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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0년간 유럽 기온 상승폭, 세계 평균 2배”

    “지난 30년간 유럽 기온 상승폭, 세계 평균 2배”

    지난 30년간 유럽의 기온이 전 세계 평균 대비 2배 이상 빠르게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에너지 위기로 인한 화석연료의 부활에 저항한 ‘기후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오는 6일 막을 여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각국 정상들의 참석 여부가 주목된다. 2일(현지시간)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에 따르면 1991~2021년 유럽의 기온은 10년 마다 평균 0.5도씩 상승했다. 이 여파로 알프스 지역의 얼음 두께는 30m가 줄었고, 그린란드 얼음층이 녹아 해수면 상승을 일으켰다. WMO는 유럽의 온난화 현상이 세계 다른 지역보다 두드러지고, 평균 기온 상승 폭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의 속도로 상승 중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육지 비중이 높아 바다보다 빨리 따뜻해지고,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온난화 지대인 북극에 인전한 탓으로 분석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럽 각국의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환경운동가들의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AP통신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이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의 훼손을 시도한 벨기에 출신의 기후활동가 3명 중 2명에게 각각 징역 2개월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 소속 운동가로 지난달 27일 헤이그의 미술관에 침입해 본드를 묻힌 머리와 손을 액자 유리에 갖다 대 훼손하려 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영상을 통해 “아름다운 명화가 눈 앞에서 훼손되는 것을 보는 기분이 어떠냐”며 “우리 행성이 훼손되는 것을 보는 것도 같은 기분” 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화석 연료 사용에 반대하는 ‘울티마 제네라지오네’(Ultima Generazione·마지막 세대라는 뜻)라는 환경단체가 도로 봉쇄 시위를 벌여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환경 시위가 잇달아 벌어지는 상황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6~18일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개막하는 COP27의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불참한다고 밝힌 리시 수내 영국 신임 총리가 참석하기로 방침을 바꿨고, 브라질 최초의 3선 대통령이 된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당선인도 참석을 예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은 불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COP27은 기후위기에 대한 선진국들의 책임을 묻는 ‘기후정의’ 문제와 개발도상국에 대한 피해 보상 등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명화 훼손 시도’ 기후활동가들 한 달 징역형

    ‘명화 훼손 시도’ 기후활동가들 한 달 징역형

    화석연료 사용에 반대하며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훼손하려 한 기후활동가들이 1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됐다. 2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체포된 벨기에 국적의 기후활동가 3명 중 2명에게 각각 징역 2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1개월은 집행을 유예했다. 신속 재판을 거부한 다른 한 명은 오는 4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 소속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지난달 27일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급습, 자신들의 머리와 손에 접착제를 바른 뒤 명화를 덮고 있는 유리에 갖다 대는 방식으로 작품 훼손을 시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이들은 “아름답고 귀중한 무언가가 당신 눈앞에서 훼손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어떠냐”며 “우리 행성이 훼손될 때도 바로 그런 기분”이라고 주장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거장 얀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전 세계에 불과 30여점만 남아 있을 정도로 귀하다. 앞서 검찰은 이들의 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 시위의 선을 넘었다고 지적하며 이들에게 징역 4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작품이 훼손되지 않았지만, 유리 덮개를 갈아야 했고 기타 부수적 피해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목적이 얼마나 중요하든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다”며 “명화는 감상하는 것이지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후활동가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ㄹ런 과격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포츠담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전시된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끼얹는 시위를 벌였고,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뿌렸다. ‘저스트 스톱 오일’은 이번 선고와 관련, “지구 생명의 대량 학살에 비폭력으로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기후활동가들이 벌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 아닌가”라고 따졌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 “이상설 선생 유물을 찾습니다. 도와주세요”

    “이상설 선생 유물을 찾습니다. 도와주세요”

    충북 진천군이 이상설 선생 기념관에 전시할 유물을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2일 군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이상설 선생 유물 공개모집을 진행하고 있지만 확보된 유물이 6점에 그치고 있다. 이상설 선생 친동생인 이상익 선생의 자손 이승재씨가 기증의사를 밝혀온 유물까지 합해도 총 50점이다. 공개모집 기간은 오는 12월31일까지다. 군은 이상설 선생이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소각하라는 유훈을 남겨 유물 찾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유물확보가 난관에 부딪히자 군은 진천문화원 등과 민관합동실무추진단을 구성했다. 추진단은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아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상설 선생이 활동한 중국과 러시아도 방문해 유물수집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유물수집 협조공문도 보낸 상태”라며 “이상설선생 기념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의 현장이 될수 있도록 유물수집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군을 유물 기증자에 감사패를 수여할 계획이다. 기념관은 76억원이 투입돼 진천읍 산척리에 건립중이다. 준공은 내년 6월말 예정이다. 현재 공정률은 62%다. 1870년 12월 진천군 덕산면 산척리에서 태어난 이상설 선생은 일제강점기 헤이그특사, 권업회 회장, 신한혁명단 본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다. 영어, 수학, 물리 등 신학문에 능통했던 근대 학문의 선구자로 1906년 만주 용정에 최초의 근대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하기도 했다. 투병생활을 하다 1917년 3월 2일 망명지인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48세로 서거했다.
  • 반크 “첫 외국인 한국 홍보대사는 헐버트 박사”

    반크 “첫 외국인 한국 홍보대사는 헐버트 박사”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가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를 우리나라 역사 속 ‘첫 외국인 한국 홍보대사’로 규정하고, 그를 알리는 영상을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배포한다고 5일 밝혔다. 미국 출신인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조선에 와 육영교사로 일하며 한국 역사·문화에 관한 단행본 20권, 논문·기고문 304편을 발표하는 등 구한말 친한파로 활동하며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1905년 미국에서 고종의 밀사로서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을사늑약이 무효라며 외교 활동을 벌였고, 헤이그 특사로 네덜란드에 파견돼 일제 침략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4분 분량의 영상에는 ‘배우 이민호, 축구선수 손흥민, 아이돌 ITZY(있지), 여러분이 생각하는 한국 홍보대사는 누구입니까?’라는 제목이 달렸다. “시대·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처럼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도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헐버트 박사는 역사학자 그리피스의 책 ‘은둔의 나라’(Hermit Nation)에 대해 “조선에 한 번 와 보지도 않고 일본에 머물며 책을 썼다”고 비판하는 등 일제 주도로 굳어진 한국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데도 앞장섰다.
  • 때릴수록 커진다…트럼프 존재감

