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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시대] 현대판 ‘그리스 비극’ /강승중 수출입은행 런던법인장

    [글로벌 시대] 현대판 ‘그리스 비극’ /강승중 수출입은행 런던법인장

    그리스에서는 지난 6월 17일 세계의 관심을 끌면서 2차 총선이 치러졌다. 5월의 1차 총선에서 그간 구제금융 조건으로 추진되어 왔던 긴축정책의 폐기를 주장하는 급진 시리자당이 돌풍을 일으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었는데, 2차 총선에서는 긴축정책과 유로존 잔류를 옹호하는 신민주당이 신승함으로써 그나마 온 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표현대로, 인구가 1000만명 남짓한 그리스의 총선이 5억 인구의 유럽연합(EU) 운명을 결정짓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소국이지만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바로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위기가 확산되어 유로존이 붕괴되고 금융공황이 발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100년 전 보스니아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이 전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것과 비유되는 상황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유럽 문명의 정신적 원류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낙천적이며 놀기 좋아하는 ‘지중해적 성향’ 때문에 일부로부터 경원시당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2009년에 통계 조작으로 축소 은폐되었던 재정적자의 실상이 드러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치부가 희화화되어 보도되면서 이러한 편견은 확대 재생산되었고 여타 EU국의 그리스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팽배해졌다. 과도한 연금지급액, 남용되어온 조기은퇴제도,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공공부문, 일상화된 탈세, 만연한 부패의 모습은 보도를 접하는 EU 국민들의 혀를 차게 만들었다. 경제적 논리로는 유로화 도입에 따른 대외경쟁력 상실, 저금리에 도취된 채무 팽창과 버블 형성 등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미성숙된 모습을 보이는 데 근본적 문제점이 있다고 인식된 것이다. 그리스의 현대사를 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제2차 세계대전 후 좌우대립에 따른 내란과 군사독재, 민주정부 수립 등의 굴곡을 겪었으며 이러한 정치과정 속에 현재의 전근대적 사회 모습이 굳어졌다. 1946년부터 3년간 벌어진 친공과 반공세력 간의 내전은 좌우진영 사이에 증오의 씨앗을 뿌렸으며, 미국의 지원으로 친공세력이 패배하고 이후 1960년대에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는 동안 좌파진영은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1974년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좌파진영이 정권을 잡자 이번에는 우파진영의 사회 참여가 봉쇄당했다. 이러한 전통 탓에 정치권은 전체적인 빵의 크기를 키우기보다는 누가 더 빵을 많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다투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중도좌파 사회당과 중도우파 신민주당의 양당체제가 이루어졌으나 내부적으로는 유력가문이 지배하는 족벌주의 시스템이 지배하였으며, 사회 전체적으로 공익은 염두에 두지 않고 사익을 우선 추구하는 통합기능 상실상태가 계속되어 왔다. 오죽하면 2009년 총리에 선출된 후 개혁을 시도했던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그리스 사회가 ‘뼛속까지 부패했다.’고까지 표현했을까. 최근 EU 정책당국자 사이에서는 유로존의 안정을 위해 그리스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약 70%의 독일인이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EU 중심국가들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그리스 비극’은 지금부터 약 2500년 전 아테네에서 상연되었던 연극을 기원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간의 고통·상실·죽음 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이를 보는 관객들은 오히려 카타르시스나 쾌감을 느끼는 데 묘미가 있다고 한다. 현재 그리스 국민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고초를 겪고 있으나 여타 EU 국민들은 이를 자업자득으로 여기고 그리스인들이 ‘혼 좀 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유로존이라는 배가 풍랑을 맞게 한 장본인으로, 그래서 배가 난파를 모면하려면 배 밖으로 던져져야 하는 제물로 그리스가 지목되는 모습에서 ‘그리스 비극’의 현대판을 보는 것 같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다. 한 사람은 조선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인물로 추앙받고, 한 사람은 북학(北學)의 종장으로 일컬어진다. 중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다산, 청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인을 스승으로 삼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를 배우고 좋아했던 추사,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달랐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당색(黨色)마저 달랐으니 애초부터 가까이 지내기엔 서로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추사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과 가까운 친구였고 선배인 다산을 존경했다. 다산 사후에는 다산의 제자들이 추사의 문하를 수시로 출입하며 교유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삶이 다르면서도 닿아 있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죄인의 몸이 되어 유배형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배의 설움 글로 푼 정약용 대대로 문한(文翰)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정조 임금의 총애를 온몸으로 받았던 신하이자 제자였다. 그런데 출세가도를 달리던 다산에게 시련이 닥쳤다. 젊은 시절 천주학(天主學)에 관한 책을 읽고 연구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산의 집안에는 형님과 매형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많았다. 호기심 많던 다산이 천주학에 관심을 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에 다산은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천주학과의 인연을 끊지만, 젊은 시절 그가 한때 마음을 두었던 천주학은 결국 인생의 항로를 바꾸고 만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 시절 천주학에 몸담았던 사실은 점점 다산의 목을 겨누는 칼로 변해갔다. ●든든한 후원자 정조 죽자 유배생활 시작 상황이 악화되자 다산은 짐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갔다. 1800년 봄의 일이었다. 얼마 후 다산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다산은 다음해 2월에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 10월에 상경하여 재조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고 만다. 죄인의 몸이 되어 강진을 찾은 다산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01년 겨울,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동문 밖 술집에 거처를 마련했다. 동천여사(東泉旅舍) 뒷골방인 사의재(四宜齋)였다. 이곳에서 1806년 여름까지 지냈다. 1805년 겨울은 승려인 아암(兒庵)의 배려로 아들 정학연과 함께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 지냈다. 1806년 가을에는 제자 이학래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1년 남짓 살았다. 이렇게 떠돌던 다산은 1808년 봄부터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머물렀다. 다산은 유배생활 대부분을 제자를 가르치고 저술하는 일로 보냈다. 누구보다도 승려들과 많은 교유를 하였고 차(茶)를 사랑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강진에 도착한 다음해 봄부터 붓과 벼루를 옆에 두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저술에 매달렸다. 그 때문에 왼쪽 어깨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 폐인이 될 지경이 되었고, 시력은 나빠져 늘 안경을 끼고 살았다. 다산이 그렇게 저술에 매달린 것은 폐족(廢族)이 되어버린 자신의 가문과 자신을 구원할 길이 오직 저술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전하고, 이로써 죄인의 오명을 벗어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폐족 벗어나기 위해 두 아들의 학문정진 강조 한편으로는 두 아들에게 수시로 훈계의 글을 써 보내 공부를 강조했다. 청족(淸族)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을 받게 되지만, 폐족이 된 마당에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두 아들이 자포자기하면 자신의 저술이 후대에 전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자신의 글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관청의 문서만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끝내 죄인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절박함은 다산으로 하여금 500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배의 恨 서화로 푼 김정희 김정희의 증조부는 영조 임금의 사위였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왕실의 한 구성원인 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1810년 부친을 따라 중국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다녀온 뒤로 북학의 종장으로 성장하였다. 연경의 지식인들은 김정희와 교유하기를 희망하였고, 김정희의 연구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이미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親청’ 추사, 反청 다산 선배로 여기고 후학들끼리 교류도 그러나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는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 그 자신마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모두가 정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다.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음식은 거칠어 목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날씨는 맞지 않아 걸핏하면 앓아누웠다.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해, 추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 김유근의 부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김유근은 추사를 유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가장 큰 희망이었는데, 이제 그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김유근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로 추사는 미쳐버린 듯, 정신이 나가버린 듯하였다. 하늘을 향해 혀를 차고 밥상을 대하면 수저를 드는 것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돌멩이가 목구멍에 걸린 듯하고 대못이 가슴에 박혀 있는 듯하여 몰골은 날마다 말라가고 정신도 따라서 나가버린 것 같았다.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추사는 두 번째 아내인 예안(禮安) 이씨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반대파들의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의 친구들과는 소식도 점차 끊어졌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마저 소식 한 통 전해오지 않았다. 그런 추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역관이었던 추사의 제자 이상적은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 덕분에 몸은 제주에 있었지만, 중국 소식을 손금 보듯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 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이상적의 행동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는 그 고마움을 그림에 담아 이상적에게 선물하였다. 그렇게 ‘세한도’가 탄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추사체로 불리는 그의 글씨는 바로 9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 탄생하였다. 추사 또한 평생 수많은 저술을 하였고, 유배기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자신의 저술을 두 번에 걸쳐 불에 태워버렸다. 그가 남긴 것은 그의 혼이 담긴 서화뿐이었다. ●올해 다산 탄생 250주년… 활발한 학술행사 열려 18년 유배생활을 저술로 보냈던 다산, 9년 유배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킨 추사, 이들의 삶은 이렇게 같으면서도 달랐다.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밖으로 풀어내 책을 지었고, 또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붓 끝에 모아 서화로 표출했다. 올해는 다산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전시회와 함께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행사가 열린다. 다산의 바람대로 죄인이라는 오명은 오래 전에 씻어졌다. 이제 다산을 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500권의 저술을 남긴 위대한 학자로서의 명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산의 치열했던 삶이 온전히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박철상(고서연구가)
  • [열린세상] 사회적 기품과 유약겸하(柔弱謙下) /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사회적 기품과 유약겸하(柔弱謙下) /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기품(氣品)이란 사람이 사회라는 집단화된 울타리 속에서 자기의 능력을 역할에 맞게 다듬고 키우기를 일생 동안 반복하면서 얻게 되는 기운의 크기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기품은 삶의 반복과정에서 개인들의 가치관 등이 일관된 방향성을 띠고 시간을 거치면서 반영된 시대적 의지이기 때문에 강제되지는 않지만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가치이다. 사람들의 조화로운 합의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사회적 기품은 개인들의 기품보다 우선하는 상위개념으로 사회의 건강 정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일종의 사회적 품격이다. 과거 “잘살아 보자.”는 사회적 기품을 살펴보면, 배고픔을 해결하여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스스로를 삭막한 무한경쟁의 늪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인심이 고갈된 척박한 사회로 변질시켰다. 물질은 넉넉해졌는지 모르지만 마음은 팍팍해졌다. 이제라도 닫힌 마음을 곧추세워 다시 멋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면 개인이든 조직이든 구성원들의 현실적 자기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우기 위한 살인적인 경쟁만을 고집한다면, 그리고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집착과 강박에 연연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이웃을 배려할 마음이 없게 된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내면의 상태를 세심히 살펴 당당하게 현실적 조건을 긍정적 태도로 수용할 때, 여유와 함께 아름다운 겸손과 배려가 사회적 기품으로 돋아날 수 있다. 오늘날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하여 남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위기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수천년 동안 외부침략에도 굴종하지 않았던 강인한 혼과 불굴의 기개가 핏속에 흐르고 있다. 이웃이 어려우면 언제든지 달려가 유·불리를 떠나 거들어주던 따뜻한 기품들이 있다. 유연한 사고와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서 우리의 우월적 DNA를 언제든지 사회적 기품에 장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의 역할은 상대방을 이해의 거울로 삼아 자기를 반추하고 더불어 이롭게 사는 품격 있는 사회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약겸하(柔弱謙下)란 부드럽고 유연하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강한 것을 누른다는 의미로, 부드러움과 낮춤을 통해 세상을 슬기롭게 열어가자는 지혜가 함축된 노자의 말이다. 노자가 스승 상용(商容)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마지막 가르침을 구하자, “너는 혀(舌)가 있느냐?”고 물었고 노자가 “있다.”고 대답하자 다시 “이(齒)도 있느냐?”는 물음에 “이는 다 빠져서 없다.”고 답변한 데서 연유한다. 강한 것은 깨지고 부서져 없어지지만 부드러운 것은 오래간다는 뜻이다. 천하를 얻기 위한 삶의 태도는 타인에게 베풀되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마음을 다스려 나가라는 깨달음의 글이다. 오직 치열한 경쟁만이 살길이요, 강한 것만 최고의 덕목인 것처럼 여기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되새겨 볼 만한 말이다. 최근 언론은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인구가 5000만명을 넘는 ‘20-50클럽’에 가입했다고 발표하면서 우리의 경제력이 외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에 이어 7번째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저출산과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이 ‘20-50클럽’ 안착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어 이를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유사 이래 가장 높은 경제적 기초체력과 구매력을 배경으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규모를 감안해 볼 때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은 실종된 지 오래다. 심각한 사실은 서민들은 늘어가는 빚과 사라지는 자기 몫을 바라보며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소수 가진 자들의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면서 사분오열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시급히 선진사회에 어울리는 행동규범과 사회기품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단결된 하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로를 아끼고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기품으로 나라 전부를 채운다면 미래의 어떤 걱정도 풀어나갈 수 있음을 잊지 말자.
  • [마른 하늘 타는 대지] “열흘 넘게 식수 없어” 주민 700명 시름, 농작물 고사… 멸종위기 민물조개 폐사

