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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한강몽땅 여름축제 방문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한강몽땅 여름축제 방문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위원장 김태수, 중랑2)는 지난 10일, 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한강몽땅 여름축제’ 현장을 찾아 행사 주최인 한강사업본부 직원과 축제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현장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날 현장방문에서는 여의도한강공원에서 개최된 다리밑 헌책방 축제와 수상놀이터를 둘러본 후, 수상택시를 타고 반포한강공원까지 이동하여 예빛섬영화제 현장을 찾았다. 김태수 위원장은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한 한강몽땅 여름축제는 올해로 벌써 6회째로, 이제는 서울에서 가장 큰 여름축제로 거듭났다”고 전하면서, 이미 많은 시민들이 축제에 다녀갔으며, 앞으로도 한강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위원들은 축제 현장을 방문해서 “매년 몽땅축제때 많은 시민들이 찾아 오고 있지만 그만큼 엄청난 쓰레기가 배출되고 있다면서 지적하면서, 친환경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시민과 함께하는 캠페인활동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2018 한강몽땅 여름축제’는 올해로 6회째로 지난 7월 20일부터 이번달 19일까지 11개 한강수상 및 한강공원 전역에서 개최 중이며, 물놀이, 공연, 생태체험 등 총 80여 개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다리 밑 헌책방… 더위 잊은 독서열

    다리 밑 헌책방… 더위 잊은 독서열

    1일 서울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 아래에서 열린 ‘2018 한강몽땅 다리 밑 헌책방축제’에 참가한 아이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 축제는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더위에 지칠 때 해변보다 쿨한 책장 속 피서지

    더위에 지칠 때 해변보다 쿨한 책장 속 피서지

    출판계에서는 여름이 ‘소설 읽기 좋은 계절’로 꼽힙니다. 햇빛은 뜨겁고 습도는 높고 불쾌지수 역시 만만치 않으니 바깥보다는 역시 실내에서 쉬는 게 편하죠. 이럴 때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거리는 책이 아닐까요. 모름지기 후텁지근한 여름철엔 생각지 못한 상상의 세계를 유영하거나 범죄의 실마리를 푸는 재미가 있는 장르문학이 제격입니다. 국내에서 추리소설과 SF소설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 8명에게 평소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독특한 상상력과 기막힌 반전을 담은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등으로 지난해 화제를 모은 김동식(가나다순) 작가, 지난해 SF소설 ‘에셔의 손’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은 김백상 작가, 2015년 창간된 장르문학 전문잡지 ‘미스테리아’의 김용언 편집장, 다양한 장르문학을 소개하는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 미스터리 전문 웹사이트 ‘하우미스터리닷컴’(www.howmystery.com) 운영자 윤영천씨,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 다수의 단편을 공개해 많은 호평을 받은 SF계의 떠오르는 신인 이산화 작가, 2009년 문을 연 국내 유일의 SF&판타지도서관의 전홍식 관장, 출판사 동아시아의 과학문학 브랜드 ‘허블’의 조유나 팀장 등 8명이 고른 책 8권은 소재와 주제 모두 각양각색입니다. 다음 페이지를 빨리 넘겨 보고 싶을 정도로 푹 빠질 수 있는 책을 만나 새로운 쾌감을 맛보시길 기원합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영화보다 재미있게 시간 ‘순삭’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현대문학)나는 평생 읽은 책이 10권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책을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책에 대한 편견이 강했다. 보면 잠 오는 것, 똑똑한 사람들만 보는 것. 그런 나의 편견을 깨 준 책이 바로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다. 책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을 줄이야. 내 인생에서 책을, 그것도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끝까지 보는 일이 생길 줄이야. 감상은 세 개로 끝낸다. 흡입력, 인간 본성, 반전. 김동식 작가6개의 추리 6명의 범인 당신의 선택 앤서니 버클리의 ‘독 초콜릿 사건’(엘릭시르)독이 든 초콜릿을 먹고 누군가 죽는다. 모호한 사건에 고민하던 경감은 ‘범죄 연구회’에 비공식적으로 사건을 의뢰하는데…. 변호사, 극작가, 추리소설가, 소설가, 범죄 애호가 그리고 범죄 연구회 회장은 사건을 조사한 후 저마다의 추리 쇼를 펼친다. 여섯 개의 추리가 가리킨 여섯 명의 범인. 놀랍게도 작가는 이 모두를 아우른 정답을 하나 더 준비해 놓고 독자에게 묻는다. “어떤 게 마음에 들어?” 윤영천 하우미스터리닷컴 운영자지구 말고 어떤 별로 가서 살까 듀나·김보영·배명훈·장강명의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한겨레출판사)휴가철엔 이 지긋지긋한 지구를 좀 떠나 보자.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는 한국 SF작가 네 사람이 각자 태양계의 천체 하나씩을 골라 배경으로 쓴 단편 모음이다. 전부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금성에선 기업, 화성에선 정부, 토성의 위성 타이탄으로 향하는 우주선 안에선 편견, 해왕성의 위성 트리톤에선 ‘아버지’와 싸운다. 과연 SF의 매력은 미래를 무기로 한 현실과의 투쟁이다. 이산화 작가올 여름휴가 외계 우주선 타고 떠나요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아작)올여름 조금 색다른 피서를 떠나 보자. 태양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외계 우주선 내부 탐사. ‘라마’라고 명명된 이 인공구조물은 길이 50㎞에 반지름 20㎞인 원기둥 모양이다. 이미 다녀온 여행자로서 살짝 귀띔하자면 지구 표면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경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를 구축한 라마인(人)에 대해 상상하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회귀하게 된다. 한여름 더위를 잊게 만들기 충분한, 짜릿한 랑데부다. 김백상 작가고서 펼치자 튀어 나오는 기이한 세상 아시베 다쿠의 ‘기담을 파는 가게’(현대문학)나는 헌책방 ‘덕후’다. 요즘 헌책방이라고 하면 체인화되어 어떤 책이든 검색되는 대형 헌책방들을 많이 떠올릴 텐데 그런 헌책방 말고 그야말로 예전 청계천에 늘어서 있던, 도무지 무슨 책이 있는지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그런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의미의 ‘덕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헌책방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책 소개를 보면 읽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기담을 파는 가게’는 헌책방 서가에 잠들어 있던 고서를 펼쳐 본 후 갖가지 기이한 일과 맞닥뜨리게 되는 남자에 관한 소설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정상인 듯 정상 아닌 삶의 동력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북스피어)나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SF작가는 김초엽이다. 김초엽 작가가 그랬다. ‘어둠의 속도’ 참 좋다고. 인간에게 장애라 불리는 것들이 모두 치료 가능해진 근미래가 배경이다. 소설은 묻는다. ‘결핍’ 혹은 ‘비정상’이라고 정의되는 것들은 반드시 이겨 내거나 벗어나야 할 대상인가. 누군가의 ‘정상’을 모두에게 강요할 수 있는가. 여기에 이 소설의 멋짐이 있다. 고통으로 보이는 것이 어떤 이에겐 삶의 동력일 수 있으니까. 여름밤은 길어서 타자를 상상하기에 딱 좋은 시간, 그래서 이 소설을 추천한다. 조유나 허블 팀장사소함 품은 거대한 비극 서늘한 비애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저체온증’(엘릭시르)우울증에 걸렸던 여인의 자살, 몇십년 전에 실종된 젊은 대학생…. 경찰이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듯한 상황에서, 형사 에를렌뒤르는 개인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저체온증’은 이처럼 범죄로 보이지도 않았던 ‘사소한’ 사건들에서 출발해, 뜻하지 않은 거대한 비극 앞에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지극히 아름답게 탐구한다. 제목 그대로 ‘저체온증’에 걸린 것처럼 내내 서늘한 비애에 잠겨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미래 추방 형벌일까 기회일까 로버트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시공사)“겨울이 되면 피트는 여름으로 가는 문을 찾는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은 한 청년과 고양이에 관한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고 30년 뒤 미래로 추방된 주인공이 새로운 운명을 펼쳐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엮어 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좌절하지 않고 ‘주변의 도움도 함께 받아’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고,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은 남아 있다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포근하게 전해진다.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하트시그널 시즌2’ 스페셜 오영주 “이규빈과 같은 책 선물, 대본 아니냐고..”

    ‘하트시그널 시즌2’ 스페셜 오영주 “이규빈과 같은 책 선물, 대본 아니냐고..”

    ‘하트시그널 시즌2’ 스페셜 오영주와 이규빈이 대본설에 대해 해명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 스페셜 방송에서는 김현우를 제외한 전 출연진들이 출연히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오영주와 이규빈은 대본설에 대해 해명했다. 촬영 당시 부산 여행을 함께 갔던 두 사람은 헌책방에서 서로를 위해 같은 책을 골라줬다. 우연의 일치에 일부 시청자들이 대본설을 제기했던 것. 이에 대해 오영주는 “주변에서도 우연히 같은 책을 고른 것에 대해서 ‘그건 대본 아니냐’는 말을 했다. 그런데 저희도 정말 놀랐다. 얘기한 것도 없고 우연히 골랐는데 같은 책이었다. 그래서 놀랐다. 이 친구와 운명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규빈 또한 “책을 고르고 편지를 쓰는데 (오영주가 고른) 책의 표지가 잠깐 보였다. 그 표지가 내가 고른 책과는 달라서 다른 책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책인 걸 알았을 때는 소름이 끼쳤다. 뭐지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 스페셜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지금,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고 있나요?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지금,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고 있나요?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윤성근 지음/산지니/256쪽/1만 5000원힘들게 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무슨 직업이든 상관없다, 아버지처럼 힘들게 일하고 싶지는 않다, 앉아서 돈 벌고 싶다고 생각한 애늙은이 꼬마가 진짜 편하게 사는 것 같은 헌책방 주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이상한 헌책방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생기지 않았을 테니.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손님과 장기나 두고 있는 팔자 늘어진 헌책방 주인과 저자를 겹쳐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수입이 나지 않는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부지런히 글을 쓰고 강의를 나가고, 새벽 6시까지 하는 심야책방 프로그램이나 책방 구석을 활용한 공연, 독서모임을 만들고, 책방에 입점한 제본소와 함께 강의를 기획하는 성실한 활동을 보면 그렇다. 그러는 한편 오후 3시에 문을 열고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는 근무시간을 보면 그 애늙은이 꼬마는 꿈을 이루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신의 속도에 잘 맞는 삶의 리듬을 발견하고 실천하고 있으니 꿈을 이루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남들이 사는 대로 살고, 남들이 강요하는 속도로 뛰던 저자는 어느 날 ‘월든’을 읽게 되고,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책을 더 찾다가 ‘이반 일리치’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는 그런 연유와 닿아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반 일리치를 읽고 그렇게 살다’에 가깝겠다. 저자는 독서에서 얻은 깨달음을 삶으로 연결시킨다. 이후 저자의 행적은 이반 일리치의 말을 삶에 적용하고 실험하는 과정이다. “내가 헌책방에서 하고 싶은 것은 과연 그의 처방이 맞는지 확인하고 실천을 통해 검증하는 실험이다. 나는 사회운동가가 아니기 때문에 앞에 나서서 이 사회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이론을 제시하거나 설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건 내 역량 밖이다. 다만, 나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이것저것 해볼 수는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과정의 중간보고서다.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로 살아보며 삶을 다시 디자인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는 독자 개개인이 각자의 속도를 찾아내기를 권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삶을 즐긴다면 그 공동체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일 거라며. 모든 생명체들이 제각각 소란스럽지만 조화롭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풍경이 저자가 원하는 궁극의 목적지다.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셔터를 올리는 힘으로 그가 매일 하는 일이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우리 건물주는 성동구청” 공씨책방도, 윤스김밥도 다시 뿌리내립니다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우리 건물주는 성동구청” 공씨책방도, 윤스김밥도 다시 뿌리내립니다

