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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드스탁 페스티벌」/25년만에 “부활”

    ◎오늘부터 뉴욕주 소거티스서 열려/“60년대 전설적 미 힙문화… 중년층 향수에 젖어”/보브 딜런·메탈리카 등 유명 가수 대거 출연 「우드스탁 페스티벌」 힙(Tip)문화는 과연 중었는가.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유토피아로 자리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25년만인 12일부터 3일간 소거티스에서 다시 열린다.이번 페스트벌에는 보브 딜런,에어로스미스,레드 핫칠리 페퍼스,솔로 앤 페퍼,메탈리카 등 현대 젊은이들의 우상인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다.조키커등은 25년만에 다시 등장한다. 미국문화의 전설인 이 페스티벌의 재현을 계기로 미국사회에서는 힙문화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아직도 힙은 살아 있는가,현대의 힙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참가,자연 그 자체로 돌아가 진흙속에서 뒹굴며 머리에 꽃을 꽂고 우드스탁 국가건설을 염원했던 이들은 지금 모두 40대 중년층이 됐다.미국의 클린턴대통령도 바로 이 세대다.이들은 그토록 거부하던 지배층에 편입됐건 그렇지 않건 현대 미국을 이끌고 있는 세력이 됐다.격렬한 비트를 가진 록음악으로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가수들도 제각각의 길을 가고 있다.네지스 조플린,지미 헨드릭스는 마약남용으로 페스티벌이 열린 다음해인 70년 숨을 거두었으며 조안 바에즈,조 카커,산타나 등은 여전히 활동중이다. 30여만명이 운집해 하나의 해방구를 이루었던 드드스탁 페스티벌의 열기와 정신은 다시 불붙을 것인가.중년층은 향수에 젖어,젊은이들은 호기심으로 우드스탁을 화젯거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문화비평가들을 비롯,언론들은 제2의 우드스탁 탄생에 대해 회의적이다.정치·사회의 주류에 대한 철저한 거부의 몸짓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졌던 50∼60년대 힙문화가 현대에 와서는 상업화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속에서 열릴 페스티벌은 젊음의 열정은 사라지고 상품의 총집합체가 벌어질 것이라고 점치기도 한다. 비트 제너레이션의 헤밍웨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 잭 케루악,「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딘,마약을 다룬 힙 소설「네이키드 런치」,쿨재즈의 창시자 마일즈 데이비스의 50년대를 거쳐 60년대에는 로드 무비「이지라이더」와 소설가 수잔 손탁이 있었다. 90년대는 MTV에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손쉽게 언제나 들을 수 있으며 비트족들의 만능약으로 쓰인 에스크레소는 어느 카페를 가도 줄길 수 있다.히피의 상징인 염소수염은 영화배우들의 상징으로 굳어져버렸고 서석가 잭 케루악의 사진은 잡지의 청바지 광고용으로 이용되는게 현실이다. 40년전만해도 기성세대에 의해 금기시되던 히피들만의 문화가 미국이라는 상품시장을 마음대로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소수의 대항문화 힙이 지배문화현상으로 바뀐 「모순」이라고 미언론들은 입을 모은다.
