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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 투병’ 유명 배우…치료가능성 희박

    ‘치매 투병’ 유명 배우…치료가능성 희박

    할리우드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치매 투병 중인 가운데 그의 아내 엠마 헤밍이 “치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직접 밝혔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 메일 등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할리우드 배우 아놀도 슈왈제네거는 최근 인터뷰에서 치매 투병 중인 브루스 윌리스를 언급했다. 아놀드는 “나는 브루스를 항상 친절하면서도 위대했던 스타로 기억할 것”이라며 “브루스가 건강 때문에 은퇴해야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들(액션 영웅들)은 절대 은퇴하지 않는다. 다시 재장전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와 관련해 브루스 윌리스의 아내 엠마 헤밍은 최근 한 치매 관련 다큐멘터리 시사회에서 “치료할 방법이 거의 없다”라고 말한 것이 알려졌다. 엠마 헤밍은 “치매의 세계에 살다 보면 선택의 여지가 희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을 가만히 누운 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병이 치료 방법이 거의 없음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한편 브루스 윌리스는 지난 2022년 3월 실어증 진단을 받고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브루스의 가족은 지난 2월 성명을 내고 그가 전두측두엽 치매(FTD)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 케이팝, 웹소설, 챗GPT까지?···다양한 글쓰기 법 알려줄게

    케이팝, 웹소설, 챗GPT까지?···다양한 글쓰기 법 알려줄게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기에, 작법서는 꾸준히 출간된다. 특히 최근엔 케이팝(K-POP) 작사하는 법부터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활용하는 방법 등 세분화한 작법서, 목적이 뚜렷한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잇따라 나오는 추세다. ‘요즘 아이들을 위한 요즘 K-POP 작사 수업’(더디퍼런스)은 아이돌 곡 전문 작사가인 저자가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쓴 기본 작사 개념서다. 교육청이나 중·고교에 진로교육 강사로 다니는 저자가 작사는 물론, 학교 공부까지 잡을 수 있는 ‘꿀팁’을 함께 알려준다. 슈퍼주니어의 ‘SUPER’, 레드벨벳 ‘La Rouge’, 숀의 ‘36.5’를 작사한 경험을 토대로 작사 기초 지식부터 실습해 볼 수 있는 예시와 연습문제를 수록했다. 특히, 국어·영어·과학·도덕 교과서 속 예시를 통해 작사법을 알려주고, 청소년기에 작사가가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 MBTI별 작사 연습 방법 등 흥미 있는 사례도 함께 실었다.웹소설 한편으로 수십·수백억원의 수익을 낸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래서 웹소설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무작정 쓰기만 해선 안 될 일이다.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요다)는 2006년 웹소설 ‘마왕성 앞 무기점’ 출간 이후 꾸준히 글을 써오고, 웹소설을 연구해온 저자의 웹소설 강의다. 장르 구분과 시대 배경 등 웹소설의 구조와 함께 코드, 제목 등 웹소설의 구성 요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다. 이밖에 성공한 고전 웹소설로 꼽히는 ‘전지적 독자 시점’, ‘나 혼자만 레벨업’, ‘재벌집 막내아들’ 등의 성공 요소를 분석한다. 직접적인 글쓰기 기술보다 관련 지식을 탄탄하게 풀어내면서 웹소설 쓰기에 큰 도움이 될 법하다.어린이·청소년 도서 시장 역시 나날이 성장하는 추세다. ‘어린이·청소년 소설쓰기의 모든 것’(다른)은 동화·청소년 소설 쓰기 아카데미 과정을 운영하며 수십명의 작가를 데뷔시킨 저자의 글쓰기 방법을 담았다. 단순한 아이디어가 스토리보드, 플롯보드, 퇴고, 그리고 여러명이 함께 분석해보는 ‘합평’을 거쳐 출간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소설의 전환점을 의미하는 ‘티핑포인트’ 활용법, 플롯보드로 집필하는 법 등 유용한 팁이 담겼다.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30여개 이미지와 함께 실제 창작 수업에서 작가들이 활용하는 작법 방법 등도 소개한다. ‘디지털 시대 대학 글쓰기’(역락)는 아주대 의사소통센터에서 대학생들을 위해 내놓은 책이다. 3년 전 출간됐지만 최근 흐름을 반영해 보완해서 다시 나왔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학술적 글쓰기의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주제를 설정하고 자료를 조사하면서 글의 개요를 준비하는 ‘계획하기’ 단계는 물론, 함께 글을 쓰고 고치고 인용하는 법까지 대학생 눈높이에 맞춰 알려준다. 무엇보다 말하기와 프레젠테이션을 가리키는 ‘발표하기’ 부분이 도움될듯 하다. 디지털 시대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자연·공학계열 글쓰기 내용을 대폭 보완했다.자서전, 회고록 쓰는 법을 알려주는 ‘이츠 마이 라이프’(그래도 봄)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글쓰기를 제안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순서대로 기술하는 연대기식 서술에서 벗어나 인생의 고비, 사소하고 아름다운 일상, 내가 성취한 것, 부모, 내 인생의 사람들, 마음의 역사 등 6가지 주제로 쓰는 ‘구조화한 글쓰기’ 방법이다. 빈칸을 두어 스스로 써볼 수 있도록 구성한 게 특징이다. 알려주는 방법에 맞춰 내 사례를 하나하나 채워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이야기가 책이 되도록 했다.대화형 AI인 챗GPT로 글 쓰는 방법을 다룬 책들도 유행처럼 나온다. 그러나 챗GPT를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저 “재밌는 소설 써 줘”라고 명령해 봤자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지 못한다. ‘챗GPT시대 글쓰기’(매일경제신문사)는 주제와 용도에 딱 맞는 글을 얻어내기 위한 질문법에 초점을 맞췄다. 구체적으로,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를 사용해서, 맥락을 제공하고, 올바른 서식을 사용하며, 개방형 질문을 사용할 것. 그리고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면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 등 6가지 방법이 유용하다. 챗GPT 외에도 ‘그래멀리’, ‘헤밍웨이’ 등 글쓰기를 돕는 다른 AI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 치매 브루스 윌리스 68세 생일, 전·현 아내와 다섯 딸들 모여 축하

