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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대통령 멕시코방문 이모저모

    ◎“꼬레아 연호”… 멕시코 시청은 축제장/“한국 문화회관 건립 지원” 즉석 약속/여 가수 「베사메무초」 노래에 노 대통령도 합창/명예시민증 받곤 “우의의 증표로 간직하겠다” ▷교민초청 만찬◁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26일 하오(한국시간 27일 상오) 숙소인 카미로 레알 호텔에서 멕시코 교민대표 50여명을 초청,만찬을 같이하며 격려. 노대통령 내외는 교민들이 박수로 환영하는 가운데 만찬장에 입장,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좌정한뒤 『대통령으로 처음 중남미국가를 방문한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동포여러분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니 기쁘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건강과 발전을 빈다』며 건배를 제의. 노대통령은 만찬이 끝난뒤 격려사를 통해 『86년전 이곳에 처음 이민을 왔던 한인의 후손여러분을 만나게 돼 뭐라고 말할수 없는 감격을 느낀다』고 전제,『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다』며 『동포 여러분들도 더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달라』고 당부. ▷김옥숙여사 박물관 방문◁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는 26일 하오 3시(한국시간 27일 상오 6시)부터 약 1시간동안 멕시코시티 시내 「인류사박물관」을 방문. 김옥숙여사는 박물관장 세라푸체여사의 안내로 메소아메리카문명관으로부터 아즈테카문명관·마야문명관 순으로 박물관을 관람하며 스페인정복이전 멕시코문명의 발달사에 깊은 관심을 표명. ▷애국용사탑 참배◁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11시25분(현지시간) 차플테팩공원안에 있는 애국용사탑을 참배하고 헌화. 노대통령은 카마초 멕시코시장의 안내로 애국용사탑에 도착,헌화한뒤 군악대가 멕시코국가와 애국가를 연주하는동안 잠시 묵념. 노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멕시코 애국용사들의 호국정신에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1991.9.26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서명. 노대통령은 애국용사탑참배를 마치고 떠나기전 행사기간동안 도열해있던 멕시코소년군사학교 소속 어린학생들과 전문기술학교소녀들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격려. 이날 노대통령의 애국용사탑참배에는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멕시코시장및 관계공무원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때마침 공원을 찾은 관광객과 주민들이 행사를 지켜보면서 노대통령이 떠날때 박수로 환송하기도. ▷멕시코시청 방문◁ ○…26일 상오(한국시간 27일 새벽)노태우대통령에 대한 명예시민 증서전달및 행운의 열쇠증정식이 있은 멕시코시청은 축제장을 방불. 상오 10시30분 노대통령이 카마초 솔리스 멕시코시티시장의 안내로 시청청사로 들어서자 2층제단에 자리잡은 악단은 경쾌한 멕시코선율의 환영음악을 연주했고 청사내는 박수의 물결로 가득. 카마초시장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기념수장을 차례로 노대통령에게 전달한 뒤 『모든 시민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각하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환영사. 노대통령은 답사에게 『멕시코시티 시민과 서울시민은 인류화합의 축전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숭고한 올림픽정신을 꽃피운 무한한 긍지를 갖고 있다』며 멕시코의 찬란한 문화를 극찬하고 『오늘 받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는 한국민에 대한 멕시코국민의 우의의 징표로 소중히 간직하겠다』고인사. 노대통령이 이어 2층복도로 나서자 지붕없이 설계된 1,2,3층 복도 테라스를 가득메운 남녀중학생 수백명이 양국기를 흔들며 「멕시코」「코레아」를 연호,청사내는 갑자기 축제장분위기로 변모. 환호속에 파묻힌 노대통령내외가 카마초시장과 함께 1층홀로 내려와 간이무대앞에 서자 멕시코 제일의 란초음악(농가음악) 여가수인 마리아 데 루르데스가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남녀중창단의 백코러스속에 「과달라하라」라는 축하노래를 열창. 노래가 끝나자 청사내는 「와」하는 함성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가 간이무대에 올라 여가수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순간 악단은 갑자기 노대통령의 애창곡인 베사메무초를 연주했고 여가수는 노대통령내외와 마주서서 다시 베사메무초를 열창하기 시작. 여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 간간이 마이크를 노대통령과 김여사앞으로 내밀었고 노대통령이 이에 몇소절 노래를 부르자 청사내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했고 1,2,3층 복도테라스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학생들도 양국기를 흔들며 베사메무초를 합창,환영분위기는 절정에 도달. 노대통령내외가 여가수및 악단과 인사를 나누고 퇴장하자 청사내는 다시 「멕시코」「코레아」의 연호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는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며 몰려드는 남녀학생들의 손을 잡아주느라 분주. 이같은 열광적인 환영분위기때문에 노대통령은 예정보다 12분이나 늦은 상오 11시22분에서야 다음행사장인 애국용사탑으로 출발. ▷한국경제인 조찬간담회◁ ○…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은 26일 상오 노태우대통령을 수행중이거나 한국상품전시회관계로 멕시코를 방문중인 한국경제인들을 대통령관저로 초청,조찬을 함께하며 한·멕시코경제협력 증진방안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날 조찬간담회에는 이봉서상공부장관,한·멕시코민간경제협력위원회 한국측위원장인 김상응삼양사사장과 정세영현대·김우중대우·최종현선경회장,조중건대한항공사장,신명수동방유량회장,최동규극동정유사장,금진호무역협회고문,최광수수출입은행장,김철수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사장등 30여명이 참석. 살리나스대통령은 『한국과 멕시코간의 상호협력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투자부문에서 많은 협력사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언급. ◎노 대통령 교민초청 만찬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처음 멕시코를 방문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오늘 저녁 동포여러분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이곳에서 뵙게 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기후와 풍습,언어와 문화… 모든 것이 낯설기만한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 분들이 겪은 고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우리겨레의 지난날은 시련과 수난의 세월이었지만… 여러분의 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습니다.한국은 이제 광섬유와 컴퓨터로부터 자동차와 거대한 선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상품을 만들어 온 세계에 내다파는 나라가 되었습니다.10년후면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한국은 6·29선언이후 자유와 자율이 넘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이제 독일이 통일되고 동서의 세계가 하나가 되는 이 변혁속에 우리의 통일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한반도가 통일을 향해 나아갈 큰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저와 살리나스대통령은 긴밀한 동반자로서 우리 두나라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멕시코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가속화해 나갈 것입니다. 교역과 경제협력이 더욱 확대되고 특히 한국기업의 멕시코 진출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자유·번영·통일의 축복이 넘치는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에 차 있습니다.동포 여러분도 더 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 KAL기 희생자 선상 추모제 80분

