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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총리 6명의 통일旅程 오롯이

    남북 정상이 분단 후 처음으로 지난주 만났다.의미있는 성과도 도출됐다.통일이 성큼 다가온 듯한 성급한 기대마저 갖게 한다.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독일은 첫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진지 20년만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기까지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독일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귀도 크놉이 쓴 ‘통일을 이룬 독일 총리들’(한울)은 분단 극복을 향한 독일 총리 6명의 고뇌와 암투,활약상 등 정치역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감한 동방정책을 구사한 빌리 브란트 총리가 지난 70년 동독을 방문했을당시 동독 주민들은 그를 뜨겁게 환영,공산 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반면 동독의 빌리 슈토프 총리가 서독을 답방했을 때는 역에서부터 시민들의 야유를들어야 했다.헬무트 콜 총리는 동서 긴장완화와 사회주의 붕괴 등 역사적인기회를 포착,기나긴 통일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안병억 YTN 기자 옮김.값1만4,000원. 김주혁기자 jhkm@
  • 東·西獨 하나되기까지

    독일은 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승국들의 분할통치를 거쳐 49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됐다.첨예한 동서 냉전의 상징으로 있던 동서독은 90년10월3일 분단 41년만에 재통일을 이룩해냈다.80년대 후반 소련과 동유럽을 휩쓴개혁·개방의 물결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분단 이후 끊임없이이어진 교류 시도야말로 통일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분단 고착 초기 동서독은 적대관계로 맞서며 분단을 고착시켰다.54년 서독은 나토에 가입했고 55년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55년 서독은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단절하는‘할슈타인 원칙’을 선포했고 61년 베를린장벽이 구축되면서 분단과 대결은절정에 달했다. ◆화해 국면으로 전환 빌리 브란트가 서독 총리에 오르면서 동서독간 대결은화해국면으로 바뀐다. 브란트 총리는 69년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독일에2개의 국가가 존재하나 이는 서로 외국이 아니라는 ‘1민족 2국가’론을 주창,동독과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한편 동독에 정부 차원의 협상을 제의했다. 이같은 브란트의 노력에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가 화답해 70년3월과 5월 두차례 정상회담을 열어 실무차원의 접촉을 계속하기로 했다. ◆통일의 바탕 마련 동서독간에 꾸준히 계속된 실무접촉은 조금씩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72년5월 민간인들의 상호왕래를 가능케 한 교통조약이 체결된데이어 12월에는 동서독기본조약이 체결돼 대화와 교류의 본격적인 물꼬를 트는 등 통일의 바탕이 마련됐다.73년9월 유엔에 동시가입한 동서독은 이듬해상주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서독은 튼튼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을 계속하는한편 여행 자유화와 상호방문 기회를 확대하는 등 인적-물적 교류의 확대를일관되게 추진했다.동서독 국민들이 동질의식을 유지하면서도 동독 사회를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싹트는 통일에의 열망 서방 TV 등을 통해 서독의 부유한 삶을 접한 동독인들은 점차 경제격차를 가져온 동독의 체제에 저항심을 갖게 됐다.이같은 저항은 85년3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의 흐름이 동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절정에 달한다. 89년8월 동독체제에 불만을 품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대탈주하기 시작됐고동독 곳곳에서 반정부집회가 줄을 이었다. 반정부집회는 자연스레 민주화와통일을 요구하는 시위로 변했으며 마침내 호네커의 사임(10월)에 이어 89년11월9일 베를린장벽의 개방으로까지 이어져 동독의 국가 해체와 독일 통일을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통일의 완성 90년5월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동서독이 참가한 ‘2+4’회담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독 재무장관간에 통화-경제-사회 통합조약이 체결되고 7월1일 발효됐다.8월31일 동서독 통일조약이 조인되고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4차 ‘2+4’ 회담에서 동서독 통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이조인돼 동서독 의회의 비준을 거쳐 10월3일 통일독일이 재탄생했다. ◆동서독 통일일지◆◆45년7월17일∼8월2일 포츠담회담,독일 분할통치 결정◆49년5월23일 서독 정부수립◆49년10월7일 동독 정부수립◆61년8월13일 베를린장벽 구축◆70년3월19일 동독 에어푸르트에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동독 총리간에 첫 동서독 정상회담 개최◆73년9월18일 동서독,유엔 동시가입◆81년12월11일 슈미트 서독 총리,동독 방문.호네커 동독 총리와 정상회담◆89년8월19일 동독인들,서독으로의 대탈주 시작◆89년11월9일 베를린장벽 붕괴◆89년12월19일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한스 모드로프 동독 총리,동독 드레스덴에서 정상회담◆90년7월1일 동서독 통화-경제-사회통합조약 발효◆90년8월31일 동서독 통일조약에 조인◆90년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제4차 ‘2+4’ 회담,동서독 통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 조인◆90년9월20일 동독 의회와 서독 하원,통일조약 비준유세진기자 yujin@
  • 비자금스캔들 콜 獨 前총리 착잡한 70회 생일

    [베를린 연합] 독일 정치의 거목인 헬무트 콜 전 총리가 3일 70회 생일을맞이했다. 총리직 16년,기민당 당수직 25년을 역임한 콜 전총리는 명실상부한 전후 독일정치사의 산 증인으로서 동서독 통일을 이룩하고 유럽통합의 기반을 완성하는 등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토록 화려한 업적을 자랑하는 콜 전 총리는 그러나 고희를 맞아 드러내놓고 생일을 축하하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기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이 그의발목을 잡고 있으며 오히려 파문이 확산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콜 전총리의 고향 지역구인 루트비히스하펜 기민당 지부 주관으로 1,000여명의 하객을 초청해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던 콜 전총리의 70회 생일 축하파티는 가족들만 모이는 사적인 행사로 축소됐다. 지난해 11월 기민당의 군수 뇌물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이해 독일 통일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콜 전총리는 이제 뇌물수수와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로 떨어졌으며 구세대 비리 정치인의 전형으로 비난받고 있다. 최근에는 옛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가 콜 전총리의 비리 관련자료를 수집해 온 사실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옴으로써 더욱 곤경에 처하고 있다. 유능한 변호사들을 동원해 검찰 수사에 대응하고 있는 콜 전총리는 기민당의 불법자금 모금으로 인한 벌금액을 공개적인 모금과 사재를 동원해 충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도 자신감을잃지 않은 듯이 보였으나 슈타시의 비밀 정보가 공개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獨기민당 총재후보 메르켈 지명

