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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의원」 사법처리 이모저모

    ◎영장보류 전례의식… 검찰 긴장속 대기/“세사람 모두 총선에 쓸 홍보물 제작” 검찰은 30일 하오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등 국회의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지난 23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된 점을 의식한 듯 밤 늦게까지 영장 발부 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의원 등 현역의원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날 자정이 넘도록 발부되지 않자 최환서울지검장과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3차장 등 검찰 관계자들은 검찰청사에 남아 긴장된 모습으로 영장이 발부되기를 기다렸다. 최지검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피하며 『오늘도 밤늦게까지 남아 영장 발부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이차장도 31일 새벽까지 차장실에서 두문불출.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5·18사건에 대해 지난 18일 이학봉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과정에서 공소시효 기산일이 비상계엄 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는 검찰측 주장을 받아들였으므로 이번에도 같은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본다』고 자신하면서도 『그러나 법원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지켜지는 검찰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서 일말의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편 당직판사인 서울지법 유해용판사는 30일 자정쯤 『심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니 새벽 2시까지는 판사실로 전화하지 말아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 ○“개인 비리도 수사” ○…검찰이 이날 브리핑에서 질문도 받지 않고 『구속된 세 의원의 부정비리 혐의도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그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 검찰주변에서는 전두환전대통령을 비롯한 5·18사건 관련자들이 끝까지 당시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대응,이들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이날 허화평의원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옥중출마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대목과 연관지어 옥중당선을 막기 위한 포석으로 평가하기도. ○“다시 시민 곁으로” ○…검찰은 이와관련,『이들 세명이 옥중출마에 대비해 총선기간동안 주민들에게 배포할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등을 제작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 특히 허화평의원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옥중출마 의사를 명백히 밝힌 뒤 유인물을 통해 『14대 총선에서 포항시민의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신한국당에 입당했으나 이제 다시 포항시민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주장,출두를 앞두고 구속에 대비했음을 입증. 정의원이 출두할 때 서울지검 정문앞에는 정의원의 대구 서갑 지역구민 50여명이 몰려와 『정호용선생님 사랑합니다』『정의원님 건강하십시오』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며 청사 현관까지 따라오기도.
  • 한양 법정관리인 김정남씨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는 26일 공석중인 (주)한양의 법정관리인으로 김정남현관리사장을 선임했다.
  • 이회창씨 “개혁은 「보수」 지키는 방편”/신한국 입당 이모저모

    신한국당은 24일 입당절차를 마친 이회창전국무총리를 극진히 예우했다.오는 4월 총선에서 그에게 거는 신한국당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다소 시끌벅적하게 느껴질 만큼 의례도 마련했다.「이회창카드」를 기선잡기로 한껏 활용하려는 뜻이다. ○…당지도부는 이전총리의 첫 출근을 최대한 부각시키느라 애썼다.이날 상오 입당서에 서명하려고 찾아온 이전총리를 강삼재사무총장·손학규대변인·강용식기조위원장등은 현관에서 영접했다.현관에 도열한 사무처요원 1백여명은 「이회창」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돋우었고,여직원은 꽃다발을 증정했다.이같은 환영농도는 지난번 입당한 박찬종전의원 때와는 달랐다. 이전총리는 곧바로 총장실에 들러 강총장이 건네준 입당서에 서명하자 강총장이 『입당해주셔서 고맙습니다.잘 모시겠습니다』라고 인사하자 『마음이 무겁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어 고위당직자회의가 열리고 있는 김윤환대표실을 찾아 김대표에게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으며 이에 김대표는 『오히려 우리가 잘 부탁해야죠』라고 환영했다. 비공개회의에서 이전총리는 『정말 마음이 무겁다.정당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니까 한 집안식구라고 생각하고 잘 보살펴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김대표는 『이전총리 입당이 긍정적으로 나온 여론조사결과를 보니 이제 선거를 할 만하다』고 화답했다. ○…이전총리는 이어 기자실에 들러 『현정부의 개혁에 문제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한 뒤 『그러나 개혁과 안정을 해내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국외자로 방관만 할 수 없었다』고 입당소감을 피력했다.그러면서 『개혁은 보수의 방편』이라고 규정했다. 이전총리는 『정치에 입신해 법조생활·총리·감사원장 때의 원칙과 행동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일관됨을 강조한 뒤 『어떤 현실에 부딪칠지 모르지만 부정적으로 몰리는 정치인으로 변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의 「안정론」에 대해 『지금은 야당에도 좋은 분이 많아 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문민정부에 참여한 저로서는 이정권 동안에 안정발전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입당했다』고 대답했다. 이전총리는 당사 6층 고문실에서 강용식기조위원장 등으로부터 당무에 관해 브리핑을 받은 뒤 김대표가 마련한 오찬장인 63빌딩으로 향했다.
  • 8인조 폭력배 밀양서 한밤 난동/병원까지 쫓아가 2명 살해

    ◎술집 종업원과 난투극… 주점 전소/조사하던 경관 3명도 기습 몰매/“이권 다툼” 추정… 일당 전국 수배 【밀양=강원식기자】 한밤중에 밀양시내가 무법천지가 돼버렸다. 술을 마시던 폭력배들과 술집종업원간에 싸움이 붙어 술집이 몽땅 타버렸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던 종업원과 그 친구는 응급실에서 폭력배들의 흉기에 찔리거나 맞아 숨졌다.피해자들을 조사하던 경찰관 3명도 폭력배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중상을 입었다. 지난 86년 8월 서울의 서진룸살롱에서 일어났던 조직폭력배간의 살인사건을 연상시킨다.지방에서 활보하는 폭력배들의 세력확장과 치안부재를 말해주는 사건이다. 22일 상오2시쯤 밀양시 내2동 연세병원에 강영성씨(29·폭력 등 전과 10범)와 박정목씨(21·전과 5범)등 폭력배 8명이 식칼과 각목 등을 들고 나타나 현관유리창 등을 때려부순뒤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박임재씨(28)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그의 친구 하상조씨(29·무직)를 각목으로 때려 숨지게 했다. 이에 앞서 이들은 술집에서 벌어진 폭력사건의 경위를 병원에서조사하던 밀양경찰서 북성파출소 박종웅경장(31),한승환순경(28),삼문파출소 정종환경장(35) 등 경찰관 3명을 각목으로 마구때려 중상을 입혔으며 병원앞에 서 있던 순찰차 1대를 불태웠다.경찰들은 권총과 함께 실탄을 별도로 휴대하고 있었으나 이들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폭력배들은 유리창과 기물 등을 부수며 20여분동안 난동을 부리다 달아났다.그 동안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직원과 환자 등이 놀라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강씨 등 폭력배들은 이보다 2시간쯤 앞선 21일 하오 11시50분쯤 병원에서 2㎞쯤 떨어진 밀양시 삼문동 화랑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대접이 소홀하다며 시비를 걸었다.종업원 황승욱씨(27)와 김창섭씨(21)및 시비소식을 듣고 달려온 인근 허심청나이트클럽 종업원 박임재씨(28)들이 말리자 폭력배들은 이들을 각목과 돌멩이로 마구 때리고 달아났다. 난동을 부리는 통에 불이 나 3층건물에 세든 지하 43평짜리 술집 내부를 모두 태우고 3천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황씨는 당초 연세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인근 영남병원으로 옮겨 화를 면했다. 경찰은 달아난 범인들을 전국에 수배하는 한편 새로 개업한 술집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조직폭력배들간의 다툼일 가능성도 수사하고 있다.
  • 김대통령 군교회서 첫 예배/내일 68회 생일 앞두고

    ◎대통령으론 40여년만에 처음 방문/심상찮은 북정세 관련 군 격려·위로 김영삼대통령은 일요일인 21일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국방부 구내 국군중앙교회에서 군인신도 및 가족 등 3백여명과 같이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취임후 예전부터 다니던 충현교회를 몇차례 찾은 적은 있지만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본 것은 처음이다.또 성탄절이 아닌때 교회에 직접 간 것도 이례적이다.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인교회를 방문한 것도 의미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오는 23일 68회 생일을 앞두고 있는데다 군을 격려한다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취임한뒤 특별한 생일 행사를 갖지 않고 있다.평소대로 가족들과 단출한 식사모임을 갖는 정도다.취임뒤 첫 생일때 몇몇 인사가 축하꽃을 보냈다가 『그럴 필요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번에도 생일과 연관된 일정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대신 이날 교회 예배를 본 것이다.또 대통령이 군인교회를 찾은 것은 이승만전대통령 이래 40여년만에 처음이다.최근 북한 정세가 심상치 않은 것과 관련,군의 사기진작도 고려한 듯 싶다. 김대통령은 이날 국군중앙교회 장로인 권령해안기부장과 이양호국방장관 등과 함께 예배를 본뒤 마지막 순서로 신도들과 애국가를 불렀다. 김대통령은 예배가 끝난뒤 정재성담임목사,권부장·이장관 부부와 차를 마시며 교회 역사와 신도수,군내부의 사이비종교 침투대책을 화제로 환담했다. 김대통령은 『그물이 가득 차는 해라는 제목의 예배 설교대로 올해는 베드로의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듯 국민 모두의 마음 속에도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이어 『전후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군장병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환담을 끝낸 김대통령은 때마침 여군하사관 후보생 30여명이 현관에 모여있자 일일이 악수를 나눴으며 교회입구 계단에서 신도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 모녀 등 일가족 4명 집에서 숨진채 발견

    【안산=조덕현기자】 12일 하오 6시10분 쯤 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동명아파트 105동 1203호 김홍식(40)씨 집에서 부인 이쌍례(36)씨와 딸 경희(17),건희양(13),아들 효성군(11) 등 일가족 4명이 숨지고 김씨가 실신해 있는 것을 이씨의 친구 김정호씨(34·여·안산시 와동 764)가 발견했다. 김씨는 『최근 며칠 동안 이씨로부터 연락이 없어 열쇠점에 의뢰해 잠긴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경희와 건희양은 건넌방에,이씨와 효성군은 안방에 쓰러져 숨져 있었고 남편 김씨는 이씨 곁에서 신음중이었다』고 말했다.
  • 영양걸핍… 심각상황 아닌듯/전씨 병원이송 이모저모

