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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키운 마약견, 열 美군견 안 부럽네

    인천공항세관은 지난 16∼20일 경기도 오산 미군 공군기지에서 열린 군견 경연대회에서 세관 소속 탐지견인 네오(4)와 다져(4)가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다고 23일 밝혔다. 미군 헌병대와 미 육군, 미 공군, 한국 세관 등 19개팀이 참가한 이 대회는 건물 내부와 차량 등에 헤로인 등 2종류의 마약을 1∼2g씩 3곳에 나눠 숨긴 뒤 찾아내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네오와 다져는 탐지요원 박창렬(별정 7급), 이종수(별정 8급)씨와 각각 짝을 이뤄 숨겨진 마약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세관은 2001년 9월 마약탐지견센터를 인천공항 배후단지에 준공해 혈통 좋은 후보견들을 양성해왔다. 이에 지난 2001년 당시 4건에 불과했던 마약 검거실적은 지난해 25건까지 늘었다. 세관 관계자는 “국내 마약탐지견 훈련프로그램은 일본, 태국, 베트남, 홍콩 등 12개국 세관과 주한 미군에서도 벤치마킹할 정도”라면서 “마약견들은 마약류 밀반입을 차단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파수꾼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군사법원·軍검찰 민간이양”

    “군사법원·軍검찰 민간이양”

    국방부 장관 자문기구인 국방 연구발전TF(위원장 김희중 예비역 육군 중장)가 최근 군사법원과 군 검찰의 민간(民間) 이양 등 파격적인 내용의 군 사법제도 개선 건의안을 마련해 국방부에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건의안이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한승헌 변호사)가 지난해 말 해체된 사법제도개혁위원회로부터 넘겨받아 보완 작업중인 개선안과는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돼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18일 “이 TF가 수개월에 걸친 개선에 관한 연구를 마치고 최종 시안을 최근 윤광웅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사개추위는 오는 6월까지 최종 시안을 도출할 방침이다. ●토론회 거쳐 최종안 도출……논란 예고 국방부는 국장급 이상 간부와 일선 지휘관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대회의실에서 이와 관련해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군 사법제도 개선과 관련해 현직 지휘관들이 참석하는 토론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군 사법제도 개선작업 과정에서 군심(軍心)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군 안팎의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공개로 진행될 토론회에는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 일선 군단장 등 현역 장성들도 대거 참여할 예정이어서, 그동안 지휘권 누수 등을 우려해 온 일선 지휘관들의 불만이 어떤 양상으로 표출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민간의 검·경과 마찬가지로 군내 수사 지휘권 문제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게 알력을 빚어 온 군 검찰과 헌병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어서 격론도 예상된다. 국방부는 현재 사개추위가 추진 중인 사법제도 개선안에 대해 지휘관들의 우려가 적지 않은 점을 감안, 이달 말쯤엔 사개추위 기획추진단과 군 수뇌부간의 토론의 자리도 만들 방침이다. ●“사개위안 군 특수성 반영못해” TF는 건의안에서 군사법원과 검찰을 민간에 이양토록 했다. 수사·재판의 완전 분리로 사법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법무장교는 지휘관에 대한 법률 조언과 기타 법률 업무만 지원토록 했다. 당초 사개위가 평시에 한해 폐지를 주장한 관할관 확인조치권과 심판관 제도 역시 국민 사법제도 참여 추세에 어긋나는 데다, 군의 특수성도 반영하지 못했다며 유지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헌병에 대해 군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강화하는 사개위의 방침은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 중인 민간과는 오히려 반대로 가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 검찰도 참여하는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이 가감없이 개선 작업을 실제로 추진중인 사개추위에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범죄백화점’ 미군 피소

