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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초수급자 쌈짓돈에 월급도 쪼개 온정 물결

    세월호 사고에 서울시와 자치구들의 인적·물적 지원이 물결을 친다. 24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성금 모금도 이어지고 있다. 시는 지난 23일까지 전남 진도 현장에 구조 잠수 인력을 포함해 소방재난본부 소속 85명과 행정, 의료 및 심리상담 지원 17명 등 모두 102명을 보내 구조와 구호 활동을 도왔다. 사고 첫날인 16일 급파한 헬기는 현재 복귀했으며 구급차 25대를 보낸 상태다. 시는 심리 치료를 위한 재난심리상담사도 준비하고 있다. 진도군의 요청에 따라 모포 1000장과 우비 2000개를 긴급 지원한 것을 비롯해 각종 생활용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2005년 진도군과 자매결연한 은평구도 발 빠른 지원에 나섰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나눠 줄 세면도구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500명분의 칫솔과 치약, 수건을 챙겨 진도실내체육관으로 보냈다. 동작복지재단은 간식 1000상자를 보냈다. 강동구 중식업연합회는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짜장면 봉사를 떠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가 진도군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강남구는 이날까지 본청과 도시관리공단 및 문화재단 등 산하 기관 직원 1450여명이 본봉의 0.5%를 성금에 보태기로 했다. 1300여만원 정도가 걷힐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도 오는 29일부터 모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모금엔 공무원, 주민이 따로 없다. 관악구에서는 지난 21일 기초수급자인 정모(57)씨가 신사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세월호 피해자 가족을 돕는 데 써 달라며 2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정씨는 함께 남긴 편지에 “수급자로서, 한국 귀화자로서 조그마한 위로나 힘이라도 되고 싶다”며 “다른 사람도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없어도 한때 두때 굶고 절약해 모금에 참여했으면 한다”고 썼다. 주민센터는 이 돈을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로 바로 입금 처리했다. 자치구들은 서울시 주도로 번갈아 진도 현장에 의료진을 보내고 있다. 자치구 5곳씩 조를 짜 긴급 의료지원반을 꾸리는 것이다. 도봉·노원·용산·중구는 19~21일 구급차와 간호사로 구성된 지원반을 보냈다. 용산구의 경우 특수임무유공자회 전문구조요원 5명이 인명 구조 활동도 펼치고 있다. 동작·금천·영등포구 지원단은 23~25일 일정으로 의료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치구 관계자들은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많아 가슴이 먹먹하다”며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실종자들이 구조될 수 있도록 모든 일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시청팀 종합 icarus@seoul.co.kr
  • 소방헬기, 사고 첫날 투입 못한 이유는 해경 통제 때문?

    소방헬기, 사고 첫날 투입 못한 이유는 해경 통제 때문?

    ‘소방헬기’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소방헬기가 해경의 통제 때문에 구조 현장에 투입되지 못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4일 방송된 JTBC ‘뉴스9’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구조 현장에 소방헬기가 투입되지 못한 사실을 짚었다. 사고 당일인 지난 16일 단원고 학생은 다급한 목소리로 전남 소방본부에 살려달라고 구조 요청을 했다. 최초 신고를 받고 소방당국은 전남을 비롯해 경남, 전북, 광주 등 전국 각지의 소방헬기를 진도로 총출동 시켰지만 해경의 통제 때문에 구조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바로 해경의 항공구조 종료 통보 때문이었다. 경남 소방본부 관계자는 “광주, 전북, 경남까지 팽목항에서 대기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방헬기는 구조활동을 전혀 돕지 못했다. 해경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구조할 때는 소방헬기가 오질 않았다. 항공 구조가 이미 다 끝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소방본부는 해경의 통보를 현장 투입 통제로 받아들였다. 결국 소방헬기는 팽목항에서 대기만 하다 오후 5시가 넘어 본대로 돌아갔다. 구명 조끼를 입고 조류에 떠내려갔을 수 있는 생존자들을 끝까지 찾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헬기가 총동원돼 구조작업을 펼쳤어야 했지만 아까운 시간만 보내다 복귀했고 애초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해경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공기관 안전관리 비상

    사고 위험 및 다중이용시설을 관리하는 공공기관들이 ‘안전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의 재난·안전 관리 대책이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자칫 작은 사고라도 발생하면 기관장 거취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코레일은 2011년 2월 광명역 탈선과 2013년 8월 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 등의 아찔한 기억이 남아 있어 긴장감이 더하다. 최연혜 사장이 북한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참석차 자리를 비운 상황이라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23일까지 모든 열차를 집중 점검한 데 이어 오는 30일까지 차량과 시설, 전기 등 5개 분야에서 170명으로 특별점검반을 구성해 안전수칙 준수 여부와 매뉴얼 적용 실태 등을 살피고 있다. 점검 대상은 전국 역과 12개 지역 본부, 78개 관리역, 230개 사업소, 부속 기관 등이다. 열차 탈선과 터널 화재 등의 대형 사고 때 골든타임 안에 초동 대응할 수 있도록 임무 역할 숙지, 인명 구조 및 여객 대피 유도, 구명장비 작동 상태 확인, 악천후 등의 이례적인 상황 발생 시 열차 운행 체계 등을 점검한다. KTX는 방송 시스템 및 사고 복구 매뉴얼 재정비, 탈선 복구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헬기 추락 사고를 겪은 산림청은 봄철 산불 발생 시기와 겹쳐 초긴장 상태다. 추락 사고 이후 연 2차례 개인별 안전역량 진단과 연 30시간의 항공안전교육을 하는 등 안전 관리 및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상시 점검을 위한 안전운항분석팀을 운영하고 있다. 휴양림에서는 바비큐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자연휴양림 156곳과 숲 체험, 치유의 숲, 산림생태문화체험단지 등에 대해 재해 우려지 관리 실태와 소방·방화 시설물 점검에 나섰다. 관세청은 해상 감시정(37척)에 대한 1차 점검을 마친 가운데 4~5월 한달간 세부 점검 및 재난 대비 훈련에 나선다. 특히 해양경찰의 요청 때 구조 지원에 나설 계획이어서 승조원 등에 대한 안전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소조기 마지막 날, 소조기 뭐길래..‘실종자 수색에 최다 인원 투입’