    ◎영양제 투여 거부… “단식 계속” 의지/병원주변 경비 강화로 마찰 속출/이순자씨 백담사서 예불중 급거 상경 전두환 전대통령은 단식 18일째인 20일 밤 11시40분 안양교도소를 떠나 경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영양제와 수액투여 등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전씨는 검진결과 탈수증상과 영양결핍증세를 보이고 있으나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전씨의 소송대리인 이양우 변호사는 21일 『어른께서는 건강상태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수액주사를 맞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병원에 이송된 후에도 단식을 계속할 것으로 추정. 이변호사는 이날 상오 11시20분쯤 전씨가 입원중인 경찰병원 7102호실을 방문한뒤 『어른께서는 「나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마라.링거주사는 안맞겠다」고 하셨다』고 전하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등 건강이 매우 악화돼 심각한 상태』라고 소개. 그는 전씨의 병원이송과 관련,『사전에 법무부나 검찰로부터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며 사전협의설을 일축. ○…이날 하오2시10분쯤 강진국(57) 경찰병원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전씨의 신체상황은 정상이며 병원으로 오기 전과 건강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강원장은 『미결수신분인 전씨는 법무부소관이므로 앞으로 모든 브리핑은 상·하오 2차례 법무부 공보관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 ○…법무부는 전씨의 입원실과 옆방인 7101호실에 각각 교도관 3명과 5명을 배치하는 등 철통같은 경계망을 구축. 또 경찰은 7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구 5곳에 30여명의 전·의경을 배치했는가 하면 정문과 병원외곽,현관,응급실출입구 등에서 모든 출입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 이에 따라 간병과 면회를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가족과 경비경찰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마찰이 속출. ○…지난 7일부터 백담사에 머물며 예불을 올려 온 이순자씨는 남편 전씨가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낮12시40분쯤 서둘러 상경. 이씨는 이날 상오7시쯤 아침예불을 마친뒤 서울에 있는 둘째아들 재용씨로부터 병원이송소식을 전해듣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가 점식식사를 마치자마자 함께 예불을 올리던 전씨의 막내동생 점학씨와 함께 서울로 출발. 백담사측은 『전씨가 병원에 이송된 뒤에도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는 말에 이씨의 마음이 흔들린 것같다』면서 『짐을 그대로 두고 간 것으로 보아 조만간 다시 돌아와 예불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
  • 두환­노태우 군사반란죄 공소장 전문

    피고인 전두환은 1955.9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1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제1사단장등을 거쳐 1979.3부터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중 10·26 중앙정보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세칭 「10·26사건」(이하 「10·26사건」이라한다)이 발생함에 따라 10·27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부소속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라한다)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1980.4.14부터 7.17까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5.31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근무하다가 8·6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8·27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9.1,취임하고 다시 1981.2.25 개정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3.3 취임한후 1988.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자, 같은 노태우는 위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서 1955·9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9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거쳐 「10·26사건」당시에는 제9사단장으로 근무하였으며 그후 수도경비사령관,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1981·7 육군대장으로 전역한후 정무제2장관,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등을 역임하고 1985.2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및 총재로 재직하다가 1987·12·16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2·25 취임한후 1993·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자로서 1995·12·5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서울지방법원에 구속기소되어 현재 재판계속 중에 있는자 등인바, 「10·26 사건」이후 국내정치상황은 유신헌법을 개정하여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79·11·8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개정을 통한 정치발전을 약속하고 11·21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창출이 모색되는 가운데 12·8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행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해체되어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군 내부에서도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비롯한 군수뇌부가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10·26사건」이후 발생한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 국한함으로써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정국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피고인 전두환이 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 「10·26사건」과 관련하여 직무유기혐의로 구속된 이재전 대통령경호실 차장의 석방,청와대에서 발견된 금원의 처리,부정축재자의 처리 및 재산몰수,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허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승화 총장과의 사이에 잦은 의견대립으로 인해 마찰을 빚어 오던중,11월 중순경에 단행된 군인사에서 비정규육사 출신들이 군요직에 배치되고 정규육사 출신의 피고인등이 중심이 된 소위 「하나회」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자신들의 군내 입지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고 12월 초순경 군 일각에 피고인 전두환이 잦은 월권행위와 군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으로 곧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정승화총장이 국방부장관 노재현에게 피고인 전두환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피고인등은 위 전두환에 대한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하나회」소속 장교들의 군내입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군의 주도권 장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정승화총장이 「10·26 사건」당시 박대통령 시해 현장부근인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본관 식당에 있다가 김재규와 육군본부(이하「육본」이라한다)로 동행한 사실로 인한 일부 군인들 사이에 정승화총장이 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기화로 이미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정승화총장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함으로써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하고 12·7경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한다)에서 서로 만나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 연행일을 12·12로 결정하고 피고인 전두환이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육군중령 이학봉에게 연행장소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12·8경 육군참모총장 공관(이하 「총장공관」이라 한다)을 연행장소로 결정한후 12·9경 위 이학봉,보안사인사처장 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육군대령 허삼수,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합수부 수사2국장 육군대령 우경윤 등에게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정승화총장의 연행에 대응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수도경비사령관 육군소장 장태완,육본 헌병감 육군준장 김진기 등을 12·12 당일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 차단키로 하고 피고인 노태우 등 소위 「하나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 주요부대 지휘관들은 그날 저녁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라 한다)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필요시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유학성,제1군단장 육군중장 황영시,수도군단장육군중장 차규헌,제20사단장 육군소장 박준병,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제3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최세창,제5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장기오,수경사 제30경비단장 육군대령 장세동,수경사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금진영,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대령 허화평,위 이학봉·허삼수,보안사 정보처장 육군대령 권정달,위 우경윤,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육군대령 성환옥,수경사 제33헌병대장 육군중령 최석립,육본 헌병대장 육군중령 이종민,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수경사 헌병단장 육군대령 조홍,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육군중령 신윤희,보안사 보안처장 육군대령 정도영,제30사단장 육군소장 박희모,제30사단 제90연대장 육군대령 송응섭,제2기갑여단장 육군준장 이상규,제9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구창회,제9사단 제29연대장 육군대령 이필섭,제9사단 작전참모 육군중령 안병호,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육군중령 서수열,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육군중령 박덕화,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 육군중령 박종규등과 순차로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는 사전계획에 따라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12 18·00경부터 19·00까지 사이에 위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는 한편,위 허화평·권정달·정도영 등은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 상황을 파악,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위 조홍은 미리 계획한대로 12·초경 계엄업무로 수고하는 수도권 주요지휘관들을 보안사령관이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위 장태완·정병주·김진기등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12·12 18·30경 약속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상호불상 한정식집에 오게하여 유인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오전 국군보안사령관 사무실에서 현직 육군 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하려면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를 무시한채 총기와 실탄을 준비하여 강제적인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위 허삼수등에게 지시하고 이에 따라 허삼수·우경윤·성환옥·최석립·이종민등은 같은날 18·00경 합수부수사관 7명,경복궁 구내 주둔 수경사 제33헌병대 3개 제대 병력 60여명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집결시켜 총장공관 경비병등을 제압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권총과 엠(M)16 소총으로 무장케 한 다음 18·50경 정당한 이유없이 위 부대를 인솔하고 수소를 이탈하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총장공관에 도착,각자 분담한 임무에 따라 무장한 합수부 수사관들을 총장공관 부관실,공관입구 헌병초소,공관현관등을 제압하고 제33헌병대 병력은 퇴로를 확보하고 19:10경 허삼수·우경윤이 총장공관 응접실로 들어가 정승화 총장에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받아야 하겠으니 녹음준비가 되어 있는 곳으로 가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하였으나 정승화 총장이 이를거부하면서 수행부관 육군소령 이재천에게 국방부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가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하여 동인이 부관실에서 전화를 걸려고 하자 합수부 수사관 육군소령 김대균,육군소령 한길성,육군상사 박원철등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권총을 난사하여 상관인 이재천과 경호장교 육군대위 김인선등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머리와 허리 등에 총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 무렵 허삼수·우경윤은 정승화 총장을 끌고 나오던 중 우경윤이 성명불상자로부터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 부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길성이 허삼수를 도와 정승화 총장의 양팔을 붙잡고 박원철은 엠(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응접실 대형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승화 총장을 위협하면서 함께 끌고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태워 19·30경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18·20경 위 이학봉,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소재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새로운 혐의 사실이 발견되어 연행.조사하여야 하겠으니 재가하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하였다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므로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재가를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20:20경 위 정동호·고명승에게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여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하고 정동호·고명승 등은 그시경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제55경비대대 부대대장 육군소령 권중원 및 5분대기조 24명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출동하여 20·40경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구정길과 그 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후 그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2개 제대 병력 64명을 추가로 출동시켜 그 일대에 배치함으로써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1·30경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 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하고 그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정승화 총장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고인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여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고인등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거나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숨긴채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제26사단,수도기계화사단등에 전화를 걸어 그 부대장이나 참모들에게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 달라고 회유하여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3·00경 위 박희도에게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고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오라고 지시하고 위 조홍에게는 수경사 헌병단 병력을 출동시켜 수경사에 있는 육본 지휘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위 최세창에게는 특전사령관을 체포한후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으로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24·00경 위 장기오에게는 제5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라고 지시하고 피고인 노태우는 12·12 24·00경 위 구창회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황영시는 12·13 00·30경 위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01·10경 위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0·05경 서울 강서구 공항동소재 제1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 1,2,5,6대대 병력 1천5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행주대교·능곡·수색을 거쳐 01·3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한후 제1,2대대 병력은 육본 정문에 근무중인 헌병등을 무력으로 제압한후 무장을 해제시키고 안으로 진입하여 육본 건물을 점령하고 제5,6대대 병력은 국방부정문에 근무중인 헌병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국방부 청사를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제5대대 제15지역대 소속 성명불상 장병들이 국방부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 육군병장정선엽에게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고 02·40경 국방부장관실에 난입하여 합동참모의장육군대장 김종환등 장성 8명의 무장을 해제시킨 다음 국방부 청사를 수색한 끝에 03·50경 지하 1층 상황실 입구에서 국방부장관 노재현을 발견하여 보안사로 연행하고, ○위 최세창은 12·12 23·30경 특전사령부(이하 「특전사」라 한다)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박종규는 24·00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특전사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으로 하여금 사령부 외곽을 포위케 한 다음,육군대위 김흥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과 함께 안으로진입하여 위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이 이들에게 엠(M)16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여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정병주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제1수장골무지우부개방성분쇄골절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최세창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2·00경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 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03·00경 경복궁으로 진주하고, ○위 장기오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5공수여단 제23대대장육군중령 정낙준과 제26대대장 육군중령 장용주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정낙준·장용주 등은 12·13 02·00경 인천 북구 부평동 소재 제5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23대대 및 제26대대 병력 4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경인고속도로,제1한강교를 거쳐 03·2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하였으나 국방부와 육본이 제1공수여단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있어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진주하고, ○위 조홍은 12·12 23·30경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에게 당시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수경사에 모여 있던 위 장태완·윤성민,육본 작전 참모부장 육군소장 하소곤,합동참모본부장 육군중장 문홍구 등 육본측 장성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신윤희는 12·13 03·00경 헌병단 소속 육군대위 임대식·윤태이 등으로 하여금 헌병 55명을 지휘하여 사령부 외곽과 1,2층 복도를 포위케 한 후 03·40경 육군대위 한영수,육군대위 이재우,헌병단 정보과장 군무원 최순호,성명불상 헌병 5명과 함께 사령관실로 진입하여 장태완·윤성민·하소곤·문홍구 등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한영수가 엠(M)16 소총 1발을 발사하여 상관인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좌흉부관통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이필섭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구창회의 지시를 받아 12·13 02·20경 경기 고양군 벽제읍 소재 제29연대 연병장에서 제29,30연대 병력 1천3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구파발·홍은동을 거쳐 03·30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이상규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16전차대대 대대장 육군중령 김호영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김호영은 12·13 02·30경 경기 파주군 금촌읍 아동리 소재 제2기갑여단 연병장에서 제16전차대대 전차 35대와 병력 1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통일로·구파발·서대문 등을 거쳐 03·25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위 송응섭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송응섭은 12·13 03·30경 고양시 신도읍 삼송리에 집결한 제90연대 병력 1천1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홍은동·세검정을 거쳐 06·20경 고려대학교 운동장으로 진주함으로써 계엄지역에서 각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각 진퇴시키고 정당한 이유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각 수소를 이탈하고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이재천·김인선·정병주·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각 미수에 그치고 초병인 정선엽을 살해함과 동시에 피고인 전두환은 수괴로서,같은 노태우는 중요업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것이다.
  • “피고인 노태우”에 들릴듯 말듯 “예”/노씨 재펀­공판 이모저모