    주한미군사령부는 13일 경기도 평택 소재 주한 미 공군 제51헌병대대 소속 D(27)중위를 강간과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한·미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군 헌병 순찰팀 일원인 D중위는 미군기지 주변 업소들에 대해 미군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오프 리미트’(off limits·미군 전용업소의 경우 사실상 영업정지에 해당) 권한을 내세워 한국인들을 상대로 각종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강간, 폭행, 뇌물수수, 탈취, 절도, 간통은 물론 법률적 지시ㆍ규정위반, 직무 태만, 허위진술, 품위 유지 위반 등 무려 10여가지에 혐의에 이른다. 또 영외 거주지역에서 총기·도검·폭발물 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한국 사법당국에 추가 기소될 가능성도 있다. 그는 지난 3월 미 공군과 한국 경찰에 체포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에 있는 군사시설에 구금되어 있으며, 미군 형법 32조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5월의 독립운동가’ 한성수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유철)는 29일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광복군 제3지대 화남(華南)지역 책임자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한성수(1920∼1945)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1920년 평북 신의주 태생인 선생은 1944년 초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중국 장쑤성(江蘇省) 인근에 배치됐으나 같은 해 3월 탈출에 성공, 안후이성(安徽省)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일본군내 한국인 장병 포섭, 군자금 확보 등 활동을 펼쳤다. 1945년 3월13일 상하이 주둔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돼 잔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군법회의 재판정에서 법정투쟁을 전개하는 등 기개를 잃지 않았다. 선생은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5월13일 유명을 달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압록강의 신의주, 대동강의 진남포, 한강의 인천, 금강의 군산, 그리고 영산강에 목포가 건설되었다. 개항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집중되었으니 이는 바다를 통해 들어온 해양제국들이 젖줄인 강을 따라서 식민 내륙까지 뻗어나려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1897년 7월4일, 조선정부는 각국 사신 앞으로 동년 10월1일을 기해 목포와 진남포 두 항구를 외국통상을 위하여 개항하고 외국인 거주를 허가하는 칙령을 통보한다. ●1897년 10월 자주적으로 개항 청일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이노우에(井上馨)영사는 1895년 1월6일 기선을 타고 인천을 떠나 약 한달반 동안 서남해안을 시찰하고 현재의 목포가 가장 합당한 지역임을 건의한다. 그러나 일본의 외압과 무관하게 개항 초기는 아직은 대한제국기로서 제한적이나마 자주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일본의 압력에 의해 개항이 서둘러지기는 했으나 상업을 확장하여 민국의 이익을 발달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칙령에 의해 자주적으로 개항한 셈이다. 목포의 출발은 매우 활기찼다. 자주적이었던 만큼 초기 건설도 일본 뜻대로 되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힘이 미쳤기 때문. 조계지 이외의 도시건설은 전적으로 조선인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헌병대목포분견소가 들어서서 위압적으로 나선다. 마침내 1906년에 목포주재 일본 이사청 이사관인 와카야마(若松兎三郞)는 각국 거류지에 관한 권한을 빼앗아 간다. 이로써 목포개항장은 일본인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일합병이 되자 일제는 가장 먼저 시가지를 33정 51구획의 일본식으로 바꾼다. 마치(町)는 일본인 거리, 한국인거리에는 동(洞)을 붙여 이름에서부터 차별한다. 즉 목포는 도시계획상의 이중성을 갖고 태어났다. 서울 북촌의 양반, 남촌의 일본인처럼 일본마을(각국공동거류지역)과 조선마을(옛 목포부)로 나뉜다.‘제국주의신도시’ 목포출신의 동반작가 박화성은 데뷔작 ‘추석전야’에서 ‘남편으로는 늘비한 일인의 긔와집이오 중앙으로는 초가와 넷 긔와집이 섯겨있고, 동북으로는 수림 중에 서양인의 집과 남녀학교와 예배당이 솟아있는 외에 몇 긔와집을 내놓고는 땅에 붙은 초가뿐이다. 다시 건너편 유달산을 보자, 집은 돌틈에 구멍만 빤히 뚫러진 도야지막같은 초막들이 산을 덮어 완전히 빈민굴이다.’고 하였다. 일본과 한국으로 분명하게 갈려진 목포시의 이중적 성격을 주목한 고석규(목포대·‘근대도시 목포의 역사 공간 문화’의 저자) 교수는 ‘일제 강점기 서울을 비롯한 식민지 근대도시는 왜곡된 근대 도시화가 만들어놓은 공간의 이중성과 식민지라는 억압구도가 낳은 대중문화의 이율배반성, 신파성을 동시에 갖는 기이한 도시’라고 압축정리한 바 있다.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목포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산강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래서 영산포 북관정에서 목포하구언까지 내려가는 뱃길을 택하였다. 마침 영산강살리기운동이 한창 벌어지면서 도지사 이하 여러 기관장들이 탄 배에 동승하였다. 배는 영산강을 내려가다 영암 몽탄나루에서 잠시 쉬고 다시 유장하게 흘러가다 하구언에서 막혔다. 그쯤에서 전남도청 이전부지인 ‘남악신도시’가 강가에 보인다. 다시 말하여, 목포는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자리잡은 요충지인데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엉망이 돼버렸다. 바닷배가 오르락거리면서 바다와 직접적으로 통하는 도시였던 광주시도 바다는커녕 강물조차도 끊긴 단절의 도읍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이중환도 택지리에서 ‘영산강은 서쪽으로 흘러 무안 목포에 이르는데…강 건너는 큰 평야를 이뤄…풍기가 화창하고 땅은 넓고 물자도 넉넉하여 서남쪽 강과 바다는 운수의 이익을 통제하여 광주와 함께 명읍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광주를 오로지 내륙도시로만 간주함은 대단히 그릇된 시각이며, 하구언만 터진다면 충분히 해양연계도시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일본인·조선인 마을 차별 심각 목포는 발전을 거듭했다. 전남의 현관이요 물산집합의 중심지로 조선에서는 제3위를 점할 만한 중요항이자 상업의 요지로 자리잡았다.1930년대에 인구 6만을 돌파하였다. 전남에서는 최초 최대로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전국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 세례는 사람이나 구역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내려졌던 것은 아니다. 차별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일본과 조선인마을에 대한 차별은 일제강점기 목포도시화의 주요특성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기 편하도록 도시를 꾸몄다. 정거장, 관청, 은행, 학교, 시장 그밖에 근대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요기관을 자신들과 가깝고 편리한 곳에 세웠다. 상하수도, 도로포장, 교통통신, 전기, 가스, 보건, 위생 등도 예외없이 일본인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그네들 거리는 짜임새 있고 깨끗하고 편리하였다. 반면에 조선인거리는 무참하기 그지없었다. 농촌에서 패잔한 무리와 봇짐행상들이 방황하는 곳이 상업도시 목포항의 이면이었다. 청년은 생선장수·지게벌이, 여자는 덕장수·고구마장사, 소년은 겐마이빵·덴뿌라·수건양말장사, 소녀는 콩기름·나물장사 등으로 길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교통정리를 한답시고 내쫓는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가련한 신세였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걸인도 무리지어 나다녔다. 엄청난 숫자의 유곽거리가 존재하여 창녀들이 득실대고 성병이 만연하였다.‘항구의 낭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비참하였다. ●목포시내는 ‘거리 박물관’ 영산강하구언에서부터 찻길을 내달리며 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목포시 구분법을 제시하였다.“영산강변의 전남도청부지가 21세기형이라면,1980년대 매립지에 1990년대 세워진 하당신도시는 합리주의식이지요. 신식모텔들이 아파트와 공존하는 90년대식 합리주의의 거리를 벗어나면 국립해양유물전시관 같은 공공시설이 몰려있는 문화의 거리가 나오지요. 세계은행(IBRD)차관으로 만들어진 1970년대식 거리가 나오는데 보행자중심 거리를 만든다고 어정쩡하게 T자형도로를 만들어 어데서고 직진이 불가합니다. 저기에 삼학도가 보이고 유달산이 있지요. 거기가 조선인과 일본인거리가 판이하게 갈렸던 목포시내지요.” 이쯤되면 ‘거리박물관’이다. 일본식과 한국식,70년대식,80년대식,90년대식,21세기식이 병존하면서 차곡차곡 쌓여져서 항구도시를 만들어 왔다. 지난 백년사를 웅변해주는 목포답사 1번지는 오늘날 목포문화원으로 쓰이는 일본영사관이 아닐까.1900년(고종37년) 러시아건축가의 손으로 지어졌는 바, 최고급 대리석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등 백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견고한 모습 그대로다. 이곳에서는 동척을 비롯하여 일본인 조차지역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권위적인 위치에 도도하게 자리매김하였다.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쓰이다가 광복 후에는 시청, 시립도서관 등으로 이용되었다. 문화원에서 조금 내려오니 동양척식회사 석조건물이 나온다.1920년대 영산포에서 엄청 몹쓸 짓하다가 이리로 옮겨 왔다고 전해지는 바, 남도의 고혈을 빨아먹고 성장한 기관이다. 동척 목포지점은 전국 최대의 소작료를 거두어들였으며 부동산 담보 대부, 고리대 등으로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다.1930년대 유행한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이같은 슬픈 사연을 안고 흐르는 것이리라. 해군 소유였다가 철폐될 위기에 몰린 것을 시민들이 되살려서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추고 있으니 동척 부산지점과 더불어 전국에 유일하게 남았다. 백미는 역시 이훈동정원이다.1999평이라는데 우치다니 만빼이란 사람이 1930년대에 세웠다. 광복 이후에 해양경비대가 주둔하였고, 국회의원 박기배 소유를 거쳐서 1947년에 조선내화를 설립한 이훈동(1917년 해남출신)에게 넘어갔다. 목포의 진산인 유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았으며 입구정원, 알뜰정원, 임천정원, 후원 등으로 이루어진다. 남도에서 가장 큰 정원으로 나무 종류만 113종에 이르러 난대지방식물의 보고다. 일본식 석등은 물론이고 일본식다원정, 연못, 석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정원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노적봉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적을 시험할 요량으로 위장볏가리를 두르게 하여 싸움 한번 없이 물리쳤다는 전설의 주인공이 왜식정원을 굽어보고 있다. 실로 아이로니컬한 대목이다. ●충무공 진지가 목화수탈 현장으로 노적봉에 오르니 코 앞에 고하도가 보인다. 이순신이 명량대첩 후에 1597년 10월29일 고하도로 진을 옮겨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가 이듬해 2월17일 고금도로 진을 옮길 때까지 108일 동안의 진영터다.1722년, 통제사 오중주와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이 유허지에 이충무공 고하도유적비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고하도선착장에는 또 하나의 비석이 있으니 조선육지면발상지비다.1899년 일본영사가 미국산 육지면을 시험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재배에 성공하면서 전국으로 육지면이 퍼졌다. 수확기에는 목포항이 온통 흰 목화로 뒤덮였으니 쌀과 더불어 남도수탈의 상징이었다. 1936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영사의 공적비까지 세웠으니 충무공의 진지가 목화수탈의 현장으로 뒤바뀐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목포 100년은 이렇게 슬프게 흘러갔다. 누가 식민지근대를 이야기하는가. 그 누가 계량적 통계수치만으로 식민지축적론과 식민지개발론을 논하는가. 식민지시대의 인간군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항구의 삶은 식민지의 자본축적이 오로지 일본인만을 위한 것이었고 그 열매는 조선인과는 무관함을 웅변한다. 목포항에 산처럼 쌓였던 쌀과 솜은 남도 백성 수탈의 상징이었다. 그러한즉,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서 강조되고 있는 식민지근대론의 허구와 결과론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국내 일부의 탁상이론가들에게 목포항 방문을 강권하고 싶다. 목포항을 1시간만 걷는다면 근대적 개발이 오로지 민족차별 및 착취를 바탕으로 한 날조였음을 금세 느낄 수 있으리라.
  • [부고]

