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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트 능가하는 ‘초호화 수상 빌라’ 내부 들여다보니

    요트 능가하는 ‘초호화 수상 빌라’ 내부 들여다보니

    초호화 요트가 진화한다?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럭셔리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호화 요트는 백만장자를 상징하는 대표명사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호주의 한 기업이 비교적 ‘적은’ 돈으로도 호화 요트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수상 빌라’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오르소스 아일랜드(Orsos Island)사가 제작 중인 ‘오르소스 플로팅 아일랜드’(Orsos floating island)는 물 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트와 비슷하지만, 초호화 요트를 거주 가능한 섬의 공간으로 재해석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렌더링(Rendering·그래픽 이미지)를 살펴보면, 오르소스 플로팅 아일랜드는 태양열 전지판, 풍력에너지시스템을 뿐 아니라 해수를 이용한 실내 온도조절까지 가능해 친환경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 면적은 1000평방미터, 방 6개와 바비큐 전용공간, 거품욕을 할 수 있는 고급 욕조 등이 마련돼 있으며, 모터보트 등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역시 특별히 제작된다. 일반적으로 호화 요트의 가격이 수백억 원에 달하지만, 오르소스 플로팅 아일랜드의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54억 2000만원 선일 것으로 보인다. 제작사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가보르 오르소스는 “처음에는 물에 둥둥 떠 있는 호텔 체인을 지으려 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더 특별한 아이디어인 오르소스 플로팅 아일랜드가 떠올랐다.”면서 “초호화 요트의 장점만 모아 합리적인 가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르소스 플로팅 아일랜드는 단지 선택받은 부자들만 오는 곳이 아니다.”라면서 “더 많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르소스 아일랜드 측은 현재 독일과 헝가리에서 프로토 타입 제작을 시작했으며, 2013년 말 최초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6년 뒤 평창 위해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 핀란드로 간다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팀이 간판 선수 10명을 핀란드리그로 진출시킨다. 또 내년에는 현지에 팀을 새로 창단해 운영할 계획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자력으로 출전하려면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파격적 행보다. 안양 한라는 박우상(27), 김기성(27) 등 팀 소속 국가대표 10명을 임대 형식으로 핀란드 2부리그인 메스티스 리그에 보낸다고 18일 밝혔다. 박우상과 김윤환(27), 조민호(25), 신상우(25), 이돈구(24)는 키에코 완타, 김기성과 동생 김상욱(24), 김우영(24), 성우제(20), 박성제(24)는 HC 게스키 우지마에서 뛰게 된다. 핀란드는 NHL(북미), KHL(러시아)과 함께 전 세계 3대 아이스하키 리그로 손꼽힌다. 키에코 완타는 지난 시즌 8위를 기록했고, HC 게스키 우지마는 3부리그에서 막 승격했다. 안양 한라 선수들은 7월 중순 출국해 9월 중순부터 약 6개월간 정규리그 46경기를 소화하게 된다. 또 안양 한라는 내년 시즌부터는 팀(가칭 유로 한라·Euro Halla)을 창단해 메스티스 리그에 직접 참여할 계획이다. 변정수 단장은 “세계랭킹 18위권에 들면 올림픽 자력 진출이 가능하다. 당장의 승부보다 긴 호흡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의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랭킹은 31위지만 내년 4월 헝가리세계선수권 대진으로 보면 22위 수준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의 아버지/최광숙 논설위원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상원에서 연설을 할 때다. 한 상원의원이 “여기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구두를 신고 있는 상원의원들이 있소. 그러니 당신의 출신을 잊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링컨은 “연설을 하기 전에 아버지를 생각하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맞받아쳤다. 당시 상원의원들은 거의 귀족이었으니 구두공 아버지를 둔 링컨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릴 적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자 “프랑스에서는 절대로 안 되니 미국으로 가라.”고 했다. 헝가리 출신 이민자인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꿈이 허무맹랑하게 여겨졌지만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말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아버지들의 성적표가 나왔다. 최근 ‘아버지의 날’을 맞아 워싱턴포스트가 라이스 대학 대통령학 역사학자인 더글러스 브링클리 교수에게 의뢰해 최고·최악의 아버지를 각 3명씩 뽑았다. 최고 아버지 1위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아버지가 차지했다. 어린 아들을 아마존에 데려가 자연을 가르쳤고, 개인 교사를 둬 외국어도 배우게 했다. 2위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다.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이던 그는 아들에게 정치뿐 아니라 신사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 존 퀸스 애덤스 대통령의 아버지는 3위를 차지했다. 반면 포드 전 대통령의 생부는 최악의 아버지로 뽑혔다. 과음과 폭언을 일삼아 그의 어머니는 포드가 태어난 지 16일 만에 아들을 안고 가출했다. 이혼 후에는 양육비도 주지 않아 포드는 양아버지의 성으로 바꿨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계부는 못된 아버지 2위를 기록했다.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자 어린 클린턴이 “다시는 손대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이혼남이라고 속여 결혼한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는 나쁜 아버지 3위에 올랐다. 그는 아들이 두살 때 고국인 케냐로 돌아간 이후 딱 한번 오바마와 만났을 뿐이다. 우리는 대통령학에 대한 연구가 일천해 대통령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쉽지 않다. 그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버지 김홍조옹이 ‘능력 있는’ 아버지 1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정치권에서 김옹의 멸치를 선물받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로 아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어느 나라든 역대 대통령을 보면 부잣집 도련님보다 자수성가형이 더 많은 것 같다. 대통령은 훌륭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부고] 3연속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 쿠바 복싱영웅 스테벤손

    쿠바의 복싱 영웅 테오필로 스테벤손이 지난 12일(한국시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떴다. 60세. 자메이카 태생이면서 쿠바 국적을 가진 스테벤손은 세 차례 올림픽에서 헤비급 금메달을 차지한 최초의 복서로 이름을 남겼다. 190㎝의 장신으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스테벤손의 준결승 상대인 피터 허싱(독일)은 “나는 모두 212차례 경기를 가졌지만 그렇게 엄청난 강펀치는 처음이었다. 그의 오른손 펀치는 보이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턱에 걸치는 펀치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파괴적인 왼손 찌르기와 강렬한 오른손 주먹을 겸비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스테벤손은 불과 7분 22초의 기록으로 세 명의 상대를 넉아웃시켰고 결승전 상대인 미르세아 시몬(루마니아)은 3라운드에서 타월을 던져 경기를 포기했을 정도다. 4년 뒤 모스크바올림픽 준결승에서 이스트반 레바이(헝가리)가 회피 전술을 이용해 스테벤손과 판정까지 갔지만 스테벤손이 우세했다. 결승에서 표트르 자예프(옛 소련)와 힘겨운 결투 끝에 판정승으로 우승하면서 3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고인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는 당시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권의 올림픽 보이콧으로 인해 금메달을 딸 기회를 잃어버렸다. 스테벤손이 쿠바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영원한 아마추어 복서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마추어 전적만 302승22패. 그는 1976년 미국 프로모터들로부터 500만 달러를 대가로 프로 전향 유혹을 받았다. 당시 프로 데뷔전으로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이 한때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프로 전향을 거부했다. “내가 만약 500만 쿠바인들의 사랑을 잃는다면, 내게 500만 달러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되물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7년 은퇴한 그는 대표팀 코치를 거쳐 쿠바 아마추어복싱연맹 부회장, 쿠바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559년전 터키를 캐는 이 남자 김형오

