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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고르비,크렘린대좌 2시간15분(모스크바 여로)

    ◎“모스크바여 영원하라” 노어인사에 박수/푸시킨 시구 인용… “지금은 기적의 순간이다”/“한국젊은이 고속전철 타고 시베리아 올 날 멀잖았다” ▷정상회담◁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모스크바정상회담은 14일 상오 11시1분(한국시간 하오 5시1분)부터 2시간15분 동안 크렘린궁내의 소련연방최고회의 건물 4층 대통령회의실인 올드 레드룸에서 진행. ○화기 넘친 분위기 노 대통령이 먼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밤새 편히 지내셨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대통령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습니다』라고 대답.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잠시 포즈. 노 대통령은 본격회담에 앞서 고르바초프의 얼굴사진이 큼지막하게 표지에 실린 「페레스트로이카」 한국어판 책 1권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선물.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의 만남이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상기시킨 뒤『나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봄을 열고 씨앗을 뿌려 양국민 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소련최고인민회의 준비와 관련한 자신의 연설문 마무리 문제와 소련 국내문제를 둘러싼 여러 첨예한 대립과 논쟁상황 등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6·29민주화선언과정에서의 어려웠던 과정을 설명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로.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냉전체제 와해 등 최근의 변화와 페만사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 노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전적인 지지와 동감을 표시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과거에는 강대국이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라파에 평화가 왔듯이 아시아에도 평화가 와야 하며 모든 문제를 군사력을 사용,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물론 아시아는 유럽과 여러 조건이 다르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평화의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평화」를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평화정착이 아태지역 평화의 관건임을 거듭 확인. 한편 김종인 경제수석은 정상회담에 앞서 카운터 파트인 마슬류코프 제1부수상과 30분 동안 별도 협의를 가졌다. ○올 노벨상 수상 축하 ▷공식만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부터(한국시간 15일 새벽 1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고르바초프 대통령 주최의 공식만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올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고 『이는 각하께서 용기와 신념,탁월한 지도력으로 온 인류의 한결같은 소망을 실현하고 있는 데 대한 세계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소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그리고 한소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고 제의하고 「발쇼예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소련에서의 첫 밤을 보낸 노 대통령은 1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14일 하오 4시) 크렘린궁 외곽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내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 ○무명용사묘에 헌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과 소콜로프 주한 소련 대사의 안내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스미르노프 모스크바 주둔군 사령관의 영접을 받은 뒤 3군 의장대를 사열. 노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군악대는 차이코프스키의 진혼곡을 연주했는데 선두의 헌화병은 소련군의 독특한 걸음걸이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 이어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붉은 색 리본이 달린 화환을 무명용사묘에 헌화하고 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중절모를 벗어 묵념. 이날 헌화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과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 등 수행원들이 참여.