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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의원 ‘추태’에 부쳐/소설가 현길언

    -日의원 ‘추태’에 부쳐/소설가 현길언

    드디어 일본이 다시 제국주의 망령을 온 세계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픈 과거를 잊고 새로운 세계질서 안에서 공존하려는 한국인의 마음을 외면한 채, 정략적으로 제국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경거망동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울릉도 방문을 강행하려는 일본 자민당 중의원인 신도 요시타카와 이나다 도모미, 참의원인 사토 마사히사 의원이 입국하려다가 한국 정부에 의해 입국금지 조치를 당하였다. 게다가 입국시켜 달라며 떼를 쓰다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니, 한 나라의 중진의원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일본은 제국주의 망령을 자랑처럼 내보이는 일을 최근까지 숱하게 저질러 왔다. 문부성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요지의 거짓 내용을 실어 교육시켰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월 24일에 대한항공이 에어버스 A380을 도입하여 독도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했는데, 일본 외상은 일본영공을 침범했다고 항의 문서를 보내왔다고 한다. 여기에 더하여 외무성은 대한항공기를 이용하지 말도록 공무원들에게 권고 형식의 훈령을 내리기도 했다. 독도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일본의 억지는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일본 영토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름 끼칠 일이다. 이번 일본 의원 울릉도행에 앞서 극우적 이론가인 다쿠쇼쿠대 시모조 마사오 교수는 하루 먼저 인천공항을 통해 몰래 들어오려다 입국 심사대에서 적발돼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정도를 무시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깡패 수준들이다.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계고지도에 의하면 1737년 프랑스 당빌이 제작한 ‘꼬레왕국의지도’는 울릉도를 ‘fanling-tau’(화링도)로, 독도를 ‘tchian-chan-tau’(천산도)로 표기하며 고려왕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764년에 프랑스 벨렝이 제작한 ‘꼬레왕국 해도’(Carte Du Royaume de Kau-li ou Corea)에도 우리나라의 주요 산맥과 지명 등을 비롯해서 동해가 코리아해(mer de Coree)로 나타나 있고, 그 안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혜정박물관에 소장된 많은 고지도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아주 많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은 수백년 전 세계가 인정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제국주의의 국경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망령의 소치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한국 분단 현실도 제국주의 야욕의 결과이고, 한국 전쟁으로 톡톡히 이익을 챙겨 오늘의 일본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반인륜적인 식민통치의 만행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떼를 써도 독도는 한국의 땅인데, 울릉도를 방문하여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아물어 가는 한국인의 상처에 흠집을 내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독도’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자의식에 잠재해 있는 제국주의 망령을 청산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미래의 일본을 위해서도 그 일은 제일의 과제이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현길언은 ▲1940년 제주생 ▲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냄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닳아지는 세월’, ‘벌거벗은 순례자’ 등 분단 민족의 아픔을 소재로 한 작품 발표 ▲계간지 ‘본질과현상’ 발행인
  • [책꽂이]

    ●옛이야기 되살리기(서정오 지음, 보리 펴냄) 옛이야기를 적당히 추려서 각색한 뒤 다시 들려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옛이야기의 기본은 재미다. 또 하나 중요한 핵심은 권세에 대한 풍자와 해학, 인습과 도덕의 굴레를 벗고 전복시키기, 약자 편들기 등이다. 현대문학의 문장, 구조 등에서 보여주는 문제점들을 성찰케 한다. 1만 2000원. ●DO IT! 아이패드2 완전활용법(강문성 지음, 이지스퍼블리싱 펴냄) PC와 아이패드를 연결하고 아이튠즈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을 30분 안에 정복할 수 있게 정리했다. 아이패드1에 이어 아이패드2까지 미국에서 직접 구매한 얼리 어댑터인 저자가 게임과 소셜네트워크 등 재미있게 노는 법과 함께 학습 도구이자 업무의 도구로 즉각 활용할 수 있게 정리했다. 1만 2800원. ●광고주의 돈 누가 훔쳤지?(정인석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광고주는 늘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광고 효과를 바란다. 하지만 마음 같지 않다. 광고주와 광고제작사의 ‘밀당’(밀고 당기기)을 재미있게 소개했다. 얼핏 보면 효율적인 광고 집행 노하우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광고주뿐 아니라 광고회사를 포함한 업계 전반의 건강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1만 5000원. ●청춘은 연대한다(안치용 등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더 이상 무기력한 ‘88만원 세대’가 아님을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대학생, 교수, 학부모,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주체들이 연대하며 이어간 반값등록금 1인 시위 50일의 기록이자 기억의 공유다. 조국 서울대 교수, ‘시골의사’ 박경철 등 인생 선배들의 응원사도 지극하다. 1만 1000원.
  • ‘한국학자’ 마이클 페티드 뉴욕주립대 교수, 한국을 말하다

