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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의 마법…노트르담 성당 대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찾았다

    SNS의 마법…노트르담 성당 대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찾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상처를 입기 직전 촬영된 행복한 부녀의 사진이 결국 주인을 찾았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NBC뉴스 등 해외언론은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두손을 맞잡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이 트위터 사용자들의 도움으로 주인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이 사진은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이기 1시간 전에 촬영된 것이다. 사진 촬영자는 미국 미시간 주 출신의 브룩 윈저로 당시 그녀는 유명 관광지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부녀를 발견해 촬영했다. 성당 앞에서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빙글 돌리는 아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것. 이렇게 추억 속의 한장으로 끝날 사진이었지만 1시간 후 상황은 급변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쳐 지붕 구조물과 성당 내부 목재 장식으로까지 번져나간 것이다. 파리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사투 끝에 잿더미가 될 위기는 면했지만 이 사진 속의 배경은 부녀의 미소처럼 빛날 수 없게됐다. 이후 윈저는 "트위터가 마법을 부려 사진 속 남자를 찾기를 바란다"면서 사진 속 남자를 찾는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에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곧 20만 번 넘게 리트윗되면서 빠르게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관심을 모은 것. 그리고 지난 18일 윈저는 "(사진 속 부녀) 찾기가 끝났다"며 후일담을 알렸다. 윈저는 "이 사진이 그 가족에게 전달됐다. 다만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가족은 익명으로 남길 원했다"면서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한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날 화재로 18세기에 세운 첨탑이 무너지고 지붕의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성당 재건공사를 5년 이내 마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피해가 커서 완전한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논란 속에 취임한 이미선 헌법재판관 “6년 후 박수 받으며 퇴임하겠다”

    논란 속에 취임한 이미선 헌법재판관 “6년 후 박수 받으며 퇴임하겠다”

    이 재판관 주식 거래 의혹에 사과문 재판관 “편견, 독선 경계하겠다”주식 거래 의혹에 휩싸이면서 우여곡절 속에 취임한 이미선 신임 헌법재판관이 취임사를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재판관은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그간 국민 여러분과 헌법재판소에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20년 간 공직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으나 임명 과정을 통해 공직자의 행위는 위법하지 않거나 부도덕하지 않은 것을 넘어 한 치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국민 여러분의 질타를 겸허히 수용하며 마음 깊이 새겨 행동 하나 하나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재판관은 “제가 임명된 것은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익이 헌법 재판에 반영되고,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가 충실히 보호돼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에 따른 것임을 안다”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기본권을 보장받도록 노력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다양한 가치관과 주장을 균형 있게 반영하고, 정치·이념적 갈등이 첨예한 분야에서도 중립성과 균형을 잃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어 “6년 후 국민의 따뜻한 박수를 받으며 퇴임하고, 퇴임 이후에도 공익을 위한 새로운 일에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취임한 문형배 신임 헌법재판관은 “동료 재판관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토론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시각에 열린 자세로 대하고, 소통과 성찰을 통해 편견, 독선이 자리잡지 않도록 경계하고 정진하겠다고”도 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노트르담 성당 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사진…SNS 덕 주인 찾았다

    노트르담 성당 화재 직전 촬영된 부녀 사진…SNS 덕 주인 찾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상처를 입기 직전 촬영된 행복한 부녀의 사진이 결국 주인을 찾았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NBC뉴스 등 해외언론은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두손을 맞잡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이 트위터 사용자들의 도움으로 주인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이 사진은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이기 1시간 전에 촬영된 것이다. 사진 촬영자는 미국 미시간 주 출신의 브룩 윈저로 당시 그녀는 유명 관광지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부녀를 발견해 촬영했다. 성당 앞에서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빙글 돌리는 아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것. 이렇게 추억 속의 한장으로 끝날 사진이었지만 1시간 후 상황은 급변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쳐 지붕 구조물과 성당 내부 목재 장식으로까지 번져나간 것이다. 파리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사투 끝에 잿더미가 될 위기는 면했지만 이 사진 속의 배경은 부녀의 미소처럼 빛날 수 없게됐다. 이후 윈저는 "트위터가 마법을 부려 사진 속 남자를 찾기를 바란다"면서 사진 속 남자를 찾는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에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곧 20만 번 넘게 리트윗되면서 빠르게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관심을 모은 것. 그리고 지난 18일 윈저는 "(사진 속 부녀) 찾기가 끝났다"며 후일담을 알렸다. 윈저는 "이 사진이 그 가족에게 전달됐다. 다만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가족은 익명으로 남길 원했다"면서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한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날 화재로 18세기에 세운 첨탑이 무너지고 지붕의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성당 재건공사를 5년 이내 마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피해가 커서 완전한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BTS, 7명의 놀라운 젊은이들” 영향력 있는 100인에

    “BTS, 7명의 놀라운 젊은이들” 영향력 있는 100인에

    방탄소년단(BTS)과 국제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이회성(74) 의장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2019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타임은 매년 세상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두드러지게 변화시킨 개인이나 집단 100인을 선정해 발표해 왔다.BTS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연이자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라미 말렉,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포함된 아티스트 부문 17인에 포함됐다. BTS의 추천사를 쓴 미국의 팝스타 할시는 “BTS는 놀라운 재능과 헌신으로 정상에 다다랐다”면서 “그 뒤에는 음악이 언어의 장벽보다 강하다고 확신하는 7명의 놀라운 젊은이들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BTS는 지난해 ‘타임 100’ 후보에 올라 독자 온라인 투표 1위를 기록했으나 최종 후보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리더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 의장은 이회창(84) 전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으로 2015년부터 세계기상기구와 유엔환경계획이 1988년 공동 설립한 IPCC를 이끌고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한 평가보고서 제출을 주 임무로 하는 IPCC의 회원국은 195개국에 이른다. 이 의장의 추천사를 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 의장은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과학적 이해를 세계의 정책결정자와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김혜련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2019 장애인의 날 기념식’ 축사

    김혜련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2019 장애인의 날 기념식’ 축사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혜련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서초1)이 지난 17일 오전 11시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개최된 ‘2019 장애인의 날 기념식’ 행사에 참석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날 행사에는 윤준병 행정1부 시장, 김영호 국회의원,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외 장애인과 일반 시민 등 약 3000여 명이 참석해 장애인의 날을 축하했다. 김 위원장은 “서른아홉 번째 장애인의 날을 축하드리고, 서울시 복지상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존경의 인사를 보낸다”라는 인사말로 축사를 시작하며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기관 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권리는 과거에 비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장애인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제한된 재원 내에서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장애인의 실질적인 기본권 보장과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제2차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함께 고민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고 말했다.끝으로, 김 위원장은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해준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행복한,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가 정착되기를 바란다”라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기념행사 후 김 위원장은 행사장에 마련된 중증 장애인 생산품 전시장, 직업재활시설 생산품 전시장 등을 돌아보고 관련자들을 격려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정 요인 유해 봉환 1순위 돼야… 김원봉보다 의열단이 더 중요”

