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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병사 전원 최전방 야전부대 배치

    국방부 ‘연예병사’들이 중부전선 최전방 육군 부대의 소총병으로 일괄 배치됐다. 육군은 4일 국방홍보지원대 폐지에 따라 육군으로 복귀한 연예병사 12명을 야전부대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9명은 지난 2일 이미 배치됐다. 지난 6월 춘천의 ‘위문열차’ 공연 후 안마시술소를 출입해 열흘간 영창 처분을 받은 최동욱(가수 세븐)과 이상철(상추) 일병은 각각 8사단, 15사단으로 징계기간 만료 후인 9일 배치된다. 전방부대로 배치된 연예병사는 김무열(12사단)·박정수(12사단)·이혁기(21사단)·김민수(27사단)·김호영(2사단)·이석훈(7사단)·류상욱(6사단) 일병, 이지훈(5사단)·최재환(수기사) 병장 등이다. 연예병사들은 모두 군사 특기가 정훈병에서 소총병으로 변경됐다. 야전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이들은 최전방 일반전초(GOP)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육군은 지난 1일 인사사령부에서 감찰·헌병장교가 입회한 가운데 컴퓨터를 통해 무작위로 이들의 배치 부대를 결정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총기난사” 美 911에 장난전화 … 잡고 보니 한국 일병

    “총기난사” 美 911에 장난전화 … 잡고 보니 한국 일병

    지난해 3월 우리나라의 119에 해당하는 미국 911센터에 장난 전화를 걸어 현지 고등학교 학생들을 총기로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20대 군인이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1일 국내에서 미국 911신고센터에 장난으로 협박 전화를 건 육군 35사단 소속 이모(20) 일병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경찰 조사가 끝난 뒤 군 헌병대로 이첩될 예정이다. 이씨는 군 입대 전인 지난해 3월 26일 오후 10시 45분(미국 현지시간 오전 9시 45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자신의 집에서 미국 뉴저지주 워렌카운티 911신고센터에 “해커츠타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죽일 것”이라는 협박 전화를 건 혐의를 받고 있다. 자신을 스웨덴계 미국인이라고 속인 이씨는 한국 발신자 번호가 나타나지 않는 아이폰의 무료 통화 앱 ‘텍스트 나우’를 사용해 “고등학교 인근 숲속에 AK47소총을 갖고 숨어있다”고 협박했다. 워렌카운티 911센터가 이씨의 전화를 접수한 즉시 미국 현지 경찰은 해당 고등학교와 주변 8개 학교를 4시간 동안 폐쇄했으며, 경찰특공대가 출동하고 장갑차와 헬리콥터 등을 투입해 검문 검색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씨는 또 지난해 4월 3일 오후 9시 40분쯤 미국 뉴욕경찰서에 전화해 “10살인 내 아들을 죽였으며 지금 전화를 받고 있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도 살해하겠다”며 현지 경찰관을 협박하기도 했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이씨의 4차례에 걸친 장난 협박 전화를 통해 협박범이 동일 인물이라고 인식하고 지난해 6월 우리 정부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이씨는 지난해 1월부터 군 입대 직전인 10월까지 전주의 한 백화점에서 임시직으로 근무했다. 당시 미국의 한 여고생 B(17)양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채팅을 하던 중 국제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발신번호도 미국 현지번호로 뜨는 ‘텍스트 나우’ 앱을 알게 됐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미국 일대 피자가게에 20여회, 관공서에 10여회 등 장난 전화를 걸었다”면서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경찰·주한미군 합동 영외순찰 강화

    한·미 양국은 주한 미군의 영외 순찰 시 한국인과의 마찰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 경찰과 주한 미군의 합동 순찰을 강화키로 했다. 지난해 7월 영외 순찰에 나선 주한 미군이 한국 민간인에게 수갑을 채워 논란을 빚은 것과 관련,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차원이다. 양국은 26일 외교부 청사에서 문승현 외교부 북미국장과 잔 마크 주아스 주한 미군 부사령관이 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회의를 열어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이를 합동위 합의 문서 형식으로 담는 방안을 협의했다. 정부는 합동 순찰 강화를 위해 카투사 활용, 한국 경찰과 미 헌병대 간의 의사소통 강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 수갑 사건’의 여파로 미국은 지난해부터 서울 용산, 경기 동두천·의정부, 오산·군산 공군 기지 등 주한 미군 기지 부대 주변을 순찰하는 헌병대의 총기 휴대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 측은 이번 회의를 통해 주한 미군 범죄 예방 및 처리 과정에 대한 미국 측의 협력을 요청했고, 미국은 장병 군기 확립과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을 약속했다. 이 밖에 수갑 외부 노출 금지 등의 자체 노력도 실시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양측은 현안으로 떠오른 용산 미군 기지 기름 오염 문제에 대해서도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오염원 공동조사 등에 긴밀히 협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자유로운 영혼의 풍류 피아니스트 인생 40년 임동창