    ◎헌정사상 첫 사건… 긴장의 대법정 6시간/한보 정태수 회장 직업 묻자 “회사원” 답변 18일 상·하오에 걸쳐 6시간여동안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대통령이 법정에 선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은 팽팽한 긴장으로 일관했다.노태우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의 답변은 물론 일거수일투족에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법정안 표정◁ ○…노씨를 비롯한 관련피고인 15명에 대한 공판은 상오10시1분 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 김영일 부장판사의 사건이름과 노씨에 대한 호명으로 시작. 재판부는 노씨를 호명한데 이어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을 노씨 옆에 서도록 지시. 이 사이 노씨는 다른 피고인들이 모두 입정하고 난뒤 착석해야 하는 법정규칙을 몰라 자리에 앉았다가 『노태우피고인 일어서십시오』라는 제지를 받고 기립. 이어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최원석 동아그룹회장,장진호 진로그룹회장,이준용 대림그룹회장 등 3명이 둘째줄에 섰고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이건 대호건설회장,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금진호(신한국당)의원,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이원조 전의원,이경훈 주식회사대우회장,이태진 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은 피고인석 맨 뒷줄에 착석. ○…피고인들이 모두 서자 재판장은 보도진에게 40초동안 피고인들의 뒷모습을 촬영하도록 허가한뒤 10시6분쯤 인정신문에 돌입. 인정신문은 재판부가 『피고인 노태우』라고 부르는 것으로 시작. 재판장과 노씨간에 짤막한 문답이 오갔고 인정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노씨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일관. 재판장은 노씨의 목소리가 너무 작은데다 주소마저 명확하게 밝히지 않자 딱딱한 목소리로 직접 주소를 호명하며 재차 질문. 15명에 대한 인정신문에서 노씨의 목소리가 가장 작았고 뒷줄에 선 피고인가운데 몇몇은 목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자 9번째 이현우피고인부터는 마이크를 사용. 또 삼성 이피고인은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신문에 『삼성그룹 본사에서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비교적 길게 서술형 답변을 했고 다른 재벌총수들도 「○○그룹 회장」이라고 밝혔으나 휠체어를 타고 나온 한보 정총회장만 유독 「회사원」으로 말해 눈길. 김부장판사는 인정신문이 끝난뒤 『피고인들의 모두진술은 공판이 진행되면서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모두진술 생략을 주문. ○일부러 눈길 돌려 ○…10시26분쯤부터 시작된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노씨는 뇌물수수사실 추궁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란 답변으로 일관.검찰이 구체적인 정황을 대며 공격하면 『그런 것같습니다』로 후퇴.『이제는 기억이 납니까』란 질문에는 『어렴풋이 생각납니다』라고 답변. ○…낮 12시10분쯤 상오공판을 마치고 재판부가 퇴정하자 삼성그룹회장 이피고인은 옆자리에 선 노피고인에게 『건강은 어떠냐』는 듯한 요지의 인사말을 잠시 건네기도. 노피고인은 이에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또 노피고인 주변의 대우 김회장과 동아 최회장등 다른 재벌총수와 금진호·이원조피고인등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일부러 눈길을 돌리는 모습. ○…이현우 전경호실장은 이날 검찰신문에서 지난 93년8월 금융실명제 실시발표직후 금진호의원등과 모여 가·차명계좌로 예금된 비자금의 실명전환에 대해 숙의한 적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전실장은 『금의원의 제의로 기업인들을 통해 실명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진술하면서 『금의원이 상공부장관,무역협회고문등을 역임해 기업인들을 많이 알고 있어 이를 맡기로 결정했다』고 소개. 이전경호실장은 또 『지난번 검찰조사에서는 장시간의 조사로 정신이 복잡해 자포자기상태로 제대로 진술을 하지 못했다』며 상당부분의 범행사실을 부인. ○…삼성 이피고인은 김진태 검사의 신문말미에 『다른 그룹과 비교할때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김검사님이 원망스럽다』고 억울한 심정을 표출. 이피고인은 또 『개인적인 얘기지만 삼성은 전통적으로 뇌물성 기부를 한 예가 거의 없었으므로 부당하게 손해를 끼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하는등 강도높은 항변을 제기. 또 재벌총수들은 노씨에게 돈을 준 이유에 대해 한결같이 『선처를 바라고 준 것은 아니며 단지 사업을 경영하는데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위해 어쩔 수 없이 주었다』고 주장. ○…이날 검찰측으로부터 가장 강도높은 신문을 받은 동아그룹의 최피고인은 『근로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노피고인에게 준 이유가 무엇이냐』는 신문에 『국가가 있어야 해외공사수주에 보증이 되므로 국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줬다』고 답변. ○…하오 6시25분쯤 재판부가 공판 종결을 선언하자 노피고인 주변으로 이원조·금진호피고인이 서둘러 다가가 목례를 하면서 『건강조심하라』는등 안부인사. 이에 노피고인은 여전히 그늘진 얼굴이었으나 『내걱정 말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뒤 법정경위의 안내로 피고인출입문으로 퇴정. ○엉뚱한 답변 웃음 ○…한보그룹 정피고인은 이날 마지막으로 10여분동안 검찰신문을 받으면서 시종 억센 경상도사투리로 예상외의 답변을 해 법정의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리기도. 정피고인은 검찰이 『총회장과 회장의 차이점이 뭐냐』고 묻자 『대충 같지요』라고 대답한데 이어 수서택지분양이 실패로 돌아간데 대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는 『이만저만 손해를 본게 아닙니다』고 큰소리로 대꾸해 일순 방청석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 ▷법정주변◁ ○…불구속 피고인들은 낮 12시 휴정시간에 담당변호사 사무실 등에서 도시락 등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하오 2시부터 2∼5명의 비서진을 대동한채 법정으로 입정. 한보 정총회장을 시작으로 줄을 이어 법정에 도착한 이들은 소감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굳은 표정에 침묵으로 일관. ○…이에앞서 9명의 재벌총수들중 동아그룹 최회장이 상오 9시42분 가장 먼저 법원청사 서쪽현관을 통해 법정에 들어간 것을 비롯,9시50분쯤 삼성그룹 이회장을 끝으로 입정을 완료. 이들 대부분은 「법정에 서는 심정이 어떤가」「재판준비는 잘 되었는가」등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대답하지 않았으나 구속됐다 풀려난 한보 정총회장의 변호인인 이석형(47) 변호사는 『재판준비를 많이 했다』『자신있다』고 말해 눈길. ○…노씨의 아들 재헌씨는 상오9시35분쯤 법원청사 서쪽현관을 통해 박영훈 비서관·서동권 전안기부장등과 함께 재판정에 도착,사진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들의 말에 『이미 밑에서 찍었다』고만 말한뒤 긴장된 표정으로 검색절차를 기다리는 모습. 노씨의 변호사인 한영석 전법제처장과 김유후 전청와대 사정수석은 각각 상오9시35분과 40분쯤 상기된 표정으로 입정했으며 최석립전 경호실장도 9시35분쯤 법정에 도착. ○민가협회원 시위 ○…노씨의 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 정문앞에는 이날 아침일찍부터 5·6공시절 민주화시위를 벌이다 숨진 희생자 가족들의 모임인 「민가협」소속 회원 50여명이 나와 재판방청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난 87년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군의 어머니 배은심(57)씨는 『노씨가 역사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려고 새벽 첫차로 광주에서 올라왔다』며 오열했고 지난 91년 교내시위도중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54)씨는 『어제 밤 11시부터 방청권을 얻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우리가 방청을 못하면 누가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 노씨 공판 앞둔 서울지법·검찰 표정

    ◎“방청권 얻자” 법원앞 시민 “장사진”/80석 제한… 대기업 관계자 밤샘 줄서기/중수부,“노씨 뇌물죄 물증 확보” 자신감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공판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지법 정문에는 방청권을 구하려는 시민들이 밤을 새며 줄을 서 기다리는 등 「역사적 재판」에 대한 관심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법원과 검찰은 이날 공판에 대비한 막바지 점검을 마쳤으며 노씨 등 피고인들의 변호인단도 공판에 대비한 법률검토에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정문앞에는 18일 상오 9시에 배포하는 방청권을 얻기 위해 이날 아침부터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 이들 중 상당수는 노씨와 함께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재벌총수 소속 그룹 비서실과 법무실 관계자들인 것으로 확인. 기업체 관계자들은 단 한장의 방청권이라도 더 얻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과 함께 로비전을 전개. 법원측이 일반인 방청석을 80석으로 제한한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시민들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방청권 대열에 합류하려다이미 80명을 넘어선 것을 확인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대기자들은 방청권을 배포할 때까지 법원앞에서 밤을 세우기 위해 두터운 외투와 모자,털장갑 등으로 중무장한 모습.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하남식씨(25)는 『역사의 현장도 구경할 겸 구체적인 형사재판 진행에 대한 공부도 할 겸해서 왔다』고 설명. 전남 강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근수(77)씨는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상오 9시발 고속버스 편으로 왔다고 소개. 박동영씨(31·학생)는 『이 재판만은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해 친구 3명과 함께 왔다』면서 『사형보다는 종신형이 더 괴로울 것이므로 노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으면 좋겠다』고 형량을 주문. ○…노씨의 연희동집은 이날 하오 동생 재우씨의 부인이 방문,김옥숙씨를 위로한 것을 제외하고는 적막감이 감도는 분위기. 박영훈 비서실장은 『방청권이 10장밖에 나오지 않아 아들 재헌씨와 서동권 전안기부장,정해창 전비서실장,최석립 전경호실장 등만 참석하고 김옥숙여사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설명. 한편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노씨가 며칠전부터 종이에 메모를 하는 등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면서 『법정에서 할 모두진술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언급. ○…대검 중수부는 노씨 비자금사건 첫공판에 문영호 중수2과장,김진태·김필규·홍만표 검사 등 4명을 참여시키기로 결정. 노씨에 대한 신문을 맡은 문과장은 『첫 공판에서는 검찰의 직접신문에만 5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고 『계좌추적 등을 통해 확실한 물증을 확보한 만큼 뇌물죄 입증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자신감을 표시. ○…12·12 때 수경사령관으로 반란군 진압에 나섰던 장태완씨‘ 이날 하오 1시44분쯤 검정색 그랜저승용차를 타고 서울지검 현관 앞에 도착. 장씨는 당시 신군부에 맞서 저항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이 시대의 「참군인」으로 부각된 터라 그의 검찰진술 내용에 관심이 집중. 장씨는 그러나 굳은 표정으로 사진촬영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한 뒤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일단 조사받고 나와서 이야기하자』고만답변.
  • 김종휘씨 「김천」 가명으로 입국/검찰 수사·안양교도소 이모저모