    치매 브루스 윌리스 68세 생일, 전·현 아내와 다섯 딸들 모여 축하

    치매 진단을 받은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지난 19일(현지시간) 68세 생일을 맞았는데 그의 아내가 매일 슬픔에 잠겨 있는 현실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고 미국 CNN 방송이 전했다. 윌리스의 아내 에마 헤밍 윌리스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여러분이 내 부은 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눈물로 아침을 맞이했다”고 입을 열었다. 헤밍은 “여러분이 모든 면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치매 환자 가족이 겪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다는 영상의 취지를 강조했다. 이어 “사람들은 내게 항상 ‘당신은 정말 강하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고 말하지만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두 아이도 키우고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부부는 2009년 결혼해 딸 메이블과 에벌린을 두고 있다. 헤밍은 “삶 속에서 때로는 성숙해져야 할 때가 있고(put our big girl panties on) 내가 하는 게 바로 그것”이라며 “하지만 매일 슬퍼할 시간 정도는 있고 그의 생일인 오늘 정말 큰 슬픔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남편(윌리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영상을 올린다”고 마무리했다. 영상과 함께 게시된 글을 통해 헤밍은 팬들의 응원 메시지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달 16일 윌리스 가족은 그가 전두측두엽 치매(FTD)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FTD는 환자의 행동과 성격에 영향을 미치고 언어 능력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실어증으로 영화 일을 은퇴한다고 밝혔다. 다른 동영상에서 윌리스는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리고 있었다. 헤밍은 남편을 “순수한 사랑”이라 불렀다. 전 아내이자 배우인 데미 무어와 세 딸 모두 함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무어는 부부의 가족과 어울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생일 축하 파이를 건네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윌리스는 웃으며 어울렸고, 촛불을 끄기 전에 약간 비틀거린 것만 제외하고는 괜찮아 보였다. 무어는 “오늘 당신을 축하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사랑하고 우리 가족을 사랑해. 모든 이들이 사랑과 따듯한 소원을 빌어줘서 고맙다. 우리 모두 그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 [최보기의 책보기] 바다를 닮은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최보기의 책보기] 바다를 닮은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바다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특별한 의미와 가치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고독한 사람은 유독 바다를 그리워한다. 외로운 사람, 슬픈 사람도 그러하다. 우리에게 바다는 대체 무엇이길래 과학이든 문학이든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게 하는 것일까. 바다가 소재인 문학을 들라면 소설로는 단연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일 것이다. 영어 원문을 읽어볼 처지가 못 돼 번역본을 읽은 후 처음 드는 생각은 ‘이게 세계적인 소설이라고? 나도 소설 써볼까?’였다. ‘쉽게 쓰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임을 헤밍웨이가 충분히 입증한다. 84일을 허탕친 후 85일 만에 잡은 청새치를 지키려고 2박 3일간 망망대해에서 고독한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노인 산티아고가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파멸 당할 수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그다음 얘기다. 바다가 소재인 시(詩)를 들라면 필자는 단연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꼽는다. 청춘의 한 때 시인의 꿈을 꾸었던 까닭이 이 시집 때문이었다. 그가 바다를 읊은 시들은 여러 성우의 멋진 목소리로 낭송돼 오늘도 인터넷을 흠뻑 적시는 중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는 시구가 가장 대중 친화적이지만 시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시구가 바다처럼 풍성한데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는 시구는 또 어떤가! 『나는 바다를 닮아서』는 소설 『통영』(2021, 강)의 작가 반수연의 산문집이다. 반 작가는 통영이 고향인데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해외동포다. 고향에 대한 감정이나 향수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도 아버지처럼 붕어빵에 하얀 설탕을 뿌려볼까 망설인다. 식어 눅눅해진 붕어빵을 달콤하게 바꾼 아버지의 하얀 설탕이 사실은 내 평생 써도 써도 남을 유산이라도 된 듯 많은 날에 달콤한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까. 아버지의 붕어빵은 내 삶을 단계마다 또 다른 은유와 상징으로 나와 함께 자랐다. 이제 나는 오래 떠올리는 아이의 마음 대신 아버지의 마음을 더 자주 상상하는 어른이 되었다”. “장하고 복되다. 그렇다고 너무 먼 곳에 살아 미안했던 마음이 없어지진 않겠고, 사십구 년을 과부로 살아낸 한 여인의 생이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겠지만. 엄마 잘 가요.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나치게 다정한 내 목소리에 나도 놀라면서. 엄마 잘 가요.”처럼 작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바다를 닮은 사람의 모습이 궁금하거든 읽어볼 것을 권한다. 바다를 말하자니 “항구에 정박한 배는 안전하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괴테의 명언을 지나칠 수가 없다. 덧붙여 필자는 “거친 바다에 나선 배는 파도를 보지 말고 바다를 봐야 육지에 닿는다.”는 금언을 가슴에 새겨놓고 글도 쓰고, 산다. 분하다! 저 멀리 남쪽 바다에 계란처럼 떠 있는 섬 거금도가 고향인 필자 역시 바다에 대한 애증이 남다른데 ‘나는 바다를 닮아서’라는 멋들어진 책 제목을 반수연 작가에게 빼앗겨버렸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전 남편 치매 간호 위해 동거 중인 톱여배우

    전 남편 치매 간호 위해 동거 중인 톱여배우

    데미 무어가 전 남편 브루스 윌리스의 치매 간병을 위해 동거 중이라고 외신이 보도했다. 현재 아내 엠마 헤밍과 함께 브루스 윌리스를 병간호하고 있다. 9일(한국시간) 영국 데일리 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데미 무어(60)는 전 남편 브루스 윌리스가 치매 진단을 받은 후 그를 돌보기 위해 그의 집으로 이사했다. 외신은 “데미 무어는 그의 아내 엠마 헤밍(44) 및 두 딸과 함께 브루스 윌리스를 돌보고 있다. 마지막까지 브루스 윌리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며 “데미 무어는 코로나19 대유행 때도 브루스 윌리스의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전했다. 한 측근은 “처음에는 가족 외 누구도 데미 무어가 전 남편, 현재 부인과 함께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를 하고 있다. 데미 무어는 가족의 반석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브루스 윌리스의 현재 부인 엠마 헤밍과 전처 데미 무어, 다섯 명의 딸은 성명을 내고 브루스 윌리스가 전두측두엽 치매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브루스 윌리스는 치매가 원인이 돼 실어증 진단을 받아 할리우드에서 은퇴한 바 있다. 이후 데미 무어와 엠마 헤밍은 브루스 윌리스의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그를 돌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브루스 윌리스는 이혼한 전 아내인 배우 데미 무어와의 사이에서 루머 윌리스, 스카우트 윌리스, 탈룰라 윌리스 등 세 딸을 뒀고 24세 연하의 현재 아내 엠마 허밍과 사이에서 두 딸을 두고 있다.
  • 브루스 윌리스의 아내 “치매 남편 촬영하며 소리지르지 말라”

    브루스 윌리스의 아내 “치매 남편 촬영하며 소리지르지 말라”

    미국 연예매체들은 영화 ‘다이하드’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윌리스(68)가 지난 2일(현지시간) 지인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 커피를 마시러 나온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달 치매 진단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윌리스가 처음으로 많은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사진들이 공개된 뒤 파파라치와 유튜버 등이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려 하고 여러 질문을 쏟아내 치매 환자인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윌리스의 아내 에마 헤밍 윌리스(45)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동영상에서 “남편의 외출 모습을 독점적으로 찍으려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며 “(내 남편과) 거리를 두라”고 호소했다. “특히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내 남편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등을 물으면서 크게 소리 지르지 마라.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며 “우리 가족이나 그와 외출하는 사람 누구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에마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다른 간병인이나 전문가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이 있다면 공유해 달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16일 윌리스 가족은 그가 전두측두엽 치매(FTD)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윌리스가 실어증에 따른 인지 능력 저하로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 뒤 거의 일년 만에 나온 발표였다. 이 치매는 뇌 전두엽과 측두엽의 신경세포 손상으로 발생하며, 환자의 행동과 성격에 영향을 미치고 언어 능력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FTD협회는 이 치매 판정을 받은 환자의 남은 수명이 평균 7∼13년이라고 설명한다. 모델 출신인 에마 헤밍은 윌리스와 2009년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1987년 결혼했다가 2000년 이혼한 전 부인 데미 무어(61)도 치매 진단 소식을 알리며 많은 이들의 응원을 부탁해 이혼 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는 모습을 연출했다.
  • ‘치매’ 브루스 윌리스 포착…수척한 모습