    [김문이 만난사람] 자유로운 영혼의 풍류 피아니스트 인생 40년 임동창

    우리가 흔히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 있다. ‘놀고 있네’이다. 하는 행동이나 몸짓에 대한 빈정거림의 뜻으로 들린다. 그런데 어설픈 것이 아니라 ‘제대로 놀고 있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헐 것이 없구나/그저 놀기만 허면 되는 것을…/논다는 것은 삶을 흐르게 두는 것이며/바람과 하나 되는/숨결을 이루는 것이다/이것이 풍류다.’ 피아니스트 임동창씨가 읊어 대는 논다는 것에 대한 ‘허튼소리’다. 그에게 피아니스트, 작곡가, 허튼가락 창시자, 수도승 중 어느 것이 제일 맞느냐고 하면 항상 ‘노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17살 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허무’와 ‘안타까움’을 느꼈고, 몰입과 몰아의 과정을 거쳐 자유로운 영혼의 열쇠로 ‘풍류’의 세계를 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명의 소리를 만드는 천재 작곡가라는 말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유희하는 풍류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클래식, 국악, 가요, 가곡, 불교음악 등 그의 음악은 자유자재로 경계를 넘나든다. 2012년에는 서양에서 유입된 지 100년이 넘은 피아노를 국악기로 만든 ‘임동창 피앗고’를 내놓아 평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게 살아온 그의 음악 인생이 올해로 40년을 맞고 있다. 15살 때 무당 신내림 받듯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고 17살 때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악상으로 작곡에 빠져들었으며 20살 때 피아노 페달에 구멍이 난 후 피아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 다음은 출가로 이어지고….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분수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까만 티셔츠에 헐렁한 흰색 바지, 그리고 분홍색 양산을 썼다. 머리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처럼 빛났다. 양산이 썩 잘 어울린다고 하자 머리를 쓱쓱 만지면서 “여름날 양산을 안 쓰면 머리가 너무 뜨겁다”며 파안대소. 이것저것 거두절미하고 ‘임동창의 풍류’란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네 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자유로운 연주’, ‘오롯한 내 음악’,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뭐꼬?’ 등이지요. 나이 50이 넘어 겨우 끝냈고 제 인생의 족쇄가 풀렸습니다. 숙제를 끝낸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지요.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의 결정체가 바로 풍류입니다. 어떻게 해야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고 신명 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이지요.” 인간의 본성에는 하늘의 이치, 자연의 이치, 즉 풍류성이 본디 들어 있다는 그는 풍류성을 깨어나게 해서 사느냐, 잠든 상태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며 “풍류성이 안 깨어나면 불감증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풍류성을 깨워서 아름답게 건강하게 신명 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음악 속에, 핏속에 그 절대자유의 에너지 풍류가 녹아 있으며 그가 풀어낸 ‘허튼가락’도 바로 이러한 풍류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 ‘허튼가락’은 틀에 박힌 박자를 허문 순수한 내면의 소리, 즉흥의 소리, 자유의 소리를 말한다. 그는 2010년 이 같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 ‘동창이 밝았느냐’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직선 활동을 합니다. 이 직선 활동은 에너지가 있어 얻는 것이 많아 보이겠지만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곡선 활동은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듯하나 단 하나도 내 손 안에 잡히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물이 흐르듯, 보이지 않는 것은 바람이 불듯 이것이 ‘허튼가락’이지요.” 그는 ‘풍류학교’를 전북 완주에 곧 설립한다. 7년 전 충남 서천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 영재들을 위해 방과후 학습으로 ‘풍류’ 프로그램을 선보인 적이 있다. 이때 부모 자식 간 불통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랑으로 통하는’ 그런 풍류학교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풍류학교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풀어짐’입니다. 풀어짐만이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리한 몸짓, 마음짓, 흥짓으로 몸을 풀고 머리를 텅 비우고 어두운 감정의 찌꺼기들을 날려 버리는 ‘푸는 법’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풀어져 저절로 몰입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회복할 수 있거든요. 아울러 학생들의 재능과 꿈을 찾아 주는 일도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의 남원 생활을 정리하고 올가을 완주로 터전을 옮기게 되면 “세계 최초의 풍류학교를 본격적으로 꾸려 나갈 예정”이라며 의욕을 보인다. 그가 풀어낸 네 가지 숙제 가운데 ‘이 뭐꼬?’에 대해서는 “인천 용화사 행자승 시절 송담 스님한테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화두를 받을 때였다. 수식관을 할 때 수를 세었던 그 자리에 경상도 사투리로 줄여서 ‘이 뭐꼬?’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풀어낸 것이었다”면서 ‘이 뭐꼬?’는 소리도 듣고, 냄새도 맡고, 돌도 고르고, 붙잡으면 달아나고, 놔 주면 돌아오고 결국 피아노 치는 것과 너무도 똑같으며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군산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가 피아노와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는 수업이고 뭐고 관심이 없던 개구쟁이 시절이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음악 선생님이 ‘고향집’이라는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했다. ‘고향집에 홀로 계신 어머님 그리워~.’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그에게는 이때까지 느껴 보지 못한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음악 선생님한테 달려가 막무가내로 음악실 열쇠를 잠시만 달라고 했다. 건반을 이리저리 눌러 봤다. 신기하게 악보도 없이 ‘고향집’이 비슷하게 흘러나왔다. 둘째 날도 그랬다. 왼손을 두 배로 빠르게 쳤다. 완전히 신이 났다. 이후 머릿속에는 온통 피아노 생각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학교 수업은 뒷전으로 하고 피아노 연습에만 몰두했다. 낮에는 이길환 선생한테 레슨을 받고, 저녁에는 교회 피아노로 연습을 하고, 밤에는 계단 틈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보니 고3 때 자퇴 처리가 됐고 야간학교에 진학해 겨우 고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고교 졸업 무렵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월간음악’ 콩쿠르에서 고등부 1위를 차지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서 꼼짝없이 얼어버렸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왜 얼었을까.’ 20살이 되면서 그는 어느 날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풀어진 상태에서 피아노를 쳐 보았다. 손가락이 건반을 치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한 음 한 음을 칠 때마다 그 신비로움이 텅 빈 자신의 몸을 채웠다. 마치 신이 내리듯 영혼이 자유로워졌다. 피아노를 시작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학생을 집에 바래다주던 중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불교책 2권을 읽고 ‘나를 알아야 나의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출가를 하게 된다. 용화사에서 9개월 동안 공양주로 지낸 뒤 상법 스님을 은사로, 송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법명은 ‘보림’(寶林)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입대 영장을 받게 됐다.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다가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아 영천에 있는 육군 제3사관학교 군악대에 배치받았다. 그런데 절에 있을 때 수행했던 ‘이 뭐꼬?’가 안 돼 탈영을 결심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던 중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꼭 봐야 한다는 핑계로 2박3일 특별휴가를 얻었다. 부대를 빠져나온 그는 먼저 피아노를 가르쳐 준 이길환 선생한테 인사드리고 용화사에 올라가 군복, 군화, 군번줄, 군모 등을 모두 아궁이에 넣어 태워 버렸다. 승복으로 갈아입은 후 고향으로 내려가 시청으로 가서 대뜸 본인 사망신고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될 일이 아니었다. 다시 용화사로 발길을 옮겼다. 진허 스님이 “군대생활 3년도 못 하는 사람이 어찌 평생 중노릇을 하겠는가”라고 꾸짖었다. 결국 부대로 들어가 일주일 동안 자대 영창 신세를 진 뒤 한 달간 대구에 있는 5관구 헌병대 감옥에서 지냈다. 이때 하루 종일 가부좌를 튼 채 ‘이 뭐꼬?’를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석가모니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후에는 재즈와 작곡 공부를 다시 했다. 아울러 서울시립대 작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작곡 공부뿐만 아니라 지휘 공부도 하게 된다. 대학 2학년 때에는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연극 음악을 했다. 국립극단의 ‘넋씨’를 비롯해 ‘왕자호동’, ‘메디아’, ‘봄날의 꿈’ 등에 참여했다. 그가 머리를 지금처럼 빡빡 밀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면서였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기로 다짐했다. 이후 그의 인생은 오롯이 음악만을 향했다. 그는 지금도 컴퓨터를 안 쓰고 휴대전화도 없다. 굳이 이유를 말한다면 자유롭게 음악적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꿈을 물었더니 “음악에 진정성 있는 젊은이들을 발굴해 세계를 감동시키는 음악을 하게 하는 것”이라며 웃는다. 다음 달 16, 17일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등 올 한 해에도 서울과 지방에서 임동창의 신들린 연주는 계속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임동창은 누구 1956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15살 때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다. 17살부터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했다. 21살 때 인천 용화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보림. 30살에 서울시립대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하며 최동선·박인호 선생을 사사했다. 35살 때 김덕수 사물놀이를 만나 국악의 최고 명인·명창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국악을 심도 있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45살 때 모든 외부 활동을 접고 ‘수제천’을 소재로 작곡에 전념하면서 1년 2개월 동안 500여 페이지를 작곡했다. 46살 때 ‘텅 비워져 조상을 만났다‘라는 허튼가락 장르를 개척한 뒤 영산회상, 여민락, 대취타, 전래동요, 민요, 산조 등을 새롭게 작곡했다. 51살에는 제자들과 재즈 무대를 펼쳤다. 55살 때에는 ‘임동창의 풍류, 허튼가락’ 작품곡집 중 1~6권을 출간했다. 대표 앨범으로는 ‘임동창’(1993년), ‘오이디푸스와의 여행’(1997년),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1997년), ‘이생강 임동창의 공감’(1998년), ‘영산회상’, ‘경풍년/염양춘/수룡음’, ‘수제천’(2010년), ‘1300년의 사랑 이야기1-정읍사’(2011년), ‘1300년의 사랑 이야기2-달하’(2012년) 등이 있다. 주요 저서는 ‘임동창 풍류 마음의 거울’, ‘임동창 풍류 사랑의 거울’, ‘임동창 풍류 거울 경’(2011년), ‘노는 사람 임동창’(2013년) 등이다.
  • 6·25전쟁 파편·총상 환자 최다

