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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共生과 맞물려 재계 ‘사재출연’ 이어질까

    共生과 맞물려 재계 ‘사재출연’ 이어질까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범현대가 그룹들이 5000억원 규모의 사회복지 재단을 설립하기로 함에 따라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상생경영’과 맞물려 재계에 대기업의 사회환원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범현대가의 맏형격인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상생 대열’에 동참할지도 관심사다. 현대중공업그룹과 KCC, 현대해상,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 범현대가 그룹사 사장단은 16일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규모의 사회복지재단인 ‘아산나눔재단’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재단 설립 기금은 총 5000억원으로 현대중공업그룹 6개사가 2380억원을,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현금 300억원과 주식 1700억원 등 총 2000억원을 출연한다. 출연금의 80% 이상이 현대중공업과 정몽준 의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셈이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과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아산나눔재단설립 준비위원장인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대가의 여러 기업이 제각기 특성이 있고 여러 좋은 일을 하고 있으며(현대차그룹 해비치재단), 형편의 차이도 있다(현대그룹).”면서 “재단의 문호는 활짝 열려 있어 언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범현대가의 행사나 사업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재단 설립에는 정 회장이 참여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정치’와 ‘대북사업’에는 적당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현대차그룹은 비슷한 성격의 사회공헌문화재단인 해비치재단을 이미 운영하고 있어 다른 재단에 발을 담글 이유가 크지 않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2007년에 설립한 해비치재단을 더욱 충실하게 이끄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서 이번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모양새도 좋지 않다. 아산나눔재단 등은 현대가 모임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아산나눔재단 설립 등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놨지만 현대그룹은 이를 부인했다. 정몽준 의원과 현대중공업이 재단 설립에 현대그룹을 처음부터 배제한 것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 측으로부터 재단 설립 이야기나 참여를 제안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현대상선의 경영권 다툼으로 현대중공업과는 감정의 골이 깊은 상황이다. 한편 이날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청운동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택에서 열린 변중석 여사의 4주기 제사에 정몽준 의원을 비롯한 범 현대가 4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장남인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은 중요한 일정으로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준규·이두걸기자 hihi@seoul.co.kr
  • [나와 통일] (28) 2003년 평양노래자랑 진행 송해