    [마른 하늘 타는 대지] “열흘 넘게 식수 없어” 주민 700명 시름, 농작물 고사… 멸종위기 민물조개 폐사

    충남 등 전국 곳곳이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가뭄 피해는 농작물에 그치지 않고 식수 고갈과 수산물 폐사 등으로 이어지며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충남은 전국 최하위인 29%의 저수율에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2367㏊의 논에서 가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22일 현재 서산시와 태안·예산·홍성군 등 서해안 4개 시·군 7개 마을에서는 식수가 고갈돼 주민 700여명이 불편을 겪고 있다.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는 지난 10일부터 격일제로 식수가 공급되고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는 하루 4시간만 제한급수 중이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3리는 소방차로 물을 공급한다. 태안군 이원면 관리 주민 한원석(72)씨는 22일 “열흘 넘게 식수가 떨어져 매일 경운기로 마을에서 1㎞ 떨어진 농업용 관정 물을 싣고 와 먹는다. 샤워는 무슨 샤워냐. 변기 내릴 물도 없어 산이나 들로 나가 볼일을 보는 사람도 많다.”고 혀를 찼다. 한씨는 이어 “밭에는 먼지만 날려 파종한 생강과 고구마가 다 타 죽었고, 콩을 심어야 하는데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아이고!’ 소리를 연방 쏟아냈다. 농작물 시듦 현상도 충남이 가장 심각하다. 밭작물이 시들은 전체 4690㏊ 중 3700㏊가 충남지역에 있어 참깨, 오이 등이 죽기 직전이다. 충남에서는 이와 함께 1727㏊의 논바닥도 갈라져 어린 모가 죽어가고 있다. 충남 931개 저수지 중 17.8%인 166곳이 바닥을 드러냈고 346곳은 저수량이 30% 아래로 떨어졌다. 한창 수확 중인 농산물 생산량도 가뭄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양파는 생장이 제대로 안 돼 밤톨만 하고 마늘과 감자도 대부분 예년에 비해 씨알이 훨씬 작아졌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이 세 가지 밭작물은 지난해보다 수확량이 20~30%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원도에서는 콩이 싹을 제대로 틔우지 못하고 고사한 지 오래다. 대표 농작물인 감자는 생육이 부진해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복숭아 등 과수 묘목도 바싹 말라 고사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강원도는 지난겨울 냉해에 이어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횡성군에서 감자와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는 최돈민(65)씨는 “가뭄이 계속돼 감자 알이 자라지 않고 옥수수도 말라 비틀어져 올해 농사는 완전 망칠 것 같다.”고 울상이다. 식수와 생활용수 공급 요청도 잇따르고 있다. 이달 들어 지금까지 700여t의 식수 및 생활용수 지원이 이뤄졌다. 강원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더위와 가뭄이 끊이지 않으면서 인근 지하수나 그 많던 계곡물까지 말라 급수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뭄 피해는 바다로도 이어지고 있다. 태안군 소원면과 근흥면 사이 근소만에서는 바지락이 무더기로 폐사하고 있다. 바지락은 뭍에서 민물이 들어오면서 영양분이 공급돼 속살이 차는데 극심한 가뭄으로 지난 3월부터 인근 농경지 수문 7~8곳을 전부 닫아 놓았기 때문이다. 소원면 파도리 어촌계장 최장열(41)씨는 “벌써 한 달째 바지락 채취가 중단됐다. 일본에서도 ‘불합격’ 처분을 내려 수출을 못하고 있다.”면서 “마을주민 240가구가 바지락을 캐 연간 20억~30억원을 벌어왔는데 올해는 반타작이나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수율이 뚝 떨어진 충남 논산시 탑정저수지와 태안군 내 여러 저수지에서는 멸종위기동물 1급으로 지정된 민물조개류인 ‘귀이빨대칭이’가 수천 마리씩 집단 폐사하는 사태도 잇따르고 있다. 전북 정읍에서는 지하수마저 고갈되자 소방차 25대를 동원해 소, 돼지 사육농가에 축산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전국종합 sky@seoul.co.kr
  • [영화리뷰] ‘아부의 왕’ 성동일·송새벽의 처세술 찰떡궁합 명품 애드리브