    [김문이 만난사람] 559년전 터키를 캐는 이 남자 김형오

    역사를 알면 인생의 재미가 열 배는 더 있다. 교훈이 있고 아픔이 있고 느낌이 있다. 산다는 것은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우러져야 한 인생의 스토리를 얘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콘스탄티노플을 아는가. 대다수는 얼추 알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그속에 진정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을까. 역사책에는 비잔틴의 최후 도시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비잔틴은 동서양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역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스티븐 런치먼이 지은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의 서문을 잠깐 들여다본다. ‘역사가들이 좀 더 단순했던 시절, 그들은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중세가 끝나는 특징적인 사건으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 끝없이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을 장벽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중세가 근세로 바뀌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탐험가들이 해상로를 개척하여 세계 경제를 바꾸어 놓게 한 것은 비잔티움의 쇠망과 오스만튀르크족의 승리였다. 비잔티움 학문이 르네상스에서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에궁, 뭐든지 설명이 길면 감동이 없는 법이다. 이쯤에서 감칠맛을 그만두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 그가 쓴 ‘길 위에서 쓴 희망편지’의 첫 페이지를 열면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끈다. ‘1947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대학원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기자로 시작했다. 국무총리실,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공직을 수행했다. 1992년 14대 국회부터 국회의원 직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09년 3월에 발간된 책이니 과거형이다. 이젠 국회의원이 아니다. 기자 출신이고 수필문학가로 등단한 문인이라는 게 오히려 낫겠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이란 옷을 벗어던지고 나서 어떤 생활을 할까 궁금하다. 알고 봤더니 역사를 캐고 있다. 그것도 동서양을 아우르는 콘스탄티노플의 정복사에 대해 열심히 삽질하고 있다. 김 전 국회의장을 지난 4일 오후 서울신문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늘 넥타이를 맨, 꽉 낀 정장 차림의 모습만 보다가 가벼운 옷차림의 그를 보니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정치인이라는 냄새를 빡빡 씻었다고나 할까. 악수를 하면서 그는 “국회의원을 그만두니까 넥타이를 안 매게 됩디다. 아주 편해요.”라고 한다. 또 이어진다. “요새는 신문도 잘 안 보게 되고 정치 뉴스도 안 보고 참 좋다.”며 웃는다. 그를 만난 이유는 19대 국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홀연히 터키로 출국한 것 때문이다. 왜 불출마 선언을 했으며 터키는 또 왜 갔는지 등이다. 요즘 터키에 흠뻑 빠져 있다. 그것도 이스탄불, 다시 말해 콘스탄티노플의 역사다. 2009년 1월 국회의장 신분으로 터키를 방문했다. 우연히 군사 박물관에 잠시 들렀을 때 놀라운 충격을 받은 뒤 콘스탄티노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저를 전율시킨 것은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함대를 이끌고 갈라타 언덕을 넘어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술탄 메흐메트 2세는 해상으로 (콘스탄티노플이 쳐 놓은)쇠사슬을 돌파하지 못하자 배들을 산으로 끌고 천혜의 요새인 성곽으로 진입합니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저는 비잔틴의 몰락과 오스만튀르크의 부상 등에 대해 역사적 지식이 부족했던 점을 부끄러워하게 됐고 이후 터키를 다섯 차례 다녀오면서 그 깊이에 매료됐습니다.” 지난 4월 16일 출국했다. 2일 귀국하기까지 47일간 터키에 머물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터키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 보아지치대학교 방문교수로 초빙돼 이 대학 도서관과 연구실에서 지냈다.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과제를 매듭짓기 위해서였다. 무슨 과제? 그것은 콘스탄티노플의 역사를 캐는 작업이다. 그는 여기에서 화해와 공존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을 합성해 ‘이스탄티노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터키에서 머무는 동안 대외 활동, 그러니까 강연이라고 해두지요. 그 대학에서 한국정치의 60년 역사를 강의했습니다. 아주 재미있어하더군요. 처음에는 30분을 약속했지만 나중에 질의응답까지 포함해 1시간 40분가량 됐습니다. 북한 갔던 일, 미국 스탠퍼드에서 강의했던 일 등 동아시아를 비롯한 한국의 정치역사를 얘기했습니다. 반응이 그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그가 열심히 캐는 콘스탄티노플의 역사는 어느정도일까. 현장 방문 수차례, 자료수집 완료, 초고 정리 끝이란다. 올 가을쯤에는 반드시 팩트 위주의 두꺼운 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개봉박두. 현재 이와 관련된 책은 스티븐 런치먼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과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이 있다. 전자가 팩트에 비중을 둔 책이라면 후자는 소설 형식을 빌렸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그 정복전쟁은 지상전, 지하전, 해전, 공중전, 심리전, 첩보전, 외교전 등 모든 전략과 전술이 총동원된 전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사의 물결이 확 바뀌었지요. 오스만튀르크가 그쪽을 장악하자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열어야만 했고 콜럼버스의 항로, 아프리카 희망봉의 항로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출간된 저작물에 한 권을 보태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오스만의 술탄 메흐메트 2세,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인간성과 리더십에 초점을 두려 합니다.” 특히 그는 오스만튀르크가 고구려와 흉노, 그리고 우랄 알타이어 계통이라는 뿌리를 함께 깔면서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동서양 역사에서 관심을 덜 받고 있는지도 밝힐 예정이다. 그에게 술탄 메흐메트 2세가 터키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물었더니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친 인물로 추앙받는다.”고 했다. 아울러 “14살에 왕이 됐다가 왕좌에서 내려와 19살에 다시 왕이 돼 21살에 철옹성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사실이 매우 흥미진진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 젊은 왕이 아버지의 아버지도 못 이룬 업적을 해냈다는 점은 참으로 역사적인 것이라고 역설한다. “오스만튀르크로 인해 유럽은 200여년 동안 길을 잃어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실크로드의 지점이자 종점이었지요. 그래서 유럽이 항해시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오스만튀르크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다시 서양한테 당하게 됩니다. 이를 거울 삼아 우리는 글로벌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또 눈앞의 이익을 위해 아등바등 싸우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책을 쓰게 된 동기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면서 질문하고 싶었던 ‘불출마 선언’의 이유를 말한다. “내 나이 65살입니다. 60살이 지나면서 한 달이 다릅니다. 100페이지 되는 책을 읽고 돌아서면 금방 50페이지밖에 생각이 안 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10페이지로 줄어듭니다. 지난해 8월쯤인가 그래요. 국회의장까지 한 제가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면 제 이력에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를 생각했지요. 그러면서 제가 쓰고 싶은 글, 국회의원을 더 하면 영원히 못 쓸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또한 4월 6일부터 5월 29일까지, 술탄 메흐메트 2세하고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대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5월 29일이 비잔틴 최후의 날이지요. 하여 모든 생각을 접고 터키로 갔던 것입니다.” 다시 비잔틴 최후를 얘기한다. 당시 60여일 동안 벌였던 전투에는 세계 전투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첨단 무기들이 총동원됐다는 것이다. 배를 끌고 언덕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헝가리인이 구상한 최대의 대포 등 흥미롭게 들여다볼 대목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는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인간적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다.”면서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집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흥망성쇠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것은 어떤 것인지도 담을 것이란다. “저는 다시 종군기자가 된 셈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559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가는 기분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날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절로 뜁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새누리당 당원이니까 새누리당에서 되겠지요.”라고 답했다. 대선 주자들에 대한 약평을 부탁했더니 “생각 안 해 봤다. 지도자는 뭐든지 겸손하고 당당함의 덕목과 타이밍이 있어야 국민들이 따르지 않겠느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울러 19대 국회에 대한 바람을 물었더니 “폭력이 없어야 한다. 막말도 폭력의 빌미가 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he is… 1947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 영도에서 자랐다. 1966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왔다. 1976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75년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1982년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1992년 14대 국회의원 당선되면서 이후 15, 16,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9년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위원장(2000), 한나라당 17대 총선 선거대책본부장(2004), 한나라당 사무총장(2004), 한나라당 원내대표(2006), 대한민국 국회의장(2008)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돌담집 파도소리’,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등 다수가 있다.
  • [글로벌 시대] 아시아와의 거리를 좁혀가는 호주/황중하 코트라 시드니 무역관장