    ‘치매’ 브루스 윌리스 포착…수척한 모습

    할리우드 탑 배우 브루스 윌리스(68)가 치매 투병 사실을 발표한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3일(현지 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이 입수한 사진과 동영상에 따르면 최근 브루스 윌리스는 미국 서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에서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브루스 윌리스가 목격된 것은 전두측두엽 치매(FTD)를 진단받았다고 발표한 후 약 2주 만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파란 계열의 스웨트 셔츠와 비니를 매치했으며 다소 수척해 보였다. 또한 공개된 영상에서는 브루스 윌리스가 무언가를 말하는 듯 입을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해 3월 브루스 윌리스는 실어증 증세로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아내 엠마 헤밍과 전처 데미 무어를 비롯한 브루스 윌리스의 가족은 성명을 통해 “사랑하는 브루스가 건강상 문제들을 겪고 있고 최근 실어증을 진단받아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많은 고민 끝에 브루스는 배우를 은퇴하고자 한다”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지난달 16일 가족들은 다시 “브루스와 우리 가족이 받은 믿을 수 없는 사랑과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라고 시작되는 장문의 글을 올리며 브루스 윌리스의 건강 상태를 팬에게 공유했다. 그들은 “지난해 봄 브루스의 실어증 진단을 발표한 후 그 증상은 계속 진행됐고, 그가 전측두엽 치매(FTD)를 갖게 된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불행하게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치매 증상 중 하나였다”고 브루스 윌리스의 병명을 알렸다. 이어 가족은 “이 사실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마침내 명확한 진단을 받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브루스 윌리스는 1988년 데미 무어와 결혼했으나 2000년 이혼했다. 이후 2009년 23세 연하의 엠마 헤밍과 재혼해 두 명의 딸을 출산했다. 브루스 윌리스와 데미 무어는 이혼한 후에도 아이들을 위해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았으며 데미 무어는 브루스 윌리스의 투병에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 영화 상영 중인데 “브루스 윌리스 치매 진단” 가족들 알려

    영화 상영 중인데 “브루스 윌리스 치매 진단” 가족들 알려

    이미 은퇴를 선언한 상태에서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르는 ‘디텍티브 나이트: 가면의 밤’이 국내 상영 중인 할리우드 액션 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가족들이 공표했다고 영국 BBC가 16일(현지시간) 전했다. 가족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성명을 통해 윌리스가 전두측두엽(frontotemporal) 치매를 앓고 있다며 한편으로는 “명확한 진단을 받아들어 안도하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봄 의견을 밝히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실어증(aphasia) 진단을 받았다가 나중에 나아졌으며 좀 더 졍확한 진단을 받게 됐다고 가족들은 설명했다. 물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준 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나아가 전두측두엽 치매는 60세 이하 사람들에게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치매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가족은 “FTD는 많은 사람이 들어본 적이 없지만, 누구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잔인한 질병”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행하게도 윌리스가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그가 직면한 병의 한 증상일 뿐”이라며 “고통스럽지만, 마침내 명확한 진단을 받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저명한 의료센터 메이요클리닉에 따르면 FTD는 40∼65세에 발병할 수 있고, 모든 치매 사례의 20%를 차지한다. FTD 협회는 이 치매 판정을 받은 환자의 남은 수명이 평균 7∼13년이라고 설명했다. 성명은 아울러 “오늘날 이 질환을 치료할 방법은 없다. 앞으로 몇년 안에 이런 일이 바뀌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윌리스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다이 하드’, ‘식스 센스’, ‘아마겟돈’, ‘펄프 픽션’ 같은 작품들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다섯 차례나 골든글로브 후보로 지명돼 ‘블루문 특급(Moonlighting)’으로 수상했고, 세 차례 에미상 후보로 올라 두 차례 수상했다. 가족들은 지난해 실어증 때문에 윌리스의 인지 능력에 영향이 미쳤다며 연기를 그만 둘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는 매체들의 관심이 윌리스의 조건을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브루스는 항상 남들을 돕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는 데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가족이라 함은 두 딸을 둔 부인 엠마 헤밍과 세 딸을 둔 전 부인 데미 무어를 의미하는데 이번 성명에는 두 사람의 서명이 담겨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한편 지난 8일 개봉한 ‘디텍티브 나이트: 가면의 밤’ 등 3부작은 범인들을 달리게 하고 오는 3월 19일 68세 생일을 맞는 윌리스는 뭔가 생각하는 것이 많은 예측불허의 형사로 바꿔놓았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 ‘가면의 밤’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세 편 모두 공개됐다. 1편이 모두가 가면을 써도 되는 유일한 날인 핼러윈을 소재로 삼았다면 2편 ‘리뎀션’과 3편 ‘인디펜던스’는 각각 크리스마스와 독립기념일을 배경으로 삼았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여 기습 공격을 펼치는 체스의 ‘나이트’처럼 나이트 형사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과거 소중한 사람을 잃고 트라우마 속에 살며 정의 구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동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나이트 형사 대신 구르고 달리고 뛰는 것은 미국프로풋볼(NFL) 쿼터백으로 화려한 명성을 누렸으나 지금은 은행 강도로 몰락한 피츠제럴드(로크린 먼로)와 팀 동료, 체조 챔피언 출신 등 범죄자들이다. 이들은 개인 제트기를 타고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며 은행을 턴다. 나이트는 뛰어난 직감과 노련함으로 범인들이 전직 스포츠 선수라는 단서를 찾아내고, 그 배후가 불법 도박업자 위나(마이클 에크런드)라는 것을 알아챈다. 영화는 그의 과거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아 덴젤 워싱턴의 ‘더 이퀄라이저’ 시리즈와 비슷하게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이를 신비스럽게 포장하려 하는데 이퀄라이저 만큼 매혹적이지 못하다. 한편으로는 인물에 공감하거나 그의 행보를 응원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3부작 모두 에드먼드 드레이크가 연출하고 2편과 3편에 얼굴을 내민다. 제작과 각본을 함께 쓴 코리 라지가 피츠제럴드 일당으로 1편과 2편에 출연하는데 이 캐릭터가 조금 더 흥미로웠다.
  •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저작권 풀려 캐릭터 자유롭게 쓴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저작권 풀려 캐릭터 자유롭게 쓴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명탐정 ‘셜록 홈스’에 묶여 있던 저작권이 이제야 모두 풀려 작가나 영화제작자 등이 제한 없이 홈스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아서 코난 도일의 마지막 작품인 ‘셜록 홈스의 사건집’(The Case-Book of Sherlock Holmes)을 포함한 1927년도 작품들의 저작권이 1일(현지시간) 일제히 소멸했다. 이에 따라 홈스를 다룬 도일의 작품들 모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에 편입됐다. 홈스 등 도일의 추리소설 속 내용이나 등장인물 등은 이제 저작권 허가를 얻거나 비용을 내지 않고 합법적으로 공연되거나 각색될 수 있다. 지난해까지는 작가나 영화 제작자 등이 홈스 등 도일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사용을 두고 저작권을 관리해온 코난 도일 재단과 분쟁을 벌인 사례가 종종 있었다. 2016년 넷플릭스에 밀리 바비 브라운 주연의 오리지널 시리즈 에놀라 홈스가 공개되자 소송이 제기됐다가 법정 화해한 일이 있었다.  1927년 출간된 작품의 저작권 만료 시점은 원래 출간 75년이 흐른 뒤인 2003년부터였으나 1998년에 저작권 기간을 연장하는 법률이 제정되면서 저작권 유효기간이 20년 뒤로 더 미뤄졌다. 1927년에 출간돼 이날 저작권이 소멸된 다른 소설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 윌리엄 포크너의 ‘모기’(Mosquitoes) 등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나 A A 밀네의 ‘Now We Are Six’(곰돌이 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영화도 노래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장편 유성 영화인 ‘The Jazz Singer’를 비롯해 어빙 벌린의 ‘Puttin’ on the Ritz’, 하워드 존슨과 빌리 몰, 로버트 a 킹의 ‘(I Scream You Scream, We All Scream For) Ice Cream’ 등을 앞으로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자유 이용 저작물에 대한 더욱 상세한 정보가 필요한 이들은 아래 링크 주소를 이용하면 된다. https://web.law.duke.edu/cspd/publicdomainday/2023/
  • 텍스트 너머 콘텍스트…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다름을 읽다[김언호의 서재탐험]

    텍스트 너머 콘텍스트… 헤밍웨이와 포크너의 다름을 읽다[김언호의 서재탐험]