    [영화리뷰] ‘아부의 왕’ 성동일·송새벽의 처세술 찰떡궁합 명품 애드리브

    코믹 연기의 달인 성동일과 코미디 연기의 신성 송새벽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아부의 왕’(20일 개봉). 직장은 물론 사회 생활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처세술로 꼽히는 아부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생활 밀착형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 준다. 영화는 자기 일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고, 직장 상사는 물론 동료들과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현명하게 풀어 나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공감을 살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단 어느 부분에서 대중과 교감을 할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아부의 왕’은 보험회사에 1등으로 입사해 기획팀에서 중요한 기획안을 도맡을 정도로 실력을 갖췄지만,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성격의 동식(송새벽)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소신껏 일했지만 윗사람 비위 맞추기에는 소질이 없는 동식은 갑자기 영업팀에 발령을 받고 퇴사할 결심을 세운다. 하지만 때마침 어머니가 만년 교감이던 아버지를 교장으로 만들기 위해 덜컥 사채를 끌어다 로비한 것을 알게 된 뒤 결국 사채를 갚기 위해 보험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영화는 영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동식이 우여곡절 끝에 아부계의 숨은 전설로 통하는 혀고수(성동일)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아부를 ‘감성영업’이라고 주장하는 혀고수는 동식에게 아부의 기본인 침묵부터 가르친다. 이어 ‘3, 4, 5의 법칙’, ‘미소의 법칙’, ‘동조와 맞장구의 법칙’ 등 아부 비법을 전수하는 장면에서 상황에 딱 맞는 대사와 배우들의 애드리브 연기가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극의 중반부터 동식의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작품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사채에 시달리던 동식이 계약을 따내기 위해 홈쇼핑 회장에게 비굴할 정도로 충성을 다하는 애잔한 모습은 샐러리맨의 애환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코믹하게 흘러가던 극 전개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다. 여기에 동식의 첫사랑이 등장해 이와 관련된 이야기까지 추가되면서 영화는 구심점을 잃고 산만하게 흘러간다. 아부를 소재로 직장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겠다는 기획은 참신했지만, 좀 더 치밀한 구성과 현실적인 스토리가 뒷받침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생활 밀착형 코미디의 익숙함은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메시지나 페이소스는 약하다는 이야기다. 큰 변신을 보여 준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와 잘 맞는 배우들의 연기는 볼 만하다. 성동일은 ‘애드리브의 제왕’이라는 별명답게 능글맞은 혀고수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고, 로맨틱 코미디 ‘위험한 상견례’ 이후 샐러리맨 연기에 도전한 송새벽도 큰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아부계의 팜므파탈 예지 역으로 나오는 김성령의 캐릭터는 강렬하지만, 남자 주연들에 비해 비중은 작은 편이다. 영화 ‘밀양’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정승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엄포댁 흡연기’

    협심증이었을까. 아니면 역류성 식도염으로 식도에 생긴 화상이 만성화됐을 수도 있다. 그는 늘 가슴이 답답하다며 고통스러워 했다. 한번 속에서 ‘화’가 치밀면 한겨울에도 가슴을 풀어헤치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곤 했다. 젊어서부터 그랬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가슴앓이에 좋은 약”이라며 몰래 그에게 건넨 것은 궐련이었다. 처음엔 “제가 어떻게….”라며 한사코 마다했다. 그랬는데 하루는 꼭두새벽에 가슴앓이가 시작돼 혼자서 뒹굴다가 문득 생각이 났던지 장롱 속에 감춰둔 궐련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때부터 엄포댁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젊어서 홀로 돼 가슴에 한도 많을 것”이라며 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척 했다. 담배라는 게 비명횡사한 무사귀신(無祀鬼神)이라도 붙었는지, 한번 사람에게 엉겨붙으면 여간해서는 떨치기 어려운 것인데, 엄포댁도 거기 덜미가 잡혔다. 밭일을 하다가도 두둑에 퍼질러앉아 궐련을 피우거나 마땅찮으면 독한 썰거리를 말아태우기도 했다. 혼자 살자니 엔간한 독기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많아 그는 누구보다 억척이었다. 언젠가는 해가 꼬박 저물었는데도 추수 끝난 보리밭을 누비며 보릿목 낙수를 줍고 있었는데, 그걸 본 시어머니는 그게 또 안돼 보였던지 연신 혀를 말아차며 “아이고, 저 개대가리에서 등겨 털어먹을 년, 하마 뱃가죽이 등에 붙었을텐데….”라며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며느리를 보게 된 엄포댁은 귓볼 붉은 며느리 앞에서 대뜸 담배 꺼내물기가 그랬던지 장황하게 담배를 피우게 된 사연을 풀어놓더니 “그렇게 담배를 배웠는데, 내 병에 이만한 약이 또 있을까 싶다.”라며 넌지시 며느리의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담배 얘기가 아니다. 사는 게 고해(苦海)라고, 누구나 돌이켜 보면 켜켜이 사연이 많다. 예전엔 배곯으며 살았고, 요새는 황금에 내몰리는 세상이니, 그 전에는 몰라서 병을 키웠고, 요새는 바빠서 병을 키운다. 그러나 내 몸의 병을 두고 세상만 탓할 일은 아니다. 바둑 격언인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는 그래서 삶에도 어울리는 말이다. jeshim@seoul.co.kr
  • [부고] 3연속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 쿠바 복싱영웅 스테벤손

    쿠바의 복싱 영웅 테오필로 스테벤손이 지난 12일(한국시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떴다. 60세. 자메이카 태생이면서 쿠바 국적을 가진 스테벤손은 세 차례 올림픽에서 헤비급 금메달을 차지한 최초의 복서로 이름을 남겼다. 190㎝의 장신으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스테벤손의 준결승 상대인 피터 허싱(독일)은 “나는 모두 212차례 경기를 가졌지만 그렇게 엄청난 강펀치는 처음이었다. 그의 오른손 펀치는 보이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턱에 걸치는 펀치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파괴적인 왼손 찌르기와 강렬한 오른손 주먹을 겸비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스테벤손은 불과 7분 22초의 기록으로 세 명의 상대를 넉아웃시켰고 결승전 상대인 미르세아 시몬(루마니아)은 3라운드에서 타월을 던져 경기를 포기했을 정도다. 4년 뒤 모스크바올림픽 준결승에서 이스트반 레바이(헝가리)가 회피 전술을 이용해 스테벤손과 판정까지 갔지만 스테벤손이 우세했다. 결승에서 표트르 자예프(옛 소련)와 힘겨운 결투 끝에 판정승으로 우승하면서 3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고인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는 당시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권의 올림픽 보이콧으로 인해 금메달을 딸 기회를 잃어버렸다. 스테벤손이 쿠바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영원한 아마추어 복서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마추어 전적만 302승22패. 그는 1976년 미국 프로모터들로부터 500만 달러를 대가로 프로 전향 유혹을 받았다. 당시 프로 데뷔전으로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이 한때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프로 전향을 거부했다. “내가 만약 500만 쿠바인들의 사랑을 잃는다면, 내게 500만 달러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되물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7년 은퇴한 그는 대표팀 코치를 거쳐 쿠바 아마추어복싱연맹 부회장, 쿠바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혀가 키보다 1.5배 긴 희귀 박쥐, 초근접 포착