    “임정 요인 유해 봉환 1순위 돼야… 김원봉보다 의열단이 더 중요”

    올해 1월부터 서울신문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에 있는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추적해 임정의 역사와 인물, 이슈 등을 망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12회)과 1919년 3·1운동의 성과와 의의를 담은 ‘3·1운동 100년’(12회) 기획을 선보였다. 이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 시리즈를 결산하고자 지난 15일 서울 용산 효창공원에서 ‘새로운 100년 대한민국의 과제’를 주제로 전문가 대담을 가졌다. 2005년 국내 최초로 김원봉(1898~1958년) 평전을 출간한 소설가 이원규(72)씨와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김주용(53)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가 함께했다.-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가장 큰 의의는 어디에 있나. 이원규 “3·1운동의 결과로 임정이 생겨났다. 1919년 여러 임정이 하나로 합쳐진 뒤 끝없는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다. ‘식물 정부’로 전락해 명맥만 유지하던 때도 있었다. 말 그대로 갈등과 분열의 역사였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 최초로 근대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적은 힘이나마 항일 투쟁에 매진한 독립운동 총괄체였다. 왕족이나 정부 계승자도 아닌 이들이 임정을 세워 30년 가까이 제국주의 국가와 대결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김주용 “임정에서 활동한 김창숙(1879~1962)이 3·1운동 직후인 1919년 7월 중국 광저우에서 쑨원(1866~1925)을 만나 ‘조선 청년들이 군사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쑨원은 “(제국주의 세력의) 노예적 삶을 살다가 10년이 채 못 돼 대혁명(3·1운동)을 일으킨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드문 일”이라며 “조선의 독립이 없으면 중국의 독립도 없다”고 극찬했다. 1921년 11월 쑨원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베이징 군벌정부에 대항해 광둥에 호법정부를 세우자 신규식(1880~1922)도 임정 국무총리·외무총장 자격으로 그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이런 노력이 쌓여 한인 독립운동 세력은 중국에서 조선인 군장교를 육성할 수 있게 됐고, 이들은 훗날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대 등으로 성장했다. 중국공산당의 저우언라이(1898~1976) 등은 자신들의 항일 투쟁에 기꺼이 동참한 조선의용대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3·1운동으로 시작된 우리의 항일 노력이 중국인들을 감동시켰고 이는 결국 독립에 이르는 기초가 됐다.”-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김주용 “북한과 중국 등에 산재된 임정 요인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사업이 1순위가 돼야 한다고 본다. 대한민국 정부는 임정을 계승했다며 임정 수립 100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한다. 하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피흘리며 헌신한 임정 국무위원들에 대한 유해 송환 작업에는 손을 놓고 있다. 최우선 과제인데도 안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정 요인 수십명이 잠들어 있는 중국 충칭의 허상산 한인묘지는 버려진 상태다. 일부 유해는 국내로 봉환됐지만 나머지는 발굴조차 못했다. 이젠 정상적인 방법으로 유해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해 DNA 분석이라도 해야 한다. 아직도 지하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임정 요인들이 있다.” 이원규 “임정 요인의 유해를 발굴하고 이를 기리려는 것은 동양의 보편적 사고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진정성을 보이면 주변국도 이해해 줄 것으로 본다.” 김주용 “1949년 신중국이 건립되고 정확히 1년 뒤인 1950년 허베이성 한단에 우리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진기로예 열사릉을 세웠다. 1942년 5월 일본군의 팔로군 소탕전에 맞서다가 희생된 조선의용군 윤세주(1901~1942)와 진광화(1911~1942)의 묘도 거기에 있다. 중국은 국가를 세우자마자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부터 모셨다. 우리가 아니면 임정 요인들을 과연 누가 기억하고 챙길까. 3·1운동과 임정 100주년인 올해가 지나면 이들에 대한 관심 또한 식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이런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임정 100년을 계기로 학계나 우리 사회가 좀더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원규 “현재 우파 위주로 진행된 독립운동사 연구의 범위를 민족 전체로 넓혀야 한다. 특히 남과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연안파’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 연안파는 중국에서 항일 투쟁을 하다가 해방 뒤 입북한 조선의용대 출신을 말한다. 김원봉(1898~1958)이나 김두봉(1889~1961) 등이 해당한다. 이들은 일제와 가장 치열하게 싸웠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김주용 “이제 대한민국이 김원봉을 품어야 할 때가 됐다. 단순히 ‘북으로 올라간 사람에게 서훈을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60년 삶의 절반가량을 일제와 전쟁을 치르며 보냈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요”라는 영화 대사 정도로 인식하기에는 너무도 큰 일을 한 인물이다. 김원봉은 다른 월북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돼 있지 않다. 그가 숙청을 당한 탓에 북에서도 우리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김원봉을 인정하는 것은 통일 이후 대한민국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김원봉 재평가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원규 “2005년 우리나라 최초로 김원봉에 대한 평전을 출판했다. 글을 쓸 때만 해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잡혀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웃음). 하지만 의외로 김원봉 평전에 대한 평가는 진보나 보수 세력 모두 우호적이었다. 김원봉이 누군지 잘 몰랐던 시절이기에 좌우 모두 그의 업적만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서훈 논란이 편가르기로 격화돼 안타깝다. 이념의 잣대로 그를 보기에 진영에 따라 평가가 양극단으로 갈린다. 최근에는 일부 보수언론이 그를 악의적으로 비난한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띄우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 퍼지자 이를 막아보려는듯 하다.” 김주용 “김원봉에게 반감을 가졌던 대표적인 이로 장준하(1918~1975)를 들 수 있다. 그는 한국광복군 시절 후방에 배치돼 있었는데, 당시 광복군 제1지대장 및 부사령관인 김원봉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런 인식이 해방 이후 출간된 ‘사상계’ 등에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제언할 것이 있다면. 이원규 “최근 정부나 언론이 유관순 등 몇몇 인물을 부각시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는 느낌이다. 과거 정부도 그랬지만 이번 정부도 독립운동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3·1혁명’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하는 것 등이 그렇다. 김원봉도 마찬가지다. 그가 중요한 건 맞지만 더욱 중요한 건 그가 활동했던 무장단체 ‘의열단’이다. 의열단 용사 가운데 이종암(1896~1930) 같은 분은 탁월한 능력을 보였음에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김주용 “3·1운동이 실패했다고 본 청년 10여명이 1919년 11월 중국 지린성에서 무장투쟁단체를 세웠다. 이들은 21살짜리 애송이(김원봉)를 리더로 세웠다. 4년 뒤인 1923년 상하이 일본 총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의열단이 1000여명 규모로 성장했다고 적혀 있다. 별다른 지원도 없이 시작한 의열단이 그렇게 빨리 성장한 것은 지금 역사학자의 눈으로 봐도 경이롭다. 한국 독립운동사의 큰 축인 의열단에 대해 언론이 별 관심을 두지 않아 아쉽다.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많은 조선인이 그곳에 있었고 우리 역사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줬지만 박정희(1917~1979)가 만주국 장교 출신이다보니 그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돼 왔다.” 정리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첨탑 ‘수탉 청동’ 잿더미서 극적 발견… ‘16개 조각상’도 구사일생