    “마침내 끝났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끝이 보이기는커녕 끝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곳에 정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기도 했던, 그 멀고 오랜 길이 이제는 다 끝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1994년에 시작한 시오노 나나미의 대하역사평설 ‘로마인 이야기’ 전15권의 번역 작업을 2007년에 끝낸 김석희는 제15권의 끝에 붙인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와 함께 한세월을 보낸 번역가 김석희. 저자와 함께 고대 로마세계의 시공을 넘나들던 그 역사기행의 감회를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1970년대와 80년대의 치열한 인문·사회과학의 책만들기·책읽기를 넘어 90년대라는 ‘세계화 시대’를 맞으면서 나는 책만들기의 새로운 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하나가 “동서고금의 사상과 이론을 집대성하는” ‘한길그레이트북스’의 기획이었고, 열린 문제의식으로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는 책만들기·책읽기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였다. ●‘죄와 벌’, ‘이방인’의 충격적 감동 김석희가 지금까지 번역한 책은 300여종 350권이나 된다. 김석희는 영어·불어·일어 번역이 다 가능하기 때문에, 그의 번역 장르는 넓고 깊다. 인문·예술이 60퍼센트, 40퍼센트가 소설이다. 어떤 책이 그를 번역의 세계, 번역가의 길로 이끌었을까.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나를 번역의 세계로 이끈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세 번이나 번역했습니다. 1982년에 처음으로 번역했는데, 당시 영화로 만들어졌지요. 그러나 기회가 오면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판권을 정식으로 계약한 출판사의 요청으로 다시 번역해 출간했지요. 1997년이었습니다. 그 출판사가 사업을 접게 되자 친분 있는 ‘열린책들’과 이야기가 되어 개역 수준의 작업을 더해서 2004년에 출간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책 읽으며 글 쓰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때 내 고향 제주도는 바닷길과 하늘길로 사방이 열린 관광지가 아니고, 바다로 갇힌 척박한 섬이었습니다. 바닷가에 서면 그 답답한 섬을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에 숨이 막히곤 했습니다. 그런 나를 다잡기 위해서 나는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시도 쓰고 산문도 썼습니다. 몇몇 선후배들과 문예서클을 만들어 동인지를 펴냈습니다. 한 대학이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학교를 오가는 도중에 도립도서관이 있었다. 고모부가 도서관장이었다. 서고를 우리 집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마음대로 책을 꺼내 읽었다. “그 무렵 내가 읽고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카뮈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나의 독서편력에서 너무나 판이한 두 주인공 살인자에 대한 이해가 처음엔 요령부득이었으나 그 상이한 자의성이야말로 작가의 세계관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 소설가에 대한 존경과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도로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섬을 떠나고 싶은 열망 속에는, 망망대해를 누비며 세상을 체험하고 싶다는 소망도 깃들어 있었다. 해양대에 진학할 마음도 먹었지만 6·25 때 납북된 숙부 때문에, 이른바 연좌제에 저촉되어 입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해양대의 꿈을 접어야 했다. ●기계에 의한 번역은 정보일 뿐 “1972년에 불문학과에 입학했는데, 우리 동기들은 그해의 ‘10월 유신’에 빗대어 ‘유신학번’이라고 자조했습니다. 그 자조의 이면에는 분노와 절망이 깔려 있었습니다.” 학교는 걸핏하면 휴교령으로 문을 닫았고 제대로 강의받거나 공부해 본 기억이 그에겐 별로 없다. 일기를 썼다. 그것이 시가 되기도 하고 소설이 되었다. 대학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왔다. 국문학과에 학사편입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중퇴했다. 1988년 소설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보르헤스는 책이야말로 인간이 사용하는 여러 도구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발명품이라고 했지요. 책은 기억과 상상을 통해 과거와 미래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꿈꾸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요. 책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다면, 나는 아마 그 사원 맨 앞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번역가 김석희에게 번역이란 무엇일까. 나는 1997년 그가 저간에 번역한 책들의 끝에 붙인 ‘역자의 말’을 모아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을 펴냈다. “번역은 한 나라의 언어를 그 울타리 밖으로 옮겨 나르는 일입니다. 하나의 텍스트가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번역가의 행랑을 거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텍스트는 비로소 콘텍스트를 얻게 됩니다. 번역은 해석입니다. 해석은 하나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또 하나의 콘텍스트를 얻어내는 과정입니다. 번역이 단순한 낱말풀이나 의미 전달이라면, 번역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기계의 몫이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기계에 의한 번역은 정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언어 이전에 있습니다. 번역은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독일의 뛰어난 번역가이자 문예학자인 발터 베냐민은 그것을 ‘원문의 메아리’라고 부르고, 그 메아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번역가의 과제라고 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해야! 번역자는 원작 뒤에 그림자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번역가 김석희는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모든 번역서의 끝에 ‘역자의 말’을 놓고 있다. 나는 2008년에 다시 그의 역자의 말을 모은 ‘번역가의 서재’를 펴냈다. “번역을 할 때, 내가 기본적으로 취하는 태도는 겸손입니다. 저자와 원서에 대한 예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저자의 문체를 존중하는 태도에 닿아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대해, 그 단어와 그 문장을 작가는 왜 이곳에 이렇게 썼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문구의 문체와 이청준의 문체가 다른 것처럼, 헤밍웨이의 문체와 포크너의 문체가 다릅니다. 그 다름을 읽어내야겠지요. 그 다름을 옮기는 것이 번역자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김석희는 새 책의 번역을 시작할 때마다 목욕을 한다. 목욕탕에 가서 때를 벗긴다. 먼젓번 작업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번역을 많이 하던 시절엔 옆에 놓고 사용하던 영한·불한·일한 사전의 귀퉁이가 하도 달아서 거의 해마다 갈아치웠습니다. 번역 전문가가 무엇 때문에 사전을 그리 자주 보냐고 할지 모르나, 평범한 단어라도 그것이 문맥 속에서 담당한 몫을 찾다 보면, 오히려 사전 안에 갇혀 있지 않은 다른 뜻을 궁리하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 100여권까지 번역해 내면서 그는 문체가 무엇인지 체득하게 된다. 자신의 문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말로 번역해야 한다고 늘 다짐하고 있습니다. 원전을 존중하되 ‘자유롭게’ 그러니까 텍스트에 갇히지 않는 번역을 하려 합니다. 번역을 끝내고는 약간 소리 내어 읽습니다. 문장의 리듬을 생각합니다.” 그의 번역 작업에는 참고저서들이 대거 동원된다. ‘로마인 이야기’ 작업을 위해 10권 이상의 문헌을 읽고 연구했다. 불멸의 해양문학 ‘모비 딕’(작가정신)은 김석희가 혼신을 다해 번역해 낸 성과다. ‘옮긴이의 덧붙임’에서 그는 기록했다. “중도에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곳곳에 온갖 비유와 상징이 널려 있고, 축약과 도치와 비문(非文)의 문장들이 난무했다. 그 덤불 같은 상징과 알레고리의 숲을 지나면서 단어와 구절들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덤불이 무성한 숲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마침내 밖으로 나올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홋타 요시에의 ‘고야’와 ‘몽테뉴’ 나는 책을 만들면서 20세기의 빛나는 두 지성을 직접 만났다. 자본주의 3부작인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써낸 큰 역사가 에릭 홉스봄 선생과, ‘고야’(전4권)와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전3권)를 써낸 홋타 요시에 선생이다. 홉스봄 선생은 1987년 우리 출판사를 직접 방문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격려하는 말씀을 해 주셨다. 1997년에 나는 홋타 선생 댁을 방문해 말씀을 들었다. 김석희는 홋타 선생의 이 두 거작을 번역했다. 98년 3월 나는 출간된 ‘고야’를 들고 홋타 선생을 다시 뵈러 가서 말씀을 들었다. 홋타 선생의 명저 ‘고야’와 ‘몽테뉴’는 김석희의 번역으로 명품이 되었다. 김석희는 ‘고야’에 헌사를 썼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그 무게와 매력에 압도당한 나머지, 나는 아직도 울창한 숲을 다 벗어나지 못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고야의 파란만장한 삶과 창조적 열정도 그렇거니와, 그 고야의 인생과 예술을 활달한 필력으로 서술해 낸 작가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도 나는 그저 숨이 막힐 뿐입니다. 위대한 삶과 위대한 글이 행복하게 만난 예를 이 책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는 책을 낼 때, 저자의 말이나 역자의 말을 중시한다. 인간적이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 또는 역자의 말을 통해 우리는 그 저자의 내면으로 다가간다. 역자 김석희가 ‘몽테뉴’에 붙인 ‘르네상스적 교양인의 내면 풍경: 독자들에게’가 그렇다. “400년 저쪽의 몽테뉴를 불러내어 마치 친구를 대하듯 담소하며 평전을 써내려간 홋타 요시에는, 어쩌면 윤회의 업을 거듭한 끝에 다시 태어난 몽테뉴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둘이 하나라는 느낌은 나 혼자만의 인상이 아닐 것입니다. 홋타의 ‘몽테뉴’에는 한 인간에 대한 한 인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전20권으로 번역해 낸 쥘 베른 선집은 김석희의 또 하나의 성과다. 2002년에 시작해 2015년에 끝냈다.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일주’, ‘신비의 섬’ 등 쥘 베른의 대표작 13개 작품을 담았다. “이 세상에 SF를 선물한 최초의 작가지요. 모험소설 작가들도 그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놀라운 상상력과 천재적인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작가입니다.”●귀향,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작업실 김석희는 2009년 제주도로 귀향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2006년 아버지가 작고하자 홀로 되신 어머니가 큰아들 석희가 내려왔으면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1층이 서재고 2층이 집필실이다. 그 어머니도 2021년에 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그는 2000년부터 한 해 한 번씩 단식을 한다. 이를 계기로 일일 일식을 한다. 하루 세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은 맑고 건강해 보인다. 번역가 김석희는 지금 ‘아이들을 위한 그리스신화’를 번역 아닌 자기 글로 쓰고 있다. 김석희의 그리스신화는 아마도 따뜻하고 포근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하는 책이 될 것이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헤밍웨이 미출간 단편소설 발견…피츠제럴드에 소설로 한 방 날려