    6·25전쟁 파편·총상 환자 최다

    6·25전쟁 기간 한국군 사망자는 13만여명, 부상자는 45만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군 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의 병명을 육군이 분석한 결과 파편상과 총상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육군은 20일 6·25전쟁 기간 군에서 발생한 환자를 분석한 ‘환자통계연보’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과거 감염병 발생 현황을 확인하던 중 보관 중인 책더미에서 환자통계연보를 발견해 복원했다. 전쟁기간 군 병원에 입원한 환자 유형을 23개 전문 진료과목별로 종합한 결과, 파편상(12만여명)과 총상(10만여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외과적 처치가 필요한 환자가 많은 것은 북한군 전차와 포병 화력에 의해 아군이 큰 피해를 입었고, 고지 쟁탈을 위한 근접전투가 치열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어 호흡기(1만 5000여명), 소화기(1만 2000여명), 치과(7000여명), 안과(6000여명), 순환기(5000여명) 순으로 집계됐다. 폐렴과 폐결핵, 기관지염, 위염, 위궤양 등 호흡기와 소화기 질환이 적지 않은 까닭은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피로 누적과 영양 결핍, 극심한 전장 스트레스와 열악한 환경 때문이라고 육군은 설명했다. 병과(특기) 별로는 보병이 87%로 가장 많았고, 포병·공병(각 3.4%), 통신(2.1%), 의무(1.4%), 헌병(0.4%) 순으로 발생했다. 부대별로는 6·25전쟁에서 단일 전투로는 최대 성과를 올린 ‘피의 능선 전투’, ‘가칠봉 전투’의 주역인 5사단(4만 6000여명)이 가장 많았다. 이어 3사단(4만여명), 수도사단(3만 2000여명), 2·6사단(3만 1000여명), 7사단(3만여명) 순으로 집계됐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대한민국 지킨 60명의 용사들

    서울신문과 국방부는 공동으로 육·해·공군, 해병대 부사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국군모범용사 60명을 선정해 17일 발표했다. 다음은 제50회 국군모범용사 명단. ◇육군△인사사령부 박문현 원사△특수전사령부 신성부 원사△11공수특전여단 박승대 원사△제36사단 용상호 원사△제3군수지원사령부 황인용 원사△제7공수여단 김용한 원사△제53사단 이승복 원사△수도군단 이선규 원사△203특공여단 엄주삼 원사△제27사단 하오채 원사 △수기사 포병여단 이영철 원사△제1공수여단 육권수 원사△제9사단 박영호 원사△공병학교 김한진 원사△육군본부 군종실 김정인 원사(진)△제22사단 엄태훈 원사△제23사단 김길환 원사△703특공여단 고준배 원사△제11항공단 김미선 상사△수도방위사령부 이용규 상사△제5군단 백종남 상사△제8탄약창 김수일 상사△제2군단 정충실 상사△제1107공병단 한혜경 상사△제1117공병단 박상욱 상사△제2군수지원사령부 김용권 상사△제12사단 신동수 상사△제65사단 심광호 상사△수도포병여단 박주식 상사△제25사단 김동표 상사△제8사단 주영상 상사△제28사단 최행철 중사△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박남수 원사△국방정보본부 박병산 원사△국방부본부 장재윤 원사△국군기무사령부 김현호 중사 ◇해군△해군군수사령부 김문현 원사△해군사관학교 임용수 원사△해군교육사령부 김종진 원사△제1함대사령부 박운석 원사△제1함대사령부 최인환 원사△해군작전사령부 김천용 원사△해군작전사령부 장수범 원사△제3함대사령부 윤원효 상사△제2함대사령부 박용민 상사 ◇해병대△해병대사령부 구자형 원사△해병2사단 이경언 원사△해병6여단 갈기태 원사 ◇공군△제3훈련비행단 정여희 원사△제8전투비행단 안성도 원사△공군군수사령부 김종태 원사△제6탐색구조비행전대 김민수 원사△제20전투비행단 김영민 원사△제30방공관제단 김병학 원사△제1전투비행단 변우성 원사△중앙전산소 김성현 원사△공군헌병단 성수 상사△제3방공포여단 홍성훈 상사△합동군사대학교 이병무 원사△국방부조사본부 염철기 상사
  • [속보]육사 출신 여군 대위 총상 입고 숨진채 발견

