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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묘역’ 전국서 2만명 참배

    - 어제 서울·광주서 기념식, 유족·시민등 6천명 참석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19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5·18묘지에서 김종필(金鍾泌)총리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와 유족,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기념식은 5월 영령에 대한 묵념과 각계 대표의 헌화,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헌시,기념사 순으로 30분 남짓 진행됐다. 5·18묘지에는 이날 하루동안 전국에서 2만여명의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져5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서울에서는 5·18 민중항쟁연합중앙회(회장 金好成)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건(高建)서울시장과 서울·경기지역의 5·18관련단체 회원,정당및 사회단체 대표 등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식을 가졌다.5·18추모식이 서울시가 후원하는 공식행사로 치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추모식이 끝난 뒤 보라매공원에서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세워진 40m높이의 대형 추모탑을 5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추모탑 제막식이 열렸다.
  • 5·18정신 인터넷 타고 세계로

    “국내외 네티즌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널리 알리고 인터넷상에서 영령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광주지역 20∼30대 직장인들로 구성된 ‘빛고을공동체’(회장 차혁렬)는 인터넷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5·18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들은 지난 97년 5월 홈페이지(www.518.org)를 개설한 뒤 지금까지 한글과 영어로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자료를 제공,‘5·18 대중화’에 큰 역할을담당하고 있다. 지금까지 9만여명의 네티즌이 이곳을 다녀갔다. 빛고을공동체가 결성된 것은 지난 94년.우연히 컴퓨터 통신으로 5·18과 광주 지역사회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다가 뜻있는 회원 13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다.회원들은 자료수집 등 2달여에 걸친 밤샘 작업 끝에 97년 3월에는 홈페이지를 완성,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 뒤 회원들은 매주 광주시 동구 수기동 ‘참여자치’에서 정기 모임을 갖고 최신 자료를 첨가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는 망월동 묘역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안내도를 실었다.온라인상에서 당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190명의 묘소를 방문,직접 헌화및 참배를 할 수 있다. 자료실 등에는 당시 불려졌던 민중가요와 ‘5·18부상자 동지회’에서 제작한 5∼20분짜리 동영상 5편도 볼 수 있다. 특히 홈페이지에는 외국인들도 5·18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영문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5·18 19주년인 올해 회원들은 ‘전남대 5·18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당시 성명서와 판결문,미국무성 관계 서류 등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으며 지난 11일 천리안과 나우누리에도 5·18 사이트를 개설했다. 초대 회장을 지낸 박인배(朴仁培·35)씨는 “컴퓨터 세대인 젊은이 상당수가 5·18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서 “5·18 알리기에 조그마한 보탬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8일 충무공 탄신 454돌 기념 다례행제