    [글로벌 시대] 아시아와의 거리를 좁혀가는 호주/황중하 코트라 시드니 무역관장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국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행복지수를 측정한 결과, 호주가 조사 대상국 36개국 중 1위를 차지하였다. 호주는 1939년 영국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외교·행정권을 갖고 있는 엄연한 독립국가이면서도,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형식상의 국가원수로 하며 여왕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여왕의 호주 방문 시 전용기가 비행장에 도착하면 여왕의 대리인으로 임명된 총독이 연방정부 총리보다 앞서 트랩 맨 앞에서 여왕을 영접할 만큼 영국적인 전통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정·재계에서는 전통적 우방국인 영국과의 관계가 아직도 긴밀한 편이다. 연방장관 총 21명 중 해외 출생 장관은 4명으로 이 중 영국계 3명, 말레이시아 중국계가 1명이다. 재계에서도 영국계가 주류로 활동하고 있다. 호주의 주요 기업, 은행, 투자은행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주요 포스트에는 영국계를 비롯하여 서유럽계의 백인이 다수 포진해 있다. 아시아계를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백호주의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호주가 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변모하는 가운데 아시아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국적별 이민자 수, 해외유학생 수, 경제·인적 교류 측면에서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총인구 2290만명 중 약 600만명이 해외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주한 사람이다. 이 중 약 35%가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한국 등 아시아 국가 출신이다. 호주에서 태어난 해외이민자의 2, 3세를 포함하면 인구의 약 절반이 이민자 출신이다. 호주 연방교육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현재 호주에 재학 중인 유학생 총 55만 8000명을 국가별로 보면 중국, 인도, 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네팔 등 아시아 8개국 순으로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8개국 유학생의 비율이 전체의 66%다. 아시아 국가 출신의 유학생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무역분야에서 아시아 국가와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호주의 10대 교역대상국으로는 미국, 뉴질랜드, 영국, 독일을 제외한 6개국이 아시아 국가이다.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6개국이 호주의 2011년 교역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54%다. 특히 호주의 수출에서 아시아 상위 5개국(중국, 일본, 한국, 인도, 타이완)이 차지하는 비중은 65%나 된다. 자원부국인 호주에서 생산되는 철광석, 석탄 등 천연자원에 대한 최대 수요처가 이들 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이다. 2011년의 경우 호주를 방문한 관광객 588만명 중 상위 10개국에 아시아 국가 6개국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 일본, 싱가포르, 한국, 말레이시아, 홍콩 등 아시아 6개국에서 호주를 방문한 관광객 수가 총 관광객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호주의 공영방송 중 하나인 SBS는 각국의 주요 방송국과 제휴하여 매일 두 개의 텔레비전 채널에서 아침시간대에 한국어, 중국어, 태국어, 헝가리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21개국의 뉴스를 언어별로 약 20분간 현지어로 방영하고 있다. SBS 라디오에서는 68개국 언어로 방송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팝을 소개하는 이 방송의 주말 프로그램인 ‘팝 아시아’에는 주로 한국의 K팝이 소개되고 있어서인지 K팝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호주 비즈니스맨을 가끔 만나기도 한다. 호주의 다민족, 다문화는 시대적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아시아 쪽으로 가깝게 다가서고 있는 호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의 위상을 호주 속에 확대해 가는 기회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주의 4대 교역국으로까지 부상한 우리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정치·문화·인적 교류 측면에서도 양국 간의 관계를 보다 긴밀히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호주에서 한국문화가 현지인에게 보다 익숙하게 다가가고, 한국계가 호주사회에서 주류의 일원으로서 활약하게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 우생순, 최강 유럽을 넘어라