    독일의 보수 야당 기독민주당(CDU)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재가 탄생할것으로 보인다.주인공은 사무총장이자 부패스캔들로 사임한 볼프강 쇼이블레총재의 직무대행을 맡아온 안겔라 메르켈(45). 당 집행위는 20일 오는 4월10·11일 전당대회에 제시할 총재 후보로 메르켈을 확정, 공표할 예정이다. 가톨릭에 이념적 기반을 두고 2차대전 직후 세워진 이후 정통 보수 성향을견지해온 기민당이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여성,특히나 동독 출신의 신교도를 총재로 내세운 점은 유럽 정치권의 ‘작은 혁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메르켈의 총재 후보 지명은 98년 게르하르크 슈뢰더의 사민당에 여당의자리를 내준 충격에 이어 최근 불거진 전 CDU총재 헬무트 콜 등 수뇌부의 잇단 부패 스캔들로 최대의 궁지에 내몰린 기민당에 회생의 불씨를 안겨줄 희망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베를린 물리화학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던메르켈은 90년 뒤늦게 입당했다.콜 집권시 환경장관 등 두차례 장관직을 역임했다.콜 총리로 부터 부드러운 말투와 제스처로 ‘소녀’란 별명을 얻었다. 메르켈이 정치판에서 인기를 얻게 된것은 최근 수주 사이.부패 스캔들 수습지휘를 맡으면서 자신의 후원자격인 콜 전 총리측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당을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낸 것이다.‘당의 지도력을 민초들에게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으로 지방 기민당의원 등 저변의 지지를 받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콜 前총리 “2002년 의원직 사퇴”

    [베를린 AFP 연합] 비자금 스캔들로 곤경에 빠져있는 헬무트 콜 독일 전(前)총리는 14일자 디벨트지와의 인터뷰에서 2년 후에 의원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69세인 콜 전총리는 과거 기독교 민주당(CDU) 당수로서 비자금을 관리해온 사실을 인정한 지난 11월 이후부터 의원직을 즉시 사퇴하라는 압력을당내외에서 받아왔다.콜 전총리는 이 회견에서 “의원직 임무를 앞으로 2년간 수행하고 나서 연방의회를 떠날 것”이라고 강조했다.연방 의회 선거는 2002년 후반기에 있다.
  • 개혁론 맞서 IMF위상 재정립 시급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신경전이 일단락됐다.유럽측 후보에 까다롭게 굴었던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13일 EU가 지명한 호르스트 쾰러(Horst Koehler·57)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총재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미국의 지지를 얻게됨에 따라 쾰러총재가새 IMF총재로 선출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IMF의 기능 축소 등 IMF의역할 및 위상에 대한 재편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국제적인 금융기구로서얼마만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신임 총재의 지도력과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쾰러 총재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밑에서 성장한 직업 공무원으로 국제금융 및 협상 경험이 많다.현재의 폴란드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69년 독일 남서부 튀빙겐에 있는 응용경제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의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고 경제·통화 분야 노조측과의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對)유럽공동체(EC) 협상과 옛 동독 기업들의 민영화 문제 등에 관여했다.옛 소련 동맹국들이 독일 마르크화를 공식 통화로 채택한 90년 7월1일부터동서독의 통화통합을 성사시키는데 기여했다.독일연방저축은행 총재로 지명돼 92년 재무부를 떠날 때까지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 등 각종 국제회의 실무팀장을 맡았다. 신임 총재는 미국 등을 필두로 국제적으로 거세게 일고 있는 IMF의 개혁론에 맞서 IMF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로런스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 등은 IMF가 최근 아시아와 남미의 금융위기를지원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해당 국가의 경제정책에 간여했다고 비난했다.앞으로의 역할도 중장기 차관보다는 회원국의 일시적인 금융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단기차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일부에서는 IMF의 또 다른 주요 역할인 빈곤국에 대한 개발계획 지원 등은 세계은행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 [포커스 투데이] 콜 잔영 제거·기민당 재건 ‘새희망’

    독일의 보수 야당인 기민당(CDU)-기사당(CSU)연합의 신임 원내의장(원내총무)에 프리드리히 메르츠(44) 기민당 의원이 선출됐다. 메르츠는 29일 열린 CDU-CSU원내교섭단체 회의에서 원내총무 후보에 단독출마해 유효표 226표중 217표를 얻어 비자금 스캔들로 사임한 볼프강 쇼이블레(57)의 뒤를 이어 원내총무에 선출돼 당 재건을 위한 기대를 받고 있음을확인시켰다. 쇼이블레는 지난달 16일 헬무트 콜 전 총리가 CDU 당수로 있을 당시 일어난비자금 스캔들로 원내총무 및 CDU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의원 경력 6년이 채 안된 메르츠가 원내총무로 선출됨으로써 CDU-CSU연합은비자금 파문으로 얼룩된 당의 대외적 이미지를 쇄신하는 한편 당지도부의세대교체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법률가 출신인 메르츠는 89년 독일내에서는 최연소자로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데 이어 94년 독일 연방하원인 분데스탁에 진출했으며 98년 재선됐다. 그는 능변과 공격적인 연설로 당 지도부의 이목을 끌어 98년 원내 부의장에선출됐으며 당내 재정통으로 하원 재무위원회와 유럽문제위원회에 소속돼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메르츠는 정계 입문 당시부터 콜 전총리의 권위적인 당 운영에 반기를 들어당내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데다 최근 비자금 파문을 수습하면서 콜이 “50년 당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고 직접 공격하기도 한만큼 콜의 잔영 제거와 당의 이미지 쇄신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박희준기자
  • 墺 극우연정 출범 각국 반응

