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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차 수입규제 조치/브라질 “철폐 검토”

    ◎카르도스 대통령,공 외무에 밝혀 한국자동차에 대한 브라질 정부의 수입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브라질을 방문중인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지난 8월31일 카르도스 대통령,1일 바로스 브라질 외무장관을 만나 자동차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가 양국간 건전한 통상관계의 확대발전에 저해되지 않도록 조속한 시일안에 철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대해 카르도스 대통령은 『올해 6월부터 브라질의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등 외환사정이 호전되고 있으므로,양국간 우호협력 차원에서 원만히 해결될 것이 기대된다고 말했다.또 바로스장관도 『조만간 수입규제 조치 철폐가 검토될 예정』이라면서 『세계무역기구보다는 양국간의 협의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 6월13일 국제수지 악화를 이유로 자동차 수입규제 조치를 공표,올 상반기에만 2억7천만 달러의 급신장을 기록한 우리 자동차의 브라질 수출에 타격을 준 바 있다.
  • 나토,세계에 최대규모 공습/창설 46년만에

    ◎전투기 60여대 출격… 3차례 맹폭/세계 “공습 나토기 2대 격추”/EU 감사원 등 12명 사망설 【사라예보·브뤼셀 외신 종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사라예보에 대한 포격으로 37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해 30일 새벽(이하현지시간)부터 하오까지 3차례에 걸쳐 나토사상 최대 규모의 공습을 단행했다고 나토 소식통들이 밝혔다. 나토 전투기들의 이날 공습으로 사라예보 지역의 세르비아계 점령지에서 유럽연합(EU) 감시단원 5명등 모두 12명이 사망했다고 세르비아계 통신 SRNA가 비공식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특히 이날 공습에는 영국등 5개국과 아드리아해상의 미 항모 데어도어 루즈벨트호등에서 발진한 F­15E,F­18D,F­16 등 60여대의 전투기들이 대거 참가함으로써 40개월을 끌어온 보스니아 내전기간을 포함,지난 1949년 나토 창설 이래 지금까지 단행된 폭격 가운데 최대 규모의 공습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토와 유엔 관계자들은 이번 나토 공습으로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이 「괴멸적인」 피해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공습에 참가한 나토 전투기 2대가 세르비아계의 방공포에 의해 격추됐다고 세르비아계 라디오 방송이 주장했으나 나토의 공식확인은 아직 없다. 이날 2차 공습후 4시간뒤 단행된 3차 나토 공격에서 목표물들이 정확히 피격됐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앞서의 1·2차 폭격은 보스니아 서부의 모스타르시,동부 고라주데,북부 투즐라 등 보스니아 전역의 세르비아계 방공미사일기지와 통신시설,레이다 기지,탄약소,군수공장,지휘소등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나토는 추가공습을 위해 현재 이탈리아와 프랑스,독일,그리스,영국 및 아드리아해상의 항공모함등에 모두 1백76대의 전폭기와 요격기,정찰기등을 대기시켜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위협 제거때까지 공습 계속”/유엔대변인 밝혀 【사라예보·런던 AFP 로이터 연합】 유엔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사라예보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제거될 때까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엔군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군사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유엔 대변인이 30일 밝혔다. 알렉산더 이반코 유엔 대변인은 이날 나토의 사라예보 외곽과 보스니아 중부 및동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있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르나르 장비에 유엔보호군(UNPROFOR) 사령관이 이같은 서방측의 의지를 라트코 믈라디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에게 통보했다고 전했다. ◎나토선 격추 부인 【나폴리 로이터 연합】 나토는 30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참가한 전투기 중 격추되거나 파손된 공군기는 없다고 나토 남부 사령부 대변인이 밝혔다. ◎미 특사­세공 대통령/공습직후 긴급회담 【베오그라드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 특사인 리처드 홀브룩 미국무부차관보는 30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시작된 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과 긴급회담을 가졌다. ◎나토 대공습 왜 하나/“「보」 내전 끝내자” 세계 초토화/미­영 등 합동작전… 3∼4일 더 공격 30일 새벽 단행된 나토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점령지역에 대한 공습과신속대응군의 포격은 유례없이 큰 규모였다. 지난 28일 사라예보 중심가를 강타한 세르비아계의 포격으로 37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응해 벌어진 이번 나토의 공습은 40개월동안의 보스니아 내전중 꼭 11번째이다.그동안 나토의 공습은 세르비아계의 군사적 공격에 대한 보복용으로 위협을 가하는 수준이었던데 반해 이날 공습은 나토가 밝히고 있듯이 「보복」 차원이라기 보다는 「억제책」의 성격이 짙다. 그동안 보스니아내전에서 군사적 우위를 보였던 세르비아계가 크로아티아에 크로아티아내 점령지를 다시 빼앗기는 등 위축됐고 나토의 보복 공습위협에 밀려 유화 자세를 보이는 틈을 타 세르비아계를 확실히 약화시키고 분명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나토의 밀어붙이기 식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나토의 공습이 앞으로도 3일 정도,나토의 목적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추측으로도 뒷받침된다.또 이번 공습으로 어떻게든 보스니아 내전의 종결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번 공습이 이처럼 신속하고 대규모로 이루어진데는 모처럼 강대국들의 의견이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이 한몫을 했다.18개월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세르비아의 공격에 대해 미·영·프랑스·독일·러시아 등 5개국 접촉그룹은 물론,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세르비아계를 비난하며 군사조치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보스니아 사태를 놓고 위상과 그 역할에 대해 회의를 불러 일으켰던 나토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요한 시험대로 여긴 영향도 컸다.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나토의 공습은 첫번째 목표를 방공시설에 두었으며 방공시설이 파괴되면 걸프전 때와 마찬가지로 세르비아계의 다른 지상목표물들에 대해서도 3∼4일간 공격하는 일이 쉽게 진행될 것이라고 CNN은 보도했다. 나토는 이날 3차공습을 끝낸 뒤 공습 결과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냈다.지난 공습 때 번번이 세르비아계가 유엔군을 인간방패로 삼아 더이상의 공격을 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유엔군이 미리 고립되거나 공격이 쉬운 지역들에서 철수,인질로 잡힐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없애 유엔과 동맹국 사령관들이 쉽게 작전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들은 공습 직전 보스니아 영토를 51대 49로 분할하는 미국측 평화안을 환영하고 평화협정 체결 준비가 돼있다고 선언했다.이에 대해 서방측은 군사행동을 피하기 위한 세르비아계의 술책이라고 일축하고 있으나 이번 공습의 여파로 세르비아계가 평화안을 수용할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기협,개인휴대통신업 진출/1천개 회원사로 컨소시엄 구성