    첨탑 ‘수탉 청동’ 잿더미서 극적 발견… ‘16개 조각상’도 구사일생

    90m 높이 첨탑 붕괴 때 사라진 청동상 佛 건축연맹회장이 폐허 뒤지다 찾아내 가시면류관·장미 창 3개·오르간도 무사 첨탑 16개 조각상 나흘 전 옮겨 살아남아 드니 유물 등 예술품 5~10% 훼손 추정 일부 성물은 곧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송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대성당의 첨탑 끝을 장식했던 수탉 청동조상이 화재 폐기물 더미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첨탑과 목조 지붕이 화마에 무너지면서 첨탑 안에 보관돼 온 주느비에브 성녀와 드니 성인의 유골 등 유물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수탉 청동조상을 포함해 파이프 8000개로 만든 15세기 파이프 오르간, 가시면류관·성 십자가 등 가톨릭 성물,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3개,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착용한 튜닉(상의) 등 대부분의 역사적 명물이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노트르담대성당이 소장한 역사적 명물 가운데 수탉 청동조상이 잿더미 속에서 극적으로 회수됐다. 이 청동조상은 성당 지붕 위 첨탑 상단에 설치돼 90m 높이에서 파리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첨탑이 붕괴되면서 청동조상도 함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됐었지만 프랑스 건축연맹 자크 샤뉘 회장이 화재 현장 폐허 더미를 뒤지던 중 극적으로 발견했다. 수탉은 프랑스의 국가적 상징이다. 샤뉘 회장은 대체로 온전한 모습의 조각상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믿을 수 없다”고 감격했다. 수탉 청동조상은 프랑스 혁명 이후 노트르담대성당 첨탑을 복원한 건축가 비올레 르 뒤크의 작품으로 1935년 10월 당시 파리교구 대주교이던 베르디에 추기경에 의해 ‘영적 피뢰침’으로 첨탑 끝에 설치됐다.예수의 12사도와 4명의 신약성서 복음서 저자를 상징하는 16개 조각상은 160년간 성당 첨탑을 장식해 왔으나 화재 발생 불과 나흘 전 복원작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진 덕분에 운좋게 살아남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화재 초기 소방관들이 옮겨 놓은 가시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가 썼던 것으로 알려져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뭇가지를 원형의 다발에 엮은 것으로 원래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6세기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1238년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구입해 파리로 가져왔다. 노트르담대성당의 기념비적 유물인 대형 파이프 오르간도 다행히 심한 손상 없이 회수됐다. 다만, 프랑스 당국은 이번 화재로 무너진 첨탑 안에 1935년부터 보관돼 온 드니 성인과 주느비에브 성녀의 유골·머리카락·치아 등이 포함된 유물은 여전히 수색 중이다. 1630년부터 1707년까지 매해 5월 초 봉헌된 50개 그림(더 메이스) 가운데 화재 당시 성당에 전시돼 있던 13개 그림은 화재 진압을 위해 뿌려진 물에 의해 일부 손상돼 복구가 필요하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막심 큐뮤넬 종교유산관측소 사무총장은 “이번 화재로 대성당 예술품의 5~10%는 훼손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시뻘겋게 타오르는 화염 속을 헤치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 가시면류관 등을 구해낸 영웅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파리소방서 사제로 복무 중인 장마크 푸르니에 신부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유물을 꺼내기 위해 소방대원과 시민이 힘을 합쳐 만든 ‘인간 사슬’ 선봉에 섰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화염을 피한 성물과 유물 일부는 파리시청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으며, 곧 루브르박물관으로 이송될 계획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한국 감독 100명, 한국영화 100년 기념하는 100초짜리 영상 100편 만든다

    한국 감독 100명, 한국영화 100년 기념하는 100초짜리 영상 100편 만든다

    한국영화 감독 100명이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100초짜리 영상 100편을 제작한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펼쳐지는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을 발표했다. 이날 회견에는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장호 감독과 배우 장미희, 공동부위원장인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과 유인택 동양예술극장 대표, 홍보위원장인 배우 안성기 등이 참석했다.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1919년 10월 27일 처음 상영된 ‘의리적 구토’는 한국 최초의 영화로 꼽힌다. 영화계는 이 작품이 처음 상영된 날을 한국영화가 탄생한 기점으로 보고 ‘영화의 날’로 제정해 해마다 기념한다. 추진위는 한국영화 100년을 맞은 올해 10월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 ‘의리적 구토’를 주제로 한 기념공연과 영화 촬영현장 재현, 타임캡슐 봉인식 등이 진행된다. 전날인 26일에는 광장 곳곳에서 전시와 함께 한국영화음악 축제가 펼쳐진다. 또 추진위는 100인의 감독을 선정해 영상 100편을 만들고 이 영상을 오는 7월 초부터 매일 1편씩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한다. 이민용 영상제작분과 소위원장은 “한국영화감독협회와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추천받아 100명을 선정하며 남녀 감독 비율을 5:5로 맞췄다”면서 “이미례, 강제규, 이준익, 윤제균 감독 등이 참여할 예정이며 이달 내로 감독 선정을 마무리하고 5월부터 제작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영화 100년 역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 100년을 전망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10년,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출 때’(가제)도 제작한다. 한국영화 100가지 주요 장면과 사건을 소개한 단행본 출판물, 영화인 인명사전, 기념우표 등도 만든다. 추진위 공동 위원장인 배우 장미희는 “일제의 억압과 폭압에 항거한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한국영화 역시 태동했다”면서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지난 100년간 한국영화를 개척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한 모든 영화인들을 기리는 동시에 미래의 장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터키 에르도안 사위 급파해 성난 미국 달래기

