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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JP 맹공」 진짜이유 뭘까

    ◎「3김정국」 고착화 움직임에 위기감 표출/보수표 노린 「신한국 공격 전초전」 시각도 민주당이 8일 김종필자민련총재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날 상오 마포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원기공동대표 등 참석자들은 JP(김총재)를 「군사쿠데타의 원조」「정보정치·부정부패·정경유착의 원조」「헌정질서 파괴범죄자」로 몰았다.나아가 그에게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는 권고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김대표는 회의가 끝난 뒤 기자실을 찾아 『자숙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쿠데타를 미화하고 있다』고 거푸 비난하기까지 했다. 왜 민주당이 느닷없이 김총재를 난타하고 나섰을까.이규택대변인은 『김총재가 5·16을 혁명으로 미화하는 작태를 더이상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공식적」이유를 댔다.우리 국민들을 들쥐에 비유한 위컴 주한 미군전사령관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 역시 그의 「죄목」이다.그러나 JP의 이런 말들은 새삼스레 나온 것이 아니다.그런데도 민주당이 이를 뒤늦게나마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데는 나름대로 답답한 사정이 있다. 우선 총선을 앞두고 정국이 점차 「3김대결구도」로 흐르는 데 대한 위기감이 JP에 대한 공세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JP에게 선공을 가해 억지로라도 민주당과 자민련의 극한대립을 조성해야 당이 정국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의 자구책인 셈이다. 나아가 JP를 「위장된 보수」로 몰아 그가 보수야권세력을 잠식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실제로 민주당은 「중립지대」인 강원·경북지역에서의 자민련세 확산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는 전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자민련이 총선을 보수와 개혁세력의 대결로 몰고 가려는 전략이 먹히는 상황』이라면서 『그가 보수가 아닌 수구세력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이 갖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제정구사무총장이 이날 하오 황급히 대구로 달려가 동요하는 지구당위원장들을 달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JP에 대한 공세를 신한국당에 대한 대공세의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더이상 국민회의를공격해 보았자 「여당의 제2중대」라는 역공만 당할 뿐 실익이 없다고 보고 결국 주적을 수도권에서 자웅을 겨루게 될 신한국당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JP에 대한 공세는 결국 포문을 신한국당으로 향하기 위한 전단계라는 설명이다. 당내 총선기획팀에서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대여공세를 벌이는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았다는 애기도 나온다.
  • 시련도 있었지만 보람도 컸다/1995년을 보내며(사설)

    1995년이 끝난다.참으로 힘겹고 험한 일이 많았던 한해였다.마찰의 굉음을 내며 달리는 역사의 수레바퀴소리를 들으며 긴장과 우려로 보낸 한해였다. 불의로 잃은 수백의 원혼들을 미처 달랠 길도 없이 떠나보낸 삼풍사고의 비극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지속되는 고통이다.그것은 급격한 사회 변동기의 혼란이 빚어온 도덕적 혼미의 결과로 황금만능의 물신주의와 무책임과 부주의가 총합되어 빚은 우리자신의 과오였다. ○삼풍 붕괴 교훈 삼아야 이 사고는 우리 자신이 모든 일에서 정밀하고 성숙하고 품질높은 일솜씨를 정착시켜야만 그때 비로소 개선이 가능해진다.이런 사고의 악몽에서 우리가 아직도 다 벗어나지 못한 것은 언제 「또다른 삼풍사고」가 우리를 위협할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후반기를 강타한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으로 우리의 자존심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전직 대통령을 오라지워 감옥에 가두고 법정에 세워 수인번호로 부르는 모양을 TV중계로 보아야 했던 일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상을 좌절하며 한동안 넋을 놓게 했다. 그래도 1995년은우리에게 위대한 극복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 해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지난 반세기동안 역사의 뒤안에 퇴적되어온 많은 과오들을 우리손으로 청산해야만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한 해였기 때문이다.이 역사오류에 대한 인식과 청산의 합의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계기를 마련했다. ○「12·12」「5·18」 단죄의 결단 「12·12」와 「5·18」의 불행속에서 헌정질서를 파괴하며 태어난 정권의 부당성을 명백하게 밝히고 바로잡아야 할 당위에 대한 결단을 바로 우리시대가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산 사람들이 할 일을 유기한 결과를 부르리라는 인식에 도달한 해,그것이 오늘 보내는 1995년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역사의 과오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초이고 비로소 가능한 정부가,바로 우리손으로 이룩한 문민정부이다.정통성에 하자가 없고 완벽하게 합헌적인 정부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도 시작하지 않았던 일의첫걸음을 내딛는 비장함에,우리는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역사 바로잡기」의 착수 그러나 정통성에 하자가 없고 당당한 정부라도 인기를 꾀하거나 정치적 안일만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역사바로세우기」과업은 쉽게 할 수가 없다.용기가 있고 능력이 있지 않다면 생념할 수 없는 어려운 과업이다.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출발한 정권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5·18특별법 제정의 역사바로잡기 작업에 착수했다.그리고 그것을 보혁갈등의 좌파적 행보로 모는 논리의 대응은 국민적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건사고로 얼룩진 한해였으므로 지구촌에 비쳐진 우리의 위상은 부정적일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국제사회에 비쳐진 인상은 오히려 좋아졌다는 징후들이 최근에 보였다.웬만한 소요나 흔들림은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탄탄함을 지닌 성숙된 사회임을 우리는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이미지 크게 개선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는,아직도 바로 잡아야 할 많은 역사적 왜곡을 가지고 있는 사회다.해묵은 왜곡의 치유로 「거듭나는 우리」가 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럼으로써 역사에 내장된 민족의 수월성을 찾아내어 민족의 진운에 기여하는 새해를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5·16과 제4공화국(새로쓰는 한국현대사:49)