    ◎특별회원 늘려 재정자립/박상희 회장 본지 인터뷰서 밝혀 중소기업 협동조합 중앙회는 PCS(개인 휴대용 통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1천개의 조합 중소기업을 회원으로 하는 컨소시엄을 구성,모두 4천억원의 기금을 모집하기로 했다.또 이를위해 50여명의 PCS 사업단을 조만간 발족키로 하고 단장엔 이원택 상근 부회장,고문엔 함태각 전 장기신용은행 회장을 내정했다. 준비단계로 최근 PCS 지원단을 이미 출범시켜 외부 공인회계사들로 구성된 재무팀 및 기술팀을 가동,예비 회원사들의 기업 재무상태에 대한 조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30일 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회장은 취임 6개월(9월1일)을 맞아 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히고 『내달 초 30대 대기업 회장 등이 참석하는 신경제 회의에서 기협 중앙회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PCS 사업자로 선정돼야 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박회장이 PCS 사업에 기협중앙회의 사활을 걸고 있는것은 「열심히 뛰는 기업만 살려야 한다」는 평소 소신과 깊은 관계가 있다.이달 초 청와대에서 열린 재계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1백50만명의 중소기업인을 모두 지원하겠다는 말은 곧 아무 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열심히 뛰는 기업,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기협 중앙회가 이 일을 따낼 경우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도 재정적인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고 이는 곧 회원 중소기업에 대한 서비스 강화로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박회장은 또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단체수의 계약제도를 정부외에 대기업으로까지 확대키로 하고,우선 삼성그룹에 식·음료 및 사무용품 등에 한해 단체수의계약을 추진키로 했다.이는 이달 초 청와대 경제인모임에서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중소기업의 애로해결을 위해 적극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힌데 따른 것으로 최근 기협중앙회를 방문한 현명관 삼성그룹회장 비서실장에게 이 같은 의사를 밝혔다.이외에 삼성에 중소기업 정책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 연구원에 50억원의 기금을 출연해 줄 것도 요청,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박회장은 올 하반기 사업의 중점을 특별회원 확대에 뒀다.우선 중소건설업체로 구성된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를 특별회원으로 가입시킨데 이어 무역대리점협회와 농업협동조합중앙회,한국의류산업연합회와도 협의 중이다.이들의 조직망을 통해 원자재의 공동구매와 판매체제를 갖춰,중소기업인들의 활로를 트겠다는 복안이다. 『임기 말(98년2월)까지 정부 돈을 한푼도 받지 않는 기협중앙회를 만들겠다』는 호언장담처럼 박회장의 「재정 자립화」 구상이 성공할지 1백50만 회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일,대중 무상원조 동결 확정/인도적지원·유상원조 제외/핵실험 항의

    ◎관방장관 밝혀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정부는 중국의 핵실험 실시에 항의하는 뜻에서 중국에 대한 무상원조를 동결할 방침이라고 노사카 고켄(야판호현) 관방장관이 28일 밝혔다. 노사카 장관은 이날 연립여당이 중국에 대한 무상자금원조의 동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여당의 뜻은 십분 존중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이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노사카 장관은 그러나 『무상원조 가운데는 백신 등도 있어 인도상의 문제도 포함해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의료원조 등 인도상 원조는 동결대상에서 제외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또 엔차관 등 유상원조에 대해서는 『검토의 대상에 들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 미,중서 대만 침공땐 개입/전쟁·경제위협행위 대응

    ◎「대만안보 보장약속」 이행/대만주재 미 대표 벨로치 밝혀 【홍콩 연합】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대만주재 미국대표 나탈레 H 벨로치가 밝혔다고 홍콩 연합보가 2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대만대표부인 「미국재대 협회」 벨로치 대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전미대만객가간친대회」에 참석해 연설과 질문·답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고 말했다. 벨로치 대표는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생하거나 대만의 경제적 안보가 위협당하면 미국은 (대만에 대한 안보조항을 담고 있고 병력 투입을 허용하고 있는)대만관계법에서 밝힌 약속에 따라 상관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대한 이익을 가지고 있으며 대만과의 우의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대만의 안보를 보장하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벨로치 대표는 『지난 79년 미 상·하원에서 통과된 대만관계법은 경제적 제재나 금수 등까지 포함하여 평화적 수단 이외의 방식으로 대만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서태평양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방군이 대만을 실제로 침공하면 미국이 대만을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모든 것은 대통령이 결정해야 한다.클린턴 대통령은 당시의 상황에 따라 대처할 것이다.현재 확정된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고 답변했다. 대만관계법은 미국이 중국과 79년 수교하면서 대만과 맺고 있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대만에 대한 안전보장조항을 담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대만에 병력을 투입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 「삼풍」 현장 구경거리로/외국 관광객·취재단 줄이어

    ◎백화점 잔해 배경 사진 찍기도 삼풍참사 현장에서 「부실한국의 현주소」를 배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지도 20일로 53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6·25동란이후 최대참사의 상흔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고 있다. 「건설후진국」의 실체를 파악하려는듯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등을 들고 무리지어 이곳을 찾는 외국인관광객과 기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사고현장은 이제 「관람객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의 참혹함을 짐작키는 어렵다.침울한 적막속에 A동 승강기탑과 중앙홀 등 남은 건물에 대한 철거작업준비만이 부산하다.가끔씩 혼백이 돼 떠돌고 있을 실종·사망자의 이름을 부르는 유가족들의 오열만이 중장비소리와 함께 허공에 울려퍼지고 있다. 백화점 맞은편 삼풍주유소 박돈영(30)과장은 『하루에 1백여명의 시민들이 사고현장 맞은편 주유소나 사법연수원 앞에서 「현장」을 지켜보다 돌아간다』며 『외국인관광객들도 하루평균 1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특히 다음달 4일부터 열리는 UN 세계여성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중국 북경으로 가는 각국의 대규모 기자단들도 한국을 경유,삼풍현장에 들르는 것을 일정으로 짜놓고 있다는 것이다.앞으로 더욱 많은 외국언론인이 삼풍의 수치를 눈으로 확인할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의 망신살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잔존건물철거를 담당한 성도건설의 한 직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데 반해 외국인들은 마치 기념촬영이라도 하듯 백화점 잔해를 뒷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며 『국가적으로 이런 망신살이 어디 있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국교1년생 아들과 함께 현장을 찾은 회사원 김광열(36·강서구 내발산동)씨는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고속터미널에 가다가 짬을 내 한번 들러봤다』며 『어떻게 이렇게 큰 건물이 쉽게 무너질 수 있었는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 「한국전쟁 기원」 논쟁(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2)