    소조기 마지막 날, 소조기 뭐길래..‘실종자 수색에 최다 인원 투입’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9일째인 24일은 조류의 흐림이 느린 소조기 마지막 날이다. 이에 실종자 수색에 최다 인원이 투입됐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함정과 민간어선 등 총 212척과 육·해·공군 및 해경, 소방헬기 등 항공기 34대를 투입해 실종사 수색 작업에 총력을 다 할 전망이다. 물살이 평소보다 크게 약해지는 소조기가 이날로 끝나기 때문에 해군과 해군구조대, 소방 잠수요원, 민간 잠수사 등에다 문화재청 해저발굴단까지 합류해 최다 인원이 투입된다. 24일 구조가 용이한 정조시간은 오전 10시 17분, 오후 4시 38분, 오후 9시 52분 쯤이다. 현재 사고 해역은 맑은 날씨 속에 풍속과 파도 모두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24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해경이 다이빙벨을 요청한 적은 없다. 다만 해경과 실종자 수색작업 계약을 맺은 민간업체 언딘 마린 언더스트리가 23일 갖다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투입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사진 = 방송 캡처 (소조기 마지막 날)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세월호 침몰] 최초 신고한 단원고 학생, 결국 시신으로…‘3분 앞선 신고’

    [세월호 침몰] 최초 신고한 단원고 학생, 결국 시신으로…‘3분 앞선 신고’

    [세월호 침몰]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최초로 신고한 단원고 학생 A군의 시신이 발견됐다. 24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어제 4층 선미 부분에서 발견된 학생 사망자 중 한 명이 최초 신고자인 단원고 학생 A군인 것으로 추정됐다. 해경은 “A군의 부모가 시신 인상착의를 확인한 결과 아들 시신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만 지문, DNA검사, 치아 등 정확한 신분확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추정이라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은 팽목항 임시 안치소에서 A군의 신분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A군은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는 첫 신고전화를 걸었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입니다. A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A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로부터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에 대해 네티즌은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세월호가 보낸 신고보다 3분 빠를 이유가 뭘까?”,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결국 시신으로 돌아오다니”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 안타까운 소식이다 정말” 등의 애도를 표했습니다. 사진 = 방송 캡처 (세월호 침몰, 최초신고 학생)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세월호 속보]세월호 사고 최초 신고 학생, 결국 숨진채 발견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최초로 사고를 신고한 단원고 학생 A군의 시신이 발견됐다. 24일 해양경찰청은 전날 4층 선미 부분에서 발견된 학생 사망자 중 한 명이 최초 신고자인 A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해경은 “A군의 부모에게 시신 인상착의를 확인한 결과 아들 시신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지문, DNA검사, 치아 등 정확한 신분확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추정이라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은 팽목항 임시 안치소에서 A군의 신분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A군은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는 첫 신고전화를 걸었다.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A군은 당시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A군의 신고전화를 소방본부로부터 건네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의 눈] 누가 아이들을 데려갔나/이재연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누가 아이들을 데려갔나/이재연 정치부 기자

    검푸른 바다에서 꼭 살아올 거라고 믿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주검으로 돌아오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첫날 이후 구조자 수는 ‘174명’에서 줄곧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 위기관리 체계의 부실 탓이라고 한다. 적당주의와 반칙이 빚어낸 참사라고도 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맺은 사회계약이 정부의 무지로 위기에 처했을 때 계약은 파기될 수 있다는 게 ‘사회계약론’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을 바다에 묻고 절규하는 부모들 앞에서 이런 논리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도 싶다. 하지만 계약을 외면당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은 파기된 계약서를 누구에게 들이밀어야 할까. 대형참사 앞에서 공무원이란 거대조직은 아이들을 집어삼킨 바다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 당장 사고수습과 직결된 정부부처 공무원만 2만 3200명이 넘는다. 그러나 구조에 결정적이었던 사고 첫날 실제로 검은 바닷속을 누볐던 현장 인력 수는 알 길이 없다. 정부는 사고 첫날 해경 함정 28척, 헬기 7대, 구조인력 300여명을 투입했다고 발표했지만 썩 믿기지 않는다. 시스템 부재 속에서 참사와 미숙한 대응이 연발됐지만 가장 ‘시스템적으로’ 굴러가야 할 공무원 조직은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 우왕좌왕했던 현장 공무원,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한 총리와 장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해 ‘안전’을 앞세웠지만 결국 실패한 청와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속수무책의 공무원 조직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이 자꾸 걸린다. 그는 지금도 공무원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젓는다. 인수위 당시 국정목표인 보육·여성정책을 위해 이런저런 제안을 낼 때마다 담당 공무원은 한숨을 쉬면서 “왜 이렇게 저희를 귀찮게 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공무원을 일컬어 “한 사람 한 사람은 엘리트일지 몰라도 그렇게 게으르고 이기적인 집단은 처음 봤다”며 혀를 찼다. 사고 수습 현장에서 기념사진 촬영 논란을 일으킨 안행부 고위 공무원은 해임됐지만, 어찌 보면 그 역시 거대 조직을 ‘보신’하기 위한 희생양일지 모른다. 고위 공무원 한 명의 사직서 뒤에 숨어 몸을 웅크린 채 파도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조직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정부의 개혁의지는 빛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관련 기관 모두 “우리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마당에 국민은 생명줄의 컨트롤타워를 어디로 삼아야 할까. 2014년 4월 우리 아이들을 집어삼킨 건 바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옥죈다. oscal@seoul.co.kr
  • 세월호 최초 신고자 단원고 학생, 여전히 실종 상태…애통