    올림픽 무대에서 감동의 ‘우생순 신화’를 써낸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런던에서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31일 영국 런던 크리스탈팰리스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본선 조 추첨에서 강력한 메달 후보들과 한 조에 편성됐다. 세계 랭킹 8위인 한국은 노르웨이(5위), 덴마크(6위), 프랑스(11위), 스페인(16위), 스웨덴(20위)과 B조에 속했다. 메달 골목마다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유럽 강국과 조별리그에서부터 뒤엉키게 됐다. 특히 노르웨이,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는 지난해 브라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차례로 1~4위를 차지한 세계 최강이다. 여자팀 강재원 감독은 “조 편성 결과만 봐서는 금메달 전선이 밝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뒤집어 보면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조별리그를 거쳐 상위 4팀이 8강에서 크로스 토너먼트를 치르는 경기 방식이기 때문에 난다 긴다 하는 팀끼리 물고 물리다 보면 의외로 싱겁게 순위가 결정날 가능성이 있다. 한 번의 패배가 바로 탈락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A조 상대와 단판전을 치르는데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러시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만만해 보인다. 초반부터 화끈하게 부딪친 뒤 A조 1위가 유력한 러시아만 피하면 준결승까지 순항할 가능성이 높다. 초반에 쉽게 갔다가 단판전에서 강력한 상대를 만나는 것보다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자핸드볼은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7차례 올림픽 무대에서 금2, 은3, 동1을 따낼 정도로 ‘효자 종목’으로 입지를 굳혀 왔다. 힘든 여정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오히려 먼저 매를 맞고 나중에 웃을 가능성도 많다. 한편 최석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핸드볼 대표팀(19위)은 덴마크(4위), 세르비아(5위), 헝가리(7위), 스페인(8위), 크로아티아(10위)와 B조에 속해 험난한 레이스가 예상된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2012 이승철 콘서트 ‘LOVE CROSS’ 6월 1~2일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 아프리카 차드의 학교 건립을 위한 콘서트로 계단식 좌석을 설치하고, 5.1 서라운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야외 공연의 정취를 보여줄 예정이다. 7만 7000~16만 5000원. 1544-4997. ●이승환 회고전 6월 22~7월 1일 서울 숙명아트센터 씨어터S. 가수 이승환이 아티스트로 보낸 지난 23년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의미의 소극장 공연. 전석 9만 9000원. 1544-1555. [연극·뮤지컬] ●뮤지컬 ‘결혼’ 19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조건에 목매는 현대 남녀의 결혼관을 풍자한 뮤지컬로 결혼이라는 과정을 빌려 인생의 철학적 의미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4만~5만원. (02)775-7775. ●연극 ‘레슬링 시즌’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 장민호 극장. 왕따, 성 정체성, 동성애 등 민감한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는 맹랑한 문제극으로 8명의 고등학생이 지름 9m 원형 매트 안에서 끊임없이 겨룬다. 3만원. 1688-5966.. [국악·클래식] ●시로 노닐다, 주시유락(奏詩遊樂)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신사동 윤당아트홀.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창작곡 6곡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가야금 연주자 이주인이 선보인다. 무료. 010-5496-9294. ●막심 코시노프 바이올린 리사이틀 6월 3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악장 막심 코시노프가 화려하고 섬세한 색채로 차이콥스키의 ‘추억’,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 등을 연주한다. 3만~15만원. (02)461-6712. [미술·전시] ●‘새벽여행 길에서 길을 묻다’ 27일까지 서울 통의동 갤러리드팔레.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출신 신동철 작가는 맑고 투명한 담채로 수묵화 자체의 맛을 잘 살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전시된 80여점의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 작가가 우리 산하 곳곳을 답사하면서 머리에 그려 두었던 소나무와 농가의 소소한 풍경들을 담았다. (02)730-7707. ●‘로맨티시즘과 에로티시즘 사이’ 얀 샤우덱 사진전 26일부터 7월 15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5·6전시장. 문학에 카프카, 음악에 스메타나가 있다면 사진에는 얀 샤우덱이 있다. 체코가 자랑하는 사진작가 샤우덱은 인간 누드에 몰입해 왔다. 그의 누드는 그대로의 육체를 고스란히, 그것도 지극히 풍자적인 시선을 가지고 찍어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껴볼 수 있다. 8000원. (02)722-4414.
  • 42년전 공훈 기리려 법까지 고친 美

    1968년 6월 로즈 메리 세이보 브라운은 그녀의 이름처럼 인생이 장밋빛으로 보였다. 고교 시절부터 사랑했던 동창생 레슬리 세이보가 마침내 그녀에게 청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한달 만에 날아온 베트남전 징집 통지서로 일그러졌다. 브라운은 징집에 응하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헝가리에서 이민 온 가정 출신인 세이보는 “공산주의와 싸울 의무가 있다.”며 약혼녀의 요청을 뿌리치고 징집에 응했다. 군의 특별 배려로 휴가를 나와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지만 세이보는 곧바로 베트남으로 떠나야 했다. 달콤한 신혼 생활은 불과 1개월뿐,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달콤한 신혼 1개월… 다시는 못 만나 1970년 5월 10일 베트남 정글에서 정찰 중 적의 매복 공격을 받자 당시 22세의 세이보 상병은 적의 수류탄으로부터 동료를 몸으로 감싸 보호했는가 하면 총상을 무릅쓰고 적의 벙커에까지 기어가 수류탄을 투척해 제압하는 등 영웅적인 활약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벙커 안에 던진 수류탄의 파편에 그도 결국 숨졌다. 세이보의 동료들은 그를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 수여자로 추천키로 했지만 훈장 수여를 위해 작성한 공적 서류가 전쟁통에 분실되면서 흐지부지 세월이 흘러 버렸다. 그러다 1999년 세이보의 전우였던 참전용사 토니 맵이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세이보의 공적 서류를 발견해 훈장 수여 운동에 나선다. 하지만 당시 미국 법에 따르면 ‘명예훈장’은 무공 후 3년 이내에 추천이 이뤄져야 했다. 전우들은 의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의회는 2008년 법을 고쳤다. ●남편 대신 훈장 안고 말없이 흐느껴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레이 오디어노 육군 참모총장, 베트남전 참전용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세이보의 훈장 수여식이 거행됐고 이 장면은 미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발의 로즈 메리 세이보 브라운에게 훈장을 수여한 뒤 따뜻하게 포옹했고 남편 대신 훈장을 안은 그녀는 말없이 흐느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창자없이 태어난 아기 9개월 만에 결국…

    사실상 창자 없이 태어나 전세계를 놀라게 한 아기가 결국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7월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 테쿠치에서 태어난 이 아기의 이름은 안드레이. 사실상 창자가 없는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전세계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이같은 소식이 보도되자 아기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미국과 유럽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아 집중 치료를 받아왔다. 담당 의사인 캐털린 박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생명의 가는 끈을 잡고 사투를 벌이던 아기가 세상을 떠났다.” 면서 “10일 전부터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고 밝혔다. 당초 아기는 미국에서 건너올 전문 의료진의 이식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캐털린 박사는 “아기는 단지 10cm의 창자를 가지고 태어나 당장이라도 수술이 필요했다.” 면서 “아기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며 여러 합병증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어린 나이에 아기를 출산한 엄마 크리스티나(15)도 비탄에 잠겼다. 크리스티나는 “빨리 미국에서 의료진이 건너와 안드레이의 수술이 이루어지길 원했지만 결국 희망도 사라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인터넷뉴스팀        
  • “反긴축” 스페인 시위, 분노의 99%와 연대