    [나와 통일] (28) 2003년 평양노래자랑 진행 송해

    일요일 낮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목소리.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외치는 “전국, 노래자랑”이다. 2003년 8·15 광복절 당시 그는 평양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평양”을 외쳤을 때 관중들의 반응은 남한에서만큼 뜨겁지 않았다. 어디서 빌려온 듯한 한복을 입은 청중들이 굳은 표정으로 형식적인 박수만 칠 뿐이었다. 평양을 시작으로 개성, 신의주에서도 노래자랑을 하자고 했던 약속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통일 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싶은 꿈을 품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서울에서 고향 해주까지 맨발로 달려가겠다.”는 그의 통일 이야기, ‘평양 노래자랑’의 뒷얘기를 14일 들어봤다. 고향을 떠난 지 6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훔치는 그의 얼굴에선 고향집을 나서던 스물두살 청년의 모습이 엿보였다. ●‘평양노래자랑’ 北선 네번이나 재방송 →평양 노래자랑은 어떻게 성사됐습니까. -평양 노래자랑을 계획한 지는 오래됐죠. KBS협력단에서 북쪽에 먼저 제안을 했고 개성공단이 열리면서 탄력을 받았습니다. 녹화 테이프가 수십개 보내졌고, 처음 얘기가 나와 성사되기까지 8~9년이 걸렸습니다. 당시엔 육로가 열리지 않아 중국 베이징을 통해 평양에 들어갔는데, 출발 당일 새벽에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이고, 못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 속에 비행기에 올랐는데 다행히 취소 통보는 없었죠. 북측에선 현대가 경협사업을 하니까 (정부에서) 죽인 것 아니냐고 자꾸 캐물었어요. →평양 도착 이후 협의는 잘됐나요. -4박 5일 일정으로 갔는데 협의가 길어져 8박 9일이나 있었습니다. 아침에 만나서 의견이 충돌하면 “저녁에 다시 얘기합시다.” 하고 가버리고, 대화가 잘 안돼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죠. 또 사회자를 정하는데 내가 문제가 됐습니다. 내가 월남한 뒤 현역으로 입대해서 북을 향해 총을 겨눈 사람이라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죠. 그쪽에서 보면 나는 반역자 1호였던 겁니다. 출연자들 노래도 전부 ‘김일성·김정일 만세’ 일색이었습니다. “남쪽에서도 방송할 건데 부녀가요나 노동가요도 좀 넣읍시다.” 내가 그랬죠. 내가 가져간 CD에 ‘눈물 젖은 두만강’, ‘한 많은 대동강’ 같은 좋은 노래가 있으니 들어보라고 건넸습니다. 이게 다 분단된 국가의 설움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안 받겠다더니 이틀 후쯤 “잘 들었습니다. 다 알고 있어도 모른다고 해요.”라면서 주변을 살피더라고요. ‘평양 노래자랑’은 우리는 한번 방송했지만 북쪽에선 4번이나 재방송을 했습니다. →평양 시민들의 호응은 좋았는지요. -출연자들과 얘기를 못 하게 했어요.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자랑거리가 뭔지, 무슨 노래를 할 건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노래만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녹화할 때 예고 없이 불쑥 뛰쳐나가 출연자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돌발상황이죠. 몇 번이나 그렇게 했어요. 그랬더니 그때부터 출연자들의 입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합디다. 그래도 녹화가 중단되지 않았던 건 전성희라는 북측 여성 사회자 덕분이었어요. 중간에서 힘을 많이 써준 것 같습디다. 녹화가 끝나고 떠나면서 차량 운전수의 시야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 나를 향해 “아바디, 고저 건강하시라요.”라고 합디다. 워낙 감시가 심해서 사진 한 장 못 남긴 게 아쉽네요. →고향이 황해도 해주이신데…. -평양에서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안 갔습니다. “고향 생각 많이 나지요?”라고 물으면서 은근히 달러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괜히 바보 될 것 같아 포기했죠. 혹시 몰라서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마음에 한복을 지어 갔는데, 결국 호텔에서 일하던 아주머니한테 드리고 말았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신청하지 않았어요. 북쪽에서 희극인 송해를 모른다면 한번 해봤겠지만,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잖아요. 만나는 순간에 한풀이는 되겠지만 저쪽(북쪽 가족)에는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 못 했습니다. 이산가족이 만나면 자유롭게 만나고 같은 이부자리에서 밤새 얘기도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다녀와서 편지라도 한 통 보내본 사람이 있는지…. 남쪽도 작전(정략)이고 북쪽도 작전이고 백성들만 고달픕니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으시다면? -충무로 을지면옥에 가면 해주의 전경을 그린 그림이 있어요. 어느 실향민이 너무도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사람을 보내 그려 오라고 한 것입니다. 어릴 적 은행나무가 고목이 됐겠거니 상상하곤 하죠. 냉면 먹으러 가면 그림을 보며 마음을 달래고 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납니다. 인민군들이 황해도 구월산에 숨어 있다가 먹을 것을 약탈하러 민가로 내려오곤 했어요. 그날도 잠시 도망가 있으려고 했는데 마루 끝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얘야, 조심해서 다녀오너라.”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말인데도 그 말이 왜 그렇게 짠하게 들리던지…. →실향민이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전엔 이북5도 1000만 이산가족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700만명도 안 된다고 합디다. 그만큼 죽었다는 얘기죠. 2세만 해도 “부모님 한을 풀어드려야지.”라는 생각이 있지만 40~50대로 내려가면 통일이 뭔지도 몰라요. 젊은 자식 세대들은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여기가 고향이라 생각하고 편히 살자.’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못사는 북쪽 사람들이 넘어올지 모른다고 걱정부터 해요. 처절했던 역사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네요. 누구나 어머니, 고향 생각하지 않습니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면 그게 고마운 거죠. ●“ 민간이 섞여 서로 교류해야 통일 가능” →통일이 언제쯤 될 수 있을까요.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우리보다는 북쪽이 변해야 하니까…. 남북 통일이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정치적으로만 해서는 안 돼요. 민간이 섞여 방송도 하면서 서로 알아야 합니다. 평양에서 ‘참으로 갈 길이 멀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교류가 없는 요즘엔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막혀 있으니 북한에 대해 의아심만 생기고 답답합니다. →‘통일 노래자랑’이 꿈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내 생전에 꼭 해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모란봉에 가기 전에도 그런 꿈을 많이 꿨습니다. 여기서 하듯이 자유롭게 할 생각으로 갔다가 실망도 많이 했죠. 당시 평양 노래자랑을 시작으로 개성, 신의주 등 7개 도시에서 노래자랑을 하자고 북측 차관급 책임자와 약속을 했었는데 돌아오고 나니 (그런 약속이)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남북관계가 웃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꾸 경직되네요. 나는 남북 최대의 소망이 이뤄진다면 여기서부터 우리 고향까지 맨발로 뛰어갈 것 같아요. 정말로….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 장기적 콘텐츠로 외국인 공감 얻어야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달 10일 열렸던 한국 아이돌 그룹 공연장 주변은 아침부터 몰려든 유럽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기대를 뛰어넘은 공연 성공에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점령’했다는 보도가 한국의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다. 한국 정부까지 나서서 ‘한국문화교류의 전당(가칭) 건립’을 내세우며 호들갑에 동참했다. 정부가 장기전략 없이 한류 바람에 편승해 단기 실적만 챙기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 9일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선 K팝 팬들이 한국 아이돌그룹 공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한상희 건국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카세트를 설치하는 한국 사람과 그가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한국 사람, 한국문화원에서 나온 사람들 … ‘에이 왜 안 모여’라고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라호쉘 대학 에블린 셸리키에 교수(한국어·문화 과정)는 유럽 한류의 수준을 냉정하게 진단한다. 그는 “K팝 팬 대부분이 한국에 대해 아는 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기성세대의 현실은 더 냉정하다. “삼성이나 현대가 일본 브랜드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 대한 인식 수준은 북한보다도 떨어진다.” 한국사회가 ‘한류’에 유럽보다 더 취해 있을 때 파리 에펠탑 인근에 위치한 일본문화원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일본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일본문화원이 눈길을 잡는 건 에펠탑 바로 옆 노른자위 땅에 자리한 건물이 아니라 1층 기념품 가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프랑스어로 된 일본 관련 단행본 때문이었다. 유럽 어느 한국문화원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유럽내 일본 문화의 저력은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일본 전통시인 하이쿠(俳句) 시집을 내고,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등 각계에 포진한 친일인사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가 관심을 쏟고 있는 ‘한류’는 공통점이 있다. 음식, 영화, 드라마, 음악. 모두 당장 ‘돈’이 되는 것들이다. 당장 돈이 안 되는 한국문학 번역지원사업은 “대부분 자비출판 형식인데다 조악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는 한 스페인 유학생의 지적처럼 조급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수십년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학과 지원자가 오히려 더 늘었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사례는 한국을 알리는 작업이 얼마나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높이고 외국 시민 개개인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 한국의 품격을 높이자는 담론은 넘쳐나지만 장기적이고 큰 그림에 입각하지 않으면 한때 잘나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홍콩 영화’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장기적 안목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공공외교’가 한국에 필요한 이유다. 파리·런던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역대 최고 주식부자는 이건희