    세월호 최초 신고자 단원고 학생, 여전히 실종 상태…애통

    ‘세월호 최초 신고자’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최초 신고자는 단원고 학생이었던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174명의 생명을 구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 학생은 안타깝게도 사고 발생 1주일째인 현재까지 생존자 명단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 16일 오전 8시 52분 한 남학생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전화를 걸었다.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학생은 단원고 2학년 6반 A군으로 밝혀졌다. 많은 사람이 이 신고자를 궁금해했으나 당초 알려졌던 이름이 탑승자 명단에 없어 확인되지 않다가 결국 신원이 밝혀졌다. A군은 119상황실에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 바꿔 드릴까요?”라며 사고사실을 신속하게 알렸다. 119상황실은 2분 뒤인 8시 54분 목포해경에 신고 내용을 전달해 신고자, 목포해경과 3자 통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목포해경은 119상황실로부터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내용과 신고자의 대략적인 위치를 전달받은 뒤 신고자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어보는 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고 3자 통화는 2분만에 종료됐다. 그 뒤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구조선와 헬기 등을 보내 학생 등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당국의 조치는 허술했지만 A군의 전화 한 통은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사고사실을 알린 의로운 학생은 어른들의 무책임 탓에 침몰사고가 난 지 1주가 지나고 있는데도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A군은 1분 1초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제 한몸 챙기기에 급급했던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신고했다”며 “수많은 승객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정작 자신은 아직 구조되지 못해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멀뚱멀뚱’ 해경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멀뚱멀뚱’ 해경

    목포해양경찰서가 세월호의 사고 신고를 받은 시간은 16일 오전 8시 58분. 목포해경 상황실은 8시 59분 서해해양경찰청에 헬기 구조를 요청하고 100t급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123정’을 급파했다. 완도·제주·여수해경에도 함정을 비상 소집할 것을 요청했다. 헬기(B511호)와 ‘123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30분. 헬기는 15분 뒤인 9시 45분쯤 승선원 6명을 처음 구조한 뒤 모두 18명을 구조했다. 5분 뒤에는 ‘123정’이 추가로 80명을 구조했다. 당시 구조 작업에 투입된 해경 함정은 모두 38척이고, 헬기는 7대였다. 하지만 해경의 구조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세월호가 전복될 때까지 해경의 구조작전은 선박 주변에서만 이뤄졌다.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을 구조하는 정도였다. 지원 나온 어선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바닷물 속으로 침몰하는 여객선 안에는 300명 이상이 남아 있었지만 여객선 내부에는 진입하지 않았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 곧바로 수중 구조대를 투입했더라면 몇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123정 자체 판단에 의한 구조작업이었다. 해경 측은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50∼60도 기울어진 상태여서 수중 수색 전문 특공대가 아닌 한 선체 진입이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서해해양경찰청 소속의 특공대는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목포항에 대기했지만 10시 11분에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선체 진입을 시도한 것은 여객선이 전복된 지 1시간 가까이 된 11시 24분. 이마저도 강한 조류 탓에 16분 만에 선체 진입을 중단했다. 세월호 사고는 이러한 초기 대응 미흡으로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관제 시스템의 문제도 드러났다. 진도교통관제센터(VTS) 교신 기록에는 관제센터가 오전 9시 5분까지 세월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돼 있다. 세월호는 신고 접수 전 1시간 이상 사고 해역에 머무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 본분을 어기고 세월호의 이상 징후를 전혀 모니터하지 못한 것이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실종자 1명도 못 구한 정부 ‘오판 책임론’

    실종자 1명도 못 구한 정부 ‘오판 책임론’

    한마디로 잔인했다. 바닷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세월호를 보며 “내 새끼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 하늘을 덮고 있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선체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귀를 막고 외면했다. 세월호 침몰 신고를 접수하고 30분 만에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사고 해역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은 사지에 놓여 있는 이들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곧 구해줄 줄 알고 승무원이 시키는 대로 선실에 남아 공포와 추위 속에 오들오들 떨던 300명 가까운 승객이 수장될 위기에 처했는데도 꼼짝하지 않았다. 초기 상황에 대한 오판의 결과는 필설로 옮기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 골든타임이 지나고 에어포켓이 사라졌어도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실종자 가족은 산 사람 하나 없이 다들 죽어서 나오는 기막힌 현실에 넋을 잃고 통곡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조류가 세다느니, 시정이 탁하다느니, 수심이 깊다느니 ‘3불가론’을 앞세우며 즉각 구조에 나서지 않은 것이 해경의 판단이자 독자 결정이었을까. 16일 오전 9시 30분. 목포해경 소속 123정은 오전 8시 58분 출동 명령을 받고 당시 위치에서 30㎞ 떨어진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세월호는 왼쪽으로 60도 정도 기울어 있었고 선체의 3분의1 정도가 물에 잠긴 상태였다. 당시 구조작업에 해경 함정 38척과 헬기 7대가 투입됐지만 해경은 구조에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다.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침몰하는 세월호 내부로 진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경 측은 “훈련을 받고 장비를 갖춘 구조대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이는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이 선내 진입 불가라는 판단을 스스로 내리고 행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경은 구조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인 오전 9시 30분 자체적으로 작성한 ‘상황보고서’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청와대에 동시에 발송했다. 1분 뒤인 오전 9시 31분엔 안행부가 청와대에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을 스마트폰 문자로 전파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해경이 상황보고서를 통해 팩트(사고 내용)만 보고했는지, 보고서에 선체에 진입해 구조가 불가능하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는지다. 초기 구조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반드시 규명돼야 할 사안이다. 국가 중앙재난안전 상황 관리를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해경에 구조와 관련해 어떤 지침을 줬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경은 해수부 산하기관이고 당시 현장의 해수부 내부에서 조치가 이뤄진 이후 청와대에 추후 보고한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가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구조할 수 있는 황금시간대인 골든타임(48시간)을 스스로 내팽개친 18일 오전 11시 40분. 전날까지 밀물 땐 1m, 썰물 땐 2~3m 수면 위로 떠올라 있던 세월호의 뱃머리마저 물에 잠기며 육안에서 사라졌다. 해경이 현장에 출동한 지 50시간이 지난 뒤였다. “애들 다 죽는다”며 “우리(가족)라도 들어가 애들을 구해 오겠다”고 매달렸지만 해경부터 청와대까지 누구 하나 답을 주지 않았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세월호 침몰-드러나는 사고원인] 핵심 선원들, 구조 요청 30분전 조타실 집합