  • 어린이들 「독서 편식」 심화

    ◎올 여름방학동안 「키드캅」「쥬라기 공원」등 영상소설 불티 1위 「키드 캅」,2위 「쥬라기 공원」,3위 「알라딘」. 개봉되고 있는 영화의 흥행 성적표가 아니다.교보문고가 발표한 지난주 어린이 서적 부문의 베스트셀러 순위이다. 이처럼 올 여름방학 기간 어린이들의 독서 「편식」이 어느 때 보다도 심각하다. 1·2·3위 뿐이 아니다.5위는 「참견은 노,사랑은 오 예」,6위는 「개구쟁이 데니스」,7위는 「내 친구 빙고」가 차지했다.모두 영화를 소설로 옮긴뒤 영화속의 장면을 사진으로 담은 이른바 「영상소설」들이다. 이 소설들은 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이청준의 「서편제」와는 내용이 다르다.「서편제」는 영화의 흥행성공에 힘입기는 했으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경우이다.그러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아동물의 경우는 오히려 영화가 소설화 된 경우이다.소설로서의 짜임새도 엉성하다.문학으로서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끈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인기있는 외국영화를 소설화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흥행에서 참패한 영화 「키드 캅」과 「참견은 노,사랑은 오 예」가 소설로는 크게 인기를 끈다는 점이다.또 「내 친구 빙고」의 경우는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지도 않았는데 어린이소설로는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는 점이다. 베스트셀러 10위까지 가운데 「영상소설」이 아닌 것은 4위에 올라선 「매직 아이 2」와 7위의 「먼나라 이웃나라」,9위의 「도전 추리 특급」,10위의 「노인과 바다」이다.이 가운데 「매직 아이 2」는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입체영상 그림책으로 「읽는 책」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베스트셀러에 들어있는 어린이 도서 가운데 그런대로 의미있는 책은 「먼나라 이웃나라」와 「도전 추리 특급」,그리고 「노인과 바다」 뿐이다.그것도 이원복의 「먼나라…」는 좋은 책이지만 만화이다.「도전…」은 한 사건을 제시하고 정답을 묻는 흥미 위주의 형식이다.헤밍웨이의 「노인과…」도 꾸준히 팔리기는 하지만 TV에서 이 영화가 방영된뒤 더욱 많이 팔려나갔다는 후문이다. 결국 방학동안 많이 팔린 책들은 어린이들의 흥미는 충족시키되 인내를 요구하는 내용은 아니였던 셈이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흥미 위주의 출판을 지양하고 전집류가 아직도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좋은 어린이용 단행본이 더 많이 나와야 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그러나 궁국적으로는 내용이야 어떻든 「책을 사주었다」고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아이들의 독서지도에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 요산요수(외언내언)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여름철의 아침은 세계의 탄생과도 같은 장관」이라고 카뮈는 말한다. 육당 최남선은 「바다를 보라」에서 「바다는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않고 포용하는 청탁병탄의 도량,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불비,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은 불교불오,용감활발 호장쾌락의 덕성」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큰것을 보고자 하는자 넓은 것을 보고자 하는자 기운찬 것을 보고자 하는자 끈기있는 것을 보고자 하는자는 가서 시원한 바다를 보라고 했다. 과연 바다는 끊임없는 감동과 움직임과 다양한 표정으로 인간을 다스리고 사로잡는다. 산도 마찬가지다.영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은 「산은 모든 자연풍경의 시초이자 종말」이라고 전제한다.지구상의 모든 산들을 「천연의 대사원」에 비유한 그는 「승려가 아무리 그 생활이 청빈하고 주거가 검소하다 하더라도 이는 산에 사는 목자와 은자를 따를수 없다」고 했다.그만큼 산은 「마음의 고요와 고상함이며 큰산은 높은 덕이 솟은 것과 같다」는 의미다. 겹겹이 겹쳐진 천첩옥산,하늘을 찌를 듯한 고산삽천,비단에 수놓은 금수청산,용이 날고 봉이 춤추는 용비봉무,깎은듯이 준초하고 그린듯이 온후한 산의 여러모습은 그때마다 통쾌한 승리감과 함께 경외를 동시에 안겨준다. 휴가철을 맞아 한국갤럽이 조사한 휴가관련 개별면접에 따르면 조사대상 1천5백명중 절반에 가까운 45·8%가 1박이상의 휴가계획을 세우고 있고 「학력이 낮을수록 바다,고학력일수록 산」을 선호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논어는 「지자락수 인자락산」이라고 하지만 국민학교 어린이를 둔 젊은 세대의 가정이라면 끝없이 움직이고 즐거움이 넘치는 바다를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바다는 잔잔하고 몹시도 아름다우나 잔인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모처럼의 휴가가 망치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나 자연앞에서 「겸허」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 고전 통해 경영문제 해결책 모색/「서양고전… 리더십」(화제의 책)