    ◎“검찰서 밝히겠다” 조사실 직행­김 전수석/“설마 강제 급식까지 하겠느냐”­전씨 아들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소강상태에 빠진 듯했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수사는 11일 하오 「율곡비리」에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미국 도피 2년8개월여만에 급거 귀국,검찰에서 철야조사를 받음에 따라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12·12 및 5·18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을 캐기 위해 재벌총수 등을 상대로 「보안수사」를 계속했다. ▷김종휘씨 수사◁ ○…김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이날 하오 4시50분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검찰수사관들에 의해 대검청사로 연행.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한항공 017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 전수석은 「김천」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김씨의 부인(59)과 아들(28)도 「박영」「김승」이라는 가명으로 함께 입국. 검찰은 입국장에서 김씨를 연행,공항 대합실에 대기하고있던 보도진을 따돌렸다. ○…하오 5시59분쯤 검찰 호송차를 타고 대검청사에 모습을 나타낸 김전수석은 『전투기 기종변경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가』,『F­16기를 선정한 대가로 얼마의 리베이트를 받았는가』 등 쏟아지는 질문에 입을 열지 않다가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짤막하게 답변. 지난 93년 4월 미국도피 이후 2년8개월여만에 귀국한 김 전수석은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고 귀국했느냐고 묻자 『자진해서 왔다』고 말한 뒤 굳은 표정으로 조사실로 직행. 김씨는 검찰청사 현관으로 들어서다 사진기자들의 「요구」에 몇걸음을 물러서 포즈를 취하기도. ▷12·12 및 5·18 수사◁ ○…12·12 당시 최규하 전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정동호씨는 이날 상오 9시45분쯤 검은색 바바리 코트속에 목도리를 두른 모습으로 출두하면서 『그저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만 대답한 뒤 조사실로 직행. 10여분 뒤 도착한 주영복 전국방부장관도 질문공세에 침묵으로 일관. 반면 상오 10시에 도착한 이학봉씨는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인터뷰를 자청,청사 계단 앞에서 정승화 전육참총장 연행의 정당성을 주장,허화평씨의 선례를 답습. 그는 『10·26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살해되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정전총장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정전총장이 박전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김씨와 상당한 공모가 있었다고 주장. 또 『정총장이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이 아주 많았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 뒤 『모든 진실은 검찰 조사에서 다 밝혀질 것』이라고 강변. 이씨는 특히 『최전대통령으로부터 연행재가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쿠데타를 하면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하느냐』고 반문,기자들이 『그렇다면 강압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사실을 인정한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얼굴을 붉힌 채 조사실로 황급한 발걸음. ▷안양교도소◁ ○…전씨 수감 9일째를 맞은 이날 둘째 아들 재용씨가 하오 1시50분쯤 안양교도소를 방문,전씨를 면회한 뒤 하오 3시15분쯤 돌아갔다. 재용씨는 『아버지가 얼굴 살이 많이 빠지는등 부쩍 수척해지셨다』면서 『그러나병보석은 생각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용씨는 『검찰이 비자금을 수사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미 구내방송을 통해 알고 계시며 나도 사실을 알려드렸다』면서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비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재용씨는 또 전씨의 단식이 길어지면서 교도소측이 강제급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설마 강제급식까지 하겠느냐』며 몹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전날 하오 2시부터 7시간에 걸쳐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전씨는 이날 상오 6시30분 초췌한 모습으로 기상한 뒤 역시 보리차만 마시며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전씨는 단식이 길어지면서 피곤한 듯 자주 침상에 눕고 있으며 독거실 안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운동을 반복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교도소측은 전했다. ○…이에 앞서 상오 9시15분쯤 면회를 한 이양우 변호사도 『어른이 계속 식사를 안하고 계신다』고 소개. 이변호사는 『재수사를 예상치 못하고 지난 93년 12·12와 5·18에 대한 검찰수사 때 준비했던 변호자료를 대부분 폐기처분했다』면서 『이제 다시 처음부터 자료정리를 해야할 판』이라고 토로. 이변호사는 『단식 9일째를 맞은 어른의 몸무게가 64㎏으로 10㎏이 줄었지만 아직 정통성 수호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다』고 전언.
  • 미 최우량기업 DMS사 이종문 회장(세계속의 한국인:3)

    ◎“빌 게이츠에 버금”/미 컴퓨터업계의 실력자/그래픽 관련제품 시장점유율 1위/93∼94년 연속 「올해의 기업인」 선정/「동양예술박물관」 건립에 120억원 쾌척 “화제”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파크 안에 있는 「동양예술박물관」에 자랑스럽게 새겨진 한국인의 이름 이종문. 미국의 유일한 아시아예술 전용 박물관인 이곳 중앙 현관 머리에 이종문 아시아예술문화센터라는 이름이 새로 새겨졌다.샌프란시스코 사람들에게는 「드 영」박물관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박물관에서 지난 10월19일 있었던 명명식은 자랑스런 한 한국교민의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그 꿈의 실현은 부와 명예의 단순한 「아메리칸 드림」의 차원을 넘어 한민족의 문화사랑과 민족정신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편의 「인간 드라마」이다. 그의 이름을 딴 예술센터가 만들어진 것은 그가 이 박물관에 1천5백만달러(약 1백20억원)라는 거액을 기부한 데 따른 것이다.미국인들도 놀라게한 이종문(67).그는 실리콘밸리의 최우량기업으로 꼽히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시스템」사(DMS)의 창업자이자 회장이었다. ○한인 문화사랑 정신 과시 1천5백만달러란 금액은 문화예술 관련 기부금으로는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다.게다가 그돈은 순전히 그의 개인재산 가운데서 나온 것이다.말이 쉽지 사재를 1천5백만달러씩이나 선뜻 내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특히 현금으로 단돈 1백달러를 손에 쥐기가 쉽지 않은 미국사회에서 볼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박물관의 한국과 큐레이터 백금자씨는 『이회장의 기부금은 앞으로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한국미술전공자들이 얼마든지 학위논문을 쓸 수 있고,결국 미국내 각 박물관에서 한국관에 관심을 갖는 엄청난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의 기부금 쾌척은 한인교포사회 뿐 아니라 미국사회에도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킨 하나의 사건이었다. 미국의 컴퓨터업계에서 그는 컴퓨터계의 제왕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못지 않은 저명인사다. 그는 93,94년 연속 북캘리포니아의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됐을 만큼 실리콘밸리를 주도하는 하이테크 기업인이다.이 상은 미국 경영자협회를 비롯,CBS방송,하이테크산업을 전문으로 다루는 경제잡지 「잉크(Inc.)」,나스닥(NASDAQ)주식시장등 5개 기관에서 공동으로 평가해 주어지는 것인만큼 상당한 권위가 있다.이회장이 82년 창업해 이끌어온 DMS는 93,94년 「잉크」지에 의해 미국의 비상장기업 500개사 가운데 최고속으로 성장하는 기업 17,18위로 각각 평가되기도 했다. DMS는 컴퓨터의 그래픽기능을 향상시켜주는 그래픽액셀러레이터 관련 제품을 주로 생산,이 분야에서 선두였던 캐나다의 ATI사를 제치고 93년 하반기부터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특히 DMS의 멀티미디어 관련 소프트웨어는 호환성이 60%정도인 일반제품에 비해 무려 98%를 웃돌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95가 공식 스펙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고속성장 17위기업 평가 한국종합기술금융 실리콘밸리지사장 박태완씨(44)는 『DMS는 지난 4월 주식을 공개하기 전까지만해도 벤처캐피틀회사들이 가장 탐냈던 기업이지만 외부의 투자를 거부할만큼 자기자본력이 막강하다』고 전하고 있다. DMS의 영업담당 책임자인 김용태씨는 『91년10월 이후 은행빚이 단 1센트도 없는 부채율 제로의 회사』라고 자랑한다.더욱 놀라운 것은 94년말 현재 종업원 1백85명의 1인당 매출 1백10만달러에 이익율이 9.5∼10%나 된다는 사실이다.부실채권율은 0.5%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하이테크산업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이처럼 탄탄한 첨단기업이 한국인 이회장의 손으로 실리콘밸리에 뿌리내린 것은 한국교민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그는 60년대말까지만해도 국내에서 알아주던 기업인이었다.제약회사 종근당의 창업주인 이종근씨의 친동생.69년까지 종근당의 전무로 일하며 오늘날의 종근당이 있게한 기반을 닦은 인물이 바로 이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종근당 이종근씨의 동생 제약회사에 관여하기 전에는 한국도서관학의 기초를 잡기도했다.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서관법안과 정기간행물 색인을 만들었는가 하면 십진분류법을 소개하기도 했다.국내에서 남부러울 게 없던 그는 70년 홀연 미국이민길에 올랐다. 『종근당에서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3공화국에서 정부에 들어와 일하라고 귀찮게해 건너왔지.난 군인들이 정권잡는 것을 강도짓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건 정말 싫었어』라고 그는 이민 배경을 설명한다. 미국에 온 그는 5년쯤은 골프용품을 비롯한 각종 운동기구를 일본으로 내다 파는 일로 먹고 살았다.76년 갓 보급되기 시작하는 컴퓨터의 부속용품으로 무역품목을 바꾸어 다시 5년여를 수출업으로 지냈다.그러다가 애플과 IBM의 운용시스템이 다른 것에 착안,호환기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동차는 크라이슬러 제품이든,포드 것이든 운전하는 사람이 다 움직일 수 있는데 왜 컴퓨터는 안되느냐는 의문으로 제품마다 다른 오퍼레이팅 시스템에 다리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지』.알아보니 그것은 30만달러의 연구비로 6개월이면 가능한 작업이었다.82년 그는 자본금 10만달러로 마침내 전자산업에 직접 뛰어들어 DMS의 전신 「다이아몬드 컴퓨터시스템」을 설립했다. 큰 어려움없이 하드웨어를 만들어냈다.그러나 소프트웨어건 하드웨어건 애플사가 걸어놓은 특허의 종류가 무려 40가지에 달해 그 거미줄같은 특허망을 빠져나가는데 무려 6년을소비했다.라이프사이클이 엄청나게 짧은 컴퓨터업계에서 6년이란 세월을 허비했으니 대실패는 당연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타사제품들의 호환성이 60%에 그치는 데 착안,이를 높이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6년세월을 더 매달렸던 것. 그 사이 여기저기서 불러모았던 기술자들은 모두 떠나갔다.85년초 단 한명 남았던 기술자 허형회씨(44·현 DMS기술담당이사)마저 떠나려할 판이었다.『그 친구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내가 무릎을 꿇고 빌었어.네가 가면 난 죽는다고 말이야』 결국 그는 호환성이 무려 98.2%에 이르는 컴퓨터보드 「트랙스타」를 개발했다.세계최초의 IBM­애플 호환기판이었다.85년말 녹스빌에서 열린 컴덱스에 내놓자 「텐디(TANDY)」사와 납품계약을 하게됐고,87년에는 IBM과 공급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 뒤에는 6년여동안 3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을만큼 처절한 실패와 고립무원의 절박한 아픔이 있었다.그러한 고난의 날들을 극복한 값진 경험이 결국은 90년대에 DMS를 고속성장기업으로 달리게한 촉매가 됐다. 지난 4월 그는 회사를 상장했다.앞으로 4년동안 회사를 계속 성장시키면 3천6백만달러를 손에 쥐게하겠다는 계약으로 미국인 전문경영인을 사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경영일선에 물러났다. 주당 17달러에 상장된 DMS의 주가는 요즘 평균 27∼2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잡급직까지 나눠받은 주식으로 DMS는 실리콘밸리의 어느 회사보다도 사원들의 업무만족도가 높은 회사로 소문나 있다. ○세차례 자살기도 아픔도 『종업원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방법은 주식공개 밖에 없었어.주변에선 어떻게 일으킨 회사인데 경영권을 포기하느냐고 말렸지만 죽을 고비에서 회사가 살아난 것은 천운으로 돌릴 수밖에 없어.하늘이 도와준 회사가 어떻게 내 것이야.난 한번도 「마이 컴패니(나의 회사)」라는 말을 쓴 적이 없지.그저 나를 거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게 기업이지』라고 그는 말한다. ○벤처캐피틀 회사도 설립 그는 DMS의 종업원 가운데 단 한명도 혈연을 끌어들인 적이 없음을 자부하고 있다.혈연을 끌어들이면 잡음이 들리게 되고,결국 직원들이 부담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자신의 기업이라는 식으로 소유개념을 갖는 것은 『돈 가진자들의 더러운 욕심』이라고 잘라 말한다. 고희를 바라보는 그는 DMS에서는 손을 뗀 상태이지만 다시 새로운 벤처캐피틀사업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전자사업은 아주 익사이팅해.스포츠게임과 같지.그 사업체들 가운데서 유망한 것들을 골라내 투자하는 일을 할 거야』 그는 돈을 쓰기 위해서 더 벌어야한다고 했다. 『한국인은 세계 어디에서 살든 수천년이 지나도 제 음식과 제 말을 버리지 않는 유일한 민족이야.이민생활을 하면서 우리 민족성과 우리 문화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전하는데 내 돈을 다 쓸거야』.그의 이름과 기업정신은 이종문아시아예술문화센터로 이름이 바뀐 이 박물관의 소중한 예술품들과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종문 회장 신상메모 ▲1928년 8월1일 서울출생 ▲중앙대 법대졸 ▲미8군 극동사령부보좌관(53년) ▲국비유학생으로 도미(58년) 조지 피바디대학에서 도서관학,데이터경영학 전공 ▲고려대 경영대학원 연구과정 수료(59년) ▲국립중앙도서관사서관(60∼62년) ▲연세대,성균관대 강사(63년) ▲종근당제약 전무이사(67∼69년) ▲한국사이클연맹회장(68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중소기업연구과정수료(76년) ▲다이아몬드컴퓨터시스템사 설립(82년) ▲산호제이한인회 이사장(92년) ▲실리콘밸리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 및 샌프란시스코동양예술박물관 커미셔너(현재) ▲국민훈장 목련장(93년) ▲벤처캐피틀회사 AMVEX설립(95년)
  • 화가 김흥수(이세기의 인물 탐구:87)