    보증금도 없고, 권리금도 없다. 5년간 임대료 상승 걱정 없고, 원하면 10년까지 한자리에서 장사할 수 있다. 게다가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60~70%에 불과하다.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장사하는 상인들에겐 꿈 같은 얘기다. 한데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든 곳이 있다. 서울 성동구가 직접 상가를 매입해 임대하는 ‘성동안심상가’다. 구청이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점포주)인 셈이다.지난 4월 초 성수동 광나루길 서울숲IT캐슬 1층에 문을 연 이곳은 전국 최초 공공임대상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본 영세 상인에게 장기간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성동구가 야심 찬 실험에 나선 것이다. 운영 한 달째를 맞은 성동안심상가를 둘러봤다. 성과를 판단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씨앗이 막 움을 틔우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성동교 사거리 쪽에 있는 성동안심상가는 역세권과는 거리가 좀 있다. 한정된 예산에 맞춰 장소를 찾다 보니 입지 선택에 한계가 있었다. 강형구 성동구청 지속발전과장은 “역세권은 평당 7000만원을 불러 도저히 가격을 맞출 수가 없었다”면서 “두 달간 성수동 일대를 샅샅이 뒤져 서울숲IT캐슬 점포 2곳(총 130㎡, 40평)을 12억원에 매입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공사로 점포 2곳을 4곳으로 쪼갠 뒤 지난 2월 공고를 통해 입주업체를 선정했다. 스무 곳 넘는 신청 업체 가운데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정도와 업종 등을 따져 4곳을 골랐다. 오랫동안 신촌의 명소였다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헌책방 ‘공씨책방’도 그렇게 해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3일 찾아간 공씨책방은 신촌 매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다. 11평 남짓한 공간에 책과 레코드 판이 빼곡했다. 책 정리에 분주하던 장화민(62)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맞았다. 25년 넘게 서대문구 창천동을 지켜 온 공씨책방은 2016년 10월 새 건물주가 월 임대료를 13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일방 통보하고, 소송까지 내면서 1년 넘게 수난을 겪었다. 국내 헌책방 1세대로 서울시가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이지만 건물주의 횡포 앞에선 무력했다. 장 대표는 “성수동에 오래 살아서 진작에 책방을 이곳으로 옮기려고 시세를 알아봤는데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냈다”면서 “성동안심상가 공고를 보고 규모가 작더라도 맘 편히 영업하자는 생각에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곳 임대료는 월 62만원으로, 5년간 고정이다. “신촌처럼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점이 걱정이긴 하나 소문 듣고 찾아오는 단골들 덕에 기운이 난다”는 장 대표는 “공씨책방이 성수동의 새로운 문화명소가 되도록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성동구청 앞에서 분식집을 하다 이곳으로 옮겨 온 ‘윤스김밥’의 윤복순(59) 대표도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자다. 새로 바뀐 건물주가 월세 110만원을 15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했다. 이전 건물주와 계약한 5년 기한이 끝나자마자 40% 가까이 올린 것이다. 건물주에게 사정도 하고,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도 알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지난해 6월 가게를 접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중 아파트에 배부된 구청 소식지에서 성동안심상가 공모를 보고 용기를 내 지원했다. 8평 남짓한 이곳의 월세는 43만원이다. 윤 대표는 “앞으로 5년 동안 임대료 오를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면서 “이런 공공안심상가가 많이 늘어나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이 안심하고 영업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동안심상가에는 이 밖에 청년창업 협동조합과 온라인쇼핑몰 업체가 입주해 있다. 성동구는 서울숲IT캐슬을 시작으로 공공임대상가를 적극적으로 늘려 갈 계획이다. 부영그룹과 사회공헌 협약을 맺어 기부채납받은 260억원 상당의 신축 건물에 조성한 안심상가가 오는 7월 개장한다. 이곳에는 30여개 업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또한 건축물의 최고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해당 용적률만큼 안심상가로 공공 기여받는 제도를 도입해 현재까지 9곳을 추가로 확보했다. 안심상가의 상생 정신이 지역 상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주변 임대료를 낮추는 선순환 효과를 구청은 기대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공공임대상가가 성동구에 조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동구청은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뜨기 시작한 2015년부터 젠트리피케이션 폐해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전력해 왔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건물주와 임차인 간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 준수를 약속하는 상생협약 체결을 독려했다. 2016년에는 아예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 등 성수동 일대를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해 대기업 프랜차이즈 신규 진입을 제한하는 조치도 취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에겐 ‘젠트리 닥터’라는 별명이 붙었다. 건물주, 임차인, 지역활동가 등이 참여하는 ‘상호협력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지역 공동체 내부의 공감대 형성과 소통 강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성수동 일대 임대료 인상률은 2016년 하반기 18.6%에서 2017년 하반기 4.5%로 크게 줄었다. 건물주인 송규길(57) 주민협의체위원장은 “건물주라고 해서 무턱대고 임대료를 올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공생해야 지역이 안정적으로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공공임대상가는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경기도는 최장 임대기간 15년을 보장하고,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80% 이하로 정하는 내용의 공공임대상가 조례를 최근 공포했다. 국토부는 지난 3월 발표한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에 오는 2022년까지 공공임대상가 100곳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은 “공공안심상가는 더이상 내몰릴 곳 없는 영세 상인을 위한 사회안전망으로서 의미가 크다”면서 “초기 단계에선 운영·관리 주체가 뚜렷하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전문성을 갖춘 지역공동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책과 장미/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책과 장미/이순녀 논설위원

    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주도(州都) 바르셀로나에선 매년 4월 23일이 되면 거리마다 책과 장미꽃으로 넘쳐난다. 카탈루냐 수호성인인 산 조르디를 기리는 축일인 이날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선물한다.옛날 어느 왕국에서 악행을 일삼는 포악한 용에게 제물로 바쳐진 공주를 백마 탄 기사 산 조르디가 구출한 뒤 죽은 용이 흘린 피에서 자라난 장미꽃을 공주에게 바쳤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인이 장미꽃과 책으로 서로 마음을 전한다 해서 ‘카탈루냐 밸런타인데이’로도 불린다. 1995년 유네스코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4월 23일로 정한 것도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1616년)이자 ‘산 조르디의 날’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카탈루냐 관광청이 올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산 조르디의 날’ 행사를 열었다. 지난 21일, 22일 서울로 7017 장미무대와 교보문고 광화문점 등에서 책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카탈루냐 문화를 홍보하는 일석이조의 기획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책의 날에 책과 장미꽃을 나눠 주는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독서단체 관계자들이 423명의 시민에게 책과 장미꽃을 증정할 예정이다. 책의 날을 하루 앞둔 어제 광화문광장이 거대 야외 도서관과 서점으로 깜짝 변신했다. 문체부와 책의해조직위원회가 마련한 책 축제 ‘누구나 책, 어디나 책’이 23일까지 이틀간 열린다. 매년 청계광장에서 열던 행사를 올해는 광화문광장으로 옮겨 규모를 키웠다. 잔디광장에 탁자와 의자를 비치해 서재처럼 꾸민 ‘라이프러리’(라이프+도서관), 어린이들이 책 속에서 놀 수 있는 ‘북 그라운드’, 책 모양 조형물로 꾸민 ‘포토존’ 등이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한쪽에선 북콘서트와 저자와의 만남도 열렸다. 역사학자 신병주 교수가 강연하는 부스에는 자리가 부족해 선 채로 듣는 관객도 많았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고요서사’, ‘망고서림’ 등 독특한 개성으로 화제를 모은 독립책방의 부스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해는 정부가 지정한 ‘책의 해’다. 1993년 이후 25년 만에 지정됐다.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 #무슨 책 읽어?’가 공식 표어다.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을 위해 해시태그(#)를 붙인 것이 눈길을 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 대한 위기감과 절박함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 아닐까 싶어 한편으론 씁쓸하다. coral@seoul.co.kr
  • 금천, 31일 주민 참여 헌책 장터

    서울 금천구와 금천문화재단은 오는 31일 오후 1시 금천구립시흥도서관 2층 어린이자료실 테라스에서 ‘제1회 금하헌책방’을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금하헌책방은 주민이 직접 헌책을 교환 및 판매할 수 있는 책 장터다. 참여를 원하는 주민은 도서관을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지난 5일부터 선착순으로 10개 팀을 모집하고 있다. 김은진 금천구립시흥도서관장은 “이번 헌책 나눔 행사가 집에서 잠자는 책의 가치를 발견하고 독서문화를 활성화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앞으로도 지역주민에게 도서관의 가치와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서울 신촌서 밀려난 ‘공씨책방’, 성동구 안심상가에 둥지 튼다

    서울 신촌서 밀려난 ‘공씨책방’, 성동구 안심상가에 둥지 튼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밀려난 헌책방 ‘공씨책방’이 성동구 안심상가에 새로 둥지를 튼다. 성동구는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둥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가 임차인들에게 최장 10년간 영업 장소를 임대해 주는 안심상가 입주 대상 업체 10곳을 선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안심상가는 성동구가 전국 최초로 서울숲IT캐슬과 부영에서 공공 기여한 성동안심상가에 조성되며, 점포 수는 35개다. 서울숲IT캐슬 1층의 안심상가 4곳 중 3곳의 입주 대상자 접수 결과 18개 업체가 신청해 6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사회적경제조직·서점·분식점 3곳이 최종 선정됐다. 구 관계자는 “4곳 중 1곳엔 이미 한 업체가 입주해 영업을 하고 있다”며 “이번에 선정된 3곳 중에는 임대료 상승으로 22년간 영업해온 장소에서 문을 닫게 돼 주목을 받았던 공씨책방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오는 4월 문을 여는 성동안심상가는 1차 모집 결과 1~3층 15곳에 29개 업체가 신청, 카페·일식·퓨전한식 음식점·사회적경제기업 등 7곳이 선정됐다. 4~6층 사회적경제기업·소셜벤처·청년창업가 등 16곳은 공공안심상가운영위원회에서 오는 21일 서류심사, PT 발표, 질의응답을 거쳐 결정한다. 구 관계자는 “임대료 부담으로 새로운 둥지를 찾는 임차인과 청년창업가,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예상보다 많이 지원해 서류·면접 심사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며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서류심사 후 입주 신청 업체마다 일일이 현장조사도 하는 등 엄격히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구는 성동안심상가 1차 신청 업체 가운데 심사 과정에서 둥지내몰림 피해 정도가 미미한 곳을 제외해 선정되지 못한 8곳은 추가 모집한다. 1층 2곳은 오픈형 푸드몰(카페·한식·일본식 돈까스 업종 제외), 2층 4곳은 중식·양식 등 일반음식점(부대찌게·백반 업종 제외), 3층 곳은 공방·갤러리·키즈카페 등 생활 편의시설로 권장 용도가 정해져 있다. 청년창업가·소상공인·사회적경제조직·노인일자리 창출 사업자 등을 우대한다. 오는 21일까지 신청을 받고, 28일 심사·결정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안심상가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맘 놓고 영업할 수 있어 지속 가능한 상생 도시 성동구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안심상가를 확대 조성해 더 많은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이 마음 편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헌책 속 손글씨…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