    28일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태어난지 454주년이 되는 날. 정부는 이 날 오전 10시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김종필 국무총리와 신낙균문화관광부장관 등 정부 인사와 충무공 후손,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탄신기념 다례행제를 갖는다.헌관의 분향과 헌작,축관의 축문 낭독,헌관의재배에 이어 김종필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헌화하고 분향한다. 현충사는 서지학자 이종학 독도박물관장이 발굴,기증한 함경도 초급 군관시절의 충무공 친필일기 등 충무공 관련 미공개사료 792점을 공개한다.순천향대에서는 이순신연구소가 공식 발족되고 아산시 신정호 국민관광단지에서는이순신장군 동상이 제막된다.또 충무공 생일을 맞아 29일까지 아산시 일원에서는 온양문화제가 열리는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 여야지도부 4·19국립묘지 참배행렬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19일 서울 수유동 4·19 국립묘지를 찾아 기념탑에 헌화·분향했다.여야 3당 지도부도 일제히 참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바친 희생자들의 뜻을 기렸다. 아침 일찍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을 비롯한 전수석비서관과 함께 묘지를 찾은 김대통령은 “4·19 민주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이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이 됐으며,그들의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김대통령은 분향을 마친 뒤 희생자 유가족 15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김총리도 오전에 열린 ‘제 39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4·19혁명은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불의와 부정에 맞서 궐기했던 민주시민혁명”이라며 “우리가 지금 여러가지 국가적 난제를 안고 있지만,국민적 에너지를 다시 한번 모아 나간다면 반드시 새로운 희망의 천년을 열어나갈 수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은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정균환(鄭均桓)사무총장,손세일(孫世一)총무,정동영(鄭東泳)대변인 등 당3역 및 당직자 100여명과 함께 참배했다.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도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김현욱(金顯煜)사무총장,이양희(李良熙)대변인 등 당직자 50여명을 대동하고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이상득(李相得)정책위의장,이부영(李富榮)총무 등 당직자 100여명과 함께 국립묘지를 참배한뒤 묘역을 둘러봤다.이총재는 이 자리에서 “4·19혁명 정신은 반독재와 민주주의의 구현에 있었다”면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든 국민들의 염원이 국정운영에도 제대로 반영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엘리자베스 英여왕 訪韓」3박4일 일정과 준비상황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방한은 1883년 한­영 수교이래 양국간 ‘최대 이벤트’로 꼽히고 있다.영국 최고통치권자로 처음 이뤄진 여왕의 3박4일 방한 일정 동안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외교일정 19일 도착 당일은 동작동 국립묘지 헌화를 시작으로 청와대 공식 환영식과 정상환담을 갖고 이튿날은 산업시찰과 한·영 재계회의 참석자들을 접견한다. 영국여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관행에 따라 실제 통치 능력이 없는 상징적 존재다.양국이 정상회담이 아닌 ‘정상환담’으로 공식명칭을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환담내용도 정치적인 분야는 가급적 피하고 양국간의 우호협력 증진 방안과 문화·예술 등 공동 관심사에 집중될 예정이다. 20일 청와대 국빈만찬엔 150여명의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참석한다.특히20∼30대 ‘신세대 주자’들을 만찬에 참여시키는 ‘파격’도 연출할 계획이다. 21일 저녁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KBS홀에서 ‘한영 친선음악회’를 관람한 뒤 생일파티를 겸한 리셉션을 갖는다. 서울행사 준비 엘리자베스여왕의 방문을 앞두고 있는 서울 미동초등학교·이화여대·인사동 등에서는 다채로운 행사준비가 한창 진행중이다. 19일 오후 여왕이 방문하는 서울 미동초등학교에서는 60여명의 남녀 학생들로 구성된 ‘태권도 시범단’이 매일 방과후 1시간씩 연습을 하며 여왕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학생들은 여왕 앞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태권도 시범을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뭇 고조된 분위기다. 20일 오후 여왕을 맞는 이화여대는 장상(張裳)총장을 비롯,교직원들이 여왕이 둘러볼 건물과 동상 등을 점검하는 등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특히 약학대학 학부·대학원생 30여명은 여왕에게 선보일 인삼의 생약성분 추출실험을 준비하는데 열심이다.대학 관계자는 “장애학생들과 전문직 동문들이 여왕과 함께 하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날 여왕이 둘러볼 서울 종로구 인사동도 여왕을 맞을 준비로 활기에 넘치고 있다.인사동 상인 모임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회원들을 중심으로 거리간판을 정비하고 화분을 재진열하는 등 거리청소가 활발하게 이뤄졌다.여왕이 직접 방문할 필방과 도자기점,서예점 주인들은 여왕을 만난다는 기쁨에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며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안동방문 준비 안동시는 엘리자베스여왕 맞이 준비를 끝내고 최종 점검작업을 하고 있다. 시는 여왕의 첫 방문지인 하회마을 입구에서 충효당까지 300m에 걸쳐 음식점 및 민박간판 30여개를 모두 정비했으며,지난 여름 수해때 허물어진 충효당 부근 담장 50m를 새로 단장했다.서후면 봉정사 진입도로 포장과 일주문에서 절까지 300여m 흙길을 마사토로 다지는 한편 기와가 낡아 비가 새는봉정사 대웅전의 기와 교체작업도 끝냈다. 또 농산물도매시장은 주변 청소 등 정비를 마쳤다.이와함께 예천공항에서하회마을과 농산물도매시장,봉정사 입구를 비롯한 여왕이 지나가는 도로와안동시내 곳곳에 여왕방문을 환영하는 한글과 영문으로 된 현수막 60여개를일제히 내걸었다. 당일 여왕이 받을 생일상도 안동지역 우리음식연구회가 과일 편육 육포 등47가지 전통음식으로 준비중이며,안동시의 선물로는 200년된 오리나무로 제작한 하회탈(양반탈)로 정했다.이경락(李京洛)부시장은 “가장 한국적이고자연스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뜻에 따라 여왕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국측 준비 주한대사관을 중심으로 ‘차분하면서도 내실있는 여왕맞이’가 한창이다.여왕부부의 ‘세일즈 외교’에서 ‘문화외교’까지 치밀한 일정관리를 통해 왕실외교를 뒷받침할 계획이다.한국측 의전팀과 물샐틈 없는 경호를 숙의하면서도 ‘부드러운 의전’을 원칙으로 세웠다.스테판 브라운 주한영국대사는 “우아하면서 위엄있는 영국왕실의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심을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오일만 김미경기자·안동 김상화기자 oilman@
  • 오자와 日 자유당 당수 어제 金九선생 묘 참배