    ◎무력으로 장기정권 인수… 합법 권력장악 추진/민정이양선언 파기… 유신까지 18년 집권 1961년 5월16일 상오 3시,한강 쪽에서 새벽 공기를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 그 순간을 기다린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나른한 봄밤을 깊은 잠으로 보내고 깨어났을 때 새벽에 바뀐 불행한 역사 현실을 알아차렸다.이날 상오 5시 KBS 첫 방송이 정규프로를 접어둔채 성공한 쿠데타 소식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데타 주역은 이날부터 18년을 독재권력 정상에 군림한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이었다.그리고 해병대 사령관 김동하 소장과 김종필 중령등이 주체세력으로 떠오른 군사쿠데타에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이 들러리를 섰다.장도영은 쿠데타가 성공한 첫 날에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이 되었다.국민의 기본 권리를 묶어버린 혁명공약과 각종 포고문이 그의 이름으로 시간시간 전파를 탔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유엔군사령관 매그루더 장군은 쿠데타 반대성명을 발표하면서 진압의사를 밝혔다.그러나 윤보선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매그루더의 쿠데타 저지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미 국무성도 군사혁명위원회 지도자들의 반공친미성향을 긍정적으로 주목했다.이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에서 미국의 이익과 엇갈리지 않는 중요한 요소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리 박탈 군사혁명위는 쿠데타 첫날 포고령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이어 다음날은 장면정권을 정식 인수했다고 밝혔다.군사혁명위는 18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다.최고회의는 6월6일 공포한 국가재건최고회의법에 따라 최고권력기구로 등장했다.이와는 별도로 5월20일 장도영을 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이 출범한데 이어 부정축재처리위원회와 혁명재판소,혁명검찰부가 설치되었다. 군사쿠데타는 군인들이 장악한 권력 그 자체보다 쿠데타 이후 군인들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그 행동은 목적을 달성한 이후 병영으로 돌아가는 중재자형과 장기간 공공연히 정치에 간여하는 감독자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당시 한국의 군부도 초기에는 혁명과업을 2년내에 완수하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주변의 소수 장교들은 군정하에서 장기집권 계획을 세웠다.그 계획의 하나가 최고회의 직속의 중앙정보부(중정) 창설로 나타났다.미국의 CIA를 표방한 것이라고 하나 성격이 전혀 달랐던 중정은 창설 초기부터 무소불위의 감독자 증후군을 다양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1961년 6월에 창설한 중정은 막강한 권부의 핵으로 민주공화당(민주공화당·공화당) 창당을 위한 사전조직을 주도하는등 장기집권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공화당 창당은 19 61년 8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2년내 군정을 끝내고 민정으로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한 이후 비밀스럽게 추진되었다.그 정당의 골격은 군사혁명 정부 2년간 통치에 이어 계속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패권정당이었다.그러니까 군부는 혁명과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군인이 예편한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다시 권력을 장악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군부는 이를 끝내 실현해냈다.군사혁명 포고령 제4호로이른바 구시대 정치인들의 발목을 모두 잡아두었던 군사정권은 그것도 공화당 사전 조직으로 먼저 뛰었다. 군사정부는 1962년 11월 민정이양을 위한 헌법개정안을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의결하고 이를 12월17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했다.12월12일 국민투표를 거친 개헌안을 정식 가결한 최고회의는 1963년 1월1일 포고령으로 묶었던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없애버렸다.1년7개월만에 정치활동이 재개된 것이다.그러나 오랫동안 휴면기를 살았던 기성 정치인들은 뒤늦게 스타트라인에 서야하는 불리한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공화당은 63년 2월26일 김종필이 사전조직한 재건동지회를 기반으로 창당되었다. 그러면 군사정권의 정상 박정희 장군은 약속대로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가.물론 아니다.그는 1963년 2월18일 민정불참을 선언하고 선서식을 일단 갖기는 했다.그러나 1주일뒤 원주발언에서 자신의 민정불참 선서에 대해 부정시각을 드러냈다.이어 3월16일 현시국은 과도적 군정이 필요하기때문에 4년간 군정연장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그의 폭탄선언이 나왔다.그는 이 선언을 자신의 민정참여를 기정사실화 하는 계기로 삼아 4·8성명을 내놓았다. ○헌정 짓밟은 반역 기록 그해 5월27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박정희 장군은 8월13일 지포리에서 군복을 벗는 전역식을 가졌다.대장 계급장을 단 전역식에서 「나 같이 불행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는 말을 남겼지만 그 아류의 정치군인들도 뒷날 네 개의 별을 달고 나서 정권을 잡는 전철을 밟았다.그래서 5·16군사쿠데타 연결선상의 군사정권이 장장 30여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그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거니와 헌정질서를 뒤흔든 반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떻든 박정희 장군은 1963년 10월15일 대통령선거에서 범 재야세력의 민정당 후보 윤보선을 겨우 15만표차로 누르고 신승했다.윤보선과 또 한차례 격돌을 벌인 대통령 박정희 장군은 1969년 9월14일 국회 변칙개헌으로 3선을 향해 줄달음쳤다.그리고 한 차례 더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나서 1972년 10월17일 영구집권으로 가는 유신을 선포했다.박정희 정권의 제4공화국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상용 문화부부차장 ▲김성호 문화부부기자 ▲김영중 조사부 기자 ◎「5·16성명」 미국무성 보고서/주한 미대표부 이한림 장군 충고로 쿠데타 반대/본국과 협의없어 “합법정부 지지” 표명/워싱턴 명령에 「간섭」 배제… 경비만 강화 한국에서 박정희 소장이 이끈 5·16 군사쿠데타와 당시 미국의 관계를 확인하는 2건의 새로운 문서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에 의해 미 워싱턴 케네디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이들 문서는 1961년 5월16일 쿠데타 첫날 미 국무성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한미국대표부 성명의 배경」과 11월28일 박정희 장군이 맥아더 원수에게 보낸 친서 등으로 되어있다. 미 국무성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한 미국대표부 성명서의 배경」은 5·16당일 M 그린 주한미대사 대리와 C B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을 우선 거론했다.이들의 쿠데타 반대성명은 국무성과 사전협의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쿠데타 반대성명이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그 배경은 매그루더의 해명을 인용한 것으로,쿠데타 반대성명은 한반도 군사분계선 방위담당 지휘관인 한국군 1군사령관 이한림의 충고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주한미대리 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의 성명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직접 반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다만 「한국 국민의 선거에 의해 구성된 합법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담았을 뿐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되어있다.그 이후 매그루더는 명령에 따라 군사쿠데타에 간섭하지 않고 경비강화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서에 기록했다. 이밖에 또 다른 문서 박정희 장군의 친서에는 맥아더 원수에게 전하는 감사의 뜻을 담았다.1961년 11월14일∼25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최고회의 의장자격으로 보낸 것이다.뉴프론티어의 기수를 자처한 케네디 대통령과의 회담 등을 통해 한국 군사정부가 지지를 받기까지 미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5·18특별법」 발효/각의 의결 공포

    정부는 21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12·20 개각」후 첫 국무회의를 열고 국회에서 통과된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 공포안」을 의결했다.이에따라 5·18 특별법은 이날 관보에 게재,발효됐다.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이와함께 내란죄 외환죄 군사반란죄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영원히 배제하는 내용의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공포안」도 함께 의결했다. ◎특별법 곧 위헌소동/전씨측 전두환 전대통령측은 21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발효됨에 따라 금명간 위헌소송을 제기키로 했다.
  • 검찰 공소발표문 요지

    ▷12·12사건 관련◁ ○서울지방검찰청은 그동안 특별수사본수를 구성,수사를 전개하여 왔던 세칭 12·12사건등과 관련,오늘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두 피의자를 서울지방법원에 군형법상의 반란수괴,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공소를 제기하였음 ○이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세칭 「10·26사건」이후 피의자 전두환은 국군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동 노태우는 9사단장으로 각 재직하면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군내부인사,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의 의견대립 등으로 마찰을 빚어 오던중 그를 제거하고 불법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할 목적으로 정승화 참모총장이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구실로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 주도로 수도권 핵심지휘 부대장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및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을 만찬을 빌미로 음식점으로 유인하여 육군정규지휘계통의 즉각대응체제를 혼란케 한 다음 ­위 특전사령관,수경사령관 지휘하에 있는 1공수여단장·3공수여단장·5공수여단장·30경비단장 및 수도권 방위의 중핵부대지휘관인 1군단장·수도군단장·9사단장·20사단장·국방부 군수차관보등을 포섭,경복궁 구내에 있는 30경비단에서 회합,지휘부를 형성하여 위 정규지휘부대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정규지휘계통보다 우세한 병력을 동원하기로 계획한 다음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부하인 보안사령부 인사처장과 육본 헌병대장,수경사 33헌병대장 등으로 하여금 정승화 총장을 총기등으로 강제 체포케 하고 ­육군의 정규지휘계통의 명시적인 출동금지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장한 병력을 동원 △1공수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 검거를 △3공수여단은 특전사령부 점거 및 특전사령관의 체포를 △수경사 헌병단은 육본측 장성등 체포를 △5공수여단은 효창운동장 진주를 △9사단 및 2기갑여단은 중앙청 진주를 △30사단은 고려대학교 진주등을 하도록 지휘,군사반란을 감행하고 △이 과정에서 상관살해,상관살인미수등 인명을 살상하여 국민의 군대로서 맡겨진 임무를 저버리고 하극상의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은 반란의 최고책임자로서,당시 9사단장인 노태우는 반란의 중요임무를 수행하였다는 것등이 그 요지임. ▷수뢰 및 축재사건 관련◁ ○검찰은 본건 수사와 더불어 ­전두환 전대통령의 수뢰와 축재혐의에 대하여도 수사중에 있음 ­현재까지 기업인등 20여명을 조사하고,금융계좌 추적등을 통해서 수사한 바,친인척등 명의로 된 부동산과 함께 금융자산등 상당히 많은 액수의 축재사실이 발견되어 현재 계속 수사중에 있음 ▷5·18 및 12·12나머지부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등에 관한 특별법,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됨에 따라 ○5·18사건은 물론 12·12사건의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도 국민의 여망에 귀를 기울이면서 철저한 수사를 전개하여 법에 따라 처리할 계획임
  • 뜻 깊은 「5·18 특별법」성립(사설)