    혀가 자신의 키보다 1.5배나 긴 희귀 박쥐가 꿀을 빠는 모습이 고해상도(HD) 카메라에 초근접 촬영됐다. 지난 2005년 에콰도르 안데스 지역 운무림에서 첫 발견된 이 박쥐는 학명 ‘아노우라 피스툴리타’로 몸길이는 6cm 정도지만 혀 길이는 9cm나 돼 신장 대비 가장 긴 혀를 가진 포유류다. 인간으로 치면 혀의 길이가 3m가 넘는 셈. 이 박쥐는 ‘켄트로포곤 니그리칸스’라는 학명을 가진 도라짓과 식물의 꽃에서 꿀을 빨 때 자신의 혀를 사용한다. 이때가 아니면 평소 혀는 몸속으로 넣고 있다. 이번 촬영을 주도한 미국 네브래스카대학 링컨캠퍼스의 생물학자 네이선 머찰라 박사는 “이 박쥐는 공중에 정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벌새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촬영된 고화질 영상을 보면 이 박쥐는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며 꿀을 핥아 먹는다. 확대된 영상을 보면 박쥐의 혀가 긴 통 모양의 꽃 속으로 뱀처럼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혀가 꽃 밑동에 쌓인 꿀에 도달하면 그 끝은 머리카락처럼 많은 돌기를 가진 구조로 신속하게 변한다. 이에 대해 머찰라 박사는 “이 박쥐의 혀는 바닥에 닿기 직전 수평으로 뉘여져 마치 걸레처럼 바닥을 닦아내듯 가능한 많은 꿀을 훑어낸다.”고 밝혔다. 특히 이 통 모양의 꽃은 이 긴 혀를 가진 박쥐에 의해서만 수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쥐가 꿀을 핥는 동안 꽃가루가 머리털에 붙어 그다음 꿀을 빨기 위해 찾아간 꽃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머찰라 박사는 “꽃의 관이 길면 길수록 박쥐는 꿀을 핥는 동안 머리를 꽃에 단단히 고정한다.”면서 “이 두 생물이 서로 경쟁하듯 길이를 늘여 공(共)진화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 영상은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언테임드 아메리카즈’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한국계 뇌과학자’ 전세계가 주목

    ‘한국계 뇌과학자’ 전세계가 주목

    ●32세에 신경 컴퓨터 만들며 입지 굳혀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생물학적으로 뇌의 기능을 파악하고 각 부분의 역할을 살펴보는 방법이 전통적인 접근이라면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방법은 뇌를 컴퓨터로 보고 이를 본뜬 컴퓨터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분야다. 인간의 유전체 지도를 그리는 유전체학이 DNA 구조를 완벽하게 분석해내 생물학과 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처럼 언젠가는 뇌의 모든 연결선을 파악해 인간의 뇌처럼 작동하는 컴퓨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공학자들의 꿈이다. ‘커넥톰’(Connectome)이라고 불리는 뇌신경 연결지도를 그리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미 메사추세츠공대(MIT) 뇌 및 인지과학과의 한국계 세바스천 승(승현준) 교수다. 올해 44세에 불과한 승 교수는 12년 전 신경컴퓨터를 만들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2008년에는 호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등 전 세계 유력 언론들이 승 교수가 펴낸 첫 번째 저서 ‘커넥톰: 뇌의 연결은 어떻게 우리 자신을 만드는가’를 최근 잇따라 소개하며 그가 뇌 연구에 얼마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했는지 알리고 있다. 가디언은 10일(현지시간) “하버드에서 물리학을 배우고 현재 MIT 교수인 세바스천 승은 신경과학계의 떠오르는 별이자 정점”이라며 “그의 저서는 우리의 개성이 어떤 커넥톰에서 비롯됐는지와 우리의 복잡한 뉴런 지도를 다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커넥톰은 비행기 노선에 비유할 수 있다. 비행기 기내 잡지의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전 세계 운항노선도처럼 우리의 정신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각 도시는 뉴런으로, 각각의 노선은 뉴런 사이의 연결로 대체된다. 현재 승 교수가 그려낸 지도는 1000억개의 도시에 이르고, 각 도시의 비행기 노선은 각각 1만건을 넘을 정도로 거대하다. 승 교수는 “만약 뇌를 아주 얇게 잘라 살펴본다면 뉴런들은 굉장히 많은 조각들을 거쳐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내 연구의 장기적인 목표는 각각의 뉴런들의 연결을 자동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승 교수는 왜 커넥톰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그는 “내가 누구인지, 내 정체성은 무엇이고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억이 만약 커넥톰 안에 암호화된 상태로 들어있다면 개개인의 개성 역시 커넥톰에 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나는 커넥톰이 당신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커넥톰은 내가 누구인지 답하기 위한 작업” 승 교수는 현재 커넥톰 작업을 더욱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좁쌀 하나에 불과한 뇌 조각을 수작업으로 분석한다면 분석해야 할 대상은 10만개의 뉴런과 10억개의 연결에 이른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10만년 이상이 소요된다. 승 교수는 “현재 이 작업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완벽하지 않다.”면서 “현재 일반 대중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를 찾고 있으며 이 방안이 연구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충무로는 지금 ‘캐릭터 코미디’ 전성시대

    충무로는 지금 ‘캐릭터 코미디’ 전성시대

    ‘캐릭터가 떠야 영화가 뜬다!’ 요즘 충무로는 캐릭터 코미디 영화 전성시대다. 특이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코미디 영화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 캐릭터 코미디 영화는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하거나 드라마를 강조하기보다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를 풀어 나가는 측면이 크다. 이 때문에 요즘 충무로는 이색 캐릭터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 6일 관객 3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대표적인 캐릭터 코미디 영화다. 이 영화의 중심축은 입만 열면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독설가형 아내 연정인(임수정)의 캐릭터가 이끌고 있다. 극 중 정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잔소리꾼 아내로 튀다 못해 노골적인 것이 매력이다. 한편 정인을 유혹하기 위해 투입되는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류승룡)도 카리스마 넘치는 코믹 연기로 웃음을 준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정인은 노골적이고 솔직해 비호감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면의 외로움에서 비롯됐다는 데서 관객이 공감을 느끼도록 했다.”면서 “성기는 진지하면서도 익숙한 유머에서 벗어나 약간 변주된 글로벌한 이미지의 바람둥이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민 감독은 영화의 인기 비결에 대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캐릭터들을 입체감 있게 그리려고 노력했고 예측이 안 되고 호기심을 주는 캐릭터와 그들의 소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코미디가 강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차형사’도 캐릭터의 개성으로 승부하는 코미디 영화다. 뚱뚱하고 지저분한 형사 차철수(강지환)가 패션 모델로 위장 잠입해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런 이유로 극 초반은 노숙자를 떠올리게 하는 비호감 캐릭터인 차 형사의 에피소드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도 차 형사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실제로 살을 10㎏ 넘게 살을 찌웠다가 뺀 강지환에게 맞추고 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미쓰GO’도 여주인공 천수로(고현정) 캐릭터의 비중이 크다. 극 중 천수로는 소심하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여인으로 맹하고 대책 없이 착한 심성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 고현정은 촌스러운 캐릭터를 위해 피부 메이크업조차 받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천수로의 캐릭터가 범죄의 여왕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코미디가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개봉하는 ‘아부의 왕’에는 ‘혀고수’라는 이름의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성동일이 맡은 역할은 혀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물로 보험왕, 정치인 컨설턴트, 로비스트,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라는 이력을 달고 다니는 아부계의 숨은 전설이다.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의 대가 성동일이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생활 밀착형 코미디를 선보일 예정이다. 연기파 배우 윤제문의 첫 주연작인 ‘나는 공무원이다’도 10년차 7급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한대희는 마포구청 환경과 생활공해팀 공무원이다. 각종 민원전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노하우를 지닌 ‘평정심의 대가’이자 10년 동안 ‘TV 친구’ 유재석과 이경규를 만나온 일상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동안 주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였던 윤제문이 귀엽고 코믹한 캐릭터에 도전해 그의 연기 변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캐릭터 코미디 영화의 열풍을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 코미디 영화의 진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코미디 영화가 과거 조폭 코미디류 같은 평면적인 코미디에서 잘 기획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강조한 코미디로 추세가 바뀌고 있다.”면서 “캐릭터 코미디는 예측과 기대를 배반한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주고 그러한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1차원적인 웃음에 머물렀던 한국형 코미디가 진화하는 과정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이창현 부장은 “올 상반기에는 무겁고 진지한 장르나 상황식 코미디보다 억지 웃음이 아닌 호감을 주는 생활 밀착형 캐릭터를 내세운 코미디가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총선, 대선 등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복잡하지 않고 쉽고 즉각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캐릭터 코미디의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캐릭터 코미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배우에 대한 호감도와 캐릭터의 연기력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미쓰GO’의 배급사 NEW 마케팅팀의 박준경 팀장은 “캐릭터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배우의 호감도가 있어야 하고 캐릭터의 매력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성공한다.”면서 “캐릭터 자체가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물의 성격을 잘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과 만났을 때의 상호 작용과 연쇄 작용까지도 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난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신부”…363kg 여성의 이색도전