    헤밍웨이 미출간 단편소설 발견…피츠제럴드에 소설로 한 방 날려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생전에 출판하지 않았던 단편소설 4편이 공개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최근 헤밍웨이가 남긴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네 편의 단편소설과 원고 초안, 수백 장의 사진, 편지, 개인 메모 등을 발견했다. 이 자료는 헤밍웨이가 생전 즐겨 찾던 술집에 맡겨뒀던 상자에서 나왔다. 헤밍웨이가 세상을 떠난 뒤 가족이 이 자료를 넘겨받았으며 이후 헤밍웨이의 친구에게 전달됐다. 오랜 시간 창고에 보관됐던 이 자료는 친구의 아들이 역사학자 등과 함께 상자 안에 있던 물품 목록을 작성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이중 관심을 끄는 건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권투선수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또 한 명의 미국 대문호 ‘위대한 개츠비’의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헤밍웨이는 생전 피츠제럴드의 도움을 받아 책을 출판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한 권투 경기 이후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헤밍웨이가 우세하던 경기가 추가 시간 1분 동안 뒤집혔는데, 시간을 늘린 주인공은 바로 경기를 지켜보던 피츠제럴드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소설에서 피츠제럴드를 코가 부러지고, 양쪽 눈 주변에 시커먼 멍이 들 정도로 경기에 고전하는 권투선수로 묘사했다. 이외에도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풍자하는 내용의 소설과 1926년 죽음과 자살을 고찰하며 쓴 세 페이지 분량의 메모를 공개했다. 이는 헤밍웨이가 1961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35년 전인 1926년에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이른 새벽에 검찰에 연행됐다 1992년 10월 29일 새벽. 네 명의 검찰 수사관이 집으로 밀어닥쳤다. 출판인 장석주는 곧장 서울지검으로 연행돼 갔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이미 연행돼 와 있었다. 검찰은 마 교수가 그해 써낸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했다. 검찰권력은 마 교수와 책을 펴낸 청하출판사 장석주 대표를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 혐의로 몰아 그날 저녁 8시에 전격 구속했다. 두 사람은 포토라인에 세워졌고 언론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 9시 뉴스는 두 문화인의 구속을 난리가 난 듯이 보도해댔다. 검찰은 작가와 출판인을 이미 6개월 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다. 국무총리 현승종은 “어찌 이런 야한 내용이 공공연하게 출판될 수 있느냐”면서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뒷날 검찰총장이 되는 김진태가 담당 검사였고, 이건개가 서울지검 검사장이었다. 두 ‘공범’은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다니다가 두 달 만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진보적인 이념으로 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80년대에 마 교수는 단독자로 성(性)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청하출판사에서 이미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마광수 문학론집’을 펴냈다. “그는 독특한 유형의 천재였습니다. 솔직하고 유쾌한 성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검찰권력이 들이댄 문학의 잣대는 그 작가와 그 출판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사건이 됐다. 마 교수는 재직하던 연세대로부터 추방당했다. 법정 싸움을 통해 해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심약하고 고립된 예술가에게 이 사회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한 문학가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공모해서 죽인 것입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자살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듯이, 마 선생의 죽음도 자살의 형식을 빌렸지만 우리 사회가 타살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변태’라고 몰아세워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출판인 장석주에게도 ‘즐거운 사라’ 사건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그해 12월 30일 ‘석방’됐지만, 1993년 1월 3일 새해를 맞아 서귀포로 가서 한 달을 머물며 고민했다. 결국 출판을 접기로 했다. 청담동의 사옥과 대치동의 집을 팔고 출판사를 정리했다. 1억원이 남았다. 의왕시로 가서 30평형 아파트를 세 얻었다. 책 만들기 13년 만이었다. 나름 개성 있는 책들을 기획해 냈다. 베스트셀러를 여럿 펴냈다.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는 200만 부의 슈퍼셀러였다. 몇만 권씩 읽히는 ‘니체전집’ 10권도 여느 출판사가 펴내지 못하는 기획이었다. 장 그르니에 선집을 펴냈고 인문과학시리즈 ‘청하신서’를 펴냈다. 1979년 고려원에 입사해 3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가 1982년 청하출판사를 창립해 500종 이상을 출간했다. 책에 대한 장석주의 헌신은 개성 있는 출판사 청하의 이미지를 출판계에 각인시켰다. “출판사명 ‘청하’(淸河)는 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책을 만들자는 소박한 생각을 했습니다.”●정독도서관, 청소년 시절의 책 읽기 그가 펴낸 책들과 작가들이 그를 말한다.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32세에 자살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독일 시인 파울 첼란도 센강에 투신자살한다.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과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시편’이 그의 정신의 한 내면일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실존의 문제가 그의 가슴에 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책 읽고 행동하는 시대, 그 혁명적 정조(情調)의 시대에 출판인 장석주의 책 만들기는 인간의 본성탐구 그것이었을 것이다. 1955년 충남 논산의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장석주는 10세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왔다.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서울에서 장석주가 만난 책의 세계는 ‘문화충격’ 그것이었다. 책은 무한의 총체였다. 학급문고와 친구들과 형들이 읽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독서가 장석주의 탄생이었다. “청운중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빌려 온 오영수 전집을 단숨에 읽고는 제 안의 노스탤지어가 폭발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김소월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보다 정독도서관에서의 책 읽기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 권력은 학교를 병영화시켰다. 그는 책의 세계로 도피했다. 저항의 몸짓 같은 것이었다. 정독도서관은 독서로 구현되는 피안의 세계였다. 황순원·김동리·손창섭·이제하·김승옥·이청준·박태순·이문구·박상륭·황석영·최인호 같은 한국소설가들, 고은·김종삼·김수영·김지하·황동규·신경림·김영태 같은 한국시인들, 카프카·카뮈·헤세·헤밍웨이 같은 국외 소설가들, 니체·바슐라르·사르트르·프로이트·융 같은 철학가와 사상가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미술사·성서고고학을 탐독했다. 노트했다. 정독도서관 시절의 이 노트들과 습작들이 1979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시와 평론의 기초가 됐다. “저는 정독도서관에서 동과 서, 어제와 오늘의 책들을 두루 찾아 읽으면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책 읽기는 잊을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옥죄었지만, 날마다 책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토록 책 읽기에 매달린 것은 책이 그를 새로운 의미의 존재로 이끄는 충만한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심오한 통찰로 이루어진 위대함, 무한한 사유와 창조를 이끄는 촉매제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샛길로 빠져 엉뚱한 영역에서 헤맸지만, 그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그 일탈의 경험은 또 다른 사유와 무한한 형태의 창조적 진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지요. 책의 권능이었지요. 