    ‘한국학자’ 마이클 페티드 뉴욕주립대 교수, 한국을 말하다

    “‘엄마를 부탁해’ 같은 현대소설만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닙니다. ‘홍길동전’ 같은 옛소설도 얼마든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세계의 고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한류’ 바람이 거세다. K팝이 유럽을 뒤흔든 사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로 대표되는 한국 소설은 서풍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마이클 페티드(52)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 교수는 누구보다 한류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그는 미국 학생들을 상대로 문학 외에 한국사와 대중문화 등도 가르치고 있다. 다음 달 6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한국국제교류재단 어셈블리(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서울 상암동 숙소에서 만났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호평 받고 있다고 한다. 뉴욕에서 한국 문학의 인기를 실감하나. -물론이다. 문화적 ‘한류’와 한국문학은 세계적 유행을 탔고 뉴욕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도 한국 문학에 익숙해져 가고 한국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면 찾는 이가 늘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비, 보아 등 K팝도 호응을 얻는다. 한국 문학을 대상으로 한 문단의 비평도 활발해졌고 우리 대학 도서관에 한국소설 번역본이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은 문학 작품을 좀처럼 안 읽는데 수업시간에 100쪽 넘는 한국 소설을 주면 단번에 읽는다. →한국 문학의 주요 소비층은 유학생이나 교포 아닌가. -물론 유학생이나 재미교포가 먼저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들이 학교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백인, 흑인 등 ‘순수’ 미국인이다. 입소문을 통해 전파된다. 2008년 우리 대학 한국어 과정의 전공자 95%가 한국계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1, 2학년은 거의 다 백인과 흑인, 다른 외국인들이다. →미국에서 신경숙 외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한국 작가가 있나. -김영하 등 젊은 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좋다. 김영하는 지난해 미시간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젊은층의 삶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작가다. 예컨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I have right to destroy my self) 같은 소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동양적 정서를 담은 한국 소설이 서양에서 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은 똑같다. 부모에 대해 느끼는 애틋함, 대학생이 느끼는 혼란 등 피차 같은 고민을 한다. 미국 대학생도 등록금 걱정을 하고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높은 실업률 탓에 백수가 될까 봐 스트레스를 받는다. (삶의 진실을 찾아 나선 대학생의 방황을 그린) 강석경 작가의 소설 ‘숲 속의 방’ 같은 작품에는 미국 대학생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6년 전 현대문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읽혔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국 소설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좋은 팀을 이뤄 번역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어 원어민 1명과 영어 원어민 1명이 협동해 번역해야 말맛과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세심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뜻만 통할 뿐 느낌을 살릴 수 없다. 그런데 여전히 혼자 일하는 번역가가 많다. 내 친구인 (대표적 한국문학 번역가) 브루스 폴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교수는 한국인 아내 윤주찬씨와 함께 번역한다. 그래서 질이 높다. 나도 한국인인 내 아내와 함께 고전 ‘운영전’을 번역했다. →한국 기관들의 번역 지원 사업에 불만은 없나. -번역을 지원해 주는 기관이 3~4곳 있다. 그런데 번역작품 선정위원이 모두 한국인이다. 서양사람도 들어가야 한다. 현지에서 통할 작품을 선정하는 일에 현지인의 시각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인들은 노벨 문학상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왜 여태 못 받았다고 생각하나. -노벨 문학상은 상당히 정치적이다. 아시아에서는 대표적으로 일본이 2명의 노벨상 수상 작가를 배출했는데 그 배경에는 태평양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었다. 이 전쟁을 아는 서양인들이 일본 소설에 담긴 메시지를 읽고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물론 (노벨상 수상자인)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같은 작가는 천재다. 하지만, 한국에도 그에 못지않은 작가들이 있다. →한국인이 수상한다면 누구일까. 고은 시인 수상 가능성은 매년 점쳐지는데. -내 생각에는 시인보다 소설가가 더 가능성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시를 많이 읽지 않는 데다 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특정 작가를 꼽기 어렵지만 앞서 말한 김영하 같은 작가가 후보가 될 수 있겠다. 서양인들이 한국 소설을 읽고 ‘틱’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오면 노벨상도 같이 찾아올 것이다. →한국 고전문학이 전공이다. 우리 고전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세계의 고전이 될 가능성이 있나. -(될 수 있다고) 100% 확신한다. 작품 머리글에서 역사적 배경을 잘 설명하고 번역만 잘한다면…. 한국 고전에는 홍길동전이나 임경업전 같은 영웅물, 구운몽 같은 판타지물, 옛 여성들의 어려운 삶이 담긴 규방소설까지 장르가 다양하다. 예컨대 아랍권 여성들이 규방소설을 보면 어떨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전은 한문장 한문장 깊이가 깊다. →K팝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화려한 퍼포먼스 덕분인 것 같다. 한국 댄스 가수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보면 라스베이거스에 와 있는 것 같다. 중국의 후한서나 삼국지를 보면 고대 한국인들도 춤과 음악, 술을 즐겼다고 나와 있다. 그만큼 특유의 ‘끼’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 사람들은 노래방 가서 부끄러움 없이 연습한다. 한국인 피가 섞인 내 딸은 고작 5살인데 노래를 잘한다. →주제를 바꿔 보자. 왜 한식은 세계화에 어려움을 겪나. -(전략적)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것 같다. 예컨대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몇 년 전 뉴욕에서 파전을 만들며 홍보했다. 파전은 맛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아니다. 떡볶이도 엑스포까지 열어 수출에 열을 올리는데 이 또한 대표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식 바비큐도 미국에서 인기는 있지만 채식 위주로 구성된 전통적 한식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의 초밥, 인도의 커리처럼 한국 하면 떠오르는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대표 음식은 뭔가. -‘밥상’ 그 자체다. 한국식 밥상에는 밥, 국, 김치, 마늘, 들기름 등이 한꺼번에 올려지고 다양한 맛과 냄새, 질감 등이 혼합돼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룬다. 주의할 점은 음식을 너무 현지화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지화가 일정 부분 될 수밖에 없지만 원래 맛 그대로를 찾는 서양인이 많다. 태국음식도 매우 맵지만 원래 맛 그대로 미국에서 판매해 인기를 얻는다. 미국 사람들이 일본식 생선회를 처음 접했을 때 ‘날생선을 어떻게 먹느냐.’고 했지만 지금은 잘 먹는다. 글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김인숙 “낯선 공간·낯선 문화의 삶 써보고 싶었다”

    김인숙 “낯선 공간·낯선 문화의 삶 써보고 싶었다”