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4일 하오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의 안내로 크렘린궁내 박물관을 둘러본 뒤 30여 분 간 환담. 김 여사는 박물관에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이사 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13일 공식환영행사에서 이미 한차례 만난 탓인지 친근감있게 가벼운 포옹을 교환. 두 대통령 부인은 박물관장과 함께 러시아 황실의상과 칼 등 무기들이 진열된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궁전내 파인애플룸에서 자녀·의상·부군에 대한 내조 등을 화제로 환담 후 기념촬영.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3일 저녁 9시(현지시간)의 TV뉴스를 통해 소련국민들에게 처음 소개돼 관심이 집중. 이날 TV에 소개된 노 대통령 방소 관련화면은 공항도착 장면과 크렘린궁내의 공식환영행사 등으로 약 4분간에 걸쳐 방송. ○「크라시바야」 연발 소련 체신부에 근무하는 실라 니콜라에바씨(여·40)는 TV를 보면서 「크라시바야」 「오친 크라시바야」(대단히 아름답다)를 연발. 그녀는 한복의 맵시와 김 여사가 가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잘 조화돼 환상적이라고 감탄. 소련국민들의 미에 대한 정서는 유럽보다 동양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소련인들의 이런 정서 때문에 김 여사가 보여주는 특유한 분위기는 그 동안 소련을 방문했던 어느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보다 더 강렬하게 소련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임양 구속」,대북정책 역행 아닌가/법질서 무시한 행동은 처벌 마땅 ▷모스크바대 연설◁ ○…노 대통령은 이어 하오 3시30분부터 모스크바대학을 방문,교수·학생들을 상대로 「냉전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2시간 동안 연설.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많은 개혁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고 경의를 표하고 투르게네프·곤자로프·체호프·칸딘스키 등의 문호와 벨린스키·게르첸·웨르나드스키·켈디쉬 등 이 대학 출신 사상가와 학자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 노 대통령은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자로프는 러시아인으로는 첫 한국견문록을 남겼다』고 「인연」을 강조하고 『그는 길에 깊이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을 보고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 쓸 만큼 학식이 있었다고 썼다』고 설명.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시인 푸시킨이 노래한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베니예/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러시아말로 푸시킨의 시구절을 인용. 노 대통령은 『나는 서울을 출발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속전철을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스톨홀름으로,파리로,이스탄블로 여행을 떠나는 내일이 올 것을 확신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내고 「마스끄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발쇼에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인사. 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3명의 학생으로부터 임수경양 처벌과 국가보안법 폐지,한소 경협과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발전 문제,청소년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즉석 답변. 노 대통령은 첫번째 질문 학생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평양축전에 참석한 여학생을 엄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물은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학생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끔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다』면서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몰래 다녀온 데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변. 노 대통령은 이어 『만약 북한에서 남한을 몰래 다녀갔다면 10배 20배의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고 학생들은 이에 박수로써 호응.
  • 노대통령,오늘 역사적 방소 등정/내일 정상회담