저는 독서를 즐거움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이 즐거움이야말로 제 안의 ‘혁명’이자 ‘결단’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가 읽은 다양한 문학이론서들.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들, 김우창과 김현의 비평서들이었다. 문학의 내재적 가치에 눈뜨고 나름의 방법론을 세웠다. 문학비평으로 가는 길이었다. 책 읽기는 그의 삶의 대안이었고, 사유의 모든 것이었다. 책 읽기로 시인이 됐고, 평론가가 됐고, 저술가가 됐다. “시와 철학은 오성(吾性)을 향하는 길에서 방법론적 차이를 가질 뿐 한 혈통입니다. 시는 상상력을, 철학은 사유를 방법론적 매개로 삼습니다. 시는 자명함을 배제함으로써 자명함에 닿고, 철학은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의미에 닿습니다. 철학은 상식·대화·지혜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유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빛을 내는 행위입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장석주에게 가장 진실한 명제일 것이다. 읽음으로써 그는 현실 속에서 실체를 구현해 내는 것이었다. 독서가 장석주! ●니체와의 만남 “제 인생 철학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벼락처럼 제 머리에 꽂혔습니다. 니체의 책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인식욕을 채워 주는 한편 제 절박한 내적 필요에 응답했습니다. 20대 때 저는 광대의 역할을 떨치고 일어나 사자의 심장을 갖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니체는 제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너의 미로다’라고. 저는 굶주린 자가 젖과 꿀에 탐닉하듯이 니체 철학의 정수를 정신없이 들이켜며 철학이 건네주는 황홀과 도취 속에서, 부정의 정신에서 긍정의 정신으로 돌아섰습니다. 어느 순간 삶에 얽힌 매듭들이 주르륵 풀렸습니다. 더는 삶을 버거워하며 우울감에 빠지거나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장석주가 그동안 읽고 모은 책들이 3만 권이 된다. 온갖 책들의 섭렵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시집이 물경 5000권이나 된다. 소설이 수천 권이 될 것이다. 문학이론·인문서·예술서들이 또 얼마나 될까.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때로는 여러 번씩 읽다 보니 100권이 더 되는 책을 저술해 냈다. 장석주는 자신을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칭한다. 사람들은 그를 ‘인문학 저술가’라고도 부른다. 책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 책 읽기를 권하는 ‘독서교사’가 됐다. 세상의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를,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는 작업이란, 책과 책 읽기를 사랑하고 스스로 출판해 낸 그에게는 운명 같은 일이다. 그가 북리뷰해서 써낸 책들이 열 권을 넘어서고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와 즐거움을 이야기해 주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행복하다. 그가 써낸 책들이 우리 현대문예사의 한 장르가 돼 가고 있다. 첫 시집 ‘햇빛사냥’으로부터 가장 최근의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등 18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을 통해 본 현대한국의 사회문화사인 ‘20세기 한국문학의 탐구’(전 5권), ‘일상의 인문학’, ‘이상과 모던뽀이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의 작가론인 ‘나는 문학이다’, ‘풍경의 탄생: 한국시의 이미지 계보학을 위해’, 동양철학에서 우리 시를 읽는 ‘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은유의 힘’ 등이 그것이다.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가 기억에 남는 한 권의 책이다. ●생의 고비마다 책이 있었다 보르헤스는 말했다. “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그 이상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다”라고. 한두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책들 속에서, 그 책들의 내면을 탐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항상 중요한 국면마다 책이 있었습니다. 아직 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저를 키우고 단련한 것도 책이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해 스스로 낙오자가 되어 시골로 내려와 쓸쓸한 살림을 꾸릴 때, 힘과 용기를 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평생을 책과 벗하며 살아왔으니, 제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우주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다정함이나 너그러움, 취향의 깨끗함, 투명한 미적 감수성, 올곧은 일에 늠름할 수 있는 용기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모두 책에서 얻은 것입니다.” 독서가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수많은 책들이 합창하면서 창출해 내는 그의 정신의 한 풍경일 것이다. “저는 늘 책을 삽니다. 책을 사들일 때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서점에 나가 책을 사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책을 읽을 시간도 얻습니다.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정은귀의 詩와 視線] 오늘의 흔적에 기대어/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정은귀의 詩와 視線] 오늘의 흔적에 기대어/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인간은 다 대륙의 조각, 전체의 일부라흙덩이 하나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유럽은 그만큼 작아지고곶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고그대의 친구들, 그대 소유의 영지가그리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나니나는 인류 전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존 던 ‘묵상 17’ 중에서 한 친구를 떠나보냈다. 죽음은 늘 갑자기 닥친다. 남은 자에겐 미안함과 덧없음을 남기며 한 존재, 한 우주가 사라진다. 그의 어린 아들을 위해 기도하다, 속절없이 떠난 친구를 마음속으로 불러보다가, 사람은 무엇을 남기나 생각해 보다가 시를 읽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소개되는 이 글은 존 던이 ‘위급한 일에 바치는 기도문’으로 쓴 산문의 일부다. 영문학사에서 형이상학파 시인으로 유명한 던은 나중에 성공회 사제가 돼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수석사제로 임명됐다. 세인트폴 대성당에 그를 기념하는 대리석 조상이 있는데, 런던 대화재 때 성당이 불에 탔을 때도 유일하게 이 조상은 남았다. 살짝 그을린 채로 보존돼 있는 걸 몇 해 전에 보고 온 기억이 있다. 이 기도문은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해 더 유명해졌다. 행의 배치를 다시 해서 보니 산문 아닌 시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시는 역시 형식이 중요한 장르다. 게다가 모든 기도는 어쩌면 다 시가 아닌가. 던이 살던 시절에는 사람이 죽으면 마을 교회에서 종을 울리곤 했다. 흑사병 등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어 간 시절이라 조종이 자주 울렸을 것이다. 던은 말년에 심한 열병을 앓고 나서 이 기도문을 썼다고 하는데,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라는 말은 단독자로서 고립된 인간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선명한 선언이다. 죽은 이가 가까운 이였든 아니었든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죽음은 아니기에 우리는 죽음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앓을 뿐이다. 여기서 던은 단독자 인간이 이 세계에 결속된 방식을 새롭게 환기한다. 흙덩이 하나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이 작아진다니, 흙덩이와 대륙을 한 번도 대비해 보지 않은 나로선 놀라운 시선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고,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는 말은 타인의 죽음을 나의 죽음과 나의 부재로 가까이 끌어당긴다. 어떻게 사는지도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며 덤벙대는 이 우매한 인간의 세상에서 우리의 작별 인사는 어쩌면 매일의 흔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흔적이 본질적으로 유언’이라고 한 철학자 데리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오늘의 흔적으로만 살다 간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마. 친구가 말하는 것 같다.
  • 물맛 따라 올라간 1013m, 용들도 쉬어 가는 고개