    워낙 바삐 서두르다 보니 외출하면서 가방에 넣은 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와 지하철이 생각보다 일찍 연결되어서 약속 장소에 나와 시계를 보니 상대방이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그제야 내가 가방 속에 무슨 책을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책과 관련된 일을 오래 해서일까. 어딜 가든지 책 한 권을 함께 데려가지 않으면 조금 불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꺼내 맨 뒤쪽 면지를 보니 누군가 써 놓은 글씨가 일순간 눈을 사로잡는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책의 전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이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일까? 거기서 30분 동안 나는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를 어떤 사람의 얼굴을 그려 보고 있었다. 정작 책은 한 문장도 읽지 못했다.올해로 헌책방 운영도 11년째를 맞이했지만, 그리고 다른 곳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헌책방 일을 배운 것까지 더하면 11년 위에 몇 년을 더 얹어야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새 책이 아니라 헌책을 더 좋아할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된 것 중 하나는 헌책이 주는 특별한 질감이다. 여기서 질감이라고 하면 손으로 만져지는 감촉을 포함해서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나무 냄새,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런저런 흔적을 말한다. 그렇다. 전 주인이 남긴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책은 헌책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흔적’이라고 해도 좋다. 책은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 스스로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책에 있는 흔적은 모두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책을 갖고 있었던 주인의 흔적이 책에 남아 있는 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헌책을 만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책 속에 있는 흔적을 마주하다 보면 그 책의 예전 주인과 어떤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본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밑줄과 메모가 가득한 책을 보면 그 책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성실한 어떤 사람 얼굴이 금세 떠오른다. 시처럼 멋진 문장을 면지에 남긴 것을 발견했을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이를 상상하게 되고, 어떤 때는 며칠 동안 그렇게 상상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길을 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 저 사람이 바로 그이가 아닐까 하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책의 흔적에서 비롯된 이런 기분 좋은 설렘도 헌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어떤 사람은 왜 헌책을 좋아할까 그날 내 가방 속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책을 확인하니 허만하 시인의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책은 아니지만, 표지를 감싸고 있는 종이커버 재질 때문인지 벌써 테두리 쪽은 빛바랜 자국이 선명하다. 책을 볼 때 항상 서지면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이 책은 솔출판사에서 2000년에 펴낸 것으로 초판은 10월 5일에 나왔는데 내가 가진 것은 2쇄 본이고 그 날짜는 10월 16일이다. 딱히 특별한 구석은 없는 책인데 초판을 내고 불과 열흘 만에 2쇄를 찍었다는 게 솔직히 부럽다.●“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다시 책 속에 누군가 써 놓은 글씨를 살핀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이 글을 쓴 날짜는 2002년 5월 23일이다. 이 날은 목요일이고 일주일 후면 한·일 월드컵이 개막하기 때문에 거리 이곳저곳에서 벌써부터 월드컵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고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IT 회사에 출근했을 것이다. 그 외에 특별한 기억은 없다. 애써 특별함을 갖다 붙여 보자면 이날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날과 같다는 것 정도일까. 어쩌면 이 책의 주인도 나처럼 축구보다는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급히 외출을 했는데 가방 속에 책을 챙겨 넣는 걸 잊었던 것이다.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 서점에 들어가서 산문집 한 권을 사들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선 책을 펼치고 면지 아래에 글씨를 쓴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날짜도 써 둔다. 2002년 5월 23일. 이 독서가는 낙타가 십리 밖에 있는 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어디서든 책과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장의 향기를 잡아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었던, 내가 그려낸 상상 속 독서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렇듯 말 없는 헌책은 내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 해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모아 엮어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헌책방에서 일하며 느꼈던 보석 같은 즐거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남다른 애정이 깃들어 있다. 보통은 책을 쓰고 난 다음 그 책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고 다음 책을 준비하는데 이 헌책의 흔적에 관한 책만큼은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고 떠날 줄 모른다. 헌책방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끊임없이 이런 인연과 만나기 때문이리라.‘아이들의 풀잎노래’는 양정자 시인이 교사로 일하며 써낸 진정성 넘치는 시들이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한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1993년 초판인데 책 뒤표지 안쪽 면지에 누군가 긴 일기를 써놓았다. 그 내용을 읽어 보니 시집의 첫 주인은 시인과 마찬가지로 교사인 것 같다. 담당하고 있는 학급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빼곡한 손글씨 사이사이에 배어 있다. 한달음에 써내려 간 하루치 일기라곤 하지만 문장이 워낙 아름다워서 어쩌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양정자 시인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제고 시인을 만나면 시집을 내보이며 함께 이야기 나눠 보고 싶다. ●보들레르가 ‘바우델아이레’? 어떤 독자는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책 속 면지에 강렬하고 치열한 시어 곳곳에서 “Baudelaire의 냄새가 난다”라고 썼다. 나는 한동안 알파벳으로 쓴 이 작가의 이름을 “바우델아이레”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시인은 없었다. 전공자들이나 알 만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르네상스시대 작가가 아닐까? 상상력이 지나치게 발동되어 바우델아이레라는 시인의 작품을 꼭 찾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보들레르”였던 것이다. 전에는 무슨 이유 때문에 보들레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책이나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서 비롯된 오해였기에 부끄러운 심정을 오랫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 나는 반성하는 자세로 보들레르의 시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최승자 시인의 시들도 다시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 알제대학의 철학교수인 장 그르니에는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아름다운 산문 작품을 여럿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알베르 카뮈라는 작가를 발굴해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 그르니에의 책 중에서 ‘섬’은 카뮈가 쓴 서문이 들어 있어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카뮈는 ‘섬’의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나도 가슴이 벅찬 나머지 그대로 집까지 내달려서 방에 들어가 스승의 글을 읽었다고 썼다. 그것은 카뮈가 스무 살 즈음에 겪은 일이고 이 책을 읽은 후 자신도 글을 써 보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는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 무명의 독자도 카뮈와 같은 심정으로 민음사 이데아총서 시리즈로 펴낸 ‘섬’을 읽었나 보다. 그는 100년 전 카뮈가 그랬듯 “존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짧은 글을 남겼다. 이 문장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이 책을 읽게 될 또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의 선물이기도 하다. 책이 주는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헌책이라면 거기에 더해 이름 모를 또 다른 독자들과 친구가 되는 설렘을 만들어 준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 성별, 종교, 가치관, 이념, 그 무엇도 상관없다. 우리는 헌책 속에 남겨진 여러 가지 흔적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인연을 나눈 것이다. 헌책을 읽는 것은 책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 남겨진 흔적은 그 책을 가졌던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만나는 거룩한 인연의 시작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연재를 마칩니다.
  • 일제강점기 남녀 학생 일기장 전시

    대구시교육청이 오는 6월 문을 여는 대구교육박물관에 일제강점기 남녀 학생이 일본어로 쓴 일기장을 전시한다. 시교육청은 최근 오타 오사무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교수가 소장한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북여고) 여학생 일기장 140페이지를 복제해 대구교육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여학생일기’라 이름 붙은 일기장은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이 1936년 대구 양문사가 판매한 35전짜리 규격 일기장에 1937년 2월 18일부터 12월 12일까지 11개월 정도 일본어로 쓴 것이다. 일제강점기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로 평가하는 이 일기장은 2007년 서울 한 헌책방에서 오타 교수가 사들여 2010년 국내 심포지엄에서 처음 공개했다. 당시 15∼16세 정도로 보이는 일기장 주인공 K양은 황국신민화 교육으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에서 보낸 당시 학교생활을 기록했다. 일본군 병사 위령탑인 충령탑을 참배한 내용이 있는가 하면 ‘무엇을 해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일기는 모두 경어체로 쓰여 있으며 매일 담임교사에게 제출했는데 담임교사는 일기를 검열해 학생들 면학, 언동, 생활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시교육청은 밝혔다. 시교육청은 이와 함께 대구근대역사관이 소장한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 남학생 일기장도 똑같이 만들어 소개할 예정이다. 남학생 일기는 A 군이 같은 해 대학노트 5권 분량으로 쓴 것이다. K양이 쓴 일기와는 달리 일상을 장난기 있게 적은 내용이 많다고 한다. 두 학생이 일본어로 일기를 쓴 것은 당시 학교 차원에서 일본어 상용을 규정하고 강제한 결과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 일기는 일제 식민지배 정책 아래 교육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줘 원본이 아니더라도 내용만으로도 전시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인생, 설계도 그리듯 뜻대로 되는 게 아닌 걸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인생, 설계도 그리듯 뜻대로 되는 게 아닌 걸