    “난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신부”…363kg 여성의 이색도전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신부가 될테야!”  무려 300kg이 훌쩍 넘는 몸무게로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여성 중 한명인 수잔나 에맨(33)이 이색적인 도전에 나섰다. 바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신부(新婦)가 되겠다는 것. 지난 3월 요리사와 결혼을 발표해 화제가 된 에맨이 연말 결혼을 앞두고 본격적인 몸무게 늘리기에 나섰다. 현재 그녀의 몸무게는 363kg. 결혼식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하는 일반 여성들과는 달리 그녀는 하루 3만 칼로리를 먹어치우며 매일매일 살을 불리고 있다. 그녀의 몸무게 목표는 544kg으로 이 세계기록은 지난 2006년 사망한 여성인 로잘리 브래드 포드가 세웠다. 최근 에맨은 미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몸매(?)를 뽐냈다. 거대한 신부의 웨딩드레스 제작을 위해 들어간 원단만 무려 14m로 재단사는 “이런 드레스는 평생 다시는 만들어보지 못할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거대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나선 그녀는 “이제야 정말 신부가 된 느낌”이라며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같은 도전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많다. 에맨의 주치의는 “이렇게 체중을 늘리는 것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면서 “여러차례 경고했지만 에맨은 위험 없이 몸무게를 늘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그녀와 결혼을 앞둔 요리사 파커 클라크(35)는 “난 뚱뚱한 그녀를 사랑하며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울 것” 이라며 “에맨의 건강이 걱정되지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게 먹일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뉴스팀       
  • [문화마당] 노인과 서대문아트홀/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노인과 서대문아트홀/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서대문역 8번 출구 앞. 서대문로터리 고가도로를 넘어가다 보면 극장 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개봉작 홍보 포스터 대신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씌어진 문구가 처량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르신 문화를 제발 지켜주세요.’ 여기가 서대문아트홀이다. 서울 한복판의 노인전용극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장년층들에게 ‘청춘극장’으로 사랑받으며 명소가 된 이곳은 이제 자취를 감춘다. 지난해 서울시가 이 지역에 관광호텔을 짓도록 허용하는 사업시행인가를 고시했다. 개발업체 측은 올 초 서대문아트홀을 상대로 극장 자리를 비워달라며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초 첫 재판이 열렸고, 지난달 22일 1심 판결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소를 각하해 폐관에 직면하게 됐다. 이곳은 1964년 화양극장으로 개관했다.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단관 극장으로 명맥을 유지한 명소였다. 개관 당시 재개봉관으로 시작해 이듬해 개봉관이 되면서 시민들의 발길이 더욱 잦았다. 1980년대에는 영등포의 명화극장, 미아리의 대지극장과 함께 홍콩 영화 3대 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1990년대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극장가를 점령하자 1998년 드림시네마로 이름을 바꿔 시사회 전용 극장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서대문아트홀이라는 극장 간판을 걸고 노인전용 복합문화 공간 극장으로 탈바꿈한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장년층의 문화 공간으로 이름을 알린 지 불과 3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극장 대표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은 의미심장하다. 서대문아트홀이 이렇게 사라지면 몇 안 되는 문화공간을 뺏긴 어르신들은 더욱 갈 곳을 잃게 된다. 서대문아트홀의 지금 상황은 젊은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세월에 밀려 소외당하는 어르신들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근 노인 관객 3000여명은 노인문화공연장 건립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서울시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연예계도 동참을 선언했다. 원로배우들과 가수, 코미디언들이 뭉쳐 합동 공연을 갖고 어르신 문화에 대한 사회적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극장 측도 마지막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추억의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대기업의 잠룡 앞에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단관 극장의 추억, 노인 문화공간의 확충을 적극적으로 호소한다니 눈물겹다. 극장 현관문에는 공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붉은색 페인트로 ‘철거’라는 글씨가 흉물스럽게 적혀 있다. 단돈 2000원에 추억의 명화를, 때로는 추억의 스타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저렴하게 볼 수 있었던 노인들은 그나마 서울시가 지난 3월부터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 메가박스 8층 1·2관을 대관해 매일 4회씩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외곽으로 밀려난 노인들은 그 작은 ‘문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이제 발품을 팔아야만 한다. 서울시 한복판, 지하철과 연결된 650석의 극장 자리는 단연 노른자위다. 하지만 그곳을 노인들에게 내주는 것이 아까워 호텔을 짓는 것에 동의할 시민은 없을 것이다. 노인들을 위해 이만한 자리는 없다. 과연 이곳을 없애는 것이 사회적 비용과 비교했을 때 적절한 것인지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 달라는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 사회는 문화를 보는 시각이 겉멋만 단단히 들었다. 한류 열풍이 이슈가 되자 국내 공연장 건립이 시급하다며 호들갑을 떨더니 결국 건립을 추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문화 역시 방치하면 그만큼 사회적 손실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한류 열기와 관심만큼 소외 지역·계층을 지원하는 일도 절실하다. 폐관 극장 앞을 서성이는 노인들은 이렇게 입은 모은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제 영화도, 공연도 마음 편히 볼 수 없게 됐네. 단돈 2000원으로 한나절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나? 표 구걸 할 때는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 노인들 덕이라며 존경한다더니, 이런 문화는 다 뺏어 가네. 이런 걸 두고 찬밥신세라고 하잖아.” 누가 이 노인들이 혀를 차게 했는가.
  • [오늘의 눈] 흡연단속 유감/이영준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흡연단속 유감/이영준 사회부 기자

    마녀사냥 같았다. 지난 1일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의 강남대로변에서 이뤄진 흡연 단속의 모습이 그랬다. 구청 단속 요원들이 담배를 피우는 시민에게 몰려들었다. 카메라로 채증한 뒤 몰아세웠다. 물리력 행사는 아니었지만 정신적 집단 폭행이나 다름없었다. 3분 만에 경찰차가 달려왔다. 경찰의 신원조사가 이뤄졌다. 순식간에 범죄자 신분이 됐다. 행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는 더 궁지로 내몰았다. 흡연 과태료 5만원 딱지를 뗐다. 깡패들이 ‘삥 뜯는’ 것 같았다. 서울시가 흡연 없는 ‘청정구역’을 선언하고 단속에 나섰지만 부작용이 만만찮다. 절대적인 흡연량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단속 이외 지역의 흡연만 부추기는 꼴이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9번출구 앞 금연거리 경계선에 마련된 작은 공간은 ‘흡연의 전당’이 돼 버렸다. 2일 아침 청소부가 혀를 찰 정도로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 뒷골목에서는 보란 듯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 시민들도 늘었다. 금연거리 단속은 “거기서만 안 피우면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규제의 반작용이다. 강남대로변에서 담배 연기를 퇴출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단속에 걸린 흡연자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만큼 좀 더 세심한 설득과 홍보가 필요한 실정이다. 끽연행위를 범죄처럼 다그치는 광경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좀 더 사회적 동의 과정을 거치면 어땠을까 싶다. 흡연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듯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판매해 놓고 못 피우게 단속하고 과태료를 물리는 게 옳은지 따져보자.”는 흡연자들의 항변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은 마땅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흡연은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흡연자의 인식 전환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캠페인도 한 방법이다. 대증요법은 정책의 효과를 담보할 수 없다. “일단 과태료 확인증을 받으시고 나중에 이의제기하면…”이라는 단속요원의 작은 목소리가 한창 귓가에 맴돌았다. 길거리 흡연이 단속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배려 차원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apple@seoul.co.kr
  • “동성애자로 맘껏 솔직한 단 하루”