    ◎「이데올로기 잣대」 따라 남침­북침설 대립/본지연재 「모스크바 새증언」이 남침 입증 한국전쟁의 진행 상황은 본지 연재물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에서 이미 자세히 소개했습니다.따라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시리즈에서는 전황을 직접 다루지 않는 대신 한국전쟁 기간중 있었던 주요 사건·사고와 정치·경제·사회적 흐름을 주로 소개하겠습니다.독자 여러분께 배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950년 6월25일 상오 4시 38선 일대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짙은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일요일을 맞아 새벽 단잠에 빠진 한국군부대 막사 위로 한순간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이어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주력부대가 38선을 넘었다.이에 앞서 상오 3시30분쯤에는 북한 게릴라 3천1백여명이 해군 상륙선단편으로 동해안 옥계·삼척·임원 등 3곳에 상륙했다.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터진 것이다. ○북 군사력 한국 압도 북한군은 개전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경상도·제주도를 제외한 국토 전역을 수중에 넣는 등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을 유린했다.북한군이 전쟁 초기 일방적으로 공세를 벌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북한은 일찌감치 전쟁준비에 나서 개전 당시 군사력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개전 초기 양쪽의 전력을 볼 때 북한이 침략의도를 갖고 대한민국을 먼저 공격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킨 쪽이 어디냐는,곧 「한국전쟁의 기원」을 따지는 논쟁이 오랫동안 끊이질 않았다.이는 한국전쟁이 단순히 한민족간에 벌어진 내전이나 국지전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세계가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양블록으로 갈라져 냉전체제로 돌입한 다음 벌어진 첫 대결의 장이었다.따라서 한국전쟁 기원에 관한 학설에는 전쟁 자체의 성격 분석을 전제한 이데올로기적 잣대가 작용하게 마련이었다.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은 냉전 발생의 책임을 미·소 중 어느쪽에 두느냐에 따라 두갈래로 나뉜다.하나는 「소련의 공격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이 미국의 단호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전통주의 학파다.거꾸로 「미국이 월등한 군사·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하므로 소련이 불가피하게 대응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쪽은 수정주의 학파라고 부른다.기본적으로 전통주의자들은 「남침설」을,수정주의자들은 「북침설」을 지지한다. 전통주의자들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자 수상인 스탈린을 대개 지목하며 그 동기는 다음 몇가지로 분석한다.첫째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유럽에서 압박을 가하자 이를 분산시키려고 극동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압력분산설」이 있다.또 ▲세계 적화를 노리는 스탈린이 미국의 대응 의지를 떠보려고 도발했다는 「저항력 실험설」 ▲주한미군 철수,애치슨라인 설정으로 미국이 한국방위를 허술히 한데다 한국에서도 「5·30선거」에서 우익세력이 패하자 그 틈을 노렸다는 「허점공격설」 등이 있다. ○냉전발생책임에 무게 반면 수정주의 학설은 「맥아더와 이승만이 공모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미국의 좌파 언론인 스톤이 제기한 이 주장은 「이승만은 국내 정치위기를해소하려고,맥아더는 미 정부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리기 위해」전쟁을 획책했다는 논지로 구성됐다.정확한 근거없이 단순한 추측에서 시작된 이 가설은 점차 미국·일본 등 서방국가 좌파 지식인사이에 널리 퍼져 수정주의라는 한 갈래를 이뤘다. 「6·25」를 겪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처구니없어 할 「북침설」이 나름대로 세력을 이룬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먼저 전통주의자건,수정주의자건 한국전쟁을 지나치게 냉전논리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이들은 당시 남북한의 정세나 군사력 비교 등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다만 소련 또는 미국이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분석했다.또 한국전쟁 발발에 관한 북한·소련측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은 점도 학자들의 연구를 제약한 큰 요인이었다.예컨대 북한군의 남침을 밝히는 한글 문헌은 1986년까지 한건밖에 공표되지 않았다. 이같은 학계 분위기는 80년대 후반 들어 반전한다.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 보관중인 「북한 노획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6·25」를 철저히 준비했고,치밀한 계획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음이 속속 밝혀졌다.「북한 노획문서」란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에 나선 미군이 평양 등 북한 각지에서 압수한 각종 문서를 총칭하며 그 분량이 1백60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다.이 북한측 자료는,인민군 5개 사단이 6월23일부터 24일 밤사이 38선이북 수㎞ 안에 집결해 25일 새벽 선제공격을 가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가령 6사단 문화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내려보낸 「전시 정치·문화사업」명령서를 보면 38선으로의 이동­공격 개시­점령지에서의 정치선전 활동에 이르기까지를 5단계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북한 노획문서」의 공개와 이에 근거한 연구성과 발표는 어느쪽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전쟁을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이를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준 자료가 서울신문이 올해 발굴해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러시아 소장 비밀문서 9백50여건이다.러시아 외무부·대통령궁·옛소련공산당 중앙위·국방부에서 각각 입수,이번에 처음 공개한 이 자료더미는 한국전쟁 준비에서 휴전에 이르기까지 풀리지 않던 많은 의혹들을 해명해 주었다. ○“3인 공동정범” 밝혀 이에 따르면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은 한국전쟁에 있어 각각 주요 역할을 했고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김일성은 1949년 3월 스탈린을 만나 먼저 전쟁을 제의한다.이를 거부하던 스탈린은 50년 3∼4월 회담에서 남침을 허락했고,이후 53년 3월 사망할 때까지 전쟁을 주도한다.전쟁 계획을 확정하고,중공군을 끌어들였으며,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뒤에도 휴전을 거부하는 등 주요 결정은 모두 스탈린이 내렸다.한편 모택동은 초기에 참전을 주저하긴 했지만 막상 중공군을 투입하고 부터는 전쟁터를 책임진다. 러시아 비밀문서 발굴로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해묵은 논쟁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한민족에게 최악의 상처를 남긴 「6·25」에서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이 공동정범이라는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로 증명됐다. ◎「당 7∼8월 사업계획서」/북,108군·1168면에 「인민위」 설치/도·시·군·면 행정단위 남노당위 “재건”/「평화옹호 서울위」,지지 서명 받아내 전쟁 개시 3일만인 6월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낙동강 동쪽을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점령한 북한은 점령지에서 당·정 기관의 건립,토지개혁,군지원을 보장하는 활동에 즉시 돌입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비밀문건을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국내 처음으로 공개한다.「당 중앙본부 7월∼8월 사업계획서」라고 이름붙은 이 문서는 「절대비밀」로 분류돼 있으며 등사본으로 50부만 찍은 귀한 자료다.이 문건은 전쟁 초기 승승장구하던 북한이 세운 전략을 알려준다. 사업계획서는 점령지 행정 중심방향으로 ▲옛 남로당조직 복구등 당세 강화 ▲군수품 생산 증대 ▲군·면·이 단위 인민위원선거 및 토지개혁 실시 ▲사회단체 활동 강화 ▲농촌에서의 증산 장려와 현물세 징수 등 5개항을 제시했다.또 10일마다 회의를 열어 이같은 지시사항을 점검하도록 했다. 이 문서에서 나타나듯 북한은 행정구역에 따라 중앙(서울)·도·시·군·면 단위로 각급 당 위원회를 재건하는 동시에 임시인민위원회와 사회단체들을 복구했다.당 위원회 재건작업은 북로당원으로서 파견된 공작대원,남로당 출신 월북자,형무소에서 출감한 남로당 간부 출신,빨치산 간부들이 맡았다.이어 두단계에 걸쳐 「인민정권기관」을 지체없이 세웠다.먼저 점령지에 지역 정권기관으로서 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곧바로 선거를 거쳐 인민위원회를 정식 설치했다.남한에서 인민위원회가 들어선 곳은 1백8개 군,1천1백68개 면이었다. 인민위원회는 북한에서 실시한 예에 따라 토지개혁을 실시했다.「무상 몰수,무상 배분」을 원칙삼아 일제와 한국 정부,지주 소유 토지는 모두 몰수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자작농은 5∼20정보만 인정했다. 북한은 정치 선전·선동에도 힘을 기울여 7월14일 「평화옹호 서울시위원회」를 조직,북한을 지지하는 서명을 억지로 받아냈다.그 내용은 ▲유엔에 미국의 참전 중지를 요구하고 ▲이승만 대통령 등 대한민국 요인을 반역자로 지목,처형을촉구한 것이었다.
  • 대북협상 원칙 고수하라/구본영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초록색 커버를 씌운 탁자는 또 하나의 전투장이었으며,혀는 무기였다』 유엔군 대표로 한국전 휴전회담에 나갔던 C 터너 조이 제독이 남긴 말이다.그는 회고록에서 억지와 식언을 밥먹듯 하는 북한측의 협상술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음을 이렇게 토로했다. 북한은 쌀지원과 관련한 최근 일련의 남북접촉에서도 특유의 협상술을 유감없이 보여줬다.한 선원이 청진항 풍경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우리측 쌀수송선과 선원 21명을 억류했다가 1차 합의한 쌀 잔여분의 인도를 약속받고 선심쓰듯 풀어준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청진항은 군항도 아니다.또 그 정도는 과거 서울에서의 고위급회담등에서 북한측의 「사진촬영」에 견주더라도 「정탐행위」라고 시비를 걸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더욱이 북측은 억류사태 이후 북경의 송환협상에서도 우리측 당국자를 철저히 따돌렸다.공식당국도 아닌 삼천리총회사와 대한무역진흥공사 채널의 가동에만 응했다는 것이다. 우리측의 선의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측에 의해 깡그리 짓밟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냉전 이후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새삼스러운 대북 봉쇄정책 회귀는 실효가 없다는 게 통일원등 대북정책부서의 시각인 듯하다.한 당국자는 14일 『사이비 종교집단과 같은 북한당국자들을 너무 코너로 모는 것은 자칫 동반자살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이를 대변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개입정책 내지 개방유도 정책이 불가피하더라도 지켜야할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정부는 북경 쌀회담을 시작할 때 당초 구도대로 당국간 회담이라는 원칙을 고수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조선 삼천리총회사나 대외경제협력추진위라는 어정쩡한 「단체」를 상대해주는등 원칙없는 양보를 해 북한의 협상태도를 더욱 방자하게 만든게 아닌지 자성해볼 일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찬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볕」이라는 이솝우화의 교훈은 북한을 「다루는데」 적용해도 원론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을 성 싶다.그러나 그 나그네가 심사가 뒤틀린 고약한 인사라면 햇볕만으론 곤란할지도 모른다.
  • 30대그룹 계열사/해외 지급보증 규제/일정율 자기자금조달 의무화