    5·18특별법이 국회에서 합의처리됨으로써 12·12군사반란과 5·17,그리고 5·18광주 학살사건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와 사법처리가 법적인 뒷받침을 받게 되었음을 환영한다.이제 수사의 주체가 된 검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사명의식과 철저한 진상규명만이 이 문제 해법의 마지막 수순으로 남게됐다. 특별법은 12·12 및 5·18의 진상규명을 통한 헌정파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그리고 희생자들이 「폭도」에서 「민주투사」로의 새로운 평가를 받게 하는 명예회복이 주요 골자라고 하겠다.범법자의 사법처리와 희생자의 명예회복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핵심적 사항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특별법의 정신이 반드시 구현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형법상 내란죄와 집단살해죄,군형법상의 반란죄등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영원히 배제하는 내용의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국권찬탈에 나선 신군부 핵심인물들에 대한 단죄의 길이 열려 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적인 재평가를 받게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이미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당시 군사반란에 가담한 전두환 전대통령을 21일 기소키로 한데 이어 주동적인 가담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중이지만,이번에 특별법이 마련돼 공소시효등 적법성시비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전면적이며 본격적인 재수사를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특별법은 검찰이 군사반란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않을 경우 고발인들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해서 별도의 검사를 임명할 수 있는 특례를 법안에 삽입함으로써 사살상 특검제안도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이제 남은 일은 검찰의 철저한 수사라고 하겠다. 검찰의 수사가 법적인 힘을 얻은 만큼 검찰은 이 사건에 관한 이번 사법적 검증이 마지막이 되도록 진실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국민들이 수사결과에 공감하고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때 특별법의 의미가 빛을 발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5·18특별법 처리 이모저모

    ◎「공소시효 암초」 피하려 법안 2개로 분리/「부화뇌동자 처벌」·「유공자 예우」 싸고 진통/최재욱 의원 「5공과의 의리」 내세워 “반대” 여야가 지리하게 밀고 당겨온 5·18특별법이 14대 정기국회 폐회일인 19일 온종일 토론과 설전 끝에 가까스로 처리됐다.신한국당,국민회의,민주당 등 여야 3당총무는 이날 상오부터 3차례에 걸쳐 국회 귀빈식당에서 총무회담을 열어 진통 끝에 합의에 이끌어 냈다.그러나 자민련은 막판까지 특별검사제를 고집,총무회담에 불참한데 이어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벌였다. ▷본회의◁ ○…5·18특별법안 처리는 재적의원 2백90명 중 2백47명이 출석한 가운데 기립표결로 진행됐다.표결결과 2백25명이 찬성했고 자민련 의원 19명과 신한국당의 최재욱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황락주 국회의장과 국민회의 김대식의원이 기권한 것으로 집계됐으나,민주당 정기호 의원은 자신도 기권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한국당에서는 이춘구 황명수 정호용 이재명 김기도 김정남 김상구 안무혁 금진호 강재섭 허삼수 허화평 이영창 이민섭강경식 권익현 의원 등 16명이 표결에 불참했다.황명수의원등은 선약이나 와병 또는 상을 당하는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그러나 TK지역 의원들외에 비자금 정국에 연루됐거나 정계은퇴를 시사한 의원들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신한국당의 최의원이 반대를 위해 기립해 있는 동안 자민련 의석에서는 『소신있군』『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최의원은 『위헌소지가 있는 법으로 처벌범위가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5공 대변인으로서 일했던 인간정리 때문』이라고 반대이유를 밝혔다. ○…이에 앞서 여야의원들은 찬반토론을 통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먼저 반대토론에 나선 유수호·함석재의원(자민련)은 『5·18 특별법안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 「형법 불소급의 원칙」에 정면으로 저촉되는 위헌법률이자 소급입법』이라며 『진정 나라와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헌법과 헌정질서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토론에 나선 박상천(국민회의)·장기욱의원(민주당)은 『내란의 수괴자들이 국정을 장악한 기간에는 검찰이 사실상 소추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통일독일도 동독의 범죄행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있어 위헌법률이 아니다』고 자민련의 주장을 반박했다. ▷총무회담◁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민주당은 이날 3차례의 총무회담 끝에 공소시효정지와 특별재심 등 5·18 특별법의 6가지 쟁점사항에 극적으로 합의했다.그러나 자민련은 『특검제 없는 특별법은 알맹이 없는 법안』이라며 총무회담에 불참했다. 여야는 쟁점사항 중 「국가유공자 예우」와 「부화뇌동자 처리」 문제를 놓고 막판까지 의견이 엇갈리는등 최종협상을 끝내기까지 심한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총무회담 합의에 따라 법안작성에 들어가 토의결과,부화뇌동자의 처벌과 공소시효 문제를 단일법안으로 처리하는데 법체계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등 2개 법안으로 나누기로 합의했다. 법안을 두개로 나눈 것은 명예회복·배상 등이 중심인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공소시효 문제를 한개의 법안으로 처리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국민회의등 야당의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법사위◁ ○…총무회담에 이어 열린 법사위에서는 1시간여에 걸친 토론끝에 하오 7시30분쯤 표결을 통해 법안을 가결. 출석의원 15명가운데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과 「12·12 군사반란 및 5·18내란사건 등의 수사내용 국회보고 촉구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그러나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국민회의 소속 전원과 신한국당·민주당의원 일부 등 11명이 찬성,자민련의 함석재·유수호의원,신한국당의 강재섭 의원 등 3명이 반대,민주당 정기호의원의 기권속에 통과.
  • 정호용씨 등 곧 소환/안현태씨 어제 소환 조사

    ◎5·18법 통과따라/전씨 21일 반란혐의 기소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9일 헌정질서 파괴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내용을 담은 5·18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등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소환,조사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재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정웅 31사단장,소준렬 전투병과교육사령관 등 관련자와 접촉,금명간 소환 일자를 확정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정전특전사령관 등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특별법에 따라 피의자 자격으로 소환,조사한 뒤 선별적으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전두환 전대통령의 구속만기일인 오는 22일 전전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 혐의로 기소하고 5·18관련 내란 혐의와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 혐의는 계속 조사해 추가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전씨를 기소할 때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태우전대통령에게도 군사반란혐의를 추가,기소하기로 했다. 검찰은 22일 그동안의 수사 내용을 브리핑하는 형식으로 중간 발표하기로 했다. 이종찬 본부장은 이와 관련,『12·12사건에 대한 재수사결과 전전대통령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혐의는 입증했지만 정권을 찬탈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으며 비자금 부분도 이번에 기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전씨 비자금을 포함해 그동안의 수사 내용은 브리핑 방식으로 중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12·12 당시 육본 작전참모부장으로 신군부측에 대항한 하소곤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또 이날 전씨의 비자금과 관련,하오 2시15분 안현태 전청와대 경호실장을 서울지검 청사로 소환해 철야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안씨를 상대로 김종상 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49)에게 전씨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을 시중은행에 분산예치토록 지시한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지난 15일 김씨를 소환 조사하면서 김씨가 안씨의 지시로 거액을 가차명 계좌로 분산했다는 진술을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관련,방문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데다 공판전 증인신문제도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판단,전전대통령의 공판 때 최전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양정모 전국제그룹회장이 지난 18일 『지난 85년 전씨가 국제그룹을 해체하는 등 78개 부실기업을 정리하면서 인수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고 5천여억원을 상납받았다』면서 전면 재수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 “민주발전의 상징”5·18특별법/박성원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5·18특별법」이 마침내 제정됐다.산고끝에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이 법적 받침대를 갖추게 된 것이다.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등에 관한 특례법」은 12·12,5·17,5·18등 민주화를 짓밟고 국민통합을 가로막아온 반역사적 세력에 대한 사법적 단죄의 토대이다.뿐만 아니라 이 법은 향후 유사한 헌정파괴범죄를 막을 수 있는 조항들도 함께 마련해놓고 있다. 물론 법안통과를 위한 여야의 협상과정은 그 성스러운 입법목적에 비추어볼때 아쉬움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당초 이 법의 핵심은 12·12,5·17등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해 집권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법해석상의 통설을 입법을 통해 명확히 하자는 것이었다.『특별법 제정에는 공감하지만 공소시효 규정에는 반대한다』는 자민련을 논외로 한다면 신한국당이나 국민회의 민주당이 서로 다툴 근본적 명분은 사실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2주일여 특별검사제 도입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여왔다. 『12·12,5·17등에 대해 불기소처분을내렸던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야당측의 특검제 도입론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국민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특검제 자체가 아니라 여야 합의를 통한 특별법마련과 이를 통한 역사바로잡기라는 큰 의미를 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야당측이 뒤늦게 특검제를 사실상 철회하고 특별법 협상에 융통성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사면을 받은 희생자들의 특별재심 문제로,내란 부화뇌동자들의 처벌시효 문제로,희생자들의 국가유공자 인정문제로 쟁점을 옮겨가며 계속된 여야간 힘겨루기가 막판에 절충이 이뤄진 것도 특별법의 정치도구화를 우려하는 국민 시선의 압력때문이었다. 「사소한」 논란을 극복하고 5·18특별법은 이제 마련됐다.그러나 특별법 통과가 곧 항구적인 헌정질서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이제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못된 역사가 이 법에 의해 바로잡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14대 국회의 사실상 마지막 날을 장식한 특별법 통과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걸음 발전하는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는 감회를 지울 수 없었다.
  • 파행·날치기 시비없이 「깨끗한 매듭」/14대 마지막 정기국회결산