    때릴수록 커진다…트럼프 존재감

    차기 대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입지가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계기로 오히려 공고해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날 치러진 공화당의 와이오밍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반(反)트럼프 선봉’에 섰던 리즈 체니 하원의원이 완패했다. 99% 개표 기준 28.9%의 득표율로 친(親)트럼프 후보인 해리엇 헤이그먼(66.3%)에게 크게 밀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출신인 헤이그먼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체니 대항마로서 적극 지원했던 터라 체니의 패배는 곧 트럼프의 대승을 의미한다. 특히 지난해 ‘1·6 의사당 폭동사건’ 선동 책임을 물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할 때 체니와 함께 찬성표를 던졌던 공화당 의원 10명 가운데 2명만 예비경선에서 살아남아 ‘트럼프 파워’가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체니의 패배를 놓고 미 정가에서는 지난 8일 FBI의 압수수색이 보수층을 집결시키며 트럼프 측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공화당)은 “대다수 우리당 지지층은 FBI가 부패했고 트럼프를 박해하고 있다고 여긴다”면서 “이런 추세가 유지되면 당에서 트럼프 경쟁자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 컨설턴트인 존 토머스는 워싱턴포스트(WP)에 “압수수색은 트럼프를 희생자로 만들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 출마를 원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도 “FBI에 대한 보수층의 분노가 트럼프의 당내 장악력을 강화시켰다”고 보도했다. 실제 트럼프 지지율은 압수수색 후 상승했다. 폴리티코와 모닝컨설트의 지난 11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층과 공화당 성향의 무소속 유권자 57%가 ‘오늘 경선이 진행되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달(53%)보다 4%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체니 의원이 17일 NBC방송의 투데이에서 “트럼프 저지를 위한 조직 출범과 대선 도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폴리티코 등 외신들은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 ‘서울신문’ 모체 대한매일신보 창간 배설 선생 기념우표 나온다

    ‘서울신문’ 모체 대한매일신보 창간 배설 선생 기념우표 나온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대한독립에 헌신한 ‘대한 외국인’을 주제로 기념우표가 발행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호머 베잘렐 헐버트(1863~1949·한국명 헐벗)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 선생의 모습이 담긴 기념우표 64만장을 발행했다고 12일 밝혔다. 헐버트는 1886년 조선에 들어와 근대식 공립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활동했으며 1891년 한국 최초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썼다. 또 한국 첫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을 돕고 영문판 편집 업무도 했다.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1905년 고종 황제의 밀사로 미국을 방문해 무효임을 호소하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일본 침략주의를 규탄하고 한일 협약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이후 미국에서도 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38년 동안 투쟁한 헐버트는 1949년 “나는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는 유언을 남겨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당시 태극장)에 추서돼 대한민국 독립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았고, 2014년에는 한글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영국인인 베델은 1904년 러일전쟁 직후 데일리 클로니클 특파원으로 한국에 들어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해 강력한 항일 논조로 일제 만행을 규탄했다. 대한매일신보는 현재 서울신문으로 이어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118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베델은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반대를 시작으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고종이 을사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친서를 게재하는 등 일제 침략의 문제점들을 폭로했다. 1909년 베델은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치된 베델에게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됐다.이번에 발행된 기념우표 변지(우표가 인쇄되지 않은 가장자리)에는 헐버트의 업적인 사민필지와 아리랑 악보, 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와 유품인 태극기를 담았다. 이번에 나온 기념우표는 가까운 우체국이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서 구매할 수 있다.
  • 강명구의 평화 달리기 400일, 이번에는 동에서 서로 뛴다

    강명구의 평화 달리기 400일, 이번에는 동에서 서로 뛴다

    2018년 유라시아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달리며 평화통일을 외쳤던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이번에는 동에서 서로 달리는 유라시아 횡단 평화 마라톤에 나선다. 해서 ‘아시럽 평화달리기 400일’로 이름 붙였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는 2017년 9월 1일부터 이듬해 12월 1일까지 손수레에 ‘한반도평화통일의 깃발’을 꽂아 끌며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 1만 5000㎞를 달렸다. 이번 아시럽 평화 달리기 400일은 오는 21일(일) 제주 한라산 백록담에서 기원제를 열고 다음날 제주시에서 출정식을 갖고 울릉도 독도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익산 대구 대전 광화문을 달려 9월 22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출정식을 갖는다. 그 뒤 10월 1일 하노이를 출발해 베트남을 종주하고 캄보디아, 태국, 방글라데시. 인도, 이란, 이라크, 터키, 그리스, 북마케도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바티칸 교황청까지 19개국 1만 1000㎞를 내달린다. 이번 행사의 목적은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국제 여론 조성, 세계 종교 지도자와 평화 운동가를 찾아 평화 담론 환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판문점 평화 미사 집전 실현으로 정해졌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는 프란시스코 교황에게 ‘지금 제 몸이 온전치 않으나, 사도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를 함으로써 그가 그리스도의 평화의 도구가 되었듯이 저를 그런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기를 간곡히 청원하기 위하여 아시럽 대륙 1만 1000㎞를 달려왔습니다. 한반도의 가장 아픈 질곡인 판문점에서 교황 성하께서 치유와 상생과 화해의 크리스마스 성탄미사를 집전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한반도의 통일 역사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교황 성하의 성스러운 발걸음이 판문점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판문점은 극한의 기운이 대립하는 공간이 아니라 세계적인 평화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밝힐 예정이다. 또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 되는 내년 성탄절 미사를 판문점에서 집전하도록 청원하겠다는, 1907년 이준 열사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가는 심정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의 송인엽 공동대표는 이번에 제주에서 로마까지 달리며 내건 기치는 ‘평화! 더 뜨겁게, 더 간절히’라며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응원을 부탁했다. 또 지난 제1차 유라시아 횡단 평화마라톤이 아쉽게도 중국 단동에서 멈추고 압록강을 못 건너 미완으로 남아있는 북녘달리기(신의주~평양~성~판문점~서울)가 8000만 동포들의 성원으로 불원간 성사되길 염원한다고 밝혔다.한편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1차 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을 진행하면서 관찰하고 사색한 여행기록과 한반도평화를 염원하는 글이 책 세 권으로 엮여져 지난달 출간했다. 출판기념회를 17일(수) 오후 7시 서울 글로벌센터(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9층에서 연다.
  • “전범 법정에 선 김정은이 걱정하는 것은” 영국 가수의 노래

