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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연속 세 번 도전해 성공한 건 우리뿐”

    MB “연속 세 번 도전해 성공한 건 우리뿐”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마지막 순방 국가인 에티오피아를 국빈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이 역대 정상 중 처음으로 에티오피아를 찾은 것은 ‘보은 방문’의 성격이 짙다. 에티오피아는 1951년 5월 6·25전쟁에 참전, 6037명을 파병해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다. 올해가 참전 60주년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1974년 공산혁명이 일어나 6·25전쟁 참전 용사들이 핍박을 받았고 후손들도 어렵게 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9일 6·25전쟁 참전 기념비에 헌화한 뒤 참전용사들과 다과회를 갖고 이들을 위로했다. 이어 빈민촌을 방문해 쓰레기 줍기와 마을 시설 건축 등의 봉사활동을 벌였다. 이 대통령은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와 가진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의 녹색성장 전략을 소개하고, 농업과 경제통상·자원 등 양국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양국은 인듐, 리튬 등 희유(稀有)금속 탐사 및 개발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에도 서명했다. 두 나라 정상은 또 에티오피아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5개년 경제개발 계획 ‘성장과 변화’를 위해 협력하고, 우리나라의 농촌 개발 경험을 비롯한 경제성장 전략을 공유하기로 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7일 콩고 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에서 동포들과 간담회를 갖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세 번째 도전해서 압도적으로 된 것도 기록이지만 더 큰 기록은 (연속으로) 세 번까지 도전해 성공한 도시가 처음이라는 것”이라면서 “한 번 도전했다가 포기했다가 10년, 20년 지나 도전한 경우는 있었지만, 그냥 삼세번 달려든 나라는 우리밖에 없으며, 세계가 한국 사람들은 끈질기다고 한다.”고 말했다. 아디스아바바·킨샤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하늘로 간 여동생 사랑해”…감동의 미스터리 서클

    최근 북아일랜드의 한 농장에 ‘미스터리 서클’(Mystery Circle)이 등장했다. 미스터리 서클은 ‘크롭서클’이라고도 불리며 곡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눕혀져 위에서 보면 특정 무늬가 보여 외계인의 흔적이라고도 여겨진다. 그러나 이 미스터리 서클은 감동적인 사연이 숨어있다. 이 서클을 만든 사람은 농장을 운영하는 에드워드 헨리. 그는 10개월전 사랑하는 여동생을 유방암으로 잃었다. 열달 동안 그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 달 들어 그는 여느 때 처럼 여동생 묘에 헌화하려 했으나 이것만으로도 여동생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미스터리 서클. 그는 트랙터를 이용해 자신의 밭에 하트모양과 함께 ‘사랑하는 엘리자베스’(Elizabeth with love)라고 새겼다.   에드워드 헨리는 “이렇게 서클을 만들면 하늘에 있는 여동생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며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녀를 그리워 하고 있다.”며 눈물 지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태극기를 밟고 찍은 사진이 한국에서 논란이 된 모양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둘로 갈려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태극기를 짓밟다니, 대한민국을 떠나라.”라는 비난과 “별걸 다 트집 잡는다. 그럼 태극기를 엉덩이에 두르는 것은 괜찮으냐.”라는 두둔이 드잡이하고 있었다. 내 알량한 분석력을 총동원해 판단하건대, 한 전 총리가 고의로 태극기를 밟은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아마도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하느라,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석에 헌화하느라 태극기에 신경을 쓰지 못한 듯하다. 정말 작심하고 모독하고 싶었다면 굳이 신발을 벗고 태극기 위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적어도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그가 태극기를 무시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태극기를 밟거나 엉덩이로 깔고 앉았더라도 실수로 봐줄 수 있지만, 한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전력으로 미뤄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의 잠재의식 속에 정말 ‘태극기 무시’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모습에서 태극기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묻어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극진한’이라 함은 부모님 영정만큼, 아니면 자신이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의 영정만큼 끔찍이 위한다는 의미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태극기에 발을 올려놓는 일은 저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어떤가. 고백하건대, 나 역시 태극기를 극진히 예우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경일에는 ‘애국심을 꼭 표현해야 맛인가.’라는 자의적 논리로 국기 게양의 귀찮음을 합리화했고, 평소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촌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월드컵 응원할 때나 돼서야 맘 떠난 애인 손잡듯 찾는 게 태극기였다. 왜 그랬을까 ‘분석’해 보니 과거 군사정부 시절 강요된 애국심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심리였던 것 같다. 그때는 길을 걷다가 저녁 무렵 애국가가 울리면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를 웅얼거리던 시대였다. 민주주의도 자라고 나도 자랐지만, 태극기에 대한 나의 정서는 유년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는 미국에 와서 ‘개과천선’했다. 미국 국민의 성조기 사랑은 가히 설화적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공사장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성조기를 꽂아놓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중고차 판매장에 진열된 수백대의 차 하나하나에 성조기가 붙어 있는 모습도 봤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따로 국경일에 국기를 내걸라고 계도할 필요가 없다. 미국인의 이런 태도는 세계 최강대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일류대학, 일류직장에 다니면 자랑하고 싶은 심리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성조기 사랑은 불온한 파시즘이나 유치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끌어올림으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유쾌한 ‘퍼포먼스’인 셈이다. 삼류대학, 삼류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것처럼 삼류국가 국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국기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 성조기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공사장 노동자가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한국의 화이트칼라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국기 홀대는 자신을 홀대하는 것이고 국기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인 것이다. 만약 북한 인공기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태극기에 정이 안 가는 분이 정말 있다면, 그 마음 씀이 너무 박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태극기는 남북이 분단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와 가시밭길을 함께한 ‘겨레의 조강지처’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혈서를 받은 것도 태극기였고, 유관순 누나가 아우내장터에서 손에 들었던 것도 태극기였다. 지난주에는 프랑스의 한류팬들이 우리보다 더 열렬하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carlos@seoul.co.kr
  • 박정희 생가 찾은 김문수 “나라 발전에 큰 도움 준 분”