    ●독립유공자 이용상 선생 독립유공자 이용상 선생이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81세. 서울 출신인 선생은 1942년 4월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 항일운동을 하다가 헌병에 체포돼 수감됐다. 이후 중국 중앙군 형산 유격사령부에서 특수공작 임무를 담당했다.1945년 조국이 광복을 맞자 중칭(重慶)으로 가던 도중 일본 군대의 무장해제를 도모했으며, 이듬해 4월 귀국했다. 옛 문화공보부 예술국장을 역임했으며, 문인으로 활동했다. 서울 시내 추어탕 전문 음식점으로 유명한 ‘용금옥’을 거쳐간 사람들을 소재로 한 소설 ‘용금옥 시대’를 남기기도 했다.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원재(재 캐나다), 용재(롯데호텔 과장)씨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고 발인은 14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 대전현충원.(02)3410-6914. ●최규인(한범 대표이사 회장)씨 별세 한호(삼성전자 대리)범호(삼성SDS 선임)씨 부친상 최규환(전 대한주류공업회 회장·전 전북부안군수)씨 아우상 최규연(예비역 육군 중령)씨 형님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3410-6912 ●고인환(고견디자인 대표)씨 부친상 서규용(한국마사회 상임감사)윤홍식(태종개발 대표)씨 빙부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410-6915 ●김정재(전 한일그룹 부회장)씨 별세 도형(SK C&C 직원)태은(태원고 교사)씨 부친상 김두영(신한은행 사상지점 부지점장)이주상(대우증권 대리)씨 빙부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3 ●박문규(자영업)철성(현대자동차 차장)씨 부친상 홍의신(자영업)최병렬(해군)윤시원(신용보증기금 부장)양승식(전일고 교사)심재국(건축사)씨 빙부상 12일 전북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10시 (063)250-2441 ●이상열(자영업)상협(대본엔지니어링 상무)상현(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대리)씨 부친상 김청수(자영업)박병규(송촌건설 상무)공석환(신도전기 대표)씨 빙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5시30분 (02)3010-2291 ●박일룡(전 경찰청장)씨 빙부상 12일 부산 동아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51)256-7011
  • 가족과 함께 가볼만한 서울의 성곽