    “전범 법정에 선 김정은이 걱정하는 것은” 영국 가수의 노래

    세상에나, 영국 싱어송라이터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다. 제이미 T(본명 제이미 트리스)란 가수인데 새 앨범 ‘아무거나 이론’에 수록한 ‘5만개의 표시안된 탄환들(50000 Unmarked Bullets)’이 문제의 트랙이란 것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영국 BBC가 24일 전했다. 사실 가사를 보면 암호처럼 돼 있어 김 위원장 얘기인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BBC 뮤직의 마크 새비지 기자가 김 위원장 얘기란 것을 눈치채게 만든 것은 “굴림겐의 기숙학교”란 가사였다. 김 위원장이 10대이던 1990년대 말 박철이란 가명으로 유학했던 스위스 베른 근처 작은 도시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제이미는 기자가 가사의 그 대목을 지적하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잘했어요. 조사 잘했네”라고 말한 뒤 잠시 멈추고 “음, 당신이라면 김정은에 대한 가사를 쓴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그냥 연습 삼아 써본 것이며 “독재자의 아들이 가장 유감스러워하는” 대목을 상상하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그가 헤이그 전범재판 법정에 있으면서도 바칼로레아 성적표가 학교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보냈던 낭만적인 기억을 해칠까봐 걱정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여자친구가 자신의 성적을 듣지 않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면 둘의 로맨스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보다 그것 때문에 속상해 한다는 것이었다.” 트리스는 ‘St George Wharf Tower’란 수록곡에 대해 설명할 때는 훨씬 편안해 보였다. 이 건물은 그가 태어난 윔블던이 속한 런던에서 가장 높은 주거용 마천루인데 소유주의 3분의 2 이상이 러시아 올리가르히들과 쿠르드족 석유 재벌을 비롯한 외국인들이었다. 15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인디계의 보물”이나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는 2010년대 갑자기 사라져 5년 동안 종적을 감췄다. 팬들은 그가 살아 있는지에조차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다행히 생존해 있었다. 계속된 투어 공연에 지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고갈됐다는 것이 잠적 이유였다. 그랬다가 펍에서 싸움박질을 해 기소됐다. 2014년 음악계로 복귀해 인디음악 애호가들의 국가 얘기를 듣던 ‘Zombie’를 히트시켰고 2년 뒤에는 여러 장르를 뒤섞은 ‘Trick’으로 자신의 음악 경력에 최고의 리뷰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 뒤 또 6년 동안 대중의 눈으로부터 사라졌다. “답이 진짜 지루할 것”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그는 “뭔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쓴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충분히 해 본 일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낙 다작인 그는 이번 새 앨범을 앞두고 무려 200곡이 넘는 노래를 썼다고 했다.
  • “다운증후군 4살 아이 미사일 공격에 숨져” … 우크라 빈니차 비극

    “다운증후군 4살 아이 미사일 공격에 숨져” … 우크라 빈니차 비극

    “이 사랑을 또 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중서부 도시 빈니차에 거주하는 아이라 드미트리에바의 인스타그램에는 딸 리사(4)와 꽃놀이를 즐기고 서로 껴안은 사진이 가득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리사는 14일(현지시간) 엄마와 함께 언어치료센터에 들렀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리사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엄마 아이라는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안톤 게라쉬첸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고문이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공개한 사진에는 리사가 피를 흘리며 절단된 성인의 시신 옆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담겼다.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책본부는 텔레그램에서 “오늘 러시아군에 의해 살해된 어린 소녀 리사가 한 줄기 햇살이 됐다”면서 “우리가 너를 구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추모했다. 웨딩홀·스튜디오 등 일상 덮친 미사일 … 평온하던 일상 무너져 14일 러시아군의 잠수함이 발사한 순항미사일이 덮쳐 어린이 3명을 포함한 민간인 23명이 숨진 빈니차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남쪽으로 약 260㎞ 떨어진 도시다. 이 지역은 전쟁 초기인 3월 초 러시아군의 순항미사일이 공항을 공격한 이후 전쟁 속에서도 조심스레 일상을 이어갔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공격은 주거 지역과 웨딩홀과 쇼핑센터 등 민간인들이 일상을 보내는 장소를 순식간에 전쟁터로 만들었다. 공습 직전, 신혼부부들은 이 지역의 랜드마크인 결혼식장에서 들뜬 표정으로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는 멋을 부린 학생들이 스튜디오에서 졸업앨범에 실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날아들면서 웨딩홀은 유리 파편으로 뒤덮였고 건너편 웨딩숍은 창문이 뻥 뚫린 채 갈갈이 찢어진 웨딩드레스가 바람에 흩날렸다. 번화가의 상점들은 온통 잿더미가 됐으며 길거리에는 주인을 잃은 유모차가 나뒹굴었다. 구조당국에 따르면 이번 공격으로 건물 50채 이상이 파괴되고 100여명이 다쳤으며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전쟁의 시름을 잃고 잠시나마 평온을 되찾았던 주민들은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전쟁 초기 피란을 떠났다 돌아왔다닌 바딤 라분(34)은 미 뉴욕타임스에 “최근에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지난달 19명의 사망자를 낸 동부 크레멘추크 쇼핑센터 공습과 이달 초 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도네츠크주 치시우야르 아파트 공습 등에 이어 또다시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겨냥한 공습이 되풀이되는 것은 정밀 무기가 부족한 러시아군이 ‘묻지마’ 발포를 일삼으며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의도라고 미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방부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담당했던 에블린 파르카스 매케인 연구소 소장은 “러시아군의 전쟁에서 민간인의 인권 침해는 언제나 그 일부였다”고 지적했다. 45개국, 전범 수사에 2000만 달러 지원 합의 국제사회는 강경 대응에 뜻을 모았다.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러시아의 전쟁범죄 책임 규명을 위해 개최된 ‘우크라이나 책임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빈니차 공격을 “공개적인 테러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단죄하는 특별법정을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민간인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와 야네스 레나르치치 인도적 지원·위기관리 담당 EU 집행위원도 성명을 통해 “러시아군과 그들의 정치적 상급자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미국과 유럽연합(EU)등 45개국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조사 지원을 위해 ICC와 유엔에 2000만 달러(263억원)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에 서명했다. 지원금은 우크라이나 검사들에 대한 법적·기술적 조력과 중복 수사를 피하기 위한 체계 수립 등 우크라이나와 각국 및 국제기관들이 개입하는 전쟁범죄 수사와 처벌 과정에서 조율을 통해 혼선을 줄이는 데에 쓰인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숨을 죽인 채 어제를 슬퍼하고 오늘과 내일을 걱정하고 있다”면서 “법은 더이상 구경꾼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STOP 푸틴] 러軍, 우크라 서부 도시에 미사일 폭격…20여명 사망

    [STOP 푸틴] 러軍, 우크라 서부 도시에 미사일 폭격…20여명 사망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빈니차에 미사일 폭격을 가해 20여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이날 오전 발사한 미사일 5발 중 3발이 우크라이나 빈니차 도심에 떨어져 최소 23명이 사망,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나머지 미사일 2발은 우크라이나 방공망에 요격됐다.우크라이나 재난 당국은 9층 민간 건물과 병원, 주민센터 등의 일대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특히 미사일 공격은 사람이 붐비는 평일 오전 10시 50분쯤 발생해 피해 규모가 더 컸다.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3명이 포함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게시된 한 사진에는 도로 옆에 쓰러진 유모차 및 4세 여자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쓰러져 숨져 있는 모습이 담겼다. 사망한 어머니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딸과 함께 언어치료 센터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빈니차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남쪽으로 약 260㎞ 떨어진 인구 37만명의 도시로, 우크라이나는 군사적 가치가 없는 이 지역에 대한 공격이 ‘공개적 테러’라는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매일 민간인을 대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공개적인 테러 행위”라고 비난했다. 군사 시설이 아닌 민간 거주시설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이번 미사일은 칼리버 순항미사일로 흑해상 러시아 잠수함에서 발사됐다. 세르히 보르조프 빈니차 주지사도 “칼리버 순항미사일은 고정밀 미사일이다. 러시아는 의도적으로 민간인 건물을 표적 공격했다”고 맹비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민간인 공격 혐의와 관련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공격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의 친푸틴 평론가인 마르가리타 시모냔 러시아 국영방송 RT 편집국장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나치(우크라이나군)를 수용하고 있는 콘서트홀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콘서트홀은 이번 미사일 공격에 파괴된 곳 중 하나다. 한편, 러시아군의 빈니차 공격 소식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대한 회의가 열리는 중 나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회의에서 “러시아가 또다른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헤이그에서 열린 회의에선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을 포함한 45개국이 만행에 대한 증언을 듣고 조사를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또 우크라이나 검찰청과 법원에 대한 2000만 달러(약 264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 [속보] 우크라 서부 도시에 러 미사일 공격…어린이 등 민간인 최소 12명 사망