    세계적인 주식 거부인 미국의 워런 버핏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식 부자는 누구일까. 11일 재벌닷컴이 2000년 1월 4일부터 올해 7월 7일까지 상장사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 가치 변동내용을 조사한 결과 역대 최고 기록은 올해 1월 28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세운 9조 5458억원이다. 당시 삼성전자가 101만원에 거래를 마감하면서 첫 9조원대 부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내려간 탓에 이 회장의 지분 가치가 6개월 만에 8689억원 감소했지만, 그는 11년간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우며 주식부호 정상 자리를 넘나들었다. 이 회장은 새천년을 시작하는 2000년에는 2위로 출발했다. 그해 1월 초 주식 지분 총액이 7610억원으로, 8138억원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뒤졌다. 그러나 3년 만에 정 명예회장을 따돌리고 증시 역사상 신기원을 열었다. 2003년 6월에는 1조 541억원을 기록하며 첫 1조원대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5월에는 삼성생명이 상장된 덕에 8조원대를 넘기며 슈퍼 부호에 올랐다. 범 현대가 대표주자 격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추격전은 더욱 극적이다. 2000년 1월 2310억원으로 16위에 불과하던 정 회장은 2001년 계열분리 이후 급상승해 2004년 4월 국내 두 번째 1조원대 부호가 됐다. 2005년 12월에는 글로비스를 증시에 상장시키면서 이 회장을 제치고 2조 3552억원으로 상장사 주식 부호 1위에 등극했다. 이후 지난해 5월 삼성생명이 상장되기 직전까지 이 회장을 앞섰다. 지난 7일 기준으로 이 회장은 8조 6769억원, 정 회장은 8조 6521억원이다. 겨우 248억원의 차이가 날 정도로 순위 다툼이 치열하다. 전자와 자동차 업종의 경기 변동에 따라 순위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하이닉스’ 새 주인은 ‘승자의 저주’ 비켜갈까

    ‘하이닉스’ 새 주인은 ‘승자의 저주’ 비켜갈까

    하이닉스반도체의 ‘주인 찾기’ 작업이 1년 4개월여 만에 재개되면서 새 주인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권단은 현대중공업 등 굵직한 후보들이 입찰에 참여해 매각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 간 연관성이 떨어지는 업체들이 무리하게 인수를 시도하다 ‘승자의 저주’에 빠져 막대한 손실을 떠 안는 경우도 허다한 만큼 ‘무조건 매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하이닉스채권단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최소 두 곳 이상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합병(M&A)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하이닉스 인수 의사를 타진한 업체 가운데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현대중공업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1분기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 8149억원에 달한다. 하이닉스 인수 금액이 2조 7000억~3조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실탄’은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현대중공업과 하이닉스의 주력 사업 간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일각에서 ‘제조업과 정보기술(IT)의 융합’이라는 청사진을 내세우며 현대중공업이 추진 중인 태양광 산업과 반도체 공정의 연관성을 거론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사실상 ‘짜 맞추기’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사업 연관성이 없어도 현대중공업은 자금력을 내세워 하이닉스의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고 공약하면 그만이다. 사업 연관성도 충분히 끼워 맞추기가 가능하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비싼 값을 받고 파는 게 최대 목적인 만큼 현대중공업 쪽에서 장밋빛 미래만 그럴듯하게 제시한다면 이를 문제 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조선업과 반도체 사업은 모두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기 때문에 두 사업이 동시에 불황을 겪게 될 경우 현대중공업으로서는 그룹 전체가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게 돼 두 회사 모두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이민희 동부증권 리서치센터 기업분석본부장은 “현대중공업은 조선업이 성장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태양광 이외에 정보기술(IT), 반도체 부문 쪽으로 다각화를 추진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현대중공업의 어떤 주력 분야도 하이닉스와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사업이 없어 보인다.”면서 “‘범현대가’ 복원이라는 명분 때문에 너무 많은 비용을 치르려는 것 같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현재 LG와 SK, 동부그룹 등도 잠재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 역시 안팎으로 현안이 산적해 있어 하이닉스 인수에 신경 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LG그룹의 경우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TV·휴대전화 등 세트-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등을 모두 아우르게 돼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크지만 LG전자 등 전자 계열사의 부진으로 여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미 충분한 반도체 개발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하이닉스를 인수한다고 해도 기대한 수준의 상승 효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SK 역시 SK텔레콤을 비롯해 주요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재편 작업에 나서고 있어 하이닉스 인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스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동부하이텍을 갖고 있는 동부그룹도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당분간은 주력 사업에만 매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채권단은 새달 8일쯤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하고 9월 본 입찰을 거쳐 10~11월에는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하이닉스 새주인 현대家?