    연말이 되면 늘 지난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책에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책을 좀더 많이 읽는 편이다. 돌이켜 보니 올해도 거의 200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는데 매년 한두 권 정도는 작품성과는 별개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는 책이 있다. 올해 내게 그런 책은 ‘모눈종이 위의 생’이라는 장편소설이다. ‘조선작’이라는 작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헌책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 이름은 성별조차 짐작하기 어려워서 이미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기억 속에서 끄집어 올리기 어려운 작가다.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사람에게 “그럼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는 아시죠?”라고 물으면 또 열에 아홉은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 영화를 본 적은 없어도 제목만큼은 널리 알려져서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다.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데, 그 작품을 쓴 작가가 바로 조선작이다.1940년 대전에서 태어난 조선작은 1960년에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교사로 일하며 신춘문예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신춘문예 심사를 자주 했던 김동리 작가가 말하길, 조선작이 글 솜씨는 뛰어났는데 작품의 소재가 건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당선작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한국전쟁을 맞았고 그때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생사도 모르고 가난에 찌들어 자란 청년이 명랑하고 건전한 소설을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71년 월간 ‘세대’ 잡지에 ‘지사총’으로 등단한 후에 펴낸 그의 작품 속엔 이렇듯 가난, 억압, 방황, 소외, 부조리 같은 암울한 느낌이 가득했다.‘모눈종이 위의 생’은 조선작이 ‘영자의 전성시대’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1970년대를 마감한 직후에 써낸 작품이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제목으로만 보자면 꽤 건전하고 긍정적인 내용인 것 같다. 하지만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다가 버스 차장으로 일하던 중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영자에게 전성시대라는 게 찾아올 수 있을까? 영자는 결국 사창가로 흘러들어 밑바닥 인생을 살게 되는데 여기서 약간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영자를 좋아하는 청년이 나무를 깎아 만들어 준 의수 덕분에 손님이 늘어 돈을 좀 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창가 골목에 화재가 나서 영자는 거기서 허망하게 죽고 이야기는 끝난다. 그의 작품이 대개 이런 식이다.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인생들은 끝까지 피로한 삶을 살다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끝나버린다. 그것이 197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정권이 바뀐 1980년대는 여러모로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1981년에 조선작은 한국일보에 소설을 연재했는데 그것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 ‘모눈종이 위의 생’이다. 소설은 내용과 설정 면에서 그전까지 써 오던 조선작의 작품과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주요 등장인물들이 밑바닥 계층이 아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안종희’는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6년 전 어떤 사건 때문에 결혼식 직전 실패를 경험한 일이 있다. 그녀와 결혼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있는 ‘한민일’은 인기 있는 소설가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안종희가 한민일의 행적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는 내용으로 흡사 추리소설과 같은 구성을 가진 특이한 작품이다. 안종희는 치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한민일의 심리상태마저 이미 손바닥 위에 놓고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 행동하는데 그 시작은 북악에 있는 ‘P호텔’에서부터다. 사실 P호텔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이혼한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던 커피숍이 있는 곳이다. 어머니는 여기서 만나주지 않는 남편을 며칠 동안이나 같은 시간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P호텔은 소설 속에서 “세검정에서 정릉으로 넘어가는 터널 입구에” 위치해 있고 5층이라는 단서로 미루어 보아 1980년대 북악터널 근방에 있던 ‘북악파크호텔’이 그 모델일 것으로 추측한다. 소설 초반에 잠깐 나오는 P호텔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장(章)의 제목이 ‘북(北)호텔’이기도 하고 주인공 자신도 호텔 근처에서 어머니를 관찰하면서 어느 시인이 쓴 같은 이름의 시집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정확한 이름을 밝히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은 1979년에 민음사에서 초판을 펴낸 김영태 시인의 시집 ‘北호텔’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북호텔’은 1938년 마르셀 카르네 감독이 연출한 프랑스 영화로 이어지며 조선작의 소설이 영화의 내용과 연계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이 영화는 외젠 다비가 1929년에 발표한 소설 ‘북호텔’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P호텔은 소설 초반에 한 번 등장했다가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운명적으로 다시 한 번 나온다. 모든 희망을 잃은 안종희가 이 호텔에 투숙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죽을 장소로 첫 장에서 어머니와 만났던 P호텔을 선택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첫 장 제목이 ‘북호텔’이기는 하지만 소설 속에서 P호텔의 정식 명칭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주인공이 수면제를 먹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어머니를 떠올리며 쓰는 유서에서 느닷없이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 이름을 ‘북호텔’이라고 쓴다는 점이다.외젠 다비의 소설 ‘북호텔’ 역시 죽음과 관계가 있다. 파리 10구 운하 근처에 있는 4층짜리 호텔은 온갖 인간 군상들이 머물다 떠나는 곳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줄거리 없이 그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기만 할 뿐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은 극적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다. 한 쌍의 연인이 동반자살을 하려는 목적으로 북호텔에 투숙한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상대에게 총을 쏘고 뒤이어 자신에게도 총을 쏘는 방법이었지만 먼저 방아쇠를 당긴 쪽이 나중에 겁이 나서 도망가버리면서 사건은 복잡해진다. 그런데 ‘모눈종이 위의 생’에서 북호텔에 투숙한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혼자다. 당연히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다. 죽기로 결심하기 전 안종희는 과거의 연인 한민일을 조사하면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치밀하게 준비했고 완벽하게 실행했다. 모든 게 완벽함을 추구하는 안종희의 뜻대로 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그런 것이 적용될 수 없었다. 이것이 안종희가 절망한 이유다. 삶의 모든 것을 자신이 계획하고 마치 건축가가 모눈종이 위에 완벽한 설계도를 그리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실상 인간의 삶이란 거대한 모순 덩어리임을 깨달았다. 나중에 가수가 된 주인공의 동생 안세호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서로 모순의 별들. 한동안 우리의 길을 잃은들 어떠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설계하며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매번 실수하고 상처도 받는다. 그것이 거름이 되어 또 조금씩 발전한다. 조선작은 신문 연재가 끝난 후 ‘모눈종이 위의 생’을 단행본으로 펴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신작사’(新作社)라는 출판사를 만들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나중에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여전히 이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작의 여러 작품을 알고 있지만 정작 조선작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손님들을 많이 만난다. 작가가 소설에서 쓴 것처럼 이것도 굳이 애써서 풀지 않아도 될 하나의 모순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쟈니 윤 쇼’라는 방송을 했다. 그때까지 내게 코미디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짓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쟈니 윤의 코미디는 전혀 다른 식이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가서 미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코미디를 했다고 하니 더욱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사사로운 자리에서 그를 직접 만난 일이 있다. 나는 그가 심형래를 능가하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난다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웃음부터 날 것 같아 긴장했다. 하지만 내 우려는 완전히 빗나갔다. 쟈니 윤은 우스운 사람이 아니었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그는 시종일관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살짝 머금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가 보일 정도로 웃는 일은 없었다. 그는 행동이 무척 신사적인 사람이었고 기대와는 달리 말하는 내내 가벼운 농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날 이전까지 내 머릿속에 있던 쟈니 윤의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졌다. 여전히 나는 그의 본 모습을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인으로서 그는 우스운 연기를 하지만, 실제 쟈니 윤은 로버트 드니로처럼 멋진 신사라고 믿는다. 그 만남이 있은 후부터 나는 쟈니 윤이 한 시대를 풍미한 명배우 찰리 채플린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됐다.찰리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소한 체격에 허름한 양복, 윗옷은 자기 치수보다 작아 꽉 끼지만 바지는 헐렁하다. 커다랗고 다 낡아빠진 구두는 발에 매달려 있는 수준이라 걸을 때면 오리처럼 뒤뚱거린다. 우스운 차림이지만 대나무 지팡이까지 있어서 신사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춘 모습이다. 채플린은 매번 똑같은 차림으로 영화에 출연했고 그가 맡은 배역은 언제나 말썽을 몰고 다니는 떠돌이 방랑자 역할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많이 웃었고, 또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채플린이 죽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렇게 전 세계를 웃겼던 사람의 삶이 실은 전혀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많은 사람의 증언을 보더라도 영화 밖의 채플린은 한없이 진지한 사람이었다. 채플린과 비슷한 시기에 무성영화에 출연한 배우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버스터 키튼은 경쟁자였던 채플린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 그가 가장 우습지 않을 때는 영화를 제작할 때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고 명석하고 면밀한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나비의 날개를 다루는 곤충 채집가의 꼼꼼함에 비견된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사람 채플린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서 정작 자신은 가장 우습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채플린은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내고야 마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배우 섭외에서부터 촬영, 연기지도, 시나리오 작성, 필름 편집은 물론 나중에는 영화에 들어갈 음악까지 독학으로 공부해 직접 작곡했다.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촬영장에 의무적으로 분장사를 고용해야 했을 때도 특유의 ‘떠돌이 찰리’ 분장은 언제나 스스로 했다. 이 놀라운 인간은 자서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썼다. 보통 유명인들의 자서전인 경우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으며 쓰는 일이 많은데 채플린은 삶의 후반기 여러 해 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서전을 직접 썼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만 해도 본문 분량이 1000쪽이 넘어가는 책이다.워낙 다채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평전이나 연구서도 꽤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 분량이 비교적 적은 책 한 권이 눈길을 끈다. 제목은 ‘나의 아버지 채플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중앙신서에서 문고본 시리즈로 펴낸 작은 책이다. 서지를 보니 1978년에 초판을 낸 이래 1981년까지 다섯 번을 더 찍었으니 나름 잘 팔린 책이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글을 쓴 사람은 찰리 채플린의 아들인 것이 분명하니 더욱 인기를 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평론가나 전문 작가보다 아들의 위치는 채플린과 더욱 가깝다. 그래서 이 책에는 좀더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 있다. 책의 저자는 찰리 채플린의 두 번째 아내인 리타 그레이의 아들인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인데 채플린은 그 자신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리타 그레이와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해 자녀를 본 직후인 1927년에 이혼했다. 아내와 함께했던 날은 만 3년뿐이었지만 자녀들과는 이후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채플린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채플린 주니어는 바로 이 책 ‘나의 아버지 채플린’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은 채플린이 ‘키드’, ‘모던 타임즈’, ‘독재자’를 만들 때 작업장에 함께 있었다. 이 때문에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연기 지도자였던 채플린을 누구보다 생생한 모습으로 책에 그려 내고 있다. 채플린은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았고 모든 걸 직접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한번 믿음을 준 사람에겐 모든 걸 맡겼다. 책 속에는 채플린의 집에서 일하던 세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집사, 운전사 그리고 요리사였는데 꼼꼼한 채플린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큰 신뢰를 얻었다. 진주만 공습의 여파로 집에 일본인을 두지 못하게 됐을 때도 채플린은 이들에게 때마다 봉급을 줬다. 재미있는 일화도 꽤 있다. 채플린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공로로 아카데미 특별상 수상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는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를 전문가 몇 명이 평가해서 상을 수여하는 것에 반감이 있던 것이다. 채플린은 평론가들의 의견보다는 더 많은 영화팬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웃어 주는 게 더 값지다며 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아카데미 특별상 트로피는 채플린의 집으로 배달됐고 그는 한동안 이 ‘물건’을 문이 닫히지 않도록 틈에 고정해 두는 도구로 사용했다. 떠돌이 방랑자 캐릭터가 워낙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여기저기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도 많이 열렸던 모양이다. 채플린은 미국의 한 동네에서 열린 닮은꼴 경연대회에 신분을 숨긴 채 본인이 직접 참가했던 일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본인이 직접 참가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에서 진짜 채플린은 3등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아들이 쓴 책에 따르면 아버지로부터 경연대회 결과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나치가 정권을 잡았던 독일에서는 채플린의 영화가 상영금지되었던 때가 있다. 히틀러와 채플린은 외모도 닮았지만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는 점 때문에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한 숱한 이야기가 양산됐다.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전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성장한 것도 같다. 나중에 채플린은 아예 히틀러와 똑같은 분장을 하고 그의 연설 장면을 흉내 낸 영화 ‘독재자’를 만들어서 크게 히트시켰다. 이처럼 아들이었기 때문에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채플린의 여러 모습이 이 작은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지만 아들이 쓴 책의 마지막 장은 채플린이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인 우나 오닐과 결혼해 스위스에 정착한 것에서 멈췄다. 이때 채플린은 방대한 자서전의 첫 부분을 쓰고 있었다. 얘기가 이렇게 끝난 것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 채플린’은 1960년 롱맨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판됐고 채플린 주니어는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떠돌이 찰리 채플린은 1974년에 자서전 ‘My Life in Pictures’를 펴냈고 197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배우가 죽었을 때 영국 신문 가디언지는 그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미모·다재다능…드라마서 활약 연예 생활 중 본명 ‘안영채’ 등단 장편 ‘우리들의 한나…’만 본명 써‘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 1970년대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 감상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만나는 손님들도 영화를 즐기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하게 나오는 화제가 ‘어느 배우를 좋아하느냐’인데 보통은 여배우 이름이 많이 나온다. 신성일, 허장강 등 훌륭한 남자 배우도 여럿이지만 그런 이름이 거론되는 경우는 열이면 한둘 정도에 불과하다. 대개는 흔히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 유지인, 장미희 등의 이름이 자주 불려 나온다. 그런데 트로이카라고 불리지 않았던 배우들 중에서 유독 사람들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이가 있다. 트로이카처럼 많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어안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다고 여겨질 만큼 이미지가 뚜렷했던 배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안옥희(安玉姬)다.배우 안옥희는 1953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특출한 외모와 함께 다양한 재능을 갖추었던 그녀는 일찌감치 예술가로 성공할 가능성을 보였다. 이미 열아홉 살 때 희곡 ‘여우와 소’를 발표했고 아동극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를 연극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1979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스무 살 때는 연극 ‘러브스토리’와 ‘검은 고양이 네로’에 출연해 이 즈음부터 연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바로 그즈음 텔레비전 신인 탤런트 모집에서 무려 2800대1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비로소 시청자들 앞에 나타났다. 영화 출연은 많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꽃신’, ‘수초의 노래’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런데 안옥희는 배우로서 재능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0대 시절부터 희곡과 아동문학을 쓰면서 기본기를 다진 그녀는 1977년 월간문학에서 동화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해에는 ‘마지막 일기’로 성인문학 부문에서도 입선을 했는데 이때 안옥희는 이미 잘 알려진 연예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문학작품을 발표할 때는 안옥희라는 이름 대신 본명인 안영채(安榮蔡)를 썼다. 문단 데뷔를 위해 작품을 보낼 때도 ‘영채’라는 이름을 써서 자신의 현재 신분을 가렸다. 많은 사람들이 안옥희라는 이름을 연기자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녀는 안영채라는 이름으로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평론가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그리고 한국희곡작가협회의 정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녀가 쓴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앞서 말했듯 안영채라는 이름이 저자로 돼 있다. 1975년에 발표한 수필 ‘귀뚜라미의 외출’을 시작으로 ‘춤추는 무리들’(1976), ‘아아, 저 눈빛이’(1988), ‘혼자 사는 여자’(1993)까지 작가로 활동할 때는 옥희가 아닌 영채였다. 그런데 안옥희라는 이름을 쓴 장편소설이 있다. 이 책은 안옥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데 유독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안옥희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이 책은 안옥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다. 출간 연도는 1979년. 그러니까 한창 배우로서 바빴던 시기에 시간을 쪼개어 장편을 써 냈던 것이다. 나도 전에는 이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데 몇 해 전 수원에 사는 어떤 분 댁에 가서 책을 매입했을 때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제목이 좀 유치해서 웃고 넘기려고 했는데 표지에 한자로 쓰인 저자 이름을 읽어 보니 안옥희인 것이다. 설마 이 옥희가 바로 그 연기자 안옥희일까? 에이 설마, 그래도 혹시? 하면서 표지와 면지를 넘겨 보니 정말로 저자는 유명한 배우 안옥희였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편집자는 우선 왜 이 소설에 ‘영채’ 대신 ‘옥희’라는 이름을 썼는지 밝히고 있다. 안옥희는 문학작품을 출판할 때 영채라는 이름을 줄곧 써 왔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이름을 쓰고자 했으나 소설을 검토해 본 결과 옥희라는 연기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 굳이 핸디캡이 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린 게 요점이다. 그러면서 편집자는 소설가 안옥희를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캐서린 맨스필드와 견줄 만하다고 소견을 말하고 있다. 물론 약간 과장을 덧붙인 비교일 수도 있지만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작품을 읽어 보니 저자는 주인공 ‘한나’를 포함한 여러 여성 캐릭터들을 특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 낸 것이 흥미로웠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당시로선 현대물인데 사회 분위기상 이처럼 여성이 주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성은 대부분 약하고 순결한 이미지이기에 가부장적인, 마초적인 남성에 종속돼 휘둘리는 역할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나는 그런 남성들에게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강인한 캐릭터다. 소설 내용을 가볍게 보자면 일단은 연애소설이다. 한나는 대학교 졸업반이지만 이미 문예잡지에 시(詩)가 추천받아 게재되면서 신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엔 한나를 좋아해서 따르는 남자 셋이 등장한다. 말이 좋아 따르는 것이지 이들은 사실 한나를 힘으로 제압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가장 어린 강동민은 20대 대학생으로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직업은 딱히 없고 순수하지만 앞뒤 안 가리는 저돌적인 성격이다. 그의 삼촌인 강이권 역시 한나를 좋아하는데 나이는 40대이고 관광사업 투자 회사를 운영 중이다. 세상의 가장 큰 가치를 자본에서 찾는 인물이다. 아는 언니로부터 소개받은 김원일이라는 사람은 30대로 서울 모 지역구의 5선 국회의원의 맏아들이다. 독일에서 유학하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서양식 예의범절을 갖추고 있어서 신사적인 면도 있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기본적으로 정치 쪽 야심이 대단하다. 주인공 한나는 이 세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는가 싶더니만 이내 기지를 발휘해서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한나가 원하는 행복은 남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남자에게 기대어 무언가를 이룰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쓸쓸함이 있다. 어머니인 송 여사는 이런 말을 한다. “행복은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내겐 작은 행복들이 없어. 그저 더듬이를 상실한 곤충 같지.” 이런 말을 남긴 후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나는 큰 결심을 세우고 안면도로 떠난다. 거기 작은 중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한나 주위를 맴도는 남자들이 그려 내지 못한 큰 그림을 시작하려 한다.당시만 하더라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안면도에서 주민들과 함께 서울과는 다른 행복하고 자연친화적인 문화공동체를 구상한 한나는 그 옛날 덴마크를 발전시킨 니콜라이 그룬트비히의 모습을 그려 보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잠시뿐 사업가 강이권과 서울에서 온 D재벌이 안면도를 장차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지역 유지들과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 편안하게(安) 쉴 곳(眠)을 찾아 안면도까지 온 한나는 힘과 자본을 앞세운 이들의 야욕 앞에서 절망하고 만다. 결국 한나는 강이권 몰래 안면도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난다. 그곳이 어디인지 소설은 알려 주지 않는다. 서울을 떠난 한나는 안면도에서 비로소 ‘우리들의 한나’가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이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거기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한나는 그 누구의 한나가 아닌 우리들 모두의 한나인 것이다. 어느 곳에서 한나는 어머니가 말했던 잃어버린 삶의 더듬이를 찾을 수 있을까. 한나가 안면도를 떠난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한나가 또다시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작가 안옥희는 1993년 10월 위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연기자로나 문학가로 한창 꽃피울 시기인 서른아홉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한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녀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곳에서 한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한나는 끝내 행복해야 한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딱 한 권뿐인’ 백석 서명 시집 7000만원에 낙찰되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딱 한 권뿐인’ 백석 서명 시집 7000만원에 낙찰되다