    호머의 아킬레스나 세익스피어의 오셀로,아서 밀러의 윌리 로먼과 인물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어디에나 있는 완고하고 융통성없는 유형이다.우리는 자신의 작품속에서 이런 성격을 창조한 사람들 덕분에 주인공의 성장과 좌절로 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수 있다.예컨대 플라톤의 「국가론」은 다른 어떤 경영학 교과서에서 배울수 없는 리더십에 관한 통찰력을,세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무절제한 야망의 비싼 대가에 대해 일깨워준다. 지은이들은 호머와 플루타르크,플라톤,소포클레스,초서,마키아벨리,세익스피어,밀,다윈,소로,밀러,헤밍웨이 등의 고전에서 얻은 지혜를 통해 현대의 경영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했다.클레멘스·메이어 지음 이은정 옮김 매일경제신문사 4천8백원.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1

    ◎병풍원리/탈경계­탈구축개념의 미래는/「벽속의 고립」 서구문명 한계에/초가식 「열린 자아」가 대안으로/바슐라르 표현대로 서양 문화는/서방이 벽면으로 싸인 지하실형/병풍속서 태어나 병풍속서 죽는 한국인 정서공간은 매우 신축적 □황규호문화부장=선생님께서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하셨을 때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철의 정막이 무너지고 하였지요.오늘은 그 벽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기를 전망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서구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벽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모든 것이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지요.가령 도시국가라는 것은 완전히 성벽안에 세운 도시지요.성벽밖에는 한데지요.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일찍부터 고층화가 이루어진 것은 성벽이라는 제한된 구획속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커지려면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동서양의 성곽 달라 □동양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성벽으로 나라와 도시를 둘러친 것 말입니다.중국의 만리장성이 그렇구요. ■물론이지요.한자로 나라국자를 써보세요.국은 사각형의 구자로 싸여 있지 않습니까.그것이 바로 성곽이지요.그런데 자세히 비교해 보면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에는 성밖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마을이 있고 자연의 숲이나 냇가에서 사람들이 퍼져 살지요.즉 성안과 성밖의 구획은 있어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그러나 서양의 도시국가 형태는 성밖과 성안은 인간의 공간과 인외경의 자연 공간으로 대립적 관계로 파악되었지요. □서양의 벽은 아주 뚜껍다는 것이군요.나라의 성만이 아니라 개인집의 벽도…. ■그래요.왜 우리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아요.얼마나 벽이 허술하면 말이 이렇게 밖으로 다 새어나갑니까.그런데 서양의 속담에는 「벽에는 귀가 있다」고 하지요.벽이 아무리 두꺼워도 사람의 비밀이야기는 샌다는 뜻입니다.실제로 서양집은 적조식으로 돌이나 벽돌로 벽을 쌓아 만든 것이아닙니까.그러나 한국집은 가구식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벽은 기둥과 기둥의 공간을 바른 것이지 가옥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군요.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집은 벽을 부수면 집 자체가 무너지고 말지요. ■그래서 첨성대같은 건축물이 가구적 한국의 건축양식으로 볼때 아주 예외적인 것에 속한다고 하지 않아요.첨성대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돌을 쌓아 말하자면 벽을 쌓아올린 내력벽건축물이기 때문에 서구의 것과 같다고 할수 있어요. □결국 서양사람이 두꺼운 벽을 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고립적이고 개인의 자아중심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내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서양사람 자신들이 자기네들의 문화적 특성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요.바슐라르같은 사람은 서양문화를 지하실적 문화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하실은 사면이 벽이 아닙니까.그런데 지하에다 판 것이어서 그 벽은 땅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절대로 허물수 없는 두께를 갖는 벽이라는 것이지요.서구에서는 문화예술도 정치도 온갖 음모와 형별도 이 지하실속에서 이루어 졌다는 겁니다.나치에 항거한 레지스탕스도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지요.반대로 나치의 온갖 만행­고문같은 것이 바로 또 이 지하실에서 감행되었지요.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단편 벽을 보시면 이 벽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그러져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에는 지하실이라는 것이 없군요. ■지하실 대신 개구멍이 있었지요.