    물맛 따라 올라간 1013m, 용들도 쉬어 가는 고개

    ●약수터만 4곳 포함된 ‘약수 로드’ 강원 네이처로드 3코스의 이름은 ‘높은 고개 드라이브길’이다. 평창에서 운두령, 구룡령 등의 고개를 지나 바닷가 마을 양양까지 거슬러 오른다. 거리는 110㎞. 백두대간에 굽이굽이 펼쳐진 ‘용의 길’을 따라 태고의 숨결을 느끼며 달릴 수 있다. 강원도는 “지그재그 커브와 오르막, 내리막을 오가는 다이내믹한 드라이브”가 이 구간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평창에선 전나무숲으로 유명한 밀브릿지부터 찾는다. 방아다리 약수터를 품고 있는 숲이다. 시설물의 이름 역시 영어 방아(mill)와 다리(bridge)를 합성한 것이다. 밀브릿지는 한 독림가가 1950년대부터 60여년 동안 공들여 가꾼 숲이다. 전나무, 낙엽송 등 곧게 뻗은 10만여 그루의 나무가 수직의 세상을 펼쳐 내고 있다. 숲 안에 산책로와 약수터 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돼 있다. 이 가운데 숙박시설, 미술관 등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질적인 소재이긴 해도 숲과 차분하게 어우러지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인상적이다.3코스에는 독특하게 약수터만 4곳이 포함돼 있다. 방아다리, 갈천약수, 삼봉약수, 불바라기 등이다. 우스갯소리로 “약수 로드”라 부르는 이도 있고, “가는 길이 약수”라는 이도 있다. 다들 물맛 좋기로 소문난 곳이니 한 군데 정도는 작심하고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대부분 휴양림 안에 있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방아다리 약수터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운영된다. 방문 전에 반드시 개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갈천약수처럼 공용 컵을 치운 곳도 있으니 개인 컵을 가져가야 한다. 갈천약수는 구룡령 옛길 아래 양양 땅에 있다. 철분이 많은 탄산수로 유명하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편도 1㎞ 정도 산행을 해야 한다. 이와 달리 3개의 구멍에서 모두 다른 맛의 약수가 나온다는 홍천 방태산 자락의 삼봉약수와 청룡, 황룡폭포 사이에 있는 양양 불바라기 약수는 왕복 10여㎞에 달하는 고된 산행을 감내해야 한다. 이 코스 초입에서 만나는 운두령은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해발 1089m의 고개다. 차로 오를 수 있는 국내 고개 가운데 정선 만항재(133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홍천과 평창의 경계 지역에 있다. 오르내릴 때 급경사 구간이 많아 짜릿한 코너링을 즐기려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비경 끝자락에서 만나는 양양의 바다 운두령에서 구룡령까지 가는 구룡령로엔 비경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중 하나가 홍천 광원리 을수골의 칡소폭포다. 예전엔 7개의 소(沼)가 있다 해서 칠소(七沼)폭포로 불렸다. 칡소폭포의 자랑은 열목어다. 맑고 차가운 물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종이다. 칡소폭포에선 멸종위기종 열목어들이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높이 2~3m나 되는 폭포 위로 총알처럼 튀어 오르는 열목어의 모습이 생경하고 인상적이다. 주로 5월 산란기에 시작되는데 한여름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열목어가 목숨 걸고 뛰어오른 폭포 위는 을수골이다. 계곡수가 ‘새 을’(乙)자처럼 굽이치며 흐른다는 곳이다. 칡소폭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삼봉약수가 있다. 구룡령(1013m)은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여러 고개 가운데 홍천과 양양을 연결하는 고개다. 아홉 마리의 용이 고개를 넘다 지쳐 인근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갔다 해서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높디높은 고개를 거푸 지나 남대천 끝자락에 이르면 양양의 파란 바다가 반긴다. 양양 지역에서 ‘디폴트값’으로 지정된 곳은 낙산사와 정암해변이다. 낙산사야 설명이 필요 없는 대가람이다. 입장료(1인 4000원)에 주차비(4000원)까지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치유의 공간들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까지 바닷가 절벽을 따라 산책하는 맛이 각별하다. 다만 의상대는 7월 중순까지 보수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출입이 통제된다. 대웅전 격인 원통보전엔 건칠관음보살좌상, 7층석탑(이상 보물) 등의 문화재가 있다. 원통보전 옆 높이 16m의 해수관음상은 낙산사의 랜드마크다. 정암해변은 동해안의 해변치고는 드문 몽돌해수욕장이다. 파도가 일 때마다 차르르 소리를 낸다. 주변에 헤밍웨이 파크 등 사진 찍기 좋은 곳도 마련해 뒀다.
  • ‘실어증 은퇴’ 브루스 윌리스 근황…8세 딸과 휴일 즐겨

    ‘실어증 은퇴’ 브루스 윌리스 근황…8세 딸과 휴일 즐겨

    실어증 진단 후 은퇴를 알린 배우 브루스 윌리스(67)가 딸 에블린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근황이 공개됐다. 브루스 윌리스의 아내인 엠마 헤밍 윌리스는 지난 8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동영상을 게재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딸 에블린과 손을 잡고 차고에서 롤러 스케이트를 연습하고 있다. 에블린은 아빠의 가르침 속에 균형을 유지하고자 힘쓰는 모습이다. 한편 지난 3월 30일 브루스 윌리스의 가족들은 “브루스가 뇌 손상으로 인한 언어 장애 실어증을 진단받고 배우에서 은퇴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 고독 속 필사적인 연주… 끝 모를 80년의 ‘건반 인생’ [지금, 이 영화]

    고독 속 필사적인 연주… 끝 모를 80년의 ‘건반 인생’ [지금, 이 영화]

    일류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는 곡의 차이를 세밀하게 가늠할 귀를 갖지 못했다. 그러기에 이런 방법을 택했다. 그들의 화려한 기법이 아닌 진솔한 삶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셸 슈나이더가 쓴 전기 ‘굴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읽으면 음악에 관한 굴드의 다음과 같은 충고와 마주한다. “혼자 있으십시오. 은총이라고 할 만한 명상 속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듣는 사람도 납득할 수 있다. 굴드의 연주는 피아노를 경유한 사색과 대화의 과정이기에 특유의 내적 흥얼거림을 동반하는 거라고. 어떤 분야든 기술 습득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이후에는 고독 속에서 정신을 심화시켜 승부를 내는 법이다. ‘잉그리드 후지코 게오르기 헤밍’(사진)도 이를 잘 아는 피아니스트다. 본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는 스웨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가 유럽에 유학 와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아버지와 이룬 사랑의 결실이었다. 1930년대 독일에서 출생한 후지코는 1940년대 일본으로 건너와 자랐다. 유년 시절은 녹록하지 않았다. 무국적자 혼혈인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면서 온갖 차별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후지코는 여섯 살 때 시작한 피아노를 매일 쳤다. 어머니가 무섭게 다그쳤던 까닭이다. 유럽으로 돌아간 남편의 연락마저 끊어지자 그녀는 딸을 더욱 몰아세웠다. 피아노가 아니면 딸이 앞길을 꾸려 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테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바람은 예상보다 더 크게 이뤄졌다. 그러나 후지코는 오랫동안 본인을 혐오하게 됐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뒤에야 그녀는 “기나긴 인생 여정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었다.실제로 후지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된 시기는 60대에 접어들어서였다. 방송 출연이라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붙잡아 그녀는 대기만성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현재 파리에 주로 머무는 후지코는 각국을 돌면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기록인데, 당시 그녀는 연간 60회나 되는 공연을 소화하고 있었다. 8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후지코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자신 있게 치는 현역 피아니스트다. 영화에서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라 캄파넬라’는 필사적으로 쳐야 하는 곡이라서 연주자의 내면이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모든 것이 보여지는 곡이죠. 모르는 사람은 누가 치든 비슷하게 들리겠지만 아는 사람은 알아요. 나는 내가 최고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믿고 연주합니다.” 기법을 잘 몰라도 후지코의 삶에 비춰 보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굴드처럼 그녀는 고독 속에서 정신을 단련했다. 그 시간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허 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씨줄날줄] 북한 빨치산/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북한 빨치산/박홍환 논설위원