    “대형 은행만 구제하고 일반 국민들은 내팽개치나.” “이건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12일(현지시간) 갈수록 조여오는 정부의 긴축 정책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수십만명의 분노한 시민들이 스페인과 영국, 독일, 이스라엘의 도시로 뛰쳐나왔다. 1년 전 ‘분노한 사람들’(로스 인디그나도스)이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 ‘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 광장을 ‘점령’하고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지 1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긴축 정책 반대와 빈부 격차 해소를 외치는 시위대가 길거리를 메웠다. ●스페인 80개 도시 7만여명 거리로 올 들어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빠졌던 긴축 반대 시위는 이날 주최 측이 ‘점령 시위대’와 함께 기획한 ‘글로벌 행동의 날’을 맞아 스페인 전역에서 재점화된 것을 계기로 유럽 다른 국가들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미국 월가에서 시작해 유럽을 휩쓸었던 점령 시위대의 ‘99% 대 1%’라고 적힌 배너가 다시 시위 현장에 등장하면서 긴축 반대 시위는 빈부 격차 해소 시위와 맞물려 ‘뜨거운 여름’을 예고하고 있다. AP에 따르면 스페인 경찰 관계자는 12일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의 80여개 도시에서 총 7만 2000여명이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마드리드 시내에서만 2만 2000여명(경찰 추산)이 시위를 벌였고 바르셀로나에서는 3만명(시위대 추산 22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스페인 국민들의 분노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실업률은 24.4%까지 치솟았다. 최후의 보루였던 공공보건과 교육 예산까지 삭감하며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했던 정부가 최근 스페인의 자산 규모 3위 은행인 방키아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급기야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공무원인 글로리아 브라보(48)는 “우리가 게을러서 이런 사태가 왔다며 사회복지와 교육, 건강보험 혜택을 빼앗더니 지금 와서 은행가들을 구제하고 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회사원 마리나 산토스(23)도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위해 기꺼이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철야 시위를 벌인 수백명의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시위대 18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오는 15일까지 집회를 계속할 예정이다. ●헝가리 2500명·런던 600명 시위 참여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도 극우정당인 요빅당의 지지자 2500명이 정부의 세금 인상과 긴축 정책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영국 런던에선 약 600명의 시위대가 목적지인 영란은행(BOE)을 향해 행진하며 약탈적인 자본주의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다.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로 최소 12명이 체포됐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수백명의 시위대가 긴축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런가 하면 이날 텔아비브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여러 도시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물가 상승 반대와 사회 정의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애국가 작곡한 안익태 선생 헝가리 영웅광장에 흉상 설립

    애국가 작곡한 안익태 선생 헝가리 영웅광장에 흉상 설립

    10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웅광장 내 시민공원에서 열린 안익태 선생 흉상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흉상 설립을 축하했다. 제막식에는 헝가리 국회의원들과 부다페스트 시 관계자, 김형주 서울시 정무부시장, 남관표 주헝가리 대사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은 1938~1941년 부다페스트 명문 ‘리스트 페렌츠 음악예술대학’에서 헝가리 민속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졸탄 코다이를 사사했다. 흉상은 서울시가 3년 전 선생을 기리고 한국과 헝가리의 우호 친선을 위해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서울시는 3만 달러의 제작 비용을 댔다. 부다페스트 연합뉴스
  • 국방부 “6·25전쟁 한국지원국은 63개국”

    국방부는 10일 6·25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나라 수가 63개국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방회관에서 열린 ‘6·25전쟁 지원국 현황 연구 포럼’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을 거쳐 이같이 확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10년부터 미국 국립문서보존소(NARA) 증거 자료를 수집하는 등 세계 각국의 자료를 수집했다.”며 “당시 세계 93개 독립국 중 65% 이상의 국가가 대한민국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6·25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한 국가는 ‘한국동란전란지’에 근거해 41개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엔 이외의 경로를 통한 물자지원 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등 정확한 숫자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존에 알려진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 16개국과 노르웨의 등 의료 지원국 5개국에 대해서는 변동 사항이 없었다. 그러나 물자지원국 수가 기존에 알려진 20개국에서 39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번에 6·25 지원국 명단에 추가된 국가는 물자지원국인 오스트리아, 미얀마, 캄보디아, 도미니카, 이집트, 독일, 과테말라, 온두라스, 헝가리, 인도네시아, 이란, 자메이카, 일본, 모나코,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시리아, 타이완, 베트남 등 19개국이다. 여기에 당시 지원의사를 밝혔지만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브라질, 니카라과, 볼리비아 등 3개국도 포함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논란이 있었던 지원 기간 범위도 확정했다. 종료시점을 정전 당시인 1953년에서 전후복구 지원 기간인 1958년까지로 늘린 것이다. 국방부는 포럼에서 도출된 내용을 토대로 국방백서와 교과서의 개정 등을 추진하고, 올해 6월 6·25전쟁 기념식을 통해 지원국들에 감사를 표할 계획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5월 프랑스 ‘누벨 당스’에 빠져볼까