    ◎8년전 그 바다 위에 진혼의 꽃다발만…/소 악대,「고향의 봄」 연주속 유족 통곡/소복차림 미망인,난간 붙잡고 절규/소 관계자도 눈시울… “진상조사 적극 지원” 약속 【유지노사할린스크=외무부공동취재단】 사고후 8년만에 처음으로 1일 사고현장에서 거행된 KAL기 추모제는 북위 1백41도 21분 동경 46도 32분 추락지점에서 유족들의 눈물바다를 이룬채 1시간20분가량 진행됐다. 소련측이 제공한 대형여객선 유리트리노프호(4천5백t급)선상에서 거행된 이날추모제는 비통한 분위기속에서 엄수됐으며 일부 유족들은 오열을 참지 못하고 시종 목놓아 통곡했다. ○…이날낮 12시20분쯤(한국시각 상오 10시20분) 소련군악대의 한소 양국 국가연주로 시작된 추모제는 고인들에 대한 묵념,추도사에 이어 분향및 선상 헌화순으로 진행. 소련작가의 이름을 딴 홈스크항을 떠나 두시간여 항해끝에 사고해역에 도착,뱃고동 소리와 함께 닻을 내리자 소련 육군 군악대는 「고향의 봄」과 양국의 전통 조곡을 연주하기 시작. 이어 한소 양국 정부대표의 추도사와 홍현모유족회장의 추도사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고 사고비행기의 교체기장 고 김희철씨의 딸 김수지양(22)의 고별사에 이르자 유족들의 비통함은 절정에 달했다. 추도사는 공로명주소대사,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홍유족회장의 순으로 진행됐는데 한결같이 KAL기사건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 한국정부를 대표한 공대사는 『냉전대결 상황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진상이 소련의 급속한 변화에 발맞춰 규명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표도로프 주지사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어떤 새로운 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 홍회장은 『잦아진 왕래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해명과 사죄없이 사건을 얼버무리고 있어 우리의 아픈 상처를 더욱 깊게 한다』며 『이 바다속에 검은 머리결을 물결에 너울거린채 아직도 눈을 감지못하는 희생자들의 얼굴을 쓸어내려주고 싶다』고 애도. ○…공대사와 소련측 대표들이 분향을 마치자 유족들은 소련군악대가 전통 러시아 조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선상 2층으로 내려와 차례로 헌화. 헌화는 권정달전의원을 비롯한 유족들이국화·백장미·백합등을 들고 갑판으로 내려오자 배의 선원과 사할린 거주 한인등 남녀 5명씩 10명이 대형화환 2개를 10여m아래 바다에 띄우면서 시작. 유족들이 뱃고동 소리와 함께 꽃송이를 던진 뒤에도 한동안 고인의 이름을 크게외치면서 통곡하자 이를 지켜보던 소련 관계자및 선원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20여분간의 선상헌화가 끝난 이날 하오 1시40분쯤 여객선이 큰 고동을 울리며 홈스크항으로 뱃머리를 돌리자 일부 유족들은 『잘있거라』 『다시 찾아오겠다』고 오열을 터뜨리며 난간을 부여잡고 애통해 했다. ○…추모제의 시작을 알리는 소련군악대의 「고향의 봄」연주가 울려퍼지자마자 일부 여자유족들은 오열을 참지 못하고 통곡. 윤정임씨(여)는 사고로 숨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식아,내가 어찌 여기있단 말이냐』라고 울부짖었고 하얀 소복차림의 임매심씨(70)와 석수원씨등 연로한 몇몇 여자 유족들도 목놓아 절규해 보는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던 유족들도 홍유족회장이 비통한 어조로 추도사를 낭독하자 대부분눈물을 떨구면서,추모제 현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사할린거주 한인대표로 참석한 서옥재씨(여·51)등 4명의 여자 한인들도 『유족들의 비통한 모습을 보니 우리도 눈물이 난다』며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사고로 아들 부부와 손자등 일가족 4명을 잃었다는 박윤섭씨는 꽃다발과 함께 과자꾸러미를 바다에 던지며 오열. 사고비행기의 부기장이었던 선동휘씨의 미망인 유행자씨는 집 앞뜰의 대추나무에서 따왔다는 대추 한접시를 바다에 뿌리며 고인의 넋을 위로. 선부기장의 아들 재곤씨(26)는 『기장복을 입고 집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글썽. 기장 천병인씨의 미망인 김옥희씨는 시종 눈물을 흘리며 『진실이 반드시 규명돼야 고인도 눈을 편히 감을 것』이라고 진상규명을 촉구. ○…정재문(민자)이수인(신민)박찬종의원(민주)등 국회 대한항공기 피격사건진상규명 청원심사소위 위원들은 추모제가 시작되기전 선상에서 소련 연방정부의 키레예프 외무부본부대사와 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등과 면담을 갖고 사건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국회서한을 전달했다. 키레예프대사는 이 자리에서 국회서한을 판킨 외무장관에게 전달할 것을 약속했고 표도로프 지사는 『연방정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할린지역의 조사활동에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 사할린 해상에 한맺힌 절규만…/KAL기 피격 8주기

    ◎유족들 소 영해서 첫 추모제/진상규명·사과·배상 촉구/유족대표/“억울한 넋들에 용서 빌뿐”/사할린 주지사 【유지노사할리스크=외무부공동취재단】 83년 9월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숨진KAL기 희생자 2백69명을 위한 추모제가 1일낮 12시20분(한국시각 상오 10시20분) 소련 사할린의 모네론섬 앞바다에서 열렸다. 유족들은 이날 소여객선 유리트리노프호 선상에서 8년전 사할린 상공에서 영문도 모른채 사라져간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번 오열했다. 홍현모유족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이 바다속에서 채 눈감지 못하고 있을 어린자식들의 눈이라도 감겨주고,동강난 육신이라도 찾아주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말하고 『생전에 사랑하던 고향산천과 정든 가정으로 이제 넋이라도 우리와 함께 돌아가자』며 흐느꼈다. 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도 『우리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 용서를 빌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가신 님들에 대한 추억이 영원히 간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추모제는 국민의례와 묵념,추도사에 이어 「고르바초프대통령께 드리는 글」「생명을 사랑하는 세계민들께 드리는 글」의 낭독,결의문 채택,헌시,고별사,분향및 헌화 순으로 1시간 20분동안 계속됐으며 유가족 94명외에 공로명주소대사,키레예프 소외무부본부대사등 양국 정부및 국회관계자 40여명도 함께 참석했다. 유족들은 이날 시종 눈물을 감추지 못했는데 특히 김수지양(22·피격당시 교체기장 김희철씨의 딸)이 고별사를 통해 『아버지,허전해질때 마다 그리워지는 아버지….그해 중학 2학년이던 철부지는 이제 대학 4학년의 어엿한 숙녀가 되었습니다』하며 울먹일 때에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준비해간 꽃들을 바다에 던질 때에는 갑판의 난간을 붙잡고 몸부림쳤다. 유족들은 또 유가족회 부회장인 유인학의원(신민)의 선창에 따라 소련정부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해 진상규명및 배상과 블랙박스의 내용 공개를 촉구하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유족들은 결의문에서 항로이탈을 알고서도 추적노력과 인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반성과 배상을 요구했으며 이윤만을 추구하는비인간적 기업행위로 사고야기에 책임이 있는 대한항공측의 반성과 성의있는 유족돕기도 촉구했다.
  • “미·소 정상 30일 모스크바 회담/한반도통일·북한 핵사찰 논의”