    “동성애자로 맘껏 솔직한 단 하루”

    “1년에 딱 하루, 동성애자임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자리입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퀴어(Queer·성적 소수자)퍼레이드의 한 무리를 이끌던 장병권(36)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의 말에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원피스로 한껏 멋을 낸 게이부터 피켓을 든 레즈비언, 외국인, 구경삼아 낀 시민들까지 다양했다. 2500여명이 참여했다. 기자도 짧은 시간이나마 성적 소수자들의 삶을 경험해 보기 위해 메릴린 먼로로 분장해 참여했다. 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13회째다. 성적 소수자의 인권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행사다. 동성애자뿐 아니라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다양한 성적 소수자가 참여, 이뤄지고 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도심을 행진하는 퍼레이드다. 1년에 단 하루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꽃 단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참가자들은 40분간 청계천로 1.5㎞를 흥겹게 행진했다. 행렬은 보기에 따라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갖는 의미는 사뭇 남다르다. 몇 시간 동안 그들에겐 솔직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제한된 시간이지만 차별적 시선을 피해 숨어 지내는 성적 소수자들은 세상을 향해 “혐오는 폭력이다.”, “혐오하지 말고 사랑하자.”라고 외쳤다. 참고 살아온 그들의 현실이다. 드람(20·가명)씨는 “부모님에게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말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여장 차림의 기자 역시 혐오스런 눈길을 받아야 했다. 한심한 듯 혀를 끌끌 차는 중년 남성도, 안타까운 듯 바라보는 어머니 또래의 여성도 있었다. 성적 소수자들에게 결혼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현행법도, 사회적 통념도 가로막고 있다. 퍼레이드에 앞서 진행된 퀴어문화축제에서는 미국 대선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동성 결혼과 관련한 행사가 이어졌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마련한 ‘동성 커플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EJ(34·여·가명)씨는 “집에서 결혼하라고 할 때마다 독신주의라고 거짓말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가상으로라도 결혼하고 싶어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해 봤다.”고 말했다. 구경하는 이들 속에서도 한국 사회의 문화적 보수성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작은 변화지만 동성애자들이 해마다 거리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교사인 미국인 보이스(25·여)는 “미국에 비하면 한국 사회는 다르다는 것에 대해 훨씬 배타적”이라고 지적했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한 참여자가 대뜸 “기자님은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못하는 걸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묻자 “부모님이랑 친구들한테 솔직히 다 얘기하고, 길에서 애인과 스킨십도 하고. 그냥… 그냥 남들 다 하는 거요.”라고 답했다. 생각보다 소박한 소망이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낯선사람, 고찬용 첫 번째 프로포즈

    낯선사람, 고찬용 첫 번째 프로포즈

    조규찬과 강현민(일기예보), 유희열, 이한철, 방시혁, 나원주, 정지찬의 공통점은. 가수와 작곡가, 프로듀서 등 걷는 길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이다. 노래는 물론 작사·작곡, 편곡, 연주를 할 수 있는 재주꾼을 뽑다 보니 강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조동익, 조동희, 장필순, 한동준, 윤영배, 오소영, 더 버드의 공통점은 뭘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을 대표하던 포크 가수들로 음반기획사 ‘하나음악’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2003년 하나음악이 문을 닫으면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2010년 옛 친구들은 푸른곰팡이란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그리고 둘의 교집합이 있다. 고찬용(41)이다. 그는 1990년 제2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대상을 받았다. 그래도 낯설다면 보컬그룹 ‘낯선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한국의 맨하튼 트랜스퍼’란 별칭으로 90년대 초 가요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낯선사람들은 인천대 음악동아리 포크라인 회원들이 만든 보컬그룹이다. 대중은 이소라를 더 기억할 테지만, 작사·작곡은 물론 음악 설계를 도맡은 건 리더 고찬용이다. 고찬용이 새 앨범 ‘룩 백’을 내놓았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화려한 코드 전개, 웬만한 연주자는 흉내 내기도 힘들 만큼 ‘변박’(불규칙한 박자)이 쏟아진다. 스캣(즉흥 보컬)도 자유자재다. ‘음악가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뮤지션’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정원영, 김동률, 이적 등 동료들은 앨범 발매와 동시에 트위터에 상찬을 쏟아냈다. 녹음에 꼬박 9개월이 걸렸으니 들인 품을 짐작할 만하다. 허성혁 푸른곰팡이 대표가 “다른 소속가수 앨범보다 마스터링은 스무 배쯤 시간이 더 걸렸다. 심지어 공장에 음원을 보내기 하루 전날까지 밤을 새워가며 수정 작업을 했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 1집 ‘애프터 텐 이어스 애브슨스’(2006) 이후 6년 만이니 욕심을 낼 법도 했다. 2003년 하나음악이 망하고서 시간과 돈에 쫓기면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만든 1집은 외면받았다. 고찬용은 “하나음악 식구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 외의 사람들과 아예 교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회사가 해체됐을 때 직장을 잃은 기분이었다. 쫓기는 마음이었고, 세션을 쓸 형편이 안 돼 미디(MIDI)로 모든 악기를 연주했다.”고 설명했다. 세션 연주자들과 녹음하고,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마친 건 1996년 낯선사람들 2집 이후 16년 만인 셈. ‘룩 백’에는 유독 격려와 위로의 노랫말이 눈에 띈다. 고찬용은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나에 대한 위로를, 다른 분들도 이 노래들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곡을 썼다.”고 말했다. 또한 “전에는 곡 쓰는 스타일 자체가 틀에 박혔다. (학전의 김민기 대표와) 창작뮤지컬 음악감독을 하면서 자유로운 발상을 배운 것 같다. 이번 앨범은 멜로디를 먼저 쓰고 나중에 화성이나 코드를 붙이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6년부터 공황장애를 앓았다. 그는 “심장발작이 와서 병원에 갔는데 1주일을 검사하더니 정신과로 가보라더라. 이범룡(‘꿈의 대화’로 제4회 대학가요제 대상)씨가 그 방면의 전문이라서 찾아갔다. 처음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대인기피와 광장공포증이 함께 왔다. 쇼핑몰 같은데는 엄두도 못 냈다. 사는 게 무서웠다. 점점 술에 의존했고,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공황장애를 털어내는 데 1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푸른곰팡이 식구들과 음악이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줬다. “요즘 우리 사회에 정신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분들 정말 많지 않은가. 이런 분들에게도 내 노래가 힘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중과 스킨십도 늘릴 계획이다. 새달 1일 홍대 KT&G상상마당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그는 “데뷔를 20년 전에 했는데 솔로 무대는 처음이다. 엄청 떨린다.”고 말했다. 홀로 무대에 서는 경험을 쌓고서는 TV 출연도 해 볼 생각이다.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이소라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온다면 나갈 거냐고(이소라는 95년 ‘낯선사람들’을 탈퇴해 솔로로 나섰다). 그는 “내가 오래 아프다 보니 연락이 끊어졌을 뿐이지 사람들이 말하듯 사이가 틀어진 건 아니다.”며 웃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안도현 시인 “현 정부 향한 깊은 절망감 2년간 시 한 편 쓰지 못해…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소”

    안도현 시인 “현 정부 향한 깊은 절망감 2년간 시 한 편 쓰지 못해…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소”