    가족과 함께 가볼만한 서울의 성곽

    압축성장의 표본인 서울의 국적은 한국이 아닌 ‘세계’다. 도심은 일부 고궁을 제외하고는 미국 뉴욕, 일본 도쿄와 마찬가지로 빌딩군과 아스팔트로 덮여 있다. 아파트숲으로 덮인 시 외곽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서울이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라는 거의 유일한 증거는 성곽들이다. 서울성곽, 남한·북한산성 등 서울의 도심과 외곽을 아우르는 인공 유산인 성곽은 오랜 역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견딘 채 오늘도 서울 시민들을 넉넉한 가슴으로 안고 있다. 꽃봉오리가 제 몸을 틔우는 완연한 봄날, 역사의 숨결이 초목들과 한데 어울려 넘실대는 ‘자연 역사 박물관’ 성곽으로 연인과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자. ●도심을 품고 있는 서울성곽 서울의 성곽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적은 서울성곽이다. 조선 개국 뒤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석조성곽이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낙산·남산·인왕산을 이으면서 경복궁을 에워싸고 있다. 둘레는 18.127㎞에 이른다. 하지만 일제 침략과 도시계획,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까지 거치며 거의 모두 파괴됐다. 지금은 서울 토박이도 서울성곽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지난 1976년부터 꾸준한 복원 결과 10㎞ 정도 제 모습을 찾았다. 원래 서울성곽의 관문이었지만 이젠 차량의 ‘섬’이 된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등에서도 성곽의 흔적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원래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낙산을 중심으로 한 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나와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창신성곽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어 30분쯤 타락산을 따라 오르면 ‘서울의 몽마르트 언덕’이라는 낙산공원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공원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이화장을 지나면 대학로 뒤쪽 혜화문(동소문)과 만나게 되고, 이어 성북지구까지 성곽이 연결돼 있다. 또 혜화동 서울과학고등학교 뒷길을 따라 응봉과 숙정문(숙청문)까지 이어지는 길에서도 서울성곽을 만날 수 있다. 인왕산 성곽길에서도 서울성곽의 운치를 접할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이나 사직공원에서 경사가 급한 인왕산길을 30분 정도 오르는 길에 기암괴석과 함께 성곽의 장중한 모습이 펼쳐진다. 자하문터널 위 창의문(자하문·북문)에서 올라갈 수도 있다. 이외에도 숭례문에서 남산의 백범광장과 팔각정·서울타워를 거쳐 타워호텔로 이어지는 길이나 장충체육관 뒤에서 신라호텔 뒤로 이어지는 길에도 서울성곽의 예스러운 풍치와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서울의 요충지 남한·북한산성 서울의 외곽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성곽을 만날 수 있다. 남한산성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일대에 해당한다.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하남시·광주시 등에 걸쳐 있다. 본성 둘레는 8㎞, 외성은 12㎞에 달한다. 성 안에서나 바깥에서 죽 돌면 남한산성 전체를 볼 수 있다. 한양을 지키던 대표적인 군사적 요충지답게 많은 문화재도 품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로 지정돼 있는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해 지어진 누각이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 조선 시대 임금이 거둥할 때 머물던 별궁인 행궁 등도 눈길을 잡아 끈다. 관광객들이 애용하는 길은 송파구 마천동에서 올라오는 등산길이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에서 출발, 공수부대를 지나 3㎞ 남짓한 등산로를 따라 1시간30분 정도 올라가면 서문에 도착한다. 혹은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로 성남 복정·태평사거리를 거쳐 남문으로, 광지원 등을 지나 동문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자리잡고 있는 북한산성은 서울 은평구와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등에 퍼져 있다. 백제 계루왕 때인 132년에 처음 축성된 뒤, 조선 숙종 때 수도 방위를 위해 돌로 쌓여졌다. 전체 둘레는 12.7㎞, 성벽을 둘린 체성(體城)의 길이는 8.4㎞에 이른다. 현재 대서문,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등의 문루가 복원돼 있다. 성곽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져 있어 북한산을 산행하면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밖에도 행궁, 창고, 장대 등 많은 유적지와 사찰문화재가 산재돼 있다. 교통도 편리한 편. 지하철 1호선 망월사역·도봉산역,3호선 구파발역,4호선 길음역·수유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백제의 숨결 여전한 토성들 화려했던 백제 문화의 발상지답게 당시 성들도 송파구 지역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풍납리토성과 몽촌토성. 평지성 토성인 풍납리토성은 서북쪽으로 한강, 남쪽으로 성내천과 접해 있다. 성벽 둘레는 3470m로 풍납동을 감싸안고 있다. 광복 이후부터 꾸준히 발굴 작업이 계속돼왔고, 지금도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지하철 5·8호선 천호역이나 8호선 강동구청역에서 내려 도보로 5분 남짓 걸린다. 또 다른 백제 초기의 토성인 몽촌토성은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에 있다. 크기는 남북 730m, 동서 540m이다. 성벽의 높이는 대부분 30m 정도로 지금은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로 조성돼 있어 운동이나 소풍을 즐기는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밖에 광진구 광장동의 아차산성,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종로구 홍지동 탕춘대성도 서울 경기에서 찾아갈 만한 성곽들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서울의 성곽엔 무슨 사연이…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의 성곽은 역사 이래 한민족의 숨결을 오롯이 담고 있다. 서울을 수도로 삼은 백제와 조선은 물론, 고려 시대의 문화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와 한국전쟁, 무분별한 근대화라는 ‘괴물’은 전통 유산인 성곽을 제멋대로 파괴했다. 성곽이 역사교과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제의 도읍지로 출발 백제 왕성인 풍납리토성, 몽촌토성은 서울 문명의 첫 흔적이다. 이들 토성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인 위례성 가운데 하나인 하남위례성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지금까지 풍납리토성에서는 다양한 토기 조각과 가락바퀴, 우물터, 해자 등 백제 초기 철기시대 유물 등이 발굴됐다. 몽촌토성에서도 삼족토기, 벼루, 화살촉 등이 출토됐다. 이곳은 비록 백제가 475년 수도를 부여로 옮긴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현재 진행중인 풍납리토성 발굴 조사 등을 통해 번성했던 백제 문명이 더욱 자세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도 아차산성, 이성산성, 대모산성, 행주산성 등 많은 성곽들이 서울에 쌓였다. 중국과의 교류가 가능하고 넓은 평야가 자리잡은 전략요충지로서의 서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개경을 도읍으로 삼았던 고려도 지리도참설의 영향을 받아 서울을 중시,3경 가운데 하나인 남경으로 삼았다. 창경궁 부근에 가궐이, 북한산에는 중흥산성이 지어졌다. ●일제 침략의 고통 떠안은 성곽 서울성곽과 북한산성, 남한산성은 모두 조선시대 때 수도 한양의 방위를 위해 축조됐다. 서울성곽은 태조와 세종 때인 14세기 말 15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 때 다시 축조됐다. 삼국시대 때 처음 토성으로 쌓여졌던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은 각각 광해군과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성곽은 구한말부터 시작된 일제의 침탈로 크게 훼손됐다. 전차와 경부선 철도, 조선신궁 등의 공사로 대부분의 성벽은 물론 동대문과 남대문을 제외한 문들도 거의 다 헐렸다.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성곽은 광복 후 정치적 혼란과 한국전쟁 등 행정 공백기를 틈타 성곽 주변에 무허가 건물이 마구 들어섬에 따라 더욱 파괴됐다.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은 북한산성에 헌병대를 주둔시켰고, 산성 안의 시설물을 대부분 불태웠다. 그나마 남아있던 유적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됐다. 구한말 의병운동의 거점이 됐던 남한산성도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거의 무너졌다가 복원됐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3000년전 청동기유적 발견

