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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검증하는 中선전부가 사상 검증당해

    “시주석 최측근 왕치산의 기율위, 장쩌민계 류윈산 손본다” 해석도 언론과 사상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인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9일 중국의 사정·감찰 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이례적으로 선전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표했다. 기율위가 3개월 동안 선전부를 대대적으로 감찰한 것도 이례적인데, 감찰 결과를 공개한 것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율위가 지적한 주요 내용은 ▲선전부 지도부의 정치적 경각심 부족 ▲공산당 중앙과의 일관성 부족 ▲언론 선전 활동의 적확성 및 실효성 부족 ▲사상 강화 업무 미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핵심 사상 실천 부족 등이다. 특히 기율위는 시 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王岐山) 상무위원(기율위 서기)이 이끌고 있고, 선전 업무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계로 분류되는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이 총괄하고 있어 “선전부에 대한 확실한 정리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홍콩 매체 동망은 “정치적 대지진의 전조”라고 해석했다. 사회평론가 장리판은 홍콩 명보에 “기율위가 부패 문제를 넘어 사상 감찰에까지 나선 것은 월권”이라면서 “시 주석의 지시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선전부가 어떤 방식으로 업무를 개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데 있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선전부가 무조건 (기사 등을) 삭제하고, 틀어막고, 처벌하다 보니 인민과 당의 괴리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선전부의 교조주의 때문에 지난 5월 인민대회당에서 문화대혁명 시기 1인 우상화를 연상시키는 공연이 버젓이 열리는 등 시 주석이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기초한 대책은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선전 업무를 요구한다. 그러나 AFP는 “기율위의 감찰은 선전부에 더 확실하게 언론과 여론을 통제하라는 명령”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이 지난 2월 “매체의 성(姓)은 당(黨)”이라며 모든 매체에 충성을 요구했는데도 선전부의 통제가 미진한 데 따른 조치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대책은 여론 통제 강화일 수밖에 없다. 위기에 빠진 선전부는 지금 시 주석의 확실한 지침만 기다릴 뿐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와우! 과학] 에어버스, 3D 프린터로 제작한 항공기 ‘토르’ 공개

    [와우! 과학] 에어버스, 3D 프린터로 제작한 항공기 ‘토르’ 공개

    차세대 혁신 기술로 꼽히는 3D 프린터가 이제는 비행기도 '찍어내기' 시작했다. 최근 유럽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항공우주박람회인 'ILA 베를린 에어쇼'에서 3D 프린터로 만든 미니 비행기를 공개했다. 길이 약 4m, 무게 20kg의 이 창문없는 비행기는 드론(무인항공기)으로 이름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토르’(THOR)다. 흥미로운 점은 2개의 전기모터와 송수신 장치(radio control system)를 제외하고는 모두 3D 프린터로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이에 에어버스 측은 3D 프린터가 보여준 '첨단 항공산업의 미래'라며 자평할 정도. 에어버스의 언급처럼 실제 3D 프린터 분야는 제조업 분야의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항공산업은 물론 우주와 군사 분야 심지어 음식도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회사와 연구소 등은 일부 부품을 3D 프린터로 출력해 사용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트라이던트 II D5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에 3D 프린터로 출력한 부품을 사용했다고 발표해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또한 드론 역시 엔진과 카메라 등 일부 주요 부품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품은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군사·산업 분야의 3D 프린터가 상용화되면 제작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지는 것은 물론 경제성도 높아진다. 항공분야의 3D 프린터 활용은 특히 에어버스와 라이벌 보잉의 각축장이다. 이미 두 회사는 3D 프린터로 여객기 A350과 B787 드림라이너 일부 부품을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에어버스의 토르 개발 책임자 데틀레프 콘니고어스키는 "토르는 3D 프린팅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험대"라면서 "향후 3D 프린터는 비행기의 부품 수준이 아닌 전체가 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3D 프린터는 메탈 소재의 부품도 기존 것보다 30~50%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쓰레기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963년 두 영웅의 출현, 대중문화 혁명 잉태

    1963년 두 영웅의 출현, 대중문화 혁명 잉태

    1963 발칙한 혁명/로빈 모건·아리엘 리브 지음/김경주 옮김/예문사/456쪽/1만 9800원 문화를 중심으로 세상의 역사를 정리한다면 1963년은 매우 중요한 변화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문화에 반기를 든 십대 청소년들은 악기, 카메라, 붓, 펜, 가위를 집어 들었다. 불과 1년 사이에 삶과 사랑, 패션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1963 발칙한 혁명’은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활약한 로빈 모건과 저널리스트 아리엘 리브가 1960년대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문화계 인사 48명을 인터뷰해 다큐멘터리식으로 엮은 것이다. “1960년대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문화와 삶의 의식은 ‘혁명의 시대’였던 1960년대에 잉태된 것이다. 혁명을 견인한 주체는 다름 아닌 ‘대중문화’였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피임약의 보급과 전쟁의 종식으로 임신과 징병의 불안에서 벗어나자 과감하게 거리로 뛰쳐나왔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꿈과 새로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대중문화 진영에 몸을 던졌다. 그 시작이 바로 1963년이다. 젊은이들에게 도약과 신분 상승의 꿈을 갖게 했던 두 영웅이 출현한 해다. 미국의 밥 딜런과 대서양 건너편 영국의 비틀스다. 비틀스는 앨범 ‘플리즈 플리즈 미’로 영국을 뒤흔들었고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 수록된 앨범으로 지구에 저항이라는 깃대를 꽂았다. 이들은 우연의 일치처럼 1963년 1월 13일 밤 국영텔레비전 방송에 등장했다. 저자는 “이 둘의 등장은 1년 뒤 두 대륙에 자리잡고 있던 구체제와 계급, 기존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신호와도 같았다”고 강조한다. 이후 음악뿐 아니라 영화, 연극, 미술, 사진, 패션 등 모든 분야가 전혀 다른 패턴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융기했다. 권위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패션 트렌드는 단연 미니스커트다. 미니스커트의 ‘창시자’로 꼽히는 디자이너 메리 퀀트는 당시 보수적인 런던 사람들이 새로운 패션을 얼마나 못마땅해했는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책은 1963년을 순차적으로 재현해 낸다. 유행했던 의상과 헤어스타일, 클럽 분위기의 세세한 묘사, 한 사건을 같이 겪었던 사람들의 목격담이 날줄과 씨줄처럼 촘촘히 어우러져 1963년을 다각도로 비춰볼 수 있게 한다. 키스 리처드, 에릭 클랩턴, 알 쿠퍼, 제프 린 등 음악 관련 인사들과 헤어디자이너 비달 사순, 사진작가 테리 오닐 등 대중문화계 유명인사들의 생생한 술회와 증언이 이어진다. 테리 오닐의 국내 미공개 컷을 포함해 자유분방한 1963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진 57점이 함께 실렸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클린턴 ‘천군만마’ 얻다