    [세월호 침몰-드러나는 사고원인] 핵심 선원들, 구조 요청 30분전 조타실 집합

    세월호가 침몰한 시점부터 핵심 선원들이 배를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1시간 남짓 동안 조타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조타실은 항해와 조난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하는 장소이다. 주요 선원들은 사고 전후 이곳에 모여 ‘뭔가’를 했지만 끝내 승객들을 뒤로한 채 자신들만 배에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2일 “선장 등 핵심 선원들이 사고에 대처하는 행적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원 간 진술이 엇갈려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사본부는 “선장 이모(69)씨가 상당기간 자리(조타실)를 비웠다”고만 확인했다. 사고를 전후한 선장의 행적에 대해 “선원들의 진술이 엇갈려 특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또 “사고 전후 박모 기관장이 기관실 직원들만 데리고 승객들보다 먼저 탈출했다”고 확인했다. 선장 이씨는 수사본부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조타실을 잠깐 비웠고, 비상시에는 이곳에 머물며 상황을 통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본부는 그러나 “선장 이씨가 항해사 등을 통해 승객 퇴선 명령을 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승객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의 핵심 인물인 이씨의 행적이 그가 구속된 지 5일이 지났지만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타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16일 오전 8시 25분쯤 항로 변침 이후 동력을 잃은 세월호가 45도가량 오른쪽으로 급격히 꺾이면서 표류를 시작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면서 선장과 항해사, 기관장 등 주요 선원들이 조타실로 몰려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때 기관사 등도 기관실을 벗어나 맨 꼭대기층의 조타실로 올라왔다. 기울어진 선체 복원이나 기관의 재시동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어 8시 55분쯤 1등항해사 강모씨와 2등항해사 김모씨는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처음 신고해 구조를 요청했다. 이들 항해사는 이후 9시 6분~37분 진도VTS와 30여분 동안 구조와 관련된 통화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배는 점점 기울어 갔다. 이때 기관장, 기관사, 조타수, 갑판원 등은 구조 매뉴얼에 따라 승객 구조에 나서야 함에도 이를 방관했다. 9시 17분 이뤄진 진도 VTS와 교신내용을 보면 세월호 측은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다.” 이어 9시23분 “방송이 불가능해 승객을 탈출시킬 수 없다”고 답변한다. 9시 27분 목포해경 항공대 소속 511헬기가 현장에 처음 도착해 12명의 승객을 구출하고, 주변 어선들도 물로 뛰어든 승객 구출에 나선다. 10여분 후인 9시 37분 진도VTS와의 교신은 완전이 끊긴다. 기관사들이 자신들만 아는 3층 통로를 통해 구조선을 탔고, 다른 선원들도 잇따라 탈출했다. 선장 이씨는 사고 해역으로부터 18마일(35㎞)쯤 떨어진 진도 임회면 팽목항에 11시 16분에 도착했다. 이 거리라면 빠른 경비정이라 해도 1시간 넘게 걸린다. 그와 선원들이 늦어도 배를 탈출한 시각을 역산해 보면 오전 9시 38분 전후로 추정된다. 세월호 선박직 직원 15명은 그렇게 전원 구조됐다. 당시 남은 승객은 차디찬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구명벌 작동 안 시키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끝까지 변명 일관

    구명벌 작동 안 시키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끝까지 변명 일관

    ‘구명벌’ ’워키토키’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당시 선원들이 조타실 바로 옆에 구명뗏목(구명벌)을 두고도 이를 작동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해양경찰청과 당시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선장 이준석(69)씨 등 선원 10명은 조타실에 있다가 탈출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9시 30분 사고지점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경비정 123정(100t급)에 옮겨 타며 탈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그러나 수백명의 승객을 배에 놔두고 탈출하면서 조타실 바로 옆 구명벌조차 작동시키지 않았다. 구명벌은 선박이 침몰하면 일정 수압에 의해 자동 팽창되는 튜브식 구조장비로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어 수동으로 펼칠 수도 있다. 구명벌은 비상식량과 낚시도구까지 구비돼 있는데다 천막을 올려 입구를 닫아 해수 유입도 막을 수 있다. 겨울철이 아니라면 최대 10일까지도 버티게 해 주는 구조 장비다. 운항관리계획서 상으로는 세월호에 25인승 구명벌이 총 46개 있었고 실제로 조타실에서 불과 2m 앞에 있는 왼쪽 선측에는 14개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현장상황을 담은 연속사진을 분석한 결과 선원들은 구명벌을 바다에 던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지금 배가 넘어간다”며 최초로 조난사실을 알린 오전 8시 55분에 구명벌을 바다에 투척하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수백명의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지만 이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제주VTS 다음 교신 대상이었던 진도VTS가 오전 9시 24분 “방송이 안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바랍니다”라고 했지만 선원들은 해경 경비정이 언제 오느냐고 되물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선원들은 123정이 세월호 좌현에 바짝 붙자 서둘러 배를 빠져 나갔다. 이 때가 오전 9시 50분으로 400명에 가까운 승객이 여전히 배에 갇혀 있을 때였다. 구명벌을 바다에 투척한 것은 123정 소속 해양경찰관이었다. 그는 선측 좌현 구명벌 14개 중 2개를 풀어 바다에 던졌다. 14개 모두를 던지지 않은 것은 선박 왼쪽 바다에 빠진 승객들이 서해해경청 헬기 B511이 하늘에서 던져 준 구명벌 덕분에 대부분 구조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당시 현장 사진에는 123정에 구조된 한 선원의 손에 워키토키 형태의 무전기가 쥐어진 장면도 포착됐다. 선원들이 무전기로 선원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다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않는 대목이다. 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를 이용, 자기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선원들은 ”구조에 애썼다”며 여전히 변명에 급급한 태도를 보여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워키토키는 꼭 들고…세월호 침몰 전 구명벌 작동도 안 하고 먼저 탈출한 선원들