    건물은 무너졌고, 찢긴 시체들은 떨어진 꽃송이처럼 시멘트 덩어리 틈 사이에 널브러졌다. 임시로 차린 병원은 차라리 죽여 달라며 소리치고 신음하는 환자들로 넘쳐났다. 엄마를, 형제를 찾는 이들이 부르짖는 아우성은 환청인 듯 귓가에 박혔다. 엄청난 지진이 땅을 흔들었고 절벽처럼 일어선 바다가 섬을 뒤덮었다. 대재앙에서 비롯된 죽음과 붕괴, 공포와 불안이 불러온 것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또는 기억하려야 기억할 수 없는-과거의 한 장면이다. 새 희망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랑도, 삶도. 김인숙(48)의 새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펴냄)는 사랑의 진정성을 묻는 작품이면서 또한 한 편의 재난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초 발생한 일본 대지진의 끔찍함을 상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7일 만난 김인숙은 아직도 흥분과 충격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듯 한껏 상기돼 있었다. 비록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 공간의 재앙이었고 죽음의 기억이었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소설에 사로잡혀 지낸 탓이리라. 김인숙은 “지난해 11월까지 문학웹진에 연재한 뒤 단행본을 내기 위해 올해 여섯 달 동안 끙끙거리며 고쳐 썼는데 그 사이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면서 “가능하면 TV도 보지 않고 신문 기사도 읽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지진 이야기를 (작가로서) 얼마나 진정성 있게 쓰고 있는지 자문하면서도, TV 등을 보고서 지진을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과연 옳은 자세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노부부가 쓰나미가 등 뒤에서 몰려오는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는 기사를 봤어요. 대단히 인상적이었죠. 나는 이런 현실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쉼표를 찍듯, 천천히 말을 이어 간 김인숙의 볼이 살짝 붉어졌고 눈시울에 물기가 어렸다. 소설 속 공간은 ‘신들의 섬’이라고 하는 이국의 섬이다. 언어에 시제가 따로 없어 어제와 오늘, 내일이 모두 현재형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관광객이 없으면 한시도 지탱할 수 없는 곳이면서, 돈 많은 외국인 여자 또는 남자와 사랑인지 매춘인지 알 수 없는 만남을 꿈꾸는 청춘 남녀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은 여자 ‘진’과 섬의 관광 가이드 운전 기사 ‘이야나’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진의 남편 유진은 7년 전 섬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온 뒤 아예 혼자 섬에 눌러앉는다. 그리고 진이 국내를 오가는 사이 유진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어린 하인 여자아이에게 살의(殺意)의 충동을 느끼게 되고, ‘기억이 모호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진은 살인 사건과 함께 사라진 유진을 찾기 위해 다시 섬으로 왔고, 거기에서 끔찍한 대지진을 직접 겪는다. 진은 ‘세상이 무너지고 땅이 전부 갈라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겠는가.’라고 읊조리며 7년 전 살인 사건 또한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는 어마어마한 대지진이었음을 깨닫는다. 끔찍한 죽음을 부를 수밖에 없는 지진이 형태를 달리해 7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셈이다. 옛 사랑을 되찾고, 깨끗이 버리고, 또 새 사랑을 만나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거쳐야 할 삶의 필연적 수순이다. 지진과 죽음이 휩쓸고 가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위에 섰다면 무엇이든 새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삶의 수순, 사랑의 운명이다. 설령 그조차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무너질 것임을 뻔히 알더라도 마찬가지다. 김인숙은 “소설에서 굳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5년 전부터 길게는 넉 달, 짧게는 1~2주일 수차례 머물며 쓴 얘기”라면서 “낯선 공간, 낯선 문화의 삶을 써 보고 싶었다. 한국 사람을 아예 등장시키지 않으려고도 했으나 힘이 달려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인숙은 1983년 스무 살 나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문단에 나왔다. 벌써 등단 30년을 바라본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모두 섭렵한 세월이다. 그는 “30년 가까이 써 왔지만 계속 변화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면서 “판타지 소설, 로맨스 소설 등 장르소설도 제대로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주석달린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제프리 크래머 주석, 강주헌 옮김, 현대문학 펴냄) 세계적인 고전 ‘월든’이 출간 150주년을 맞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숲 작은 호숫가에서 물질문명을 부정한 채 오로지 자연의 삶을 두 달 동안 살았던 소로의 체험기다. 철학적이고 생태학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월든’ 뿐 아니라 소로의 삶과 철학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소로 백과사전’이다. 3만 9000원. ●스파르타쿠스 전쟁(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글항아리 펴냄) 로마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73~71년 동안 벌어진 노예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생생히 복원했다. 검투사 74명으로 시작해 노예, 양치기, 빈농 등이 서서히 불어나며 무려 6만 대군이 됐고, 최정예 로마군에 무려 9차례나 패배를 안기기도 했다. 결국 스파르타쿠스의 전사와 함께 반란은 진압되고 만다. 하지만 ‘역사상 유일하게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평가와 함께 스파르타쿠스의 리더십 등 영웅적 면모를 새로 조명한다. 1만 6000원. ●등불(이재록 지음, 우림 펴냄)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가 여러 곳에 게재한 칼럼을 묶은 책이다. 성경 구절을 하나씩 인용한 뒤 이 목사가 생활 속에서 느낀 단상들을 짤막하게 정리했다. 1만원.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류승일 글, 전나무숲 펴냄) 2011년 3월 11일 오후 일본에는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38.9m의 해일이 일본 동북부 해안 지역을 덮었다.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저자는 사흘 뒤 후쿠시마에 도착한다. 14일 동안 그곳에 머물며 자연이 오만한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의 잔혹한 현장을, 절망과 좌절을 넘은 아비규환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까지 뷰파인더에 서려 있는 듯하다. 1만 3800원.
  • “中 전통문학 소재로 명맥” “韓 문학적 풍요는 허상”

    ‘전통 가치의 붕괴, 문학 형식의 파괴’ ‘근대문학의 위기’라는 홍역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겪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시인, 소설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1~12일 ‘전통과 현대, 디지털 시대의 문학’을 주제로 중국 시안(西安)에서 열린 제5차 한·중 작가회의에 참석한 소설가 자핑와(賈平凹), 장웨이(張煒), 시인 옌안(閻安) 등 중국 작가 40여명과 소설가 김주영, 성석제, 은희경, 시인 김기택, 장석남 등 한국 작가 24명은 서로의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문학의 길을 걷는 즐거움과 힘겨움을 나눴다. 특히 이들은 중국문학과 한국문학이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문학의 위기’라는 화두를 놓고 열띤 논의를 진행했다. 소설가 자핑와는 “변화의 시기 작가의 사명은 오로지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작가들이 각자 문학의 동질성과 상이성을 분명히 확인할 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문제를 극복하는 데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중국 문단에서는 기존 전통 문학의 성과와 가치, 의의가 부정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큰 데 반해 한국 문단에서는 상업적인 문학의 범람으로 부풀려진 외형을 더욱 경계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기조발제에 나선 문학평론가인 양러성(楊樂生·48) 시베이대(西北大) 문과대 교수는 “중국의 현대 문학이 소설의 이념뿐 아니라 창작 기법까지 서양 소설의 영향을 받으면서 전통문학과 단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면서도 “중국의 전통문학은 형식은 바뀌었을지언정 그 주제와 소재는 현대문학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기’ ‘수호지’ ‘묵자’ ‘장자’ ‘유림외사’(儒林外史) 등이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서사는 마오둔(茅盾), 자핑와, 모옌(莫言) 등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오생근(65) 서울대 불문과 교수는 “한창 얘기하다가 이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버린 듯한 ‘문학의 위기’라는 문제의식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양국 작가들이 실증적으로 검토해 볼 때”라고 말을 뗐다. 오 교수는 “문학의 양적 팽창과 상업적 문학 풍토의 과잉이 문학정신의 실종을 낳고 궁극적으로 문학을 죽음의 상태로 몰고 간다고 볼 수 있다.”면서 “모든 문학적 풍요로움은 허상에 불과하며 대중의 감상성과 속악한 취향에 영합하는 현실을 부정할 때 비로소 문학의 제 역할찾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안(중국)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계간 ‘시인수첩’ 야심찬 첫발 ‘문학수첩’ 전철 밟지 않기를

    [문화계 블로그] 계간 ‘시인수첩’ 야심찬 첫발 ‘문학수첩’ 전철 밟지 않기를

    677, 151, 463, 125, 101, 93, 66…. 그리고 28과 1. 언뜻 규칙성을 찾기 힘든 숫자의 나열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문학 전문 잡지들의 통권 호수(號數)다. 1955년 창간한 월간 현대문학은 이달 677호를 냈다. 그 뒤 숫자는 계간 창비(1966년 창간), 월간 문학사상(1972년 창간), 계간 문예중앙(1978년 창간), 계간 실천문학(1985년 창간), 계간 문학과사회(1987년 창간), 계간 문학동네(1994년 창간)의 ‘훈장’이다. 오랜 세월, 정치·경제적 등의 이유로 정간과 휴간의 곡절을 겪으면서도 버텨온 한국문학사의 증거 숫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8과 1은? 28은 2003년 창간해 2009년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들어간 계간 문학수첩의 통권 호수이다. 1은 그 계간지를 냈던 같은 이름의 출판사 문학수첩이 최근 선보인 시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 창간호(여름호)다. 발행인은 김종철 문학수첩 대표가, 편집위원은 장경렬 서울대 교수,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 허혜정 한국사이버대 교수가 맡았다. 333쪽에 이르는, 제법 두툼한 창간호 어디에도 상업광고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만화와 시, 사진과 시, 그림과 시 등 시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 앞으로도 ‘시인수첩’에서는 광고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재 20억원을 선뜻 출자한 김종철 발행인은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광고나 외부 도움 없이 꾸려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인들에게 “정당한 원고료도 지급하겠다.”고 했다. 시를 싣고도 원고료를 주지 않거나 1년 정기구독권으로 대체하는 식의 비뚤어진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선언이다. 그 자신이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기에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김 발행인은 “시인과 평론가들끼리만 서로 칭찬하거나 헐뜯는 풍토를 뛰어넘어 시를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분파주의’와 ‘패거리주의’라는 한국 문단의 고질적 병폐를 창간사에 정확히 적시하고 있는 점도 주변의 기대를 부풀린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발행인은 2003년 계간 문학수첩을 창간할 때도 “출판사 영리와 연계시키는 기존 관행을 배격하고 순수하게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6년 뒤, 무기 휴간을 전격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변화의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종합 계간지 형식보다는 장르 특성을 담보할 전문지가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폐간 선언이었고, 그 배경에는 누적되는 적자가 실질적 이유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제 막 첫발을 디딘 시인수첩에 딴죽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계간 문학수첩의 아픈 전철을 밟지 않기를, 그래서 한국문학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고] ‘리빠똥 장군’ 소설가 김용성씨