    하이닉스반도체가 새 주인찾기에 나선다. 적절한 인수 희망자가 없어 여러 차례 매각이 무산됐지만, 이번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그룹 등이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식관리협의회(채권단)는 21일 공개경쟁 입찰공고를 내고 하이닉스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초 입찰 대상자를 가려 8월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 올해 말까지 매각하는 일정이다. 채권단은 보유 주식을 매각하는 것과 더불어 신주 발행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인수 대금이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하이닉스 매각을 앞두고 채권단은 “능력 있는 대기업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구애했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공사와 외환·우리은행 등이 보유한 구주 15%(8844만 8356주)에 더해 10%까지 신주 발행도 허용할 것”이라면서 “구주의 절반인 7.5%는 팔겠다.”고 밝혔다. 신주가 발행되면, 인수자 입장에서 인수대금 일부를 채권단에 주지 않고 하이닉스에 남겨 신규 투자나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채권단의 러브콜에 응할 기업으로는 범현대가가 물망에 오른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 상황에서 옛 현대전자인 하이닉스 인수가 ‘현대 부활’의 마침표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역으로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가 그룹의 재건을 위해 채권단이 매각에 조급증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이닉스는 2001년 10월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2차례에 걸쳐 채권단으로부터 4조 9000억원의 출자전환과 1조 4000억원의 채무면제를 받았다. 2005년 7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뒤 2007년, 2009년, 2010년에 매각이 시도됐지만 실패했다. 그동안 LG, 포스코, 동부, SK, 한화, GS, 효성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토박이도 모르는 종로이야기 책으로

    신문로는 신문사들이 몰려 있어 신문로일까. 답은 ‘아니오’다. 서대문의 속칭인 새문을 한자로 옮겨 적은 데서 유래한 게 신문로(新門路)다. 이처럼 서울 토박이들도 모르는 종로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 화제다. 구는 87개 법정동의 역사와 유래, 관광명소 등을 담은 ‘감동이 있는 87 STORY. 종로구’ 책자를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김철안 자치행정과장은 “종로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법정동을 가진 기초단체”라며 “법정동에 얽힌 이야기만 모아도 역사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안내서가 아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600년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던 곳답게 오랜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았다. 단종비 정순왕후의 애끓는 러브 스토리가 서린 숭인동 정업원(淨業院), 해방 직후 귀국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이화동 이화장(梨花莊), 병자호란 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효종이 김치맛을 잊지 못해 즉위 직후 나인 홍덕이에게 채소밭을 주어 계속해서 김치를 담가 올리게 했다던 ‘홍덕이 밭’이 잘 보존된 이화동 낙산공원 등 책을 읽다 보면 지난 600년의 시간과 공간이 스쳐 지나간다. 책은 87개 동 이야기를 전통, 도시, 예술, 자연, 궁중, 역사, 문학, 감성의 8가지 테마별로 구성해 이야기를 따라 다양한 색깔로 종로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1년여에 걸친 연구용역과 제작기간을 거쳐 450여쪽으로 제작됐다. 오랜 목재 건축물로 이루어진 전통 가옥과 그 속에서 발전해 온 유구한 문화, 회색 빌딩 사이 맑은 공기와 여유로움이 어우러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종로만의 독특한 멋을 엿볼 수 있다. 서울 사람도 모르는 서울의 이야기를 엮어 서울 시민은 물론 다른 지방 사람들도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구는 이 책을 1000부 발간해 동 주민센터와 새마을문고, 문화센터 등에 비치했다. 지역의 58개 학교에도 5부씩 배포해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광희문 일대 관광명소로

    광희문 일대 관광명소로

    조선시대 장례행렬 전용이었던 서울 광희문(光熙門) 일대가 관광명소로 거듭난다. 서울 중구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서울의 중심 중구 관광진흥 활성화 방안’으로 연말까지 광희문 일대 환경개선 마스터플랜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25일 밝혔다. 구는 ‘시구문(屍軀門·도성 내 시신을 빼내던 곳)’으로 불렸던 특성을 살려 전통 장례를 재현하는 등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곳으로 만들 방침이다. 이를 위해 광희문에 역사적 의미와 관련 사진 등 자료 전시시설을 마련하고, 광희문을 상징하는 BI(브랜드 이미지 통일화 작업)와 캐릭터를 개발한다. 광희문을 개방해 이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포토존과 포토아일랜드도 설치한다. 또 관광객들이 편하게 이동하도록 주변 보도 폭을 넓히고, 통행을 방해하는 시설물을 옮기는 한편 화장실과 판매점 등 편의시설을 확충하기로 했다. 광희문교회까지 청구로 100m 구간의 건물 간판 및 외관도 정비한다. 최창식 구청장은 “(광희문 인근) 명동과 동대문 일대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적 관광지”라면서 “역사적 유적지를 명소화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관광 특구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태양광의 쌀’ 폴리실리콘 대기업 투자 러시