    방한중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가 일황의 ‘조기 방한’을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오자와 당수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천황의 방한은 조기에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이를 위해 일본측은 한국 사람의 마음을 열수 있는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오자와의 18일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의 묘소 방문과 남산 백범 동상 헌화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일본 내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그로서 상당한 용기를 갖고 사전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해 일본을 방문,2001년 아키히토(明仁) 일황의 방한을 제의해놓은 상태다.과거사를 둘러싼 앙금을 깨끗히 청산,‘21세기동반자’관계를 구축하자는 상징적 의미다. 하지만 한국민이 일황 방한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국민들의 감정을 ‘풀어줄’ 계기가 절실하다는 판단이다.이 때문에 오자와 당수는 최근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일본인 자신이 의식을 전환시켜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며 ‘솔선수범론’을 촉구했다. 김대통령의 방일로 마련된 우호적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일황 방한으로 매듭지으려는 ‘정치인’ 오자와의 계산된 행보가 어떤 파급을 몰고올지 주목되는 이유다. 오일만기자
  • 英 엘리자베스여왕 19일 국빈방문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 내외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내외의 초청으로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4일간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한다고 박지원(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12일 공식발표했다.엘리자베스여왕의 방한은 지난 1883년 한·영 수교이래 영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이다. 두나라 정상은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엘리자베스여왕의 부군 에딘버러공이참석한 가운데 도착당일인 19일 청와대에서 양국 정상환담을 갖고 우호협력증진 방안과 문화·예술 등 공동 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엘리자베스여왕의 방한을 계기로 한·영포럼과 한·영재계회의가 열리는 등 두나라간 우호협력관계는 한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박대변인도 “엘리자베스여왕은 방한기간에 가능한 많은 지역을 방문,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많이 접할 계획이며,이는 두나라 국민의 우의와 이해를 더욱 두텁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여왕의 이번 방한은 로빈 쿡 외무장관이 수행하며 영국기자 50여명이 동행,취재한다.특히 재계회의 참석을 위해 영국기업인 30여명과 한국전 참전 영국군인 80여명을 비롯,영연방 참전군인 170여명이 함께 방한한다. 엘리자베스여왕 방한일정은 ▲19일=서울공항 도착,국립묘지 헌화,공식환영식 및 정상환담,미동초등학교방문 ▲20일=산업시찰,한·영재계회의 참석자면담,이화여대 방문,인사동 방문,국빈만찬 참석 ▲21일=안동 하회마을 등 방문(에딘버러공은 판문점 방문),국회의원 면담,콘서트 참관 ▲22일=한·영 시민에 대한 훈장 수여,영연방 참전용사면담,영국 문화원 및 성공회 방문,이한. 양승현기자
  • [독자의 소리]이름없이 사라져간 4·19희생자에 관심을

    해마다 4월이면 자유를 위해 먼저 가신 임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기념비 건립,역사기록물 전시,당시 모습 재현 등 4·19혁명의 의의를 계승·발전시키는 중요한 행사들이다.그러나 한 가지 간과되는 일이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그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민주화투쟁은 계속됐다.특히 4·19혁명은 젊은 학생들이 주도한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사건이며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조했기에 의의는 더욱 크다.개혁과 변화를 원하는 청년그룹의 사상과 힘을 담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큰 틀이 없기 때문에 불의에 항거하며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친 무명의 이들이야말로 용솟음치는 역사의 원동력이다.올해는 사라져간 넋을 위해 꽃 한송이 헌화하는 자세로 임했으면 한다. 최혜영[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 [대한광장] 부활절에 부침-광주는 과거인가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2000년 전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던 팔레스타인의 어떤 종교 창시자의 생애를 기억하는 축일만은 아니다.부활절은 기독교교리를 넘어 인류가 자신의 삶에 대해 숙고할 만한 그 무엇인가를 제공해 준다.그것은 죄 없이 순결하게 죽어간 한 영혼의 고통과 승리를 기억하는 축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순결한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적 책무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축제이기도 하다.나,죄 없는 죽음 뒤에 살아남은 나,죄 없이 죽은 자와 함께 못박히지 못했던 나,방관했던 나,순결한 자를 변호하지 못했던 나,세번씩이나 그를 모른다고 발뺌했던 나는 아무런 내적인 제의 없이 무상으로 부활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을까. 부활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수난’과 ‘참회’라는 자기정화의 긴 터널을 통과하지 않는 자는 존재의 소생이라는 열매를 입에 댈 수없다.그 열매는 사람의 입에 닿기도 전에 썩어버린다.그의 손에 피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만 십자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그는 도처에서 십자가에 달린다.우리는 죄 없는 자들을 여전히 죽음으로 몰아넣는다.예수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4·3의 동굴 속에서,광주의 광장 앞에서 십자가에 달린다.그가 십자가에 달릴 때 우리는 어디 있었던가.술집에? 도서관에? 안방에?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김대중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광주문제는 슬그머니 물 밑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발포명령자도 밝혀진 바 없고,당시 상황의 책임자들도 다시햇빛 속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그들은 전혀 아무런 공식적 참회도 한 바 없다.검은 돈을 끌어모아 한 재산 불려서 어딘가에 숨겨놓은뒤 나라를 거지꼴로 만들어 놓고도 추징금 징수에 ‘나 돈 없어’‘배째’하고 버틴다. 어디 그뿐인가.마치 자신들이 희생양인 양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고 도사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다.도대체 누가 누구를 미워하지 말자는 말인가.더 가관인 것은 과거에 어떤 짓을했건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 패거리주의자들과 함께 광주의 책임자들이 정치판으로 다시 슬금슬금 복귀할 생각마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한 판의 거창한 코미디다.규모에다 플롯까지 세계 최고 수준이다.한국은 역사적 코미디의 대국이다.‘망각’을 신경안정제처럼 복용하는 이 나라의 국민이 코미디의 단골 관객이다.광주는 이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깡그리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아이고,이제는 다 잊었소,덮어둡시다.좋은 게 좋은 거니까.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 손엔 피 안 묻혔소,어쨌든 호남 출신 대통령이 당선 됐으니까 그 걸로 됐소. 정말 그런가.망월동이 화려하게 단장되고,호남 출신 대통령이 죽은자들 앞에 헌화하며 눈물을 흘리고,호남 차별이 완화돼 호남 출신 인물들이 정계 요직에 포진하고,그런 걸로 광주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도 좋은가.광주의 신음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걸까.그러므로 이제,랄랄라,부활의 계절인가. 다시 광주에 대해 말해야 한다.꼼꼼하고 철저하게 말해야 한다.대통령 자신부터 정치적 문제에 발목 잡혀 유야무야하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자신과 소신을 가지고 다시 광주를 거론하기 바란다.얼토당토않은 비극의 책임자들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그리고 국민 각자는 그 비극의 역사적 의미를 마음 깊은 곳에서 내면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광주의 신음은 사라지지 않았다.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의 죄 없는 죽음의 의미를 내면화하지 못할 때 그의 신음이 우리 영혼을 떠나지 않는 것이나 똑 같은 이치다.그 신음을 잠재우지 못할 때 우리손은 여전히 검은 피로 물들어 있다.그 손으로 ‘부활’의 희디흰 열매를 만질 수 없다.역사라는 우리의 살이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金正蘭 시인
  • 石吾 李東寧선생 59주기 추모식