    ◎5·18법 제정·예산 시한대 처리 큰 성과/정치관련법 손질… 정치권변화 틀 마련 제14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19일 폐회됐다. 이번 제1백77회 정기국회는 정치적으로나,국회 고유의 기능인 입법과 예산심의 등에서 그 어느 때보다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날 여야 각당의 폐회성명에서도 단 한차례의 파행이나 날치기 시비없이 유종의 미를 거둔 이번 국회활동을 높이 사고 있다. 먼저 이번 국회 회기 중에 시작된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민주당 박계동의원의 폭로로 비롯된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거 청산작업의 법적·제도적 완결이라고 볼 수 있는 5·18특별법 제정은 정치권의 앞날을 엄청나게 변화시킬 계기로 작용했다.물론 이 과정에서 대선자금 시비 등 여야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하지만 이는 단순히 정쟁차원이 아니라 구태와의 단절을 위한 진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결국 국회는 일부 야당의 반대가 있긴 했지만 역사청산이라는 대의를 쫓아 5·18특별법을 원만하게 처리했다. 정경유착 근절과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을 위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련법도 손질했다.이는 앞으로의 정치권의 체질개선과 나아가 15대국회의 도덕성과 생산성을 보장하는 준거로 작용할 전망이다.특히 이 과정에서 돋보인 것은 여야가 끝까지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표결을 통해 처리하는 다수결 원칙과 민주적 질서가 존중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또 이번 국회는 15대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여야 4당 구도 속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생산적인 국회로 운영됐다.국정감사,예산심의,법안심의 등에서 여야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실적을 남겼다.지방자치 실시후 처음 실시된 국정감사는 단체장의 소속정당에 따라 일부 파행운영이 예상됐으나 결과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감 본래의 취지에 충실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특히 새해예산안 심의에 있어서 여야는 한 차례의 격돌없이 법정시한을 지킴으로써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민생을 우선한다는 모습을 보였다.이는 14대국회에서 여야가 날치기 시비없이 법정시한내 예산안처리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번 국회는 비자금 정국이라는 어수선한 정치분위기 속에서도 1백71건이라는 14대 정기국회 가운데 가장 많은 법안처리 기록도 수립했다.이는 92년이나 93년 정기국회에서보다 20여건이나 많은 숫자다.특히 5·18특별법이나 정치자금법개정 등 정치적인 법안 뿐만 아니라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중소기업 구조개선 및 경영안정지원 특별조치법 등 민생관련 법안이 그 어느 때 보다 많았다. 그러나 이번 국회가 결과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국회로 평가받고 있지만 여야가 능동적으로 생산적인 국회로 이끌었다기 보다는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대선자금 공방시비,사정정국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해 국회안에서의 정쟁을 자제한 결과가 조용한 국회로 끝났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5·18 특별법안 제1조(목적)이 법은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공소시효의 정지)①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 범죄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 ②제1항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이라 함은 당해 범죄행위의 종료일부터 1993년2월24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제3조(재정신청에 관한 특례)①제2조의 죄에 대하여 고소 또는 고발을 한 자가 검사 또는 검찰관으로부터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통지를 받은 때에는 그 검사소속의 고등검찰청이나 그 검찰관소속의 고등검찰부에 대응하는 고등법원 또는 고등군사법원에 그 당부에 관한 재정을 신청할 수 있다.이 법 시행전에 제2조의 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결정이 된 사건의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①제1항의 재정신청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00조 내지 제205조 또는 군사법원법 의 해당규정을 적용한다.제4조(특별재심)①제2조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및 군사법원법 제469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②재심의 청구는 원판결의 법원이 관할한다.다만 군형법의 적용을 받지 아니한 자에 대한 원판결의 법원이 군법회의 또는 군사법원일 때에는 그 심급에 따라 주소지의 법원이 관할한다. ③재심의 관할법원은 직권으로 제2조의 죄를 범한 자가 그 죄로 유죄의 선고를 받아 그 형이 확정된 사실을 조사하여야 한다. ④제1항의 재심청구인이 사면을 받았거나 형이 실효된 경우에 재심관할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6조 내지 제328조 및 군사법원법 제381조 내지 제383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종국적 실체판결을 하여야 한다. ⑤제1항의 재심에 관한 절차는 동재심의 성격에 저촉하지 아니하는 한 형사소송법과 군사법원법의 해당조항을 적용한다. 제5조(기념사업)정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하여야 한다. 제6조(배상의제)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한 보상은 배상으로 본다. 제7조(상훈치탈)정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훈을 받은 자에 대하여 심사한 결과 오로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것이 공로로 인정되어 받은 상훈은 상훈법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서훈을 취소하고,훈장등을 치탈한다. ○부칙 제1조 이 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제2조 제3조 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한 재정신청은 이 법 시행일로 부터. ◎당정파괴범 공소시효 특례법안 제1조(목적) 이 법은 헌법의 존립을 해하거나 헌정질서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헌정질서파괴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배제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용어의 정의) 이 법에서 「헌정질서파괴범죄」라 함은 형법 제2편 제1장 내란의 죄,제2장 외환의 죄와 군형법 제2편 제1장 반란의 죄,제2장 이적의 죄를 말한다. 제3조(공소시효의 적용배제) 다음 각호의 범죄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49조 내지 제253조 및 군사법원법 제291조 내지 제295조에 규정된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1、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 2、형법 제250조의 죄로서 집단학살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규정된 집단살해에 해당하는 범죄 제4조(재정신청에 관한 특례) ①제2조의 죄에 대하여 고소 또는 고발을 한 자가 검사 또는 검찰관으로부터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통지를 받은 때에는 그 검사소속의 고등검찰청이나 그 검찰관소속의 고등검찰부에 대응하는 고등법원 또는 고등군사법원에 그 당부에 관한 재정을 신청할 수 있다.②제1항의 재정신청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해당규정을 적용한다. ◎「12·12」­「5·18」 수사내용 국회보고 촉구안 ▷주문◁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사건 등의 수사에 있어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의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 국회가 수사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명백한 의도가 없는 한 정부는 그 수사내용을 국회에 보고할 것을 촉구한다. ▷제안이유◁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함에 있어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독립하여 수사를 하는 것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적절하게 감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일환으로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사건등의 수사내용을 국회에 보고토록 하는 촉구결의안을 제안하는 바이다.
  • 12·12­5·18 진상규명 가속화/「특별법」제정이후 검찰행보