    터키 에르도안 사위 급파해 성난 미국 달래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자신의 최측근인 사위를 미국에 보내 성난 미국 달래기에 나섰다. 미국은 최근 터키가 러시아제 방공미사일 S400을 구입하는 데에 불편한 심기를 보여왔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 터키의 S400 방공 미사일 구매 계획 등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동석했다. 이날 만남과 관련 알바이라크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S400 도입 과정에 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매우 합리적으로 우리 말을 들었다. 대화가 매우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밝혔다.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양국 공동 주최 행사에서 “터키는 명백히 미국의 적국이 아니다”면서 “미국과 터키가 적대관계가 아니므로 터키의 S400 구매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S400 구매 결정이 터키의 경로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터키의 헌신은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S400 도입으로 나토의 군사 기밀이 러시아에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S400은 나토 미사일 방어체계에 편입되지 않을 것이고, 나토에 연계된 터키 무기와도 분리해서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브라힘 칼른 터키 대통령실 대변인도 “미국이 S400을 이유로 터키를 F35 프로젝트에서 방출한다면 터키가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미국이 터키와 결별을 감수할 수 없다고 본다”며 미 설득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마포 ‘지방행정 발전·개선’ 전국 최고

    마포 ‘지방행정 발전·개선’ 전국 최고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최 ‘제4회 지방자치대상’에서 박홍섭 전 서울 마포구청장이 지방행정 분야에서 수상했다.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지방자치 발전과 지방분권 확대에 헌신·기여한 유공자를 발굴해 그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수여하는 상이다. 16일 마포구에 따르면 시상식은 지난 12일 대전 서구 오페라컨벤션홀에서 열린 2019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열렸다. 박 전 구청장 수상 분야는 지방행정 발전 및 자치제도 개선에 공로를 세운 전직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어진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영상] 세월호참사 5주기, 4·16 그날의 기억

    [영상] 세월호참사 5주기, 4·16 그날의 기억

    지난 12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비극의 아픔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을 찾았다. 차로 다섯 시간 반을 넘게 달려 늦은 아침에 도착한 팽목항. 참사 이후 실종자 구조와 사고 수습, 의료지원을 위해 진도군민 뿐 아니라 전국에서 한 걸음에 달려온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땀이 가득했던 이곳엔 쓸쓸한 적막한 기운만이 맴돌았다.팽목항에서 출발해 조도와 관매도를 운행하는 새섬두레호를 기다리는 여행객과 주민들만 간간이 눈에 띠었다. 배를 기다리며 힘든 시간을 쪼개 가족과 함께 팽목항을 찾아온 박근태(37·동대문)씨는 “딸이 태어난 때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였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만 아니었면 이곳은 정말 아름답고 좋은 곳인데,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도 직접 오니깐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거 같다”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모든 궁금증이 해소될 만큼 밝혀진 건 없는 거 같다. 유가족 분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되겠냐만은 그래도 그분들 제발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심인숙(39·동대문)씨도 “세월호를 추모하는 일이 무시받거나, ‘아직까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오버하지’ 라는 식의 시선들이 없어지길 바라며, 정말 마음 놓고 다 같이 진심으로 슬퍼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슬퍼하는 시선조차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했다.세월호 참사 유가족 중 유일하게 팽목항에 남아 묵묵히 이곳을 지키고 있는 단원고 학생 故 고우재(당시 18세) 아버지 고영환씨. 세월호 참사 후 2014년 10월 말 경기도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내려온 고씨는 지난해 9월 철거된 팽목항 분향소 자리에 임시로 설치된 ‘세월호 기억관’ 옆 컨테이너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5년째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기억공간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고씨는 “이곳 팽목항에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목표다. 그 뒤의 일은 아직 생각 해본 적 없다”며 “국가는 우리 가족을 포함한 모든 피해자 분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나는 아들에게 한 약속만은 꼭 지키겠다”고 했다. 그는 또한 “아들이 천국에선 선배고 난 후배다. 천국에 올라가면 아들에게 살면서 못한 거 속죄할거다. 앞으로도 많이 노력할테니깐 하늘에서라도 지금의 아빠 모습을 많이 지켜봐주고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날 이곳을 찾은 장완익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관련 진상을 최대한 밝힐 수 있는 것만이 피해자분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라며 “진상이 밝혀져야지만 안전한 사회, 안전한 나라 그리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손진호,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nasturu@seoul.co.kr
  • 기억하라 존중하라 그리고… 치유하라

