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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일병 추가 피격전 생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韓相範)는 지난 84년 군에서 의문사한 허원근(許元根) 일병이 술에 취한 부사관 노모씨가 쏜 총에 맞아 의식을 잃었으며 이후 자살로 조작하기 위해 2발의 총격이 추가로 가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10일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이와 관련,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날 진상 규명을 위한 본격 조사활동에 들어갔다. 규명위는 “허 일병은 84년 4월2일 강원도 화천 7사단 3중대본부 내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부사관이 오발한 총에 맞았고,이후 생존한 상태에서 총 2발을 추가로 맞아 숨졌다.”면서 “중대장 등이 이를 자살로 은폐·조작했다.”고 밝혔다. 규명위는 재미 법의학자 노용면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왼쪽 가슴과 머리 총상 부위에 출혈이 있는 점으로 미뤄 허 일병이 두번째와 세번째 총격을 받을 때까지 심장박동이 어느 정도 있었으며,첫번째 총알을 맞은 뒤 7∼8시간 동안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공개했다.규명위는 “외국에서도 1발의 총상을 입고도 수시간 동안 생존했던 사례가 다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누가 어떤 이유로 2발을 더 쏘았는지와 상급부대의 어느 선까지 사건 조작에 개입했는지,당초 7사단 헌병대의 수사 결과가 상부의 조작지시에 의한 것인지 등은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규명위 관계자는 “추가 총격자에 대한 참고인들의 진술은 확보했지만 이들이 직접 현장을 목격한 것이 아닌 데다 지목된 사람도 완강히 부인해 조사가 벽에 부딪혔다.”면서 “특별법 개정으로 조사기간이 연장되고 권한이 강화된다면 다시 조사해 진실을 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는 “은폐 과정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점은 유감이지만 규명위의 조사기간이 짧고 권한이 제한돼 있어 불가피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준 국방장관은 이날 정수성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육군 중장)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진실 규명이 중요하며 진실을 캐내야만 국민의 불신과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며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내용도 존중할 것을 지시했다. 이세영 오석영기자sylee@
  • ‘허일병 타살’ 신빙성 확인 의문사규명위 첫 현장조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韓相範)는 3일 허원근 일병이 복무했던 강원도 화천군 7사단 소속 부대에 대한 현장검증 결과,“허 일병이 84년 4월2일 새벽 예비역 부사관 노모씨의 총격에 숨졌고,이를 자살로 은폐하기 위한 대대급 간부 등의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참고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현장검증에 참고인으로 나온 당시 1대대 상황병 최모씨는 “2일 새벽 2시쯤 3중대 상황병으로부터 허 일병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이 사실을 전해들은 대대장이 급히 3중대로 지프를 타고 떠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또 대대장은 2일 새벽 3중대에서 한두시간 머물다 돌아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관련기사 29면 규명위 관계자는 “참고인들의 이같은 진술은 2일 낮 1시30분쯤 허 일병의 시체가 처음 발견됐다는 헌병대 수사내용을 뒤집는 것으로 사건은폐 과정에 대대장 등이 깊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또 “도로가 새로 뚫리고 막사 주변의 방호벽도 없어지는 등 현장의 지형이 너무 달라져 정확한 검증은 어려웠다.”고 덧붙였다.허일병 사건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는 오는 10일 발표된다. 이세영기자 sylee@
  • 9월의 독립운동가 고이허 선생

    국가보훈처는 29일 ‘9월의 독립운동가’로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내며 만주지방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일본군에게 붙잡혀 총살된 고이허(高而虛·1902∼1937)선생을 선정했다. 1902년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난 고이허(본명 최용성) 선생은 배재고보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어,항일투쟁을 시작했다.이로 인해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선생은 1920년 중반 러시아를 거쳐 만주로 망명,1930년대 중반까지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펼쳤다. 특히 선생은 1929년 분열돼있던 만주지방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국민부·조선혁명군·조선혁명당을 세워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펼치는 데 큰 기여를 했다.이후 선생은 위 단체들의 중앙집행위원장 등 중추간부를 맡아 조선혁명당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민족사회주의 이념과 사상을 제공했다. 1936년 12월 관전현 보달원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 중 붙잡힌 선생은 다음해 2월 봉천성 부근에서 일본헌병대에게 총살돼 3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서울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9월 한달 동안별도 전시실을 마련,유품을 전시해 선생의 뜻을 기리기로 했다. 오석영기자 palbati@
  • 법사위 표정/ 제각각 증언… 혼돈의 兵風