    박정희 생가 찾은 김문수 “나라 발전에 큰 도움 준 분”

     한나라당 친이계 잠룡인 김문수 경기지사가 14일 박근혜 전 대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참배했다.  김 지사는 최근 한나라당 대표 경선과 관련 “박 전 대표의 권력이 선덕여왕보다 센 것 같다.”며 박 전 대표를 비판했지만 생가 방문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지도력을 치켜세웠다.  김 지사는 이 날 낮 12시25분 승용차편으로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박 전 대통령 생가에 도착,추모관에 들러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에 헌화하고 분향했다. 김 지사의 고향은 경북 영천이지만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운동권 출신인 김 지사는 박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판했었으나 대한민국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인물로 재평가하고 있다. 김 지사는 전자 방명록에 ‘朴正熙 대통령, 대한민국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탁월한 지도력! 경기도지사 김문수 참배’라는 글을 남겼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펌프로 직접 물도 긷고 박 전 대통령이 공부하던 방의 문턱에 앉아 보기도 하는 등 생가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둘러봤다.  김 지사는 생가 방문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과의 화해의 자리다.(박 전 대통령) 생전에는 내가 지지해본 적 없고 늘 반대하기만 했다. 역사적인 만남이고 화해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표에게 공세를 편 것과 관련, “(박 전 대표와) 경쟁은 하더라도 나쁜 관계는 아니다. 관계 좋다.”면서 이같이 대답했다. 이어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탁월한 지도력으로 대한민국 산업혁명을 성공시켰고 세계적인 기적을 이룩했다. 우리나라를 위대하게 성공시킨 대통령이자 전 세계 후진국 발전의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김 지사는 또 “과거 박 전 대통령 시절에 많은 사람이 포항제철(건설), 고속도로, 자동차 산업 등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반대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누구 옳았는지 판가름나지 않았냐.”면서 “우리 나라 산업화의 성공은 박 전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당초 일정보다 30여분 더 박 전 대통령 생가에 머문 김 지사는 구미국가공단산업현장을 시찰하고 나서 이날 구미시 방문의 목적인 특강을 위해 금오공대로 이동했다. 김 지사는 금오공대 산업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300여명에게 ‘자치와 분권으로 통일 강대국을 만들자’를 주제로 특강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MB “나라사랑을 행동으로 보인 분”

    MB “나라사랑을 행동으로 보인 분”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고(故)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 대통령은 “이 시대에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 돌아가셨다.”면서 “고인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셨다.”고 말했다고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른다는 말을 전해 듣고 “더 잘 모시지 못해 섭섭하긴 하지만, 고인의 살아오신 길을 봐서는 이해가 간다.”면서 “나라 사랑을 행동으로 보이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조위록에 ‘늘 기억하겠습니다. 이명박’이라고 적어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김 전 총장의 영전에 헌화·분향하고 훈장을 추서한 뒤, 부인 민영주씨와 아들 홍규씨 등 유족을 위로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김정일 전격 訪中] 첫날 표정…무단장 항일기념탑 참배뒤 명승지 징포후 방문