    유격전을 수행하는 비정규군의 별칭인 빨치산은 프랑스어의 파르티(parti)에서 유래한 말이다. 같은 목적을 가진 당원이나 동료들이라는 뜻으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적 배후에서 지형에 밝은 대원들을 활용해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가며 적을 기습해 사기를 꺾는 소규모 전투에 특화된 부대라고도 할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는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에 저항하는 공화군의 빨치산 활동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빨치산은 그 명암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원대로라면 일제 침탈에 맞섰던 항일 의병도 빨치산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군이 아니면서도 배후에서 혁혁한 전투 성과를 올렸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지리산 등에서 게릴라전을 펼친 남로당 박헌영 일파의 조선인민의용군이 우리가 아는 빨치산 역사의 대부분이다. 그제 밤 평양에서는 북한의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을 기념하는 심야 열병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1932년 4월 25일 인민유격대, 이른바 항일 빨치산인 조선인민혁명군을 결성한 것을 자축하는 의미다. 이날 열병식에는 미국 본토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물론 남측을 겨냥한 전술유도무기까지 종류별 핵투발 수단이 총동원됐다. 김 위원장은 “우리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며 핵 사용 조건을 더욱 확장시켰다. 김일성은 10대 중학생 신분으로 현재의 중국 지린성에서 조선청년학생동맹을 결성하고, 20대 때는 지린성 카룬에서 주체사상을 집대성했으며, 이후 항일 무장투쟁 전선에 뛰어들어 동북항일연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었다고 김 주석 일대기인 ‘세기와 더불어’에 기록돼 있다. 손자인 김 위원장이 남측을 향해 핵 위협을 가하는 현실을 김 주석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 박보균 후보자 “언론의 기본 자세는 힘센 정권 비판…문화예술 분야 낯설지 않다”

    박보균 후보자 “언론의 기본 자세는 힘센 정권 비판…문화예술 분야 낯설지 않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11일 언론인 시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에 편향된 칼럼을 썼다는 비판에 대해 “언론의 기본적인 자세는 힘세고 살아있는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후보자는 이날 오후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있는 임시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정부의 잘못도 비판했다”면서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에서 접근해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검찰총장 시절 윤 당선인을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속 노인에 빗댄 칼럼을 언급하며 “윤석열 당선인이 검찰총장으로서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는 부분에 대해 노인처럼 외롭게 투혼을 발휘한다고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후보자는 그동안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지 않아 깜짝 인사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8월 윤석열 캠프에 합류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을 맡았지만 주로 정치부에서 대부분의 기자 생활을 해와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경험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정치부 기자를 주로 했지만 문화예술, 콘텐츠, 역사, 스포츠, 관광 등 분야에 대해 굉장히 많은 기사를 썼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문화에술 현장과 박물관, 역사관, 기록관 등을 우선적으로 찾아가 결코 이 분야가 낯설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곳곳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여러 해외 국가들이 문화예술, 체육, 관광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고 어떤 부분을 차별화시키고 어떻게 경쟁력 있게 이끌어 나가는지 살펴봤다”며 “현장에서 직접 실감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정책을 구상해 제 나름대로 노력을 바치겠다”고 덧붙였다.그는 또 “윤 당선인께서 저의 글을 많이 봐왔고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한 저의 열정을 잘 알고 계신다”면서 “정책적으로 잘 추진해 달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었다”고도 전했다. 지난달 10일 윤 당선인이 국립현충원을 찾아 ‘위대한 국민과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방명록에 적은 것을 언급하며 “그 번영의 본격적인 출발이 문화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말도 덧댔다. 전날 후보자 지명 직후 거론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도 거듭 밝혔다. 박 후보자는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혼을 자기 작품에 집어넣는 작업을 한다”면서 “그런 부분에서 문화예술인들을 굉장히 존경한다. 자신의 혼을 불어넣고 투사하면서 일종의 승부를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고려해 정책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체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연루됐던 고위 관료 2명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 전직 장·차관들이 징계 중단을 요청하는 청원에 나섰다는 보도에 대해선 “현 문체부 장관이 다르고 있으니 지켜보고 저의 의견은 나중에 밝히도록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어제 말씀드렸듯 블랙리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악몽처럼 과거에 존재했다”면서 “윤석열 정부에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자세로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 ‘실어증 진단’ 브루스 윌리스, 은퇴 후 아내와 숲속에서

    ‘실어증 진단’ 브루스 윌리스, 은퇴 후 아내와 숲속에서

    실어증 진단을 받고 은퇴한 할리우드 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근황이 공개됐다. 브루스 윌리스의 아내이자 모델 겸 연기자인 엠마 헤밍 윌리스는 지난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엄마와 아빠”라는 글과 함께 십대 딸 메이블 레이 윌리스가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브루스 윌리스와 엠마 헤밍 윌리스는 숲속 쓰러진 나무 위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부부의 다정한 분위기가 따뜻한 기운을 전달한다.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엠마 헤밍 윌리스를 비롯해 전처 데미 무어 등 브루스 윌리스의 가족들은 각각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랑하는 윌리스가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최근 실어증을 진단받아 인지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며 브루스 윌리스의 투병 및 은퇴 소식을 알렸다. 이어 윌리스의 가족들은 “지금 가족들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고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응원에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끈끈한 가족애로 이 일을 헤쳐나가고 있다, 윌리스가 항상 ‘인생을 즐겨라’라고 했듯, 우리는 그렇게 살 계획이다”라며 각오를 드러냈다. 한편 브루스 윌리스는 1955년생으로 올해 67세다. 브루스 윌리스는 영화 ‘다이 하드’ ‘제5원소’ ‘펄프 픽션’ ‘아마겟돈’, ‘식스센스’ ‘레드’ ‘지.아이.조2’ 등에 출연한 20세기 할리우드 대표 배우다.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골든글로브, 에미상 등을 수상했다.
  • ‘다이하드’ 브루스 윌리스, 실어증 진단 전격 은퇴

    ‘다이하드’ 브루스 윌리스, 실어증 진단 전격 은퇴

    미 할리우드 액션 스타 브루스 윌리스(67)가 실어증 진단을 받고 은퇴를 선언했다. 31일(현지시간) AP통신·CNN 등에 따르면 윌리스 가족들은 그가 최근 인지 능력에 영향을 주는 실어증 진단을 받아 연기를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윌리스의 전 아내인 배우 데미 무어와 현 아내 엠마 헤밍 윌리스는 전날 인스타그램에 이런 내용의 성명을 다섯 자녀들의 이름과 함께 올렸다. 이들은 “가족들에게 지금은 매우 힘든 시간이지만,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응원에 감사하다. 끈끈한 가족애로 이 일을 헤쳐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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