    시인 안도현은 몰라도 흔히 ‘연탄재’라 부르는 안도현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구를 들어본 사람들은 많다.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삶의 총체성을 돌아다보게 하는 시인 안도현이 4년 만에 시 63편을 묶어 10번째 시집 ‘북항’(문학동네 펴냄)을 내놓았다. 그에게 이번 시집은 각별하다. 전북 완주의 우석대 교수로 있는 안도현 시인은 유선 전화통화에서 “보통 2~3년에 한 번씩 시집을 묶어 냈는데 이번이 간격이 가장 길었다.”고 말했다. 무엇이 시인의 혀를 자르고 입을 봉한 것일까? 그는 “MB(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용산 참사를 해결하라’든지 ‘4대 강을 반대한다’고 동어 반복하듯이 시를 쓸 수는 없었다.”면서 “거꾸로 가는 시간에 대해 고민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0~2011년에는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는데 현 정부에 대한 절망이 확고하게 깊어졌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시에는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안도현은 “예전에는 시를 못 쓰면 조바심이 생겼는데 지난 4년 동안은 시를 쓰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는 그냥 거기 있어라’ 하는 심정으로 놓아두고 너무 매달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폴리페서’나 ‘정치 시인’이라는 시각을 우려하면서도 우리 시가 현실 문제에, 현실 정치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높은 목소리이거나 구호이고 싶지는 않았고 시의 본령인 서정과 현실의 문제를 결합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정이라는 것을 갱신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시집 날개에 쓴 그의 말을 빌리자면 “개판 같은 세상을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는 미적 형식을 얻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과 문체를 갱신해 또 다른 시적인 것을 찾고자” 했다. 안도현은 옛 학자와 문인들이 남겨놓은 고전 번역본을 닥치는 대로 읽고 그 고전 번역본 문체를 사용해 시의 어조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게 고전 번역체는 어색한 것처럼 보이지만 장엄하고, 서투른 것처럼 보이지만 정곡을 찌르고, 낡은 것처럼 여겨지지만 때로 낯설 정도로 새롭다고 했다. 북학파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를 읽다가 썼다는 시 ‘표절’을 읽다 보면 그래서 벙싯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표제시 ‘북항’(北港)은 읽는 맛이 묘하다. ‘부캉’ 하고 발음하다 보면 북한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안도현은 “북항은 인천이나 목포의 실제 항구 이름이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일단 한자 북(北)은 북쪽을 말하기도 하지만 ‘달아난다, 패한다, 배신한다’ 등의 뜻도 있다. 북항에는 북(北)의 이런 어지러운 마음이 다 들어 있다.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아 복이 많다고 자부하는 안도현은 이번 시집을 통해 “그동안 드리웠던 ‘대중적 시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강력했다.”고 말했다. 연예인과 달리 대중이 이름을 기억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적잖은 스트레스다.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시인이 곧 ‘달콤하게 독자들의 입맛에 맞추는 대중 시인’은 아니라고 완곡하게 설명했다. 도종환, 정호승, 김용택 시인 등과 친하지만 이들과 같은 한묶음으로 취급받는 것이 싫단다. 도종환 시인을 19대 국회의원으로 내몬 사람은 안도현이다.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을 하면서 도종환을 추천하고 “시는 언제 쓰느냐.”고 반발하는 도종환을 설득했다. “시 쓸 사람은 많다. 내가 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올해 안도현의 시가 한여름 들판의 초록처럼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전북지사님, 또 논두렁 축구하라고요?

    4년 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와 종교집회가 열렸다. 행사 뒤 푸르렀던 잔디는 흙바닥으로 흉물스럽게 변했고, 이듬해 겨우 살아난 줄 알았던 잔디는 그 다음 해 전부 말라 죽었다. 아예 ‘논두렁’으로 변해 K리그 경기는 물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치르면서도 적지 않은 불편을 겪었다. 세밀한 패스플레이가 불가능했고 볼 컨트롤과 트래핑도 쉽지 않았다. 선수단은 혹시 부상을 당할까 봐 경기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런데 그 교훈을 깨우치지 못했는지 다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 달 8일 같은 경기장에서 ‘K팝스타와 함께하는 전북 방문의 해 기념공연’이 열린다. KBS가 공연 실황을 생중계해 세계 73개국으로 송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람 인원은 대략 3만명. 문제는 잔디. 대형 무대가 같은 달 2일을 전후해 설치될 예정인데 완전 철거되는 12일까지 열흘 남짓 잔디는 무대 밑에 짓눌려 있어야 한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하고 초여름 ‘고온다습’에 취약한 잔디가 배겨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주최측은 잔디보호대를 설치하고 특수포를 깐다고 하지만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라운드에 의자까지 놓을 예정이라 오가는 발길에 밟히고 음료나 간식 탓에 잔디가 타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 번 죽은 잔디를 살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똑똑히 배운 전북 구단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용 대형 송풍기를 설치했다. 잔디 관리를 위한 비상책이었다. 그런데 전라북도와 전주시가 대체 공연장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면서 이런 살뜰한 관리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 한때 이웃 대학교로 옮겨 개최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백지화됐다. 전북도나 전주시나 3만명을 수용할 공연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해를 구하고 있다. ‘디펜딩챔피언’ 전북은 지난 26일 수원과의 K리그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지만 능력 밖(?)의 일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전북 관계자는 “잔디를 재생, 보수하려면 FA컵 경기가 있는 20일까지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고 말했다. 16강 대진 추첨에서 홈 경기로 정해질 경우 개최권을 내놓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 구단 관계자들은 월드컵까지 치른 나라에서 창피하고 한심한 일이라고 혀를 차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신체 일부로 만든 ‘엽기 요리’로 파티 연 日남성

    일본의 한 남성이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이용해 만든 요리를 파티 손님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마오 스기야마(22)라는 남성은 스스로를 성별이 없는 ‘무성인’(無性人)이라고 주장하며, 최근 병원에서 성기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 그는 수술로 제거된 성기 일부분을 냉동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도쿄에서 직접 주최한 파티에 이를 이용한 요리를 내놓아 주위를 경악케 했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재료’에 버섯과 파슬리 등을 곁들여 정체불명의 요리를 만들고 이를 1인당 약 2만엔(한화 약 30만원)상당의 돈을 받고 팔았다. 당시 이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은 그의 엽기적인 요리가 나오기 전 평범한 파티와 다름없이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다, 스기야마의 설명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파티가 있기 전 자신의 트위터에 “나의 신체 일부로 만든 음식을 10만 엔(약 150만 원)에 판매하려 한다. 참고로 나는 일본인”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의 엽기 요리를 맛보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네티즌들은 “이런 요리를 만들어 파티를 열려고 한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65년만의 귀향] 끝없는 DNA 검사… 유가족 샘플과 일치 확인

    62년 만에 귀향한 이번 6·25 전사자 유해 중 이갑수·김용수 일병의 신원이 밝혀진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이는 전사자 유해 발굴에 관한 최고의 노하우를 지닌 미국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와 우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모두 주연이 된 합작품이다. 미국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 장진호 지역 등에서 유해 발굴 사업을 벌이면서 233구를 발견했고, 이를 하와이의 JPAC 본부에서 수년간의 DNA 검사를 통해 신원 확인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JPAC 측은 2004년 장진호 전투 현장에서 확보한 아시아계 유해들을 따로 분류했으며 이 중 유해 12구가 한국군의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李일병 인식표로 한국군 카투사 밝혀 이 같은 단서가 된 것은 유해에 붙어 있던 이갑수 일병의 인식표. 군인이 전장에서 지녀야 할 필수 품목으로 전사할 경우 신원을 증명할 인식표에 새긴 이름이 미군 장병의 것이라기보다 한국군 카투사일 가능성을 인지한 JPAC는 이 사실을 지난해 8월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 군 관계자는 25일 “12구의 유해들은 발굴 당시 많은 미군 유해들과 뒤섞였으며 유해 개체 분류 과정에서 미군 유해의 일부로 오인돼 미국으로 반출됐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당시 미국의 통보를 받고 이갑수 일병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열흘간 유족을 수소문한 끝에 아들과 딸이 부산 지역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이후 이들의 DNA를 채취해 아들인 이영찬씨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金일병과 1만9000개 DNA 샘플 일일이 대조 김용수 일병의 유해 확인은 좀 더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이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사전에 1만 9000여개에 이르는 유가족 DNA를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 관계자는 김 일병의 친형인 김용환(2011년 작고)씨가 사전에 DNA 샘플을 제공한 덕분에 확인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이후 국방부와 JPAC가 공동 감식을 통해 1만 9000여개의 샘플을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친형·장조카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내린 것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기획]최고경영자=⑨진로(眞露)그룹 장학엽(張學燁)씨