    [부고] ‘리빠똥 장군’ 소설가 김용성씨

    소설가 김용성씨가 28일 오후 지병으로 숨졌다. 71세. 장편소설 ‘잃은 자와 찾은 자’ ‘리빠똥 장군’ 등으로 잘 알려진 고인은 1940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잃은 자와 찾은 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로 사회적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인류애에 입각한 인간의 본질을 그리는 작업에 주력하던 그는 2004년부터 인하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3년 현대문학상, 1985년 동서문학상,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 2004년 김동리문학상·요산문학상·경희문학상을 받았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졌으며, 영결식은 경희문인회장으로 5월 1일 오전 8시 열린다. (02)2258-5940.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통·갈등속에서 희망 찾는 시인의 삶

    고통·갈등속에서 희망 찾는 시인의 삶

    시인에게 글(시)쓰기란 천형((天刑)이요, 축복이라 한다. 그 천형은 뼈를 깎는 고통의 감내이고 축복은 처절한 산고 끝의 결실일 것이다. 물론 그 천형과 축복은 삶을 향한 옹골찬 진정성과 성찰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주 구도자며 수도자의 반열에 놓이기도 한다. 흔히 ‘과작의 시인’이란 수식이 따라붙는 천양희(69). 고희를 앞둔 시인 천양희에게도 글쓰기란 예외없는 천형이요, 축복이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지 어언 반세기. 비록 시집 4권의 많지 않은 결실에도 불구하고 그 ‘이룸’은 알알이 치열한 삶과 성찰의 궤적이다. 최근 세상에 내놓은 산문집 ‘내일을 사는 마음에게’(열림원 펴냄)는 천양희 시인의 삶이 차라리 구도자의 과정이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기 고백의 연속이다. “나를 시인으로 만들고 키운 건 순전히 아버지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박두진 시인”이라는 천양희. 70평생 어쩔 수 없는 시인의 자리를 지키게 한 그 세 사람의 존재는 뺄 수 없는 삶의 기둥이다. 그리고 세상의 아픔과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죽음까지를 염두에 두고 불쑥 찾아갔던 내변산의 직소폭포는 견뎌내야만 하는 삶에의 극적인 반전 처. 그래서 그 반전의 장소는 13년 만에 축복의 결실인 대표시 ‘직소포에 들다’로 맺어진다. 어릴 적 이발소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시인의 삶을 여전히 든든하게 받쳐주는 좌우명과도 같은 지침. 그중에서도 “오늘이 비참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삶”이라는 구절은 회의와 실의 속에서도 그를 번번이 시인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천둥과도 같은 울림이라고 한다. 산문집을 관통하는 반복의 메시지는 역시 ‘시인이란 무엇인가’이다. “시란 갈등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의 고리를 잡는 것 이상의 것이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이 세상이 싫을 뿐” “시에는 불혹이 없다.언제나 혹하는 새로움이 있을 뿐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시인들에게 때로는 따끔한 매로, 때로는 가슴 시린 사랑의 손길로 다가오는 고백의 성사들. 그저 시인에게만 파고드는 수사로 들리지 않는다. “지금도 원고지를 대하면 원고지 사각형의 모서리가 절벽처럼 느껴져서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는 천 시인. 그 치열한 글쓰기와 살아냄은 “오늘은 여생의 첫날”이고 ”마음은 내일에 사는 것”이라는 희망과 내일에의 기대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세계문학 유럽중심 틀에서 벗어나자”

    “세계문학 유럽중심 틀에서 벗어나자”