    워키토키는 꼭 들고…세월호 침몰 전 구명벌 작동도 안 하고 먼저 탈출한 선원들

    ’워키토키’ ‘세월호 침몰’ ‘구명벌’ 세월호 침몰 당시 선원들이 조타실 바로 옆에 구명뗏목(구명벌)을 두고도 이를 작동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해양경찰청과 당시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선장 이준석(69)씨 등 선원 10명은 조타실에 있다가 탈출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9시 30분 사고지점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경비정 123정(100t급)에 옮겨 타며 탈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그러나 수백명의 승객을 배에 놔두고 탈출하면서 조타실 바로 옆 구명벌조차 작동시키지 않았다. 구명벌은 선박이 침몰하면 일정 수압에 의해 자동 팽창되는 튜브식 구조장비로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어 수동으로 펼칠 수도 있다. 구명벌은 비상식량과 낚시도구까지 구비돼 있는데다 천막을 올려 입구를 닫아 해수 유입도 막을 수 있다. 겨울철이 아니라면 최대 10일까지도 버티게 해 주는 구조 장비다. 운항관리계획서 상으로는 세월호에 25인승 구명벌이 총 46개 있었고 실제로 조타실에서 불과 2m 앞에 있는 왼쪽 선측에는 14개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현장상황을 담은 연속사진을 분석한 결과 선원들은 구명벌을 바다에 던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지금 배가 넘어간다”며 최초로 조난사실을 알린 오전 8시 55분에 구명벌을 바다에 투척하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수백명의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지만 이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제주VTS 다음 교신 대상이었던 진도VTS가 오전 9시 24분 “방송이 안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바랍니다”라고 했지만 선원들은 해경 경비정이 언제 오느냐고 되물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선원들은 123정이 세월호 좌현에 바짝 붙자 서둘러 배를 빠져 나갔다. 이 때가 오전 9시 50분으로 400명에 가까운 승객이 여전히 배에 갇혀 있을 때였다. 구명벌을 바다에 투척한 것은 123정 소속 해양경찰관이었다. 그는 선측 좌현 구명벌 14개 중 2개를 풀어 바다에 던졌다. 14개 모두를 던지지 않은 것은 선박 왼쪽 바다에 빠진 승객들이 서해해경청 헬기 B511이 하늘에서 던져 준 구명벌 덕분에 대부분 구조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당시 현장 사진에는 123정에 구조된 한 선원의 손에 워키토키 형태의 무전기가 쥐어진 장면도 포착됐다. 선원들이 무전기로 선원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다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않는 대목이다. 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를 이용, 자기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흘려보낸 2시간 20분… 내부에 로프라도 연결했다면