    기억하라 존중하라 그리고… 치유하라

    800여명 나환자 밤에만 걸어 140㎞ 이동… 눈물로 지은 공동체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켜켜이 쌓은 가치… 그 가치 담은 공간●애양원에 대한 무섭고 슬프고 아름다운 단편들 #기억 1. 초등학교 때 아버님을 따라 시골의 할아버지 댁을 두어 번 갔었다. 그곳은 전기도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깡촌’으로 어린 내게도 낯설고 불편한 곳이었다. 그러나 마을 뒷산을 넘으면 바로 바닷가로 내 또래 아이들과 물놀이하는 큰 재미도 있었다. 바다 건너편에 교회가 보이는 녹음 우거진 섬이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친척 아이들이 들려준 얘기는 정말 무서웠다. ‘문둥이’들이 사는 곳이며 그 섬에 헤엄쳐 갔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기억 2. 배정받은 중학교는 성경과목을 가르치는 미션스쿨이었다. 어느 날 담당 목사 선생님이 한 권의 책을 가져와 한 인물을 소개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으로 주인공은 손양원 목사였다.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해 6년간 옥살이를 하다 해방 후 지방 교회의 목회를 맡았다. 공산당의 반란이 일어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총살을 당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아들을 살해한 주범을 용서하고 오히려 양자로 삼는 사랑을 실천했다. 6·25전쟁 때 그 역시 목사라는 이유로 처형을 당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기억 3. 10년 전, 여수공항 뒤에 있는 한 병원을 방문하게 됐다. 애양원이라는 이곳은 원래 미국 선교사들이 세워 나환자들을 수용해 치료하던 곳이었다. 서울의대를 졸업한 김인권 원장(현 명예원장)은 나환자 섬인 소록도에 공중보건의로 자원 복무했고 제대 후 바로 애양병원에 부임해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는 우리 시대의 의인이었다. 동행했던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을 포함한 일행들은 김 원장의 고귀한 삶에 크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40여년 전, 어릴 때 단편적 기억들의 무대는 모두 이곳 전남 여수 애양원이었다. 이제는 강같이 좁은 애양원 앞바다 건너편 공단 지역이 아버님 고향마을이 있던 곳이다. 육지에서 돌출한 반도의 끝을 본 것을 섬이라 착각했고 ‘문둥이’라 두려워한 가상의 대상은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이곳 애양교회에 부임해 한센인들을 돌보다 여순반란사건(여수·순천사건)에 휘말려 두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세 부자의 순교묘지와 손양원기념관이 있는 이곳은 개신교의 성지로 많은 신자들의 순례지가 됐다.●나환자들 사회서 격리돼 비참한 삶… 1909년 벽돌가마터에 환자 첫 수용 처음 방문한 애양원 일원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애양원의 역사는 안타깝고 처절한 이야기다. 한국의 개신교는 조선말 개항기에 주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됐다. 초기 선교사들은 의료 기술을 겸비한 이들이 많았는데, 미국 영사관 의사로 와서 제중원을 설립한 알렌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까지 1000여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활동했는데 그들은 기독교 전파뿐만 아니라 현대적 의료시설을 설립하고 교육기관을 정착시켰다. 1909년 봄날, 미국 남장로회에서 파견한 목포선교부의 포사이트 선교사는 광주의 동료 선교사가 위중하다는 소식에 말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 도중 길가에서 여자 나환자를 발견해 광주로 호송했고 광주진료소 인근의 벽돌가마터에 수용해 치료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환자들은 치료는커녕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불가촉천민으로 저주의 대상이었다. 당시 벽돌가마터 여환자의 비참한 모습은 이랬다. “몇 달 몇 년 동안 빗질도 않고, 옷은 더러운 넝마이며, 손발은 짓물렀다. 온몸에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한 발은 짚신을, 다른 발은 두꺼운 판자조각을 묶어 걸을 때마다 심하게 절뚝거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광주선교부에 한센환자의 집이 설치됐고 2년 후에는 광주나병원이 출범했다. 애양원의 역사는 바로 1909년 4월 7일, 벽돌가마터에 여환자를 수용한 날부터 시작한다. 초대 원장인 윌슨(우일선) 선교사는 체계적인 치료는 물론 나환자들의 자립자생을 위해 목공, 석공, 직조, 의료기술까지 자체 기술자들을 양성했다. 또한 교회를 설립해 신앙을 통한 재활을 시도했다. 이 신앙적 한센공동체는 이후 애양원의 전통이 됐다.일제는 도시 공공위생을 문제 삼아 나병원 이전을 강권했고 1926년 여수 율촌면 신풍리 바닷가로 이전 명령을 내렸다. 800여 나환자와 가족들은 기차도 못 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만 걸어서 무거운 침상과 짐을 들고 140㎞를 이동했다. 이른바 ‘눈물의 이주’ 끝에 애양반도에 한센인의 자치 공동체, 애양원을 건설하게 된다. 반도의 중앙에 병원과 교회를 세우고 그 남쪽에 여환자 숙소를, 북쪽에 남환자 숙소를 각 20여동 지었다. 이외에도 기술학교, 이발소, 창고, 오락실 등 총 110동의 건물을 세웠다. 현지에서 채취한 응회암과 사암들로 돌벽을 쌓고 목조 지붕틀을 올린 간략한 서양식 건물들이었다. 목수, 석공, 토공 등은 모두 훈련된 한센인들로, 자체 인력과 기술로 완성한 공동체 건축이었다. 해방 후에는 한성신학교를 세워 한센인 교역자를 양성했다. 첫 방문 당시, 남환자 숙소는 모두 철거돼 그 터에 한센인 정착지인 도성마을이 자리잡았다. 병은 완치됐지만 신체적 불구로 남은 음성한센인들의 자립갱생을 위한 마을이었다. 여환자 숙소는 폐가인 채로 14동이 남았고 한성신학교는 토플하우스라는 숙소로 개조했다. 원래 병원 건물을 애양병원역사관으로 개조했고 입구 쪽에 새 병원 건물을 크게 세운 상태였다. ●1967년 건축가 조자룡 설계·김종규 전시관 증축 계획… 장장 한 세기 걸친 건축 애양원 설립부터 1950년대까지 건설된 모든 건물들은 선교사들이 계획하고, 한센인들이 건설한 일종의 민간건축이었다. 굳건한 막쌓기 돌벽과 직선적인 서양식 지붕들은 마치 18세기 유럽의 마을에 온 듯 이국적인 경관을 이룬다. 경제적 부족과 기술적 제약으로 건물은 비록 낮고 허술하지만, 소외된 이들의 초보적인 안식처로서 충분한 근원적인 건축들이다.1967년 새로운 병원을 세우게 되는데 설계를 건축가 조자룡(1926~2000)이 맡았다. 해방 직후 하버드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스웨덴 설계회사에서 실무를 쌓은 후 귀국해 1950~60년대를 풍미한 풍운아였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분을 뵙게 돼 1박2일로 말씀을 들었는데, 아마도 설계한 건물이 150개 이상은 되리라 회고했다. 그럼에도 조자룡은 늘 한국의 전통미에 관심을 두었다. 1970년 민학회를 조직했고, 최대의 민화 수집가로서 사설 민속박물관까지 경영했다. 새 애양병원에 도입된 휘어진 처마나 쌍사자석 등을 모티브로 한 현관 기둥도 그가 노력한 전통 계승의 표현이었다.2010년 애양원 방문 때 2년 후 열릴 여수해양엑스포에 대비해 여환자 숙소 잔해들을 철거하고 새롭게 펜션을 지을 계획이라고 들었다. 나는 남겨진 건축적 흔적을 살려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그 설계를 자원해서 맡았다. 기존 건물의 돌벽을 최대한 보존하고, 그 뒤편에 단순하고 무성격한 새 숙소를 부가했다. 원 숙소부는 새 숙소의 안마당이 되고, 원 건물의 정면만이 돋보이도록 설계 전략을 세웠다. 애양원 개척 당시의 소중한 건축유산을 보존하고 새롭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 병원이었던 역사관은 외벽의 풍화가 심하고 비좁았다. 함께했던 서 회장이 비용을 쾌척해 기존 역사관을 수리하고 넓은 새 전시관을 증축하게 됐다. 이 설계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창조적 건축가 김종규가 맡았다. 그 역시 기존 건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뒤편에 단순한 형태의 백색 전시관을 덧붙였다. 기존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내부공간의 깊이와 빛의 변화를 담은, 외유내강형의 세련된 건축이다.거의 한 세기에 걸쳐 애양원은 수많은 이들의 건축적 노력을 결집해 왔다. 선교사들과 한센인들, 조자룡, 김봉렬, 김종규 등 전문, 비전문 건축가들은 이국적인 돌집부터 미니멀한 현대적 공간까지 다양한 형태와 공간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과거의 의미를 기억하고, 앞선 건축의 흔적들을 존중하며, 총체적인 환경의 상처와 기억의 아픔들을 치유하려는 소중한 가치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넷플릭스 CEO, 페북 이사회서 하차