    ◎한반도평화 보장 「모스크바 선언」 발표/무역·2중과세방지등 4개협정 체결 노태우 대통령은 13일 상오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을 출발,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역사적인 소련 공식 방문길에 오른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초청으로 3박4일간 이뤄지는 이번 소련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14일 상오 11시(한국시간 하오 5시)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냉전종식과 평화구축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모스크바선언」으로 불릴 이 선언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한국민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한소 양국이 공동으로 노력하며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무력대결을 배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증진시킨다』고 천명하고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및 세계평화에 긴요하다』고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대통령이 공동서명할 「모스크바선언」은 또 『한소 양국은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선린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다짐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정상은 이와 함께 지난 9월30일 양국 수교 이후 진전되고 있는 경제·과학기술 등 각 분야에서의 교류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는 한편 무역협정·투자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과학기술협력협정 등 4개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노 대통령은 13일 모스크바에 도착,크렘린궁에서 개최되는 공식환영행사에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며 저녁에는 숙소에서 재소 한국 교민에게 다과회를 베푼다. 노 대통령은 14일 양국 정상회담 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 등 주요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고 하오에는 모스크바대에서 연설을 하며 저녁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 초청 공식만찬에 참석한다. 노 대통령은 15일 상오 소련 정계의 주요인사를 접견하고 낮에는 소련 경제·학계 인사들을 초청,오찬을 베풀며 하오에 레닌그라드로 향발,이곳에서 1박하고 16일 하오 헤르미타지 박물관을 시찰한 뒤 곧바로 레닌그라드를 출발,17일 상오 서울에 도착한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소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과,공로명,주소 대사 내외,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이현우 대통령경호실장,김종호 해군 참모총장,김진재 민자당 총재 비서실장,김종인 대통령경제수석,김종휘 〃 외교안보보좌관,노창희 〃 의전수석,이수정 〃 공보수석비서관,최규완 〃 주치의,박건우 외무부 의전장,나원찬 〃 구주국장 등 16명이 공식 수행한다. 노 대통령의 주요 방소 일정은 다음과 같다.(현지시간) ◇13일 ▲하오=세레메체보공항 도착,크렘린궁 방문 및 공식환영행사,교민다과회 ◇14일 ▲상오=무명용사 묘 헌화,크렘린궁 시찰,한소 정상 단독 및 확대회담,공동선언 서명식 ▲하오=소측 주요인사와 오찬,모스크바대 연설,크렘린궁 공식만찬 ◇15일 ▲상오=내외신 기자회견,그렘린궁 공식환송식 ▲하오=소 경제·학계인사와 오찬,레닌그라드 도착,키로프 발레단공연(백조의 호수) 감상 ◇16일 ▲상오=수행기자와 조찬간담,수호비 헌화,연구소시찰 ▲하오=레닌그라드시장 주최 오찬,헤르미타지박물관 시찰,레닌그라드 출발 ◇17일 상오=서울공항착 귀국
  • 오늘 한ㆍ유고 정상회담/요비치 대통령,동구원수론 첫 방한

    노태우 대통령은 8일 상오 청와대에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보리사브 요비치 대통령과 한ㆍ유고 정상회담을 갖고 새로운 화해의 질서로 재편되고 있는 세계정세와 한반도 및 중부유럽의 지역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두 나라간의 경제ㆍ통상ㆍ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실질 협력증대 방안을 중점 논의한다. 유럽사회주의국가 원수는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하는 요비치 대통령 내외는 7일 하오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강영훈 국무총리의 영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공식초청에 의해 국빈으로 우리나라에 온 요비치 대통령은 이날 저녁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강 총리를 접견한 뒤 부코타 비스니예바치 주한 유고대사가 대사관저에서 주최한 비공식 만찬에 참석했다. 요비치 대통령은 8일 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청와대 영빈관 앞뜰에서 베풀어지는 환영식에 참석하며 이날 낮에는 경제 4단체장 등 한국경제인들과 오찬을 함께 한다. 요비치 대통령의 체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8일 하오=국립묘지 헌화,서울종합운동장ㆍ한국종합전시장 시찰,노 대통령 주최 만찬참석 및 민속공연관람 ◇9일=포항제철시찰,석굴암ㆍ불국사관광 ◇10일=국립중앙박물관 관람,노 대통령 작별예방,총리주최 오찬참석,이한(하오 5시)