    5월 프랑스 ‘누벨 당스’에 빠져볼까

    19세기 후반, 헝가리에서는 루돌프 폰 라반, 미국에서는 이사도라 던컨이 틀과 격식을 벗어던지고 개성 있는 표현에 집중한 무용을 선보였다. 현대무용의 태동이다. 이후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현대무용은 진화를 거듭했다. 프랑스 현대무용은 1980년대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니 조금 늦게 출발한 편이다. 기간은 짧지만 프랑스식 미학을 담은 ‘누벨 당스’(Nouvelle Danse·새로운 춤)는 서사적 내용, 영상예술과 결합 등을 선보이며 유럽 무용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런 프랑스 현대무용을 초기부터 현재까지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풍성하다. ●몸, 움직임, 그리고 프랑스 19일부터 13일동안 열리는 제31회 국제현대무용제(MOdern DAnce FEstival, 이하 모다페)에는 해외 초청작 중 절반이 프랑스 작품이다. 한국과 프랑스가 함께 제작한 ‘프랑코리안 테일’(FranKorean Tale)이 개막작으로 관객을 먼저 만난다. 프랑스 투르 국립안무센터 토마 르브렁 예술감독과 오디션을 거쳐 선발한 국내 무용가 6명이 만들어낸다. 폐막작인 발레 프렐조카주의 ‘앤 덴, 원 사우전드 이어 오브 피스’가 특히 기대를 모은다. 안무가 앙줄렝 프렐조카주는 30년 가까이 프랑스 무용계를 이끄는, 누벨 당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대작과 실험적인 작품을 넘나드는 안무가로, 2003년 국내에 선보인 ‘봄의 제전’이 화제와 충격을 던졌던 터라 관심을 끈다. 프랑스에서 독창적인 무용단으로 꼽히는 시스템 카스타피오르는 무용과 연극, 디지털 이미지를 결합한 재미를 담은 ‘스탠드 얼론 존’을 공연한다. 이 밖에 무용수의 개성과 문화 정체성을 보여주는 라 바라카 무용단의 ‘냐’(알제리), 다니엘 아브레우 무용단의 ‘애니멀’(스페인), 수잔 델랄 센터의 ‘더 디플로매츠’와 ‘원더랜드 파트 원’(이스라엘)을 올린다. ●다채롭게 만나는 현대무용 국내 초청공연도 다양하다. 죽음을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한 김선이 프로젝트의 ‘이프’(IF), 24평이라는 공간에서 보는 일상을 무용으로 승화한 홍경화 안무가의 ‘79㎡’, 정신질환자를 통해 존재의 질문을 던지는 오창익 안무가의 ‘우리는 무엇일까?’, 음악 ‘볼레로’ 안에서 역동성·생명력·리듬 등을 끌어낸 조주현 댄스 컴퍼니의 ‘인스퍼레이션Ⅲ’ 등 13개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차세대 안무가 발굴 프로그램인 ‘스파크 플레이스’에는 올해 9개 팀이 경연을 벌인다. 해외 무용 언론인을 초청해 세계 무용의 추세를 짚어보는 포럼을 비롯해 워크숍, 관객과의 대화 등도 마련돼 있어 현대무용을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다. 국지수 모다페 사무국장은 “프랑스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다시 현대무용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프랑스 무용 중에서도 화두가 될 만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대중적인 것과 독특한 것, 새로운 것 등 폭넓은 장르를 즐기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포커스 온 보디스 무브먼트’(Focus on Body´s Movement)를 주제로 한 모다페는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남산 국립극장 등에서 열린다. ●프랑스 현대무용사를 한 눈에 오는 29일까지 서울 중구 통일로 문화역서울284에서는 주한 프랑스문화원이 주최하는 ‘시네-당스(CINE-DANSE) 프랑스현대무용 영상전’이 열린다. 오는 6월까지 모다페와 한국공연예술센터, LG아트센터 등에서 열리는 현대무용축제인 ‘프랑스무용 한국2012’의 하나다. 파리오페라부터 최근 활약하는 현대무용단을 아우르는 공연, 다큐멘터리 등 무용에 관한 영상 70여 편을 보면서 프랑스 현대무용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다. 더불어 프랑스 현대무용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강연회가 열린다. 17일에는 모다페에서 한·프랑스 합작 공연을 선보이는 토마 르브렁 예술감독이 ‘2012년 창작: 젊은 소녀와 죽음’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 18일에는 프랑스 주간지 ‘레 젱호크티브르’의 필립 누와제트 기자가 안무가 앙줄렝 프렐조카주를 조명한다. 모다페 폐막작을 올리는 이 안무가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자세한 일정은 문화역서울 284 홈페이지(www.seoul284.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헝가리 축구계 ‘포르노 파문’으로 발칵

    헝가리 축구계 ‘포르노 파문’으로 발칵

    헝가리 축구계가 포르노 파문으로 발칵 뒤집혔다. 축구 선수들이 탈의실에서 포르노를 찍은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헝가리 3부 리그 클럽인 바수타스 두나케스치 소속 축구선수들이 탈의실에서 포르노를 촬영한 건 약 2년 전. 제작된 포르노는 은밀하게 나돌다 최근 인터넷성인사이트를 통해 유출됐다. 외신에 따르면 문제의 포르노는 프랑스의 한 성인물 프로덕션이 제작했다. 타이틀은 ‘XX 축구클럽’. 영화에는 클럽에 소속된 일단의 선수들이 배우로 등장한다. 외신은 “당시 선수들이 클럽의 경비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며칠 동안 탈의실에 틀어박혀 지내며 포르노를 찍었다.”며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공범) 경비원들이 탈의실 주변을 통제했다.”고 보도했다. 탈의실 유리창은 꼼꼼하게 가려 촬영현장이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한편 클럽은 “선수들이 클럽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탈의실을 비윤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두나케스치 시 당국은 경찰에 사건 수사를 지시했다. 사진=아이스포츠블레스크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표절”에 백기… 의원직은 포기 안할듯

    “표절”에 백기… 의원직은 포기 안할듯

    새누리당 문대성 19대 국회의원 당선자가 탈당 번복 소동 사흘 만인 20일 결국 탈당했다. 자신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한 국민대 측의 심사결과 앞에서 두 손을 든 것이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자신의 지역구를 문 당선자에게 넘긴 현기환 의원은 이날 “어제(19일) 문 당선자와 전화 통화하면서 탈당을 설득했다.”면서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수긍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문 당선자는 지난 18일 오전만 해도 탈당 기자회견을 갖고 당을 떠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오후로 예정됐던 회견을 돌연 취소한 뒤 당 잔류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당의 ‘늑장 대응’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당이 문 당선자의 제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윤리위원회를 오는 25일 소집하기로 하면서 탈당은 시간문제로 간주됐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동아대 교수직을 이미 내놓은 문 당선자가 국회의원직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직까지 박탈당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 당선자가 당적과 달리 의원직을 스스로 포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문 당선자가 이날 언론에 배포한 신상 자료에서도 “유권자들이 저의 진정성을 알고 선택해 주셨다고 생각한다.”면서 의원직 유지 의사를 내비쳤다. 6월 개원하는 19대 국회가 문 당선자를 제명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 내야 하는 만큼 속단은 이르다. 논문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국회의원이 또 있을 가능성과 이에 따른 여야의 정치적 부담도 ‘문대성 제명’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다. 당 핵심 관계자는 문 당선자의 의원직 사퇴에 대해 “당에서 하라 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선을 그은 반면 19대 국회 개원 후 제명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봐야 한다.”고 열어 뒀다. IOC 선수위원 자격도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IOC 선수위원으로 임명된 문 당선자의 임기는 2016년까지 8년으로, 3년여가 남아 있다. IOC 측이 문 당선자의 논문 표절 의혹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IOC는 그동안 ‘국가 내부 불간섭’ 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달 초 논문 표절 문제로 사임한 슈미트 팔 전 헝가리 대통령도 IOC 위원 자격은 유지하고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관계자는 “국내 문제가 처리되고 난 이후 제재 조치가 있을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선수위원직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병규·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일제하 독립운동전략은 두 방향에서 추진됐다. 1919년부터 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외교를, 그리고 1940년부터 5년간 주석을 맡았던 김구는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1941년 6월 김구는 이승만을 임정을 대표하는 주미외교위원장 겸 주미 전권대표로 임명했다. 방법론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그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조국은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으며,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은 북한에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승만과 김구가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남북의 분단은 결정되고 말았다. 1945년 12월 한반도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전해지자 김구와 이승만은 임시정부를 모태로 한 반탁운동의 선봉에 함께 나섰다. 반공·반소·반탁 노선을 함께 취한 두 사람은 1946년 6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한 정읍선언을 내면서 갈라섰다. 5·10 총선거를 코앞에 둔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連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그가 김일성에게 보낸 2월 16일자 서한에서 제안했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정치지도자 간의 정치협상’, 즉 책임 있는 당국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하는 구수(鳩首)회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북회담 문제는 세계에서 소련 정책을 아는 사람은 다 시간을 연장해 공산화하자는 계획에 불과한 것으로 간파하고 있는데 한국 지도자 중에서 홀로 이것을 모르고 요인회담을 지금도 주장한다면 대세에 몽매하다는 조소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승만의 논평(동아일보 1948년 4월 2일자)은 정곡을 찌른다. 1945년 말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우익 탄압, 이듬해 6월 폴란드 공산당의 국민투표 결과 조작, 그리고 1947년 8월 20%밖에 득표하지 못한 공산당이 소련군의 비호하에 정권을 강탈한 헝가리 사태 등을 볼 때, 당시 남북협상은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에 이용될 가능성이 컸다. “조국은 지금 독립의 길이냐, 예속의 길이냐, 통일의 길이냐, 분열의 길이냐 하는 분수령의 절정에 서 있다. 우리의 지표와 진로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가위(可爲)·불가위의 당위론인 것이니 올바른 길일진대 사력을 다해 진군할 뿐일 것이다.” 북행(北行) 하루 전날 나온 문화인 108인의 지지성명처럼, 김구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민족통일의 대의를 위해 북으로 갔다. “공산주의나 여하한 주의를 가진 것을 불문하고 외각(外殼)을 벗기면 동일한 피와 언어와 조상과 풍속을 가진 조선민족이다.” 북행 4일 전 연설은 그가 남북협상의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결의문은 ‘채택’돼 있었다. 4월 23일에 나온 결의문은 ‘연석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김일성에게 조언을 제공할 데 대하여’라는 4월 12일자 스탈린의 지령을 그대로 베꼈다. 4월 28일과 29일에 열린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4김 회담’과 30일에 나온 ‘남북조선 제정당 및 사회단체 공동성명서’도 구속력 없는 휴지 조각과 다름없었다. 그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김일성과 김두봉이 자주적 결정권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북한은 소련 군정 치하였고 공산진영의 황제였던 스탈린의 지령은 불가침의 성헌(成憲)이었다. 이미 정읍선언 네 달 전인 1946년 2월에 북한은 이미 실질적 정부인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를 세웠으며, 1948년 2월에는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헌법’ 초안도 공표한 상태였다. 김구의 북행으로 북한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소련의 정치공작은 성공한 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 김구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우(愚)를 범했고 이후 이승만은 독재의 과(過)를 범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사를 임정이 수행한 민족독립운동의 역사와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이승만과 김구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로 우리 역사에서 함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 순수하고 강렬했던 천재의 문학세계