    98·99년 군 검찰의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했던 고석(국방부 법무관리관) 대령과 이명현(연합사 법무실장) 중령,유관석(1군사령부 법송과장) 소령 등 군 검찰관 3명이 28일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 서로 엇갈린 증언을 해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실체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입씨름만 벌였다. 민주당 신기남(辛基南)의원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가 병역면제 사례금으로 2000만원을 주었다.’는 김도술씨의 자백이 담긴 녹취록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 중령은 “기무사·헌병대 관련 내사자료는 있었으나 한씨의 돈 부분은 못들었다.”고 말했다.고 대령은 “검찰부장인 내가 모르는 자료는 없다.”고 단정지었다. 유 소령은 “김대업씨가 김도술씨로부터 받아낸 간이진술서 1쪽에 이회창·이정연씨의 이름과 청탁금액(2000만∼3000만원으로 추정),비리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면서 “고 대령이 박선기 법무관리관의 말을 빌려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할 필요가 없다.’며 내사 중단을 지시했다.”고 말했다.이 중령도 “기무사 고위층과 친분이 있던 고 대령이 기무사 요원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자 중단시켰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고 대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거듭 부인했다. 서울지검은 지난 27일 이들 3명에 대한 소환조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허원근일병 첫 총격 지목 하사관 “허일병 내가 안쐈다”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에 의해 허일병에게 총을 쏜 당사자로 지목된 예비역 하사관은 27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허일병의 사망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며 허일병의 죽음과도 무관하다고 주장했다.이 하사관은 규명위가 밝힌 술자리를 가진 시점과사고 상황 등이 자신의 진술과 다른데도 규명위가 묵살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던 8명의 사병중 한 사람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도 최근 규명위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허일병의 사망일인 84년 4월2일 평소와 다름없이 일과를 시작했고,점심시간이 돼도 허일병이 보이지 않아 찾던 중 폐유류고에서 사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이 네티즌은 “중대본부 사병들이 중대장과 함께 사건을 은폐하는 데 가담했고 헌병대 조사 뒤 포상휴가를 다녀왔다는 규명위의 발표는 허위”라며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규명위 관계자는 “술 취한 하사관이 허일병을 쏴 숨지게 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사건 직후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이 입을 맞췄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충분하다.”고 일축했다. 이세영기자
  • “”목격자 軍조사때 가혹행위””, “”허일병 사망 발설금지 각서””

    허원근 일병의 사망 현장을 목격한 사병 8명이 사단 헌병대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조사 직후에는 단체로 포상휴가를 다녀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22일 “현장을 목격한 사병들이 허 일병 사망일인 84년 8월2일부터 18일 사이에 사단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았으며,조사 직후 3∼4일의 포상휴가를 다녀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규명위는 “사병들이 조사 도중 무릎 사이에 곤봉이 끼워진 채 군화발로 밟히거나 족집게로 머리카락을 쥐어 뜯기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조사받은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썼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규명위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포상휴가까지 보내준 배경과 관련,사단급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 기도가 있었는지 조사중이다. 규명위는 또 허 일병이 자살했다는 대대의 거짓보고가 이날 오전중으로 연대와 사단까지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단 헌병대 조사과정에서는 발생시간이 오후 1시20분으로 처리된 점에 주목하고있다. 규명위는 사단급 지휘관과 참모들의 개입 가능성을 따질 수 있는 단서로 보고 있다. 한편 규명위는 “헌병대 조사에서 사망현장에 있었던 11명 가운데 10명에 대해서는 수 차례에 걸쳐 10여장씩 진술서를 받았으나 정작 허 일병을 쏜 하사관으로부터는 1장짜리 약식진술만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이어 이 하사관이 같은 해 육군범죄수사단 재조사와 1999년 국방부사망사고특조단 조사에서는 아예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허일병’ 연대·사단 간부 조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군 부대 내에서 술에 취한 상관의 총에 맞아 숨진 사실이 18년 만에 드러난 허원근(許元根) 일병 사망사건과관련,사건 은폐 과정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조만간 당시 허 일병의 소속 연대와 사단급 간부까지 조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규명위 관계자는 21일 “군부대의 지휘계통을 감안할 때,독립된 전투단을구성하는 연대급에서 소속 중대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을 리 없다.”면서 “대대장뿐만 아니라 연대장까지도 사건 은폐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헌병대 수사과정에 사단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사단급 지휘관과 참모선도 조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규명위는 사건의 은폐조작을 위해 허 일병 사망 직후 대대급 간부까지 참여한 대책회의가 열렸고,현장을 목격한 사병들에게 ‘알리바이 조작’을 위한 특별교육까지 실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사망 현장에는 회식에 참여한 중대 간부 외에도 중대본부 주변에 있던 8명의 사병 등 모두 11명의목격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허 일병을 쏜 것으로 알려진 하사관은 사건 직후 아무 징계도 당하지 않고 사단내 다른 중대로 전보된 뒤 승진해 90년초 상사로 예편했고,최근 위원회조사에서 “술에 만취해 총을 잡은 것까지는 기억나지만 총을 쐈는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준곤 상임위원 등 규명위 관계자 7명은 5공화국 시절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관련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를 방문했으나 기무사측의 거부로 조사가 무산됐다. 기무사측은 “강제 징집제도는 정부부처 주도로 실시됐으며 84년 9월 제도가 폐지되면서 보안사 담당부서도 해체되고 녹화사업 관련자료도 대부분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軍 84년 자살로 발표한 허원근일병 “상관이 총기 살해뒤 은폐”