  • 새 「역사의 장」여는 통독의 현장에서/이기백특파원

    ◎“이제 독일은 하나”… 거리마다 샴페인 축제/“우리는 자랑스런 독일인”… 얼싸안고 환호/통일 알리는 종소리에 목메어 국가합창/동ㆍ서베를린 잇는 마라톤엔 2만5천명 참가 그것은 새 역사의 장을 여는 감격적인 축제였다. 성당과 교회의 종이 일제히 울려 퍼지면서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저마다 「아인하이트 아인하이트」(통일)를 외쳐대며 민족재결합의 기쁨을 만끽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자유ㆍ평화ㆍ정의를 강조하는 국가를 목이 터져라고 불렀으며 통일을 축복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았다. 이제 독일은 하나,통일축제가 시작되는 2일 자정부터 4일까지 베를린 시내에서는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금세기들어 3번째 세워지는 새 독일의 탄생을 축복하고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통일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가 2일 0시 일제히 울려퍼지자 축제행사가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운텐 덴린덴거리와 6월17일 거리에 나와 있던 시민들은 주먹을 공중으로 치켜올리며 환호했으며 각 가정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려 이 순간을 축복했다. 운텐 덴 린덴 거리에 부인ㆍ여동생과 함께 나온 지그마 캡슐씨(35)는 『통일이 이같이 빨리 이뤄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감격스럽고 독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가족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동베를린에 산다는 에버린 쾨러양(22)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폭죽의 섬광처럼 우리는 빛을 발할 것입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10월3일이 「통일의 날」로 국경일이 됨에 따라 독일국민들은 매년 이날 휴무하게 되며 지금까지 동서독이 별도로 통일을 기원하던 기념일은 폐지된다. 동독은 지금까지 건국일인 10월7일을,서독측은 동독에서 공산정권에 항거해 시민들이 일제히 궐기했던 6월17일을 기념해 공휴일로 지정했었다. ○인산인해 교통마비 ○…베를린은 역사적인 백림마라톤대회가 때마침 통일축제 직전인 30일 열려 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웠다. 60여개국에서 2만5천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의 코스는 독일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서베를린 샤로텐부르크문을 출발,6월17일 거리를 지나 동베를린지역인 칼 막스거리를 거쳐 브란덴부르크 문과 통일전 체크 포인트였던 찰리 검문소를 통과하는 등 반세기만에 전 베를린 시가지를 질주해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이 때문에 독일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각국의 취재기자ㆍ외국관광객으로 숙박난ㆍ교통난을 가중시켰으며 도심은 거리를 나다니기조차 힘들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호텔과 여관이 초만원을 이루자 베를린시당국은 TV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민박을 강조하는 계몽을 펼치고 있으며 축제기간중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하는 한편 역주변과 광장등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당분간 단속하지 않기로 해 텐트족의 천국을 이루기도. ○…통일축제의 절정은 몸퍼 서베를린 시장이 2일 상오 9시 시의회에서의 통합을 선언하는 행사. 몸퍼시장은 이 자리에서 독일과 독일인은 영원히 하나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임을 다짐. 이어 몸퍼시장은 연합군 사령관들에게 베를린의 자유수호에 기여한 노고를 치하하고 연합군 사령관의 고별사에 이어 곰을 상징하는 베를린기가 시장에게 되돌려 진다. 이에 앞서 독일분단 이후 베를린 시정을 담당했던 연합군 사령관 레이먼드 하드도크(미국),로버트 콜베트(영국),프랑세스 샹(프랑스)장군 등은 1일밤 마지막으로 브라보검문소에서 간단한 철수기념식을 갖고 장병들을 위문. ○일부선 통일반대 시위 ○…통일축제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브란덴 부르크문 광장에서는 「우리는 통일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든 3백여명의 전동독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은 통일이 된 뒤 사회주의 국가에서 누려온 정부 복지시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불이익」과 불확실한 통일후의 생활을 우려해 연일 이곳에서 통일반대시위를 벌여왔는데 이날도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광장의 한 귀퉁이에서 시위를 강행. 그러나 통일을 환영하는 군중들의 환호에 이들의 주장은 더욱 초라하게 보였으며 1일로 독일 경찰에 편입된 전동독경찰관들이 이들의 데모를 보호. ○「통일의 횃불」기념촬영 ○…역사적인 통일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난 40여년동안 독일 통일의 열망을 불태우던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의 횃불도 꺼지게 된다. 