    상해임시정부 주석과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낸 石吾 李東寧선생의 ‘제59주기 추모식’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石吾 李東寧선생 기념사업회(회장 姜英勳)가 주최한 이날 추모식은 선생의약사보고와 추모사,추념사,추모노래 제창,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姜 회장은 추모사에서 “독립운동에 혼신의 힘을 다하신 선생께서 서거하신 지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우리는 남북대치 구도를 극복하지 못하고4대 강국과의 다원적 관계 속에서 국가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면서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의 과업을 완수하며 21세기 국제사회에서 모범국가로 건설·발전시키는 민족과업 성취에 선생의 가르침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식에는 선생의 손자인 李奭熙 ㈜대우 상담역을 비롯,尹慶彬 광복회장,생존 최고령 독립투사인 李康勳선생,국민회의 張在植의원,鄭大哲 전 의원,한나라당 李漢東의원,崔圭鶴 국가보훈처장,李元範 3·1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金光旭 천도교 교령,金錫源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全永祐 ywchun@
  • 石吾 李東寧선생 오늘 59주기 일대기

    “선생은 재덕(才德)이 출중하나, 일생을 자기만 못한 동지를 도와서 선두에 내세우고, 스스로는 남의 부족을 보충하고 고쳐 인도하는 일이 일생의 미덕이었다. 최후의 한순간까지 선생의 애호를 받은 사람은 오직 나 한사람이었다.”김구선생이 ‘백범일지’에서 石吾 李東寧선생을 기리며 쓴 내용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석오만큼 폭넓고 헌신적이며 종시일관 독립운동에 생애를 바친 분도 흔치 않다. 그에 비해 평가와 관심이 크게 뒤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임시정부는 석오의 애국심과 포용력으로 유지된 바 크다고 하겠다. 8·15해방까지 임정이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은 석오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후계자’백범은 석오에 의해 발탁되고 지도되었다. 두사람은 7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혈맹의 義’관계에서 항상 석오가 백범을 발탁하고 지도하는 입장이었다. 석오가 아니었다면 백범의 존재는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04년 석오는 항일청년단을 만들면서 무명청년 백범을 상동교회 청년회에 가입시켰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혈맹의 동지가 되었다.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지 며칠후 백범은 임정의 문지기라도 하겠다고 석오를 찾았고 그의 노력으로 당시 내무총장이던 안창호 밑에서 경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利)를 보면 겸양을 생각하고 의(義)를 보면 위험을 무릅쓰는” 석오의 인품을흠모해온 백범은 항상 그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해방후 백범은 아들 信을 시켜 중국땅에 외롭게 묻힌 석오의 유해를 고국으로봉환하여 서울 효창공원에 안치하였다. 석오의 생애는 국내에서 선각적 개화운동의 전기와 임정을 이끌면서 망명생활로 생애를 마친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만민공동회의 연사로 나서 잘못된정치를 탄핵하다가 이준·이승만과 함께 옥고를 치루고, ‘제국신문’논설위원, YMCA운동, 을사조약 반대 결사대로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 안창호·양기탁등과 신민회조직, 안창호·이회영과 전국에 교육단을 조직하고 ‘대한매일신보’발행 지원, 상동학교 설립 등 37세때까지 국내에서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한일합병 뒤 만주로 망명,서간도에서 이회영·이시영 등과 한국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와 신흥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한국군관학교를 세우다가투옥되는 등 만주지역의 항일투쟁을 주도하다가 3·1항쟁후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으로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석오는 망명길에 나서면서 자식들에게“우리가 이제 합병의 참변을 당하였으니 왜놈들은 우리를 금수와 같이 다룰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아버지를따라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나자. 나라없는 백성은 어디를 가나 서럽고 비참한 것이다. 만리타향 객지에서 고생할 각오를 한 몸, 그러나 내가 죽기 전에 조국이 광복되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이상의 더 큰 소망이 없겠다.”고 당부하면서 다시 못올 고국을 떠났다. 석오는 임정의 내무총장, 대통령직무대행, 국무령, 주석 등 요직을 지내고 백범과 함께 임정을 이끌었다. 1935년에는 한국국민당을 조직, 당수로 추대되어 항일 구국투쟁을 지도하였다. 1940년 3월 13일 중국 사천성 기강현 임시정부 청사의 초라한 이층방에서한 많은 생애를 접을 때그의 나이 72세였다. 임정은 간소한 국장으로 그의장례를 치렀다. 해방은 그러고도 5년 뒤에야 찾아왔고 석오의 유해는 3년 뒤에야 그리던 고국에 안장되었다. 뒤늦게나마 석오선생의 독립정신과 애국혼이 선양되어 정직한 역사가 쓰였으면 한다. 김삼웅주필kimsu@- 李東寧선생 연표 ●1869년 충남 천안서 출생●1892년 국가고시 응제진사에 합격●1897년 독립협회 활동으로 7개월간 옥고 치름●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항의,연좌데모로 2개월 옥고치름●1907년 신민회 조직에 참여●1910년 만주서 신흥학교 설립,초대소장 취임●1919년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국무총리,내무총장 ●1926년 임시정부 국무령●1929년 한국독립당 이사장·의정원 의장●1935년 임시정부 세번째 주석 취임●1939년 임시정부 네번째 주석 취임,전시내각 구성●1940년 급성폐렴으로 치장서 타계,임시정부 첫 국장(國葬)지냄●1948년 유해봉환,사회장으로 효창원에 안장 - 손자 李奭熙씨 및 후손 근황 “어릴 때부터 조부님께서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치셨다는 얘기를듣고 자랐습니다만 그동안 기업경영에 전념하느라고 손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죄스럽습니다.