    [예루살렘·베를린·워싱턴 외신종합] 오스트리아에서 나치즘의 부활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극우 자유당과 보수 인민당의 연립정부 구성이 발표되자EU(유럽연합)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토마스 클레스틸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연립정부 구성에 대한 승인여부를 3일 발표할 예정이나 반대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2일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 소환 결정을 발표하며 “21세기가 시작된 이 시점에서 오스트리아의 조치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나탄 메롬 대사에게 오늘 당장 돌아올 것을 명령했다”고 말했다.대사소환 조치는 외교상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중 하나로 이스라엘이 나치를 연상시키는 자유당의 연정 참여에 대해 얼마나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2일 자유당이 연정에 합의하기로 최종 결정되면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우리가 희망하는 새로운 유럽 이미지와 배치되는 자유당의 나치 두둔 발언에 대해 분명한 우려를 표명해 왔다”면서 “자유당이 결국 연정에 참여하면 향후 양국 관계가 어려워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선 앨 고어 부통령도 이날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어 부통령은 “나치를 동정하고,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피해를 축소하려는 듯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인물이 연정에 참여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2일 자유당이 유럽 전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있다고 경고했다. 피셔 장관은 기자들에게 “자유당이 유럽 전체에 끼칠 수있는 위험 가능성이 현재 과소평가돼 있다”면서 “외르크 하이더의 자유당이 오스트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새로운 극우 민족주의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 의원들도 2일 오스트리아에 자유당의 연정 참여를 재고해 달라고요구하는 등 자유당 반대 캠페인에 동참했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자유당을‘내부의 암적 요소’라고 규정하면서 자유당의 연정참여는 유럽의 민주적가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비난했다. ●폴란드 남부 크라코프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영사관이 2일 새벽 누군가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았다.영사관 관리들은 “비록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영사관 공격행위가 있었다”면서“이번 사건이 자유당의 연정 참여에 따른 국내 정치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연정 참여 합의가 런던 외환시장에서 악재로 작용,유로의 하락행진을 부추겼다. 유로는 런던 외환시장에서 연정 합의 발표 당일인 1일 유로는 유로당 0.9724달러로 폭락했다가 2일에는 다소 회복된 0.9770달러에 거래됐다. *루시디 뉴욕타임스 기고 “墺극우정당 부상은 '체제부패' 탓” [뉴욕 연합] ‘악마의 시’로 이란 정부로부터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영국출신 작가 샐먼 루시디가 현재 전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오스트리아의극우정당 부상의 원인을 ‘체제 부패’라는 시각에서 분석한 기고문을 미국 뉴욕타임스에 2일 기고했다.다음은 루시디의 기고문을 발췌한 것.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정국의 틀을 유지해온 연립정권,이른바 ‘대연정(大聯政)’체제는 유권자들을 환상에서 깨워 하이더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고 해도과언이 아니다.유럽 신문들은 요즘 거액 정치자금 문제로 한창 시끄럽다. 불법자금 문제는 하이더와 같은 선동정치가에게는 기막힌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부패로 선고를 받았던 베티노 크락시 이탈리아 전 총리의 ‘상속인’들이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면서 크락시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부정자금이 서로 관계없는 일이라고주장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너무나 손쉽게 목적을 수단시하는 건방진 지도자들간의 ‘대연정’ 사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이더같은 극우정치인들에게 공격거리를 많이 만들어주게 된다. 정치이론가 칼 마르쿠스 가우스에 따르면 하이더는 유럽인 특유의 ‘트릭’을 잘 사용해왔다.그는 프랑스 출신 장 마리 르펜이나 이탈리아 출신의 움베르토 보시처럼 부유하고 성공적인 부르조아 계층의 지지를 받아왔다. 콜 전 총리를 반대하는 독일 시위대들의 플래카드는 “시스템이 부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들의 지적은 옳다.부패와의 전쟁과 하이더에 대한 투쟁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EU(유럽연합)는 하이더와 그가 이끄는 자유당과의 투쟁을 위한 단결 강화라는 측면에서 내부의 부패자금 기부자들을 소탕하는데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한다. 히틀러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는 해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다시 준동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역사가 최근 유럽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는 극우(極右) 분위기를 네오 나치즘 복귀현상으로 기록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면 EU는 하루빨리 내부부터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 獨 비자금 여파 기민당 보선 패배

    [슐라이츠 베를린 AFP DPA 연합] 독일 기민당이 30일 실시된 튀링겐 주의회의 잘레-오를라 선거구 보궐선거에서 비자금 스캔들의 여파로 패배함으로써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기민당의 토마스 포이그만 후보는 2주전 실시된 1차투표에서는 사민당의 프랑크 로스너 후보보다 8%포인트 앞섰으나 비자금 파문이 확산되면서 이날 실시된 2차투표에서 42.6%를 얻는데 그쳐 57.4%를 획득한 로스너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번 보선은 지난해 11월 비자금 스캔들이 터진 이후 옛 동독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실시된 선거이며,기민당은 통독 이후 이 지역의 의석을 유지해왔다. 이 지역에서는 그동안 통일후 동부지역의 기민당 조직이 헬무트 콜 전총리등이 조성한 비자금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확산됐다. 한편 기민당 명예총재직을 사임한 콜 전총리는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지난92년 로이나 정유회사 매입과 관련해 프랑스 석유회사 엘프 아키텐으로부터어떠한 자금도 수수한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 [21세기는 깨끗한 정치 시대] 지구촌 부패정치인 ‘바꿔’열풍