    기원전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주구(周溝·무덤 주변의 도랑) 갖춘 석관묘(石棺墓) 16기가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 발견됐다. 강원도문화재연구소는 8일 춘천 동면∼신북간 도로 공사구간 일대 2만 3000여평 부지를 2년여 동안 발굴조사한 결과 이 지역에 무덤뿐 아니라 주거지 74개동과 경작지까지 갖춘 청동기시대 취락지역이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원도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견된 석관묘 가운데 주구 길이가 42.5m인 초대형도 있고 ▲제사의식을 치른 듯한 흔적까지 발견된 데다 ▲발굴지역이 도로공사구간을 따라 좁은 지역에 한정됐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정치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굴단 지헌병 책임조사원은 “토기 같은 유물은 없었으나 기원전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돌 화살촉 등이 발견됐다.”면서 “이 정도 규모는 아마 동북아시아 최초의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인권위, 軍단체기합 금지 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31일 올해 초 발생한 ‘육군훈련소 인분사건’과 관련, 군대의 인권향상을 위한 제도개선을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부하의 시정 건의와 상부보고 의무화 ▲단체기합 금지와 위반했을 때 처벌 명문화 ▲장병의 인권상담과 지도를 담당하는 인권보호관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을 담아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장병의 인권침해 행위를 예방·적발할 수 있도록 감찰·기무·헌병 등 내부통제장치를 적절히 운영하고 소원수리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지난 1월 10일 육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결교육을 강조하면서 훈련병 192명에게 인분이 묻은 손을 입에 넣도록 강요했고, 정훈장교 등이 이를 알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국방부 “부패와의 전쟁” 선언

    국방부 “부패와의 전쟁” 선언

    앞으로 국방부가 추진하는 5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형 사업은 반드시 ‘사업별 부패방지 계획서’를 수립·시행해야 한다. 또 부패행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징계 기준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국방부는 7일 창군 이래 처음으로 전군의 사정 관계관 회의를 열어 지난 해 반부패대책 활동 실적을 분석·평가하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추진 지침을 채택, 전군에 하달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500억원 이상 주요 사업에 대해 사업 추진 전과정에 걸쳐 부패 유발요인이 걸러질 수 있도록 ‘사업별 부패방지 계획서’를 수립하는 등 부패 취약분야에 대한 감사·감찰활동이 크게 강화된다. 이와 함께 부패행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징계기준을 준수하고 부패 행위시 온정주의와 제식구 감싸기식 처벌 관행을 지양하며 지휘 감독자가 연대책임을 지도록 했다. 특히 실명의 민원과 내부 공익신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신분을 보호하고 신고자에 대한 보복행위 등도 금지하도록 했다. 대신 익명·차명·가명으로 이뤄지는 중상·비방·모략성 신고에 대해서는 감사나 수사 대상에서 제외해 불필요한 비용 낭비와 군 내부 기강 문란행위를 방지토록 했다. 또 군내 사정 관계기관 간의 정보 공유와 공조 체제를 긴밀히 유지해 자체 감사·감찰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도록 했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부패와 관련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한편 우수기관과 유공자에 대해서는 포상을 신설하는 등 신상필벌을 강화하겠다.“면서 “내부 공익 신고자에게 신분상의 불이익이나 보복이 없도록 지휘관들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배려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이날 전군 사정 관계관 회의에는 감사·법무·기무·감찰·헌병 등 전군 사정관계 기관장과 국방부 직할기관, 산하기관장 등 170여명이 참석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고시플러스] 계약직 정보직 3호 군무원 공모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www.indepe ndence.or.kr) 정보(수사)직 3호 군무원 ○명을 모집한다. 헌병병과 중령 이상으로 전역해 2년 이상 수사분야의 경력이 있거나, 법과학·법의학 석·박사 학위취득자로 13년 이상의 경력자,8년 이상 경력이 있는 감식관련 기술사는 지원할 수 있다. 일반계약직으로 계약기간은 3년 정도다. 지원서는 3월3일부터 5일까지 국방부 서문 행정안내실로 직접 방문 접수한다.(02)748-1910∼1.
  • [세상에 이런일이]긁어서 걸렸軍

    “손톱자국이 나있는 사람이 범인입니다.” 피해 여성이 범인에게 남긴 날카로운 손톱자국이 강도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전남 나주경찰서는 지난달 25일 혼자 귀가하는 여성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금품을 빼앗은 육군 모 사단 상근 예비역 임모(21)씨를 특수강도 혐의로 붙잡아 군 헌병대에 넘겼다. 임씨는 전날 오후 6시50분쯤 나주 삼영동에서 귀가하던 방모(25·여·회사원)씨의 입을 손으로 막고, 휴대전화와 현금 4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을 찾은 방씨는 범인이 짧은 머리에 보통 키의 20대 남자라고 신고했다. 특히 방씨는 “범인이 입을 막았을 때 손톱으로 손등을 할퀴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탐문 수사를 통해 범인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임씨가 최근 집에 들어오지 않고 부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임씨의 손등에서 손톱자국을 확인하고 추궁한 끝에 범행을 자백 받았다. 임씨는 경찰에서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60년 담아둔 恨 “밝혀달라” 봇물