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조부님의 기념·현창사업에 여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의 손자인 李奭熙(67)(주)대우 상담역은 석오 선생 기념사업에 관한 포부로 말문을 열었다.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55년)후 중소기업체에 근무하다가 68년 대우실업에 입사한 그는 대우개발 사장·대우자동차 회장·대우 부회장·경총 부회장·대우증권 회장·대우통신 회장·대우일본법인 회장 등 대우그룹 주요계열사의 최고경영자를 두루 거친 ‘대우맨’이다. 그의 부친,즉 석오 선생의 아들 李義植씨(1900년생)는 유명한 내과전문의였다.일제때 보성전문학교의 교의(校醫)를 지낸 그의 부친은 미군정 당시 민주의원·한독당 조직부장 등 정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또 반민특위의 특별검찰관으로도 활동했으며 이듬해 6·25 와중에 납북됐다. 2남3녀의 형제 가운데 그는 차남이다.그의 형 喆熙씨(75년 작고)는 경기고·보성전문 출신으로 보사부장관비서관,문교부 편수국장·기획관리실장,서울교대 학장 등을 지냈다. 그동안 그는 석오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널리 알리기위해 소리없이 많은일을 해왔다.우선 그는 ‘이동녕연구’의 일어판(94년)·중국어판(98년)을사재로 출간했다.89년에는 ‘백범일지’의 필사본을 책으로 출간,앞서 출간된 ‘백범일지’가 원본의 상당부분을 누락시킨 사실도 밝혀냈다.또 작년에는 석오 선생이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초대의장(현 국회의장격)을 지낸 사실을 토대로 국회의사당 내에 석오선생의 흉상을 건립하였는데 그는 이를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정운현- '臨政 의 거인' 李東寧 석오(石吾) 李東寧(1869∼1940) 선생은 임시정부 탄생의 주역이자 임정의‘기둥’이었다.임시정부가 공식출범하기 직전인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의 초대의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국호(國號)와 임시헌법·관제(官制)를 제정,3일후인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선생은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비롯해 의정원 의장 3회,주석(主席) 4회 등 무려 일곱 차례나 임정의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이는 임시정부사를 통털어 선생만이 유일한 기록이다. 석오 선생이 임정내 이념·계파간의 갈등 속에서도 별다른 ‘잡음’없이 요직을 중임한 것은 선생이 공명정대한 업무처리와 온후한 인품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때문이다.이 때문에 선생은 임정이 내부갈등이나 일제의 탄압으로 난국을 맞을 때마다 중책을 맡아 임정을 위기에서 구하곤 했다.일제는 이러한 선생을 회유,이용하기 위해 조선인 관리 洪承均을 시켜 선생에게 추파를 던졌으나 이를 즉석에서 일축,이 일로 선생의 부친이 원산에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뤘다. 합리주의자였던 선생은 출신지역·계급을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였다.기호(畿湖)지방의 양반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던 신민회(新民會)에 황해도 출신의‘무명인사’ 백범 金九를 추천하여 가입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이 일로두 사람은 남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백범은 ‘백범일지’ 곳곳에 선생의 행적과 개인적인 친분에 대해 언급해놓고 있는데 이는 평소 백범이 선생을 독립운동계의 선배 이상으로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48년 ‘남북협상’차북한을 다녀온 백범이 아들 信을 시켜 모친(곽낙원)과 처자(최준례·김인)의 유해를 봉환해오면서 이 때 같이 봉환해온 분이 바로 석오 선생과 임정 국무위원겸 비서장 출신 車利錫 선생이었다.62년 선생은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는데 이를 두고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임정 정부수반급은 대개 1등급을 받았으며 심지어 李承晩의 비서 출신 임병직씨도 1등급을 받았다. 임정요인 출신 趙擎韓 선생은 생전에 “선생은 지위나 돈 따위를 탐내지 않는 순결무구한 분으로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으뜸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운현- 李東寧 선생 효창공원 묘소서 오늘 추모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 주석과 임시의정원 초대의장을 지낸 石吾 李東寧 선생의 ‘제59주기 추모식’이 13일 오전 11시 서울용산구 효창공원 석오선생 묘소에서 열린다. 석오선생 기념사업회(회장 姜英勳)가 주최하는 이 추모식은 추모기도와 석오선생 약사보고,추모사·추념사,추모가 제창,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된다. 행사 진행을 맡은 석오기념사업회 金錫營 부회장(69)은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을 맞아 거행하는 올해의 추모식은 감회가남다르다”고 말했다.60주기인 내년에는 추모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장학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추모식에는 崔圭鶴 국가보훈처장, 高建 서울시장,尹慶彬 광복회장,朴維徹독립기념관장,국민회의 張在植·李錫玄·鄭漢溶의원,자민련 李東馥의원,한나라당 李漢東·吳世應·徐廷和·朴明煥의원,李奭熙 석오선생 유족회장,李元範 3·1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李榮載 대종교 총전교,金信 백범선생기념사업회고문을 비롯한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상록
  • 「3·1운동-臨政수립 80돌」기념탑의 상징성