    ◎영세사업자 면세점 상향조정 검토/홍재형 부총리 본지회견서 밝혀 앞으로 30대 그룹 계열사의 해외 지급보증도 규제된다.지금까지는 이들 그룹 계열사간의 국내 지급보증 만 자기자본의 2백% 이내로 제한돼 왔다. 홍재형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은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들이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현지법인이 외국에서 조달하는 현지금융에 대해 국내에서 지급보증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는 외채증가와 해외 기채여건의 악화를 가져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내 본사의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어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홍부총리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30대 그룹 계열사의 경우 국내 지급보증이 자기자본의 2백% 이내로 제한되나 국내 계열사의 해외 현지금융에 대한 지급보증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에 따라 대기업들의 해외투자 때 투자금액의 일정비율을 자기자금으로 조달하도록 의무화하고 해외현지법인의 현지금융에 대한 지급보증도 일정 한도로 규제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홍부총리는 또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며 『채권이나 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도 97년 이후에 할 수 있어 금융개혁의 효과는 시간이 지날 수록 가속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세율인하와 관련해서는 『부가가치세율 자체를 내릴 계획은 없으며,다만 영세사업자에 대한 면세점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올 정기국회에 세법개정안을 낼 때 반영할 것이 있는 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홍부총리 일문일답/실명확인 송금한도 조정 등 당과 협의

    ◎비밀보장위해 실명전환 내역 못밝혀 홍재형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10일 금융실명제 실시 2주년을 맞아 담화문을 발표한 데 이어 기자회견을 갖고 『개혁에 후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재삼 강조했다.그는 『실명확인을 생략하는 소액송금의 범위를 설정하는 방안 외에 현재 다른 보완책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전직 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설과 관련,금융실명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데. ▲금융실명제는 부정과 부패를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자기정화 기능이 있다.이 기능으로 과거 우리사회의 부정부패가 점차 사라져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가 조성될 걸로 믿는다.급격하지는 않지만 이 기능은 시간이 갈수록 가속적인 힘과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금융실명제 실시 2년이 됐지만 지하경제가 오히려 커지고,서민들의 경우 과표가 노출돼 세부담이 늘었다는 지적도 있다. ▲새 정부들어 소득세는 5% 포인트,법인세는 2% 포인트씩 세율을 내렸다.그럼에도 세수는 충분히 확보되고 있다.세수가 늘어난 데는경기탓도 있지만 불로소득이 차단되고 검은 돈의 흐름이 줄었기 때문이다.과거에 세금을 적게 냈던 사람들의 세부담이 급격히 늘었다고 하는 데 이 부분은 정책적 배려를 할 것이다.실명제는 지하경제를 차단,세금인하 여건을 조성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청부의 개념을 정착시키는 효과가 있다. ­세율을 얼마나 내릴 생각인가. ▲올해 세수와 내년 예산을 봐가면서 당과 협의해 결정하겠다. ­최근 여당 일부에서 금융실명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다.보완책이 마련되는 것인지. ▲개혁에 후퇴가 있을 수 없다.국민들이 오랫동안 비실명 거래관행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다소의 불편을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실생활에 불편을 주는 실명확인 송금한도 등을 조정하는 문제를 당과 협의하고 있다.그 이외의 보완책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농지거래의 활성화방안은 금융·부동산실명제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별도로 검토할 사항이다. ­검은 돈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비실명 계좌의 실명전환 내역을 공개할 용의는 없나.▲납세자와 예금자의 비밀보장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름을 공개하기 어렵다면 실명전환된 계좌를 금액 크기별로 공개할 수는 없는지. ▲국세청과 협의해야겠지만 어쨌든 예금의 비밀은 보장해야 할 것 같다. ­실명제 이후 사채시장 규모가 줄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이와 관련,대금업제도는 도입되는 것인지. ▲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영세사업자들을 위해 대금업법을 제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해서 이 문제를 검토해왔다.그러나 찬반양론이 있어 영세업자에 도움이 되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 같다.
  • 오늘 원궤도 진입 시도/한달간 60회 돈뒤 정지궤도로/무궁화호