    군 부대에서 사병이 술에 취한 간부의 총에 맞아 숨졌으나 군 간부들이 자살로 조작,은폐한 사실이 18년 만에 드러났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20일 자살한 것으로 발표된 허원근(許元根·당시 22세·부산수산대 휴학) 일병 사망 사건을 재조사한 결과 허일병은 84년 4월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 중대본부 막사에서 하사관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사건 경위와 조사 결과= 규명위는 “당시 중대장 전령 겸 무전병이었던 허일병이 소대장 진급 축하 술자리에서 심부름을 하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하사관이 쏜 총에 오른쪽 가슴을 맞아 숨졌다.”고 발표했다. 규명위는 허 일병이 숨지자 문책을 우려한 중대장 김석홍 대위 등이 사체를 막사에서 50m쯤 떨어진 기름창고로 옮긴 뒤 왼쪽 가슴과 머리에 2발을 더 발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건 현장을 물청소하고 상급부대에 허 일병이 자살한 것으로 보고한 사실도 밝혀졌다.당시 중대 간부들은 근무지인 GOP 초소를 이탈해 자정 무렵부터 술자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직후 관할 2군단 헌병대는 “중대장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허 일병이 군 생활에 염증을 느껴 자살했다.”고 발표했었다.규명위는 2000년 12월 진정을 받은 뒤 허 일병과 함께 근무했던 중대 간부와 사병,상급부대 관계자 등 200여명을 조사한 끝에 현장을 목격한 10여명으로부터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했다.규명위는 사건을 은폐하는 데 개입한 상관들과 추가로 2발을 쏜 중대 간부를 밝혀내기 위해 조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18년만에 타살 밝힌 아버지= 허 일병의 사망 원인이 밝혀지기까지는 아버지 허영춘(許永春·63)씨의 18년에 걸친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다.허씨는 ‘중대장의 가혹행위에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설명이 믿을 수 없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3발이나 총을 쏘았다는 것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뒤 타살을 확신한 허씨는 육군 범죄수사단과 국방부 등에 진정서를 냈으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아무리 탄원해도 소용없으니 몸조심하라.’는 협박만 들었다. 전남 진도의 농부였던 허씨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장을 맡아 단식농성도 하고 법의학을 독학으로 공부하며 싸웠다.그는 지금껏 아들의 유골을 묻지도 못한 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허씨가 원하는 것은 처벌이나 배상보다는 진실이다.그래서 이달 초 아들을 죽인 당사자로 추정되는 당시 하사관에게 ‘원근이를 죽였다는 사실만 인정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국방부 입장= 군 당국은 공소시효(15년)는 끝났지만 세부 자료를 받는 대로 사실확인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다. 김창해(육군 준장)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대단히 부끄럽고,국민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면서 “관련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그는 또 “헌병대와 육군 범죄수사단의 당시 수사과정은 물론 99년 국방부의 재조사 과정에서 혐의가 있는 데도 사실이 덮어졌다면 이에 따른 응분의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세영 오석영기자 sylee@
  • 美장교 택시받고 뺑소니

    서울 용산경찰서는 18일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난 미 육군 소위 컬버(23·여)를 붙잡아 신병을 미군 헌병대에 넘겼다.컬버 소위는 전날 밤 11시40분쯤 용산구 이태원동 기업은행 앞길에서 친구의 쏘나타 승용차를 몰고 후진하던중 정모(37)씨가 모는 택시를 들이받은 뒤 1.1㎞쯤 달아나다 뒤쫓아간 정씨에게 붙잡혔다.컬버 소위는 경찰에서 “큰 사고가 아니었고,택시기사가 가라고 손짓하는 줄 알고 그냥 갔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한부대 근무 오누이 박노환·박미진하사