    ‘태양광의 쌀’ 폴리실리콘 대기업 투자 러시

    ‘태양광의 쌀’이라 불리는 폴리실리콘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투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삼성·한화에 이어 LG그룹도 폴리실리콘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국내 업계를 대표하는 OCI(옛 동양제철화학) 역시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업체들의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 대한 장악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LG “年産 5000~1만t 공장 추진” 폴리실리콘은 태양전지에서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태양광 발전의 기초 소재로 높은 수익성을 자랑한다. 20일 태양광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이르면 2013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연산 5000~1만t 규모의 생산 공장을 건립할 방침이다. 공장은 전남 여수산업단지 내 66만여㎡ 유휴 부지를 활용할 예정이다. 삼성정밀화학은 지난 2월 미국 MEMC와 각각 150억원씩을 투자한 합작법인을 설립, 오는 2013년부터 울산에서 폴리실리콘 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화케미칼도 지난 11일 여수국가산업단지에 1조원을 투자해 연산 1만t 규모의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웅진폴리실리콘은 이미 연산 5000t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 준공 했다. 또 지난해 범현대가인 현대중공업과 KCC가 합작한 KAM이 연산 3000t 규모로 생산을 시작했고, SK케미칼은 2009년 타이완 SREC사와 폴리실리콘 기술 관련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뒤 진출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햄록, 바커사 등과 함께 폴리실리콘 업계를 이끌고 있는 OCI 역시 투자의 고삐를 죄고 있다. OCI는 이날 1조 8000억원을 투자, 올 하반기부터 전북 새만금산업단지 부지 내에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인 연산 2만 4000t 규모의 폴리실리콘 제5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3년 12월 5공장이 완공되면 OCI의 생산량은 8만 6000t으로 늘어나면서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하게 된다. OCI는 1분기 매출 9589억원, 영업이익 3523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OCI 관계자는 “메이저 공급업체들도 모두 2013년을 목표로 공격적인 증설을 진행 중이고, 경쟁력 있는 고객을 선점하기 위해 지금 증설을 추진하는 것”이라면서 “추가 증설로 신규 수요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0년 수요 작년의 10배 전망 폴리실리콘에 대한 기존 업체들의 증설과 신규 업체들의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향후 시장 전망이 좋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 세계 태양전지 설치량은 16.4기가와트(GW)로 당초 예상치인 8GW보다 두배 넘게 늘었다. 오는 2020년에는 150GW로 10배 가까이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GW는 33만 가구의 1년 전기 사용량과 맞먹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사설] 北 금강산관광 원하면 변화부터 보여라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이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의 효력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남한 지역을 통한 금강산 관광은 현대가 계속 맡지만, 북한 지역을 통한 관광은 북이 맡되 해외사업자에게 위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현대를 통해 관광 재개를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만큼 외화벌이가 다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시작한 중국 여행사를 통한 금강산 관광객 유치 활동의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현대와 우리 정부는 물론 “계약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조치는 남북 사업자 및 남북 당국 간 합의를 위반하는 것은 물론, 국제 관례에도 어긋나는 일로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밀어붙이기식 억지나 생떼는 통하지 않는다. 북한은 스스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적어도 유연해졌다는 평가를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진상 규명, 재발 방지, 신변안전 보장 등을 금강산 관광 재개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북한은 2009년 8월 방북한 현정은 현대 회장에게 신변안전 보장 등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 회장의 전언일 뿐, 우리 정부가 북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재발방지 약속 등을 통보받은 적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북한은 2010년 4월 말 현대아산의 외금강 주요 시설을 동결하거나 몰수하고 관리인원을 추방해 현대와 우리 정부에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방해 책동 운운할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외금강 주요 시설의 동결을 풀어야 한다. 그런 변화가 전제되어야 관광 재개가 가능하다. 우리 정부도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북한 탓만 하며 방관해서는 안 된다. 금강산 관광은 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북한의 개방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남북 관계 개선의 전기가 될 수 있다. 금강산 관광 금지가 장기화되면 그 자리를 중국을 비롯한 해외 자본이 메울 수도 있다. 현대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것 같다. 정부는 현대와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北 일방적 통보로 사업권 취소될 수 없다”

    “금강산 관광 재개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10일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측과 맺은 모든 합의가 일방적 통보로 취소되거나 효력이 상실되지는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표면적으론 금강산 관광이 하루 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일단 현대아산 측은 이번 조치가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북측이 현대의 독점 사업권을 취소했다기보다는 남측 관광이 장기간 중단된 현실에서 북측 경로를 이용해 관광을 추진하기 위한 임시 조치로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북측이 남측 지역의 관광 사업권은 현대가 계속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 만큼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2년 7개월간 개점 휴업 상태에서 관광 재개의 소식 대신 북으로부터 독점권 폐기 통보를 받은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그룹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4억 9000만 달러(약 5309억원)와 2300억원의 자금을 사업권 보장과 시설 투자에 쏟아부었지만 3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적자를 내 왔다. 2008년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이 각각 중단된 뒤엔 지금까지 4000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봤다.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손실은 6285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이미 현대아산의 사업 분야를 다변화화면서 대북사업 중단에 따른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6월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주관하는 공적개발원조(ODA)사업 9건을 수행하면서 추후 대북 사업 재개를 기다려 왔다. 아프리카·남미·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농어촌 기자재를 구입해 투입하거나 생산력 증대를 위한 기술 이전, 종합 개발 계획 수립, 교육 및 연수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아산 측은 KOICA의 국제지원사업 분야인 행정, 교육, 정보통신, 에너지, 환경 등으로 사업 분야를 광범위하게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최근 부동산업체 저스트알과 함께 ‘현대웰하임’이라는 브랜드로 도시형 생활주택 시장에 진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남북경협의 물류·용역사업을 주관하며 얻은 노하우를 활용해 해외 용역사업을 등 신사업 개발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금강산 관광사업 현대 독점권 취소”

