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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래가 30년 만에 ‘태백산맥’ 정독한 이유

    조정래가 30년 만에 ‘태백산맥’ 정독한 이유

    “30대 때부터 누가 ‘소망이 뭐냐’ 물으면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죽는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를 살다보니까 여든이 다 된 나이가 됐습니다.” ‘황홀한 글감옥’이 시작된 지 꼬박 50년, 1970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조정래(77) 작가는 1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학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회한에 잠겼다. 등단 50주년을 맞아 작가는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 3부작을 퇴고한 첫 개정판을 내놨다. 30년 세월이 흘러서야 3부작을 처음 정독했다는 그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숙명성 때문”이라고 했다. “‘태백산맥’이 ‘아리랑’의 적이며, ‘아리랑’이 ‘한강’의 적이라는 생각으로 잔인무도할 정도로 실감 나는 예술가의 길을 착실히 걷기 위해 옛 작품들을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개정 작업은 전라도 방언과 구어체의 느낌이 더 생생히 읽히도록 문장을 손보았다. 함께 출간한 산문집 ‘홀로 쓰고, 함께 살다’에는 독자들의 질문 100여개에 대한 응답을 정리, ‘인간 조정래′의 인생·문학·사회론을 담았다. 노(老)작가는 한국 문단과 사회에 쓴소리도 내뱉었다. 문단 후배들에게는 “1인칭으로는 대하소설을 쓸 수 없다”며 다그쳤고, ‘아리랑’을 두고 조작이라고 주장했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두고는 “민족 반역자”라며 노기를 숨기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의 한국인 수상을 향한 염원에 대해서는 “초연하게 문학을 해 나가다 보면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할 테니 큰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코로나19 시대를 그는 “인간의 대량 생산과 소비, 대량 폐기를 미덕으로 삼아 왔던 자본주의가 불러온 재앙”이라고 했다. “이 기회가 인간들이 겸손해지고, 조금씩 불편하고 조금씩 가난해도 괜찮다는 ‘자족’을 느낄 수 있는 철학적 존재로 변화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댔다. 여든을 앞둔 나이지만, 작가의 창작열은 현재 진행형으로 끓어오른다. “2년 후 인간의 본질, 존재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 세 권, 3년 후에는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 현실부터 내세까지 아우르는 이야기를 세 권 쓰면서 장편소설 인생을 마감하겠습니다. 이후 단편을 50편쯤, 수필 5~6권을 쓰고 인생을 문 닫을까 합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꾸밈없는 시적 목소리…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승화”

    “꾸밈없는 시적 목소리…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승화”

    헝가리계 유대인… 예일대 영문학 교수1993년 작품 ‘야생 붓꽃’ 퓰리처상 수상美 현대문학서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역대 16번째 여성·美작가로 10번째 영예“질병·이별 등 상실 뒤 치유 논하는 시 써코로나 시대 문학의 원초적 복원력 기대”2020년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7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표현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나타냈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림원은 이어 “그의 시는 명징함으로 특징을 지을 수 있다”며 “어린 시절과 가족의 삶,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밀접한 관계에 시의 초점을 맞추곤 했다”고 평가했다.글릭은 1901년 이후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7명 중 16번째 여성이며, 10번째 미국 출신 작가다. 미국에서는 2016년 밥 딜런 이후 4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는 올해 노벨문학상이 비유럽권, 여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맞은 결과다. 외신들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유럽 작가가 수상한 데다 역대 수상자들 중에 여성 작가들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비판에 직면한 한림원이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글릭은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후보군은 아니었다. 나이서오즈 등 온라인 베팅 사이트에서 글릭의 순위는 19위를 기록했다.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글릭은 1943년 뉴욕의 헝가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식증을 앓기 시작했으며 세라 로런스 칼리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1968년 ‘퍼스트본’(Firstborn)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글릭은 1993년 시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볼링겐상, 2001년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됐다. 이후 2003~2004년 전미도서상, 2016년 미국 인문 훈장인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았다. 글릭의 수상을 두고 학계에서는 한림원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높게 봤다고 평가한다. 글릭은 거식증 병력으로 고등학교 중퇴 이후부터 7년여에 걸친 상담 치료를 받으며 트라우마와 고통 등에 골몰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그는 질병과 상실, 이별 등 인간 삶의 보편적 문제들을 자연물과 결부시켜 상실 뒤의 치유와 재생을 논하는 시들을 많이 써 왔다”며 “(한림원이) 코로나 시대에 문학이 줄 수 있는 인간성에 대한 원초적인 복원력을 기대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글릭이 2004년에 출간한 책 ‘10월’(October)은 9·11 테러로 미국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고통, 치유의 문제를 그리스 신화에 빗댄 시집이다. 또한 글릭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지적 탐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시를 쓸 때 정신분석을 차용, 이미지들에 자아를 투사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글릭이 쓴 ‘야생 붓꽃’ 등은 짧고 쉬운 단어로 쓴 서정시이지만 치고 들어오는 힘이 있는 시”라며 “주체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의 어려움을 탐구하며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공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담았다”고 평했다. 현재 글릭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거주 중이며, 예일대 영문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는 총상금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 9910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코로나 시대 위로하는 詩의 힘… 노벨문학상에 루이즈 글릭

    코로나 시대 위로하는 詩의 힘… 노벨문학상에 루이즈 글릭

    2020년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7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현지시간)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표현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나타냈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림원은 이어 “그의 시는 명징함으로 특징을 지을 수 있다”며 “어린 시절과 가족의 삶,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밀접한 관계에 시의 초점을 맞추곤 했다”고 평가했다. 글릭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7명 중 16번째 여성이며, 10번째 미국 출신 작가다. 미국에서는 2016년 밥 딜런 이후 4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는 올해 노벨문학상이 비유럽권, 여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맞은 결과다. 외신들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유럽 작가가 수상한 데다 역대 수상자들 중에 여성 작가들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비판에 직면한 한림원이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글릭은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후보군은 아니었다. 나이서오즈 등 온라인 베팅 사이트에서 글릭의 순위는 19위를 기록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글릭은 1943년 뉴욕의 헝가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식증을 앓기 시작했으며 세라 로런스 칼리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1968년 ‘퍼스트 본’(Firstborn)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글릭은 1993년 시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볼링겐상, 2001년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됐다. 이후 2003~2004년 전미도서상, 2016년 미국 인문 훈장인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았다. 글릭의 수상을 두고 학계에서는 한림원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높게 봤다고 평가한다. 글릭은 거식증 병력으로 고등학교 중퇴 이후부터 7년여에 걸친 상담 치료를 받으며 트라우마와 고통 등에 골몰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그는 질병과 상실, 이별 등 인간 삶의 보편적 문제들을 자연물과 결부시켜 상실 뒤의 치유와 재생을 논하는 시들을 많이 써 왔다”며 “(한림원이) 코로나 시대에 문학이 줄 수 있는 인간성에 대한 원초적인 복원력을 기대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글릭이 2004년에 출간한 책 ‘10월’(October)은 9·11 테러로 미국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고통, 치유의 문제를 그리스 신화에 빗댄 시집이다. 또한 글릭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지적 탐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시를 쓸 때 정신분석을 차용, 이미지들에 자아를 투사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글릭이 쓴 ‘야생 붓꽃’ 등은 짧고 쉬운 단어로 쓴 서정시이지만 치고 들어오는 힘이 있는 시”라며 “주체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의 어려움을 탐구하며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공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담았다”고 평했다. 현재 글릭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거주 중이며, 예일대 영문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는 총상금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 9910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의욕 없는 당신께 드리는 ‘책 처방전’

