 자매창작집 「먼집 먼바다」(지식산업사)출간 ▲78년 귀국,단편 「밀월」「봄의 끝」발표 ▲79년 단편 「초록빛 모자」 「안개」 「나이애가라」발표 ▲1980년 단편 「가을 햇빛」 「산중기」 「묘약」발표 ▲81년 「오월의 숨결」 「물위에 어린 그림자」 「아이네 크라이네」 「오솔길로 가는 사람들」발표 ▲83년 단편 「공중에는 또하나의 다른 방이」 「가득찬 조용함」발표 ▲84년 작품집 「초록빛 모자」(나남)출간,단편 「애천」발표 ▲89년 중편 「겨울의 환」 「오후의 세계」발표,이상문학상 수상 ▲1990년 작품집 「봄의 환」(미학사)출간 ▲91년 중국여행,중편 「미친 사랑의 노래」발표 ▲92년 러시아여행,콩트집 「장미빛 인생」(작가정신)출간 ▲93년 수필집 「꿈꿀 시간 있으세요」(도서출판 전원),장편 「형자와 그 옆사람」(도서출판 창)출간 ▲94년 이라크와 지중해연안도시 여행,4인 에세이집 「사막,그리고 지중해에 바친다」(문학동네)출간 ▲95년 일본여행,작품집 「달의 몰락」(청아출판사)출간 ▲96년 장편창작동화집 「장이와 가위손」(한양출판)출간
  • 창작문학의 산실 「현대문학」 새달 5백호

    ◎「한국문학 꽃피우기」 41년 8개월/황동규·문병란·김후란 등 537명 등단시켜/「순수」 고수로 새 감각의 계간지에 밀리기도 국내 창작문학의 유서 깊은 산실 월간 「현대문학」이 8월호로 통권 5백호를 맞는다.지난 55년 1월호로 창간된 뒤 41년 8개월동안 한호의 결호없이 한국문학사상 유례없으며 깨지기 어려울 대기록을 세운 것. 당시의 대표적 순수문학지 「문예」가 폐간돼 전후 문예지 맥이 끊긴 54년 「한국현대문학의 건설」을 내걸고 출범한 「현대문학」은 60∼70년대초 한국문학의 가장 권위있는 지면으로 대접받았다.70년대 「창작과비평」「문학과지성」 등 인문사회과학을 망라하는 문학종합 계간지들의 출현에도 「현대문학」은 창작문학위주의 편집을 고수했다. 지금까지 「현대문학」이 등단시킨 문인수만 5백37명.지난 69년까지만 해도 어림잡아 5백명 미만의 중앙문인중 절반에 육박하는 2백23명이 「현대문학」출신이었다 시에서는 토속서정의 박재삼,지성적 시세계를 자랑하는 황동규,참여시인 고은,민중서정의 전범 이성부,80년 광주의시인 문병란,언어의 풍경을 말끔하게 그려온 오규원,현대시 실험에 몰두해온 이승훈,대표적 여류시인 김후란·김초혜·천양희 등이 배출됐다.소설쪽으로는 「오발탄」의 이범선,시민사회의 허위를 사회성 높게 고발해온 최일남,「토지」의 박경리,최근 역사소설의 진경을 보여온 서기원,토착 민중언어의 대가 이문구,이밖에 김원일·이동하·조정래·마광수·김홍신·유홍종·김채원 등이 「현대문학」에 의해 발굴됐다.또 박철희·김윤식·박동규·홍기삼·임헌영·이선영·김인환·최동호·이동하 등은 「현대문학」의 촘촘한 그물에 건져진 평론가들이다.한국문단의 허리를 이룬 「현대문학」출신은 이밖에도 무수하다. 5백호 특집으로 꾸며질 8월호에는 문학평론가 김용직·김윤식·전영태·이동하씨의 현대문학 역사를 되돌아보는 특별좌담,박완서·이수익씨 등 문인들이 현대문학에 얽힌 추억을 말하는 「현대문학과 나」 등이 실린다.서정주씨를 필두로 한 「현대문학」출신 시인 50명의 신작시 특집도 볼거리다. 동리의 문학론을 이어받아 이념보다 작품을우선한 「현대문학」은 한 시대 우리 문단의 명실상부한 저류를 이뤘다.특정유파에 치우치지 않고 문학성을 중시한 「현대문학」의 잣대에 검증받은 문인들은 역설적으로 참여·민중·시민문학의 모든 부면에서 한국문학을 화려하게 꽃피웠다.하지만 산업화의 모순으로 사회가 극심하게 앓던 70∼80년대 순수주의를 앞세운 「현대문학」은 보수적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문학과 사회를 적극적으로 연결하려 했던 다른 세력들에 밀리기 시작했다.90년 2만부까지 이르렀던 발행부수도 최근 1만2천부로 떨어졌다.「문학동네」「상상」 등 새감각의 계간지 세력이 밀려오는 90년대 「현대문학」이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좋은 시와 좋은 소설을 평면적으로 싣는 것」이상의 체질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손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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