(웃음)담벽을 뚫는 것 그것이 개구멍이고 이 개구멍을 통해서 궁궐과 사가의 내통이 가능했고 이도령은 춘향과의 사랑을 가능케 한 것이지요.서양의 역사가 벽을 쌓는 이 지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역사는 거꾸로 벽을 뚫는 개구멍에서 비사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겠지요.농담이 아니라 옛날 시조를 보십시오.「십년을 경영하여 초로삼간지어내니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로다.산천을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라는 시조에서 보듯 바람이 맘대로 들락 날락하고 달빛이 새어 들어오니 이집 벽이 어느 정도겠습니까. ○궁궐­사가 내밀통로 □산천은 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고 한 것을 보면 담벽도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 종장을 특히 주목해서 읽어야 됩니다.둘러치고 보리라라고 하였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 병풍이야 말로 동양 특히 한국인의 마음과 의식의 지평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징물이라고 할수 있지요.병풍이야말로 가장 가볍고 가변적이고 상황에 따라 신축성있게 적응하는 이 지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벽이지요.필요할때 펴면 벽이 되어 공간을 분할하고 또 필요가 없을 때는 접어서 개켜 버리면 형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콘크리트 벽같으면 야단나지요.한번 허물거나 또 쌓으려면 대 공사를 해야 하지요.그런데 서양에는 병풍과 같은 것이 없었나요. ■스크린이라하여 간단히 접어 세우는 나무판때기의 가리개가 있긴 하지요.그러나 병풍과는 개념이 다릅니다.병풍과 같이 신축성 있는 벽이 생긴 것은 천재적인 발명가로 알려진 백민스터 프라에 의해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지요.우리가 왜 아코데온 벽이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병풍은 중국이 기원이고 일본에서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해도 미국의 동양학자 맥쿤의 증언대로 이 지상에서 병풍을 가장 생활화 하고 현재에도 많이 쓰고 있는 민족은 단연 한국이라고 증언하고 있어요.생각해 보세요.우리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난 곳이 어디예요.병풍속이 아닙니까.그러다가 돌날이 되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돌상을 받지요.서양식으로 결혼을 해도 폐백을 드릴때만은 화조 병풍이 있어야되지요.환갑연이 돌아오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잔치상을 받습니다.그러다가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병풍이 그 시신을 가려주지요.죽고 난뒤에도 병풍과의 인연을 끊지 못합니다.젯상을 받을 때 돌아가신 혼백들을 감싸주는 것이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렇게 한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생의 장면들을 병풍으로 장식하고 죽고난뒤에까지도 병풍에 의존하게 됩니다.이렇게 쉽게 만들고 허무는 그 공간의 경계선처럼 한국인의 자아는 말하자면 「나와 너」「나와 세계」의 그 관계는 매우 신축성이 있습니다 ○군중속의 고독 낳아 □근대적인 자아란 콘크리트 벽처럼 두껍고 튼튼한 것이 아닙니까.그리고 거기에서 프라이버시가 생겨나고요. ■병풍식 자아는 타아와의 경계선이 애매하고 가변적인 것이어서 항상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있지요.쉽게 나와 너의 공간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또 분리되기도 합니다.서구식 관점에서 보면,그리고 산업사회의 풍토로 보면 근대적 자아가 결여된 것처럼 보입니다.우리가 예사로 남의 프라이버시에 개입하기도 하고 침해하기도 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병풍식이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지요.아주 대조적인 것은 무엇인가 슬픈일이나 괴로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소연을 하고 넋두리 같은 것을 하게 됩니다.남과 함께 자신의 고통을 나누려고 하지요.그러나 서양영화같은 장면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장면은 우리와는 반대로 「I just want to be left alone」이라는 대사입니다.「날 좀 혼자 있게 해줘」즉 남과 세계를 향해 두꺼운 벽을 쌓고 그 안에 혼자 들어가 앉아야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막같은 사회,혼자서 지하실벽을 응시하고 있는 거꾸로 찍힌 활자의 고독,군중속의 고독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지요.영국의 경우 가옥수는 많은 데도 주택난이 심한 것은 혼자서 집 한채를 차지하고 사는 독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극단적인 자아중심적 세계관은 무인도적 존재를 낳게 됩니다.그래서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로빈슨 크루소가 되는 것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표류기가 우리나라의 소설에는 없지요. ■무인도의 발견·무인도에의 표류­그것이 근대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혼자 표류했지만 그 속에서 농업과 산업을 이룩합니다.