    의욕 없는 당신께 드리는 ‘책 처방전’

    우울하고 의욕도 나지 않을 때, 꿈을 찾지 못해 고민일 때, 책은 답을 찾기 좋은 도구다. 그런데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부터 들춰보는 게 좋겠다. 전국 40개 중형 서점 모임인 한국서점인협의회(한서협)는 전문가들이 권하는 책을 모은 ‘종이약국’과 ‘시작책’(북바이북)2종을 발간했다. 한서협은 서점마다 우체통을 설치해 주민들의 고민을 받았다. 미래, 자존감, 가족관계, 사회관계, 이별 등에 관한 고민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20가지를 추리고, 다독가로 유명한 작가, 기자, 출판평론가 등 17명에게서 모두 311권을 추천받아 ‘종이약국’으로 엮었다.예컨대 꿈을 찾지 못한다는 이에게는 스터즈 터클의 ‘일’(이매진)을 내민다. 책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미국인 133명이 온종일 무슨 일을 하는지, 자기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취재했다. 임윤희 나무연필 출판사 대표는 “오래전 이 책을 읽고서 내가 생각하는 일이란 얼마나 좁은 범주의 것이었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면서 “다시금 나의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책으로 힐링하고 싶다는 이들에겐 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문학동네), 정여울의 ´내성적인 여행자´(해냄), 승효상의 ‘묵상’(돌베개) 등을 소개한다. ‘시작책’은 책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독자가 우선 읽을 만한 서적을 엮었다. 베스트셀러나 고전 위주의 추천 도서 목록을 탈피하고, 독서 초보자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구성했다. 전문가 12명이 시, 소설, 에세이, 인문교양, 과학, 자기경영, 예술, 그림책 등 분야별로 모두 540권을 뽑고 책의 의미와 추천 이유를 짧게 서평으로 붙였다. 소설 분야에서는 김서령 소설가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사계절), ‘옥상에서 만나요’(창비),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문학동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현대문학) 등을 권한다. 한서협은 “책과 친해지고 싶은데, 첫 장도 넘기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독서의 시작을 돕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박기동 前서울예대 교수 별세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박기동 前서울예대 교수 별세

    원로 소설가 박기동 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76세.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와 국민대 대학원 현대문학과를 졸업하고 성남고와 이대부고 교사를 거쳐 월간문학 편집부장을 지냈다.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고인은 서울예대 조교수와 부교수로 강단에 섰고,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같은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내며 많은 후배 문인을 양성했다. ‘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 떼’, ‘달과 까마귀’, ‘모닥불에 바친다’, ‘쓸쓸한 외계인’ 등 소설집과 ‘내 몸이 동굴이다’, ‘어머니와 콩나물’ 등 시집을 남겼다. 유족으로 부인 문영순씨와 자녀 세기·수연씨가 있다. 빈소는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2일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오영수문학관, 소설가 전상국 초청 특강