    오누이가 한 부대에서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해 9월 공군 부사관후보생 182기로 입대한 여군 박미진(朴美珍·20) 하사와 이보다 2년 앞서 176기로 임관한 뒤 충남 서산 제20전투비행단 헌병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노환(朴魯煥·23) 하사다. 여동생 박 하사는 임관 직후 오빠가 있는 같은 부대의 보급대에 배치됐으나 그동안 오누이 사이라는 것을 숨기고 지내다 우연히 알려지고 말았다.두 사람이 부대 식당에서 마주치면 다정스럽게 식사를 하는 모습 등이 자주 여군동료들에게 눈에 띄어 “혹시 사귀는 사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게 되자 오누이 관계를 실토한 것이다. 오빠 박 하사는 여동생 내무반의 고장난 세탁기를 수리해주고 여동생이 좋아하는 떡볶이 등을 사다줘 여군들 사이에서 ‘최고의 오빠’로 통하게 됐다.박 하사의 동료들은 차분한 성격의 오빠와 활달한 여동생을 빗대 오빠는 ‘머리 짧은 여군’,여동생은 ‘머리 긴 남군’으로 놀린다.그러나 평소 부대에서 여동생을 대할 때에는 헌병 부사관으로서 엄한태도를 보인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오누이가 나란히 공군이 된 것은 아버지 박장래(朴璋來·47)씨의 영향.아버지 박씨는 공군 사병 261기 출신으로 오누이에게 어릴 적부터 공군의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자주 했다.그래서 1남1녀 중 딸마저 공군이 되겠다고 했을 때 “14주간의 기본군사훈련이 여성으로서 쉽지 않겠지만 오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복무하라.”고 격려했다. 여군 박 하사는 “오빠와 함께 공군 제복을 입고 나란히 부모님 앞에 설 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라면서도 “오빠가 아껴주는 것은 고맙지만 입대 이유가 여자로서 대접받기보다는 유능한 공군 부사관이 되기 위해서인 만큼 매사에 열심히 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오빠 박 하사는 “여동생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모범적인 군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사설]美 장갑차 사건 공동조사해야

    미군 궤도차에 의해 두 명의 여중생이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미2사단주둔지 의정부 인심이 20일 가깝게 들끓고 있다.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의정부 역사에서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고교생들도 침묵농성으로 동참하고 있다.이들은 미국독립기념일인 4일 주민들과 함께 미군부대의 축제에 맞서 범국민규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미군과 관련된 사건이 항용 그렇듯 미군의 월권 및 은폐 의혹이 주민들의 공분을 키웠다.월드컵 기간이자 지방선거 투표일이던 지난달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 갓길에서 이 마을에 사는 중학교 2년생 신효순 심미선 두 학생이 미2사단 공병대 소속 54t짜리 부교운반용 궤도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미군운전병은 우리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기 전 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미 헌병대로 넘겨졌고,엿새 뒤 미2사단은 “선임 탑승자가 피해 여중생들을 30m 앞에서 발견해 운전병에게 소리쳤으나 소음이 심해 운전병은 8초 뒤에야 정지 고함을 알아들었으며 그때는 이미 피해자들은숨졌다.”는 사고 경위를 발표했다.이 조사는 한국 군경과 합동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미군은 밝혔으나 시민단체와 유가족의 범국민대책위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며 유족·시민단체·미군 등이 참여하는 공동진상조사단 구성을 제안했다.숨진 여중생 유가족은 미군 장갑차 운전병과 동승 장교,소속 부대장 등 미군 여섯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에 고소했는데,우리는무엇보다 범대위의 공동진상조사단 구성 제안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미2사단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있으나 주장대로 단순한 업무상 과실치사라면 공동조사를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일 미군으로부터 넘겨받은 관련자 진술서에 의하면 “운전병은 당시 부대장과 지휘본부 사이 무전교신으로 경고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첫 발표 때와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객관적인 공동조사의 필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 ‘녹화사업’ 자살 한희철씨 민주화 관련 의문사 인정

    1983년 군 초소에서 근무하던 중 가슴에 소총 실탄 3발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 서울대생 한희철(당시 22세)씨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6일 “한씨는 신군부가 운동권 학생들의 강제징집 및 프락치 활용 공작으로 진행한 ‘녹화사업’ 과정에서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폭행과 고문을 당했으며,운동권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과 보안사의 불법적인 인권유린을 고발하기 위해 자살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가 자살로 판명된 사건을 민주화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개입으로 발생한 의문사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또 녹화사업이 촉발한 의문사에 대한 첫 결정으로 이윤성씨 사건 등 다른 녹화사업 사망 사건의 최종 결정도 잇따를 전망이다. 한편 진상규명위는 87년 수도방위사령부 근무중 청와대 외곽경비 지역에서 숨진 노철승씨 사건과 관련,“민주화 관련성이나 위법한 공권력 행사는 없었지만 당시 중대장이 노씨 자살사건에 대한 문책을 우려,노씨 동료에게 허위진술을 지시하고 헌병대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등 조사가 잘못됐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정승화 전육참총장 빈소 표정