    흘려보낸 2시간 20분… 내부에 로프라도 연결했다면

    ⑥ 과도한 증축과 화물 적재 제대로 고정 안 한 화물… 급선회에 우당탕 쓰러져 세월호 침몰 사고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들 가운데 과도한 증축과 잘못된 화물 적재 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세월호는 1157t의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 박스와 차량 180대를 실었으나 인천항 운항 관리실에는 이보다 적은 일반 화물 657t과 차량 150대가 실렸다는 가짜 보고서가 제출됐다. 적재량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점에서 실제로 추가 적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세월호는 또 적재된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한 트레일러 기사는 20t가량의 대형 철제 탱크가 실린 트레일러 3대가 여객의 급회전으로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적재된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에는 장거리 외항 선박들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로딩 마스터’가 없었다. 로딩마스터는 화물을 선적할 때 좌우 균형을 맞춰 자동으로 위치를 정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과도한 증축도 문제였다. 1994년 일본에서 5997t으로 진수된 세월호는 2012년 국내로 들어오면서 5층을 증축하고 239t 분량의 객실을 추가했다. 수직 증축은 선체가 흔들리다가 원 상태로 돌아오는 ‘오뚝이’와 같은 회복력을 떨어지게 만든다. ⑦ 무심한 해상 날씨 사고 다음날 거센 비·바람… 구조대 수색 작업 걸림돌 세월호가 출항한 지난 15~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운항 루트에 별다른 기상악화는 없었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 해역인 병풍도 날씨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사고 다음 날인 17일부터 비바람이 거세지면서 발생했다. 흐린 날씨 탓에 탁한 시야 등은 구조대의 수색작업을 방해했다. 게다가 정부가 민·관·군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구조작업은 더욱 난항을 겪었다. 거센 조류도 한몫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은 물살이 세고 조석간만의 차가 큰 시기인 ‘대조기’(4월 15~18일)였다. 이 시기에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의 최대 유속은 시간당 8㎞ 이상이다. 맹골수도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물살이 거센 곳이기도 하다. 조류가 약한 ‘정조’(밀물과 썰물이 교차해 조류가 약해지는 시간대)는 하루 네 번. 구조 작업을 위해 잠수요원들이 정조 때에 맞춰 투입됐지만, 펄이 많은 탓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구조활동이 한창 이뤄졌어야 할 17일 오전 10시 사고 해역의 바람은 초속 8.9m로 나무가 흔들리는 정도였다. 수온 역시 12도 안팎으로 가만히 있어도 통증을 느낄 수 있어 물에 빠진 승객들의 저체온증이 염려됐다. 낮은 수온은 수색작업을 하는 구조대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⑧ 잘못된 첫 신고 제주 VTS로 사고 신고… ‘골든타임 11분’ 허비해 사고가 발생한 16일 세월호의 첫 신고는 80㎞ 떨어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 접수됐다. 세월호 사고 지점은 가까운 전남 진도 VTS로 신고해 조치를 받아야 했지만 승무원의 안이한 대응으로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 11분을 허비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16일 오전 8시 55분 교신채널 ‘12번’을 통해 제주 VTS에 신고를 했다. 세월호는 진도 지역을 지날 때 교신 채널을 ‘67번’인 진도 VTS로 맞춰야 했지만 미리 목적지인 제주 VTS로 맞춰 놓고 운항한 것이다. 사고가 나자 교신을 맡은 선임급 항해사가 채널을 변경하지 않아 신고가 제주 VTS로 가게 됐다. 결국 11분이 지난 오전 9시 6분 진도 VTS는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확인하고 교신을 했다. 또한 구조 신고 당시 일반주파수를 사용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해상 통신은 일방 통신으로 단거리 근접 통신망(VHF)을 사용하는데 일반주파수인 ‘16번’을 제외하면 다른 선박들은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없다. 합수부 한 관계자는 “구조 교신을 할 때는 주변 선박 등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일반주파수 16번을 사용해야 하는데 세월호는 이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⑨ 때 놓친 탈출명령 침몰 직전에도 “선내 대기”… 승객 탈출 기회 날려버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은 침몰 위기 상황에서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나홀로’ 탈출을 했다. 사고 직후 세월호 주변에는 민간 어선들이 대거 모여 있는 상태여서 선장과 승무원이 도망가지 않고 제때 탈출 명령만 내렸더라면 지금과 같은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경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8시 58분 전남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17㎞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주변에 있던 민간 어선 수십 척에 무전으로 구조활동을 요청했다. 민간 어선 40여척과 해경 경비정, 헬기 등이 세월호 주변에서 구조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가 이미 심하게 기울어 침몰하기 직전인 상황이었는데도 여객선 주변 해상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선장과 승무원이 탈출한 뒤 한참이 지난 오전 10시 15분까지도 선내방송을 통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말 외에 별도의 대피 명령이 없었다. 세월호는 신고가 접수된 지 2시간 20여분 만인 오전 11시 20분 뒤집힌 채 침몰했다. 선장과 승무원이 탈출한 오전 9시 37분에 승객들에게 탈출 명령만 내렸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구조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⑩우왕좌왕 초동 대처 정부 어리바리 현장 지휘… 선체 내부인원 구조 못해 세월호 침몰 참사는 승객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배를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구조 활동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의 초동 대처도 문제로 지적된다. 선박 침몰 사고는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가장 중요한데 신속한 초기 구조활동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재난 전문가들은 해난 사고에 능숙한 전문가가 일사불란하게 현장을 지휘했더라면 인명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 구조선과 선박, 헬기 등이 많았지만 선체 외부 인원의 구조활동에 급급해 선체 내부에 있는 인원에 대한 구조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지기 전에 선체 내부에 진입해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여객선 침몰 사고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인원도 부족했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울러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여객선 곳곳에 긴 로프를 연결해 놓았다면 침몰한 뒤 구조와 수색도 좀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사고가 발생하고 침몰하기까지 2시간 20분 동안의 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하지 못해 더 많은 인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을 받고 구조 작업을 위해 가장 먼저 여객선에 접근한 배 두 척이 있었다. 2700t급 연안유조선인 두라에이스호(두라호)와 1500t급 유조선 드라곤에이스11호(드라곤호)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모든 교신 내역을 청취했고 침몰 전 과정을 지켜봤다. 두라호 선장 문예식(60)씨와 드라곤호 선장 현완수(57)씨는 2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월호는 누가 봐도 회복 불능 상태였고 선장이 퇴선(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내리는 등 탈출하는 것) 명령만 했어도 승객 대부분이 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선장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두라에이스, 진도 연안 VTS입니다. 세월호 육안 확인됩니까.” 16일 오전 9시 6분, 진도 인근 해역을 지나 울산으로 가던 두라호에 긴급 메시지가 전달됐다. 진도 VTS에서 온 교신이었다. 두라호의 우측 전방 2.1마일(3.4㎞)에 400여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교신을 접한 두라호는 즉시 속도를 높였다. 10분여 만에 세월호 옆에 접근했다. 문 선장은 “교신을 듣고 우현(배 오른편)을 보니 멀리 침몰하는 배가 보였다”면서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 시속 20노트(약 37㎞) 정도로 우리를 앞질러간 배였다”고 회상했다. 문 선장은 사고해역에서 주춤하던 세월호가 다시 두라호와 맞닥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레이더를 주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오전 9시 15분, 드라곤호도 VTS에 구조를 지원하겠다고 말한 뒤 세월호에 전속력으로 접근했다. 오전 9시 21~22분, 세월호 왼편에 다가선 두라호는 곧장 구조활동을 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호 선장이 당연히 퇴선 조치를 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선박 주변에는 어떤 탈출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배는 5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었다. 현 선장은 “경험 있는 선장이라면 배가 30도만 기울어도 복원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론상 다 나와 있는 얘기”라면서 “퇴선 명령을 당연히 내렸어야 하는데 선장이 머뭇거린 게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문 선장과 현 선장은 모두 “9시 20분이 넘은 시점까지 배의 좌측으로 뛰어내려 얼마든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측은 오전 9시 14분 교신에서 VTS가 “승객 탈출이 가능하냐”고 묻자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VTS 측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며 재촉만 했다. 오전 9시 27~28분, 해양경찰청의 구조 헬기가 세월호 상공에 도착했다. 오전 9시 33분 드라곤호가 접근했고 목포해경 진도파출소의 무전을 받은 인근의 소형민간어선 40여척도 세월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때까지 바다로 탈출한 승객이 없었던 까닭에 작은 배들만 세월호 옆에 붙어 배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승객을 태웠다. 헬기를 통해서도 일부 탑승자들이 구조되기 시작했다. 이준석(69) 선장 등 세월호의 핵심 승무원들도 이때 배를 빠져나갔다. 두라호는 9시 35분 진도 연안 VTS로부터 “구명정, 라이프링(구명튜브) 등을 전부 투하해 세월호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탈출자가 없었다. 문 선장은 “당시 모여든 어선 등이 수십 척은 보였다”면서 “배, 헬기 등이 계속 모여드는 상황이어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구조됐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고 원인으로 ‘급선회’(항로를 급히 바꾸는 것)가 꼽히지만, 두 선장은 “급선회할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 선장은 “침몰 지점이 거친 조류로 유명한 맹골수도로 알려졌지만 사실 좁은 맹골수도를 빠져나온 탁 트인 해역”이라면서 “날씨도 좋았고 암초나 레이더에 잡힌 고깃배도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항로를 틀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현 선장은 “조타수의 실수이거나 조타기 이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경 구조정과 어선, 헬기 등이 부산하게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세월호는 승객 476명 중 170여명만이 구조된 상황에서 오전 11시 20분 침몰했다. 두라호 등 대형 선박은 소형선과의 충돌 우려 탓에 가장 빨리 접근했지만,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빠져 정오가 넘은 시간까지 비극을 지켜봐야만 했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한 행동이…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한 행동이…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한 행동이… 세월호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이 사고 초기 미흡한 초동 대처로 피해를 키운 정황이 드러났다. 해상 사고 발생 후 승객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지만 승무원들은 적절한 판단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구호 조처를 취하라는 교통관제센터(VTS)의 독촉에도 구조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며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20일 공개한 세월호와 진도 VTS의 교신 녹취록에 잘 나타나있다. 녹취록에는 첫 교신이 시작된 16일 오전 9시 6분부터 오전 9시 37분까지 31분간의 교신 내용이 기록돼 있다. 당시 세월호의 선임급 항해사가 교신을 했으며 이준석 선장이 조타실에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세월호와 진도 VTS가 처음 교신한 시간은 16일 오전 9시 6분. 첫 교신 이후 진도 VTS는 세월호가 침몰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배의 상황을 파악했다. 9시 10분 쯤 상황을 묻자 세월호는 “너무 기울어져 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진도 VTS가 승객들이 구명보트에 타고 있냐고 물었지만 세월호는 “배가 기울어 탈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방송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말을 번복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9시23분 교신 내용에서 VTS가 승객들에게 방송해 구명조끼를 입게하라는 지시에는 “현재 방송도 불가능하다”고 답을 하다가 14분 뒤에는 “방송을 했는데 좌현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또 선장이 직접 판단해 탈출을 명령하라는 지시에는 “탈출하면 구조할 수 있냐”는 말만 반복해 되물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9시 17분 교신에는 응급 상황 시 긴급 대피 매뉴얼에 따라 승객들을 안내해야 하는 승무원들이 브리지(조타실)에 모여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녹취록에는 오전 9시12분께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 없다는 교신 내용이 있다. 4분 뒤인 17분에도 배가 50도 이상 기울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24분에는 진도 VTS가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바랍니다.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라고 지시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객실 안 승객들은 탈출 명령을 기다렸지만 선장의 명령은 없었다. 경비정과 헬기가 10분 안에 도착하는 상황에서도 탈출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교신을 한 항해사는 계속해서 구조가 가능한지만 반복했다. 반면, 승무원들은 교신이 끊어진 오전 9시 37분 쯤 배를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교신이 끊기고 3분 뒤 승객과 승무원 등 150∼160명이 세월호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배의 수장인 선장 이씨는 첫 번째 구조선을 타고 탈출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 시간 실종자 대부분은 선체에 대기하라는 방송만 믿고 객실 안에 남아 있었다. 진도 VTS의 지원 요청을 받고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온 한 선박은 오전 9시 14분 쯤 세월호에서 빠져나오는 구명보트를 목격했다. 이 선박은 진도 VTS에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 (본선은) 기울어져서 접근하기 위험합니다”라고 상황을 알렸다. 이 구명보트에 누가 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승무원들이 탔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장 박모(54)씨는 수사본부에서 “선장이 위험하니 탈선을 하라는 말을 듣고 9시 쯤 기관실을 벗어났다”고 진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삼성 SDS 화재, 삼성카드 온라인 결제 중단