    울산 오영수문학관은 오는 10일 오후 2시 소설가 전상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를 초청해 글쓰기 특강을 듣는다고 5일 밝혔다. 이번 특강은 대한민국예술원이 지역 주민의 예술에 대한 관심 제고와 지역 예술 발전을 위해 매년 주최하고 있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예술 특별강연회’로 울산에서는 오영수문학관이 처음 주관한다. 전 교수는 ‘왜 쓰는가-글쓰기의 즐거움, 그 정체’를 주제로 왜 쓰고 상상하는 즐거움은 무엇이며,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들려줄 예정이다. 또 ‘내 소설의 뿌리, 전쟁의 악령’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전 교수는 1963년 등단해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우상의 눈물’, ‘아베의 가족’, ‘우리들의 날개’, ‘온 생애의 한순간’ 등의 작품집과 장편 ‘늪에서는 바람이’, ‘불타는 산’, ‘유정의 사랑’ 등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동인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한국문학상, 이상문학상특별상, 이병주국제문학상 등을 받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과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김유정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생활 속 거리 두기’ 수칙에 따라 수강 인원을 선착순 50명으로 제한한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원로 비평가인 임헌영(79) 선생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인한 투옥과 시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운동에의 투신이 한 축의 면모라면, 다른 한 축은 치밀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국 근현대문학의 실증적·사상적 연구를 축적해 온 면모로 귀납된다. 그 가운데 연구소에서 오랜 열정과 공력을 다해 펴낸 ‘친일인명사전’(2009)의 성과는 우리 근대사의 어둑한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권 분량에 4300여명을 수록한 이 책의 성과는 두고두고 임헌영 선생의 생애를 집약하는 표지가 돼 줄 것이다.●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 친일 행적을 밝히는 게 쉬울 리 없다. 당시 작업에 대한 폄하와 공격도 상당했다. 선생이 연구자들에게 강조한 점은 이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조상 다루듯 하라.’ “많이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뺄 수 없을 경우에만 넣도록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교육관이 아니라 단순히 수동적 집행에 머물렀던 교육자 같은 이들은 모두 빠졌죠.” 민족사적 관점에서 반성적 자료가 되기에 족한 이들, 제국주의 협력의 자의식을 가진 이들만 추린 모종의 정예화 결과인 셈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한쪽에서는 당사자인데도 이러한 과정을 흔연하게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이 준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파인 김동환의 자제 김영식 선생은 전집에 아버지가 쓴 친일 문건을 다 실었어요. 아버지가 사죄할 기회가 없었는데 자신이 대신 사죄한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큰 힘을 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어쨌든 인명사전 출간 후 친일 청산에 대한 긍정적 지지자는 많이 늘어났고, 다수 여론조사에서 친일 청산 여론이 70%가 넘는다고 했다. “우리 연구소는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의식이 투철한 구성원들로 이뤄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과제는 오늘도 여전히 일본이 옳았다고 하면서 학문이나 예술이나 경제 논리로 포장하는 이들과의 싸움에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일본의 새로운 파시스트들과의 싸움이 중요하지요.” 최근 연구소는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 청파동에 새 건물을 마련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튜디오를 만들어 팟캐스트를 찍고 그걸 유튜브에 공개해 일반 시민들과 연구소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 파시즘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 주는 정치적 화음에 주목할 때 아직도 연구소가 알리고 밝히고 세워 가야 할 역사의 흐름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물론 일본에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쪽에도 민족 경험을 훼손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현재형을 돌파해 제대로 된 민족사를 쓰기 위해 선생의 헌신과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된 연구소가 펼치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과거사 청산 작업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국내외를 망라한 작가들의 정치의식 탐색 사실 인터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선생이 오랜만에 두 권의 역저를 잇달아 낸 데 있었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역사비평사, 2019),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 2020)가 그것이다. 두 책은 대조적 속성을 띠고 있다. 앞의 것이 광폭의 발품과 해박한 독서력을 기반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다면, 뒤의 것은 한국소설의 맹장들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서의 독법이 담겼다. 먼저 유럽문학 기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감옥에서 나와 여행을 못 다닌 게 원통했어요. 문화센터 같은 데서 강의하다가 외국 문인들의 박물관 방문 프로그램을 계획했는데 모집이 잘돼 제 뜻대로 계획도 짜고 진행도 했어요. 성공적이었지요. 이 책에서 다룬 분들은 모두 평화, 반전, 반제국주의의 작가들이에요. 민중적 정치의식을 가진 분들의 문학을 테마로 한 결과이지요.” 책은 영독불러의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스탕달, 위고, 괴테, 횔덜린, 헤세, 바이런, 로런스 등이 선생의 열정적인 답파(踏破)와 재구성에 의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에세이풍으로 써 가는 선생의 친절하고도 에두름 없는 문장들이 책의 가독성을 한결 높여 준다. 위대한 작가들의 사생활, 특별히 외도 경험 같은 어둑 한 측면까지 훤칠하게 재현했다.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는 어떠할까? “우리가 위대한 시민혁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발전된 정치의식이 빈곤하다는 것을 최근 절감했어요. 늘 흔들리고 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소설가들을 통해 역사를 올바로 보는 눈, 정치를 제대로 하는 힘을 빌리자고 생각했지요. 이왕이면 독자가 많은 작가들을 골랐어요. 되도록 각주를 빼고 연애소설 읽듯이 쉽게 풀어 갔습니다.” 책에는 장용학,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 등이 담겼는데, 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병주가 다가올 것 같고, 문학의 자의식이 큰 분들에게는 최인훈과 남정현이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정치사 비판의 현장 중계는 이병주 선생이 최고봉이에요. 어떤 정치평론가도 못 따라가요. 최인훈 선생은 우리 문단의 고질병인 파벌을 넘어선 범례로 다루면 좋겠고요. 그 지성의 날카로움과 처연함이 단연 빛나지요.”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말을 향한 기대와 혐오의 엇갈림이 있다. 그러나 정치야말로 가장 첨예한 예술이 아니던가. 책 서문에 인용된 나폴레옹의 말처럼 모든 공동체에서는 “정치가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선생의 사회적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비평가 임헌영’의 두께를 한 뼘 늘려 줄 것이다.●고단하고도 외로운 길 선생은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그 후 카프(KAPF)나 해방기에 대한 자료를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모았고 자료집을 냈으며 그 논리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진력했다. 선생은 1980년대 이후 우리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서도 단골 필자였다. 이쪽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등단하기 전부터 카프에 대한 애정을 가졌어요. 해금 전부터 납월북 작가에게 관심이 많았고요. 그때는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카메라로 직접 찍었어요. 해독이 잘 안 되면 살아 계신 분들께 전화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걸었지요.” 임헌영 비평은 참여문학, 민족문학, 리얼리즘, 민중문학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모두 품고 있다. 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 4·19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과 관련한 문학에 대해 꾸준한 비평을 해 왔고, 밖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탐구도 줄기차게 수행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혀 갔다. 이처럼 선생은 근현대 민족 수난사와 함께하면서 디아스포라 문제에도 눈을 떴다. 물론 선생은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언어도 세상에 많이 내놓았다. 이 점, 선생을 설명하는 데 퍽 중요한 균형추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연구소 곁 숙명여대에서 재직하는 권성우 교수가 동석을 해 줬는데, 권 교수가 선생께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북한문학 한번 정리해야 하고요. 해외동포문학도 중요합니다. 해외동포 쪽은 제가 제일 먼저 손대지 않았나 싶어요. 문학사회사, 특별히 필화사에 애정이 가요. 아마도 필화사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후로 두 분의 치열한 대화가 오갔다. 재일조선인문학, 특히 김석범과 김시종과 서경식에 대한 경험적 대화는, 비록 즉각적이었지만 임헌영 선생의 경험과 사유가 어디까지 뻗어 나가 있는지를 실물적으로 알려 줬다. “젊은 작가들의 세계를 평하기에는 이제 제 비평의 틀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변해도 문학의 원칙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그걸 훼손하면 안 됩니다. 원래 문학은 문학 하는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교양의 정점에서 문사철을 모두 이끌어 갔습니다. 손끝으로 하는 문학 말고 가슴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학을 지금도 옹호하고 또 대망하고자 합니다.” 굵직한 의제들을 버리고 쇄말주의에 빠진 우리 문학에 대한 원로다운 문제 제기인 셈이다. 선생의 말씀처럼 근본적 문학의 위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되 변하지 않을 문학을 위해, 여전히 현재형 의제인 민족사 복원을 위해, 선생이 걷는 고단하고도 외로운 길은 아직도 가파르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길은 누군가는 걸어 우리에게 비춰야 했던 오랜 지남(指南)으로 남을 것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자전하는 방

    자전하는 방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며 공원을 빙빙 돌고 달고나 커피를 만들며지구가 도는 것을 느껴본다 패션 프루트 같은 바이러스 자신의 사라진 얼굴을 찾는데이름 없는 생물과 호흡이 섞여기침이 나오는데 나는 방금 당신을 지나친 것일까 찻잔이 떨어져도깨지지 않는다 챌린지라는 평화롭고안전한 세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중력 청을 담그고치즈 케이크를 만들고 어느 날 나는 당신이 좋아지고사랑에 갇힌 내가 괴롭고 낮달처럼빈 눈동자만 남은 우리 아이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길고양이에게 내민다 고양이는 동네 골목을 돌고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웃어본다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전집』, 민음사, 2018.■정우신 시인은 1984년 인천 출생. 2016 ‘현대문학’으로 등단. 2018년 시집 ‘비금속 소년’ 출간.
  • [이경우의 언파만파] 성인지감수성 부족의 ‘그녀’

    [이경우의 언파만파] 성인지감수성 부족의 ‘그녀’

    다른 나라 얘기 하나. 프랑스 사람들의 프랑스어 보호는 별난 데가 있다. 1994년에는 ‘투봉법’까지 만들어 광고와 상표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했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문다.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 또한 넘쳐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데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공이 크다. 1635년 설립된 이 국가기관은 오랜 전통만큼이나 권위를 자랑한다. 프랑스어를 빛냈다고 인정받은 회원 40명으로 구성돼 있다. 남성 중심이고 모두 종신이다. 이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최근 코로나19를 가리키는 ‘코비드19’(covid19)를 여성명사로 규정했다. 프랑스어로 ‘질병’을 뜻하는 ‘말라디’(maladie)가 여성명사라는 게 근거였다. 그러나 언론 등 프랑스 사회에서는 ‘코비드19’를 이미 남성명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프랑스어 ‘비루스’(virus)가 남성명사였기 때문이었다.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리말에서 ‘그녀’는 애초 성차별적 논란의 대상은 아니었다. 삼인칭대명사로 적절하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1965년 ‘현대문학’ 3월 호에서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어학자와 문인들의 의견을 듣고 설문조사를 했다. ‘그녀’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거부감도 꽤 있던 시절이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그녀’가 일본말 ‘가노조’(皮女)를 흉내 냈다고 밝혔다. ‘그녀는’을 말로 할 때는 ‘그년은’과 발음이 같아 욕설이 된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녀’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됐다고 했다. 작가들은 작품에서 ‘그녀’를 가장 많이 쓴다고 답했다. ‘그’와 ‘그여’ ‘그 여자’ ‘그미’ ‘그네’ ‘그니’ 같은 표현을 쓴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후에도 ‘그녀’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우리 국어사전에 당당히 올라 있다. 언론과 출판의 지원을 받으면서 더욱 넓게 쓰인다. 하지만 우리말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아예 쓰이지 않는다. 말할 때는 ‘그녀’ 대신 ‘그 여자’ 또는 기타 다른 표현이 사용된다. 글에서만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묻어 들어갔을 뿐이다. 글에서라고 모든 여성을 가리키지는 못한다. 어린이, 어머니, 할머니를 가리켜 ‘그녀’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그녀’가 여성에게만 붙이는 표현이어서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미망인’이 높이는 표현 같지만, 어원이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고, 여성에게 사용되는 차별적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듯이.
  • 폐허가 된 세상, 마지막 남은 인류… 희망은 있을까