    [속보] 우크라 서부 도시에 러 미사일 공격…어린이 등 민간인 최소 12명 사망

    젤렌스키 “어린아이까지 숨진 테러”빈니치, 군사적 가치 없어 러 공격 논란러 “고의로 민간인 공격한 적 없어” 고수우크라이나의 서부 도시 빈니차에 러시아가 미사일 공격을 가해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최소 12명이 사망했다고 14일(현지시간) 로이터와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빈니차 도심에 러시아 미사일 3발이 날아와 어린이 1명을 포함해 민간인 12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고 우크라이나 재난 당국이 밝혔다. 이호르 클리멘코 우크라이나 경찰청장은 “미사일이 사무실 단지와 근처 주거지 건물을 공격했다”면서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 주차장의 차량까지 불탔다”고 전했다. 소방대가 출동해 진화 작업에 나섰으나 불에 탄 차량은 50여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니차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남쪽으로 약 260㎞ 떨어진 인구 37만명의 도시로, 우크라이나는 군사적 가치가 없는 이 지역에 대한 공격이 ‘공개적 테러’라는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을 통해 “사상자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다”면서 “이것이 테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비난했다.우크라 외무 “우크라 피눈물에 대해러시아 전범을 재판대 세울 것”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트위터에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전쟁범죄에 대한 회의가 열리는 가운데 러시아가 또 다른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면서 “우리는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피눈물에 대해 러시아 전범을 재판대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전날에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민간인 5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 사건에 대해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로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우크라, 남부 요충지 헤르손 공세 재개“점령군 13명 사망”…러 국방 침묵 한편 러시아군 점령지 탈환에 나선 우크라이나는 남부 헤르손 지역을 상대로 한 공세를 재개했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르히 브라추크 오데사주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주의 노바 카호우카에 있는 군사 검문소 2곳과 착륙장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격으로 13명의 점령군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관련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직 입장 표명이 없다. 헤르손은 2014년 러시아가 무력으로 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맞붙은 지역이다.우크라이나 최대 물동항인 오데사로 가는 길목인데다, 일대 전력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력발전댐과 크림반도로 향하는 북크림 운하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우크라이나군이 노바 카호우카를 공격한 것은 이번 주 들어 두 번째다. 앞서 이달 12일에는 공습과 장거리 로켓을 동원한 공격으로 52명의 러시아군을 사살하고, 탄약고와 다수의 장비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러시아가 헤르손을 점령한 후 임명한 블라디미르 레온티예프 시장은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민간 시설이 파괴됐으며 민간인 최소 7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타스 통신은 폭격으로 가연성이 매우 높은 초석을 보관한 창고가 폭발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헤르손 수복을 위한 대규모 작전을 예고하고 해당 지역 주민에게 대피를 촉구한 뒤 이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 [우버 파일 2] 감독하랬더니 네덜란드 진출 돕고 자리 알아봐

    [우버 파일 2] 감독하랬더니 네덜란드 진출 돕고 자리 알아봐

    ‘우버 파일’의 폭발력이 상당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당시 부통령)을 비롯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당시 경제산업장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당시 함부르크시장),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부 장관, 마르크 뤼트 네덜란드 총리 등 쟁쟁한 지도자들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그 가운데 유럽연합(EU) 지도부의 일원이며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부위원장인 닐리 크로스와 우버의 유착은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됐고 더 깊은 관계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녀는 위원들의 행동을 규정한 조항을 명백히 위반했다. 나아가 2014년 11월 EU를 떠나기 직전까지 우버 자문위원회에 합류하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한다. EU 규정에 따르면 크로스가 맡은 커미셔너란 자리는 “냉각기(쿨링 오프)”를 준수해야 하며, 퇴직 후 18개월 안에 새 직업을 구하려면 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녀는 유럽의 디지털 및 경쟁 정책을 감독했던 빅 테크의 유명 인사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에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직책을 물러난 뒤 일할 수 있었던 모든 회사 가운데 우버는 특히 논란의 여지가 다분했다. 모국인 네덜란드에서도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팝은 법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했다. 우버 운전자는 2014년 10월에 체포됐으며 두 달 뒤 헤이그 법원은 우버팝을 금지하고 10만 유로까지 벌금을 매기겠다고 으르렁댔다. 이듬해 3월 네덜란드 경찰이 우버 암스테르담 사무실을 급습했다. 그런데 이메일에 따르면 크로스는 장관들과 정부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압수수색을 그만 두라고 설득했다. 일주일 뒤 다시 압수수색이 이뤄졌는데 크로스는 네덜란드 장관에게 연락했으며,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공직 책임자를 괴롭혔다. 내부 이메일은 직원들에게 그녀의 비공식적인 관계를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입막음했다. “네덜란드와 다른 곳에서 그녀의 평판과 해결책을 협상하는 능력은 사무실 안팎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농담 때문에라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번 파일은 크로스가 메시지를 네덜란드 총리실에 전하길 원했음을 보여준다. 2015년 10월 이메일에는 “우리는 닐리, 총리실 비서실장과 함께 뒷통로를 사용해 그들에게 승리라고 알려줌으로써 최대한의 이점을 얻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특별 윤리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18개월(냉각기)이 끝나기 전에 우버 자문위원회에 합류할 수 있도록 승인을 요청하고 장클로드 융커 EU 위원장에게 호소했다. 물론 거부당했지만 문서에 따르면 크로스는 냉각 기간이 끝난 직후 임명이 발표될 때까지 우버를 비공식적으로 계속 도왔다. HEC 파리의 장 모네 석좌교수인 알베르토 알레만노는 크로스가 규칙을 “명백하게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면서 “그녀가 허가를 요청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회색 영역이 있고, 회색 영역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어 크로스와 우버의 유착을 드러낸 모든 자료를 살펴보며 “이 상황을 방지했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시스템이 목적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크로스는 쿨링 오프 기간이 끝나는 2016년 5월 이전에 “우버에서 어떤 공식, 비공식 역할도 하지 않았다”면서 EU 위원으로서 “공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항상 주도적으로” 수많은 기술 회사와 교류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정부도 냉각기 동안 “기업 친화적이고 환영하는 생태계”를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기업, 정부 및 비정부 기관”과의 상호 작용을 포함하는 신생 기업을 위한 특별 대사를 임명했다”면서 “2015년에 우버는 스타트업으로 간주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우버는 크로스가 2018년에 자문 위원회를 떠났고 그 뒤 유럽에서 ”정책 입안자들과의 로비 및 외부 참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새로운 지침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우버 파일 1 보러 가기 우버 파일 3 보러 가기
  • 소설 ‘파친코’ 개정판 27일 출간…2권은 언제?