    [기획]최고경영자=⑨진로(眞露)그룹 장학엽(張學燁)씨

     맨손으로 월남한 지 23년.「진로(眞露)」는 23년만에 연간 1백억원어치가 팔리는 대기업으로 자라났다.「진로(眞露)그룹」의 경영주 장학엽(張學燁·71)씨는 이제 학교를 세워 내일의 인재를 키우는 것만이 남은 소망이라고 말한다. 20살 교사생활 인상 깊어…20년 전부터 장학회 운영  72년 매상액이 소주「진로(眞露)」만 1백억원. 73년 목표가 무려 1백50억원이다. 앞으로 줄곧 매해 50%씩의 성장을 가늠한다는 초「스피드」성장 계획. 그래서 74년 목표를 자그마치 2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계획대로 무난히 이루어질 줄로 알고 있읍(습)니다. 68년부터 기획·관리제도를 도입해서 철저히 실행해 왔는데 아직 목표 달성을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읍(습)니다 』  말이 1백억원이지 1백억원어치의 소주라면 보통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다.1백억원어치의「진로(眞露)」는 40개들이 상자로 5백30만상자. 병수로 따지자면 2억1천2백만병이 된다. 어쨌든 71년에 계산해 본 바론 그 해에 팔린 소줏병을 늘어 놓으면 경부고속도로를 21차례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이밖에 포도주 판매액이 72년에 10억원. 인삼주는 7년에 50만$(달러)어치를 수출할 예정.그러나「진로(眞露)」의 경우「예정」이란 단어는 곧「꼭 그렇게 되는 것」으로 믿어도 좋다. 아직까지 목표 달성에 미달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니까.  현재「진로(眞露)그룹」에는 크게 잡아 5개 자회사가 있다. 으뜸은 역시「진로주조」.그 다음「서광(西光)산업」이 연간 4백만$(달러)어치의 봉제 가공품을 수출하고 있고「효성병유리」는「진로」에서 쓰이는 각종 병을 자가 생산. 「도원관광」이 7월 준공 예정으로 부산 용두산에 부산「타워」를 건설 중이다. 72년에 인가를 얻은「우천(友泉)학원」은 74년 3월에 문을 열어 중·고교 입학생을 받을 예정.  『본래 꿈이 젊은이들을 가르쳐 보는 것이었어요. 20년 전부터 장학회를 운영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꿈은 교육자였지요. 아직도 내 추억 중엔 나이 스무살 때 황해도에서의 국민(초등)학교 선생 시절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읍(습)니다』  오늘의「진로」가 있기까지에는 크게 잡아 3차례의 어려운 고비가 있었다. 그 첫번째가 6·25로 인한 월남. 맨손으로 피난지 부산에 떨어져 오직 성실과 근면으로 뛰었다. 54년에 현재「진로」가 자리잡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으로 이사. 지금은 3천명 종업원이지만 그때 종업원은 고작 1백명. 지금은 소주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60~70%를 오르내리는 입장이지만 그때는 사정이 달랐다. 더구나 자기 지본은 적고 남에게 빈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이자 부담이 커 더욱 고생이 많았다. 어려운 고비 3차례 겪고…거센 반발 속에 기반 굳혀  이 고비를 넘기는데 소비한 햇수가 4년. 4년만에 웬만한 빚은 다 갚고 새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 고비는 10년 후인 65년에 닥쳤다. 당시 정부 양곡관리법에 따라 순곡소주를 없애고 고구마에서 주정을 뽑아내는 새 소주를 만들어 팔아야 했다. 이와 함께 타 업체와의 경쟁이 극심해져 광고선전비·접대비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외상 판매의 비중이 격증, 67년에는 회사의 존폐가 우려될 정도로 극심했다.  『이때부터 외상을 없애고 현금거래제도로 뜯어 고쳤습니다. 반발이 컸지만 그대로 밀고 나갔어요. 덕분에 오늘의「진로」로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었지요』  68년부터「진로」는 종래의 경영 방식에서 탈피, 생산 판매를 모두 치밀한 계획하에 집행하는 기획·관리실 위주의 경영으로 탈바꿈 했다.이에 따라 다달이 경영분석·결산을 하여 경영 합리화에 박차를 가했다. 덕분에 68년 이후 5년 동안에 거든 성장율(률)이 5백%, 해마다 두곱으로 회사가 커온 셈이다. 65년에 비하자면 10배의 성장율(률)을 기록하였을 정도.  『72년 이익율(률)이 11%입니다. 만족할만한 성과였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이제「진로」의 과제라면 세계 무대로의 진출이 남아 있지요. 국제 경쟁력 강화로「세계의 진로」가 되는 것이 당면 과제이지요』  만족할 만한 “이익율(률) 11%”…지금은 한창 새로운 술 연구  현재「진로」는 새 품종 개발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 중. 생활 수준이 점점 높아져만 가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을 새로운 술을 멀지 않은 장래에 선보일 예정이다.  『장(張) 사장의 성격은 한마디로 과묵 실천형이죠. 또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하셔요. 예전에는「와이샤쓰」한벌에「칼라」만 떼었다 붙였다 하며 헐도록 두고 두고 입으실 정도였어요. 이건 자랑이 아니라 창피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저희 회사 건물부터가 아주 낡고 사무실이 비좁은 것도 이 때문이지요』  부사장이자 장(張) 사장의 동생이기도 한 장학형(張學炯)씨의 말. 아닌 게 아니라「진로」의 신길동 사무실은 여간 흐름하지가 않다. 신길동 공장을 신축하던 54년 당시 종업원 1백명으로 출발할 때의 건물을 모체로 종업원 3천명을 헤아리게 된 오늘까지 그 공장에 덧붙여 하나씩 늘려 왔기에 때문에 이런 현상은 거의 불가피했다고.  그러나 이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올해안에 신길동 공장을 재배치, 사무실용 6층「빌딩」을 새로 짓고 공장 건물도 대량 생산 체제로 크게 바꿀 예정이다.  『아시다시피「진로」의「마스코트」는 두꺼비입니다. 51년 부산에서 다시 출발할 때부터 두꺼비로 했는데 아마 두꺼비가 우리「진로」를 여러모로 돌보아 준 모양입니다. 두꺼비 덕을 단단히 보았다고 할까요?』  「진로」는 아직 비공개법인. 현재 주주의 입장에서 주식 공개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 총자산 36억원에 비해 이익율(률)이 높기 때문에 주식 공개시 성공은 자신있다고.  3남 2녀를 둔 진로(眞露)「그룹」의「리더」장학엽(張學燁) 사장은 무취미가 취미.「골프」와 거리가 멀고 오직 바둑을 조금 두는 정도. 앞으로는 74년에 문을 열「우천(友泉)학원」을 돌보는 일이나 재미를 붙여 보겠다고 했다.  <수(秀)>  ◇ 장학엽(張學燁)씨의 약력◇  1923.3 진남포 공립상공학교 상과 졸업   3 황해도 곡산공립보통학교 교원  1927.4 평남 용강군에서 진천(眞泉)양조장 경영(상품명 진로(眞露))  1950.11 월남  1951.3 부산에서 구포(龜浦)양조 합자회사 경영  1954.1 서광주조(西光酒造) 사장  1959 「진로(眞露) 장학회」  1966 「진로주조(眞露酒造)」  1970 「대한교련」에서 교육 독자ㅣㄱ상 수상  1971 은탑산업훈장 수상 [선데이서울 73년 3월 11일 제6권 10호 통권 제23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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