    ◎하모니즘 창시… 세계화단에 우뚝/뜨거운 열정으로 작품마다 혁신적 표현 시도/93년 동양작가로 처음 푸슈킨 미술관서 개인전/작품 모두 1천여점… 미술사에 남기려 대작은 안 팔아 검은 펠트모자에 브라운컬러가 든 선글라스를 쓰고 김흥수 화백이 공식석상에 나타나면 그의 현란한 차림에 좌중은 경이의 시선을 집중시킨다.오늘날 우리 화단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에다 그 재치가 탁발하여 예술가적 기질이 충일한 반면 옳은 말을 참지 않고 올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세우려는 불 같은 정의감 때문에 그는 곧잘 엉뚱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에선 「폭군화가」「독설가」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의 외모는 사나이답고 솔직하며 내심은 섬세청렴하여 저질스러운 것,치사한 것,부당한 것을 용납치 않는다.오죽하면 바람 잘 날이 없는 자신을 향해 『넓고 넓은 황무지를 혼자서 한없이 걷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중에서도 49년 국전에 입선된 「나부군상」과 53년 「침략자」에 얽힌 사건은 화단이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의 하나다. ○화면곳곳 고뇌의 흔적 선전에서의 입선과 특선후 국전 제1회에 출품한 「나부군상」은 나체화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럿이라는 이유로 전시도중 철거되었고 6·25를 테마로 한 「침략자」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너무 적나라하게 다룬 것이 화근이 되어 전시철회를 권유받기도 했다.당시 심사위원측은 작품 「침략자」를 취소할 경우 그의 「군동」에 대통령상을 줄 것을 제의했으나 『상을 타기 위해 자식 같은 그림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는 끝내 「침략자」전시를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격인 만큼 경우에 어긋나는 처사를 묵과할 리 없다.한 미술전문지가 조사한 화가의 「그림값문제」를 놓고 『특정한 몇사람에게 부당한 이득을 주기 위해 많은 작가의 자존심을 짓밟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조작극』으로 비판한 일과 외국작가초대전에 대해서도 『우리의 것을 세계에 알릴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작가를 데려다가 온갖 경비를 들여 모든 영광을 바치는 비굴한 발상,거지 같은 음모』등으로 몰아붙여 주최측을 곤혹스럽게 했다. 또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의 자격기준은 어디에 있으며 그들은 과연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공개서한을 신문에 발표한 것도 그가 아니면 엄두도 못낼 일련의 사건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한군데 머물지 않고 모색과 탐구를 계속해온 그의 작업은 「그림의 내용과 형식·색채에 대한 진취적이고 장인적인 고뇌의 흔적을 화면에 면면이 점철시킨 것」이 특징이다.초기에는 민족적 주제의 사실적 화풍이 주조를 이루다가 도쿄유학이후 주관과 객관의 문제에 파고들기 시작했으며 파리시절은 「탐미주의적 경향」을 무제한으로 방출한 풍요로운 색채의 의장이 두드러진다. ○크리스티서 작품 거래 평론가 오광수는 한국고유의 양식에 뿌리를 둔 그의 거대한 아라베스크의 화면을 보고 『추상적 톤과 장식적 요소,예리한 선획으로 대상을 해체하고 분할하면서 마티엘의 파편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시적 감흥을 준다』고 이를 설명한다.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미시절 「주관적인 표현과 객관적인 표현,구상과 추상을 하나의 화면에 공존」시킨 이른바 새로운 미술사조인 「하모니즘」으로 다시 한번 「화면속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77년8월 워싱턴에서 선보인 그의 하모니즘은 미국화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지난 90년,세계적인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주선한 파리 「김수(Kimsou) 하모니즘(Harmonism)」전으로 세계화단의 스폿을 받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 유서깊은 뤽상부르초대전은 한국인으로서 처음이기도 하지만 관람객이 줄을 잇는 이변 가운데 현지 매스컴도 전례없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레스타니는 『그가 창안한 하모니즘,즉 조형주의는 예술에서 서로 상반되거나 대조적인 테마를 자연발생적인 변증법적 논리로 결합한 아주 특별한 세계』임을 전제,『바로 이와 같은 이원적 우주관은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시간의 정지속에서 몽상적인 초현실과 현실을 지속케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파리 악튀알리테」와 「렉스프레스」도 「그는 한 작품속에서 우연과 필연,유형과 무형,표와 이,긍정과 부정,음과 양의 상반된 양극을 화합하여 오리지널리티의 완결성을 보여준다」고 보도한 바 있다.이로써 예술을 향한 뜨거운 집념과 고집스러운 창작욕은 「조형주의 창시자」로서 세계미술사에 등재되고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은 한치의 오차없이 정상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김흥수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네르기슈의 작가이며 작품에 대해 그가 구현하려는 의욕은 참으로 끈질기고 고집스럽다』고 임영방씨(국립현대미술관장)는 말한다.이어서 『불굴의 기백과 투지,그리고 집요한 탐구와 비범한 예술적 아이디어는 작품마다에서 혁신적인 표현을 이룩해낸다』고 경탄해 마지않는다.그는 거장답게 지난 91년 국제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에서 작품이 거래되는 기쁨을 누렸으며 93년 동양작가로는 처음 러시아 푸슈킨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이는 74년 샤갈전 이후 생존작가로는 그가 두번째다. 그의 치열한 삶의 지표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허덕거리도록 온 힘을 다 받쳐서 완성된 작품 앞에 섰을 때의 그 희열을 위해」 그는 「한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망각속에 묻어버린 채」 새희망,새 삶속에 솔직하고 싱싱한 생동감을 그때마다 재확인해 나간다.그리고 정열과 돈과 시간을 자신의 화업에 아낌없이 쏟아붇는다.그동안 20여회의 개인전과 1백20여회의 국내외 그룹전·초대전을 통해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은 1천여점,그러나 미술사에 남기기 위해 대작을 절대로 팔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웬만한 기성화가가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그래선지 『내가 돈 잘 버는 화가인 줄 안 전처는 내게 실망하고 떠났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육식 즐기고 춤솜씨 일품 3년전 연하의 제자인 장수현(34)과의 결혼으로 장안이 떠들썩할 때도 『예술가는 평범한 생활을 해서는 개성과 창조를 생명으로 하는 작품을 남길 수 없다』고 자적한 태도를 보였다.거실을 화실로 쓰고 있는 방배동 황실아파트에 들어서면 현관에서부터 그 짙은 유화냄새와 함께 황홀한 그림의 범람이 눈앞을 압도한다. 부인은 현재 파리유학중. 함남 함흥시 공무원이던 김영국씨와 창덕궁 양잠소 교사를 지낸 이부갑여사의 3남1녀중 차남,그림그리기를 좋아한 소년시절에는 완고한 부친이 『표현능력이 뛰어나고 말을 잘하니 변호사가 될 것』을 명령했으나 함흥고보시절 「밤의 정물」이 선전에 입선하자 부모는 일본유학을 허락해주었다. 그의 화업은 이제 「예술은 내용이냐,탐구냐 또는 형식의 발견이냐」를 지나 「하나의 화면을 채색으로 쌓아올리는 루오의 탐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와 달라질 그날을 위하여 나는 나의 그림을 자유속에 놓고 싶다.그리고 격렬한 현실에 몸담고 있는 인간의 호흡을 화면에 재현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고정된 틀속에 묶어두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금도 볼보를 몰고 육식을 즐기는 대식가에다 눈부시게 돌아가는 춤솜씨가 일품인 그의 예외적인 정열은 몸속으로부터의 깊고도 끈질긴 모티베이션,자유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는 과연 누가 뭐라 해도 자유의 화가다.그리고 깨어 있는 형식과 의식으로 인해 어디서나,언제까지나 자유다. ◇연보 ▲19 21년 함남 함흥 출생 ▲36년 함흥고보재학중 제16회 선전 「밤의 정물」입선 ▲38∼39년 가와바타화(천단화)학교 데생수학 ▲44년 도쿄미술학교 졸업.선전 「밤의 실내정물」특선 ▲49년 귀국,서울 첫개인전(현신세계미술관),국전 「호」특선 ▲53년 국전「군동」특선 ▲54년 도불고별전(미도파화랑) ▲57년 파리 개인전(라라 뱅시화랑),살롱도토느 회원피선 ▲60년 라벨가브리엘 화랑주최 개인전 및 살롱 콩파레종 초대출품 ▲61년 귀국전,국전심사위원 ▲62∼67년 국전추천작가 ▲66년 도미고별전(서울신문회관) ▲67∼68년 필라델피아 무어미술대 초빙교수,필라델피아 미대강사 ▲69년 시카고·위스콘신 개인전 ▲71년 우드미어 아트갤러리 「이해의 수작초대전」1등상 ▲73년 젠킨타운 아트페스티벌 믹스드 미디어 1등상 ▲79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85년 김흥수 유화전(현대화랑) ▲86년 한불수교 1백주년기념 서울·파리전 출품 ▲90년 김흥수 조형주의미술전(파리 뤽상부르미술관) ▲92년 김흥수 장수현 부부전 ▲93년 김흥수 조형주의작품전(모스크바 푸슈킨 박물관 및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박물관),대한민국예술대전 구상부문 심사위원장 5월문예상(61) 한국미술대상(73) 문화훈장 옥관장(86)
  • 뇌물액·수사대상 “사상 최대” 기록