    13일 정승화(鄭昇和) 전 육군참모총장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는 현역 장성들과 예비역 원로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도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김판규(金判圭) 현 총장 등 육군 고위급 장성들은 흰색 예복을 차려입고 대선배의 죽음을 애도했다.일부 예비역 원로들은 조문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4성 장군에게 총을 겨누고 계급장을 떼버린 신군부측 인사들은 보이지 않았다.지난 79년 10·26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군권(軍權)을 거머쥔 정 전 총장의 빈소에 당시 신군부를 이끌었던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찾을지 관심을 모았으나,끝내 이뤄지지 않았다.‘23년 전에 쌓은 벽’이 주검 앞에서도 허물어지지 않은 셈이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은 이날 아침 전화통화에서 “어른께서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며 조문기간 5일 동안 빈소 방문은 물론 조화도 보낼 뜻이 없음을 밝혔다.이 측근은 “아침에 지방선거 투표는 했다.”고 덧붙였다.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가 있는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조화는 오전에 도착했으나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빈소에서 치워졌다. 이른 아침부터 빈소를 지키던 장태완(張泰玩) 재향군인회장은 전 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죽은 사람에게 예의도 모르는…,옹졸한…”등 분을 감추지 못했다.한 유족은 “고인이 억울하게도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찾아온 조문객에게 화를 내겠느냐.”면서 “(전씨는) 못 오는 것이 아니라 안오는 것”이라고 서운해 했다. 대통령 시해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계엄사령관인 정전 총장은 사건의 수사 방향과 인사문제 등에서 마찰을 빚었다.전 사령관측은 정총장이 인사권을 이용,자신들을 제거하려 한다는 첩보를 듣고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선제공격을 택했다.반면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은 헌병대장에게 유인돼 연희동 요정에 있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미군車 치여 여중생 2명 숨져

    13일 오전 10시45분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이 마을에 사는 신효순(14·조양중 1년),심미선(14·조양중 1년)양이 미 2사단 공병대 소속 가교운반용 궤도차량(운전자 워커 마크 병장·36)에 치여 숨졌다. 신양 등 2명은 이날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생일잔치에 가기 위해 편도 1차로 옆갓길을 걸어가던 중 파주 방향에서 양주군 덕도리 방향으로 진행하던 궤도차량의 오른쪽 궤도 부분에 치였다. 경찰은 너비 3m 67㎝인 궤도차량이 폭 3m 40㎝의 도로를 가던 중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과 교차하기 위해 도로 옆 갓길쪽으로 붙여 진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사고를 낸 마크 병장이 미군 헌병대에 넘겨져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주한미군 사령부는 여중생 2명이 미 육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것과 관련,이날 성명을 내고 “진심으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대니얼 자니니 미8군 사령관은 “우리는 이번 비극적인 사고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며 철저한조사를 약속한다.”고 말했다.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정승화 前육참총장 별세

    12·12사태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다 쿠데타를 일으킨 부하 장교들에게 연행되는 수모를 겪었던 정승화(鄭昇和·사진)예비역 대장이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6세. 정승화 전 총장은 최근 노환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가 이날밤 9시쯤 숨을 거뒀다. 정 전 총장은 쿠데타가 일어난 79년 12월12일 서울 한남동 참모총장 공관으로 들이닥친 허삼수 당시 보안사령부 인사처장과 우경윤 수도경비사령부 제33헌병대장의 병력 50여명에 의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됐다.군사 재판을 거쳐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정 전 총장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48년 육사 5기로 임관,6·25전쟁 당시 대대장과 부연대장 등으로 참전했고 휴전후에 연대장·사단장·육군본부 특전감을 거쳐 3군단장·육사교장·1군사령관을 지냈다. 87년 한때 통일민주당 고문을 지내기도 했으며 지난 95년 12·12사태 수사과정에서 명예를 회복했다.2000년 1월 예비역 장성의 모임인 성우회 6대 회장으로 취임,국군포로 송환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고인은31년간의 군 생활에서 충무무공훈장,미 은성무공훈장,보국훈장 천수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신유경 여사와 3남 1녀가 있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영결식은 16일 오후 2시 대전 국립묘지에서 육군장으로 치러진다. 한편 육군은 장례기간 예하 전 부대에서 조기를 게양하고 고인을추모할 방침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6.13 지방선거 누가 뛰고있나] 서초구, 은평구