    3·1독립운동 80주년을 맞아 3·1독립정신을 기리고 국민화합과 애국심 고취를 위해 건립된 ‘3·1독립운동기념탑’은 탑 곳곳에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단 공원에 세워진 기념탑의 높이는 19.19m로 1919년 3월1일을 상징한다.탑의 맨 아래쪽 3단의 원형계단은 우주를 상징한다.탑신 기단부 정면에는 원문으로,좌·우측에는 각각 한글과 영문으로 ‘3·1독립선언서’가 오판석 위에 새겨져 있다. 탑의 근간을 이루는 세 기둥은 천·지·인과 독립운동의 핵심세력인 민족지도자·민간인·학생을 나타내며 기와집과 저고리선을 살린 곡선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기둥 위에는 3태극의 원구를 놓아 우주의 중심을 상징한다.원구 위에 놓인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4괘의 조형물은 우주를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민족웅비의 모습을 나타낸다. 탑의 뒷면에는 비폭력 투쟁으로 일제침략에 항거해 민족의 응집된 힘을 보였던 3·1독립운동 당시의 모습을 화강암 부조로 설치했다.우측으로는 민족의 수난과 비폭력 투쟁의 상,좌측에는 평화와 민족 영광의상을 세워 고난을 극복하고 영광의 미래로 도약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탑의 정면앞쪽에는 헌화대가 놓여 있어 누구나 쉽게 헌화하도록 했다.탑과 뒷면 조형물의 재료로는 흰색의 황등석 화강암을 사용해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장충동 국립극장 옆 1,500평의 부지에 착공돼 7개월만에 완공된 기념탑은 홍익대 미대 金永元 교수가설계와 조각을 맡았다.사업비는 각계의 성금 21억2천만원으로 충당했다.
  • 金 대통령 베트남 방문­金 대통령 이틀째 행보

    ◎호치민묘 내부는 참배 안해/잇단 회의서 개혁·개방 역설 【하노이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16일 베트남 방문 이틀째를 맞아 오전 하노이 시내 호치민 전국가주석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을 첫머리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레 카 퓨 베트남공산당서기장 예방,아세안 정상들과의 회동 등 숨돌릴 틈 없는 일정이었다. ▷베트남 국가주석 주최 만찬◁ 金대통령은 이날 저녁 베트남주석궁 대연회실에서 트란 둑 루옹 주석 내외가 주최한 만찬에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金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우수한 인적자원과 풍부한 자연자원을 들어 베트남을 ‘가능성과 기회의 나라’로 지칭하면서 “한국에는 지금 ‘홍강의 기적’을 꿈꾸는 베트남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소개.이어 “‘한국의 기적’을 일군 한국의 경험과 기술이 베트남의 발전에 동반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9+3 및 9+1회의 참석◁ 金대통령은 오후 하노이 시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9+3회의와 9+1회의에 잇따라 참석,동아시아지역 경제협력을 위한자신의 구상을 밝히고 참석 정상들과 친분을 다졌다. 金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위기당사국의 금융 및 기업부문에 대한 신속한 개혁추진이 급선무라고 역설했다. 9+3회의에서 일본이 200억달러 규모의 미야자와 플랜과 아세안경제회복을 위한 6,000억엔 규모의 추가지원 계획 등을,중국은 위안화 가치 유지와 내수진작책 등을 제기했다. ▷퓨 공산당서기장 면담◁ 金대통령과 베트남 최고실권자인 레 카 퓨 공산당서기장은 이날 오후 면담을 갖고 분단 경험국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양국간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관계 발전을 다짐했다. 金대통령이 한·베트남 과거사 문제에 대한 베트남의 미래지향적 자세를 ‘퓨 서기장과 베트남 국민의 결단’이라고 높이 평가하자 퓨 서기장은 “과거사 문제는 극복됐다”고 완료형을 써 종래의 “극복되고 있다”는 입장에서 더 진전된 태도를 보였다. 金대통령은 특히 베트남공산당이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들어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을 상세히 설명, 퓨 서기장의 적극적인 동감과 이해를 얻어낸 뒤 베트남이 북한의 개방·개혁 유도에 협조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퓨 서기장은 “양국 관계의 강화를 위해 집권당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해 그간 정치적으로 남북한간 철저한 등거리원칙을 지켜오던 베트남의 태도변화를 시사했다. ▷호치민묘소 참배◁ 金대통령은 오전 하노이에서 베트남 인민의 국부로 추앙받는 독립혁명가 호치민 전국가주석의 묘소를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배,헌화했다. 金대통령은 헌화 뒤 소감을 묻자 “방문국 국민들이 존경하는 분 묘소니까 방문국 요청에 따라 방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 金대통령은 이례적으로 호치민 묘소까지 승용차를 타고 와 묘소관리소장의 영접을 받은뒤 카펫을 따라 묘소입구에 헌화했으나 호치민 시신이 유리관속에 안치돼 있는 묘소 내부는 둘러보지 않고 10여분만에 참배일정을 끝냈다. 화환에는 ‘호치민 주석께 바칩니다.대한민국 대통령 金大中’이라고 베트남어로 쓴 띠가 둘러졌다.
  • 金大中 대통령 과거사 언급은 “미래지향” 메시지