    [김정일 전격 訪中] 첫날 표정…무단장 항일기념탑 참배뒤 명승지 징포후 방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9개월 만의 방중 첫날인 20일 헤이룽장성 무단장(牧丹江)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낸 뒤 오후 9시 10분(한국시간 오후 10시 10분)쯤 특별열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일각에서는 헤이룽장성의 성도인 하얼빈(哈爾濱)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관측이 있는 반면 랴오닝성 선양(瀋陽)을 거쳐 베이징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버지인 고(故) 김일성 주석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단장에서는 동북항일연군기념탑을 찾아 헌화했고, 승용차로 왕복 6시간 거리인 명승지 징포후(鏡泊湖)를 방문했다. 이어 현지시간으로 오후 7시쯤 숙소인 무단장 홀리데이인 호텔로 돌아간 김 위원장 일행은 2시간여 휴식을 취한 뒤 특별열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후계자인 3남 김정은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방중 길로 선택한 북한 남양~중국 투먼(圖們) 노선은 지난해 8월 마지막 방중 시 귀국길로만 이용했을 뿐 중국 땅을 밟을 때 한 차례도 선택하지 않은 생소한 노선이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이후 지난해 5월까지 다섯 차례의 방중 때는 모두 신의주~단둥(丹東) 노선을 이용했고, 지난해 8월 방중 때는 만포~지안(集安) 노선을 택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동북지방 경제개발의 핵심 지역이자 북·중 경협의 시험무대인 창춘·지린·두만강 유역을 관통하면서 경제난 타개 의지를 밝히는 동시에 김 주석의 ‘혁명열기’를 다시 한번 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중 경제협력 구상을 자기 책임하에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중간에서 중국 측이 제공한 차량으로 갈아타고 방중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예상 이동경로인 하얼빈~무단장 고속도로에 공안을 가득 실은 트럭 4대가 목격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을 태운 열차가 통과한 투먼과 첫 기착지인 무단장 등에는 하루 종일 중국의 무장 경찰이 집중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투먼의 한 철도 관련 공무원은 “북한의 ‘1번’(김 위원장 지칭)이 왔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이달 중순부터 투먼을 관할하는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는 김 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고위 인사의 방중 조짐이 엿보였다. 오는 8월 옌지(延吉)에서 열리는 국제상품교역회 관련 협의를 위해 이번 주말 옌지를 방문하려던 우리 측 모 인사는 지난 18일 “너무 바빠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담당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일본의 한 민영방송사는 관련 정보를 듣고 19일 밤 취재진을 옌지에 급파했으나 투먼으로 가는 도중에 검문에 걸려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일부 마이크로블로그 등에도 이날 새벽 “투먼 시내에 공안이 쫙 깔렸다.”, “무슨 일이 있나.” 등의 글이 뜨는 등 일부 네티즌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전했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최근 들어 대사급으로는 이례적으로 중국의 최고지도자급 인사들을 집중 면담한 까닭도 김 위원장 방중으로 풀렸다. 김 위원장 방중을 위한 사전 협의였던 셈이다.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측근인 지 대사는 김정은이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부임했으며 이 때문에 지 대사의 행적이 김정은 방중 사전정지 작업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지 대사는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 등을 잇따라 면담했고, 장관급인 리충쥔(李從軍) 관영 신화통신 사장, 장옌눙(張硏農)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사장, 차이우(蔡武) 문화부장 등도 만났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누굴 만날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후진타오 주석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권력 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아프리카를 방문 중이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때문에 최소한 22일까지는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태다. 그런 점에서 후 주석과 만나지 않는다면 권력 서열 4~6위인 자칭린 정협주석, 리창춘 상무위원, 시 부주석이 김 위원장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지 대사가 최근 면담한 지도자들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9개월만에 또 訪中