    ■서초구 - 추모공원 건립 놓고 공방전 서초구는 조남호(63·한나라당) 구청장의 3선 질주에 민주당 이용기(61) 후보가 딴죽을 걸려는 양상이다.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 문제가 서초구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만큼 화장장 건립을 둘러싼 두 후보간의 ‘불꽃 공방’이 예상된다. 조 후보는 “추모공원은 분산 건립돼야 하고 기존 서울시의 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민,서울시장 후보와 연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보사국장,환경녹지국장,임명직 서초구청장,민선 1·2기 서초구청장 등 공직경험이 풍부한 그는 행정 부조리 근절 등 청렴성 제고를 최고 공적으로 꼽는다.또 서초를‘문화예술도시’로 정체성을 확립시켰고 장애인을 위한전용치과와 보호시설 설치,벼룩시장 도입 등을 자랑하고있다. 4개 권역별 도서관 건립,정보사령부 이전지에 국립미술관 등 문화시설 확충,반포유수지 체육공원화 등을 공약했다. 이에 맞서는 이 후보는 “인신공격은 피해야하지만 추모공원의 원지동 건립 결정은 문제가 많다.”며 조 후보와의 일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 후보는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대장 등 군 수사통에서 행정공무원으로 변신해 인천시 감사실장,인천 북구청장 등을 지냈다. 그는 “불필요한 기구 통폐합을 통해 작고 효율적인 구청을 실현하는 등 자치행정에 기업 마인드를 도입하고 인기위주의 선심행정을 타파하겠다.”고 밝혔다. 첨단 벤처기업단지 조성,양재 종합체육센터 건립,탁아소등 주민복지시설 확충 등을 약속했다. 최용규기자 ykchoi@ ■은평구 - 무소속 출마여부가 변수 은평구는 현 구청장인 한나라당 노재동(61) 후보와 서울시 지하철공사 감사 출신인 민주당 김영춘(52) 후보의 각축전이 예고되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김 후보와 2차 경선까지가는 접전끝에운명이 뒤바뀐 김장주 구의원의 무소속 출마 여부가 선거판도의 변수가 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다 서울시의원을 거쳐 지난해 보궐선거로 구청장 자리에 오른 노 후보는 “기업에서 배운 경영마인드를 토대로 구정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리겠다.”고말했다. “지역의 55%가그린벨트에 묶여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주거지역이다보니 경제적으로 낙후됐다.”는 그는 “연신내,대조동,불광역,수색지역을 중심으로 상권을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창릉천 이남 고양시 항동 서오릉 등 560만평이 은평구에 편입돼야 효율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이 지역의 서울편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주민들의 관심사인 국립보건원부지에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특급관광호텔을 유치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뒤늦은 공천으로 이제서야 선거사무실을 준비하는 김 후보는 “은평구 예산 및 직원보다 10배나 많은 지하철공사의 감사로 일하면서 행정의 큰 흐름을 터득하게 됐다.”면서 “젊고 깨끗한 이미지에다 오랜 정당 생활과 시의원으로서의 정치력과 행정경험 등을 앞세워 노 후보와 차별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민 밀집 지역인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서민구청장’이 되겠다.”며 교육환경개선,공정하고 투명한 구정실현,구민휴식공간 확충 등을 약속했다. 조덕현기자 hyoun@
  • 광주비엔날레 벌써 30만명 ‘성공 예감’