    폐허가 된 세상, 마지막 남은 인류… 희망은 있을까

    시하와 칸타의 장/이영도 지음/현대문학/240쪽/1만 3000원한국 판타지 문학에서 이영도는 그 자체로 브랜드다. PC통신에 연재한 첫 작품인 ‘드래곤 라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래 순문학, 문예지 중심의 문학장에서 장르소설의 문을 열고 중흥을 꾀했다. 경장편 소설을 다뤄 온 출판사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에서 장르소설 출간의 문을 여는 이가 이영도인 것은, 어느 정도 ‘다 계획이 있는’ 일로 보인다. 그가 2년 만에 들고 온 신작 소설 ‘시하와 칸타의 장’은 폐허가 된 세상, 마지막 남은 인류의 이야기다. 덫에 걸린 요정에게 “너 식용이야, 아니야?”(10쪽)부터 묻는 본새가 이들의 각박한 삶을 말해 준다. 살아남은 열아홉 살 소년 소녀, 시하와 칸타는 부모를 잃고 헨리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헨리는 드래건의 이름으로, 선조가 후대에게 전달해야 할 것들을 담은 노래와 시를 완벽하게 외우는 이에게만 거래를 허락하는 팍팍한 인물이다. 제대로 암송하는 건 시하가 유일하다. 즉 시하가 인류의 희망봉이다. 그러나 시하는 자신이 처한 고통을 되새기며 사랑과 번식에 모두 회의적인 인간이다. 보통의 인간들이 관심을 갖는 요소인 건강과 장수, 매력 등에 대해 “전부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일갈할 만치. “매력으로 좋은 짝을 찾고 건강으로 안전하게 자식을 낳고 장수로 오랫동안 양육한다”(14~15쪽)는 건, 썩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시하 앞에 나타난 요정 데르긴은 ‘사랑의 묘약’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을 받게 되는 약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약. 멸종 위기의 인류 앞에서 마지막 희망인 시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판타지 소설은 괴팍하리라는 일련의 편견과 달리 소설은 굉장히 정의롭고 바른 방향으로 간다. 해제를 쓴 이융희 작가는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의 말을 전하며 이영도가 여태껏 구축해 온 판타지 세계를 상찬한다. “좋은 판타지 소설이란 현실 세계의 질서와는 유리된 2차 세계를 창작한 뒤 독자에게 진짜로 있는 세계처럼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문학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가진 이영도를 지탱해 온 비기일 것이다. 비교적 짧은 ‘시하와 칸타의 장’은 방대한 이영도 문학의 입문서로 좋을 듯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인숙 작가, 오영수문학상 수상

    김인숙 작가, 오영수문학상 수상

    제28회 오영수문학상에 김인숙(57) 작가가 선정됐다. 오영수문학상운영위원회는 지난 25일 열린 최종심에서 김 작가의 단편소설 ‘그해 여름의 수기’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지난해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발표된 ‘그해 여름의 수기’는 수해로 집이 물에 잠긴 10대 주인공이 아픈 기억을 극복하며 장년으로 자라난 이야기다. 심사위원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거대한 자연의 힘에 복종하면서도 저항하는 인간의 문제를 알레고리 형식으로 탁월하게 그려 냈다”고 평가했다. 1963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 작가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먼길’ 등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오영수문학상은 울산 출신 소설가 난계 오영수(1909~1979) 선생의 혼을 기리고 문인들의 창작열을 북돋우기 위해 1993년 제정됐다. 울산매일신문사와 에쓰오일(S-OIL)이 공동 주최하고 울산시가 후원하며 상금은 3000만원이다. 애초 4월로 예정됐던 시상식은 코로나19 여파로 올가을로 미뤄졌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나 건드리지 마, 또 시(詩) 나온다!’ 친구들을 만날 때 인사말 대신 건넨 농담이 제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이제 시를 그만 써야 할 때도 됐는데. 허허허.” 문학을 천명으로 알고 50여년 외길을 걸어온 한국문인협회 원로시인 이운룡(83·전 중부대 국문과 교수·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박사. 그는 팔십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도 시를 써야 삶의 의미를 느끼고 행복한 현재 진행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마음은 문학청년이다. 솟구쳐 오르는 시상을 억누르지 못해 매일 시를 쓴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통 좁은 청바지와 스니커즈 스타일을 좋아하는 ‘멋쟁이 시인’이다. 깨끗한 피부와 살아 있는 눈빛, 힘이 있는 목소리, 밝은 표정에서 건강미가 넘친다. 항상 깔끔한 차림에 활기가 느껴진다. 젊은이도 따라가기 힘든 총기와 지성미가 풍기는 화법은 올곧게 살아온 문인의 향기를 내뿜는다. 이 박사는 ‘삶의 방정식’을 ‘근면’, ‘성실’, ‘정도’, ‘직진’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시인의 길을 한평생 쉼 없이 달려왔다. 집념과 의지로 밤낮없이 시에 매달려 살았다. 두 번의 암 수술도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문학은 나의 인생이고, 나의 인생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농촌의 자연은 꿈을 키웠고, 꿈은 문학을 키웠으며, 문학은 나를 키웠다”면서 “나와 시, 시와 나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한다.그는 1969년 등단한 이후 1355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70~80대에 쓴 것이다. 시인으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많은 시를 쉬지 않고 쓸 수 있는 비법은 시상과 영감, 제재가 떠오를 때마다 잊기 전에 메모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주제의식에 따라 언어를 구조화하면서 첨삭을 거듭한다. 시상을 더 정확하고 표상하기 위해서다. 전심전력 언어의 형상화에 투신하면 무르익은 시를 쓰고 후회하는 일을 덜 수 있다.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에는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했지만 인생을 숙고하고 성찰하면서 우주의 충만한 존재 문제에 천착하려는 시 정신과 시작 태도가 나이 든 시인의 소명임을 늦게 깨달았지요. 이제야 시가 쉽게 나옵니다.” 이 박사는 2018~2019년 2년 동안 무려 555편의 시를 발표했다. 하루에 0.76편, 나흘에 세 편꼴로 시를 쓴 셈이다. 어떤 날은 하룻밤에 80개의 제재가 떠올랐고 사흘 밤낮 16편의 시를 내리 쓰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집 2권을 한꺼번에 펴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시가 터졌다”고 표현한다. 그는 긍정적 사고와 규칙적인 운동, 문인들과 진솔한 교류, 어릴 적부터 계속해 온 문학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목욕과 편식 없는 식사는 건강을 유지하고 일상을 즐기는 그만의 방법이다. 치아 관리도 철저해 아직도 상한 이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시를 쓰는 작업이 마음을 늙지 않게 하는 비결이다. 문학계 후배와 자녀들에게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 정신을 주문한다. 평생 교육자이자 시인으로 살아온 이 박사는 얼핏 ‘금수저’ 같아 보이지만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전북 진안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구름 위로 솟아오른 용이 되라는 뜻으로 운룡(雲龍)이라고 이름을 지어 줬다. 그러나 광복 이후 1946년 진안초등학교에 재입학한 아홉살 소년은 평범한 시골뜨기였다. 그에게 인생의 길라잡이가 돼준 책은 한국전쟁 당시 전주에서 시골로 피란 온 친구의 초등학교 교지였다. 동시 “하늬바람 불어오면/ 전깃줄은 쓰르릉 피리 불고요”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무작정 시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쓴 최초의 동시 ‘달밤’이 학급 문집 ‘글벗’에 수록됐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59년 전북대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이 박사는 시인이 되기 위한 본격적인 담금질을 시작했다. 대학 2학년이던 1962년 10월 경북대 주최 제5회 전국대학생문예작품 현상공모에 ‘기도’가 당선됐다. 이어 1964·1965·1969년 ‘현대문학’에 연 3회 추천되면서 등단에 성공했다. “앞만 보고 뛰어가는 외곬으로 뚫린 성격, 철저한 준비성과 꼼꼼한 정리벽,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긍정적 사고,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근성이 저의 유일한 자산이지요.” 그가 시인으로서 문학의 앞길을 열기까지 과정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시대적 상황에 휩쓸리고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오직 정신력 하나로 이겨냈다. 중학생 때부터 학비 마련을 위해 장작 장사를 했고 공사판에서 등짐을 졌다. 대학 시절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바람에 영양실조에 시달렸지만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다. 가난은 시련과 고통이었으나 성취욕 강한 그는 오히려 성장의 자양분으로 치환했다.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주제넘게 시인이 되기를 꿈꾼 비현실주의자입니다. 시와 함께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었지요.” 이 박사는 오로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을 뿐 경제적으로는 빵점짜리 가장이었다. 부인이 생활고를 탓하며 바가지를 긁으면 “선비가 돈 버는 것 봤느냐”며 되레 큰소리치고 헛기침을 했다. 이 박사는 전북문인협회장, 초대·2대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하며 향토문학계에 족적을 남겼다. 그가 22년 동안 이끈 ‘열린시문학회’와 ‘시창작교실’은 전북 지역 문인 배출의 산실 역할을 했다. 그가 닦아 놓은 문학 기반은 전북도 문화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서울신문 향토문화대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이 증명해 준다. “나는 어린 시절 희망대로 여전히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생활력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요. 저승의 부모님에게는 불효막심이고 형제에겐 자기 이상만 고집해 온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졸장부지요. 어찌 보면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돈도 백(배경)도 없는 촌놈이 문학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불꽃은 가난 속에서 팔순까지 지칠 줄 모르고 문학인으로 담금질하는 에너지원이었다. 또 세 자녀를 낳은 아내가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나, 10년 전 전립선암과 위암 수술로 사경을 헤맬 때도 그를 지탱해 주고 일으켜 준 힘이 됐다. “그동안 옆걸음 치면서 타인의 어깨 너머를 넘보지 못했고 유유자적 느림의 미학도 탐할 수 없었지요. 자녀들도 모두 자리잡아 걱정이 없다 보니 이제야 숨 돌리고 인생과 문학을 정리할 때가 왔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불청객 세월이 가르쳐 준 결과지요.” 이 박사는 한때 이 세상 사람으로 살았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시집 20권, 문학이론서 및 시론서 등 13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제 소망이 있다면 작은 개인 문학관을 건립하고 자신이 제정한 ‘중산문학상’이 계속 후배 문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함을 즐기지 못하는 그의 문학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언제까지 문학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이제 그만 써야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2022년에 단행본 시집 7권을 합본한 3번째 ‘이운룡 시 전집’과 시론집 ‘시와 비평의 등가성’을 발간할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글 사진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집에서 무슨 책 읽지? ‘집콕족’ 위한 추천서 9권