    ◎“시효 걸림돌 해소” 관련자 소환 박차 5·18특별법이 19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5·18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특별법의 제정으로 재수사의 법적 틀이 새로 마련된데다 공소시효라는 걸림돌도 제거됐기 때문이다.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이날 가능한 빠른 기간안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30일부터 12·12사건을 재수사하면서 군형법상 군사반란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을 전격구속했다.비자금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해서도 군사반란죄를 추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12·12사건 당시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는 등 군권장악에 참여한 핵심관련자들은 군사반란 등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었다. 5·18사건도 마찬가지.공소시효의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일인 80년 8월16일이나 전전대통령의 11대대통령 취임일인 9월1일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재·조법조계에서는 다수를 차지했다.이 경우 전·노씨를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만료됐으며 전·노씨에 대해서도 내란 관련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같은 상황에서 특별법은 「헌정질서파괴범죄를 저지른 뒤 대통령이 되었거나 대통령 재임중 이같은 범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재임기간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될 뿐만 아니라 다른 공범자에 대해서도 효력을 미친다」라고 규정,수사에 따른 법적 장애를 일거에 해소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특별법은 12·12와 5·18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도록 법적인 사정변경사유를 마련해준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법이 소급처벌규정을 담고 있어 위헌소지가 있지만 법을 집행하는 검찰로서는 수사의 진행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특별검사제가 채택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안도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12·12와 연관지어 5·18에 접근하던 예비수사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5·18의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자세다. 금명간 정호용 전특전사령관·소준렬 전전투병과교육사령관을 비롯,5·18당시 광주 과잉진압 등에 참여한 관련자들을 본격적으로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특히 이미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한 허삼수·허화평·권정달·이학봉씨 등 신군부 핵심관련자를 앞으로는 특별법에 의거,피의자로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지금까지의 조사만으로도 충분히 사법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 및 이에 따른 검찰의 5·18수사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다.박모변호사는 『특별법이 공소시효가 지난 과거의 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제정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헌시비가 일고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면서 『검찰의 수사에 대해 합법성 여부를 따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5·18특별법」 국회 통과/찬성225·반대20·기권2

    ◎3당단일안 기립 표결/헌정파괴범 공솟;효 불적용/광쥔압 상훈 치탈… 「특벼래심」 허용/정기국회 폐회 국회는 19일 본회의를 열어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민주당 3당합의로 마련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안」과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등 5·18관련 2개의 특별법안을 의결했다. 두 법안 가운데 헌정질서파괴범죄 공소시효 특례법안은 여야4당의 만장일치로 의결됐으나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안은 기립표결 결과,재석의원 2백47명중 찬성 2백25표,반대 20표,기권 2표로 의결했다.표결에서 자민련의원 19명과 신한국당의 최재욱의원이 반대했다. 이날 본회의는 또 정부가 앞으로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사건 등의 수사내용을 국회에 보고토록 촉구하는 결의안도 의결했다. 이날 통과된 헌정질서파괴범죄 공소시효 특례법은 형법상의 내란죄와 외환죄,군형법상의 반란죄·이적죄 등 헌정질서파괴범죄와 형법상 집단살해에 해당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12·12및 5·17군사반란 관련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은 12·12와 5·18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는 80년 1월24일 신군부의 계엄선포이후 노태우전대통령의 퇴임일인 93년2월24일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규정했다. 이 법은 또 특별재심과 관련해 12·12관련 피해자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무죄판결을 위한 특별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고 ▲5·18당시 오로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것이 공로로 인정돼 받은 상훈은 치탈하고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회의는 또 통합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정치관계법과 제18회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및 제4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지원법안 등 모두 7개 안건을 처리했다.이날 법안 처리를 마무리한뒤 제14대 마지막 정기국회인 제1백77회 정기국회는 1백일의 회기를 마치고 폐회됐다. 이에 앞서 신한국당의 서정화,국민회의의 신기하,민주당의 이철원내총무 등 여야3당 원내총무는 잇단 절충끝에 5·18관련 특별법 3당 단일안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또한 기존 5·18민주화운동「특별보상법」을 「특별배상법」으로 개정하기로 하고,내년부터 5월18일을 「민주화운동기념일」로 공식 지정키로 합의했다. 이날 총무회담은 부화뇌동자 처리문제와 관련,『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정신을 전제로 하되 여당안에서 『부화뇌동자의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한 단서조항이 가해자 처벌을 전제로 한 특별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국민회의측 지적에 따라 이 조항을 삭제했다. 한편 황락주 국회의장은 폐회사에서 『14대국회가 많은 질책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새로이 열린 문민시대에 부합하는 참다운 국회상을 정립한 것을 의원들과 더불어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의장은 또 『오늘 국회가 5·18특별법을 제정한 것은 14대 국회의 업적으로 헌정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면서 『특히 불행했던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하는 지금의 노력이 우리 국회에서 점화되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고 의원들을 격려했다.
  • 역사 바로 세우기/서진영 고려대교수·정치학(시론)

    지난 10월19일 노태우씨의 비자금사건이 세상에 폭로된 이후 우리는 새삼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그동안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란 사람이 나라걱정을 하기보다는 임기내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비자금을 거둬 들일 수 있을까에만 골몰한 것같이 여겨질 만큼 엄청난 액수의 부정한 돈을 조성하고 관리한 것이나,우리나라 경제의 중추역할을 한다는 대기업의 회장들이 줄줄이 뇌물을 바치면서 이권을 챙기려고 한 것도 그렇고,그런 부정한 돈을 받아 쓰면서도 입만 열면 우리 사회의 정의구현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투쟁한다고 외쳐온 정치인들의 이중성은 그야말로 소시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지난 16년동안 우리 모두의 부끄럽고 어두운 역사로 남아 있었던 12·12와 5·18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주장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거나 왜곡하려는 일부의 행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고 하겠다.차라리 전두환씨의 반발이나 저항은 규탄의 대상이 될 지언정 그 배경과 동기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동안 12·12와 5·18의 진상규명과 사법적인 처리를 줄기차게 주장하던 사람들마저 갑자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정치적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소시민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문민정부가 들어 선 이후 2년 반이상이 지나도록 「지난 시대의 어두움을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호소하다가 지금 와서 왜 갑자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새삼스럽게 강조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의아해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그러나 일반 상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노태우씨의 부정과 비리의 폭로,과거에 대한 반성보다는 오히려 과거를 돌이키려는 전두환씨의 오만하고도 방자한 반역사적인 태도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폭발하면서 더 이상 12·12와 5·18사건에 대하여 「공소권 없음」이란 미봉책을 그대로견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전두환­노태우씨의 상상을 초월한 부정과 부패,그리고 반역사적인 행위를 이 정부가 그대로 덮어두고 나간다면,국민들의 눈에 이 정부 역시 과거의 5,6공과 다름이 없는 것으로 비쳐질 것이며 그동안 이 정부가 주창한 개혁과 신한국의 창조라는 목표 역시 공허한 정치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따라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타파하고 헌정질서의 파괴행위를 응징함으로써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개혁을 지향하는 김영삼정부의 불가피한 역사적 과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정치적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를 계기로 그동안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법과 양식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는 전두환­노태우씨의 부정부패와헌정질서 유린의 범죄를 단죄하는 것을 표적 사정인 것처럼 호도하거나,사회 경제적 불안감을 이유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할 것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두명의 전직 대통령을 모두 구속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임에 틀림없고 지난 16년간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특히 과거의 부정부패와 반역사적인 행위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보여야 하는 당혹스러운 일이기에 더욱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 사회가 법과 양식이 살아 있는 정상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따라서 전두환·노태우씨의 사법적 처리과정에서 우리는 정치적 해결이나 적당한 봉합을 모색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관행과 비상식적인 행위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하겠다.
  • 「특별법 제정」명분 더 굳어졌다/「5·18헌소종결」결정에 담긴뜻