    60년 담아둔 恨 “밝혀달라” 봇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우리 시아버지의 억울함 좀 풀어주세요.”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를 찾은 주부 정윤현(53)씨는 시아버지의 피해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발을 동동 굴렀다. 정씨는 “시아버지가 일제 때 규슈지방 노역장으로 끌려간 이후 소식이 두절돼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면서 “아버지 때문에 속태우던 남편은 속병을 얻어 지난 1992년에 세상을 떴고, 이제 시아버지의 피해사실을 밝힐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강제동원 진상부터 하루 빨리 밝혔으면 좋겠다는 게 정씨의 바람이다. 일제강제동원 피해 신고 접수가 1일 전국 250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진상규명위 본부를 비롯, 지자체 접수처에는 첫 날부터 북새통을 이루며 정부의 진상규명조사에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일부 지자체에서는 사전 준비 미비로 민원인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에도 불구, 각 지역 접수처에는 강제동원 피해신고와 문의가 잇따랐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이날 본부에만 1800여명이 신고를 접수하는 등 전국에서 2573명이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특히 진상규명위 본부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백명의 민원인들이 몰렸다. 당초 오전 9시 접수를 개시하려던 진상규명위측도 8시부터 접수자들이 몰리자 접수시간을 30분 정도 앞당겼다. 태평양전쟁 피해보상추진협의회를 통해 신고하려는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 200여명이 함께 위원회를 찾았고,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가 영구귀국한 경기도 안산시 사동 고향마을 주민 30명도 위원회를 찾아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일본군에 강제 징용돼 만주에 근무하다 소련군 포로가 됐던 피해자 13명도 러시아가 발급한 근로증명서를 증거로 첨부해 신고를 마쳤다. 위원회를 찾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접수실 옆에 마련된 민원실에서 삼삼오오 자리를 함께 하며, 각자 억울한 사연들을 쏟아냈다. 경기도에 사는 주부 정인옥(41)씨는 “시할아버지는 일본 헌병 2명을 살해한 죄로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4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친할아버지도 탄광에 끌려가 혹사당하다 평생 폐병을 앓으셨다.”면서 시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의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관동군에 끌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는 권태규(82) 할아버지도 “징병을 당해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른 과거청산의 첫 단계로, 오는 6월30일까지 일제 강점기간 일본에 강제동원됐던 피해사례를 신고받는다. 강혜승 이효용기자 1fineday@seoul.co.kr ■ 전기호 진상규명위원장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일본 등 관련국가들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전기호 위원장은 1일 “당시 강제동원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신고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연구가 병행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위원장은 “신고접수를 받기 전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주변국들이 관리하고 있는 자료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후 처리과정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 국가측 자료가 강제동원의 피해진상을 규명하는 데 필수적인 증거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진상조사가 이제서야 추진되다 보니 피해 생존자들이 많지 않고, 유족들도 정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사실 확인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증거로 활용할 자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최대한 많은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히 일본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오는 16일 현지조사차 일본을 방문한다는 계획이다. 전 위원장은 “관방장관 등 일본 관계장관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측 국회의원들과 경제인단체 관계자들과도 만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경제인단체가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당시 강제동원은 일본 기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자료가 풍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위원장은 “이번 조사는 피해보상과 관계없이 진상을 규명한다는 데 목적이 있지만 추후 보상이 논의될 때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이현세의 만화경] 껄껄껄 웃다보면

    [이현세의 만화경] 껄껄껄 웃다보면

    새해가 왔다.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 한해를 살아야 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인생은 카드게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카드게임을 시작하면 누구나 공평하게 똑같은 장수의 카드를 받는다. 하지만 카드내용은 제 각각이다. 처음부터 포 카드가 있는가 하면, 누구는 숫자가 같든지 무늬가 같아서 신나게 게임을 시작하지만, 숫자도 제 각각이고 무늬도 제 각각이면 이 게임을 어떻게 해야 될지 난감해진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자기선택이 아니다. 어느 날 이 세상에 던져진다. 재벌 2세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머리가 좋은 사람, 얼굴이 잘 생긴 사람, 미스코리아 뺨치는 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달동네에 지지리도 못생긴 얼굴에 두뇌까지 평범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인생은 공평한 게임이 아니다. 단지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받은 카드는 참담한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일본순사에게 총살당하셨고 할머니는 세 아들을 힘들게도 키우셨지만 만주에 계시던 둘째 삼촌이 6·25때 인민군으로 고향을 다녀간 탓에 빨갱이 집안이 되어서 큰아버지는 포항헌병대에서 생매장당하셨다. 잘난 유교적 관습에 따라 나는 젖떼자마자 큰집에 양자로 갔고 9살 때 아버지마저 누전사고로 돌아가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때부터 할머니와 두 어머니가 힘들게 집안 살림을 꾸려 가셨으니 내게도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 그나마 재주라고는 그림 그리는 재주 하나뿐이었는데 색약이라서 미대지망도 할 수 없었고 연좌죄까지 걸려 있었으니 그야말로 백수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게임은 계속해야 되는 것이 삶이다. 카드게임에 high & low 라는 게임이 있다. 가장 높은 카드와 가장 낮은 카드가 나누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처음 카드를 받아서 높은 카드로 진행할지 낮은 카드로 승부할 것인지를 결정해서 레이스를 하는 것인데 판단이 안 되면 레이스를 하는 도중에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만들기 위해, 또는 유리한 쪽으로 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버려야 될 카드와 기다리는 카드를 선택해야 한다. 사람은 철이 들면서부터 바로 이 게임을 하게 된다. 무슨 공부를 할 것인지, 대학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간다면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 어떤 직장을 가질 것인지, 결혼은 언제, 누구와 할 것인지, 이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선택의 연속이다. 이 매 순간의 선택이 결국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나도 결국 평생을 내 스스로 선택해 왔다. 미대를 못 가도 대학은 가야 할 것인지 고민했고 만화를 그릴 것인지 직장을 선택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방황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헤매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선 그때마다 나름대로 자신 있게 선택하며 내가 갈 길을 꿋꿋하게 걸어왔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일까. 그 힘의 원동력은 내가 가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색약으로 미대 진학이 좌절되었을 때 “이것은 신이 내게 만화를 그리라는 계시다.”라고 건방을 떨었고, 가난이 힘들었던 습작시절에도 “가난도 3대, 부자도 3대라 했거늘 우리집은 3대가 가난했으니 나는 분명 부자가 된다.”라고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참담한 내 카드에서 유일하게 에이스카드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낙천적인 내 성격이었다. 어차피 어디서 왔는지 모르면서 태어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라면 허겁지겁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이왕 시작된 게임을 껄껄껄 웃으면서 해 보자. 신명나게 놀다 보면 비 개고 맑은 날도 오는 것이 인생사다.
  • 軍훈련소 가혹행위 특감