    세계문학의 중심은 어느 한 지점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과 하버파크호텔에서 인천문화재단 주최로 열리는 ‘제2회 인천 알라(AALA,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은 유럽에 편중된 세계문학의 흐름을 다양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비서구권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럽 중심주의적 틀에서 벗어나 세계문학에 대해 논의하는 것. 올해 주제는 ‘평화를 위한 상상력의 연대’. 아르헨티나 소설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왼쪽), 팔레스타인 소설가 파크리 샬레(가운데), 네팔 소설가 나라얀 와글레, 남아프리카공화국 시인 다이아나 퍼러스(오른쪽) 등 해외 문인 12명과 문학평론가 최원식, 시인 도종환, 소설가 김별아 등 한국 문인이 참여한다. 아랍권 작가들이 최근 중동 정세 흐름에 관해 토론하는 ‘아랍 작가들이 말하는 중동의 민주화’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 발표 및 토론의 장(場)이 마련된다. 작품 낭독회, 노래와 시 콘서트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열린다. 루이사 발렌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여류작가 중 한명으로,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폭압을 폭로해 왔다. 나라얀 와글레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팔파사 카페’ 등으로 네팔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포럼 기획위원장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현재진행형인 아랍 민주화투쟁과 연평도 포격 등에서 보듯 비서구는 여전히 분쟁과 독재에 고통받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불리한 여건이 오히려 비서구 문학의 역동성을 가능하게 한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면서 “유럽 중심에서 벗어난, 진정한 의미의 세계문학을 정립하는 데 알라 문학포럼이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현대문학사의 가까운 지점에 김홍신의 ‘인간시장’,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존 로널드 로웰 톨킨의 ‘반지의 제왕’ 등도 마찬가지 영역에 머물러 있다. 대중소설, 혹은 상업소설이다. 역사, 추리, 판타지, 연애 등을 다루는 소설을 흔히 ‘장르 소설’이라 일컫는다. 본격소설(혹은 순소설)과 대비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간소설’(middlebrow fiction)이란? 말 그대로 본격소설과 상업소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다. 문학의 예술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을 모두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현대문학이 판타지와 팩션(팩트+픽션), 칙릿(젊은 여성을 뜻하는 chick+literature의 조어) 등을 주 대상으로 삼는 풍조 속에서 중간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장르적 경계가 상당 부분 허물어진 상황에서 장르를 규정짓는 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으로 비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현실을 딛고 나온 발언이 있다.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사뭇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문제 제기다.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내놓은 문학평론집 ‘언어의 그늘’(서정시학 펴냄)을 통해 중간소설이 품고 있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는다. 문 교수는 “한 나라의 문학이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이 서로의 경계선을 확실히 유지하면서 상호 비판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면서 “중간소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선 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고 비판할 이유가 없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곧바로 “중간소설 옹호론자들이 본격소설의 본령과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할 때에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며 논의의 장(場)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몇 년 전 거액의 고료를 걸고 제정된 뉴웨이브 문학상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기존의 중간소설 옹호론 핵심을 ▲중간소설은 세계문학의 큰 흐름이며 서사의 재미와 함께 문학의 품격도 겸비한 만큼 과거 대중문학에 비해 한 차원 높다 ▲기존의 본격소설 역시 중간소설의 다양한 자양분을 수용해야 그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최첨단 정보기술(IT) 수준에 맞춰 생산된 보편적 문화 콘텐츠로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가져 보자 등으로 정리했다. 문 교수는 ▲소설은 사회의 모순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고독한 투쟁의 여행임에도 이를 외면하며 멀티미디어적 상상력만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본격소설을 위축시키며 ▲세계화,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업화한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만큼 민족적 특수성에 기반해 세계 인류가 공감하는 내용이 더욱 필요하고 ▲최첨단 IT 기술을 접목해 만드는 중간소설은 인간적 향기가 없는 문화 상품일 뿐이라고 조목조목 반박 논리를 곁들였다. 그는 “과거 현대문학의 흐름 속에서 이뤄진 실험과 파격이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시대의 모순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응전력이 그 속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문학은 지배 담론의 논리에 오염된 일상 언어를 비판하고 그 논리에 의해 추방된 그늘을 감싸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치 중간소설을 우리 문학의 미래인 양 표현하는 풍토가 만연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다.”면서 “굳이 순문학이니 본격문학이니 하며 경계 짓지 않더라도 세상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문학이 지켜야 할 가치만큼은 엄연히 존재함을 주장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엘리트주의를 앞세워 문학의 성벽을 굳건히 높이고자 하는 문단 주류 연구자의 고루한 아집인지, 아니면 흥미로움과 경박함이 문학의 외피를 쓰고 범람하는 풍조에 대한 외로운 저항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판단은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일고여덟살 무렵부터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신문을 펼치는 사람은 나였다. 아침에 눈만 뜨면 내복바람으로 달려나가 신문을 집어들고 와서 먼저 펼쳤던 것이 ‘TV편성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색연필까지 들고서 만화영화의 편성시간대에 체크를 하고, “~하고 마는데…” 하고 끝나는 프로그램 예고기사를 두근거리는 맘으로 읽기도 했다. 여덟 살 꼬마에게 신문읽기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신문사랑’은 계속되었다. 열살 때는 연재소설에 맛을 들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야했다. “보지 마라.”는 부모님의 핀잔은 어린 가슴에 불을 댕겼고, 그 이후로 아침마다 가장 먼저 신문을 읽고 나서는 안 읽은 척, 새 신문인 것처럼 각을 잡아놓곤 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몰래 읽는 스릴이 최고였다. 나이가 들고 관심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스포츠 섹션, 시, 짤막한 칼럼, 독자참여란이나 오피니언 등의 순서로 ‘열독 코너’의 수준이 높아지고 범위가 확장되어 갔다. 서울신문에서 요즘 가장 즐겨 읽는 코너는 토요일자 서평 섹션이다. 마음만큼 책을 읽지 못하는 욕구불만을 서평으로 대리만족하곤 한다. 이렇게 자잘한 재미를 찾아 신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신문과 친해지고 그 이로움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하여 신문을 읽는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소소한 즐거움이 있기에 신문을 집어들게 된다. 매일 아침 펄떡거리는 새 뉴스를 상에 올리는 신문이지만 고정적으로 즐겨 찾는 밑반찬 같은 코너가 있다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위안은 자못 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일까. 눈에 들어오는 편집과 디자인 덕에 전체적으로 읽어 나가기에는 쉬운, 젊은 느낌의 신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을 붙일 만한 피처기사들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취약하다는 점은 아쉽다. 유머는 한물간 것이고, 날씨는 지면 중간 애매한 곳에 있어 가독률이 떨어진다. 만화, 만평, 운세는 다른 신문과 별반 차이가 없다. 풍부하고 충실한 내용 이외에도 독자의 충성도를 높여줄 ‘갈고리’를 추가로 장착할 것을 제안한다. 서울신문은 지난 19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연재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국 신문소설의 역사, 나아가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는 시대지만 여전히 연재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전력을 살려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실험적인 작품의 연재는 어떨까. 서평이나 문화면에서도 차별화를 권한다. 서평 전문기자의 충실하고 풍부한 서평은 지금도 좋다. 책의 주제를 쉽게 함축한 디자인에는 눈이 덜컥 가서 걸린다. 하지만, 책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그냥 화제작이나 신간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읽어 볼 만한 책이라든지 특정 주제의 책을 묶어 소개하는 식으로 기준을 다양화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구색갖추기용 지면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 신문을 읽을 때 먼저 1면을 대충 훑어보고 그 다음 뒤로 넘겨 신문을 펼친다고 한다. 오피니언 면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거리가 ‘길섶에서’와 ‘씨줄날줄’ 이다. 주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히 풀어낸 글은, 편하게 앉아 현명한 인생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 같아 좋다. 기사를 읽기 전 혹은 후에 쉬어갈 수 있는 코너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알차고 풍부한 내용이라도 쉼 없이 읽어 내려면 생각만 해도 숨이 찬다. 물론 그런 것이 신문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정공법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젊은 층이 신문을 외면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도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어릴 적 그 설렘을 다시 떠올리며 깊이 있는 신문, 살아있는 신문에 더해 재미있는 신문, 정이 가는 서울신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 “살아나서 고맙다… 병고로 힘들었지만 매사에 감사”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소설가 박완서씨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더 지났다. 새달 1일자로 발간된 ‘현대문학’ 3월호는 추모특집으로 큰딸인 수필가 호원숙씨를 비롯해 고인과 함께했던 이들의 추모글을 실었다. 호씨는 ‘엄마의 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전하며,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남긴 일기를 공개했다. “병원 가는 날, 퇴원 후 바깥 나들이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잘 다녀왔다. … 집에 와서도 많이 앉아 있었다. 일기도 메모 수준이지만 쓰기로 했다. 워밍업이다. …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 마지막까지 일상을 소중히 여겼던 고인의 마음이 묻어난다. 호씨는 어머니가 딸들에게도 맨발을 보여 주지 않아 ‘엄마의 발은 늘 가슴 아픈 의문표’였다고 한다. 항상 당당하던 어머니가 어느날 발목을 다쳐 병원을 찾았고, 그제야 호씨는 어머니 다리의 태생적인 붉은 반점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호씨는 “나는 그 순간 엄마가 진정으로 고맙고 무조건 잘해 드리고 싶어졌다.”며 “부끄러울 것도 창피해할 것도 없는 엄마의 붉은 점을 보면 그래도 마음이 저려 왔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조앤 K 롤링도 반한 다시 읽는 고전동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종종 기적을 낳고 때때로 걸작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영국 문학의 자존심이자 세계 아동문학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손꼽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도 아들에 대한 아빠의 극진한 사랑에서 출발한 동화다. ‘주석 달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케네스 그레이엄 원작, 애니 고거 주석, 안미란 옮김, 현대문학 펴냄)은 아동문학 연구가의 주석에 ‘아기곰 푸’의 삽화가 어니스트 셰퍼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가 아서 래컴 등이 그린 100여개의 삽화가 실려 있다. 원작자 그레이엄(1859~1932)은 시력이 약한 아들을 위해 섬세하고 생생한 풍경 묘사, 소리와 동작에 대한 다양한 표현,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만들어 냈다. ‘버드나무’의 주인공은 모험가 두더지, 사교적인 물쥐, 거드름쟁이 두꺼비, 현명한 오소리 등이다. 이들의 흥미진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험 이야기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매료시켰다. 그 중 한 사람이 ‘해리 포터’의 원작자 조앤 K 롤링이다. 롤링은 원작에 담긴 자연과의 친밀한 교감,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세련된 묘사, 호소력 있는 지혜로운 성찰의 메시지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 교육학자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는 획일적인 교육을 주장했기 때문에 ‘버드나무’의 출간은 쉽지 않았고,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버드나무’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A A 밀른은 연극으로, 월트 디즈니는 영화로 만들어 시대를 초월한 고전 반열에 올려 놓았다. ‘버드나무’의 시작은 그레이엄이 ‘생쥐’란 별명으로 불렸던 아들 앨러스테어를 위해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었지만 창조적이었던 앨러스테어는 아버지의 동화에 크게 기여했다. 주석을 붙인 애니 고거가 “첫 번째 편집자이자 공동 저자”라고 ‘생쥐’를 칭찬한 이유다. 안타깝게도 앨러스테어는 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에도 스무 살 생일을 앞두고 돌연 자살하고 만다. ‘주석 달린 버드나무’는 ‘주석 달린 허클베리 핀’에 이은 ‘주석 달린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앞으로 윌든, 빨강머리 앤, 안데르센 동화 등의 고전이 풍부한 주석과 함께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3만 9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지난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멀리 떠나는 날은 매서운 한파도 잠시 멈칫하며 아득한 먼길을 애도했다. 25일 오전 10시 경기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는 신정순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열렸다. ●각계 인사 500여명 마지막 길 지켜봐 큰딸인 작가 호원숙씨 등 유가족과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를 비롯해 김화태 신부,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정과리, 강영숙, 조선희, 정종현, 민병일, 이경자, 심윤경, 임철우, 은희경, 공지영 등 여러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와 같은 문학계 인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 독자 등 500여명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성길 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면서 “영정 사진 속 웃는 모습 역시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낙네 같은 소박한 모습”이라고 돌이켰다. 또 “참으로 큰 분이셨음에도 모든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하시고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성당에 소박한 영결미사를 맡기셨다.”면서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소박하고도 단아했던 고인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쓰셔야 할 소설이 동백처럼 있는데…” 정호승 시인은 조시에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각별함을 유지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교수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면서 “이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표현하셨으며 비상한 재능에도 전혀 거부감을 촉발하지 않는 인품에서 늘 참다운 재능의 깊이를 실감했다.”고 고인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절감했다. 이어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서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조사를 끝맺어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과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을 앞세워 길게 이어졌다. 시신은 경기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의 남편과 아들 곁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소설가 이순원 “한없이 다정한 어머니 꼭 다시 돌아오세요”