    ◎공소시효 언급안해 위헌논란 여지/소수의견 통해 헌재 위상찾기 노력 15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은 고심 끝에 찾은 절묘한 해법으로 평가된다. 소수 의견이라는 형식으로 5·18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재의 결정 내용과 「내심」을 밝힌 것이다.이처럼 소수 의견을 통해 「내심」을 밝힌 이유는 우선 헌재의 위상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재는 5·18사건 선고 예정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이 사건 고소·고발인들이 소취하서를 접수시키자 망연자실한 분위기였다.그동안 이 사건을 놓고 씨름을 해온 것이 억울하기보다 앞으로도 헌재의 최종 결정이 나기전에 소 취하서가 접수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되면 헌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돼 헌재의 존재 이유 자체가 의문시될 수 있다. 따라서 이날 헌재의 결정은 소수 의견에 더 무게가 실려있다고 할 수 있다.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5명은 소 취하서가 접수되면 민사소송법 제239조에 따라 소 자체가 제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지만,나머지 4명은직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이는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사안에 따라 직권으로 결정을 내리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불과 한사람에 의해 갈라졌으므로 역전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5·18사건에 대해서도 소수 의견을 통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잘못된 것임을 밝혔다.이는 소 취하서가 접수되지 않았다면 헌재가 내렸을 결정 내용임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조승형 재판관 등은 이날 『성공한 내란에 대해 가벌성을 인정하자는 것이 소 취하전의 다수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같은 결정으로 검찰과 정치권이 5·18사건 재수사와 특별법 제정의 명분을 보다 확고히 할 수 있게 됐다.형식적으로는 소수 의견이기 때문에 검찰과 정치권이 따라야 할 의무는 없지만 사실상의 헌재 재판관 다수의 의견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결정에서는 5·18사건 피고소·고발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강조했을 뿐,공소시효 기산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특별법에 반영될 것으로보이는 반인류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중지,또는 연장 등에 관한 조항은 일단 입법기관에 맡겨졌다고 할 수 있다. 헌재의 한관계자는 이와 관련,『5·18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법률 문제가 아니라 검찰의 수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실 관계의 문제』라면서 『검찰의 공소시효 기산점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기소후 법원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앞으로 특별법이 제정돼 5·18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처벌하더라도 공소시효 기산점 등을 둘러싸고 계속해서 위헌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다만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기왕에 군사 반란혐의가 인정된만큼 처벌에는 별 문제가 없다. ◎헌소 청구에서 종료까지/4개 그룹서 모두 3백89명이 제기/선고 하루전 소취하… 우여곡절 거듭 헌법재판소가 15일 5·18사건 헌법소원에 대해 종료를 선언한 것은 청구인의 취하취지를 살리면서 사안에 대한 헌재의 시각을 알리는 이중효과를 올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지난 7월18일 5·18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리자 7월24일 정동년씨 등 3백22명이 이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는 등 10월17일까지 모두 4그룹 3백89명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헌재는 8월8일 전원재판부에 이 사건을 회부하고 병합심리를 시작,지난달 23일 7차평의회에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은 부당하다」라는 사실상의 결론을 도출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24일 김영삼 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청방침을 천명하자 헌재측은 청와대에 미리 선고의 내용을 흘리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았다. 뒤 이어 언론에 「공소권 없음 부당.공소시효만료」라는 내용이 헌재의 잠정결정인 것처럼 대서특필되자 정치권 등에서는 5·18특별법이 공소시효 문제로 위헌시비에 휩싸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최종 선고를 하루 앞둔 29일 청구인들이 소를 취하하면서 헌법소원 자체는 백지화 국면에 직면했다. ○…헌재측은 청구인들의 소취하에 대해 검찰에 동의여부를 구하는 절차를 밟으면서 민사소송법 239조 규정을 원용,일단 이에 대한 선고를 14일동안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종선고를 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재판관들 사이에 열띤 논의가 계속됐다.재판관들은 검찰의 동의서 제출 만기일인 지난 13일에 이어 14일 회의를 열어 소취하에 따른 종료선언쪽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헌정질서의 수호와 유지라는 특수성을 고려,소취하와 관계 없이 결정해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공개하기로 절충을 보았다. 결국 소수의견을 낸 김진우 재판관 등 4명은 이날 비록 법적 기속력은 없지만 「8차의 평의끝에 「성공한 내란도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정족수를 넘었고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는 것이 헌재의 결정」이라는 의견을 밝혀 결정선고의 효과를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의견을 빌려 다수의 의견을 공표하는 묘안을 짜냈다는 평가다. ◎「518헌소 종료」 소수의견 요지/내란행위에 국민적 승인 없었다/정당한 국가기능 회복뒤 처벌 가능 내란의 목적을 달성하여 사실상 국가권력을 장악한 때에는 그 내란 행위자에게 국가형벌권을 발동,내란죄로 처벌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이는 국가형벌권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 내란행위자에 의해 억압되고 주권자인 국민도 현실적으로 그를 배제할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자에 대하여는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하기까지 사실상 처벌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그러나 훗날 정당한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한 이후에는 그동안 불가능했던 처벌이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피의자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등을 통한 간접선거에 의해 두차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나 피의자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이 사건 내란행위에 의해 창출된 제5공화국의 질서가 국민의 저항으로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국민의 의사에 따른 새로운 헌법질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채 국민들로부터 다수의 상대적인 지지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여 이 사건 내란행위에 대해 국민의 승인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국민적 심판을 받아 새로운 정권창출에 성공한이상 새 정권과 헌법질서의 창출을 위한 행위의 법적효력을 다루거나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또 내란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아니할 경우에는 설사 내란행위자들이 그 목적을 달성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을 지배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위법성은 소멸되지 아니하며 처벌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적 변혁과정에서 새로운 정권과 헌법질서를 창출하기에 이른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는 무너진 구 헌정질서에 근거하여 그 행위들의 법적효력을 다루거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결국 사법심사가 배제된다』는 등의 이유로 「공소권 없음」의 처분을 한 것은 헌법의 이념이나 내란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을 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청구인들이 『집권에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청구인들의 평등과 형사재판절차상의 진술권을 침해했으므로 이를 취소해야 한다.
  • 김 대통령,「12·12」 16주년 대국민 담화

    ◎“쿠데타 망령 영원히 추방”/「역사 바로세우기」는 명예혁명/제2건국 신념서 반민주 분쇄 김영삼 대통령은 12일 『역사 바로세우기는 단순한 과거의 정리작업이 아니라 바로 미래를 향한 창조의 대업』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는 군사문화의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쿠데타의 망령을 영원히 추방함으로써 우리가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12·12 16년이 되는 날을 맞아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역사 바로세우기야말로 국민의 자존을 회복하고 나라의 밝은 앞날을 여는 명예혁명』이라면서 『이 일이 제2의 건국이라는 신념으로 어떠한 반역사적·반민주적 도전도 분쇄하고 이 과업을 반드시 완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동안 우리 역사를 바로세우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와 법,그리고 양심이 국가와 민족의 항구적 발전을 보장하는 확고한 기반이 되도록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특히 『어떠한 헌정질서의 파괴행위도 단호히 응징하고 법과 정의를 확고히 세워 법치주의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도록 해야 하며 나라를 병들게 한 부정부패의 구조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타파해 깨끗하고 공정한 선진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용서를 빌기는커녕 역사를 되돌리려는 파렴치한 언행은 온 국민을 분노케 했으며 전직대통령의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을 통해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배반한 이 엄청난 범죄의 뿌리가 12·12와 5·17,5·18에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국민과 역사를 욕되게 한 이같은 작태를 더이상 국민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묵과할 수는 없었다』고 역사 바로세우기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역사 바로세우기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으며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서 『국회가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에 5·18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줄 것을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한국정치 이상과 현실」 동아시아연 세미나

