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예술의 美感 세계인에 펼쳐보일 터”파리 기메국립박물관서 회고전 여는 재일동포 이타미 준
|파리 함혜리특파원|“한국은 내 마음 자체이며,나의 정신입니다.”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66·한국명 유동용)은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통찰력으로 담아내는 작가다.
도자기 가마 모양을 본뜬 조각가의 작업실,우리 민화에 나타난 포도넝쿨을 연상케 하는 호텔,조선시대 도자기의 모양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건축물 등.돌 나무 흙 벽돌 등 자연의 소재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와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룬 이타미 준의 건축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회고전이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30일부터 오는 9월29일까지 열린다.
국 일본 중국 인도 태국 등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아시아 예술 전문 국립박물관인 기메 미술관에서 현존하는 건축가의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1899년 이 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이다.물론 한국인으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33년 건축인생을 대변하는 도형과 스케치,건축 모형들과 사진,예술가로서의 미학이 담긴 회화작품,가구,그리고 그가 평소 ‘교재’로 사용하는 개인 소장 고미술품 등 17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만난 그는 “한국 전통예술의 미감을 세계인들에게 펼쳐 보일 수 있게 된 것이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너무 영광스럽고 행복하다.”고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이번 전시회 포스터나 도록 표지에도 자신을 ‘일본에 있는 한국인 건축가’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정도로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데에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 부모 사이에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식 이름 ‘이타미 준’을 사용하며,사고 방식 또한 일본 사회에 완전히 통합돼 있다.하지만 정신세계의 근원은 엄연히 한국이다.
목수였던 그의 선친이 그를 포함해 칠남매 모두에게 한국 국적을 자랑스러워하고 이를 지키도록 교육시켰던 덕분이다.그는 “태어나고 자란 일본은 고향이지만 예술의 근원은 한국의 토양”이라고 말했다.
자연과 전통의 조화,자연스러움과 여백의 미가 흐르는 동양적인 건축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들은 예술과 건축의 융화,자연 소재의 통찰을 제안하고 있다.이런 그의 작품들은 그가 30대 초반에 한반도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발견한 한국의 전통미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학교(무사시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작품활동을 시작한 직후,유럽을 배낭여행했습니다.그곳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보고 나서 느낀 것은 내가 조국인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196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는 조선시대 대중예술의 미감(美感)이었다.투박한 흙벽돌과 초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보름달 모양의 도자기,선비의 절개를 연상시키는 기와지붕의 고고한 선,인간미가 배어 있는 부처의 얼굴,침묵처럼 조용한 아름다움을 지닌 차 그릇 등에서 그는 한국인의 고유한 감성을 발견했다.건축가인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소재의 발견이었다.
그후 그는 일본과 미국의 크리스티경매장 등에서 한국의 고미술품을 구입하며 조선시대 고미술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공부를 하면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그대로 반영시켰고 그의 작품은 독창성을 띠며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건축은 도시와 자연이 만나는 것입니다.한국적인 전통미를 어떻게 현대적인 건축과 조화시키느냐가 과제였지요.하늘 돌 나무 흙 등 자연의 소재를 인공적인 콘크리트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해 대비하고,대립도 시키고,조화를 시키면서 사물의 관계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됐습니다.관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좋은 조형물이 되는 것입니다.”
디아 잉크하우스(1975년·도쿄) 온양박물관(1982년·온양) 돌의 교회(1991년·홋카이도) 조각가의 스튜디오(1985년·가가와) M빌딩(1991년·도쿄) 레어나드 번슈타인 기념관(1996년·홋카이도)에서부터 최근의 포도호텔(2002년·제주)까지 자연의 소재를 현대적인 건축공간에 자연스럽게 접목시킨 그의 대표작들은 이렇게 완성됐다.
지난해 완공된 제주의 포도호텔은 그의 완성된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부드럽게 흐르는 티타늄 소재의 은빛 지붕은 제주도의 넘실대는 물결,한라산의 능선과 오름,제주 민가의 초가 모양이 녹아들어 자연 친화적인 요소가 강조됐다.
“그 지역의 특성과 재료가 어우러지는 건축물이 제가 만들고 싶은 건축물입니다.포도호텔은 유구한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되더라도 티타늄 지붕은 제주의 풍광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남아 있을 것입니다.”
도쿄의 하네기 미술관에서 수년 동안 조선시대 미술품 소장전을 갖는가 하면 지난 5월에는 도쿄에 한국고미술컬렉션 박물관을 오픈할 정도로 고미술 전문가가 됐다는 그에게 조선의 민화와 도자기들은 ‘영원한 교과서’다.작품세계의 정신적,물질적 근간이 된 ‘한국 전통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자신의 소장품을 작품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한국적이다,일본적이다 라는 평가를 싫어한다는 그는 “동북아시아 공통의 정서인 동양적인 철학을 담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을 역사에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한국적인 전통미가 자연스럽게 녹아 든 독창적인 작품들을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우뚝 선 그는 지금도 일본으로부터 귀화할 것을 권유받고 있다.하지만 고집스럽게 한국 국적을 지키고 있다.오히려그의 두 딸과 아들을 한국에서 교육시키면서 자신보다 더 완벽한 한국인으로 자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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