    삼성 SDS 화재, 삼성카드 온라인 결제 중단

    20일 소방당국은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에 있는 삼성 SDS 데이터 센터 4층에서 불이 나 진화에 나섰다고 전했다. 과천소방서는 이날 12시25분쯤 화재정보를 입수하고 바로 출동에 나섰고 초동진화를 위해 안양 군포등 인근지역 소방서에 지원요청 및 관내 소방대원들 전원 비상발령을 내렸다. 오후 1시 32분, 헬기 지원요청을 했고 불길이 잘 잡히지 않자 3시29쯤 본부 소방헬기 추가 지원요청에 나서는 등 분주히 진화 작업에 나섰다. 당국은 소방인력 209명, 차량 55대, 헬기 5대, 고가차 3대, 화학차량 2대 등을 동원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현재 화재건물은 유독가스를 내뿜고 일부 건물외벽은 구멍이 뚫리면서 불길이 새나오고 외관벽도 몇 군데 떨어져 나가는 등 시간이 갈수록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완전 진화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없으나 삼성 SDS 협력업체 직원 1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SDS는 이날 화재에 대응 차원에서 삼성카드 서버를 차단했다. 이에 현재 삼성카드의 공식 홈페이지와 모바일 홈페이지, 온라인 쇼핑몰, 앱을 통한 삼성카드 온라인 결제 서비스가 중단됐다. 사진 = 스포츠서울닷컴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눈물도 마른 가족들]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어, 손 잡아!” 그 아저씨가 교감 선생님이었다니…

    [세월호 침몰 참사-눈물도 마른 가족들]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어, 손 잡아!” 그 아저씨가 교감 선생님이었다니…

    “교감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요. 감사하고, 또 죄송할 따름입니다.” 지난 16일 오전 8시 40분쯤, 친구 5명과 함께 제주 여행을 위해 세월호에 탑승했던 대학생 A(21·여)씨는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5층 객실에 있던 A씨는 조금씩 기우는 배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복도를 엉금엉금 기어가 구명조끼를 간신히 입었다. 직감적으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학생들의 탈출을 돕던 중년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재빨리 탈출구를 찾아 문을 열었다. A씨 일행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배가 기운 탓에 여자 힘으로는 쉽지 않았다.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팔에 힘이 풀려 포기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그 남성은 앞장서 출입구를 열고 올라가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 힘이 들더라도 여기로 올라와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A씨 일행을 독려했다. 힘을 얻은 A씨는 다시 탈출을 시도했고, 그가 손을 잡고 끌어줘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A씨 일행은 구조헬기를 타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는 A씨와 함께 헬기에 오르지 않았다. 먼저 구조될 수 있었음에도 “빨리 나와라. 이쪽으로 와라”고 외치며 끝까지 학생들을 구하다 나중에야 배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단원고 교감 강모(52)씨였다. 강 교감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수학여행단의 총책임자로서 가슴 한편에 죄책감이 남았던 모양이다. 구조된 단원고 후배 교사들이 실종 학생 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원망을 듣는 모습도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결국 마음의 짐을 덜어내지 못한 강 교감은 지난 18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저를 구해준 분이 교감 선생님인 줄 몰랐지만 뉴스에 나온 모습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면서 “감사한 마음에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교감 선생님 본인이 먼저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학생들을 구하려고 동분서주 돌아다녔고, 내가 눈으로 본 것만 6~7명을 구했다”면서 “최선을 다하셨는데 돌아가시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 교감은 목숨을 끊기 전에 유서를 남겼다. 두 장짜리 유서에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줘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선생님이었다. 진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아사히 “세월호 인양,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