    집에서 무슨 책 읽지? ‘집콕족’ 위한 추천서 9권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콕 박혀 지내는 ‘집콕족’이 늘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책을 찾는 독자도 많아졌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분야별로 9권의 신간을 추천했다. ●인간의 몸, 나무의 의사소통 궁금해? “우리 몸은 거의 줄곧 다소 완벽하게 조화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37.2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주이다. 두통, 배앓이, 별난 멍이나 뾰루지는 모두 우리가 불완전함을 선언하는 정상적인 과정들이다.” 빌 브라이슨의 ‘바디’(까치글방)는 뇌, 심장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몸을 안내한다. 인간이 각종 질병과 싸운 역사도 함께 실었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다양한 사진 자료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책으로 내 몸에 관해 제대로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페터 볼레벤의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더숲)은 ‘나무의 언어로 자연을 이해하는 법’이라는 부제에 맞게 나무의 의사소통을 다룬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나무는 위험 상황에서 서로 소통하는 체계를 갖췄다. 저자는 나무의 변화를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나무의 탄생, 성장, 죽음을 둘러싼 신비로운 숲 생태계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나무 표면의 상처와 틈, 힘없는 나뭇가지에도 나무의 세월이 녹아 있다. 우리와 숲의 상생을 위해 나무가 어떤 얘기를 해주는지를 담았다.●요리하는 인간 살피고, 주류경제학 비판하고 요리는 인간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인류를 가리켜 ‘요리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코쿠엔스’로 부르기도 한다. ‘호모 코쿠엔스의 음식이야기’(파라북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돼지고기, 꿀, 소금, 칠리, 쌀, 카카오, 토마토의 7가지 재료로 만든 전통 음식과 그 재료가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을 역사·문화·사회적 의미로 풀어낸다. 저자 제니 린포드는 “식재료는 음식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서로 다른 문화의 음식을 공유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생활과 생각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기획한 ‘르몽드 비판경제학’(마인드큐브)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은 현 세대의 경제 통념을 하나씩 들춰 그 이면을 살펴본다. 예컨대 ‘수치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는 명제는 계량 경제의 근간이 되지만, 실상 그 숫자를 둘러싼 상황과 조건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현상의 단편밖에 파악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 경제의 99%를 이루는 우리’가 아닌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1%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비판적 의식 없이 성장과 번영을 동일시하거나, 세계화와 경제 개방을 맹종하는 것을 경계한다.●당신은 아픈 거예요, 성공한 음악은 어때요? 권순재 정신의학 전문의의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생각의 길)는 다양한 영화 주인공들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고 이를 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자연스레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당신의 아픔은 틀린 것이 아니며 그 감정들을 표현하여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그것이 세상의 한 부분이 되는 순간,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메이븐), ‘당신이 옳다’(해냄출판사) 등과 함께 읽어도 좋을듯하다. 인류가 존재한 이후부터 음악은 발전해왔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중에서도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성공한 음악은 분명히 존재한다. ‘성공의 음악들’(스코어)은 성공한 음악의 이면에 있는 수많은 기획자와 뮤지션, 그들의 부모,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난관을 극복하며 정상에 다다른 노하우와 패턴을 분석하여 알려 준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클래식, 팝, 재즈 등의 다양한 음악적 지식을 읽기 편하게 전달한다.●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고, 죽음도 돌아보다 앤 타일러의 ‘클락댄스’(미래지향)는 서로를 가족처럼 대하는 괴짜 이웃과 그 속에서 성장해가는 윌라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던 1967년, 청혼을 받고 학업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던 1977년, 갑작스레 남편이 세상을 떠났던 1997년. 그때마다 윌라는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타인에 의해 수동적인 선택을 한다. 그러던 2017년 어느 날, 윌라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아들의 전 여자친구인 드니즈와 그녀의 아홉 살 난 딸 셰릴, 그리고 강아지 에어플레인을 돌보기 위해 볼티모어로 떠난다. ‘물이 깊은 바다’(현대문학)는 작가 파비오 제노베시의 경험이 투영된 자전적 소설이다. 여섯 살 파비오에게는 여자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노총각 할아버지가 열 명이나 있다. 학교에 입학한 첫날, 마흔 살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못하면 할아버지들처럼 이상한 사람들로 변해버린다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에 대해 알게 된다. 주인공이 사춘기 소년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2018년 이탈리아 문학상인 비아레조상을 받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 엄마를 떠나보내는 일은 그야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숨 가쁘게 달려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삶의 마지막 순간조차 가족의 온전한 보살핌과 애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가 쉽지 않다. 권혁란 작가의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한겨레출판)는 오랜 시간 고통과 무기력한 삶의 마지막을 보낸 엄마를 지켜봐야 하는 심경과 고령의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초로의 자식이 갖는 어려움을 그린 소설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 치러진 수목장과 직계가족만으로 치러진 시어머니의 가족장 경험은 지금의 장례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제주 4·3사건 상처 재규명한 ‘원로 소설가’ 현길언 별세