    [속보]육사 출신 여군 대위 총상 입고 숨진채 발견

    육사출신의 여성 장교가 목에 총상을 입고 숨진채 발견돼 군 헌병대가 조사하고 있다. 31일 군에 따르면 수도권 모 사단의 홍모(30·여) 대위는 이날 오전 8시 10분쯤 경기 안양시 박달동의 부대 영내 주차장에 잇는 자신의 승용차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총알이 발사된 흔적이 있는 K-1 자동 소총이 놓여 있었다. 발견 당시 승용차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승용차 안에서는 K-1 소총 탄피 1발이 발견됐다. 군 관계자는 “K-1 소총 1발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발견 당시 밖에서 승용차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시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망자가 아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부대 간부들이 찾아 나섰다가 시신을 발견했다”면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부대 생활을 했으며 부대 내부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H소위가 K-1소총을 이용해서 자살을 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타살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육사 62기 출신인 홍 대위는 수도권에 있는 모 부대 소속으로 5분 대기조 중대장 임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위의 남편도 육사 출신으로 현재 정부 기관에 파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홍 대위가 5분 대기조라 총기를 휴대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실탄 1발을 휴대한 경위는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변장 전경, 엘리베이터서 성폭행 시도…여장 군인, 여자탈의실서 알몸 훔쳐봐

    경기 일산경찰서는 30일 수영모와 비닐장갑으로 변장한 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강제추행)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전투경찰 A(23)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 28일 오후 8시 3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서 귀가 중인 B(27·여)씨를 발로 마구 차며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수영모와 비닐장갑을 착용한 채 스카프로 B씨의 입을 막았으나 B씨가 격렬히 저항하자 그대로 달아났다가 경찰의 추적으로 근무지에서 체포됐다. A씨는 수영모와 비닐장갑에 대해 범행을 미리 계획하고 마련한 것이 아니라 해경 생활에서 사용했던 일상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직 해경의 설명에 따르면 A씨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서울 마포경찰서는 여장을 하고 찜질방 여성탈의실에 몰래 들어가 여성들의 알몸을 훔쳐 본 육군 모 부대 소속 박모(22) 일병을 30일 수도방위사령부 육군 헌병대에 넘겼다. 박 일병은 지난 29일 오전 2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찜질방에서 가슴에 수건을 말아 넣어 여자처럼 보이게 한 뒤 탈의실에서 여자 손님들을 엿보다 이를 수상히 여긴 한 여대생이 종업원에게 신고해 붙잡혔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박남수 육사 교장, 전역의사 표명

    육군사관학교 교장인 박남수(58·육사 35기) 중장이 최근 발생한 교내 성폭행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역 의사를 표명했다고 30일 육군이 밝혔다. 박 중장의 전역 의사 수리 여부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제12차 아시아안보회의에 참가하는 김관진 국방장관이 다음 달 1일 귀국한 뒤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육사에서는 생도 축제 기간인 지난 22일 지도교수가 주관한 전공학과 점심 식사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돌려 마신 뒤 남자 상급생도가 술에 취한 여자 하급생도를 생활관에서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령급인 학과장을 비롯해 주로 영관급 장교인 교수 10여명과 20여명의 생도가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이번 사건 발생을 1주일 가까이 공개하지 않아 사건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사건 발생 이후 육군은 감찰과 헌병, 인사 요원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육사에 대한 감찰을 진행해 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또 군기강 사건…육군 일병이 탈의실에서 알몸 훔쳐보다 체포

    또 군기강 사건…육군 일병이 탈의실에서 알몸 훔쳐보다 체포

    육군사관학교 생도 성폭행 사건으로 군기강 문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현역 육군 병사가 찜질방에서 여장을 하고 탈의실에서 여성들의 알몸을 훔쳐보다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3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찜질방 여자 탈의실에서 여성들의 알몸을 홈쳐본 혐의로 육군 모 부대 일병 박모(22)씨를 체포해 헌병대로 인계했다. 지난 29일 휴가를 나온 박씨는 다음날 고향으로 가기로 하고 잠잘곳으로 찜질방을 선택, 오전 2시 쯤 서울 서교동에 있는 한 찜질방에 들어갔다. 이어 새벽 시간에 찜질방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는 점에 착안해 여성 탈의실에 들어간 뒤 다른 사람이 벗어놓은 여성용 찜질복으로 몰래 갈아입었다. 그는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가슴에 수건을 말아 넣어 여성처럼 꾸몄다. 170cm 중반의 날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이라 언뜻 보면 여자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박씨는 안마기에 앉아 여자 고객들을 엿보다 박씨의 모습을 수상히 여긴 한 여대생에게 적발됐다. 여성들의 알몸을 훔쳐보던 박씨는 남탕으로 돌아와 태연히 쉬고 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헌병대로 넘겨졌다.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던 박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경찰이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여주며 추궁하자 자신의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낮 육사 기숙사서 성폭행… 軍, 여생도 보호한다며 ‘쉬쉬’

    육군사관학교에서 남자 상급생도가 여자 하급생도를 성폭행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해 육군이 특별감찰에 나섰다. 육사가 1998년 여자 생도를 선발하기 시작한 이후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은 처음으로 군 전체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28일 육군과 육사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육사 생도의 날 축제 당시 생도 20여명과 공학 전공 교수 한 명이 운동회를 마친 뒤 교정 잔디밭에서 즉석 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몇 차례 돌았고, 2학년 여생도 한 명이 술을 이기지 못해 구토를 계속했다. 함께 술을 마셨던 4학년 남자 생도가 구토를 하는 여생도의 등을 두드려주는 등 돌봐주다가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녀 생도 2명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안 동료 생도들이 남자 생도의 방을 찾아가면서 성폭행 사실이 발각됐다. 육군은 후배 여생도를 성폭행한 4학년 남자 생도를 성 군기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감찰과 헌병 요원 등으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육사에 대한 특별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육사는 모든 생도의 외출 및 외박을 전면 금지했다. 육군 관계자는 교내 음주에 대해 “지도교수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품위를 지키는 선에서 술을 마실 수는 있다”면서 “당시 과도하게 술을 마셨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육사내 성폭행 사건을 1주일 가까이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피해자 보호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한 학년당 250여명인 육사 정원에서 여생도는 학년별 30명 안팎으로 10%를 넘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男생도가 女생도 성폭행’ 육사 특별감찰 착수…사상 초유 사태