    클린턴 ‘천군만마’ 얻다

    ‘게임 체인저’ 샌더스도 “협력 방안 모색”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8년 전 대선 경선에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선 후보로 공식 지지했다.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에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화답했다. 클린턴의 경선 라이벌인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협력 의사를 밝히는 등 민주당이 클린턴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클린턴의 선거 캠페인 웹사이트 등에 올린 영상물에서 “클린턴보다 대통령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그녀의 편이다. 열정을 갖고 어서 나가 캠페인에 동참하고 싶다”고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 선언은 이날 오전 샌더스와 백악관에서 1시간여 회동한 뒤 나왔다. 미 언론은 “클린턴이 인기가 높은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 선언을 끌어내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5일 대표적 경합주이자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 속하는 위스콘신주에서 클린턴을 위한 지원 연설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과 샌더스 캠프를 함께 끌고 가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며 “그의 지지 선언이 당을 단합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매사추세츠 상원의원도 이날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샌더스는 앞서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1시간여 회동한 후 기자회견에서 “클린턴과 조만간 만나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샌더스는 오는 14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마지막 경선까지 완주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이날 오후 워싱턴DC에서 유세를 이어가며 ‘정치 혁명’을 외쳤다. 미 언론은 “샌더스는 자신이 내세운 공약 수용을 요구하면서 14일 이후 클린턴 지지를 선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화당은 이날 일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지도부 8명이 미외교협회(CFR)가 주최한 행사에 이례적으로 총출동, 트럼프의 극단적 외교·안보 공약과 상반되는 당의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을 발표하면서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공화당이 발표한 정책은 한국·일본 등과의 동맹 강화, 나토(북대서양조양기구)와의 협력 강화, 이민개혁 추진 등을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아니라 미국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대화가 아니라 제재에 방점을 찍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공산당 편드는 ‘댓글 알바’… 中 대학생에겐 화려한 스펙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공산당 편드는 ‘댓글 알바’… 中 대학생에겐 화려한 스펙

    중국 정부 기관의 직원들이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 조작용 댓글을 직접 작성한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게리 킹 박사 연구팀은 중국의 한 지방정부 인터넷 선전부에서 해킹으로 유출된 2000통의 메일에 포함된 인터넷 게시글 4만 3800개를 대상으로 인터넷 검열 관련 여부를 조사·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미 뉴욕타임스 등이 최근 보도했다. 이들 메시지의 53%는 지방정부 홈페이지에 게재됐으며, 나머지는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 등 소셜미디어(SNS)에 올려졌다. 해당 메일에는 장시(江西)성 간저우(贛州)시 장궁(章貢)구 인터넷 선전부가 2013년 2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댓글 부대에 임무를 주고 결과 상황을 보고받은 내용이 담겨 있다. 하버드 연구팀은 “이 지방정부 한 곳에서만 1년에 인터넷 게시판에 4억 8800만개의 댓글이나 게시물을 올려 비판 여론을 희석하고 있다”면서 “이들 댓글 부대는 200여개 정부기관 공무원들로 별도의 보수는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中 공무원들, 반정부 시위 있을 때 ‘물타기 작전’ 하버드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이들 댓글 부대는 네티즌과 논쟁하거나 논쟁 소지가 있는 댓글을 올리지 않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작업에만 집중했다. 국가와 공산당 지도자를 찬양하거나 공산당 혁명 역사를 선전하는 글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온라인 메시지는 주요 정책 행사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에 대한 정부 정책 홍보,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폭동 등 주요 사건을 전후해 대량 게재됐다. 이런 물타기 작전은 중대한 사건, 정부의 정치 선전, 반정부 시위 등이 있을 때 집중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 검열 당국은 단순히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보다 단체 행동을 요구하는 일반 네티즌들의 글을 삭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비판보다 파급력이 큰 사회불안정을 부추기는 집단 행동을 촉구하는 글을 집중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연구를 주도한 킹 박사는 “정부 고용 인물들이 단 댓글들은 민심에 영향을 준다”며 “댓글 부대는 댓글만 달 뿐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건당 88원’ 댓글 알바들 온라인 공간 쥐락펴락 이들과 함께 중국에서는 정부 당국을 위해 인터넷 여론을 조성하는 ‘댓글 알바’들이 온라인 공간을 쥐락펴락한다. 이들은 글을 올릴 때마다 돈 5마오(五毛·약 88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우마오당’(五毛黨)으로 불린다. 우마오당은 2006년 안후이(安徽)성 선전부가 600위안(약 10만 5630원)의 월급을 주고 고용한 인터넷 평가원들이 댓글을 달고 건당 5마오씩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인터넷 모니터링을 통한 여론 정화 작업이다. 공산당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거나 부정적 기사에 반박의 견해를 게재한다. 부정적인 기사를 실은 웹사이트에 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해당 부처에 알려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우마오당으로 활동 중인 한 대학생은 “우마오당 구성원들은 중국 정부 관련 기사가 뜨면 우선 온라인에 댓글을 달아 자신이 열심히 활동 중이라는 것을 알린 뒤 이를 캡처해 대학의 선전부에 전송한다”고 귀띔했다. ●1052만명 규모… 인터넷 사용자 64명 중 1명꼴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우마오당의 규모는 1052만명에 이른다. 중국 인터넷 사용자가 6억 5000만명(2014년 말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64명 중 1명꼴로 우마오당인 셈이다. 지역별로는 산둥(山東)성이 78만명으로 최다를 기록했고 쓰촨(四川)성(68만명), 허난(河南)성(67만명), 광둥(廣東)성(63만명) 순이었다. 이 중 대학생은 절반에 가까운 402만명이다. 대학생들이 많이 활동하는 까닭은 대학 졸업 후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공산당 입당을 위한 포석이라는 목적이 깔려 있다. 몇 년이나 걸리는 공산당 입당 대신 우마오당 가입을 통해 또 하나의 화려한 ‘스펙’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마오당은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인터넷 사용자들에 대해 당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옹호하는 ‘좋은 누리꾼’이 되자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차오무(喬木) 베이징외국어대 교수는 “이번 연구가 중국 인터넷 검열 당국의 물타기 작전을 밝혀 냈지만 자발적으로 온라인 논쟁에 가담해 여론을 형성하는 우마오당은 더 위협적”이라며 “우마오당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번 조사는 중국 온라인 생태계의 한 단면만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khkim@seoul.co.kr
  • 4·19 혁명 기록물 1450건 유네스코 등재 추진 가속도