    제주 4·3사건 상처 재규명한 ‘원로 소설가’ 현길언 별세

    “반란군·국군 모두 제주민에 희생 강요” 4·3사건 직접 조사·연구 저서에서 지적제주도 역사와 주민의 삶을 작품세계의 바탕으로 삼고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문학으로 재규명한 원로 소설가 현길언씨가 별세했다. 80세. 1980년 ‘현대문학’에 소설 ‘성 무너지는 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한 고인은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79) 작가와 함께 제주도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활동해왔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와 한양대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제주대 국문과 교수와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울란바토르 대학 석좌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 지내며, 학술계간지 ‘본질과 현상’을 기획해 펴내기도 했다. 고인은 제주의 지역적 특성에 기반한 비극적 삶, 이념적 싸움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들을 소설에 담았다. 4·3사건을 꾸준히 조명하고, 이를 둘러싼 진영 논리를 비판하는 데도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귀향’, ‘우리들의 조부님’, ‘먼훗날’ 등으로 4·3사건 소설화했고, 2014년엔 4·3사건을 직접 조사·연구한 저작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을 출간했다. 이 책을 통해 사건의 본질은 반란군과 국군 양쪽에서 제주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 때 채택된 진상 보고서에 대해서는 “4·3 당시 정부의 잘못을 찾아내 양민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만 목적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성경과 제주 설화의 토양 위에서 신앙·문학·생활이 만나는 자리를 추구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그렇게 ‘용마의 꿈’, ‘벌거벗은 순례자’, ‘나의 집을 떠나며’ 등 소설집과 ‘회색도시’, ‘한라산’(전 3권) 등 장편소설을 냈다. ‘전쟁놀이’, ‘그때는 한 살이었다’ 등의 어린이소설도 그의 작품이다. 후학들을 가르치면서는 소설 연구서로 ‘소설쓰기의 이론과 실제’, ‘한국 현대소설론’ 등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소설집 ‘언어 왜곡설’은 인간의 사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소통 문제에 천착한 작품으로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고인은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기독교문학상, 백남학술상, 김준성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문학부문) 등을 수상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한국기독교문인협회장도 지냈다. 고인은 수개월 전부터 암 투병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13일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제주 4·3사건 재조명했던 원로 소설가 현길언 별세

    제주 4·3사건 재조명했던 원로 소설가 현길언 별세

    제주도 역사와 주민의 삶을 작품세계의 바탕으로 삼고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문학으로 재규명한 원로 소설가 현길언씨가 별세했다. 80세. 1940년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와 한양대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제주대 국문과 교수와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울란바토르 대학 석좌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 지내며, 학술계간지 ‘본질과 현상’을 기획해 펴내기도 했다. 1980년 ‘현대문학’에 소설 ‘성 무너지는 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한 고인은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79) 작가와 함께 제주도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활동해왔다. 고인은 제주의 지역적 특성에 기반한 비극적 삶, 이념적 싸움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들을 소설에 담았다. ‘귀향’, ‘우리들의 조부님’, ‘먼훗날’ 등은 4·3사건의 상처를 소설화하고 해당 사건의 역사적 재규명을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성경과 제주 설화의 토양 위에서 끊임없이 신앙·문학·생활이 만나는 자리를 추구해왔다. ‘용마의 꿈’, ‘벌거벗은 순례자’, ‘나의 집을 떠나며’ 등 소설집과 ‘회색도시’, ‘한라산’(전 3권) 등 장편소설을 냈다. ‘전쟁놀이’, ‘그때는 한 살이었다’ 등 어린이소설도 썼다. 후학들을 가르치며 소설 연구서로 ‘소설쓰기의 이론과 실제’, ‘한국 현대소설론’ 등을 출간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기독교문학상, 백남학술상, 김준성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문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수개월 전부터 암 투병으로 항암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13일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 시대 문학이 필요한 이유 알아서 기지 않는 장르니까”

    “이 시대 문학이 필요한 이유 알아서 기지 않는 장르니까”

    양경언(35). 2011년 ‘현대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 이 젊은 평론가의 이름은 문학이 목소리를 내는 곳이면 어김없이 있었다. 2014년 9월 20일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된 ‘304낭독회’에도, 2016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론화 된 ‘문단 내 성폭력’ 운동 때에도 예외없이 등장했다. 그가 첫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창비)을 냈다. 2010년대 초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던 ‘안녕 대자보’ 현상과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연결해서 살핀 자신의 평론 ‘작은 것들의 정치성’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안부를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평론가를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까페창비에서 만났다. ●“비평이야말로 기억 투쟁의 장” ‘안녕을 묻는 방식’은 2010년대의 한국 시를 필두로 이 시기 사회를 뒤흔든 여러 사건들 속에서 문학의 역할을 되짚는 책이다. 그는 2010년대를 일컬어 “2009년 용산 참사, 이명박 정권 초기 등을 거치며 시의 미학에 대한 고려가 정치성 역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의 ‘미래파 논쟁’이 전에 없던 화법과 형식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이러한 고민들의 현실 속 역할을 숙고하던 시절이라는 거다. ‘안녕 대자보’가 기존 정치의 바깥에서 정치의 범위를 확장하듯, 이 시기의 시도 ‘누군가를 대리하려는 욕망 없이 ‘너’를 요청하는 발화를 이어간다는 것’, ‘고독과 다정함이 혼종적으로 묻어나는 희한한 분위기’(21쪽, ‘작은 것들의 정치성’)를 자아낸다는 것이 양 평론가의 분석이다. 2010년대는 세월호, 촛불 혁명, 문단 내 성폭력, 페미니즘 등의 이슈를 거치며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받던 시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비평이 중요하다고 양 평론가는 말한다. 비평이야말로 기억 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참사 앞에서 문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다고 의미화할 것이냐, 말의 무력과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 한계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할지 분투하는 과정으로 의미화할 것이냐는 다른 입장이에요.” 그래서 그는 작가와 시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세월호 희생자를 추념하는 한 줄 문장을 읽는 ‘304낭독회’의 일꾼으로 활동하고, ‘문단 내 성폭력’ 운동 때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읽었을 때 새삼 그냥 지나쳤던 것도 고양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돼요. 지난해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황정은·박상영·장류진 작가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모르고 있던 걸 가르쳐준다기보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걸 다시 일깨우는 것이 요즘의 문학이고요. 그렇게 작품을 읽고 고양된 순간을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의견을 표출하고 힘을 실으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게 2010년대의 모습이에요.” 일상의 언어를 쓰지만 행간은 더욱 깊어진 요즘의 시. 마지막으로 아직도 ‘시가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지금 시대가 요청하는 확실하게 정리되는 것,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켜가는 자리에 시가 있다”는 말을 꺼냈다. “시를 읽는 건 사회에서 사람들이 관성화된 움직임으로는 감각할 수 없는 부분들을 느끼는 과정이거든요. 대놓고 사람들이 난감하기를 바라는 것이고요. ‘시가 어렵다’고 얘기하는 건 시를 잘 겪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미스터리 제왕의 과학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사이언스?’