    신한국당의 최형우 의원과 국민회의 정대철 의원이 12일 「한국정치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동아시아연구원(이사장 이명박)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날 세미나는 12·12 및 5·18등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한 특별법제정등 최근 복잡한 정치권의 움직임과 관련해 눈길을 끌었다.다음은 두 의원의 주제발표 요지다. ◎최형우 의원­신한국당/“굴절된 역사 청산… 도덕정치 시대로”/건강 보수·온건 개혁·신세대가 주역 맡을때 한국정치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5·18특별법 제정과 노태우씨 부정축재 사건을 계기로 정치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역사와 국민이 용서못할 일을 한 사람을 정의와 법이 심판하지 않고서는 결코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없다.이번의 역사청산을 계기로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살리는 것이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기본 방향이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다.노씨의 천문학적인 부정축재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정치권은 오욕의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도덕정치를확립해가는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 2류정치,3류정치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선진정치를 막고 있는 대표적인 병폐는 「지역할거주의 정치구도」라고 하겠다.국민 정서를 산산조각내고 있는 정치구도는 청산되어야 한다. 해방후 50년동안 총재 한사람에 의해 운영되어 온 「보스정치」로는 정치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없다.정당은 정책정당화하여 고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정치를 해가야 한다.마땅히 물러가야 할 양금씨가 여전히 지역주의와 보스정치로 우리의 선진정치를 가로막고 있다. 정당은 민생안전과 민생향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종전의 권력추구에서 민생지향으로 정치가 이행되어야 한다.이제는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들어 정책에 반영해가는 정밀주의 정치시대가 시작됐다. 21세기를 담당할 우리 정치의 주역은 바뀌어야 한다.건강한 보수세력과 합리적이고 온건한 개혁세력,신세대 젊은 층이 3두를 이뤄 개혁과 변화라는 마차를 이끌어야 한다. 과거청산은 미래창조를 위한 것이다.과거나 오늘의 문제점을 그대로 지키려고만 하는 것은 수구일뿐 보수가 아니다.진정한 보수주의는 개혁주의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정채철 의원­국민회의/“정국우나영에 야당 협력 이끌어내야”/「5·18」 진상 규명 명확히… 피해자 명예 회복해야 「비자금」과 「5·18정국」으로 대변된 작금의 상황은 크게 네가지의 문제점을 던져주었다.첫째 정경유착이라는 정치문화의 뿌리깊은 부패구조를 드러냈다.둘째 대통령이 퇴임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비축해야 한다는 방식의 그릇된 정치풍토를 드러냈다.셋째 문민정부라고 불리는 현정권 마저도 권위주의적 비민주적 통치관행에 젖어있음을 드러냈다.넷째 천문학적 선거비용이 소요되는 후진적 정치환경 문제를 드러냈다. 5·18특별법 제정에 반대의사를 천명했던 현정권이 어느날 갑자기 수용한 것은 노태우 정권이 6·29선언으로 국면을 전환했던 방안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5·18특별법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고,내란 외환 군사반란 이적죄 등 반국가적 범죄행위와 국제인권법상의 집단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하며,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검찰은 이원조 금진호씨 등 현정권 정치자금 조달의 핵심자들은 물론 자의 타의로 자금을 지원했던 재벌기업도 불기소 처분했다.이탈리아 정계와 재계의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운동,즉 마니 플레테(깨끗한 손)를 주도했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검사의 『검찰의 철저한 독립과 언론의 성역없는 보도로 수사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수평적 정권교체야 말로 정치혁명이며,정치개혁의 출발이자 완결이다.따라서 김대통령은 후계구도에 연연하지 말고 수평적 정권교체의 토대를 마련할 때 비로소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김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국정운영에 제1야당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국민들은 협력의 시대를 기대하고 있다.
  • 김 대통령 「12·12」 담화에 담긴 뜻

    ◎쿠데타에 짓밟힌 사회정의 재정립/부정축재·반역사적 언행… 화합파괴 판단/“심판 역사 맡기자”서 선회이유 처음 설명 김영삼 대통령은 12일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의지와 견해를 솔직하게 정리하고 있다.전직대통령 두명을 구속하고 5·18특별법을 제정치 않으면 안되는 당위성을 다시 한번 설명하고 향후 정국운영의 방향도 시사했다. 김대통령은 「5·18」등을 역사에 맡기자고 했던 입장을 바꾼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하나는 전직대통령의 엄청난 부정축재다.또 하나는 「역사를 되돌리려는 파렴치한 언행」이라고 했다.전두환 전대통령측이 현정부의 역사 바로잡기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두가지 상황을 접한 김대통령은 이들 「범죄」의 뿌리인 12·12,5·17을 정리해야 진정한 국민화합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풀이했다.「명예혁명」 「제2의 건국」 「법치주의」 「창조의 대업」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근절」등이다.문민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개혁작업이 역사 바로잡기를 위한 터닦기였음을 깨닫게 해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쿠데타에 의해 파괴됐던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재확립하겠다는게 김대통령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쿠데타로 하루 아침에 위계질서가 무너지자 아래 위도 없고,사회를 지탱하는 공정한 기준도 무너졌다고 지적한다.오직 학연·지연·혈연과 패거리 모임이 경쟁에서 이기고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돼버렸다는 것이다.군사문화와 급속한 경제성장은 졸부근성,천민자본주의를 온 사회에 확산시켰다.역사 바로잡기는 사회정의를 바로잡고 정치판을 개혁하며 아울러 이런 가치 전도현상을 바로잡는 작업,「명예혁명」이라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국민과 여야 정당의 협조를 당부했다.「명예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필수적이다.개개인의 소리와 지역감정을 떠난 「이성적 자세」가 요구된다. 여야 정당에게는 당리당략을 버리고 5·18특별법을 올 정기국회 회기안에 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역사 바로 세우기의 법률적 뒷받침에 차질이 없도록 해달라는 주문이다. 이날 담화 내용을 보면 김대통령이 역사 바로잡기를 「정치적 타협」으로 어물쩍 넘어가지는 않을 듯싶다.야당과 신한국당 일각에서 정치 절충을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김대통령의 분위기는 단호하다. 검찰 수사를 통해 12·12와 5·18,그리고 비자금 파문의 진상을 있는대로 밝히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정치권의 대화는 그 뒤의 문제다. 역사 바로잡기에는 시한이 있을 수 없다.김대통령도 「남은 임기를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온 나라가 두 전직대통령의 비리 문제에 휩쓸려 있는 상황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청와대측도 의혹을 남기지 않되 빨리 끝낼수 있다면 그게 더 좋다는 입장이다.검찰이 최근 수사에 채찍을 가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김 대통령 「12·12」 담화 전문 오늘은 우리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12·12사태가 발생한지 열여섯 해가 되는 날입니다. 이 치욕의 날을 맞아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저의 비장한 각오와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우리는 30여년의 긴 세월 동안 군사독재의 억압아래 고통과 슬픔과 좌절의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언론자유를 비롯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뼈아픈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 우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그 과정에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고 말로 다 할수 없는 수모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우리 국민은 마침내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문민정부 수립과 함께 어둠의 시대는 종식되었습니다. 저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대화합을 이루어 국가발전에 필요한 국민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지난 시대의 잘못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화합의 큰 그릇속에 포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시대의 어두움을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국민 여러분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당연히 국민과 역사앞에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반성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전직대통령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부정축재는 온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크게 손상시켰습니다. 또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뉘우치고 용서를 빌기는커녕 오히려 역사를 되돌리려는 파렴치한 언행은 온 국민을 분노케했습니다. 저는 전직대통령의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을 통하여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배반한 이 엄청난 범죄의 뿌리가 12·12와 5·17,5·18에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국민과 역사를 욕되게 한 이같은 작태를 더 이상 국민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에 정의와 법이 살아 있음을 분명히하고 진정한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 이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난 어두운 시대가 남긴 국민적인 아픔과 상처도 보다 근원적으로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21세기 신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그리고 민족정기를 확립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야말로 국민의 자존을 회복하고 나라의 밝은 앞날을 여는 「명예혁명」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동안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이 「제2의 건국」이라는 신념으로 어떠한 반역사적,반민주적 도전도 분쇄하고 이 과업을 반드시 완수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와 법,그리고 양심이 국가와 민족의 항구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확고한 기반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진이냐,아니면 후퇴냐 하는 중대한 민족사적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세계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눈부신 경제발전을 토대로 세계의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나라를 경이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국가로 떠오르느냐,아니면 세계사의 뒤편으로 떨어지느냐는 바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단순한 과거의 정리작업이 아니라 바로 미래를 향한 「창조의 대업」입니다. 우리는 군사문화의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쿠데타의 망령을 영원히 추방함으로써 우리가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나가야 합니다. 어떠한 헌정질서 파괴행위도 단호히 응징하고 법과 정의를 확고히 세워 법치주의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나라를 병들게 한 부정부패의 구조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타파하여 깨끗하고 공정한 선진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인 제가 그 전면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과업이 완수되려면 국민 여러분이 다 함께 나서 주셔야 합니다. 남은 임기동안 그 어떤 도전이나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역사 바로세우기에 모든 것을 다 바치려는 저의 충정을 온 국민이 이해하고 성원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역사 바로세우기」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국회가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에 5·18 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줄 것을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특별법을 통해 12·12와 5·18의 비극을 깨끗이 청산해야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 묵묵히 국토방위에 헌신해 온 우리 군의 명예도 비로소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21세기 조국과 민족의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후손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을 이끌어 줄 가치관을 바로 세워놓는 것입니다.폭력과 비리로 얼룩진 군사독재시대의 암흑과 비극은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그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정의와 법이 총칼보다 더 강한 것임을 그들의 의식에 새기도록 해야 합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며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철리를 그들의 자산으로 삼게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21세기 세계의 중심국가,신한국의 든든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 명예혁명에 온 국민이 나선다는 것은 바로 우리 나라의 자랑이며 우리 민족의 긍지입니다. 역사가 이 시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의 대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역사 바로세우기」의 위업에 다 함께 나섭시다.
  • 입법반대 자민련에 3당 집중포화/「5·18특별법」법사위 심의중계