    지구촌이 ‘정치 부패’와의 싸움으로 뜨겁다.정치 부패에 대한 척결은 새천년을 맞아 지구상의 새로운 명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썩은 정치인들의 자기합리화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고 발붙일 틈을 주지 않겠다는 국민적 자각이 지구촌 곳곳에서 커가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각국의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잘못,특히 정치분야의 부정부패에는 눈감아줄 수 없다는 국민의식을 키우고 있다.‘피플 파워’로 정치인 교체까지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 좋은 예를 독일과 이슬라엘은 말해준다. 냉전의 결과 45년이 넘게 분단됐던 독일을 다시 하나로 만들며 통독의 영웅으로 부상했던 헬무트 콜 독일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모집으로 부패 정치인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아랍인들과의 오랜 영토 분쟁 및 척박한 자연환경과의 힘겨운 싸움속에서 오늘날의 풍요로운 국가를 가꿔온 이스라엘의 정치지도자들도 불법자금 수수에 관련된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공직자들의 비리 개입 및 권력 남용도 국민의눈을 벗어난 ‘사각지대’가 될 수 없다.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포함된 사상 최대의 밀수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21세기 ‘거룡(巨龍)’ 중국이 공직자들의 직위남용을 근절하겠다고 나선것도 국민을 의식한 조치임이 틀림없다. 독일·이스라엘의 정치부패 스캔들과 중국의 대규모 밀수사건은 ‘피플 파워’가 정치 및 공직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주체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중국 중국의 부패스캔들은 초대형 권력형 비리의 전형이다.엄청난 규모에다 권력 핵심부까지 연루됐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중국 건국 이래 최대규모인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시 밀수사건이 대표적 사례.샤먼사건은 정치적 비리를 단속하는 중앙기율검사위가 지난해말 도산한 샤먼의 위안화(遠華)그룹이 100억달러(약 11조2,500억원)의자동차·전자제품과 총기류·석유 등을 밀수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시작하면서 비롯됐다.대상자만도 장쭝쉬(張宗緖)부시장,양첸셴(楊前線)세관장 등 무려 200여명에 이르렀다. 당초 초대형 밀수·독직사건으로 치부돼오던 이 사건은 기율위 관리들이 자신들의 전화를 샤먼 국가안정국이 도청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권력층이 개입한 부패스캔들로 비화됐다.조사결과 사건의 배후에 권력핵심인 정치국위원의 부인과 전(前) 군 지도부 아들이 관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권력형 비리로 바뀌었다. 현재 베이징시 당서기이며 정치국 위원인 자칭린(賈慶林)의 부인 린요우팡(林幼芳)과 류화칭(劉華淸) 전 군사위 부주석의 아들중 1명이 조사를 받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지난 60년대 제1기계공업부 근무중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친분을 쌓아 베이징으로 발탁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자 베이징시 당서기가 사건에 연루됐음이 드러나면 장 주석으로서는 큰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앞서 류 전 군사위 부주석의 며느리와 사돈 등이 부패스캔들에 연루돼 피소됐다.류 전 부주석의 둘째 며느리 정샤오리(鄭曉麗)가 여동생 샤오옌(曉燕) 부부와 함께 투자사로부터 약 1,500만홍콩달러(약 22억5,000만원)를빌려 홍콩 증시에 투자했다가 날리는 바람에 피소됐다고 홍콩의 명보(明報)가 보도했다. 중국이 부패근절에 나서는 이유는 만연해 있는 국가 부패구조를 타파하지않고서는 21세기 강대국 도약을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감 때문.지난해 공안부 산하 밀수범죄 조사국을 신설,주룽지(朱鎔基) 총리의 지휘로 총력전을 벌여 이번 사건의 꼬리가 잡혔다. 김규환기자 khkim@ *독일 독일 정가를 쑥대밭으로 만든 헬무트 콜 전총리의 비자금스캔들은 한 정당의 문제를 넘어 정경유착과 불법자금이 유럽정치의 관행이었음을 폭로한 셈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사건은 통독영웅 콜 전총리에 정치적 사망선고를안겼고,윤리주의 이념을 표방해온 기민당측에 재기 불능의 치명상을 입혔다. 사건은 지난해 11월30일 당시 콜 기민당 명예총리가 티센 군수업자로부터정치자금을 수수했음을 인정,소문으로만 떠돌던 비자금의 실체를 확인하며비롯됐다.당시 콜총리가 200만 마르크라고 밝힌 비자금 규모는 이후 당내부의 고발,양심선언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0만마르크에 이른다는 기민당 관계자 주장까지 나왔다.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는데도 콜 전총리가 비자금 출처에 대해 굳게 입을다물자 지난 18일 기민당은 긴급 지도부 회의에서 콜에게 탈당을 권유했고결국 콜은 명예총재직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19일 92년 동독 로이나 정유회사가 프랑스 엘프아키텐사에 매각되면서 8,500만 마르크에 달하는 리베이트가 사실상콜 전 총리와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 사이에서 오갔다는 충격적 보도가 나오자 전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국제커넥션 의혹은 독일 검찰이 공소시효 만료를 선언해 덮어지게 됐지만 정치적 이해에 따라 유럽 정권간 음성적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을 남겼다. 비자금 스캔들의 파급력은 지난 두달간 독일 의사당을 정정(政情) 중단의위기로 몰아넣었다.의회,언론을 불문한 폭로전의 와중에 집권 사민-녹색당연합의 비리를 까발리는 기민당 반격도 잇달았다.한 은행으로부터 상습 비행기 이용의 편의를 불법 제공받은 혐의로 집권 사민당측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재무장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 정치권 전체가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이 확인되면서 후유증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정가 일각에서는 구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로 여야를 막론,엄청난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하지만 이번 스캔들의 가장 큰 피해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독일 국민들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이스라엘 에제르 바이츠만 대통령은 수뢰,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선거법 위반,베냐민네타냐후 전 총리는 공금 유용….속속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거물급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혐의에 이스라엘 국민들이 분노가 폭발 일보 직전이다.끝없는부패 스캔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이미 바이츠만 대통령에게 강력한 퇴진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바라크 총리도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스라엘 감사원은 27일 지난해 5월 총선에서 바라크를 후보로 내세운 ‘하나의 이스라엘 동맹’이 선거자금법을 위반해 1,300만 세켈(33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당연히 바라크 총리에게도 혐의가 쏠리고 있다. 바라크 총리는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그는 “비영리기관도 모르며 당의 모금운동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면서 “며칠내로 대법원에 항소하는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야킴 루빈스타인 검찰총장은 감사원의 이같은 수사 내용을 넘겨받고 경찰에 ‘하나의 이스라엘 동맹’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 수사에서 감사원의 조사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 바라크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총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국민들의 신뢰 없인 불가능한 골란고원 반환 등 중동평화협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의원 및 장관 재직시절이던 88∼93년 사이 프랑스 사업가로부터 4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바이츠만 대통령은 돈을 받은 사실은인정하면서도 개인적 친구의 사적인 ‘선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국민들의 격분을 불렀다.이같은 주장에 여론은 그에게 등을 돌려 국민의절반 이상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베냐민 네타냐후도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이밖에 아리예 데리전 내무장관,타치한네그비 전 법무장관도 수뢰 혐의로 기소되는 등 이스라엘 정가의 부패 스캔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부패 정치인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분노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박희준기자 pnb@
  • ‘콜 비자금’ 불똥 이번엔 英으로