서독 초대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Theodor Heuss)가 취임하면서 독일국민의 통일염원을 북돋우기 위해 광장 한가운데 마련됐던 통일횃불은 냉전시대의 파란만장했던 베를린의 과거를 지켜보며 베를린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온 명소. 「Freiheit(자유)ㆍRechts(정의)ㆍFrieden(평화)」라고 새겨진 대리석 받침대 위에서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던 희망의 횃불이 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베를린시민들은 연일 이곳에 몰려들어 헌화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1일 가족과 함께 통일횃불을 배경으로 가족들과 사진을 찍던 헬무트 센켄씨(52)는 『호이스의 염원은 드디어 성취돼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으나 횃불이 소멸되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통일의 횃불은 독일인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 ○동독군복등 기념판매 ○…독일의 신문들과 방송들은 대부분 차분한 자세로 베를린의 분단에서 통일에 이르는 과거를 재음미하며 통일행사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소개. TV는특히 통일이후의 국내ㆍ세계정세를 논의하는 좌담회를 방영하는 가운데 ARDㆍZDF 등 전국적인 방송망을 갖고 있는 TV는 60년대초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이히빈 베를리너(나는 베를린시민)』이라고 연설하며 소련과 동독의 봉쇄로 고난을 겪고 있던 베를린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던 기념비적인 장면을 보여줘 감회를 새롭게 하기도. 또 통일축제기간동안 재빠른 상업주의가 극성을 부려 2차대전때 파괴된 상흔을 간직한채 도심 한가운데 을씨년한 모습을 하고 서 있는 카이저 빌헬름교회 주변 광장에는 상인들이 전 동독군인의 모자와 제복,계급장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가 하면 베를린의 한 회사는 베를린 봉쇄때 시민들의 생필품을 공수했던 C46수송기를 임대해 축제기간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 템펠로프 공항까지 기념비행을 광고하면서 손님들을 끌기도. ○교민무용단 공연도 ○…이번 행사에는 우리나라 교민여자 무용단인 「아리랑무용단」이 참가,2일 하오 11시부터 동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앞 베벨프라츠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어서눈길. 무용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베를린시 당국에서 축제참가 초청장을 보내와 2차대전으로 인한 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이 참가하는 것이 큰 의의를 가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참가를 결정했다는 것. 2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무용단은 이날 공연에서 한복으로 차려입고 30여분동안 우리나라 전통춤을 공연할 예정인데 통일의 현장에서 「통일기원춤판」이 한바탕 벌어질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 ○…통일축제는 승전 4대국 수뇌들이 참석하지 않게됨으로써 당초 계획과는 달리 순수한 독일인 자체의 축하행사로 진행될 전망. 통일축제의 공식행사는 2일 하오 5시 동서베를린시 의회가 개최됨으로써 시작되며 4일 상오 9시 베를린에 있는 라이흐스탁(국회)에서 동서독 합동의회가 열림으로써 끝을 맺으나 기념공연 등 각종 행사는 시내 곳곳에서 잇따라 열린다. 축제의 절정은 3일의 동서베를린 경계선에서 펼쳐질 시민잔치와 국회건물의 통일독일기 게양식. 국회에 통일독일기가 게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베를린의 모든 공공건물과 대형건물,차량들에도 독일기가 게양되거나 꽂혀진다.
  • 본사 이상래사원 사우장

    서울신문사 시설관리국직원 고 이상래씨의 사우장이 5일 상오9시 유족 및 친지,서울신문사 신우식사장과 1백여명의 동료사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도봉구 공릉동 원자력병원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약력보고와 조사ㆍ헌화의 순으로 진행된 영결식에서 회사동료 정진기씨는 조사를 통해 『충실한 가장이요 성실한 사원으로 회사발전에 공이 큰 고인은 이제 편한 나라에서 영원히 사시라』고 추모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하오1시 경기도 고양군 벽제공원묘지에 안장됐다.
  • 국립묘지 참배/노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2일 상오 현충일을 앞두고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를 참배,현충탑에 헌화ㆍ분향했다. 한소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3일 하오 미국을 방문하는 노대통령은 이날 국립묘지내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에 헌화하고 고 강재구소령의 묘역및 일반묘역을 둘러보았다.