    선생님…, 다시 한번 또 불러봅니다. 선생님…. 지난 22일 아침 저는 전국에서 모인 길꾼들과 함께 제 고향 강원도의 바우길 위에 있었습니다. 길을 걷는 도중 김영현 선배가 전화문자로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거짓말 같은 소식인가 믿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무숲 사이의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겨울 하늘은 저토록 차고 맑은데, 제 기억 속에 하고많은 선생님의 모습 중 3년 전 어느 봄날, 박경리 선생님을 저 세상으로 보내 드리던 영결식장에서 저희를 두고 이렇게 떠나시면 남은 사람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하시냐고 우시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차분히 하려고 해도 차분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모두 저처럼 놀란 얼굴을 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오래도록 선생님의 책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도 가슴 한구석을 텅 비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23년 전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내리 10년간 신춘문예에 낙방하다가 어느 문예지에 응모한 제 작품을 선생님께서 뽑아 주셔서 정식으로 한국 문단에 나왔습니다. 옛날 선비들에게는 어려서부터 글을 가르쳐 준 사사스승과 과장에서 글을 뽑아 준 발탁스승이 있는데, 두 스승에 대한 예를 언제나 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새 작가로 저를 뽑아 주신 것을 지금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언젠가 동인문학상 시상식 때 선생님께서는 제 어머니에게 다가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저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저와 저의 문학이 이 땅에 있게 해 주신 두 어머니의 모습 같았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에 대한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후배 작가들이 우리가 현역작가로 함께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선생님께 한없이 기대고 의지하며 위로받아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문단에 참으로 큰 어머니의 모습으로 선생님께서 후배 작가들을 지켜봐 주셨고, 저희는 또 선생님의 넓은 품에 저마다 한식구로 위안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 우리 작가들에게만이겠습니까? 제가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모두 똑같은 마음과 똑같은 얼굴로 놀랐던 것은 한국의 모든 독자들 역시 지금껏 선생님의 글에서 한없이 따뜻하고 넓은 어머니의 모습을 느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에 어떤 독자는 선생님의 글에 대해 세 줄만 읽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책을 다 읽고 나면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위로받은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자들도 그렇고 함께 글을 쓰는 작가들도 그렇고, 선생님은 선생님을 직접 뵌 사람들에게도 뵙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 문학을 지켜 오셨고, 마지막까지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은 현역 작가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더 믿을 수 없고, 더 애통한 것인지 모릅니다. 선생님의 수많은 독자분들도, 또 글을 쓰는 저희도 아직 선생님을 놓아 드릴 준비가 전혀 안 되었는데 어느 아침 선생님께서는 홀연히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별의 놀라움은 언제나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일처럼 낯설고 눈물은 또 언제나 이렇게 늦게 흐르는가 봅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너무 크시고 고우신 선생님…. 누가 이렇게 바쁜 걸음으로 선생님을 우리 곁에서 데려가는지요. 좀 더 오래, 그리고 아직도 많이 선생님을 봐야 할 우리의 빈 가슴은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선생님을 데려가는지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가셔도 잊지 마시고 저희와 이 땅의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돌아오세요, 선생님.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꼭 돌아오세요, 선생님…. ●이순원은 1958년 강릉 출생. 1988년 등단.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등 수상. ‘은비령’, ‘정동진’, ‘워낭’ 등 출간
  •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 같고, 큰누이 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 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 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포토]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 타계●“6·25 없었으면 선생님 됐을 수도”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 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시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쟁·참척의 고통까지 관조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작가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하는 힘을 보여 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깊은 상처 속에서도 늘 글 속에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가장 최근에 쓴 ‘내 식의 귀향’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를 다녀왔다.…비석엔 내 이름도 생년월일과 함께 새겨져 있다. 다만 몰(沒)한 날짜만 빠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가 있는 게 저승의 큰 ‘빽’이다.” 이어지는 글. “다만 차도에서 묘지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이 걱정스럽다. 운구하다가 관을 놓쳐 굴러떨어지면 늙은이가 살아날까 봐 조문객들이 혼비백산(하겠지)…실 없는 농담 말고 후대에 남길 행적이 뭐가 있겠는가.” ●유니세프 활동 ‘한국의 오드리 헵번’ 그는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이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을 찾아다녔다. 암을 발견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 한국위 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내란의 비극’ 네팔 소설 처음 한국에