    야심 찬 마음으로 헌책방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며칠 전 한 집에서 매입한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책들은 종류나 순서에 상관없이 마구 뒤섞여 있기 때문에 일단은 가져온 책을 분류하는 게 먼저다. 그다음은 망가진 책이 없는지, 더러워진 책이 있다면 쉽게 닦을 수 있는 책인지 눈과 손으로 일일이 만져가면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다 김수영 시인의 짧은 글 모음인 ‘시여 침을 뱉어라’의 오래된 판본을 하나 발견했다. 민음사에서 1977년에 출판한 것이다.유명 시인의 오래된 책이긴 했지만 이 책은 초판이 아니기 때문에 판매했을 때 많은 값을 받을 수는 없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1975년에 출판된 것이 처음으로, 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68년 부산에서 있었던 문학 강연 원고의 주제를 책 제목에 사용한 것이다. 본문을 넘겨 서지 쪽을 확인한 다음 초판이 아닌 것을 알고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책 맨 앞 속지를 보고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거기에 누군가 짧은 일기로 보이는 글을 볼펜으로 써 놓았는데 단상 옆에는 큼직하게 이름이 한자로 쓰여 있었다. 그 이름을 읽어보니 바로 ‘성석제’(成石濟)였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수영 시인의 책에 바로 그 성석제가 삼일치 일기를 써놓았다. 일기 밑에는 날짜까지 있다. 1978년 8월 7일부터 삼일간의 기록이다. 성석제 작가는 1960년생이기 때문에 1978년이라면 이런 일기를 충분히 쓸 수 있는 나이다. 이건 단순히 작가가 책에 서명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조금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때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런 생각뿐이었다. “이걸 판매한다면 도대체 가격을 얼마나 붙여야 할까?” 성석제 작가가 십대 나이에 개인적으로 써둔 삼일치 일기라면, 만약 작가의 열렬한 팬에게는 이것을 소장하기 위해서라면 가격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돈을 세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진위를 가리는 것이다. 확실하다고 해도 확인은 해야 한다. 나는 그 책을 우연히 발견한 나머지 너무도 흥분해서 그게 실제로 성석제 작가가 쓴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믿어버렸다. 일주일 정도 그렇게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흥분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게 되었을 때 책 속에 일기를 남긴 주인공이 실제 성석제 작가인지 확인해 볼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허망했다. 작가는 책에 그런 글을 쓴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니 한자로 적은 이름 가운데 ‘석’자가 틀린 것이다. 성석제 작가이름은 ‘돌 석(石)’자가 아니라 ‘클 석(碩)’자를 쓴다. 이렇게 해서 책 한 권으로 큰돈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내 어리석은 행동은 반성거리만을 남겨놓고 끝나버렸다. 책의 가치는 종종 가격으로 평가된다. 김수영 시인의 ‘시여 침을 뱉어라’는 1977년 당시에 5000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아무리 헌책방이라고 해도 지금도 그 정도 가격에 판매하지는 않는다. 그때와 지금은 돈의 가치만 해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봉지라면 한 개에 50원 하던 때와 지금 화폐의 가치를 단순비교로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헌책방의 책 가격은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인 경우가 많다. 수십 년 전에 출판된 책의 가격을 정하는 기준이라는 게 딱히 없기 때문에 어떤 책은 저렴한 반면 또 어떤 책은 당시 정가의 수십 배에 이르는 가격표가 새로 붙기도 한다.책의 가격이 비싸지는 데는 의외로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출판된 지 오래 지났다고 해서 아무런 책이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조건은 절판된 것이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책을 언제든지 서점에 가서 구입할 수 있다면 비싸질 이유가 없다. 두 번째, 출판 당시 발행부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반대로 가치는 높아진다. 이것도 상식적인 이유다. 절판됐다고는 하더라도 똑같은 책이 여기저기 많이 보일 정도라면 비교적 가격이 낮아진다. 금이나 다이아몬드도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것이라면 그저 빛나는 돌덩어리에 불과한 것과 같은 이유다. 세 번째, 절판됐고 개체수도 적다면 책의 외관 상태가 좋을수록 가치가 높다. 여기까지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기본적인 책의 가치평가 기준이다.그 외에는 사정이 좀 더 복잡해진다. 길게 얘기하자면 책 한 권 분량으로도 모자랄 수 있으니 여기서는 간단히 ‘서명본’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책에 저자의 서명이 들어간 것을 서명본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종류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우선은 서명본 자체가 흔치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외수 작가 같은 경우는 워낙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작가 이벤트도 많았기 때문에 서명본도 엄청나게 많다. 물론 서명이 없는 책보다는 가치가 높겠지만 서명본치고는 가격이 높지 않다. 반대로 장정일 작가는 평소에 자신의 책에 서명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 역시 헌책방을 운영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지만, 장정일의 책에 작가 서명이 들어가 있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런 작가의 책 중에 절판된 서명본이 있다면 상당한 가격이 붙을 것이다.서명본 중에 가장 흔한 것이 작가 이름과 그것을 받은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들어 있는 경우다. 대부분은 작가 이벤트 등을 통해서 받게 된 서명일 것이다. 이런 책보다는 작가의 이름만 있는 책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보다 높은 경우는 작가 이름과 함께 또 다른 유명인의 이름이 함께 들어 있는 책이다. 서명을 받은 사람도 책의 작가만큼 잘 알려진 인사라면 일반인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보다 희귀한 쪽에 속한다. 서명본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은 작가의 이름과 함께 또 다른 유명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물론, 이 두 사람이 친분이 있어서 작가가 사적인 메모를 함께 남겨놓았을 경우다. 오래전에 백석 시인이 사비를 털어 만든 시집 ‘사슴’ 원본을 본 일이 있는데 그 책 속지에는 시인의 직접 쓴 서명과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이런 책이야말로 화폐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힘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백석 시인이 사적인 메모를 남긴 ‘사슴’은 세상에 딱 한 권뿐인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몇 년 전 일본의 고서점 거리인 진보초에 갔다가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이 직접 서명한 ‘거울 나라의 앨리스’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서점을 방문했다. 루이스 캐럴을 좋아해서 운영하는 책방 이름도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라고 지었으니 그 책을 가질 수 있다면 내겐 너무도 큰 행운이 아닌가. 그리고 드디어 그 서점에 들러서 책을 확인할 수 있었다. 1872년에 출판된 책이라 초판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보라색 펜으로 남긴 서명이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책 가격을 물으니 42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4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고가였다. 내게는 너무 큰 금액이라 그저 실물을 확인하고 귀국한 것으로 만족했지만 그 가격이 결코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비록 작은 양장본 책 한 권이었지만 그 안에는 글자뿐만 아니라 100년 이상의 시간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이고 그런 시간이야말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책의 가치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고 보통 그것은 화폐 단위라는 숫자로 표시된다. 그러나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더 큰 가치도 분명히 있다. 그 몫은 몇몇 전문가가 아니라 지금도 어느 곳에서 책을 펼쳐드는 평범한 독자들, 바로 우리들에게 돌아간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키드캅’ ‘호랑이 선생님’… 어린이들 모험 세계 무궁무진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키드캅’ ‘호랑이 선생님’… 어린이들 모험 세계 무궁무진