    ◎백악관 부대변인 【워싱턴=김호준특파원】 이달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미소정상회담에서는 지역문제의 일환으로 한반도문제가 폭넓게 논의될 것이라고 로만 포파두익 백악관부대변인이 24일 밝혔다. 포파두익 부대변인은 이날 외신기자를 상대로한 미소정상회담의 배경 설명에서 이같이 밝히고 남북한 통일문제와 유엔가입문제,그리고 특히 북한의 핵개발문제가 협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시베리아 공동개발문제가 이번 모스크바회담에서 협의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시베리아 개발문제는 소련에 대한 경제및 기술 지원,그리고 국제적인 자원개발의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협의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과 일본의 시베리아 개발 참여와 같은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는 이번에 논의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대통령이 오는 29일 늦게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다음날인 30일 고르바초프대통령과 회담을 갖는 한편 소련 무명용사묘역에 헌화한 뒤 중요한 연설을 할것이라고 말했다. 미·소양국 정상들은 31일에는 미·소 양국의 핵무기를 30%씩 감축하기로 한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 “각하의 방문은 양국 우정의 상징”(노 대통령 북미순방여로)

    ◎멀로니 총리/노 대통령,“「6.25」 참전한 형제국에 와 친근”○영어로 반갑게 인사 ◎…노태우대통령은 4일 상오10시(한국시간 4일 하오11시) 한·가정상회담을 위해 국회의사당 중앙건물 「평화의 탑」입구에 도착,맥두갈 캐나다 외무장관(여)의 영접을 받으며 3층에 있는 총리집무실로 이동. 노대통령이 층계를 올라 총리집무실에 이르자 문앞에 서서 기다리던 멀로니총리는 환한 웃음으로 반겼고 노대통령은 다가서며 『굿모닝』이라고 영어로 인사하며 악수를 교환. 이어 양국정상은 집무실로 들어가 잠시 환담했는데 멀로니총리가 먼저 『캐나다에 오셔서 영광입니다』라고 인사말을 시작했고 이에 노대통령은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답례. 국회의사당내 총리집무실의 공간이 비좁은 관계로 양국취재진이 두차례로 나뉘어 촬영을 하느라 집무실에 먼저 들어섰던 캐나다 취재진이 제한된 시간관계로 방을 떠나게 되자 멀로니총리는 노대통령을 향해 『저 기자는 굉장히 집요한 사진기자이지만 시간관계로 오늘은 별 수가 없군요』라고 조크하며 취재진에게 미안함을 표시. 그러자 노대통령은 『어느나라 정치지도자도 언론,특히 사진기자들에게 맥을 못추죠』라고 수긍. 그사이 두번재 취재진이 들어서자 멀로니총리는 『각하의 캐나다방문은 양국의 모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고 노대통령은 『캐나다는 자유를 지키는 전쟁(한국전)에 참전해 주었고 88년에는 올림픽형제로서 참가해 한국국민 모두가 캐나다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있다』고 설명. 멀로니총리는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 온 노대통령의 명성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데 대해 경의를 표하며 각하의 방문을 캐나다 국민과 함께 감사히 생각한다』고 찬사의 뜻을 밝힌뒤 본격적인 단독회담을 시작. ◎…단독정상회담을 끝낸 노대통령과 멀로니총리는 루커스 외무부 의전장의 안내로 확대회담장인 국무회의실에 입장,미리 대기하고 있던 우리측 공식수행원등 양측회담 참석자들과 테이블을 돌아가며 인사를 교환한뒤 곧바로 회담에 돌입. 단독과 확대회담을 모두 마친 양국정상은 의사당내 2층리딩룸에 마련된 공동기자회견장에서 회담내용을 각각 양국기자들에게 발표. 멀로니총리의 발표에 이어 노대통령이 발표를 했고 이어 양국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으며 회견을 진행. ○전쟁기념비에 헌화 ◎…노태우대통령은 캐나다 방문 이틀째인 4일 상오9시30분(한국시간 4일 하오10시30분)오타와시 중심가의 내셔널 메모리얼 광장에 위치한 전쟁기념비를찾아 헌화하고 참배. 공식수행원을 대동하고 전쟁기념비에 도착한 노대통령은 캐나다정부 의전관계자의 안내로 기념비앞에 마련된 단상에서 애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붉은 상의에 검정바지,검정털모자 차림의 캐나다 의장병의 경례를 받은뒤 기념비에 헌화. 이어 노대통령은 한국전 기념비 앞쪽에 도열해 있던 25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 녹색의 예비군복에 여러 전쟁훈장들을 가슴에 단 참전용사들은 감회어린 표정으로 노대통령을 반겼으며 이중 로이 리드 캐나다 한국 참전용사회 수석부회장은 『자유를 위해 싸웠던 한국의 노대통령이 이곳에 와 한국전에서 희생된 5백16명의용사들을 위해 묵념하는 것을보니 감회가 깊으며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피력. ◎…노태우대통령내외는 3일 하오4시30분(한국시간 5일 새벽5시30분) 오타와 국제공항에 도착,3박4일간의 캐나다 국빈방문을 시작. 노대통령이 탑승한 대한항공 특별기가 국제공항 우측편의 공군기지에 멈춘뒤 루카스 의전장과 박건우 주캐나다대사가 기내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영접,트랩을 내려와 나티신총독과 멀로니총리내외에게 소개. 노대통령은 이어 사열대에 등단,전통근위병 예복차림의 의장병들로부터 경례를 받았는데 이 사이 군악대의 애국가 연주와 함께 예포가 발사돼 장중한 환영식 분위기를 연출. 노대통령은 의장대장 안내로 사열대에서 내려와 두줄로 늘어선 의장병을 사열하고 다시 등단했고 이때 군악대가 캐나다국가를 연주. 노대통령은 방명록에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서명하고 나티신총독의 환영사를 경청. 나티신총독은 영어와 불어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각하의 첫 캐나다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하고 『캐나다 국민들과 한국 국민들은지난 1백년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상기. ◎…노대통령은 나티신총독을 예방한데 이어 3일 하오 7시(현지시간) 오타와시내 웨스틴호텔에서 열린 교민초청 리셉션에 참석,5백여명의 교민을 격려. 노대통령이 여당이 압승을 거둔 지난 6월의 시도의회의원 선거결과를 얘기하면서 『그동안 대통령이 너무 무르다.너무 참는다… 그런 욕도 많이 먹었는데 참았더니 의석이 그렇게 많이 나오데요』라고 즉석에서 조크하자 참석교민들은 일제히 우렁찬 박수. ○의회직원 탁아소 방문 ◎…노태우대통령이 멀로니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동안 부인 김옥숙여사는 의회가 직원들을 위해 운영하는 탁아소를 방문. 김여사는 루크만 탁아소장의 안내로 보모들의 보호아래 뜰에서 뛰어놀거나 그림공부를 하는 어린이들을 돌아봤다.
  • 시베리아 자원개발 공동진출/한·캐나다 정상회담