    [베를린 외신종합] 독일 기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에 프랑수아 미테랑 전프랑스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독일 ARD방송의 보도에 이어 전 에어버스사 부사장인 스튜어트 이들스도 이 스캔들과 관련,독일검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고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보도하는 등 스캔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헬무트 콜 전총리는 사건 전모를 파악하는데 핵심인 불법자금 기부자 명단을 밝히기를 계속 거부하고 있어 혐의점은 점점 커지고 있고 기민당은 콜 전총리를 고소,강제로 명단을 공개하는 한편 그를 출당시키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불법자금 기부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콜 전총리는 지난달 200만마르크(12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았다고 시인했으나 그후 속속 비자금이 드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3,000만마르크(18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한편 독일 기민당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의 확산 와중에 사망한 기민당의 재정 및 예산 책임자 볼프강 휠렌(49)의 가족들은 23일 휠렌이 자살했다는 추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진실규명을 위한 부검을 요구했다. 또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23일 독일 기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과 관련,전(前) 에어버스사 부사장이자 영국 에어로스페이스사(社) 간부인 스튜어트 이들스가 CDU 부패스캔들의 중심에 서있는 독일 경제인 칼하인츠 슈라이버로부터 280만∼720만 유로를 받은 혐의로 독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 콜 비자금 미테랑에 ‘불똥’

    [베를린 AFP DPA 연합]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 비자금 수수 파문의 불똥이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 ARD TV는 지난 92년 프랑스 국영 석유회사인 엘프 아키텐이 전 동독석유기업인 로이나를 매입한 대가로 수천만 마르크를 콜 전 총리에게 지급했다고 22일 주장했다. 이 TV는 미테랑 전 대통령이 콜 전 총리에게 8,500만 마르크(4,400만 달러)를 지급하도록 엘프에 직접 지시했으며 이 돈의 상당부분이 기민당(CDU) 선거자금으로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이 방송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엘프의 비자금 전달을 위해 비밀 요원들이 개입했으며 이들은 제네바 소재 르 리치몬드 호텔을 접선 장소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채널2’ 방송이 취재협조한 이 보도에 대해 콜 전 총리측은 즉각적으로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다.
  • 콜 前獨총리 형사처벌 확실

    독일 기민당(CDU) 불법 정치자금 모금스캔들의 종착역은 어디인가.20일 검찰조사를 받던 CDU의 자금 책임자가 자살,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의회 특별조사위원회도 헬무트 콜 전 총리 등 전현직 고위관리 26명과 정치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발표,정치자금 스캔들은 끝없이 확산되고 있다. 베를린 검찰청 마르틴 슈텔트너 대변인은 이날 검찰이 자살한 CDU 의회재정 책임자 볼프강 휠렌(49)씨 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 관련성 여부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정 문제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맨 휠렌씨는 97년 당비 100만마르크(약 6억원)를 불법 전용했다고 시인한조와킴 회르스터 사무총장의 측근이다. 특히 그는 지난 72년 독일의 집권 CDU·기사당(CSU) 연립정권에 합류 84년이후 당 재정 책임자로 일해왔던 핵심인물이어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휠렌씨는 유서에서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자신의 횡령혐의가 드러날 것으로 우려했으며,CDU의 일부 횡령사실도 기록해 놓았다고전했다. 의회 특별조사위원회의 폴커 노이만 조사위원장도 이날 “관련 인사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며 콜 전 총리가 가장 먼저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소환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콜 전총리의 형사 처벌은 거의 확실시 되고 있으며 이날 의회에서 무기밀매업자로부터 10만마르크(약 6,000만원)의 불법 모금 사실을 공식 사과한 볼프강 쇼이블레 당수도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 조사 대상자는 콜 전 총리 쇼이블레 당수외에도 안겔라 메르켈 사무총장,폴컨 뤼헤 부당수,테오 바이겔 전 재무장관,클라우스 킨켈과 디트리히 겐셔 전외무장관 등 CDU 지도부 거의 모두가 포함돼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콜 기민당 명예총재 사퇴

    독일 정가를 뒤흔든 비자금 스캔들의 장본인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70)가 18일 기민당(CDU) 명예총재직을 사퇴했다. 콜 전총리는 이날 소집된 기민당 긴급 지도부회의에서 “비밀기부금 출처를 밝히지 않으려면 당을 떠나야 할것”이라는 집행위원들의 비판이 나온 뒤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그는 총리시절인 90년대 200만마르크(12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으나 기부자 명단을 밝히기 거부,당내외의 비난을사왔다. 한편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돼 사임압력을 받아온 볼프강 쇼이블레 당수는이날 당집행위원회 재신임을 얻어 당분간 현직을 유지하게 됐다. 현재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명예총재직 사퇴는 한시대를 풍미한 콜의 정치적 영향력이 끝났으며 기민당의 지각변동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읽히고 있다. 16년간의 총리 재임기간을 포함,25년간 당수로 집권하며 기민당에 누구도대신할수 없는 그늘을 드리워온 콜이 권력정점에서 물러남에 따라 기민당은최악의 권력공백을 맞게 됐다. 비자금 스캔들은이번 주말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칸터 헤센주 전 기민당위원장 등 옛 기민당 관련인사들의 폭로전이 이어지는 등 아직 수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 獨 기민당 비자금 파문 확대