    미스터리 제왕의 과학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사이언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작가의 자리에서 10년 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을 낸 일본 미스테리의 제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 출간된 에세이집만 3권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최근 출간된 에세이집 ‘사이언스?’(현대문학)은 그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잡지 ‘다이아몬드 LOOP’와 ‘책의 여행자’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이공계 출신 전직 엔지니어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들려주는 생활 밀착형 과학 이야기를 표방한다. 제목에 붙은 물음표처럼 본격 과학 이야기는 아니다. 환경 오염, 기술을 악용하는 지능 범죄의 출현, 저출산 문제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과학적 이슈들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라고 보는 게 맞다. 특히나 히가시고 게이고의 팬이라면 궁금해할 법한 집필 뒷이야기들이 재밌다. 예를 들면 동료 문인들 사이에서 이과 출신 작가로서 느끼는 이질감(‘이공계는 장점인가′), 이른바 ‘커트앤드페이스트’(데이터의 일부를 잘라내어 다른 위치에 붙이는 일’) 방식으로 원고를 썼던 작가가 별 거부감 없이 육필에서 워드프로세서로 갈아탄 일화(‘도구의 변천과 창작 스타일’) 등이다. ‘과학기술은 추리소설을 변화시켰는가′라는 대목에서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달라진 추리소설을 조망한다. 그 대표 주자는 바로 휴대전화의 보급이다. 작가는 ‘중요 인물과 아깝게 엇갈리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 ‘휴대전화가 등장해 몹시 까다로워졌다’(25쪽)고 말한다. 이같은 전개는 독자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진보가 추리소설을 쓰기 힘든 환경을 만든 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지능 범죄들이 숱하게 탄생한 탓이다. 15~17년 전에 쓰여진 에세이들이라 다루는 소재들이 지금과의 시차가 느껴지는 건 좀 아쉽다. 그러나 세상 만사로 뻗어가는 추리소설 작가의 논리회로, 스키 등 스포츠를 향한 그의 남다른 열정 등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면면을 보는 재미가 있다. 232쪽. 1만 3000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교감’이 된 설치예술

    [그 책속 이미지] ‘교감’이 된 설치예술

    보이지 않는 말들/천경우 지음/현대문학/352쪽/1만 8000원 물, 전기, 가스 기술자 2700명에게 ‘어떤 말이 타인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각자의 마음을 담은 글이 모였다. “인생의 큰 변화는 또 하나의 기회일 수 있다”는 글귀가 새겨진 파란 파이프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파이프는 도시 땅 밑으로 들어갔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글의 마음으로 에너지를 옮기지 않을까. 천경우 교수가 독일 브레멘 에너지공사 기술자들과 함께 한 ‘보이지 않는 말들’ 프로젝트다. ‘보이지 않는 말들’은 천 교수가 진행한 프로젝트 25개의 작업노트 모음집이다. 1000명의 천(千)씨 이야기를 모은 ‘1000개의 이름들’, 서울역 앞에 트랙을 그리고 시민이 원하는 만큼 뛸 수 있게 한 ‘달리기’ 등 기발한 설치예술은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저작권 양도 논란 ‘이상문학상’ 수상자 공개 무기한 연기

    저작권 양도 논란 ‘이상문학상’ 수상자 공개 무기한 연기

    문학사상사 “소통을 통해 개선하겠다” 문학계, 출판사 전횡 비판 목소리 높아 계약서상의 저작권 양도를 둘러싸고 수상 거부 논란을 빚은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전격 연기됐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는 6일 낮 12시로 예정됐던 수상자 공개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전날부터 불거진 우수상 수상 거부가 원인이 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상 거부자는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다. 이들은 계약서상에 ‘단편 저작권을 출판사 측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조항을 문제 삼았다. 김 작가는 지난 4일 트위터에 “수정 요구를 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표제작으로는 쓰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왜 그런 양해를 구하고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적었다. ‘경애의 마음’,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의 소설을 쓴 김 작가는 현대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 작가도 6일 페이스북에 “우수상이라는데 3년 동안 저작권 양도 이야기를 하길래 가볍게 거절했다”며 “비단 이 문제뿐만 아니라 작가의 권리가 특정 회사나 개인에 의해 침해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비판했다. 문학사상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계약서상에는 3년이라 명시했지만, 개인 작품집 출간 시기가 수상집 출간 시기와 겹치지만 않는다면 양해해 왔다”며 “대상에 한해서는 계속 유지됐던 조항이고, 후보작에 한해서는 지난해 부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가들이 느끼는 불합리함을 알게 됐으니 향후 소통을 통해 개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학계에서는 출판사 측의 전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이날 페이스북에 “다른 메이저 출판사들의 경우에도 작가들에게 강제하는 유무형의 강제나 불이익은 없는지 살펴보고 적절한 대응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작가단체에서 조사하고 문제 삼았어야 할 일을 작가 개인이 감당하고 있어 안타까운 노릇”이라고 썼다. ‘이상문학상’은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77년 문학사상사가 제정했다.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수상작과 후보작을 매년 초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라는 작품집을 통해 발표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날것의 언어로 자유 외쳤던 시인 김수영…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