    북한 대남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8일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 효력을 취소한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아태평화위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이제 더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가망도 없다.”면서 “우리는 현대 측과 맺은 금강산 관광에 관한 합의서에서 현대 측에 준 독점권에 관한 조항의 효력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북측 지역을 통한 금강산 관광은 우리가 맡아 하되 해외사업자에게 위임할 수 있고, 남측 지역을 통한 관광은 현대가 계속 맡아 한다.”면서 “(이 같은) 입장을 현대 측에 통고하고 그에 대한 공식 문건을 정식 넘겨줬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중국인 관광객의 금강산 관광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중국 여행사들은 지난해 5월 북한 단체관광을 시작하면서 외금강 관광을 포함한 상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대변인은 “우리는 합리적인 안을 내놓으면서 합의를 보기 위해 마지막까지 인내성 있게 노력했다.”면서 “그러나 현대 측과의 협상도 남조선 당국의 방해 책동으로 말미암아 끝내 결실을 볼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대그룹은 “당혹스럽다.”고 했고, 통일부는 “합의 위반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정몽구회장 10년만에 ‘계동 귀환’

    정몽구회장 10년만에 ‘계동 귀환’

    현대그룹 분화 이후 10년 만에 현대가(家)의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서울 계동 사옥에 귀환한다. 31일 현대차그룹 및 현대건설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 되찾기에 성공한 정몽구 회장은 4월 첫 날 계동으로 출근, 현대건설 직원조회를 주재하는 등 계동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1999년 시작된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갈라지면서 현대기아차가 2001년 4월 양재동으로 사옥을 옮긴 지 10년 만이다. 현대차그룹은 또 계동 현대사옥 본관 12층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사용하던 집무실에 정몽구 회장의 총괄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 사무실은 정 명예회장 타계 이후 10년 동안 비어 있었다. 정 회장은 당분간 양재동 현대차 사옥과 계동을 오가며 그룹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1일 아침 7시 20분 계동 현대사옥에 도착, 집무실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뒤 8시부터 본관 지하 2층 강당에서 부장급 이상 직원들이 참석한 조례에서 인사말을 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그동안 경영 위기를 극복한 현대건설 임직원들을 격려한 뒤 향후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이어 1층과 3층 등 사무실을 돌며 근무 중인 직원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저녁에는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현대차그룹 부사장급 이상, 현대건설 상무보 대우급 이상 간부들의 부부동반 상견례 모임을 갖는다. 한편 현대건설은 이날 계동 현대사옥에서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잇따라 열어 김창희 부회장과 김중겸 사장을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김 부회장은 총괄 경영을, 김 사장은 국내외 영업 등의 실무 경영을 맡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작업을 지휘한 김 부회장은 제주 출신으로 제주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2년 현대차에 입사, 20여년 간 자동차 영업을 담당한 영업 전문가다. 이어 2005년부터 현대엠코 대표를 맡아 당진 현대제철 건설 등 중요 사업을 잘 마무리하고 회사 매출액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리는 등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했으며, 해비치컨트리클럽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2009년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하고 매출 10조원을 달성하는 등 지난 2년간의 경영성과를 인정받아 최고경영진으로 남게 됐다. 주총에서는 또 이정대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박상옥 전 서울북부지검장·신현윤 연세대 교수·서치호 건국대 교수 등 4명이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됐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사설] 현대家 경영권 분쟁 낯부끄럽지 않나

    현대상선 경영권을 놓고 또다시 현대가의 집안 싸움이 우려된다. 지난 25일 현대상선 주주총회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한편의 ‘예고편’이 나왔다고 한다.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 간의 피 터지는 격전이 끝난 지 얼마됐다고 또다시 현대가 집안끼리 비릿한 경영권 싸움이 내비치고 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10년 전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에 벌인 ‘왕자의 난’이 이젠 ‘시아주버니·제수의 난’으로 비화되지는 않을까 낯 뜨겁기까지 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건설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내주고 난 뒤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현대그룹 경영권을 확고히 하고자 우선주 발행 한도를 현행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늘리는 내용의 현대상선 정관 개정안을 추진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범현대가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경영권 장악을 위한 의도”라고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 측은 “주주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범현대가가 일치단결해 현대그룹에 맞서는 형국은 부정하기 어려운 모양새 아닌가. 누가 봐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현대상선을 둘러싼 현 회장과 현대가의 경영권 분쟁은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현 회장은 남편 정몽헌 전 회장이 자살한 이후 끊임없이 현대가로부터 경영권 위협에 시달렸다. “현대그룹이 현씨 일가로 넘어가선 안 된다.”며 적통성을 운운하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현대가의 정씨 일가에서 나왔다.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이 어려울 때는 나몰라라 하더니 기사회생하니 벌떼같이 덤벼든 이들이 현대가 사람들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형제의 제수씨까지 남으로 몰며 그 회사까지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보면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지 싶다.
  •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 재현 조짐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 재현 조짐