    軍훈련소 가혹행위 특감

    충남 논산 소재 육군훈련소 중대장이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입에 넣도록 강요한 ‘엽기적인’ 가혹행위가 결국 국방장관의 사과까지 불러왔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21일 이번 사건과 관련, 국방부 입장 발표를 통해 “훈련병과 그 가족, 국민 여러분께 매우 죄송하고 깊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육군으로 하여금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 관련자는 물론 지휘 책임을 포함해 일벌백계로 엄중 문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장관은 “전군의 훈련소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해 가혹행위 등 전근대적 병영 부조리를 발본색원하고 평시 훈련소 운용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윤 장관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사과 발표는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날 육군 정훈공보실장(준장) 명의의 사과성 입장표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날 사과 발표가 육군에 대한 모종의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윤 장관의 사과는 어찌보면 육군 최고 책임자인 남재준 참모총장이 해야 할 몫으로 장성 진급비리 의혹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남 총장에 대한 윤 장관의 불신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최근 군 안팎에서 제법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군 수뇌부 조기인사설과 연관지어 해석했다. 한편 육군훈련소 헌병대측은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련병 192명에게 손가락으로 인분을 찍어 입에 넣도록 강요한 중대장 이모(학사 35기·28) 대위를 가혹행위 혐의로 이날 구속했다. 이날 국방부와 육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도저히 군대를 믿고 자식이나 가족을 맡길 수 없겠다.’는 등 군을 불신하는 내용의 네티즌 글이 빗발쳤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軍檢, 남재준 총장 소환키로

    국방부 검찰단이 21일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과 관련,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하기로 결정, 육군의 반발과 함께 파문이 예상된다. 비록 참고인 자격이라고는 하지만 육군의 최고 책임자인 참모총장이 인사문제로 군 검찰에 소환된 전례가 없어 실제 검찰 출석이 이뤄질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 검찰은 군사법원에 기소된 4명의 피고인에 대한 첫 공판이 끝난 뒤 이들의 변론을 맡은 변호인측에 남 총장에 대한 군 검찰 출석요구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변호인측은 ‘우리는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이지, 남 총장 변호인이 아니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군 검찰은 남 총장 출석요구서를 우편이나 인편을 통해 육군측에 공식 전달할 방침이다. 군 검찰은 남 총장에 대한 소환계획을 사전에 윤광웅 장관이나 국방부측에는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방부의 최고위 법무 책임자인 법무관리관 박모 준장도 휴가중인 것으로 확인돼, 군 검찰관들이 의도적으로 상관 부재시를 이용해 남 총장 소환 계획을 수립, 통보하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군 검찰은 이번 사건이 군사법원에 기소된 이후에도 수사진을 가동해 기소된 이들의 상관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해 왔으며, 남 총장에 대한 군 검찰 출석 요구도 현재 진행중인 수사의 일환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오전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첫 재판(재판장 이계훈 공군 소장)은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시작됐다. 군 검찰은 육군이 지난해 10월 단행한 준장 진급심사에서 남 총장과 근무 인연이 있거나 ‘사(私)조직’으로 추정되는 인맥 등이 동원됐다며 남 총장 연루 주장을 적극 제기했다. 특히 군 검찰은 “52명을 사전 내정해 남 총장에게 보고하고 최종 선발했으며, 경쟁 관계에 있는 17명의 비위 자료도 육군측이 기무·헌병 등에 적극적으로 요청해 활용하는 등 인사검증위를 무력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측은 공소장의 내용으로 볼 때 ‘사건’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군 조직에 부작용만 우려된다며 검찰측에 공소 취소를 요청했다. 변호인측은 특히 “이번 진급 심사에서 뇌물이나 부정한 청탁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면서 “장군 진급에 관한 인사권 남용을 문제삼아 군사 재판을 하는 것은 어느 국가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날 재판은 양측의 첨예한 입장 차이로 한 차례 휴정을 거친 뒤 1주일 뒤인 오는 28일 2차 공판을 열기로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고교3총사 나란히 육군장성에