혼자의 힘으로 문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나중에는 프라이데이라는 노예까지도 두게 됩니다.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단순한 표류기가 아니라 로빈슨은 근대시민사회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빈슨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인류가 걸어온 문명의 역정을 그 무인도에서 재현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이 개인의 힘,그 창조력과 자유에 토대를 둔 사회가 바로 근대 시민사회라고 하겠지요. 개척민이 만든 미국의 역사는 바로 로빈슨이 이룩한 그 표류도의 역사를 확대시킨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우리가 표류기 없는 문학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 자아가 없는 문화속에서 살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남북 분단으로 우리는 할 수 없이 이산 가족이 되었고 그 슬픔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지만 서양사람들은 스스로 이산가족이 되어 홀로서기를 합니다.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의 원형이라는 마운틴 맨이 그렇습니다.깊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서 몇달이고 움막속에서 생활하면서 비바를 잡아 모피를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이지요.그리고 문학을 보아도 마크트웨인의 헉크핀의 모험에서 시작하여 멜빌의 백경,그리고 헤밍웨이의 여러 소설들은 모두가 가정에서 도망쳐 나오는 남자들의 이야기들이지요.그런데 이 두꺼운 자아의 지하실 벽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려 앉는 소리와 그 서사극의 종말을 우리는 서구의 새로운 소설철학 그리고 실제의 현실속에서 목격하게 됩니다.이른바 「보더레스」(경계선없는)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경없는 시대 도래 □보더레스라는 말은 주로 경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지요.기술 자본 상품등 다국적 기업이나 자유무역 등으로 오늘날의 기업이나 산업은 국경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가령 미국제 자동차라고 하지만 그 엔진은 멕시코에서 만들고 부품은 일본에서 그리고 차체와 디자인은 이탈리아가 맡는 식으로 말입니다.과연 그것은 미국제라고 할수가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그러나 그것은 경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인간의 자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타자의 경계가 불투명합니다.경계침범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요.인간관계만이 아니라 사물도 그래요.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사물들의 윤곽이란 것도 결코 그렇게 딱딱하고 분명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 존재하는 한 동물과 식물의 경계선이라는 것도 확실치가 않습니다.우체통을 보십시오.우체통은 폐쇄된 공간이 아닙니까.그러나 우체통에다 편지를 넣으면 넓고 먼 세계로 그 편지가 운반됩니다.우체통은 폐쇄공간이 아니라 열려져 있는 넓은 공간이기도 한 것입니다.안과 밖이라는 개념도 그래요.호주머니를 흔히 내부공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외부가 안으로 침범해 들어온 것이 바로 호주머니가 아닙니까.호주머니 속은 「안」이 아니라 「밖」의 것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이 탈구축의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서구 근대문명의 허구와 한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이때 떠오르는 것은 병풍 같은 자아속에 잠재된 미래의 가능성입니다. □이야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다음에 다시 계속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 병풍을 두르도록 하지요.
  • 이길줄도 알고 질줄도 알자(박갑천칼럼)

    패배는 패배인데도 패배로 인정하지 못하는 패배가 세상에는 있다.나라와 나라 사이의 승리와 패배에서 특히 그렇다.와신상담(와신상담)의 고사가 생긴 까닭도 거기에 있다.2차대전 때 프랑스가 독일한테 항복하자 런던에서 BBC방송을 통해 프랑스 국민에게 대독 레지스탕스를 외친 드골 장군의 연설도 그 맥락이다.그는 외쳤다.『…프랑스는 전투에 졌을 뿐이다.전쟁에는 지지 않았다』고.그렇다 할 때 힘의 논리에 따른 강자의 일방적 침공에 의해 안겨진 패배의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개인과 개인 사이에 있어서도 싸우거나 겨루는 조건이 공정하지 못할 때는 패자가 패배로 인정하려들지 않는다.이쪽은 아무런 사전방비가 없는 채인데 불의에 습격당하여 맛보는 패배를 패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지는것.한쪽은 손발을 묶고 한쪽은 손발을 풀어놓은 상황에서 벌어진 경기의 승패를 놓고 승자다 패자다 하며 단정할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다.