    독재 치하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있다. 토지개혁과 민주주의를 간절히 열망한다. 객관적 사회 정치 환경 속에 변화를 향한 주체적 의지가 맞물려 결국 폭발한다. 외부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들어오며 게릴라 반군이 결성된다.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정부군과 여기에 맞서는 반군의 대결이 나라 곳곳에서 펼쳐진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대의명분은 희미해지고 어린이와 여자 등 선량한 약자들의 희생은 늘어만 간다. 정부군과 반군에 아들을 하나씩 징집 당한 어미, 낮에는 정부군에, 밤에는 반군에 위협 당하며 살아야 하는 아버지의 조마조마함…. 폭력에 대한 몸서리침은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뒤바뀐다. 조국의 산하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좌우 이념의 갈등 속 사람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비극 속에서도 예술과 시대의 아픔을 매개로 한 애틋한 사랑은 피어난다. 장편소설 ‘팔파사 카페’(문학의숲 펴냄)의 대강 줄거리다. 한국 현대사의 어느 장면이 떠오를 법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 소설이 아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네팔 소설이다. 요즘 점점 늘어나고 있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는 이들이라면 첫 진입문과 같은 곳이 네팔이다. 슬프고 비극적인 서사와 치열한 인물들의 행간 속마다 카트만두를 비롯해 네팔의 아름다운 산하들이 펼쳐져 있다. 글감이 비슷하면 작품을 향한 독자들의 접근도 편해진다. 마오이스트 반군과 정부군의 10년에 걸친 내전의 끝자락인 ‘팔파사 카페’는 내전의 비극과 상처를 생생히 담고 있으며, 한국 독자들이 정서적 공감을 넓힐 곳을 품고 있다. 네팔 신문 기자인 나라얀 와글레는 2005년 시대의 핍진함을 담은 첫 작품을 내놓으며 단숨에 네팔 현대문학의 별로 떠올랐다. 신문 기자 특유의, 성실하게 수집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젊은층의 감성에 조응하는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라얀은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에 직접 등장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한 여인을 사랑했던 화가 드리샤를 인터뷰를 통해 빌려왔고, 자신의 반(半)자전적 소설임을 고백한다. 네팔은 2006년 11월 10년의 내전을 끝내고 마오이스트당 주도의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물론 지금도 정치권력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더니, 빼어난 문학 역시 조국의 비극적 상황을 딛고 만들어지는 결실임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다. 나마스테!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작가 이문열…연평도를 바라보며