    ‘男생도가 女생도 성폭행’ 육사 특별감찰 착수…사상 초유 사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 사이에 ‘대낮 성폭행’ 사건이 벌어져 군 당국이 육사 특별감찰에 착수했다. 생도들 간 성폭행 사건으로 육사에 특별감찰이 착수된 것은 1998년 육사에 여생도 입교가 시행된 뒤 처음이다. 육군에 따르면 22일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날 축제 행사 뒤 4학년 남자 생도 A(22)씨가 술에 취한 2학년 여자 생도 B(20)씨를 자신의 기숙사 방에 데려가 성폭행을 했다. 당시 이들을 포함해 전공 교수와 생도 등 20여명은 오전에 체육대회를 마친 뒤 학과 모임을 열어 육사 영내 잔디밭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들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나눠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2학년 여생도 B씨가 술을 이기지 못해 구토를 반복하다가 여자 기숙사로 돌아가다 술자리에서 B씨를 돌보던 A씨도 방까지 함께 따라갔다. A씨는 의식이 혼미한 여생도를 업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고 육군조사본부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행각은 행사 중 두 생도가 사라진 것을 안 동료 생도들이 남자 생도의 방을 찾아가는 바람에 드러났다. 육군 관계자는 “가해 생도를 구속 수사 중”이라면서 “교수 주관 행사 당시 품위에 어긋나는 지나친 음주가 있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육군은 수사와 별개로 감찰과 헌병, 인사 등 3부 요원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육사 특별 감찰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육사에서는 생도의 음주가 금지돼 있지만 장성급 장교나 훈육관, 지도교수 등의 승인을 얻으면 생도도 술을 마실 수 있다. 현재 육사 여생도는 한 학년 정원 250여명 중 30명 안팎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신군부에 저항한 하소곤 예비역 소장

    [부고] 신군부에 저항한 하소곤 예비역 소장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저항하다 총상을 입은 하소곤 예비역 육군 소장이 23일 오후 5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86세.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고인은 신군부가 수도경비사령부에 들이닥칠 때 장태완(1931~2010) 수경사령관과 함께 반란군 진압 대책을 논의 중이었다. 사령부 접견실에 난입한 신군부 측의 헌병대위가 쏜 M16 총탄에 가슴 관통상을 입었다. 고 이후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보름 동안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과의 공모 여부를 취조받았다. 다음 해 2월 신군부에 의해 강제 전역 조치를 당했다. 풀려난 이후에도 그의 집에는 4개월간 보안사 요원이 상주했다. 고인은 1993년 7월 정승화(1929~2002) 예비역 대장 등과 함께 ‘12·12 사태’ 주모자 34명을 반란죄 등으로 고소했다. 2002년 5월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장지는 대전현충원이다. (02)2258-5940.
  • [주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1, 2부(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견습 수녀인 마리아는 미사도 잊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며 기도시간에 늦는 등 수녀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다. 하지만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원장 수녀의 귀여움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의 장래를 생각한 원장 수녀는 명문 트랩가의 가정교사로 그녀를 추천한다. 퇴역 해군 대령으로 7명의 자녀를 둔 홀아비 트랩은 엄격한 군대식 교육을 해 아이들은 아빠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밝은 분위기를 찾도록 노력한다. 한편 마리아는 언제부터인가 트랩 대령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약혼녀 백작 부인이 있는 상황이다. 트랩 대령이 백작부인을 맞으러 빈으로 떠나자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게 해준다. ■독립영화관-미운오리새끼(KBS1 토요일 밤 1시 5분) 1987년 전직 사진기자 출신에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아버지와 그 바람에 미국으로 떠나버린 어머니 때문에 멀쩡한 23살 낙만은 오후 6시 정시에 퇴근하는 6개월 방위로 입대한다. 낙만은 이발병으로 입대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고작 사진 찍기, 바둑 두기, 헌병 대신 영창 근무 서기 등 일당 백의 잡병으로 취급당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시당하던 낙만은 얼른 이 생활을 마무리하고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 와중에 별별 희한한 감방 수감자들을 만나고, 자신을 눈엣가시라 생각하는 중대장의 딴죽과 시시콜콜 군대의 온갖 잡일을 시키는 선임병들의 횡포에 시시각각 낙만의 군생활은 위협을 받는다. ■베스트셀러(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희수는 10여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발표한 신작 소설이 한 공모전의 심사를 맡을 당시 작품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게 돼 하루아침에 사회적 명성을 잃고 결혼생활마저 순탄하지 못하게 된다. 그 후 2년 동안 창작생활이 어려워진 희수는 오랜 친구인 출판사 편집장의 권유로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딸 연희와 함께 시골의 외딴 별장으로 내려간다. 그들이 찾아간 별장은 굳게 잠긴 2층 구석방, 간헐적으로 집안 전체에 울려퍼지는 기괴한 진공 소리, 작업실 천장에 점차 번져가는 검은 곰팡이 등 왠지 모를 섬뜩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한편 희수의 딸 연희는 ‘언니’라고 불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 [옴부즈맨 칼럼] 사과의 미학/이갑수 ㈜INR 대표