    ‘4·19 혁명’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 강북구가 수유동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4·19혁명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봉정식을 했다고 9일 밝혔다. 지난 5월에는 4·19혁명 유엔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가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선정 발표는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내년 7월쯤 있을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4·19 민주 영령들을 참배하고 등재 신청을 알리기 위해 봉정식을 갖게 됐다”면서 “4·19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신청한 4·19 기록물은 총 1450건에 이른다. 1960년 학생과 시민들의 항거활동과 그 이후 이뤄진 부정선거, 피해자 보상, 책임자 처벌 등과 관련된 문건들이 대부분이다. 국가기관과 국회에서 만든 자료와 시민 및 사상자 기록, 외국 자료 등을 모두 취합했다. 등재사업은 서울시와 강북구의 주도로 이뤄졌다. 4·19가 독재정권을 비폭력저항으로 붕괴시킨 학생혁명의 효시로서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등 모두 13건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구는 지난 4월 16~19일 4·19혁명 국민문화제도 열었다. 올해로 4회째 치러진 행사다. 그동안 젊은 세대로부터 점차 잊혀 가던 4·19혁명의 참된 정신을 국민의 가슴속에 다시금 일깨워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4·19 관련 학술자료집을 영문판으로 발간해 세계의 주요 대학과 도서관에 보급하는 등 ‘4·19의 세계화’에 크게 일조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강북구는 4·19 정신을 널리 알리고 후세에 올바른 역사를 전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워야겠다는 사명감으로 4·19와 관련된 일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한 4·19혁명의 민주정신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끝까지 힘껏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나이를 무색하게 했던 10년 전의 ‘혈기방장’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팔순에 접어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손님을 맞을지 그려보며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유, 많이 덥지? 어서 와, 어서 와.” 문을 여는 그의 말투와 표정. 10년 전의 그가 다시 보였다. 한국은행 총재 시절(2002~2006년) 어떤 전임자들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박승(80) 전 총재는 여전히 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이봐 학생, 기껏 어려운 시험 봐서 합격해 놓고 왜 포기하려는 거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4년 2월 어느 날, 해군 제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입교 절차를 밟지 않자 ‘등록을 서두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더니 이마저도 반응이 없자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 전북 김제의 깡촌까지 직접 사람이 달려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이리공고 수석 졸업 예정자를 반드시 데려와 입교시키라는 해사 교장의 ‘특명’을 받은 그 군인은 나의 고집에 아주 난처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가 끝내 임무 완수를 못 하고 돌아간 그날은 나의 힘겨운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1936년, 호남 벽촌 마을에서 어느 집이라고 여유가 있었겠냐마는 우리 집은 특히 더 어려웠다. 아버지는 원래 한의사였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고, 나를 보셨던 44세 때의 아버지는 가족의 기초 생계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었다. 치료하던 환자가 급사한 뒤 의술의 길을 포기했던 아버지는 그 후 평생을 한글 초서체 연구에 바치셨다. -194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7㎞ 떨어진 이리공업중·고에 진학했는데,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어떤 때는 모심고 김매느라고, 어떤 때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야 해서 학교에 못 갔다. 어머니 혼자 새벽엔 보리방아 찧고 낮에는 논일하고 저녁엔 길쌈해서 생계를 꾸리시다 보니 중·고교 6년 동안 수업료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당시에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 불시에 수업료 납부 영수증 검사를 해서 영수증이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을 못 내서 공부를 못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와 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한글 서체와 씨름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깨, 콩, 닭, 토끼를 이고 지고 5㎞ 떨어진 읍내에 가서 고생을 하시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중3 때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학생단체를 만들어 고등학생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김일성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학생들 중 6명은 나와 같이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던 고2, 고3 형들이었다. 얼마 후 유엔군이 들어와 인민군이 퇴각했는데, 그 형들은 천생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처형당할 판이었다. 결국 다들 산으로 도망쳤는데, 나중에 빨치산이 돼서 경찰서를 습격했다가 결국엔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몇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렇게 개죽음을 했겠구나.’ 좌우 이념 대결의 허망하고 참혹한 결과를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 집 아들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어야 되겠네.” 동네 아낙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지만 고3 졸업반인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 아니면 예순 넘긴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 2남 4녀 중 형은 일찍 돌아가셨고 누나 3명은 출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군 사관학교였고 나는 그 중에서도 해사에 시험을 쳤다. -해사 입교를 포기하고 농사에 전념했던 그해, 가을 수확을 하니 먹고살 것 빼고 딱 쌀 다섯 가마가 남았다. ‘이 정도면 일단 대학에 등록할 수준의 돈은 되겠다.’ 이듬해 초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시험을 봤다. 어머니가 싸 주신 찐 고구마 5개를 손에 들고 난생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역과 남대문 주변의 살풍경은 60년이 지난 현재도 머리에 또렷하다. 곰탕집 간판을 보고는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 간판을 보고는 ‘떡 파는 곳’으로 오해했던 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55학번으로 서울대 합격을 했는데, 입학 때의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그래서 고등교육받는 게 가당치도 않은 시골 출신의 고학생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가정교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니 고향집의 농사가 문제였다. 수시로 서울과 김제를 농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중·고교 6년 동안 그랬듯 학비와의 전쟁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입학 때 가졌던 경제학 교수에 대한 바람은 더 절실해져 갔다. 그러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나의 선택은 돈을 벌면서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는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였다. -1961년 한국은행 배지를 달았다. 만 25세였다. 양복 한 벌을 18개월 할부로 사 입으니 세상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얼마 후 5·16 정변이 났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동국대 옆에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만들고 여기에서 사무관 이상 공무원과 교사, 교수, 기업인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입행 첫해의 내가 여기에 강사로 위촉됐다. 매주 3~5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모교의 교장 선생님과 대학 총장, 학장도 나의 강의를 듣는 상황이 됐다. 대학 은사 박희범 교수님께서 나를 추천했기 때문이란 건 강의를 시작하고 얼마가 지난 후에야 알았다. 경제기획론과 경제발전론을 가르치셨던 박 교수님은 비교적 진보적인 색채의 학자이셨는데, 혁명정부에서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 역할을 맡으셨다. 교수님은 나중에 교육부 차관과 충남대 총장을 지내셨다. -운명을 바꾼 미국 유학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찾아왔다. 1968년 나는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 날 며칠을 심하게 취조당했다. 일인즉슨 이랬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적자가 대단히 심했는데 한국은행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폈다. 그러나 정부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같이 뛴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서봉균 재무장관을 초청해 환율 인상 정책을 펴도록 설득시키기 위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원고 작성과 발표를 대리급 조사역에 불과했던 내가 담당했다. 그런데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에 당장이라도 정부가 환율을 대폭 올리는 듯한 기사가 났다.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 혼란이 왔다. 얼마 후 중앙정보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행원부터 부총재보까지 담당자들을 모조리 연행해 갔다.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멋대로 신문사에 원고를 넘겨줬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는데, 작성자인 내가 우선적으로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후배 행원이 신문기자 친구에게 발설한 사실이 드러나 나의 혐의점은 벗겨졌지만, 어쨌든 나는 후배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이게 한국은행 간부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겼다. “자네 혼자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확실히 보상해 줄게.” -보상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1년 한국은행 최초로 국외에 유학생 2명을 파견하게 됐다. 전체 행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봤는데 나는 통계학에서 과락이 나와 탈락했다. 그런데 재시험 공고가 떴다. “어떻게든 박승 대리는 합격시키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1972년 1월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캠퍼스)로 유학을 떠났고 2년여가 흐른 1974년 4월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아 왔다. 유학을 마친 뒤 은행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지나 두 군데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하게 되는 이경식 당시 경제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다. 이 수석은 한국은행 재직 때 나의 직속상관이었다. 또 하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김재익 경제기획국장을 통해 타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자문단’의 단장 역할이었다. 당시 사우디는 ‘1차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를 벌게 됐지만 경제 개발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은 경제 개발을 도와줄 자문단 파견을 한국에 요청했다. 나의 선택은 사우디였다. -사우디에서 1년 만에 돌아와 1976년 9월 한국은행에 사표를 내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갔다. 교수 부임 직후에 쓴 ‘경제발전론’은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 교수가 되고 이듬해인 1977년부터 3년 동안은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경제 관련 사설을 썼다. 한 편 작성에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언론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와 함께 김학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 관련 사설을 서울신문에 썼다. 교수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학교 안에서는 정경대학장과 대학원장을, 학교 밖에서는 국제경제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는데 1988년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박 교수, 나랑 같이 한번 일해 봅시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해 2월 취임을 앞두고 경제수석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만 52세였다. 노 대통령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다양한 언론 기고와 강연 활동 등으로 몇몇 경제단체에서 나를 천거했던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내가 맡았던 첫 번째 과제는 ‘200만호 주택 건설’ 공약의 실현이었다. 말이 200만호이지 엄청난 물량이었는데 막상 아파트를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에는 땅이 없었고, 서울시 외곽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린벨트 밖으로 나가자.” 지도를 펴놓고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측량원표를 중심으로 반경 25㎞를 컴퍼스로 동그랗게 돌려 봤다. 25㎞ 이내로 한 것은 ‘지하철 1시간 이내’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지역이 경기 분당, 산본, 평촌, 인천 중동 등 4곳이었다. 4대 신도시 추진이 확정되자 1988년 12월 노 대통령이 다시 나를 불렀다. “박 수석, 이제는 건설부 장관으로 고생 좀 해야겠습니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행까지 맡아 주셔야지요.” -건설부 장관이 되고 나서 이듬해 서울 북쪽의 일산이 추가돼 5대 신도시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되면서 나는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심각한 마찰에 부딪치게 됐다. 당시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평균 130만원대였는데 건축비는 170만원, 시장 가격은 25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분양 당첨만 받으면 막대한 이익이 남는 구조였고, 건설회사는 낮은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날림 공사를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분양가를 올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제수석실의 반대가 심했다. 분양가를 올리면 집값이 더 뛴다고 했다.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지만 “그 얘기는 이미 경제수석한테 들었다”고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구나.” 사표를 냈다. 다음날 사실상 경질 통보를 받았다. 그게 1989년 7월이었고 이듬해 3월 신학기부터 다시 강단으로 돌아갔다. -2001년 3월 정년퇴임을 하고 이듬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숱한 공직을 거쳤지만 2006년 3월 퇴임할 때까지의 한국은행 총재 4년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한국은행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의 3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5남매를 결혼시키면서 4명을 청첩장 없이 보냈다. 첫째와 둘째 아이의 결혼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치렀더니 친구들이 “축의금 낼 기회를 좀 달라”고 해서 셋째 때는 200장을 찍었다. 그런데 역시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다시 넷째, 다섯째의 결혼은 순수 가족 행사로 치렀다. -내가 모은 재산은 언젠가는 전부 사회에 내놓고 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행 총재 재임 시절부터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써 왔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오래전에 장기 기증 서약도 마친 상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된 데는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박승 前 총재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청와대·건설부·공공기관)에서, 또 대학 강단(중앙대 경제학과)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경제계의 원로다. 한국은행 총재 때 소신 있고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김제 백석초, 이리공업중·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 경제학 석사·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주택공사·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 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봉정식