    “날것의 언어로 자유 외쳤던 시인 김수영…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

    한국 문단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뚫고 꿋꿋하고 공고하게 융성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때론 누구는 체제를 찬양하고 또 누구는 침묵했지만, 많은 문인들은 자신의 정신과 삶을 글로 말로 풀어내면서 시대를 이야기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이자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한국 문단의 큰길을 만든 인물을 조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함께 들여다보며 문단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그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시인 김수영(1921~1968)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뜨거운 상징으로서, 아직도 탕진되지 않는 신화를 거느리고 있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해방 후 그의 시는 다음 세대들에게 가장 광범위한 감염력을 가진 선행 모델이 돼 주었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정직성과 현실참여 의지로 시를 썼던 그는 그릇된 것들에 대한 철저한 부정 정신으로, 흔치 않은 비판적 지성으로, 자유와 혁명을 향한 역동적 언어로 기억되고 있는 위대한 시인이다. 그런 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나의 가족’)라는 구절에서 보듯, 그것은 순하고 아득한 사랑의 물결에 감싸인 낡은 둥지 같은 것이었다. 지난해 말에 찾아뵀던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에게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가를 실감 있게 들려주었다. 이미 ‘김수영의 연인’(2013)에서 기억 속의 남편을 선명하게 재현한 바 있는 그녀는, 생전 남편이 남겼던 창작 일화나 소소한 삶의 맥락까지 아득하게 전해 주었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여섯 살 위 김수영을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줄곧 따랐고, 1950년 초 서울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곧이어 터진 전쟁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휴전 후 김수영과 다시 결합하여 정착한 곳이 성북동이었다. 그로부터 시인이 타계하기까지 김현경은 시인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독자로 함께 살았다. 지금도 남편과 자신이 수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열정을 지켜 주었노라고 말하는 그녀는, 남편이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이 오늘의 자신을 붙잡아 주고 지켜 주고 있다고 고백한다. 시인의 시간을 그대로 품은 책과 유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면서 아직도 자신이 ‘시인의 연인, 시인의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김현경 여사는 1927년생이다. 수업 시간에 김수영 초기작 ‘토끼’를 말할 때 그의 아내가 토끼띠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니, “토끼띠 맞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닭띠고요. 우리가 양계를 했잖아요. 양계장 안에 토끼도 길렀어요”라고 웃으면서 말을 건네신다. 김수영이 1921년생 닭띠이니 내년은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 된다. 전후를 풍미했던 조병화나 김종삼도 동갑내기들이다. “조병화 선생 부인은 진명여고 3년 선배예요. 부덕이 훌륭한 사람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김현경 여사는 현대사의 쟁쟁한 인물들과 관계가 깊다. 작곡가 김순남이 친척 오빠였고, 젊은 시절 임화, 오장환, 박인환 등과도 교유가 깊었다. 이화여대 영문과 다닐 때 정지용 선생께 배우시지 않았느냐고 여쭙자 “그때 시경을 가르치셨어요. 판서를 내가 했어요. 시경에 실린 한시를 한자로 쓰는데 참 열심히 칠판에 가득 썼어요”라고 들려주신다. 정지용 선생 댁에는 안 가보셨냐고 하자 어제인 듯 선명한 기억을 풀어놓는다. “돈암동 얌전한 기와집에 사셨어요. 근데 이화 그만두시고 녹번리로 가셨어요. 녹번리 댁은 한 번 갔거든요. 겨울철인데 한 번 술이 취하셔 가지고 나 혼자 못 간다고 그러시면서 함께 녹번리까지 갔어요. 참으로 학식이 대단하셨고 라틴어나 영어도 대단하셨지요. 한문은 물론이고요.” 김현경 여사의 첫사랑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다. 그의 첫사랑인 시인 배인철은 그때 매우 이례적으로 ‘흑인시’(黑人詩)를 쓰던 사람이었다. “형님이 인천에서 손꼽는 유수한 실업가이면서 무역상이었어요. 서울과 인천을 걸어 오가기도 했는데 우리는 참 호흡이 잘 맞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리도 안 아팠어요. 얘기를 거침없이 한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남산에서 그분이 머리에 총을 맞았어요. 첫사랑이었고 처음 연애다운 연애를 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배인철은 김현경 여사와 데이트 중 누군가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김현경 여사는 이화여대의 연애금지 학칙을 어겨 제적을 당한다. 그리고 김수영과 다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김수영의 1950년대는 실존적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명동 문청들 사이의 히로인이었던 김현경과 결혼하여 짧은 시간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결혼 4개월 만에 의용군에 강제 동원됐고, 거기서 야간탈출했다가 체포돼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거제에서 아산 수용소로 이동한 그는 1952년 12월과 1953년 2월 사이로 추정되는 어느 시점에 아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온다. 그리고 바로 부산으로 간다. 그때 ‘자유세계’ 편집장이었던 소설가 박연희의 청탁으로 1953년 5월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를 쓴다. 시인 박태진의 주선으로 미8군 수송관 통역으로 취직하였지만 곧 그만두고 모교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잠시 근무했다. 그해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어느 날 그는 서울로 올라와 ‘주간 태평양’ 편집부에 근무하게 됐고, 그 후로 타계할 때까지 서울에서 쭉 살았다. 1952년 말부터 1954년까지의 김수영은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통역으로 교사로 잡지사로 동선을 옮겨 갔고, 공간적으로는 포로수용소(거제·아산), 부산과 대구, 서울로 옮겨 갔다. “그때 시 한 편이 얼만가 하면 30원이에요. 근데 그분 시는 팔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지면이 거의 없었지요. 한 달에 시 한 편 정도 쓰고 나머지 시간은 번역에 매달렸어요. 공터에다 닭을 길렀는데 잘되었어요. 1961년인가 쌀 파동이 일어나 쌀이고 뭐고 십 배로 뛰었어요. 덩달아 옥수수도 모이도 다 수입이어서 사료 값이 너무 오르고 알 값은 떨어지는 거예요. 거의 십 년 가까울 때 내가 딱 생각하고 그만뒀어요.” 김현경은 참으로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분이었다. 이렇게 김수영은 생애 내내 김현경이라는 삶의 동반자이자 매니저이자 동지와 함께했다. 생활의 구체는 물론 시의 초고를 가지런히 정서하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김수영은 자기 책이건 남의 책이건 읽으면서 낙서나 언더라인을 치고 책장을 접어 헌책으로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정력적인 독서력을 가진 이였다. 손때와 흔적이야말로 그의 책 읽기의 결실이었다. 김현경은 이러한 흔적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남편 사후에 의상실 경영에 미술 컬렉터 및 디렉터로 줄곧 활동하면서 살았다. 나날의 난경과 고독도 시인의 연인이요 아내라는 자의식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두루 알다시피, 김수영은 사랑의 시인이다. 그는 ‘사랑’이라는 작품에서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이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낭만적 분위기와는 반대편에서 사랑의 모순과 복합성을 날카로운 이미지로 포착한 작품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불멸의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번개처럼 금이 간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출렁이게 하는 매혹이 아니던가. 김수영은 이러한 번개 같은 순간의 사랑을 여러 흔적으로 남겼다. 그는 자신의 시나 산문에서 여성들에 대한 여러 경험과 기억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김수영의 유일한 여인은 아내 김현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김수영은 언젠가 “시를 쓰는 나의 친구들 중에는 나의 시에 ‘여편네’만이 많이 나오고 진짜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친구”(‘미인’)도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바로 “나는 닭띠이고 나의 아내가 바로 토끼띠”(‘토끼’)인 김수영과 김현경 사이의 사랑과 이별, 재회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굴곡의 여정이 김수영만의 사랑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그의 시편에 ‘여편네’가 많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수영 작품에서 출몰하는 여러 여성들은 김현경에 비하면 김수영에게 잠깐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김현경은 시인이 글을 쓸 때 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소음이 없는 서강 언덕을 거주지로 택하기도 했다. 시인의 삶과 정서와 기분까지 헤아렸던 그녀는 그 점에서 김수영의 가장 순하고 아득한 둥지였을 것이다. 그 ‘유일한 여인’ 김현경이 “50년이 못 돼서 가셨으니까 얼마나 안 됐어요?” 하면서 김수영으로 하여 자신이 행복했음은 물론 우리 문학사도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지금도 기뻐하노라고 한다. 번개처럼 불안하기는 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었던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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