    넷플릭스 CEO, 페북 이사회서 하차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58)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이사회에서 하차한다고 ‘더 버지’ 등 미국 정보통신(IT) 업체들이 12일(현지시간) 전했다.페이스북은 2011년부터 이사회에 몸담아온 헤이스팅스가 2019년 주주총회에서는 이사로 재선임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페이스북 대변인은 “리드는 8년간 봉사했다. 그의 헌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신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 부사장 페기 앨퍼드가 이사회의 새 멤버로 합류한다. 앨퍼드는 백인 남성 중심의 페이스북 이사회에 입성하는 첫 흑인 여성이다.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페기는 여러 이종 영역에 걸쳐 경험을 쌓은 흔치 않은 전문가 중 한 명”이라며 “우리 회사가 직면한 기회와 도전에 대단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페이스북이 헤이스팅스와 결별한 것은 SNS인 페이스북이 향후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한 사전포석이며 넷플릭스와 오래도록 함께 해온 ‘적과의 동침’을 마침내 끝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항공계 별 애도합니다”… 김연아 등 각계각층 줄잇는 조문

    “항공계 별 애도합니다”… 김연아 등 각계각층 줄잇는 조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례 사흘째인 14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 특1호실에는 각계 인사들의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조문객을 맞았다.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장례 절차가 시작된 지난 12일부터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조 회장과 인연을 맺은 김연아 전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이날 오후 3시쯤 검은 정장 차림으로 빈소를 찾았다. 김연아는 “고인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헌신한 분”이라면서 “한국 동계스포츠를 위해 헌신한 고인에게 감사하고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조 회장을 추모했다. 이 밖에 현정화 한국마사회탁구단 총감독, 유남규 여자 탁구 국가대표 감독, 김택수 남자 탁구 국가대표 감독 등 수많은 체육계 인사들이 조 회장의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지난 13일에는 박성현 프로골프 선수, 이승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12일에는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이 빈소를 찾았다. 재계 인사들의 애도 행렬도 사흘 내내 줄을 이었다. 지난 13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조문했다. 장례 첫날인 12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이 일찌감치 빈소를 찾아 조 회장의 넋을 기렸다. 최태원 회장은 “재계의 어른이자 존경하는 어른을 잃어 안타깝다”며 애도를 표했다. 손경식 회장은 “우리나라 항공산업을 일으키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분인데 안타깝다”면서 “최근 여러 가지 문제로 심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좋은 길 가시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항공업계 맞수인 아시아나항공의 한창수 사장은 지난 12일 빈소를 찾아 “너무 훌륭하신 분이 가셔서 안타깝다”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유산 상속 문제로 다퉜던 형제들은 지난 13일 큰형인 조 회장의 영정과 마주했다. 바로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의 둘째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넷째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다. 세 형제는 2002년 부친인 조 전 회장이 별세했을 때 상속 문제로 ‘형제의 난’을 겪었다. 조정호 회장은 빈소에 약 2시간 가까이 머무르다 자리를 떴다. 정·관계에서는 문희상 국회의장,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나경원 원내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다녀갔다. 대한항공 측은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 사흘간 누적 1500여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조 회장의 장례 절차는 16일까지 한진그룹장으로 5일간 엄수된다.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 선영이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구로, 국가·독립유공자 명패 부착 추진

    구로, 국가·독립유공자 명패 부착 추진

    서울 구로구가 국가·독립유공자 명패 부착 사업을 추진한다고 14일 밝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 분위기를 조성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다. 이성 구청장은 지난 10일 이용기 서울남부보훈지청장과 함께 독립유공자 고 최종화(1896~1919) 선생의 손자인 최용희 광복회 구로구지회장의 자택을 방문해 올해 첫 독립유공자 명패 부착을 진행했다. 최종화 선생은 3·1운동 당시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복역 중 순국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 구청장은 이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대의 노력에 큰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구로구는 이날 방문을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명패 부착 사업을 잇는다. 명패 부착 사업은 국가보훈처와 함께 2021년까지 해마다 진행된다. 올해는 관내 국가유공자 1421명과 독립유공자 유족 68명, 민주유공자 7명 등 모두 1496명이 대상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여군, 그는 왜 직업군인을 택했나