    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봉정식

    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봉정식에서 김영진(앞줄 왼쪽) 4·19혁명 유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이사장 등 참석자들이 현충탑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경부선 2층 화물열차 2018년엔 ‘물류 혁명’

    경부선 2층 화물열차 2018년엔 ‘물류 혁명’

    2018년부터 경부선철도에서 2층 화물열차(그림)가 운행된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철도기술연구원 등은 수송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물류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2층 화물열차 운행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2층 화물열차는 컨테이너 2개를 싣고 달리는 열차(DST·Double Stack Train·이단적재열차)로 본격 운행할 경우 수송량을 지금보다 65% 이상 늘려 작은 물류 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코레일과 철도기술연구원, 대한통운이 국내용 DST 시제품을 제작, 검증하고 있으며 연내에 시험 운전할 계획이다. DST는 컨테이너와 화차 높이를 낮춰 기존 철길에 설치된 터널과 전차선 등에 걸리지 않게 설계됐다. 기존 화차 높이를 1100㎜에서 416㎜로 낮추고, 컨테이너 높이도 2591㎜에서 1981㎜로 낮춰 2개를 실어도 장애물에 걸리지 않는다. 화차 바퀴 부분은 기존 높이를 유지하되 컨테이너를 앉히는 부분을 낮추고, 컨테이너는 폭은 그대로 유지하고 높이를 낮추는 방식이다. 홍순만 코레일 사장은 “DST는 별도 투자 없이 기존 철로를 달릴 수 있고, 컨테이너 2개를 싣고 운행해도 연료 소모량은 큰 변화가 없어 수송력이 크게 증대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금보다 65% 이상의 수송량 증대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코레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부산항만공사, CJ대한통운, 코레일로지스, 의왕ICD 등 철도·항만·육상물류를 대표하는 6개 기관장은 지난 7일 대전 코레일 사옥에서 ‘DST 도입을 통한 철도와 항만의 물류 활성화’ 업무협약(MOU)를 맺었다. 6개 기관은 국내 물류 경쟁력 강화를 위한 DST 활용에 공감하고, 철도와 항만 간 연계 물류 활성화와 DST 운영을 위한 기술개발, 수요 창출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이미 내수용 DST 컨테이너화차를 공동으로 개발 중인 코레일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CJ대한통운은 이번 협약으로 내수 물량뿐만 아니라 항만 물량까지 DST를 통해 활성화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후광학술상 수상자 상금 전액 5·18시민군 후손에 기부