    [베를린 AP 연합]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 밑에서 내무장관을 지냈던 만프레드 칸터(60) 의원이 17일 연방의회 의원직을 사퇴,독일 정계에 소용돌이를일으키고 있는 기민당 비자금 스캔들의 첫 희생자가 됐다. 칸터 의원은 기민당 지도자들에 대한 사임 압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스위스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내 헤센주 기민당 금고에 수백만달러를 불법유입시키고 이 돈의 출처에 대해 허위보고한 사실을 14일 시인했다. 칸터 의원은 90년대 헤센주 기민당 조직을 운영해왔으며 콜의 마지막 내각때 입각했다.
  • 獨 정치권 비자금 파문 확산

    [베를린 연합]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조사를받고 있는 가운데 볼프강 쇼이블레 기민당 당수도 불법자금을 수수한 사실을시인,독일 정치권의 비자금 스캔들이 확산되고 있다. 쇼이블레 당수는 10일 독일공영 ARD 방송 인터뷰에서 지난 94년 군수업체티센의 무기중개상 칼하인츠 슈라이버로부터 10만마르크(약 6,000천만원)의돈을 받았다고 밝혔다. 쇼이블레 당수는 이 돈이 지금까지 당자금 회계상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장부에 ‘특별 수입’으로 등재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녹색당도 정당 자금 모금 과정에서 불법을 자행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가 보도했다.이 잡지는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이 지난 7년간 당내 소속 의원들의 세비에서 350만마르크(약 21억원)를거둬 당자금으로 전용했다고 전하고 이는 원내 자금의 정당자금 전용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콜 스캔들 불똥’ 獨 기민당으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67)의 비자금 스캔들이 기민당 전체로 확산되면서독일 정치권의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3일 독일 검찰의 콜 전 총리에 대한 비자금 불법모금 혐의 공식 수사가 시작된데 이어 볼프강 쇼이블레 기민당 당수도 불법 자금으로 모은 원내기금을 당조직으로 전용한 혐의로 언론과 집권 여당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과 연정 녹색당은 3일 쇼이블레 당수가 지난 97년 기민당-기사당 원내기금 115만 마르크(약 6억9,000만원)를 불법적으로 전용한데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독일 법률은 원내기금의 당자금 전용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스마르크 이후 최장기 집권 기록 보유자이자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유럽 정치 거장 콜 전총리와 그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쇼이블레 당수의 스캔들은 장기 집권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재기를 꿈꾸고 있던 기민당으로선치명적인 타격이다. 지난 98년 슈뢰더 총리에게 패한 콜이 직접 후계자로 지목한 쇼이블레는 2002년 총선 기민당의 기대주.스캔들 발생 초기 콜과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왔다.또 오는 2월 열리는 쉴레스비히 홀스타인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를 기대해온 전 국방장관 볼커 뢰체에게도 엄청난 충격. 반면 지난해 6개주 선거에서 연패하는 등 개혁정책과 관련,시련을 겪어 온슈뢰더 총리측은 기대치 않았던 반대급부에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獨정가 뇌물스캔들 ‘강타’