    ◎검찰 노씨 기소­12·12수사 이모저모/검찰주변 “사건 파장에 비해 성과 미흡” 평가/유학성씨 촬영 거부… 사진기자들과 실랑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된 5일 검찰의 다른 한편에서는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되는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분주한 하루였다. 또 두 전직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와 안양교도소주변도 검찰의 분주한 분위기 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자금 수사발표◁ ○비리수사 계속 시사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는 정치권이나 검찰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정치권에 흘러간 돈의 내역 및 구체적인 향후 수사계획은 포함되지 않아 정치권 등에서는 안도의 한숨. 그러나 검찰은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비자금 8백억∼9백억원의 사용처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혀 아직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비리수사가 물건너 간 것은 아님을 강조. ○…이날 수사발표를 지켜본 검찰주변에서는 한결 같이 그동안 이 사건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이나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이례적인 사태를 몰고온 사건의 파장에 비춰 수사의 성과가 다소 미진하다는 평. 이는 검찰이 비자금의 조성경위 및 총액·사용처 등 수사의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국민들을 속시원히 해줄 만큼 충실하게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을 종합할 때 돈의 액수,조사대상자의 신분과 숫자,수사진의 규모등 모든 면에서 사상최대의 비리사건으로 기록. 우선 핵심 조사대상자가 전직대통령을 비롯,30대 재벌의 총수,국회의원 금진호·전국회의원 이원조씨등 정재계인사 등 모두 4백여명이라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조사를 받는 진기록을 연출. 또 비리금액의 총 액수가 4천1백89억원이라는 것은 역대 어느 사건도 견줄 수 없는 단연 독보적인 수치. 또 이 사건에 투입된 검찰 수사진도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을 비롯해 수사기획관·중앙수사부 제2과와 3과,검찰 연구관 3명,서울지검 특수3부장과 검사 3명 및 소속직원·국세청과 은행감독원 직원등 총 92명으로 단일 사건으로 건국이후 최대인원으로 기록. ▷12·12사건 수사◁ ○사전모의확증 초점 ○…상오9시50분쯤 이 사건의 재수사 이래 3번째로 검찰에 출두한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는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진기자들의 포즈요청에도 아랑곳 없이 조사실로 가려다 사진기자들의 제지를 받고 곤욕을 치르는 헤프닝을 연출. 회색 바바리코트 차림의 유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답변을 않고 비서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사실로 가려다 사진기자들의 제지속에 청사 현관입구로 두번씩이나 되돌아가 포즈를 취한 뒤 조사실행. ○…이날 하오 성환옥 당시 육본헌병감실 기획과장에 대한 조사에서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헌병대 1개 중대를 이끌고 정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데 참여했는 지를 집중 추궁. 검찰의 한 관계자는 『특히 성씨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정계엄사령관을 연행하러 가기전 전보안사령관으로부터 받은 지시내용을 확인,사전모의에 대한 혐의를 확증하는데 수사의 초점이 모아졌다』고 소개. ○…최환 서울지검장은 이날 상오 김기수검찰총장과의 정례회의에 다녀온 뒤 『전전대통령의 개인비리도 수사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면 수사에 혼선을 가져오는 것 아니냐』며 전날의 설명내용과 다소 달리 답변. 수사 본부장인 이종찬 차장도 이와 관련,『현단계로서는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
  • 12·12 관련자 잇단 소환 “긴장 고조”/검찰 재수사 이모저모

    ◎검사들 밝은 표정… 「최씨 조사」 가닥/조홍씨 민원실 통해 “극비리 출두” 12·12 및 5·18사건을 재수사중인 검찰은 4일 소환 첫 케이스로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과 조홍 수경사헌병대장을 불러 조사를 벌이는 등 본격수사에 나서 검찰주변은 다시 긴박감이 감돌고 있다. ▷검찰수사◁ ○…재수사착수 이후 관련자 가운데 처음으로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은 노전국방장관과 조 전헌병대장은 이날 하오2시52분과 상오9시30분쯤 각각 출두. 조씨는 주위의 시선을 피해 1층 민원실 출입문을 통해 출두했으며 노씨는 검은색 뉴그랜저승용차를 타고 현관에 도착,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는 등 다소 여유있는 모습. 당시 정황을 규명하는 데 상당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씨는 검은색 바바리 차림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었으며 「반란세력의 정승화 총장 연행을 재가했느냐」는 등 기자들의 질문에 『됐어요』라고만 말하고 11층 조사실로 직행. ○…특별수사본부 이종찬 본부장과 김상희 주임검사는 이날 상오11시쯤 최환 서울지검장실에서 간략한 보고를 마친 뒤 매우 밝은 표정으로 나와 그 이유에 대한 관심이 집중. 검찰주변에서는 현재 검찰수사에 가장 큰 관건이 되고 있는 최규하전대통령의 조사와 관련해 날짜 및 방법이 잡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 최검사장은 이와 관련,『최전대통령이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최전대통령의 진술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내가 직접 나서서라도 설득할 생각』이라고 밝히고 최전대통령이 검찰의 조사에 응하도록 언론의 협조를 당부. ○…특별수사본부 김상희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은 이날 하오1시50분쯤 노씨에 대한 2차조사를 위해 서울구치소로 출발. 노씨는 검찰조사에서 『12·12 당시 9사단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킨 일 등은 전씨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라며 일련의 사건진행 과정에서 자신이 피동적인 역할에 그쳤음을 강조했다는 후문. 이에 반해 전씨는 2일 집앞 성명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밝혔듯 12·12등은 모두 자신이 주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대조. ○…관련자들에대한 소환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일부 핵심관련자의 집으로 수사본부 이모검사를 사칭,『내일 검찰청에 나와달라』는 전화가 걸려온 사실이 확인. 검찰은 『이같은 전화를 건 범인이 기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서울지검 기자실에 자제를 요청. ▷서울 구치소◁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노씨는 이날 주민등록에 등재돼 있는 양력 생일을 맞았으나 야채된장국·갈치조림·배추김치를 「생일상」으로 받는 등 평소와 똑 같은 수감생활. 32년 12월4일생인 노씨는 본래 음력생일을 쇠었기 때문에 이날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되기 바로 전날과 묘하게 겹친 탓인지 매우 씁쓸한 표정이었다는 것이 교도소 관계자들의 말. 구치소 관계자들은 『미결수의 경우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데다 면회 때도 음식물을 반입할 수 없기 때문에 노씨가 특별한 생일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며 『지금까지 생일 때마다 측근을 비롯해 수백여명의 하객들이 붐볐던 것을 회상하면 자신의 처지에 대해 더욱 비참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한마디.
  • 헌재·검찰 “희비교차”/「헌소취하」 관련기관 표정