    후광학술상 수상자 상금 전액 5·18시민군 후손에 기부

    제9회 후광학술상(전남대 민주평화인권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지 카치아피카스(66) 전 미국 웬트워스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상금 전액을 5·18 시민군 후손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8일 오후 전남대에서 열린 후광학술상 특별강연에서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상금을 시민군 후손들의 그리스 방문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모시 소재의 계량한복을 입고 연단에 선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5·18이 없었으면, 한국민주주의 없어요” 등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한국말을 영어와 함께 섞어 쓰며 강연했다. 그는 “광주 5·18민주항쟁이 한국에서 시작돼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됐다. 후손들이 더 멋진 세계 시민들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항쟁 이후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주요한 상징이자, 영감을 북돋는 민주주의 슬로건이 됐다”며 “한국 역사에서 광주 항쟁의 의미는 프랑스 역사에서 파리코뮌과 러시아 역사의 포템킨 전투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이날 전남대 제64주년 개교기념일 행사와 함께 열려 카치아피카스 교수에게 메달, 상장,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됐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학과 재학 중 월남전 반대시위로 수감생활하다 석방된 후 택시운전과 노동의 삶을 경험하고, 세계적인 학자인 허버트 마르쿠제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 뒤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1968년 파리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작된 68혁명에 관한 그의 저서 ‘신좌파의 상상력’은 1990년대 말 한국에서 번역·출판돼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의 민중항쟁을 통사적인 시각으로 처음 정리한 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5·18민중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했던 그는 연구를 위해 해마다 광주를 방문하고 있다. 관련 연구 성과물 가운데 ‘Asia’s Unknown Uprisings 1, 2’ 등은 ‘한국의 민중봉기’ 등으로 번역돼 국내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다. 후광학술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전남대가 2006년 제정했다.역대 수상자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제1회), 고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제2회),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제3회), 와다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제4회),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제5회),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제6회), 최정운 서울대 교수(제7회),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제8회) 등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2018년부터 경부선에 2층 화물열차 운행한다

    2018년부터 경부선에 2층 화물열차 운행한다

     2018년부터 경부선철도에서 2층 화물열차(그림)가 운행된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철도기술연구원 등은 수송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물류비는 대폭 줄일 수 있는 2층 화물열차 운행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2층 화물열차는 컨테이너 2개를 싣고 달리는 열차(DST·Double Stack Train·이단적재열차 )로 본격 운행할 경우 수송량을 지금보다 65% 이상 늘려 작은 물류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코레일과 철도기술연구원, 대한통운이 국내용 DST 시제품을 제작, 검증하고 있으며 올해 중 시험운전을 할 계획이다.  DST는 컨테이너와 화차 높이를 낮춰 기존 철길에 설치된 터널과 전차선 등에 걸리기 않게 설계됐다. 기존 화차 높이를 1100㎜에서 416㎜로 낮추고, 컨테이너 높이도 2591㎜에서 1981㎜로 낮춰 2개를 실어도 장애물에 걸리지 않는다. 화차 바퀴 부분은 기존 높이를 유지하되 컨테이너를 앉히는 부분을 낮추고, 컨테이너는 폭은 그대로 유지하고 높이를 낮추는 방식이다.  홍순만 코레일 사장은 “DST는 별도 투자없이 기존 철로를 달릴 수 있고, 컨테이너 2개를 싣고 운행해도 연료 소모량은 큰 변화가 없어 수송력이 크게 증대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금보다 65% 이상의 수송량 증대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코레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부산항만공사, CJ대한통운, 코레일로지스, 의왕ICD 등 철도·항만·육상물류를 대표하는 6개 기관장은 지난 7일 오후 대전 코레일 사옥에서‘DST 도입을 통한 철도와 항만의 물류 활성화’ 업무협약(MOU)를 맺었다. 6개 기관은 국내 물류 경쟁력 강화를 위한 DST 활용에 공감하고, 철도와 항만 간 연계 물류 활성화와 DST 운영을 위한 기술개발 및 수요창출에도 적극 협조키로 했다.  이미 내수용 DST 컨테이너화차를 공동으로 개발 중인 코레일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CJ대한통운은 이번 협약으로 내수 물량뿐만 아니라 항만물량까지 DST를 통해 활성화하는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김기환 철도기술연구원장은 “일반 컨테이너는 열차나 선박, 트럭에 실을 수 있게 국제 표준을 적용, 제작하기 때문에 시범제작 중인 DST는 내수용으로만 사용된다”며 “국제 표준화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서울포토] 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봉정식

    [서울포토] 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봉정식

    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봉정식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에어버스, 3D 프린터로 제작한 무인항공기 ‘토르’ 공개

    에어버스, 3D 프린터로 제작한 무인항공기 ‘토르’ 공개

    차세대 혁신 기술로 꼽히는 3D 프린터가 이제는 비행기도 '찍어내기' 시작했다. 최근 유럽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항공우주박람회인 'ILA 베를린 에어쇼'에서 3D 프린터로 만든 미니 비행기를 공개했다. 길이 약 4m, 무게 20kg의 이 창문없는 비행기는 드론(무인항공기)으로 이름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토르’(THOR)다. 흥미로운 점은 2개의 전기모터와 송수신 장치(radio control system)를 제외하고는 모두 3D 프린터로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이에 에어버스 측은 3D 프린터가 보여준 '첨단 항공산업의 미래'라며 자평할 정도. 에어버스의 언급처럼 실제 3D 프린터 분야는 제조업 분야의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항공산업은 물론 우주와 군사 분야 심지어 음식도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회사와 연구소 등은 일부 부품을 3D 프린터로 출력해 사용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트라이던트 II D5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에 3D 프린터로 출력한 부품을 사용했다고 발표해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또한 드론 역시 엔진과 카메라 등 일부 주요 부품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품은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군사·산업 분야의 3D 프린터가 상용화되면 제작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지는 것은 물론 경제성도 높아진다. 항공분야의 3D 프린터 활용은 특히 에어버스와 라이벌 보잉의 각축장이다. 이미 두 회사는 3D 프린터로 여객기 A350과 B787 드림라이너 일부 부품을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에어버스의 토르 개발 책임자 데틀레프 콘니고어스키는 "토르는 3D 프린팅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험대"라면서 "향후 3D 프린터는 비행기의 부품 수준이 아닌 전체가 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3D 프린터는 메탈 소재의 부품도 기존 것보다 30~50%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쓰레기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위기의 베네수엘라, 결국 식량배급제로 가나?

    위기의 베네수엘라, 결국 식량배급제로 가나?