그렇건만 그런 유형의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오기도 한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어떤 패배건 간에 그것은 일단 불쾌한 것이고 굴욕적인 것만은 사실이다.정실이 개재된것이 아닌 한 유쾌한 패배란 있을 수가 없다.그래서 사람들은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측면도 있다.그것은 똑같은 조건 아래서의 공정한 겨룸이었다 해도 그렇다.더러는 승자에게 적의를 품기도 하면서 자신의 패배를 합리화시키려고 한다.패배의 정신적 불인정이다.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낚인 고기를 상어(덴투소)한테 습격받았을 때 한 산티아고노인의 독백도 그런 것이다.­『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인간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패배시킬 수는 없다』.이 작품의 정신이 여기 있었다고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동물의 경우는 사람과는 달리 승패에 대한 인정이 단순하고 솔직하다.교지가 없는 때문일까.그래서 사람에게 교훈도 준다.가령 미국방울뱀의 영역 확보 싸움을 보자.두마리 암컷은 몸을 접착시켜 꼬리를 엇감고 고개를 쳐들면서 상대를 땅바닥에 깔려고 한다.상대를 땅바닥에 오랫동안 누른쪽이 승자다.그러나 승자는 패자를 물거나 죽이지 않는다.패자는 승복하고 물러난다. 도마뱀의 결투는 목줄기 물기.먼저 A가 B의 목줄기를 문다.B는 기다린다.A가 입을 떼면 B가 A를 문다.그것을 반복하다가 물리기를 거부하는 쪽이 패자로 된다.패자는 상대방을 향해 꼬리를 돌리면서 펄쩍펄쩍 뛴다.승자는그이상공격을않는다.사자의경우패자는자기의가장약한부분을승자앞에내민다.승자는용서한다. 대통령선거의 승패는 갈렸다.같은 조건에서의 공정한 겨룸이었음을 서로 인정해야겠다.이길 줄도 알고 질줄도 아는 선거문화의 본을 보여 줬으면 한다.
  • 주택난 속의 호화분묘(사설)

    한국사람이 치는 전통적인 덕행 가운데는 위선사도 끼인다.그래서 가난한 자손은 그 선대의 무덤 앞에 표석 하나 세우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 가는 것을 한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돌아간 조상 위하는 일에는 밑바닥에 공리성이 깔린다는 것도 사실이다.이른바 「좋은 자리」에 묘를 써서 복락을 얻겠다는 것이 그 첫째이며 묘역을 훌륭하게 단장함으로써 자신들의 현시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그 둘째이다.비문만 해도 그렇다.『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이』(헤밍웨이의 묘비명)같은 간명한것이 아니다.가문의 내력등이 과장되게 벼슬 중심으로 장황하게 쓰이고 있다. 근년 들어 사는 형편들이 나아지면서 호화로운 묘역이 늘어나는 것은 그러한 전통적 심성에 연유한다.아니,더 강렬하게 반영되고 있다.경쟁이라도 하듯이 묘역을 넓히고 단장하면서 결코 왕릉의 것에 못지 않은 석물을 갖추어 나간다.인공호수를 만들고 정자를 짓는다.주차장도 마련한다.자신이 죽으면 들어갈 수실을 꾸미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엄청난 돈을 들여 단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같은 호화분묘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지는 오래다.그것이 대체로 불법 형질변경 등으로 조성되기 때문이다.또 그럴 수 있을 만큼 재력이나 권력을 가진 인사들이 힘을 구사하면서 조성해나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지난해 국정감사 때도 경기도 일원에 조성된 사회 저명·지도층 인사들의 호화분묘가 입방아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그 이름이 밝혀지면서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분노를 살 만도 하다.해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 정도 국토가 묘지화하면서 묘지면적 1%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다.그에 따라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묘지면적 9평(30㎡)은 옛얘기이고 이제 3평·2평으로 줄어간다.묘지사용 15년시한이 추진되고 있고 서울시에서는 1평의 묘지에 화장분골 6구를 함께 안치하는 가족분묘제를 시범운영해 볼 요량으로 있기도하다.이러한 시점에서 내로라 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특권의식·예외의식으로 작게는 50평부터 크게는 3천평에 이르는 묘역을 조성했다는 것이 아닌가.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위화감을 흩뿌린 죄가 크다고 할 것이다. 가진자들은 그렇게 넓고 호화로운 묘역을 꾸민다지만 묘지문제는 국가적인 견지에서 대단히 심각하다.현재도 전국의 묘지면적은 서울 면적보다 넓다.그런터에 그것이 해마다 늘어나갈 때 언젠가 전국토의 묘지화라는 말도 나오게 되어 있다.그런 점에서 화장이 보다 일반화해야겠건만 우리의 화장률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도 18%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죽으면 땅에 묻혀야 한다는 오랜 관념에서 못헤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국토의 묘지화로 마냥 나아갈 수도 없다.따라서 당국은 추진중인 시한부매장을 보다 폭넓게 일반화해 나가는 가운데 국민들의 의식을 화장쪽으로 유도해나가는 노력도 아울러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야겠다.국민들도 그쪽으로 의식을 바꾸어가야 한다.호화분묘얘기가 없어지게 되는 날도 그 같은 의식의 정착후가 된다고 할 것이다.우선 38%에 이른다는 무연고 분묘부터 정리해 나갔으면 한다.