    ◎한국통신 밝혀 한국통신은 8일 무궁화위성이 현재 근지점 1천3백53㎞,원지점 2만9천4백35㎞의 천이궤도를 무동력으로 비행하고 있으며,위성체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가운데 이날 상오 7시3분 7번째 원지점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김봉전 한국통신 무궁화위성발사 상황실장은 『록히드마틴사와 한국통신간에 열린 회의결과에 따라 9일 상오 9시35분(한국시간) 무궁화위성의 원지점모터(AKM)를 점화,1단계로 최종목표인 지구정지궤도보다 5천3백50㎞ 모자란 원궤도에 임시로 진입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무궁화위성은 9일 상오 일단 임시 원궤도에 진입한 뒤 한달동안 지구를 60여바퀴를 돌고 자체의 액체연료로 최종목표인 정지궤도로 진입하게 된다.
  • 한­미 「포괄 금융협상」 시도/WTO 협상때

    ◎OECD 가입·금융현안 논의/한국 최혜국대우 유지/미·개도국 회담 끝나면 협상 속개/재경원 차관보 밝혀 정부는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금융협상 때 미국과 WTO 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한 금융협상 및 한미간 쌍무금융 현안을 포괄해 타결짓는 「포괄 금융협상」을 비밀리에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협상에서 우리측이 추가로 금융시장 개방계획을 제시,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미국이 WTO 금융협상의 참여국들에 대한 최혜국대우(MFN)를 철회하는 바람에 차후 재협상키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따라서 미국이 앞으로 개도국과 쌍무협상을 마무리,WTO 금융협상에 복귀하는 시점을 전후해 한미간 포괄 금융협상도 재개될 전망이다. 신명호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한미 간에 처음 이뤄진 포괄협상의 무산이 우리 측이 미국으로부터 최혜국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그는 『미국이 WTO 회원국이어서 특정국가에 개방한 부분은 다른 회원국에도 개방해야 할 MFN 의무가 있으며,이번 WTO협상에서도 미국이 MFN철회를 밝힌 대상이 우리나라나 일본이 아닌,말레이시아 인도 등 개도국이었다』면서 『미국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시장개방계획이 기대에 못미쳐 이들 나라와 1년7개월간 쌍무협상을 더 한 뒤 복귀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신차관보는 미국이 유럽연합(EU)과 일본에만 최혜국대우를 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일본과 올 1월에 투자자문시장 등의 개방을 골자로 미일 포괄금융협상을 타결지어 당연히 일본에 최혜국대우를 해야 하며,EU와는 서로 금융시장을 많이 개방해 놓고 있는 상태여서 이들 국가에 대한 최혜국대우는 새로운 의미가 없다』고 했다.이어 『미국이 우리나라에 최혜국대우를 안주겠다고 밝힌 적도 없으며,미국과의 포괄협상에서도 최혜국대우를 기본 전제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의 최혜국대우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한미간 포괄 금융협상에서 WTO금융협상에 제출한 개방계획 외에 보험브로커(보험회사의 상품을비교분석해 소비자에게 유리한 상품을 골라 주는 사람) 제도의 도입 등 추가 시장개방 계획을 미국에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일 연정체제 그대로 유지 새달초 개각 단행”

    ◎무라야마,선거패배 대책 밝혀 【도쿄=강석진 특파원】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는 24일 참의원 선거 패배에도 불구,계속 정권을 맡겠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하는 한편 민심수습차원에서 내각개편을 8월초 단행 하기로 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통해 연정 출범이후 처음으로 23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전체의석의 절반인 개선의석 1백26석중 연립여당 3당 전체로 과반수를 확보,3당의 참의원 의석이 전체의 60%를 차지하게 됐다는 점 등을 들면서 『정치·경제 개혁 등에 전력을 다하는 게 주어진 과제』라고 강조했다.
  • 스탈린·주은래 회담(모스크바 새 증언:26)