    ◎투자확대등 경협강화 합의/「북한핵」 G­7회담때 제기/아태협력체 구성에 최대 노력 【오타와=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과 브라이언 멀로니 캐나다총리는 4일 상오10시(한국시간 4일 하오11시)캐나다 의회 총리실에서 한·캐나다 정상회담을 갖고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APEC)제3차 총회를 계기로 아·태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아·태지역협력체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공동노력키로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서울총회에서 중국 대만 홍콩의 가입문제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하는 한편 아·태지역에서의 소지역 블록화에는 반대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노대통령은 캐나다와 북한과의 관계개선도 미·북한관계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안전협정및 핵사찰수락,남북대화의 진전 등과 연계시켜 나갈 것을 요청했으며 멀로니총리도 이에대해 전적으로 입장을 같이 한다는 뜻을 밝혔다. 양국정상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단순한 한반도문제가 아니라 동북아및 세계평화와 안정에도 위협이 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오는15일 런던에서 개최되는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과 멀로니총리는 양국 경제협력 증진방안을 중점 논의,한국의 생산기술및 인적 자원과 캐나다의 자원을 결합하는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국정상은 한국기업들의 대캐나다 투자확대,자원공동개발,제3국에로의 공동진출방안을 적극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캐나다측은 제3국 공동진출방안과 관련,걸프전이후 중동지역복구사업,시베리아 자원개발사업을 양국이 함께 추진해 나갈 것을 제의했다. 노대통령은 캐나다 발주 월성 원전2호기가 이달중 착공되는 것을 계기로 캐나다의 대한 원자력기술이전을 촉진해 나갈 것과 통신·우주항공·유전자공학·의약부문 등 첨단과학기술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요청했다. 양국정상은 회담이 끝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회담결과를 설명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이날 하오 캐나다 외무부회의실에서 한·캐나다 경제인과 간담회를 갖고 『양국 기업이 시베리아 지역의 천연가스·석유·삼림 등 개발과 소연의 항만·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사업에 합작하면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전쟁기념비에 헌화했으며,회담이 끝난 뒤 상원귀빈식당에서 멀로니총리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
  • 추념식 1만여명 참석/어제 36회 현충일

    제36회 현충일 추념식이 6일 상오 10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정원식 국무총리서리·박준규 국회의장·김덕주 대법원장 등 3부 요인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김대중 신민당 총재 등 정당대표,전몰군경유족,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추념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에 대한 묵념,3부 요인·국가유공자단체장·정당대표의 헌화 및 분향과 정 총리서리의 추념사,최태호 상이군경회장의 진혼사,「현충의 노래」 순으로 진행됐다. 정 총리서리는 추념사를 통해 『우리는 호국 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을 기리고 애국애족의 정신을 자손만대에 전하고 또 전해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 보다 더 뜻있고 값진 것은 그분들의 유지를 받들어 못 다한 유업을 완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 노 대통령 「순방」 수행원·일정

    ▷공식수행원◁ ▲이상옥 외무장관 ▲이봉서 상공장관 ▲현홍주 주미 대사 내외(박건우 주캐나다 대사 내외) ▲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 ▲이현우 경호실장 ▲정호근 합참의장 ▲김진재 민자당 총재비서실장 ▲김종인 경제수석 ▲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 ▲이수정 공보수석 ▲이병기 의전수석 ▲최규완 주치의 ▲장선섭 외무부 의전장 ▲심기문 외무부 미주국장 ▷방문일정◁ ▲6월29일 하오 출국,샌프란시스코 도착,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설 ▲30일 교포 초청 조찬 ▲7월1일 상오 샌프란시스코 출발,하오 워싱턴DC 도착,교포 초청 리셉션 ▲2일 상오 백악관 공식환영행사,한미정상회담(단독 및 확대회담),국무장관 주최 오찬(국무부),하오 미 의회관계자 서훈,미 국방·상무장관 등 접견(숙소),부시 대통령 주최 백악관 공식만찬 ▲3일 상오 미 언론인 초청 비공식 조찬,국립묘지 헌화,하오 퀘일 부통령 초청 답례오찬,오타와 향발,캐나다 총독 예방,교민 초청 리셉션 ▲4일 상오 국립묘지 헌화,한·캐나다정상회담,양국 정상 공동기자회견,멀로니 총리 주최 오찬,캐나다 자유당·신민주당 당수 접견,총독 주최 공식만찬 ▲5일 수행기자간담회,오타와 출발,하오 밴쿠버 도착,브리티시 컬럼비아주지사 주최 만찬 ▲6일 상오 교민 초청 조찬,하오 밴쿠버 출발 ▲7일 하오 서울 공항 도착
  • 도청앞 노제 10만 인파/광주/분신 박양 망월동 안장

    ◎도청 철문 10여m 부수기도 【광주=최치봉 기자】 지난 19일 숨진 전남대생 박승희양(20·식품영양 2년)의 유해가 26일 0시쯤 유족과 동료학생들의 오열 속에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됐다. 박양의 유해는 이날 하오 5시5분쯤 광주시 동구 광산동 전남도청 앞 광장에 도착,노제를 치렀다. 이날 노제는 10만여 명의 시민·학생들이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4가까지의 2㎞의 6차선 도로를 꽉메운 가운데 제문낭독·추모사·유족인사·헌화·분향·부활굿 순서로 3시간 남짓 진행됐다. 한편 박양의 도청 앞 노제를 마친 뒤 일부 극렬 시위대는 하오 9시50분쯤 도청 정문 왼쪽으로부터 30여 m 떨어진 보조철문 10여 m를 부수고 도청담장에 붙어 있는 새 생활실천 대형 홍보간판을 뜯어내 불태우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날 하오 10시30분쯤 민자당 광주시지부 건물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던 호남대학생 김선일군(19·법학과 1년)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안경을 맞아 오른쪽 눈에 부상을 입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 “인내와 자제로 대승적 서원을”/어제 불탄일 법요식

    불기 253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21일 상오 10시 서울 조계사를 비롯,전국의 사찰에서 봉축법요식이 일제히 봉행됐다.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는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 등 승려와 신도 1만여 명이 참가,부처님이 탄생한 참뜻을 되새겼다. 이날 법요식은 삼귀의례에 이어 헌화,봉축사,법어,축원발원문 낭독,찬불가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서 총무원장은 봉축사를 통해 『지금은 우리 모두 민족공동체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그 길을 실천하기 위해 인내와 자제로써 대승적 서원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세종 숭모제전 참석