    ‘멈춤,PAUSE,止’를 주제로 6월 2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가 개막 40일만인 8일 현재 관람객 29만6000여명을 돌파했다.파격적인 전시개념 도입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국제미술전으로 자리잡았다는 국내외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인 ‘르 몽드’와 ‘르 피가로’,일본의 아사히신문 등은 최근 “동북아시아 여러 도시가 비엔날레로 미술적 실험을 시도했지만 광주만 유일하게 성공을 거뒀다”고 극찬했다.이들 신문은 광주비엔날레가 기존 비엔날레의 틀을 깬 ‘무모하리만큼 실험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한국 94명을 포함한 33개국 325명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지난 대회때처럼 국가·장르별 또는 본전시·특별전으로이뤄지지 않았다.각각의 주제를 가진 4개의 프로젝트별로구성됐다.전시장소도 전시관에 국한하지 않고 5·18 당시상무대 자리 등 역사적 공간으로 옮겨졌다.각 프로젝트별전시 컨셉트와 공간을 둘러 봤다. ◆ ‘프로젝트1-멈춤’ ‘숨막히는 속도사회에서 잠깐 멈춰서 우리의 삶을 성찰하자’는 의미가 담긴 주제 ‘멈춤’을 표현하고 있다.전시관 1∼4,6전시실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에 미술작품들이 걸려 있을 것이란 상상은 깨지고 만다.대신 건축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목재, 천막,벽돌 등과 비디오 설치작품들로 뒤섞여 있다.또 전시장 안의 또다른 전시공간인 파빌리언이 18개나 들어서 있다.벽면에는 낙서,만화,사진 등이 덕지 덕지 붙어있다. 한편에서는 주민들이 춤판을 벌이고 있다.공간도 주제별로 분할하지 않았다. 관람객이 아무데서나 드나들 수 있도록 여러개의 입구와 동선을 미로처럼 꾸몄다. 큐레이터도 예술감독인 성완경씨와 찰스 에셔,후 한루 등 3명이 공동으로 맡았다.현지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초청,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서다.미리 디자인된 공간에 작품을 운송해 내거는 대신 공간내의 구성에 초점을맞춘 것.세계미술의 주류가 아닌 대안공간그룹의 젊은 작가와 건축가들이 이들 공간을 꾸몄다.폴크스바겐 승용차를 뒤집어 거꾸로 매달아 놓고 타보라고 관람객을 유도하는설치작가도 있다.어떤 작가는 가건물을 짓고 그 안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찍은 기념사진을 붙여 놓기도 했다.퍼포먼스,해프닝,작품 제작 등에 관객들이 즉석에서 참가해 살아 움직이는 요소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 ‘프로젝트2-저기:이산의 땅’ 비엔날레 전시관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국인의 정체성문제를 다룬다.이국땅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들이 갖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에서 출발,세계속에 던져진 또 하나의 ‘나(한국사람)’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의 민족성이나 동질성 같은 개념은 요구하지 않았다. 현지문화와 모국문화 사이의 조화와 갈등,흡수와 거부,친밀함과 낯섦의 갈등 구조를 ‘정착’이란 개념으로 새롭게 접근했다.미국·일본·베이징·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자신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문제를 작품과 다큐멘터리 비디오 등 영상물을 통해 보여준다. ◆ ‘프로젝트3-집행유예’ 옛 상무대가 자리했던 상무지구 5·18자유공원에서 열리고 있다.5·18민중항쟁과 관련된 지역적 특성이 강한 프로젝트이다. 5·18당시 시민들이 구금되거나 재판을 받았던 옛 헌병대 건물과 영창,군사법정,내무반 등이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역사적 사건이나 가치에 대한 공공의 기억 그리고 그것에 내재하는 가치나 습관에 대한 근원적 반성과 재구성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리이다. 옛 상무대가 도시개발로 아파트촌과 유흥가들이 들어서는 과정 등을 영상을 통해 볼 수도 있다.유치장 창틀을 연상시키는 구조의 스크린에 옛 유행가로 만든 뮤직비디오 작품, 5·18 암매장 발굴의 허구성을 지적한 ‘개죽음’등이 눈길을 끈다. 또 동백림 사건으로 투옥됐던 고암 이응노 화백이 서울구치소 등지에서 제작한 16점의 작품도 볼 수 있다.우리나라에선 처음 선보인 이들 작품은 먹으로 그린 ‘자화상’시리즈 및 신문지와 밥풀을 이겨 만든 인물조각,나무 도시락을 소재로 한 꼴라쥬,문자 추상화 등이다. ◆ ‘프로젝트4-접속’ 최근 폐선된 경전선의 옛 남광주 역사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재래시장인 남광주 시장과 상인들이 내려다 보이고 주변에 오래된 가옥이나 건물들이 즐비하다. 70여년 동안 철길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버려진 땅이다.이곳에는 9개의 대형 파빌리언이 설치됐다. 철길 침목을 일으켜 세워 사람의형상을 만들거나 철로가 지나간 자리의 땅을 파 내려가 지층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NGO 파빌리언’을 통해 도시개발에 대한 의견 수렴과 폐선부지의 활용방안을 제시하고 있다.철교 위의 보도교 설치와 박물관 건립을 통한 시간·공간·시민간의 접속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 본전시중 ‘집행유예’와 ‘접속’은 전시관에서 멀리 떨어진 5·18자유공원과 도심철도 폐선부지 등 역사·생활 공간으로 끌어냈다.역할을 다한 이들 공간은 망각 속에 버려진 가운데 재탄생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주제와 합치된다.“신선하다 그리고 역동적이다.고정관념을 털어낸파격이 두드러진다.”(만레이 슈 타이완 큐레이터)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에너지가 넘친다.역사의 현장을 전시장으로 꾸민 점도 이채롭다.”(아키라 다테하타 일본 다마미술대 교수) 광주비엔날레를 둘러 본 국내외 전문가들은 후한 점수를 매겼다.준비과정에서 일부 문제점을 드러내긴 했으나 전시 주제와 내용은 기존의 비엔날레와 대비되는 차별성을 확보했다는 게 미술계 안팎의 평가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kdaily.com ***예술감독 성완경씨 “생활접목 살아숨쉬는 전시로” “박제된 예술의 틀을 깨고 생활과 접목된 살아 숨쉬는전시를 꾀했습니다.” 성완경(58) 2002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이 난해하고 권위적인 모습에서 탈피,관객과 공동체에 다가서는 친밀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제 ‘멈춤’의 의미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잠시 쉬어가자는 뜻을담고 있다.멈춤은 단순한 도피나 휴지(休止)가 아니다.휴식과 재충전이고 새로운 출발이다.멈춤은 그래서 현실의변화와도 맞물려 있다.새로운 사상과 제도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요구한다.기존의 낡은 사상과 제도·관행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그러나 중요하다.현실의 갈피 사이에서멈춤의 긴급성을 읽어내고 그 실현을 모색하는 것이 이번행사가 택한 덕목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은. 전 세계 25개 대안공간그룹 작가들이 참여했다.이들은 전시공간에서 직접 작품을 꾸미고 활발한 토론과 네트워킹을 이뤄내고 있다.또 수 많은 파빌리언을 설치했다.이런 형식은 세계 어떤 비엔날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파격’이다.그동안 예술계의 흐름을 서구중심의 가치와 문화가주도해 왔다.그러나 대안공간 그룹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이들은 범지구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으로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교환과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세계의 언론들이 광주비엔날레를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아시아의 최대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할것으로 본다.지속적인 성공 여부는 아시아의 정체성 확보등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갖는 것이다.베니스 비엔날레 등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비엔날레 행사들이 대부분 ‘미술의신전’과 같은 모델로서 현학적 사유 또는 스팩터클의 효과에 기대고 있다.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진열돼 있는 미술’이 아니라 ‘행동하는 미술,함께 체험하는 미술’이다.이번 전시공간을 원초적 상거래 행위가 이뤄지는 복잡한시장터처럼 꾸민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우리만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성공의 열쇠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 공군장교 권총 자살