    소설 ‘파친코’ 개정판 27일 출간…2권은 언제?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가 판권 문제로 절판된 지 3개월 만인 오는 27일 정식 출간된다.4일 출판계에 따르면 출판사 인플루엔셜은 27일 파친코 개정판 1권을 출간한다. 2권은 8월 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개정판의 번역은 번역가 신승미씨가 맡았다. 소설 ‘파친코’는 한인 가족 디아스포라 소설로, 부산 영도에 살던 선자가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며 재일한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2018년 출간됐지만, 애플TV+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역주행,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앞서 지난 4월 문학사상사와 계약 기간 만료와 재연장 불허로 소설 ‘파친코’는 판매 중단 사태를 겪었다. 이후 인플루엔셜이 소설의 판권을 가져왔으며 번역을 새로했다. 인플루엔셜은 일본의 유명 심리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 영국의 인기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매트 헤이그의 판타지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등을 펴낸 출판사다. 이번 개정판에는 작가가 쓴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이슬람 개종자 스코틀랜드 고원 순례하는 이유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이슬람 개종자 스코틀랜드 고원 순례하는 이유

    스코틀랜드 북서부 하일랜드 글렌 카론 지역의 숲속 주차장에 차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곧이어 스무명 정도가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약간의 비가 예보돼 모두 모자를 쓰거나 후드로 덮었는데 여성들은 히잡을 두른 것을 보면 무슬림들이다. 이들은 이곳으로부터 10㎞정도 떨어진 웨스트 로스의 글린 피오드헤이그에 있는 이블린 코볼드 부인의 묘지를 찾아 가는 순례자들이다. 주말이면 이곳 주차장에 수백대의 차량이 주차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고 BBC는 14일(현지시간) 전했다. 왜 무슬림들이 빅토리아 시대 귀족 부인의 묘를 찾는 것일까? 이블린 부인은 영국에서 태어난 여성으로는 처음 이슬람으로 개종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까지 성지순례 하지를 다녀온 인물이다. 해서 영국의 많은 무슬림 개종자들이 에딘버러, 리버풀, 레스터 등에서 자동차로 운전해 와 성지 순례하듯 이곳을 찾는 것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이 순례 행사는 영국의 자선단체 개종무슬림재단이 지원한다. 창립자 바툴 알토마는 아일랜드 출신 개종자로서 맨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기억을 소환했다. “이블린 부인에 대해 알게 된 뒤부터 그녀의 사연에 빠져들었다.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 엄청난 부인이었다.” 이블린 부인이 세상을 떠난 것은 1963년 1월이었다. 그녀는 이 길을 걸어 묻히고 싶었던 곳까지 걸어갔다. 자신의 영지 안 고립된 언덕배기에 묻혔다. 인버너스 모스크 홈페이지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백파이프 연주가 있었고, 서리주 워킹에서 온 이맘이 장례 예식을 집전했다. 워킹 모스크의 관계자가 거의 60년 만에 이날 추모 행사에 함께 했다.1867년 에딘버러에서 태어난 이블린 부인은 어린 시절을 스코틀랜드와 북아프리카에서 지냈다. 1891년 이집트 카이로를 여행하다 존 코볼드를 만나 결혼했는데 알제리 친구들과 카이로의 모스크를 찾았다가 처음 이슬람 세계를 접하게 됐다. 나중에 “무의식 중에 마음 속으로 이슬람을 품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언제 개종을 결심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탈리아 로마를 찾아 교황을 알현한 뒤에 믿음을 확신하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 성하가 갑자기 날 지목하며 가톨릭 신도냐고 묻길래 멈칫했다가 무슬림이라고 답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이슬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는 척하지 않으려 했다.” 아라비아 이름 자이납을 받아들이고 65세 나이에 메카 순례를 다녀왔다. 이번 순례객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종군 기자로 일하다 2001년 탈레반에 체포됐다가 이슬람에 귀의한 이본느 리들리도 있었다. 지금은 스코틀랜드 보더스에 살고 있는데 “탈레반에 구금돼 있을 때 개종을 고민하게 됐다. 처음에는 학문적으로 접근했는데 갈수록 영적 영혼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책 ‘In the Hands of the Taliban’에서 탈레반 남자들이 보여준 존중과 호의에 놀랐다고 했다. 억류돼 있을 때 꾸란을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풀려났다. 리들리는 터키에 있을 때 알토마에게서 이블린 얘기를 처음 들었다. “이 각별한 스코틀랜드 여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찾아 읽었고, 우리 둘은 이슬람 개종자들을 모아 커밍아웃하게 하고 이블린의 묘지에까지 순례를 가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3시간 뒤에 묘지에 도착한 이들은 각자 추모의 기도를 올렸는데 일부는 눈물을 훔쳤다. 알토마가 이블린 부인의 책 ‘Pilgrimage to Mecca’ 가운데 메카 순례 대목을 낭독함으로써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지난날들은 끝없는 관심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말고 또 무엇을 내밀었는가? 내게 놀라운 신세계가 펼쳐졌다.” 알토마는 이블린 부인이야말로 막 개종한 이들이 스코틀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문화를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했다.
  • 이재용 ‘반도체외교’… 장비 확보 나서고 네덜란드 총리와 “협력”