  • 미 어자원 고갈“비상”/남획의 연근해 어장 현황(세계의 사회면)

    ◎건강식 생선 너도나도 선호/고기보다 고깃배 더 늘어나 지난 76년 미국정부는 연안으로부터 2백해리 수역에서의 외국어선의 어로를 대폭 규제했다. 어자원의 보호와 미국 수산업의 진흥을 위해서. 그러나 15년이 지난 요즘 미국의 수산업계는 어자원의 고갈로 허덕이고 있다. 외국어선이 쫓겨난 자리를 파고 든 미국어선들이 남획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뉴 잉글랜드주 연안은 멕시코만 난류의 영향으로 한때는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어울리던 세계 제일의 황금어장이었다. 그러나 10여년간 전자장비가 강화된 대형 미국어선들이 뛰어든 결과 지금은 물고기 구경도 힘든 어장이 되고 말았다. 가차없는 미국어선의 남획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늘기 시작한 생선수요에 의해 더욱 부추겨진 것이다. 물론 무분별한 남획에 적절한 규제가 뒤따르지 못한 점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 뉴 잉글랜드 앞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미연안 전역에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플로리다이북 연안에서 잡히는 황새치 역시 어로금지가 고려되고 있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수면을 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이 황새치는 무게가 평균 수백파운드에 육박하는 물고기인데 요즘 잡히는 황새치의 중량은 고작 60∼80파운드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미처 자랄 틈이 없이 마구 훑어지고 있기 때문. 미수산국의 부국장 데이비드 크레스틴씨는 『지금이 우리가 기록을 유지한 이래 어자원의 양이 가장 적은 상태』라며 거의 모든 어종이 남획되고 있는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어자원의 고갈 대목에 이르면 어민들조차 화들짝 놀라고 있다. 한때 어업규제에 반대해온 마티 맨리씨(56)는 『미국 어민들이 스스로를 잡아먹고 있다』며 『당국이 남획을 막기 위해 확고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뉴 잉글랜드의 어민들은 전보다 더 열심히 그물질을 하고 있지만 어획고는 1935년부터 1960년까지 연간 평균 어획고의 10분의1도 못 올리고 있다. 미 북동어업센터의 과학자 스테픈 무로스키씨는 『성어를 마구 잡아대니 번식이 이뤄지겠느냐』며 혀를 찬다. 한편 전문가들은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일부 어종에 대한 남획이 상어류의 상대적 증가를 가져와 생태계가 이미 파괴된 점을 걱정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어자원 고갈은 자업자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지난 76년의 자국 영해로부터의 외국 어선추방은 골드러시와 같은 흥분을 가져왔고 이로인해 미수산업계는 역설적으로 위기를 맞게 됐기 때문이다. 어업이 수지가 맞을 것이란 증폭된 기대감은 젊은이들은 학교로부터 끌어내 배를 타게 했고 어민들로하여금 융자를 받아 대거 어선건조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그결과 마침내 미해안경비대 한 지휘관의 자조적인 말처럼 물고기보다 배가 더 많아진 것이다. 사냥감이 없어지면 사냥개가 솥에 들어간다는 말처럼 이제 미수산업계가 사냥감 떨어진 사냥개 신세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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