  • 광도 한인 피폭자 비/김보좌관 보내 헌화

    【도쿄=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6일 하오 귀국하기에 앞서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을 히로시마로 보내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비에 헌화하는 한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도 헌화했다. 히로시마시는 그동안 우리정부가 요구해온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의 평화공원내 이전문제를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에 맞추어 매듭,원폭기념일인 오는 8월6일 이전까지 평화공원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 일부 상가 철시… 중고교 단축수업/「5ㆍ18」10주 맞은 광주표정

    ◎기업ㆍ가정선 조기게양… 희생자 넋기려/대학생시위 만류… 성숙한 의식 돋보여 ○…「5ㆍ18 기념대회」가 열리기 1시간전인 18일 하오4시쯤부터 시민과 학생들이 집회장소인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로 몰려나와 시내교통은 거의 마비상태. 이에 앞서 하오2시부터는 대형 스피커를 단 차량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집회에 동참해 줄것을 호소하는 방송을 하기도.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금남로 일대의 고층건물 옥상과 가로수까지 대회를 보기위한 시민들이 차지. 대회를 마친 시민들은 깔고 앉았던 신문지와 유인물 등을 모아 불에 태우는 등 높은 시민정신을 발휘하기도. 한편 대회를 마친 일부 학생들이 거리 곳곳으로 나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자 뜻있는 시민들은 『이제는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5ㆍ18추모행사를 치러 희생자들의 민주화의지를 이어가야 할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날 대회에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4)이 예정에 없이 참석,연설을 하자 경찰과 주최측이 긴장. 송군이 연설을 하는동안 연단주변에는2백여명의 대학생들이 쇠파이프등을 들고 송군을 경호,식장은 마치 대학집회가 열리는 듯한 분위기. ○…이날 망월동 5ㆍ18희생자 묘역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이른 아침부터 참배객이 줄어 이어 3만여명이 헌화 분향. 추모제가 열린 상오10시부터 2시간동안 1만여명의 참배객과 차량들이 몰려들어 크게 혼잡했고 곳곳에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등의 플래카드와 깃발 1백50여개가 휘날리고 재야ㆍ정치권에서 보낸 대형조화 1백여개가 장식돼 있었으며 묘비마다 그 앞에 과일과 꽃송이들이 놓여 있었다. ○…추모제가 시작되기 전인 상오9시쯤 유족들의 오열이 묘역 주변을 감싼 가운데 특히 젊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목놓아 호곡,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김종연군(당시 19세ㆍ재수생)의 어머니 김화임씨(52)는 『어쩐다고 내 자식을 이래 놨을까. 종연아 말좀 하거라』며 오열했고 유동운씨(당시 21세)의 어머니 오수근씨(57)도 『내아들,내아들아…』를 되뇌며 흐느꼈다. ○…추모식에는 서독 녹색당 자문위원인 페트리변호사와 목사인 민처 토마스등 외국인과 교포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지난해까지 야당총재였던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은 추모식때마다 조화를 보내왔으나 이번에는 보내지 않아 이야기거리가 되기도. ○…이날 아침부터 광주시내 일부기업체와 가정에서는 조기를 게양,희생자들을 추도했으며 가든ㆍ화니 등 4개백화점과 충장로와 금남지하상가 등 광주시내 일부 상가가 철시. 일부 대형음식점과 술집들은 『오늘은 하루 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고 업주와 종업원이 함께 망월동 참배길에 나서기도. 시내 중심가에 있는 10여개 입시학원들은 이날 하오 시내 집회에 학생들이 동참할 것을 우려,이날 하루 강의를 쉬고 가정학습으로 대체. 또 대부분 중ㆍ고등학교에서도 이날 조회시간에 추도묵념을 시작으로 오전수업을 마친뒤 과제물을 내주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시내버스와 택시의 숫자도 평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 교통이 가장 복잡한 금남로 일대도 통과차량이 평소의 3분의1 수준.