    [옴부즈맨 칼럼] 사과의 미학/이갑수 ㈜INR 대표

    서울신문에서 보도한 대학의 표절 실태를 보면서 한국은 ‘논문 표절 공화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 침 뱉는 것에 죄의식을 갖지 않는 정도의 불감증 수준 때문일 것이다. 표절 의혹이 불거지고 관련 근거들이 보도된 이후에도 당사자들은 대체로 과감한 인정이나 깔끔한 사과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 가운데 배우 김혜수는 보도자료 발표 같은 소극적 대처보다 제작발표회에서 직접 사과하는 정면 돌파를 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대부분의 언론은 김혜수의 빠르고 용기 있는 태도를 비교적 호의적으로 다뤘다. 잘못은 했지만 사과라도 제대로 함으로써 일거에 부정적 상황을 반전시키는 효과를 본 것이다. 김혜수는 사과의 핵심 요소인 주체, 타이밍, 메시지, 태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 등을 제대로 실천한 것이다. 웬만한 정치인이나 기업들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올 만하다. 말 실수도 잘하지만 사과도 잽싸게 잘하기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이달 초에도 오바마는 모금행사에 참석한 캘리포니아주의 여성 검찰총장을 향해 “지금까지 미국에서 가장 예쁜 검찰총장이다”라고 발언해 대통령이 외모 지상주의적 언급을 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그날 밤 전화로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를 했다. 발 빠른 타이밍으로 위기를 벗어난 오바마는 과거에도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것에 비교하면 4월 1일의 청와대 대변인 사과는 ‘두 문장’, ‘17초’, ‘대독 사과’라는 부정적 키워드만 기억되는 것으로 남은 듯하다. 타이밍도 늦었지만 비서실장 대신 대변인이 사과문을 읽음으로써 효과는 감소되었다는 것이 중론인 것 같다. 사과할 때에는 간결하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과 시에 보여주는 작은 태도 하나가 위기 해소에 일조를 하기도 한다. 지난해 주한미군 헌병대가 한국 민간인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미 공군사령관이 기자회견에서 사과성명 발표와 함께 고개를 깊이 숙이며 보여준 한국형 사과는 비판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을 했다. 위기관리에서 사과도, 해명도, 위기에 대한 부정도 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의 하나이다. 사과할 때 책임회피형 조건부 사과는 화만 더 키울 뿐이다. 무조건적인 사과도 금물이지만 타이밍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사과하게 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고 모든 게 끝장이라는 심리적 위기감에 실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과 못지않게 조직이 위기를 맞았을 때 최소한의 유감을 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꼭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에 대한 책임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내 난동 소식이 알려지자 해당 기업은 유감을 곧바로 표명했다.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기업 경영과 크게 관련 없는 위기상황에서 기업은 기업과 개인의 책임을 분명히 구분, 대응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지 국민들은 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보다 위기에 대해 거짓말을 했을 때 더 크게 분노한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죽느냐 다시 살아나느냐는 ‘사과’라는 두 글자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한국전쟁자료를 日고미술상이 싹쓸이”

    “한국전쟁자료를 日고미술상이 싹쓸이”

    “이 사진을 보세요. 군복 입은 아이가 몇 살이나 된 것 같습니까.” 15일 만난 김영준(62)씨는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민군 아이의 사진을 가리켰다. 그는 “제가 갖고 있는 자료만 훑어봐도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라면서 “한반도에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 우리 민족이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시간여행’이라는 고미술상점의 대표인 김씨는 스스로를 한국전쟁 자료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민간인이라고 소개했다. 20년간 모아온 전쟁 자료만 해도 4000여 점에 달한다. 그는 오는 7월 27일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할 전시회 등을 기획 중이다. 당시 뿌려진 전단(삐라)이 2000장이다. 휴전협정이 진행될 당시(1951년 7월 10일~1953년 7월 27일) 대규모로 뿌려진 것들로 내용이 대부분 원색적이다. ‘원수는 미국놈’, ‘이승만 매국도당’과 같이 한·미 연합군을 비난하는 식이다. 자료 중 김씨가 가장 아끼는 건 한강 도강증(渡江證)과 피란민 증명서다. 당시 한강을 건너려면 미군 헌병사령부가 발급한 도강증이 필수였다. 피란민 증명서도 생명줄과 같았다. 김씨는 “지금 와서 보면 허름한 종이 한 장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사의 증표와 같았다”면서 “이것보다 비싸게 산 자료가 많지만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쟁둥이다. 자신의 수집 열정을 출생의 비밀에서 찾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 후인 1950년 겨울, 갓난아기인 그는 어머니 등에 업혀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3년 후에야 고향인 서울 용산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씨는 “전쟁둥이로 태어나서인지 무엇인가를 통해서라도 전쟁의 시대상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전쟁 자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2011년 중국 단둥과 옌볜 지역에 한국전쟁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대부분 일본의 고미술상들이 싹쓸이해 갔다고 하더라고요. 경제적 가치 여부를 떠나 기록의 가치를 아는 일본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전쟁의 자료는 역사는 물론 비극을 막기 위한 교훈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충분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이런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씨줄날줄] 시민 참여 오페라/서동철 논설위원

    해마다 3월 1일이면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충남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는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친다.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는 3000명 남짓한 시민이 흰색 광목으로 지은 한복을 차려입고 횃불행진을 벌인다. 시민들은 헌병 분소를 점령하면서 일제 헌병의 총칼에 희생당하는 모습을 재현하기도 한다. 이 초대형 퍼포먼스가 그저 정형화된 경축행사를 넘어서 감동을 주는 것은 마치 3·1운동이 벌어진 그날인 듯 감정을 되살려낸 시민 배우들의 서툴지만 진정성 있는 연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이 ‘고상한 문화’의 대명사인 오페라에 시민들을 대거 참여시킨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생뚱맞게 아우내 장터의 퍼포먼스를 떠올린 것은 시민들의 자발성과 진정성이 이번에도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시민들이 합창단과 연기자로 출연하는 베르디의 ‘아이다’는 새달 25일부터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성악가와 함께 실력 있는 시민들이 자신감과 자긍심을 느끼고, 그 역량으로 오페라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아이다’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무대에 오르는 시민은 합창단이 48명, 연기진이 42명이다. 지난달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합창단 오디션에는 100명 남짓 몰렸다. 처음 대하는 악보를 보고 노래해야 하는 시창과 음정 테스트를 거치면서 상당수가 스스로 꿈을 접었다. 가사를 외워서 공연해야 하는 암보에 부담을 느낀 응시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응시자에게는 연기진에 참여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렇게 합창단에 선발된 사람은 대학 신입생부터 60세 직장생활 은퇴자까지 다양한 세대, 다양한 직업의 오페라 애호가들이었다. 연기자로는 세종문화회관의 시민연극교실에 참여했던 이들도 선발되어 ‘무대의 꿈’을 이루게 됐다. 연습은 직장이나 학교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저녁시간을 이용한다. 시민 참여 공연으로 노리는 것은 열성적인 오페라 애호가의 확보라고 한다. 한국은 뛰어난 성악가들이 줄지어 배출되고 있지만, 오페라 발전을 위한 시민들의 구심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직접 출연할 기회를 주어 영원한 오페라 지원세력으로 키워 나가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시민 참여 오페라란 오페라 종사자와 오페라 애호가가 모두 만족하는 윈윈전략인 셈이다. 어떤 장르이건 참여형 문화예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술취한 미군 또 난동…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 폭행