    ◎“정치논리로만 판단” 허탈·불만 표출­헌재/「공소권 없음」 결정 뒤집힐 부담 덜어­검찰 5·18사건 고소·고발인들이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하루 앞둔 29일 전격적으로 소취하서를 제출함에 따라 5·18특별법 제정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헌법재판소◁ ○…5·18사건 고소·고발인의 대리인인 유선호·박주현 변호사,장기욱 변호사(민주당 국회의원),고소인인 정동년씨는 이날 하오4시 헌법재판소 현관앞에서 만나 10여분만에 사건접수실에 소 취하장을 접수. 이들은 「불구속 기소처분 취소 헌법소원 심판 청구 취하서」라는 소 취하장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청구인들은 이건 전부를 취하합니다」라고 단 한 줄로 취하내용을 명시. ○…변호인들은 소 취하서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경우 공소시효 논쟁으로 불필요한 국력의 낭비가 예상되고 특별법 제정에 미묘한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소 취하배경을 설명. 이들은 헌재의 불편한 심기를 고려한 듯 『결코 헌법재판소의 권위를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다』고 거듭 밝히고 『국민 대다수의 뜻에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 정동년씨는 『헌재의 결정을 연기토록 신청하고 재판부 기피신청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소 취하서를 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하루전인 28일부터 소취하를 논의해 이날 상오 소취하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소를 제기한 3백60명이 모두 동의한 것이라고 부연. ○…헌재 관계자들은 이날 하오 5·18사건의 고소·고발인들이 소를 취하할 것으로 알려지자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모여 허탈감과 함께 불만을 토로. 한 연구관은 『모든 것을 정치논리로 판단하려는 것 같다』면서 『헌재의 결정이 있더라도 현행 헌법의 테두리안에서 얼마든지 5·18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표시. 그는 특히 『법을 무시하고 힘으로 집권한 사람에게는 법의 무서움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또다시 법적 절차보다는 힘의 논리로 풀어가려는 것 같다』고말하고 『고소·고발인을 대리하고 있는 변호사들도 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 일부관계자는 고소·고발인들이 소취하를 한 것은 사실상 언론의 보도 때문이라고 언론에 화살. 한 관계자는 『영국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특정 사건에 대해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언론이 전혀 보도하지 않는게 관례』라면서 『미국에서도 법원의 판결이 있기 전에 보도를 하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 ▷검찰◁ ○…헌법재판소의 「공소권 없음」 취소결정이 나오는대로 즉각 5·18재수사에 착수키로 하고 13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관련자료를 점검하는 등 준비를 해왔으나 헌법소원 취하 소식에 일단 한숨을 돌리는 모습. 지난 7월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렸던 서울지검 공안1부는 홀가분해 하는 기색이 역력. ○…최병국 대검공안부장은 이날 하오 기자들과 만나 『헌재에서 심사각하에 대한 동의를 구해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헌법소원 취하는 검찰의 결정을 청구인들이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냐.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 그러나 검찰주변에서는 『헌법소원 취하가 5·18관련자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해 포괄적으로 처벌하기 어렵게 됐다는 청구인들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데도 검찰이 이를 곡해,지나치게 견강부회하는 것이 아니냐』며 눈총. ○…최공안부장은 소취하가 알려지기 전인 이날 상오에도 기자들과 만나 5·18수사가 전제되지 않고 12·12에 대한 재수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 최공안부장은 『12·12사태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에 대해서는 이미 헌재가 합당한 것이라고 판결을 내렸다』면서 『5·18과 연장선상에 있는 12·12에 대해서는 5·18수사가 전제되어야만 미진한 부분의 재수사가 가능하다』고 설명.
  • 노씨 비리 막바지 수사 급피치/검찰 조사·구치소 표정

    ◎이원조씨 89년 출두때보다 초췌·침통/노태우씨 일반 수감자보다 적응 잘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 35일째를 맞은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는 노씨 비자금 내역 및 조성과정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이원조전의원과 상무대 비리의 주인공 조기현청우건설전회장이 출두,과거의 의혹에 대해 재조사를 받는 등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분위기였다. ○…「금융계의 황제」로 일컬어지던 이전의원은 이날 상오9시53분쯤 서울4어6430 쥐색 쏘나타Ⅱ 승용차를 타고 대검청사에 도착,「그동안 어디에 있었는가」「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사실은 인정하는가」 등 기자들의 질문세례에 대답을 피한 채 조사실로 직행. 지난 89년 2월 5공비리 사건과 관련,서소문 대검청사에 출두할 때처럼 짙은 갈색 바바리코트 차림으로 나온 이씨는 그러나 당시보다 훨씬 침통한 모습이어서 이번에야 말로 이씨가 사법처리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같다는 관측들. ○…조전회장은 상오10시25분쯤 검정색 포텐샤 승용차를 타고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출두,사진촬영 포즈를 취하는 등 여유있는 모습. 조회장은 현관에 들어서기 전 「노씨에게 비자금을 건네준 사실이 있느냐」는 등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잠시 머뭇거리다 『검찰에서 모두 밝히겠다』고 말했으며,「지난번 검찰에서 밝혀진 것 외에 다른 혐의 사실도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간단하게 답변. 조회장은 이어 조사실로 가는 도중 엘리베이터안에서 「대구 동화사 대불공사 대금으로 80억원을 낸 것은 노씨의 지시였나」라고 묻자 2초가량 고개를 약간 끄덕여 긍정의 뜻을 내비치는가 싶었으나 이내 『검찰에서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말해 여운. ○…수감 8일째를 맞은 노씨는 이날도 상오6시20분에 기상,침구를 정돈한데 이어 5분동안 간단한 맨손 체조를 한뒤 상오7시 감자국·어묵조림·무생채 등을 반찬으로 아침식사. 구치소관계자는 이날 『노씨가 수감 이후 매일 9시간정도의 깊은 잠을 자고 있다』며 『군출신이어서인지 일반 수감자들보다도 오히려 잘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 이 관계자는 또 노씨가 「특별대접」을받고 있다며 일부 시국관련 재소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농성자의 수는 10명이 채 못된다』면서 『이들 중 일부가 단식을 하고 있으나 자체 협의를 거쳐 이러한 움직임도 다소 수그러들고 있다』고 설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와 박영훈 비서관이 이날 두번째 면회를 다녀간 뒤 2시간20분이 지난 하오2시10분쯤 문영호대검 중수2과장과 김진태 대검 연구관 등 검찰 관계자들이 노씨 비자금 보강수사를 위해 서울구치소를 방문. 지난 20일 첫 보강수사 때 타고 왔던 검찰의 공용차량인 서울2즈 7790 쥐색 르망 승용차를 타고온 이들은 취재진들을 따돌리고 정문앞을 그대로 통과해 노씨의 독방옆 접견실로 직행. 이날 보강수사는 이원조 전 의원이 소환된 시기와 맞물려 「비자금조성 및 대선자금과 관련,대질신문의 성격이 짙은 것 아니냐」는 등 여러가지 추측을 자아냈으나 검찰은 『수사상 필요해서 조사했을 뿐』이라며 조사내용을 일체 밝히지 않은 채 함구. ○…안강민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재벌기업들의 뇌물 액수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과 관련,『수사발표 때까지 기다리면 될 것을 누구 좋으라고 미리 공개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내며 『결국 피의자들만 유리하게 할 뿐』이라며 검찰 발표 이외의 사실에 대한 보도 자제를 요청.
  • 검찰 “금·이·김 3인 사법처리 자신”/노씨 비리수사 이모저모

    ◎“노씨 핵심측근 조사뒤 수사 마무리” 관측/김종인씨,미소띤 얼굴로 「혐의」 완강 부인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수사는 21일 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이 검찰에 출두함으로써 이원조 전의원,금진호 의원에 대한 소환도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속에 겉으로는 비교적 차분한 하루였다.검찰은 노씨의 3인방으로 불리는 김씨등의 혐의를 입증,사법 처리하는데 자신감을 보이면서 비자금의 총규모 및 대선자금 등 사용처를 밝히는 보강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 ○…김전수석은 이날 상오9시50분쯤 갖은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는 등 밝은 표정으로 대검에 출두. 김전수석은 「노씨 비자금 조성에 얼마나 관여했나」「취임축하 성금을 내도록 기업체에 요구했나」「관급공사 수주대가로 뇌물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등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힘차게 가로저어 부인한 뒤 『모든 사실은 검찰에서 밝히겠다』며 조사실로 직행. 김전수석이 이날 예상밖에 밝은 표정으로 나타나자 검찰주변에서는 『지난 93년 동화은행 사건 때 이미 구속된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 별도의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무거운 처벌은 면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풀이. ○…이어 상오 10시 정각에는 조남원 삼부토건 대표가 대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걸어서 현관에 도착. 조씨는 「관급공사를 수주할 때 리베이트를 조성해 상납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큰 소리로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으나 「그렇다면 왜 소환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조사실에)올라가 보면 알겠지요』라며 명확한 답변을 회피.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날 『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전한 뒤 『이번 주에 있을 노씨의 핵심측근들에 대한 조사 및 사법처리를 고비로 수사가 정리될 것 같다』고 관측. 이 관계자는 그러나 『아직도 비자금의 총규모와 사용처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아 수사진을 괴롭히고 있다』면서 앞으로 검찰수사가 이 부분에 집중될 것임을 시사. 한편 이날 상오 대검청사에는 제주지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회원 3명이 찾아와 『지난 88년 제주시 탑동 공유수면매립공사와 관련해 노씨가 B건설회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의혹이 있다』며 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해 눈길. ▷서울구치소◁ ○…이날로 서울구치소 수감 6일째를 맞은 노태우전대통령은 전날 장시간에 걸친 검찰조사로 피곤한 탓인지 상오시간 대부분을 명상과 휴식으로 보냈다. 노씨는 이날 기상시간보다 10분 정도 이른 상오6시20분쯤 잠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침구정리와 간단한 점호를 받은 뒤 상오7시20분쯤 야채된장국,돼지고기볶음,단무지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구치소측은 노씨가 전날인 20일 밤에는 평소보다 1시간여 빠른 하오9시25분쯤 잠자리에 들었으나 계속 뒤척이는 등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 구치소의 일부 재소자들은 이날부터 노씨에 대한 특별대우를 항의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했다고 면회객들이 밝혔다. ○…이날 상오10시30분쯤 박영훈 비서관과 장호경 전경호실 차장이 노씨를 면회했다. 박비서관은 『노전대통령의 건강은 여전히 좋아 보였다』며 『다리운동과 독서로 소일하고 있다』고전했다.그는 아들 재헌씨를 제외한 다른 가족의 면회계획은 없다며 검찰조사 내용은 이날 면회한 한영석변호사가 안다고 소개.
  • 강택민 주석과 즉석 「산책회담」 김 대통령/오사카 회담 이모저모