    뇌물스캔들 확산으로 독일 정가가 휘청거리고 있다.총리 재임시절의 뇌물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기민당(CDU)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가 30일 비밀계좌를관리했다고 시인한데 이어,사민당(SDP) 정치인들도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한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콜 전 총리는 이날 CDU 비상대책회의를 마친 뒤 총리로 재직중이던 당시 일부 정치헌금이 당의 비밀계좌로 입금됐다면서 그러나 뇌물이나 리베이트성자금은 결코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만약 이같은 결과가 정당법을 위반한 것이라면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16년 재임기간중 개인적인 뇌물은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뇌물스캔들은 독일 언론들이 CDU 재정담당 칼하인즈 슈라이베르가 91년 8월스위스의 쇼핑몰 주차장에서 무기딜러로부터 100만마르크(약 6억3,000만원)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촉발됐다.독일에서는 정당이 2만마르크(1,200만원)이상을 기부받았을 경우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독일인들이 이번 파문을 장기집권했던 CDU의 불법 모금의 일부라고 판단하고 있다는데 있다.88년부터 92년까지 8,900만마르크(504억원)에 이르던 CDU의 적자규모가 1,000만마르크(63억원) 흑자로 돌아섰다며 여기에는 이같은 불법 자금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집권 SDP도 마찬가지다.지난해 슈뢰더 독일총리의 측근인 게하르트 글로고브스키 니더 작센주 총리가 기업들로부터 개인적 편의를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고,라인하르트 클림트 교통장관 등 SDP 출신 정치인들의 부패 의혹도 꼬리를 물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하)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9일, 베를린에서는장벽붕괴 및 독일 통일과 관련된 각종 기념행사와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려21세기 통일독일의 새비젼과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는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냉전 종식의 주역들인 콜 전 총리와 부시 전 미대통령,고르바초프 전 옛소련 대통령이 행한 기념 연설.베를린 장벽 붕괴 및독일 통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들 ‘3인방’이 차례로 연방하원에등장,‘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의 상황’의 회고 및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념 연설을 하자 연방하원 의원들은 물론 독일 시민들이 일제히 열렬한박수로 환영. ●장벽 붕괴 10주년 행사와 관련 최고의 인기는 고르바초프 전대통령.그가브란덴부르크문 인근 아들론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몰려가 ‘고르비’‘고르비’를 연호.이때 고르바초프가 딸 이리나와 손녀 아나스탸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악수를 하려는 사람들로 운더텐린번대로의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그는 또베를린의 유명 보석상 옌스 로렌츠씨로부터 독일 통일에 이바지한 공로로 ‘평화의 시계’로 명명된 최고급 시계를 선물 받았다. ●전날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합군 박물관에서 열린 ‘베를린의 해방-조지 부시와 독일 통일’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시회에 참석하는 등 비교적 조용한 행보. ●베를린 시청에서는 부대행사로 장벽 붕괴일인 지난 89년 11월9일 출생한어린이들을 초청,‘독일 통일의 꿈나무’ 행사를 열어 이들이 베를린 장벽붕괴와 독일 통일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격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과 게메르크 폴란드 외무장관은 베를린 시청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한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과 추쿠비스 츠브스키전 폴란드 외무장관에게 ‘독일·폴란드’상을 수여.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야외 특설 음악당에서는 3만명의 청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 대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무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등 세계적 거장들의연주에 이어,팝그룹 스콜피온스우도 라덴베르크가 각각 ‘변화의 바람’‘베를린을 환영합니다’를 열창.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수십발의 기념폭죽이 터져 하늘을 수놓자 시민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 베를린 장벽 붕괴후의 동유럽 변화상 ‘동구 국가들의 새 세기 시작은 2000년 1월1일이 아니다.10년 전인 1989년11월9일 이미 시작됐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철의 장막 음지에 있다 지난10년간 숨가쁜 변화를 겪어온 동구(지리적으로는 발트해에서 발칸반도)국가들에게 베를린 장벽붕괴가 갖는 의미를 설명한 말이다. 지난 91년 구 공산권국가들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9일 연례보고서에서 중부 유럽국가들과 발트국가들이 내년에는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인 1.6%의 두배에 해당하는 3.2%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동구 발전의 선두그룹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과 접경,유로리전(Euro Region)등의 실험적인 경제및 환경협력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체크 등 ‘동구 3룡(龍)’.지난3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데 이어 정치·경제 안정의 척도라할 유럽연합(EU) 가입을 눈앞에 두고 유럽 옛공산권 국가들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89년 동독인들에게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철의 장막을 처음 깨뜨린 헝가리는 이 지역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10년전 2,000달러이던 1인당 GDP는 지난해 4,500달러가 됐다. 붕괴 이전부터 동구지역의 반공산혁명 선봉장 역할을 했던 폴란드는 지금도4,000만에 가까운 인구와 경제력으로 중부유럽 최대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10년전 3,200달러이던 1인당 GDP가 5,000달러로 증가했다. 지난 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결별했다.체코는 옛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지도아래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그러나 슬로바키아는 90년대 내내 권위주의적 정부의 영향으로 유럽 최대 빈국으로 간주돼온 저성장국.그러나 지난해 친 EU성향 새정부 출범으로 장족의발전을 거듭하고 있다.옛 유고연방 국가들 가운데는 슬로베니아가 1인당 GDP1만달러를 넘기며성공, EU 가입 최우선 대상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90∼91년각각 독립을 선언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도 이웃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도움으로 놀라운 경제변신을 이룩했다. 그러나 개혁이 오래 지체됐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그리고 계속된 분리 전쟁과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유고등은 불안정한 정치,절름발이 경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공산 종주국이었던러시아는 지난 97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이 0%에 머물고 절대 빈곤층이 7,40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경제,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인터뷰] 구동독 마지막 국가원수 에곤 크렌츠 [베를린 남정호 특파원] “지난 89년 11월9일부터 11일까지의 사흘동안은 내 생애에 가장 길고도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8일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베를린 개인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62)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현재 각종 강연과 집필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그해 10월18일 실각한 에리히 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후,한달도 채 안된 11월9일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맞은 비운의 동독 마지막 국가원수이다. “브란덴부르크문 앞 장벽 위로 수천명의 서베를린 시민들이 기어올라와 장벽이 무너지고 국경이 뚫릴 상황이었습니다.이때 우리가 가장 우려한 것은유혈 이었습니다.소련이 어떻게든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9일밤 동독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동서독 국경선 개방 공표는 ‘피 대신 샴페인’을 터뜨리게한 결정이었습니다.” 동·서 베를린 국경개방은 당시 양측의 적대상황을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것이었다는 그는 그때만 해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독일통일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89년 11월1일 고르바초프와 4시간동안 회담했을 때 독일통일은 의제에도없었습니다.당시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을 해체하고자한 정치가는 동서진영 어디에도 없었고 고르바초프 입장도 그랬습니다.” 그는 “그러나 장벽이 무너진뒤 12월2∼3일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통일이 결정됐다”며 “89년 당시 소련은 ‘이미 임종을 앞둔 상태’였기 때문에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독의 몰락은 어찌보면 당연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호네커와 슈미트 서독 총리간의 회담 이후 호네커와 소련 공산당지도부 사이에는 상호불신이 팽배해 있었다는 크렌츠는 89년 11월9일밤 동서독 국경개방 결정도 소련의 군사적 개입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전 미리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오후 내려진 연방대법원의 동서독 국경탈주자 사살명령 혐의에대한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 “동서독 장벽은 옛소련의 전략적 방위선으로 탈출자에 대한 발포 결정은 군사적 성격의 결정이었습니다.그러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고 강조하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크렌츠는 97년 8월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6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했었다. * 베를린장벽 붕괴 관련어록 [파리 AFP 연합] 유럽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붕괴는 기억할 만한 발언들을 많이 남겼다.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장벽을 부숴 버리십시오.(로널드 레이건 전 미대통령,89년 6월12일 브란덴부르크문에서)●장벽은 그것이 세워진 여건들이 변하지 않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장벽은앞으로도 50년,아니 100년 동안도 존재할 것이다.(에리히 호네커 구동독 공산당 서기장,89년 1월19일)●소련은 동유럽 이웃들의 문제에 개입할 도덕적,정치적 권리가 없다.그들은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대통령,89년 10월 핀란드 방문시)●동독인들은 가고자 하는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이 조치는즉각 발효된다.(귄터 샤보브스키 옛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89년 11월9일기자회견에서)●우리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매우 슬픈 일들을.