    아사히 “세월호 인양,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

    지난 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인양이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0일 “세월호(6825t)의 길이는 146m로 50층짜리 건물이 옆으로 누워 있는 것과 같은 데다 배에 바닷물이 들어가 더 무거워져 있다. 여러 대의 크레인으로 선체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균형이 무너지면 배가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일본 해상 전문가들 견해를 전했다. 야마다 요시히코 도카이대학 교수는 “크레인으로 선체를 고정한 뒤 구멍을 내 내부를 조사하는 게 우선이다. 그후 배를 잘라서 인양할 지 그대로 인양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여객선의 인양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9년 11월 일본 미에현 앞바다에서 침몰한 아리아케(7910t)호의 인양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리아케호도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내부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 등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복원력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 침몰했다. 세월호와 달리 탈출이 재빠르게 이뤄져 승객 7명을 포함한 29명의 탑승자 전원이 헬기 등으로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나 인양은 극도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인양을 맡은 업체는 배를 4등분으로 잘라 인양하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2010년 3월 선수와 선체 앞부분이 5m의 강한 파도를 맞고 절단돼 깊이 20m 해저에 다시 가라앉았다. 이 과정에서 배의 화물과 기름이 유출돼 주변 어장에 피해를 입혔다. 결국 가라앉은 부분을 다시 50~100t짜리 덩어리로 잘라 인양하느라 결국 침몰한 지 1년이 넘은 이듬해 12월에야 인양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세월호의 인양 조건은 아리아케호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이다. 인양의 편의성을 위해 배를 절단하면 시신이 훼손되거나 유실될 수 있어 배를 통째로 들어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곳은 유속이 빠르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맹골수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진도VTS와 교신 내용] “구조되겠나” 말만 되풀이… 골든타임 놓쳤다

    [세월호 침몰 참사-진도VTS와 교신 내용] “구조되겠나” 말만 되풀이… 골든타임 놓쳤다

    세월호가 지난 16일 오전 침몰 당시 진도교통관제센터(VTS)의 탈출 권고를 무시한 채 승객을 탈출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도VTS와의 31분간 교신 과정에서 세월호에 “선장이 상황을 판단해 승객을 탈출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지시를 지킨 것은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뿐이었다. 20일 검경합동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진도VTS가 세월호를 처음 호출한 것은 16일 오전 9시 6분. 제주VTS가 세월호의 신고를 받은 8시 55분 이후 약 11분이 지나서였다. 진도VTS는 세 차례나 다급하게 세월호를 호출했다. 9시 7분 세월호가 응답했다. 진도VTS가 “지금 침몰 중이냐”고 묻자 세월호는 “그렇다. 해경 빨리 좀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진도VTS는 둘라에이스와 드레곤에이스 등 인근의 다른 선박에 구조 협조를 부탁했다. 이어 9시 10분쯤 세월호에 상황을 묻자 세월호는 “너무 기울어져 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진도VTS가 9시 14분쯤 승객들의 탈출 가능 여부를 묻자 세월호는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9시 17분쯤 진도VTS가 배 상태에 대해 묻자 세월호는 “지금 50도 이상 왼쪽으로 기울어져 좌우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선원들에게는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고 했는데 입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침수 상태를 묻는 질문에 세월호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브리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어 벽을 잡고 겨우 버티고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급박한 것을 느낀 진도VTS는 9시 23분쯤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착용토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세월호는 “방송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답했다. 이어 진도VTS는 “최대한 나가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꺼운 옷을 입도록 조치하라. 라이프링(구명대)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라. 빨리”라고 긴박한 무전을 전했다. 하지만 세월호의 대답은 의외였다. 세월호는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중국 선박 잉샹호 등이 인근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9시 18분 진도VTS와의 교신에서 둘라에이스호는 “사람이 탈출을 안 하면 배를 나란히 붙이는 작업을 할 수 없다. 최대한 접근 선회하면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9시 25분쯤 진도VTS는 최종 판단을 선장에게 넘겼다. 진도VTS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이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을 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려라”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측은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묻기만 했다. 이미 7분 전부터 국내외 선박 등이 바로 옆에서 구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다. 진도VTS는 다시 “경비정 10분 이내에, 헬기는 1분 후 도착한다”고 알렸다. 이에 세월호는 “승객이 너무 많아 헬기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다른 선박들의 구조 동참 가능이 확인된 이후 9시 35분쯤 진도VTS는 “탑재된 구명벌과 구명정을 모두 투하시켜 바로 사람이 탈출하면 탈 수 있게 준비 바란다”고 요구했으나 이때부터 교신 감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교신은 9시 38분쯤이었다. 진도VTS가 상태를 묻자 세월호는 “확인 불가하고, 해경과 상선들이 50m 옆에 근접해 있다. 좌현으로 탈출할 사람만 탈출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선체는 이미 60도 이상 기운 상태였다. 이후 세월호와 진도VTS의 교신은 끊겼다. 교신이 끊기고 3분 뒤 승객과 승무원 등 150∼160명은 세월호에서 뛰어내렸다. 결국 선장 이준석(69)씨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을 때 구조가 이뤄질지를 우려만 하다 오히려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진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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