    이재용 ‘반도체외교’… 장비 확보 나서고 네덜란드 총리와 “협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선언 29주년인 지난 7일 유럽 출장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이 ‘승어부’(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뜻)를 이룰 ‘반도체 초격차’ 전략에 전력 질주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서 일궈 낸 ‘1등 DNA’를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도 심어 2019년 선언한 ‘반도체 비전 2030’(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을 달성함으로써 삼성의 도약은 물론 새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구축에도 기여하겠다는 결단이 작용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 마르틴 판 덴 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부회장이 ASML 본사를 찾은 건 2020년 10월 이후 20개월 만으로, 반도체 장비업계의 절대강자인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한 대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직접 구애에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는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경계현 사장(DS부문장)도 동행했다.극자외선으로 반도체에 미세 회로를 새기는 EUV 노광장비는 고성능·고용량·저전력의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는 필수품이다. 하지만 한 해 만들 수 있는 장비가 40~50대에 불과해 공급량이 발주량을 못 따라간다. 가뜩이나 반도체 수요 증가 현상이 심화되며 ASML 장비를 가져가려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 부회장이 본사까지 직접 날아가 장비 확보전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 회동으로 장비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이 부회장은 ASML과의 기술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 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이고 메모리반도체 초격차를 이루는 데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이 부회장은 다음날인 15일에는 벨기에 루벤의 유럽 최대 규모 종합반도체연구소 IMEC를 찾아 루크 판 덴 호브 CEO와 반도체 최신 기술, 연구개발 방향 등을 긴밀히 논의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미래 에너지 등 IMEC에서 진행하고 있는 첨단 분야 연구 과제를 소개받고 연구개발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ASML와 IMEC를 연이어 찾은 것은 삼성이 차세대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미래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겠다는 ‘승어부’를 위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EUV 장비 확보의 해결사로 나설 수 있었던 건 ASML 경영진과 오랜 기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이어 온 글로벌 네트워킹 역량이 발휘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유럽 주요 파트너사 수장들뿐 아니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같은 정치인과도 회동하며 ‘반도체외교’에 총력전을 폈다. 14일 헤이그의 총리 집무실에서 뤼터 총리와 만난 그는 삼성전자가 ASML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삼성 관계자는 “양국 간 협력 강화는 한국 반도체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촉매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이재용의 ‘반도체 초격차’ 공격 행보...장비 공급 챙기고, 총리 만나고

    이재용의 ‘반도체 초격차’ 공격 행보...장비 공급 챙기고, 총리 만나고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선언 29주년인 지난 7일 유럽 출장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이 ‘승어부’(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뜻)를 이룰 ‘반도체 초격차’ 전략에 전력질주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서 일궈낸 ‘1등 DNA’를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도 심어 2019년 선언한 ‘반도체 비전 2030’(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을 달성함으로써 삼성의 도약은 물론 새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구축에도 기여하겠다는 결단이 작용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 마틴 반 덴 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15일 밝혔다.이 부회장이 ASML 본사를 찾은 건 2020년 10월 이후 20개월 만으로, 반도체 장비업계의 ‘절대강자’인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한 대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직접 구애에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는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경계현 사장(DS부문장)도 동행했다. 극자외선으로 반도체에 미세 회로를 새기는 EUV 노광장비는 고성능·고용량·저전력의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는 ‘필수품’이다. 하지만 한 해 만들 수 있는 장비가 40~50대에 불과해 공급량이 발주량을 못 따라간다.가뜩이나 반도체 수요 증가 현상이 심화되며 ASML 장비를 가져가려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 부회장이 본사까지 직접 날아가 장비 확보전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 회동으로 장비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이 부회장은 ASML과의 기술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 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이고 메모리반도체 초격차를 이루는 데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이 부회장은 다음날인 15일에는 벨기에 루벤의 유럽 최대 규모 종합반도체연구소 IMEC를 찾아 루크 반 덴 호브 CEO와 반도체 최신 기술, 연구개발 방향 등을 긴밀히 논의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미래 에너지 등 IMEC에서 진행하고 있는 첨단 분야 연구 과제를 소개받고 연구개발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이는 삼성이 지난달 5년간 450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한 미래 신사업 분야와 맞아떨어진다.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ASML와 IMEC를 연이어 찾은 것은 삼성이 차세대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미래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겠다는 ‘승어부’를 위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며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는 앞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 확대를 위해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EUV 장비 확보의 ‘해결사’로 나설 수 있었던 건 ASML 경영진과 오랜 기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이어온 글로벌 네트워킹 역량이 발휘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유럽 주요 파트너사 수장들뿐 아니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같은 정치인과도 회동하며 ‘반도체 외교’에 총력전을 폈다. 14일 헤이그의 총리 집무실에서 뤼터 총리와 만난 그는 삼성전자가 ASML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삼성 관계자는 “양국 간 협력 강화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이재용의 ‘반도체 외교’..네덜란드 총리와 ‘협력’ 다졌다

    이재용의 ‘반도체 외교’..네덜란드 총리와 ‘협력’ 다졌다

    지난 7일 유럽 출장을 떠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자리한 총리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만나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과 뤼터 총리는 최첨단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 확대 방안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소 등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과 뤼터 총리가 만난 것은 2016년 9월 이후 6년 만이다. 이 부회장이 이날 6년 만에 뤼터 총리와 만난 것은 반도체 산업의 핵심 국가인 네덜란드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네덜란드는 반도체 연구개발부터 설계, 장비, 전자기기 완제품까지 관련 산업 생태계가 고루 발전해 있다. 특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본사를 둔 ASML은 7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ASML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뤼터 총리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양국간 협력 강화는 새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건설’ 정책 및 삼성의 ‘비전 2030’ 전략과 맞물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뤼터 총리는 평소정보통신기술(ICT), 전기차, e-헬스 등 혁신에 기반한 신산업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이에 반도체 이외의 분야에서도 삼성과 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두 사람은 양국의 반도체 협력을 상징하는 웨이퍼 형태의 기념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기념물에는 네덜란드 총리 관저가 새겨져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3월 당선인 신분으로 뤼터 총리와 통화하며 양국 간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나갈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당시 뤼터 총리에게 “‘미래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산업에서 양국 간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자”고 제안했고 뤼터 총리는 “한국과 네덜란드가 반도체 선도 국가인 만큼 양국 간 협력 시너지는 매우 클 것”이라고 화답했다.
  • 시한부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들