    【여주=이경형 기자】 노태우 대통령은 15일 상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영릉에서 베풀어진 세종대왕 탄신 5백94돌 숭모제전에 참석,헌화 분향했다. 노 대통령은 제전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 다과를 함께한 자리에서 한반도주변 정세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시기에 나라안에서 갈등과 대립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극소수 과격세력이 절대다수 국민들의 의사와 법질서를 짓밟고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사회를 혼란속에 빠뜨리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국민 모두 직분에 충실할 때”/노 대통령,현충사 다례행제서 강조

    【아산=이경형 기자】 노태우 대통령은 28일 『국민 모두가 자기 몫을 찾는 목소리를 조금씩 낮추고 각자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나간다면 우리는 90년대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모두가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선진국,그리고 7천만이 한 울타리 속에 살아가는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충무공 탄신 4백46돌을 맞아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엄수된 다례행제에 참석,헌화·분향한 뒤 이 지역 각계 인사들과 가진 다과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 다례가 단순한 연례행사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며 공의 위대한 정신을 오늘에 살리는 국민적 결의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가 「4·19」 31돌 행사

    서울대·고려대 등 서울시내 11개 대학생 1만6천여 명은 4·19의거 31주년을 맞아 18일 각 학교별로 기념식과 함께 수유리 4·19묘지 등까지의 마라톤대회를 가졌다. 고려대학생 8천여 명은 이날 상오 11시 학생회관 앞에서 「4·19 31주년 기념식」을 가진 뒤 이들 가운데 1백여 명은 낮 12시50분부터 수유리 4·19묘지까지 왕복 16㎞ 구간에서 마라톤대회를 가졌으며 7천여 명은 하오 1시15분쯤부터 도로를 따라 4·19묘지까지 도보행진했다. 이날 4·19묘소에는 고려대·성균관대·덕성여대 등 서울시내 8개 대학생 1만여 명이 학교에서 행진을 하거나 버스 편으로 찾아와 헌화와 묵념으로 참배했으며 하오 5시50분쯤에는 국가보훈처 관계자와 4·19유족회 등 3개 유족단체 회원 30여 명도 찾아 참배한 뒤 추모제를 가졌다.
  • 고 최석채씨 영결식

    원로언론인 고 최석채 선생 영결식이 15일 상오 8시 서울 은평구 응암동 2의21 자택에서 유가족과 친지·언론계·정계 등 각계 인사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편집인 협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고인의 육성녹음 청취·안덕환 매일신문 전무의 약력보고·안병훈 한국편집인협회장의 추도사·이환의 전문화방송 경향신문 사장의 조사·조영서 서울신문홍보실장의 조시낭독·헌화분향의 순으로 40여 분 동안 진행됐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하오 경북 금릉군 조마면 신안리 선산에 안장됐다.
  • 가이후총리 방한 이모저모

    ◎“반일”구호속 파고다공원 3ㆍ1비에 헌화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 일본총리는 10일상오 청와대에서 약 90분간에 걸친 2차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재일교포법적 지위문제,무역역조시정문제,기술협력문제,유엔가입문제,아시아ㆍ태평양협력문제 등 양국간 쌍무적인 문제들에 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 회담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 대변인은 『양국정상은 한일양국관계에 대해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회담을 가졌으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회담내용에 만족을 표시했다』고 발표. 양국정상은 예정된 의제외에 폐르시아만사태도 거론,미ㆍ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결렬된데 유감을 표시하고 전쟁 등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 일이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했는데 가이후총리는 노대통령에게 『회담 결렬소식을 듣고 유엔대사에게 사무총장을 만나 중재노력을 적극화하도록 훈령했다』고 설명. 노대통령은 희담을 마치면서 『현재 한일관계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불행했던 과거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정립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성의를 갖고 노력하자』고 말했으며 가이후총리는 『지난해 5월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룩한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며 『성의와 신념을 갖고 합의사항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 가이후총리는 또 『지금 나는 파고다공원을 방문,느낀 바를 일본국민들에게 솔직히 전달하여 흐림이 없고 맑은 한일관계를 여는 인식을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며 노대통령은 가이후총리가 훌륭한 한국인의 친구로 오래 남기를 바라며 아시아순방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고 인사. ○…이날 상오 가이후총리의 파고다공원방문은 공원밖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이 반일구호를 외치는 등 다소 착잡한 분위기속에 3ㆍ1독립선언비에 헌화하고 경내를 잠시 둘러보는 순서로 10여분만에 종료. 가이후총리는 부인 사치요(행세)여사 및 나카야마(중산)외무장관 등 수행원 10여명과 함께 이날 상오11시50분쯤 공원정문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배문환종로구청장의 안내를 받으며 경내에 진입. 검은색 오버코트차림의 가이후총리는 손병희선생동상옆을 지나 곧바로 3ㆍ1독립선언비에헌화하고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 가이후총리는 이어 독립선언비주위의 3ㆍ1운동찬양부조물을 둘러봤는데 당시 유관순열사가 만세를 부르는 장면,해주기생이 일경의 기마에 짓밟히는 모습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조각 등 세군데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내자의 설명을 경청. 가이후총리는 시종 무거운 표정으로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으며 유열사상 앞에서 『당시 17세의 여고생으로 천안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만 끄덕이기도. ○…김영삼 민자당대표,김대중 평민당총재,김재광 국회부의장 등 여야정치지도자들은 10일 하오 국회를 방문한 가이후 일본총리를 맞아 과거의 불행했던 한일관계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일본측의 반성을 강력히 촉구. 이날 해외순방중인 박준규국회의장을 대신해 가이후총리를 영접했던 김부의장은 『일제의 식민지정책 속에 7백50만이란 천문학적 숫자의 우리 동포가 희생당했다』고 전제,『가이후총리의 방한을 맞아 우리 국민 일부가 반대데모를 했다는 사실이 불행했던 과거청산이 미진했음을 증명한 것』이라며 물질적 배상보다 허심탄회한 입장에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반성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
  • 한ㆍ미 “미래지향”선언속 「빈손협력」