    현대상선의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이 현대중공업그룹 등 일부 현대가의 반대로 부결됐다. 이로써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5일 서울 연지동 현대상선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는 현대중공업과 KCC,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 등이 참석했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상선의 우선주 발행한도를 현행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늘리기 위한 정관 7조 2항 변경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과 현대백화점 등의 반대로 찬성 64.95%, 반대·무효·기권 35.05%의 결과가 나와 출석주주 3분의2 찬성(66.7%)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현대그룹 측 우호지분은 42.25%에 달하지만 23.78% 지분을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현대삼호중공업 포함)에 범현대가가 힘을 보태면서 전세가 기울었다. 주총에서 현대중공업 측 대리인은 “보통주만으로도 자본조달이 가능한데 우선주를 늘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현대그룹 측은 “지난 24일 이미 찬성 위임장을 제출했던 현대산업개발이 갑자기 위임장을 회수해 가는 등 현대중공업이 영향력을 행사해 조직적으로 반대 준비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룹은 또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경영권 장악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전량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사 보수한도 승인 건은 현대중공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석 주주 과반수 찬성만 얻으면 되는 안건이어서 무리 없이 통과됐다. 한편 이날 현대상선 지분 7.75%를 가진 현대건설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인수작업이 끝나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현대상선 주총 앞두고 우선주 발행한도 변경안 충돌

    현대상선 주총 앞두고 우선주 발행한도 변경안 충돌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그룹이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우선주 발행 한도를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이 이를 반대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23일 현대상선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25일로 예정된 현대상선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정될 우선주 발행 한도 변경안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문제가 된 안건은 정관 7조 2항의 ‘우선주의 수와 내용’. 현대그룹은 해운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 등을 이유로 우선주 발행 한도를 현행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변경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번 정관 변경은 향후 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정관 변경으로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 현대증권 등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로 얽힌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우선주 발행 과정에서 실권주가 발생하면 자사주 등으로 편입돼 현대그룹 우호 지분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우선주 발행 반대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고 분석된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지분의 23.8%를 보유한 대주주다. 주총에서 정관 변경안이 통과되려면 출석한 의결권의 3분의2 이상과 전체 주식의 의결권 중 3분의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현대그룹이 행사할 수 있는 현대상선의 의결권 있는 지분은 42.25%. 현대중공업그룹과 KCC, 범현대가 지분을 합하면 38.73%에 달한다. 범현대가의 동의 없이는 정관 변경이 불가능한 셈이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유상증자에 불참하면서 더 이상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비난했다. 현대차그룹에 대해서도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 7.8%를 조속히 현대그룹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그룹 측은 “우선주 발행 한도 확대가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반대 의견을 냈다.”면서 “아직 보통주 발행 한도도 1억 2000만주나 남은 상태”라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범현대家 정주영 명예회장 선영 집결

    범현대家 정주영 명예회장 선영 집결

    21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범현대가가 경기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 대거 집결했다. 행사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지만 시간차를 두고 입장, 마주치지 않았다.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아직까지 현대차로부터 구체적인 화해 제안은 없었고 (추가소송 여부도) 현대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으로 쌓인 양측의 앙금 해소를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우동 선영에는 오전 일찍부터 범현대가 인사들이 몰렸다. 오전 10시쯤 시작된 가족 참배에는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3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과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등이 참석했다. 정몽준 의원은 해외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정몽구 회장은 앞서 오전 9시 47분쯤 선영에 도착, 참배를 마친 뒤 오전 10시 20분쯤 승용차를 타고 “감사합니다.”란 말을 남긴 채 선영을 빠져나갔다. 현정은 회장은 오전 10시 29분쯤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선영에 도착했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 임직원 200여명과 선영을 참배한 뒤 오전 11씨쯤 묘역을 떠났다. 한편 현대중공업도 이날 울산 본사 사내 체육관에서 정 명예회장을 추모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추모식에는 민계식 회장, 이재성 사장 등 임직원 5500여명이 참석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故정주영회장 10주기… 범현대家 한자리

    故정주영회장 10주기… 범현대家 한자리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 제삿날인 20일 저녁 정 명예회장의 생전 청운동 자택에 범현대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범 현대가의 회동은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지난 10일 추모사진전과 14일 추모음악회에 이어 이날 정 명예회장의 자택에 다시 모여 제사를 지냈다. 통상 제사가 치러지는 오후 9시가 되기 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형제들과 정의선 부회장 등 3세들, 사촌들이 청운동 자택에 모두 들어섰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이 1시간 30분 전인 오후 7시 29분쯤 가장 먼저 청운동을 찾았고, 정몽준 의원이 8시 42분쯤 손수 운전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청운동 제사에 참석했다. 정몽구 회장도 오후 8시 52분쯤 카니발 승용차를 타고 자택으로 들어섰고, 이에 앞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오후 8시 35분쯤 소복을 입고 딸인 정지이 전무와 함께 자택으로 들어갔다. 이외에도 정 명예회장의 조카인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과 정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 정일선 비앤지스틸 대표, 정대선 비에스엔씨 대표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제사 역시 앞선 두 차례의 추모행사에서와 같이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의 만남에 관심이 쏠렸다. ‘집안싸움’으로 번졌던 현대건설 인수전이 끝난 뒤 갖는 세 번째 만남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과 현 회장은 앞선 두 차례의 만남에서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과 관련된 각자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두 회장은 침묵을 지킨 채 자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둔 정몽구 회장은 앞서 열린 사진전에서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다른 곳에 매각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 의향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나흘 뒤 현 회장은 “현대상선 지분은 우리한테 와야 한다.”면서도 “현대차그룹 측의 화해 제안이 오면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혀 어느 정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것처럼 보였다. 정 회장과 현 회장이 10주기 추모 행사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뭔가 속깊은 이야기가 오갈 가능성도 있다. 가족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현대가인 만큼 ‘왕자의 난’부터 ‘현대건설 인수전’까지 쌓인 앙금을 계속 가져가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그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받은 데 이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추모 화환을 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김양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통일전선부장 겸임) 명의의 추모 화환은 지난 19일 현대아산 개성사업소에 전달됐다. 화환의 빨간색 리본에는 ‘고 정주영 선생을 추모하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현대그룹 측은 절차상의 문제로 추모글이 적힌 화환의 리본만 받았고, 정 명예회장 기일인 21일 리본을 다른 화환들과 함께 선영에 배치할 예정이다. 앞서 18일에는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현대아산 금강산 사무소를 찾아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국방위원장의 말씀을 직접 전하는 것’이라며 구두 친서를 읽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정주영 선생은 민족화해와 협력의 길을 개척하고 북남관계 발전과 조국통일 성업을 위해 참으로 큰일을 했다.”면서 “그의 명복을 기원하고 아울러 현대 일가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 부위원장이 낭독한 김 위원장의 친서를 현지에 있던 현대아산 직원이 받아 적어 서울에 전달했다. 북한은 2001년 3월 21일 정 명예회장이 사망하자 사흘 뒤인 24일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 조문단 4명을 남한에 보내 조의를 표시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조전을 전달한 바 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범현대家 화합의 멜로디로 다시 뭉쳤다