  • 차분한 광주… 빗속의 추모/어제 「5ㆍ18」10주

    ◎도청앞 5만인파 평화적집회/시민들,“질서”외치며 자진해산/일부대학생은 밤늦게까지 산발시위/상오 망월동엔 3만여명 몰려 【광주=임시취재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인 18일 광주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거행됐다. 이날 상오10시 망월동 5ㆍ18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시민과 전남대ㆍ조선대등 「남대협」소속 대학생들은 하오3시쯤부터 광주시내 카톨릭센터를 중심으로 금남로 2∼3가와 충장로ㆍ도청앞 광장주변에 모여들어 하오8시까지 3시간 넘게 「광주5월 민중항쟁 10주년 계승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가 시작된 하오5시부터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인파가 5만여명까지 몰렸다. 시민ㆍ재야단체회원과 학생들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해체민자당」「노태우퇴진」등의 구호를 외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의 노래를 부르며 50∼1백여명씩 짝지어 대회장소로 모였으며 대회주최측은 대형 마이크로 「질서」「앉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참가자들을 정리시켰다.이날 집회는 오종렬「민주연합공동의장」의 대회사,유가족대표의 인사말순으로 진행,하오8시쯤 별다른 충돌없이 무사히 끝났다. 오의장은 대회사에서 『광주는 10년전 외형적으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이제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이날 행사가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비폭력 평화집회임을 강조하면서 질서유지 담당요원 50명을 편성,자체적으로 과격한 행동이나 구호등을 외치지 않도록 통제했다. 참석자들 가운데 3만여명은 집회가 끝난 하오8시쯤부터 금남로에서 광주역ㆍ무등산장입구ㆍ공명터미널 등 세방향으로 나뉘어 북구 중흥동 민자당광주전남시ㆍ도지부 사무실 앞까지 3㎞구간을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10분만에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대림동 등 도심 곳곳에서 1백∼2백명씩 몰려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기념식은 17일 집회개최시간의 엄수와 연사들의 반체제적 발언금지등 7개항을 조건으로 경찰당국의 허가를 받아 열렸다.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에 시작된 망월동묘역 추모행사는 「추모제」「기념식」「씻김굿」등 3부로 나뉘어 빗속에서 4시간동안 진행됐다. 「5ㆍ18유족회」 전계량회장(54)은 추모사를 통해 『아직도 광주항쟁의 진실을 애써거부하는 닫힌 가슴들을 열지 못했으며 참혹했던 학살의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애도했다. 또 「5ㆍ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명노근회장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가슴 아프지만 이에 얽매이지 말고 광주항쟁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 실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추모제는 유가족들의 분향과 각 단체 대표들의 헌화순으로 경건하게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 행사는 내용이 다채롭고 짜임새 있게 준비되어 어느 해보다 차분하고 질서있게 치러졌다. 경찰은 이날 5ㆍ18묘역 3㎞지점에서 2.5t이상 차량을,5백m 지점에서는 추모식 준비위원회 소속직원 10명이 행사준비차량 및 시내버스ㆍ일부 보도차량만을 통과시켜 예년과 같이 혼잡한 상황은 벌이지지 않았다. 또 추모제가 시작된 상오10시 광주시내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타종을 했고 차량들도 경적을 울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전남대ㆍ조선대 등 「남대협」소속 19개 대학생들은 이날 상오11시부터 각 대학별로 「5ㆍ18광주민중항쟁」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또 서울 등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생 5천여명은 하오2시 광주대학에 모여 「5ㆍ18계승 및 광주 5적처단결의대회」를 갖고 망월동 묘역까지 16㎞를 도보행진으로 참배했다. ㅁ임시취재반 ▲사회부=오승호ㆍ성종수기자 ▲제2사회부=임정용기자 ▲사진부=유재림ㆍ김경빈기자
  • 4ㆍ19 서른 돌에(사설)

    민의 눈이 얼마나 밝은가,민의 뜻과 힘이 얼마나 무섭고 큰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 4ㆍ19의거였다. 쌓이고 쌓인 민의 분노는 활화산이 되어 타올랐다. 그것은 불의와 부정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국민적 항거였고 그 항거는 피를 뿌린 끝에 마침내 승리했다. 그것은 민주화에의 숭엄한 횃불이었다. 권력 위에서 전천하고 권력을 업고 기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이다. 어수룩하고 눌리는 것 같긴 하지만 민은 현명하고 또 밝은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4ㆍ19혁명은 그것을 가르쳤다. 민을 얕보고 민 위에 군림하려들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혁명이었다. 그 날의 주역들은 이제 50대 안팎의 초로로 접어들고 있다. 3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들은 그 후의 역사를 체험한다. 그 날의 교훈을 잊고 악순환을 되풀이해 오는 그 역사를 체험한다. 그 날에 민주화에의 이정표를 세우고 산화한 영령들이 지하에서 통한을 금치 못할 그 역사를 체험한다. 