    김정일 9개월만에 또 訪中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일 새벽 특별열차를 이용해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헤이룽장 무단장(牧丹江)에서 동북항일연군기념탑을 찾아 헌화하고 명승지인 징포후(鏡泊湖)를 관람한 뒤 오후 9시 10분(현지시간)쯤 특별열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수행원 70여명 가운데 후계자인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경유지 임시 숙소인 무단장의 홀리데이인 호텔에 들어서는 김 위원장 일행 가운데 김 부위원장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앞서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이날 새벽 6시 30분쯤 지린성 투먼(圖們)에 도착했으며 곧바로 헤이룽장성 무단장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의 향후 이동 노선과 관련, 일각에서는 지난해 8월 방중 때의 역순으로 헤이룽장성 성도인 하얼빈(哈爾濱)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 반면 랴오닝성 선양(瀋陽)을 거쳐 베이징으로 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지난해 8월 이후 9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오는 28일 압록강 황금평 공동개발 착공식을 비롯해 최근 확대일로의 북·중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북핵 6자회담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조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이달 말 황금평 공동개발 및 중국 훈춘(琿春)~북한 나선 간 도로포장 착공식 등을 가질 예정이다. 중국은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가 도착한 투먼과 무단장 등에 무장 경찰을 집중 배치하는 등 김 위원장의 방문 예상 지역인 동북 3성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英 여왕 100년만에 ‘화해의 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7일(현지시간) 100년만에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했다. 영국 국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하기는 아일랜드 독립 이전인 1911년 여왕의 할아버지였던 조지 5세 이후 처음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올해 85세인 여왕이 테러 위협까지 무릅쓰고 아일랜드를 방문하는 것이 양국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아일랜드는 400년 넘게 영국의 식민지 신세였던 데다가 독립 이후에도 영국 영토로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를 두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테러 위협 때문에 삼엄한 경호가 이어졌다. 런던경찰청에서 파견한 왕실 경호대 120명 등 1만명이 경호에 동원됐고 경호비용만 3000만 유로(약 462억원)나 됐다. 전날 수도 더블린 외곽에 있는 한 버스에서 폭탄이 발견되면서 긴장감도 높아졌다. 여왕이 착륙한 발도넬 공항은 방공시스템을 가동했고 공항에서 대통령궁까지 가는 길은 보행자와 차량 통행을 제한했다. 의례적인 거리 행사도 없었다. 여왕은 대통령궁에서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과 환담한 뒤 크로크파크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이 경기장은 1920년 영국군 발포로 선수와 관중 14명이 숨진 곳이다. 여왕은 아일랜드 독립운동 순국자들을 위한 추모공원과 국립전쟁기념관을 찾아 헌화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英여왕, 테러위험 속 100년 만에 17일 아일랜드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7일(현지시간)부터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한다. 영국 국왕이 아일랜드를 방문하는 것은 1921년 아일랜드가 독립한 뒤 처음이며 1911년 조지 5세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찾은 이래 100년 만이다. 북아일랜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테러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영국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은 피로 얼룩진 양국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치유를 강조하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여왕은 남편인 필립공과 함께 방문 첫날인 17일 1919~1921년 독립전쟁 중 숨진 아일랜드 병사들이 묻힌 더블린 전쟁기념관을 방문, 헌화할 예정이다. 이어 1920년 영국군의 발포로 관중과 선수 14명이 숨진 크로크파크 경기장을 방문한다. 모두 민감한 장소들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 관계에 비유될 정도로 오랜 독립전쟁으로 악화돼 있다. 북아일랜드 신교도와 구교도 간 유혈 충돌이 1998년 평화협정으로 일단락되면서 양국 관계가 개선됐지만 영국 여왕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 아일랜드 국민도 상당수 있다. 15일 더타임스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양국 보안 당국은 아일랜드의 테러리스트들이 미사일과 로켓 발사대를 구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더블린을 중심으로 테러 경계 수위를 높였다. 또 런던 경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런던 중심가에서 폭탄테러를 벌일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혀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MB “韓 반도체·자동차 - 佛 소재 결합땐 최강” 코리아 세일즈

    MB “韓 반도체·자동차 - 佛 소재 결합땐 최강” 코리아 세일즈

    이명박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오전 파리 개선문의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면서 프랑스 공식방문 첫 일정을 시작했다. 개선문에는 2004년 프랑스의 6·25 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이 설치돼 있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에는 혈맹관계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이어 프랑스 경제인연합회 본부에서 열린 한·프랑스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적극적인 ‘코리아 세일즈’에 나섰다. 간담회에는 아레바, 알스톰 등 프랑스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정만원 SK 부회장 등 양국 기업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양국의 경제 규모와 경제 협력의 잠재력에 비해 그간의 교역과 투자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서 “여러분들이 더 노력해 주신다면 5년 이내에 양국 교역이 지금의 2~3배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는 기초 소재·항공우주·방위산업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한국은 반도체·자동차·조선·정보통신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 “서로의 강점을 결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에는 엘리제궁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겸 오찬을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오는 11월 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로 채택된 ‘에너지와 식량 가격 안정’에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회담에서 파리 남부의 시테 위니베르시테(국제학생기숙사촌)에 한국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고,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정부가 제공하는 한국관 건립 부지는 6000㎡ 정도이며,우리 정부가 건축비를 들여 200실 규모의 한국유학생 전용 ‘한국관’이 지어질 계획이다. 한편 김윤옥 여사는 양국 정상이 회담하는 동안 모델 출신인 프랑스 대통령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와 별도로 환담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이 대통령은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잇따라 접견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파리 7대학을 방문해 예술·문학·철학·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7대학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한국학과를 설립한 곳으로, 이 대학 벵상 베르제 총장은 프랑스 지식인을 중심으로 협회를 결성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타당성을 역설해 왔다. 이 대통령은 학위수락 연설에서 “이 학위가 개인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자 프랑스가 대한민국에 보내는 깊은 이해와 신뢰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따뜻한 형제애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MB “GGGI, 개도국 녹색성장 기여할 것”

    MB “GGGI, 개도국 녹색성장 기여할 것”