    [밀리터리 인사이드] 여군, 그는 왜 직업군인을 택했나

    여군 1만명 시대…‘최초’ 수식어도 새롭지 않아경제적 이유보다 국가 헌신·남성 중심 조직 도전일부 남성화 동화 경향…성평등 더욱 강화해야 여군. 그들에게 시련의 기간은 길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여군’은 단지 병과의 하나였습니다. 보병·포병·기갑처럼 하나의 기능으로 분류했던 겁니다. 모든 여군에게 임신이 허용된 것도 1988년부터입니다. 부사관은 결혼과 임신이 모두 금지됐고, 장교는 결혼만 가능했습니다. 여군에게 결혼·임신은 제대를 의미하는 거였죠. 여군은 2002년까지 ‘여군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고, 지난해에야 여군 보직제한 규정이 완전히 폐지됐습니다. 그래도 극심한 차별을 감수하고 군문(軍門)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 수는 해마다 늘었고 2016년 여군 장교와 부사관은 1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여군에 붙는 ‘최초’, ‘1만명 시대’라는 수식어가 더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여군이 군 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남성을 밀어내고 군을 택한다며 비하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직장’으로서 군대를 선택하는 게 비난받을 일일까요. 과연 경제적인 이유로 여군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돈이 이유였다면 군 생활 하지 않았을 것” 마침 조선웅 육군사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달 관련 보고서를 냈습니다. ‘여성의 군대 지원 동기에 관한 연구’입니다. 갓 임관한 1년차 소위부터 26년차 중령까지, 11명의 여군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비전투병과는 2명뿐이었고 나머지 10명은 전투병과 소속이었습니다. 이들 중 7명은 경제적 이유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3명은 약간 언급하긴 했지만 지원 이유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2명은 “돈이 이유였다면 아마 군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유일하게 경제적 이유로 군에 지원했다고 한 응답자는 “대학 졸업 후 바로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일부 발언을 옮겨보겠습니다. “나는 1990년대에 잘 나가는 과외선생님이었습니다. 한 달에 150만원씩 벌었습니다. 소위 딱 달고 55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행복하게 군 생활을 했습니다. 돈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습니다.”(26년차 중령) “경제적 안정성이 이유였다면 교사나 공무원이 됐을 텐데 왜 군인이 됐겠습니까. 교대에 합격했지만 진학하지 않았습니다.”(6년차 대위) 반면 ‘국가에 대한 헌신’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장교들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제의 침략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을 떠올렸습니다. ‘국제사회 기여’를 거론한 여성도 1명 있었습니다. 여성의 애국심을 저평가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두 번의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9·11 테러 등 전쟁을 겪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여성의 군대 지원율이 높아졌다고 합니다.한 응답자는 직업을 생각할 때 ‘국가에 대한 기여’를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일제시대(일제강점기)에 대한 내용을 많이 접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가에 힘이 있어야 치욕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지원했습니다.”(12년차 대위) 대다수 여군 장교들은 남성적인 군대에 반발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군대가 왜 남성의 전유물이냐”고 불만을 가졌다가도, “여성도 군대조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일부는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남성적인 군대에서 잘 적응할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군대 분위기가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소수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눈에 쉽게 띄어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내 몫의 역할을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계급을 달고 남성이랑 똑같이 동료로서 역할을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입니다.”(26년차 중령) “‘군대라는 남성 위주의 특수성이 있는 집단에서 소수로 활약하는 여군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멋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10년차 대위) ‘경제적인 이유로’, 더 노골적으로는 ‘돈 때문에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성화된 군 이미지 개선해야…성평등 문화 필요” 다만 조 교수는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도 일부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남성 중심의 군대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남성화된 여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조 교수는 “개인이 조직의 문화에 적응할 때 자신의 문화나 정체성을 버리고 조직의 문화만 받아들이는 ‘동화’와 같은 맥락”이라며 “한국에서 남성화된 군대의 이미지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어 “군대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성평등한 문화 속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지 여군이 남성화돼 또 다른 성차별적 문화를 생산해내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남성화된 여군과 그렇지 않은 여군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했습니다. 과거에 입대해 근무기간이 길수록 이런 ‘남성화’ 경향은 짙어졌고 새로 입대하는 여군 장교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다. 조 교수는 “군에서는 군인의 역할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홍보해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며 “비록 작은 일이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알려 동기부여를 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은 과감히 바로잡아 여군의 지원동기가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교황 남수단 지도자들 앞 ‘무릎’, 수단 군부-알바시르 축출 시위대 충돌할 수

    교황 남수단 지도자들 앞 ‘무릎’, 수단 군부-알바시르 축출 시위대 충돌할 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남수단 정부와 반군 지도자들의 발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11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의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틀 동안 진행된 피정을 마치는 강론을 한 뒤 평소 아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는 유례없이 낮은 모습을 보여줬다. 교황은 “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라”면서 “여러분 사이에 갈등과 의견 충돌이 있겠지만, 이를 여러분 사이에서만, 즉 사무실 안에만 가둬두고 사람들 앞에서는 손을 잡으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남수단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발언을 마친 뒤 갑자기 남수단 지도자들의 앞으로 가더니,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인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키르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 세 명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이날 남수단과 국경을 맞댄 수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가뜩이나 불안한 남수단 평화협정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염려가 이런 행동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도가 1200만명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수단은 2011년 이슬람 국가인 수단에서 독립해 한국인에게는 고(故) 이태석 신부가 헌신적으로 봉사한 곳으로 친숙하다. 이 신부는 2001년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던 남수단의 오지 톤즈 마을에 정착한 뒤 움막 진료실을 만들어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2008년 대장암 선고를 받고, 2010년 선종했다. 남수단은 2013년 말 키르 대통령 지지자와 마차르 전 부통령의 추종자 사이에 교전이 벌어진 이래 5년 동안 40만명이 숨지고, 수백만명이 터전을 잃는 내전의 수렁에 빠졌다.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은 지난해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다음달까지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한편 수단을 30년 통치해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독재자로 꼽혀온 오마르 알바시르(75) 수단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돼 구금 중이다. 4개월 가까이 농성을 벌인 수단 시위대는 또 다시 군부가 통치하는 데 대해 반발하고 있어 정국이 안정될지는 의문이다. 수단 부통령이자 국방장관인 아와드 이븐 아우프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권을 전복했다”고 선언하며 바시르 대통령을 안전한 곳에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AFP통신 등이 전했다. 이븐 아우프 장관은 이어 군사위원회가 앞으로 2년 동안 국가를 통치하고 과도기 말에 공정한 선거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3개월 동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한다고도 발표했다. 아울러 영공을 24시간 동안 폐쇄하고 국경 통행로를 추가 발표가 있을 때까지 폐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단 정보·보안당국은 이날 전국에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한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바시르가 삼엄한 경비 속에 대통령 관저에 있다고 전했다. 또 수단 야당 지도자인 사디크 알마흐디의 아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알바시르와 많은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이 가택 연금 상태”라고 말했다.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정확한 인명 피해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하르툼 거리에서 탱크와 장갑차들이 목격됐으며 국방부 건물 주변에는 군인들이 대거 배치됐다.외신은 군인들이 알바시르 대통령의 집권 여당 ‘이슬람운동’ 본부를 급습했다고 전했다. 군부가 알바시르 대통령의 축출을 발표했지만, 시위대는 민간정부를 요구하며 농성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위 단체들의 연합인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은 이날 국방장관의 발표가 나온 뒤 성명을 내고 “정권이 같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는 군사 쿠데타를 했다”며 “우리는 쿠데타 성명의 모든 내용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군 본부 앞과 모든 지역, 거리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의 빵값 인상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한 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 번졌다. 특히 지난 6일 시위대 수천명이 국방부 건물 주변에서 텐트 농성에 나섰고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 20여명이 숨졌다. 시위를 방관하던 군부가 정권에 등을 돌리면서 알바시르는 권좌에서 밀려났다. 직업군인 출신인 알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6월 민선 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비상령을 선포한 뒤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30년 동안 집권하며 이슬람 국가로 전환하고 기독교 세력을 소외시켰다. 다르푸르 내전은 2003년 다르푸르 지역 자치권을 요구하는,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한 반군과 정부 간 무력 충돌에서 시작해 사망자 30만명과 난민 200만명이 발생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09년과 2010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알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동영상] 수줍게 웃는 이 젊은 과학자, 인류 첫 블랙홀 사진에 결정적 공헌