    ◎“냉전의 세계사속 불행 겪었던 시기”/국군파월 우회 표현 【하노이 梁承賢 특파원】 베트남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의 정상외교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두나라 과거문제에 대한 언급과 호치민 묘소 참배이다. 베트남이 외교적으로 아무런 요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金대통령은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을 르엉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공식 거론했다. 요지는 ‘냉전이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양국이 불행을 겪었던 시기도 있었으나…’이다. 비록 우회적인 표현이나 한국군의 참전을 확인시켜주는 언급이다.金대통령은 16일 르엉 국가주석 초청 만찬에서도 “두나라 사이엔 불행했던 과거도 있었다”는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金대통령의 언급은 한때의 불행을 극복하고 이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자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이를 위해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가자는 외교적 구상이다. 베트남인들이 국부로 추앙하는 호치민 묘소의 참배 및 헌화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이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양국관계가 그만큼성숙했다는 의미이자 베트남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인식 또한 크게 달라졌음을 방증한다. 金泳三 전 대통령은 지난 96년 11월 베트남을 방문했지만 외교관계자들의 건의를 물리쳐 가면서까지 끝내 호치민 묘소를 참배하지 않았다.반미(反美)전쟁을 주도한 공산혁명가였던 호치민의 부정적 이미지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정부의 한 외교관계자는 “베트남인들은 자국에 대한 최고 예우를 호치민묘소 참배와 헌화로 보고 있다”며 “金대통령의 묘소 참배와 과거문제 언급은 곧 양국 관계발전의 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즉 정상의 확고한 의지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행보라는 것이다.
  • 베트남 국빈 방문/金 대통령 오늘 출국

    金大中 대통령은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9개국과 한·중·일간 정상회의(9+3)와 베트남 국빈방문을 위해 15일 출국한다. 金대통령은 아세안 국가와는 역내 금융위기 극복 방안,베트남지도자와는 정치·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金대통령은 이번 방문 기간동안 호치민묘소에 헌화하고 레 카 퓨 공산당서기장 예방 및 트란 둑 루옹 주석 내외 주최 만찬자리에서는 한국군의 월남전파병 등 과거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할 계획이다.아울러 16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도 정상회담을 갖는다.
  • 金대통령 호치민 묘소 참배/베트남 방문중…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

    ◎“양국관계 발전에 도움” 베트남서 요청 金大中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치민(湖志明) 묘소를 참배한다. 베트남전 당시 월맹(越盟) 당총서기로 우리의 적이었던 호치민에 대한 대통령의 참배는 구원(舊怨)을 완전히 씻고 양국 관계를 한단계 발전시킨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오는 15일 베트남을 공식방문하는 金대통령이 16일 호치민 묘소를 참배,헌화(獻花)한다고 10일 밝혔다. 이 당국자는 “베트남정부가 이를 공식 요청해왔고 우리도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96년 베트남을 방문했던 金泳三 전 대통령은 베트남측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월남전을 의식,호치민 묘소참배를 하지 않았다.
  • 유신정권에 항거하다 73년 의문사/崔鍾吉 교수 명예 되찾는다

    ◎17일 서울대 백주년기념관서 25주기 추모식/선·후배 100여명 모임 결성… 진상규명 나서 유신 정권에 항거하다 지난 73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 서울대법대 崔鍾吉 교수의 25주기를 맞아 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를 아끼는 선·후배 100여명이 ‘崔鍾吉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오는 17일 서울대 교내 근대법학교육 백주년기념관에서 추모식을 갖고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기 위한 진상규명에 앞장서기로 했다. 모임을 주도한 裵載湜 서울대 명예교수는 “침묵을 강요하던 유신독재 시절 崔교수는 불의에 항거한 참 지식인이었다”면서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지 어느덧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지난 날의 반성과 함께 과거 어둠에 가렸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崔교수는 지난 73년 10월16일 오전 8시30분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과 관련,당시 중앙정보부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다가 19일 오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崔교수가 간첩혐의를 인정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7층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밝혔지만 이듬해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전기 고문기 조작 실수에 의한 심장파열’이라고 사인을 주장하는 등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돼 왔다. 추모식은 裵교수의 개식사와 金裕盛 서울대법대학장,咸世雄 신부 등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시,분향·헌화 등이 이어진다. 서울신문은 지난 8월20일자 민주열사 열전에 ‘유신사죄 외친 참지식인’이란 제목으로 崔교수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 金 대통령 光州·全南 방문 이모저모/“민주항쟁 정신 받들겠다”