    극심한 경제난으로 남미경제의 시한폭탄이 된 베네수엘라에서 식량배급이 확대될 전망이다. 마르코 토레스 베네수엘라 식량장관은 6일(현지시간) "민간이 식품을 팔지 못하게 하진 않겠지만 지역생산공급위원회를 통한 식품 공급에 우선권을 두겠다"고 말했다. 지역생산공급위원회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식품배급을 위해 창설한 조직이다. 현재 식품배급은 카라카스 저소득층 밀집 거주지역 등지에서 실시되고 있다. 마두로 정부는 지역생산공급위원회를 통해 기초식품이 든 '식량봉투'를 나눠 준다. 식량봉투는 쌀 3kg, 우유 1리터, 설탕 1kg, 강남콩 1패키지 그리고 식용류 1리터로 구성돼 있다. 마두로 정부는 3주마다 1회 식량을 배급하고 있다. 최근엔 사망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영면해 있는 엘갈바리오 구역에서 식량배급이 진행됐다. 중남미 언론은 "식품을 받기 위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이 긴 줄을 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식품배급을 놓고 베네수엘라에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마두로 정부는 식품배급을 위한 조직인 지역생산공급위원회를 "경제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혁명적 조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권에선 "마두로 정부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선심정책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식품을 받는 주민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반응과 식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평이 교차하고 있다. 임신 7개월이라는 19살 여성은 인터뷰에서 "정부가 나눠주는 식품이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 "다만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날 텐데 기저귀와 분유를 구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남미 언론은 "배급되는 식품의 양이 워낙 적어 혜택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도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한편 배급이 시작되면서 베네수엘라에선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식품의 경우 앞으론 민간의 판매가 금지되고 배급만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토레스 식량장관은 "소문은 사실무근"이라면서도 "그러나 (식품이 부족한 만큼) 지역생산공급위원회를 통한 나눠주기에 우선권을 두겠다"고 말했다. 마두로 정부는 품절을 거듭하는 식품대란이 "(실정이 아니라) 자본세력의 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파티야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열린세상] 중국 자본이 해외로 손을 뻗치는 이유/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장

    [열린세상] 중국 자본이 해외로 손을 뻗치는 이유/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장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투자는 글로벌 시장의 6분의1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톰슨 로이터에 따르면 올 1분기 해외 M&A 총규모는 6820억 달러이며, 이 중 15%인 1010억 달러가 중국 기업들의 몫이다. 2015년 중국 해외투자 총액 1090억 달러에 맞먹는 수준이다. 중국의 해외 M&A는 이미 전 세계 M&A 판도를 바꿔 놓고 있다. 중국화공은 지난해 73억 유로에 이탈리아 타이어 업체 피렐리를 인수했다. 올 초에는 스위스 농업기업 신젠타를 44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자본을 내세워 세계를 경영하고 디자인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중국 자본의 해외기업 인수는 첫째, 경기하락과 경기회복 둔화로 해외 많은 양질의 기업 자산이 저평가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적은 자금으로 기술력과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들을 흡수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둘째, 현재는 기술혁명 4.0 시대로의 진입 초기 단계로 새로운 업태(業態)와 신기술·신산업이 속출하는 시기다. 글로벌 500대 기업이라도 신영역에서는 아직 독점 지위를 갖고 있지 못했을뿐더러 기업 순위 자체도 신생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급속하게 바뀌는 시대다. 세계 1000개 기업 순위는 과거 10년간 712곳이 교체됐다. 중국 기업들은 신생 산업에 대한 M&A를 통해 선도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국제화에 익숙한 중국의 대형 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 M&A를 잘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했다. 동시에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창의는 기업들에 지금껏 생각지도 않던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영역에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글로벌적인 시각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특히 원자재와 기술 확보를 위한 중국 정부의 대외 투자촉진 정책은 국내보다 유리한 대출조건 및 정부 펀드 투자 등에 대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 역시 선진국들과의 공동투자 합작플랫폼을 구축해 중국 기업과 개인들의 해외 투자를 위한 편리한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셋째, 세계 각국 기업들의 중국 기업에 대한 혐오와 배척 및 편견은 중국 기업들의 선진화와 중국 내수시장에 따른 기대로 많이 약화됐다. 선진국 정부나 기업은 중국으로부터의 직접 투자를 원칙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 관점에서 국유기업에 의한 투자는 경계 대상이고, 중국 기업에 의한 M&A 방식은 심리적 저항이 크다. 하지만 노조 포용, 현지 문화 존중, 경영권 일임은 중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 기업의 국제화 걸음을 위한 우선 선호 지역이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혁신과 벤처 창업의 대명사다. 그러나 중국 자본은 실리콘밸리보다 실리콘밸리 밖에 있는 혁신 기업들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미국 간의 혁신적인 과학기술 협력 모델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 자본의 미국 핵심 기술 기업의 초기 단계에 대한 지분투자로 기술이나 브랜드를 획득하고 이를 중국 내수시장과 중국 제조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이후 중국 시장 및 세계 시장에서의 판매 확대로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81년 전후까지만 해도 2만 5000명의 인력을 보유한 대기업이 전체 연구개발(R&D)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었다. 100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부터 500명 이하 소기업의 R&D 비용이 전체 미국 기술개발 비용의 20%를 넘어선 반면 대기업의 비중은 35% 이하로 떨어졌다. 세계 선도 핵심 기술력을 보유한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 자본의 투자는 ‘미국 기술’과 ‘중국 시장 및 중국 제조’의 완벽한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소기업은 미국 대기업과 달리 중국 자본에 대해 개방적이고 환영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미국에 대한 투자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투자 영역은 산업별 가치사슬 전반에 분포돼 있다. 2015년 중국의 대미 투자는 171건을 기록해 150억 달러에 달했다. 올해 1분기는 300억 달러가 투자돼 이미 지난해 1년 기록을 초과했다. 2015년 중국의 대미 투자로 1만 3000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개인과 가계에 대한 투자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미국도 중국 기업의 국제화 전략을 주목하고 있다.
  • [신산업·융합에서 길을 찾다 에너지 혁명 ③친환경 발전] 석탄, 고온·고압 통해 생성되는 가스로 터빈 발전