    별을 꿈꾸던 고교 같은 반 3총사가 나란히 육군 장성으로 별을 달아 화제다. 주인공들은 지난해 10월 준장으로 승진해 연말인사에서 보직을 받은 정명구 국방부 조달본부 장비부장, 홍종설 육군본부 헌병감, 이규상 1군사령부 지휘통제처장 등 3명이다. 강원도 원주고 18회인 이들은 졸업반 시절인 73년 3학년 6반 급우들로 나란히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해 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해 원주고에서 8명이나 육사에 진학했으며 이들 3명이 육사 34기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학창시절 출석부에는 2번 홍종설,9번 정명구,42번 이규상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어 동기동창생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들을 진학 지도했던 이긍래 담임교사는 5년전 별세했지만 당시의 급훈인 ‘성실’을 좌우명으로 3명의 장군은 참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 정 준장은 학창시절 밴드부로 활동하는 등 활달한 성격이고, 홍 준장은 헌병분야를 주로 맡아 원칙과 정도를 중시하며, 이 준장은 군 통신분야 전문가로 기획력과 조직관리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향인 원주 1군사령부에서 장군으로 첫 보직을 맡은 이규상 장군은 “셋이서 고교시절부터 너무 친하게 지냈고, 요즘도 수시로 전화통화나 만남을 갖고 있다.”면서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원주고 18회 동기회장인 권병호 원주시 소초면장은 “세 친구가 나란히 별을 달아 동기들의 축하인사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승승장구해 국가를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길 친구들 모두 기대하고 있다.”고 기뻐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朴 前대통령등 4만명 조사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조사가 임박하게 됐다. 행정자치부내 준비기획단에서 시행령 마련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직과 규모 등이 정해진다. 기획단은 11명의 조사위원 구성작업도 함께 한다. 조사위원 추천기관인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에게 추천 요청을 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르면 내년 3월부터 본격 활동 시행령과 위원회 구성이 완료되면 즉시 최대 4년6개월의 한시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통상적으로 위원회 구성에는 3개월 정도 소요된다. 따라서 이르면 내년 3월에, 늦어도 4월에는 본격 활동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게 될 전망이다. 이 법안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6대 국회 끝자락인 올 초 만들어진 친일진상규명법의 개정안이다. 따라서 조직과 규모 등을 정한 시행령도 이미 만들어져 있다. 이번 시행령도 이에 준해서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조사대상이 늘어난 만큼 위원회 규모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원회 직원수는 1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조사대상이 너무 넓어져 실효성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 조사대상자가 4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에서도 파장이 예상된다. 친일행위 의혹을 받는 아버지를 둔 의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의원이 소속 정당의 지도부 그룹이기 때문에 당에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친일의혹 부친 둔 의원들 긴장 조사대상에서 군인의 경우 중좌(현 중령) 이상에서 소위 이상으로 확대하는 바람에 일본군 중위 출신인 박 대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조사가 가능해 졌다. 반면 헌병과 경찰은 계급 구분없이 전부 조사키로 한 것과 동양척식회사 식산은행 중앙간부는 물론 지방간부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여권 핵심자가 관련돼 있다. 부친이 일본군 헌병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져 당 의장직에서 물러난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 그리고 부친이 일제시대 금융기관의 서기로 근무했다는 일각의 의혹을 사고 있는 정 통일부 장관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해당자들은 담담하다. 한나라당 박 대표는 그동안 “나의 아버지 문제는 신경쓰지 말라.”면서 일관된 자세를 취했다. 신 의원은 오히려 철저한 조사를 원하고 있다.“신 의원은 비록 아버지일지라도 친일행위 조사대상에 있다면 반드시 조사해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신 의원측이 전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여야, 신문 시장점유율 3개사 60%로 제한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여야는 29일 4대법안 가운데 하나인 신문관계법의 쟁점 조항에 잠정 합의한 뒤 30일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양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법안심사소위 비공식 간담회를 갖고 신문관계법안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주장한 시장 점유율 제한, 즉 1개사 30% 3개사 60%를 넘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반면 전체 지면 가운데 광고를 50% 이하로 제한하는 조항은 없애기로 하고 편집위원회·독자권익위원회 구성방식은 노사 동수로 의무화하는 대신 권고규정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울러 신문유통공사는 시장 자율에 맡기되 신문발전기금에서 차등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친일행위 조사대상을 소위 이상의 군인, 헌병·경찰 전체 등으로 확대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 등 55개 법안을 처리했다.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개정안은 최대 4년 6개월 동안 가동할 진상조사기구를 대통령 산하에 두고 진상조사위원 수를 3명에서 11명으로 늘리면서 대통령 4명, 국회 4명, 대법원장이 3명 추천토록 했다. 또 법 적용시점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로 하기로 했다. 본회의는 또 소득세율을 현행보다 1% 포인트씩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득세법개정안도 처리했다. 여야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새해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여야는 재정경제위 전체회의를 열고 외국자본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려 할 때 5일 동안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냉각기간 제도’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본회의로 넘겼다. 열린우리당 김영춘 원내수석부대표 등 의원 40여명은 이날 밤 10시쯤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으로 가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4대법안과 ‘한국형 뉴딜’ 관련 3개 법안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촉구했다. 이종수 김준석기자 vielee@seoul.co.kr
  • “연내 처리” “저지”… 또 난장판

    ‘4인 대표회담’이 정치적 타결없이 종료되자 여야는 28일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일부 국회 상임위에서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연말 정국이 또다시 얼어붙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단독처리 반대 당론을 변경한 민주노동당의 공조를 얻어 ‘연내 처리’를 다시 천명하고, 한나라당은 결사 저지 태세를 굳히면서 4대 입법 처리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친일법에 대해서는 여야가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화전(和戰)이 동시에 펼쳐졌다. ●‘힘으로 처리’vs‘몸으로 저지’ 열린우리당은 이날 상임중앙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4대 법안 등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소속 의원 전원에게는 오는 31일까지 해외 여행을 금지하는 등 단독 처리 가능성에 대비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국회법이 부여하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민생법안을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며, 국회의장도 국회법에 따라 국회를 운영해 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주요 당직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조속한 회담 재개를 통한 합의 처리를 촉구했다. 박근혜 대표는 의총에서 “4대 법안은 국가를 떠받치는 가치인 자유민주와 시장 경제를 훼손하는 것”이라면서 “거기에 동의한다면 한나라당도 역사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국보법은 연내 처리 난망 최대 쟁점인 4대 법안과 ‘한국형 뉴딜 3법’ 등은 과거사법을 제외하고는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해 열린우리당으로선 김원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외에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4대 법안 중 과거사법을 제외하고는 연내 처리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분석이 여당에서도 나온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이날 저녁 김원기 국회의장과의 만찬에서 4대법안과 ‘한국형 뉴딜’ 관련 3개법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 직권상정을 촉구하자 김 국회의장이 “오늘은 아무 말을 안하는 것이 낫겠다.”면서도 “적절하다고 생각한 선에서 하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김 의장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과거사법이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해 예산안과 이라크추가파병동의안은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한나라당이 소속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길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친일법은 만장일치로 법사위 통과 법사위는 전체회의에서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처리, 본회의로 넘겼다. 개정안은 조사 대상을 소위 이상 일본군, 모든 계급의 헌병·경찰,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은행의 중앙 및 지방간부로 하는 등 대폭 확대했다. 정무위는 전체회의에서 올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이헌출 전 LG카드 사장과 유회원 론스타 한국법인 대표를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한편 여야는 과거사법과 관련,‘8인 실무협상회담’에서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범위에 대해 잠정 합의했지만 행자위 법안소위에서 여당이 단독으로 과거사법을 처리한 뒤 전체회의 상정을 시도하려고 하자 한나라당의 강력 반발해 무산됐다. 교육위도 법안소위에 계류 중인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문제로 파행 운영됐다. 문소영 김상연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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