    ‘어린이’라고 하는 말은 17세기 문헌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단어다. 하지만 당시에 어리다는 말의 쓰임은 지금과 달라서 어리석다는 의미였다. 훈민정음을 보면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라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어린 백성의 뜻이 곧 어리석은 백성이다. 이런 쓰임이 계속 이어져 오다 1920년에 소파 방정환에 의해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부르는 말로 불리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1923년에는 ‘어린이날’을 지정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그런데 사실상 어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연령을 법으로 확실하게 지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어린이날 축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경계를 두고 재미있는 논란이 되었던 때도 있다. 문서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우리는 보통 초등학생 때까지를 어린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어린이날 선물을 주기 싫어서 그렇게 딱 잘라 정해놓은 것이라고 믿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기준으로 그 전날까지는 어린이였는데 다음날은 아니라는 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였다.●헌책방 근무 때 배우가 서명한 책 입수 나만의 기준은 따로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린이용 책이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유치하다고 느껴졌던 그때가 어린이를 졸업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친척 중에 한 분이 ‘어깨동무’라고 하는 어린이 잡지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나는 몇 가지 어린이 잡지와 월간 만화책을 얻어 볼 수 있었다. 그보다 큰 장점은 서울 어린이공원 옆에 있는 어린이회관에 자주 놀러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내게 어린이회관 안에 있던 어린이 전용 극장인 무지개극장에서 상영하는 극장표를 때때로 가져다주곤 했다. 텔레비전과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엄청나게 큰 화면으로 봤던 로봇 만화영화 몇 편들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가 더이상 그곳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어린이회관, 무지개극장, 국립과학관, 그리고 사직단 안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 발길이 뜸해지던 그 즈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직도서관을 찾아간 것이 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더이상 거기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이였던 나를 졸업하고 몇 년 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어린이 세계를 경험할 계기가 있었다. 당시 나는 교회 초등부에서 보조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행사의 하나로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게 된 것이다. 영화는 제목만 들어도 유치함이 느껴지는 ‘키드캅’(Kid-Cop)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괜한 사명감 비슷한 걸 갖고 있던 나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지만 미리 예습을 해두면 아이들과 대화할 때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서점으로 갔다. 당시엔 영화를 개봉하면 대개 그와 때를 맞춰 영상소설 같은 제목을 달고 해당 영화를 소설로 각색한 책을 팔았다. 영상매체보다 책을 더 좋아했던 나는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할 때면 늘 책을 구해서 읽어보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점엔 영상소설 ‘키드캅’을 팔고 있었다. 책을 열심히 탐독한 후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봤는데 솔직히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줄거리라고 해봐야 초등학교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조직을 만들어 백화점에 숨어든 도둑 일당과 맞서 혼내 준다는 것이 전부다. 다만, 영화 속에서 초등학생들이 시디플레이어로 인기가수의 음악을 듣는다거나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비디오리코더를 들고 다니며 재미 삼아 영상촬영을 하는 걸 보며 은근히 놀랐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 않은가. 한참 후에 알고 보니 영화 키드캅은 ‘왕의 남자’, ‘동주’ 등으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의 데뷔작이었다. 그리고 주연을 맡은 배우 중 김민정과 정태우는 여전히 여러 매체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성인 배우로 성장했다. 솔직히 키드캅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영화와 책으로 두 번이나 경험했던 키드캅이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졌을 즈음 충격적인 경험을 마주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 헌책방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을 때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책 속에서 영상소설 ‘키드캅’을 발견한 것이다. 내겐 작은 추억이 있는 책이기에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 책을 집어들어 표지를 한 장 넘겼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거기에 김민정과 정태우가 키드캅에서 연기하던 때 썼던 서명이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예전 책 주인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책에 배우들의 사인을 받았던 것이리라. 나는 당장 그 책을 구입해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드라마 내용 흉내낸 책들도 많이 출간 물론 키드캅 세대는 앞서 말했듯 나와 많이 다르다. 그땐 시디플레이어 대신 카세트와 라디오로 노래를 들었고 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컴퓨터 게임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가진 게 거의 없었지만, 우리에겐 지금 아이들이 갖지 못한 엄청난 보물이 있었다. 바로 ‘시간’이다. 나는 키드캅보다는 ‘호랑이 선생님’ 세대다. 아마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치고 몸집이 커다랗고 무섭게 생긴 호랑이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생님 역을 맡은 조경환씨가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형사 역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느낌으로 기억한다. ‘호랑이 선생님’도 키드캅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인데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없으니 수업이 끝나면 남는 게 시간이었다. 숙제를 대강 마쳐 놓으면 밖에 나가 놀기 바빴다. 호랑이 선생님의 인기는 대단해서 드라마 속 내용을 흉내 낸 책들도 많이 출간됐다. 학원이나 시험 성적에 매여 있지 않은 아이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연애에서부터 모험까지 아이들이 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 재미있는 드라마 대본을 쓴 사람이 성인만화 작가로 잘 알려진 강철수씨인 것은 당연히 그때는 알지 못했다.●만화 연재하며 주5일 ‘호랑이’ 대본 써 강철수씨는 스포츠 신문 등에 성인 취향의 연애만화를 연재하면서 한편으로 매주 다섯 번씩 호랑이 선생님 대본을 썼다니 놀라운 재능이라고 부를 만하다. 호랑이 선생님은 방송이 끝난 후 현암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다섯 권짜리 시리즈 책을 펴냈는데 현재는 절판되어 인터넷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호랑이 선생님 방송이 종료된 후에는 후속으로 ‘꾸러기’라는 어린이 드라마를 했는데 호랑이 선생님만큼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제가가 재미있어서 자주 흥얼거렸던 생각이 난다. 나에겐 꾸러기보다는 역시 ‘천사들의 합창’이 감성에 맞았다.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였는데 이것도 원작 소설이 있다. 아르헨티나 프로듀서이자 소설가 아벨 산타크루즈가 1960년대에 대본을 쓰고 방송한 게 처음이고 그것이 멕시코판으로 각색되었다. 히메나 선생님과 시릴로, 마리아 호아키나 등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방송분은 멕시코 드라마다. ●놀며 배우는 어린이… 무엇이 중요할까 내가 호랑이 선생님, 꾸러기, 천사들의 합창 같은 드라마와 책을 기억하는 이유는 거기 나오는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였던 그때,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가진 것은 없었지만 한없이 넘쳐났던 시간의 소중함을 지금 아이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마냥 장난치고 놀았을 뿐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는 학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수많은 삶의 비밀들을 깨우칠 수 있었다. 지금은 오래된 책으로 남은 그 이야기를 다시 어루만지면서 어린이에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비평 제약받던 1980년대, 사회 변혁 싹 틔운 무크지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비평 제약받던 1980년대, 사회 변혁 싹 틔운 무크지

    1966년, 1970년에 각각 창간한 두 계간지 ‘창작과비평’(창비), ‘문학과지성’(문지)이 1980년에 동시에 폐간됐다. 모든 언론 보도와 간행물을 국가가 직접 검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유, 정의,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지식인들의 손과 발을 영원히 묶어 둘 수는 없었다.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법의 테두리를 피해 동인지와 무크지를 만들어 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순수 문학 잡지마저 출판에 제한을 받게 되자 새로운 형식을 가진 매체가 절실해졌다. 무크(Mook)는 매거진(magazine)과 북(book)의 합성어로 1970년대 초 미국 출판계에서 처음 등장했다. 잡지처럼 시리즈로 출간하지만 발행에 일정한 간격이 정해진 것은 아니며 내용 구성은 단행본처럼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부커진(bookazine), 매거북(magabook)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현재는 부정기 간행물로 순화해 사용한다.가수로 예를 들자면 저 유명한 ‘나훈아-남진’처럼 탄탄한 독자층이 있었던 창비와 문지가 동시에 폐간되면서 우선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없어졌다는 큰 문제에 부딪혔다. 이에 사회가 통제되던 또 다른 시기인 일제강점기 시절 생겨났던 동인지 운동에 다시 힘이 실렸다. 창비는 잡지가 폐간된 이듬해인 1981년 신예 작가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지면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로 신작 시집 시리즈를 해마다 한 권씩 펴냈다. 첫해에 내놓은 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에는 신경림 시인의 장시(長詩) ‘남한강’을 시작으로 시인 열세 명의 작품을 실었다. 이것이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자 다음해에는 참여 시인을 스물한 명으로 늘린 ‘꺼지지 않는 횃불로’를 펴냈다. 1982년에 나온 두 번째 신작 시집 시리즈에는 훗날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명이 붙게 될 김용택의 섬진강 연작시 네 편이 실렸다.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였던 김용택씨가 시인으로 이름을 알린 첫 책이다.문지는 1982년부터 매년 한 권씩 ‘우리 세대의 문학’이라는 무크지를 발행했다. 이를 발판 삼아 1988년 봄에는 ‘문학과사회’ 창간호를 선보였다. 잡지 앞쪽에는 “사회 변화와 문학적 인식”이라는 제목으로 성민엽, 홍정선, 임우기, 정과리 등이 쓴 글을 실었다. 폐간됐던 잡지의 핵심 인물이었던 평론가 김현의 문학비평이 한쪽 지면을 차지했고 고은, 오규원, 이성복 등의 시가 실렸다. 소설은 이청준, 이인성, 김성동의 작품이 들어 있다. 또한 이렇게 구성된 계간지 문학과사회 창간호에서 특별한 점은 1980년대 줄곧 이어 오던 무크운동의 의미를 평가한 글이 기획서평이라는 이름으로 꽤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폐간됐던 잡지들이 하나둘 다시 돌아오는 시점에서 지난 10년간 각지에서 벌여 온 무크운동을 한기, 허석렬, 송기호 등이 글로 정리했다.1980년대에는 실로 다양한 무크들이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는데 어쨌든 그 운명 자체가 부정기 간행물이었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만들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마음에 다지고 있었을 것이다. 책을 살펴보면 어떤 것이든 그런 다짐과 용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83년 9월에 제1권을 펴낸 청사출판사의 무크 ‘민중’은 “시대적 이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부정기 사회비평지”라는 특징을 표지 제목 아래에 크게 새겼다. 책의 첫 시작은 고은 시인의 서시 ‘별’로 장식했다. 시에는 “제3세계 젊은이들에게”라는 부제를 달았다. 특집 기사로 “칠십 년대, 그 모순의 극복을 위하여”라는 주제 아래 1970년대의 사회변혁운동의 여러 모습을 정리했다. 2010년에 작고한 리영희 선생은 30여 쪽에 걸쳐 “한반도는 초강국들의 ‘핵볼모’가 되려는가”라는 제목으로 국제 정세를 분석한 글을 실었다. 소련이 해체된 오늘날 상황이 약간 달라지기는 했어도 한반도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핵무기를 둘러싼 각 국가의 신경전을 이미 1980년대에 예리한 시각으로 내다보고 있으니 그 현안이 놀랍다.팔십 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출판에 대한 법의 규제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폐간된 잡지와 똑같은 이름으로 1985년에 무크를 발행했던 창비는 허가 없이 잡지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폐쇄 조치까지 받았으나 1988년에는 다시 이름을 찾아 복간호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규제가 완화돼 발행되는 잡지의 내용과 성격도 비교적 다양해졌다. 1986년 풀빛출판사에서 창간호를 펴낸 ‘겨레와 어린이’는 “어린이의 참삶을 위한 부정기 간행물”이라는 특징을 내세웠다. 창간 특집 기사로 “오늘의 현실과 어린이 문학”이라는 주제를 잡았는데 첫 글은 이오덕 선생이 문을 열었다. 1960년대 김현, 김승옥, 김치수와 함께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던 최하림 시인은 “톨스토이 민화에 나타난 교육사상 고찰”을 기고했다. 그 외에 동화작가 권정생의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서정오의 “할아버지의 보물” 등 동화도 함께 실렸다. 풀빛출판사는 지금까지도 어린이 책 쪽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여성운동 또한 계속해서 힘을 받으며 목소리를 키워 나갔다. 한국 여성문학연구회는 1989년에 ‘여성과 문학’ 제1집을 창간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여성 관련 문학작품과 논문들을 정리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팔십 년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여성 비평가의 눈으로 해석한 글을 특집으로 마련했고 김보희, 박희진 교수는 버지니아 울프 문학을 여성학적으로 재조명했다. 연구회 회원이기도 했던 유안진, 강은교, 신달자, 오정희 등의 시와 소설이 그 뒤를 이었다. 채숙희 교수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유명했던 ‘계약결혼’에 대한 논평을 썼다. 이 외에도 1980년대에는 실로 많은 무크들이 존재했지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모두 실패한 실험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어야 한다. 실패와 성공이라는 결과론을 떠나서 다양한 시도들이 공정하게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부를 만하다. 격동의 한 시기를 마감하고 뒤를 이어 다가온 1990년대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문민정부의 시대였고 문화와 경제가 크게 발전했던 때이기도 하다. 나는 이 당시에 창간했던 두 잡지를 무척 아낀다. 하나는 1991년 겨울 초입에 첫 호를 선보인 ‘녹색평론’이다. 멈출 줄 모르는 산업화의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에 환경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시한 용감한 잡지다. 또 다른 잡지는 1994년 겨울에 창간한 ‘리뷰’(REVIEW)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문화대통령’ 서태지를 표지 모델로 쓴 문화비평 잡지다. 지금도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헌이 서태지를 인터뷰했고 박상우, 한강, 김소진의 소설을 함께 실었다. 비록 지금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 잡지지만 이 역시 돌아보면 대중문화비평이라는 넓은 밭에 뿌려진 귀중한 씨앗이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크고 작은 잡지들이 있다. 이들에게 성공과 실패의 잣대는 의미가 없다. 모두가 하나의 씨앗이기에 저마다 소중하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박물관] 인터넷 없던 시절 음악잡지… 문화의 과거~ 미래 담긴 보물창고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박물관] 인터넷 없던 시절 음악잡지… 문화의 과거~ 미래 담긴 보물창고