    3박 4일간의 독일방문 일정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오전(현지시간) 덴마크를 국빈 방문해 본격적인 ‘녹색외교’에 돌입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엔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최초의 국제기구가 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의 첫 해외지사인 코펜하겐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덴마크 공대 내 리소센터에 설립된 사무소의 개소식에는 프레데리크 덴마크 왕세자가 동행했다. 이 대통령은 “코펜하겐은 약 1년반 전 GGGI 설립계획을 발표한 장소로, 이런 의미 있는 곳에 첫번째 해외사무소를 개소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코펜하겐 사무소의 녹색기술을 매개로 민·관협력이 활성화되면 개발도상국의 녹색성장 지원활동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개도국들이 GGGI가 자국의 녹색성장 정책 개발을 지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개발의 패러다임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개도국들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12일에는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덴마크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공동성명’과 ‘한·덴마크 녹색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한다. 개소식 참석에 앞서 이 대통령은 왕세자궁에서 세계적인 완구기업인 레고(LEGO)를 비롯해 풍력 세계 1위인 베스타스, 펌프 세계 1위인 그런포스 등 덴마크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참석한 기업들은 한국에 이미 진출했거나 진출할 예정인 곳들이다. 이 대통령은 “덴마크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을 갖춘 기술강국이자, 녹색시장 선진국”이라면서 “양국의 교역구조가 상호보완적임을 고려할 때 이번 국빈방문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녹색성장 분야 협력증진과 더불어 양국 간 교역과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덴마크의 주상복합형 환경친화 주택단지를 방문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으로부터 외국 국가원수와 외국 왕족에게만 수여하는 최고훈장인 ‘코끼리 훈장’을 받았다. 코펜하겐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벌써 1년/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벌써 1년/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벌써 1년이 되어 간다. 지난해 6월 4일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첫 회가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을 준비하느라 몰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케이블 방송 경력 10년차의 PD를 제외하고는 방송 경험이라곤 전무한 ‘신문쟁이’들이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처음엔 20분을 채우기 힘겨웠는데 이제 서울신문STV의 편성 방침에 맞춰 24분을 넘긴 분량을 어떻게 자를지 고민하게 됐다. 13일 저녁 7시 30분 방송될 예정인 50회차까지 대략 300개의 아이템을 소화하며 신문기자 40여명이 3~4회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경험을 했다. 신문 문장에 익숙하던 기자들이 출입처 취재에 바쁜 와중에도 제법 틀을 갖춘 방송 원고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영상의 흐름을 머릿속에 그리며 내레이션을 배치하는 안목을 갖춰가고 있다. 기자들이 조명이 쏟아지는 스튜디오에 나와 취재 후기를 털어놓고 진경호 국제부장은 한 주의 논란이 되는 사안을 2분여 짧은 시간에 맵게 짚어주는 코너를 9회째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에는 김상연 워싱턴 특파원이 전화로 출연, 그날 아침 ‘그라운드제로’를 찾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헌화 소식을 전하는 순발력을 보이기도 했다. 방송 초기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 영상으로 꾸려져 방영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기자들이 방송 경험을 쌓는 사이 멀티미디어국 소속이었던 영상콘텐츠부는 지난 1월부터 편집국으로 소속이 바뀌어 180여명의 취재기자들과의 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독자들도 다 알 듯이 많은 부분 혼자 움직이고 혼자 책임지는 것이 신문사 문화다. 그래서 데스크도 함부로 지시하지 못하고 경영진도 섣불리 개입할 수 없는 것이 신문사 풍토다. 그런데 방송 문화는 어떤가. 기자라 한들, PD라 한들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카메라감독이나 자막감독 등 여러 스태프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어떤 일도 진행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 승부하고 곧바로 결과가 나오는 신문과 달리 방송은 한 주 또는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낳을 수 있다. 편집국으로 들어오며 이런 문화 충돌을 적잖이 경험하고 있다. 그 즈음에 부의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이제 우리는 약 400개의 눈동자 앞에 발가벗겨질 것이다. 모든 면에서 조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서울신문 지면에 PD가 쓴 기사가 시나브로 늘고 있다. 독자뿐만 아니라 편집국의 다른 부원들조차 생경한 눈으로 보는 듯하다.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가 그런 곁눈질을 키우는 듯하다. 그러잖아도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신문 시장의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에 대해 자원만 낭비하고 있다는 둥 비아냥이 터져나오는 신문 동네다. 일찌감치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채널 도전을 포기한 채 인터넷TV를 운영해 온 신문사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종합편성채널 출범 준비에 매진하는 신문사들도 이토록 복잡 다단한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시장을 장악할지 밑그림 짜기에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나위 있겠나. 이런저런 얘기를 굳이 이렇게 펼쳐 보이는 것은 신문 산업의 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여느 신문사나 편집국 기자들이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아니면 태블릿 PC든 ‘갈아 탈’ 플랫폼을 고민해야 하는데 기자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인 것이다. 남말 할 것 없다. 서울신문의 미래를 위해 사내 구성원들이 일치된 청사진과 다부진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다짐을 방송 1년을 앞둔 시점에 해본다. bsnim@seoul.co.kr
  • 그라운드제로의 침묵, 연설보다 강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11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해 헌화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사살된 지 나흘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붉은색, 흰색, 푸른색 꽃들로 꾸며진 한 다발의 꽃을 바친 뒤 그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묵념했다. 그러나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묵념할 때 진혼곡 같은 음악마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정적이었다. 이슬람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는 침묵을 택했다. 행사에는 찰스 슈머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 이 지역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재임 시 9·11테러를 겪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초청을 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그는 대변인을 통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뉴욕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오바마 대통령을 환영했다. 헌화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9·11테러 때 15명이 숨진 미드타운의 소방서를 방문해 소방관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곳은 10년 전 그 끔찍했던 날에 비범한 희생을 보여준 상징적 장소”라면서 “진심으로 여러분의 희생에 감사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빈라덴 사살에 대해 “우리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빈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파키스탄의 빈라덴 은신처를 습격한 미군 장병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희생 때문이었다.”며 “그들은 목숨을 앗긴 여러분의 형제들 이름으로 그 작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맨해튼 제1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 비극을 잊은 적이 없으며 뉴욕경찰과 긴급구조대원, 소방대원들이 보여준 용기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빈라덴 사살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한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헌화 후에는 9·11테러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비슷한 시간 워싱턴DC의 국방부 건물(펜타곤)에서도 간단한 추도의식이 진행됐다. 9·11테러 때 펜타곤을 타격한 항공기 테러로 189명이 숨진 바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헌화를 한 뒤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경례를 했다. 바이든 부통령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침묵의 헌화였다. 다만 경례를 할 때 진혼곡이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행사장에는 9·11테러 유족은 물론 테러 당시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던 도널드 럼즈펠드도 참석,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박근혜, 원내대표 경선 전날 어떤 얘기…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현안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마침 당내 역학구도의 향배를 가를 원내대표 경선 전날이어서 결과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전 대표가 특정한 주제 없이 여러 현안을 놓고 기자간담회를 갖는 것은 2009년 7월 몽골 방문 이후 대략 2년 만이다. 특사 대표단으로 동행한 이정현 의원은 4일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동행 취재 중인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면서 “다만 정치적 현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 온 지금까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5일이라는 시점이 공식적인 특사활동이 마무리되는 때여서 그렇게 정한 것일 뿐, 다른 고려는 없었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간담회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진행 중인 특사 활동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겠지만, 4·27 재·보선 이후 여권을 강타한 국정 쇄신책 등 현안에 대한 언급도 어떤 수준으로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는 4·27 재·보선 패배와 관련한 여권 주류의 ‘2선 퇴진론’, ‘박근혜 역할론’, 정부·청와대 쇄신 등을 두고 격론이 펼쳐졌었다. 나아가 박 전 대표는 대권 행보를 내다보게 할 큰 틀의 구상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날 아테네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 등을 차례로 예방하고 수교 50주년을 맞은 양국 간 우의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아테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이승만기념사업회 사과 운운 진정성 없다”