    [신산업·융합에서 길을 찾다 에너지 혁명 ③친환경 발전] 석탄, 고온·고압 통해 생성되는 가스로 터빈 발전

    효율 42%로 석탄보다 2%P 높아 美·유럽 1990년대 이미 상용화 충남 태안반도 끝자락에 있는 태안화력발전단지. 석탄화력발전소 옆에 130m 높이의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이 구조물은 국내 최초로 세워지는 석탄가스화복합화력(IGCC)의 핵심 설비인 가스화기다. 석탄을 원료로 하지만 고온·고압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가스가 가스터빈과 증기터빈을 돌리는 연료로 사용된다. 겉보기에는 석탄화력발전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온실가스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친환경 발전소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 완공 예정이다. 발전소 건설 업체인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6일 “석탄은 오염물질 배출이 상대적으로 많아 기피 대상이지만 우수한 경제성 등은 무시할 수 없다”면서 “청정 석탄 이용 기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석탄 등 저급 연료를 가스로 전환하는 기술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미 상용화돼 있었다. 미국은 석탄가스화복합화력의 효율을 높이고 건설 단가를 낮추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 유럽은 석탄과 바이오 등을 섞는 등 혼합형 연료 개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은 환경 규제 강화, 노후 석탄발전설비 대체 수요 등을 감안할 때 2030년 8300억 달러 규모(약 250GW)의 거대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석탄가스화복합화력의 발전 효율은 약 42%로 석탄화력 대비 2% 포인트 높다. 발전 효율이 2% 올라가면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10% 줄어든다. 기존 발전설비와 달리 연료를 연소하기 전에 오염물질 제거가 쉬워 액화천연가스(LNG)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특히 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과 연계되면서 발전 단가를 15%가량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부발전 측은 “합성가스의 부피가 기존 석탄화력 배기가스의 10%에 그친다”면서 “부피가 줄면 그만큼 비용이 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증기의 압력과 온도를 높여 연료 소비를 줄이는 초초임계압(USC) 화력발전소, 석탄발전소의 연료를 우드펠릿(나무와 톱밥으로 만든 고체 연료) 등으로 대체하는 연료전환 프로젝트, 공기와 석회를 동시에 주입해 연료를 순환 연소시킴으로써 오염물질 배출을 크게 줄인 순환유동층 보일러도 친환경 발전소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황 함유량을 크게 낮추는 플랜트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해 완공한 트리니다드토바고 정유 플랜트에서는 초저황(황 함유량 8 이하) 디젤이 매일 4만 배럴씩 생산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신산업·융합에서 길을 찾다 에너지 혁명 ③친환경 발전] “석탄발전 내뿜는 초미세먼지로 年1600명 사망”… LNG 대안 부상

    [신산업·융합에서 길을 찾다 에너지 혁명 ③친환경 발전] “석탄발전 내뿜는 초미세먼지로 年1600명 사망”… LNG 대안 부상

    “최신 설비를 갖췄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였습니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우리를 살렸네요.” 경기 북부 지역의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발전소에 근무하는 김상경(45·가명)씨는 지난 3일 정부가 미세먼지 관련 특별대책을 내놓자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발전 단가가 싼 석탄발전소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LNG발전소가 친환경 발전소로 각광을 받으면서 다시 가동률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발전소는 가동률이 30% 밑으로 떨어지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다. 김씨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석탄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줄여 나갈 때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면서 “석탄발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인 줄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정부가 눈감았던 것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일 발전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발전소를 LNG발전소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NG발전소도 엄밀하게 따지면 화력발전의 하나지만 청정 연료인 LNG를 원료로 사용한다. 환경오염 배출이 거의 없어 대도시 인근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국내 최초 화력발전소인 서울 마포구 당인리 화력발전소도 2020년 LNG발전소로 탈바꿈한다. LNG발전소의 효율(57%)은 일반 화력발전(40%)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건설 기간이 짧은 것도 장점이다. 석탄발전소가 50개월 걸린다면 LNG발전소는 30개월이면 만들 수 있다. 한때 발전소를 짓기만 하면 ‘떼돈’을 번다고 해서 SK, GS 등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하기도 했다. LNG발전소가 석탄과 신재생 에너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는 여전하지만 전력 과잉공급과 비싼 가격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LNG발전소는 원자력발전소와 석탄발전소를 통해 생산한 전기가 모자랄 경우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가동하는 ‘보조’ 발전원에 불과하다. 전력 예비율이 20%까지 치솟는 상황에서는 LNG발전소를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 LNG발전소의 평균 가동률은 40% 수준까지 떨어졌다. 총 173기의 LNG발전소 가운데 100기 이상이 가동을 멈춰 버렸다는 의미다. LNG 구입 비용은 ㎾h(1㎾를 1시간 사용했을 때 전력량)당 106.75원으로 석탄 37.25원에 비해 세 배가량 더 들어간다. 시장 논리로 따지면 보다 싼 가격의 석탄을 쓸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거세다는 점도 석탄 의존율을 높이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석탄 발전은 전체 에너지원 중 39%로 1위다. 2029년에도 32.3%로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는 20곳의 석탄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방안도 담겨 있다.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초미세먼지(PM2.5) 기여율은 4% 안팎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크지 않지만 전국 53기 석탄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미세먼지는 뇌졸중, 허혈성 심장병, 만성폐쇄성 폐질환, 폐암 등을 유발해 한 해 1600여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지난해 경고한 바 있다. 외국은 석탄발전소의 폐해를 인지하고 점차 줄여 나가고 있다. 미국은 2020년까지 석탄발전소 200곳을 줄이겠다고 했다. 유럽연합(EU)도 2025년을 목표로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폐쇄에 나섰다. 중국도 공기의 ‘질’을 위해 내년까지 석탄발전소 신규 승인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뒤늦게 LNG발전소에 힘을 실어 주지만 실질적 지원 없이는 자생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전력이 발전 단가가 싼 전력부터 구매하는 ‘경제급전’ 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발전사업자의 고정비용을 지원해 주는 용량요금(CP)을 현실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석탄의 LNG 전환에 연간 최소 10조원이 발생하는데 이 비용을 한전과 발전사가 모두 부담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김성수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h당 최소 16원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아직 사용 기한이 남은 석탄발전소에 대해서는 배출 저감 장치를 달아 주는 ‘성능개선’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먼지나 질소산화물 등을 사전에 걸러내 초미세먼지 발생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배출 저감 장치는 개당 500억~700억원으로 최대 3조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능 개선만으로 온실가스를 대폭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파리기후변화회의가 통과되면서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보다 37% 줄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에너지 학계에서는 석탄발전소를 포기하지 않고는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본다. 환경단체도 석탄발전소 중심의 전력 생산을 전면 재검토하고 에너지 로드맵을 다시 짜라고 주문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기로 한 계획부터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서울형 도시재생 세운상가의 반격] 겉으론 보행축 재건 안으론 공동체 부활…인간미 더하는 ‘세운’

    [서울형 도시재생 세운상가의 반격] 겉으론 보행축 재건 안으론 공동체 부활…인간미 더하는 ‘세운’