    [김문이 만난사람] 작가 이문열…연평도를 바라보며

    한해가 저물어간다. 연평도의 영혼을 달래는 갈매기들은 더욱 애잔하게 울어댄다. 잠시 노래말을 생각해본다. ~황천 간 그 얼굴 언제 다시 만나보리/~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그리면/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 때 연평도 어장으로 조기잡이를 나갔던 많은 어부들이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어부들을 그리며 불린 노래, ‘눈물의 연평도’다. 태풍만이 아니다. 서해 최북단의 섬 연평도는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 연평해전을 겪었다. 최근에는 북한의 포격 도발로 새로운 비극의 현장이 됐다. 연평도는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떠안아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작가 이문열씨. 분단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월북했기 때문이다. 이씨의 가족에게 ‘그런 아버지의 존재’는 끊임없는 재난이자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소설 ‘영웅시대’에도 아픔이 잘 담겨져 있다. 이런 그가 연평도 포격 도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979년 문단 데뷔 이후 쓴 책이 무려 3000만권이나 팔린 작가와 마주앉아 ‘문학이 어쩌고저쩌고’ 할 재간도 없고 해서 연평도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즉답으로 “참 고약하다. (북한에게) 멱살을 잡혀도 단단히 잡혔다.”라고 하더니 말을 계속 이었다. “젊은이들이 걱정입니다. 이번 문제로 비관적인 대북 인식 같은 것 말입니다. 무기가 뒤쳐지면 새로 구입하면 되고, 군인 수가 모자라면 더 뽑으면 될 거고, 결국은 정신입니다. 젊은이들은 교육에 의해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반(反)교육을 하는 사람이 많지요.” “젊은이들과 만나보셨는지요.” “이번 사건으로 젊은이들과 얘기를 나눠 봤는데 일부에서는 (천안함 폭침 사건 때와는 달리) 다소 낙관적인 조짐이 있다고 합니다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신뢰가 안 간다는 것이지요. 그 부분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연평도 사격 훈련 재개를 앞두고 야당 쪽에서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비이성적인 집단, 비정상적인 국가(북한)에 합리적인 판단을 요구해선 안 되며 이들을 자극하다가는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 부분을 해석하면 반대로 비이성적인 자가 때리면 그냥 맞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젊은이들 중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친북 중에서 제일 나쁜 투항주의나 다름없습니다.” “투항주의란 어떤 것인가요.” “젊은이들의 친북 사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같은 종족끼리인데 뭐하러 싸우느냐’ 하는 민족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싸움하면 큰일 난다, 돈이나 줘서 달래자’하는 투항주의입니다. 북한이 비이성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나, ‘전쟁을 원하십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반문하면 투항주의인 셈이지요. 이 두 가지가 젊은이들에게 다가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막상 전쟁이 나면 총이나 쏠까요. 투항심리는 노예심리로 갑니다. 굴복해서 노예가 되든 다른 뭐가 되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런 것이지요. 또 있습니다. 지난 6·2 지방선거 때 여당의 패인으로 천안함 폭침 사건을 예로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곧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여론이 돌았지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전쟁을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대의가 있을 뿐입니다. 싸우지도 않을 사람이 전쟁을 말합니다. 모든 전쟁은 싸울 사람이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이상한 논리지요.” “연평도 도발 이후 해병대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이길 바랍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결국 정신적인 무장이 중요합니다. 6.25 전쟁을 볼까요. ‘대한민국은 오로지 내가 지켜야지’ 하는 대의에서, 그런 굳건한 정신 무장에서 전장에 나섰다기보다는 전쟁이 발발하자 준비도 없이 남들을 따라갔다가 옆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총을 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상황은 옛날보다 더 불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쟁터에서도 상대가 비이성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돌아설까 봐 걱정된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 울적하고, 이것은 또 빨리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때문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올바르게 잘 이끌어가야 하며 그런 사람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강조했다. ‘영향력’ 얘기가 나오자 하나의 예를 든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 문단에 영향력이 있는 어떤 쪽(특정 단체를 거명했지만 ‘어떤 쪽’으로 표현해 달라고 했다.)에서 사건과 관련된 두권의 보고서를 냈다. 내용인즉 ‘북한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보고서로 인해 문화 예술계 쪽에서는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북한이 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여론의 추가 7대3, 8대2로 기울었다.”면서 “이런 사람들의 조직성, 이러한 문학 진지가 걱정스러울 뿐이다.”라고 했다. 이런 것을 막아야 할 대항 진지는 아주 약화됐다고도 했다. “대항 진지는 어떤 상태입니까.” “대항 진지가 있기는 한데 작동을 못 하고 있습니다. 보수집단이 데모를 하면 희극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이 많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광화문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보면 처절합니다. 젊은이들은 이들을 보면서 ‘살아봐야 몇 년 산다고’ 하면서 ‘보수 골통’으로 분류하고 희화화해 버립니다. 사실 이런 것이 비극입니다. 1980년대 이후 그렇게 되도록 사회교육이, 그런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대항 진지 구축 방법은요.” “함락당한 진지를 탈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한 산하단체를 봅시다. 새로운 진지 구축을 위해 수장을 바꿨지만 진지 탈환은커녕 기존 조직원들한테 휘둘려 오히려 수장이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수장한테 진지를 탈환하라고 했지만 잘되는 곳이 어디 있나요.” “평소 무협지를 많이 읽으셨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적 관점에서 북한의 다음 도발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이후 글을 통 못 썼습니다. 당장 머리 위로 불덩이가 떨어질 만큼 워낙 호들갑을 떨어가지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북한은 연속성 있게 공격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연평해전이나 금강산 피격 사건 등 성한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런 연속 선상에서 공격은 계속된다고 볼 수 있지요. 다만 언제, 어떤 일로 핑계를 삼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보수와 진보, 좌우의 이념은 어떤 식으로 방향성을 설정해야 합니까.” “우리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어떤 전제 조건도 없어야 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에도 좌우 날개가 있다고 하면서 좌우가 공평하게 잘 나누자는 주장은 모순입니다. 분단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좌우 똑같이 나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외세 개입이든 아니든 우리가 처음 분단될 때 북은 좌, 남은 우로 갈라졌습니다. 50여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북에는 여전히 좌만 있고 남은 좌우로 갈라졌습니다. 반공 시대를 거치면서도 말입니다. 남한에서 좌우로 똑같이 나누자는 것은 남한의 반을 잘라 북한에 떼어주자는 것과 같지요. 또한 분단 고착론자들의 주장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북한에도 좌우가 있어야 된다는 건데, 논리가 맞지 않지요.” “우리 사회에서 소통은 잘되고 있습니까.” “불통하기 때문에 소통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불통하는 사람들이 소통을 내세우고 있지요. 정작 본인은 소통하지 않으면서 너는 내 말을 잘 들어라 하고 다닙니다. 지역 감정을 해소하자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너는 지역 감정을 해소하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동안 팔린 책의 수를 헤아릴 때 국민 5명 중 3명은 이씨의 책을 읽었거나 혹은 가지고 있거나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여 북한에도 이씨의 책을 읽은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조선중앙통신사에서 대표적 남조선 반동 작가로 분류돼 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며 웃었다. 신묘년 새해 계획에 대해서는 “나이 70대에도 창작한다는 것은 힘이 들 것이다. 앞으로 글 쓸 시간은 10년으로 본다.”면서 올해부터 1년에 두권꼴로 20권 정도의 책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이문열은 1948년 5월 18일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월북하자 외가인 경북 영천에 잠시 머물다가 1951년 조상 대대로의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이사했다. 1965년 안동고교를 중퇴하고, 1968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대학 사범대 국어과에 진학한 그는 사대문학회에서 문학 활동을 한다. 1977년 ‘대구매일신문’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되면서 문학적 자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데뷔 원년부터 ‘사람의 아들’(1979), ‘들소’(1979),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1979), ‘어둠의 그늘’(1980), ‘황제를 위하여’(1982)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1987), ‘시인과 도둑’으로 현대문학상(1992),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으로 21세기문학상(1998), ‘변경’으로 호암예술상(1999) 등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품이 있다.
  • “독도문제에 소극적 대응땐 화 치밀어요”

    “독도문제에 소극적 대응땐 화 치밀어요”

    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경희대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주관하는 제4회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500편이 넘게 쏟아진 작품 중 대상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권금성(64)씨의 소설 ‘오이소박이’가 선정됐다. 그런데 시상식 도중 권씨가 ‘해외 독도지킴이’로 유명한 김하나(34)씨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장내가 크게 술렁였다. ●‘해외 독도지킴이’ 김하나씨 어머니 김씨는 캐나다 토론토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도서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독도’ 명칭을 ‘리앙쿠르 바위섬’으로 바꾸려고 하자 이를 저지해내 유명해졌다. 당시 김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매국노와 마찬가지”라는 어머니의 질책과 격려 덕분에 힘겨운 싸움을 펼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수상작 선정에 오해 받을까봐 필명 응모 권씨의 본명은 권천학. 권씨는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통화에서 “혹시 수상작 선정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 봐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응모했다.”면서 “딸(김하나)이 하필 오늘 둘째 아이를 낳아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독도지킴이로 활약한 딸의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더욱 힘이 붙는다.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해) 돈키호테 같다는 손가락질을 받을지라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도 일부 학자들이 곡학아세하는 글을 써대거나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할 때면 화가 치밉니다.” 권씨는 “그러한 맥락에서 늘 딸(의 독도지킴이 활동)을 북돋워주고 격려했다.”고 덧붙였다. 대상 수상작 ‘오이소박이’는 캐나다 한국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한 교포 여인이 한국음식(오이소박이)을 통해 과거의 원망, 한 등의 기억과 화해하고, 현재에 적응하며, 내일을 꿈꾸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권씨는 1986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외국서 모국어로 시·소설 쓰긴 어려워” “솔직히 해외에서 모국어로 시나 소설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아요. 오랜 세월 누적된 가치와 쉼없이 변화하는 역동성을 함께 품고 있는 것이 모국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지인이 될 수도 없고, 한국인으로 남을 수도 없는 경계인이라는 처지도 큰 장벽입니다.” 권씨는 “그래도 이런 상(해외동포문학상)이 있어 민족의 자긍심과 모국어, 문학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할 수 있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최우수상에는 시 ‘그늘’(장종의·미국 캘리포니아), 소설 ‘아버지의 가방’(우수정·미국 캘리포니아), 수필 ‘먹을 가는 시간’(신일강·미국 메릴랜드)이 뽑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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