(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9년 11월9일)●나는 방금 베를린으로부터 도착했다.엄청난 사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헬무트 콜 서독 총리,89년 11월10일)●베를린 장벽에 처음 금이 간 것은 80년 8월 폴란드 전역에 걸쳐 일어난 대규모 파업사태 당시였다.(아담 미흐닉 폴란드 반체제 인사,99년 11월)●나는 내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미하일 고르바초프,99년 11월)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중) 베를린市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28년.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정신적 분단의 벽을 육체의 벽으로까지 전이(轉移)시켰던 그 세기의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베를린시는 8일 그 제일의 주역중 한 사람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시민증을수여했다. 에버하르트 디프켄 베를린시장은 이날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베를린시가 어렵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 등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서베를린시의 자유를 지켜줬으며,전후(戰後) 베를린 세대에게 민주화와 문화를 꽃피우게 했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줬다”며 “부시 전 미 대통령에 대한 베를린 명예시민증 수여는 전체 미국시민들의 영예”라고 밝혔다.그는 “독일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장벽 붕괴에 따른 동서베를린 통합에 공로가 큰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오늘부터 베를린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108명.지난 1826년 콘라드 리벡이 첫번째 명예시민이 된 이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콘라드아데나워·빌리 브란트·헬무트 콜 전 총리,리처드 폰 바이츠제커·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됐다.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미국인으로서는 다섯번째이다. ●지난 89년 11월4일 100만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모여 민주화와 서독으로의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알렉산더 광장에는 장벽 붕괴 10주년을맞아 시민들이 자신의 감회를 적어 붙이는 게시판이 등장,시민 및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판에는 ‘동독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궈냈다.행운이 있기를’‘베를린 장벽 붕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콜 전 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나붙어 이채를 띠기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독일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옛 동독인들(90%)이 서독인들(83%)보다 통일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일 은행협회가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옳은 결정’이라고 응답.한편 옛동독인들은통일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와는 달리,그들중 70%가 아직까지 ‘2등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옛 서독인들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옛동독 정권에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동독 마지막 서기장 출신 에곤 크렌츠,동독의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 첩보실장출신의 마르쿠스 볼프 등의 사면을 놓고 베를린 정가에서 설왕설래. 로타르 드 메지에르 기민당 부당수는 이날 “새천년을 맞는 만큼 20세기의잘못은 묻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사면을 건의.이에 대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과거 잘못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면은 시기상조”라고 일축. ●독일 언론은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3인 주역들의 회고담을 게재해 눈길.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미국이 잘못 움직이면 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도할 수있어 자제했다고 회상.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동독 친구들이 국민들에게적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고 격려했다고 반추. khkim@ *당시 駐서독美대사 회고기 1989년 서독주재 마지막 미국대사로 부임해 베를린 장벽 와해와 독일통일을 지켜본 버넌 월터스대사가 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를 회고하는기고를 실었다.그의 기고문 ‘내가 목격한 혁명’을 요약한다. 89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주독일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나는 이미 72세였다.고령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부시대통령은 “독일에서 지금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같은 노련한 외교관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예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폴란드에서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소련은아프가니스탄에서 무조건 철수를 결정했다.그해 4월 22일 독일에 부임했을때 독일통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부임 첫 회의때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독일 정부관리들을 만나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들지 않았다.헬무트 콜총리만 예외였다.콜총리는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그것이며 우리도 그걸 위해 노력중”이라고 화답했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나의 발언을 반박하며 머릿기사로 “지금은 무분별한 독일통일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썼다.그러나 동유럽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어닥치기 시작했다.수천명의 동독 난민들이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갔다.라이프치히 등 동독 도시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 무렵 어느날 나는 운터덴린덴가에 있는 동독주재 소련대사 관저에서 그대사와 오찬을 했다.그는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이 그대로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나는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소련은 당시 3,900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 부담에 짓눌려 더이상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동독의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서독 국기가 시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마침내꼭 10년 전인 89년 11월9일 밤.본에 있던 나는 베를린 미국대표부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장벽 검문소 한곳이 열려 동독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나온다는 보고였다.다른 검문소들에도 주민들이몰려들고 있다고 했다.나는 곧장 베를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소련의 반응이 어떨지 알수 없었다.소련이 무력진압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나는 독일정부가 있는 본에 남아있기로 했다. 24시간 뒤 나는 베를린으로 가 헬기로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았다.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자동차와 인파로 가득찼다.동독국가의 한 구절인 “하나인 우리의 조국 독일”이라는 외침이 거리마다 울려퍼졌다.그날밤 베를린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동베를린 주민들은 상점진열장에 쌓인 오렌지,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소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수천명의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장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통일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산체제가 무너지리라고는 예상못했다.압제와 자유의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자유가 승리한 것이다. 정리 이기동기자 yeekd@ * 당시 東獨지도자들 근황[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 지도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인 지난 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와해되면서 권좌에서 함께 물러난 20명의 옛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치국원중 11명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 생존자 대부분은 은퇴한 뒤 베를린에서 칩거하고 있으나,89년 호네커후임에 선출된 에곤 크렌츠 공산당서기장(62)과 귄터 샤보프스키 전 동베를린 SED 지구당위원장(70)만이 가끔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이 두 사람은 동서독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부터 연방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이 열린데 이어,8일 결심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89년 10월10일 실각한 호네커는 90년 1월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모스크바 도망중 베를린으로 송환돼 동서독 국경 탈출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린혐의로 구속됐다.이후 암투병을 이유로 93년 1월 석방돼 칠레로 망명했으나이듬해 5월 그곳에서 사망했다.옛 동독 총리를 역임한 한스 모드로프(71)는장벽 붕괴 뒤인 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메클린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그러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연방하원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칩거하고 있다. 동독의 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국가보위부) 첩보실장 출신인 마르쿠스 볼프(76)는 첩보활동을 한 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비공산당원 출신으로 90년 3월부터 동서독 통일이 이뤄진그해 10월3일까지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기민당부당수로 아직까지 정계와 연을 맺고 있다.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크렌츠는 장벽 붕괴 이후 TV 토크쇼에 출연,생계를 이어왔다.특히 91년 ‘장벽이무너진다면’이라는 책을 펴내 2만마르크의 인세를 받은데 이어 신문에 장벽붕괴 당시의 상황을 시리즈로 게재,10만마르크를 벌기도 했다.91년부터 금융중개업에 뛰어들어 매달 5,000마르크를 벌고 있다. 97년 베를린지방법원에서 동서독 국경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혐의로 6년6개월형을 받아 한때 구속되기도 했다.그는 상고심에서 ‘냉전체제의 희생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샤보프스키는 97년 크렌츠와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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