    범현대家 화합의 멜로디로 다시 뭉쳤다

    “(정 명예회장은) 참으로 위대한 분이셨다. 그분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준 명언이다.”(박희태 국회의장)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 추모식과 추모음악회가 14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오는 21일 고인의 기일을 앞두고 열린 행사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정몽준 국회의원 등 고인의 가족들과 추모위원장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황식 국무총리, 박희태 국회의장, 현인택 통일부장관,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 등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환희의 송가’등 1시간 연주 손경식 대한상의회장, 이희범 경총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회장 등 재계 인사와 언론·체육·연예계 인사 등 참석 인원만 3000명을 넘었다. 정 명예회장의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지난 10일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 이어 모습을 나타냈다. 추모식은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어 이홍구 위원장의 추도사와 박희태 의장, 김황식 총리, 정몽구 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이 위원장은 “(정 명예회장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일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도 “선친의 창의적 도전정신과 근면 성실한 마음가짐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며 “선친의 열정이 오늘 다시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아 무한한 존경과 깊은 감회를 금할 길이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 회장 “화해 제의오면 고려할것” 20여분간의 공식 추모식 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지휘로 추모음악회가 진행됐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와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 등이 1시간 동안 연주됐다. 이번 10주기 추모행사는 사진전에서 음악회에 이르기까지 범현대가 기업들이 공동 참여하는 통합행사로 치러졌다. 범현대가의 임원이 참여하는 추모위원회가 구성됐고, 장자 격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행사 실무를 주도했다. 한편 이날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정 회장은 오후 6시 30분쯤 먼저 도착했고, 현 회장이 도착한 오후 7시 15분쯤에는 지하 사진 전시장에 머물러 있었다. 현 회장은 “오늘은 범현대가가 공존하고 화합하는 자리”라면서도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이 우리에게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정 회장으로부터 화해 제의를 받은 적은 없지만 제안이 오면 생각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이순녀·오상도기자 coral@seoul.co.kr
  • ‘왕자의 난’ 갈등 떨치고 옛 名家 회복

    ‘왕자의 난’ 갈등 떨치고 옛 名家 회복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10년. 옛 현대그룹을 이룬 기업들은 뭉뚱그려 ‘범현대그룹’으로 불리고 있다. 범현대그룹은 분열에 따른 후유증을 딛고, KCC·현대백화점그룹·한라그룹 등과 ‘범현대가’를 이뤄 국내외 시장에서 옛 명성을 거의 회복한 상태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범현대그룹은 재계 지도에서 10여년 전 못지않게 덩치를 키웠다. 2000년 공정위자료에 따르면 옛 현대그룹은 35개 계열사로 자산기준에서 삼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LG반도체와 한화정유, 기아차를 인수·합병(M&A)을 통해 끌어들인 덕분이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지난해 차남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차그룹(재계 2위)과 6남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재계 8위)은 1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며느리인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과 그룹 모태인 현대건설그룹도 각각 재계 순위 20위권을 넘나들고 있다. KCC 등 범 현대가의 자산까지 아우르면 자산 규모는 190조원을 훌쩍 넘겨 삼성과 거의 맞먹는다. 잃어버린 10년일지도 모르는 현대가의 시련은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비롯됐다. 계열사 부실로 계열 분리라는 살점 떼어내기도 경험했다. 정 회장 타계 1년 전부터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정 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아닌 5남인 고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 했다. 갈등이 빚어졌고 정몽헌 회장은 그룹 모태인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등 26개 계열사를 물려받았다. 정몽구 회장도 현대차 등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를 갖게 됐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분리해 나갔다. 고난은 이어졌다. 정몽헌 회장의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잇따라 부도를 맞고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정몽헌 회장은 대북사업에 매진하던 중 대북 송금 관련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03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몽헌 회장의 아내인 현정은 회장이 그룹 수장에 오르며 범현대가의 ‘적통론’ 싸움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가는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지난해 기준 계열사만 42개로, 삼성에 이어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랐다. 지난 8일에는 현대건설을 채권단 공동 관리에 들어간 지 10년 만에 되찾아 오기도 했다.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도 16개 계열사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2009년 말 현대건설과 함께 현대를 상징하던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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