    ◎일,「과거청산」에 매달려 실질보장 “어물어물”/무역역조 시정등 처방없이 원론서 맴돌아/「아태신질서」 동반관계 조율은 성과/두차례 정상회담 뭘 남겼나 한일양국은 1박2일간에 걸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의 방한을 통해 「알맹이」보다는 「분위기」조성의 불확실한 성과를 얻었다. 물론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가 두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불행했던 과거를 덮어두고 밝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일양국은 새로운 우호선린관계의 길을 열어 놓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 가이후총리의 방한은 처음부터 「가이후카드」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우리측 입장에서 풍성한 수확을 얻어내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이번 가이후방한에서 『이제 과거는 그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했고 동아시아에서 급속히 형성되고 있는 새질서에 대응,일본의 위상을 추구하는 시발점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대해 한국은 과거사는 종결짓되 확실한 보증을 요구했고 동북아시아에서 한일양국이 발을 맞추려면 일ㆍ북한관계 개선문제에 우선 보폭을 일치시켜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두차례의 한일정상회담은 3가지의 「불확실한 성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일단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의 설정에 합의한 점이다. 이에대한 가시적인 문건은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및 처우에 관한 각서」와 「한일우호협력3원칙」이다. 지문날인제 철폐,국공립초중고교 재일한국인교사채용기회 확대 등으로 상징되는 이 「과거사 청산각서」는 일부 내용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한일양국은 『이제부터 미래얘기를 하자』는 징표로 해석되고 있다. 「아태지역의 평화와 화해,그리고 번영과 개방을 위한 공헌강화」 등 3개항의 우호협력원칙은 일견 「공자말씀」인 면도 없지않지만 미래지향문제와 관련한 양국의 「헌장」으로 이해된다. 또한 가이후총리가 10일 일제식민치하의 3ㆍ1독립운동의 진원지인 파고다공원을 일본총리로서는 최초로 방문,3ㆍ1운동기념비에 헌화하고 묵념한 것은 과거사 종결선언의 정치적 행동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미래지향」 표명이 그 지긋지긋한 과거의망령으로부터 탈출하자는 데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동반자관계로 나가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이에대한 판단은 앞으로의 일본의 태도를 봐야한다는 점에서 유보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미래지향의 선언도 불확실한 성과라고 평가된다. 둘째는 일ㆍ북한수교 교섭과 한소관계 진전문제에 대한 양국의 상호협력에 인식을 같이한 점이다. 일본측은 그동안 한국이 강력히 요청한 일ㆍ북한수교에 따른 5개원칙을 전폭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한걸음 더 나아가 이달말께 평양에서 있을 일ㆍ북한수교 교섭 1차본회담에서는 「5개원칙」의 하나인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였다. 일본은 대북수교교섭에서 한국과의 사전 충분한 협의,남북대화와 교류에 있어 의미있는 진전 등을 항상 유념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가이후총리는 『한소관계진전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협의를 얻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일ㆍ북한수교와 한소관계진전은 일종의 「맞보기」임을 지적했다. 일ㆍ북한수교는 한국이 폐쇄노선의 한계점에 이른 북한을 어떻게 해서든 개방으로 몰고 나오려는 시점에 일본이 북한에 「경협 및 보상」이라는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는 형국이다. 이에반해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대소경협 등 한소관계진전은 일본이 경협을 미끼로 대소 북방 4개도서문제를 해결하려는 판에 매우 껄끄러운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다. 이같은 한일양국의 입장은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간의 「외교언사」로만 극복되기는 어렵다. 다만 일본이 한국과의 진정한 동반자로서 「북방도서」보다 「분단의 고통」에 얼마나 더 비중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자국이기주의를 절제할 가능성은 있다. 셋째,산업기술협력ㆍ60억달러의 무역역조 등 현안에 관해 기본적인 문제점을 함께 인식한 점이다. 그러나 이들 현안과 관련,분명한 처방없이 원론만 되풀이 한 것은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올 상반기중 한일산업기술 협력위원회를 열어 기술이전 문제를 본격 검토키로 한 것이나 가이후총리가 한국건설업체가 일본에서 차별없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하면 특례조치로 사안별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소 진전된 것이다. 양국정상은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의 기초작업으로 청소년ㆍ학술ㆍ문화교류를 대폭 증진키로 합의했으나 일본문화의 침투 등 이 과정에서 제기될 부작용에 대한 완충장치는 계속 숙제로 남아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오는 2월의 미소정상회담,3월의 미일ㆍ한미정상회담 그리고 4월의 일소정상회담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에 따른 한소정상회담 등 한반도주변 국가 정상들간의 연쇄회담의 시발점이 된다는 면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재편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한일양국이 동북아에서의 새로운 국제적 기류에 공등대응하고 이 지역 협력문제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은 양국의 위상제고에 일단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가이후총리의 방한은 올봄으로 예상되는 일왕의 한국방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일왕의 방한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이는 미래지향을 선언한 한일양국 관계를 보는국민들의 「체감온도」를 반영해 주고 있다.
  • 한·일 우호협력 3원칙 합의/2차 정상회담

    ◎기술이전·젊은세대 교류 확대/지문날인 내년 폐지/양국 외무 각서 서명 노태우대통령은 10일 상오 청와대에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와 2차 정상회담을 갖고 재일교포 법적지위문제,무역역조,기술협력문제 등을 포함한 한일 양국간의 쌍무적인 현안을 논의,두나라의 미래지향적인 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한 한일 우호협력 3원칙에 합의했다.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날 상오 회담에서 ▲한일 양국의 진정한 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한 교류·협력과 상호 이해의 증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화해,그리고 번영과 개방을 위한 공헌강화 ▲범세계적 제문제의 해결을 위한 건설적 기여증대 등 3원칙을 위해 양국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했다. 노대통령은 회담에서 연간 60억달러에 달하는 대일무역 역조와 관련,양국의 무역이 확대균형을 이루게 일본측이 적극 노력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특히 일본의 건설시장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가이후총리는 일본이 연간 6백40억달러 상당을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수입을 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이 역조가 심화되고 있는 원인을 분석,시정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가이후총리는 기술협력문제와 관련,한일간에 합의된 산업과학기술 협력위원회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다만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한국서도 좋은 투자환경을 조성토록 하면서 일본정부도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와함께 예부터 한일간에는 인적·문화적 교류가 잦았던 점을 상기하면서 상호 통신사교환 및 문화재의 교류 전시,문헌의 공개 등을 활발히하여 특히 젊은 세대의 교류를 촉진해 나간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노대통령은 회담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 주도록 초청했으며 방문시기 등은 양국 정부간에 협의될 것이라고 이대변인이 밝혔다. 가이후총리는 정상회담후 과거사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3·1운동의 발상지인 파고다공원을 방문,헌화하고 경제 4단체장이 주최하는 오찬에 참석했으며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를 방문한 뒤 이날 저녁 이한했다. ◎「가족등록제」 실시 한일 양국은 오는 92년 말까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하고 대체수단으로 일본의 호적제도와 유사한 가족등록제도를 도입키로 하는 등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 문제를 완전 타결했다. 이상옥 외무부장관과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일본 외무장관은 10일 상오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제2차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이같은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와 처우에 관한 각서」에 서명,교환했다.
  • 일,북한에 「핵 협정」 촉구키로/한·일 1차 정상회담