    순수하고 강렬했던 천재의 문학세계

    “내가 더 달란 말이 아니오. 잘 알아요. 이건 자본주의 사회야. 자본주의 사회니까 자본 바깥에서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염소 같은 내가 또 내 분수를 잘 알지. 잘 아니까 더 달란 말은 아니야. 그러나 내가 일한 것만큼은 누가 줘야 될 것 아니야? 이치가 그렇잖아?(생략)”(247쪽, 단편소설 1948년 4월 발표한 ‘한 화가의 최후’ 중)  일제 식민지와 해방공간의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낸 월북시인이자 소설가인 오원(梧園) 설정식(1912~1953)의 문학전집(산처럼 펴냄)이 나왔다. 올해 설정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남긴 시 60여 편과 장·단편소설 6편, 문학평론 4편, 그가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하므렡’(햄릿)과 헤밍웨이의 ‘불패자’ 등 번역물 3편 등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한 시기는 해방 이후 4년여에 불과했지만 시인 정지용 등은 그를 천재라고 했었다.  해방 공간에서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했던 설정식을 왜 사람들은 알지 못했을까. 설정식이 월북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8년 납북·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뤄진 뒤에서야 조명되기 시작했다.  설정식의 삶은 한국의 역사와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함경남도 단천 출신인 그는 개신 유학자인 오촌(梧村) 설태희(1875~1940)의 4남 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전개했고 벽초 홍명희와도 친분이 있었다. 둘째 형 설의식(1901~1954)은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직을 물러난 언론인이었다. 지사 집안의 분위기 덕분에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그는 경성공립농업학교(서울시립대 전신)에서 퇴학당한다. 이후 만주 펑톈으로 가 중국 랴오닝성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1931년 7월 한인과 중국 농민이 충돌한 완바오 산 사건에 연루돼 피신했다가 귀국해야 했다. 그 경험을 담은 ‘중국은 어디로’가 1932년 1월 중앙일보의 희곡 현상공모에서 1등에 당선됐다. 1932~1936년에 연희전문대(연세대 전신)에서 공부한 뒤 그는 1937년 9월 미국 오하이오주 마운트유니언대에 입학에 영문학을 전공했고, 1939년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2년간 셰익스피어를 연구하고 귀국했다. 1945년에는 미 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이 됐다. 다른 한편으로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고, 그해 9월 임화를 통해 조선공산당에 입당한다. 1947년 8월 미군정에서 사임한다.  1946년 아버지의 죽음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청춘’, 미국 유학생활을 소재로 민족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의 고뇌를 다룬 단편소설 ‘프란씨쓰 두셋’을 신문에 연재한다. 1948년 단편소설 ‘척사 제조사’, ‘한 화가의 최후’를 발표하고, 장편소설 ‘해방’을 연재하다 중단한다. 1947년에 첫 시집 ‘종’, 1948년에 시집 ‘포도’와 ‘제신의 분노’를 각각 출간했다. ‘제신의 분노’에서 시인으로서 문학적 입지를 굳혔다. 1949년 햄릿을 ‘하므렡’으로 완역해 간행했다. 6·25전쟁이 나자 설정식은 1950년 9월 자수 형식으로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월북한 그는 1951년 7월 개성 휴전회담에서 조중대표단의 통역관으로 나타났다. 이때 종군기자였던 헝가리의 티보 메러이와 친분을 나누고, 도움을 받아 헝가리어로 ‘우정의 서사시’라는 책도 출간했다. 그러나 설정식은 1953년 7월 휴전회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해 3월에 임화 등과 함께 체포돼 조선남로당숙청 때 미제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 41살이었다.  그의 죽음이 부인 김증연씨와 자식들에게 전달된 것은 9년이 지난 1962년 9월이었다. 헝가리의 종군기자 티보 메러이가 잡지 사상계에 ‘한 시인의 추억, 설정식의 비극’이란 글을 기고한 덕분이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발문에서 “독립 자주의 민족이념, 전 인민을 위한 자유로운 민주주의, 그것의 실천을 위한 사상적 순수성을 다짐하는 수사의 강렬함”으로 그의 문학세계를 규정했다. 곽명숙 아주대 교수도 “논어와 장자 등 한문 고전들을 현학적이고 해박하게 펼쳐놓은 주지주의적 시의 특징을 남겼다.”고 했다.  시와 소설은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에서 느꼈을 청년 지식인의 고뇌, 정치적 성향 등이 물씬물씬 드러난다. 이제는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든 막내아들이자 언론인 설희관씨가 전집을 엮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기술무역적자 8兆… 실속없는 ‘IT한국’