    ◎모,주은래 모스크바 파견… “휴전하자” 설득/“인명손실 막대… 김일성이 전쟁 원치 않는다”­주은래/“전쟁 끌면 끌수록 미에 불리” 강경입장 고수­스탈린 스탈린이 모택동,김일성 두사람의 거듭된 휴전 조기타결 요청을 묵살하자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담판을 짓게했다.물론 이 노력도 스탈린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다.다음은 A.비신스키와 N.페데렝코 두사람이 기록한 메모랜덤으로 52년 8월20일 스탈린·주은래 두사람의 회담내용이다.(러시아 국립문서소 관련 메모랜덤중 54∼72쪽) 스탈린의 입장을 잘 아는 주은래가 먼저 전쟁 옹호론부터 개진했다. 『주은래는 전쟁을 계속하는 게 유익하다는 모택동동지의 뜻을 전했음.왜냐하면 그럼으로써 미국이 새로운 세계대전을 준비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음.주는 그러나 김일성이 매일 당하는 인력손실이 우리가 미군으로부터 송환받으려는 포로숫자보다도 더 크기 때문에 전쟁계속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음. ○식량·무기 원조 약속 이 말을 들은 스탈린은 「모동지의 말이 옳다.이 전쟁은 미국에 큰 곤란을 안겨주고 있다.북한은 인명손실 외에는 잃는 것이 없다」고 답했음.특히 미국은 중국군이 조선에 참전한 뒤부터 이 전쟁을 서둘러 끝내고 싶어한다고 스탈린은 말했음.필요한 것은 인내라고 강조하며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계속했음.물론 많은 인명을 잃은 조선의 입장을 이해함.하지만 이 전쟁은 명분이 큰 전쟁임을 이해해야함.이번 전쟁으로 미군의 약점이 들어났음.24개국 군대가 전쟁을 오래 지탱할 수는 없음.조선동지들을 계속 도와주어야함. 주은래가 조선에 식량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자 스탈린은 빵 원조를 늘릴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주은래는 식량,의복등은 중국이 조선을 도와줄수 있지만 무기는 중국이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음.그러자 스탈린은 추가무기원조를 해줄 수 있다고 확답했음.스탈린은 「조선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음』 이 메모랜덤은 이어서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했다. 『주은래=우리는 협상에서 미국에 어떤 양보도 하지 않겠음. 스탈린=만약 미국이조금이라도 양보하면 받아들이고,그리고는 다른 문제를 계속 다룰 것. 주은래=적어도 1∼2년은 전쟁을 계속할 준비를 갖추어야함. 스탈린=동의함. 주은래=미국이 전쟁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동지의 분석은 전적으로 옳음.이 전쟁에 전위역할을 함으로써 중국은 세계대전을 방지하고 있음.만약 우리가 조선에서 미국을 저지하면 최소한 15∼20년을 세계대전을 연기시키는 것임.그 다음 미국은 3차대전을 일으킬 힘을 영원히 잃게될 것임. 스탈린=옳은 말임.미국은 조선전쟁 이후 큰 전쟁을 일으킬 능력을 잃게 됨.그들의 힘은 공군력,원자탄에 있음.영국이 미국을 위해 싸우지는 않을 것임.미국이 만약 이번 전쟁에서 패하지 않으면 중국은 절대로 대만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할 것.미국인들은 모두 장사꾼이고 미군들은 모두 투기꾼들임.전쟁에서도 그들은 사고파는 일을 함.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하는 데 30일이 걸렸음.미국은 벌써 2년이 지났는데도 작은 조선땅을 점령치 못하고 있음.미국의 무기는 스타킹,담배 따위의 물건임.미국은 세계를 점령하겠다고 하면서 작은 조선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음.원자탄,공습에 의존할 수 있겠으나 그런 방식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음.지상군이 필요한데 미군은 지상군 숫자도 적고 허약함. 주은래=조선동지들은 남조선을 공습하는 방안을 생각중이나 옳은 일인지 확신치 못하고 있음. ○공군력 사용엔 반대 스탈린=공군은 국가의 것임.중국의용군이 국가 소유인 공군력을 사용해선 안됨』 주은래는 이어 북한의 입장이라며 새로운 공세작전을 시작하는 방안을 스탈린에게 타진했다.그러면서 중국은 김일성에게 새로운 공세작전 개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스탈린에게 밝혔다. 『스탈린=협상진행중 전략,전술을 막론하고 공격작전을 시작해서는 안됨. 주은래=중국정부는 판문점의 협상을 계속해야한다고 생각함.아울러 중국은 2∼3년 더 전쟁을 계속할 준비를 하고 있음.중국은 소련이 비행기,포,탄약을 추가지원해 주기를 바람. 스탈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겠음.조선내 사기는 저조한지. 주은래=매우 저조함.압록강의 발전소가 폭격당한 뒤 특히 나빠졌음.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휴전을 하고 싶어함』 스탈린은 미국이 제일 즐겨하는 전략이 위협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미국은 중국에 위협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조선동지들은 겁을 먹었는지 물었다.주은래는 조선동지들이 조금 불안해하고 있다고 답했다.그는 『일부 조선지도자들이 겁에 질려 있다』고 말했다.스탈린은 자기도 김일성이 모택동 앞으로 보낸 전문을 읽어 그런 사실을 잘알고 있다고 했다.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스탈린의 주도로 끝났다. 사실 스탈린은 1년 전 전황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던 때부터 이같은 입장을 주장했다.51년 8월29일에도 그는 모택동앞으로 전문을 보내 휴전회담에 중립국 대표를 감독으로 참여시키자는 모의 제의를 일축한바 있다.(전문번호N49 54). 『협상성사를 더 원하는 쪽은 미국임.따라서 감독자격으로 중립국 대표들을 협상에 참여시키는 동지의 제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함.그런 제의를 하면 자칫 우리가 협상타결을 더 원하는 것으로 미국에 비쳐져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음』 당시 이 전문을받은 모택동은 바로 이튿날 답전을 보내 중립국 감독대표 참여방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이후에도 스탈린은 기회만 닿으면 전쟁을 끌수록 미국에 불리해진다는 논리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다시 52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9월14일에는 유엔기들의 평양시 공습이 있었고 협상교착으로 인한 무고한 인명피해는 날로 늘어만 갔다.그러나 스탈린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52년 11월2일 소련은 당정치국 결의문을 채택,전쟁계속을 거듭 천명했다.(정치국결의안NBP2/19N2) ○전쟁계속 거듭 밝혀 『소련과 미국이 비밀협상을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함.미국은 세계 여론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이 소문을 굳이 부인하려하지 않음.우리는 공개적으로 이 소문을 부인해야함.왜냐하면 조선에서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유익하기 때문임』 반면 직접 의용군을 직접 참전시킨 모택동은 스탈린과 달리 1년전부터 휴전의 필요성을 완곡하게 내비쳤다.51년 11월11일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N25 902) 『지난 2개월간 전선에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미국내에서 군사행동을 중지해야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어 미국이 휴전조건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졌음.그럼에도 미국정부는 아직 국제상황을 긴장상태로 유지하려고 함.미국은 적극적인 정보활동과 유화 제스처를 병행하면서 실제로는 회담을 지연시키려하고 있음.…중략…적은 현전선을 휴전선으로 만들자고 요구하고 우리는 이에 반대하고 있음.다만 우리는 38도선 휴전문제를 정치협상 개시 때까지 유보할 의향은 있음.왜냐하면 현재 38도선 이남에 우리가 점령중인 서해안의 강 하구 구릉지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임.이곳은 농업생산량이 풍부할뿐 아니라 서울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기 때문임.…중략… 우리는 금년중 군사행동 중단을 성사시키고자 함.또한 적이 휴전회담을 지연시키고 결렬시킬 경우에 대비하고 있음.또한 휴전회담이 반년 내지 1년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현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비축하고 있음.협상을 통한 평화달성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임.하지만 우리가 협상지연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님』 모택동이 보낸 전문에서 알 수 있듯 휴전협상과 관련,모택동과 스탈린 두사람은 분명히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있었다.모택동이 현상황에서 휴전이 유익하다고 솔직히 말한 반면 스탈린은 휴전을 더 바라는 쪽은 미국이니 협상에서 절대 양보하지 말고 밀어부치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새로 밝혀진 사실/스탈린,종전요청 끝까지 거절/한국전쟁 이용 미에 대응 속셈 이번 회에는 전쟁중인 52년 8월 주은래가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하여 스탈린과 회담하였다는 사실이 나온다.물론 최초로 공개되는 사실이다. 주은래의 갑작스런 모스크바 방문은 중소간에 커다란 견해차가 있었음을 의미한다.그것은 전쟁의 계속 여부 문제였다.주은래는 중국의 의견은 일단 접어둔 채 김일성과 북한의 입장을 들어 완곡하게 전쟁의 종결을 건의하고 있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한은 잃는 것이 인명 뿐』이라며 이 전쟁이 미국에게 끼치는 큰 곤란을 들어 북한(과 중국)의 종전의사를 한마디로 거절하고 있다.스탈린의 의도와 차가운 성품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결국 주은래도 『이 전쟁에 전위역할을 함으로써 중국은 세계대전을 방지하고 있다』고 동의하고 있다.그러나 51년 11월11일 모택동의 전문은 『금년중 군사행동을 중단시키고자 한다』는 강한 종전의사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중국은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도 스탈린의 강한 전쟁지속 의도로 인해 어쩔 수없이 계속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스탈린은 교묘하게도 중국의 대만통일 의지를 이용하여 이번 한국전쟁에서 미국을 패배시켜야만 중국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기까지 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스탈린의 모든 전략전술의 초점은 한반도 통일이나 동북아 정세가 아니라 오직 미국에 대한 대응과 세계적 규모의 대립의 방지를 위해 한국전쟁을 이용하는데 놓여 있었다.이 문제와 관련,52년 11월2일의 소련공산당 정치국 결의는 충격적이다.『조선에서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 “북,미에도 곡물요청 했다/미서 지원 적극 검토중”/1백만t 규모

    ◎나 부총리 밝혀 【서귀포=정종석 기자】 나웅배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은 23일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국내 기업들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및 중화학분야에 투자하는 것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나부총리는 이날 전국경제인 연합회가 제주에서 주최한 최고경영자 하계 세미나에서 「남북경협 현황과 경협전망」이라는 특강을 통해 『현재는 대북 투자가 5백만달러이하의 경공업과 생필품으로 제한돼 있지만 남북관계의 개선에 따라 사회간접자본·중화학분야에 대한 투자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남북간 특수관계상 대북투자를 시장논리에 맡겨 전면허용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교류를 확대해 남북경제의 상호의존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며 『올 상반기의 남북교역규모만 1억7천만달러로,올 교역규모는 3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부총리는 또 『북한은 한국과 일본정부로부터 쌀을 지원받은 데 이어 최근 미국정부에도 곡물 1백만t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한 곡물지원을 적극 검토하고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 쌀협상과 관련,남북당국자간 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민간경제계 인사들이 경쟁적으로 북측대표와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민간경제인의 과열경쟁 자제를 요청했다.
  • “옐친 병실사진 조작됐다”/미 NBC “수개월전 찍은것” 폭로