    ◎수문 사전협의등 「5개 원칙」 확인/오늘 교포 지위개선 각서 서명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는 9일 하오 청와대에서 1차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및 주변정세 문제를 논의,북한·일본 수교문제는 한일 양국이 사전에 긴밀하게 협의키로 합의했다. 양국정상은 북한·일본수교 등 관계개선은 ▲한일 양국간 충분한 사전협의 ▲남북대화 및 교류에 있어 의미있는 진전의 고려 ▲북한의 핵안전 협정가입촉구 ▲일북 수교이전에는 북한에 대한 경협 및 보상을 제공치 않으며 또 그것이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결부되어서는 안된다. ▲북한이 개방을 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으로 나오도록 한다는 등 5개 원칙에 따라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다. 양국정상은 1차 회담에 이어 10일 상오 2차 정상회담을 갖고 재일동포 법적지위 및 사회적 대우문제,과학기술 협력문제,인적·문화적 교류 등 쌍무관계를 중점 논의하는 한편 새로운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한 우호협력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이날 1차 회담에서 『일·북한간의 수교교섭 자체는 7·7선언에 입각해 환영하지만 그것이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가이후총리는 『일·북한간의 수교는 한국과의 사전 충분한 협의 등 확고한 원칙위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이달 하순쯤에 평양에서 열릴 일·북한 수교교섭 1차 본회담에서 북한의 핵안정 협정가입 문제를 정식제기,가입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고 배석한 김종휘 대통령 외교안보 보좌관이 전했다. 가이후총리는 또 일·북한 수교교섭 과정에서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평화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항상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다국적군 전선 국가지원과 유엔결의를 지지한다는 공동입장을 확인하고 앞으로 페르시아만 사태가 가능한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하는 한편 침략에 의한 타국점령은 결코 인정할 수 없으며 유엔결의의 정신을 실천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정상은 소련 및 동구·EC(유럽공동체)를 통한 유럽의 경제통합과 유럽 안보협력회의의 구축 등에 비추어 동북아의 협력체제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함께 하고 한일 양국이 정치·경제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국제경제 상황과 관련,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재개와 함께 보호무역주의·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때 한일 양국간의 협력이 동아시아 지역의 협력에 긴요하므로 양국이 이에따른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로 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소 수교 및 경협,대중국 관계개선 노력을 설명했으며 양국 정상은 대소 소비재수출,자원개발 분야에 공동 협력키로 했다. 1차 정상회담이 끝난뒤 가이후총리는 정부 종합청사로 노재봉 국무총리서리를 예방했으며 이날 저녁에는 노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배푼 공식만찬에 참석했다. 한편 양국 정부는 2차 정상회담에 앞서 10일 상오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재일동포의 법적지위와 사회적 대우에 관한 각서에 서명,교환할 예정이다. 이에앞서 가이후총리는 9일 상오 1박2일간의 공식 방한을 위해 서울공항에 도착,환영식에 참석한뒤 국립묘지를 참배,헌화했다.
  • “소,한반도 군축 검증 동의”/노대통령 기자간담

    ◎45년 냉전종식 큰 수확/경협규모 1월 실무협의때 결정/방소 3박4일 마치고 오늘 상오 귀국 【레닌그라드=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16일 상오 8시(한국시간 하오 2시) 레닌그라드 영빈관에서 소련 방문 3박4일을 결산하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남북한의 군사력이 상호 균형되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 지원을 해주었던 나라들이 군비축소 문제도 관여해 합동으로 확인하는 장치를 만드는 등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설명했고 그도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한소정상회담에서 7·4공동성명 이후 북한이 약속을 깬 사실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하나하나 설명했고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소련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문제와 관련,『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나의 한국 초청에 대해 빠른 시일안에 서울에 가겠다고 답변했다』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맹국인북한을 의식하는 것 같았으나 그가 북한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와 정상회담을 가졌고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또한 소련의 국익을 위해 무엇이 더 도움이 될 것인가는 이미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평양 동시 방문 가능성이 희박함을 강력히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방소 결산에 대해 『해방 이후 45년간 지속돼온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소가 가장 큰 성과이며 지금까지 냉전체제의 상대국 대표국가와 냉전체제의 종식을 합의하고 상호 협력체제를 갖추게 된 점과 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 중국과도 관계를 정립한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경협문제와 관련,『경협규모는 이번에 정하지 않았으며 내년 1월초 실무협의를 통해 결정키로 했다』면서 『소련이 현재 소비재가 급한만큼 소비재의 연불수출과 생필품 생산을 위한 군수산업의 민수산업 전환,합작투자·플랜트수출·도로·항만·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유엔 가입문제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분명한 논의가 있었으며 그는 유엔의 보편타당성의 원칙에 나와 의견을 같이했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소 외무장관회담에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6·25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언급을 소련 정부의 공식사과로 간주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정상회담에서도 과거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언급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소련 외무장관의 입장표명을 소련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북한체제와 북한 지도층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었으나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식의 논의는 없었다』면서 『북한도 결국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시간이 가면 반드시 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귀국하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청와대회담을 가질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런기회가 오리라고 본다』고 말해 청와대 여야 총재회담을 가질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 뒤 『현재 해외문제에 여러 가지 정리할 일이 있어 개각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나 정리를 다하고 겨를이 생기면 개각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닌그라드 출발 【레닌그라드=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3박4일간의 소련 방문 일정을 모두 끝내고 16일 하오 6시(한국시간 17일 0시) 레닌그라드 폴코보공항을 출발,귀국길에 올랐다. 노 대통령은 17일 상오 서울공항에 도착,귀국인사를 통해 방소결과를 직접 밝힐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낮 소브차크 레닌그라드 시장이 영빈관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국의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 이 도시를 방문한 것은 냉전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리 두 나라가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나갈 것을 세계에 밝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 20분(한국시간 하오 4시20분) 레닌그라드시 승리의 광장에 있는 시 수호기념비에 헌화하고 이오페 물리기술연구소를 시찰했다. 노 대통령은 오찬이 끝난 뒤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헤르미타지박물관도 둘러봤다.
  • 노대통령,“남북관계도 하나씩 개선될 것”(모스크바 여로)