그 체험 속에서 4ㆍ19정신의 개화는 아직 요원하다 싶기만 한 현실을 부인하기 어려워진다. 6ㆍ29선언 이후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민주화 도정에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권위주의의 퇴락과 함께 민의 소리가 폭넓게 외쳐지고 수용되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구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4ㆍ19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 3ㆍ15 부정선거가 아니었던가. 그렇건만 그 선거만 해도 어슷비슷한 유형의 부정이 난무한 것임을 우리는 몇차례의 재선거 과정에서 보아 오고 있기도 하다. 역사의 교훈을 잊을 때 기다리는 것은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명념해야 겠다. 비록 30년 세월이 흘렀다고는 해도 그 날의 상흔이 말끔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그 날에 목숨을 잃은 의사들의 유족은 지금도 한을 느낄 것이다. 그날에 몸을 다친 사람들의 고통은 살아갈수록 삶이 오히려 욕됨일 수도 있다. 말로는 4ㆍ19정신 계승 운운하는 우리가 그 날의 희생자들에게 과연 섭섭함이 없이 돌보고 뒷받침해 왔던 것인가에 대해서 냉철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4ㆍ19의 직접적 도화선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김주열 열사의 경우만 놓고 봐도 그렇다. 묘역하나 제대로 다듬지 못하여 향리 주민들이 나서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인가. 오늘의 우리 학생들이 4ㆍ19에서 배워야 할 것도 4ㆍ19 30돌인 오늘에 지적해 두고자 한다. 그 날의 학생들은 모든 민의를 대변하는 순수성으로 궐기했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나라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애국일념으로 참다참다 못하여 일어선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은 책가방을 든 채 시위대열에 합세하였다. 그들은 학생운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애국ㆍ구국운동을 한 것이었다. 지엽적인 정책문제에까지 용훼하려고 드는 오늘의 학생운동과는 그점에서 달라진다. 학생운동의 질과 양의 문제를 생각케 하는 30년 세월이다. 4ㆍ19 정신은 영원하다. 역사 위에 빛날 한민족의 의기이며 기상이기도 하다. 그 정신을 꽃피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의지에 달려 있다. 기념식 하고 헌화하는 행사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신 구현에의 실질적 의지이며 노력아니겠는가.
  • 소 리투아니아공,새 연방안 거부/고르바초프 발언은 거짓

    ◎자유연맹 의장/독립보장 아닌 제국화 【빌나(소련)AFP 연합】 소련 리투아니아 공화국 민족주의자들은 12일 각 공화국들이 연방정부로 부터 탈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 법안이 「금명간 고려될 것」이라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발언을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며 이를 맹비난했다. 탈소 민족주의 독립을 벌이고 있는 리투아니아 공화국을 전격 방문중인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1일 리투아니아 지식인들과 가진 TV 대담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민족문제는 이 새로운 법안에서 수용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고르바초프는 또 11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에 도착,레닌 기념비에 헌화한 후 주변에 모여든 수천명의 군중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15개국으로 이뤄진 현재의 연방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연방체가 창설될 것』이라고 말하고 『연방최고회의가 새헌법 초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에 대해 리투아니아 재야 주도세력인 사주디스(민족전선)의 비타우타스 란스베르기스 의장은 『그것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다. 나는 그가 그같은 법안을 마련했는지 혹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그 법안을 제의했는지 알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르바초프의 그같은 발표는 순진한 인민들 특히 서방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만일 우리들이 그러한 계획을 수용할 경우 우리 자신들이 소련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연맹 의장이자 급진적인 민족주의자인 안타나스 테리레트스카스는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연방안은 옛 러시아 제국과 동일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고르바초프는 정말로 자신의 연방에 대한 신념만을 되풀이 했다. 이 결정이 여전히 인민대표대회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독립을 주는 입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리투아니아 기자연맹 사무국장인 에이루나비시우스는 고르바초프가 발표한 법안은 「올가미」라고 혹평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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