    지난 2일 주한 미군 3명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음주 난동과 심야 도주극을 벌인 지 보름 만에 또다시 서울 마포와 경기 동두천 등지에서 미군들이 잇따라 음주 폭력 사고를 저질렀다. 17일 오전 3시 15분쯤 마포구 서교동의 한 호프집 화장실에서 동두천에 근무하는 주한 미군 E(19) 일병이 ‘미군이 화장실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문모(28) 순경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몸싸움을 벌였다. 이로 인해 문 순경의 안경이 망가지고 옷이 찢어졌다. 이어 오전 5시 10분쯤에는 서교동 홍익대 근처의 A클럽 앞에서 한국인과 시비가 붙은 주한 미군 성남항공대 소속 I(30) 병장이 경찰을 계단에서 미는 등 난동을 부렸다. I 병장은 이날 오전 2시쯤 술에 취해 아내와 함께 A클럽에 들어가려다 출입을 제지당하자 화가 나 지나가던 한국인과 파키스탄인 등을 밀치며 시비를 걸었다. 시민의 신고로 서교치안센터에 연행된 I 병장은 한국인 피해자와는 합의를 했지만 또 다른 피해자인 파키스탄인과 다시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I 병장은 자신을 말리던 류모(41) 경사를 밀었고 류 경사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무릎을 다쳤다. 치안센터 출입문 문고리도 파손됐다. 경찰은 두 미군을 공무집행방해, 재물손괴, 공용물건 손상 등의 혐의로 조사한 뒤 미군 헌병대에 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필요하면 추가 조사를 벌여 국내법에 따라 10여일 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두천에서도 미군들이 술에 취해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 지난 16일 오전 6시쯤 보산동 관광특구에서 한국계 미군 유모(28) 하사의 부인(27·필리핀인)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같은 부대 소속 J(23) 상병 등 미군 4명이 부축했다. 이를 본 유 하사가 미군들이 부인을 성추행하는 것으로 오인해 싸움이 시작됐다. 유 하사는 차에서 길이 33㎝의 흉기를 꺼내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유 하사의 지인인 이씨가 클럽 영업을 마치고 지나가다 싸움에 끼어들었고 미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뒤 유 하사의 흉기를 빼앗아 마구 휘둘러 미군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경찰은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미군들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흉기에 찔린 미군이 한때 생명이 위독했을 정도로 범행 내용이 심각해 한국인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맑은 얼굴 맑은 눈/ 비 온 뒤라면 무지개 걸려/ 그러나 독재나 어떤 잔재 따위에는/ 진흙탕 싸움을 사양할 수 없다/ 그 아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앞에서/ 지(知)와 신앙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도시의 신부다(고은 시인의 ‘만인보’ 중 ‘함세웅’ 편의 일부)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1970~1980년대 불끈 쥔 주먹으로 독재에 맞서면서도 늘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를 고은은 ‘도시의 신부’라고 불렀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 정국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1974년)을 만들어 박종철군 고문 사망(1987년), 삼성 비자금 조성(2007년) 등 묻혀 있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며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그였지만 이름 앞에 ‘명사’(名士)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했다. 겸허함을 지켜야 할 사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북하다고도 했다. 나이 일흔이 넘도록 흔한 회고록 한 권 내지 않은 이유다. 함 신부는 지난해 8월 사제 생활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인권의학연구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국미사에 참석하는 등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함 신부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인권의학연구소에서 만났다. 함 신부는 광복을 3년 앞둔 1942년 6월 서울의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유교적 가풍 때문에 가족 중에 가톨릭 신자는 없었지만 집 근처에 천주학당(현 성심여고)이 있어 가톨릭과 서양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다. 여덟 살 되던 1950년 6·25가 터졌다. 소년 함세웅은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신앙에 눈을 떴다. “어느날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쾅 하는 굉음이 나는 거예요. 한낮인데 하늘이 시커매. 나중에 들었는데 B29 폭격기들이 한강 임시다리를 폭파하는 소리였대요. 너무 놀라 친구들과 어디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거기가 성모병원이었어요.” 병원은 아비규환이었다. 피 칠갑을 한 환자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수녀들이 그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 빚은 전쟁, 그 속에서 생사의 경계에 섰던 사람들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첫 종교적 체험이었다. 그때부터 가톨릭 신자가 됐다. “평범한 신자였던 제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성당에서 복사(천주교 미사 때 신부를 돕는 신자)로 활동했는데 그해 11월 2일 위령의 날 신부님과 함께 서울 잠원동, 논현동 일대의 공동묘지를 찾게 됐지요. 너른 터에 빼곡히 들어선 묘지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 누구나 다 이렇게 묘소에서 끝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6·25와 공동묘지의 체험이 겹쳐 결국 사제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셈이지요.” ‘천국에 온 것 같았다’는 회고처럼 신학교 생활은 그에게 더없이 잘 맞았다. 4·19 혁명이 전국을 휩쓴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을 마치고 육군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헌병으로 차출됐어요. 이야, 이제부터 폼나게 군대생활 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배치된 곳이 부산과 광주(경기)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였어요. 그곳에서 군생활을 꼬박 2년간 했지요.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체험한 첫번째 모순의 사회였어요. 불합리한 일상을 겪으면서도 낙오하지 않으려면 숨죽인 채 순종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박정희 독재를 겪으며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군에서 모순의 사회를 배우고 길들여졌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아팠지요.” 신학 교수의 꿈을 품은 함 신부는 1965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는 4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독재와 탄압을 본격화하던 때였다. 햇수로 9년을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나라 밖에 있다 보니 3선 개헌, 유신체제 선포, 학생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투옥과 고문 등 뉴스를 외려 국내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접할 수 있었어요. 마음 아프고 부끄러웠어요.” 1973년 귀국해 마주친 조국의 첫인상은 낯설었다. 마포대교 등에는 헌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고 서울역에서는 중·고등학생을 동원한 반공 궐기대회가 수시로 열렸다. 그야말로 병영사회였다. 서울 연희동 성당에서 보좌사제로 있던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결정적 사건이 1973년과 1974년 잇달아 터졌다. 김대중(1924~2009) 납치사건과 지학순(1921~1993) 주교의 구속이었다. 특히 1974년 7월 지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과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으로 15년형을 받자 성난 사제들이 성당 밖으로 뛰쳐나왔다. 함 신부는 이 과정에서 젊은 신부들을 중심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했다. 당시 사제단에 참여했던 문정현(73) 신부는 함 신부에 대해 “타고난 조율가이자 소통가”라고 평가했다. 문 신부는 “대표가 없는데도 사제단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박학하고 판단이 빠른 함 신부 덕이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지 주교의 구속에 대해 “돌이켜보니 은총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제들이 사회 참여를 시작하면서 유신체제의 모순에 대해 눈 떴다는 얘기다. 유신독재 타파를 외치며 정권에 맞서던 그는 1976년 3·1 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구속됐다. 첫 투옥은 시련이자 기회였다. 서대문 구치소 등에서 1년여 옥고를 치른 그는 “제2의 신학교 생활 같았다”고 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자신의 인간 본성을 엿본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밤늦게 구치소에 갔는데 교도관이 제 방이라며 안내했어요. 근데 완전히 쓰레기통이야. 그래도 내가 살 방이니 의지를 갖고 아침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근데 다 치워놓으니까 교도관이 ‘방 배치를 다시 해야 하니 나오라’는 거예요. 좀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싫다. 살 준비 다했으니 내 방이다’라고 하니까 교도관이 ‘교도소에 내방 네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해요. 근데 옮겨 보니 새 방이 너무 깨끗한 거예요. 청소 좀 했다고 교도소 방 옮기기 싫어한 제 모습이 참…. 덧없는 소유욕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었어요.” 함 신부는 교도소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박 1년간 재판을 받으며 기도와 독서로 마음을 달랬다. 함 신부가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던 유신독재의 종말을 목격한 곳도 교도소였다. 1979년 미사를 집전하면서 농민 오원춘이 정보기관에 납치·감금당한 일에 대해 강론하다가 경찰에 연행돼 영등포 교도소로 끌려갔다. 두번째 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암살됐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박정희 피살 소식을 접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집트 노예 해방의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김재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신독재의 핵심을 제거한 일은 높이 평가해야 해요. 그는 1979년 부마항쟁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수습할 정책을 써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과 나눈 대화에서 ‘그까짓것 100만~200만명쯤 죽여도 문제 없어. 3·15 부정선거 때 경무대 경호책임자인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린 죄로 처형당했는데 내가 발포 명령을 한다면 나를 어떻게 할 거야’라고 했다지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10·26 의거를 결행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했죠.” 그는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기적과도 같은 민초들의 힘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제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 받을 때 피로를 못이겨 눈 감고 있었더니 혼자서 저를 감시하고 있던 중정 요원이 ‘신부님, 정신 차리세요. 소신껏 답변하셔야 해요’라며 응원하더군요. 힘이 불끈 솟았지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때 옥중에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의 쪽지를 전달한 사람도 이름 없는 양심적인 교도관이었어요. 사도행전을 보면 감옥에서 천사들이 감옥 문을 열어 사도들을 내보내 줬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그런 기적을 현실에서 체험한 거죠.” 1970년대 함 신부와 함께 군부독재 권력과 싸웠던 이들 중 지금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 이를테면 김지하 시인이나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시기별로 구별해서 봐야 해요. 인간은 원래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예컨대 김지하 시인도 1970년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던 청년 김지하와 1990년대 이후 현실과 야합한 장년 김지하로 나눠 볼 수 있겠죠. 윤리신학적으로 봐도 사실 선과 악, 천사성과 악마성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거든요. 어느 쪽이 마음속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죠. 일제시대 때 최남선, 이광수 같은 분도 일면으로는 얼마나 훌륭했나요. 변절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한 그들의 한계죠.” 함 신부는 잘못된 사회·정치 제도를 바로잡는 데 교회(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왜 하필 교회일까. 그는 “불의 없는 사회를 만들어 사람들이 양심껏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적 인간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에 종교가 사회 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꽤 오래 전의 일화 하나를 끄집어냈다. “1970년대 어느 부활절 때였어요.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 국영기업에 다닌다는 한 40대 신도가 성당에 왔어요. 술에 취했는데 고해성사를 보겠대요. 그러면서 ‘신부님, 어차피 오늘 반성해도 내일 저는 똑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냥 저와 술 한잔 하시고 용서해주세요’하는 거예요. 또 ‘신부님은 세상을 모릅니다. 부정과 타협 안 하면 살 수가 없어요. 집에 노모까지 5명이 사는데 회사 월급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뇌물받아 아래, 위와 나눠 가져야 해요’라고 하더군요. 양심적으로 살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그러면 당장 식구들이 굶어 죽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함 신부는 당시 30대의 젊은 사제였다. 그 신자에게 ‘그래도 천주교 신자로서 양심껏 사세요’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그 사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들이 양심껏 살도록 도우려면 결국 옳지 못한 사회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교(政敎) 분리는 사실 폭압자들의 논리예요. 종교의 이름으로 불의에 항거하면 ‘예배당, 불당에 가서 기도나 하세요’하는 식이죠. 성경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잖아요. 그러려면 세상 한복판에서 세상을 껴안아야 해요.” (하편에서 계속)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위협 운전했다고…” 한국계 미군이 흉기 휘둘러