    ◎러시아선 “최근 총리와 회담” 밝혀 【모스크바 로이터 AFP】 지난주 심장질환으로 입원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18일 입원이후 처음으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총리의 예방을 받고 약 1시간동안 환담했다고 러시아정부 대변인(여)이 이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옐친대통령과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여러가지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의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체르노미르딘총리의 이날 방문은 옐친대통령이 8일전 심장질환으로 입원한 이후 공개된 옐친의 사진이 실제로 수개월전에 찍은 것으로 알려져 그의 건강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앞서 옐친대통령의 대변인 세르게이 메드베데프는 옐친대통령의 녹화된 인터뷰가 19일 상오2시(한국시간) TV로 방영된다고 말했다.
  • 민선 단체장에 무리한 요구 말자/최민호(공직자의 소리)

    대망의 지방자치시대의 막은 드디어 활짝 열렸다. 시도지사·시장군수·의회의원 후보자 1만5천4백18명이 전국을 누비며 웅변을 토하던 열전도 이제 끝나고 선거뒤의 피로도 채 풀지도 못한채 지방행정의 새로운 「스타」들은 곧 바로 집무에 임하였다. 바야흐로 우리 지방행정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참다운 민본행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시행됨에 따라 이젠 「변학도」니 「조병갑」이니 하는 인물은 영원히 나타날수 없게 되었고 동시에 「행정의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뿐이랴.관료들의 권위주의나 고식적인 근무행태,낙하산 인사,무사안일도 멀지 않아 자취를 감추고야 말 것이다. 경영행정 방식이 도입되고,서비스 행정이 강조되어 관의 문턱은 더욱더 낮아질 뿐 아니라 쓸데없는 예산으로 주민의 혈세를 낭비하던 요소들은 과감히 도려내질 것이다. 주민복지는 증대될 것이며 환경문제는 최우선 과제로 취급되고 21세기를 향한 지역개발은 더욱더 활기차게 박차가 가해질 것이다. 지방자치가 그러한 것들을 모두 해낼 것이다…라고 기대된다. 그러나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이다.지방자치 또한 그 그늘이 없을 수 없다. 세계 역사상 우리처럼 위대하게 지방자치를 시작한 나라는 없었다. 처음 실시하는 지방선거를 한날 한시에 모든 단체장과 의원을 그것도 전국적으로 선출하면서 돈도 별로 안들이고 불법도 과히 저지르지 않았음은 가히 세계인의 혀를 내두르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택 2백만호 건설이 그랬듯이 위대하게 시작한 우리의 지방자치는 앞으로 경계할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역간의 갈등·반목으로 「뿔뿔이민주주의」가 아니되란 법이 없으며 「민주주의의 학교」 지방의회는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지방행정을 마비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신 정치관료의 등장으로 행정조직은 매년있는 선거때마다 복지부동에 빠지고 주민의 복지예산은 민선장의 정치적 비용으로 잠식될지도 모를 일이다. 소중하게 이루어낸 지방자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지금 가져야 할 시급한 자세는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민선장의 활동에 주민이 마음을 비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민선단체장이라 하여 모두 천재일 수는 없을 것이며 선거로 뽑혔다 하여 예산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크나큰 요구를 하거나 지지표를 던졌다 하여 편협된 집착을 부려서는 절대로 아니된다.오히려 냉철한 시선으로 단체장들이 외도와 파행으로 가지 않도록 냉각시켜 주어야 할 것이며 그들을 보호하고 끊임없이 인내하면서 신뢰하고 지원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조급한 요구와 성급한 실망,이것이야말로 지방자치시대의 가장 큰 금물이다.막 시작한 우리의 지방자치가 또다시 「지방자치의 위기」에 빠져들지 않도록 첫 발자국을 조심스럽게 내딛자.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 “절망의 순간에 빛이 보였다”/2백30시간만에 구조된 최명석군

    ◎“굴착소리 중단돼 한때 자포자기”/부모님께 효도 못한일 계속 마음 괴롭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백30시간에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최명석·21·수원전문대 2년)군은 9일 상오 지하 매몰현장에서 이웃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은 뒤 그동안의 절박했던 상황을 또렷또렷하게 밝혔다. ­지금 심정은. ▲편안하다. ­그동안 어떻게 버티었는가. ▲지하수인지 빗물인지를 받아 먹었다.너무 배가 고플때는 종이상자를 뜯어 먹었다.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은. ▲잘해 드리고 싶다.생각해 보니까 너무 못해 드린 것 같다. ­안에서 절망했으리라고 보는데. ▲절망했다.처음 며칠은 구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나중에는 구해줄라면 구해주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지냈다. ­며칠쯤 지났다고 생각했는가. ▲많이 돼야 5일쯤 된줄 알았다. ­사고 당시 상황은. ▲지하에 있다가 위로 올라가 비상구를 들어서려는 순간 건물이 흔들려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건물이 무너져 내려 그냥 곧바로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주위에사람들은 없었는가. ▲맨처음 아주머니와 누나가 소리를 질렀다.나도 『다 괜찮냐』고 같이 소리쳤다.그러나 누나하고 아주머니는 나중에 익사해서 다 죽었다. ­평소 운동은 하는가. ▲(웃으면서)별로 안 한다. ­구조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았나. ▲굴착기소리를 매일 들었다.구조반이 위에서 한두번 파다가 그냥 가곤 했다.그래서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막 파더라.그 순간 「빛」이 들어와 『사람 살려라』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최군은 열하루째 「생사」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였던 어머니·누나 등 가족들과도 상봉,『내가 살아나면 엄마가 좋아할 것』이라고 어머니의 두 손을 꼭쥐고 소리없이 흐느꼈다. ◎최명석군 그는 누구인가/남다른 효성… 입대 앞두고 아르바이트/수원전문대 건축설비과 1학년 마치고 휴학/스포츠만능에 항상 명랑… 「죽음」 극복에 도움 일요일 아침 한편의 「드라마」를 엮어내며 전 국민들을 감동시킨 최명석(20)군.2백30시간동안의 칠흙같은 어둠과 굶주림,외로움 속에서도 그는마침내 살아 돌아왔다. 최군은 70년 서울에서 아버지 최봉렬(52·웅진코웨이 종로지부장)씨와 어머니 전인자(50·봉제공원)씨와의 사이에 2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때문에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70년대초 석유파동의 여파로 아버지가 경영하던 의류매장 사업이 기울면서 한때 전세집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그는 전형적인 중산층가정의 막내로 항상 명랑함과 웃움을 잃지 않았다.이러한 성격이 있었기에 그 「사지」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군은 예전같지 않은 집안형편에 「생업」(?)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된다.조금이라도 벌어 부모님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수원전문대 건축설비학과 1학년을 마친 뒤 지난 2월 휴학,군입대를 앞두고 4월부터 삼풍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온 것도 그같은 「효심」때문이었다고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최군은 그때부터 삼풍백화점 지하 1층 황주무역 수입아동화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의 소중함을 경험했다. 서울 강남구 신구국민학교와 신사중·용산고를 거쳐 대학에 진학,건축가의 꿈을 키워온 그는 어렸을때부터 각종 운동에 재능을 보여 「만능스포츠맨」으로 통했다. 특히 농구명문 용산고를 나온 탓인지 평소 농구를 몹시 즐기는 「농구광」으로 1백76㎝,65㎏의 다부진 몸매를 지녔다.만 9일 14시간만의 사투를 벌이고도 정신과 신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온전했던 것은 그의 타고난 체력 덕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처럼 활동적인데다 주위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깊었던 그의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특히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가 나던 지난달 29일 탈출해 테헤란병원에 입원중인 유정화(21)양과는 남달리 친하게 지냈다고 주위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최군의 믿음직함에 반해 3개월전부터 최군과 사귀어 왔다는 유양은 이날 최군의 구조소식을 듣자마자 슬러퍼에 병원복 차림으로 강남성모병원으로 달려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유양은 최군이 지하1층 매장에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준다며 올라간 뒤 5분만에 굉음과 함께 자신의 몸이 어디론가 튕겨나가고 최군도 행방불명됐다고 회상했다. 유양은 사고 이후 병원에서 잠을 자다 최군이 콘크리트더미에 묻혀 있고 주위에 피가 낭자한 장면의 꿈을 꾸다가 깜짝 놀란 나머지 잠에서 깨 밤을 꼬박 지샌게 한 두번이 아니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 쌀 8천t 새달 2일까지 북송/씨 아펙스호 오늘 귀환