    세탁소 옆에 딸린 작은 방 책상 앞에서 한 고등학생이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다. 어딘가에 보내기 위해 엽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LP와 라디오를 통해 록음악에 심취해 있던 이 소년은 드디어 자신이 직접 록밴드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고 같은 또래를 대상으로 멤버 모집 광고를 내려는 중이다. 내용은 길지 않다. 몇 번이나 고쳐 쓴 후에 다음과 같이 최종 원고를 만들어 똑바른 글씨로 엽서에 적고 있다. “멤버를 모집합니다. 헤비메탈의 진정한 세계를 모험하실 분 중 키보드, 드럼, 기타, 베이스를 다룰 줄 아시는 분은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 사진을 동봉해 주시고 고 2의 남학생이어야 합니다.” 발신지 주소는 경기도 파주군 문산읍. 엽서 마지막엔 이름을 썼다. “윤도현.” 광고를 낸 사람은 바로 훗날 YB밴드의 리더가 되는 윤도현이었다. 광고는 월간잡지 ‘음악세계’ 1988년 10월호에 다른 독자들의 광고 여럿과 함께 ‘애독자 응접실’ 코너에 짤막하게 실렸다.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중문화 잡지만큼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매체는 드물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세상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지만 그런 게 없던 때라면 신문이나 잡지 등 활자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상당히 크다. 앞서 말한 윤도현의 경우처럼 같은 잡지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사도 비슷할 것이기 때문에 펜팔 상대를 구한다거나 구인광고 등을 실어서 자연스레 독자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집중해 살펴볼 잡지 ‘음악세계’가 발행되던 1980년대는 ‘한강의 기적’과 ‘서울올림픽’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이미지가 사회를 지배하던 때다.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가가 빠르게 산업화했고, 그 뒤를 이어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문턱에 가깝게 다가섰다는 인상을 드러내는 데 국가 역량이 집중됐다. 한쪽에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다른 편에선 세계화, 국제화라는 이름을 앞에 두고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그 정점에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있었다. 윤도현이 밴드 멤버 모집 광고를 냈던 잡지 음악세계 1988년 10월호도 시류에 편승해 올림픽 특집으로 꾸며졌다. ●코리아나 2년마다 비자 갱신 국적 유지 지금처럼 다양한 대중문화 향유 매체가 없던 그때 음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보물 창고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많은 음악 정보를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은근히 서열이 나눠지곤 했다. 요즘이야 알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볼 수 있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이라는 것은 물론이고 휴대전화조차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라디오나 음악잡지가 전부였다. 그해 강변가요제에서는 여러 모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상을 받은 참가자가 이상은이었는데 이 사람은 생긴 것에서부터 말투,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모두 특이했다. 게다가 부른 노래 제목은 ‘담다디’다. 신나는 멜로디에 재미있는 율동은 축제 분위기에 더없이 좋은 노래였다. 나 역시 강변가요제를 보면서 담다디가 울려 퍼질 때 ‘이 노래는 두고 볼 것도 없이 대상이다’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이상은의 인기를 예감했다.누구나 예상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음악세계 올림픽 특집호 표지는 무섭게 떠오른 신인 가수 이상은이 장식했다. 이상은을 인터뷰한 기사도 길게 실렸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여름에 끝난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 이후 불과 몇 개월 만에 쇼프로그램 출연, 영화 출연 섭외, TV광고 모델 발탁 등 숨쉴 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중에 “이럴 바엔 한두 달 정도 숨어 버리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데 실제로 이로부터 2년 후 이상은은 갑자기 연예계 생활을 접고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이상은과 함께 잡지에서 가장 크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역시 서울올림픽인데, 음악잡지답게 메인 기사는 역시 올림픽 공식 가요 ‘손에 손잡고’를 부른 그룹 ‘코리아나’의 밀착 동행 인터뷰다. 기자가 개막식 때 공연을 위해 입국한 코리아나 멤버를 며칠 동안 따라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뷰한 것으로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인 지면이다. 코리아나 구성원 넷은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룹 결성은 1970년대 한국에서 했지만 곧바로 해외로 나가 활동했기 때문에 이런 가수가 갑자기 나타나서 올림픽 공식 가요를 부른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런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하여금 올림픽의 공식 가요를 부르게 한다는 기획은 성공적이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코리아나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활동의 한 목표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20년 동안 외국에서 활동하면서도 2~3년에 한 번씩 취업비자를 갱신하는 방법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부상당한 조용필 통원 치료 소식도 실려 1990년대 들어 댄스음악 열풍이 불고 아이돌 문화가 생겨나기 전까지 팔십 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가요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음악세계 잡지 기사를 살펴보면 ‘돌아이 시리즈’에 출연해 영화배우로도 크게 성공한 가수 전영록의 근황을 다룬 페이지가 있는가 하면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이문세를 찾아가 신작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기사도 있다. 듀엣 ‘도시의 아이들’은 입산수도 훈련을 하고 있다는 재미있는 기사가 연출된 사진과 함께 실렸고 영원한 가왕(歌王) 조용필은 부상을 당해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역시 연출된 듯 조금은 어색한 사진에 대해져 잡지 한 부분을 차지했다.발라드나 댄스곡을 부르는 가수 이야기만 실린 것이 아니다. 잡지 후반부에는 국내외 록그룹들에 대한 정보도 정리해 기사로 만들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해체된 ‘부활’의 멤버들에 관한 것이다. 우선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1년 동안 준비한 끝에 5인조 그룹 ‘게임’을 만들었다. 부활의 다른 멤버인 서영진과 김성태는 재미교포 뮤지션 세 명을 영입해 ‘라디오’를 결성했다. 한편 부활에서 보컬을 맡았던 이승철은 기타리스트 손무현을 영입한 뒤 부활의 베이스 주자 정준교, 대학의 가스펠 메탈그룹에서 드럼을 연주한 조현우와 함께 ‘걸프렌드’라는 새로운 밴드를 선보였다. 개성시대라는 현재 아이돌 가수가 대세인 방송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팔십 년대 우리나라 가요계의 모습이 훨씬 개성 넘치는 모습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살펴본 음악잡지 한 권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됐다. 세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서울올림픽 이야기를 시작으로, 더이상 가수가 출연할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다운 방송이 없다며 앞으로 TV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전영록, 더 나중 일이 되겠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작곡가 이영훈의 재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문세,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이 돼야 존재감을 나타내게 될 윤도현의 고등학생 시절 모습까지 보았다. 어쩌면 지금의 그를 만든 첫 시작은 이 짧은 멤버 모집 광고 한 조각을 썼던 작은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자면 오래된 잡지 한 권은 그저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은 흥밋거리 책이 아니라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흥미로운 보물 창고인 셈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혼자 또는 함께… ‘벽화마을’ 따라 걸어볼까