    ◎신한국­국민회의·민주 “특검제 논란”/신한국­시효 남아있어… 입법으로 명확히/민주­반성않는 헌정 파괴범 단죄해야/국민회의­「12·12」 「5·18」 시효만 특별법으로/자민련­소급입법은 헌정·법치주의 파괴 5·18특별법안을 심의하기 위해 11일 처음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는 소급입법여부와 특별검사제도입의 타당성등을 둘러싸고 여야 4당간에 얽키고 설킨 법리공방이 펼쳐졌다. ○…강신옥 의원(신한국당)이 「헌정파괴범죄의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법안」을 제안설명하고 박희태법사위원장이 이를 야당측 5·18관련법안들이 계류중인 법안심사소위에 넘기려 하자 유수호 의원(자민련)은 『법안의 필요성 여부부터 전체회의에서 다루자』고 대체토론을 요구. 유의원은 『신한국당은 최근까지 헌법위반이라는 이유로 입법을 반대해오다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갑자기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나서 스스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위헌시비를 제기.그러나 장기욱 의원(민주당)은 『12·12,5·18과 마찬가지로 민족정기를 파괴한 친일파와 5·16쿠데타등에 대한 청산문제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자민련의 특별법 반대방침에 일침. ○…유의원은 다시 『12·12가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전제한뒤 『그러나 공소시효가 남아 있던 지난 3년동안 직무를 유기하다가 이제와서 소급입법을 만들려는 것은 대선자금 공개요구를 희석시키기 위한 깜짝쇼』라며 신한국당을 맹비난. 이에 강신옥 의원은 『반란수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시효가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은 법의 상식』이라면서 『따라서 전두환·노태우씨의 공소시효는 아직 남아 있고 이를 입법으로 명확히 하는 데에 추호의 거리낌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이어 장의원은 『막연한 안정희구세력에 영합하려는 사람들과 헌정을 파괴해온 사람들이 반성은 커녕 헌정파괴 운운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면서 『따라서 모든 것을 밝히고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는 특별검사제가 채택돼야 한다』고 특검제의 필요성을 역설. ○…조순형 의원(국민회의)은 『신한국당의 법안도 국민회의,민주당안과 그 목적이나 방향은 같다고 본다』고 전제한뒤 『그러나 위헌시비를 없애기 위해 몇가지 지적돼야 할 문제점이 있다』고 국민회의 법안의 「비교우위론」을 전개.조의원은 『12·12,5·18이외의 헌정파괴사범에 대한 공소시효규정은 특별법이 아니라 일반법으로 규정하는게 낫다』고 말한뒤 『공범의 공소시효정지대상에서 부화뇌동등을 선별 배제한 여당안은 사법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 특별법제정을 전제로 한 논의가 계속되자 함석재 의원(자민련)은 『공소시효는 사법부의 해석문제이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새로 입법을 하게 되면 법치주의와 헌재는 왜 존재하나』고 입법반대론을 피력. ○…국민회의 법안에 대해 변정일 의원(신한국당)은 『앞으로의 헌법파괴 범죄에 대해 일반적으로 시효배제를 규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에 비추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편 신한국당소속이면서도 특별법안서명을 거부한 강재섭의원은 회의시작 2시간쯤 지나서야 모습을 나타냈으나 말없이 자리만 지키다가 법안이 소위에 회부되고 회의가 종료되자 조용히 퇴장.
  • 특별법제정 차질없어야(사설)

    가칭 신한국당이 5·18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야당의 특별검사제 주장과 여당내부의 일부 반대론 등으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우리는 특별법제정의 차질을 경계하면서 5·18특별법은 이번 회기내에 반드시 제정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여야가 역사의 청산과 5·18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같다면 그같은 대전제에서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그전에는 어쨌든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검찰이 이미 전직대통령 구속의 강력한 수사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상황에서 야당이 검찰의 진상규명 의지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 특별검사제 주장을 계속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국민회의측이나 민주당이 특별검사제 없는 특별법의 제정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라면 결국 5·18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등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그것은 곧 겉으로 역사청산을 주장해 온 것과는 달리 5·18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수 없게 된다.현실적으로 특별법의 제정 없이는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은 한걸음도 못나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의 민정계 일부 의원들이 법안제출 서명을 거부하여 반대의사를 표시했다는 소식은 더욱 실망스럽다.당론은 변경될 수 있으며 일단 변경되면 수용하는 것이 조직인의 자세다.특정지역을 넘는 시대적 대의에 따르는 당론변경일 때는 더욱 그렇다.과거의 인연에 얽힌 개인적인 갈등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자숙하면서 지역정서에 영합하기보다 설득하는 용기를 보이는 것이 여당의원으로서 책임있는 행동이다. 지난 한 세대동안 지역간 대립과 가치관의 혼란,그리고 부패정치와 좌익세력 확산등의 근원이 되어 온 헌정질서파괴의 역사를 청산하자는 특별법의 대의가 정치권의 당리와 사익에 훼손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정치권은 불행한 역사의 매듭을 풀어 화합과 전진을 이루자는 결단의 참뜻과 시대정신을 초당적으로 받아들여 열흘 남은 이번 회기안에 특별법제정을 달성하기 바란다.
  • 전씨 단식의 자가당착/박찬구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전직대통령의 옥중단식은 이유야 어떻든 우리 현대사의 비극으로 기록될 일이다.자신이 통치권을 행사한 5공의 정통성을 지키려 한다는 단식의 변에서는 사뭇 비장감마저 감돈다. 그러나 전두환 전대통령의 단식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의아심을 갖게 한다.병보석이나 동정여론을 노린 위장단식이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12·12당시 목숨을 걸고 쿠데타에 항거한 선량한 군인들과 5공시절 민주화를 부르짖다 짓밟힌 시민·학생들은 그의 단식선언을 『웃기는 일』이라고 일축한다.『정쟁의 희생양이 되더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며 「결연한 각오」를 밝혔다는 전씨의 자가당착과 자기모순에는 말문이 막힌다는 표정이다.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83년 재야시절 전씨의 폭압통치에 항의,상도동 집에서 23일간 단식할땐 지금처럼 언론의 조명조차 받을 수 없었던 기억도 떠올린다. 물론 전씨측에도 항변은 있다.『5공의 정통성을 부인하면 당시 모든 통치·외교행위도 정통성이 없어지는데 그로인한 나라의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인가.과거청산과 한풀이의 역사가되풀이된다면 통일이후 김일성 집단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할텐데 통일협상에서 북한측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러면서 『12·12가 계획된 쿠데타가 아니고 5·18도 전씨와 무관하다는 사실은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전씨측의 상황인식에는 그러나 뚜렷한 한계가 엿보인다.도대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정치군인이 정통성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가.무고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인명살상을 지시,방관,승인한 세력들이 「우국」을 부르짖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한 측근은 심지어 『3∼4년안에 (우리가)정권을 잡으면 언론특별법을 만들어 여론재판에 가담한 언론을 싹 쓸어버리겠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이것이 과연 통일과 외교문제를 걱정하는 +집단의 발상이란 말인가. 전씨가 과거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길로 단식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정치인들의 정쟁을 탓하면서 속좁은 자기변명에 연연할 때도 아니다.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진실로 목숨을 버릴 각오라면 진상을 털어놓고 참회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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