    ◎“레닌그라드는 우리 선각자들 구국뜻 편 곳”/세계적인 물리기술연구소 「이오페」 둘러봐/교민들 추운 날씨에도 공항 나와 귀국길 배웅 ○환송객과 작별인사 ▷서울향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공식방문했던 노태우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는 16일 하오 6시(한국시간 17일 0시) 역사적인 3박4일의 방소일정을 마치고 레닌그라드의 폴코보국제공항에서 특별기편으로 서울로 향발. 공항에는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 및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 등 소련측 인사들이 노 대통령 일행을 환송. 또 재레닌그라드 교포들도 영하 10도 안팎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나와 노 대통령의 귀국길을 배웅. 노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에게 『3박4일 동안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소련국민들이 베풀어준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하루빨리 서울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서울에서의 한소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 노 대통령은 공항에서의 환송행사가끝나자 소련측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트랩에 올라 손을 흔들어 작별의 인사를 하고 특별기에 탑승. 노 대통령 일행은 약 10시간30분간을 비행한 후 17일 상오 서울에 도착할 예정. ▷기자간담회◁ ○…노 대통령은 이날 아침(현지시간) 숙소인 네바강변에 자리잡은 레닌그라드시 영빈관에서 수행기자단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이번 방소의 소감과 성과에 대해 소상히 설명. 노 대통령은 이날 1시간 동안 계속된 간담회에서 『이번 방문을 통해 체제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를 실감했다』며 『소련은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고 풍부한 자원도 있어 체제만 좋았으면 무척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소련사람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소개. 노 대통령은 이번 방소의 하이라이트였던 14일 양국 정상회담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통일정책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마음먹고 준비를 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내 생각을 다 아는 듯 통일은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내가 할 이야기를 정리해 먼저 이야기하는 바람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부탁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해력도 빠르고 문제 핵심도 쪽집게처럼 집어내는 명석한 지도자였다』고 평가. 노 대통령은 또 「모스크바선언」에 따른 향후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는 『남북도 과거 어느 때보다 노력하고 있는만큼 아직까지 만족스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씩 개선되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다 듣고 나니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아 수십 번 만난 사람 못지않게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며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이 잘 속인다고 하나 마음이 통하면 모든 것을 벗어주고 신의를 제일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피력. 양국간 경제협력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노 대통령은 미묘한 부분이라고 감지한 듯 『경제협력이란 것이 무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지 말라』고 손을 내젓고는 『소련사람들은 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무상은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이날 조찬간담회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 및 김종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수정 공보수석비서관,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 등 공식수행원이 모두 참석했는데 노 대통령은 간담회가 끝난 뒤 공로명 주소 대사를 가리키면서 『여기 와서 고생 많이 했는데 우리 모두 함께 박수를 쳐주자』고 제의해 참석자 모두가 박수로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 ○한국과 구연을 강조 ▷레닌그라드시장 주최 오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1시(한국시간 하오 7시)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오찬 답사에서 『지난 1884년부터 20년간 우리 두 나라가 선린의 관계를 다졌을 때 우리 외교사절들은 두 나라의 우의를 레닌그라드에서 다졌고 우리의 선각자들이 식민세력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롭자 구국의 뜻을 처음 편 곳도 바로 이 도시였다』고 한국과 레닌그라드와의 구연을 강조. 노 대통령은 이어 『지난 봄 이 도시의 문화사절로 한국을 방문했던 레닌그라드교향악단의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우리 국민은 새 친구를 맞은 기쁨 속에,그 높은 예술성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면서 『레닌그라드가 한소 두 나라간의 새로운 시대도 힘차게 이끌어 달라』고 당부. 노 대통령은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읽은 푸슈킨,고골리,도스토예프스키의 시와 산문,소설에 담겨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서 『우리와의 관계는 끊겨 있었으나 레닌그라드는 한국인 모두의 마음에 친근한 도시』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이어 『한 세기 전 우리나라의 첫 외교사절이 이 도시에 이르기까지는 세 대륙과 두 대양을 거쳐 50일이 걸렸지만 교류와 협력의 넓은 길이 새 시대와 함께 열린 이제부터는 10시간의 비행으로 서로를 찾아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됐다』면서 『우리는 한 지구촌에 사는 진정한 이웃이 되었다』고 강조. 노 대통령은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선도해온 레닌그라드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승리로 이끄는 향도가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건배를 제의한 뒤 「발소예 쓰바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이날 오찬은 노 대통령의 방소 3박4일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감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양국 참석자들은 시종 밝은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면서 작별의 아쉬움을 표시. ▷수호기념비 헌화◁ ○…노 대통령은 일요일인 이날 상오 레닌그라드시내 승리의 광장에 있는 레닌그라드 수호기념비에 헌화,지난 41년부터 45년까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봉쇄작전에 대항해 기아 속에서도 이곳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레닌그라드시민들의 넋을 추모.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10분 수호기념비 앞 광장에 도착,레닌그라드지역 제1부 사령관과 기념비 관리소장의 영접을 받은 뒤 기념비 연혁을 설명듣고 곧바로 수호용사기념동상 앞으로 가서 헌화. ○서울대와 학술교류 ▷물리기술연구소 방문◁ ○…노 대통령은 이어 소련 물리학의 산실인 이오페물리기술연구소를 방문,아페로프 소장으로부터 연구소의 역사와 연구현황,한국과의 협력 가능분야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전시실을 시찰. 아페로프 소장은 『소련 최고의 물리학자로 「물리학의 어버이」로 불리는 고 이오페 박사가 1918년에 설정한 이 연구소는 현재 반도체·광학·전자공학·고체물리학·초전도체·핵융합·천체물리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이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4명의 노벨상 수상자,60여 명의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30여 명의 레닌상(소련 최고의 과학기술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소개. 아페로프 소장은 또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설명하면서 『현재 대우와 합작사업을 하고 있으며 서울대와도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다』면서 『소련의 첨단과학기술과 한국의 상품화기술간의 협력을 위해 한소 공동학술연구센터를 설립토록 하자』고 제의.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과학기술분야에서도 활발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며 『나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협력이 강화되어 큰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 노 대통령은 『반도체의 경우 일본이 돈을 다 벌고 있는데 한소 양국의 첨단기술과 응용기술이 접목되면 우리가 그 돈을 나눠 가질 수 있다』면서 『양국은 경쟁대상이 아니어서 서로감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협력이 잘 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 노 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한 뒤 전시실에 들러 고강도유리를 직접 망치로 두드려보는 등 양국간의 기술협력에 큰 관심을 표시했으며 아페로프 소장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을 소개하며 노 대통령의 연구소 방문에 큰 만족을 표시. 이날 연구소측은 노 대통령에게 맘모스 상아로 만든 피터 1세상(레닌그라드를 건설한 황제)과 규소유리로 만든 레닌그라드의 상징범선을 선물로 전달. ▷박물관 방문◁ ○…노 대통령 내외는 방소 마지막 일정으로 레닌그라드의 헤르미타지박물관을 방문,1시간반 동안 소장품을 감상.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3시45분 공식수행원과 함께 박물관에 도착,슈스로프 박물관장의 영접을 받고 방명록에 서명한 뒤 전시관을 돌아봤다. 헤르미타지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소장품 1점당 1분씩 관람하면 모두 5년이 걸릴 정도로 많은 동서양의 유물·미술품·각종 세공품 등이 소장돼 있다. 하오 5시20분 박물관 시찰을 마친 노 대통령 내외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 내외와 각각 동승하여 폴코보공항으로 향발. ▷이삭사원 관람◁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이날 상오 레닌그라드시내에 있는 러시아정교 이삭사원을 관람하고 환영나온 한인동포들을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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