    시한부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들

    오늘하루마음읽기 25회 : 후회의 심리 하루에도 몇번씩 하는 후회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까후회없는 완벽한 삶은 없어성찰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죽음 앞둔 사람들이 후회하는 건내면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것#편집자 주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오늘하루 마음읽기’에서는 날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 마음속 이야기를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친절하게 읽어 드립니다. 스물 다섯번째 회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후회에 대해서 정정엽 정신건강전문의가 설명드립니다. 당신이 후회하고 있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신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혜영 씨는 깊은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 누웠지만 웬일인지 의식은 점점 또렷해지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며칠 전 회식 자리에서 술김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불평불만을 상사에게 쏟아붓던 장면이 빠르게 스쳐 갑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젯밤, 선호 씨는 아내와 한바탕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요즘 들어 선호 씨는 아내와 부딪치는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회사 일도 바쁘고 피곤한데, 집에 들어서면 냉기만 감돌 뿐 어디 한군데 마음 붙일 곳이 없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 밤,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문득 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옵니다. ‘그날 그렇게 헤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선호 씨는 지나간 옛사랑에 대한 회한으로 잠 못 이룹니다. 우리는 오늘도 후회를 합니다. 불과 어제, 아니 방금 전에 주문한 저녁 메뉴 선택에 대해서도 후회를 하고, 벌써 수십 년 전 옛사랑을 붙잡지 못한 자신의 용기 없던 행동에 대해서도 후회를 합니다. 이 죽을 놈의 후회는 한평생 그림자처럼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마음을 괴롭힙니다. 우리가 한 일 또는 하지 못한 일, 손실이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슬프거나 자책하거나 반성하거나 하는 마음이 바로 후회라는 감정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나간 사건이나 자신의 행동 또는 결정에 대해 후회하곤 하는데요, 도대체 인간은 후회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요?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선택을 하실 건가요?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죽음 이후의 또 따른 삶’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국의 소설가 매트 헤이그의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 로라는 삶의 목적을 잃고 죽음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는 ‘자정의 도서관’에 가게 되면서 자신이 살아 보고 싶었던 수많은 선택지에 있는 인생을 살아 보게 됩니다.과연 로라가 되돌리고 싶던, 과거로 돌아가 되고 싶던 존재가 됐던 삶은 예상대로 행복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녀는 어떤 삶에서도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게 완벽한 삶이란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삶에서는 현재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더 안 좋았습니다. 물론 꽤 만족스러운 삶도 있었지만, 로라는 결국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자각하면서 말이지요. 소설 속 주인공인 로라는 사실 굉장히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잘나가던 수영 선수였고, 실력 있는 뮤지션이었죠. 그러나 인생은 로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그녀를 밀어 버립니다. 도무지 후회와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로라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그만 끝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가 보고 싶던 수많은 갈래 길을 걸어 본 뒤 그녀가 다시 걸어 들어간 인생의 풍경은 다름 아닌, 원래 자신의 삶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로라가 바로 다른 그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 온 내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생에서 했던 모든 선택과 후회까지 온전히 껴안기로 한 것이지요. <로라는 죽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에 고군분투일지라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조차 아름다웠다. > p. 381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바로 이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원수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 390 ●반복적이고 부정적인 후회, 우울증의 패턴 후회에는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와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을 가정할 때, 우리는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을 상정했을 경우, 행동한 것보다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 글의 맨 처음에서 든 사례를 떠올려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혜영 씨가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했던 말실수는 잠들기 전 몇 번의 이불 킥 소재는 되겠지만, 곧 혜영 씨의 기억에서 잊힐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전 선호 씨가 옛사랑을 붙잡지 못했던 쓸쓸한 기억은 불쑥뿔쑥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 두고두고 선호 씨를 후회의 감정에 젖게 합니다. 붙잡고 싶었던 첫사랑을 붙잡지 못한 그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억에 저장되어 되감기 필름을 재생하는 것이지요. 사실 후회는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지나간 일이나 행동에 대한 후회를 통해 우리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반성도 합니다. 즉, **후회는 자연스러운 성찰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요.** 다만, 안타깝게도 멜라니 그린버그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수록, 후회는 정신과 신체에 손상을 주는 반목과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변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반복적이고도 깊은 후회는 우리를 실제적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반복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의 패턴은 바로 우울증의 특징이자 정신 건강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기에 이릅니다. ●남의 기준에 맞추려고 전전긍긍하지 마세요사람들이 하는 가장 일반적인 후회는 무엇일까요? 죽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서 몇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살았더라면(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의 저자 브로니 웨어는 그의 저서에서 시한부 환자들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 다른 사람들이 기대했던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 2.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일에 쏟은 것 3.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4. 소중한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내지 못한 것 5. 내 행복(목표, 물질적 소유 등이 아닌)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노력하지 못한 것 결국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지나온 삶에서 가장 후회한 것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또 남의 눈치를 보느라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하지 못하거나 목표나 성과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남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지나간 일들은 그냥 좀 흘러가도록 놓아 주세요.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또다시 후회를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근데 뭐 후회 좀 하면 또 어떻습니까. 잠깐 후회의 감정을 느끼고, 다시 삶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을 지키는 엘름 부인과 체스를 두게 되는데, 이때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체스의 미덕 아니니?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거.” 체스에서 폰은 앞으로 한 칸씩만 전진할 수 있지만, 끝까지 가면 킹을 제외한 그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체스 판 위의 말처럼 계속해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후회로만 점철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단 한 번의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필자인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광화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현직 의사들이 직접 글을 쓰는 정신의학신문을 창간했다. 이 신문은 마음 아픈 사람들이 쉽게 정신건강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재능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된다. 정 전문의의 저서로는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가 있다. 정정엽 광화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77세 할머니가 돼 출소한 ‘일본 적군’ 우두머리 “50년 전 일 사과”

    77세 할머니가 돼 출소한 ‘일본 적군’ 우두머리 “50년 전 일 사과”