    ◎고어 미 부통령과 대북문제 등 논의 제3차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가 열린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상오 기조연설,하오 자유토론에 이어 고어 미국 부통령과 회담을 갖는 등 바쁜 하루을 보내고 오사카에서의 공식일정을 모두 마쳤다. ○…APEC 정상회의 회의장인 오사카 성 영빈관에는 상오 9시10분부터 18개 회원국 정상 및 대표들이 지난 1,2차 회의 때처럼 「자유로운 토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관례를 따라 넥타이를 매지 않은 간편복 차림으로 수행원 5명씩만 데리고 속속 도착.7번 째로 도착한 김대통령은 감색 상의에 푸른색 셔츠를 받쳐 입은 차림으로 현관에 마중나온 무라야마 일본총리와 반갑게 악수. 영빈관 뜰로 옮긴 정상들은 맑은 날씨를 화제로 담소를 나누면서 기념촬영을 했으며 김대통령은 왼쪽에서 7번째,창 홍콩재무장관과 고어 미국 부통령 사이에 서서 촬영. ○…회의장에 입장한 각 나라 대표들은 이번 회의의 의장인 무라야마총리를 중심으로 원탁에 정해진 자리에 앉았으며 김대통령은 무라야마총리의 왼쪽 8번째인 홍콩과말레이시아 좌석 사이에 착석. 무라야마총리의 첫 발언으로 시작된 상오 회의는 각 나라 대표들이 돌아가며 5분여 씩 기조발언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김대통령은 무라야마총리,지난 해 의장이었던 수하르토대통령의 다음으로 연설. ○…18개국 정상은 영빈관 중앙홀에서 양식의 오찬을 마치고 하오 1시40분쯤 무라야마총리의 안내로 영빈관 앞 뜰로 나가 늦가을 단풍과 국화를 감상하며 산책.이어 둥그런 형태로 배치된 9개의 2인용 목재 다도탁자에 차례로 자리를 잡고 20분남짓 일본차를 마시며 환담. 김대통령은 회의장으로 가기 앞서 입구에서 마주친 강주석에게 『잠시 정원으로 나가 산책이나 하자』고 제의했고 강주석은 이를 흔쾌히 수락. 두 정상은 정원을 거닐면서 지난주 강주석 방한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으며 대화도중 간간이 파안대소를 하거나 박수로 화답하는 등 무척 친숙한 모습. ○…김대통령 하오에 열린 각국 정상들과의 토론에서 『올해 한일간 무역량이 4백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백40억달러의 적자가 전망된다』면서 『따라서 무역자유화 못지않게 무역균형이 중요하며 흑자국이 기술과 경제협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본다』고 역설. ○…이어 뒤 영빈관내 정상 대기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김대통령을 비롯한 18개국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 위해 무라야마총리 안내로 회의장옆 정원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에게 손을 흔드는 것으로 회의결과에 만족을 표시. 김대통령은 정상대기실로 돌아와 각국 정상과 악수하며 작별인사를 나누고 영빈관 현관에서 무라야마총리의 전송을 받으며 승용차편으로 오사카성을 출발. ○…숙소인 로열호텔로 돌아온 김대통령은 하오 5시부터 호텔 2층 사쿠라룸에서 앨 고어 미국부통령을 접견하고 한미관계와 대북 문제 등 양국관심사에 관해 협의. 김대통령은 『지난 7월 워싱턴에서 6·25참전기념비 제막식 이후 4개월만에 만나 반갑다』고 인사했고 고어부통령은 『이번에 클린턴대통령이 꼭 참석해 각하와 여러가지 문제를 얘기하고 싶어했는데 국내사정으로 오지 못해 몹시 안타까워 하더라』고 클린턴대통령의 안부를 전달. ◎김영삼 대통령 APEC 정상회의 기조연설문 요지 세계는 지금 자유와 경쟁과 협력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나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APEC이 자유화와 경제협력을 보다 실천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한 몇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이제 본격적인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실천해 나아감에 있어서 균형발전을 통한 공동번영이라는 APEC의 이상과 가치를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한다.아태지역은 경제발전 수준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다양하다.APEC은 앞으로 자유화의 실천과정에 있어 회원국간의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공동번영을 모색할 때 APEC의 결속이 강화되고 자유화 또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둘째,회원국간 경제협력을 활성화하는데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그것은 APEC 국가의 다양성을 최대한 살려 나가면서 자유화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기적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따라서 회원국가간에 물적 인적자원과정보 및 기술의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구체화해야 한다.한국도 정보통신산업 장관회의를 지난 5월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앞으로도 APEC에서 추진하는 경제협력과제의 실천을 위해 모든 노력과 기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셋째,APEC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는 모든 나라가 스스로 약속한 것을 자발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데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에 각국이 자율적으로 제출한 초기가시화 조치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한국정부는 초기가시화 조치로서 투자개방,관세인하,규제완화 등을 가속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예를 들어 한국은 2000년까지 200여개 업종에 대한 투자를 신규로 개방하고,각종 경쟁제한적인 법령을 정비하고 수출입의 통관절차를 획기적으로 간소화할 것이다.우리는 이미 정부조달 시장을 개방토록 법을 개정했으며,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도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금년내에 이뤄질 것이다. 나는 작년 「보고르 회의」 직후에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응분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계화정책」을 선언한 바 있다.우리가 지향하는 세계화는 개방과 개혁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의식과 관행과 제도를 합리화하고 국제화,한국의 발전은 물론 세계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한국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에 선도적 역할은 물론 이 지역의 복지증진과 균형발전을 위해 APEC내에서 적극적 역할을 다할 것이다. APEC은 클린턴 대통령의 주도하에 시작된 「시애틀회의」에서 초석이 놓여졌고 지난 해 「보고르회의」에서 기둥이 세워졌다면 이번 「오사카회의」에서는 지붕을 마련함으로써 이제 지역협력기구로서의 기본적인 골격을 갖추었다고 본다.우리 모두 아태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한 「공동의 집」을 완성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김 대통령·무라야마 총리 대화록

    ◎김 대통령 “일 돈만으론 세계의 존경 못받는다”/김 대통령 “일의 쌀지원 북 전술에 말려든것”/무라야마 “올바른 역사인식 갖게 계속 지도” 김영삼 대통령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는 18일 상오 오사카시장공관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과거사문제등 상호관심사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이날 상오 11시15분부터 12시5분까지 50여분동안 진행된 회담에서 두 정상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일본측의 과거사발언과 무역역조해소방안등에 대해 집중논의했다.다음은 회담에 배석한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전한 대화요지다. ▷과거사문제◁ ▲김대통령=취임후 한·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건설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외교의 중요한 두 축으로 삼아왔습니다.그래서 일본총리와 만날 때마다 수차례 얘기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큰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일본이 과거의 침략과 식민통치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일본의 한국에 대한 과거경력이 가슴의 언저리에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한상황에서 어떻게 발전적 관계개선을 이뤄나갈 수 있겠습니까.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간의 사이가 나쁘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며 세계가 과거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나쁘다고 할 것이므로 일본으로서도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일본은 돈만으로는 세계의 존경을 받을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야만 합니다.일본이 도덕적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역사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라야마총리=올해가 종전 50년이자 한·일수교 30년으로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고 반성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한·일간에 중요한 기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그런데 지난번 우려할 만한 사태가 발생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한·일우호협력증진을 기해야 한다는 희망에서 직접 친서를 쓴 것입니다.과거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한다는 게 일본정부의 입장입니다.일부 인사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데,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이들에 대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계속 지도함으로써 한·일관계증진에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대북관계 개선문제◁ ▲김대통령=지난번 대북쌀지원때 북한은 한·일 양국을 서로 경쟁시켰으며 일본은 이에 말려들었습니다.당시 본인은 문민정부인 만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국민을 설득할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북한의 전략에 일본이 말려듦으로써 결과적으로 남북통일을 방해하는 인상을 준 데 있었습니다. ▲무라야먀총리=전후 50년이 됐는데도 일본이 북한과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북한과의 관계정상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한반도는 궁극적으로 통일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정상화에는 원칙이 있습니다.우선 북한과의 관계를 추진함에 있어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며 일·북관계 정상화가 한·일관계의 기본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또 대북수교 교섭은 남북관계진전과 조화해 추진할 것이고 북한과의 수교교섭도 남북관계개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습니다.아울러 일·북수교 이전에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일본의 일관된 방침입니다. ▷무역역조 시정문제◁ ▲김대통령=양국간 무역역조가 너무 커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일본의 기술지원도 인색합니다.새로운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무라야마총리=무역역조가 우려할 만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좋은 경향이 있습니다.일본이 과거 수출하던 주요공산품이 한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역수출되는 예가 늘고 있습니다.반도체가 좋은 예입니다.일본의 내수시장확대를 계기로 한국이 대일수출을 늘려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을 것입니다. ◎오사카 회담 이모저모/정상회담때 무라야마 어색한 표정/일 환대 극진… 경색된 관계수습 노력 제3차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가 열리는 오사카를 방문중인 김영삼대통령은 18일 상·하오에 걸쳐 한·일 및 한·태 정상회의를 잇달아 갖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김대통령은 특히 이날 상오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인식문제로 미묘해진 양국관계 정상화방안을 비롯,무역역조문제와 북·일수교 움직임등 양국현안 전반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18일 상오11시15분 오사카시장공관에서 열린 김대통령과 무라야마 일본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은 최근 일본측의 과거사망언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속에 50분간 진행. 시장공관 현관에서 김대통령을 영접한 무라야마총리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김대통령 일행을 접견실로 안내.김대통령과 무라야마총리는 접견실 입구에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악수하는 포즈를 취했으며 김대통령은 『오사카 날씨가 근래 드물게 좋은 것같다』고 일단 부드러운 화제를 거론. 무라야마 총리는 『오사카방문이 몇번째냐』고 물었고 김대통령은 『두번째』라고 답변.양국 정상은 이어 배석자들과 함께 착석했으며 무라야마총리는 그때까지도 서먹서먹한 표정을 풀지 못해 자신의 과거사망언을 의식하는 듯한 분위기. 무라야마총리는 『지난 3월 코펜하겐의 사회개발정상회의에서 만난 뒤 오늘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김대통령은 『벌써 열달이 됐다』고 답변.이어 무라야마총리는 『오늘은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다』고 말해 과거사망언파문에 대한확실한 입장을 밝힐 것을 시사했고 김대통령도 『좋다』고 화답. 이날 회담에 배석한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한·일 양국정상이 과거사문제,북·일 관계정상화 문제등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힘으로써 회담결과가 전반적으로 잘됐다』고 평가. 일본측은 회담이 열린 오사카시장공관 출입에 있어 검색을 철저히 하는 등 보안에 신경을 썼으나 김대통령일행에게는 극진한 환대를 아끼지 않아 경색된 한·일관계를 수습하려 노력하는 인상. ○…김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 이어 이날 하오 숙소인 로열호텔에서 반한 태국총리와 한·태정상회담을 갖는 등 연쇄 개별정상외교를 본격가동. 김대통령은 회담장인 숙소 로열호텔의 사쿠라실에서 반한총리와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교환. 반한총리로부터 암누아이부총리와 카셈외무장관·츄십상무장관 등 태국측 배석자들을 소개받은 김대통령은 공노명 외무장관과 박재윤 통산장관·한이헌 경제수석·유종하 외교안보수석·윤여전 공보수석 등 우리측 배석자들을 반한총리에게 소개. ○…김대통령은 이날저녁 로열호텔에서 무라야마 일본총리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각국 정상 및 지도자들과 우의와 친분을 교환.김대통령은 호텔 3층에 마련된 만찬장 입구에 도착해 무라야마총리와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사진기자들에게 잠시 포즈를 취한 뒤 옆방으로 옮겨 간단한 음료를 들며 각국 정상들과 환담. 김대통령은 양 옆에 앉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 및 짱 홍콩재무장관과 잠시 귀엣말을 나누기도. 김대통령은 만찬이 끝난 뒤 호텔 2층 카츠라홀에서 열린 비공식 정상회의에 참석해 19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국 정상들과 의견을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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