    기술무역적자 8兆… 실속없는 ‘IT한국’

    기술무역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2010년 기준으로 68억 8900만 달러(약 7조 8445억원)에 달했다. 세계시장에서 강점을 가진 반도체·휴대전화·디스플레이·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핵심 원천기술 상당 부분이 미국·일본 등 해외기업 소유인 탓에 국내 업체들이 팔면 팔수록 기술 수입 규모도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기술 수출과 수입 모두 대기업이 주도하면서 특정 기업의 실적부진이 곧바로 무역수지 악화와 직결되는 형국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2010년도 국내 기업의 기술무역 거래현황을 조사·분석한 결과 수출은 33억 4500만 달러, 수입은 102억 3400만 달러로 집계됐다고 10일 밝혔다. 1963년부터 실시된 기술무역 거래현황 조사는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사이에서 발생한 특허·상표·실용실안·디자인·기술정보·기술서비스 등의 라이선스 매매 비용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원천기술 보유 척도로 평가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기술 수출은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조사기법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기술 수출을 주도하는 정보기술(IT) 기업과 건설사들의 해외진출 부진 등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국과위 관계자는 “삼성전자 한 곳만 놓고 보더라도 2010년 기술수출 실적이 2009년보다 6억 달러 이상 줄어들었다.”면서 “삼성의 주력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가격인하 등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건설사는 2008년 금융위기 영향으로 해외 수주가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기술 수입은 2009년보다 21.3%나 증가,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01년 이후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휴대전화 칩, 통신기술, 반도체, 자동차 전기장치 등 주력 수출품목의 원천기술 상당수를 해외에서 가져오다 보니 국내 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증가할수록 기술 수입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실제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실적과 기술 수입액 추이는 거의 일치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술 수출은 미국(14억 9570만 달러), 중국(8억 달러), 슬로바키아(1억 4500만 달러), 헝가리(1억 2500만 달러), 태국(7900만 달러) 등 국내 기업의 해외공장 진출에 따라 이뤄졌다. 수입은 전체 수입액의 44.7%를 차지한 미국(58억 7380만 달러)에 이어 일본(12억 5740만 달러), 아일랜드(4억 3270만 달러), 영국(3억 8140만 달러) 등의 순이다. 이창한 국과위 사무처장은 “수지 적자 감소를 위해서는 원천기술 개발·축적 및 해외투자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열린세상] 소금 광산과 문화 자원/김다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열린세상] 소금 광산과 문화 자원/김다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한 계단, 두 계단, 앞사람 꽁무니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백, 이백 하나,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은 소용돌이처럼 구부러져 돌아가는 좁은 나무 계단을 끝없이 내려갔다. 378번째 계단을 내려서자 드디어 지하 65m에 도착했다. 울퉁불퉁한 암벽과 천장에는 하얀 꽃들이 피어 있고 소금 맥들이 그물처럼 엉켜 있었다.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벽 여기저기를 찍어 맛을 보았다. 짜다, 짜! 그곳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었다. 소금이 어디서 나느냐고 물으면, 한국인은 대부분 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60%가 광산에서 나오는 암염이다. 암염은 지각 변동에 의해 바다가 육지로 융기한 후 오랜 세월을 거쳐 염화나트륨 결정체로 남은 것이다. 해염보다 암염에 의존했던 유럽국가들은 황금보다 소금 캐는 일이 더 중요한 과업이었다. 13세기부터 채굴이 본격화된 비엘리치카 광산은 깊이 3000m에 갱이 9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총길이 300㎞에 걸쳐 암염을 채취하고 만들어진 방이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소금은 왕족과 귀족들만의 독점물이었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소금 채취의 기능을 잃지 않고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난 곳이다. 휴양 목적의 호텔, 식당, 연회장, 광부들이 만든 소금 샹들리에와 최후의 만찬 부조가 걸린 예배당 등 그 규모나 기능이 놀라웠다. 하지만 천일염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위 속에 박혀 있는 하얀 소금 그 자체였다. 육면 혹은 팔면의 결정체인 다이아몬드 소금이었다. 또한 소금 채취를 위해 모아놓은 거대한 연못의 수면 위로 머무는 고요한 정취와 망아지 때부터 갱에 들어와 평생을 숙명처럼 돌렸던 거대한 연자방아식 장치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광산 내에서 가이드를 맡고 있는 전직 광부들의 과묵함과 배려도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소금광산을 보니, 자연을 관광단지로 개발할 때 유념해야 할 것들이 또렷해졌다. 예를 들면, 새만금 개발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금의 개발계획처럼 대규모 골프장과 테마파크, 숙박시설, 공연장, 연수원 등의 시설일까. 새만금의 최대 관광자원은 개펄 그 자체일 것이다. 개펄이 제공하는 생명력과 비릿한 냄새,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다채로운 해양 생태계와 자연 풍광일 것이다. 더구나 개펄 1㎢의 미생물 분해 능력은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기준 하루 2.17t의 오염물을 정화할 수 있다. 그런 자연의 능력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문화산업이 아닐까. 그곳 주민들의 오랜 노하우도 잊지 않아야 할 요소이다. 새만금 개발은 상당히 진행되어 이미 60%가 뭍으로 변했고, 봄바람에 날려오는 소금 먼지가 주민을 괴롭힌다고 들었다. 문화 개발의 또 다른 중요 요소는 스토리 텔링이다. 소금 광산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킹카 공주였다. 폴란드 왕자에게 시집 오던 헝가리 킹카 공주가 도중에 자신의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지금의 비엘리치카 부근에서 반지도 찾고 소금 굴도 찾아냈다는 이야기였다. 백성들에게 생필품인 소금과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 킹카 공주는 소금의 수호신이 되었다. 허무맹랑한 전설이지만,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의 필요와 부를 채워주는 문화 원형을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었다. 소금이 더 이상 귀족의 독점물이 아니게 되자, 평민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손님들을 초대하여 지독하게 짠 음식을 내놓았다는 일화도 있었다. 비엘리치카 광산 지하 130m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데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40초가 걸렸다. 관광치고는 과도한 에너지가 소모됐던 소금광산 관광 후, 전형적인 폴란드 식사를 먹게 되었다. 참으로 짠 고기와 감자 요리가 나왔다. 추운 나라에서 체온을 올리기 위한 음식이라고 했다. 나트륨이 지나치면 건강에 해롭다고 소금을 자제해 왔는데, 그 식사에서 왠지 잃어 버린 맛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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