    명문대를 졸업한 공군 중위가 주말에 외출을 나와 부대에서 가져 온 권총으로 자살했다. 18일 새벽 1시55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Y비디오방에서공군 ○○단 소속 권종혁(25) 중위가 권총으로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알 1발을 쏘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권 중위는 S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0년 7월 학사장교로 입대,탄약무기 관리 등을 담당했다.사고 현장에서는 38구경 권총과 실탄 6발이 발견됐다. 권 중위는 죽기 전날 대학 선배 서모(26)씨를 만나 함께식사하고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죽음을 예고하는내용이 담긴 편지를 전했다.권 중위는 여자 친구가 다른남자와 교제하는 것을 알고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헌병대는 총기와 실탄이 부대에서 빠져나간 경위 등군의 허술한 총기관리를 조사중이다. 윤창수기자 geo@
  • 2월의 독립운동가 한훈 선생

    국가보훈처는 31일 일제 치하에서 비밀결사대를 조직,의병활동을 한 한훈(韓焄·1890∼1950) 선생을 광복회 등과 공동으로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0년 전후 의병에 가담,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1913년 비밀결사대인 광복단을 조직,일본인들의 광산 등을 털며 항일 군자금을 마련했다.이어 1916년부터는 친일 부호들을 찾아다니며 군자금을 모으는 한편 전북 순창의 일본군 헌병대를 습격,무기를 탈취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일본군에게 붙잡혀 옥살이를 했으나 옥중 단식투쟁으로 건강이 나빠져 풀려났다.선생은 6·25전쟁중 북한군에 납치돼 피살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작전중 총기 사고 군장교 1명 사망

    2일 오전 11시 35분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동암마을 항구에서 작전중이던 육군 향토사단 모부대 소속 군용트럭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 전모 소위(24)가 숨졌다. 숨진 전 소위는 소대원 6명과 함께 작전차 어선 임검을 위해 부대에서 동암마을 항구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사고 목격자들은 “소대원들이 트럭에서 하차한 뒤 1분뒤트럭에서 총소리가 났으며,달려가보니 전 소위가 K2소총을안은 채 조수석에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육군 헌병대와경찰은 오발사고로 추정하는 한편 총기 자살사고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소대원과 사고 목격 주민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중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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