    ◎望月洞 참배때 학생 등 500여명 환호 호남지역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 내외는 고향인 목포에서 하루를 묵은뒤 26일 상오 5·18 묘역을 참배,헌화·분향한 뒤 전남도청과 광주시청에서 업무보고를 잇따라 받았다. 金대통령은 1박2일간의 호남지역 방문일정을 마치고 이날 하오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귀경했다. ○…金대통령은 許京萬 전남지사와 高在維 광주시장으로부터 업부보고를 받고 5·18을 ‘민중항쟁’으로 정의한뒤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金대통령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중심지였던 도청에 와서 대통령으로서 도정보고를 받으니 만감이 교차한다”며 ‘5·18 당시 중앙정보부에 갇혀 2개월 뒤에 광주사태를 알게된 경위’등 당시의 고초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어 “세계 각국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희생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광주는 위대하다”고 역설한 뒤 “항상 광주정신을 받들어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전남도청의 업무보고가 끝난 뒤 광주 민속박물관에 도착,이 지역 인사 300명과 함께 오찬을 함께 했다. 高광주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광주가 침체되고 낙후되긴 했지만,정권창출도시의 긍지를 갖고 대통령에게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겠다”고 전제,“스스로 선진도시를 만드는데 힘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金대통령 내외는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안내를 맡은 광주시청 宋泰柱 5·18 지원협력관에게 묘역조성 사업 현황에 대해 물었다. 金대통령내외가 묘역에 도착하자 수학여행온 학생과 시민 등 500여명이 박수와 환호로 환영했으며,金대통령은 가벼운 목례로 인사하거나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묘역에는 국민회의 朴光泰 趙洪奎 金泳鎭 李榮一 林福鎭 徐廷華 鄭東采 의원과 자민련 池大燮 의원,그리고 李基洪 5·18 기념재단이사장을 비롯한 관련단체 대표 100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金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한편 金대통령은 숙소인 신안비치호텔에서 망월동 묘역까지 헬기를 이용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무안,나주,송정리 등 육로로 이동했다. 이는 金대통령이전날 목포를 방문했을 때 경호때문에 창문이 반도 열리지 않는 승용차를 이용하는 바람에 시민들의 환호에 제대로 답례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문이 제대로 열리는 차량으로 바꿔 육로로 이동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특히 金대통령은 5·18묘역 참배를 마치고 항쟁의 중심지였던 충장로와 금남로를 지나면서 환영시민이 보일 때마다 서행하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 KAL機 괌추락 참사 1년­현지 추모행사 표정

    ◎不歸의 넋 위로… 위령제 준비 분주/오늘 유족 352명 참가 추모비 제막/사고뒤 심야노선 폐지… 관광객 격감 6일은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 추락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희생자 229명의 유족 대부분은 아직도 당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괌 현지에서는 5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유족들의 지난 1년과 보상 문제,지금까지 드러난 사고 원인과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 1주기 추모위령제가 5일 상오 괌 현지에서 열린다. 추모식에서는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비 제막식도 갖는다. 추모비는 괌 한인회가 괌 주정부의 일부 지원을 받아 모두 19만달러를 들여 건립했다. 추모비에는 희생자와 부상자 명단,추모시,추모비 제작에 기부한 괌 한인회의 기부자 명단 등이 새겨졌다. 추모식은 추모사에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교식의 종교 행사와 함께 헌화 및 분향 순서로 진행된다. 이에 앞서 4일 하오 유족 352명과 건설교통부 관계자,대한항공 직원 등 승객 396명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기가 괌 현지에 도착했다. 이들은 2박3일간의 행사를 마치고 6일 하오 서울로 돌아온다. 한편 지난해 8월6일 사고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대한항공측은 세계 70개 취약 공항을 집중 점검,이 가운데 심야에 도착하는 항공노선을 폐지했다. 괌의 아가나 공항을 비롯,중국 삼아(三亞) 공항,몽고 울란바토르 공항,튀니지 제르바 공항,마카오 공항 등 심야에 도착하는 5곳이다. 또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기준에 따라 조종사들의 야간 비행에 따른 업무 부담도 대폭 줄였다. 대한항공은 또 현재 A­300,F­100 두 기종에만 적용하던 비행분석관리시스템(AIMS)을 연말까지 B­747을 비롯한 전 기종으로 확대,안전도를 높일 계획이다. 사고 항공기처럼 기령이 20년 이상된 항공기 12대의 매각도 추진중이다. 사고 이후 괌으로 떠나는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 괌정부 관광청 한국사무소에 따르면 사고 전 한달 평균 1만5,000∼2만명에 달하던 여행객이 사고 이후 90%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괌현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됐던 50여개의 여행사도 3∼4개로 줄어든 것으로알려졌다.
  • 金九 선생 큰뜻 기리며/어제 49주기 추모제

    ◎김 대통령 묘소 참배 金大中 대통령은 26일 상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있는 金九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회장 李壽成)가 주최하는 金九 선생 49주기 추모제에 앞서 백범 묘소를 찾아 헌화·분향하고 金信 전교통 부장관등 金九 선생 유족과 백범기념사업협회 간부들을 면담했다. 참배행사에는 李壽成 기념협회 회장과 張忠植 전회장,金信 전장관,金義在 국가보훈처장 등이 참석했다. 金대통령의 참배에 이어 이날 상오 11시부터 백범 묘소에서 49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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