    “이승만기념사업회 사과 운운 진정성 없다”

    “그런 사과가 어디 있느냐. 우리로선 총 한방 더 맞은 것이다.” 4·19혁명 51주년을 맞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80) 박사가 처음으로 혁명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 입장을 밝혔으나 당사자 격인 4·19 단체는 발끈하는 분위기다. 반세기가 넘도록 사과는커녕 독재 통치 정당화에 골몰했던 사람들이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 운운하는 것은 희생자에 대한 결례이고 진정성도 없다는 것이다. 4·19혁명 당시 시위에 나섰던 청년들의 모임인 ‘4·19민주혁명회’ 오경섭(69) 회장은 18일 서울 필동 4·19혁명기념회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달랑 보도자료 하나 공문 형식으로 보낸 진정성 없는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라면서 “이인수 박사와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가 51년 만에 사과를 한다고 나섰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정신적으로 총 한방을 더 쏜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경동고 3학년이었던 오 회장은 서울 미아리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발포한 총 두발에 하복부 관통상을 입은 뒤 50여년 동안 4·19 희생자와 민주화를 위해 힘써 왔다. 그는 “유족과 희생자들과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사과는 형식적으로도 옳지 않고 내용적으로도 진정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인수 박사와 이승만기념사업회가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입장은. -아주 불쾌하다. 사과문이 없는데 무슨 사과를 받아들이라는 거냐. 4·19혁명과 관련해 정부가 공식 인정한 당사자 단체는 우리를 포함해 딱 세 군데밖에 없다(정부가 인정한 4·19관련 공식단체는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3곳이다). 그런데 우리 중 어떤 단체에서도 직접적인 사과나 사과문을 받은 적이 없다. 정신적으로 우릴 능욕했다.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뜻인가. -사과라는 것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에 교감이 있어야 한다. 사전에 어떤 식으로 사과를 하겠다는 말도 없이 먼저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냈다. 우리 사무실로 보낸 공문도 언론사에 보낸 ‘기사 전제 요청의 건’ 공문이다(이승만기념사업회가 지난 15일 4·19민주혁명회 측에 보낸 공문 겉봉투에는 ‘보도자료 재중’이라고 적혀 있다). 당사자에게 직접 말도 없이 언론을 통해 ‘사과하겠다.’고 발표만 하면 그게 사과하는 거냐. →이인수 박사로부터 직접 사과는 없었나. -인터뷰 직전에 이인수 박사가 전화를 걸어 왔다. 대뜸 전화를 해서 한다는 말이 ‘내 나이가 80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내일 민주묘지에서 참배하도록 협조해 달라.’는 얘기만 하더라. 사과 방법도 잘못됐고, 내용에 진정성도 없다. →이인수 박사 등이 19일 오전 수유리 민주묘지를 직접 찾아 참배를 하겠다고 하는데. -받아들일 수 없다. 참배하겠다고 하면 우리가 물리적으로 막겠다.(4·19민주혁명회 등 3개 단체는 이날 오후 ‘이승만 추종자들의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내세워 4·19민주묘지를 방문하고 헌화·참배하는 행위는 단연코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후대에 역사가들이 평가할 일이다. 이승만기념사업회나 유족들은 이제 와서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를 몰랐다.’ 이런 말만 되풀이한다. 역사적으로 큰 죄를 짓고 이제 와 사과하겠다는 사람들 인식이 이것밖에 안 되는지 한탄스럽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내게 올 총탄 학생이 맞았다” 이승만대통령 눈물