    정부는 북한에 제공할 8천t의 쌀을 다음달 2일까지 북한의 청진항을 통해 모두 인도할 계획이라고 통일원이 28일 밝혔다. 한진해운 소속의 돌진호는 2천t의 쌀을 싣고 이날 마산항을 출항해 30일 상오 청진항에 도착할 예정이며,대보해운의 이스턴벤처호와 한진해운의 행진호는 각각3천5백t과 2천5백t을 선적,29일 목포와 군산항을 출항해 다음달 2일 청진항에 입항할 예정이다. 지난 26일 2천t의 쌀을 싣고 북한의 청진항에 입항한 씨아펙스호는 이날 하오 하역작업을 모두 끝냈으며 29일 밤 부산항으로 귀환한다. ◎씨 아펙스호 청진항 정박기간/태극기 떼고 인공기 게양/남성해운측 밝혀 북한에 쌀 2천t을 싣고 간 씨 아펙스호는 청진항 부두에 접안해 쌀 하역작업을 했으며 북한사람은 우리 선원을 친절하게 대해 줬다. 남성해운측은 28일 『씨 아펙스호의 김예민 선장이 북한 영해를 벗어나 공해상에 들어선 직후인 하오 4시30분쯤 서울 본사에 전화를 걸어와 선원은 모두 건강하며 29일 상오 6시쯤 군사분계선을 넘을 예정이라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남성해운에 따르면 씨 아펙스호 선원은 청진항에 들어간 후 하역작업을 위해 2시간정도 배에서 내렸으나 식사는 모두 배에서 해결했다.또 북한측으로부터 쌀 2천t 인도에 따른 사인을 받았으며 북한은 쌀을 하역한 후 일부는 부두열차로 어디론가 실어 날랐고 나머지는 부두에 쌓았다고 전했다. 남성해운측은 그러나 『달고 간 태극기는 청진항 도착후 북한측 요청으로 도선사가 갖고 온 인공기로 바꿔 북한 정박기간 마스트(배에서 가장 높은 곳)에 달았다』고 말했다.
  • 내일 투표날… 그동안을 뒤돌아보며(박갑천 칼럼)

    문희공 임방의 「천예록」은 그 내용이 「믿거나 말거나」쪽.황당한게 많다.그런데 개중에는 실존인물의 사례를 든것도 있다.나중에 가선대부까지 오르는 홍내범의 얘기도 그중의 하나이다. 홍내범이 염병에 걸려 10여일 앓다가 죽는다.시신을 관위에 올려놓았는데 갑자기 굴러 떨어지더니 살아났다.다음은 살아난 그가 한 말.­꿈이었다.어떤 관아에 이르렀다.아전과 졸개들이 앉아있었는데 쇠머리에 짐승얼굴을 한 야차와 나찰들이 서있다가 뛰쳐나와 그를 붙잡아갔다.검은옷의 아전이 소리친다.『…네가 늘 선비를 비방하고 천당과 지옥을 믿지않으며 제생각만을 고집했으니 지옥에 가서 만겁이 지나도 못나가게 하리라』 덴겁하여 우두망찰해 있는데 금빛보살이 웃음지으면서 말했다.자기가 불러오라고 한 자는 전주에 사는 홍아무개인데 잘못 데려왔노라고.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이곳을 한번 보고 나가서 인간세상에 전하라고 덧붙인다.귀졸이 그를 데리고 한곳에 이르니 「화목하지 못한 자의 죄를 다스리는 감옥」이라 쓰여있다.불을 피워놓고 죄인을꿇어앉히더니 불속에서 쇠꼬챙이를 꺼내어 열번도 넘게 눈알을 지진 다음 매달았다.『저들은 세상에 있을때 형제간이나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한채 오직 재물만 걸태질해서 이런 옰을 받는 것이오』 또 한곳에 이르니 「말을 꾸며하는 자의 죄를 다스리는 감옥」이라 쓰여 있다.날카로운 칼로 혀를 찌른 다음 기둥에 매다니 혀가 한자 남짓 빠지면서 눈알이 튀어나왔다.세상 살때 교묘하게 혀를 놀린 자들이 받는 형벌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데리고 간 곳은 「세상을 속인 자의 죄를 다스리는 감옥」.죄인을 발가벗긴 다음 가슴살을 도려내어 아귀에게 먹이고 있다.이들은 세상에서 겉으로는 온갖 좋은말로 청렴결백한 체하면서도 군단지럽게 뇌물을 받거나 백성의 피를 빤 자들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얘기를 쓴 문희공 자신도 황당하나 세상을 경계하는 뜻은 있다고 말한다.그렇다.평상시도 그렇지만 특히 지나온 선거열풍을 뒤돌아보면서 이 「황당한 얘기」를 생각한다.욕지거리하고 흑책질로 다미씌우면서 앞짧은 소리를 뻔드럽게 나불거린 사람들.이지옥 어느감옥에선가 아픔에 못견뎌 소리소리 질러대야 할 사람이 어디 하나둘인가. 내일이 투표날이다.지옥에서 비명지를 사람에게는 표를 주지 말아야겠다.선거문화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그 차원을 높이는 길은 유권자의 현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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