    “세운상가는 서울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창의제조산업의 혁신지로 거듭날 것입니다.”(지난 1월 28일 ‘다시 세운 프로젝트’ 선포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6일 찾은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평온하기만 하다. 서울시가 창의제조업의 본부로 삼겠다며 지난 1월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조용하기만 하다. 그럴싸한 랜드마크 빌딩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공사도,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과거 도시재생은 건물을 부수고 그 위에 마천루를 세우는 것이었지만 세운상가는 있는 건물을 쓰기 편하게 리모델링하고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이 새로운 시도는 어떻게 진행될까? 먼저 ‘다시 세운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사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드웨어를 바꾸는 작업의 핵심은 현재 세운초록띠공원~세운~대림~삼풍~풍전호텔~신성~진양상가로 이어지는 1㎞ 길이의 도심축을 복원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다시 걷는 세운상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양병현 시 역사도심재생과장은 “청계천 이용자들이 보행교를 통해 종묘와 남산으로 갈 수 있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도 설치한다”면서 “이렇게 되면 끊겨 있는 시민들의 보행축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운초록띠공원은 3층 보행데크와 연결되는 경사진 형태의 ‘다시세운광장’으로 바뀌게 된다. 애초 오는 10월에 광장을 개방할 계획이었지만 역사 유물이 발견되면서 미뤄지고 있다. 건물 양옆 3층 높이에 설치되는 보행데크에는 전시실과 휴게실, 화장실 등의 거점 공간 30여개가 컨테이너 박스 형태로 들어선다. 시 관계자는 “개성 있는 팝업 스토어나 디자인 등 사람들을 유인할 만한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는 세운상가 재생사업이 서울 도심의 노후화를 치료하는 일종의 ‘침술요법’과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 본부장은 “세운상가를 살리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상가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낡은 서울의 동쪽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라면서 “동양의학에서 침술은 자극을 통해 주변에 ‘기’(氣)가 돌게 만들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세운상가군의 재생도 이와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겉과 함께 속을 바꾸는 작업도 착착 진행된다. 속을 바꾸는 프로젝트의 중심은 ▲다시 찾는 세운(산업 재생) ▲다시 웃는 세운(공동체 재생)이다. 시는 주민을 재생사업의 주체로 만들기 위해 주민 조직 ‘다시세운시민협의회’와 기술장인 경쟁력 강화 조직 ‘수리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협의회는 세운상가에 입주한 문화예술단체와 상인, 주민, 전문가, 사회적 경제 조직 등 80명으로 구성된다. 또 세운상가 상인들의 기술력을 살리기 위한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또 장인들과 청년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세운상가는 대학 ▲21C 연금술사학교 ▲주민 참여 공동체 워크숍 등을 운영한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마지막 절친마저… 北에 ‘생존 위한 개방’ 압박

    마지막 절친마저… 北에 ‘생존 위한 개방’ 압박

    “北, 절친국 南과 밀착에 긴장…주민들 변화 요구도 거세질 듯” 5일(현지시간) 사상 첫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을 가장 충격적으로 바라볼 국가는 아마 ‘북한’일 것이다. 북한은 ‘반미’를 기치로 쿠바와 오랫동안 유대를 다져 왔고, 정치·군사적으로 돈독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미국의 턱밑에서 사회주의 깃발을 고수한 쿠바는 반미를 ‘국시’(國是)로 내세운 북한과 더불어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 쿠바가 그동안 적대 관계였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교류와 협력에 나선 것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 개방’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기에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그만큼 강력할 수밖에 없다. 이번 외교장관 회담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단절됐던 한·쿠바 관계가 서서히 본궤도에 진입하는 신호탄 격이다. 사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에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왔다. 1997년 당시 유명환 외교부 미주국장이 한국의 고위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다. 이후 2005년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쿠바 아바나에 무역관을 개설했다. 지난해에는 쿠바 정부 문화사절단이 한국 정부의 공식 초청으로 처음으로 방한했다. 우리 정부의 쿠바 ‘공들이기’는 북한과 가까운 이란과 우간다 등에 대한 외교 노력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쿠바의 ‘형제국’ 북한이 느끼는 압박과 위기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마지막 남은 혈맹인 쿠바의 변화에 대해 북한으로서는 매우 불쾌할 것이고 또 적지 않은 근심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북한 지도부가 변화를 거부하는 동안 일반 주민들의 변화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기에 이래저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윤병세 장관이 “다양한 후속 협의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이번 외교장관 회담 이후 양국 간 고위급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는 쿠바와의 다양한 협력사업 개발을 통해 공통의 분모를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후변화 대응이다. 윤 장관은 회담에서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해안선 침식에 대한 쿠바 측의 대응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기후변화 협력사업에 기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브루노 로드리게스 장관은 이에 대한 기대와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정부는 해안선 침식 대응을 위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쿠바 및 카리브국가연합(ACS) 사무국 측과 올해 하반기부터 기여 방안에 대해 실무협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회담 후 한인후손회관인 ‘호세 마르티 한국 쿠바 문화클럽’을 방문해 안토니오 김한 한인 후손 회장에게 “후손 여러분이 문화교류 등을 통해 양국 국민 간 마음과 마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쿠바 한인 사회는 1905년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주했던 한인 중 일부가 쿠바로 건너오면서 처음 뿌리를 내렸다. 현재는 1119명의 한인 후손들이 쿠바 각지에 거주하고 있다. 아바나 공동취재단 서울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첫 외교장관회담 이례적 75분…韓, 쿠바에 수교 러브콜

    양국 관계 정상화까지 갈지 관심 5일(현지시간) 윤병세 외교장관과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 간의 첫 양국 외교장관회담에서 우리 측이 쿠바 측에 사실상 강력한 수교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양국 관계가 정상화 될지 주목된다. 한·쿠바 외교장관회담은 아바나 시내의 쿠바 정부 건물인 ‘컨벤션궁’에서 당초 예정됐던 30분을 훌쩍 넘긴 75분간 진행됐다. 윤 장관과 로드리게스 장관은 2013년 9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한·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CELAC)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면담한 적은 있지만 양국 간 공식 외교장관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국은 앞으로 고위급 교류 등을 통해 다양한 차원의 후속 협의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회담 후 공동취재단에 “우호적이고 진지하며 허심탄회한 가운데 회담이 진행됐다”면서 “양국이 가진 잠재력을 더욱 구체화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점을 제가 강조했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측의 생각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잠재력을 구체화할 시점’이라는 언급은 수교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쿠바가 ‘형제국’인 북한을 의식한 탓인지 회담은 취재진에 단 1분간만 공개됐다. 쿠바 측은 당초 한·쿠바 외교장관회담을 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의 한국말은 통역이 스페인어로 전달했고, 로드리게스 장관의 스페인어 발언은 영어로 통역됐다. 윤 장관은 쿠바 측의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주력했다. 윤 장관은 쿠바의 혁명가이자 독립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시 ‘관타나메라’를 언급하며 아늑하고 포근한 쿠바의 정경이 인상 깊다는 소감을 전했다. 윤 장관은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개인에게는(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를 위한 위대한 발자국”이라는 역사적 명언을 인용하며 한·쿠바 관계에서 한국 외교장관의 첫 쿠바 방문의 의미를 강조했다. 회담에 배석했던 우리 정부 관계자는 “쿠바 측이 매우 좋아했다”며 “우리 쪽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했고, 쿠바 측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윤 장관은 쿠바에서 귀국하는 대로 러시아 방문에 나설 예정이다. 윤 장관은 이번 방문에서 러시아 측과 북핵 문제, 양자 문제, 지역 현안 등을 폭넓게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바나 공동취재단 서울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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