    “내게 올 총탄 학생이 맞았다” 이승만대통령 눈물

    4·19혁명 발생 51년 만에 이승만 대통령의 유족이 혁명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이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부회장인 이인수(80) 박사가 19일 오전 9시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하고 당시 경찰의 총탄에 숨진 학생들에게 헌화한다. 또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낭독한다. 이와 관련해 4·19민주혁명회 광주·전남지부 이승록 사무처장은 “늦게나마 사죄를 한다고 하니 고맙다. 4·19혁명은 한국 민주화의 초석이라는 사실이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며 반겼다. 이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은 하야 후에도 4·19를 떠올리면 ‘내게 올 총탄을 학생들이 맞았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제 반세기가 지났으니 유족들에게 사과와 화합의 손을 내밀 때도 됐지요.”라고 17일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4·19혁명 당시 많은 학생이 숨진 데 대해 미안함을 표했다고 이 박사는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회와 대통령 유족이 4·19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혁명 이후 처음이다. 그간 4·19 혁명희생자유족회 등은 기념사업회 측에 여러 차례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박사는 4·19혁명의 원인을 이 전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역사적 시각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 전 대통령과 4·19에 대한 반발이 격했던 시기에는 피차간 이해와 화해가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있고 같은 해 4월 12일 각료회의록을 보면 ‘선거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아버지께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만일 선거가 잘못됐다면 내가 물러나야지’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집권 말년에 당신이 얼마나 속았는지 뒤늦게 알았던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라면서 “고령에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탓이었지만 200명 가까운 시위대가 사살된 사태에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려고 기꺼이 물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당시 현대건설에 근무했던 이 박사는 “4월 18일 외근을 나왔다가 고려대 후배들이 당시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앞에서 흰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하는 현장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 동참한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은 종친인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로 1961년 12월 양자로 입양됐다. 미국 뉴욕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93년 명지대 법정대학장을 지냈으며, 96년부터 이승만기념사업회 임원을 맡고 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는 17일 4·19혁명 당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숨진 학생과 유족에게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업회는 성명서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4·19혁명) 당시 학생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정치적으로 세계 어느 선진국 못지않은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경제적으로는 G20 정상회의를 국내에서 개최할 정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면서 “(이는) 60여년 전 이승만 대통령께서 이 나라를 세우실 때 주창하신 건국이념과 4·19 당시 학생들의 애국충정을 우리 후손들이 잘 받들어 실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과 4·19 당시 학생들의 나라 사랑 정신은 하나’라 생각하고 당시 정부의 잘못 때문에 희생된 학생들과 그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면서 앞으로 4·19유족회 등 관련 단체와 힘을 모아 당시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 발전에 함께 이바지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일주 사무총장은 “희생자 유족들은 그간 기념사업회 측에 꾸준히 사과를 요구했으나 사업회 내부 의견이 갈려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죄 성명 발표는 지난 2월 기념사업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의 의지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천안함 폭침 1주기] 이대통령 “천안함, 세월 가도 잊지 않겠다”