    [동영상] 수줍게 웃는 이 젊은 과학자, 인류 첫 블랙홀 사진에 결정적 공헌

    11일 아침 신문을 펼친 이들은 인류 최초로 담아낸 블랙홀 사진을 보고 많이 놀랐을 것이다. 지구에서 5000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은하단 중심부에 존재하는 이 블랙홀을 어떻게 우리는 사진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일까? 올해 29세의 케이티 보우먼이 주도한 알고리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고 영국 BBC가 이날 전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강렬하게 묘사됐던 블랙홀이 실제로 사진으로 촬영됐다는 사실이 커다란 놀라움을 안겼고, 그녀의 이름도 트위터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본인도 무척 흥분했던 것 같다. 페이스북에 랩톱 컴퓨터 화면에 떠오른 블랙홀 사진을 바라보며 흔감해 하면서 수줍게 웃는 사진을 올린 것이다. 사진설명으로 “내가 만든 블랙홀 첫 번째 이미지가 재구축되는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믿기지 않았다”고 적었다.그녀가 알고리즘 개발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매사추세츠 공대(MIT) 대학원생일 때부터였다. MIT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 실험실, 하버드대학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와 MIT 해이스택 실험실의 협력을 주도한 것이 그녀였다. 미국 하와이와 애리조나, 멕시코 푸에블라, 스페인 안달루시아, 칠레 아타카마, 남극 등 전 세계 여덟 곳에 흩어져 있는 전파망원경들이 촬영한 사진들과 200여명의 과학자들 컴퓨터를 한데 연결하게 만든 것이 바로 보우먼이 주도한 알고리즘이었다. 이번에 본 블랙홀 사진은 사실 그림자 사진이다. 주변 물질과 상호작용할 때 나온 그림자를 모은 것이다. 휘어지고 왜곡된 빛들로 블랙홀 윤곽이 드러나게 만든 것이다. 보우먼은 이런 난관을 뚫고 블랙홀을 촬영하기 위해선 지구 크기만한 망원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교한 계산 끝에 알아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육대륙 여덟 망원경을 지구 크기 가상 망원경으로 연결하는 이벤트 호라이즌 텔레스코프(EHT) 프로젝트였다. EHT 프로젝트는 블랙홀을 담고 있는 M87 관련 데이터 수백만 기가바이트 분량을 수집했다. 이 때 사용된 것이 간섭측정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선 정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데이터 중간에 틈이 많을 뿐 아니라 노이즈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해결 방법을 제시한 것이 보우먼이었다.또 여러 알고리즘들이 생성해낸 사진들을 연결해 그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해 모든 알고리즘이 얻어낸 성과들을 균등하게 복구하는 작업을 해낸 것도 보우먼의 아이디어였다. 뉴욕주 하원의원(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보우먼이 “역사에서 맞춤한 자리를” 점해야 한다고 트위터에 적은 뒤 “과학과 인류에게 당신이 바친 무한한 헌신을 축하하고 감사드린다. 여기 #여성 STEM(과학과 기술, 공학과 수학)이 있다!”고 기뻐했다. MIT와 스미소니언 소셜미디어 계정도 “3년 전부터 MIT 대학원생 케이티 보우먼이 인류 최초의 블랙홀 사진을 얻기 위해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그 사진이 배포됐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컴퓨터와 수학과학과 조교수인 보우먼 박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함께 이룬 업적이라고 몸을 낮췄다. 그녀는 미국 CNN 인터뷰를 통해 “우리 모두 혼자의 힘으로는 못 해냈을 것”이라며 “많은 다른 배경을 지닌 많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돼 이뤄낸 성과“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한진 조양호 회장 장례 12일부터 5일장…빈소는 신촌세브란스

    한진 조양호 회장 장례 12일부터 5일장…빈소는 신촌세브란스

    지난 8일 별세한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례가 운구가 이뤄지는 12일부터 5일장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러진다. 조문은 12일 정오부터 받으며 16일 오전에 발인식이 열린다. 한진그룹은 11일 조 회장의 장례를 한진그룹 회사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석태수 한진칼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장례위는 “고인을 모신 비행편이 12일 오전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유가족 희망을 고려해 미국 현지에서 장례식장까지 운구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례위는 조 회장 빈소를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리고 이날 정오부터 조문을 받기로 했다. 장례는 16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으로 결정됐다. 앞서 한진일가는 2016년 별세한 조 회장의 모친 김정일 여사의 장례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치르고 조 회장 선친인 고 조중훈 회장이 잠든 신갈 선영에 안치한 바 있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별세한 뒤 LA 인근 도시 글렌데일에 있는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에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 조 회장 임종을 지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유족들은 조 회장 시신을 국내로 운구하기 위한 서류절차를 밟아왔다. 한진그룹은 “유족들의 희망을 감안해 장례가 원만히 치러질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조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들은 항공업계 등 해외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조 회장 별세 다음날인 지난 9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릅 회장의 부고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조 회장은 지난 20년간 IATA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혜안을 갖고 현안에 대한 해답과 항공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어 큰 공헌을 해왔다”고 말했다.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의 권위자이자 델타항공에게는 대단한 친구였다”면서 “전 세계 델타항공의 모든 임직원들이 유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겠다”고 전했다.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보잉‧봄바디어, 엔진 제작사 GE‧프랫앤휘트니‧롤스로이스 측도 조 회장이 별세한 날을 “세계 항공산업계에 있어 슬픈 날”이라고 애도했다.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애도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지난 8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인 조 회장의 타계 소식을 접하게 돼 IOC는 매우 비통하다”면서 “평창 조직위원장으로 재임 기간 고인의 헌신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추도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선비 황해도평산소놀음굿 보유자 별세

    국가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 보유자 이선비 씨가 10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황해도 해주에서 1934년에 태어난 고인은 1947년 강화도로 이주했고, 1960년대 여자 무당인 만신들에게 내림굿과 소놀음굿을 배웠다. 그는 작두 그네를 타면서 유명해졌고, 1992년 황해도평산소놀음굿 1대 보유자인 고(故) 장보배에 이어 2대 보유자로 인정된 뒤 이 종목 전승과 보급을 위해 헌신했다.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볏짚이나 가마니로 만든 소 모양 탈을 쓰고, 춤·노래·대사를 하는 굿놀이다. 풍년과 장사의 번창, 자손 번영을 기원하는 전통 의식으로, 오락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족으로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인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 6시. 032-890-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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