    1970년대 세계 각국에서 많은 테러공격, 납치, 공중납치 사건을 일으킨 일본 극좌 테러조직 ‘일본 적군’의 공동 창립자인 시게노부 후사코가 20년의 형기를 마치고 28일 출소했다고 현지 NHK 방송과 영국 BBC가 보도했다. 올해 77세가 되는 시게노부는 이날 동일본성인교정의료센터를 출소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살아서 나왔음을 실감하고 있다”며 “50년 전 인질을 잡는 등 무고한 이들에게 사과하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시게노부는 1974년 네덜란드 헤이그 주재 프랑스 대사관 점거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았으나 수십년 동안 검거망을 피해 다녔다. 세 명의 적군 요원들은 대사와 수많은 다른 이를 인질로 붙잡아 100시간 동안 감금했다. 프랑스가 적군 요원 한 명을 석방했고, 이들은 시리아로 달아날 수 있었다. 30년 동안 중동 지역에서 살아 온 시게노부는 2000년 오사카에서 검거돼 살인미수와 불법감금 혐의로 기소됐다. 요르단에서 추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직접 테러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일본 법원은 2006년에 공격 계획을 짜는 데 일조했다며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그녀는 AF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반세기 전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납치 사건처럼 낯 모르는 무고한 이들에게 폐를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시게노부는 이전에도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습격으로 26명이 죽게 만든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일본적군은 일본 내 극좌 단체인 ‘적군파(연합적군)’ 간부들이 1971년 레바논으로 건너가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연계해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2년 뒤 헤이그 주재 프랑스 대사관 습격 사건 등 숱한 테러 사건에 관여했다. 원래 두 개의 극좌 조직이 연합해 결성됐지만 분파 대립이 너무 심해 호전적인 요원들이 동료 14명을 집단 처형하는 끔찍한 만행으로 일본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경찰에 쫓기던 잔당 5명이 가루이자와 소재 아사마 산장에서 열흘 동안 30명의 사상자를 낸 무장농성 ‘아사마 산장 사건’은 NHK의 중계가 일본 방송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 90%를 기록하는 동시에 일본 좌파 운동에 있어 하나의 조종(弔鐘)이 됐다. 시게노부는 체포된 이듬해 일본적군의 해산을 선언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그룹의 마지막 행동은 1988년까지 이어졌다. 이탈리아에 있는 미군 클럽을 겨냥해 폭탄을 실은 트럭을 영내에 진입시키려 했다. 경찰은 아직도 검거하지 못한 일본적군 잔당 7명의 행방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 핵무기·탄도미사일 제한, 소련과 ‘해빙 외교’ 성과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핵무기·탄도미사일 제한, 소련과 ‘해빙 외교’ 성과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美 과제는 對소련 관계 개선·중동 평화·中 체제 수용… 칠레 좌익정권 전복 ‘피노체트 쿠데타’ 사주도닉슨은 케네디와 마찬가지로 백악관이 대외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닉슨이 윌리엄 로저스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이유는 그가 외교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안보보좌관이 된 헨리 키신저는 국무부를 배제하고 닉슨과 함께 미국 외교를 이끌어 갔다. 1973년 9월 로저스가 사임한 후 국무장관이 된 키신저는 안보보좌관을 겸직했고, 워터게이트로 인해 닉슨이 궁지에 몰리자 키신저는 미국 외교를 홀로 움직였다. 닉슨이 사임한 후 대통령직을 계승한 포드 대통령도 외교는 키신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가을 포드 대통령이 개각을 할 때 키신저는 안보보좌관 자리를 내어놓았지만 미국 외교 사령탑은 여전히 키신저였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키신저는 열다섯 살 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자랐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육군 84사단 소속으로 유럽 전선에 참전한 키신저는 독일어 능력을 활용해 정보부서에서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용사 장학금으로 하버드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나폴레옹 몰락 후 유럽 재편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하버드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면서 정계 인사들과 교류했다.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던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는 키신저를 외교자문으로 활용하고 재정적 후원을 했다. ●닮은 데 많은 닉슨과 키신저 닉슨과 키신저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두 사람은 케네디로 대표되는 기득권 진보(establishment liberals)를 태생적으로 싫어했다. 역경을 극복하면서 성장한 두 사람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등 공통점이 많았으나 두 사람은 서로를 불신하고 견제했다. 닉슨은 키신저가 언론 앞에 나서서 외교적 성과를 자랑하는 것을 경계했다. 키신저는 닉슨이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미친 사람이라고 주변에 말했다. 닉슨은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인물을 참모로 기용한 데 비해 키신저는 로런스 이글버거, 알렉산더 헤이그 등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서 기용했다는 점이 달랐다. 닉슨과 키신저는 베트남전쟁 종식, 소련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중동 평화 정착을 자신들의 과제로 생각했다. 닉슨은 또한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를 국제체제 밖에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외로운 정책결정자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비밀을 특히 강조했다. 1969년 7월 닉슨은 달에 최초로 착륙하고 항공모함 호넷함으로 귀환한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을 만난 후 괌에 도착해 아시아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자국 방위를 책임져야 하며 미국은 단지 후원을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런 다음 닉슨은 사이공을 방문해 티우 대통령과 환담을 하고 필리핀, 파키스탄 등을 거쳐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부쿠레슈티 시민들은 동유럽 국가를 처음으로 방문한 미국 대통령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과 가진 회담에서 닉슨은 미국이 중국과 관계 개선을 할 의향이 있음을 중국에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핵전쟁 공포 벗어나기 위한 노력 미국은 소련에 대한 핵 우위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소련이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신형 SS9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배치하자 미국은 위협을 느꼈다. 닉슨은 미국이 핵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핵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닉슨은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상원이 조속히 비준해 줄 것을 촉구했다. 미국, 영국, 소련이 비준을 마침에 따라 NPT는 1970년 3월 효력을 발휘했다. 닉슨은 존슨 행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미사일 방어체계(ABM)도 지지했다. 소련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ABM의 효용성을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한 개의 미사일에서 여러 개의 탄두를 발사할 수 있는 다핵탄두미사일(MIRV)이 개발됨에 따라 ABM의 효율성은 도전을 받게 됐다. 닉슨은 핵무기를 감축하고 ABM 설치를 제한하기로 한 존슨 대통령과 코시긴 소련 총리 간의 합의를 지지했다. 1969년 11월 헬싱키 회의로 시작된 수년간의 협상 끝에 닉슨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72년 5월 2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전략핵무기감축조약(SALT I)과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를 제한하기 위한 조약(ABM 조약)에 서명했다. 끝이 없어 보이던 핵무기 경쟁에 제동이 걸렸으니 해빙(detente) 외교를 추진한 닉슨이 거둔 값진 성과였다. ●격동하는 국제 정세 : 중동, 독일, 칠레 존슨 대통령이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후 미국은 아랍 국가들과 불편한 관계가 돼 버렸다. 아랍 국가 중 오직 요르단만이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닉슨은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 유대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닉슨은 중동 평화를 위해선 이스라엘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0년 9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단원들이 민간 항공기 여러 대를 납치해서 요르단에 착륙시킨 후 구금 중인 테러 용의자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해 중동에 긴장이 감돌았다.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미 중앙정보부(CIA)와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자국 내에서 활동 중인 팔레스타인 민병대와 시리아 군대를 공격하자 시리아 군대가 개입했다. 중동 전체에 전운이 감돌았으나 요르단 군대가 시리아 군대를 격퇴시키는 데 성공해 위기는 가라앉았다. 1969년 가을 독일에선 빌리 브란트(1913~1992)가 이끄는 사민당 정권이 들어섰다. 브란트는 동방정책(Ostpolitiks)을 내걸고 1970년 8월에는 모스크바를, 12월에는 바르샤바를 방문해 소련 및 폴란드와 각각 조약을 체결했다. 닉슨과 키신저는 물론이고 로저스 국무장관도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심각한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서독은 닉슨 행정부의 뜻을 무시하고 1972년 12월 동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해 동서 화해의 물길을 텄다. 1970년 들어 칠레의 정치적 상황이 미국의 우려를 자아냈다. 미국은 CIA를 통해 칠레에 우익 정권이 들어서도록 해 왔으나 그것이 한계에 달해 그해 9월 4일 대선에선 공산주의자인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무부는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도 미국 국익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닉슨과 키신저의 생각은 달랐다. 닉슨과 키신저는 중남미의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소련과 쿠바가 지원하는 공산세력이 중남미에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키신저는 칠레의 군부를 움직여 쿠데타를 일으키라고 CIA에 지시했다.아옌데 대통령 취임을 막기 위한 쿠데타의 최대 장애물은 육군 사령관 르네 슈나이더(1913~1970) 장군이었다. 그는 군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훌륭한 군인이었다. CIA는 아옌데에게 반대하는 장성들로 하여금 슈나이더를 납치토록 했다. 두 차례 실패 끝에 이들은 슈나이더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총격을 당한 슈나이더는 며칠 후 사망했다. 슈나이더의 사망은 칠레 국민들이 아옌데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아옌데는 칠레에서 구리를 생산하는 미국 광업회사와 칠레에서 통신사업을 하던 미국 통신회사의 자산을 국유화했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대통령궁에서 포위된 아옌데는 총을 들고 항거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키신저와 CIA가 사주해서 일으킨 쿠데타였다. 소련과 중국을 향해선 화해의 손짓을 하면서 칠레의 좌익 정권은 용납하지 못했던 닉슨과 키신저의 현실 외교는 오늘날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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