    경찰이 운전을 방해했다며 말다툼을 벌이던 한국인을 흉기로 위협한 미8군 소속 한국계 항공정비사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데 이어, 항공정비사에게 돌을 들고 대항한 40대 한국인에 대해서도 처벌을 검토하고 있다. 경기 평택경찰서 박상융 서장은 10일 “욕설을 섞어 말다툼을 벌이다 칼을 꺼내 위협한 뒤 도주했던 미8군 소속 J(48)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미군 헌병대에 인계했으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곧 J씨의 신병처리 문제에 대해 검찰과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몰던 차량을 갑자기 출발시켜 넘어진 J씨를 돌을 주워 위협한 최씨에 대해서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혐의 등을 적용할지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J씨는 지난 8일 오후 5시 20분쯤 평택시 오성IC에서 안죽 방면 20km 지점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유턴하던 중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최씨 차량과 충돌할 뻔했다. J씨는 차를 세우고 최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트렁크에 보관하던 낚시용 칼을 꺼내 반쯤 열려 있던 최씨 조수석 창문을 향해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위협을 느껴 차를 갑자기 출발시키는 통에 조수석 창문을 잡고 있던 J씨가 넘어지자 “나, 경찰이야”라며 차를 세우고 돌을 주워 맞대응한 것으로 드러났다. J씨 부인은 경찰에서 “신호를 위반해 생명을 위협하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오히려 최씨이며, 차를 갑자기 출발시켜 넘어진 남편을 향해 돌을 들고 위협한 것도 최씨인데 반미감정으로 죄인 취급하는 것 같아 너무 억울하다”고 항의했다. 박 서장은 “누가 신호위반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 녹화기록 분석 중”이라며 “최씨 또한 ‘상대방이 흉기를 들고 있어 돌을 들었다’고 말해 좀 더 조사해 봐야 잘잘못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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