    [천안함 폭침 1주기] 이대통령 “천안함, 세월 가도 잊지 않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바로 엊그제 같은데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면서 “세월이 가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피격 1주년인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 용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추모식에 앞서 청와대 천안함 유족 초청 행사에서 1억원을 성금으로 냈던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와 천안함 46용사의 묘역을 매일 수습하는 고(故) 임재엽 중사의 어머니 강금옥씨 등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윤씨에게 “지난번 청와대에 와서 보내주신 돈으로 무기도 샀다.”면서 “가족들 모두 한이 맺혔을 텐데 어머니가 거꾸로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윤씨가 “아들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자 “이 사람들(희생자)이 죄가 있느냐. 우리가 못 지켜준 것으로, 다 우리 잘못”이라면서 “앞으로는 진짜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천안함 46용사와 구조작업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 대통령은 젊은 나이에 숨진 병사들의 묘비를 일일이 돌며 어루만지고, 유족들이 올려 놓은 가족사진을 비롯한 유품을 보면서는 아무 말 없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 대통령은 또 민 상사의 묘비 앞에서 어머니 윤씨가 “피눈물 흘리는 줄 알겠죠.”라고 눈시울을 붉히자 “어머니,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라며 다독였다. 한 준위의 묘비 앞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된 아들 상기 씨에게 “당시 날씨도 차고, 어렵다고 했었는데 후배를 건지려고 그런 것”이라면서 “우리의 영웅이었다.”고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관련 희생자의 묘역을 참배한 뒤 즉석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사망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등 해병대원들이 묻힌 곳도 찾아 헌화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 전달되길…”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 전달되길…”

    한·일 전 법무장관이 13일 경기 광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순수한 민간 차원에서 실상을 살피고 아픔을 함께 나눈 것이다. 김성호(61) 전 장관과 스기우라 세이켄(77) 전 장관은 오후에 나눔의 집을 방문, 추모공원에 헌화한 뒤 위안부 교육관과 역사관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 자리에는 나눔의 집 후원회장인 이한성 국회의원, 이창구 한국문화재단 이사도 함께했다. 스기우라 전 장관은 피해 할머니들에게 개인 자격으로 왔다고 전제한 뒤 “위안부 역사관을 보고 할머니들을 만나 피해를 확인하고 싶었다.”며 방문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오늘 확인한 것을 일본에 가서 그대로 알리고 싶다.”면서 “미래를 믿고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가 전달되길 바란다.”고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이에 할머니들은 “한·일 과거사 청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받기 전까지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했다. 김군자 할머니는 “보상도, 사죄도 필요없다. 우리 청춘만 돌려 달라.”고 스기우라 전 장관에게 호소했다. 김 전 장관은 “일본의 사죄를 기다리려면 할머니들이 오래 사셔야 한다.”며 “자주 찾아뵙고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한·일 양국의 전 법무장관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 역사의 아픈 현장을 방문해 피해 할머니들의 실상을 살피고 아픔을 나눈 뜻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광주 나눔의집에는 전국에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75명 가운데 8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국경초월 숭고한 정신 한·일 국민 마음 열어”

    2001년 일본 도쿄의 전철 선로에 떨어진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고(故) 이수현씨의 10주기 추모식이 2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 등 각계각층 인사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모식은 헌화와 고인에 대한 묵상, 추모 헌시, 해금 연주 등의 순으로 열렸다. 이씨의 부친 이성대(71)씨는 이씨의 외삼촌이 대독한 ‘아버지의 글’을 통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면서 “국경을 초월한 수현이의 숭고한 정신은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이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추모식을 연 ‘이수현 의인 문화재단 설립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올해 이씨의 살신성인 정신을 추모하고 계승 발전하는 재단을 만들어 청소년 인성교육과 의인 발굴, 한일 우호교류를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상의 은사’ 민주묘지에 잠들다

    ‘사상의 은사’ 민주묘지에 잠들다

    ‘사상의 은사’를 떠나보내는 날, 아침부터 희뿌옇던 하늘은 그예 굵은 눈발을 뿌렸다. 장례위원과 조문객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터넷 공간에서나마 애도의 글을 쉼 없이 올렸다. 지난 5일 새벽 숨을 거둔 리영희 선생의 영결식이 8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렸다.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시민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사회장으로 거행된 영결식은 황인성 시민주권 공동대표의 사회로 개식 선언,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유가족 인사, 헌화 순서로 진행됐다. 백낙청 공동장례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은 선생님이 병상에서도 파시즘의 복귀를 경고하실 정도”라면서 “당신의 삶의 헛되지 않으셨기에, 못난 후학들이지만 저희 또한 당신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파시즘을 그리워하는 무리가 적지 않아도 저들이 끝내 성공할 확률은 태무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온 국민이, 온 시대가 느끼고 있다.”는 네티즌의 추모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장남 건일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아버지는 한평생 치열하게 살아오셨고 심지어 편히 쉬어야할 마지막 여생도 병과 싸우다 임종하셨다. 이제는 정말로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시게 됐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했다. 유골은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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