    혼자 또는 함께… ‘벽화마을’ 따라 걸어볼까

    가을. 걷기 좋은 계절이다. 한국관광공사가 10월에 걷기 좋은 길 9곳을 선정했다. 주제는 벽화따라 걷는 길이다. 한가위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걸어도 좋고, 친구끼리, 혹은 혼자서 차분하게 걸어도 좋겠다.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koreatrail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인천둘레길 11코스(인천 중구)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그럴수록 우리는 연탄이나 산동네 등 희미해져가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인천둘레길 11코스는 ‘연탄길’이라 불린다. 이름만으로도 연탄이 가득 쌓인 골목길을 누비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연탄길’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아직 붙잡고 있다.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미로 같은 산동네 풍경이 아직도 남아있다. 코스는 도원역을 출발해 우각로문화마을~인천세무서~금창동주민센터~창영초등학교~배다리 헌책방거리~송현근린공원~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동인천역 순으로 돈다. 거리는 5.2㎞ 정도다.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032)433-2122. 2. 묵호 논골담길 1~3길 (강릉 동해시)묵호항에서 언덕 위 등대까지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는 묵호등대마을은 전형적인 달동네다. 비록 집은 비좁지만 바다를 마당으로 삼은 덕에 조망이 시원하다. 마을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는 강렬한 리얼리티가 담겨 있다. 지역 화가들이 머구리, 어부 등 실제 주민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따라 이어진 논골담1길~2길~3길~묵호등대 순으로 이어서 걸으면 좋다. 거리는 1㎞ 정도다. 동해시 문화관광과 (033)530-2232. 3. 바우길 5코스 바다 호숫길 (강원 강릉시)강릉 바우길 5구간 바다호숫길은 경포호와 4㎞에 걸쳐 이어지는 해송숲길의 청신함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에 커피향 그윽한 안목해변과 금강소나무 숲길이 함께 어우러진다. 최근 조성된 안목항 ‘버스 타는 그림골목’도 이 코스에 있다. 5코스의 북쪽 끝인 사천진항은 강릉 물회의 진원지이다. 식도락가들에게도 권할만하다. 사천해변공원을 출발해 경포인공폭포~경포대~허난설헌기념관~강문해변~송정해변쉼터~강릉항(죽도봉)~솔바람다리~남항진 순으로 돌아본다. 거리는 16㎞. 강릉시 관광과 (033)640-5126. 4. 마비정 누리길 1~3코스(대구 달성군)마비정누리길은 마비정벽화마을을 기점으로 삼필봉, 가창 정대리, 화원자연휴양림을 각각 종점으로 하는 3개의 코스로 나뉜다. 말(馬)과 관련된 아련한 전설이 있는 마비정누리길의 중심은 마비정벽화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1960~70년대의 농촌의 풍경과 시대분위기를 토담과 벽담을 활용해 표현했다. 마을 안쪽의 사랑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1코스(마비정벽화마을~삼필봉)는 1.5㎞, 2코스(마비정벽화마을~가창 정대리) 5.5㎞, 3코스(마비정벽화마을 ~ 화원자연휴양림) 1.4㎞다. 달성군청 관광과 (053)668-3913. 5. 대구 골목투어 4코스 삼덕 봉산 문화길(대구 중구)골목투어는 대구의 원도심이라 불리는 중구의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골목길이다. 동네와 동네를 실핏줄처럼 이어주는 골목에서는 잊혀진 대구 역사,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그 가운데 4코스 삼덕 봉산 문화길은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길이다. 요즘 한창 뉴스의 중심에 있는 김광석길 등을 두루 둘러볼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출발해 삼덕동문화거리~김광석길~봉산문화거리~대구향교~건들바위 순이다. 거리는 약 5㎞. 대구 중구 관광개발과 (053)661-2624. 6. 느린꼬부랑길 1코스 옛이야기길(충남 예산군)느린꼬부랑길은 슬로시티로 지정된 대흥마을 곳곳을 누비는 길이다. 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이 마을에서 유래했다. 느린꼬부랑길 1코스 옛이야기길은 의좋은 형제 공원에서 시작해 되돌아오는 코스다. 소소한 시골마을 풍경과 봉수산 중턱에 자리한 봉수산자연휴양림에서 바라보는 예당저수지 풍경, 동헌 앞에 자리한 의좋은 형제 이야기 등 슬로시티 대흥의 다양함을 만나게 된다. 예당저수지의 물결처럼 한적한 마을에는 벽화가 소박하게 그려져 있어 옛 풍경을 더해준다. 코스는 방문자센터~관록재들~봉수산자연휴양림~애기폭포~대흥동헌~방문자센터다. 거리는 5.1㎞. 대흥슬로시티 방문자센터 (041)331-3727. 7.도란도란 시나브로길 1코스(전북 전주시) 도란도란 시나브로길은 전주 한옥마을 남쪽에 있는 전주한벽문화관을 출발해 남고산성 너머 원당마을로 내려섰다가 전주천 둑길을 따라 다시 한옥마을(전주향교)로 돌아오는 원점회귀형 걷기길이다. 골목마다 재미있는 벽화들이 숨어 있는 옥류마을, 자만마을 등이 이 길의 절정이다. 특히 자만벽화마을은 글로벌한 스토리들이 벽화로 그려져 골목마다 명화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5년 전 어떤 화가가 남은 페인트를 재활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40호 이상의 집 담벼락과 대문이 갤러리로 변했다. 코스는 한옥마을(전통문화관)~남천교~산성벽화마을~관성묘~분기점~천경대~만경대~억경대~분기점~원당마을~전주천~천주교성지~전주자연생태박물관~한벽당~자만마을~오목대~향교다. 거리는 12㎞다. 전주 문화관광 콜센터 (063)222-1000. 8. 양림동 둘레길(광주 남구)광주 양림동 둘레길은 경주 ‘황리단길’과 함께 요즘 뜨고 있는 도심 골목이다. 근대역사문화마을로도 유명한 양림동은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벽화로 수를 놓았다. 심지어 PC방 벽에도 근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19세기 초 이곳에 자리 잡은 미국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으며,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그 중 백미다. 또 구한말에 지어진 고래등같은 한옥과 소박한 민가, 모던한 문화 공간이 걷기 여행자를 유혹한다. 코스는 양림동 커뮤니티 센터~광주 정공엄지려와 충견상~이장우 가옥~최승효 가옥~뒹굴동굴~양림파출소~양파정~통기타거리~사직공원산책로~충현원~다형 김현승 시비~선교사묘원~우일선 선교사 사택~피터슨 선교사 사택~호랑가시나무~커티스 메모리얼홀~3.1만세운동 기념동상~수피아홀~윈스브로우홀~푸른길~정율성 거리~정율성 생가~3.1만세운동 발상지~오웬 기념각~어비슨 기념관이다. 거리는 4.5㎞. 광주 남구청 문화관광과 (062)607-2331. 9. 우수영 강강술래길(전남 해남군)우수영강강술래길은 임진왜란 당시 해전사에 영원히 남을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과 조선 수군의 본영이었던 전라우수영을 잇는 길이다. 걸음마다 충무공과 조선 수군 그리고 민초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우수영마을은 골목마다 벽화, 조형작품, 작은 갤러리 등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코스는 울돌목물살체험장~울돌목해안데크~전라우수영~강강수월래전수관~우수영유스호스텔~청룡산쉼터정자~충무사연리지~충무사~우수영해안데크~우수영항~법정스님생가~방죽샘~명량대첩비~우수영5일장~망해루다. 거리는 7.3㎞. 해남군 관광안내 (061)532-1330.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옛사랑 추억 길 걷는 듯… 도시랑 ‘심쿵 로맨스’

    옛사랑 추억 길 걷는 듯… 도시랑 ‘심쿵 로맨스’

    긴 한가위 연휴 기간에 특색 있는 여행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관광공사가 예술의 옷으로 갈아입은 도시 재생 명소들을 10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서울 성수동의 수제화 거리 등 도시 재생 프로그램이 잘 정착한 10곳을 소개한다.●다시, 예술로 피다-서울 문래창작촌과 성수동 수제화거리 문래동은 한때 서울에서 가장 큰 철강 공단 지대였다. 지금도 철공소 1000여곳이 영업 중인 문래동은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면서 ‘문래창작촌’이란 이름을 얻었다. 100여개 작업실이 들어섰고, 문래예술공장 등 거리 곳곳에 들어선 갤러리와 극장에서는 1년 내내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열린다.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업계 종사자들이 앞장서 조성했다. 구두 테마 갤러리 ‘슈스팟 성수’와 수제화 공동 판매장 ‘from SS’, 서울숲의 ‘나비정원’ 등 쇼핑과 체험 공간이 즐비하다. 문래예술공장 (02)2676-4300, 성동구청 문화체육과 (02)2286-5193.●동화 속으로 떠나는 환상 여행-인천 송월동 인천 중구는 개항장 인천의 역사를 품고 있다. 그중 하나가 송월동이다. 조금씩 쇠락하던 송월동은 2013년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통해 동화마을로 완벽하게 재탄생했다.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조성한 동화마을길을 비롯해 도로시길, 빨간모자길, 전래동화길 등 11개 테마 길이 조성됐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짜장면을 선보인 차이나타운과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였던 인천아트플랫폼, 개항 당시 인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개항장거리 등도 인천 중구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중구청 관광진흥실 (032)760-6492.●문화와 예술의 옷 입은 오래된 동네-강릉 명주동 강릉 명주동은 고려시대부터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자리했던 행정중심지다. 강릉시청 이전으로 역할을 잃어가던 명주동은 강릉문화재단이 명주예술마당, 햇살박물관, 명주사랑채 등 문화 공간을 운영하면서 변모했다. 지금은 강릉커피축제, 명주플리마켓, 각종 공연 등으로 활기가 넘친다. 명주동 여정은 골목길을 따라 강릉대도호부 관아, 등록문화재인 임당동성당 등을 둘러본다. 왁자한 중앙·성남시장에서 점심과 주전부리를 즐기고, 안목해변에서 향긋한 커피로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 강릉문화재단 (033)647-6800.●젊어진다, 유쾌해진다-충주 성내동 성내동과 성서동 등 충주 원도심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월 개관한 관아골 청년몰 ‘청춘대로’가 신호탄이다. 개성을 살린 20여 점포가 입점했다. 충주 원도심에서 청년가게를 열려는 이들은 청년 창업 플랫폼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관아공원 앞 성내동우체국 부지에 오는 10월 말쯤 창업 플랫폼이 개관하면 게스트하우스, 카페, 로컬여행지원센터, 문화예술오픈공작소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충주 원도심에서 전통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무학시장, 자유시장, 풍물시장 등 여러 시장이 모여 있어 구경거리가 많다. 충주시청 관광과 (043)850-6720~4.●도시가 품은 시대를 산책하다-대전 대흥동과 소제동 근대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전역 서쪽에 대흥동, 동쪽에 소제동이 있어 연계해 둘러보기 좋다. 대흥동에는 리노베이션한 카페나 오래된 맛집이 많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변신한 옛 충남도청 본관 등 등록문화재도 밀집돼 있다. 소제동에는 1920~30년대 지은 철도관사촌이 있다. 전란과 개발을 용케 피한 관사 40여채가 모여 있다. 한자리에서 60년 세월을 보낸 ‘대창이용원’ 등 흔히 볼 수 없는 풍경들도 만난다. 소제창작촌 등 창작 공간을 기웃대거나 소제호 방죽길을 걸어도 좋겠다. 대전시청 관광진흥과 (042)270-3972.●옛 쌀 창고의 변신-서천 문화예술창작공간 1930년대 건립된 옛 장항미곡창고(등록문화재 591호)를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전시와 공연, 체험 등의 공간과 카페를 갖췄다. 창작공간 뒤로는 ‘장항 6080 음식 골목길’과 기벌포영화관 등이 있다. 추석 연휴에도 문을 연다. 판교면 현암리는 낡고 허름한 풍경이 매력적인 시골 마을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독특한 분위기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이끈다. 판교오일장이 열리는 날 찾아가면 볼거리가 더 풍성하다. 국립생태원과 신성리 갈대밭,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 등을 엮어 하루 코스로 돌아볼 만하다.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041)950-4226.●역전의 전성기를 소환하다-영주 후생시장 경북 영주의 후생시장은 1955년쯤 옛 영주역 인근에 형성됐다. 적산가옥을 본뜬 길이 100m의 상가 형태가 다른 지역과 뚜렷이 구별된다. 영주역이 이전한 뒤 쇠락해진 후생시장 등 옛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014년부터 진행한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부활했다. 상가의 기본 틀을 살리며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인근의 중앙시장과 삼판서고택도 볼만하다. 서천 자전거공원은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준다. 무섬마을까지 가는 12㎞ 코스에 이용하기 적당하다. 영주시청 새마을관광과 (054)639-6604.●숲길과 옛 골목, 카페거리가 공존하다-광주 동명동 광주 동명동은 숲과 오붓한 골목, 카페거리가 공존하는 동네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책방, 근현대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추억의 골목이 숲과 어우러진다. 서울의 경리단길에 빗대 ‘동리단길’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동명동 재생의 버팀목이 된 ‘푸른길’은 폐철도가 산책로로 변신한 곳이다. 길목에서 만나는 건축물 ‘광주폴리’ 역시 생활의 쉼표가 된다. 옛 도청 자리에 세워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궁동 예술의 거리, 1913송정역시장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광주시청 관광진흥과 (062)613-3622.●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산복도로 산허리를 따라 이어진 산복도로는 부산의 진짜 매력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망양로를 따라 눈이 시린 부산의 풍광을 즐기고, ‘지붕 없는 미술관’ 감천문화마을에서 사진도 찍어 보자. 감천동 옆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던 마을이다. ‘누리바라기’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우뚝 선 부산타워 등 부산의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인근의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에 들러 부산 시민의 삶을 만나 보자. 올여름 부산에서 인기를 끈 송도해상케이블카도 놓치면 안 된다. 부산광역시 관광안내 (051)1330.●쇠락의 그늘 딛고 활력 넘치는 예술촌으로-창원 창동예술촌 옛 마산의 창동 일대는 한때 경남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었다. 2011년 도시 재생 사업으로 창동에 정착한 젊은 예술가들이 빈 점포를 공방과 아틀리에로 꾸몄다. 1955년에 개업한 학문당, 클래식 다방 만초, ‘빠다빵’으로 유명한 고려당, 40여년 역사의 헌책방 영록서점 등이 창동의 옛 낭만을 전해준다. 한복도 무료로 대여 해 준다. 조각가 문신의 작품을 전시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등을 묶어 추석 여행 코스로 짜도 좋을 듯하다. 창원시청 관광과 (055)225-4724.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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